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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처럼, 미얀마는 언제 죽음의땅 벗어날까요”

    “광주처럼, 미얀마는 언제 죽음의땅 벗어날까요”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했다. 전남 나주·화순·담양·장성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려고 광주에 모인다. 1980년이 아닌 2021년 오늘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터미널이 있는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촛불을 켠다. 본국 미얀마에서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촛불 시위의 물꼬를 튼 것은 묘네자(38)다. 2006년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광주에 정착한 그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초부터 홀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묘네자의 소식이 인근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300여명이 모였고 ‘광주미얀마네트워크’가 결성됐다. 이제 매주 50명이 넘는 미얀마인이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킨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전남대에서 공부 중인 미얀마 유학생 A(26)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미얀마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해도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광주 사람들은 깊이 공감하고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서 “고등학교 시설 선생님의 아들은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친구의 가족들도 체포됐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까 두렵지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 대표인 묘네자는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관련 도서를 읽었다. 그는 “41년 전 광주 시민들이 그랬듯 미얀마 시민들이 함께 음료수와 라면 등 먹을거리를 나누며 투쟁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이 수월해졌고 유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군부의 무력 진압이 거세지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지쳐 가고 있다. 묘네자는 “5·18 진압 작전 때 시민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유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화해의 포옹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미얀마에선 41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그는 “포스코 등 외국 기업과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면 미얀마인들을 하루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에에자(57)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광주처럼 죽음의 땅을 벗어나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되뇐다. 군부가 은행을 장악해 돈줄이 끊겼지만 여전히 투쟁 중인 현지 친구들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태국 등 국경을 거쳐 송금한다. 더에에자는 “88년만 해도 지금처럼 군부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영아를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의 상황이 훨씬 어렵지만 젊은 미얀마 세대는 강하고 슬기롭다. 광주가 이겨 냈듯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가 광주에게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했다. 전남 나주·화순·담양·장성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려고 광주에 모인다. 1980년이 아닌 2021년 오늘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터미널이 있는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촛불을 켠다. 본국 미얀마에서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촛불 시위의 물꼬를 튼 것은 묘네자(38)다. 지난 2006년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광주에 정착한 그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초부터 홀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묘네자의 소식이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300여명이 모였고 ‘광주미얀마네트워크’가 결성됐다. 매주 적어도 50명이 넘는 미얀마인이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팻말과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킨다. 그렇게 3300㎞ 떨어진 미얀마에서 군부가 저항하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모두의 마음속에 41년 전 5월 광주의 풍경을 소환 중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전남대에서 공부 중인 양곤 출신 미얀마 유학생 A(26)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미얀마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면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광주 사람들은 깊이 공감하고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아들은 얼마 전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친구의 가족들은 체포됐다. 나도 고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까 두렵지만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 대표인 묘네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관련 도서를 읽었다. 그는 “광주 시민들이 연대의 의미로 주먹밥을 나눴듯 미얀마에서도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함께 버티기 위해 음료수와 라면 등 먹을거리를 나누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이 수월해졌고, 유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군부의 무력 진압이 거세지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지쳐 가고 있다. 묘네자는 “5·18 진압 작전 때 시민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유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화해의 포옹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미얀마에선 41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그는 “포스코 등 외국 기업과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면 미얀마인들을 하루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에에자(57)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광주처럼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되뇐다. 양곤대학교에 다니던 그와 함께 8888항쟁(1988년 8월 8일)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교수와 교사가 됐고,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에 동참해 도피생활 중이다. 군부가 은행을 장악해 돈줄이 끊긴 친구들을 돕기 위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미얀마인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태국 등 국경을 거쳐 송금한다. 더에에자는 “88년만 해도 지금처럼 군부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영아를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의 상황이 훨씬 어렵지만 젊은 미얀마 세대는 강하고 슬기롭다. 광주가 이겨냈듯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가 미얀마에게…“같이 싸우고픈 마음 담은 주먹밥 보냅니다”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에게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5·18 41돌인 올해는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미얀마인들을 위한 주먹밥이 빚어졌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오월어머니회 등 오월단체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재한 미얀마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담아 주먹밥을 보냈다. 17일 서울신문와 인터뷰한 박행순(71)씨는 지난 2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미얀마인들에게 따뜻한 주먹밥을 건넸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고 박관현 열사의 셋째 누나다. 옥중 고문을 견디며 단식투쟁을 하던 동생이 1982년 숨지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그는 2014년 미얀마를 찾기도 했다. 그 곳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역사에 기록된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유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박씨는 최근의 미얀마 상황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미얀마 어머니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어루만지며 ‘너를 대신해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강인한 여성들이었다”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전두환의 사과를 촉구하고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모습과 꼭 닮았다고 느꼈는데, 또 쿠데타가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를 비롯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미얀마 시민에 연대하는 성명을 내고, 쌈짓돈을 모아 100만원을 광주 미얀마인들이 모인 ‘광주 미얀마 네트워크’에 기부했다. 광주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단체들이 모인 미얀마 광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명자(71) 오월어머니회 관장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석달째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로 같이 가서 싸우고 싶다”고 전했다. 오월 단체들은 오는 23일 광주에서 회의를 여는 재한미얀마인들에게도 주먹밥 도시락을 전할 예정이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을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잃은 정성희(67)씨도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면 애기 아빠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떨린다”면서 “주먹밥이라도 보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이날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주먹밥을 나눠주기도 했다. 부상자를 옮기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복부에 맞은 뒤 기적처럼 살아난 김광호(61)씨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씨는 “1980년 광주 경찰들은 시민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도 군인의 본분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시민들을 위해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드 미얀마…“예술로 미얀마를 지지합니다”군홧발에 짓밟힌 채 피를 흘리는 청년, 쓰러진 사람을 품에 안고 군부에 맞서는 시민들…. 이처럼 1980년 5월의 광주와 2021년 5월의 미얀마가 공유하는 참상과 저항정신을 그려낸 전시와 공연이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 전남대에서 진행되는 ‘위드 미얀마’ 전시회가 그중 하나다. 미얀마 작가 20명을 포함해 국내 작가 43명, 영국·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해외 작가 7명을 포함해 73명의 작가가 작품 98점을 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정숙(58)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에 합류한 오빠를 찾으러 집 밖으로 나섰다가 계엄군을 피해 골목으로 뛰어든 순간이 생생하다.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진압하기 전날 스피커에서 나오던 “죽어가고 있다. 살려 달라”는 어느 소녀의 외침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깊은 부채감을 남겼다. ‘상처 속에 핀 꽃-민주화’처럼 5·18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얀마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기록한다는 소식을 접한 노 작가는 지난 3월부터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새 미얀마 군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수배를 받거나 연락이 끊긴 작가도 생겼다. 한국의 작가들은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작품 전시에 매달렸다.작가들은 시민들의 연대와 예술의 힘이 총칼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노 작가는 “한 미얀마 작가는 민주화 운동의 피가 다음 세대의 물방울로 바뀌는 작품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굳센 의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고경일 작가는 고 이한열 열사와 세 손가락을 들고 있는 미얀마 시위자를 연결해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미얀마를 살려내라’로 재탄생시켰다. 주최 측은 미얀마를 응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아카이브로 남길 계획이다. 올해 5·18 전야제도 미얀마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1부에는 광주가 아닌 도움이 절실한 미얀마의 이야기를 배치했고, 유튜브로 중계되는 공연에는 미얀마어 자막이 달린다. 총연출을 맡은 남유진(48) 감독은 “1980년 광주가 해외 교포나 외신 기자들의 도움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미얀마 시민들이 외롭지 않도록 광주에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싸움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한 미얀마 작가는 노 작가를 통해 하고픈 말을 전해 왔다. “우리 작품들은 매우 어렵게 전시됐고,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계속 지지해 주기를 바랍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국민의힘, 보수당 최초 초청받아 5·18 추모제 참석…유족 ‘환영’

    국민의힘, 보수당 최초 초청받아 5·18 추모제 참석…유족 ‘환영’

    정운천·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민중항쟁 추모제에 참석했다.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이 5·18민주유공자 유족회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아 추모제에 참석한 일은 사상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유족들의 고함과 반발을 예견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유족들은 두 의원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특히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은 “잘 왔다. 5·18을 잘 부탁한다.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셔서 고맙고 이제 역사가 발전할 것”이라며 정 의원의 손을 감싸 쥐기도 했다. 추모제가 시작되자 두 의원은 유족들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뒤 헌화와 분향을 하며 오월 영령의 넋을 기렸다. 두 의원은 추모제가 마치자 윤상원·박기순 열사 묘와 박관현 열사 묘, 전재수 군의 묘를 순차적으로 둘러봤다.정운천 의원은 “5·18 유족이 공식적으로 추모제에 초청해주셨는데 이에 대해 감회가 새롭고 감사하다”며 “5·18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제 다음 단계인 ‘국민 통합’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힘 국민통합위원장으로서 5·18을 위해 그간 헌신을 다했는데 마음이 닿은 것 같다”며 “두터운 벽을 넘어서 얼어있던 얼음이 녹았다는 것에 가슴이 아련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짐했다. 성일종 의원은 “광주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자유로운 공기를 마실 수 없었을 것”이라며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허락해주신 오월 영령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렇게 초청을 받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앞으로도 국민들을 섬겨 국민의힘이 광주, 호남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8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 무릎꿇고 사죄한 뒤 국민통합위원회가 출범, 국민의힘의 호남 끌어안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정운천 의원은 5·18단체들과 10여차례의 간담회를 갖고, 특별법 통과와 공법단체 승격 등에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당시 상황 그대로”...박신영 사고 블랙박스 영상 공개

    “당시 상황 그대로”...박신영 사고 블랙박스 영상 공개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신영의 사고 현장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13일 한 유튜브 채널에는 지난 10일 오전 10시 28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발생한 사고 당시 현장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직진 방향으로 가던 흰색 레인지로버 차량이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레인지로버 차량에는 박신영이 탄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영상을 올린 유튜버는 “오토바이 운전자는 운명을 달리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신영은 지난 10일 오전 10시 28분쯤 마포구 상암동 상암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운전 도중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50대 배달업 종사자인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졌으며, 박신영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박신영은 황색신호에서 직진했고 오토바이는 적색신호에서 직진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둘 다 음주 상태는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박신영의 과속 여부를 확인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11일 마포경찰서 담당자는 “어제(10일) 사고 관련 조사가 끝났다”며 “영상 속에 신호 위반한 걸로 나오는데 교차로 진입 전에 황색신호가 켜졌기 때문에 정지해야 했는데 진행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과속 여부에 대해서는 분석을 의뢰한 상황”이라며 “만약 (분석 결과가) 과속으로 나온다면 과속 혐의가 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사고 당일 박신영 소속사 아이오케이는 공식 입장을 내고 “이날 오전 박신영은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여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서 진입하는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했다. 피해자분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호 조치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신영은 절차에 따라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귀가조치 되었으나 심신의 충격이 큰 상태다. 아직 본 사안에 대한 경찰 조사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세부적인 내용을 밝혀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피해자 유족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분들의 상심이 얼마나 크실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진심으로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 사과했다. 이후 12일 박신영 또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어 조금 더 일찍 사과드리지 못한 점 너무나도 죄송하다”며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박신영은 “어제 무거운 마음으로 유가족분들을 찾아뵙고 사죄드렸지만 그 어떤 말로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 어떤 비난과 벌도 달게 받고 평생 속죄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면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가족·경찰도 속인 4개월…친누나 살해 20대 구속 기소

    가족·경찰도 속인 4개월…친누나 살해 20대 구속 기소

    누나를 살해한 뒤 인천 강화도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했다가 4개월 만에 검거된 20대 남동생이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3일 인천지검 형사3부(김태운 부장검사)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A(27)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A씨가 지난 4일 경찰에서 송치된 이후 보강 수사를 했고, 10일인 구속기간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에서 누나인 30대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누나의 시신을 10일간 아파트 옥상에 방치했다가 같은달 말 렌터카를 이용해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에 있는 한 농수로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올해 2월 14일 부모가 경찰에 누나의 가출 신고를 하자 조작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경찰 수사관들에게 보내 속였다. 그는 누나의 휴대전화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USIM)을 다른 기기에 끼운 뒤 메시지를 혼자서 주고받아 마치 누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꾸몄다. 또 같은 방식으로 부모마저 속여 지난달 1일 경찰에 접수된 가출 신고를 취소하게 했다. A씨는 모바일 뱅킹을 이용해 B씨 명의의 은행 계좌에서 자신의 계좌로 돈을 이체한 뒤 식비 등 생활비로 쓰기도 했다. B씨의 시신은 농수로에 버려진 지 4개월 만인 지난달 21일 발견됐고, A씨는 같은 달 29일 경찰에 체포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누나와 성격이 안 맞았고 평소 생활 태도와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그날도 늦게 들어왔다고 누나가 잔소리를 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추가 조사에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잘못했다”며 “부모님에게도 사죄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故이선호 유족은 외면한 채… 대국민 사과만 한 원청업체

    故이선호 유족은 외면한 채… 대국민 사과만 한 원청업체

    지난달 22일 경기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산업재해로 숨진 대학생 이선호(23)씨에 대해 원청업체가 사고 발생 20일 만에 사과했다. 유가족이 요구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은 빠졌고 직접적인 사과의 대상도 유족이 아니어서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성경일 동방 대표이사는 12일 회사 임직원들과 함께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성 대표는 “컨테이너 작업을 하면서 안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어떤 질책도 달게 받고, 필요한 모든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보상을 논하는 것이 유족에게 결례일 수 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장례절차 등은 유족의 뜻에 따르겠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이번 사고로 심려를 끼치게 된 점을 송구스럽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다시 사죄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동방은 사과문의 내용과 발표 일정을 사전에 유족 측과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사과문을 발표한다는 사실도 공식적으로 전달받지 못했다”면서 “진상조사를 마치고 사후 대책을 세운 뒤 기자회견 형식이 아니라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비판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이날 빈소에서 동방 관계자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동방이 제시한 재발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며 만날 계획을 취소했다. 이씨가 안전관리자와 신호수 없이 평소 담당한 업무가 아닌 컨테이너 작업을 한 경위에 대한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동방은 지난 4일 현장 작업을 재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 또 동방은 지난 7일 유족에게 “10일까지 자체 조사한 감찰보고서를 전달하겠다.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동방 관계자는 “조만간 유족 측에 감찰보고서를 전달할 것”이라면서 “평택항에 안전관리자 2~3명을 충원하고 이달까지 안전관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평택항 산재사망 20일만에 원청 고개 숙였지만, 재발방지책은 ‘미흡’

    평택항 산재사망 20일만에 원청 고개 숙였지만, 재발방지책은 ‘미흡’

    지난달 22일 경기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산업재해로 숨진 대학생 이선호(23)씨에 대해 원청업체가 사고 발생 20일 만에 사과했다. 유가족이 요구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은 빠졌고 직접적인 사과의 대상도 유족이 아니어서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성경일 동방 대표이사는 12일 회사 임직원들과 함께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성 대표는 “컨테이너 작업을 하면서 안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어떤 질책도 달게 받고, 필요한 모든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보상을 논하는 것이 유족에게 결례일 수 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장례절차 등은 유족의 뜻에 따르겠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이번 사고로 심려를 끼치게 된 점을 송구스럽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다시 사죄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동방은 사과문의 내용과 발표 일정을 사전에 유족 측과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사과문을 발표한다는 사실도 공식적으로 전달받지 못했다”면서 “진상조사를 마치고 사후 대책을 세운 뒤 기자회견 형식이 아니라 장례식장에 있는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비판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이날 빈소에서 동방 관계자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동방이 제시한 재발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며 만날 계획을 취소했다. 이씨가 안전관리자와 신호수 없이 평소 담당한 업무가 아닌 컨테이너 작업을 한 경위에 대한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동방은 지난 4일 현장 작업을 재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 또 동방은 지난 7일 유족에게 “10일까지 자체 조사한 감찰보고서를 전달하겠다.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동방 관계자는 “조만간 유족 측에 감찰보고서를 전달할 것”이라면서 “평택항에 안전관리자 2~3명을 충원하고 이달까지 안전관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숨 쉬는 것도 죄책감” 김태현, 첫 재판 앞두고 반성문 냈다

    “숨 쉬는 것도 죄책감” 김태현, 첫 재판 앞두고 반성문 냈다

    ‘세 모녀 살해’ 혐의…6월 1일 첫 공판변호인 “사건 내용보단 본인 심경 전달”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24)이 첫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태현은 전날 서울북부지법 제13형사부(부장 오권철)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김태현은 다음달 1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김태현의 변호인은 “최근 접견할 때 반성문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내용은 모른다”면서도 “사건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본인의 심경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 A씨가 연락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스토킹을 하다가 지난 3월 23일 집에 찾아가 여동생과 어머니, A씨를 차례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태현은 A씨를 살해할 마음을 품은 뒤 범행도구를 훔치고 상품배달을 가장해 A씨 집을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또 김태현은 범행 이후 A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컴퓨터에 접속해 자신과 관련된 대화와 친구목록을 삭제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김태현을 살인·절도·특수주거침입·정보통신망침해·경범죄처벌법위반죄 등 5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앞서 김태현은 지난달 9일 검찰로 송치되기 전 서울 도봉경찰서 포토라인에 서서 “이렇게 뻔뻔하게 눈 뜨고 있는 것도, 숨을 쉬고 있는 것도 정말 죄책감이 많이 든다”며 “제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도 정말, 제 자신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고, 유가족분들과 저로 인해 피해 입으신 모든 분들에게 사죄의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목숨 잃고 난 뒤에야…이선호씨 평택항 사고 원청업체 사과

    목숨 잃고 난 뒤에야…이선호씨 평택항 사고 원청업체 사과

    지난달 평택항에서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가 숨진 이선호씨의 산업재해에 대해 당시 작업을 진행한 원청업체가 사고 발생 20일 만에 공식 사과했다. 원청업체인 ‘동방’ 관계자 20여명은 12일 오후 2시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발표한 사과문에서 “컨테이너 작업 중 안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에 따르는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성경민 동방 대표이사는 “한 가족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었던 청년이 평택항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며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 앞에 정중한 위로와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만 터미널의 모든 작업 현황 및 안전관리 사항을 다시 점검하겠다”며 “나아가 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적절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해 유사한 안전사고의 재발을 반드시 막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장례 절차 등은 유가족의 뜻을 따르겠다”고도 덧붙였다. 사과문을 읽은 뒤 성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이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뒷정리를 하던 중 무게 300㎏에 달하는 컨테이너 날개가 접히면서 아래에 깔려 숨졌다. 처음 해보는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이씨는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전모 등 기본적인 보호 장구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위험을 경고하는 안전관리책임자나 신호수도 없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죄책감이 안 느껴져” 등산객 잔혹 살해 20대가 쓴 일기(종합)

    “죄책감이 안 느껴져” 등산객 잔혹 살해 20대가 쓴 일기(종합)

    항소심도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 선고“피해자분과 가족분들께 죄송” 사과법원 “진정한 참회라고 보기 어려워”참혹 범행에도 일기엔 “시간 낭비했다” “살인했는데 흥분이나 재미, 죄책감이 안 느껴져. 내가 왜 이딴 걸 위해 지금까지 시간을 낭비했는지 원.” 일면식 없는 50대 여성 등산객을 잔혹하게 살해한 20대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참혹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이 안 느껴진다’는 등의 내용을 일기장에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 박재우)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23)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해 7월 11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 등산로 입구에서 한모(58)씨를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할 말이 없다”던 이씨는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피해자분과 피해자 가족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녹색 수의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선 이씨는 선고가 이뤄지는 약 10분 동안 감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선고 내용을 듣는 모습을 보였다. 조사 결과 이씨는 ‘연쇄살인’과 ‘연속살인’을 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계획과 방법을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하고, 살인 도구로 쓸 총기를 사고자 수렵면허 시험공부를 하고, 샌드백을 대상으로 공격 연습을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 검찰은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은 미리 준비한 흉기로 목 부위를 여러 차례 찌르고 피해자가 범행 이유를 물으며 저항했음에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했다”며 “목 부위만 49회 찔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 직후에도 아무런 충격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계속해서 살인 범행을 결심하는 등 믿기 힘든 냉혹한 태도를 보였다”며 “뒤늦게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표시했으나 진정으로 속죄하고 참회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아들과 합의해서 아들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긴 했으나 이씨가 진실로 반성한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점, 엄벌을 탄원하는 피해자의 동생과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을 들어 “양형에 고려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 측의 심신장애 주장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쉬워 보이고, 이를 직업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래 성인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살해 욕구를 키웠으며, 정신감정 결과 정신과적 진단도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감 기간 교화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만에 하나 살인 욕구와 충동을 유지한 채 사회로 복귀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살인이 제일 쉬워” 등산객 잔혹 살해 20대, 뒤늦게 “죄송하다”

    “살인이 제일 쉬워” 등산객 잔혹 살해 20대, 뒤늦게 “죄송하다”

    항소심도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 선고“피해자분과 가족분들께 죄송” 사과법원 “진정한 참회라고 보기 어려워” 일면식 없는 50대 여성 등산객을 잔혹하게 살해한 20대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2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 박재우)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23)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해 7월 11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 등산로 입구에서 한모(58)씨를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할 말이 없다”던 이씨는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피해자분과 피해자 가족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조사 결과 이씨는 ‘연쇄살인’과 ‘연속살인’을 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계획과 방법을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하고, 살인 도구로 쓸 총기를 사고자 수렵면허 시험공부를 하고, 샌드백을 대상으로 공격 연습을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 검찰은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은 미리 준비한 흉기로 목 부위를 여러 차례 찌르고 피해자가 범행 이유를 물으며 저항했음에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 직후에도 아무런 충격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계속해서 살인 범행을 결심하는 등 믿기 힘든 냉혹한 태도를 보였다”며 “뒤늦게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표시했으나 진정으로 속죄하고 참회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씨 측의 심신장애 주장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쉬워 보이고, 이를 직업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래 성인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살해 욕구를 키웠으며, 정신감정 결과 정신과적 진단도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감 기간 교화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만에 하나 살인 욕구와 충동을 유지한 채 사회로 복귀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끝내 반성 없이… ‘가방 감금’ 아이 살해 여성 25년형 확정

    끝내 반성 없이… ‘가방 감금’ 아이 살해 여성 25년형 확정

    동거남의 9살짜리 아들을 여행 가방에 7시간여 동안 가둔 채 밟아 숨지게 한 40대 여성에게 중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살인과 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성모(41)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성씨는 지난해 6월 동거남의 아들 A군을 학대해 오다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성씨는 키 132㎝에 몸무게 23㎏인 A군을 여행용 가방에 감금한 뒤 3시간가량 외출하고 돌아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또다시 더 작은 가방에 가둔 것으로 조사됐다.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라며 B군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자 거짓말이 아니냐며 추궁하고, 자신의 친자녀 2명과 함께 가방 위로 올라가 A군을 짓밟았다. A군은 웅크린 자세로 72㎏인 성씨와 그 자녀들까지 더해 160㎏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A군이 가방 밖으로 재차 손가락을 빼자 이에 분노한 성씨는 지퍼를 열고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후 성씨는 A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상태를 살피지 않고 지인과 40분간 태연히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A군은 피해 당일 저녁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틀 뒤 질식에 의한 저산소성 뇌손상 등으로 사망했다. 성씨 측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며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성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2심 역시 살인 혐의를 인정해 형량을 징역 25년으로 상향했다. 성씨 측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여행 가방에 가두고 밟아”...9살 아이 숨지게 한 女 징역 25년

    “여행 가방에 가두고 밟아”...9살 아이 숨지게 한 女 징역 25년

    동거남의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둔 상태에서 밟아 숨지게 한 40대 여성에게 중형이 확정됐다. 11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살인·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성모(41)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성씨는 지난해 7월 동거남의 아들(당시 9세)을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동안 감금하고 밟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는 동거남의 아들을 가로 50㎝·세로 71.5㎝·폭 29㎝ 크기 여행용 가방에 3시간가량 감금했다가 4시간 가까이 가로 44㎝·세로 60㎝·폭 24㎝의 더 작은 가방에 가뒀다. 이어 동거남 아들이 갇힌 가방을 밟고 올라섰고 자신의 친자녀 2명에게도 올라가 뛰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어려운 자세로 가방에 갇힌 23㎏ 몸무게의 동거남 아들은 도합 160㎏가량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성씨는 가방 안으로 뜨거운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성씨 측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며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2심 역시 살인 혐의를 인정해 형량을 징역 25년으로 상향했다. 성씨 측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교통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사망…박신영 “유족분께 사과”(종합)

    교통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사망…박신영 “유족분께 사과”(종합)

    방송인 박신영(32)의 차량과 충돌한 오토바이 탑승 피해자가 사망했다. 박신영 소속사 아이오케이컴퍼니는 10일 입장문에서 “피해자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피해자 유족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날 오전 박신영은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여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서 진입하는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했다”며 “피해자분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호 조치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하셨다. 박신영은 절차에 따라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귀가 조처됐으나 심신의 충격이 큰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마포구 상암동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오토바이가 충돌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10시28분쯤 상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황색신호에 직진하던 승용차와 적색신호에 사거리에 진입한 오토바이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배달업에 종사하는 오토바이 운전자 50대 남성 A씨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아나운서는 현재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박 아나운서는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4년 MBC스포츠플러스에 입사한 박 아나운서는 최근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활동을 지속해왔다. 출연 프로그램으로 MBC TV ‘스포츠 매거진’,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닥터 지바고’, JTBC골프 ‘라이브 레슨 70’ 등이 있다. 다음은 박신영 소속사 아이오케이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방송인 박신영의 소속사 아이오케이입니다. 먼저 사망사고와 관련해 피해자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10일(월) 오전, 박신영은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여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서 진입하는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하였습니다. 피해자분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호 조치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하셨습니다. 박신영은 절차에 따라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귀가 조치 되었으나 심신의 충격이 큰 상태입니다. 아직 본 사안에 대한 경찰 조사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세부적인 내용을 밝혀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피해자 유족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분들의 상심이 얼마나 크실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진심으로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교통사고 치사 혐의, 박신영 아나운서 유족에 사과

    교통사고 치사 혐의, 박신영 아나운서 유족에 사과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연루된 박신영 아나운서(32) 측이 10일 피해자 유족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소속사 아이오케이컴퍼니는 이날 입장문에서 “피해자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피해자 유족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이날 오전 박신영은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여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서 진입하는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했다”며 “피해자분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호 조치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박신영은 절차에 따라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귀가 조처됐으나 심신의 충격이 큰 상태”라고 설명했다.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박 아나운서는 이날 오전 10시 28분쯤 마포구 상암동 상암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는 숨졌으며, 박 아나운서는 현재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2014년 MBC스포츠플러스에 입사한 박 아나운서는 최근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활동을 지속해왔다. 출연 프로그램으로 MBC TV ‘스포츠 매거진’,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닥터 지바고’, JTBC골프 ‘라이브 레슨 70’ 등이 있다.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외국인 선수와 통역없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영어 실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홍준표 “윤석열, ‘날치기’ 공부…더 공부 하시고 나왔으면”

    홍준표 “윤석열, ‘날치기’ 공부…더 공부 하시고 나왔으면”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10일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검찰수사나 평생하신 분이 각 분야의 ‘날치기 공부’를 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또 여권의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해서는 “자기가 저지른 양아치짓은 더 이상 하지말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홍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자신의 복당 관련 기자회견을 연 뒤 대권 후보들의 행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그는 사회 각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윤 전 총장을 향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이 전부 총체적으로 대통령의 직무인데, 검찰 수사나 평생하신 분이 지금 각 분야의 날치기 공부를 하시고 계신다”며 “좀 더 공부를 하시고 국민 앞에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지사를 향해서는 “자기가 저지른 그런 양아치짓은 더 이상하지 말아야 된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무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좀 그렇다하지만 그 ‘녹음기’를 틀어버리면 찍어줄 사람이 있겠느냐”라며 “그런 것부터 다 정리하고 대국민 사죄를 하고 그렇게 출발하는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의힘 주자로서 대권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들어가서 말씀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호남 동시에 찾은 여야 신임지도부…왜?

    호남 동시에 찾은 여야 신임지도부…왜?

    전남고흥 출신 송영길, 호남과 문재인·노무현 연결호남 기반으로 대선 승리 위한 민주당 변화추진울산 지역구 김기현, 영남당 논란 탈피하기대선 승리 위한 호남동행, 서진전략 이어가기여야 신임지도부가 7일 동시에 광주를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대선 승리를 바라는 호남을 기반으로 민주당의 변화를 추진하고,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행대행 겸 원내대표는 ‘영남당’ 논란에서 벗어나면서도 대선을 바라보며 시작된 ‘호남동행’도 이어가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남 고흥 출신인 송 대표는 이날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광주 대동고 친구인 전영진 열사의 묘를 가장 먼저 찾았다. 송 대표는 “우리 영진이가 5월 21일 날 도청, 그때 세무서 쪽인가에서 계엄군 총탄에 쓰러졌다. 5·18 데모를 주동했던 사람은 저였는데 저는 죽지 못하고”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모든 사람들이 계엄군의 언론 통제에 따라 광주에서 폭동이 있을 것처럼 오해하고 있을 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뛰었던 젊은 변호사가 바로 문재인 변호사였다”며 “정치적으로 광주를 고립했던 사건이 1990년 3당 야합으로 다시 한번 일어났을 때 이의 있다고 외친 청년 정치인이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노무현이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뿌리인 ‘5·18, 호남’과 ‘문재인·노무현 대통령’을 연결하며 자신에 대한 당내 비토 여론을 잠재우고 민주당의 변화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송 대표의 지난 4일 오찬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송 대표는 방명록에 “因循姑息 苟且彌縫(인순고식 구차미봉). 인습을 고치고 편안함을 버리고 당당하게 유능한 개혁 민주당을 만들어 가겠다”고 남겼다. 이후 송 대표는 광주시당 당사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에서 “광주는 항상 민주당과 대한민국 민주화 정신의 뿌리였다”며 “광주 정신을 계승해 민주당을 발전시켜 나가고 제4기 민주정부 수립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5·18 묘역에서 사죄의 뜻을 표하며 지역적 외연 확대를 시도했다. 울산을 지역구로 둔 김 대표 대행은 방명록에 “오월 민주 영령님께 깊은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일행은 헌화·분향을 마치고 허리를 깊이 숙여 묵념했다. 김 대표 대행은 참배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희생당하고 아픔을 당하고 계신 유족들과 돌아가신, 부상하신 모든 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5·18과 관련해 국민의힘 계열 정당 대표급의 사과는 지난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무릎 사과’ 이후 두 번째다.김 대표 대행은 광주 방문 배경에 대해 “우리가 조금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노력을 배가해야 할 분야”라며 “지역, 계층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를 키우기 위한 첫 행보가 광주”라고 말했다. ‘영남당’ 논란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며 외연을 확장하는 방문으로 해석된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수도권과 중도층을 겨냥한 호남 서진전략을 펼쳤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 인구 구성을 보면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역시 호남 지역 사람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펑더화이와 마윈/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펑더화이와 마윈/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당중앙 정치국원과 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을 지낸 펑더화이(彭德懷·1898~1974)는 공산 혁명을 위해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사선을 넘나든 혁명 동지다. ‘마오의 오른팔’로 불린 그는 1928년 공산당에 입당해 항일전쟁 때 주더(朱德) 총사령관 밑에서 부사령관으로 활동했다. 홍군을 이끌고 가장 위험하면서도 남들이 꺼리는 임무를 수행하며 대장정과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칭병하며 사양한 린뱌오(林彪) 대신 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맡아 120만명의 중국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밀고 내려왔다. 6·25전쟁 3년간 일진일퇴의 전투가 이어지면서 400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1953년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과 함께 정전협정을 체결한 그는 중국에선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한반도 분단과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경제가 파탄 나고 4000만명이 굶어 죽는 참상을 목도한 펑더화이는 1959년 마오에게 대약진운동은 올바르지만 조급한 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편지를 남겼다가 ‘반당집단의 괴수’로 찍혀 국방부장직에서 해임됐다. ‘우경 기회주의자’라는 누명을 쓴 직후 1962년 마오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8만자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으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1966년 문화혁명이 개시되자 홍위병에게 붙잡혀 혁명가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히는 갖은 고초를 겪다 1974년 암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중국 당국의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마윈(馬雲) 손보기가 끝을 알 수 없다. 자신이 안 되면 아들, 손자 등 자자손손 내려가며 기필코 산을 옮기겠다던 먼 옛날 우공처럼 결연하고 집요하다. 이번엔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의 뒷배 색출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윈이 실질 지배주주로 있는 앤트그룹이 40조원의 자금조달이 기대되는 기업공개(IPO)를 승인받은 과정을 중국 정부가 톺아보고 있다. 중국에서 통상 IPO를 승인받는 데 수개월이 걸리지만, 앤트그룹의 경우 이례적으로 빨리 마무리된 것을 두고 영향력을 행사한 관료가 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하이시 당서기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커촹반(科創板·중국판 나스닥) 설립에 관해 논의했을 정도로 그와 아주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저장(浙江)성 성장을 지내는 등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저장성에서 30년간 근무하며 마윈과 내밀한 관계를 지속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윈의 시련은 당국을 겨냥한 거침없는 직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0월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등 중국 금융계 거물이 대거 참석한 상하이 금융서밋에서 정부가 ‘리스크 방지’를 내세워 지나치게 보수적인 정책을 편다고 비판했다. 며칠 뒤 그는 앤트그룹 경영진과 함께 당국에 불려갔고 하루 뒤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동시 상장이 무산됐다. 앤트그룹은 “정부의 감독을 받겠다”며 백배사죄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당국의 난타는 본격화했다. 앤트그룹에 알짜배기 온라인 대출사업은 접고 별로 돈이 안 되는 알리페이 서비스만 하라고 지시했고, 알리바바에 반독점 위반 조사 뒤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3조원의 벌금을 때렸다. 알리바바가 보유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지분 매각을 강요하고, 앤트그룹에 정부의 감독·관리를 받는 금융지주회사로 개편할 것을 명령했다. 급기야 앤트그룹에 지분 매각을 통한 마윈의 퇴출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도 아닌 편지 한 통에 피를 나눈 동지이자 전쟁영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물며 돈 좀 있다고 입바른 소리나 하고 정적과의 제휴설이 나도는 기업인쯤이야. 이게 권력의 속성인지 모른다. 우리는 자유로운가. khkim@seoul.co.kr
  • “자식들도 문둥이 낙인 찍힐까봐… 지금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요”

    “자식들도 문둥이 낙인 찍힐까봐… 지금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요”

    “내 자식들만큼은 ‘문둥이’ 낙인이 안 찍혔으면 해서… 지금도 선뜻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지난달 19일 보상 청구에 나선 한센병력자(한센인)의 자녀인 김덕한(79·가명)씨는 지난달 30일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평생의 회한을 떠올렸다. “한센병 환자의 자식이라는 얘기를 지금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는 김씨는 미감아(未感兒)다. 미감아는 한센인 부부에게서 태어나 건강한 아이를 말한다. 정부가 김씨 같은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별도로 분류·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다. 일본은 1930년대 제정한 ‘나병예방법’에 근거해 자국뿐 아니라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도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했다. 전염을 막겠다는 명목이었다. 한센병은 유전 질환이 아닌데도 당시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이러한 정책의 밑바탕이 됐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모였던 전남 고흥군 소록도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과 여수 애양원 두 곳에서는 단종(강제불임) 수술, 낙태, 강제노역 등의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해방 전 소록도에 강제 수용됐던 인원은 약 6000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우리 정부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 조치를 1990년대까지 그대로 이어 갔다. 그로 인해 생긴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완치 후에도 정착촌에서 계속 격리된 삶을 택하거나, 평범한 사회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겨야 했다. 정착촌은 한센병이 완치된 뒤에도 후유증 등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센병 환자 또는 그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 청구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우리가 겪어 온 온갖 고초에 비하면 미약하다”며 80년에 가까운 한 서린 삶을 털어놨다. ●마취 없이 강제 불임수술한 건 고문 -일본을 상대로 보상 청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정부가 취약 노동자(일용직) 등에게 2주 자가격리하는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더라. 그걸 보면서 ‘한센병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은 정부 정책으로 평생 격리 아닌 격리 상태로 살아왔는데, 그에 대한 일본과 우리 정부의 사죄와 보상은 제대로 이뤄졌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 격리 조치 당시 다른 국민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수용됐다. 환자들 한 명, 한 명이 이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평생을 설움 속에 살았다. 환자들은 애양원 밖의 외출이 아예 불가능했다. ‘문둥병’이라는 이름을 붙여 환자들을 경원시한 사회로부터 보상을 받고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산 애양원이 그나마 행복 -한센인 가족으로 살아온 삶은 어땠는지. “내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는 어디에 있는지 등 모든 걸 숨기며 살아왔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센병은 천형(天刑·하늘이 내리는 큰 벌)이라고 여겨져 왔다. 실제 내 호적은 만주 길림성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부모님이 만주로 강제 징용됐다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난 뒤 병에 걸리자 즉시 전남 여수 애양원으로 강제 이송됐다. 외부와의 출입은 차단됐지만, 내게는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어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애양원은 국립인 소록도 자혜의원과 달리 미국인 선교사가 지은 수용시설이다. 소록도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곳 역시 인권침해가 있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단종수술이 처음 시작된 곳도 애양원이다. 마취제 하나 없이 그런 수술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고문 아닌가. 애양원 교회에서의 세력다툼에 휘말린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소록도 형무소로 끌려가면서 두살 터울의 여동생과 나는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다른 섬으로 도망쳤다가 죽도록 맞았다고 하더라. 열 살 때쯤의 일이다. 보육원을 나오며 여동생과도 헤어지고 또 다른 보육원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헤어진 부모님의 생사는. “부모님은 내가 40대가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 한센병 완치 후 대부분 환자들이 그렇듯 정착촌으로 옮겨 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녹내장으로 실명하신 데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셨다. 한센병은 피부가 곪고 신경이 마비되는 병이라 완치가 되더라도 사지의 감각을 잃는 등의 신경 손상 후유증이 남는다. 어머니는 후유증이 거의 없으셔서 꽤 모시고 살았다.” ●평생 받은 괄시와 배척 보상받고 싶어 -차별과 편견으로 가장 상처가 된 기억은. “한센병 환자의 가족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받게 되는 괄시와 배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래서 부모님이 왜 안 계신지를 학교 다니면서 단 한번도 입밖에 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학교를 갔다. 면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아 엄청나게 맞았던 것 같다. 6학년 때도 마찬가지로 끝까지 부모님이 왜 못 오시는지 입을 다무니까 부모가 사상범이냐고 의심하더라.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다. 결혼할 때도 배우자에게 부모에 대한 얘기를 아무것도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아내가 사실을 알게 됐다. 달라진 아내의 눈빛에 내심 서럽고 상처받았다. 지금도 자식들에게 내 얘기를 숨기는 건 한센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내 자식들마저 ‘문둥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차마 듣게 할 수는 없다. 한센병력자의 가족이란 걸 내 자식들 배우자와 그들의 집안이 알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전후 세대는 전부 어렵게 살았지만 그중에서도 나 같은 사람들은 최악의 밑바닥 생활을 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책을 가까이 해 지금도 글을 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저 하늘의 별을 따라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십시오. 진실은 휘어질 수 있을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습니다.’ 스페인 극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걸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안 그랬으면 진즉에 고꾸라졌을 것 같다. 보육원도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친척 집을 전전해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다. 주변의 수군거림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니, 운 좋게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신학교에 진학했다. 학비 전액을 대줬다. 신학교 재학 중에 중매로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직장에 입사하는 기적도 찾아왔다. 이후 목회자로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남았지만 내 성장 과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양원에서 부모님 사진 보고도 말 못해 -시간이 흐른 뒤 애양원·소록도를 찾은 적이 있는지. “여러 차례 갔다. 애양원에서 선교 활동을 한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라 다른 목사들과 함께 갔었다. 그곳에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이란 말은 못했다. 한센병력자 가족이란 사실을 알면 ‘문둥이 자식’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까 모른 척했다. 아버지와 내 이름만 대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이들도 남아 있었지만 꾹 참았다. 어릴 때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했다. 애양원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이들과는 다행히 아직 연락이 닿는다. -한국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단이 2, 3차 피해자 추가 발굴을 한다는데. “전국 100여곳에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정착촌을 형성해 고립돼 살아간다. 한 곳에 1000명 이상이 모여 있는 곳도 있지만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면 1945년 해방 전 출생자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은 차별과 편견의 고통 속에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 안에서 구심점이 생기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공론화를 시키고 싶었지만 내가 겪은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가될까 두려웠다. 국내에서는 2011년 첫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된 지 5년여 만인 2017년에 정부로부터 강제로 단종·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병 환자 19명에 대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뒤늦게나마 한센병 환자의 가족에 대한 피해 보상도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현대모비스 선수 폭행 ‘발칵’

    현대모비스 선수 폭행 ‘발칵’

    2020~21시즌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해 시즌을 마무리한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선수간 폭행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29일 농구계에 따르면 지난 26일 안양 KGC와의 원정 경기에서 패해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한 현대모비스 선수단은 경기를 마치고 용인 숙소로 이동해 저녁 식사자리를 가졌는 데 공식 자리가 끝난 뒤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감독과 코칭 스태프 등 대부분 식사 뒤 해산했으나 일부 선수들이 남아 반주를 겸한 식사 자리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고참 선수인 A가 후배 B, C, D, E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B의 경우 눈 주위를 맞아 안와골절 진단을 받았다. 나머지는 일부 타박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를 당한 선수들은 팀 내 주요 전력으로 평가 받는 선수들이다. 특히 B의 경우 6월 도쿄올림픽 남자 농구 최종 세계 예선에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 실내 식사 자리와 관련해서는 코로나 19 방역 수칙을 위반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모비스는 진상 파악에 나서는 한편, KBL에 사건을 알렸다. KBL은 30일 긴급 재정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 구단도 자체 징계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는 “불미스러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피해를 당한 소속 선수들과 가족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KBL 결정과는 별개로 구단 차원의 강력한 징계도 실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에 대해 사법 처리 여부는 기본적으로 피해 당사자들 의사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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