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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안싸움에 주름살 는 동아제약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의 집안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동아제약은 강신호 회장·강정석 부사장을 비롯한 현재의 경영진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강문석 이사를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형사고소했다고 8일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수석무역 대표인 강문석 이사측은 동아제약이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매각한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을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냈다. 이에 따라 아버지와 아들의 경영권 다툼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강신호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이사와 4남인 강정석 부사장은 이복형제로 경영권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강신호 회장은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강정석 부사장을 지지하고 있다. 동아제약은 고소장에서 “강문석 이사가 동아제약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2002∼04년 사저 공사비용 등 개인용도로 법인카드와 회사경비를 사용하고 허위세금계산서를 발급해 변칙회계를 하는 등 회사공금 총 17억 6000여만원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석무역측은 “사실무근이며 집안을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려는 비이성적인 태도”라고 비난했다. 수석무역 관계자는 “동아제약이 오는 31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이 등을 돌리니까 강문석 대표를 흠집내려고 사실도 아닌 자료를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문석 이사는 임시주총에서 지용석 한국알콜산업 대표 등 5명을 신임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제안한 상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강 이사측이 이사회에서 수적 우세를 갖게 된다.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정국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은 당내 예선을 치르느라 바쁘다. 대선 정국인 지금, 대통령들이 꿈을 키웠던 생가(生家)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하고 있을까.‘명당(明堂)’으로 불리지만 업적과 인기에 따라 발길 빈도가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큰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에 나서면서 발길이 크게 잦아졌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한창 복원 중이다. 대통령 생가라면 단연 박 전 대통령 집이다.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최고의 대통령으로, 민주화를 억압한 장본인으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다. 박 대통령 생가를 6년째 청소하고 있다는 김영순(56·구미시 사곡동)씨는 “생가를 찾는 연세 드신 많은 분이 박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곡을 한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눈물 쏟는 관람객들 이곳에는 연간 4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생가보존회 김재학(82·전 초등학교장)옹은 “관람객들이 초라한 생가를 보고 ‘이건 아니다.’ ‘너무 했다. 심하다.’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구미시 박 대통령기념사업단 박경하 계장은 “홍보를 안하는데도 찾는 사람이 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도 발길이 잦은 편이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는 외지인들이 연간 1500∼2000명 가량 찾고 있다. 이승현 하의면사무소 직원은 “여름방학 때는 하루 30∼40명, 방학이 끝나면 10명 안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포항에서 하의도까지 2시간20분이 걸리는 데다가 배편도 하루 2∼3번밖에 안돼 방문객이 갈수록 줄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를 향한 배’에 동승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조금 낫다. 요즘 하루 30∼40명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의 생가를 찾고 있다. 방학 때면 학부모가 자녀들을 동반한다. 지난해 7만 3000명이 다녀갔고 올해 6만 4000여명이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반면 ‘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발길이 뜸하고 썰렁하기까지 하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도로변 전 전 대통령 생가는 대문을 열어 놓아 오가는 행인들이 간간이 들른다. 대구 동구 신용동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생가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훼손이 많이 됐다. 전형적인 시골 촌집으로 2∼3년 전만 해도 주민들에 의해 청소 등 관리가 이뤄졌으나 이후에 방치되고 있다. 한 주민은 “관광객이 가끔 찾기는 하나 전직 대통령의 생가 관리에 정부도, 자치단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전 전 대통령 생가는 84년 경남도가 2800만원에 사들여 합천군으로 소유권을 넘겼다. 군은 매년 11월 이엉을 엮어 초가 지붕을 보수하고 있다. 강원 원주에 있는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는 현재 없다. 터만 있었지만 2000년 원주시립박물관이 들어서 흔적조차 사라졌다. 박물관에도 유품이나 생가에 대한 자료가 없어 박물관이 최 전 대통령의 생가 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원주에서조차 최 전 대통령은 잊혀져 가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다. 주민 임승희(54)씨는 “한달에 100명 정도는 구경을 온다.”고 말했다. 특히 풍수가 뛰어난 명당이란 소문이 퍼져 지관 등이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생가는 마을 노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年 2000여명 발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구미시는 생가 주변 7만 7600여㎡를 성역화하고 있다.2020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추모관과 생가 원형복원, 연대별(1920∼70년) 시대촌, 내자(內子)의 공원 등을 조성한다. 현재 생가에서는 서거일(10월 26일)과 출생일(11월 14일)에 매년 2차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거제시는 김 전 대통령 생가 옆에 기록전시관을 건립한다.19억원을 들여 738㎡에 2층 규모로 만들어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와 소장품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마당 왼쪽에 청동 흉상이 설치돼 있다. 이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참관한 뒤 휘호를 써준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림이 기증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신안군에서 관리인을 두고 제초비와 비품비 등으로 연간 120만∼150만원을 대주고 있다. 추수 후에는 초가지붕 보수비 등으로 700만원을 더 지원한다. 이장 이형열(60)씨는 “대통령 생가가 너무 초라하다는 여론이 있어 생가와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려고 최근에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 자주 개입하면서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생가보다 묘가 위치한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달 22일 자발적으로 1000여만원을 모아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탄신 110주년 추모행사를 갖고 ‘대통령 마을’로 선포했다. 마을 이장 이성복씨는 “생전에 1주일에 한번씩 내려와 마을에 나무와 꽃을 심고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음덕을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그들의 생가 형태와 규모 대통령 생가 중 가장 큰 집은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다.‘아흔아홉칸’이라고 하나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등 4동뿐이다. 기와집에 총건평 352㎡에 이른다.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2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진다.1984년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중부지역 가옥형태로 윤 전 대통령 장남이 소유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58㎡의 초가집과 안채(114㎡), 분향소(119㎡)로 돼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금오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현월봉 아래 자리한 명당 중의 명당으로 ‘대통령이 날 만한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1993년 2월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다. 이 집은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살았다. 대구사범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전시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돼 있다. 목조 기와집이지만 본채는 76㎡, 사랑채는 26㎡로 보잘것 없는 규모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초년생때부터 대통령 당선때까지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1950년 공비가 침입, 모친을 살해했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거제시에서 2명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연간 관리비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가, 관리동, 헛간, 소금전시관, 화염(불에 구운 소금) 제조공장 등 5채로 초가집이다. 김 전 대통령은 4학년 1학기까지 이 집에서 살다가 목포로 전학을 갔다.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8000여만원을 모아 생가를 복원했다. 대통령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 12개, 붓글씨 액자 2개, 책상과 20여권의 책, 벽시계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안채, 행랑채, 대문 등 초가 건물 3채이다. 총건평은 251.5㎡이다. 당초 5채였으나 2채는 1988년 11월 방화로 소실됐다. 군과 면사무소 직원이 수시로 들러 제초작업 등 보수를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생가, 우사, 창고로 꾸며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경북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국풍’이라고 하는 풍수학자들은 연기산·윗도덕산 등 생가 앞에 큰 산이 많아 인물이 났다고 얘기한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머물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지어지고 있다. 생가 뒤편이다. 시공 업체가 공사현장에 펜스를 치고 작업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공사현황을 알 수 없다. 김해시 관계자는 “작업현장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정확한 진척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준공 예정일을 감안하면 공정률이 90%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사저는 다음달 말 준공될 예정이다.3991㎡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총건평이 933㎡에 이른다. 지난 1월15일 기공식이 열렸다. 노 대통령의 생가는 사저 앞쪽 463㎡의 터에 목조 슬레이트 건물로 지어져 있다. 본채와 20㎡ 남짓한 헛간이 있다. 마당은 40㎡쯤 된다. 이 집에는 하모(65)씨 부부가 살고 있으나 지난 2월 강모(61)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씨는 연말까지 집을 비워 주기로 했다. 강씨는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로 경남 창원에서 자동차부품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강씨가 생가를 매입한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친형인 건평씨가 생가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저가 생가 바로 뒤에 건립되고 있어 조만간 생가를 복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퇴임 후 강씨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거나 증여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도 휴일이면 200여명씩 찾고 있다. 훗날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업적을 어떻게 평가받고 인기를 얻어 어떤 대통령 생가를 닮아갈지 궁금하다. 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NLL 기고는 靑지침” 군사저널 9월호

    지난달 28일 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의 교체(9월1일자 1면 보도)를 부른 서주석 연구위원(전 청와대 안보수석)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일간지 기고문은 ‘청와대의 지침’에 따른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1일 발간된 ‘군사저널’ 9월호는 ‘NLL 문제로 뒤엉킨 남북 정상회담’이란 커버스토리를 통해 “NLL 기고문 문제로 28일 열린 KIDA 대책회의에서 서 위원은 기고가 청와대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전 시사저널 3인방이 말하는 ‘기자의 삶’

    심의 과정에서 ‘방송부적합’ 판정을 받아 방영이 보류돼 왔던 EBS ‘다큐, 여자’의 ‘굿바이! 시사저널-희망을 보다’가 22일부터 24일까지 3일에 걸쳐 방송된다. 첫 방송은 22일 오후 9시20분. 주인공은 전 시사저널 기자 장영희, 김은남, 안은주씨. 이들은 한결같이 “시사저널 기자라는 꼬리표는 일종의 훈장이었고 청춘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이 덜컥 시사저널에 사표를 던졌다. 바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자 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이유 때문이었다. 2006년 6월, 인쇄 직전에 3쪽 짜리 기사 하나가 시사저널에서 날아가면서 시작됐다. 곧 파업과 직장 폐쇄로 이어졌고 ‘기자가 기자이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 월급이 끊긴 상황에서도 기자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은 단식농성에까지 돌입했다. 이렇게 투쟁하기를 1년. 결국 22명의 기자는 전원 시사저널을 나왔고, 이들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이들이 창간하는 새 매체의 이름은 ‘시사IN’. 새달 첫 호가 발간될 예정이다. 다시 펜대를 잡게 된 지금, 기자들은 작년 이맘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지난 1년의 세월이 버티고 있기 때문. 자본과 자신과 싸우던 시간, 부조리와 생활고와 싸우던 시간들이다. ‘다큐, 여자’는 시사저널을 잃었지만 그보다 소중한 것을 얻었다는 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정덕희 교수도 ‘학력위조’…네티즌들 시끌

    정덕희 교수도 ‘학력위조’…네티즌들 시끌

    정덕희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도 학력위조를 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시사저널은 13일자 기사에서 정교수의 학력과 경력 등이 모두 위조됐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날 “정교수는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동국대 교육대학원 졸업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예산여고 졸업이 최종학력”이라며 “방송통신대도 다닌 적이 없고,동국대 대학원도 학위가 없는 연구 과정을 수료한 것이 전부”라고 보도했다. 이어 시사저널은 “경인여대 교수를 지낸 적도 없다.”며 “확인 결과 시간강사로 잠깐 강의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알려진 학력·경력이 가짜인 것은 맞지만 스스로 이력을 위조한 사실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 이후 네티즌들이 “정교수는 예전부터 스스로 고졸이라고 밝혀왔다.”며 “방송이나 강의 등을 통해 말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기사들 중에선 “고 2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선 학업도 포기해야 했어요.”(여성동아 2004년 7월호),‘1973년 예산여고 졸,199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수료’’(대전매일2004년 6월 28일자 [인물포커스]) 등으로 표기한 자료가 있었다. 반면 “언제까지 속이려고 했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대통령도 학력 안 속이고 잘만 대통령 되던데….”,“학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속이지 않는 게 중요한 것”이라는 의견들도 있어 정교수를 옹호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의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부고]

    ●방효선(CJ미디어 영업본부장)효영(엔미디어스타 과장)씨 부친상 김성호(미성건설 대표)이무수(셀바이오텍 차장)이봉윤(화인텍센츄리 과장)씨 빙부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3410-6920●이윤성(삼성전자 책임연구원)훈성(LG화학 대리)숙이(전 시사저널 정치팀장)진이(국민은행 전주기업금융지점 과장)씨 모친상 홍영오(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하영호(전라일보 교육부장)씨 빙모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3410-6912●김진식(사업)명식(광주매일 정치부 차장)준식(자영업)향님(경기 부천 북초등학교 교감)씨 부친상 이명남(사업)김진만(미래 이사)씨 빙부상 7일 광주 미래로21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62)450-1401●손주호(전 금강기획 상무)김영찬(사업)박중권(서울시 주택공급팀장)원영은(나노테크&메디 상무)씨 빙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293●김범무(사업)영섭(김영섭사진화랑 관장)씨 부친상 7일 서울 순천향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2)792-1634●이하철(세일자동차공업사 대표)씨 모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3010-2291●정태신(전 서울 천동초등학교 교감)씨 별세 현용(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씨 부친상 김양순(고려대 영어영문과 교수)씨 시부상 김건영(사업)김봉기(전 대우건설 차장)씨 빙부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3010-2265●이원영(전 외교통상부 대사)시영(THK 대표)씨 부친상 이장환(이미지스톤 대표)씨 조부상 조건희(전 한국리스 부사장)씨 빙부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410-6915●정도현(삼안엔지니어링 대표)재석(전북은행 영업추진팀)씨 부친상 신영태(대한지적공사 전주시지사장)씨 빙부상 7일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10시 (063) 285-4002
  • [인사]

    ■ 서울신문 (제작국)△기술부장 김대혁■ 스포츠서울21 (편집국)△편집부장 김경만△체육2〃 양성동△체육1〃 직무대행 홍헌표△사회〃 〃 성정은△엔터테인먼트〃 〃 이영규(광고국)△부국장 직무대행 겸 기획제작부장 김한석■ 중앙인사위원회 △홍보협력담당관실 崔龍植■ 교육인적자원부 △인적자원정책본부장 김광조△차관보 김정기△정책홍보관리실장 김경회△인적자원정책본부 정책조정관 임승빈△대학혁신추진단장 이걸우△학교정책실 지방교육지원관 김남일△평생직업교육지원국장 곽창신△대학지원〃 우형식△서울시 부교육감 박경재△광주시 〃 우승구△경기도 제1부교육감 황인철△전라남도 부교육감 김석현△경상남도 〃 엄상현△서울대 사무국장 김화진△전북대 〃 이영찬△충북대 〃 이승무△교육인적자원연수원장 김동옥△국가균형발전위원회 황홍규△장관비서관 박백범△경북대 사무국장 박춘란◇부이사관△인적자원정책본부 정책총괄팀장 김영철△대학지원국 대학정책과장 이기봉△서울대 학사〃 주남창△한국체육대 총무〃 김정석△한밭대 사무국장 박표진△충주대 〃 김원찬△한경대 〃 김춘기◇서기관△인적자원정책본부 대외협력팀장 배상훈△〃 인력수급〃 김선호△〃 산학연계〃 변영만△〃 통계정보〃 김환식△감사관실 기획감사담당관 이지한△운영지원팀장 신강탁△정책홍보관리실 사교육대책추진〃 박영숙△〃 재정총괄〃 박 준△학교정책실 교육단체지원과장 하수호△〃 방과후학교정책〃 함석동△평생직업교육지원국 평생학습정책〃 승융배△〃 전문대학정책〃 오승현△〃 직업교육진흥팀장 김문택△대학지원국 학술진흥과장 박주호△〃 대학재정복지팀장 이용균△국제교육정보화국 국제교육협력과장 최은옥△〃 지식정보정책〃 전우홍△충북교육청 기획관리국장 이장길△강원대 행정본부장 강정길△한국해양대 사무국장 명상률△상주대 〃 윤권수△교원소청심사위원회 심사과장 박철현△인적자원정책본부 평가정책팀장 노환진△평생직업교육지원국 여성교육정책과장 서영주△인적자원정책본부 권성연 김태형 황영준△학교정책실 현철환△부경대(대통령비서실) 박성수△교육인적자원부 김병규 정봉문(미국 플로리다대) 양창완△국무조정실 서병재△외교통상부 김천홍△인천시교육청(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김익로△서울대 선태무 이종실△충남대 김대성△전북대 윤석태△전남대 신영재△경북대 최승복△공주대 이재달△학술원 사무국 양열모△교육인적자원부 정재현△정보통신부 김기영△서울대 조혜영◇연구위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 강경종 최영섭△한국교육개발원 김태준△한국개발연구원 이경영◇장학관△교육과정기획과장 박제윤△과학산업교육정책〃 김종관■ 통일부 ◇승진 △남북경제협력본부 경협기획관 金炯錫△통일교육원 개발지원부장 朴淳泰◇전보 (부이사관)△사회문화교류본부 사회문화총괄팀장 尹美良(4급)△정책홍보본부 홍보협력팀장 李相旻△인도협력단 인도협력기획〃 金南中△통일교육원 교수부 교육운영〃 徐東薰■ 법무부 ◇전보 및 파견 △성남지청 부장검사 박환용◇신규임용△대전지검 검사 김원학△대구지검 검사 김정훈 이동원■ 노동부 ◇전보△광주지방노동청장 權永淳(팀장급)△감사팀장 金城九△고용서비스혁신단장 任書正△고용정책팀장 林茂松△사회서비스일자리정책〃 魯吉濬△고용보험정책〃 朴炯政△산재보험혁신〃 趙昺琦△보험운영지원〃 梁盛弼△능력개발정책〃 金 汪△노사정책〃 李株一△임금근로시간정책〃 朴晟希△퇴직급여보장〃 金鐘哲△안전보건정책〃 金炳玉△산업보건환경〃 權好顔△서울서부지청장 朴柱貞△서울관악〃 申周烈△강릉〃 姜明子△부산종합고용지원센터소장 金成光△경인〃 河美容△수원지청장 高長洙△평택〃 徐石柱△안산〃 李輔干△광주종합고용지원센터소장 宋文鉉△군산지청장 柳景熙△대전종합고용지원센터소장 趙京元△청주지청장 郭魯燁△충주〃 李相鎭△산재심사위원회 사무국장 朴德晥△노동부 鄭洪南■ 건설교통부 △주사우디아라비아 주재관 전만경■ 한국교직원공제회 △기획조정실장 尹炳允△총무부장 李建鎬△사업운영〃 段成基△대전지역본부장 李載亨△교원나라제주호텔 사장 朴善穆△천마개발 사장 朴建龍△서드에이지 사장(겸직) 金國顯■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 吳萬錫△한국학대학원장 丁淳佑△연구처장 金福壽△장서각관장 崔珍玉△해외한국학지원실장 李完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전보 △복합구조연구실장 황윤국△구조시스템연구〃 박영환△구조재료연구〃 김성욱△첨단도로교통연구〃 강원의△도로시설연구〃 유인균△도로연구〃 성정곤△토질·기초연구〃 조삼덕△기하구조물연구〃 김창용△지반방재·환경연구〃 정하익△하천·해안연구〃 김규호△수자원연구〃 김경탁△수문연구〃 김남원△첨단환경연구〃 김광수△국토환경연구〃 오현제△건축·도시연구〃 김수암△건축·도시환경연구〃 조동우△건축구조·재료연구〃 배규웅△정책연구〃 윤석영△기획〃 이승언△대외협력〃 유해운■ 한국학술진흥재단 △장학실장 겸 장학지원1팀장 김의호△BNC 운영지원정보관리실장 지정규△BK21사업지원〃 최인엽△NURI사업지원〃 오석환△공학지원팀장 손진△생명과학지원〃 이지근△학술정책〃 직무대행 송재준△성과분석〃 한동성△기획예산〃 한상덕△경영지원〃 최영철△경영지원〃 겸 지방이전TFT〃 김형구△장학지원2〃 정세황△BNC 운영지원〃 김능섭△BK21사업지원〃 직무대행 박진일△NURI사업지원〃 김경일■ 건국대 △서울캠퍼스 생활관 KU:L HOUSE 관장 金澤鎬△〃 학생복지처 취업지원팀장서리 權容奭△〃 연구처 연구지원팀장 宋鍾昇△건축전문대학원·건축대 행정실장 朴君植△부동산대학원 〃 張雲洙△디자인대학원·예술문화대학 〃 劉松實■ 인하대 △공과대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겸 산업과학기술연구소장 구윤모△자연과학대학장 겸 기초과학연구소장 전홍석△학생지원처장 겸 학생생활연구소장 겸 종합인력개발센터장 윤금상△교무제2부처장 윤진희△교양영어부장 노은주△신문사주간 겸 교육방송국 주간 김대호△평생교육원 부원장 배을규△자연과학대 부학장 이재우△사범대 〃 오수학△문과대 〃 김만수△의과대 〃 박인선△기계공학전공 주임보 조명우△해양배양장소장 박용철△교육학과장 손민호△인문학부장 이봉규△의학교육실장 김경래△의과대 교무부장 박소라△〃 연구〃 이돈행△의약물독성연구소장 강주희△건설환경시스템연구소장 구민세△RFID//USN 산학공동연구소장 김재명△플라즈마기술기반센터소장 이석현△지리정보공학연구소장 박수홍■ 한신대 △학생처장 노중기△입학관리실장 강민구△정보관리〃 박성진△학술원장 강남훈△산학협력단장 변종석△인문대학장 김용희△사회과학〃 유세종△경상〃 겸 국제경제학과장 김성구△중앙도서관장 겸 교수학습센터소장 전창환△학보사·방송국 주간 성낙선△박물관장 이남규△기록정보관장 겸 국사학과장 안병우△대학원 교학부장 겸 일본지역학과장 송주명△신학전문대학원 교학부장 권명수△〃 생활관장 박경철△학생상담센터소장 겸 교육대학원 교학부장 오현숙△공학교육혁신센터소장 겸 정보과학대학장 홍성찬△공학교육혁신센터PD 겸 소프트웨어학과장 류승택■ 세계일보 △경영지원본부장 趙暾熙■ 서울경제 △출판국 광고부국장대우 박선규△〃 골프매거진부장 김종렬△총무국 총무부장대우 김홍기 ■ 메트로신문사 ◇승진 △마케팅본부장(상무이사)김종학△경영기획실 부장 유종규◇직책임용△편집국장 직무대행 류수근■ 프레시안 △정치1팀장 임경구△정치2〃 전홍기혜△사회〃 김하영■ 서울미디어그룹 (시사저널)△대표이사 회장 겸 발행인 沈相基△편집인 겸 편집국장 全南植△편집팀장 겸 편집제작담당 부국장대우 金在泰(서울미디어그룹)△부회장 琴昌泰■ 동양종금증권 ◇팀장 △ 고객지원팀 공현준△고객지원센터 노진영△제휴사업팀 김한주■ 현대와이즈자산운용 ◇상무 △경영지원본부장 김광진 ◇이사 △채권운용본부장 한재영△마케팅본부 김대식■ 르노삼성자동차 ◇상무 승진 △영업본부 네트워크 오퍼레이션장 최순식■ 대상정보기술 △대표이사 사장 김진수
  • [열린세상] ‘경제 대통령 元祖’ 경쟁/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열린세상] ‘경제 대통령 元祖’ 경쟁/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2007년 대선은 ‘경제 대선´이 될 것 같다. 그동안 대선이 정치적 주제로 승패가 좌우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과거 대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한 것은 물론 지역주의였다. 지역간 대결 양상은, 선거 결과만 보면 여전하지만 이제 대선 흐름의 핵심 이슈라 하기는 어렵다. 때 되면 나타나던 사상검증도 일찌감치 시큰둥해졌고,‘X파일’이라고 불리는 도덕성 시비에 대해서도 예전만큼 관심이 없는 듯하다. 또 북핵 실험이 터져도 놀라지 않고,6자 회담이 재개되어도 별 관심이 없을 정도로 대북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의 중점 국정운영 분야를 물으면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은 바로 ‘경제’다. 남북문제, 정치개혁, 비리척결 등 나머지 모든 분야를 합쳐도 경제에 대한 국민 관심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2007년 대선주자들은 너도나도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다.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는 일찌감치 ‘추진력’을 앞세워 고도성장 시절의 추억을 대중에게 상기시키며 사상 초유의 높은 지지도를 보여줬다. 또 지지도 2위를 달리는 박근혜 같은당 경선 후보는 경제 대통령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차이 나는 3위지만 범여권 유력 주자가 된 손학규 전 지사도 ‘진짜 경제 대통령’을 주장하며 원조경쟁에 가세했다. ‘경제 대통령 신드롬’이라고도 불릴 만한 이 경제에 대한 목마름은 고도성장의 금단현상,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해진 양극화에 따른 불안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그동안 불안을 부채질하는 듯한 노무현 대통령의 거침 없는 행보도 ‘열심히 일만 하면 걱정 없이 잘 산다.’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대중의 욕망을 부추겼다고 본다. 문제는 지금 대중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오로지 경제(only economy)’ 현상은 ‘묻지마 성장론’으로 압축되는 외눈박이 경제관인 동시에, 공동체가 지켜나가야 할 또 다른 중요 가치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주장하며 언급한 ‘공동체의 이상과 삶의 질, 무자비한 노력 대신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지향하는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 등은 우리 사회에서 대안으로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앞서도 언급한 대선주자에 대한 도덕성 시비라든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방관적 태도,‘시사저널’ 사태에도 관심 없지만 기자실 폐쇄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현상은 모두 같은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돈 얘기만이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국민이 유일하게 잘사는 방법으로 여기는 ‘성장 중심주의’ 말고 다른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는 대선주자는 없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성장 중심 가치를 지향하는 한나라당은 그렇다 치고, 대안적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내놓고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야 할 범여권 진영은 감동 없는 ‘대통합신당’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 대안은커녕 논쟁조차 하지 않는 것은 그런 점에서 크게 잘못되었다. 국민이 범여권 대선주자와 대통합에 냉담한 것은 그들에게 한나라당 후보들이 내놓는 ‘성장의 추억’을 대체할 만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별다른 해법이 없다면 국민이 과거에 맛본 확실한 대안, 즉 ‘묻지마 성장’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초의 ‘경제 대선’이라는 이번 대선에서 차별화된 대안 없이 경제 대통령 ‘원조’ 경쟁에 너도나도 줄 서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 [사회플러스] 기자협회, 시사저널 제명

    한국기자협회가 24일 시사저널을 회원사에서 제명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집단 사표로 이어진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 사태(삼성 관련 기사 삭제)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 양극단 오간 ‘마리 앙투아네트 삶’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은 말 그대로 양극단을 오가는 것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지저분한 감옥, 순진한 여인에서 매춘부적 모습까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5월 한국에서 개봉한 동명의 영화로 주목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이 TV다큐멘터리로 찾아온다. EBS ‘다큐 10’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파란만장한 삶’ 2부작을 19일과 20일 오후 9시50분에 방송한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마지막을 살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담아냈다. 1부 ‘왕비가 되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출생에서 시작해 루이 16세와 혼인한 뒤 어떻게 결혼 생활을 이끌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앙투아네트가 14세 되던 해,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면서 막내딸의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앙투아네트는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앙투아네트는 도박과 사치에 빠져든다.1775년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고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거주하는 ‘프티 트리아농’이란 사저는 온갖 스캔들의 진원지가 되고 만다. 흉년과 재정파탄으로 높아진 백성들의 불만이 정점에 달한 것은 희대의 사기인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는다. 2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1793년 루이 16세가 처형된 데 이어 같은 해 국고낭비와 반혁명 죄로 앙투아네트 역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시사저널 前 기자들 창간매체 제호 공모

    경영진의 삼성 관련 기사 삭제로 파업을 벌이다 지난달 26일 사측과 최종 결별한 시사저널 기자들이 2일 오후 서울 방송회관에서 ‘새 매체 창간 선포식’을 갖고 창간 자본금을 댈 투자자와 제호를 공모했다. 22명의 기자들로 구성된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은 “새 매체는 전문·탐사보도를 통해 사안에 대한 근원적 접근과 대안을 모색하는 창의적 저널리즘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무모했지만 사회적 지지 확인”

    “우리는 무모한 기자들일지 모릅니다.” 26일 시사저널 파업기자 22명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의 삼성 관련 기사 삭제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만이다. 정희상 시사저널 노조위원장은 “무모했지만 독립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인해 뿌듯하다.”고 했다.27일 오후 밀린 급여와 퇴직금 등 ‘결별절차’를 밟기 위해 사측 교섭대표를 만나고 온 직후였다. 그는 “시사저널에 기여한 기자들의 공을 생각해 파업 기간 동안의 급여지급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법적으로 처리하자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지난 18일 정 위원장은 사주인 심상기 서울문화사 회장 자택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일주일 만에 단식을 접고 사표제출을 결정하기까지의 물밑교섭 내용을 소상히 전했다.“중재에 나선 이준안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금 사장은 5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요구하는 한편,‘짝퉁 시사저널’을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을 고용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16년차 정 위원장이 사표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 기사삭제 사태 9개월 전인 2005년 9월, 그는 첫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 위원장은 “금 사장이 사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칼럼 집필진으로 영입해 고액의 원고료를 지불하며 잡지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편집국 분위기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면서 “당시 심 회장이 ‘청문회’를 열어 금 사장이 기자대표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합의문까지 쓰게 해 봉합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사저널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거대재벌과 언론 사이에서 편집권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거한 의미 있는 사건”이라면서 “파업 기간 동안 어려움은 말로 못하지만 1년 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우리의 선택은 똑같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표를 제출한 22명의 기자들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을 꾸리고 다음달 2일 새매체 창간 발대식을 갖는다. 정 위원장은 이를 “독립언론 창간운동”이라고 표현했다.글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 명예훼손訴 패소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는 27일 “‘삼성 고위층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삼성그룹 관련기사를 편집국장 몰래 삭제했다.’는 허위기사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이 정일용 기자협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황상 금씨가 편집국장에게 통보하지 않은 채 직접 기사삭제를 지시한 사실이 인정되고, 삭제 결정 후에도 편집국장에게 알리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언론계에서 이루어지는 편집권의 해결방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한겨레21 등에서 이런 기사삭제 지시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고 다소 과장된 표현을 썼어도 관련 기사내용은 전체적으로 진실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시사저널 기자 전원 사표

    경영진의 삼성 관련 기사 삭제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가 1년 만에 파업기자들의 사표 제출로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현 경영진과 결별하고 금명간 새 매체 창간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시사저널 노조(위원장 정희상)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노조는 전체 기자들의 사표를 주말쯤 일괄적으로 회사측에 제출할 방침이다. 노조측은 “경영진과 사주는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넘도록 반성과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시사저널 경영진과 사주의 태도를 보면서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노조는 25일 총회를 열어 ‘회사복귀 후 투쟁’ 안을 놓고 투표한 결과, 찬성3, 기권1, 반대18로 투쟁을 마무리하고 회사를 떠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 위원장은 “단식농성 기간 중 사측은 복귀 조건으로 대체고용 편집위원의 정식채용과 기자들 구조조정 의사를 전해왔고 노조에 대상자 명단을 달라고까지 했다.”면서 “노조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들은 사표제출과 동시에 신매체 창간 작업에 돌입한다. 편집권 독립 확보를 위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발기인을 모집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파업 6개월째 ‘막다른 골목에’

    파업 6개월째 ‘막다른 골목에’

    ‘시사저널 사태’가 1년을 맞았다.18일은 삼성 사장단 인사 관련 기사가 시사저널에서 삭제된 지 366일째 되는 날. 파업 6개월째인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사 앞과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 연이어 섰다. 기사삭제 책임자 처벌을 외쳤고, 매체 매각을 추진 중인 사측을 비판했다. 기자들은 “이제 사태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회사가 물러서든 우리가 회사를 떠나든 결론을 맺겠다.”는 각오다. 기자들은 이를 ‘끝장투쟁’이라고 표현했다. 기자들은 이날 회사 경영진에게 받았던 사령증과 상패, 기자증을 회사에 반납했고, 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은 사주 심상기 서울문화사 회장의 북아현동 자택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독립언론 정신 회복’이란 전제 없이는 회사에 복귀할 수 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15일, 금창태 사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삼성 이모 당시 부사장은 사장단 인사문제를 비판한 통권 870호 기사에 문제를 제기했고, 금 사장은 17일 편집까지 마친 기사를 인쇄소에서 삭제했다. 회사는 ‘편집권 침해’라며 항의사표 낸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를 21일 수리했고, 기자단은 22일 사장 퇴진 시위를 벌였다.29일엔 기자협의회가 노조로 전환하는 등 시사저널 기사삭제 ‘사건’은 순식간에 ‘사태’로 발전했다. 올 1월5일 기자들은 창간 19년만에 첫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회사대로 비상임 편집위원을 대거 위촉해 파업 3일 뒤인 18일 ‘기자 없는 시사저널’을 발행,‘짝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5월15일 기자들의 금 사장 퇴진 요구를 사측이 거부하면서 최종 노사협상이 결렬됐고, 같은 달 22일 기자 23명 전원은 노조 집행부에 사표를 일임했다. 노사간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얼마 전부터는 시사저널 매각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노조측은 “사측의 매각 추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면서 “매각은 절대 없다고 약속한 심 회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노조 주장을 “사실무근”이라 일축하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 1년, 기자들은 기로에 서 있다. 회사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최종 판단이 설 때, 기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새 매체 창간이다. 정희상 위원장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주도해 창간하는 방식을 제안 받았다.”고 전하면서도 “시사저널 복귀 가능성이 단 1∼2%만 있어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끝장투쟁’이 시사저널과의 끝장이 될지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 될지, 이번 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Ⅱ

    후금을 치는데 동참하라는 명의 요구가 날아들었을 무렵, 광해군은 정치적으로 고비를 맞고 있었다. 외교적 감각이 탁월했던 광해군이지만, 내정(內政)에서는 적지 않은 난맥상을 드러냈다.‘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廢母殺弟) 패륜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이 대표적이다. ‘폐모’는 ‘살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양자 모두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광해군의 노심초사와 강박관념에서 비롯되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 논란 끝에 이복 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살해되었다. 영창대군의 생모 인목대비(仁穆大妃)는 광해군에게 극단적인 원한을 품게 되었고, 이이첨(李爾瞻) 등 광해군의 측근들은 인목대비마저 폐위시켜 후환을 없애자고 부추겼다. 하지만 모후(母后)를 폐위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었다.‘폐모 논의’를 둘러싼 내우(內憂)가 한창일 때, 후금 정벌에 동참하라는 명의 요구는 외환(外患) 그 자체였다. ●대동법 시행·창덕궁 수리 등 국가재건 앞서 광해군이 이룩한 치적(治績) 가운데는 볼 만한 것이 적지 않다. 그는 자기 시대의 역사적 과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안으로 임진왜란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고, 밖으로 명청교체(明淸交替)가 몰고 올 파장에 대비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광해군은, 그 같은 과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정치판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위 직후 광해군은 당파(黨派) 사이의 대립을 조정하는데 힘썼다. 비록 이이첨, 정인홍(鄭仁弘), 유희분(柳希奮) 등 북인(北人)들이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 일등공신이었지만 광해군은 그들만을 편애하지 않았다. 이원익(李元翼), 이항복, 이덕형 등 선조 이래의 중신들을 우대하여 그들의 경륜을 활용하려 했다. 이원익은 1608년 경기도에서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공물(貢物)을 백성들에게서 현물 대신 쌀로 받아들이는 조처였다. 자기 고장에서 나지 않는 공물을 현물로 납입하라고 강요할 경우, 필연적으로 청부업자들이 중간에서 설치게 된다. 백성들은 결국 방납인(防納人)으로 불리는 청부업자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물품을 구입하여 관청에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경제적 부담은 치솟고, 방납인들만 떼돈을 벌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자연히 방납인 중에는 상인뿐 아니라 사대부와 왕실의 인척 등 온갖 모리배들이 섞여 있었다. 쌀은 백성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청부업자들이 농간을 부리기가 쉽지 않았다. 대동법의 실시는 경기도 백성들에게는 ‘복음’이었지만 방납인들에게는 기득권을 흔드는 ‘비보(悲報)’였다. 방납인들의 반발과 아우성을 일축하고 대동법을 밀어붙인 것만으로도 광해군은 ‘현군’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광해군은 왜란 중에 불타버린 창덕궁을 수리하고, 종묘(宗廟)를 중건하고, 사고(史庫)를 비롯한 여러 관청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이 같은 외형적인 재건 작업뿐 아니라 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심신을 다독이고, 무너진 사회질서를 다시 세우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반포하고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와 같은 윤리 서적을 간행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폐모살제 멍에로 내정에 난맥상 광해군은 분명 임진왜란 이후 국가 재건과 외교에서 상당한 치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늘 정치적으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첩자(妾子)이자 차자(次子)라는 이유로 왕세자 책봉이 지연되고, 부왕 선조로부터 견제받았던 ‘전력’은 즉위 이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집착으로 표출되었다. 더욱이 역모 사건은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당파 사이의 갈등과 대결은 재연되었다. 특히 선조의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의 존재는 광해군은 물론, 광해군 즉위에 앞장섰던 이이첨 등 대북파(大北派)에는 잠재적으로 왕위를 위협하는 요소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1613년 4월, 문경새재에서 은상(銀商)을 살해한 혐의로 국문(鞫問)을 받던 서얼 박응서(朴應犀)는 ‘엄청난 내용’을 실토했다.“은상에게서 빼앗은 자금으로 역도들을 모아 대궐을 습격하여 인목대비에게 옥새를 바친 뒤 영창대군을 국왕으로 추대하려 했고, 역모의 우두머리는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북파의 정적이었던 남인(南人)과 서인(西人)들은 대부분 유배되거나 조정에서 쫓겨났다. 이것이 바로 계축옥사였다. 김제남은 사약을 마시고 죽었고, 여덟 살에 불과한 영창대군도 유배된 직후 살해되었다.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를 지켜 주지 못했다. 인목대비가 광해군에게 처절한 원한을 품은 것은 당연했다. ‘광해군일기’에는 박응서를 매수하고, 영창대군을 살해하는데 이이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계축옥사는, 우유부단하고 심약했던 광해군이 ‘왕권 강화’에 골몰하다가 빚어진 비극이기도 했다. 이이첨 등은 이윽고 인목대비마저 ‘역모 관련자’로 몰아 처벌하려 했다. 대북파는 ‘인목대비와 광해군의 모자(母子) 관계는 끊어졌기 때문에 따로 거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논란 끝에 인목대비는 결국 서궁(西宮-오늘날 덕수궁)에 유폐되었다. 하지만 광해군에 대한 충(忠)을 강조한 대북파의 ‘폐모’ 시도는 재야 사림들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것은 효(孝)를 무시한 ‘금수(禽獸)의 행위’라고 매도되었다.1618년 1월, 이이첨 등은 들끓는 비판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정청(庭請)이란 것을 벌였다. 조정의 모든 신료들을 동원하여 ‘국왕에게 불충한’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라고 광해군에게 요청하는 절차였다. 광해군은 ‘폐모 논의’가 인륜에 관련된 사안이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이첨 일파를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했다. 인목대비가 유폐된 상태에서 ‘폐모 논의’는 결말을 보지 못했고, 그 와중에 명의 파병 요구가 날아들었던 것이다. ●무리한 토목공사에 민심은 등 돌려 왕권 강화에 대한 광해군의 집착은 토목공사에 몰두하는 형태로도 표출되었다. 그는 1611년 창덕궁을 중건했지만 연달아 다른 궁궐들을 짓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신문로에 경덕궁(慶德宮, 뒤에 경희궁으로 개명)을 지었고, 정원군(定遠君, 광해군의 이복동생이자 仁祖의 아버지)의 사저가 있던 인왕산 부근에 ‘왕기가 서렸다.’는 말을 듣고 인경궁(仁慶宮)을 지었다. 단종과 연산군이 쫓겨났던 장소인 창덕궁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광해군은 궁궐이 완성된 뒤 이 궁궐, 저 궁궐을 옮겨다니는 행태를 보였다. 그럴듯한 궁궐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원구단(圓丘壇)을 짓고 하늘에 교제(郊祭)까지 지내려 했다. 그것은 중국의 천자(天子)만이 할 수 있다는 제천의식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궁궐들을 짓고, 교제까지 지내려 했지만 토목공사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인경궁과 경덕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장대한 궁궐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간에 전가되었다. 증세(增稅)에도 불구하고 재원이 부족하자 은이나 목재, 석재 등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관직까지 팔았다. 부족한 재원을 긁어모으기 위해 조도사(調度使)란 직책을 지닌 관원들을 전국에 파견했다. ●삐딱한 여론… 외교발목 잡아 백성들로부터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세금 부담뿐 아니라 목재 등을 운반하는데 사역되는 백성들의 반발도 컸다. 계축옥사를 통해 쫓겨났던 남인이나 서인 출신의 신료들은 ‘말세의 조짐’이라고 비아냥거렸다.‘폐모살제’ 때문에 얻게 된 ‘패륜’의 멍에 위에 ‘민생을 망쳤다.’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광해군이 명의 파병 요구를 거부하려 했던 데에는 궁궐 건설을 비롯한 토목공사가 방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자리잡고 있었다. 이미 토목공사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로 민심이 술렁이고 있는 형편에 파병 비용까지 더해질 경우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외교와 내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빛나고 탁월한 외교라도 내정에 발목이 잡히면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폐모 논의’와 토목공사 때문에 삐딱해진 여론의 시선이 광해군의 외교를 좋게 봐줄 리 없었다. 내정의 난맥상은 결국 광해군 외교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서울 4色 탐험-역사의 숨결] (6) 이화장

    [서울 4色 탐험-역사의 숨결] (6) 이화장

    # 덧댈 수 없을 때까지 바느질하다 이승만 박사는 스웨터와 바지는 물론 속옷까지 기워 입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밤새 옷을 손질해 놓으면 다음날 기꺼이 낡은 옷을 걸쳤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뒤 여사는 손자들의 옷을 기웠다. 바지길이가 넉넉한 것을 구입해 아랫단을 잘라 놓았다가 무릎이나 엉덩이가 해지면 그 조각천을 덧대었다. 여러 번 기워 덧댈 수 없을 때까지 바느질했다. # 몽당연필로 가계부 쓰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71년부터 10년간 며느리와 함께 가계부를 썼다. 콩나물·멸치·사탕 하나까지 일일이 적었다. 며느리는 “보름마다 가계부를 검사받았는데 검사 전날에는 밤새우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지출 내역과 잔액이 맞지 않으면 구입물품을 지어내느라 애도 먹었다. 그럴 때 여사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서 첫 월급을 받아오던 날이란다. 그 소중한 돈을 한푼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내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며 며느리를 다독였다고 한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체취 가득 서울 종로구 이화동 ‘이화장’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가 머물던 사저이다. 이 대통령을 기념하는 ‘우남 리승만 박사 사적관’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16일 방문한 이화장에서는 이 박사보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손길이 훨씬 많이 느껴졌다. 이 박사는 대통령 취임 전 1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여사는 20년간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76)씨와 며느리 조혜자(65)씨가 살고 있다. 이화장 자리는 원래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했다. 조선 중종 때 학자 신광한(1484∼1555)과 인조대왕의 제3왕자 인평대군(1622∼1658)이 여기에 저택을 지었다. 정문을 통과하자 이 박사의 동상과 사적관이 보였다. 아름드리 나무 주변을 까치 한 마리가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돌길을 따라 들어갔다.1937년 지어진 한옥 기와집, 본채가 나왔다. 이 박사 부부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본관 입구에는 본래 이 박사가 아내를 위해 심은 은방울 꽃이 있었지만 1992년 여사가 저세상으로 떠나자 시들시들 죽어버렸다고 한다. ●사적관엔 고부가 52년 입은 예복도 이 박사 부부의 유품과 사진자료로 가득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15년간 입은 속옷,22년간 요리한 냄비·프라이팬,30년간 사용한 양산이 놓여 있었다. 특히 이 박사가 선물했다는 검정 예복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40년, 며느리 조혜자씨가 12년 입었단다. 본채에서 조각당으로 오르는 정원은 조형을 살려 꾸민 덕분에 자연미가 넘쳐났다. 길가에는 하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자연연못에는 붉은 물고기가 여유롭게 헤엄쳤다. 굴곡 많은 우리 근현대를 속삭이듯 굽이굽이 휘어진 고송이 굳건히 자리했다. 도심 수목원처럼 공기도 맑고 상쾌했다. 조각당은 마루가 딸린 단칸방인데 서너명도 앉기 힘들 만큼 좁았다.1948년 7월24일 이 박사가 초대 내각의 명단을 발표했다. 벽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전화 예약은 필수 이화장을 방문하려면 전화 예약(762-3171)이 필수. 최근까지 무료로 개방했지만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지원금이 없어 안내·관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산책로도 폐쇄했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데 청소 비용이나 인력이 없단다. 조혜자씨는 “어머님은 동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셨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씨줄날줄] 노무현 스쿨/육철수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 2월 퇴임 후에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모양이다. 이태 전 제헌절에 국회의장 관저를 방문해서 “의장공관이 청와대 관저보다 큰 것 같다.”면서 “(국회의장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농담했다. 어느 지인에게는 “퇴임한 뒤 부산시장에 나서 볼까.”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자자하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기 전에는 ‘당 고문’을 맡고 싶다고도 했다. 대통령을 지냈다고 해서 국회의원이나 단체장같은 선출직에 출마하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다. 하지만 창창한 나이인 62세에 임기를 마치는 노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활동이나 역할을 고민중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노 대통령의 농담조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낸 분이 선출직에 나설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이병완 전 비서실장 등 측근의 말을 종합하면 현실성 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노 대통령은 정치 일선에 나서기보다는 재임중 경륜을 살려 사회에 공헌하는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낙향을 결심하고 이미 고향(경남 김해)에 사저를 짓고 있으며, 고향 주변의 환경보존·농촌복원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고향에 소재한 인제대가 본교에 노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고, 서울캠퍼스(중구 저동)에 공공정책대학원 성격의 ‘노무현 스쿨’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하버드대학의 ‘케네디 스쿨’처럼 우수한 인재를 길러 국가사회에 기여하게 한다는 계획이란다. 예민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청와대는 “기념관 추진은 맞지만 ‘노무현 스쿨’은 과장보도”라고 해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는 벌써 “(노 대통령이) 업적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직 대통령이 4명이나 건재한 나라에서 아직 ‘은퇴문화’가 정립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가 양분·삼분된 탓일 것이다. 하지만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양성이 목표라면 대통령 이름을 딴 교육기관을 굳이 불온한 시각으로만 재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여생에 뭔가 기여하고 싶은 대통령에게 길을 터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파업 시사저널 기자 ‘퀴즈영웅’에

    파업사태를 맞고 있는 시사저널의 고재열 기자가 KBS 1TV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퀴즈영웅이 됐다. 제작진은 11일 “고 기자가 3일 녹화에서 파이널라운드 두 문제를 연달아 맞히며 퀴즈영웅에 올라 상금 2000만원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자신을 ‘생계형 도전자’라고 소개한 고 기자는 “파업으로 인해 4개월째 월급봉투를 집에 갖다 주지 못했다.”면서 “태어난 지 8개월 된 아들의 분유값과 기저귀값 마련을 위해, 또 고마운 아내에 대한 마음의 선물을 위해 퀴즈영웅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적금을 해약해 생활비에 보태는 등 마음 고생이 많았던 부인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파업으로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 기자는 상금의 절반을 시사저널 노동조합에 기탁할 것으로 전해졌다.녹화분은 15일 방송된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정운찬, 시민단체후보론 ‘솔솔’

    정운찬, 시민단체후보론 ‘솔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범여권 후보가 아닌 시민단체 등 제3세력의 후보로 대선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정치권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범여권의 ‘영입 0순위’인 정 전 총장이 실제 이런 수순으로 움직일 경우, 범여권의 통합신당 움직임이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대선이 3파전 이상으로 전개되는 등 파장이 예상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15일 기자에게 “정 전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범여권의 색깔이 묻은 세력과는 손잡지 않을 것”이라며 “비노(非盧)-반(反)한나라의 기조로 시민단체 등 제3세력의 후보로 나서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3일 한나라당 정보위원장인 김정훈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정 전 총장은 실패한 노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시민단체의 추대를 받아 ‘시민후보’로 자신을 규정지은 다음 범여권 후보가 되는 경로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총장의 최측근인 민주당 김종인 의원도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 전 총장의 행보와 관련,“기존의 다 망한 정당이 다시 헤쳐모이는 식의 통합신당은 아니다. 열린우리당도, 민주당도, 통합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통합번영국민운동’ 등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12일 첫 실무접촉을 갖고 정 전 총장 등과의 연대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히는 등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역구도를 거부하는 제3의 중도·개혁 성향 유권자가 갈수록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을 정 전 총장이 주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14대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가 380여만표,15대 때 이인제 후보는 490여만표를 실제 얻었고,16대 때 정몽준씨도 후보단일화 이전 지지율을 근거로 추산하면 700여만표를 확보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제3성향의 유권자가 17대 대선에서는 1000만명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돈다. 김정훈 의원은 “정 전 총장이 탈 이념, 탈 정치적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경우 전혀 다른 각도에서 대선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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