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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 통한 국력신장” 동반행보/한­일 정상 새달 서울회담 의미

    ◎시애틀 동시방문 앞둔 방한에 주목/통상·문화재 반환 등 주요현안 논의 한일 양국에 새정부가 출범한후 첫 정상회담이 다음달 6일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장 의미를 둘수 있는 것은 양국 국내정세와 연관된 것이다.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일본총리는 모두 개혁 기치를 내세워 집권했다.세계적으로 개혁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동북아의 이들 두 지도자는 국제적으로도 개혁의 선봉장이라 불릴만한 인물들이다. 때문에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의 만남 자체가 개혁은 거스를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의식」인 셈이다. 국제적으로도 양 정상의 회동은 새로운 동북아질서의 태동에 기여를 하리라 예상된다. 김대통령은 문민정부출범후 「신외교」를 내세우며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겠다고 밝혀왔다.정신대문제에서도 물질적 보상보다는 일본의 진심어린 참회를 요구해왔다.과거를 배경으로 일본에 「손을 벌리기」보다는 일본과 진실로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자는 논지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새정부도 진취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과거의 잘못을 과감하게 사죄하고 그 바탕위에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려하고 있다. 한일 양국지도자는 국내개혁을 발판으로 국제적 위상제고까지를 노리는 점에서 동반자가 될 수도,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호소카와총리가 다음달 19·20일 미시애틀에서 열릴 아태경제협력체경제지도자 회의기간에 김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선한국방문을 희망한 것도 의미가 있다.그만큼 우리의 국력신장,개혁추진이 국제사회에 어필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여겨진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나올 것이 틀림없다.기존의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북한에는 다시한번 경각심을 주게될 것이다. 통상문제,일본내 한국문화재반환,사할린동포문제등 일부 현안의 해결계기가 된다면 금상첨화이다.
  • 러·일 어제 정상회담

    【도쿄=이창순특파원】 구소련 붕괴후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방문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12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총리와 가진 두차례 정상회담에서 2차대전 직후 일본인의 시베리아억류에 대해 사죄를 표명했으나 양국간 최대현안인 북방4개섬 반환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옐치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13일 정상회담을 다시 갖고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 「도쿄선언」과 「경제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양국 정상은 또 북한의 핵개발의혹도 논의,한반도의 핵확산에 우려를 표명하는 합의문서를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 만송원 뒷산 종가 묘역(일본속의 한국문화:4)

    ◎32대 7백년 통치 대마도주 집안 묘지/향나무 숲속 자리… 아래부터 웃분모셔 특이/청수산성은 조선 침략군 전진·병참기지로 만송원 원당을 보고 나면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선다.수령 1천년을 자랑하는 향나무 사이로 이끼낀 돌계단이 놓여 있고 좌우에는 석등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공동묘지다.혼자 가라면 망설여지는 곳이기도 하다. ○애첩까지 함께 묻혀 바로 이곳이 고려시대 중기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7백여년에 걸쳐 대마도를 지배하면서 한·일 두 나라 사이를 오간 32대에 걸친 대마도주들의 공동묘소다.일본에서도 단 세곳밖에 없다는 종중묘지인데 묘역에는 역대 도주는 물론 그 정실부인과 애첩들,그리고 그 피붙이들까지 모두 한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알고 보면 고려때 우리나라에서 이 섬으로 건너간 송씨일족의 무덤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양식이 모두 왜식이라 우리에게는 전혀 생소한 느낌을 준다.가장 이색적인 사실은 아래위가 뒤바뀐 무덤의 서열이라 할 수 있다.이 공동묘지는 윗무덤(상어령실)과 가운뎃무덤(중어령실),그리고 아랫무덤(하어령실)으로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일 윗무덤에 19대 의지 이하 32대까지의 후손들이 자리잡고 그보다 아래에 자리한 가운뎃무덤에다 10대부터 18대까지의 선조들을 모셔놓았다.그리고 제일 아랫무덤에 이들 선조의 부인과 아이들을 묻어놓았으니 완전히 선후배가 꺼꾸로 자리한 꼴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마도 나름의 까닭이 있었던 것 같다.19대 종의지와 그의 아들 종의성은 임진왜란을 이용하여 대마도를 일신해놓은 중흥의 명주로 알려져 있다.이 두 사람이 나오기 이전의 대마도는 먹고 살기도 어려웠고 왜구들이 군웅할거하던 섬이었다.이런 대마도의 사정을 잘 알려주고 있는 기록이 송희경이 쓴 「일본행록」이다.송희경은 세종대왕이 대마도를 정벌한 이듬해인 세종2년(1420) 사신으로 일본 가는 길에 대마도에 들렀다. ○왜군의 길잡이 노릇 그때 대마도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배추빛(채색)으로 떠 있었다고 한다.배추빛이란 굶어서 얼굴이 누르스름하다는 이야기다.대마도뿐만 아니라 일본본토가 모두 가난하여 도처에 해적들이 우굴거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잡혀 죽을 정도였다.송희경보다 50년 뒤인 1470년(성종2년)에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를 읽어보더라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대마도로서는 일본을 믿고 의지할 데가 없었고 죽으나 사나 조선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6세기말 대마도는 갑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임진왜란 때문이었다.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자 종의지는 재빨리 왜장을 찾아가서 전승을 축하하였고 그 자리에서 조선과의 교섭사명을 부여받았다.그러다 보니 결국 왜군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되었고 조선으로부터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종의지는 먼저 대마도를 조선침략군의 전진기지요 병참기지로 제공했다.바로 이곳 이즈하라의 진산인 청수산에 남아 있는 산성지가 그것인데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에 지은 것이다.북구주의 명호옥에서 일기도의 승본을 거쳐 대마도의 청수산성으로 이어지는 침략군 루트가 지금도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인데일본에서는 임란사적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종의지가 다음에 한 일은 대마도민 2천8백명을 침략군 선봉에 나서게 하는 일이었다.2천8백명이었다면 임란때의 왜군 총병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마도군의 역할이 막중하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침략 왜군은 크게 세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소서행장이 이끄는 제1번대와 악명 높은 가등청정이 이끄는 제2번대,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용장정이 이끄는 제3번대가 그것이었다.이중에서 대마도군은 소서행장의 제1번대,그것도 최선봉군으로 부산에 상륙하여 일로 서울로 북진해갔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고 서로 믿고 지낼 수 있던 대마도주 의지가 침략군의 앞잡이가 되어 다시 나타났으니 배신도 이만저만 배신이 아니었다.이때만 하더라도 일본 본토의 왜장들은 조선의 지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어떻게 나 있는지 아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아는 사람은 오로지 대마도인뿐.그들은 이미 고려때부터 조선을 내왕하여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상경로를 훤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만일 이 고려인의 후예 종가놈이 완강하게 길안내역을 거절하였거나 아니면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왜군은 삼천포로 빠져 남한일대에서 헤매었을지 모를 일이다.만일 그랬더라면 왜란은 조기에 종결되었거나 그 피해 또한 그토록 극심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임난후 쌀수출 중지 뿐만 아니다.임진왜란이 끝난 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가 대마도인의 접근을 금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부산에 있던 왜관이 폐쇄되고 대마도에의 곡물 수출을 일체 금지하게 되자 대마도경제는 일대 공황속에 빠지고 말았다.자업자득이었다고 할 수 있고 배신행위에 대한 당연한 응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대마도주로서는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는 원수」로까지 험악해진 조선과의 사이를 또 다시 교활한 속임수로 뚫고 나가기로 했다. 이것이 이른바 국서위조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기극인데 임란 이후의 한·일국교정상화는 불과 8년만에 이루어졌다.이를일제침략 종식후 20년만인 1965년에 성립된 한·일국교정상화에 비한다면 배나 더 조기에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그 배후에는 대마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때 일본의 실권자 덕천가강은 단 한푼 배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 한마디 사죄하지 않은 상태로 앉아서 통신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공로로 대마도주는 일본 상전에게 두둑한 상을 받게 되었으나 우리나라 조정에 대해서는 다시 배신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대마도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서 기울어졌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임란 전후였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 정신대 피해 등 고발/국제여성대회 개막

    【본=유세진특파원】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종군위안부 동원 실태와 피해자들의 수난을 고발하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한 국제여성회의가 10일 베를린 문화회관에서 개막됐다. 재독 한국여성회 베를린 지부(회장 김명숙)와 일본 여성회(회장 가지무라 미치코) 공동 주관으로 열린 이번 회의는 남북한과 필리핀 네덜란드 등에서 정신대 피해자와 기타 독일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2일까지 3일간 계속된다.
  • 대일 전후배상/총 19조엔 요구/아시아 각국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2차대전 책임과 관련해 아시아 각국이 일정부에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각종 배상과 보상액을 모두 합치면 약 19조3천억엔에 이른다고 일본의 마이니치(매일)신문이 7일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새 내각이 앞서 전쟁책임에 관해 「깊은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것을 계기로 해외취재망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대일 배상및 보상 움직임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고 전했다.
  • “한­일관계 미래향한 동반자로”/야마하나 일사회당위장 방한회견

    ◎일침략 사죄… 배상·교과서개정 따라야/「아웅산참사 자작극」해명 요청엔 회피 일본 사회당위원장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비자민 연립정권의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 정치개혁담당장관은 4일 도착성명을 통해 『신한국과 신일본은 양국이 공유하는 민주주의적 가치관과 문화·역사적 공통성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동반자」로서 새로운 양국관계의 발전이 요구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출발전 일본에서 미리 준비한 듯한 야마하나위원장의 「한국 국민께 드리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성명서는 한글로 쓰여있어 세심한 준비의 흔적이 역력했다.한일기본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친북노선을 걸어온 사회당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감을 의식하는 듯했다. 도착성명을 발표하기전 그는 기자들에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일본사회당위원장 야마하나 사다오입니다.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라고 떠듬떠듬 한국말로 인사하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야마하나위원장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사회당의 정책이 일본정부의정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미얀마 아웅산참사,KAL기폭파사건등에 대한 사회당의 입장을 묻는 까다로운 질문에는 대답을 비껴가 사회당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미얀마 아웅산참사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 사회당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한국의 자작극으로 몰아붙인 바 있다.아직도 변화가 없는가. ▲사회당엔 여러분이 지적한 것과 같은 태도가 있어왔음을 인정한다.그런 데는 시대적 배경이 없지않았다.냉전시대에 한국과 사회당은 단절된 관계였다.사회당은 한국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을 지지해왔다.이제 냉전시대가 끝나고 아시아에도 변화가 일고있다.사회당도 이에맞게 변화해야 하며 자기개혁의 노력을 하고있다.나는 그동안 위원장 피선후 줄곧 한국을 방문하고 싶고 한국과 관계개선을 해야한다고 말해왔다.한일기본조약을 인정해야한다고 역설했으며 그런 각오로 오늘까지 왔다.물론 이러한 주장이 정강정책이 되기위해서는 사회당강령대회를 거쳐야 한다.사회당내에서 나는 다른 생각을 들어본 적이 없다.따라서 앞으로 사회당 운영방침을확정할 때 이번 방한결과와 경위를 포함해 지지를 받을수 있을 것이다. ­사회당이 주장한 완전한 전후처리란 무엇인가. ▲전쟁책임에 대한 사실 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이를 바탕으로 사죄와 배상이 이뤄지고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교과서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그러나 일본정부와 사회당의 시각에는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다.그 차이를 없애도록 노력하겠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야마하나위원장은 두차례의 질문만을 받고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뜨려했다.그러나 첫번째 질문에 대해 한국기자들이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자 『먼저 답변은 전반적인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KAL사건에 대해 자작극의 가능성을 보도한 사회당 기관지 사회신보의 보도는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있다』고 두루뭉실한 답변을 했다.그러나 그는 아웅산참사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했다.
  • 일 사회당 산화위원장에의 충고(사설)

    야마하나(산화정부) 일본사회당위원장이 일사회당위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늘 한국을 방문한다.일본연립정부의 정치개혁상이지만 오랫동안 맹목적인 친북한일변도의 일본제1야당이었으며 지금은 연립여당의 제1당인 사회당의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더 중요한 방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방한은 한마디로 일본사회당의 변화 특히 대한반도인식과 정책노선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사회당은 그동안 현실과 상식을 무시한 친사회주의 일변도의 왜곡되고 편향된 정책노선을 유지했다.미일안보조약은 물론 자위대의 존재자체를 부정했다. 특히 한반도정책은 일본신문들도 「비현실적이며 친북편향적」이라고 비판할만큼 비정상적인 것이었다.헌법에 위배된다며 65년의 한일기본조약을 인정치 않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최근까지 한국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북한을 한반도유일의 합법정부로 간주하는 노선을 견지해왔다. 한편 북한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찬양했다.북한공작원에 의한 아웅산테러사건이라든가 그후 일어난 대한항공여객기 폭파사건에대해서도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억지를 쓴 북한편을 들어 세계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87년 방북한 도이 당시 사회당위원장은 독재와 폭력과 개인숭배의 북한을 「훌륭한 사회주의」로 예찬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회당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만년야당」의 신세를 면치못했으며 지난 총선에선 부패로 얼룩진 집권 자민당 붕괴와 분열의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민당보다 더한 참패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이같은 상황의 지속은 곧 사회당의 종언을 의미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가 대한정책변화등 오늘의 사회당 인식및 정책노선 현실화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야마하나위원장의 이번 방한도 결국 그 연장선상의 것이다.그는 지난 1월 위원장취임후 한반도인식및 정책노선에서부터 한일기본조약을 무조건 승인하고 그런 내용의 당강령문서를 채택하는등 사회당노선의 현실화를 시작했다. 야마하나위원장은 이번 방한을 통해 일본의 전쟁책임과 과거사를 사죄하고 반성할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우리가 충고하건대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사회당의 경우 보다더 중요한것은 그동안 왜곡해온 대한반도 인식과 정책노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반성하며 시정하는 일이다. 일사회당내에는 아직도 그릇된 한반도인식의 친북좌파세력이 만만치 않으며 대한정책도 아직은 유동적인 상태인 것으로 알고있다.그때문에 늦어지기도한 야마하나위원장의 이번 방한은 일본사회당의 그같은 왜곡되고 비현실적인 한반도및 한국인식과 정책노선을 정확하게 바로잡는 확실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일 전쟁책임 독·이와 공동 반성”/일왕,유럽순방 앞서 주장

    ◎총리는 의회서 “「침략」 반성·사과”/외상도 사죄위한 동남아순방 고려 【도쿄 AFP 연합】 아키히토(명인)일본국왕은 23일 일본과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이었던 독일 및 이탈리아는 공동의 책임이 있는 역사를 반성함으로써 국제사회발전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국왕은 다음달 예정된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 3국 순방에 앞서 왕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유럽 추축국들과 함께 과거를 반성하고 우호적인 국제공동체를 협력속에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도쿄=이창순특파원】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총리는 23일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가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초래한데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한다』고 말했다. 호소카와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있은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 일본의 번영과 평화는 앞서 2차대전에서의 귀중한 희생위에서 구축되었다고 전제하고 한국등 아시아 각국에 대한 전쟁책임에 관해 이같이 밝혔다. 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관련한 호소카와 총리의 사과는 앞서 총리취임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 부분 후퇴한 것이다. 【도쿄 AFP 로이터 연합】 하타 쓰토무(우전자)일본외상은 과거 침략행위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조만간 동남아시아국가들을 방문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23일 보도했다.
  • 문민정부 첫 광복절에 생각한다(특별대담)

    ◎친일세력 축출이 정기회복 지름길/관료사회서 온존… 국가기강 확립 걸림돌/총독부 청사 철거 현정권 임기중 실현을/임정선열 5위 봉환 역사적 쾌거/문제있는 독립유공자 재심 절실/정신대문제 등 일제만행 규명… 사죄 꼭 받아내야 15일로 광복 마흔여덟돌을 맞았다.특히 문민정부 출범 첫해에 맞이한 광복절은 여느때보다 뜻깊다.상해임정 선열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구조선총독부청사,총독관저가 철거되는 등 일제의 잔재를 일소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작업이 사실상 처음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문민정부가 처음으로 맞는 8·15 광복절의 역사적인 의미와 우리 민족이 풀어나가야 할 향후 과제를 좌담으로 정리해본다.이날 좌담회에는 김승곤광복회회장과 신용하서울대교수가 참석했다. □참석자 김승곤 광복회 회장 신용하 서울대 교수 ▲김회장=광복을 맞아 12년동안 항일운동을 하며 떠돌던 중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입니다.놀랍게도 친일파들의 권세가 여전하더군요. 더구나 극심한 좌우익 투쟁을 교묘히 이용해 친일파들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습니다.51년 광주의 한 신문사에 입사할 때도 독립운동사실을 숨겨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남북분단의 비극이나 순국선열들이 지금껏 이역을 떠돌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껏 관료사회를 쥐고 있던 이들 친일파때문입니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년 되지 않습니다.독립운동가들이 그동안 제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죠.그만큼 우리 사회의 친일세력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 임정선열 5위의 봉환은 친일파들때문에 퇴색해버린 민족정기를 되살릴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또한 이를 통해 국가기강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신교수=우리 헌법 전문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 정책을 시행하는데는 문제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임정 요인의 유해 5위를 공식적으로 국내에 봉환한 것은 매우 획기적입니다.즉 민족의 정기를 학립하고 국가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전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독립정신을 계승 발전해 세계속의 한국으로 발돋움,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신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요. 김영삼대통령이 그동안 논란속에서 미루어 왔던 구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토록 지시한 것은 확실한 용단이라 생각합니다.옛 총독관저의 철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문제는 김대통령의 민족정기 앙양의지와는 달리 일부 세력과 관료들의 개혁의지가 부족하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김회장=총독부 청사의 건립의도부터 생각해봅시다.우리 임금이 살던 경복궁안에 짓지 않았습니까.우리 민족의 맥을 끊기 위한 것이지요.창경궁에 동물원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총독부 건물은 일제의 상징입니다.해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철거됐어야 합니다. 물론 이승만대통령때부터 역대 정권들이 철거를 고려했었지요.그러나 지금껏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이는 행정부에 있는 친일수구세력들의 방해때문입니다. ▲신교수=조선총독부를 지을당시 일본의 건축전문가들은 남산이나 서울시청자리를 주장했습니다.그러나 당시 데라우치총독이 영구 통치를선언하는 의미에서 조선왕궁의 정궁인 근정전을 헐고 짓도록 했습니다.즉 일제가 한국 식민통치의 상징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를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한 것입니다.5000년 역사를 일제의 식민통치 상징에 넣어놓았으니 민족적 열등감을 「배양」시키고 일본인에게는 우월감을 조장해 왔습니다.5공때는 철거계획이 한때 검토됐으나 무산됐고 6공때도 연구됐지요.그러나 경비문제를 들고 나온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쳐 철거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관료들이 대통령을 속인 것입니다.뜯어다가 복원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게 반대이유이지만 이 건물은 복원가치가 없습니다.우리 고유의 유물도 아닌데 뭣때문에 복원합니까.정 아쉽다면 모형을 하나 만들어 독립기념관의 일제침략관내에 전시하면 그만이지요.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박물관의 이전시기입니다.정부에서는 2000년까지 완공한다고 발표했는데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97년까지 마쳐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막강한 수구세력에 의해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회장=그렇습니다.김대통령 임기안에 이전해야 합니다.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친일세력들이 남아있습니다.김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이들이 어떤 주장을 내세우며 이전에 반대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화제를 돌려 정신대문제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최근 일본 연립정부가 우리 한국인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가 위안부로 이용한 사실을 인정한데 대해 마치 대단한 의미가 담긴 양 높이 평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본정부가 사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정신대문제에 대해 강제성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을 놓고 우리 외무부가 『외교적으로 정신대문제는 청산됐다』고 밝힌 것은 성급한 것입니다. ▲신교수=동감입니다.새로 들어선 일본의 연립정부는 정신대문제와 관련해 전후청산차원이라며 「강제성」만을 인정했습니다.범죄행위에 대해 배상이나 사죄는 없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으며 일본에 휘말리는 우리의 외교정책은 자주외교 대등외교가 아니라고 봅니다.독일은 패전후 즉시 사죄하고 배상금을 물었는데 일본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김회장=정신대문제를 포함해 일제 만행에 대해 전반적인 진상규명과 일본의 전적인 사죄가 있어야 합니다. 가을로 예정된 김대통령의 일본방문에서는 분명한 답변을 일본정부로부터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신교수=잘못된 과거역사의 청산은 물론 국제화시대의 대처라는 측면에서도 친일파들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이 시급합니다.민족의식이 소멸되면 강대국에 종속될 수 밖에 없지요.이완용이가 나라를 판 대가인 은사금으로 사들인 땅을 증손이 나타나 법원에 제소,여러건 승소판결을 받았지요.이는 제2의 이완용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김구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잡으러 다니던 친일파에게 암살당하고도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이러한 것들은 건국직후 친일파들을 몰아내지 못한 때문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보훈처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포상을 받은 경우라도 친일행각에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이 있으면 재심해야 합니다.그러나 그 기준은 엄격하고 과학적,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김회장=친일파에 대한 재조명이 역사적 과제임은 분명합니다.문제는 현실적으로 친일파를 어떤 기준으로 가려낼 것인가 하는 겁니다.정부로서도 친일파에 대한 역사재조명이 무척 어려울 줄 압니다.그러나 서두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작업을 벌여나간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해봅니다. ▲신교수=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최근 들어선 일본 연립내각의 핵심인 오자와 이치로는 PKO법안의 초안 배경이 된 「오자와특별조사위」를 이끌어온 인물입니다.이 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앞으로 국제사회가 미주권 EC권 일본권 등 3개 블록화되므로 일본이 아시아지역의 통합과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한국은 일본의 아시아정책의 개편대상중의 하나이므로 자칫 말려들면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종속될 위험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김회장=일본은 한일관계를 영원한 동반자인양 표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6백90억달러의 무역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관계가 동반자일수 있습니까. 일본은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발전을이룩할 수 있었습니다.동북아시아의 전략거점으로 일본을 택한 미국이 각종 기술원조를 아끼지 않으면서 지원했기 때문에 일본의 성장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러나 일본은 겉으로는 동반자 운운하면서 우리나라에 기술지원을 꺼리고 있습니다.우리나라를 경제협력국이 아니라 시장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이런 상태에서 양국이 진정한 협조적 관계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은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그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김대통령의 가을 일본방문에서는 반드시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일본의 사죄를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이와함께 기술이전과 무역역조시정등에 대한 일본정부의 실질적인 약속을 보장받아야 할 것입니다.
  • 일,「침략사죄」 곧 후속조치/총리 공식사과 교과서수록 등 검토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정부와 연립 여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총리가 지난 10일 회견을 통해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으로 잘못된 전쟁이었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힘에 따라 12일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정부와 국회가 취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와 여당은 우선 오는 23일에 있게 될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을 비롯,국회결의와 유엔총회 등 국제회의의 장을 통해 제2차대전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밝힌다는 방침아래 포함될 발표내용 등의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자민당 일각에서는 ▲지나친 전쟁책임 강조는 아시아 관계국과의 새로운 보상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본내 전몰자 유가족의 기분을 배려해야 한다는 우려와 항의도 제기되고 있어 호소카와 신정권이 이 문제를 어느선까지 다루게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호소카와 총리 주변에서는 2차대전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으로 오는 23일 특별국회에서 있게 될 소신표명과 함께 일본의 교과서에도 이를 담아학생들에게 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과오를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일 총리의 침략전쟁 시인/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제2차대전은 침략전쟁으로 잘못된 전쟁이었다』.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의 제2차대전에 대한 역사적 정의다.그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제2차대전은 일본의 침략전쟁이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제2차대전을 「침략전쟁」이라고 분명히 언급한 것은 호소카와 총리가 처음이다.전임 총리들도 침략전쟁이라는 인식은 나타냈으나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다. 자민당정권은 그동안 전쟁책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그러나 연립정권은 과거사문제 해결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비자민세력은 지난달 29일 연립정부구성에 합의한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과거의 전쟁을 반성한다」는 내용을 명기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임외상도 『과거의 침략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일본의 새 정권이 이같이 전쟁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매우 바람직하며 동시에 높이 평가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일본은 이제 과거침략행위에 대한반성과 사죄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일본은 대아시아정책 강화를 위해서도 전후청산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거사문제가 일본외교의 중대한 걸림돌이 돼왔음을 부인하는 일본사람은 별로 많지않다.외무성관리들조차 일본의 불충분한 전후처리로 아시아정책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유엔외교를 위해서도 전후처리는 일본이 먼저 풀어야 할 과제다.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의 야심을 품고 있으나 유엔헌장의 「적국」조항에 발목이 잡혀있다.국제사회는 일본이 상임이사국에 진입하기전에 먼저 전쟁책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일본은 역사를 줄곧 왜곡해왔다.이 때문에 뉴리더들의 전쟁책임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이 일본의 국제공헌과 정치대국화를 위한 「환경정리」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사고 있는지 모른다.
  • 외교·방위 전략(호소카와 새 일본:6·끝)

    ◎미 예속 벗어나 「독자적 대국」 노려/「침략 사죄」 새 동아패권정책 예고/연정취약성 감안 당분간 현 정책 고수 『일본은 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 총리가 지난 7월에 발표한 일본신당의 정책이념이다.일본의 이같은 국제적 역할강화는 단지 호소카와총리의 정책이념만은 아니다.이는 곧 일본의 뉴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21세기 일본의 국가상이기도 하다. 일본의 외교정책은 물론 당분간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비자민세력은 지난달 29일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한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헌법의 이념과 정신을 존중하고 외교·방위정책은 지금까지의 정부정책을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타 쓰토무 신임 외상도 9일 취임기자회견에서 『자민당 외교정책의 계승』을 천명했다.호소카와정부가 이같이 자민당정권 외교정책의 계승을 천명한 이면에는 연립정부에 참가하고 있는 각당의 정책차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깔려 있다.연립정부는 각 당의 서로 다른 외교·안보정책을 일체화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계승」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일단 묻어두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도적 성격의 호소카와내각은 사실 통일된 외교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할 여유와 역량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문제는 일본외교가 정계변화의 과도기를 거쳐 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연립정부의 가장 큰 외교정책 과제는 호헌과 자위대의 해외파견등에 반대하는 사회당과 다른 당과의 기본정책 차이의 조율이다.그러나 사회당은 이번 총선에서의 역사적 참패로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더욱이 연립정권에 참여함으로써 사회당 고유의 정책은 그 빛을 잃고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보수화물결에 용해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외교가 가는 방향은 결국 신보수화와 함께 강력한 정치대국화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뉴리더들이 제2차대전의 「전쟁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호소카와총리와 하타외상 등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다.이들의 적극적인 과거청산 발언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볼때 일본의 아시아패권정책의 「불길한 예고」라고도 할 수 있다.신세대 지도자들은 「과거사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있다.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같은 뉴리더들은 『일본은 아시아에서 분쟁해결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세대 지도자들의 등장으로 일본은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보다 독자적인 외교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도쿄대의 이노구치 다카시교수(국제정치학)는 『뉴리더들은 미국의 종속적외교로 부터 독자적인 외교로의 전향을 추구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연구서의 「고전」으로 불리는 「일본권력의 수수께끼」의 저자 카렐 반 월페런도 아사히(조일)신문과의 대담에서 『해외에 거대한 자산을 가진 국가가 군사력으로 이를 보호하지 않는 시대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라며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적극적인 국제역할의 가능성을 짚고 있다.일본정치구조의 역사적 대전환은 결국 냉전후 새로운 세계질서 창출에서 일본의 국제적 역할 강화를 겨냥한 거시적 변화의 시작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 “신생당 요직독점” 「2중구조」 우려(호소카와 새일본:5)

    ◎연정 초대재각의 성격/“직권 경험”명분 사실상 정국주도 할듯/각당 당수들 모두 입각… 정권안정 추구 『역사에 남는 청신하고 안정감있는 내각』.일본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신임총리가 구상한 새 내각구성의 청사진이었다. 호소카와총리는 각료에 민간인 2명 등용을 포함,여성각료를 3명이나 임명하는 등 과거와 달리 참신한 내각구성을 위해 노력했다.그는 또 각당의 당수를 모두 입각시킴으로써 책임있는 정책운영을 통한 정권의 안정을 추구했다.그러나 각당의 의석수에 따른 각료배분으로 과거 자민당의 파벌안배 패턴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호소카와내각은 더욱이 각당의 정책차이로 실제 정권운영에는 많은 불협화음이 예상되며 정국은 사실상 신생당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보인다.신생당은 외상 대장상 통산상 농수산상 방위청장관등 주요 포스트를 독점했다. 관방장관으로 임명된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신당사키가케 대표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의 불안을 배려,정권운영의 경험이 있는 신생당에서 주요 각료가 임명됐다』고 말했다.그러나 신생당의 이같은 주요 권력독점은 총리는 호소카와이지만 정국운영은 사실상 신생당의 막후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대표간사가 도하는 이른바 「권력의 2중구조」의 우려를 낳고 있다.호소카와총리는 이같은 권력의 2중구조에 대한 비판을 의식,오자와를 대장상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오자와가 이를 거부했다. 자민당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신생당이 새 내각의 중심이 된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민당정책의 계속성을 의미하며 정권이 교체됐지만 일본의 기본정책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외상에 임명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도 취임기자회견에서 외교정책의 계속성을 강조했다.그러나 그는 전후처리문제에 대해서는 자민당정권과는 달리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그는 『일본은 (아시아침략에 대해) 솔직히 사실을 인정,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고 말해 총괄적인 전후처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하타외상은 또 한국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강조했다.그의 이같은 발언은 일본이과거문제의 해결을 통해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음을 예고하는 것이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한국에도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대일외교접근을 필요로 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 출범한 호소카와내각의 최대 과제는 정치개혁이다.호소카와총리는 정치개혁상을 신설하고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사회당위원장을 그 자리에 임명하는 등 정치개혁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따라서 연립정권은 최대의 구심력인 정치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호소카와내각은 그밖의 외교·방위정책,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활동 참가 등과 관련,각당의 고유정책이 달라 외교·안보 등 국가기본정책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경우 하머니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있다.하타외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임이라는 점도 또다른 불안요인이라 할 수 있다.호소카와총리는 이같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지도력과 조정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불안과 기대속에 새로운 일본을 지향하는 「호소카와호」는 출범하고 있다.
  • 다섯분 선열 편히 쉬소서(사설)

    환국하신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오늘 우리는 생전의 님들이 일구월심 꿈에도 그리던 고국땅에 님들을 안장합니다.하늘도 울고 땅도 웁니다.구슬피 울려 한강의 흐름따라 굽이쳐 흘러내리는 저 진혼나팔의 호곡소리를 들으십니까.우리들도 비로소 국민된 도리를 뒤늦게나마 한것같은 자창속에서 자책로운 참회의 고개를 숙입니다.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중원땅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치신 님들의 행적을 기려봅니다. 님들은 평안한 명목이 못된 영면70년에 이제야 평안히 눈을 감을 안식처를 얻으신 것입니다.이제껏 잠들어 계시던곳은 님들이 영원히 누워계실곳은 아니었습니다.그 짧지않은 세월동안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고국땅에 이제 누우시게 되었습니다.조국의 땅을 베개삼으시고 조국의 땅을 이불삼으시어 춘풍추우70년의 객지잠을 청산하시게 되었습니다. 다섯분께서 걸어오신 생애는 일일이 매거할수 없을 정도로 애국·우국으로 일관된 형극의 길이었습니다.나라잃은 분통함을 안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분골쇄신하며 동분서주하신 평생이었습니다.조국과 겨레에게 영광을 안기고자 일신을 홍모와 같이 여기신 고귀하고 숭엄한 삶이었습니다.민주사위에 영원히 빛날 족적을 남기신 님들을 안장하는 오늘 우리들은 다시한번 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기려봅니다. 님들은 이국땅에서 환국하시면서 온국토에 애국혼을 흩뿌려 놓으셨습니다.영현봉안실에 안치되어 계시는 동안 줄을 이은 참배행렬은 님들이 일깨워주신 겨레의 마음이었습니다.님들은 말없이 돌아오셔서도 그렇게 나라와 겨레위하는 마음을 점검해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나라가 무엇이고 겨레가 무엇이며 이나라의 겨레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역사의 키를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 함을 가르쳐주신 환국이었습니다.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핏줄의 대화로써 이어준 교훈은 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일본을 보고 있습니다.그들이 우리와의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오는가를 보면서 선열들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늘의 시대장황을 헤쳐나가고자 다짐하는 터입니다.님들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나라로 가꾸어나갈 결의를 새로이합니다.그러는 한편으로 환국하지 못한 순국열사들의 유해와 혼백을 모셔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도 아울러 다짐합니다.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이제는 평안히 눈을 감으시옵소서.그럴수 있는 임정의 법통을 이은 땅입니다.그후손들이 이렇게 두손모아 사죄드리면서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평안히 잠드시옵소서.부디 평안히 쉬시옵소서.
  • 「정신대」매듭 아직 멀었다/박용옥 성신여대교수 사학(일요일아침에)

    인류사를 돌이켜 볼때 피정복지의 여성들은 정복자들에 의한 강간으로 인하여 2중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그 강간행위는 대개 인면수심한들 개개인에 의한 것이지 일본처럼 국가가 주관자가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가 않다.그런 점에서 볼때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의 성적 노예가 된채 자유없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던 정신대의 문제는 인류사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 하며 행위 발의 및 주관자는 그에 대한 백배사죄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또한 고통당한 생존자에게는 마땅히 응분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명백한 국가주도 한국인에게 있어 여성의 정절문제는 여성 자신에 한하는 것이 아니었다.이것은 실로 민족정신과 문화의 우뚝한 긍지였다.일본의 무력에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해야 했던 1876년 대표적 위정척사론(위정척사론)자인 최익현선생은 목숨을 걸고 조약체결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는데 반대이유의 하나가 『저들이 우리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들을 겁탈할 것』이라는 이유였다.이것은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가 유린되고 말것을 예언한 것이다.그러나 최익현선생조차도 일본이 국가적 주관아래 한국여성을 유린할 것이라는 것까지는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4일 일본정부가 내놓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방장관의 담화및 조사결과의 발표문은 작년 7월에 「강제성을 인정할 자료는 없었다」고 발표하였던데 비한다면 상당한 진전이 있는듯 보이나 과거 반성의 진실된 태도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하겠다. 정신대 문제의 중요 쟁점은 첫째 「강제성」의 인정이다.이들은 이에 대하여 「종군위안부 모집이 감언 강압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들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는 지극히 우회적 표현을 썼으며 위안소 생활에 대해서도 「강제적인 상황」이라는 소극적 표현을 쓰고 있다. ○용서못할 비인도 둘째 종군위안부의 규모인데 이에 대하여 「충분한 자료가 없어 위안부 총수를 제시할 수는 없으나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표현함으로써 정확한 숫자발표에서 오는 막중한 죄의 책임을 희석하고 있다.1930년대초 이래 패전 직전까지 강제 연행된 한국여성의수는 줄잡아 20만명인 것으로 그동안의 조사연구자에 의해 밝혀져 있다.일본에는 우리가 아직 접하지 못한 보다 많은 자료가 있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다.자료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이며 오만한 태도이자 더 나아가 자신의 죄를 아직도 감추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셋째는 일본정부의 사죄의 태도이다.이에 대하여 담화문에서 「상처입은 모든 사람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했다.강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막다른 길에 든 자나 하는 행위이다.그렇다면 종군위안부의 문제는 인류의 평화적 삶의 권리를 강탈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그런데도 그들이 작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때 행해지는 정도의 용어인 「사과」라고 표현한 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행위인 것이다.일본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 당수가 말한 것처럼 영어의 「Apologize」에 해당하는 용어인 「사죄」라는 용어를 겸허한 자세로 썼어야 했다.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언급의 진실성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 교훈 돼야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이번의 일본측 발표를 통해 양국 정부는 외교적 차원의 논란을 매듭지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러나 정신대의 문제는 한일 양국 국민에게 다같이 큰 역사적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보다 철저한 자료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일본에는 전범자로서의 만행과 죄악상이 얼마나 끔찍하고 인류사에 수치스러운 것인가를,또 한국인에게는 나라 잃은 슬픔과 참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철저히 깨닫게 하는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볼때 자료의 발굴조사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과감히 이루어져야 한다.민간 연구자는 물론 국사편찬위원회와 같은 공공기관을 통해서도 책임있는 자료수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일본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원자탄 피폭 박물관이며 평화공원을 세워 해마다 그날을 기념함으로써 일본2세로 하여금 전쟁피해자가 바로 일본인 것처럼 착각케 하는 사업을 행하고 있는데 자신의 죄를 진정 반성한다면 전쟁중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고 희생된 영령들에게 사죄하고 위로하는 기념관 내지 사죄사업을 행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정신대」 발표 반성 부족”/일 단체들 잇단 성명

    【도쿄 연합】 사회당의 전후보상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토정다하자)등 일본 공·사 성격의 전쟁단체들은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 등을 인정한 정부보고서의 내용에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정부가 범한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곁들였다. 도이위원장은 4일 저녁 정부보고서 발표에 따른 회견을 통해 정부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다 ▲사죄와 반성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평가할 만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러나 정부가 범한 전쟁에 대한 반성이 전혀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학자·변호사들로 구성된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대표 황정신일순하대대교수)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위안부의 징집이 강제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위안부문제를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경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인식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애매했던 정부의 입장을 크게 전환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하고 유엔과 협력,전후처리특별위를 국회내에 설치하자고 제의했다. 한국 종군위안부 희생자들이 제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측 변호인으로 있는 자료센터의 다카기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는 『너무나 남의 일같은 표현으로 일관,정부와 군이 일체가 돼 전쟁범죄를 범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는 단어가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연행과 위안소의 생활에서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이 문제가 전쟁범죄라는 것을 정부가 내외에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재판의 조기해결과 연결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단순한 「유감」 대신 깨끗이 「사죄」해야

    【도쿄 연합】 일본의 비자민 연정의 중심세력인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 당수는 3일 일본이 2차대전 전쟁책임에 관해 단순한 유감표시에 그치지 않고 깨끗하게 세계 각국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타 당수는 이날 외국특파원협회에서 있은 오찬연설에서 연립정권의 전쟁책임 반성문제와 관련,『세계 각국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해야 할 것은 사과함으로써 매듭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타 당수는 또한 일본정부가 전쟁은 처참한 것이라는 것을 호소함으로써 두번 다시 이같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전쟁을 반성하는 표현은 「유감으로 생각한다」가 아니라 「사죄한다」로 명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반세기만에 자인한 「과거잘못」/일의 종군위안부 강제성 시인 안팎

    ◎양국과거사 전향해결 가능성 높아져/일인 역사의식 변화여부 과제로 남아 일본정부가 4일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인정함에 따라 제2차대전을 전후,수많은 한국여성들이 강제로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비인간적 고통을 당했음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됐다. 일본은 그동안 최악의 전쟁범죄인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피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강제연행을 부인해왔다.지난해 7월에 발표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1차보고서에서는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이같은 일본이 4일 강제연행사실을 인정한 것은 당사자와 한국정부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종군위안부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후 『종군위안부문제의 진상규명이 중요하며 보상은 필요없다』고 밝히고 이들의 생활대책을 마련하자 보다 적극적으로 종군위안부문제 해결에 나섰다.일본정부는 전종군위안부들에 대한 증언청취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제2차보고서에서 『일본군과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감언을 하거나 공포감을 주는 등의 형태로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종군위안부를 모집했다』는 표현으로 강제성을 인정했다.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연행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과거의 잘못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과거사문제에 대한 전향적 자세로 일단 평가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일본주재 한국대사관측은 한국으로서는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는 하기 어려우나 ▲강제성 인정 ▲전체실상 규명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등의 한국측 기본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는데 반세기나 걸렸으며 표현에도 애매한 면이 있고 아직도 한국출신 종군위안부의 전체 숫자가 밝혀지지 않는 등 미흡한 부분은 남아 있다.2차보고서는 위안소가 광범위한 지역에 설치됐었으며 수많은 종군위안부가 존재했다고만 밝히고 있다.일본정부는 전체 규모를 파악할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일부 연구가들은 종군위안부 규모가 20만명에 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종군위안부문제는 지금까지 한·일간의 최대 현안이었으며 양국은 조기해결을 희망해왔다.일본주재 한국대사관 관리는 이와관련,일본이 강제연행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종군위안부문제는 일단락됐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는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정부가 새 정부출범 하루전에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자신의 한국방문때 큰 이슈가 됐던 종군위안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강력한 의지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의 새 연립정부지도자들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후보와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 등은 일본의 과거침략사문제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사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이에따라 양국간의 과거사문제는 보다 전향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고통을 당한 종군위안부들의 한은 비참한 역사의 상흔으로 잔존할 수밖에 없으며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도 과제로 남게 됐다.
  • 일,강제연행 공식 인정/미야자와 정부

    ◎“일군이 직접간여… 사과·반성”/“총인원 자료 미비로 추정 곤란”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정부는 4일 구일본군이 2차대전 당시 군대내 위안소 설치에 관여했으며 특히 한국에서의 종군위안부 모집및 이송,관리에는 총체적으로 강제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일정부 대변인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이날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라는 발표문을 통해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당시 한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위안부의 모집,이송·관리등도 감언·강압에 의하는등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말했다. 고노 장관은 또 『조사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되어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됐다』면서 『위안소는 당시 군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경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 구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견된 자료중에는 위안부의 총수를 나타내는 것이 없고 또한 이를 추측하여 인정할만한 충분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위안부 총수를 추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고노 장관은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이 기회에 위안부의 출신지 여하를 불문하고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사죄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내각의 해산을 하루 앞두고 조사결과를 발표한 고노장관은 또 그러한 마음을 일본이 어떻게 나타낼수 있을까에 관해서 사계 권위자들의 의견등도 들어가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고노 장관은 이와함께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역사연구,역사교육을 통해 이같은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고 다짐했다.
  • “「종군위안부」 일 사죄 마땅/한·일협력 새정부와도 지속”

    ◎김 대통령,NHK회견 【도쿄=이창순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은 31일 일본의 비자민 연립 정권 탄생가능성과 관련,『일본에 어떤 총리가 나오더라도 개인적인 친분을 두터히 하는 것은 물론 미래 지향적인 의논을 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히고 『한·일 양국은 아시아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기본 틀은 바뀌지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15분쯤 일본 NHK­TV와 NHK 제 2위성 TV로 동시 방영된 NHK 서울 특파원과의 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일본은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국답게 당당하게 진실을 말하고 명확하게 사죄를 하는 것이 아시아에서 그들의 입장을 강화시켜 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북한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으나 개발중에 있는것만은 틀림없다』고 밝히고 『경제적으로 국민 생활을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도 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은 하루 빨리 핵사찰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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