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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관예우 여전히 존재” 변호사 10명 중 9명…변호사 80% “전관예우 안 없어질 것”

    “전관예우 여전히 존재” 변호사 10명 중 9명…변호사 80% “전관예우 안 없어질 것”

    ‘전관예우’ 전관예우가 여전히 팽배하다는 여론이 변호사들 사이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변호사 10명 중 9명은 여전히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명 중 4명은 전관예우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8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달 14일부터 지난 8일까지 소속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9.7%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는 서울변회 회원 중 1101명이 참여했다. 전관예우 관행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7.5%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전관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들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32.9%는 ‘음성적이고 변형된 형태로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형로펌이 경쟁적으로 전관 변호사를 영입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9.5%가 전관예우로 수사나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의뢰인들이 전관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32.1%였고, 유관기관에 로비를 하기 위해서라는 답변도 9.4%였다. 설문에 응한 변호사들의 47.2%는 민·형사 재판 모두에서 결론에 전관 변호사들의 영향력이 미친다고 답했다. 35%는 검찰 수사단계에서, 22.1%는 형사 하급심 재판에서 전관예우가 심하다고 봤고, 민사 하급심 재판에서 전관예우가 발생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5.9%였다. 고위공직자가 대형 로펌에 고문으로 취업하는 것에 대해 38.8%는 ‘변호사 자격이 없는 고위 공직자의 고문 취업은 로비를 위한 것이므로 금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34.3%는 ‘전관예우의 일종으로 마땅히 금지돼야 한다’고 답했고,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개인의 선택 문제로 비난하기 어렵다’는 답변은 21.5%였다. 고위 공직자가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가 다시 공직에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에 대해서도 53.1%가 ‘근무했던 로펌에 특혜를 줄 우려가 있어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근 논란이 된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근무했던 사람이 대형로펌에 입사해 자신이 근무했던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을 맡는 것과 관련해서는 60.2%가 로클럭에게도 전관예우금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퇴직 전 근무지의 사건을 1년 동안 맡지 못하도록 한 ‘전관예우금지법’은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응답자의 64.7%는 ‘법을 피해 우회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어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전관예우 근절 방안으로는 평생 법관제 또는 평생 검사제 정착(23.4%), 재판 모니터링 강화(18%), 전관 변호사 수임내역 공개(15.9%), 퇴직 후 일정기간 변호사 개업 금지(15.9%) 등을 꼽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송전탑·쌍용차… 끝까지 ‘낮은 곳’ 밝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례하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3명을 비롯해 각계 인사 1500여 명이 참석할 전망이다. 교황은 직접 집전하는 미사 강론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메시지를 선포한다. 남북 천주교의 만남으로 관심을 모았던 북한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명동성당 미사는 교황의 방한 전부터 시선이 집중됐던 사안이다.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교황이 메시지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4일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를 비롯해 여러 행사를 통해 거듭 화해와 평화를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허영엽 교황방한위원회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관되게 복음에 기반을 둔 평화의 중요성과 그를 위한 지속적인 대화를 중시한다”면서 “교황이 한국에 오신 것은 아시아를 만나러 온 것인 만큼 북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염두에 둔 포괄적인 메시지를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교황방한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미사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대거 초청됐다. 6·25전쟁 전 평양·원산·함흥을 비롯한 북한 지역 교구에 소속됐던 사제와 수녀, 신자 등 실향민 외에 새터민과 그 가족들,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 관계자 5명도 포함됐다. 한국과 교회의 미래를 위한 측면에서 중·고교생 50명도 초청됐으며 경찰과 환경미화원, 장애인, 메리놀 수도회, 천주교 사회봉사단체인 한국카리타스 관계자, 가톨릭 노동장년회원, 가톨릭 농민회원 등도 자리를 함께할 예정이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인술(仁術)을 펼쳐 지난해 ‘교회와 교황을 위한 십자가 훈장’을 받은 치과의사 강대건(82)씨도 미사에 초청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기 직전 7대 종단 지도자들과 만남을 갖고 성당에 입장하면서 서울대교구 직원을 비롯한 이들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한편 허 대변인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가 초청장을 보낸 뒤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 천주교 신자들의 참석을 요청한 데 대해 내부사정상 참석이 어렵다는 답장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황 시복식·복자품 뜻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 거행

    ‘교황 시복식’ ‘복자품 뜻’ ‘시복식 뜻’ ‘윤지충’ ‘바오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집전한 시복미사는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를 가톨릭 교회가 신앙의 본보기로 공식 선포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날 오전 10시 교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 안명옥 주교의 시복 청원과 김종수 신부의 약전 낭독에 이어 순교자 124위에 대해 시복 선언을 했다. 가톨릭 교회가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을 복자(福者), 복녀(福女)라 하는데, 시복(諡福)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를 복자로 선포하는 교황의 선언을 뜻한다. 복자와 복녀가 시성되면 각각 성인, 성녀가 된다. 복자와 성인은 공경의 범위가 다르다. 복자에 대한 공적 경배는 교황이 허락한 특정 교구와 지역, 수도회 안에서만 이뤄지며 가톨릭 전체 교회에 의무가 아니지만 성인은 세계 교회의 공경 대상이다. 이번 시복 선언까지는 한국천주교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앞서 한국 교회 차원의 시복 조사를 진행해 2009년 모두 125위에 대한 시복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으며, 지난 2월 교황이 한국의 가톨릭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을 결정했다. 이때 124위와 함께 시복 청원된 ‘한국인 2호 사제’ 최양업 신부는 순직자여서 별도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복된 124위는 초기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들이다. 신유박해(1801) 때 희생자가 53위로 가장 많고, 신해박해(1791), 을묘박해(1795), 정사박해(1797),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1888) 등에 걸쳐 있다. 하지만 시복의 의미가 단순히 순교자 124위의 숭고함을 기리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순교자의 교훈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새기는 의식이기도 하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류한영(57) 신부는 최근 인터뷰에서 “시복은 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된 무고한 순교자들의 숭고한 행위가 헛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졌음을 선포하고 오해받은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순교자들이 박해자를 증오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맞은 정신을 살려 유교와 천주교가 화해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에서 시복시성된 인물은 국내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가톨릭 성인 103위가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시성식을 직접 주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렘·간절함·경건함으로… 교황 맞이하는 사람들] “그분 곁에서 미사 돕게 돼… 생애 한 번뿐인 축복”

    [설렘·간절함·경건함으로… 교황 맞이하는 사람들] “그분 곁에서 미사 돕게 돼… 생애 한 번뿐인 축복”

    “다른 신자들과 함께 교황님이 카퍼레이드하실 때 ‘비바 파파’(교황 만세)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기로 했어요. 교황님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15일 만난 이경순(57·여·세례명 루치아)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게 될 설렘에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이씨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의 영성체 예식 때 ‘성체 분배 복사’(사제를 돕는 평신도)로 참여한다. 영성체는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의미로 밀 제병(성체)을 신자들에게 나눠 주는 의식이다. 이씨는 사제들이 성체를 나눠 줄 때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된다. 700여명의 성체 분배 복사 중 한 명인 이씨는 천주교 평신도 리더를 양성하는 ‘꾸르실료’에서 활동하고 있어 역사적인 시복 미사의 봉사자로 뽑혔다. 이씨는 다섯 살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유아세례를 받은 후 50여년을 천주교도로 살아왔다. 남편과 아들, 딸 모두 천주교도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갈 수가 없었어요. 너무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교황님을 뵙게 돼 한을 풀게 됐습니다.” 교황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A블록’을 배정받아 더욱 기쁘다는 이씨는 “우리 본당(천주교 서울대교구 대치2동본당)에서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들 모두 ‘생애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며 환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교황님은 가톨릭 신도인지 아닌지를 떠나 모든 소외받는 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셔서 더 존경스럽다”면서 “특히 자식 잃은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교황님의 메시지로 위로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어 “분초를 다투는 일정이던데 고령이신 만큼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그분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교황,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 깜짝 방문

    교황,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 깜짝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저녁 서강대를 깜짝 방문했다. 서강대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후 8시쯤 서울 마포구 서강대 사제관을 방문해 예수회 한국관구 신부와 수사 등 100여명과 환담을 나눴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강대 재단인 예수회 출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담 자리에서 사제들에게 “낮은 곳에서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사목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특히 김정택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고통받는 한국 사회를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박대통령 “비엔베니도 아코레아”… 교황, 새터민·이주노동자와 일일이 악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박대통령 “비엔베니도 아코레아”… 교황, 새터민·이주노동자와 일일이 악수

    교황으로 역대 세 번째로 한국 땅을 밟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제스처는 없었다. 앞서 1984년 역대 교황으로는 처음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서 땅에 입을 맞췄다. 그런 만큼 돋보인 것은 때로는 은은하고, 때로는 어린아이같이 환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소였다. 교황은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의 기내 영접을 받은 뒤 난간을 잡고 트랩을 천천히 내려와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박 대통령은 교황을 뒤따르며 나서지 않았다. 종종 TV 화면에서도 사라졌다. 앞서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당시에도 각각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공항에서 직접 교황을 영접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지난해 2월 취임 이래 친서를 포함해 네 차례 서한을 전달했고, 한국을 방문한 교황청 고위 인사에게 구두로 초청 의사를 전달하는 등 교황의 방한을 다섯 차례 요청했다. 교황의 사제복인 흰색 수단에 맞춰 연분홍빛 상의와 회색 바지를 차려입은 박 대통령은 교황을 영접하면서 “오셔서 환영합니다”(비엔베니도 아코레아)라며 간단한 스페인어로 환영인사를 전하고 “여행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교황을 모시게 돼서 온 국민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인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다. 교황은 박 대통령이 “이번 교황의 방문으로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답했고, 박 대통령은 “행복하고 뜻깊은 방문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을 환영하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며 세계 가톨릭 교회 최고지도자인 교황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교황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등학생 남녀 화동(花童) 2명이 꽃다발을 건네자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어 교황은 박 대통령과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한 뒤 정부 주요 인사와 주교단, 평신도 환영단의 영접을 받았다.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교황에게 평신도 환영단을 한 명씩 소개했으며 교황은 환영단으로 나온 세월호 유족, 이주노동자, 새터민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평신도 환영단 중에는 교황과 인사를 한 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공항 환영행사는 이것이 전부였다. 의전을 원치 않는 교황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저 환영단과 인사를 마치고 박 대통령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소형 차량 쏘울을 타고 현장을 떠났다. 박 대통령은 쏘울에 올라타는 교황을 향해 “이따 뵙겠습니다”(노스데모스 루에고)라며 다시 스페인어로 인사를 전했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알리탈리아항공의 교황 전세기(에어버스 330)에는 7개 한국 언론사 기자를 비롯해 AP, AFP, 로이터, CNN 등 전 세계 유력 언론사 기자 70명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교황은 우선 숙소인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으로 바로 이동했다. 교황은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개인 미사 시간을 가졌으며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동, 한국천주교 주교단과 직원들을 만나 연설하는 것으로 방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교황, 하늘길 열어준 中에 “축복” 단절됐던 中·바티칸 화해 무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중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국민을 향해 축복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인민망이 14일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시 주석에게 보낸 전보에서 “중국의 영공에 들어서면서 각하와 중국 국민에게 축복을 드린다. 중국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답신을 보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자국이 전과 달리 교황을 위해 하늘길을 열어준 것을 계기로 양측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외신들의 보도를 비중 있게 다루는 등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양측은 1951년 바티칸이 타이완 정부와 수교했다는 이유로 관계를 단절했다. 이후 1957년 중국이 관제 단체인 ‘천주교 애국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주교를 서품하는 식으로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고 천주교 애국회 이외의 사제와 신도를 탄압하면서 갈등을 겪어 왔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방문에 나섰을 때 중국이 영공 통과를 거부해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야 했다. 환구시보는 이날 자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인용해 “바티칸은 오랫동안 중국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해 왔으며, 타이완과 단교할 의사도 표명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바티칸이 타이완과 단교해야 수교한다는 방침이지만 바티칸이 주도적으로 기존 외교 관계를 단절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론 인터뷰에서 “시 주석 선출 뒤 (축하)편지를 보냈고 시 주석으로부터 답신도 받았다”고 말하는 등 양측 간 관계 개선 신호가 이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영접 통역한 정제천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영접 통역한 정제천 신부

    14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공항에 도착한 이후 10여분에 걸친 영접 행사 내내 교황 뒤를 따르며 동분서주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4박 5일간 그림자처럼 교황을 수행하며 통역을 도맡을 정제천(57) 예수회 신부. 광주에서 태어나 33세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속된 예수회에 입회, 6년 뒤 사제품을 받은 해외통 신부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2년간 스페인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2009년 최종 서원했다. 정 신부가 이번 수행비서 겸 통역 담당자로 낙점된 건 교황방한을 앞두고 교황청이 예수회 한국관구에 요청한 데 따른 것. 교황과 같은 예수회 소속 신부 중 한국에 있으면서 스페인어와 이탈리어에 능통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정 신부는 교황의 수행 및 통역 비서로 간택된 데 더해 다음달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예수회 한국관구장에 피선, 겹경사를 누리게 됐다. 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든 일정을 함께하며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긴다. 실제로 서울공항 영접행사가 끝난 뒤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이동하는 차 옆자리에 동승한 뒤 이날 하루 종일 교황과 동행했다. 숙소도 교황과 같은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정해 교황의 첫날 밤부터 같은 지붕 아래 몸을 뉘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교황의 메시지는 단 하나, 마주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제 우리 땅을 밟았다. 교황으로는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의 방한으로, 오는 18일까지 닷새 동안 머물며 갖가지 위로와 축복의 걸음을 내디딜 예정이다. 그렇지 않은 교황이 없었겠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더욱 지구촌 인류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꼽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지구촌 영향력 1위’의 인물로 꼽은 것이나, 이에 누구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는 것이나 모두 그의 한결같은 하심(下心)을 지구촌 모두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과 평화의 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삼은 데서 보듯 사제로서의 그의 삶 46년은 끝없이 낮은 곳을 찾아 친구가 되는 여정이었다. 지난해 3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그의 터전은 조국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였다. 그곳에서 가난한 자들과 친구가 됐고, 에이즈 환자의 발에 입을 맞췄고, 마약중독자들 곁을 지켰다. 가톨릭 교회의 교종(敎宗)에 오른 뒤에도 그는 이 영적이면서도 세속적인 지위에 갇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슬림의 발을 씻기는 등 지평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교황 관저나 방탄차량을 마다한 것이나, 트위터를 즐기면서도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 등은 이제 그를 설명하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 만큼 파격적 소통과 개혁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해보다 눈물이 많은 올해 화해와 평화의 전령인 그가 이 땅을 찾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우리 스스로 만든 재난과 비극 앞에서 신음하고 있는 다수 국민들에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위로와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족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명동성당 미사나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 등은 분열과 반목, 갈등과 대립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분명 고난을 이겨낼 치유의 힘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 교황이 안겨줄 축복을 우리가 온전히 담아 안을 준비가 돼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선뜻 긍정의 답을 찾기가 어렵다. 저마다 교황으로부터 받을 축복의 선물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과연 닷새 동안 교황이 남길 메시지를 앞으로 온전히 실천해 나갈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여야 정치권이 저마다 교황의 메시지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촌평하는 것부터가 교황이 떠난 이후 새삼 겪어야 할 분열상을 보는 듯해 걱정이 앞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새 시대정신은 ‘가난·겸손·섬김’이다. 무엇보다 ‘다름’을 포용할 것을 주문한다. 그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강조한 이른바 ‘행복 십계명’의 첫 번째가 ‘내 방식의 삶을 살되 타인도 자기의 삶을 살게 두자’이고 두 번째가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인 것이 이를 말해준다. 교황으로부터 받을 축복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베풀 축복을 고민할 때다. 그리고 그런 고민 끝에 찾아낼 답이 신을 대신한 교황의 진정한 축복일 것이다. 교황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본다. 그의 삶이 그랬듯 ‘서로 마주보라’는 것이다. 끝없는 대립과 갈등을 거두고, 그 자리에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과 관용을 채우라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힘 없는 자를 섬기고, 가진 자들은 없는 자들을 살피라는 것이다. 저마다 ‘내 탓이오’를 다시금 외칠 때다.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탈한 교황 ‘기내 스킨십’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탈한 교황 ‘기내 스킨십’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 환하고 인자한 얼굴 표정, 평범한 식사와 좌석까지….’ 13일(현지시간) 교황청 전세기가 이탈리아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을 이륙한 지 40분 만에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문 그대로’ 소탈하고 살가웠다. 교황의 사제복인 흰색 수단을 입은 교황은 동승한 70명의 기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몇몇 기자들과는 사진도 찍었다. 한국 기자들에게는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인사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숨진 언론인을 위한 기도였다.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취재 도중 숨진 이탈리아 사진기자를 거론하며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고인을 위해 침묵 속에 기도하자고 제안하고 30초가량 고개를 숙인 뒤 손을 모아 기도했다. 교황이 이번 방한에 이용한 알리탈리아항공의 ‘에어버스 330’기는 다른 항공기와 차이점이 없었다. 교황을 위한 사무·휴식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11시간 30분 동안 줄곧 비즈니스석 의자에 앉아서 와야 했다. 식사도 이탈리아 일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저녁 식사는 전식, 메인 요리, 디저트로 구성돼 있었다. 전세기에 탑승한 100명의 교황청 관계자와 취재 기자들은 모두 같은 음식으로 식사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연합뉴스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헬로 파파… 화해의 씨앗 활짝 피어나는 계기되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헬로 파파… 화해의 씨앗 활짝 피어나는 계기되길”

    25년 만에 교황을 맞는 14일 전국은 들썩거렸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 각 성당은 일제히 교황 환영 메시지를 담은 깃발,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날 오전 서울공항으로 도착한 교황의 환영행사 생중계를 기차역과 터미널 대합실 등에서 TV로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에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천주교 신자들의 감격은 더욱 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착하기 전부터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 근처 청와대 분수대 앞은 상기된 표정으로 교황을 맞이하려는 천주교 신자 200여명으로 북적였다. 모두 파란색 티셔츠를 차려입은 이들은 초대교회 공동체 운동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소속 교인들이었다. ‘복음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등 현수막을 든 교인들은 한국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로 복음송을 부르며 교황을 기다렸다. 그 앞을 지나던 교황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흘들어 줬다. 최용근(24·대학생)씨는 “교황님 영접을 앞두고 월요일부터 다 같이 기도하면서 말씀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며 “오늘 플래카드 드는 일을 맡았는데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전국 각 성당에는 평소보다 많은 신자들이 찾아 기도를 올리며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교황 방한 첫날 사제들의 시선이 주목된 곳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황이 맨 처음 사목 방문지로 택한 것이 주교회의인 데다 서울의 변두리까지 직접 찾아간 곳이어서 감격은 더했다. 이날 오후 5시 20분쯤 천주교주교회의 건물 들머리에 늘어선 사제와 수녀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됐다. 교황대사관에서의 짤막한 개인 미사 후 청와대를 예방해 대통령 면담, 공직자들과의 만남을 하고 찾아온 교황을 친견한다는 설렘 때문이다. “교황님 도착하셨습니다.” 누군가의 외마디 알림에 모든 시선이 들머리로 향했다. 마침내 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걷는 교황의 현신. “교황님 고맙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가운 맞음의 순간이 끝나고 사제의 안내로 7층 소성당에 들어선 교황의 기도 소리가 잔잔하게 퍼졌다. 교황의 기도를 지켜보는 사제와 수녀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현직 주교단 25명과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등 은퇴 주교 8명이 마음의 기도를 함께 바쳤다. 국내 16개 천주교 교구협의체인 주교회의는 대내외적으로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해 교황청이나 외국 교회와의 연락 업무도 맡는다. 이날의 만남은 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이 지역 교회를 돌보는 주교들을 격려하며 세계 교회의 하나 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사목 방문을 거듭 강조했던 교황이 먼저 한국 천주교 주교단을 만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 그렇다 해도 한국의 사제들은 여독에 지친 몸으로 서울의 변두리까지 걸음해 준 교황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찍이 “주교들을 보려면 그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중곡동행을 고집했다. 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 집전차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의 주교단을 만난 곳은 숙소인 주한 교황대사관이었다. “이렇게 먼 길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가 끝나고 4층 강당으로 자리를 옮긴 교황에게 주교단을 대표한 강우일 주교가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화답했다. “순교자들이 씨앗을 뿌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 이 나라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해진 신앙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빕니다.” 이탈리아어로 답례 연설을 끝낸 교황이 환하게 웃었다. 주교들과 한 사람씩 인사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자 어느새 오후 6시 30분. 교황은 그렇게 한국 땅에서의 첫 사목 방문을 마무리하며 중곡동을 떠났다. 그리고 숙소인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한식과 양식을 곁들인 보통 가정집의 조촐한 저녁 식사로 한국 땅에서의 첫날 공식일정을 마무리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손 맞잡고 위로…방한 일정 시작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손 맞잡고 위로…방한 일정 시작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을 만나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10시 16분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과 인사하면서 손을 맞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공항 환영행사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故) 남윤철 안산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 씨와 부인 송경옥 씨, 사제를 꿈꿨던 예비신학생 고 박성호(단원고 2학년) 군의 아버지 박윤오 씨, 일반인 희생자 고 정원재 씨의 부인 김봉희 씨 등 세월호 유족 4명이 참여했다. 교황 입국과 비슷한 시각 청운동사무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한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교황이 전한 메시지를 듣고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대책위는 전날 광화문광장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교황에게 드리는 편지’를 전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의 소망을 항상 약자와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는 전 세계인과 나눠달라”고 당부했다. 편지에는 참사 당시 교황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 것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월호 가족 10명은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미사 직후 교황과 비공개로 면담할 예정이다. 특히 대전 미사에서는 전국을 도보순례 중인 세월호 가족 3명이 지고 다니는 십자가를 교황이 직접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가족대책위는 전했다. 광화문 시복미사가 열리는 16일에도 일부 가족들이 교황을 만나고, 17일 폐막미사에는 생존 학생과 부모들이 참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식에 네티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정부가 느끼는 바가 있기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전달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전달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 교황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제천(57) 신부는 지난 6월초 예수회 총장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로부터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으로 임명돼 9월부터 한국관구를 이끌게 됐다. 정제천 신부는 한국관구장에 임명된 뒤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게 표면상 이유였지만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관련해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한국 내 수행비서 겸 통역을 겸한다. 교황청과 함께 교황의 빡빡한 일정 관리와 함께 눈과 귀, 입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정제천 신부는 입국장인 서울공항에서도 교황이 영접 나온 박 대통령과 인사할 때도,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롯한 다른 환영객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교황 곁을 지켰다. 또 공항에서 나와 숙소인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향하는 국산 소형차 쏘울에도 교황 옆에 나란히 앉아 눈길을 끌었다. 정제천 신부는 1990년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해 석·박사를 모두 이곳에서 땄다. 최근까지 예수회 양성 담당 및 하비에르 공동체 원장을 맡아 왔다. 정제천 신부는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직후에 “이 시대 성령의 도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는 착한 목자가 되시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교황의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위로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말씀해주시길”,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정부는 잊어버린 것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14일 아시아 국가 첫 국빈 방한

    프란치스코 교황, 14일 아시아 국가 첫 국빈 방한

    12억 천주교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이자 세계인의 정신적 지도자로 통하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14일 한국천주교와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3월 즉위한 이후 해외를 방문하는 것은 브라질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요르단 3국에 이어 세 번째다. 아시아 지역 첫 방문이며 특히 순방이 아닌 한국 단독 방문이어서 세계인의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역대 교황이 한국을 찾은 것은 1984·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프란치스코가 세 번째로 이번 방문은 25년 만의 교황 방한인 셈이다. 14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시작으로 서울과 대전 등 충청권을 오가며 4박 5일간 20여개의 행사에 참석하는 빡빡한 일정을 이어 간다. 이번 방한의 주목적인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를 비롯해 서울 광화문 124위 순교자 시복식, 성모승천대축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등 네 차례에 걸쳐 대규모 미사를 직접 집전한다. 교황은 미사 중 강론을 통해 특유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선포할 예정이며 특히 방한 마지막 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례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한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에 강력한 주문과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져 나라 안팎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즉위 이후 ‘가난한 자와 가난한 교회’를 천명, 사제들에게 ‘거리로 나가라’고 외쳐 온 교황은 방한 중 천주교 사목 방향도 새롭게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 최고 성직자 30명과 아시아 각국 주교 60명이 교황을 따라 한국을 찾는다. 각종 미사와 집회 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롯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잇달아 만나 위로하면서 소통과 배려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할 예정이다. 교황은 입국을 앞둔 13일 오후 5시쯤 트위터에 한글로 적은 글에서 “한국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며 한국과 아시아 전역을 위한 저의 기도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is@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 통해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 통해 위로

    ’교황 통역’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정제천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통역을 맡은 예수회 정제천 신부를 통해 세월호 유족들의 상처를 위로했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을 만나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10시 16분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과 인사하면서 손을 맞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공항 환영행사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故) 남윤철 안산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 씨와 부인 송경옥 씨, 사제를 꿈꿨던 예비신학생 고 박성호(단원고 2학년) 군의 아버지 박윤오 씨, 일반인 희생자 고 정원재 씨의 부인 김봉희 씨 등 세월호 유족 4명이 참여했다. 교황 입국과 비슷한 시각 청운동사무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한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교황이 전한 메시지를 듣고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대책위는 전날 광화문광장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교황에게 드리는 편지’를 전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의 소망을 항상 약자와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는 전 세계인과 나눠달라”고 당부했다. 편지에는 참사 당시 교황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 것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월호 가족 10명은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미사 직후 교황과 비공개로 면담할 예정이다. 특히 대전 미사에서는 전국을 도보순례 중인 세월호 가족 3명이 지고 다니는 십자가를 교황이 직접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가족대책위는 전했다. 광화문 시복미사가 열리는 16일에도 일부 가족들이 교황을 만나고, 17일 폐막미사에는 생존 학생과 부모들이 참석한다. 앞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측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을 순 없다”면서 시복식 장소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에 대한 강제퇴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황의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위로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말씀해주시길”,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정부는 잊어버린 것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 “세월호법 외면하는 정치인에게 일침을”

    [교황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 “세월호법 외면하는 정치인에게 일침을”

    “교황님께 자본 논리에 희생된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에 일침을 가해 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고 박성호(17·세례명 임마누엘)군의 어머니 정혜숙(46·세례명 세실리아)씨는 지난해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알려졌을 때 한껏 들떴던 아들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고 했다. 정씨는 13일 “(마음이) 아파요. 너무 아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모태 신앙으로 시작해 예비신학생 과정에 들어선 박군은 고 이태석(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다. 정씨는 “성호가 17일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 미사에서 교황님을 뵐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천국에 있을 성호 대신 교황님을 만나 40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서명한 특별법 제정을 외면한 한국 정치인들에게 따끔한 조언을 해 달라고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를 비롯한 세월호 희생자 유족 30여명은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초대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메시지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메시지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 교황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방한할 때 교황 곁을 줄곧 떠나지 않은 사람이 눈에 띄었기 때문. 그는 바로 정제천(57) 신부로 지난 6월초 예수회 총장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로부터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으로 임명돼 9월부터 한국관구를 이끌게 됐다. 정제천 신부는 한국관구장에 임명된 뒤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게 표면상 이유였지만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관련해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한국 내 수행비서 겸 통역을 겸한다. 교황청과 함께 교황의 빡빡한 일정 관리와 함께 눈과 귀, 입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정제천 신부는 입국장인 서울공항에서도 교황이 영접 나온 박 대통령과 인사할 때도,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롯한 다른 환영객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교황 곁을 지켰다. 또 공항에서 나와 숙소인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향하는 국산 소형차 쏘울에도 교황 옆에 나란히 앉아 눈길을 끌었다. 정제천 신부는 1990년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해 석·박사를 모두 이곳에서 땄다. 최근까지 예수회 양성 담당 및 하비에르 공동체 원장을 맡아 왔다. 정제천 신부는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직후에 “이 시대 성령의 도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는 착한 목자가 되시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교황의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위로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고맙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특별기고] 신령한 향기와 같은 분, 혼돈과 악취를 걷어주소서

    [특별기고] 신령한 향기와 같은 분, 혼돈과 악취를 걷어주소서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속적으로는 사제요, 주교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아닙니다.”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봉헌한 첫 미사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분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이 되고 나서도 그 직위가 제공하는 많은 특혜를 내려놓는 것으로 직무를 시작했다. 교황 관저 대신 여행자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고, 이탈리아 장인이 바느질한 수단과 명품 구두를 사양하고 대신 자신이 평소에 입던 값싼 소재로 만든 수단과 낡은 구두를 그대로 신고, 전용 리무진 대신 작은 차를 탔다. 즉위 시 교황청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보너스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오랜 세월 지켜 온 관행을 깨기도 했다. 그분의 이런 행보는 새삼스러울 것도 파격적일 것도 없었다. 예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따르고자 하는 제자 된 모습은 검은 사제복을 입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 사람들의 삶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해 온 교구신부 시절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분은 대교구장, 추기경을 거쳐 2013년 3월 3일 베드로 성당의 굴뚝에서 피어 오른 흰 연기를 신호로 “지극히 탁월하고 공경받으실 분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라는 선포와 함께 그 이름이 세계로 타전되었다. 그렇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게 있을까. 교황청이란 오래고 거대한 종교 조직의 관행과 부패의 척결은 쉽지 않겠지만, 나이 많은 추기경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예수 십자가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려는 성직자의 본분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세족식에서 마약 중독자의 발을 씻겨 준 뒤 그 발에 입을 맞추는 모습, 베드로 광장에서 신경섬유종 환자를 포옹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 그분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환자 가족이 침대째 환자를 데려와서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선뜻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 환자에게 입 맞추는 모습은 그분 자신이라기보다 그분 안의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때의 초점은 정작 입맞춤과 포옹을 당하는 사람들 쪽에 있었다. 섬유종 환자 비니초 리바는 “지난 40년간 그처럼 따뜻하게 안아 준 사람은 교황이 처음”이라 했고, 침대에 누운 채 입맞춤과 기도를 받은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눈물겹게 체험했다. 그분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셨다. 너무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참으로 신령한 향기와 같다. 혼돈과 악취로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맑게 정화시키고 숨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각자 믿고 있는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떠나서 그처럼 아름답고 선한 분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신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땅을 밟고 서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축복해 주실 그 순간이 가슴 떨리게 기다려진다. 또 그분의 눈에 비칠 우리나라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또한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그분 앞에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낳은 많은 순교자들과 지고지순했던 신앙인의 당당한 삶과 그분들이 걸어간 자취들을 보여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너무도 감격스럽다. 진리를 향하여, 복음을 향하여, 보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향하여, 모든 것을 바친 선조들이 우리들의 정신과 영혼의 기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보잘것없고 많이 부족한 존재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 우리 선조들의 장하고 아름다운 삶을 드러내 놓고 함께 신에게 감사하게 될 크나큰 축복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아! 세상은 이렇게 해서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한다. 그 일에 대해서도 그분과 함께 신께 깊이 감사드리자.
  • [교황 방한 D-1] ‘파격·소탈·유머’…교황 언행으로 본 리더십

    [교황 방한 D-1] ‘파격·소탈·유머’…교황 언행으로 본 리더십

    “스님이나 목사님을 만나면 먼저 교황님 얘기를 꺼내요.” 시인인 이해인(69) 수녀는 1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혜민 스님 등 최근 만난 다른 종교 성직자들이 프란치스코(78) 교황의 언행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종교는 비록 다르지만 교황의 가르침이 파격적이면서도 멋있어 자극을 받는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교황의 트위터 글 중 100여개를 추려 자신의 묵상과 함께 엮은 책 ‘교황님의 트위터’를 최근 출간한 이 수녀는 “교황의 글에서는 어깨에 힘주지 않고, 어떤 얘기든 종파마저 초월해 나눌 수 있는 친근함과 소탈함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종교 간 화합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세족식’에서 무슬림 2명의 발을 씻기고 그 발에 입을 맞췄다. 가톨릭계의 2000년 관습을 깬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 17일 교황이 된 뒤 맞은 첫 생일 때는 동유럽 출신 노숙인 3명을 초청해 생일상 음식을 나눴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김윤성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약자를 보살피는 등 사람들이 종교에 기대하는 모습을 교황이 잘 보여 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단호함도 꼽힌다. 이 수녀는 “노인과 어린이를 돌보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없다고 꾸짖는 등 이기적이고 안일한 삶에 대해서는 바늘로 콕콕 찌르듯 지적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단호한 어휘 속에 교황의 추진력 있는 리더십이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마피아 조직원들은 파문됐다”고 선언하거나 가톨릭 사제들의 과거 성추행에 대해 교황으로서 처음 사과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황의 말과 글에 담긴 유머와 문학적 표현도 대중들이 거리낌없이 가톨릭계 최고 지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다. 이 수녀는 “시인인 제가 볼 때도 교황께서는 진부하지 않은 상징적 표현을 참 잘하신다”고 말했다. 예컨대 찌푸린 표정의 사람에게 “왜 버려진 오이 같은 표정을 짓느냐”고 묻는 식이다. 교황은 신학교 입학 전 화학도였지만 문학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자신이 집전한 미사 때 도스토옙스키 등의 작품을 인용해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전달하기도 했다. 위트도 넘친다. 지난해 3월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추기경들과 기도하며 “나를 교황으로 뽑은 여러분을 주님께서 용서하기를!”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가 각박하고 힘들수록 순결한 존재에 기대고 싶은 심리가 퍼지기 마련인데 교황의 인기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 “교황의 말과 행동을 닮으려는 ‘따라쟁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면서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데스크 시각] 파파 프란치스코! ‘파격’을 부탁해요/이창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파파 프란치스코! ‘파격’을 부탁해요/이창구 국제부 차장

    파파 프란치스코! 권위적인 ‘교황’(敎皇)보다 친근한 ‘파파’가 더 어울리는 당신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당신의 ‘파격(破格)적인’ 언행은 그 어떤 정치가나 사상가의 그것보다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감동한 파격은 교황에 오르자마자 첫 외부일정으로 람페두사 섬을 찾은 것입니다. 그 섬은 유럽으로 가려다가 배가 난파해 죽은 아프리카 난민들의 영혼이 떠도는 곳이죠. 거친 파도를 헤치고 섬에 다다른 당신은 “우리 중에 누가 그들을 위해 운 적이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지난 5월 중동에서 보여준 파격은 또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팔레스타인 영토인 베들레헴에 내리는 당신을 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교황이 우리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다”며 환호했죠. 당신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람페두사 섬과 팔레스타인에서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약자들은 여전히 당신의 신선한 파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불의와 불신의 벽을 깨는 당신의 파격에는 진심과 사랑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만큼 비참하진 않겠지만 한국에도 당신의 파격을 기다리는 아픈 영혼들이 참 많습니다. 이탈리아 해경이 람페두사에서 좌초하는 난민선을 방치하듯 자본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으로 차디찬 바다에 수장된 304명의 영혼이 남쪽 팽목항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족은 당신이 시복식을 집전할 광화문 광장에서 곡기를 끊은 채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습니다. 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린 쌍용차 해고자들, 용산·밀양·강정의 약자들이 당신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들을 잠깐이나마 만나 위로한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번 한국 방문이 당신의 일관된 파격에 오점으로 남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제아무리 프란치스코라고 해도 청와대에서, 시복식에서, 명동성당 미사에서, 순교성지에서 격식을 깨기란 쉽지 않겠죠. 당신을 교회 울타리에 머물도록 일정을 짠 이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한다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선 당신처럼 믿고 의지할 종교지도자가 없습니다. 당신은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하셨지만, 한국의 어떤 추기경은 4대강을 파헤치지 말라는 주교단의 시국선언을 “4대강을 개발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왜곡했습니다. 다른 추기경은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사제들을 향해 “완전히 비이성적이다. 사제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파파 프란치스코! 저의 세례명은 요셉입니다. 평생을 신앙의 힘으로 살아온 어머니는 어린 저에게 “너의 외고조 할아버지는 순교자였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당신이 일요일에 찾을 충남 서산 해미 순교성지에서 병인박해 때 자리개질로 희생된 수천명의 무명 순교자 중 한 분이 저의 먼 할아버지입니다. 그 할아버지처럼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한국 천주교회는 안중근 의사를 교회 밖으로 내칠 정도로 민족을 배반한 부끄러운 역사와 군사정권에 맞선 정의로운 역사를 동시에 지녔습니다. 민중의 삶을 보듬는 교회로 거듭나야 할 지금, 한국 교회는 당신의 파격이 꼭 필요합니다. 이왕이면 교회를 넘어 한국인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당신만의 신선한 파격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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