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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월드컵 공석사태 유감”” FIFA, 10억원씩 배상할듯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월드컵조직위원회(JAWOC)는 24일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에 발생한 대량 공석사태와 관련,국제축구연맹(FIFA)이 한·일양국에 사죄하는 한편 양국에 배상을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엔도 야스히코 JAWOC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엔도 총장은 구체적인 배상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배상금액이 약 1억엔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엔도 사무총장은 또 FIFA가 월드컵 공석사태에 유감을 표시한 데 대해서도 만족감을 표시했다. 엔도 사무총장은 “FIFA 보고서에 실린 내용은 공석사태는 해외분 입장권판매 대행업체 바이롬사의 잘못 때문이라는 한·일 양국의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FIFA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marry01@
  • [사설] 南北·北日의 미래를 위하여

    북한의 과거 일본인 납치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는가 하면,남한에서도 납북자·아웅산 폭파 사건 등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으라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그런 가운데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인 남북한이 반세기 만에 비무장지대(DMZ)를 뚫어 단절된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첫 삽을 떴고,북·일 관계도 전격적인 양국 정상회담을 전기로 정상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정세는 20세기 유산인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과 평화의 새 이정표를 향해 빠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현재 북·일 관계 정상화에 암초로 부상하고 있는 일본인 납치 문제나 여기서 불거져 나온 우리의 납북자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은 되어야 한다.다만 이런 문제들로 인해 남북,북·일간 평화의 틀을 구축하는 일이 중단되거나 후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일본 안에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납치된 13명의 일본인 가운데 사망자 8명의 납치 및 사망 경위 설명을 요구하며 대북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일각에서는 납치 일본인 총살설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피랍자 가운데 결혼한 2명은 같은 날 사망한 것을 놓고 ‘타살 의혹’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모리야마 마우미 일 법무상 같은 이는 납치에 가담한 북한 요원들을 일본 법정에 세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또 사망한 피랍여성 4명은 당시 20∼30대로 북한이 사인으로 밝힌 ‘재해와 병’으로는 이들의 죽음을 수긍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젊은 나이들이다.일본 국민들이 당혹해 하면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며,이해가 되는 부분이다.마땅히 일본 정부로서는 북한과 후속 협상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망자들에 대한 신속한 경위파악과 함께 생존자 4명에 대한 조기귀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또 피랍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끌려와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을 것을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메어진다.북한은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사망경위를 밝히고 다시 한번 유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책임 규명과 함께 보상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로 북·일 수교교섭 협상이 휘청거리거나 지연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북·일 관계 정상화는 납치 문제라는 과거사보다 동북아평화라는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납치문제와 관련,일본측에 고언을 한다면 과거 일제 침략과 36년의 식민지배하에서 수백만,수십만의 무고한 한국 백성을 징용으로,군대 위안부로 끌어 가고,희생시킨 ‘과거사’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기 바란다.시차는 있어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가 북·일간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납북자 가족과 북의 테러와 납치에 희생된 가족 및 단체들은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에 관해 시인하고 사과하면서 다시 제기된 것이다.이들의 주장은 옳고 마땅하다.북한이 일본측에는 납치에 관해 사과하면서 우리에게는 하지 않는 등 2중 잣대를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정부도 북측이 자행한 KAL기 폭파 사건 등 각종 테러와 어부 억류,국군포로 문제 등에 관해 당당하게 주장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는 선후와 경중이 있다고 본다.지금은 남북이 ‘다름’을 강조하기보다는 ‘같음’을 우선해 화해와 평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남북 간에 긴장이 해소되고 신뢰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 그때 가서 냉정하게 따질 것은 따지고,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주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닌가 한다.북·일 관계만 하더라도 양측이 수교하고 경제협력이 가속화하면그 여파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으로 선순환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 납치 문제나 과거 북한이 자행한 일련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과 문제는 북·일 관계 정상화나 남북화해로 가는 도정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대승적 차원에서 미래를 보고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 고이즈미 ‘北風’ 일단은 ‘순풍’

    (도쿄 황성기특파원) 결단인가,졸속인가. 지난 17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에 합의하고 돌아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국내에서 극단적인 두여론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도장을 너무 일찍 찍었다.”는 비판이다.납치된 일본인 사망자가 8명이나 됐는데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고 성급하게 수교협상 재개를 합의해줬다.”는 여론이 일부 보수 언론과 납치 피해자 가족,보수 정치인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 회담직전 북한으로부터 14명의 사망 날짜 등이 포함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받고도 피랍자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다른 하나는 충격적인 북측 통보에도 불구하고 장래를 생각할 때 일본이 취할 선택은 국교정상화밖에 없다는 여론이다.마이니치(每日)신문의 기시이 시게타다(岸井成格) 편집위원은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그같은 결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반응도 엇갈려 민주·자유당은 부정적인 반면 공산·사회당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본 여론의 주류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19일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한 평양 정상회담 관련 여론조사는 회담의 의미와 납치를 분리,충격적인 사망자 숫자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데 일본인들이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회담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81%가 “평가한다.”,“대체로 평가한다.”고 대답했다.10월 중 수교협상 재개 방침에 대해서도 찬성(58%)이 반대(28%)를 크게 앞질렀다.다만 납치에 대한 북한측 대응에 대해서는 76%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이즈미 총리에게 북풍(北風)은 아직 역풍이라기보다 순풍인 것 같다.가네마루 신(金丸信)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가들이 북한에 갔으나 식량지원만을 약속했을 뿐 납치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과 달리 ‘사죄’와 ‘재발방지’의 약속을 갖고 돌아온 그에게 일본인들은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아사히 조사에서 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은 방북 발표(8월30일) 직후 실시된 지난 조사(51%)때보다 61%로껑충 뛰어올랐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여론을 의식한듯 18일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부정적인 평가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거기서 내가 불만이라고 해서 자리를 차고 돌아왔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됐을까.”라고 부정적인 여론을 향해 일갈했다.또 “내 판단은 적절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를 이룩한 고(故)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당시 총리처럼 고이즈미 총리도 북·일 국교정상화를 이룬 총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할지 모른다. marry01@
  • [기고] 北 변화는 ‘막다른 선택’

    극적으로 실현된 북·일 정상회담은 역시 충격적이고 이례적인 내용으로 나타났다.납치사건의 전면적 인정과 사죄,과거청산의 경제협력방식 수용.정상회담과 ‘북·일 평양선언’은 북한의 전면적 항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북·미 교섭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납치사건의 충격속에서 여론이 강경화되는 상황속에서 북·일 교섭은 순조롭게 타결될 것인가?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역시 납치사건의 전면적 인정과 사죄다.체제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를 민감한 문제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북·일 국교정상화를 조속히 실현하려는 강한 의사와 함께,절박한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다시 지적할 필요도 없다.그러나 이 문제는 북·일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납북자,억류자 문제,대한항공기 격추사건,양곤사건 등 잠재적으로는 엄청난 파급력과 충격력을 지닌 폭탄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북·일 정상회담에 이르는 북한의 교섭태도에서는 단기타결을 향한 포괄적인 대타협의 결단이 두드러진다.종전처럼 시간을 끌면서 조건투쟁을 구사하는 전략은 자취를 감추었다.조건투쟁에 집착한 결과,많은 기회를 상실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한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학습효과인지도 모른다.필자는 이러한 경향이 대일교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그만큼 북한은 이번이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이며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북·일 교섭이 본격화와 때를 맞추어서 남북관계에서도 경의선,동해선 철도연결이라는 상징적인 면에서,또한 실질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진전을 보여줬다.곧 이루어질 제임스 켈리 미국무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 교섭도 조만간 재개될 것이다. 성급한 추측이지만 가장 큰 난관인 제네바 핵협정에 따른 핵사찰을 수용하는 ‘결단’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핵사찰이라는 ‘가시’만 제거된다면 부시 행정부내 매파의 공세도 근거를 잃게 된다.김정일 위원장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제네바 협정의 지체에 따른 보상을언급한 점도 주목을 끈다.보상은 충분히 교섭가능한 쟁점이며 교섭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북·미 교섭에 대한 단순한 낙관론을 전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북·일 교섭의 단기타결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서 북·미 교섭,나아가 남북관계의 진전이 불가분의 조건이라는 현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부시 행정부내의 격렬한 정책논쟁과 힘싸움의 결과,국무부의 온건파는 우선 켈리 차관보의 방북과 교섭재개를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시 정권의 주도권은 매파에 있으며,이들의 대북한 태도에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징조는 없다.다만 이들도 당면 목표인 이라크에 대한 집중,양면작전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소강상태의 필요,한국 및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내의 예상외 반발과 우려 등을 고려해서 온건파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이번 북·일 교섭을 위한 북한의 양보가 대미 교섭의 카드라는 관측도 있다.그러나 일본이 특히 핵문제에 있어서 대미 카드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만약 핵사찰문제로 북·미 교섭이 난관에 봉착한다면,납치사건의 전면적 인정이라는 기사회생의 ‘결단’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고이즈미 방북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응은 두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납치자 대부분의 사망이라는 비극의 충격파는 예상을 초월하는 강경론으로 여론을 몰고 있다. 당일 저녁에 오사카에서 조총련계 학생에 대한 폭행사태가 일어난 것에서 보듯이 그 배경에는 뿌리깊은 북한 위협론과 차별의식이 존재한다. 정략적 관점에서 이러한 감정적 반응을 부채질하는 정치가들도 적지 않다.그러나 근래에 보지 못한 일본의 ‘외교적 성과(승리)’에 대한 만족감이 서서히 이성적 반응으로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전면항복’한 북한에 더 이상의 채찍질이 초래할지도 모를 반작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일 평양선언’의 제4항에서 북한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문제에 대한 일본의 참여와 적극적 역할에 대해 공식적으로 동의했다.역사적으로 커다란 전환점이기도 하며,한국의 입장에서도 그 향후 방향성과 내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
  • 北·日정상회담/ 의미/54년반목 딛고 관계정상화 ‘첫발’

    [도쿄 황성기특파원] 북한과 일본 두 정상의 평양 회담은 회담 그 자체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북한 정권 수립 54년만에 이뤄진 첫 정상끼리의 만남을 통해 음지에 있던 비정상적 양국 관계를 양지의 정상적 관계로 끌어올린 획기적 계기를 만든것이다. 두 정상의 허심탄회한 2차례 2시간30분여에 걸친 회담을 통해 교착상태에 빠졌던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되게 된 것은 물론 연내 수교까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결실이다.그럼으로써 북한은 자신을 ‘악의축’으로 규정한 미국에 대해 ‘안전판’을 만듦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를 일정 기간 안정화시킨 점도 평가할 수 있다. 양국이 수교협상을 재개키로 합의한 것은 양측에 있어서 최대 현안이었던 일본인 납치(일본)와 과거 청산(북한) 문제에 대해 서로 신뢰할 만한 얘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북측은 납치문제와 관련,일본 정부가 납치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는 8건 11명의 생사 여부를 전격 공개했다.당초 11명 가운데 유럽에서 납치된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 등 일부 납치 피해자의 안부만 확인해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예상 밖의 ‘통 큰’선물을 제시함으로써 일본측에 ‘성의’를 보였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회담에서 납치를 ‘인도상의 문제’로 다뤄 이들의 귀국에 이르기까지 적극 해결할 뜻을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달함으로써 일본측이 수교협상을 재개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민들이 충격적인 납치 피해자의 생사 확인 결과를 어느 정도 수용할지는 향후 여론동향에 달려 있으나 기본적으로 김 위원장이 납치를 인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유감표명,사과까지 함으로써 생존자의 귀국과 사망자의 사망원인 규명 등 수교협상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북측도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식민지배에 관한 사죄의 뜻을 전달받고 북한이 종전의 전후 배상 및 보상 주장을 철회하는 대신 경제협력을 실시하겠다고 확약을 받음으로써 대화의 실마리가 풀린 것으로 보인다.경제협력의 규모에 관한 구체적인 액수가 제시됐는지는 불분명하나 북측이 납득하고 수용할 만한 선에서 일본측이 설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회담에서 언제까지 수교를 이룬다는 목표치는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납치문제와 경제협력에 관한 실무 협상이 끝나는 시점이 국교 수립의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이며 10월 협상을 속개,빠르면 연내에도 수교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을 만큼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미국측이 관심을 갖는 핵·미사일 문제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도 거론됐으나 이문제는 북측에 의해 북·미간의 문제임이 강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일본 영해에 북한 선적으로 보이는 괴선박 출몰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측이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북측도 일정 부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일의 현안 외에 또 하나의 관심사의 하나로 떠올랐던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김 위원장이 고이즈미 총리의 중개 역할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고이즈미 총리는 동북아지역 안정과 평화에서의 일본 역할을 강조하며 협력을 다짐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한편 고이즈미총리는 지역신뢰 조성을 위해 남북한과 미·일·중·러를 포함하는 6자회담 개최를 제의해 김위원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으나 구체적인 실천방안에까지는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marry01@
  • [사설] 북·일 관계 정상화에 큰 진전

    어제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은 북한의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 유예 약속,핵 합의 준수 등 예상보다 많은 성과를 거뒀다.그런점에서 동북아의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 의미있는 만남으로 평가받을 만하다.특히 동북아 냉전의 잔재를 떨어버리는 큰 걸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와 첫 대면에서 “가깝고도 먼 나라는 20세기 낡은 유물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도 감지된다. 무엇보다도 북한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하고 다음달 중으로 수교협상을 재개한다는 4개항의 합의가 담긴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향후 양국관계의 ‘대장전’이 될 이 선언에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내용도 담겨있어 양국 관계정상화의 토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며,우리는 이를 환영한다.또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보상 등 과거사 처리방식에 합의한 것 역시 관계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수교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고이즈미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현안이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짐작케 했다.또 실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입장차가 현격해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많다.북한은 경제협력 자금으로 13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으나,일본측은 50억달러 안팎을 염두에 두고있는 것으로 알려진다.납치된 일본인중 생존이 확인된 4명의 본국 귀환 등 신병처리,책임문제도 추후 협상의 난제가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북·일이 이번 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동북아에 미칠 평화적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양국은 어느 때보다 진솔하고 성실한 자세로 후속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이번 북·일 회담은핵·미사일 문제가 주요 현안인 북·미 관계의 진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북한은 차제에 명실상부한 국제사회 일원으로 편입하는 노력을 배가해주기 바란다.
  • 北·日정상회담/ 의제별 합의내용

    ■과거청산 - 韓·日방식 준용 경협지원 과거사 사죄문제는 일본측이 95년 ‘무라야마 담화’수준을 답습하는 선에서 매듭지었다.선언은 “조선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 속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과거사 처리방식은 1965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의 과거 청산방식을 준용했다.즉 1945년 8월15일 이전의 재산청구권을 상호 포기하는 대신 일본이 이른바 ‘경제협력’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그동안 주장해 온 전후 배상 및 보상방식을 철회하는 대신 경제협력방식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국교정상화 이후 적절한 시기에 ▲무상자금협력 ▲저금리 장기차관제공 ▲국제기관을 통한 인도적 지원 등의 대북 경제협력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경제개혁 작업을 추진중인 북한의 민간 경제활동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국제협력은행 등에 의한 융자 및 신용공여 실시 여부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제협력 규모와 내용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협의하겠다.”고 밝히고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한·일 청구권협정을 계기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5억달러(무상 3억,유상 2억)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0억달러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日人 납치 - 北공식사과·재발방지 약속 양국은 공동선언에서는 납치라는 표현 대신 ‘상호의 진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또 “일본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현안 문제는 유감스러운 문제이며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확인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종전 태도에서 180도 선회해 납치사건을 정식으로 인정하고,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북한은 8건 11명의 납치 피해자 가운데 10명의 생사를 확인해줬다.생존자는 4명에 불과했으며,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1명을 제외하고 6명은 사망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생존자 4명의 경우,가족들과의 면회를 허용하고 본인들이 원한다면 일본으로의 귀국 또는 고국 방문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사망자의 사망 경위도 계속 조사해 가족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핵·미사일 - 실험동결 2003년 이후까지 고이즈미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북한이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 동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양측은 “한반도 핵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모든 관련 국제합의를 준수하며,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 모든 문제에 관해 관련 국가간 대화를 촉진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합의했다.이밖에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에 관해 협의를 하기로 했다. 북한이 ‘국제합의를 준수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에 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수교교섭 - 신뢰 바탕 조속 국교정상화 김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빠른 시일 안에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데 합의하고 이를 위해 오는 10월중 양국간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 양국은 서로간의 신뢰관계에 기초해 국교정상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양국현안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북·일 국교정상화가 북한과 일본 양국의 이익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질서 확립에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국교정상화 협상에 신중하게 응할 것이며 북한측에 성의있게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 오늘 北·日 정상회담/ 주요 의제와 전망/‘윈-윈 선물’ 교환할까

    (도쿄 황성기특파원) 17일의 평양 북·일 정상회담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키 대단히 어렵다.양국간 첫 정상회담이고 회담 의제도 ‘산 넘어 산’,상대가 광폭 정치를 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일본 여론을 등에 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이기 때문이다.회담 전부터 일본 언론들은 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란 결과는 전부 예상해 보도하고 있으나 어디까지 맞힐지는 미지수다.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는 두 정상이 국교정상화교섭 재개에 합의할지 여부이다. 수교협상 재개에는 일본측은 일본인 납치,북측은 과거 청산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납치 문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발표(8월30일) 직후 일본에서는 “김 위원장이 깨끗이 납치를 인정하고 납치 피해자를 돌려 보낸다는 약속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가설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 14일 교도(共同)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납치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크지 않은 문제’로 취급했다.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수 있는 미묘한 언급이지만 결심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의지가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게 가장 적절하다. 일본 언론들은 8건 11명에 이르는 납치 피해자의 안부를 연내에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상회담의 성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큰 진전으로 보고 있다.평양을 다녀온 한 북한 소식통은 “(납치문제에)극단적인 기대는 금물이며 인도상의 문제로 뭉뚱그려 납치를 다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여당에서는 납치문제 해결에 관한 김 위원장의 ‘의지와 확답’을 받아온다면 일본이 수교협상을 재개하는 전제조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과거 청산- 북측은 일관되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최근 보상에 관해서는 이전과 다른 ‘융통성’이 감지된다. 일본측이 내세우고 있는 1995년 무라야마(村山)담화에 따른 ‘반성과 사과’를 표명하는 선에서 북측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사죄 문제가 해결되면 보상 문제는 쉽게 풀릴 것으로 보인다.일단 서로에 대한 재산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측이 1965년 한·일 협정 때와같은 경제협력 방식을 채택,수교협상 때 협의하는 것이다. 최대 초점인 경제협력 액수는 수교협상 때 진전시켜 나간다는 것이지만 실제 실무협의에서는 50억∼100억 달러선에서 해결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핵·미사일 문제- 북·일의 현안과는 달리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미사일에 관심을 갖고 평양 회담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도 미국측은 핵·미사일을 강조했다. 북측은 기본적으로 핵·미사일은 북·일간 사항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실험을 동결하겠다는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marry01@
  • [사설] 北·日 과거청산 명분지켜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오늘 역사적인 평양 정상회담을 갖는다.북·일 정상 회동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에 심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이 회동에 대한 우리 남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은 안보·경제 측면으로만 다 설명할 수 없다.북한과 일본은 우리의 생존의 역사와 집단 무의식적 감정의 최저층에 자리잡은 두 이웃이다. 이 점에서 남한 국민들은 북·일정상회담의 여러 이슈 중 과거청산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으며,지난 1990년 시작됐던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 역시 이 문제의 벽 앞에서 심각한 좌절에 빠지곤 했다.북한은 일본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 식민지 시절의 죄행을 사죄하지 않는 한 어떤 정상화도 기대할 수 없다고 못박아왔다. 북한은 최근까지 과거사 사죄,보상,문화재 반환,재일조선인 법적 지위 문제 등 4개항의 청산요건을 분명히 했으며,일본은 배상과 보상 요건에 대해 북한과 교전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왔다.북·일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정상화를가로막던 현안이 이렇다 하게 변하는 조짐 없이 전격 발표되었다.따라서 정상회담이 생산적인 씨앗을 뿌리려면 양측은 타협과 양보가 불가피하다.과거청산과 관련,일본 정부가 지난 95년 한국 정부에 했던 ‘통절한 반성과 마음속으로부터의 사죄’보다 강한 과거사 사죄와 함께정통적인 배상·보상을 하든가,북한이 4개항 청산요건을 완화하든가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의 전격 회동이 북한이 시동을 건 경제개혁 및 재원조달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외교에서의 타협의 생산성과 북한 경제의 긴박한 외부재원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북한의 과거청산 요건을 눈여겨 보아왔던 우리는 일제의 불법적 식민지 지배와 비인간적 만행에 대한 기본원칙 고수를 북한에 기대하고 싶다.30여년 전의 남한 정부처럼 정식 사죄도 받지 못하고,차후 민간인이나 정부 할 것 없이 현안마다 합법적인 문제제기를 원천봉쇄당한 청구권 형식의 경협 형태로 돈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김정일 서면인터뷰 요약/ “北·日 대립 백해무익 관계개선땐 日 답방”

    다음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이타 이치로(齊田一路) 교도통신 사장 앞으로 보낸 서면 인터뷰 회답 전문 요약. 비정상적인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양국 정치가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은 북·일 관계 정상화에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다.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이 좋은 결실을 보게 될 것으로 믿는다.우리는 어떻게든 양국 관계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가야 한다.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해결해야 할 기본 문제는 양국간에 존재하는 꺼림칙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이다.1세기에 걸쳐 쌓인 한의 역사를 그대로 두고 국교 정상화는 될 수 없으며 선린우호 관계도 수립될 수 없다. 과거청산을 위해서는 일본으로부터 우리 인민이 받은 모든 재난과 피해를 충분히 고려,성실히 사죄하고 보상 문제도 바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무장력은 우리를 침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하지만,침해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누구에게도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일본이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고 우호적으로 대한다면 우리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 조금도 우려할 것이 없다. 끝으로 내가 일본을 방문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는데,양국 관계가 정상화돼 바람직하게 발전한다면 일본을 방문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 김정일 日통신 회견 의미/ ‘과거 사죄’ 北·日수교 암초

    (도쿄 황성기특파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교도통신의 서면 인터뷰에 응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면서도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일본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치밀히 계산된 행위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좀처럼 외국 언론 노출을 꺼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면 인터뷰이긴 하지만 고이즈미 방북에 거는 북측의 높은 기대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김 위원장은 러시아 타스통신,문명자(文明子)씨 등 재미 한국계 저널리스트,2000년 방북한 한국 언론사 사장단 외에는 서면이든 직접이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 위원장의 인터뷰와 관련,“모든 것은 (김 위원장을)만나고 나서”라고 직접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으나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는 등 인터뷰내용은 17일 평양 회담을 앞둔 좋은 조짐으로 평가되고 있다.특히 “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되면 일본을 방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김 위원장의 방일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국교정상화 희망’이 김 위원장이 던진 총론이라면 총론을 푸는 각론에서는 난항도 예상케 하는 대목이 더러 보인다.“크지 않은 문제를 갖고 중상하거나 서로 손발이 묶이고 있다.”고 한 언급이다.일본 언론들은 ‘크지 않은 문제’가 납치 문제나 괴선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톤으로 다루어지는 것 아니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또 김 위원장이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과거 청산이 필요하고 과거 청산에는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3단 논법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marry01@
  • 北 미사일실험 계속 동결

    [도쿄 황성기특파원] 오는 17일 평양 북·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될 공동선언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 동결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朝日)신문이 6일 보도한 공동선언안에 따르면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답습하고 ▲북한에 대한 보상문제는 재산청구권을 서로 포기,경제협력 방식으로 처리하며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 동결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사죄 문제에 대해서는 “아시아 국민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내용의 무라야마 담화를 공동선언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양측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이같은 내용대로 일괄 합의를 도출해 낼 경우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 등 북·일 관계 정상화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문제는 인도문제로 처리한다는 점에서는 양측이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조정에 시간이 걸리고 괴선박 문제도 일본측이 재발 방지를 요구한 데 대해 북한측은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어 문안 작성 작업이 난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 사죄에 대해 이번 회담 때는 무라야마 담화 수준을 견지하되 북한에 한정된 사죄는 국교 정상화때 표명하는 2단계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marry01@
  • [데스크 시각] 진정한 화해를 기다리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서울의 망우리 묘지공원에 가면 아사가와 다쿠미(淺川巧)라는 한 일본인의 묘지가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어도 아직도 그의 묘지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 깨끗이 관리되고 있다.그는 총독부 관리였지만 당시 한국에 건너왔던 많은 일본인들과는 달리 조선문화를 존중했고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라는 저서를 남기는가 하면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썼던 이유로 1931년 그의장례식은 많은 조선인들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그 아사가와의 이야기를 최근 일본에서 듣게 됐다.규슈 후쿠오카현 무나오카시에 있는 후쿠오카교육대학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일본교육학회 예순한번째 학술대회에서였다.대회 주제는 ‘아시아의 공생(共生)-젊은 세대의 앞으로의 한·일(일·한)관계와 인적 교류’였다. 걸핏하면 갈등이 폭발하는 한·일관계를 생각하면서 일본 교육학계가 보는 양국 관계와 교류의 전망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돌아오는 길은 몹시 머리 속이 복잡해져있었다. 심포지엄 전반부에는 초등학교의 교류에 관한 사례발표가 있었다.충남 부여군 백제초등학교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니시초등학교 학생들이 해마다 오고가며 교류하는 모습이 비디오 화면과 함께 소개됐다.니시초등학교 관계자는 “진짜 형제처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하면서 젊은 세대의 교류가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중학생 시절 서로 홈스테이를 하면서 교류를 했던 학생 2명이 8년 만에 재회,당시와 현재의 생각을 말하는 차례도 있었다. 분위기가 일변한 것은 8년째 한·일교환수업을 펴온 쓰쿠바대학 다니가와 아키히데(谷川彰英) 교수의 차례가 되어서였다.그는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아사가와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역사수업을 해 나가는데 반응은 차가웠다고 말을 꺼냈다.한 학생이 “아사가와는 수천만명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사죄와 배상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서 우리더러 과거를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냐.”라고 비판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김치나 만화 이야기를 하면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역사 이야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로부터 같은 시각의 비판을 받는다면서 다니가와 교수는 교류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 “한국 사람 말을 이젠 입닫고 들어선 안된다.”,“독립기념관에 가보니 고문 장면이 인형으로 전시돼 있다가 이제는 움직이는 인형으로 바뀌었더라.한국인들 지나치다.”,“한국인의 마음에는 ‘동생한테 당했다.’는 식의 원한 같은 게 있다.”는 말을 ‘솔직하게’ 토해 냈다. 8년이나 한·일 교류 사업을 열심히 펴온 끝에 얻은 결론인 셈이었다.교류가 화해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 될 수도 있다거나 교류하면 할수록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하면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게 되겠지만,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됐다. 비슷한 발언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흘러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연단에 앉아 있는 재일동포 교육학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사회자인 그는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돼 있었다.심포지엄이 끝난 뒤 그와 함께 온천욕을 가는데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까요.”라고 묻는다.내가 묻고 싶은 말이라며 대답을 기다리니까,먼 바다쪽만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는다.태풍 루사 탓이겠지만 귀로에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현해탄에는 파도가 높게 일고 있었다. 강석진 정치에디터
  • “고이즈미, 식민통치 사죄”北·日 정상회담서 표명 결정

    (도쿄 황성기특파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7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때 과거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해 사죄할 것이라고 일본 정부 소식통들이 3일 밝혔다. 이들은 북·일 외교관계 정상화회담을 재개하는 데 있어 북한이 요구하는 핵심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취지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해 사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에 의해 초래된)상당한 손실과 고통에 대해 통절(通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는 말로 사죄할 것이라고 이들은 밝혔다. 이같은 사죄 발언은 1995년 8월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전후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식민지시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진심으로부터의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는 특별담화에 기초한 것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총리가 김 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직접 성명서를 발표할 것인지 아니면 평양의 다른 장소에서 이를 발표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일본과 ‘정치대화’를 원한다면 지난 70∼80년대 발생한 일본인 납북 의혹을 해소해야만 한다고 말했다.앞서 1990년 5월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방일 당시 만찬답사에서 “한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통석(痛惜)의 염을 금할 수 없다.”란 말로 과거사를 사과했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는 1998년 10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식민지배로 한국민에 큰 손해와 고통을 준 데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고 말한 바 있다. marry01@
  • 北·日 정상회담/ 기고/北·日 ‘54년교착’ 벗어나는 호기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큰 결단을 내렸다.9월17일 사상 첫 일본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열린다.1948년 생긴 이웃나라 북한과 54년간 국교도 없고 정상회담도 없었다고 하는 사실은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8월26일 평양에서 끝난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 뒤 일본측 대표인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아시아대양주국장은 “‘과거의 청산’과 납치,미사일 문제는 정상의 정치적 의사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말 그대로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지만 이만큼 극적인 형태로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이 나타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91년부터 11차례에 걸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오히려 8건 11명의 일본인 납치,미사일,괴선박 등 북·일간에는 교섭의 속행조차 곤란하게 하는 현안이 겹쳤다. 이러한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상의 정치적 의사’밖에 없다는 인식을 일본과 북한이 공유함으로써 고이즈미 방북이 성사된 것이다.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북측은 일본측의사죄,인적 물질적 손해에 대한 보상,문화재의 반환·보상,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 개선 등 4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측은 보상에 대해서는 경제협력 방식에 의한 해결,일본인 납치,핵·미사일,공작선 문제 등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문제 중에서도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일본인 납치 문제이다.‘요코다 메구미’라는 소녀로 대표되는 납치 문제는 일본 여론에도 커다란 테마가 되고 있고 이 문제에 진전이 없다면 일본 여론은 북·일 국교정상화 그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다. 여론을 잘 파악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는 납치 문제에서 진전이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방북을 결단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북한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선물’을 시사하는 신호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고이즈미 총리가 가는 이상은 일정한 성과는 올릴 것이다.납치,과거 청산에 있어서 의견일치가 있다면 국교정상화 교섭은 실무레벨에서 결실을 볼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한국이나 미국을 제쳐놓고 단독으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돌진하지는 않을 것이다.고이즈미 총리는 핵·미사일 문제도 북측에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여 한·미·일의 협조와 다국간 협의의 메커니즘을 모색해갈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지금일본과의 정상회담에 나선 것일까. 경제난에 빠져 있는 북한으로서는 100억달러로 추산되는 일본의 보상을 얻는 것이 간절하다. 그러나 최대 요인은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대한 대응책일 것이다.부시 정권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량 파괴무기 개발·확산의 중지,통상병력의 감축,핵 사찰의 실행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북한은 “다음은 우리”라는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남북대화의 재개와 북·일관계의 개선에 나선 배경에는 미국 공격의 예봉을 피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앞두고 ‘정치적 보험’을 준비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런 배경이 있다고는 하지만 북·일 정상회담이 열려 양국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에 있어서도환영할 만한 일이다.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교섭이 필요한 것이다.항의를 요구할 수 있는 루트조차 없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북·일관계가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바뀌는 것을 기대한다. 스즈키 노리유키 日 라디오프레스 이사
  • 변화 격류타는 北/ 對北보상 어떻게 - 北 100억弗이상 요구할듯

    (도쿄 황성기특파원) 평양 북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인 ‘과거 청산’문제를 두 정상이 어떻게 풀어낼지도 관심사이다.일본인 납치가 일본측 최대 현안이라면 과거 청산은 북한측 최대 현안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식민지배와 관련,▲과거사 사죄 ▲보상 ▲문화재 반환 ▲재일 조선인 법적 지위 문제 등 4개항을 과거의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요구한 바 있다.핵심은 보상.경제 재건에 힘을 쏟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일본으로부터의 보상이 절실하지만 보상을 둘러싼 북·일간 인식차가 하늘과 땅 차이다. 우선 북한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 때의 방식을 거부하고 있다.당시 일본은 5억달러(유상 2억달러,무상 3억달러)로 일제 식민지 문제를 해결했다. 북한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서 광복까지 40년 식민통치 기간은 물론 광복 이후 현재까지 50여년의 기간에 대해서도 일본이 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반면 일본은 청구권 대상을 식민지 통치기간인 36년간으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상 액수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북한은 100억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은 “터무니 없는 금액”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보상에 대해서는 미국측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보상받은 돈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흘러들어가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납치 문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반면 과거 청산은 일본 여론과 미국측 입장도 감안해야 할 복잡한 문제이다.
  • [열린세상] 역사는 정방향으로 흐른다

    군사독재정권이 신임 교수들을 일주일씩 정신문화연구원에 집어넣고 정신교육을 시키던 1987년 여름의 일이다.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상황에서 정신교육에 들어간 내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것은 북에서 갓 내려온 김만철씨와의 대화였다.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TV에도 아랑곳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방적으로 남쪽이 좋다고만 하지 말고 거꾸로 북의 장점과 남의 단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잠시 멈칫했던 김만철씨가 이제까지와 달리 머리를 꼿꼿이 들고 가슴을 편 채 자랑하듯 말을 꺼냈다. “북은 친일을 빨리 청산했습니다.그리고 남은 극장 간판에 보이는 것처럼 너무도 부도덕해 보입니다.”그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해방 직후 1년 만에 작업을 마친 북과 달리 남의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실패로 끝났다.미군정은 행정 공백과 공산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친일 반민족 세력을 다시 내세웠고,이승만 또한 자신의 집권을 위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그 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친미 반공주의자로 둔갑하였고 ‘건국의 공로자’로까지 올라섰다.일본 장교 출신 대통령을 비롯하여 친일 인사 7명이 9번이나 국무총리를 지냈고,18명이 22번 장관을 지낸 내무부와 13명이 16번을 거친 법무부,10명이 11번을 지낸 상공부에서 보듯 중앙 부처 대부분을 그들이 장악하였다.또한 서울,경기,전북,경북은 4번씩이나 친일 경력 도지사를 배출하였으며,군부는 더욱 심해서 12명이 13번에 걸쳐 국방부장관을 지냈고,육군참모총장은 초대부터 21대까지,합동참모회의의장은 초대부터 14대까지 일본 장교 출신들로 도배하였다.어디 그뿐인가.각 대학 총장들을 비롯하여 언론계,문화계 등 모든 분야에서 친일 인사들이 원로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정부지원으로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일부 언론은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감추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또한 1995년에는 이완용의 손자가 할아비의 땅을 되찾아 땅 값 20억 원을 들고 외국으로 떠났으며,재작년에는 서울대학교 김민수 교수가 미술계 원로들의 친일 행각을 비판하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바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했던가? 올해 3·1절 전날 비록 국회 차원의 활동은 아니었지만 여야 소장 의원들이 만든 ‘민족정기를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708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그리고 광복절 즈음인 지난 13일 학술단체협의회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14일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학단체들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문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특히 참여 숫자도 숫자지만 어느 분야보다 후대의 가슴에 아픈 못질을 한 친일 문인들의 작품을 낱낱이 적시하면서 이날 후배 문인들은 당사자 선배들을 대신해 국민들 앞에 사죄의 글을 올렸다.그리고 ‘친일인명사전’편찬 작업과 소장파 의원들에 의한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특별법’추진이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당사자들 대부분이 죽은 지금 지나간 과거를 들추는 일은 죄 없는 후손에게 피해를 줄 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들이야말로 민족을 위한 역사의 희생자라는 논리까지 다양하다.하지만 친일 청산운동은 과거 개인의 잘못을 일일이 응징하자는 것이 아니며,민족을 분열시키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정당한 역사적 심판을 거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운동이다.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시민운동으로 승화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같은 불공정협약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한 것처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일 수 없는 것이다.한편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 철학
  • [녹색공간] 자전거를 위하여

    올해에도 어김없이 하늘은 적잖은 분들의 농사를 망치고 집을 무너뜨리고,이름 모를 무수한 생명체들을 간단없이 휩쓸고 지나가는 비를 내렸다.한강의 수위는 잠수교를 잠수시킨 뒤에도 며칠간이나 그 높이를 유지했다. 며칠 뒤 비가 좀 멎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가 결국 반포대교 언저리에서 아직 치우지 못한 진흙더미에 빠졌다.헬멧을 쓴 다른 자전거족들은 진행하려는 필자를 만류했다.하지만 필자는 운동하러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게 아니라 일터로 가는 길이었기에 거대한 늪처럼 고여 있는 진흙더미 때문에 돌아설 수 없었다.페달이 진흙속에 잠겼고,운동화가 잠겼고,무릎이 잠겼으며,진흙이 온몸에 튀었다. 필자는 금년 여름부터 잠실에서 서교동까지 한강변을 따라 23㎞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차로 스쳐지나가던 한강과 자전거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가는 길은 무척 달랐다.세금도 없고 운전면허도 필요없는 자전거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물 위로 튀어오르는 고기와 자연초지의 갈대밭까지 만나게 해주었다. 필자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여름,환경단체 풀꽃세상에서 ‘자전거'에 풀꽃상을 준 뒤부터였다.‘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기치로 그동안 풀꽃세상은 ‘새,돌,풀,길,조개,꽃,지렁이'에게 사죄의 마음으로 혹은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아무런 대변자도 없이 후기산업사회의 오만한 인간들에게 무차별 능욕을 당하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었다. 이번에 자전거에 풀꽃상을 준 선정 이유는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다. 자전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공간을 난폭하게 대하지 않고,풍경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더러 방귀를 뀌는 개인적인사정 외에는 대기를 오염시킬 일이 전혀 없고,정기적인 대인대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고,운동부족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날 염려가 거의 없는,인류가 만든 공산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입니다.달리다가 문득 한 발은 페달에,한 발은 대지에 굳건히 딛고 서서 지나가는 이웃에게 “밥 먹었니?” 하고 물을 수 있는 자전거는 사람과 사람을 정으로연결시키기까지 합니다.풀꽃세상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자주 자전거를 타기 바라는 마음에서 제8회 풀꽃상을 '자전거‘에게 드립니다. 단순한 자전거 예찬을 위해서는 아니었다.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 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자동차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가 이번 풀꽃상에 담겨 있었다. 승용차 1대가 달리는 차선 하나면 자전거는 5대가 이용가능하고,승용차 1대의 주차공간을 자전거 12대가 이용할 수 있다.그런데도 우리는 자동차를 위한 시설에는 계속 투자하면서 자전거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서울의 경우 한강변은 그나마 비교적 뛰어난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지만,한강만 벗어났다 하면 자동차로 인해 목숨 내놓고 타야 하니 말이다. 환경부는 자동차 환경부담금을 더 거둬들인다고 하고,기획예산처는 자전거도로를 위한 예산을 줄인다는 소식이 들린다.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는 나라살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을 제외한 이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 나라'를 서울보다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지역'을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최성각/ 소설가, 풀꽃세상 사무처장
  • 8.15 민족통일대회/독도수호 학술토론회/“日 역사왜곡 대응 민족운동 펴자”

    8·15민족통일대회에 참가한 남북 학자들은 16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독도 영유권 수호와 일본의 과거청산을 위한 우리민족의 과제’란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가 끝난 뒤에는 ‘해내외 온 겨레에게 보내는 특별호소문’을 통해“일본은 아름다운 삼천리 강토를 황폐화시키고 귀중한 문화재와 재산을 앗아갔다.”며 “일본의 역사왜곡,독도 영유권 주장,군사 대국화를 반대하는 민족적인 운동을 강력히 벌여나가자.”고 강조했다.다음은 남북학자들의 발표요지. *강만길 상지대 총장- 일본이 울릉도 외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17세기 후반이고,이후 일종의 영토분쟁이 생겼으나 1696년 두나라 교섭으로 조선의 영토임이 재확인됐다. 1902년엔 부산주재 일본영사관은 ‘울릉도 동쪽에 ‘리양코’(독도)가 있는데,울릉도 주민들이 출어하여 4∼5일간 머물다가 돌아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1904년 한 일본어부도 ‘리양코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한국의 영토’라며 일본정부에 어업권 빌리기를 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북은 독도 문제 대처를 위한 공동기구를 만들고 보조를 함께해야 한다.또 독도 수비를 위해 상징적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병력을 파견하는 일도 바람직할 것이다. *허종호 조선역사학회 회장- 독도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민족의 신성한 영토다.우리의 독도 영유 형태는 ▲6세기 초 우산국 복속 ▲12세기 중엽 관리파견 직접통치 ▲15세기 초 소극적 공도정책 아래서의 영유권 선언으로 구분된다.조선은 독도 영유권을 1900년 10월25일 ‘칙령 제41호’로 공표했다.일본은 독도에 전임관리를 보내 주권행사를 하거나,정부차원의 개척,경영사업을 한 일이 없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신라시대 이후 우리가 독도를 영유해 왔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세종실록지리지,증보동곡문헌비고 등 많은 문헌으로 확인된다.일본이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도 고유 영토가 아님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다.남북은 일본의 공식 사죄와 재거론 방지 약속,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제적 연대전략수립,독도 전시회 및 학술토론회등으로 공조해야 한다. *황명철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사- 일본은 1693년 호키 번주가 막부의승인 아래 안용복에게 내준 확인문서에서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이후 1696년 막부는 ‘죽도(울릉도)와 그밖의 한 섬(독도)’에 왜인들의 출입을 금지했다.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지령 제677호(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한 데에 대한각서)에서 울릉도,독도,제주도를 우리나라에 귀속시켰다.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을 확인한 대표적인 국제협약이다. *한상범 동국대 교수- 일본의 우익 세력은 일관되게 메이지헌법 체제로 복귀하려 한다.역사왜곡은 군국주의 정신교육의 예비단계다.우리 민족이 직접 부딪히는 문제이며 동시에 아시아 민중의 운명에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남북을 가리지 않고 민족적 공동관심사에 협조해야 한다.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이웃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 민중,평화 애호세력도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일본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부활정책은 우리민족에 대한 죄악이며 범죄행위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친일문인 과오 사죄합니다”문인등 참회선언문 발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족문제연구소,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과 계간 ‘실천문학’ 등은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친일문학을 자성하는 문학인 공개 기자회견’을 갖고 문학인 참회선언문을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참회선언문을 통해 문학인의 운명이야말로 모국어와 동시적인 것이라고 전제하고 “당사자들의 반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우리가 자청해 모국어 내부에 자리잡은 친일의 아픈 상처를 스스로 공개하고 사죄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갖는 것은,뒤늦게나마 왜곡된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 놓고자 하는민족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채수범기자 lok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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