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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시노감독, 베이징 올림픽 ‘반성문’ 작성

    호시노감독, 베이징 올림픽 ‘반성문’ 작성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호시노 센이치(61) 한신 타이거스 시니어 디렉터(SD)가 보고서를 작성한다. 일본 ‘스포니치’는 3일 ‘호시노. 굴욕의 패전 무대 뒤 집필 중’이란 기사를 통해 호시노 SD가 올림픽을 중심으로 한 2년 간의 문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호시노 SD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위(연맹·기구)에 내는 것”이라며 “올림픽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도 있다. 반성한 것을 메모해서 향후 일본 대표팀에 유용하게 사용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나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는 “그건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은 외부에 사죄만을 하고 침묵할 뿐이다. 당분간은 ‘침묵의 남자’로 알아 달라”며 공개를 꺼렸다. 일본 프로야구 기구(NPB)는 2009년 WBC 감독 선임을 커미셔너에게 일임한 상황이다. 호시노 SD는 노무라 가쓰야(라쿠텐 골든이글스) 오 사다하루(소프트뱅크 호크스) 바비 발렌타인(롯데 마린즈) 등 현역 감독들과 후보 그룹에 있다. 기사제공=스포츠서울닷컴 박정환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헌재는 현대사의 질곡을 겪은 끝에 탄생했다.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헌재가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1960년 4월 첫 제정된 헌재법은 한달 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사장됐다. 비상설기구인 헌법위원회나 대법원이 위헌법률 심판 등을 맡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1987년 민주화 물결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며 헌재 설치가 다시 추진됐고, 이듬해 9월1일 헌재법 공포로 마침내 헌재가 문을 열었다. 한편 헌재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연다. 미국·영국·독일·일본·스페인·몽골 등 30개국과 베니스위원회·유럽헌법재판소회의 등 지역협의체 6곳이 참여해 헌법재판과 입법·행정·사법권,21세기 헌법재판의 새로운 도전 등을 논의한다. 한 교수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책을 쓰며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헌재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구절이다. 헌재는 그동안 1만 5663건의 사건을 심판해 500건에 대해 위헌 결정(헌법불합치·한정위헌·한정합헌 포함)을 내렸다. 그만큼 헌재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91년 언론의 강제사죄광고 위헌 결정 한 연예인이 1988년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사죄광고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언론사는 “사죄광고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1991년 4월 헌재는 “양심의 자유는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까지 포괄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1992년 1월 신체구속된 사람이 수사관 개입 없이 변호인과 자유롭게 접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결수용자의 변호인 접견에 교도관이 참여하도록 한 행형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 이는 인신보호를 위한 무죄추정 원칙과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 대해 직접적 효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국내 인권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한때 우리 영화계는 흥행보다 검열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1989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와 해직교사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를 사전심의 없이 상영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제작자들이 헌소를 냈다.1996년 10월 헌재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해서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영화계의 손을 들어줬다. ●1997년 동성동본 금혼법 불합치 결정 1997년 7월 헌재는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한 민법 조항에 대해 유림이 주장하는 유전학적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한시적인 특례법으로 4만 4800여쌍의 동성동본 부부가 법률적인 부부가 되며 구제받았지만, 여전히 혼인 생활이나 자녀 교육에서 고통받는 동성동본 부부가 많았다. 헌재 결정으로 20만쌍의 동성동본 커플이 오랜 관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1999년 12월 헌재는 공무원 공채시험 때 제대군인에게 과목별로 만점의 5∼3%를 가산토록 한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여성과 신체장애를 가진 남성 등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는 폐지됐지만, 현재까지 정치적인 쟁점이 될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2005년 2월 헌재는 호주제도에 대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6대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림단체의 반발과 여성단체의 환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양성평등이 진일보하는 분기점이 됐다. 그 여파로 올 1월부터 호주제 대신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됐다. ●2007년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 불합치 결정 2007년 7월 헌재는 나라 밖 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거권 또는 국민투표권을 행사할 때 주민등록 등 국내거주 요건을 요구해 대한민국 국적의 해외 영주권자가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2004년 5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 헌재는 이를 기각함으로써 당시 사회 분열과 갈등을 봉합했지만,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이 개별의견을 표시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는 여론에 힘입어 개별의견 공개대상 사건을 ‘탄핵심판을 포함한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도록 헌재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국회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재판관들의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한편 올 1월부터 모든 고소 사건에 대해 관할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헌재의 심판사건 접수 건수가 크게 줄었다. 재정신청을 거친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는 그 이전부터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홍지민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與 도지사들 패싸움 파장] 의원·시민단체 ‘내지역 챙기기’ 가세

    수도권 규제문제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단체 및 의회 간의 이해 다툼으로 옮아가고 있다. 충남, 충북, 대전 등 시·도의회 의장들은 최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문수 경기지사의 수도권 홀대 발언은 국가 정책에 역행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오만한 독설”이라면서 “2500만 비수도권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상천 경북도의회 의장도 “사실상 영남과 호남은 전 지역이 개발 소외지역 아니냐.”고 비판했다. 충북도내 16개 기관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수도권과밀반대충북협의회’는 다음달 4일 청주체육관 앞 광장에서 도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대정부 항의 집회를 갖고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를 촉구키로 했다. 광주시와 전남도 비수도권 13개 지자체·지역 국회의원들과 공조해 수도권 규제완화 법률 제정을 막기로 했다. 그러나 경기도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는 최근 비상결의대회와 1100만 도민 서명운동을 펴는 등 규제완화를 촉구하고 나서 ‘수도권-비수도권’ 대결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與 도지사들 패싸움 파장] 의원·시민단체 ‘내지역 챙기기’ 가세

    수도권 규제문제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단체 및 의회 간의 이해 다툼으로 옮아가고 있다. 충남, 충북, 대전 등 시·도의회 의장들은 최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문수 경기지사의 수도권 홀대 발언은 국가 정책에 역행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오만한 독설”이라면서 “2500만 비수도권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상천 경북도의회 의장도 “사실상 영남과 호남은 전 지역이 개발 소외지역 아니냐.”고 비판했다. 충북도내 16개 기관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수도권과밀반대충북협의회’는 다음달 4일 청주체육관 앞 광장에서 도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대정부 항의 집회를 갖고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를 촉구키로 했다. 광주시와 전남도 비수도권 13개 지자체·지역 국회의원들과 공조해 수도권 규제완화 법률 제정을 막기로 했다. 그러나 경기도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는 최근 비상결의대회와 1100만 도민 서명운동을 펴는 등 규제완화를 촉구하고 나서 ‘수도권-비수도권’ 대결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84)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84)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Ⅱ)

    1637년 1월3일, 도성으로부터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12월 그믐과 정월 초하루, 몽골병들이 도성으로 몰려들어 사람들을 붙잡아가고 약탈을 자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병자호란을 일으키기 전, 홍타이지는 휘하 장졸들에게 군기를 확립하고 함부로 약탈을 자행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시’일 뿐이었다. 더욱이 몽골병들은 무엇인가 보상을 바라고 청에 귀순했고, 또 전쟁에 참여한 자들이었다. 군기를 강조하여 그들의 ‘욕구’를 언제까지고 묶어두기는 어려웠다. 자신들을 지켜 줄 군사도, 이끌어 줄 조정도 없는 상황에서 도성 백성들은 몽골병들의 분탕질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안쓰러웠지만 남한산성의 조정은 도성 사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칭신(稱臣) 여부를 둘러싼 고민 1월3일, 화친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한 조정은 당장 홍타이지의 ‘조유(詔諭)’에 회답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조유를 건네받는 자리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거부하지 못한 이상, 조선은 이제 ‘오랑캐의 신하’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조는 무거운 마음으로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회답서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영의정 김류가 입을 열었다.‘나라가 살아남은 뒤에야 명분을 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한 뒤에 장차 무슨 명분을 논하겠습니까?’ 김류는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다. 청에 대해 ‘칭신(稱臣)’하는 문제를 자신이 담당하여 ‘천하 후세의 죄인’이 되더라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김류가 울자 인조도 울기 시작했다. 죽지 못하고 살아남아 망극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했다. 남한산성에 들어온 뒤 벌써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인 인조였다. 숙부 광해군을 몰아내고 용상에 오를 적에만 해도, 아니 정묘호란 직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한 것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오랑캐에게 신하를 칭하며 머리를 숙여야 할 판이었다. 눈물이 잦아질 만도 했다. 이홍주(李弘胄)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이상 ‘대청황제(大淸皇帝)’라는 호칭을 써야 한다고 했다. 홍서봉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지금 상황에서는 군부(君父)를 보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니, 저들의 지적대로 요금원(遼金元) 시절의 고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신속(臣屬)하는 것이 유일한 방도라는 주장이었다. 김신국은 두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선을 그었다. 그들에게 칭신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다 하더라도 인조가 직접 홍타이지를 대면하게 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1월30일, 인조가 성을 나가서 항복할 때까지 조선 조정이 끝까지 피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장유(張維)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일단 ‘조유’에서 홍타이지가 질책한 내용에 대해서는 사과하되,‘칭신’ 여부는 그들의 반응을 본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이식(李植) 또한 ‘대청황제’라는 칭호는 그냥 사용하되 ‘칭신’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료들은 답서의 서식(書式)과 시작하는 단어, 내용에 들어가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외로운 성에 갇혀 버린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오랑캐’로 멸시해 온 여진족 추장에게 ‘칭신’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논란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황제’임을 인정하다 고민과 논란 끝에 홍타이지에게 보내는 답서를 완성했다. 답서의 맨 앞에 ‘조선국왕은 삼가 대청국관온인성황제(大淸國寬溫仁聖皇帝)께 올립니다.’라는 표현을 썼다. 조선에 보내는 서신을 ‘조유’ 운운하면서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려 했던 홍타이지와 청의 위상을 처음으로 인정한 표현이었다. 답서는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는 내용으로 채웠다.‘소방(小邦)이 대국에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 병화(兵禍)를 불렀습니다. 특사(特使)를 보내 정성을 드리려 했으나 병과(兵戈)에 막혀 통할 길이 없었습니다. 황제께서 궁벽한 구석까지 오셨다는 소식에 의심과 믿음,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렸습니다. 지난해 봄의 일은 소방이 그 죄를 사과할 길이 없습니다. 소방 신민들의 식견이 얕고 좁아 대국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위기에 처한 조선의 고민이 형식과 내용 모두에 절절히 담겨 있었다. 눈앞에 닥친 망국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시도하되, 자존심을 최대한 살리려는 몸짓이었다.‘조유’ 속에 넘쳐나는 홍타이지의 ‘질책’ 내용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하면서 사죄했다. 주목되는 것은 호칭이었다. 홍타이지를 ‘황제’라고 불렀지만 조선을 ‘소방’으로, 인조는 ‘조선국왕’이라 했다. 맨 마지막에는 의연히 숭정(崇禎) 연호를 사용했다.‘조선 국왕 신(臣) 모(某)’란 표현을 쓰지 않음으로써 ‘칭신’은 일단 거부했다. 또 청의 연호 대신 명의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명에 대한 충성 또한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았다. 답서의 뒷부분은 홍타이지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을 담았다.‘죄가 있으면 치고, 죄를 뉘우치면 용서하는 것이 대국의 도리입니다. 정묘년의 맹약을 생각하고, 생령(生靈)을 불쌍히 여기시어 소방에게 새로워 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하지만 대국이 용서하지 않고 기어이 병력으로 추궁하려 한다면 소방은 스스로 죽음을 기약할 뿐입니다.’ 개과천선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여 청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홍서봉(洪瑞鳳), 김신국(金藎國), 이경직(李景稷)이 답서를 들고 다시 청 진영으로 갔다. 황제는 만나지 못했다. 답서를 접수한 마부대는 상의한 뒤에 회답을 주겠다고 했다. ●비변사의 독주에 대한 반발 상황에 밀려 화친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우선 비변사의 몇몇 신료들이 중심이 되어 비밀리에 화친을 추진하는 것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비변사 신료들은 과거 척화·주화 논쟁 때처럼 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여 적진에 보내는 문서의 초안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주고받았다.‘인조실록’의 사평(史評)에는 승지와 사관(史官)이 보지 못하도록 소매에 넣어 출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이 상소했다.‘우리는 참월(僭越)하게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 오랑캐에 맞서 명나라를 대신하여 화란을 당하는 것’이니 ‘의열(義烈)에 당당하고 해와 달에 비춰도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의 국서를 태워버림으로써 장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화친을 포기하라고 강조했다. 답서를 보낸 다음부터 삼사(三司)의 관원들은 다시 최명길(崔鳴吉) 등 비변사 당상들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최명길에 대해, 적의 세력을 과장하고 화친을 주도하면서 나라를 치욕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류에 대해, 하는 일 없이 겁만 많아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유백증(兪伯曾)은,‘칭신’한다고 해서 포위가 풀린다는 보장이 없다며 나라를 그르친 김류와 윤방(尹昉) 등의 목을 베라고 외쳤다.‘조유’에 대한 답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었다. 인조는 최명길 등을 감쌌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보였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신료들 사이의 논란을 다시 방치할 경우, 화친의 시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637년 1월 초, 청과 조선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홍타이지의 ‘조유’와 조선의 답서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조선의 ‘꿈’은 청과의 형제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비록 홍타이지를 ‘황제’라고 불러주었지만 그를 ‘조선의 황제’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명목상 ‘홍타이지의 동생’이자 ‘조선국왕’으로 남아 명과의 관계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 홍타이지는 ‘조선국왕’이란 표현 대신 ‘신(臣) 이종(李倧·인조의 이름)’을,‘숭정’ 대신 자신들의 ‘숭덕(崇德)’ 연호를 원하고 있었다. 누구의 꿈이 실현될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8·15 특별대사면 발표] “투명·윤리경영 계기로”

    재계와 경제단체들은 12일 기업인들이 특별사면된 것을 환영했다. 특별사면된 기업 총수들은 경제살리기에 더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제단체들도 경제인들이 대거 포함된 것과 관련, 일제히 환영논평을 냈다 .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결단을 내려주신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앞으로 기업활동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사회공헌 활동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경제살리기에 더욱 앞장서라는 뜻으로 알고 기업 본연의 역할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복 폭행’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룹 홍보실을 통해 “이번 사면은 저를 경제인으로 다시 되돌려주었다.”며 “다시 태어났다는 각오로 경제살리기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화그룹은 사면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임직원들도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지난해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 강조했다. 경제단체들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인 대사면의 물밑 주역인 대한상공회의소는 즉각 논평을 내고 “많은 기업인들이 사면조치되어 다시 한번 국가사회에 헌신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환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인들에 대한 특별사면과 특별복권이란 용단을 내린 것은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에 경제계가 앞장서달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경제계는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안미현 김효섭 홍희경기자 hyun@seoul.co.kr
  • 페루 국회의원, 이웃집 애완견 총살 논란

    이웃집 개를 무자비하게 총으로 쏘아 죽인 페루의 한 국회의원이 60일 의정활동금지 징계를 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페루 국회는 지난 7일 비공개회의를 열고 ‘애완견 사살’ 혐의로 고발된 미로 루이스 국회의원을 징계했다고 현지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페루 국회는 “동물을 향해 총을 쏜 것은 국회의원 윤리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징계를 결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 3개월 전인 지난 5월. 자신이 길러온 새가 사라지자 흥분한 문제의 국회의원은 이웃집 개를 범인(?)으로 추정, 총격을 가했다. 18개월된 슈나우져종 개는 총탄 3발을 맞고 죽었다. 애견이 죽자 이웃 주인은 “마티아스(개의 이름)가 새를 잡아먹었다는 증거도 없는데 이성을 잃은 국회의원이 발포를 했다.”며 그를 경찰에 고발했다. 미로 루이스 의원은 사과성명을 내고 “경솔하게 총질을 한 건 실수였다.” 며 “애완견을 잃은 주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총기류를 불법으로 소유하고 있던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국회는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미로 루이스 의원은 “인간적으로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징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사과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손영식 nammi.noticias@gmail.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병자호란 다시 읽기](83)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83)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남한산성에서 고단한 나날을 보낸 것이 어느덧 17일, 병자년(丙子年)이 저물고 정축년(丁丑年)이 밝아 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청 태종 홍타이지는 탄천(炭川)에 진을 쳤다. 청군 병력이 30만이나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산성에 대한 청군의 정찰은 훨씬 강화되었다. 홍타이지까지 산성 근처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으니 청군은 이제 모든 역량을 다해 조선 조정을 압박할 요량이었다. 조선군 근왕병들이 산성으로 접근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남한산성에서는 다시 화친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최명길·김상헌 사신 파견 싸고 대립 1월1일 원단. 인조는 백관들을 거느리고 서쪽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마쳤다. 이어 2품 이상의 신료들이 인조에게 새해 인사를 올렸다. 새해를 맞아 광주목사(廣州牧使) 허휘(許徽)가 쌀로 떡을 빚어 인조께 진상했다. 신하들에게도 얼마간씩 떡이 돌려졌다. 성첩을 지키는 장졸들에게도 ‘새해 선물’로 특식이 주어졌다. 삶은 콩과 말고기였다. 나만갑(羅萬甲)은 떡을 대하니 아침부터 눈물이 난다고 적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엇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조정은 비변사(備邊司) 낭청(郎廳) 위산보(魏山寶)를 청군 진영으로 보냈다. 이번에도 술과 고기를 들려 보냈다. 신년 인사를 겸하여 적정을 살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청군 장수들이 조선 사신 일행을 대하는 태도가 영 달랐다. 사신 일행이 도착했을 때, 어떤 자가 위산보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들어가려 했다. 다른 자가 만류하여 겨우 멈췄지만, 태도는 여전히 뻣뻣했다.“황제께서 산성을 순찰 중이시니 우리가 함부로 받을 수 없다.”며 위산보 일행을 퇴짜놓았다. 이제 조선이 사신을 보내는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위산보가 돌아온 직후 인조는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먼저 청군의 군세(軍勢)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김류, 이홍주(李弘胄), 홍서봉(洪瑞鳳) 등 상당수 신료들은 청군이 군세를 과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청군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이 조선을 기만하기 위해 세력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료들은 홍타이지가 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갑갑한 현실 인식이었다.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적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이기도 했다. 최명길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청군이 이전부터 누차 ‘황제가 올 것’이라고 말해 왔던 것에 주목했다. 최명길은 ‘황제가 왔으니 조선 실정을 알리려 한다.’는 명목으로 청군 진영에 사신을 다시 보내 적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헌은 하루에 두 번씩이나 사신을 보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신국은, 근왕병들이 사신이 적진을 왕래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해이해질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역시 반대했다. 하지만 인조는 최명길의 의견에 동조했다. ●‘최악의 상황´ 예상 못한 화친론 김신국(金藎國)과 이경직(李景稷)이 다시 청군 진영에 가서 화친을 청했다. 청장 마부대(馬夫大)는 역시 황제가 순찰 중이라는 핑계로 즉답을 피했다. 이튿날에도 조선 조정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할 지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황제가 진짜 왔는지, 황제가 온 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황제가 왔다는 것을 이유로 인조에게 출성(出城)하라고 강요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논의가 분분했다. 김신국, 이경직, 홍서봉 세 사람이 청군 진영으로 다시 가기로 결정되었다. 인조는 그들에게 실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최명길은 나라가 보전된 뒤에야 와신상담(臥薪嘗膽)도 할 수 있다며 그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라고 주문했다. 김상헌은 적정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레 ‘와신상담’ 운운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다시 반박했다. 하지만 인조 또한 “강국도 약국에 거만하게 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약국이 강국에 뻣뻣하게 굴 수 있냐.”며 최명길을 두둔했다. 논란 끝에 예상되는 청의 요구 가운데 두 가지만은 따를 수 없다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하나는 인조에게 성에서 나오라는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왕세자를 입송(入送)시키라는 요구였다. 이식(李植)은 화친을 추구하되, 그 내용은 철저하게 기존의 형제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제 청과 화친하겠다는 방침은 다시 확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이 과연 조선의 바람대로 따라줄 것인가. 결과적으로 보면, 인조와 왕세자의 출성 거부를 ‘마지노선’으로 삼은 것은 그저 조선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홍타이지가 몸소 탄천까지 내려와 산성에 대한 압박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청이 ‘인조의 출성 불가’를 용인할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당시까지 비변사 신료들은 ‘최악의 상황’이 닥쳐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 신료들은 여전히 근왕병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김신국 등은 청군 진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마부대 등을 만나자 황제에게 전하는 문안 인사를 건넸다.‘황제께서 풍설(風雪)을 무릅쓰고 먼길을 오셨으니 10년 형제의 의리상 염려가 되어 이렇게 찾아왔다.’며 분위기를 살폈다.‘형제관계’를 강조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탐색하려는 의도였다. 잠시 후 용골대가 나와 누런 종이를 내밀며 황제의 조유(詔諭, 황제가 신료들에게 내리는 조서와 유시문)라고 일컬었다. 그러면서 조선 사신들에게 네 번 절한 뒤에 가져가라고 강요했다. 분위기에 압도된 김신국 등은 결국 네 번 절하고 그것을 갖고 돌아왔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형제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조선 지식인들은 마음 속으로는 의연히 그들을 ‘오랑캐’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오랑캐의 칸(汗)’이 황제가 되고, 그가 내민 쪽지가 ‘조유’가 되고 ‘칙서(勅書)’로 변한 기막힌 현실을 직접 목도했다. ●형제→신하관계로 바뀐 현실에 경악 김신국 등은 인조를 알현했을 때, 모두 죽지 못하고 돌아와 송구스럽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가 보낸 편지는 ‘대청관온인성황제(大淸寬溫仁聖皇帝)가 조선 국왕에게 초유(招諭)한다.’는 문구로 시작했다. 내용은 과거의 국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자신들은 조선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조선이 명에 붙어 자신들과 적대했다는 것’ 등을 비롯하여 조선에 대한 섭섭함을 열거했다.‘청은 강하다고 뻐긴 적이 없는데, 약소국인 조선이 왜 대드냐?’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었다. 홍타이지는 특히 자신을 황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러 왔던 몽골 버일러들을 만나주지 않은 것을 질책했다. 과거 고려(高麗) 시절 요·금·원(遼金元) 세 나라에 신하를 칭하고 머리를 숙였던 조선이 지금은 왜 그리 뻣뻣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신을 보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막상 홍타이지의 ‘조유’를 접했을 때 신료들은 경악했다. 답서를 보내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인조가 회의를 소집했을 때, 신료들은 머뭇거렸다. 누구도 섣불리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상헌이 나섰다. 지금 사죄해 봤자 저들의 노여움을 풀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군사들에게 적서(賊書)를 보여주어 적개심을 고취시키자고 촉구했다. 그러자 최명길이 막아섰다. 홍타이지가 온 이상 대적하려 할 경우, 나라가 망할 뿐이라고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홍서봉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답서에서 홍타이지를 부르는 명칭을 ‘제형(帝兄)’이라고 쓰자고 했다. 일각에서는 최명길, 장유(張維), 이식 세 사람에게 답서를 쓰게 하되,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내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엄혹한 현실에 밀려 화친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심했지만, 막상 오랑캐가 ‘황제’와 ‘조유’를 운운하는 또 다른 ‘현실’을 직접 마주했을 때 조선 조정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다시 망설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조선 조정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사토시 대마초 의혹’ 보도한 주간현대는?

    ‘사토시 대마초 의혹’ 보도한 주간현대는?

    28일자 최신호에서 ‘오노 사토시의 대마초 의혹’을 보도한 ‘슈칸겐다이’(週間現代)는 일본의 대표 출판사인 ‘코단샤’(講談社)가 지난 1959년 창간한 주간지다. 주로 연예나 여자 아나운서 등의 기사를 게재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돈과 여자 그리고 출세’라는 샐러리맨의 3대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성장한 슈칸겐다이는 한때 150만부의 발행부수를 기록하며 최절정기를 맞기도 했지만 현재는 발행부수가 계속 감소해 ‘슈칸분슌’(週刊文春)과 ‘슈칸신쵸’(週刊新潮)에 이어 업계 3위에 머물러 있다. 슈칸겐다이는 그동안 수많은 특종기사를 보도해 왔는데 지난 2007년 1월 보도한 ‘요코즈나 아사쇼류의 승부조작의혹’과 같은 해 4월 당시 미성년자였던 모닝구무스메 출신의 ‘카고 아이의 흡연사실 폭로’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폭로성 기사로 명예훼손소송의 단골이 되기도 했다. 한 예로 지난 1999년 9월에는 TV아사히 아나운서 류엔 아이리(龍円愛梨)가 대학시절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가 법원으로부터 770만엔(약 7700만원)의 위자료지불과 사죄광고 게재의 판결을 받기도 했다. 사진=슈칸겐다이 인터넷판(28일 발행된 슈칸겐다이의 광고표지)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고] 마음으로 쌓은 돌담

    [기고] 마음으로 쌓은 돌담

    한반도 남단 끝자락에 자리잡은 우리 마을은 67가구,107명이 오순도순 사는 곳이다.60세 이하가 채 10명도 되지 않는 전형적인 시골이다.<서울신문 2007년 12월3일자 12면 참조> 쇠락해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던 주민들이 마을을 바꿔보자고 뭉쳤다. 회의를 열었다. 어르신 한 분이 술을 한잔 마신 뒤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돌담길을 따라 서있는 앵두나무는 주소득원이었제.3월이면 하얗게 앵두꽃으로 뒤덮였어.5∼6월에는 빨갛게 익은 앵두를 읍내에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앵두를 보려고 관광버스가 마을로 들어왔제.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앵두나무도 베어진 것이여.” 앵두나무, 돌담길, 우물…. 뭔가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앵두나무골의 복원. 주민들끼리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세부계획을 세웠고, 행정기관에 협조를 구하고, 이런 사실을 향우회원들에게도 알렸다. 과거의 모습은 잊혀지고 있지만 복원을 통해 후세들에게 고향을 지키는 어르신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향우들에게서도 동참하겠다는 연락이 쏟아졌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향우들과 주민 모두가 돌담을 정비하고, 앵두나무도 심고, 잔치를 벌였다. 모처럼 골목골목에 활기가 넘쳤다. 지천으로 깔린 게 돌인지라 어르신들의 돌 다루는 솜씨는 감탄할 만했다. 한번은 돌담을 쌓는데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나오셨다. 넘어질까 걱정됐다.“어르신 조심하세요.”했더니,“괜찮네, 고생 많구먼.”하시며 조그마한 돌 하나를 담 위에 올려놓으셨다.“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내가 죽더라도 이곳에 올려놓은 돌덩이 하나는 돌담이 되어 있을 것 아닌가.”라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또 골목길 후미진 곳에 돌무더기가 보였다. 화단을 만들면 좋겠다 싶어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돌을 가져다 화단을 만들었다. 하루가 지나 전화가 왔다. 다른 곳에 쓰기 위해 사다 놓은 돌이란다. 큰일났다 싶어 “죄송합니다. 돌을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사죄했다. 하지만 “마을을 꾸미려고 하는 것인디, 보기 좋네. 그냥 두소.”라고 하셨다. 노령으로 함께 일을 하지 못하는 많은 어르신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빨갛게 익은 홍시를 내놓는 분, 음료수와 과자를 가져다주는 분, 닭을 잡아 죽을 끓여주는 분…. 마을일을 같이 하며 정과 사랑이 골목마다 꽃향기처럼 번졌다. 입술에 물집이 생기고 피곤함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고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담은 힘이 아니라, 지혜와 관심으로 쌓는다는 진리만 깨우쳤다. 김희택 전남 장흥군 안양면 비동마을 주민
  • 日유명배우 “독도는 한국에 줘라” 주장 파문

    日유명배우 “독도는 한국에 줘라” 주장 파문

    일본의 유명 배우가 방송에서 “독도는 한국에 줘라”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일본 네티즌의 공격을 받고 사죄하는 일이 벌어졌다. 영화 ‘GO’(2001), ‘역도산’(2004) 등에 출연했던 일본배우 ‘야마모토 타로’(山本太郎)는 지난 20일 요미우리TV의 버라이어티방송 ‘타카진노 소코마데잇테 위원회’(たかじんのそこまで言って委員会)에 출연해 “독도, 한국에 주면 어때?”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발언 직후 야마모토의 블로그는 분노한 네티즌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네티즌의 공격을 받은 야마모토는 방송에서 한 발언에 대해 사죄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사죄문에서 “한쪽 방향으로 치우친 의견만 말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방송을 할 필요가 없다.”고 전제한 뒤 “독도가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조선합병의 상징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섬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돼 싸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단순히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라고 발언만 하는 일본정부에게서 이 정도의 기개와 정열은 느껴지지 않으며 독도를 되찾아올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일본에 대한 주변국가의 신뢰는 찾아보기 어렵고 선진국이라 불리면서도 리더십 하나 제대로 발휘못하는 불쌍한 이 나라에 소중한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한 명의 납세자로서 분노를 느낀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껏 결말을 짓는 것을 피해왔던 일본이 큰 댓가를 치루고 나면 의식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생각에 이와 같은 발언을 하게 된 것”이라며 “자신의 발언에 기분상한 사람들에게 사과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의 사죄문을 읽은 네티즌들은 “사죄문이 아니라 설교문”이라며 “이 바보가 정말로 일본인인지 의심스럽다.”고 분노했다. 사진=takajintv.blog101.fc2.com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방의회 뇌물파문 與 ‘물붓기’ 野 ‘기름붓기’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의 ‘돈봉투 사건’ 파문에 이어 부산과 경기도 지방의회에서도 사전선거운동과 금품 스캔들 등이 터지면서 한나라당은 곤혹스러워하면서 파문 차단에 주력하는 반면 민주당은 초대형 부정부패 스캔들로 규정, 정치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기소 후 당원권 정지’를 규정하고 있는 당헌·당규에 따라 김 의장에 대한 징계를 미뤄왔지만 당초 방침을 바꿔 21일 서울시당 윤리위원회에서 전격적으로 징계를 결정키로 했다.‘당의 위신을 훼손했을 때 징계할 수 있다.’는 당규의 다른 조항을 적용해 김 의장을 조기 징계키로 한 것이다. 시당 윤리위에서는 김 의장에 대해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 당직자는 20일 “시당 윤리위에서는 최소한 당원권 정지 이상의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박희태 대표는 이와 관련,“범법자를 감쌀 어떤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민주당 서울시의회 뇌물사건 대책위원장인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날 “한나라당은 기소 후 징계 원칙을 내세우다가 점차 정황이 명백해지자 슬그머니 입장을 바꿔 김귀환 서울시의장에 대해 출당이나 제명이 아닌 당원권 정지의 솜방망이 징계를 하려고 한다.”며 “경찰이 김 의장 측근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을 빼고 ‘깃털’만 수사하고 있다.”며 축소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사실상의 공천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에게 전달된 피공천자의 후원금은 형식적으로는 합법적 후원금이라도 대가성 여부가 있는지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강형구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도마뱀 꼬리만 자른다고 썩을 대로 썩은 부패가 숨겨지지는 않는다.”며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백배사죄하고 연루된 시의원과 국회의원은 전원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종락 김지훈기자 jrlee@seoul.co.kr
  • 요미우리 대표 “니오카 불륜, 불쾌하다”

    요미우리 대표 “니오카 불륜, 불쾌하다”

    “개인적으로 화가 치민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내야수 니오카 토모히로(32)가 미모의 아나운서와 불륜소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 지난 9일 키요타케 히데토시(清武 英利)구단대표가 입장을 밝혔다. 구단 대표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니오카는 요미우리의 중심선수”라며 “그런 그가 1군 복귀를 앞둔 시점에 이런 소란을 일으켜 개인적으로 무척 화가 난다.”고 불쾌함을 나타냈다. 또 이번 소동이 오는 11일로 예정된 니오카의 1군 복귀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1군 복귀와 불륜소동은 별개의 문제다. 야구선수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라운드에서 멋진 활약을 보이는 것 밖에 없다.”며 니오카의 복귀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임을 내비쳤다. 니오카 역시 엄중경고를 받은 것에 대해 “경솔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한편 이번에 니오카와 불륜소동을 일으킨 야마모토 모나(32)는 프리 아나운서로 지난 2006년 9월에는 민주당의 호소노 고시(細野豪志)중의원과의 불륜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 블로거에 두손 든 貴州관리

    中 블로거에 두손 든 貴州관리

    중국 블로거들의 적극적인 공세에 정부 당국이 무릎을 꿇었다. 권력의 정보통제도 확산되는 누리꾼들의 활동에 힘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중앙정부가 구이저우(貴州)성 웡안(甕安)현 당서기와 현장을 지난 4일 면직시킨 사건을 블로거들의 승리 사례로 7일 소개했다. 한 여중생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부의 은폐와 대규모 시위, 시위자 검거 등 탄압 과정의 시시비비를 블로거들이 나서 폭로했다. 지난달 28일 시위가 발생하자 웡안현 당국자들은 시위를 벌이던 주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베이징올림픽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 정부는 “폭동은 현지 깡패와 범죄인들이 부채질했다.”며 시위가담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검거하면서 초강경으로 대응했다. 이에 블로거들은 이번 사건의 실체가 정부 관리들의 횡포에 항거한 의거라는 내용의 글과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며 정부에 맞서 과감한 사이버 전쟁을 벌였다. 블로거들의 공세가 확산되자 정부는 결국 시위대의 주장을 받아들여 웡안현 관리들을 면직시키고 백기를 들었다. 스쭝위안(石宗源) 구이저우성 당서기도 “불순한 동기를 지닌 소수 분자들이 부추긴 사건”이라던 지난 2일 발언을 뒤집고 “거만하고 거친 간부들이 시위를 유발했다.”며 사죄했다. 이번 사건이 구시대적인 정보통제 정책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중국 정부에 각인시켜준 상징적인 사례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말 2억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1위인 미국을 500만명 차이로 뒤쫓고 있다. 지난 5월 쓰촨성(四川省) 대지진 때도 맨 처음 강진소식을 전했던 것이나, 학교건물의 부실 건축으로 어린 학생들이 대거 희생된 것도 누리꾼들이 나서서 알리고 고발했었다. 누리꾼들의 점증하는 힘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는 중국 지도부는 지난달 20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과 직접 교류하는 등 네티즌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구이저우 웡안현 사건 주민 3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벌어진 대규모 유혈 시위 사건. 이 지역 여학생 리수펀(李樹芬)양이 익사 사고로 사망했다는 경찰 발표에 분노한 주민들이 정부 청사와 관용 차량에 불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시위대는 리양이 공안국 고위 간부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뒤 피살됐으며, 경찰 간부들이 이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부는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 최소 4명이 사망했다.
  • 축구협 기술위원 돌연 총사퇴

    비난의 소나기를 피하려는 단순 사퇴극인가, 아니면 월드컵을 위한 체계적인 대비책 마련을 위한 것인가. 이영무(55)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비롯해 조영증 기술교육국장 등 7명의 기술위원들이 4일 돌연 총사퇴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허정무 감독을 잘 보좌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깊이 사죄 드린다.”면서 “후임을 잘 선임해 월드컵 최종예선에 잘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05년 12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 취임 직후 기술위원장을 맡아 2년7개월 동안 부임했다. 베이징올림픽과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둔 한국 축구의 또 다른 비상 사태다. 준비에 차질도 우려된다. 사퇴극은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과의 최종예선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허정무호’의 색깔 없는 축구에 대한 일차적 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밋밋한 공격과 헐거운 수비, 느슨한 조직력으로는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5월 말 발생한 ‘음주 파문 이운재 사면’을 둘러싼 이 위원장과 허 감독의 내부 갈등으로 인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물론 ‘무능한 기술위’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달 김호(64) 대전 감독이 “허 감독에게만 책임을 물을 건 아니다.”며 “협회와 기술위원회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질책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기술위의 총사퇴만으로 대표팀 경기력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다. 특히 물러나는 기술위는 허정무 감독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술위원들이 집중적으로 거론한 문제는 공수전환 템포가 느리고 너무 많은 선수들이 시험대에 오르다 보니 경기력에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허정무호의 모든 것을 뜯어고치라고 요구했다. 한편 베이징올림픽 남자축구 와일드카드 후보로 뽑혔던 염기훈(25·울산)이 부상 재발로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24·제니트)로 교체됐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시 여성상’ 대상 길원옥씨

    1998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한 사실을 고백한 이후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온 길원옥(81)할머니가 2일 ‘제5회 서울특별시 여성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길 할머니는 과거의 피해로 인해 육체적인 질병을 얻었지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린 뒤에는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길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각국을 순방하며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네덜란드·벨기에·독일·영국 등 유럽 4개국을 순방하며 네덜란드와 유럽연방 의회가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정세균 ‘대세론’ vs 추미애 ‘바람’

    정세균 ‘대세론’ vs 추미애 ‘바람’

    통합민주당 차기 당권주자들이 주말 ‘수도권 대전’(大戰)을 치르며 막판 세몰이에 나섰다. 후보들은 29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서울시당 정기대의원대회와 전날 인천·경기지역 대의원대회에서 저마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의 선봉장임을 자처했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대회에는 김근태·정동영·신기남 전 당의장을 비롯해 조배숙·박영선·전병헌·우상호 의원 등 전·현직 의원들과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전당대회를 방불케 했다. 후보들은 현안에 민감한 서울지역의 특성을 감안한 듯,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며 다른 때보다 강한 톤으로 ‘대여(對與)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민심의 한복판에선 정세균 후보의 대세론과 추미애 후보의 새 얼굴론이 정점을 이뤘다. 정 후보는 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대의원 과반수 이상이 정세균을 지지하고 있다. 압도적 성원으로 선명하고 강한 야당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며 대세론을 장담했다. 추 후보는 “최근 당원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에서 정세균 후보를 앞섰다. 대세론이 깨지고 있다.”면서 “국민과 야당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을 상대하려면 국민이 원하는 당 대표를 뽑아야 한다.”며 대역전을 자신했다. 정대철 후보는 “이명박 정부는 국민자존심 손상죄를 저지른 데 대해 사죄해야 한다.”면서 “맏이가 나서서 정책정당·민생정당 만드는 데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의 대국민담화문에 대해 민주당 유은혜 부대변인은 “마치 군사독재정권의 말기를 보는 것 같다.”면서 “국민의 불신임을 받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현실에 분노한다.”며 내각 총사퇴를 촉구했다. 한편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에선 접전 끝에 최규식 의원이 설훈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폭력 촛불엔 최루 물대포”

    “폭력 촛불엔 최루 물대포”

    정부의 장관 고시 강행 이후 촛불이 과격해지고 있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밤마다 촛불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며 시위대의 폭력행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은 촛불집회의 과격화·폭력화 양상이 심각하다고 보고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 사용을 검토하는 등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주말인 28·29일 열릴 1박2일 동안의 촛불집회에서 충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위가 더 격렬해지면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를 살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면서 “(그 전 단계로) 물대포에 형광색소를 넣어 살포한 뒤 집에까지 찾아가 전부 연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대가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부수는가 하면 경찰·전경을 폭행하는 등 시위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과 ‘2MB탄핵투쟁연대’ 백은종 공동대표 등 8명에 대해 불법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검찰은 이날 ‘사이버폭력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광고중단운동을 단속하기로 했다. 오는 30일에는 전국 40개 검찰청 공안부장과 형사1부장 등이 참석하는 ‘법질서 확립 전국 부장검사회의’를 이례적으로 갖고 대책을 논의한다. 또 촛불집회 이후 처음으로 주최측 간부인 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 등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서울광장에 불법 설치한 천막과 텐트를 강제로 철거했다. 당국의 강경진압 방침에 대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비민주적 행태로 최악의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불법을 저지른 어청수 경찰청장을 즉각 파면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그러나 “왜곡보도를 하는 조·중·동에 대한 시위라도 평화적으로 하자.”고 호소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촛불이 시민들의 공감을 얻은 건 비폭력 기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고 비폭력이 정부에 더 부담을 주는 방법이니 시민들은 폭력시위를 자제해야 한다.”면서 “다만 정부가 1주일 만에 강경 드라이브로 선회하며 소통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지민 이재훈 김정은기자 nomad@seoul.co.kr
  • 조선일보-네티즌간 ‘말바꾸기’ 논란 2라운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과정에서 네티즌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온 조선일보가 네티즌들을 향해 “각종 루머와 음해·비방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반박기사를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조선일보가 궁지에 몰리자 상황을 모면하려는 변명만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7일 오후 ‘네티즌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가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 말을 바꿨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광고주 탄압 사태로 말미암아 본사가 일부 네티즌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최근 본사를 향한 질타와 비난이 적지 않게 쏟아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이는 조선일보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 또는 악의적 왜곡에서 비롯된 부분이 대부분”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정권에 따라 조선일보의 논조가 180도 바뀌었다.’는 네티즌들의 지적에 대해 조선일보는 참여정부 시절의 광우병 관련 기사를 소개하며 ▲광우병 위험에 대해 감정적 대응보다는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미국 쇠고기=광우병 쇠고기’라는 일부 세력의 반(反)FTA 선동을 경계해야 하며 ▲세계에서 쇠고기 가격이 가장 비싼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장점이 있다는 논조를 일관되게 취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주장이든,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언론의 기본 신조를 지키려 했다.”고 밝힌 조선일보는 “각각의 논지가 논리적·과학적으로 잘못됐음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정권에 따라 논조를 바꾸었다는 비난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한편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언론들을 빗대어 “조선일보가 ‘국민의 건강을 무시하는 신문’이라는 낙인이 찍혀 무차별적인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면,이는 미국의 주저앉는 소(downer)는 거의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보도한 어느 방송사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인가.아니면 ‘오뎅국물이나 라면스프만 먹어도,감기약만 먹어도,수돗물만 마셔도,숨만 쉬어도 광우병에 걸려 다 죽는다.’는 루머가 횡행할 때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고지식하게 고집을 피운 죄인가.”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참여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가)99.99% 안전해도 정부는 나머지 0.01%의 위험관리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믿음을 못주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부 네티즌들은 조선일보가 말을 바꾼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 듯 자랑하지만 그날은 미국에서 광우병 쇠고기가 발견된 날이다.그때의 불안감과 지금의 불안감이 같은 종류인가.”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가 정권교체 후 극단적인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포털의 댓글에 충격을 받아 과거 조선일보의 사설을 찾아봤더니,이들의 주장과 달리 조선일보의 논지에 변함이 없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조선일보 독자의 칼럼을 소개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조선일보의 해명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다음 등 포털사이트 해당기사에서 “대국민 사죄하고 반성해도 부족한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벤더),“또 짜집기를 시작했다.”(yoho86),“도저히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KDS07) 등의 댓글을 달며 조선일보의 해명 기사가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기사쓴 사람과 조선일보 관계자는 부끄럽지도 않나.”(밤사냥꾼),“볼 것도 없다.무조건 폐간”(후손을 생각하며),“쓰레기 신문은 쓰레기일 뿐”(해산)이라는 등 여전히 격앙된 반응을 드러내 보였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시론] 우려되는 북·일 민족주의/신정화 동서대 국제학부 교수

    [시론] 우려되는 북·일 민족주의/신정화 동서대 국제학부 교수

    북한 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중심축인 북·미 관계의 진전속에서 북한과 일본의 관계정상화 협상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주 열린 실무회담에서 북·일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재조사를 재개하고, 대신 일본은 2006년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이후 실시해 온 대북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종전의 강경대치 기류에서 벗어나 두 나라가 관계개선을 위한 공동 노력이라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냉전 붕괴를 배경으로 1990년대 초 북·일은 국교정상화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의 주요의제는 과거사 청산문제와 북한의 핵개발문제였다. 결국 핵의혹 규명을 북한이 거부함으로써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그 뒤 핵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일본인 납치문제가 북·일간의 주요현안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납치문제와 과거사청산문제를 둘러싸고 자국 입장만이 우선시되는 가운데,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은 재개와 결렬을 거듭했다. 결국,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사실을 인정하고, 사죄 및 재발 방지 약속을 통해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국교 정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의 반응은 북한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납치문제에 ‘분노’를 표출하면서, 한반도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가해자로서의 처지를 피해자로서 전환시켰다. 한편, 일본정부는 북한을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했다. 또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 납치피해자와 가족 전원의 안전확보와 조기 귀국, 진상규명, 납치실행범 인도 등을 그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납치문제는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종군위안부로 상징되는 과거사문제를 먼저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북·일간 대립은 6자회담에서도 반복돼 왔다. 주목할 점은 납치문제가 북·일간의 주요현안으로 확대되어 온 과정이 냉전 종료 후의 국제사회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주의의 강화와 맞물려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즉 납치문제를 둘러싼 공방을 통해 북한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강화된 민족주의가 양국간 대립을 더 고착화시키는 확대 재생산의 악순환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국가 존립에 민족주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이와 같은 ‘민족주의의 악순환’은 끊어야만 한다. 우선 일본은 납치문제가 ‘현재의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이 주장하는 종군위안부 등 ‘과거의 인권문제’보다 중요하며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자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보편적 인권 차원의 관점에서 과거사 청산문제를 대해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과 일본은 국교정상화를 양국간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구축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럴 때 각각의 현안을 자국의 입장에서만 접근하는 기존의 태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6자회담의 주요 참여국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북한과 일본의 관계정상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신정화 동서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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