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절단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박정환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SNS 비판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사령탑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크레딧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81
  • [일어나라 한국경제] LS그룹, 새 성장 동력 찾아 해외시장 공략

    [일어나라 한국경제] LS그룹, 새 성장 동력 찾아 해외시장 공략

    LS그룹은 국내 사업만으로는 장기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올 하반기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구자열 회장이 지난 5월 그룹 사외이사들과 함께 중국 LS우시산업단지를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유럽·중앙아시아 지역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각국 주요 재계 인사들과 만나 사업 기회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LS전선, LS산전, LS니꼬동제련, LS엠트론 등 주요 계열사들도 올 하반기에는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으로 진출 지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연구·개발(R&D) 분야의 인력과 투자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또 인재 확보와 육성 방법 등을 다변화해 회사를 이끌어 갈 핵심 인재를 계속 확보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실제 LS그룹은 매년 핵심 설비 및 연구개발 분야에 8000억~9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연구개발 보고 대회와 전시회인 ‘LS T페어(Fair)’를 10회째 이어오고 있다. 변화를 위한 노력은 최고 경영자의 주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인력, 제품, 서비스는 물론 사업 전략에서도 글로벌 선도기업 이상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려 변화를 주도하라”고 주문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아리랑, 프랑스 아비뇽 녹이리

    아리랑, 프랑스 아비뇽 녹이리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지난 15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청 앞마당에서 때아닌 아리랑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리허설을 하는 청소년들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더운 날씨 탓에 여학생들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삼복더위에 이렇게 공연을 하는 이들은 바로 광진구립청소년합창단.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리는 연극제에 거리공연을 나서기 전 리허설 무대를 진행한 것이다. 광진구 관계자는 16일 “청소년합창단원 20명이 ‘독도의 꿈 아리랑’이란 주제로 아비뇽에서 경복궁 타령과 아리랑 모음곡, 줄넘기 놀이 등 우리 전통춤과 안무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광진청소년합창단이 멀리 프랑스까지 거리공연을 떠나는 이유는 우리 문화를 알리고 또 세계 각국의 공연문화를 배우기 위해서다. 구 관계자는 “일종의 문화사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사절단이란 자부심 때문인지 학생들의 각오가 남다르다. 대원여고 1학년 윤지원양은 “지난 4월부터 일주일에 13시간씩 열심히 연습했다”면서 “세계 각국의 전문 예술인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최선을 다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오겠다”고 말했다. 광남중학교 3학년 김태한군은 “해외에 나가는 게 처음이라 약간 떨린다”면서 “단순히 공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청소년들의 끼와 열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준비도 철저하게 진행된다. 구립합창단은 18일 오후 4시 30분 나루아트센터, 19일 오후 4시 30분 건국대 예술문화대학 옆 분수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할 예정이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올해 처음 광진구립청소년합창단이 해외로 나가 음악을 통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 우리 문화를 알리고, 선진문화도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우리 구는 매년 청소년들에게 세계적인 문화공연 참여 기회를 마련해 경험과 추억을 쌓고,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부고] ‘원로 무용수’ 전황 前국립창극단 단장 별세

    [부고] ‘원로 무용수’ 전황 前국립창극단 단장 별세

    원로 무용수 전황 전 국립창극단 단장이 1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88세. 함흥 제일보통학교와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가 최승희의 제자가 됐다. 최승희무용단 일원으로 중국, 동유럽 등 외국 순회 공연을 했다. 1951년 한국민족무용연구소를 설립했고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경축 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과 안무 연출을 맡는 등 정부 문화 사절단으로 해외 여러 나라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1979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관선 이사장을 거쳐 199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199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장녀인 재즈무용가 전미례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7시. (02)797-4444.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SBS ‘웃찾사’ 500회 장수 비결은

    SBS ‘웃찾사’ 500회 장수 비결은

    SBS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 오는 7일 방송 500회를 맞는다. 한때 전성기를 맞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지상파에서는 ‘웃찾사’와 KBS ‘개그 콘서트’만 살아남았고, MBC에선 자취를 감췄다. 케이블에서는 tvN의 ‘코미디 빅리그’가 유일하다. 2003년 4월 처음 방송된 ‘웃찾사’는 ‘행님아’, ‘화산고’, ‘그때그때 달라요’, ‘비둘기 합창단’, ‘그런 거야’ 등을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했으나 2005년 개그맨 박승대를 비롯한 출연 개그맨들의 노예계약 파문으로 위기를 맞은 뒤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 결국 2010년 폐지되는 불운을 겪었다. 개그맨과 제작진은 절치부심 끝에 2011년 ‘웃찾사’의 후신으로 ‘개그 투나잇’을 신설했고 2013년 4월 프로그램 제목을 ‘웃찾사’로 되돌렸다. 편성 시간은 토요일 밤 12시, 일요일 오전 10시대등 자주 바뀌었지만 금요일 밤 11시대로 옮기면서 ‘배우고 싶어요’, ‘기묘한 이야기’, ‘뿌리 없는 나무’ 등이 인기를 끌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난 봄 개편 때부터는 일요일 밤 8시 45분으로 시간대를 옮겨 KBS ‘개그 콘서트’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공백기를 제외하고 ‘웃찾사’가 온전히 시청자를 만난 시간은 만 10년. 우여곡절 속에서도 500회를 이어 온 비결은 뭘까. 매주 새 코너를 3개씩 올리는 등 새로움과 건강한 웃음을 꾸준히 추구했다는 게 제작진의 자평이다. ‘웃찾사’의 담당 PD와 CP로 8년을 함께한 이창태 SBS 예능국장은 “‘웃찾사’의 한 회 출연자는 40여명으로 ’개콘´과 같지만 ‘예비군’에 해당하는 가동 인력은 ‘웃찾사’가 60명인 반면, ‘개콘’은 400여명에 달한다”면서 “제가 총 27주간 연출을 맡는 동안 96개의 코너를 신설하는 등 죽기 살기로 물량 공세를 펼쳤다”고 말했다. 개그 프로그램의 경우 한 코너당 방송 시간은 3~4분에 불과하지만 일주일을 아이디어 개발 및 연습 등에 쏟아야 하는 노동 집약적인 프로그램이다. ‘예능계의 3D’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그맨들은 새 코너를 올리기 위해 CP, PD, 작가, 무대감독 등 4~5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스트를 거친다. 웃음을 위한 웃음을 배제하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목표다. ‘웃찾사’ 500회 특집 방송에는 인기 아이돌 가수와 탤런트 등 축하 사절단이 깜짝 출연하고 넌버벌 코미디 퍼포먼스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옹알스’도 축하 공연을 펼친다.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코너’도 준비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해외여행 | 나가사키Nagasaki 를 보듬는 빛과 그림자-나가사키 순례길

    해외여행 | 나가사키Nagasaki 를 보듬는 빛과 그림자-나가사키 순례길

    어둠을 밝히는 빛. 빛은 어둠을 지우지만 그 빛을 따라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빛에겐 늘 환희와 찬사가 따르지만 그림자의 사정은 다르기 마련. 그 와중에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더 도드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림자는 빛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빛도 그림자도 살포시 보듬고 있는 나가사키에서. 나가사키현長崎縣 &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 나가사키현은 규슈 북서부에 위치한 현으로 5개의 반도와 총면적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청소재지는 나가사키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 우리나라와 마주하고 있어 일찍이 대륙과의 교통 요충지이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이와 함께 가톨릭 선교의 출발지로 역사적, 문화적, 상징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들과 이국적인 풍경이 어우러진다. 나가사키현의 5개 반도 가운데 나가사키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시마바라 반도는 해저화산의 분화로 형성되었다. 반도 한가운데 해발고도 1,359m의 운젠다케를 주봉으로 화산군은 여전히 화산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활화산이다. 때문에 예부터 온천이 발달했다. 반도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믿는다는 것의 의미 나가사키 순례길 산티아고나 시코쿠의 순례길처럼 정해진 순례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톨릭 문화유산이 산재한 나가사키를 거닐며 나는 이따금 존 레논이 부른 <Imagine>의 후렴구를 흥얼거렸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믿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순간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히라도平戶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그리 주목할 것 없을 것 같은 작은 섬이지만 히라도는 이래 봬도 대항해시대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선이 연이어 들어오고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회사가 상관을 설치했을 만큼, 그리하여 서쪽의 수도라 불리며 번성했던 일본 최초의 남만南蠻무역항이다. 바야흐로 무로마치 막부 말기 일본 각지가 전쟁으로 혼란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1550년, 예수회 소속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가고시마를 거쳐 이곳 히라도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은 포교를 조건으로 무역을 하고 있었기에 교역을 통해 막강한 힘을 얻고자 한 영주들은 포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히라도는 일본 그리스도교의 시작점이 된다. 수세기가 흐르고 옛 영화는 오간 데 없이 한적한 섬마을이 되었지만 곳곳에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가톨릭교회와 성지가 남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던 탓인지 더없이 차분했던 히라도. 히라도항 주변으로 조성된, 간세 리본이 반가운 규슈올레 히라도 코스를 걷다 보면 일본의 전통적인 사원 누각 위로 얼굴을 내민 고딕풍의 뾰족한 교회 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야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언덕길 중간 즈음에 위치한 세 개의 사원 뒤로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교회가 우뚝 솟아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길가에는 무역이 번성했던 시대에 항구 주변으로 방파제를 겸해 세워두었던 나무 등대가 운치를 더한다. 일찍이 가톨릭이 전해졌지만 어지러운 전국을 통일하려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발령하고, 정권을 이어받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4년 금교령을 내리면서 ‘키리시탄’을 엄격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키리시탄은 당시 포르투갈어로 가톨릭 신자를 가리키던 말로 지금까지도 일본의 가톨릭 신자를 키리시탄이라 부른다. 키리시탄으로 살고자 하면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다. 때문에 히라도를 비롯해 나가사키현의 오래된 성당들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완공된 것들이다. 옅은 풀빛을 머금고 있는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교회도 1931년에 완공된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일반적으로 고딕양식은 중앙 첨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첨탑들이 대칭을 이루기 마련인데 이 성당은 정면에서 보면 왼쪽에만 팔각탑이 자리한 비대칭 구조다. 이를 두고 불가사의한 경관이라고도 하는데 실은 성당을 지을 때 2,000엔 정도의 공사비가 부족해 부득불 그리 되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메이지시대1868~1912년부터 건축된 성당과 관련 유산 가운데 13곳이 ‘나가사키 교회군과 그리스도교 관련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라 있다. 1918년에 봉헌된 타비라 천주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데 교회 건축의 일인자였던 테츠카와 요스케 스스로도 자신 있는 작품이라 했을 만큼 당당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 성당이다. 더욱이 신자들이 손수 개간하고, 성당 건축에 필요한 석회도 바닷가에서 직접 채집해 구워서 사용하는 등 헤아릴 수 없는 애정과 노력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타비라 성당 옆으로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박해로 인해 숨어야 했고 떠나야 했지만 죽어서라도 성당 가까이 머물고 싶었던 신자들이 다시 이곳에 돌아와 잠들어 있다. 크든 작든 꽃 장식 없는 묘소는 하나도 없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오랜 갈증을 달래어 주듯 오후내 그치지 않던 빗방울이 묘지를 적셨다.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교회 259-1 Kagamigawacho, Hirado-shi, Nagasaki +81 950 22 2442 06:00~18:00 타비라 천주당 19 Tabiracho Kotedamen, Hirado-shi, Nagasaki +81 950 57 0254 07:00~18:00(일요일은 13:00부터)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나가사키長崎 말할 수 없었던 비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금교령을 내렸지만 가톨릭의 교세는 잠재워지지 않았기에 당시 수도였던 교토와 오사카 지역에서 24명의 가톨릭 선교사와 신자를 체포하여 나가사키까지 걸어오게 한 다음 처형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작은 로마라 불릴 정도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오는 도중에 2명이 더해져 모두 26명이 1597년 2월5일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본보기였다.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근대로 넘어 오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 개항이 되기까지 무려 25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간 가톨릭 신자들은 불교도로 가장한 채 비밀리에 신도 조직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지속했다. 그들을 가리켜 ‘잠복 키리시탄’이라 한다. 1853년 개항 이후 미국,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 되면서 나가사키 항구 인근에 외국인 거류지가 조성되고 다시금 선교사들이 들어오게 된다. 1862년 로마가톨릭은 이들을 성인에 시성하였고 프랑스외방전교회 소속의 프티장 신부는 일본 최초의 가톨릭 순교지인 니시자카에 성당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거류지 내에서만, 외국인들에 한해서 종교 활동이 허락되었기에 1864년 니시자카가 잘 보이는 오우라 마을에 성당을 세우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잠복 키리시탄들의 마을이었던 우라카미에서도 오우라 천주당은 한눈에 들어왔다. 1865년 3월17일 우라카미의 잠복 키리시탄들은 마침내 오우라 천주당을 찾아 들어오게 되고 그리하여 일본의 가톨릭은 올해로 신도 발견 1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구구절절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더욱이 가톨릭 신자도 아닌 다음에야 나가사키의 성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나카마치 성당에서 만난 히사시 신부는 종교를 떠나 어떤 때든 어디에서든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믿음’의 중요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라는 것은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믿는 것과 같은 거라고. 들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잠복 키리시탄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종교를 넘어서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마음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일까, 그전에 나는 과연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더라. 나가사키에서 평화를 떠올리는 것이 가톨릭 유산 때문만은 아니다.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의 피해를 받은 곳이 나가사키다. 1945년 8월9일 11시2분, 원자폭탄이 투하된 바로 그 시간에 멈춰선 벽시계는 결코 돌이킬 수가 없다. 버섯구름과 함께 도시는 잿빛 폐허가 되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피복의 상처를 안고 아직까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흔적이 인상적이다. 센다이 출신으로 나가사키 의과대학에서 방사선의학을 전공한 박사는 원폭으로 부인으로 잃고 본인도 앓고 있던 백혈병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부상자 구호와 원폭장애 연구 그리고 전쟁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장 다다미 한 칸 방 뇨코도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이 작은 집 ‘뇨코도’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원폭의 피해는 성전에도 몰아쳤다. 신도 발견 이후 우라카미 촌장 집터에 건설되었던 우라카미 천주당도 원폭을 비켜가지 못했다. 옛 성당의 무너진 종탑 하나가, 재건된 성당 아래 그대로 남아 있는가 하면 오른쪽 뺨과 머리카락 일부가 시커멓게 탔지만 그 형상이 온전한 목조의 마리아상이 잔해 속에서 발견되어 소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우연인지 기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의 모습 그대로가 전하는 울림만을 되새길 뿐이다. 니시자카 순교지 & 26성인 기념관 7-8 Nishizaka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22 6000 09:00~17:00 성인 250엔, 중고생 150엔, 초등생 100엔 오우라 천주당 5-3 Minamiyamate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23 2628 08:00~18:00 성인 300엔, 학생 250엔, 아동 200엔 우라카미 천주당 1-79 Moto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44 1777 09:00~17:00(월요일 휴관) 뇨코도 & 나가이 타카시 기념관 22-6 Ueno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44 3496 09:00~17:00 성인 100엔(학생은 무료) 나가사키 원폭기념관 7-8 Hirano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44 1231 www.city.nagasaki.lg.jp/peace 08:30~17:30(5~8월은 18:30까지) 성인 200엔, 학생 100엔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 그림자는 땅에 묻었네 전국시대 시마바라 반도를 통치한 아리마 일가는 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불과 3km의 거리를 두고 두 개의 성을 구축했다. 미나미시마바라에 위치한, 이제는 터만 남은 히노에성과 하라성이다. 히노에성은 아리마 일가가 대대로 거주했던 산성, 하라성은 15세기 중반 바다를 면한 언덕에 새로이 쌓은 성으로 4km에 달했다.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에 아리마 영주는 더욱 강력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필요하던 차 1580년 스스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포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히노에성 가까이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세미나리요가 설립되고 십대 소년들이 라틴어와 서양음악 등을 익히게 된다. 1582년 일본 가톨릭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세미나리요에서 수학한 4명의 소년이 중심이 된 덴쇼 소년사절단이 로마에 파견된다. 일본 역사상 최초로 유럽을 방문한 이들은 교황을 알현했다. 이후 소년들이 가져온 구텐베르크 인쇄기로 일본은 동아시아 최초로 서양식 활판인쇄 서적을 발행하게 된다. 그러나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이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막부는 금교령과 함께 영내 하나의 성만을 인정하는 ‘일국일성령’을 내리고 그에 따라 히노에성과 하라성을 폐성한다. 주민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던 시마바라 반도는 종교 탄압은 물론이고 세금 착취에 따른 지독한 배고픔의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개종을 거부한 기리시탄들에게는 가차 없는 처벌이 따랐다. 1613년 히노에성 앞으로 흐르는 아리마강 가운데 자리한 모래톱에서 8명이 화형에 처해진다. 오랜 박해를 참다 못한 주민들은 1637년 드디어 난을 일으킨다. 시마바라의 난이다. 막부는 대군을 파견했고 민중들은 밀리고 밀려 폐성이었던 하라성에 진을 치게 된다. 성 안 높은 곳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성벽에는 십자가나 성상을 그린 깃발을 내건 채 3개월여 저항했지만 끝끝내 함락되어 전멸하고 만다. 하라 성터에 섰다. 희생된 이들과 파괴된 성, 난의 흔적은 모두 이 땅 아래에 묻혔다. 그러나 어둠을 찾아낸 빛이 머리 위 하늘도, 눈앞 바다도, 발아래 초원도 제 나름의 푸르른 기운을 발하는 이 땅 곳곳을 비춘다. 견고한 성벽이며 상처가 남아 있는 죽은 자들의 유해, 총알탄을 다듬어 만든 십자가, 낱알이 된 묵주 등 질곡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난다. 봄이면 유독 탐스런 벚꽃이 움튼다고 하는데 빛과 그림자는 결국엔 서로를 보듬는 존재. 결국에는 한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라 성터 133 Minamiarimacho Tei, Minamishimabara-shi, Nagasaki +81 957 85 3155 아리마강 순교지 2747 Kitaarimacho Bo, Minamishimabara-shi, Nagasaki +81 957 76 1800 취재협조 나가사키현 관광연맹 www.nagasaki-tabinet.com 문의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 02-730-2192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한국·불가리아 정상회담 ‘포괄적 동반자 관계’ 격상

    박근혜 대통령은 방한 중인 로센 플레브넬리에프 불가리아 대통령과 14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데 합의했다. 불가리아와는 1990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25년간 일반적인 수교 상태였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을 계기로 오는 10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제1차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2011년 1차 회의 이후 열리지 않은 산업협력위원회를 조속히 재개하기로 하는 등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박 대통령과 플레브넬리에프 대통령은 실질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2004년 이후 중단된 민간경제협력위도 재개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우리 업계에서는 중소기업 위주로 경제사절단을 구성해 불가리아 측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15일 서울에서 양국 업체 간의 1대1 비즈니스 상담회와 비즈니스 포럼을 갖기로 했다. 두 정상은 정부 간 체결된 ‘과학기술 양해각서(MOU)’를 토대로 기초과학이 뛰어난 불가리아와 협력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날 국방·교육문화·체육협력 분야 등에서 MOU를 체결했으며 두 나라 수출·입 및 중소기업협회들도 협력 MOU를 맺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합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글로벌 인사이트] 1865년 위폐 단속 위해 창설… 1902년부터 대통령 공식 경호

    1865년 위폐 단속을 위해 창설된 비밀경호국(USSS)은 1894년 대통령에 대한 비공식 경호 업무를 시작했다가 의회 요청에 따라 1902년부터 대통령 공식 경호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후 의회가 법을 제정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 가족, 부통령,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 수반, 미국 주재 외교사절단 등으로 경호 대상을 확대했다. 워싱턴DC에 위치한 백악관 인근을 지나가다 보면 비밀경호국 요원들을 자주 볼 수 있지만 그들이 하는 구체적인 일은 베일에 가려 있다. 비밀경호국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을 경호국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알아봤다. →비밀경호국의 구성과 하는 일은. -국장, 차장 등의 고위급과 특수요원, ‘백악관 경찰’이라고 불리는 경비부(정복경찰대), 지원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3200명 규모의 특수요원은 비밀경호국 설립 초기부터 부여된 주요 업무인 금융 사기 및 위조, 신원 도용, 컴퓨터 범죄 등 금융시스템 보호를 위한 수사 임무와 함께 1990년대 초 시작된 대통령 등의 보호 임무를 동시에 맡고 있다. 1300명 규모로 이뤄진 경비부는 백악관과 부통령 관저, 백악관 바로 옆에 위치한 재무부, 외국 대사관 등의 경비를 맡는다. 이들은 경비 초소 활동과 도보·자전거·오토바이·차량을 통한 순찰 활동, 반(反)저격·폭약 탐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이와 함께 2000명이 넘는 기술직, 훈련직 등의 전문가와 행정직이 활동한다. →대통령 등의 경호 범위와 기간은. -수차례 법 개정에 따라 대통령과 가족, 부통령과 가족을 비롯해 대통령·부통령 당선인도 경호 대상이 됐다.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서도 이들이 거부하지 않으면 평생 경호를 제공한다. 전직에 대한 경호는 당초 ‘적당한 기간’에서 1965년 법 개정으로 ‘영구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주요 대통령, 부통령 후보들도 선거 전 120일 이내 경호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11월 대선 전 후보들은 8월부터 경호 대상이 된다. 경호 대상 후보와 경호 시작 날짜는 국토안보부가 의회 지도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와 함께 결정한다. 또 해외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미 대표단, 국무부 등에서 지정하는 대규모 행사 등도 경호 범위에 포함된다. →그동안 대통령 경호 시 부상당한 요원이 있었나. -1950년 푸에르토리코인 2명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저격, 암살하려 했을 때 당시 대통령을 경호하던 요원이 총에 맞은 적이 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 때도 특수요원이 총에 맞아 부상당했다. 또 1972년 대선 후보였던 조지 월리스 전 주지사 암살 시도 사건 때도 특수요원이 목에 총을 맞았으나 살아났다. 비밀경호국의 역사를 볼 때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요원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어 이에 대비한 훈련을 한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표류하는 대한민국號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 차 국정 운영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이렇다 할 정책 집행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 데 이어 이번에는 집권층 고위 인사들이 비리 연루 의혹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 혼란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16일 오후 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오는 27일까지 경제사절단과 함께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을 돌며 경제 협력을 다질 예정이지만,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 부재 기간에 국정 운영을 통할하게 되는 이완구 국무총리는 이날 나흘째 열린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출석했지만 ‘성완종 리스트’ 관련 거짓말 논란에 휩싸여 정책 현안에 대한 국회 협력을 구하지 못했다. 이 총리는 “전혀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한다”고 밝혔지만, 이 총리 자신이 검찰의 수사대상이고 위상마저 추락한 상황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 총리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대통령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당이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압박했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는 이날 첫 전체회의를 열기는 했으나, 당초 계획했던 ‘공적연금 강화 및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에 대한 보고청취 및 토론은 진행하지 못했다. 연금개혁 실무기구가 21일까지 개혁안을 만드는 것도 불투명해졌다. 또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서비스기본법 등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국정운영 목표로 민생경제 살리기와 4대 부문 개혁, 통일준비 등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경기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개혁은 발목이 잡힌 상태다. 권기헌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는 “국정 위기라며 우왕좌왕하지 말고, 납득할 수 있는 단호한 조치를 내린 뒤 정책 집중과 행정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면서 “투명하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보든, 복지든 큰 그림을 다시 짜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호 인하대 언론학과 교수는 “정치권 혁신을 포함한 개혁의 성공이 결국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다시 떠오른 경남기업 ‘랜드마크 회동’

    다시 떠오른 경남기업 ‘랜드마크 회동’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로비 리스트 파장이 금융권으로 다시 옮겨붙는 모양새다. 성 전 회장의 자살로 금융권 외압 의혹 및 특혜 지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으나 관련 증언이 산발적으로 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금융권은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기간 중에 있었던 ‘랜드마크 회동’에 주목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베트남의 랜드마크72 타워는 경남기업이 지은 초고층건물이다. 2013년 베트남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에 랜드마크 타워를 방문했다. 그 해 9월 8일 랜드마크 타워에서 열린 ‘한복·아오자이 패션쇼’에 박 대통령은 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당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을 수행했던 경제사절단에는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등이 포함돼 있다. 공교롭게 경남기업의 주채권은행이거나 채권을 많이 갖고 있는 은행들이다. 지금은 모두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경남기업 특혜 지원’ 논란에 오르내리고 있다. 장해남 당시 경남기업 사장도 기업인 자격으로 베트남행에 함께했다. 최근 공개된 성 전 회장 일정표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박 대통령 베트남 순방 직전에 김기춘 비서실장, 김진수 금융감독원 국장,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용환 행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등을 차례로 만난 것으로 돼있다. 이 때는 경남기업이 3차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한달 전이었다. 당시 경남기업은 이미 자본금의 60% 이상이 잠식될 정도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특히 베트남 랜드마크72 타워 대주단(대출 금융회사)이 경남기업에 랜드마크 타워 매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던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은행을 비롯한 대주단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랜드마크타워 사업에 5100억원을 지원했다. 이 애매한 시점에 금융권 수장과 주요 채권단 CEO들이 한 자리에서 회동한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랜드마크 타워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재계 거물을 대거 동원한 성 전 회장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하더라”며 “채권은행들도 분위기 등에 압도당해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특혜 지원을 결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당 은행들은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면 그 나라에서 활발히 사업하는 한국 기업체를 방문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특혜 지원설은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일즈 외교 초점” 일정은?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일즈 외교 초점” 일정은?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월호 1주년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일즈 외교 초점” 일정은?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 박 대통령은 이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만큼 출국에 앞서 추모 관련 일정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중남미 순방은 지난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과 같은달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가장례식 참석에 이은 올해 3번째 해외 출장이다. 중동 순방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방문도 ‘세일즈 정상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중남미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급증,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존 자동차·전자 등에 편중된 협력 분야를 ICT·보건의료·에너지 신산업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이번 방문국 4곳의 정상들과 집중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5개사의 12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 4개 나라를 돌며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상담회를 통해 중남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순방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관련 추모행사에 참석,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가장 진정성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체 인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전날(15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세월호법 시행령 및 배보상 등 논란에 대해 원만한 해결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와 유가족 간 쟁점 해소에 나선 바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 머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이날 오전 팽목항 임시 숙소 주변에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임시 분향소의 문도 닫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차량에 나눠타고 급작스럽게 팽목항을 떠났다.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한 인사는 “오전에 가족 한분과 통화했는데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팽목항 분향소를 폐쇄하고, 현장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4개국 방문” 도대체 왜?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4개국 방문” 도대체 왜?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월호 1주년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4개국 방문” 도대체 왜?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 박 대통령은 이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만큼 출국에 앞서 추모 관련 일정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중남미 순방은 지난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과 같은달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가장례식 참석에 이은 올해 3번째 해외 출장이다. 중동 순방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방문도 ‘세일즈 정상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중남미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급증,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존 자동차·전자 등에 편중된 협력 분야를 ICT·보건의료·에너지 신산업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이번 방문국 4곳의 정상들과 집중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5개사의 12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 4개 나라를 돌며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상담회를 통해 중남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순방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관련 추모행사에 참석,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가장 진정성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체 인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전날(15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세월호법 시행령 및 배보상 등 논란에 대해 원만한 해결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와 유가족 간 쟁점 해소에 나선 바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 머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이날 오전 팽목항 임시 숙소 주변에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임시 분향소의 문도 닫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차량에 나눠타고 급작스럽게 팽목항을 떠났다.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한 인사는 “오전에 가족 한분과 통화했는데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팽목항 분향소를 폐쇄하고, 현장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해 대국민 메시지 발표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해 대국민 메시지 발표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월호 1주년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해 대국민 메시지 발표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 박 대통령은 이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만큼 출국에 앞서 추모 관련 일정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중남미 순방은 지난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과 같은달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가장례식 참석에 이은 올해 3번째 해외 출장이다. 중동 순방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방문도 ‘세일즈 정상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중남미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급증,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존 자동차·전자 등에 편중된 협력 분야를 ICT·보건의료·에너지 신산업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이번 방문국 4곳의 정상들과 집중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5개사의 12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 4개 나라를 돌며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상담회를 통해 중남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순방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관련 추모행사에 참석,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가장 진정성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체 인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전날(15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세월호법 시행령 및 배보상 등 논란에 대해 원만한 해결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와 유가족 간 쟁점 해소에 나선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얼마 전 세월호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이제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우리는 지난 1년간 겪었던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모두 함께 일어나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이날 오전 팽목항 임시 숙소 주변에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임시 분향소의 문도 닫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차량에 나눠타고 급작스럽게 팽목항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추모 일정 가질 것” 세월호 유족 “팽목항 분향소 폐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추모 일정 가질 것” 세월호 유족 “팽목항 분향소 폐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월호 유족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추모 일정 가질 것” 세월호 유족 “팽목항 분향소 폐쇄”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 박 대통령은 이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만큼 출국에 앞서 추모 관련 일정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중남미 순방은 지난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과 같은달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가장례식 참석에 이은 올해 3번째 해외 출장이다. 중동 순방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방문도 ‘세일즈 정상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중남미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급증,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존 자동차·전자 등에 편중된 협력 분야를 ICT·보건의료·에너지 신산업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이번 방문국 4곳의 정상들과 집중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5개사의 12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 4개 나라를 돌며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상담회를 통해 중남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순방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관련 추모행사에 참석,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가장 진정성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체 인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전날(15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세월호법 시행령 및 배보상 등 논란에 대해 원만한 해결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와 유가족 간 쟁점 해소에 나선 바 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 머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이날 오전 팽목항 임시 숙소 주변에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임시 분향소의 문도 닫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차량에 나눠타고 급작스럽게 팽목항을 떠났다. 이날 팽목항을 방문한 한 인사는 “오전에 가족 한분과 통화했는데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팽목항 분향소를 폐쇄하고, 현장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 “선체 인양 신속하게 진행”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 “선체 인양 신속하게 진행”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세월호 1주년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 “선체 인양 신속하게 진행”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 박 대통령은 이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만큼 출국에 앞서 추모 관련 일정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중남미 순방은 지난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과 같은달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가장례식 참석에 이은 올해 3번째 해외 출장이다. 중동 순방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방문도 ‘세일즈 정상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중남미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급증,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존 자동차·전자 등에 편중된 협력 분야를 ICT·보건의료·에너지 신산업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이번 방문국 4곳의 정상들과 집중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5개사의 12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 4개 나라를 돌며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상담회를 통해 중남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순방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관련 추모행사에 참석,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가장 진정성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체 인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전날(15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세월호법 시행령 및 배보상 등 논란에 대해 원만한 해결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와 유가족 간 쟁점 해소에 나선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얼마 전 세월호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이제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우리는 지난 1년간 겪었던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모두 함께 일어나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이날 오전 팽목항 임시 숙소 주변에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임시 분향소의 문도 닫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차량에 나눠타고 급작스럽게 팽목항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 “유족, 분향소 폐쇄”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 “유족, 분향소 폐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팽목항 방문, 세월호 1주년 세월호 1주년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팽목항 방문 “유족, 분향소 폐쇄”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출국에 앞서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 이번 중남미 순방은 지난달 1∼9일 중동 4개국 순방과 같은달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가장례식 참석에 이은 올해 3번째 해외 출장이다. 중동 순방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이번 중남미 방문도 ‘세일즈 정상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중남미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급증, 새로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존 자동차·전자 등에 편중된 협력 분야를 ICT·보건의료·에너지 신산업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이번 방문국 4곳의 정상들과 집중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5개사의 126명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 4개 나라를 돌며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상담회를 통해 중남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순방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관련 추모행사에 참석,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가장 진정성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체 인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전날(15일)에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세월호법 시행령 및 배보상 등 논란에 대해 원만한 해결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부와 유가족 간 쟁점 해소에 나선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세월호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이제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우리는 지난 1년간 겪었던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모두 함께 일어나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정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들은 이날 오전 팽목항 임시 숙소 주변에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고 임시 분향소의 문도 닫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차량에 나눠타고 급작스럽게 팽목항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화폭에 담긴 한·일 교류의 발자취

    화폭에 담긴 한·일 교류의 발자취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조선·일본 간 조선통신사를 통해 오고 간 회화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가 마련됐다. 14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왕실의 회화’ 전시실에서 개최되는 ‘그림으로 본 조선통신사’다. 일본 가노파 화가 쓰네노부가 1711년(숙종 37) 파견된 조선통신사 대표 조태억을 그린 ‘조태억 초상’을 비롯해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수하독서도’(樹下讀書圖), ‘모란도’ 등 4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고사인물도’는 제갈량이 남만국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 놓아주어 심복으로 만들었다는 ‘삼국지연의 칠종칠금’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1811년(순조 11) 조선통신사 파견 때 사자관(寫字官)으로 수행한 피종정이 조선 후기 대표적 풍속화가 신윤복에게 부탁해 그려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다. 피종정은 신윤복의 외가 친척이다. ‘수하독서도’는 1811년 조선통신사를 따라 쓰시마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 이수민이 그린 작품이다. ‘모란도’는 가노파 화가인 모로노부가 그린 것으로, 1764년(영조 40) 조선통신사 파견 때 일본 에도막부로부터 진상 받아 온 6폭 금병풍이다. 박물관 측은 “조선·일본 간 문화 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를 통해 양국 문화 교류 역사와 조선왕조의 외교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 에도막부 요청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12차례 파견됐던 조선왕조 사절단으로, 양국 간 외교와 문화 교류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400~500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는 왕의 친서를 받든 정사와 부사, 이들을 보좌하는 종사관 등 삼사 외에도 그림을 담당하는 화원, 음악을 담당하는 악사, 통역 전문가 역관 등 다양한 수행원들이 동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朴대통령 남미순방 경제사절단 역대 최대

    16일부터 시작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순방에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며 사상 처음으로 ‘수입 사절단’도 포함됐다. 대기업 15개, 중소·중견기업 78개, 경제단체 및 공공기관 32개 등 총 125개(126명) 기업·기관으로 지난 3월 중동 4개국을 순방했을 때보다 10개사가 늘었다. 순방 4개국들의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에 따라 보건·의료 및 정보기술(IT) 서비스 관련 기업 27개사가 함께 하며 인프라 확대 필요성을 반영, 건설·플랜트 관련 기업도 8곳 동행한다. 수입사절단은 주한 페루대사와 주한 콜롬비아대사의 요청으로 구성됐으며 중남미의 광물자원과 과일 등 수출용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중남미의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제7차 세계 물포럼 참석차 방한한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헝가리의 우수한 과학기술과 한국의 제조·생산 기술을 창의적으로 접목, IT·자동차 부품·바이오제약 등 신성장산업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두 정상은 이와 함께 우리 기업의 활발한 제조업 분야 진출이 헝가리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데 공감하고 제약·의약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의 투자를 통해 양국 경제 협력 기반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데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무장과 경제성장 병진정책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이라는 것을 하루빨리 깨닫고 헝가리의 성공적인 체제 전환 경험을 본받아 변화와 발전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헝가리하고 더욱 긴밀히 협력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물라투 테시호메 위르투 에티오피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하미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제실장 겸 UAE 투자청장 등도 접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부고] ‘우리의 소원’ 작곡가 안병원씨

    [부고] ‘우리의 소원’ 작곡가 안병원씨

    동요 ‘우리의 소원’의 작곡가 안병원씨가 지난 5일 오후 8시 40분께(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한 병원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89세.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1945년 어린이 노래단체인 ‘봉선화동요회’를 창설, 동요 보급에 힘썼다. ‘우리의 소원’ 이외에도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하는 ‘구슬비’ 등 동요 300여곡도 작곡했다. ‘우리의 소원’은 1947년 극작가이자 소설 삽화가 등으로 일했던 고인의 부친 안석주씨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다. 해방 직후에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으로 불리다 1950년 한국전쟁 후 남과 북이 분단되자 노랫말을 지금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꿔 부르게 됐다. 1952년부터 경기여중·고와 경복중·고 등에서 음악 교사를 지낸 고인은 1954년 한국어린이음악사절단을 이끌고 3개월간 미국 48개주에서 순회공연을 열기도 했다. 1974년엔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최근까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 왔다. 장례식은 오는 9일 현지 ‘세인트 앤드루 김’ 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토론토 참전용사 묘지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