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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이니 매니저, 팬 폭행 동영상 퍼져

    샤이니 매니저, 팬 폭행 동영상 퍼져

    가수 매니저가 팬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연이어 공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매니저가 사건의 장본인이다. ’매니저, 팬 폭행’ 동영상이 먼저 퍼진 것은 씨엔블루였다. 지난 14일 온라인에는 씨엔블루의 매니저가 팬을 폭행하는 장면이 찍힌 영상이 나돌기 시작했다. 매니저는 달려드는 팬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손바닥으로 팬의 머리를 쳤다. 이후 소속사는 공식 홈페이지에 ‘CNBLUE 매니저 사건 관련 사과문’이라는 글을 올리고 공개사과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원성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이 사건의 파장이 채 가시지 않은 17일 이번에는 샤이니 매니저가 팬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동영상이 퍼지며 또 한번 물의를 빚고 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팬이 아니라 안티팬이 와도 폭력은 안 된다.”며 개인블로그 등으로 동영상을 퍼나르고 있다.  이에 대해 샤이니 소속사는 같은날 언론을 통해 “지난해 8월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일인 것 같다.”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팬 여러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니저들은 물론 회사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원주 지역 시민단체들 비리 市의원 사퇴 촉구

    최근 강원 원주시의회 의원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에서 해당 의원의 사퇴와 대시민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참여와 평화로 가는 원주시민연대’와 원주여성민우회, 원주녹색연합 등은 11일 오후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종 뇌물수수와 사기범죄에 시의원들이 연루된 원주시의회를 규탄한다.”며 “비리로 구속된 A의원과 B의원은 시민에게 사죄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원주시의회는 A의원이 사회단체장으로 재직하면서 보조금 등 8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데 이어 B의원이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월급 명목으로 매월 160여만원씩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는 등 의원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日외상 “한일병탄 한국인 자긍심에 상처”

    日외상 “한일병탄 한국인 자긍심에 상처”

    방한 중인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이 11일 연세대 한국어학당을 방문했다. 일본 정부 고위관리가 한국어 관련 기관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과거 일제가 우리말 말살정책을 펴던 역사와 대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지난해 출범한 일본 민주당 정권의 대한(對韓) 화해 제스처로 해석된다. 주한 일본 대사관 관계자는 “한·일 친선을 위해서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본인들 사이에 최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 1357명 가운데 260명이 일본인 및 재일교포다. 오카다 외상은 이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해 100년을 맞는 한·일 병탄과 관련, “한국인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이 깊이 상처받은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합병당한 측의 아픔을 기억하고 피해자의 기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하토야마 내각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에 당시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태평양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한 것으로, 그 후 역대 일본 정부가 줄곧 표명해온 입장이다. 오카다 외상은 일왕 방한과 관련, “여러 사정을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오늘 양국이 설치하기로 합의한 한·일 문화교류회의를 통해 양국 국민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싶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도요타 “프리우스 27만대 리콜 검토”

    도요타 “프리우스 27만대 리콜 검토”

    │도쿄 박홍기·워싱턴 김균미특파원│대량 리콜로 궁지에 몰린 도요타자동차는 5일 하이브리드카의 신형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결함에 대응, 미국과 일본에서 판매한 27만대에 대한 리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도요타 측은 조만간 방침을 확정, 일본 국토교통성과 미국 교통부에 리콜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다만 리콜이 아닌 자율수리도 검토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이날 밤 9시 나고야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많은 고객들에게 폐를 끼친 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최고 책임자가 지난해 11월 이후 계속된 자율수리와 대량 리콜에 대해 직접 사과와 해명을 하기는 처음이다. 도요타 사장은 구체적인 대응책과 관련, “가능한 한 빨리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지시했다.”면서 “결정되는 대로 보고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요타 측은 이날 국토교통성과 리콜과 자율수리를 놓고 논의했다. 도요타 측은 프리우스가 특정 조건에서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접수된 만큼 원인으로 추정되는 미끄럼방지 자동제어장치(ABS) 소프트웨어를 개선할 계획이다. 도요타 측은 프리우스의 브레이크가 구조상의 결함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매출 및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리콜이든 자율수리든 대상차량은 지난해 5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판매된 신형 프리우스 27만대다. 일본에서 17만대, 미국에서 10만대가량이다. 그러나 신형 프리우스는 미·일을 포함, 세계 60개국에서 30만대 정도 팔렸기 때문에 대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프리우스와 같은 브레이크 시스템을 사용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인 ‘사이’와 렉서스 HS250h’도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도요타의 소형트럭 ‘타코마’도 급가속에 따른 미국 소비자의 민원이 2007년 이후 100건 정도 들어왔다. 타코마는 지난해 11월 가속페달이 운전석 매트에 걸리는 문제로 리콜 대상이 됐지만 매트를 깔지 않은 소비자의 급가속 진정도 접수된 상태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전날 저녁 “도요타가 신속하게 대응해 조기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도요타 사태에 대해 언급했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외교적으로도 일개 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미·일 경제관계를 우려했다. 한편 미국 포드자동차도 2010년 모델 ‘포드 퓨전 하이브리드’와 ‘머큐리 밀란 하이브리드’ 1만 7600대를 대상으로 제동에 문제가 발생한 재생브레이크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기로 했다. 재생브레이크는 브레이크를 밟거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동차의 운동에너지가 배터리로 전달돼 감속과 동시에 충전도 되는 장치다. hkpark@seoul.co.kr
  • 한의원 물리치료사 위법성 논란

    한의사가 물리치료사를 고용해 한방물리치료를 시켰다면 의료법위반 교사죄가 성립된다는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청주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석동규 부장판사)는 물리치료사 4명을 고용해 통경락요법과 부항술 등의 의료행위를 시킨 혐의(의료법위반 교사)로 기소된 한의사 노모(52)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의사가 아닌 한의사 지시를 받은 물리치료사의 치료행위는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피고인은 물리치료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며 “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는 점 등을 감안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관련 법률이 물리치료사 등 의료기사에 대한 지도권을 의사 또는 치과의사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1심에서 노씨는 의료법위반 교사가 아닌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물리치료사에게 한방물리치료 행위를 시킨 것이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한의사 지시를 받은 물리치료사의 행위가 불법인 점에 주목해 죄명을 의료법위반 교사로 변경하고 항소하면서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한의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양·한방 협진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아직 우리나라에 ‘한방물리치료사’라는 의료기사 자격증이 없는데 한방물리치료는 누가 하라는 소리냐.”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열린세상]탈아입구에서 유교모델로/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열린세상]탈아입구에서 유교모델로/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지난해 10월 말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일 역사가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나는 한 일본 학자로부터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그동안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근대화에는 성공했으나, 앞으로는 동아시아 시대에 맞추어 ‘유교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다른 일본 학자들은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투였다. 메이지(明治)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는 일본이 사는 길은 ‘탈아입구’라고 선언한 바 있다. 즉, 아시아를 버리고 서구 열강에 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역사가들은 일본이 왜 아시아와 다른지, 또 서구와는 어떻게 같은지를 ‘증명’하기에 분주했다. 대표적인 주장이 일본은 한국·중국과 같은 신분제도도 없었고, 과거제도도 없었다는 것이다. 대륙적인 농본주의 일변도보다는 해양적인 상업주의가 병존해 있었다고도 했다. 반면에 일본의 봉건제와 무사제도는 서구의 장원제·기사제도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은 서구사람들이 폄하하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근대화 패러다임에 근거한 이런 일본사 인식은 러·일 전쟁 때부터 전후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이시모다 다다시(石母田正)의 중세사 연구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사상사 연구 등에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에 있으면서 아시아가 아니라는 억지를 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동서냉전에서 소련과 동구가 먼저 무너지더니, 이제는 서구마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신용이 구멍이 났다. 반면에 중국은 두 자리 숫자의 경제성장을 보이면서 장차 위안화를 국제 기본통화로 삼을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 한국도 경제성장률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IT, 자동차, 조선, 원전에서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있다. 한·중·일이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러한 추세에서 일본은 정체되고 있다. 경제도 장기침체를 경험했고, 천황제가 온존하며, 호적법도 그대로이다. 서구화를 지상과제로 하다가 서구체제에 문제가 생기자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일본 자체 내에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탈아입구’ 정책이 잘못되었으니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시아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이 동아시아의 ‘유교모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이 한국이나 중국이 아닌 일본 자체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전후 역사학의 재건을 위해 자구책을 강구한 것이다. 그러면 왜 ‘유교문화’라고 하지 않고 ‘유교모델’이라고 했나? 유교가 단순히 사상과 학술,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체제와 사회제도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대의 주자학과 과거제도가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치면서 체제이념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유교문화’라고만 하면 불충분하고 ‘유교모델’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유교모델’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과거 ‘탈아입구’ 를 내세우며 늘어놓았던 동아시아 역사 해석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동아시아와는 다르고, 서구와 같다고 하는 주장 말이다. 해양문화를 채택하면서 헌신짝처럼 버린 대륙문화를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할 일이 있다. ‘탈아입구’를 내걸면서 제국주의로 돌입해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짓밟은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유리하면 가고 불리하면 돌아온다는 것은 군자의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사는 진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가해자는 무감각할지 모르지만 피해자는 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의 민주당 정부가 그런 뜻이 있는 것 같지만 진심이 담긴 사죄를 할지 알 수 없다. 갈 때는 마음대로 갔지만 올 때는 예를 갖추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 7일만에… 도요타 시총 2조엔 증발

    │도쿄 박홍기특파원│‘품질 신화’에 큰 타격을 입은 도요타자동차가 주가의 하락으로 시가총액 2조엔(약 25조 5000억원)가량을 날렸다. 또 1000만대가량의 자율 수리 및 리콜에 따른 비용도 1000억엔 이상으로 추산됨에 따라 신용 및 이미지 실추와 함께 자산 손실도 엄청난 실정이다. 도요타 주가는 1일까지 7일 연속 떨어져 시가총액 2조엔이 증발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일 보도했다. 도요타 주가는 지난달 21일 4190엔에서 1일 3450엔으로 17.6% 하락했다. 2일 주가는 리콜 대책에 힘입어 모처럼 155엔 상승, 3605엔을 기록했다. 그러나 리콜 대상 230만대에 대한 가속페달의 교체 및 수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도요타의 올해 판매 실적의 수정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도요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은 올 1월 도요타의 미국 신차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같은 달 17.9%에 비해 3.2%포인트 낮은 14.7%로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요타 측은 리콜 사태와 관련, 연일 사과하면서 신뢰회복에 나섰다. 사사키 신이치 도요타 부사장은 도요타 본사 차원에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도요타의 고객에게 걱정을 끼쳐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리콜을 결정했다.”며 신뢰를 되찾는 게 무엇보다 우선임을 강조했다. 사사키 부사장은 또 판매 영향에 대해 “(지난달 21일) 리콜 발표 후 도요타 차량 주문이 줄고 있다.”면서 “조금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툰드라 차량에서 처음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리콜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 “툰드라 가속페달의 경우, 습기를 흡수하는 소재였기 때문에 소재를 바꿈으로써 문제가 사라졌다고 안심했다.”면서 “고객의 시선에서 대응했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짐 렌츠 도요타 미국법인 사장은 N BC방송에 출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신뢰회복을 위한 기회를 한번 더 달라.”고 호소했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도 간부사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고객의 신뢰를 되돌리기 위해 모두 노력하자.”면서 “미국 등에서의 리콜은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北 “모든 대화서 南 배제·보복성전 개시”

    北 “모든 대화서 南 배제·보복성전 개시”

    북한이 15일 남북 관계에서 강온양면 작전을 구사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북한은 오후 4시쯤 적십자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대한적십자사에 보내 지난해 우리 정부가 제안한 ‘옥수수 1만t 대북 지원’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옥수수 지원 의사를 북측에 밝힌 지 81일 만이다.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통일부에 통지문을 보내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접촉을 제안한 지 하루 만에 옥수수 수용 의사를 알려와 한때 남북관계에 긍정적 기류가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2시간 만에 급변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최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행동 계획을 재정비했다는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았다. 북한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자 국방관리기관인 국방위원회는 오후 6시쯤 대변인 성명을 내고 “보도에 의하면 남조선 당국자들이 우리 공화국에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통치계획-부흥’이라는 것을 완성해 놓았다고 한다.”면서 “이는 우리의 사회주의제도 전복을 기도한 남조선 당국의 단독 반공화국 체제 전복계획”이라고 비난했다. 국방위원회가 대변인 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국방위원회는 “청와대를 포함해 이 계획 작성을 주도하고 뒷받침한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날려보내기 위한 거족적 보복 성전이 개시될 것”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반공화국 죄행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한 앞으로의 모든 대화와 협상에서 철저히 제외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논평에서 “확인되지 않은 일부 언론 보도를 근거로 위협적 언동을 하는 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자신의 관계개선 행보에 남측이 호응할 것을 압박하는 차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오는 19일 남북 해외공단 합동시찰과 관련한 남북 당국자 간 평가회의가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다음주 중 옥수수 지원에 필요한 비용 40억원을 집행하기 위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의결 절차를 마무리한 뒤 북측과 전달 방식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4월 북한의 개정된 헌법에 국방위원회가 정치·경제·사회 등 국가 전반의 사업에 대한 지도 권한을 갖는다고 명시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개정헌법에 따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 내용이 현재까지 진행된 모든 사안을 종속할 것”이라면서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 19일로 예정된 남북 공동해외시찰 평가회의, 옥수수 대북 지원 재개와 같은 일은 무효화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슈주’ 강인, 음주뺑소니 벌금 800만원

    ‘슈주’ 강인, 음주뺑소니 벌금 800만원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강인(25)이 지난해 저지른 음주뺑소니 사고로 벌금 80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이옥)는 강인을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뒤 달아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로 지난해 12월 말 벌금 8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강인은 지난해 10월 15일 오전 3시 경 서울 강남구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중 정차해 있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당시 사고를 당한 택시 안에는 운전자 남모(54)씨와 승객 2명이 타고 있었으나 모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강인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달아났으나 같은 날 오전 8시50분께 강남경찰서를 찾아 사고를 냈다고 시인했다. 경찰은 사고 발생 후 약 6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강인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측정한 결과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0.082%의 수치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또 강인은 지난해 9월 16일에도 서울 강남구의 한 주점에서 지인과 술을 마시던 중 자리를 잘못 찾아온 손님 2명과 시비가 붙어 주먹을 휘두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폭행 혐의에 이어 이번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연달아 도마 위에 오른 강인은 슈퍼주니어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려 사죄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일 100년 대기획] 무라야마 “日, 담화 철저히 지키진 않아”

    [한·일 100년 대기획] 무라야마 “日, 담화 철저히 지키진 않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했던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담화’의 주역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담화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고 아쉬워 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지난 연말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렇지만 (담화의) 기본적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식민 36년을 포함, 깊은 반성을 전제로 지금부터 긴밀히 협력하고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며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과거 사죄와 반성 위에 새로운 한일 관계를 구축해나갈 것을 주문했다. 또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면서 담화 이후 일본 측에서 보여준 망발이나 망언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특히 “한일병탄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담화와 관련, “더 이상 절대로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관을 확실히 세우자는 의미”라고 설명한 뒤 최근 제기되는 ‘하토야마 담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좋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일왕의 방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실현되면 관계전환에 큰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교류하고 공유하라.”고 밝힌 뒤 “이웃나라, 형제와 같은 나라인 만큼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해해 나가길 희망한다.”면서 “미래지향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역사 인식의 준거는 1995년 8월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한·일 관계를 가장 험악하게 만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연말 의사당 부근인 도쿄 지요다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담화의 주역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로부터 1시간40분 동안 한일병탄 100년의 의미 및 평가, 양국 관계의 미래, 담화의 의의, 남북한 문제 등을 들었다. →한일병탄 100년의 해를 맞았다. 지난 100년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지금보다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1945년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한국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전후(戰後)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 형식적으로는 식민지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적 전환의 의미가 크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바람직한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또한 이웃 나라로서 식민 36년을 포함해 깊은 반성을 전제로 지금부터 긴밀히 협력하고 신뢰관계를 쌓아 나가야만 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공동체를 확립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당시 문화개방이 있었던 덕분에 서로 문화적인 체험이 가능하게 됐다. 친근감이나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깊이있게 협조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 100년을 위해서는. -미래는 열려 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반복됐지만 그런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에 유럽연합(EU), 미국이 각각 나름의 공동체를 구성했듯 아시아도 대응 차원에서 아시아대로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총리시절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더 이상 자기 나라만 잘 살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웃나라 없이는 자기 나라도 없다. 한국이 좋아지면 일본이 좋아지고, 일본이 좋아지면 한국이 좋아진다는 관계를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물론 역사, 독도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도 많지만 완전한 인식의 일치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한 획을 그은 무라야마 담화의 메시지는.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자 사죄의 표명이다. 이 바탕 위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서로 공생해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더 이상 절대로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관을 확실히 세우자는 의미에서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담화의 준수에 대한 평가는. -현 하토야마 총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도중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든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의 사건도 일어났지만 기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담화를 둘러싼 일본 내의 비판적인 언동도 적지 않다. 지금도 무라야마 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언론, 출판자유의 나라인 만큼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부정적인 의견은 일본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8·30중의원) 선거를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라야마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총리의 새로운 담화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 교수는 한일병합(무라야마 전 총리 표현) 100년을 맞아 이미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가 많이 바뀐 상태이므로 무라야마 담화에 새로운 비전을 더한 새 담화를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의견이라고 본다. 하토야마 정권이 수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뭐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토야마 총리를 취임 이후 만난 적도 없어서다. 덧붙인다면 한일병합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다.’라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일병탄 100년을 짚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일본의 이웃나라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북 간의 국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어떤 형태로든 국교는 정상화돼야 한다. 납치문제나 핵문제 등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들도 남아 있기는 하다. 다행히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회담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체결되면 한반도의 통일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성의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병합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북한 간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병합100주년을 맞아 관계전환에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간의 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 모두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대중 대통령 재임당시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한국인을 조그만 상자 안에 꿇어 앉히고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의 밀랍인형들을 봤다. 일본군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역사적 사실이므로 추호도 부정할 수가 없다. 또 보여줘야만 한다. 과거의 반성과 사죄가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서로 문화를 공유했으면 한다. 이웃나라, 형제와 같은 나라인 만큼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해해 나가길 희망한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 미래를 위해서다. 친구로서 만나고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꼭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이와 함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글 사진 hkpark@seoul.co.kr ■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15일) 요약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나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 ■ 근황은 근황은 아침 6시 일어나 체조·걷기 가끔 한국 역사드라마 즐겨 두툼한 외투 차림에 중절모를 쓴 무라야마 전 총리는 평범한 노신사였다. 중절모를 벗고 앉았을 때에야 호텔 직원도 알아본 듯했다. 8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눈을 덮을 정도의 짙은 눈썹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말투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건강의 비결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하면 머리를 써야 하고, 손발을 써야 한다. 호사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지만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는다.”고 덧붙였다. 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걷고, 체조를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차는 자전거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웃었다. 가끔씩 한국의 역사드라마를 보고 있다. “때때로 강연을 다니지만 시민으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면서 “그러나 평화헌법 제9조(전쟁 포기·군사력 보유금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고향인 규슈현 오이타에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 도쿄 요치야에 위치한 ‘일본·조선(북한) 국교촉진국민협회’에 들러 협회 사무국장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만나고 있다. ●약력 ▲86세, 규슈 오이타 출생 ▲1946년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1972년 중의원 첫 당선(사회당)~이후 8선 ▲1993년 사회당 위원장 ▲1994년 6월~1996년 1월 제81대 총리 ▲1996년 사민당 당수 ▲2000년 정계 은퇴 ▲현 사민당 명예당수
  • [호랑이 마니아 2인] 돌멩이에 호랑이 그리는 김대성씨

    [호랑이 마니아 2인] 돌멩이에 호랑이 그리는 김대성씨

    “호랑이를 그리기 시작한 뒤부터는 좋은 일만 생겨요.” 김대성(40)씨는 호랑이가 자신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믿는다. 김씨가 호랑이를 그리게 된 계기는 ‘꿈’이었다. “6년 전에 호랑이 꿈을 꿨는데, 콧김과 털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호랑이를 죽였어요.” 그 이후 김씨는 하는 일마다 꼬였다. 시각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에 어려움이 생겨 그만뒀고, 이후로도 회사를 4번이나 옮겨야 했다. 그러다가 주위의 권유로 호랑이 그림을 그리게 됐고, 미술학원을 여는 등 일이 술술 잘 풀렸다. 김씨가 호랑이 그림을 그리는 건, 꿈에서 죽인 호랑이에 대한 사죄인 셈이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만큼 그림 실력도 남다르다. 김씨는 산과 들에서 주워온 울퉁불퉁한 돌멩이에 그림을 그린다. 김씨는 “깨지고 갈라져 볼품없는 돌에서 다양한 호랑이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면서 “웅크린 호랑이, 뛰어다니는 호랑이 등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랑이 그림의 ‘영험’을 느껴서 일까. 주변에서 팔라는 권유도 많았다. 그러나 김씨는 선물을 할지언정 결코 파는 법이 없다. 함부로 팔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이곳저곳에 주다 보니 남은 작품은 50여점 정도다. 김씨의 새해 소망은 호랑이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것. 호랑이 작품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한·일 100년 대기획] (1) 양국 석학에 듣는다

    [한·일 100년 대기획] (1) 양국 석학에 듣는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기자│2010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광주민주운동 30주년,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다. 특히 경인년은 한일병탄 100년의 해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엇갈려 한 세기를 보낸 두 나라가 과거의 상흔을 씻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는 길을 닦는 연중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회로 두 나라의 원로인 한완상(왼쪽)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상 대담 형식으로 양국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점검한다.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경인년은 두 나라가 100년 전을 되돌아보고,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해로 역사를 묻어두고서 바람직한 미래를 열기란 쉽지 않다.”면서 “올바른 역사적 성찰을 통한 한·일 간 성숙한 미래를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 부총리는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인 만큼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이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변화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전향적인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됐는가 등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왕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한 전 부총리는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며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한다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아키히토 천황(와다 교수의 표현)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로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hkpark@seoul.co.kr
  • [용산참사 타결] 정초에 터진 대참사… 세밑에 봉합

    [용산참사 타결] 정초에 터진 대참사… 세밑에 봉합

    정부와 재개발조합, 유족 간 극심한 마찰을 빚었던 ‘용산참사’ 협상이 345일 만인 30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정초를 막 지난 1월20일 오전 서울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용산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의 점거농성장인 이 건물에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면서 건물 옥상 망루에 불이 붙었다. 이로 인해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다. 검찰은 경찰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했는지 여부를 수사하는 한편 사건의 핵심인물로 거론된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긴급체포해 구속했다. 검찰은 2월9일 “화재원인은 시너에 떨어진 화염병”이라는 내용의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사태의 책임은 ‘철거민의 과실’에 있다는 결론이었다. 다음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태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유족과 용산참사범대위 측은 4월부터 화재현장에 분향소를 차리고 시민단체와 연계해 농성에 들어갔다. 5월에는 법원이 용산참사 당시 건물 내에서 불을 피운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6월 말에는 재개발조합 측이 유족과 철거민 측에 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철거민들은 7월부터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10월 들어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운찬 총리가 유족들을 전격 방문한 것이다. 정 총리는 추석을 앞둔 10월3일 용산참사 분향소를 방문해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은 이충연 위원장 등 농성자 9명에 대해 경찰관 사망 원인을 제공했다며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 혐의를 적용, 징역 5~8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화재 발생 이후에도 끝까지 망루에 남아 있다 검거된 7명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등으로 징역 5~6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2명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기소된 농성자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1월부터 서울시와 유족 측 실무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형사책임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유가족 생계대책과 보상금 지급에 대한 접점이 찾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양측은 지금까지 미뤄졌던 사망자의 장례식을 내년 1월9일 치르기로 합의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성폭행범 추적보고서(상)] 성폭행범 3명중 2명 ‘재범’

    [성폭행범 추적보고서(상)] 성폭행범 3명중 2명 ‘재범’

    이모(51)씨는 2000년 3월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범행 당시 41세였던 이씨는 16세 때 처음 경찰에 입건된 전과 12범이었다. 1987년 4월 강도치사죄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1996년 9월 풀려났지만, 다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2006년 9월 석방된 이씨는 이듬해 1월부터 주택가에서 강도질을 일삼았고 2008년 1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범죄자 3명 가운데 2명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법원 연구용역을 의뢰받은 조은경 한림대 교수가 1999~2000년 성폭행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341명을 최대 8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64.2%(219명)가 이씨처럼 범죄를 반복하는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조 교수는 판결문, 수사 및 과거 범죄 경력 조회서, 판결 전 보고서 등 기록을 수집·분석해 ‘강간범죄와 강도범죄에 대한 재범 위험성 양형 인자 추출 연구 보고서’를 냈다. 국내에서 성폭행범의 재범을 추적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범자는 추적 기간(8년) 동안 평균 2.35회 범죄를 더 저질렀다. 재범까지는 평균 41.14개월 걸렸다. 성폭력 재범자는 38명(11.1%)이고 나머지 53.1%는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 이 때문에 이들은 평균 1년을 12.88개월 교도소에서 더 보내야 했다. 특히 범행 당시 성범죄 전과가 있던 66명 가운데 72.7%(48명)는 상습 범죄자가 됐다. 28.8%(19명)가 성범죄, 43.9%(29명)가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 재범자의 특성도 분석됐다. 범행 당시 나이가 어리고 20세 이전부터 경찰에 입건돼 교정시설에 수용된 횟수가 많을수록 ‘범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범행 전에 술을 마셨고, 범행 후에 도주하거나 책임을 회피한 강간범의 재범률이 높았다. 형량이 낮은 범죄자일수록 재범이 더 많았다. 집행유예를 받은 범죄자가 재범을 저지를 때까지 걸린 기간도 26.75개월로 평균(41.14개월)보다 훨씬 짧았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특파원 칼럼] 한일 병탄 100년과 ‘하토야마 담화’/박홍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한일 병탄 100년과 ‘하토야마 담화’/박홍기 도쿄 특파원

    곧 2009년도 역사 속에 묻힌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는 90년대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는 뭐라 부를까. 전반적으로 삶이 녹록지 않았던 탓에 ‘제로 연대(00년대)’쯤은 어떨까 싶다. 새해는 2010년, 100년 전의 10년대가 다시 돌아온다. 1910년, 한국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아픔의 역사, 일제에 강점을 당한 해다. 때문에 새해는 여느 해와 다르다. 한·일 간의 새로운 100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되짚고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는 원년이다. 일본은 조용하다. 가끔씩 정치인들에게서 ‘한일병합(倂合) 100년’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100년 전의 역사는 강제가 아닌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억지 논리 아래 강점, 병탄(倂呑)이 아닌 병합이라고 버티는 게 일본이다. 한·일 간의 극명한 시각차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에 신경을 곧추세울 건 뻔하다. 한국이 되새기는 일제강점 100년의 추이와 강도에 따른 대응책을 찾지 않을 수 없어서다. 일본이 먼저 답을 내놓아야 한다. ‘과민한 한국’으로 치부하면서 지금처럼 ‘무신경한 일본’의 태도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새해는 상징성이 큰 해인 까닭이다.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이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입에 발린 외교적 수사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폄훼하는 것만은 아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15년간 너무 진정성이 훼손됐다. 1995년 8월15일 담화가 발표되던 당일 각료 8명이 보란 듯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는가. 자민당 정권 땐 공공연히 국회 안에서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망발도 일삼지 않았던가. 연립정권에서 소수로써 한 축을 맡았던 사민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가 지닌 태생적 한계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최근 “기본적인 노선은 지켜졌다고 본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를 꺼내고 있다. 지난 10월9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땐 “역사를 직시하고 해결해 갈 용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11월15일 싱가포르의 강연에선 “여러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준 지 6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화해가 달성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과거사의 청산이 불충분하다는 인식의 표명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패전 50년을 정리한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미래의 한·일 100년을 향한 ‘하토야마 담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말이 아닌 실천의 담화다. 100년 전 강점의 비윤리, 비합법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병탄의 폐해를 청산하는 길을 닦아야 한다. 위안부, 징병, 강제 노역 등 수많은 강점의 상처를 가진 개개인들에게 ‘납득할 만한’ 사죄와 보상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1965년 한·일협정 때 “끝난 일”이라고만 강변할 일이 아니다. 국가가 아닌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 단적인 예로 10대 소녀들을 일본에 강제로 끌고가 공장에서 일을 시킨 뒤 65년이 지난 최근에야 조롱하듯 달랑 연금 99엔을 던진 짓은 ‘끝난 일’이 아님을 자인한 것이다. ‘하토야마 담화’는 새해 벽두가 아니라도 좋다. 8월15일 광복절도, 8월29일 병탄일도 있다. 다만 새해가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 스스로의 역사 대청소는 미래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사(役事)다. 말끔히 씻어내고 털어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실질적인 동반자적 관계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더불어 하토야마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축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임에도 틀림없다. 한·일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맞는 새해가 되기를 힘줘 갈망한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하토야마 총리 “허위 정치헌금 사죄”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24일 오후 6시쯤 허위 정치헌금 기재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와 관련,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친 데 대해 깊이 사죄한다.”며 사과했다. 또 “검찰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총리는 책임 문제에 대해 “(정치자금은 회계 책임자에게)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허위 여부는) 전혀 알지 못했다.”며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총리직 사임 여부와 관련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사임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앞서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날 하토야마 총리의 정치자금관리단체인 ‘우애정경간화회(懇話會)’의 경리담당자였던 전 공설비서(59)를 불구속기소, 단체의 회계책임자로 일했던 전 정책비서(55)를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하토야마 총리에 대해서는 허위기재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 불기소했다. 조사결과, 허위로 적어놓은 정치자금은 3억엔(약 38억 7000만원)에 달했다. hkpark@seoul.co.kr
  • [뉴스플러스] 국민장 소란 백원우의원 약식기소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오정돈)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백원우 민주당 의원에 대해 형법상 장례식 방해 혐의로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형법 158조 장례식방해죄는 대개 잡범들에게 적용되는 혐의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백 의원은 지난 5월29일 진행된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할 차례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치적으로 타살됐다. 사죄하라.”고 외치다 경호원들의 제지로 자리에 되돌아가는 등 소란을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 [사설] 오자와 사죄 발언에 너무 낙관 말아야

    일본 집권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한국을 방문, 강연을 통해 한·일 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일본과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일 한국인 지방참정권 문제도 내년 정기국회에서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진정한 과거 반성을 통해 아시아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입장과도 궤도를 같이해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일합병 100년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발언으로 한·일 관계를 성급하게 낙관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실 일본 지도자의 사죄 발언은 새로운 게 아니다.이미 1998년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과거 역사에 대해 사죄한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이후 일본 총리나 각료들은 잊을 만하면 과거사나 영토 문제에 대해 사죄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도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줄곧 피력하다 정작 집권 직후인 지난 10월 방한해서는 “일본 국민의 정서와 감정, 이해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오자와 간사장의 발언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지켜봐야 할 이유다.오자와 간사장도 한국인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지난 3월 비공개 자리에서 엔고를 이용해 제주도를 사버리자는 식으로 발언했다. 파장이 일자 그는 일본의 땅도 외국 기업이 살 수 있듯이 일본도 한국 땅을 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했다. 그래도 그는 평소 저서와 발언을 통해 일관되게 과거사 사죄 입장을 갖고 한국민도 너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미래지향적 인식을 밝혔다. 그나마 사죄 발언이 남다른 이유다. 그러나 사죄 발언은 이제 충분하다. 오자와 간사장과 일본 지도자들은 행동으로 한국인의 사죄 요구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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