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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청춘스타’ 크리스텐슨-빌슨, 결혼 임박 “스타 부부 탄생”

    美 청춘스타’ 크리스텐슨-빌슨, 결혼 임박 “스타 부부 탄생”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차세대 스타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레이첼 빌슨의 결혼이 임박했다. 지난 2006년 영화 ‘점퍼’에서 호흡을 맞추며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일(한국시간) 미국 연예주간지 ‘스타’는 “크리스텐슨과 빌슨이 평생의 반려자가 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크리스텐슨이 프로포즈를 했고, 빌슨이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면서 두 사람의 결혼이 임박했음을 밝혔다. 크리스텐슨은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빌슨에 프로포즈를 했다. 가족과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아이몬드 반지를 건네며 “결혼하자”는 말을 한 것. 캐나다는 크리스텐슨이 태어난 곳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다. 당시 빌슨은 한치의 망설임없이 프로포즈를 승낙했다. 이에 참석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크리스텐슨의 누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주는데 도움을 주며 적극적으로 둘의 사랑을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크리스텐슨과 빌슨은 비밀리에 약혼식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포즈를 받은 직후 가족들이 모인 장소에서 소박하게 약혼을 했다. 현재까지 정확한 결혼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늦어도 올해 안에는 결혼식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크리스텐슨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서 다스 베이더 역을 맡으며 미국 차세대 미남 배우로 성장했다. 빌슨 역시 여러 영화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패셔니스타로도 각광받고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리들의 바보’ 영면하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의 영원한 삶을 시작했다. 20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어제 내린 눈, 비는 흔적이 없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히 밝히기라도 하듯 성당을 감싼 하늘이 청정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신자와 시민이 성당 정문부터 들머리, 대성당 입구를 가득 메워 발디딜 틈이 없다. 밤사이 손이 시릴 만큼 쌀쌀했던 날씨마저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정성의 물결엔 주눅이 들었다. 입당 성가로 시작된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신자석을 향해 누운 채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김추기경의 뜻을 따라 일상 그대로 진행되는 미사의 의식들. 하느님이 고인을 평화와 빛으로 불러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말씀전례. 그리고 이어진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복음은 김 추기경이 생전 즐겨 읽고 인용한 말씀. 성당 곳곳에 흐느낌의 파도가 인다. 성찬전례에 이어 주교단과 유족이 일일이 김 추기경을 돌아 올리는 영성체 예식, 그리고 고별사가 이어졌다. “세상살이가 어려운 시기에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바보 웃음의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떠난 님의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잊지 않겠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들을 고인은 듣고 있을까. 두 시간 만에 미사가 끝나고 성당 북쪽 문을 통해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운구를 시작하자 구름처럼 모여 있던 신자와 수녀들이 일제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린다. 운구차량이 서서히 성당을 벗어나자 아쉬운 듯 뒤를 따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울음이 명동을 뒤덮는다.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33번의 종소리. 추기경은 이제 더 이상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20분가량.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들기까지 길가 곳곳에서 손을 흔들거나 성호를 긋는 시민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운구차량 행렬이 매몰차게 느껴진다. 묘역에 다다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 사이, 첫 한국인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의 묘 바로 옆에 준비된 추기경의 자리가 눈에 든다. 기다리던 신도들의 찬송과 기도, 산에서 울려퍼지는 정진석 추기경의 축복에 이어 하관이 있자 울음과 기도가 바람에 섞인다. 이제 정말로 추기경을 보내야 한다. 주교단과 수도자, 유족 대표가 관 위에 흙을 덮자 참례자들이 입을 모아 위령 성가를 부른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 오라. 무거운 짐진 자 멍에 벗겨주고 영원한 생명을 네게 주리.’ 김 추기경의 영원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글 / 서울신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그리피 ‘데뷔 구단 시애틀로 복귀 결정’

    그리피 ‘데뷔 구단 시애틀로 복귀 결정’

    네버 엔딩 스토리. 메이저리그 현역 홈런 1위(611개)의 명예의 전당 예약자 켄 그리피 주니어(40)가 데뷔 구단 시애틀 매리너스로 복귀한다. 1999년 이후 10년 만이다. ’시애틀 타임즈’ 제프 베이커 기자는 19일(한국 시간) 속보에서 “그리피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계약 보도를 뒤엎고 시애틀과 손 잡았다”고 전했다. 베이커 기자에 의하면 기간은 1년이며 기본 연봉이 약 200만 달러다. 2000년 2월 그리피는 4 대 1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한 바 있다. 그리피는 시애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1987년 전미 트래프트 1순위로 입단해 1989년 메이저리그 데뷔. 1999년까지 11년 간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시애틀 선수로서 398홈런(1위) 1152타점(2위) 타율 0.299(5위) 출루율 0.380(5위) 장타율 0.569(1위) OPS 0.949(1위). 1997년은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아울러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수상 경력이 있으며 리그 홈런왕 4회(1994·1997∼1999년) 타점왕 1회(1997년)를 해냈다. 그러나 비(非) 시애틀 선수로서는 9년 동안 213홈런(평균 23.7개) 타율 0.269 출루율 0.361 장타율 0.510 OPS 0.871로 이전 명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작년 성적은 18홈런 71타점 타율 0.249. 시애틀은 그리피를 중심 타자로 기용할 예정이다. 지난 시즌 시애틀 구단은 16년 만에 100차례 이상 패했다. (101패)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원희 “마음 고생 심했지만 좋은 결과 기쁘다”

    조원희 “마음 고생 심했지만 좋은 결과 기쁘다”

    “마음 고생이 많았지만. 좋은 결과가 있어서 기쁘다.” 한국인 제6호 프리미어리거로 거듭난 조원희(26)가 19일 스포츠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 애슬레틱과 계약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5주간 적잖이 마음 고생을 했다. 그래도 이제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 앞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원희는 프랑스 프로축구 AS모나코행을 타진하며 지난달 초 모나코로 가 4주간 훈련을 하면서도 이렇다할 소득이 없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간 마음을 졸인 만큼 조심스러운 마음에 주변과 연락을 끊었다. 그는 “(팀을 결정하기 전까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직 계약서에 정식으로 사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위건과 입단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조원희는 “20일 워크퍼밋(취업허가서)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 바로 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계약만 체결되면 일사천리로 입단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한편 조원희는 19일 프리미어리그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박지성이 출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풀럼전을 지켜봤다. 지난 16~17일 위건에서 훈련한 조원희는 이날 팀훈련이 없어 매니지먼트사인 텐플러스스포츠 이동엽 사장과 맨유 올드트래퍼드를 방문했다. 박지성도 조원희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지성 150일만의 공격포인트, 팀 승리에 기여

    박지성 150일만의 공격포인트, 팀 승리에 기여

    오랜 기다림이었다. 오죽했으면 19일 경기에 앞서 홈구장에 뿌려진 맨유 공식 프로그램 ‘유나이티드 리뷰’에 ‘박지성의 골 약속 (Park’s goal pledge)’이란 제목으로 득점 해갈을 다짐하는 기사가 실렸을까. 이번 시즌 첫 도움은 골이 없다는 푸념을 날릴 수 있는 자그만 위안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28)이 19일 오전(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풀럼과 2008~2009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5차전에서 후반 12분 웨인 루니의 쐐기골을 돕는 시즌 첫 어시스트로 3-0 쾌승에 기여했다. 지난 해 9월 21일 첼시전 이후 150일(영국시간 기준)만의 공격포인트였다. 도움 기록은 지난 해 4월 미들즈브러전 이후 처음이었다. 4-4-2 전형의 왼쪽 미드필더로 나선 박지성은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대표팀의 이란 원정과 이후 연속된 소속팀 출장 탓인지 평소보다 몸이 무거웠다. 이 때문인지. 골욕심을 앞세우기보다는 남을 돕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주로 했다. 전반 22분 아크에서 페널티지역 오른쪽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에게 패스해 찬스로 연결한 게 대표적이었다. 전반 26분에는 상대 역습을 방어하다 경고(시즌 4호)까지 받았다. 와중에 몇번의 찬스도 잡았다. 전반 35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지역 중앙에서 엉겹결에 한 오른발 슛은 빗맞아 호나우두에게 찬스로 연결됐고. 후반 40분에는 스콜스의 침투 롱패스를 따라 문전까지 쇄도하며 슬라이딩 슛을 시도했으나 아깝게 발에 맞지 않았다. 부단한 노력은 행운을 불렀다. 스콜스. 베르바토프의 골로 2-0으로 앞선 후반 17분 페널티지역내 오른쪽에서 회심의 오른발 슛을 했으나 발을 떠난 공은 왼쪽 골대를 벗어나는 듯했다. 순간 루니가 문전으로 쇄도하며 왼발을 갖다대 쐐기골을 낚았다. 박지성은 맨유 입단 후 통산 11번째 도움을 또 다시 루니의 골로 연결시켰다. 루니는 박지성의 도움을 6번이나 골로 만들었다. 또 풀럼전에서는 통산 1골3도움을 기록하며 강한 면모도 확인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열심히 뛰었다’는 평가와 함께 평균 평점인 6점을 줬지만.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성실함과 함께 돌파를 보여줬지만 결정은 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보다 높은 평점 7을 줬다. 맨유는 이 날 3-0 승리로 리그 무실점 기록을 14경기째로 이어갔다. 지난 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이후 9연승 휘파람을 불었다. 또한 다른 팀과 공히 25경기째를 맞춘 맨유는 2위 리버풀과 승점도 5점차로 벌리며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지방에서… 출근前에… 끊이지 않는 행렬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일째인 18일 서울 명동은 거대한 조문 행렬 그 자체로 변해 버렸다. 5㎞를 훌쩍 넘는 조문객 행렬은 남산 터미널 방면으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명동 일대를 꽉 메웠다. 장례위원회는 오후 11시30분 현재 조문객이 14만 2450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성당 밖 인파를 감안하면 이날 조문객은 15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각계 인사들도 속속 빈소를 방문했다. 오전 11시쯤 빈소를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라의 경제·안보가 어려워 김 추기경이 더 조언해 주셨어야 하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사는 “교파는 달랐지만 평소 존경하고 사랑해 온 어른”이라며 애도했다. 성당 안은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로 큰 혼란 없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됐다. 대구에 사는 안성희(50)씨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큰 어르신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싶어 달려 왔다. 2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고 말했다.이날 오후2시에는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에 남아 있던 김 추기경의 유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제복과 제구, 각종 임명장 등과 함께 김 추기경이 사용하던 안경, 파이프 담뱃대 등이 눈에 띄었다.한편 장례위원회는 입관예식과 장례식에 대한 세부 일정을 발표했다. 19일 오후 4시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서 염습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오후 5시부터는 유리관에 안치됐던 김 추기경의 시신을 관에 넣는 입관예식이 시작되는데, 약 10분간 추기경의 얼굴을 공개한 뒤에는 시신을 직접 볼 수 없게 된다. 시민들의 조문은 19일 자정까지 허용된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진행될 장례미사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다. 시민들은 마당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장례미사를 볼 수 있다. 미사가 끝나면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지로 시신이 운구된다.박성국 최재헌기자 psk@seoul.co.kr
  • 퍼거슨 “지성 골만 넣으면 팀내 최고 선수”

    퍼거슨 “지성 골만 넣으면 팀내 최고 선수”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19일 풀럼전에 맞춰 발간된 맨유의 공식 매치프로그램 ‘유나이티드 리뷰’를 통해 “박지성이 골만 넣으면 팀내 최고 선수 중 하나”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날 ‘유나이티드 리뷰’는 ‘골을 향한 박지성의 결의(Park’s goal pledge)’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근 한국에서도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박지성의 득점력 부족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이 기사는 박지성이 이날 맞상대인 풀럼을 상대로 지난해 3월 1일 헤딩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날 경기를 터닝포인트로 삼아 박지성의 득점포가 점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리뷰 대로 박지성은 비록 골 작성은 실패지만 대신 어시스트를 기록해 풀럼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이 기사에서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자주 골네트를 흔들 수 있다면. 팀내 최고 선수 중 하나일 것”이라면서 “이는 박지성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지성은 “골을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좀 더 많은 골을 기록해야만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득점수는 적지만) 현재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나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고 있다”며 조만간 골 소식을 전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지성은 또한 맨유 선수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정신적인 강인함을 꼽았다. 여기에서 득점력 부족에 대한 주변의 우려나 비판에 심리적으로 동요하지 않겠다는 박지성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재진 “그라운드서 실력으로 평가 받겠다”

    조재진 “그라운드서 실력으로 평가 받겠다”

    ‘한국 선수 J리그 최다골 기록은 계속된다.’ 올해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에 입단한 조재진(28)은 지난 18일 울산현대와 친선경기가 열린 일본 미야자키현의 아야니시기바르 운동공원에서 경기에 나서지 않고 몸만 풀었다. 최근 가볍게 다친 오른 무릎 때문이었다. 다행히 부상 정도는 크지 않았다. 조재진은 “감바는 J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팀이다. 감바 소속 외국인 공격수들은 득점왕에도 많이 올랐다. 나도 ‘용병 공격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부담은 있다. 그러나 자신감은 있다”고 말했다. 조재진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그 주인공. 그는 가시와 레이솔 감독 시절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을 영입했던 대표적인 J리그 ‘지한파’ 감독이다. 감바의 한국어 통역을 맡고 있는 겐토 다카하시씨는 “감독이 원래 한국 선수의 투지와 강한 정신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귀뜸했다. 니시노 감독은 가시와 레이솔 감독이던 지난 1999년 벨마레 히라츠카에서 뛰던 홍명보를 영입한데 이어 2000년에는 그를 J리그 사상 최초로 외국인 주장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조재진은 “아직 감독과 면담을 한 적은 없다. 지금은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감독의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진은 올시즌 자신이 보유한 한국 선수 J리그 최다골 기록을 더 늘릴 계획이다. 2004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J리그 시미즈 S펄스에서 뛰었던 조재진은 J리그 통산 101경기에 나서 45골을 기록중이다. 1998~2002년 세레소 오사카와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며 통산 70경기 42골을 기록한 황선홍 부산 감독이 2위다. 선수층이 두터운 감바에는 일본 간판 미드필더 엔도 야스히토를 비롯해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하다. 지난 1월말 입단한 조재진은 한차례 연습경기에 출전했을 뿐. 주전 경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오른쪽과 왼쪽 다리의 근력이 다소 차이가 있어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개막전 출전이 목표”라고 밝힌 조재진은 “J리그 복귀 후 높아진 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제 영이별입니까”… 마지막 날까지 나눔다짐 행렬

    그의 빈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의 성스러운 삶의 행적을 닮기 위한 마음의 다짐일까. 김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인 19일에도 서울 명동성당의 조문객 행렬은 계속됐다. 지난 3일간 24만 9000여명이 빈소를 다녀갔는데도 새벽 4시부터 몰려든 인파로 명동 성당 일대는 북새통을 이뤘다. 오스왈도 파딜랴 주한 교황 대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조문했다. 시민들은 개방 시간인 오전 6시 이전부터 성당 너머 1㎞가량 줄을 섰다. 오전 4시30분에 집을 나섰다는 이시몬(66·서울 구파발)씨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도착해보니 이미 줄이 늘어져 있어 1시간 20분을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못 오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오전 9시40분쯤 빈소를 방문한 파딜랴 교황 대사는 “김 추기경의 선종은 사제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외롭고 괴로운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치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송구스럽다.”며 애도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시민들은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다급한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2001년 김 추기경의 백내장 수술을 집도한 김재호 원장은 “수술 전에 추기경께서 상담을 하며 각막을 기증할 예정인데 늙고 난시도 있어 기증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면서 각막 기증의 뒷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백발의 민경봉(76)씨는 “이렇게 큰 규모의 자발적인 조문 행렬은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추기경의 입관예식은 이날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시신은 오후 5시부터 25분간 얼굴만 공개된 뒤 관 속에 담겼다. 시민들은 더 이상 추기경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의 예식을 지켜봤다. 김 추기경의 시신은 20일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장례미사를 마친 후 장지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로 운구된다. 추도미사는 22일 낮 12시부터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열리며 같은 시간 용인 성직자 묘역에서도 염수정 주교의 주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글 / 서울신문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에이로드 “사촌이 약물 주사 주입했다”

    에이로드 “사촌이 약물 주사 주입했다”

    약물 복용 파문의 주인공 뉴욕 양키스 알렉스 로드리게스(34)가 공식 기자 회견을 열고 과거 실수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로드리게스는 18일(한국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베이 스프링 트레이닝장에서 약 200명의 기자들이 움집한 가운데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사촌 형제 중 한 명이 체력 보강제 사용을 제의했고 그로 인해 스테로이드에 손댔다는 경위를 이야기했다. 약물은 주사기 주입 방식을 이용. 사촌이 한 달에 두 번 정도 투여해 줬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는 ‘ESPN’ 인터뷰 때처럼 “그 문제(약물)는 어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또 무슨 약인지 몰랐고 2003년 목 부상 후 끊었다”고 말했다. ’약의 도움을 받았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가령 물이 몸에 좋다고 믿으면 물을 마신 뒤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다. 아마 그런 느낌은 가졌을 것”이라고 답했다. 의심을 사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은 ‘립트 푸얼(Ripped Fuel)’이란 보조제를 섭취했지만 금지 약물 지정 후 중단했고 암페타민이나 성장 호르몬은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로드리게스는 스테로이드 사용이 무지의 소산이라며 “대학에서 철이 들고 프로에 입단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른다”고 이른 데뷔를 한탄하기도 했다. 지난 1993년 만 18세의 나이에 전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선택된 로드리게스는 작년까지 15년 동안 완벽한 야구 인생을 걸어왔었다. 메이저리그 전체 최고 연봉자로 MVP 3회 홈런왕 5회 타점왕 2회 타율 1위 1회. 통산 553홈런이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병현 “내 잘못이다” 팬카페에 심경 고백

    김병현 “내 잘못이다” 팬카페에 심경 고백

     ”내 잘못이다.” 여권 분실 때문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하와이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김병현(30·전 피츠버그)이 17일 팬카페(cafe.daum.net/bhkim/)에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동네 야구선수가 돼버린 내 자신 그리고 삼류 코미디언 bk’라는 제목으로 긴 글을 남겼다. 2006년 12월5일 이후 2년 2개월여만에 팬카페에 글을 남겨 최근 그의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정말 뉘우치고 반성한다.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여권을 분실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정말 뼈저리게 반성한다.(중략) 한순간의 부주의로 동네 야구선수가 돼버렸다”고 후회했다. 또 “감독님께 보고 안드렸던거 지금이라도 해야겠다. 하루하루 몸상태가 틀렸습니다. 확신이 설때까지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와이에서 2주간 시간이 있으니 훈련에서 보여드려도 늦지 않다고 혼자 생각한게 불찰입니다.(중략) 감독님 뵙고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아닌거 같아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일년 백수로 지내서 미덥지 못한 저에게 선뜻 같이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 주신거 잊지 않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고 많은걸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김인식 감독에게 사죄의 글도 썼다. 그는 “말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남들에게 남 이야기 하는거 정말 쉬운거다. 하지만 배우는거, 변하는거 어렵다. 표현하지 않고, 못한다고 이상한 취급은 삼가해달라. 운동만 해왔지만 기본적인 생각이 있다”며 자신을 비난하는 시선에 거부감도 나타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추모] 가족·측근이 본 ‘인간’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추모] 가족·측근이 본 ‘인간’ 추기경

    성직자가 아닌 사인(私人)으로서 김수환 추기경은 어땠을까. 가족은 물론이고 김 추기경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동료·후배들은 “청빈하고 자상한 추기경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입을 모았다. ●조카 아들 “유명하지만 가난하셨던 할아버지” 김 추기경 조카의 아들인 김형중(29·LG전자 근무)씨가 기억하는 추기경 할아버지는 엄격하지만 자상한 존재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취업했을 때 할아버지가 혜화동 주교관으로 나를 불렀어요. 자주 뵙지 못했는데도 내가 무슨 공부를 했는지 하나하나 다 알고 계셨어요.”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김 추기경의 형 김동한 신부(1983년 작고)를 닮아 김 추기경이 가장 예뻐한 손자가 바로 김씨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가족들과 일년에 세 번 정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자상하고 유머 넘치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가족들이 모이면 자신의 애창곡인 ‘만남’, ‘사랑으로’, ‘애모’ 등 대중가요도 즐겨 불렀다. 매년 설날에는 가족들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세뱃돈으로 딱 1만원씩 줬는데 외환위기 때는 5000원만 줬다. 청빈한 성직자의 삶을 살아왔기에 김 추기경은 가족들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내내 안타까워했다. “할아버지는 유명하셨지만 가난한 분이셨어요.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나를 할아버지는 대견해하면서도 애틋하게 여기셨어요.”라고 김씨는 말했다. 지난해 10월 호흡곤란이 와 큰 위기가 닥쳤을 무렵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김 추기경이 가장 먼저 바라본 것도 김씨였다. 김 추기경은 “우리 손자 왔구나. 이 아이는 똑똑하고 공부도 잘한다. 이 불황에 취직도 했다.”며 김씨를 주위 사제들에게 소개시켜 줬다. “온 가족 소집명령이 떨어져 병실에 갔더니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어요. 할아버지 손을 잡고 ‘형중이 왔어요.’라고 말하니 눈을 뜨셨어요. 그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씨의 아버지 김병무(김 추기경 큰형의 3남)씨는 “삼촌은 평소 소신대로 엄격한 종교인의 가치관을 가족에게도 적용하셨고, 가족이라고 더 챙겨주시거나 특별한 도움을 주시진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중학 동창 “공부 열심히 했던 성실한 친구” 김 추기경과 중학교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최익철(86·1999년 은퇴) 신부는 “공부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한반에서 공부했지만 전쟁 때문에 태평양 쪽으로 나가 있었던 김 추기경은 늦게 돌아와 나보다 1년 늦게 서품을 받았다.”면서 “기숙사에서 성실히 공부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담당 간호사 “주변사람을 늘 웃게 하신 환자”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을 간호한 홍현자(눈시아마리아) 간호수녀팀장은 “마음이 깊으시고 유머감각도 남다르셔서 주변 사람을 늘 웃게 하셨다. 이번 설날에 간호사들에게 세뱃돈도 줘 웃음을 자아냈다.”고 말했다. 김민희 최재헌기자 haru@seoul.co.kr
  • [사설] 사병 생필품도 예산절감 대상인가

    육군이 오는 7월부터 군에서 보급하던 세숫비누, 세탁비누, 치약, 칫솔, 구두약, 면도날 등 6개 생필품에 대해 매월 1380원을 지급하는 대신 병사들이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경제 수준 향상과 더불어 병사들이 고급 사제품을 선호하면서 군 보급 생필품의 재고가 늘어남에 따라 예산 절감 차원에서 6개 생필품의 납품단가 기준으로 월 구입비를 책정했다는 것이다. 군은 이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연간 15억원가량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지만 국방부 자체 조사로도 6개 생필품을 사려면 월평균 4010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금 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군은 사병들의 봉급이 크게 오른 만큼 설혹 추가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지만 사병 봉급 인상 취지와는 맞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병영의 고급 사제품 사용 일상화를 보는 국방부의 잘못된 시각이다. 일선 부대에서는 전역 5개월 전 병장 때부터 일부 품목에 한해 사제품 사용이 묵시적으로 허용된다. 이를 전체 사병으로 일반화한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더구나 잔칫날(전쟁 때)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돼지로 비유되는 징집병에 대해 예산 절감과 같은 경제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징병제를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우리는 이같은 터무니없는 발상이 관철되는 국방행정에 대해 근본적인 수술이 가해져야 한다고 본다. 사병 생필품 예산 절감에 앞서 국방부와 육본의 과잉 고급장교부터 정리하기 바란다.
  • ‘바보’의 나눔 바이러스 온 세상에 번지나

    ‘바보’의 나눔 바이러스 온 세상에 번지나

    “추기경 김수환은 바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고 불렀다. “바보같이 남을 도와야 세상을 구원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김 추기경이 세상에 던진 ‘바보의 사랑’이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 2002년 아호인 ‘옹기(甕器)’에서 이름을 따 만든 옹기장학회는 그가 몸소 실천해온 사랑과 나눔의 결정체다. 옹기는 김 추기경의 부모가 옹기 장사를 하며 당시 박해 받던 천주교를 전파한 데서 연유한다. 옹기장학회는 사제들이 특별히 마련된 옹기에 십시일반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설립 이후 지난해 8월까지 87명의 학생에게 1억 8000만원의 장학금이 전달됐다. 지난해 가을 장학금을 받은 권오영(28·가톨릭대 6학년)씨는 “장학금을 주시면서 ‘옹기는 보잘것 없고 쓸모 없어 보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옹기 같은 사제가 돼 달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을 계기로 자신도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김 추기경이 초대 이사장을 지낸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는 17일 장기기증과 후원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장기기증 운동 단체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하루 평균 30명 내외인 장기기증 서명자가 이날 오후 7시 현재 100명을 넘어섰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김수환 추기경 추모 특별 생방송’에 출연해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김 추기경이 직접 설립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서울 성북동의 미혼모 자녀 입양기관인 ‘성가정입양원’에도 이날 입양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입양원 관계자는 “입양 문의가 평소 일주일에 열 통 정도였는데 오늘은 하루에만 대여섯 통이 왔다.”면서 “추기경님의 선종 때문에 입양을 생각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는 “공동체가 파괴된 우리 사회에서 추기경은 바보같이 남을 도운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떠났다.”면서 “우리 사회에 바보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도 “김 추기경은 자화상으로 바보를 그렸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약삭빠른 계산을 떠나 진심으로 돌아가는 바보스러운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면서 “그분처럼 우리도 바보가 되자.”고 했다. 박성국 최재헌기자 haru@seoul.co.kr
  • 추신수 ‘이젠 MLB.TV 홍보모델’

    추신수 ‘이젠 MLB.TV 홍보모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공식 방송인 MLB.TV의 홍보모델이 됐다. 클리블랜드 홈페이지는 추신수의 얼굴을 올려놓고 MLB.TV를 홍보하고 있다. 홈런을 친 뒤 당당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모습이다. MLB.TV는 연간 109.95~79.95 달러를 내면 메이저리그 전 경기를 인터넷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방송. 회원모집을 위해 각 팀 사이트에 그 팀의 간판선수를 내세워 홍보를 하고 있는데 클리블랜드의 ‘얼굴’로 추신수를 선정한 것이다. 그의 높아진 위상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추신수는 클리블랜드의 주전 우익수로 확정된 상태. 미국 애리조나 주 굿이어에 있는 스프링캠프에서 훈련에 한창이고. 오는 24일 WBC 대표팀의 하와이 전지훈련에 합류해 대표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할리우드 스타가족 베스트3 “함께일 때 더욱 빛난다”

    할리우드 스타가족 베스트3 “함께일 때 더욱 빛난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난다. 하지만 스타들이 만나 가족을 이뤘을 때는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할리우드 스타 가족은 언제나 관심 대상이다. 이들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화제를 뿌리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비단 스타에만 있지 않다. 그들의 자녀들 역시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할리우드 스타가족을 살펴봤다. ◆ 브란젤리나 가족 “모두가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이슈가 된다. 이들 가족 모두가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들 가족은 모두 8명. 두 명의 스타와 메독스, 팍스, 자하라, 실로와 최근에 출산한 쌍둥이 녹스 레온과 비비안 셰린으로 구성돼 있다. 졸리-피트 가족은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근 피트가 영화 홍보 차 일본을 찾았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의상에도 통일성을 주며 돈독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 크루즈 가족 “딸이 더 유명해요”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 가족 역시 파파라치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카메라 프래시가 터질 정도다. 과거에는 크루즈와 홈즈의 커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면 최근에는 그들의 2세 수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다. 수리는 스타의 끼를 물려받아 언제 어디서든 깜찍한 표정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여느 할리우드 자녀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때문에 파파라치들은 수리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데 열을 올렸고 팬들은 공개된 사진을 보며 수리에 대한 호감을 높였다. ◆ 베컴 가족 “걸어다니는 화보”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가족은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 가족이다. 이 가족은 ‘걸어다니는 화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미남 축구스타의 원조격인 베컴과 패션 센스가 남다른 빅토리아 베컴덕이다. 또한 그들의 세 아들 브루클린, 로미오, 크루즈가 합세해 더욱 완벽한 그림이 완성됐다. 이들 가족은 완벽한 패션이 아니면 밖에 나서는 것을 꺼려할 정도로 패션을 중시한다. 심사숙고한 만큼 한 번 나설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온 몸을 명품으로 휘감기도 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는 등 가족 모두가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해 내고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다툼·갈등의 세상 묵묵히 품어 내-김지길 목사 김수환 추기경은 그저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속의 친구처럼, 때로는 듬직한 동지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1923년생이고 김 추기경은 1922년생이니 나이도 비슷했고, 비록 교파는 달랐어도 신을 섬긴다는 입장에서도 그러했다. 게다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헤쳐온 연대 의식도 컸을 것이다. 참 말없고 묵묵한 분이었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이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이도, 기대에 못미침을 불평하는 이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모두 한 품에 넉넉히 안아냈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 나는 명동성당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주 앉았다. 아마도 1986년 남짓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개신교도 천주교도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을 펴나가던 상황이었다.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으로서 김 추기경을 만나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몇 차례씩 성명서를 내며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을 때였지만 각자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단결과 연대가 절실했다. 우리의 힘과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같이 담아서 내보자는 취지로 명동성당을 찾은 것이고 김 추기경에게 이같이 제안한 것이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의 미소를 보내며 공동성명을 함께 내자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공동성명을 내지는 못했다. 비슷한 목소리로 각자 성명서를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당시 추기경 비서실에서 공동 성명의 형식을 반대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미 김 추기경에게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고, 김 추기경의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이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1987년 6월 들불처럼 번졌던 뜨거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도,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는 회의석상에서도 김 추기경은 없었다. 여기저기 나다니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어른의 역할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지로서 늘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TV를 통해 선종 소식을 들었다. ‘아, 먼저 갔구나.’하는 생각이 맨먼저 들었다.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편안하게 갔으니 다행스럽다. 다툼과 갈등, 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몸으로 보여줬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가 새삼 다시 울려퍼질 수 있게 된 점도 다행스럽다. 참 존경스러운 분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돼 울적하다.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 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 KNCC 회장> ● 낮은 곳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유시춘 작가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과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가위눌려 지내던 이 척박한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 늘 계셨다. 부끄러운 ‘유신’왕정 시대에 민주공화국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그 아름다운 헌법의 가치가 한낱 휴지처럼 구겨박혔을 때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들은 ‘진리와 양심을 외면하고 거역하는 집권자의 죄악’을 직시하고자 분연히 일어났다. 그때부터 명동은 민주 회복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이땅의 가장 낮은 곳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의 등대이자 구난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폭도’의 누명을 쓴 채 거처할 곳 없이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으로 기댄 곳도 김 추기경이었다. 8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압정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캠퍼스마다 성난 물결이 넘치고 감옥이 양심수들로 그득했을 때, 우리는 명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민주화의 들불로 타오르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집회와 농성은 명동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명동의 어르신인 당신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으므로 그곳은 바로 우리의 ‘진지’라고 지레 믿었다. 1986년 찌는 듯한 어느 더운 날에 우리는 ‘부천서 성고문사건 규탄연대집회’의 장소를 구하기 위해 김 추기경을 찾았다. 그때 동석한 한 야당 지도자를 향해 김 추기경께서는 ‘국민이 선출해 주었으면 국회에서 잘해야지.’하시며 마뜩잖아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조차도 암묵적 동의와 격려로 알고 집회를 강행했고 그곳은 수라장이 되었다. 하여,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그 ‘명동농성’이 있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명동은 김 추기경이 있어 어두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이 쉴 수 있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고 절절한 소망을 외치던 그 수많은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행진을 우리 역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견고한 벽을 뚫고 중생의 번뇌로 출렁이는 사바세계로 현현한 순간이었다. 그때 교회는 진실로 화려하고 장중한 교회건물로부터 그리고 성탄절마다 소리내는 자선냄비로부터 해방되어 이땅의 고난 속에서 스스로 거듭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이 땅의 모든 양심, 고해에 허덕이며 내일에의 꿈을 잃지 않은 고달픈 중생들에게 이제 김수환 추기경은 영원한 ‘이데아’요, ‘역사’요, ‘대중의 의지를 대표하는 위인’이었다. 우리 시대는 아직 위인을 부르고 있다. 빈자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는데 권력은 자꾸 뒷걸음치려 한다. 바라건대 부디 생전처럼 높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고 ‘아무 곳에나 잘자라는 앉은뱅이 민들레로 돋아/ 타는 마음으로 이 땅을 지켜보다/ 꽃 다하면 풀씨로 산천 떠돌며’ 이 땅을 굽어 살피시기를. <전 국가인권위원>
  • 조원희, EPL 위건과 18개월 계약 합의

    조원희, EPL 위건과 18개월 계약 합의

    조원희(26)가 한국인 제6호 프리미어리거로 탄생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위건 애슬레틱과 1년6개월간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의 ‘더 선’은 18일(한국시간) ‘위건 스티브 부르스 감독이 조원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18개월 계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구단의 한 관계자가 “모든 부분에서 합의를 이뤘다. (영국의) 워크퍼밋(취업허가서)을 받기만 하면 계약서에 사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국국가대표인 만큼 형식적인 절차만 남아있다”고 전했다. 위건도 이날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조원희가 현재 (위건의 홈구장인) JJB 스타디움에서 트라이얼중이다. 다음주쯤 구단과 사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말 K리그 수원 삼성과 계약이 끝나면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조원희가 축구선수들이 ‘꿈의 무대’인 프리미어리그에 여섯번째 한국인 선수로 입성하게 됐다. FA가 되면서 러시아 톰 톰스크FC와 일본 J리그 팀들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해외진출을 타진했던 그는 지난달 초 프랑스 프로축구 AS모나코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으며 유럽행을 추진했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 등의 문제로 모나코행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오히려 프리미어리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위건의 스티브 브루스 감독도 구단 홈페이지에서 “조원희가 지난 며칠간 우리와 훈련을 했는데. 좋은 인상을 받았다. 다른 팀과 계약이 없다면 우리와 계약할 것”이라고 밝혀 조원희의 입단을 시사했다. 영국 축구전문 채널 ‘스카이 스포츠’도 ‘조원희가 브루스 감독의 전술 운영에 좋은 옵션을 제공할 것’이라며 조원희의 위건행을 가시화했다. 지금까지 EPL에서 뛴 한국인 선수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비롯해 이영표(전 토트넘). 설기현(전 풀럼).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김두현(웨스트 브롬위치) 등 다섯명이었다. 조원희가 위건에 정식으로 입단하게 되면 여섯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로 등록된다. 위건은 지난 2005~2006 시즌에 1932년 창단 이래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한 팀으로. 현재 리그 7위(9승7무9패·승점34)로 중상위권에 들어있다. 그동안 안정환. 이천수. 박주영. 조재진 등 국내 스타급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할 때마다 이름이 거론된 팀이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부디 하늘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 시민·네티즌·천주교회 반응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애도했다. 특히 1970~1980년대 소용돌이의 한국 현대사에서 언제나 직언을 마다하지 않고 올곧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 김 추기경의 생전 행보에 시민들은 교파를 떠나 안타까워했다. ●종파 초월한 포용정신 기려 오승균(27·학생)씨는 “우리나라 천주교에서 오랫동안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누구나 거리낌 없이 존경할 만한 분이셨는데 아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지은(24·여)씨는 “정진석 추기경 이전 우리나라 유일한 추기경으로서 그분은 거목 같았다. 병환에 오래 계셔서 곧 선종하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소식을 들으니 당황스러울 뿐”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시민들도 김 추기경이 생전 보여줬던 포용의 정신을 기렸다. 직장인 최모(54)씨는 “종교인이 보여야 할 표상을 평생 온몸으로 실천한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인터넷에는 김 추기경을 기리는 추모사이트가 마련됐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고 김수환 추기경 편히 잠드소서’라는 추모사이트(http://web.pbc.co.kr/legacy/event/cardinal_ksh/)에는 추기경의 약력과 영상모음, 추모게시판 등으로 꾸며졌다. 아이디 ‘성요셉’이 “서민들 마음 속 빛이 되셨던 추기경님 편히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이라고 올리는 등 수백편의 글이 올라왔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ID ‘술래잡기’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셨던 추기경님. 이렇게 가시다니…. 부디 하늘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소서….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석해 했다. 네이버에도 그의 선종을 알리는 게시판에 순식간에 추모 리본이 수천개씩 달리며 추모의 물결이 계속됐다. ●전국 천주교회 슬픔에 잠기다 김 추기경이 태어난 곳이자 사제 서품을 받은 대구대교구 등 전국의 천주교회에서는 이날 밤 곧바로 추모 미사를 준비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대구대교구는 선종 소식을 접하자마자 ‘주교평의회’를 소집해 1951년 9월 김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계산성당에서 17일 오전 11시 공식 분향소를 설치, 신도들의 조문을 받기로 했다. 대구대교구 관계자는 “추기경님은 격동의 한국사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신 분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1966년 김 추기경이 주교로 임명된 마산교구도 17일 교구 차원에서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마산교구 관계자는 “추기경님이 주교로 처음 임명된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내일 마산교구 차원에서도 빈소가 차려지고 각 성당별로 추모 미사와 기도가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당시 주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임하던 중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주교로 임명됐다. 부산과 광주대교구 역시 17일 오전 사제평의회를 열어 추모 미사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재학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은 “추기경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에 큰 구멍이 난 것 같다.”면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 봉사했던 가톨릭의 큰 어른을 잃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서울 이재연·대구 김상화기자 oscal@seoul.co.kr
  •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향년 87세.  천주교 서울대교구 고위 관계자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이 이날 6시12분 선종했다고 밝혔다.김 추기경의 안구 등 장기는 고인의 뜻에 따라 기증될 예정이다.  앞서 서울대교구 한 관계자는 이날 오후 4시반부터 관계자들이 김 추기경의 임종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에서 고인의 장례미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지난해 8월29일부터 건강 악화로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고인이 세상에 공개된 마지막 모습이다.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김 추기경은 입원 이후에도 생명연장 장치 사용을 거부해왔으며,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 큰 고통 없이 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주치의였던 강남성모병원 정인식 교수는 “추기경께서는 노환에 따른 폐렴 합병증으로 폐기능이 떨어져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호흡했다.”면서 “선종때까지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추기경께서는 평소 늘 하시던 말씀대로 임종을 지켜본 교구청 관계자들과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고인은 1951년 사제서품을 받았고,초대 마산교구장(1966년)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정년(75세)을 넘긴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교회와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곧 깊은 관심을 가졌던 김 추기경은 독재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1970년에는 3선 개헌·유신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 행보에 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정권의 거센 압력 속에서도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고자한 고인의 신념에 힘입어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김 추기경은 또 장애인과 사형수·빈민 등을 만나 소외받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노력했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기구로 설립,복지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고인은 1999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등 2권의 책을 발표했다.이 책에서 김 추기경은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또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 지난 1966년 주교서품을 받으면서 사목표어로 정한 이 말 처럼 김 추기경은 자신의 신념을 평생에 걸쳐 실현하고 따뜻한 미소를 남긴 채 떠나갔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김수환 추기경 약력  ▲1922년 5월8일(음력) : 대구 출생  ▲1941년 :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 상지대 입학  ▲1942년 : 상지대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년 : 2차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51년 :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신학전공  ▲1951년 : 사제서품 및 대구 대교구 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3년 : 대구 대주교 비서 신부  ▲1955~56년 : 대구 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6~63년 :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 사회학전공  ▲1964년 : 주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 마산교구 주교 서품 및 마산 교구장 착좌  ▲1967년 이후 : 교황청 세계 주교 시노드(대의원회의)에 한국대표로 6차례 참석  ▲1968년 : 서울 대주교 승품 및 서울 대교구장 착좌  ▲1969년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 서임  ▲1970~75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년 :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5~98년 : 평양교구장 서리  ▲1981~87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2차 역임)  ▲1998년 : 서울대교구장 은퇴,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1998~99년 :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위원장,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초대 이사장  ▲2001년 :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상임대표  ▲2003년 : 생명21운동 홍보대사  ▲2009년 2월16일 : 선종    ●김수환 추기경의 명예학위  ▲1974년 :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1977년 : 미국 노틀담대 명예법학박사  ▲1988년 : 일본 상지대 명예신학박사  ▲1990년 : 고려대 명예철학박사,미국 시튼홀대 명예법학박사  ▲1994년 : 연세대 명예신학박사  ▲1995년 : 대만 푸젠 가톨릭대 명예철학박사  ▲1997년 : 필리핀 아테네오대 명예인문학박사  ▲1999년 : 서울대 명예철학박사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공교육 아름다움 일깨운 ‘임실 혁명’ 대학생 직장인 눈물겨운 부채탕감 비책 ”고용유지도 힘든데 나누긴 뭘” ’워낭소리’ 성공했지만 갈길 먼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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