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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윤리경영지수’ CEO평가 반영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 계열사의 윤리경영 지수를 산정, 사장단 평가에 반영키로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윤리경영 활동을 종합·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새 판단지표 ‘윤리경영 지수’를 마련, 올해부터 최고경영자(CEO) 및 회사별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이를 위해 11일부터 2개월 동안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사별 윤리경영 지수 산정을 위한 실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 CEO들은 윤리경영 및 사회공헌 활동을 게을리할 경우 해당 연도 인사·성과급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윤리경영 평가지표에는 ▲윤리지향(40%)▲사회지향(30%)▲준법지향(30%) 등 3개 부문,27개의 평가지표와 123개의 세부평가항목이 담겨 있다. 항목별 배점에 차이를 둬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다. 윤리지향부문에는 CEO의 윤리경영 의지, 임직원 윤리의식과 참여도 등 13개의 평가지표와 50개의 세부평가항목이 들어 있다. 사회지향부문에는 사회공헌활동 계획·표준·조직 등 8개 평가지표와 30개의 세부평가항목이, 준법지향부문에는 협력회사와의 관계, 고객 및 경쟁업체·내부임직원과의 관계 등 6개 평가지표와 43개의 세부평가항목이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윤리경영실 관계자는“계열사간 상대적 평가를 통해 계열사들의 현 실태를 파악, 부족한 부분의 개선과 활성화를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재계인사이드] 현대家 ‘사업 앙금’ 풀리나

    현대가 가족들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빈소에 모인 것을 계기로 굳어진 앙금이 이번에는 풀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먼저 MK(정몽구 현대차 회장)와 ‘포니 정’(정세영 회장 애칭)의 앙금이다. 비록 가는 길이지만 두 사람이 응어리를 어떤 식으로 풀지 의문이다. 두 사람의 앙금은 자동차를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왕회장이 그룹 후계자를 지목할 때도 포니 정은 몽헌 편을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 불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포니 정은 지난 99년 32년간 자신의 회사라고 생각하고 몸바쳐온 현대자동차를 ‘왕 회장’의 지시로 MK에게 넘겨줘야 했다. 평생 바쳐온 사업을 하루아침에 넘겨준 뒤 포니 정 부자는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놓고 반발하거나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의 회고록을 보면 포니 정 부자의 가슴에 응어리가 커졌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당히 부드러워 졌다고 측근들은 얘기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미국 출장 중 서둘러 귀국, 병원으로 직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MK는 23일 김동진 부회장, 최한영 사장 등 현대차 사장단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조의를 표한 뒤 상주인 사촌동생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위로했다. 그는 한동안 정 회장 옆에 서서 조문객들을 몸소 안내하기도 했다. 재계는 비록 포니 정이 살아있을 때 서운한 감정을 모두 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사촌(MK-정몽규)간 앙금을 털어버릴 것으로 내다봤다. 현정은 현대회장과 정상영 KCC명예회장과의 만남도 주목된다. 지난해 3월 현대-KCC간 경영권 분쟁이 종지부를 찍은 이후에도 공식적인 만남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포니 정의 장례절차 협의과정에서 양측이 서로 어떤 교감을 가질지 주목된다. 경영권 다툼의 악연을 떨쳐버릴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 공식적인 화해는 없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재계인사이드] 경영일선 물러나는 ‘포니 정’

    ‘포니정’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세영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지난 18일 보유지분 542만 5000주(7.2%)를 외아들인 정몽규 회장을 비롯, 큰 사위와 막내딸에게 넘기면서 기업 상속을 마쳤다. 이로써 현대산업개발은 명실상부한 정몽규 회장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산업개발로 배를 갈아탈 때부터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경영 바통은 정 회장에게 물려줬다. 그러나 지금까지 최대 주주로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덩치가 큰 프로젝트나 신규 진출 사업은 정 명예회장이 일일이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 주식 처분을 계기로 정 명예회장이 사실상 재계에서 발을 뺀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주식 처분은 현산 경영권 확보도 고려한 것 같다. 큰 딸 숙영씨의 몫을 사위인 노경수씨에게 물려줬다. 노씨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신영 전 총리의 아들이다. 재계에 발을 담그지 않고 있어 사실상 딸에게 물려준 것이나 다름없다. 작은 딸에게는 유경씨 이름으로 물려줬다. 작은 사위 김종엽씨는 김석성 전 전방 회장의 아들이며 현재 전방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재계 인물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주식 처분을 놓고 재계의 해석은 분분하다. 정 명예회장이 혹시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보유 주식을 서둘러 넘긴 것 아니냐는 시각과, 정 명예회장은 이미 1999년 정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고 보는 견해다. 하지만 재계는 건강상 이유라기 보다는 6년 사이 현대산업개발이 정상 궤도에 올라섰을 뿐 아니라 정 회장에게 경영을 모두 맡겨도 되겠다고 판단해 적절한 시기에 경영권을 물려줬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산측은 주식 처분을 정 명예회장의 건강과 연결시키려는 재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현산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2000년 폐암진단을 받은 뒤 곧바로 치료했으며, 현재 건강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에도 거의 매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옥으로 출근, 사장단과 돌아가며 점심 식사를 하고 재계 지인들을 만날 때도 사옥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허창수·구자홍 회장 ‘얼굴 알리기’

    [재계 인사이드] 허창수·구자홍 회장 ‘얼굴 알리기’

    ‘그림자 시절은 잊어주세요.’ LG그룹의 품을 떠나 독립한 GS그룹과 LS그룹 ‘총수’들이 본격적으로 회장 행보를 시작했다. 이들은 과거 LG그룹의 일원이었을 때는 구본무 회장에 가려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은 지난 8∼9일 주요 자회사인 GS칼텍스 여수 공장을 사외이사들과 함께 방문했다. 지난달 31일 그룹 출범 후 가진 허 회장의 첫 ‘나들이’에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서경석 GS홀딩스 사장,GS그룹의 주요주주이자 허 회장의 사촌형인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을 비롯, 김기영 연세대 경영학과 석좌교수, 정종욱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건춘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등 GS홀딩스의 사외이사 전원이 동행했다. 허 회장은 그동안 LG그룹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지만 늘 구본무 회장의 한 발짝 뒤에 서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 공식 분리이후 2월 기자간담회,3월 CI선포식 등을 통해 그룹 회장으로서의 위상을 대외에 알리고 있다.CI선포식에 참석한 구 회장은 축사를 마친 뒤 곧바로 자리를 떠 ‘주인공’인 허 회장을 배려하기도 했다. 허 회장은 이달부터 매월 1회 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주재, 계열사별 현안을 보고받고 사업계획을 조율하는 등 그룹경영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구본무 회장의 당숙인 LS그룹 구자홍 회장도 최근 1년 6개월만의 대외 직책인 ‘국제대전력망기술회의(CIGRE) 한국위원회’ 제4대 위원장에 선임되며 주목을 받았다. 구 회장은 2003년 10월 ‘친족분리’로 LG전자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한국전자산업진흥회장을 사임한 뒤 1년 넘게 외부 타이틀을 맡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칠레에서 열린 APEC회의에 재계 대표단으로 참석,‘회장 신고식’을 마친 구 회장은 지난달 14일 LS그룹 CI선포식에서 “산업용 전기·전자, 소재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자리에는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회장이 참석해 ‘집안어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LS그룹 역시 GS와 마찬가지로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을 표방했지만 구 회장은 올 들어 매월 사장단 회의를 갖고 R&D, 인재유치, 해외투자는 직접 챙기는 등 회장으로서의 ‘색깔’을 내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외인구단 점령’ 동부건설 행보는

    동부건설이 최근 에이스급 ‘외인 부대’를 대거 영입, 업계에서 그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동부건설은 지난달 28일 LG건설 출신 황무성 부사장을 토목부문 사장으로 선임, 동부 출신인 최헌기 사장과 함께 동부건설의 축을 맡겼다. 이달 3일에는 LG건설 주택사업본부장(부사장)을 지낸 김용화씨를 개발부문 사장에 임명했다. 건설의 핵심 부문인 건설 및 개발 부문 사장 2명을 LG구단에서 스카우트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각각 토목·기술 및 주택사업 부문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LG맨이다. 황 사장은 엔지니어로 LG건설의 토목·기술분야를 한 단계 끌어올렸던 ‘에이스’급 임원이었다. 김 사장 역시 LG건설 주택사업부문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LG건설의 간판 스타였다. 주택 영업과 상품 개발에서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았고 ‘자이’브랜드를 키운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개발 부문은 동부그룹이 키우는 전략 파트 가운데 하나로 그룹이 보유한 부동산을 개발하는 역할뿐 아니라 유통시설·골프장·호텔 건설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사장단뿐 아니라 부사장단에도 타 구단 출신이 대거 포진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하진태 부사장은 대림산업 부사장에서 자리를 옮겨왔다. 동부에서는 관리사업본부장을 맡는다. 김용식 부사장 역시 대림산업 상무 출신으로 주택사업을 이끌게 된다. 지난해 영입한 이기 부사장(기획·홍보 담당)도 대림산업 출신이다. 동부건설은 최근 중장기 비전을 세우고 건설 부문을 토목·건축·주택·물류 부문으로 나눈 뒤 분야별 전문가를 영입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엔지니어링 김국일 사장도 동부에 합류한 지 오래됐지만 뿌리는 수자원공사라서 외부 인사로 분류된다. 물류 부문은 옛 동부고속을 합병하면서 생긴 부문이다. 건설업계는 감독(사장)·코치(부사장)를 외인구단 출신으로 채운 ‘동부구단’이 과연 어떤 작전을 내놓을 것인지, 언제쯤 방망이에서 불을 뿜을지 주목하고 있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현재 19위인 업계 순위를 중장기적으로 5∼10위 권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맥이 통하는 임원은 물론 실무 부장급 직원도 추가 스카우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CEO 칼럼] 진정한 글로벌 인재 육성/김범수 NHN㈜ 대표이사

    [CEO 칼럼] 진정한 글로벌 인재 육성/김범수 NHN㈜ 대표이사

    한국에 진출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에 글로벌 인재가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글로벌 경영을 외치며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요 기업들은 한결같이 ‘핵심 인재 양성’ ‘글로벌 인재 유치’를 화두로 내세우는 등 최근 산업계에는 인재 경영 열기가 뜨겁다. 기업들은 이를 위해 ‘바이(buy:외부영입)와 메이크(make:내부 육성)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해외파와 토종인력을 동시에 육성하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인력구성 분포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또 차세대 경영자 풀(pool)을 구성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핵심인재를 조기에 양성하는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주로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을 순회하며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채용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CEO와 사장단들이 해외 출장시 유학생 간담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인재 유치활동도 펼치고 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글로벌 인재가 핵심 경쟁력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업체들의 전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NHN도 지난해부터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현지 비즈니스를 확장시킬 글로벌 인재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NHN은 해외 법인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인재의 경우 현지 채용을 우선으로 한다. 현지 채용된 핵심 인력들은 국내에서 훈련을 받은 뒤 다시 현장에 배치하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해외 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을 현지 공략의 첨병으로 삼기 위해서다. 또 이는 기업의 현지화 전략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종종 현지에 적응하지 못해 세계적 기업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실패하는 기업을 볼 수 있다. 최적의 현지화 정책수립을 위해서는 현지 사업자와의 제휴 등을 통해 윈윈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현지 국가의 국민성·문화·풍속을 이해하는 현지 친화적 사업 전개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지인의 능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 일례로 NHN 일본 현지 법인인 NHN재팬이 운영하는 일본 한게임이 경이로운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도 철저한 현지화 때문이다.NHN재팬은 현재 일본 최고 웹게임 포털이다.NHN재팬은 사업 초기부터 기획자 및 디자이너, 개발자는 물론 사업이나 마케팅 분야까지 일본 현지 인력을 채용해 일본식 토착 서비스를 추구해왔다. 현재는 전체 직원 200여명중 90% 이상이 일본인이다.NHN의 중국 현지 법인도 현지 채용을 우선으로 하기는 마찬가지다. 영어가 유창하다고 기업이 요구하는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외국 유명 대학의 MBA 졸업장이 글로벌 인재의 보증 수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 ‘글로벌 인재 육성’을 좀 더 유연한 방법으로 접근할 때다. 핵심 인재의 선발과 내부 육성을 통해 국내 인재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또 세계적인 두뇌 유입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생산물을 배출하고, 나아가 그 결과가 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핵심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능력위주의 인사시스템과 국경을 초월한 인재 확보 전략, 그리고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글로벌 인재 육성 과정을 확립해야 한다. 김범수 NHN㈜ 대표이사
  • 국내기업 “해외인재 잡자”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인재 사냥’이 본격화됐다. ‘인재욕심’이 부쩍 많아진 LG는 LG전자가 17일부터 북미 순회 채용설명회에 나서는 것을 시작으로 필립스LCD·화학·CNS 등이 올해 북미,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서 30회 이상의 현지 채용투어를 실시해 600여명의 해외인재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R&D 책임자급 연구원과 인사담당자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해외 우수인력 유치단’이 10일간 스탠퍼드ㆍ버클리·캘리포니아공대 등 미국 13개 대학을 순회하면서 디스플레이, 디지털TV, 차세대 이동단말, 홈네트워크 등 핵심사업분야 연구인력과 MBA 전공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를 개최한다. LG전자는 앞으로 북미에서만 3월과 9월 두 차례 채용설명회와 세 차례의 현지면접을 실시하고 일본 2회, 유럽·인도·러시아 1회 등 해외 채용투어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CEO와 사장단들이 해외출장시 유학생 간담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인재 유치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LG화학은 노기호 사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여종기 사장이 직접 나서 3월 북미지역을 시작으로 분기별로 한 차례 이상 해외인재 채용투어를 정례화하기로 했다.LG필립스LCD와 LG CNS도 북미, 유럽, 일본 등에서 각각 4차례 채용설명회를 갖는다. 국내에서는 기존 캠퍼스 리크루팅 이외에 산학협력, 임직원 인재추천제, 주문형 석사제 등을 통해 맞춤형 인재 확보를 강화한다. 삼성전자는 오는 4월과 10월 미국에서 2차례 ‘채용 로드쇼’를 갖는다. 채용담당과 반도체, 휴대전화,LCD 등 핵심 연구인력들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훑다시피 하며 고급두뇌를 탐색한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매년 1차례 로드쇼가 열리고 중국은 중국 본사가 지난해 말 중국내 30개 명문대를 순회하며 인재를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이와 별도로 CEO들이 해외출장이나 강연 때마다 핵심인재를 섭외, 직접 면접을 보는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회사측의 ‘노력’ 없이도 매년 1000명이 넘는 MBA 출신들이 입사원서를 내는 등 인재가 스스로 몰려들기도 한다. 이 가운데 채용이 되는 사람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도 4∼5월 미국 상위 50위권 대학 가운데 국내 유학생이 많거나 자동차 관련 분야로 특화된 13∼15개 대학을 대상으로 채용 설명회를 갖는다. 현대차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외인재 채용 로드쇼를 중단했다가 2002년 재개,100여명을 뽑았고 2003년 50여명의 해외인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디자인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80여명을 채용했다. 공개 로드쇼 외에 석·박사 과정에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을 대상으로 개별 접촉도 진행한다. 안미현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자동차플러스] 삼성 BMW 7시리즈 구입

    삼성그룹이 고급 외제차인 BMW를 한꺼번에 구입했다.BMW코리아측은 “삼성이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직후 BMW 7시리즈 2대를 사고 3대를 구매 협상중이다.”면서 “삼성이 사장단에도 수입차를 선택할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했으나 외부 시선을 의식해 쉬쉬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의전용 차량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삼성과의 계약에는 BMW의 최대 딜러인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적극적인 중개 역할을 했다고 BMW코리아측은 밝혔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지난 2002년 5월24∼25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에 삼성의 금융사 7인의 ‘수장’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직전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현재 실적에 자만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자.”고 주문했던 이건희 회장이 무슨 말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캐피탈,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 등 업종별로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뒤 새벽 1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를 함께 한 이 회장은 “문제가 있는 경영방식은 즉각 고쳐 금융사들도 삼성다운 ‘일류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해외 선진 금융사들의 본격적인 진출에 대비해 핵심 금융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벤치마킹해 상품·서비스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종 대 외국자본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이 회장은 2001년 회의때도 “사고가 난 뒤 보험료율만 올리지 말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노력하라.”고 주문해 삼성화재가 최초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전자계열에 이어 금융사 사장들과 전략회의를 가진 데서 나타나듯 금융업은 전자와 함께 삼성의 양대축이다. 삼성은 지난 세월 현대·LG 등과 늘 수위를 다퉈왔지만 금융만큼은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현재 자산기준으로 삼성생명이 90조원을 넘어섰고 삼성화재 14조원, 삼성증권 6조원에 육박한다. 웬만한 시중은행과 맞먹는 수준이다. ●자산 90조, 삼성의 ‘젖줄’을 일군 사람들 삼성생명은 57년 4월 강의수, 전중윤, 윤삼영, 강일성, 김용수, 강화두 등 7인의 경제인이 57년 공동으로 세운 동방생명이 전신이다.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고 강의수 회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장인이다. 당시 동방생명 마산지부장이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었다. 동방생명은 설립 2년 만에 국내 생보업계 1위로 뛰어오른 데 이어 62년에는 동남증권(현 하나증권) 설립, 동양화재 주식 매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등 사세를 넓혀 나갔다. 하지만 63년 1월 강 회장이 운명하자 곧바로 어려움에 빠졌고 그해 7월 삼성의 일환이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대들보’로서 그만큼 부담도 안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동차 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으면서 해외 및 국내여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때 일부 해외언론은 이 회장을 가리켜 ‘책임을 질 줄 아는 유일한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9.34%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말 삼성생명 지분 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면서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당국의 결론이 주목된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이수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고발한 것도 걸려 있다.99년 회사가 손해를 봐 가면서 우리은행과 주식을 맞교환해 지배주주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주장과 삼성자동차 ‘우회지원 대출’ 등이 고발 사유였다. 이같은 경영외적인 비중을 제외하고도 삼성생명은 국내 생명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선두업체로 올해 자산 100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등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2003년 미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가운데 생보사 부문 19위에 랭크됐다.2010년까지 자산 200조원, 매출액 47조원을 달성하여 ‘글로벌 종합금융서비스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과거 삼성의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돈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삼성생명빌딩과 중앙일보빌딩, 종로타워, 강남의 하이닉스빌딩 등 수많은 빌딩이 삼성생명 소유다.1116개 지점의 영업용 부동산의 장부가만 3조 5158억원에 달한다. ●생명의 산 증인, 이수빈과 배정충 삼성생명의 경영은 99년 12월부터 배정충(60)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전북 전주생인 배 사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69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삼성생명의 자산은 30억원(현재 90조원)에 불과했다. 생명보험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70∼80년대를 영업 현장에서 보낸 배 사장은 삼성화재 대표를 거쳐 99년 ‘친정’의 대표이사로 금의환향했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한달에 걸쳐 전국의 영업현장을 순회한 일일 정도로 현장을 우선시한다. 한번 본 숫자는 거의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수리’에 밝다.4년 만에 삼성생명에 돌아왔을때 사장실에 불려 간 간부들이 업무와 관련된 통계숫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일일이 수정해주며 ‘불호령’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아무리 바빠도 회사 임직원이나 거래처, 지인들의 상가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인간적인 면도 강하다는 평이다. 이수빈 회장도 삼성생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로 입사,13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25년간 제일합섬, 제일제당, 삼성항공, 삼성생명, 삼성증권의 CEO와 삼성 금융그룹 회장을 맡아 ‘직업이 사장’으로 불린다. 보험 경영에 손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접목했고 생명보험 경영의 핵심인 영업소장과 설계사의 위상 강화를 통해 업계 1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생명은 그 역사만큼이나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대 사장을 지낸 이호씨는 20대,31대 내무부장관과 8대,20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63년 삼성으로 넘어 오면서 새로 구성된 경영진에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이자 이병철 회장의 둘째 사위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상희씨는 71∼78년 회장을 지냈고 김만제 전 포철회장도 경제부총리를 마치고 91∼92년 회장을 맡았다. ●사돈과 사위가 맹활약한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1951년 3월 경남 함안 출신의 구진현씨가 세운 재단법인 ‘훈세사(勳世社)’에서 출발한 안보화재와 한국일보 창업주인 고 장기영 회장이 초대사장을 지낸 안국화재가 전신이다. 안보화재와 안국화재는 63년 합병으로 한 회사로 태어났고 93년 말 삼성화재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화재의 사사에는 유난히 ‘인척’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맹희씨의 장인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는 삼성에 인수된 직후인 61년 안국화재 사장을 맡은 뒤 운명(76년)하기까지 사장을 지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자 손영기씨의 아들인 손경식 CJ 회장은 93년 7월 당시 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경영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의 4녀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씨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이종기씨 역시 2000년 3월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삼성화재를 국내 대표 손보회사로 키워놨다. 안국화재 지분이 많던 이맹희씨도 65∼67년 임원을 지냈고 부인 손복남씨도 85∼93년 상무로 일했다. 삼성화재 역시 긴 역사만큼이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은 2001년까지 부사장을 지냈고 조용철 CJ홈쇼핑 사장도 99년까지 삼성화재에서 일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 박종익 전 손보협회 회장도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경영으로 이끈 이학수와 이수창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삼성화재 대표를 지낸 것은 94년 12월∼96년 8월로 1년 8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삼성화재의 ‘경영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현재의 고도수익을 낳는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본부장은 94년 초 제일제당 대표로 잠시 나갔다 돌아오고 나서 바로 삼성화재 CEO로 부임하자마자 17%였던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삼성화재 임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주저했지만 “삼성이 명색이 ‘영남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구에서 4위, 부산에선 3위, 경북은 7위라는게 말이나 되느냐? 전부 1위로 끌어 올리자.”는 이 본부장의 격려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94년 17.6%였던 삼성화재의 점유율은 96년 23.6%로 급등,2,3위와의 격차를 10%이상 벌렸고 2001년 대망의 ‘3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본부장은 또 자동차보험의 공격적인 확대, 설계사 수당 100% 인상, 품질보증제 시행 등 ‘신경영’을 도입하며 삼성생명에 비해 뒤처져 있던 삼성화재의 위상과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구단 창설,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했다. 이 본부장, 배정충 현 삼성생명 사장의 뒤를 이어 9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수창(56) 사장의 경영성적도 눈부시다.99년 26.9%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32%로 끌어 올리며 2,3위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2003년,2004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등급인 A+를 받았다. 매월 마지막주에는 영업점과 보상 현장을 깜짝 방문하는 등 ‘현장경영’에 철저한 이 사장은 2002년 업계 최초로 ‘삼성애니카’라는 브랜드 경영을 도입했고 2001년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은행의 손해보험업 진출이 예정된 올해는 향후 10년간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시기”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졸업한 이 사장은 독특한 전공(서울대 수의학과)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경영인으로 성공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카드의 ‘불씨’ 삼성의 금융사업 가운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분야는 신용카드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조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도 1조 2000억원의 증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46%), 삼성생명(34.5%), 삼성전기(4.7%), 삼성물산(3.1%) 등 삼성 계열사들은 지분만큼 증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삼성카드의 적자로 인한 지분법 평가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2002년 “신용카드가 신용사회 저변확대에 기여했지만 과열 경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카드사태는 현실화됐다. 유석렬(55) 사장은 신용카드 부실이 불거진 2003년 대표이사를 맡아 그동안 삼성캐피털과의 합병, 유상증자, 해외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으로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74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유 사장은 입사직후 회사의 권유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드문’ 케이스다.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근무를 거쳐 91년부터는 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했다. 미국법인 관리부장 시절 동료가 최광해 현 구조본 재무팀장이다.97년 삼성캐피털 대표이사로 CEO 생활을 시작한 유 사장은 삼성증권 사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투자은행’으로 변신중인 삼성증권 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삼성증권은 98년 수익증권 판매고 최단기간내 10조원 돌파 등 짧은기간에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일찍부터 ‘약정경쟁’을 지양하고 자산관리형 영업으로 변신을 시도, 현재 투신수탁고가 20조원에 달해 자산관리부문에서 은행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흥은행, 국민은행 지분 매각 작업에 공동주간사로 참여하는 등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 부문에서도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토종증권사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입된 황영기 전 사장에 이어 지난해 5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한 배호원(54)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대표적인 자산운용 및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배 사장은 경남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7년 제일합섬 경리과를 시작으로 비서실 재무팀 부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삼성투신운용 사장, 삼성생명 자산·법인부문 총괄 사장 등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금융전문가답게 깔끔한 이미지지만 직원들과 ‘해장국 미팅’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갖고 있다. ●벤처투자, 투신운용, 선물 등으로 확장되는 금융사업 삼성은 삼성물산의 벤처사업팀을 확대,99년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삼성벤처투자를 설립했다.2003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김상기(55) 사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삼성생명, 삼성증권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해 말 현재 수익증권 22조 2000억원, 뮤추얼펀드 1000억원, 투자자문 38조 1000억원 등 60조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삼성투자신탁운용은 2003년부터 삼성화재 부사장을 역임한 황태선(57) 사장이 맡고 있다. 경북 상주생으로 김천 성의종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물 관련 제품의 판매·컨설팅,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하는 삼성선물은 지난해 3월부터 정주영(57) 사장이 맡고 있다. 정 사장 역시 황 사장의 고향인 경북 상주 출신으로 상주고와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리테일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의 금융비화 삼성은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거의 모든 회사를 손수 일궜지만 오늘날 1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금융사업은 대부분 인수한 것이다. 묘하게도 인수한 금융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삼성이 직접 설립한 금융관계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해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대되자 재계에서는 곧바로 삼성의 우리은행 ‘인수설’이 불거져 나왔다. 우리은행이 삼성자동차의 주 채권은행인데 삼성에서 잘 나가던 황 사장이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부인이 아니더라도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한때 시중은행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1금융권 진입을 노렸던 삼성인지라 의혹의 눈길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고 이병철 회장은 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시중은행 주식 공매에 참가해 12억 9000만환에 흥업은행(구 한일은행) 주식 83%를 소유하게 됐다. 이어 조흥은행주 55%를 매입했다. 흥업은행 신탁부에서 상업은행주 33%를 갖고 있었으므로 삼성은 당시 4개 시중은행 가운데 3개 은행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던 것이다. 황영기 회장이 맡고 있는 우리은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친 것이므로 삼성과 우리은행의 인연이 질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삼성이 소유하고 있던 은행 지분은 정부 소유로 돌아갔다. 삼성으로서는 한국비료(한비)와 대구대·은행을 박정희 정권에 뺏긴 셈이다. 하지만 삼성과 금융사업의 인연은 58년 안국화재 인수로 재개된 뒤 63년 동방생명 인수로 본격화된다. 금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고 이병철 회장은 63년 봄 동방생명 임원이 찾아와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회고했다.5월22일 당시 동방생명 임원 대부분의 주식이 먼저 삼성으로 넘어왔고 강의수 회장의 유족들도 7월16일 지분을 넘겼다. 강 회장의 유족이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부인 강지연 여사다. 삼성과 민노당의 ‘악연’도 역사가 긴 셈이다. 삼성은 92년 11월 배현규씨 등 국제증권 대주주로부터 영업권을 양도받아 삼성증권을 탄생시켰다.96년에는 국제선물(현 삼성선물)을,98년에는 동양투신(현 삼성투신운용)을 인수했다. 반면 88년 설립한 삼성카드는 현재 그룹의 ‘뜨거운 감자’로 전락했고 95년 설립한 삼성캐피탈도 부실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삼성카드와 합병해야 했다.99년 설립한 삼성벤처투자도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ukelvin@seoul.co.kr ■ 생명·화재 역대 대표이사 ●삼성생명 강의수(57.4∼62,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인) 이 호(∼63, 전 내무부·법무부 장관) 조우동(∼69, 전 삼성중공업 회장) 이겸재(∼71) 원종훈(∼78) 고상겸(∼83) 배상욱(∼84, 전 체신부 장관) 박태원(∼85) 이수빈(∼91) 황학수(∼95, 전 삼성카드 부회장) 이수빈(∼99, 현 삼성사회봉사단장) 배정충(∼현재) ●삼성화재 손영기(∼76, 이맹희씨 장인) 손경식(∼93, 현 CJ회장) 이종기(∼2000, 이병철 회장 넷째 사위) 강경수(∼93) 홍종만(∼94, 전 삼성자동차·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이중구(∼94, 현 삼성테크윈 사장) 이학수(94∼96, 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98, 현 삼성생명 사장) 이수창(∼현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롯데 대표이사 10명 교체 신동빈號 출항 ‘신호탄’

    롯데 대표이사 10명 교체 신동빈號 출항 ‘신호탄’

    “그룹 색깔을 바꾼다.” 롯데그룹이 4일 호텔롯데 사장에 신세계 출신의 장경작 전 조선호텔 사장을 선임하는 등 대폭적인 물갈이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 조직틀을 ‘완전히’ 바꾸려는 듯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이뤄져 안팎의 파장이 크다. 주력 기업인 호텔롯데 권원식 전 사장을 비롯, 원로급 계열사 대표이사 10명이 퇴진하고 외부 인사를 ‘수혈’해 대대적인 조직 변화를 예고했다. 임원 86명에 대한 승진발령을 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지난해 10월 그룹을 총괄하는 정책본부장에 임명된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의 ‘색깔’이 드러난 첫 인사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롯데그룹의 후계구도 작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임원단들은 앞으로 ‘신동빈 체제’ 구축을 위한 과도기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쇠한 조직을 보다 젊게 롯데그룹은 다른 그룹들이 이미 50대 임원 체제로 간 것과 대조적으로 그동안 원로급 임원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일본식 스타일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부터 보수적인 경영이 그룹의 문화이자 상징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호텔롯데 권원식(70) 사장, 롯데햄·우유 남정식(65) 대표, 대홍기획 김광호(57) 대표, 롯데자이언츠 이근수(58) 대표, 코리아세븐 박종규(60) 대표 등 원로급 10명 사장단이 대거 물러났다. 이들의 퇴진으로 인사에 숨통이 트이면서 롯데쇼핑 마트사업본부 이철우 부사장, 호남석유화학 이영일 부사장, 롯데상사 백호용 부사장 등 50대 임원들이 줄줄이 승진가도를 달리게 됐다. 보수적이면서 다소 침체돼 있는 조직이 이번 인사를 통해 활기를 띨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역량 있는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조직의 분위기도 일신시켰다. 호텔롯데 장 사장은 라이벌인 조선호텔의 수장을 지냈다. 또 박광순 경인방송 대표를 대홍기획 대표이사 상무로, 오경수 시큐아이닷컴 대표를 롯데정보통신 대표이사 전무로 각각 모셔왔다. ●‘혁신’ 코드로 신 회장이 올 신년사에서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혁신은 기업의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해 이번 인사는 ‘그룹 혁신’을 위한 첫단추로 보고 있다. 물론 ‘혁신’ 프로젝트의 주체는 신 회장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신 부회장이고, 그가 이끌고 있는 정책본부가 ‘혁신’의 산실이다. 항간에는 신 부회장이 부친을 설득, 수십년간 유지돼온 인사의 틀을 깨고 ‘파격’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호텔롯데 장 사장의 경우 조선호텔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세계 굴지의 호텔로 키워낸 역량을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향후 인사·조직분야에서 새로운 혁신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롯데쇼핑 이인원 사장, 롯데제과 한수길 사장 등 주력 기업의 사장단은 모두 유임된 만큼 대폭 물갈이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번 인사는 경영성과를 반영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삼성물산의 역사는 삼성그룹의 역사입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삼성물산의 지난해 매출은 9조 6963억원으로 주력인 삼성전자 57조 6324억원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를 비롯해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카드, 삼성SDS, 제일기획 등 숱한 관계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주식 1.38%를 보유하고 있고 등기임원(회장)으로 직접 챙기고 있는 데서도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물산, 제일모직,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뿐이다. 국내 종합상사 1호인 삼성물산은 84년 3위,1998∼2000년,2002년에 2위를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면 종합상사의 매출기준이 달라진 2003년까지 줄곧 매출 1위 기업 자리를 지켜왔다. ●‘그룹의 역사’ 삼성물산과 인재들 고 이병철 회장이 28세였던 1938년 3월1일 대구시 서문시장 인근 수동(현 인교동)에서 250여평 규모로 출발한 삼성상회가 삼성물산의 전신이다. 이 회장은 이에앞서 경남 마산에서 정미소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부동산 투자’에서 다 날리고 자본금 3만원으로 상회를 시작했다. 삼성(三星)의 삼은 우리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크고 많고 강한 것을,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첫 사업은 대구일대에서 생산되는 사과 등 청과물과 포항의 건어물 등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이었다.‘라면부터 미사일까지’ 취급한다는 종합상사의 70년전 버전인 셈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의 대표기업답게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초창기 삼성상회의 지배인으로 영입된 이순근씨는 이병철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그는 정계에 투신했다 월북, 농림상까지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거의 모든 경영을 이순근씨에게 맡겼는데 오늘날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찌감치 시험한 것이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지 1년 만인 1948년 종로2가 ‘영보빌딩’ 근처 2층건물에 삼성물산공사로 간판을 걸 당시에는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이 전무를, 김생기씨가 상무를 맡았다.1949년 11월 마른오징어 3만근을 배에 싣고 홍콩으로 떠난 조홍제씨가 교포무역상과 챤넬양행으로부터 오징어를 담보로 각각 면사 50근을 외상매입한 것이 국내 최초의 D/P(Document against Payment Base) 거래로 꼽힌다. 조홍제 회장은 62년 효성물산, 한국타이어를 갖고 삼성을 떠난다. 김생기씨도 삼성에서 독립, 영진물산·영진식품·혜성개발 등을 일궈냈다. 삼성물산 창립멤버로 60∼61년 사장을 역임한 고 허정구씨도 눈에 띈다.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사돈인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허씨는 이후 삼양통상을 설립했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정유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버지다. 70년에 대표이사를 지낸 정상희 사장은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무역 회장을 역임했고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남편인 정재은 명예회장의 아버지다. 이병철 회장과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을 이어준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86년 이병철 회장의 요청으로 삼성물산 회장으로 영입됐다. 홍 회장의 공백을 메우며 이건희 회장 체제가 자리를 잡은 91년까지 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필곤 전 부회장도 삼성물산 대표이사를 두차례(85∼93년,95∼97년)나 지낸 대표적인 ‘물산맨’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진두지휘하다 사업진출 차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국으로 물러난 뒤 삼성을 떠났다. 서울시 부시장을 거쳐 현재 알티전자 회장과 삼성 CEO 출신들의 모임인 ‘성대회’ 회장을 맡고 있다.93∼95년 사장을 역임한 신세길씨는 현재 서울반도체 회장이다. 현명관 부회장은 아직도 물산의 비상근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2001∼2004년 배종렬 사장을 끝으로 공동대표체제가 굳혀졌다. 건설부문의 이상대(58) 사장은 충남 서천생으로 경복고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73년 제일합섬으로 입사한 뒤 대부분 삼성건설에서 일했다. 건설이 삼성물산에 합병되면서 97년 삼성물산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했고 2000년부터 주택부문 대표를 맡았다. 이 사장의 경복고 2년 선배인 상사부문 정우택(60)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을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휴스턴 지점장, 카자흐스탄 법인장 등 줄곧 상사부문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병철의 세번째 회사 제일모직 1954년 9월 설립된 제일모직은 삼성상회, 제일제당(53년)에 이은 삼성의 세번째 회사다.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인재들을 배출했는데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김인주 구조본 차장,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총괄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안복현 삼성BP화학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이 제일모직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해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부임한 제진훈(58) 사장은 경남 산청생으로 진주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한 ‘모직맨’이다. 제일모직에는 올초 상무보로 승진한 이건희 회장의 차녀 서현씨와 남편 김재열 상무가 같이 일하고 있다. ●‘봄날’을 기다리는 화학·중공업 80년 유공 인수 실패,90년대 중반 자동차 사업의 좌절 등으로 자동차·중공업∼정유·석유화학·화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중화학그룹’을 도모했던 삼성의 꿈은 사실상 좌절됐다. 오늘날 삼성을 대표하는 업종은 전자와 금융이다. 하지만 화학·중공업 계열사들의 ‘절치부심’이 예사롭지 않다. 화학·중공업 계열사 CEO가운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CEO는 허태학(61) 삼성석유화학 사장이다. 경남 고성생으로 진주농림고와 경상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69년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에 입사했다. 허 사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마저도 조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정도로 보수적인 농촌출신으로 한때 덴마크의 달라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농촌 계몽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호텔신라 총지배인, 삼성에버랜드 사장, 호텔신라 사장을 거쳐 2003년 삼성석화에 자리를 잡았다. 에버랜드 사장시절에는 ‘캐리비안베이’라는 테마파크를 조성, 리조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93∼2002년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상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징검다리’로 부상하면서 구설수도 따랐다. 허 사장은 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를 이 상무에게 저가로 발행한 것과 관련, 최근 징역 5년을 구형 받았지만 지금도 공공연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을 꼽을 정도로 삼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삼성 CEO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로 ‘자기 PR’에도 열심이다. 삼성과 고 이병철 회장에게 큰 상처를 줬던 삼성정밀화학(옛 한국비료)은 제일합섬,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종합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자동차 등 가장 많은 회사를 옮겨 다닌 것으로 유명한 이용순(59) 사장이 2003년부터 맡고 있다.64년 8월 27일 설립된 ‘한비’는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을 계기로 67년 10월 삼성이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한 회사다. 한비는 이후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공사형태로 운영됐지만 방만한 경영 등으로 위기를 맞자 94년 다시 삼성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홍식(58) 삼성토탈 사장은 삼성 사장단 가운데 몇 안되는 호남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유난히 영남출신 CEO가 많은 삼성에서는 전주 출신의 배정충(60) 삼성생명 사장, 전남 구례생인 양인모(65)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과 고 사장이 호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 기계공학과 1년 선배다. 72년 삼성에 입사한 고 사장은 줄곧 제일합섬에서 일하다 92년 비서실 경영팀장,93년 신경영실천위원회 팀장 등을 맡으며 그룹 전반의 일을 익히기 시작했다.95년 삼성종합화학 소속으로 화학소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으며 화학계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2001년부터 삼성종합화학 CEO를 맡으며 97년 당시 부채비율 800%로 ‘회생불능’이었던 삼성종합화학을 프랑스 토탈과의 합작과 고효율 경영으로 지난해 매출 2조 8000억원, 영업이익 5700억원(이익률 21%)이라는 ‘알짜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순차입금 비율은 20%로 뚝 떨어졌다. 스스로 “화학이 곧 내 인생”이라는 고 사장은 2010년 이익 1조원 돌파를 목표로 삼성그룹 내에서 비교적 위상이 처지는 화학 사업의 ‘중흥’을 노리고 있다. 2006년 세계 1위 조선업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현장경영’,‘극한원가’,‘질적인 1위’를 부르짖는 김징완(59) 사장의 지휘하에 부활을 꿈꾸고 있다. 경북 달성생인 김 사장은 현풍고와 고려대 사학과를 마치고 73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중공업과는 88년부터 인연을 맺어 2001년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 높은 조선소를 만들고 싶었던 이병철 회장은 일본 IHI사와의 합작을 통해 경남 통영시 안정리에 15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일쇼크의 여파로 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썩 내키지 않던 거제의 우진조선을 인수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또 하나의 ‘초일류’, 삼성 서비스 삼성에버랜드가 언론에 크게 부각될 때는 대부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돼 있다. 그도 그럴것이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3.72%)은 물론, 이재용 상무 25.10%,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이윤형씨 등 세딸이 나란히 8.37%의 지분을 갖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의 4녀인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0.48%),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장도 0.08%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국내 최대, 세계 6위권의 테마파크와 골프장, 빌딩관리 등 자산관리, 단체급식 등 유통, 조경 등 환경사업을 영위하며 지난해 매출 1조원 1600억원, 순이익 800억원대를 거둘 정도로 탄탄한 경영을 자랑한다. 박노빈(59) 사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마치고 74년 제일제당으로 입사,91년 삼성중공업을 거쳐 93년부터 에버랜드에 발을 담갔다. 사업 구상이후 무려 7년이 지난 79년 개관한 호텔신라는 초기 경기하락과 오일쇼크까지 겹쳐 적자에 허덕였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홍진기 회장의 총 지휘하에 손영희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장녀 인희가 고문이 돼 음식조리 등 안살림을 챙기고나서부터야 경영이 호전됐다.”고 회고했다. 경복고와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삼성물산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한 이만수(55) 사장이 2003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다.2001년 호텔신라로 들어와 지난해 상무보 승진에 이어 올초 상무로 승진한 이부진씨도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삼성의 서비스 사업 가운데 가장 독특한 영역인 보안업체 에스원은 2002년부터 이우희(58) 사장이 맡고 있다.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 출신으로 삼성내 거의 유일한 이건희 회장의 친척이다. 이 사장은 부산고와 부산대 법학과를 마치고 제일제당에 입사했다.94년부터 계속 비서실 인사팀장으로 일해왔다.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 배동만(61) 사장은 보성고와 고려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73년 중앙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제일제당, 호텔신라를 거쳐 비서실 홍보팀장, 에스원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2001년 제일기획 사장으로 부임했다. 지난해부터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초창기 사업동지 이병철·조홍제 세간에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효성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경남 진주의 지수보통학교를 다녔고 삼성을 공동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910년생인 이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의령군 중곡면 중교리지만 진주시 지수면과는 인접해있다. 지수에는 이 회장의 둘째누이 분시씨가 결혼해 살고 있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그해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고 25∼29년에는 중동학교를 다녔다. 1906년생으로 이 회장의 형인 병각씨와 동갑인 조 회장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상경,1922년 중동학교 초등과 1,2,3학년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협성실업학교 초등과 4,5,6학년 과정을 마쳤다. 효성 관계자는 “언제부터인지 선대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LG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동문으로 소개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29년 도일,30년 와세다(早稻田)대 전문학부 정경과로 입학했고 조 회장은 27년 와세다대 공업전문학부에 입학했지만 29년 일본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에 다시 입학한다. 둘의 동업관계에 대한 회고도 조금씩 다르다. 이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은 48년 서울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울 당시 전무가 조홍제 회장, 상무가 김생기 전 영진약품 회장이었으며 설립자본금의 75%는 이 회장이, 나머지 25%는 조 회장, 김 회장, 이오석, 문철호, 김일옥씨가 분담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는 48년 말 평소 안면이 있던 이 회장이 명륜동 조 회장의 집을 찾아와 사업얘기를 하던 차에 조 회장이 사업자금 800만원을 빌려준 것으로 나온다.2개월 뒤쯤 조 회장은 200만원을 더 투자해 1000만원을 채웠다. 이 회장이 이미 투자한 돈은 700만원이었다고 나와있다. 한국전쟁으로 잠시 헤어졌던 둘은 51년 이 회장이 당시 가족이 피난가 있던 마산에 들렀다가 조 회장을 만나 부산에 새로 차린 삼성물산에 와서 일하기를 권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조 회장 역시 이와 비슷하게 기억했다. 호암자전은 또 조 회장과의 결별에 대한 별도 언급없이 63년 3월 2일 효성물산과 한국타이어, 한일나일론을 양도했다고만 명시했다. 나의 회고는 60년 3월초 일본 도쿄에서 골프를 치던 도중 이 회장이 결별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한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의 지분에 대해 언쟁을 가졌다. 둘의 재산분배는 62년 8월 이 회장의 자택에서 다시 논의된다. 조 회장은 “내 지분이 삼성 전체의 3분의 1쯤 되니 제일제당을 떼어달라.”고 제의하고 이 회장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갈등이 점점 커지다 64년에야 결론이 난다. 조 회장은 자신이 분배받은 재산(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일론의 삼성 지분 50%, 효성물산)은 3억원 정도로 자기 몫의 10분의 1도 안됐다고 밝혔다. 분가하면서의 불화는 한동안 재계 인사들에게 회자됐었다. 그러나 지난 84년 먼저 세상을 떠난 조 회장의 빈소를 이 회장이 찾아와 한참동안 머물며 ‘앙금’이 없었음을 내외에 알렸다.3년뒤인 87년 이 회장도 영면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물산 역대 대표이사 1938년 이병철 회장 1960년 허정구 사장(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사돈 허만정씨의 장남, 삼양통상 창업주) 1961년 박도언 사장 1963년 김선필 사장 1966년 안동선 사장 1967년 김진하 전무 1967년 박태암 사장 1967년 성상영 사장 1968년 정수창 사장(전 두산그룹 회장) 1970년 정상희 사장(이명희 신세계 회장 시아버지) 1971년 김정렬 사장 1974년 이은택 사장 1977년 손상모 사장(전 동부그룹 부회장) 1978년 송세창 사장(전 나산그룹 부회장) 1981년 경주현 사장(전 삼성종합화학 회장) 1984년 배상욱 사장 1985년 이필곤 사장 1993년 신세길 사장(현 서울반도체 회장) 1995년 이필곤 부회장(현 알티전자 회장) 1997년 현명관 부회장(현 전경련 부회장) 2000년 이상대 사장(현 건설부문) 2001년 배종렬 사장 2004년 정우택 사장(현 상사부문)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삼성전자의 지난 2004년 연간 매출은 57조 6324억원, 영업이익 12조 169억원, 순이익은 10조 7867억원으로(103억달러)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순수 제조업체로는 도요타에 이어 두번째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경제면 머리기사와 사설 등으로 취급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의 지난해 이익은 마쓰시타(松下)전기, 히타치(日立),NEC, 도시바(東芝), 후지쓰(富士通), 미쓰비시(三菱), 오키(沖)전기 등 일본 10대 메이커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 5370억엔(약 5조 3700억원)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병철 회장,37년전 “전자사업하겠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고속 성장은 69년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할 당시 ‘중복투자’ 등의 비난에 휘말렸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고 이병철 회장은 68년 사돈인 고 구인회 LG회장(이 회장의 차녀 숙희씨가 구 회장의 삼남 자학씨의 부인)과 안양골프장에서 라운딩 도중 전자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68년 12월30일 창립 발기인은 조우동 동방생명 사장, 손영기(이병철 회장 장남 맹희씨의 장인)안국화재 사장, 이병철 회장, 정상희(이병철 회장 5녀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씨, 이맹희(당시 삼성물산 부사장)씨, 김재명(삼성 창업공신으로 이후 동서식품을 설립, 당시 제일제당 사장)씨, 정수창(당시 삼성물산 사장)씨였다. ●윤종용 부회장,“초밥이든 휴대전화든 속도가 생명” 삼성전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진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96년말부터 9년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윤종용(61) 부회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그동안 숱한 상을 받았던 윤 부회장은 올 초에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2004년에 이어 두번째 선정(Repeat Perfomer)으로 조 후지 도요타 사장,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 사장, 카를로스 곤 니산 회장 등이 윤 부회장과 함께 연속 선정됐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66년 삼성에 입사했다. 윤 부회장은 상무시절인 80년대 중반 잠시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고 88년 삼성으로 돌아왔다.VCR와 DVD를 더해 빅 히트를 친 ‘콤보’제품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윤 부회장은 오늘날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을 한번도 맡아본 적 없고 가전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스스로도 “나는 비전문가요 ‘사이비’”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98년 7월 한달에만 무려 1700억원의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를 오늘날 10조원대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든 데 윤 부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윤 부회장은 컬러TV의 재고를 줄이기 위해 수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던 삼성전자의 고질적인 문제를 과감히 혁파했다.97년말 8조 7000억원에 달하던 재고와 채권을 99년말 5조 2000억원으로 40%나 줄인 것이다.97년 국내 5만 8000명, 해외 2만 5000명이었던 인력은 각각 30%(1만 7400명),40%(1만명)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120개가 넘는 사업과 제품을 매각하거나, 철수, 분사, 합작했다. 그래서 ‘진정한 혁신가’,‘기술 마법사’ 등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별명 가운데서도 ‘구조조정의 달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때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에게 “당신 주식 몇 주나 가졌어? 나도 주주야.”라며 호통을 칠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겹쳐 투박하게 들리지만 간결하다. 윤 부회장을 대표하는 경영 키워드는 ‘스피드’인데 그는 “초밥이든 휴대전화든 모든 부패하기 쉬운 것은 속도가 생명이다.”는 말로 핵심을 잘 설명한다. 스피드에 대한 윤 부회장의 애착은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남이 건너간 뒤에야 건넌다.”던 이병철 회장과 달리 “돌다리가 아니라 흙다리라도 있으면 건넌다.”는 지론에서 잘 드러난다. 윤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초일류로 가느냐, 추락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직원들을 다그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위기’를 강조한다.1993년 3월 이건희 회장의 제2창업 5주년 기념식사인 “21세기를 앞두고 남은 7년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주저앉고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다.”란 말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 이 회장의 ‘선문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윤 부회장다운 벤치마킹이다. 아들 태영(31)씨는 탤런트로 활동 중이다. ●황창규 사장, ‘황의 법칙’은 계속된다 경북 월성 출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마친 이윤우(59) 부회장은 기흥공장장으로 일하던 80년대 중반 일본업체의 덤핑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D램과 1메가D램 양산 체제를 갖춰 삼성반도체의 신화를 이뤄냈다.68년 삼성전관(삼성SDI)으로 입사했다가 76년 삼성반도체 생산과장으로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황창규 사장에게 반도체총괄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신설된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기술총괄(CTO)을 맡았다. 삼성 기술의 총아인 삼성종합기술원도 관장한다. 최형인(56)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부인이다. 황창규(52) 반도체총괄 사장은 아직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삼성전자 대표 사장으로 거론된다. 황 사장이 총괄사장을 맡은 지난해 삼성반도체는 매출 18조 2200억원, 영업이익 7조 4800억원으로 41%라는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삼성전자 전체 이익의 62%가 반도체의 몫이었다. 16메가D램 개발팀장을 맡았고 세계최초로 256메가D램 개발에 성공하는 등 탁월한 연구개발 능력에 언변까지 화려하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약한 것과 대조된다. 딱딱한 주제인 반도체로 강연을 하면서도 5분 간격으로 수강생들의 웃음보를 터뜨릴 정도로 센스가 좋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핵심을 정리하는 브리핑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2001년 당시 난드플래시의 강자였던 도시바가 전략적 제휴를 제의해 온 것에 대해 그룹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자 이건희 회장에게 반대 논리를 펼쳐 결국 제휴를 무마시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난드플래시 세계 점유율 65%로 독보적인 1위를 달렸다. 부산 출생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반 만에 2배로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법칙을 깬 ‘황의 법칙’(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으로도 유명하다. ●이기태 사장, 승부욕이 휴대전화 성공신화로 이기태(57)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삼성 휴대전화를 책임지는 사령관답지 않게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를 벽에 집어 던져 삼성 제품의 튼튼함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해외 바이어와의 협상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벌어진 무선전화, 팩시밀리 등 15만대의 ‘불량제품 화형식’을 지켜보면서 다져진 오기 덕분이다. 대전 출생으로 보문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73년 삼성전자 라디오과에 입사한 뒤 줄곧 제조쪽에서 일하다가 90년 화상무선기기사업부로 옮기면서 휴대전화와 인연을 맺었다. 승부욕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며 사표도 두어차례 냈지만 이건희 회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다. 선비 같은 용모의 최지성(54)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은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85∼91년 반도체 구주법인장을 지냈는데 당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삼성반도체를 ‘007가방’에 가득 싣고 험한 알프스 산맥을 자가 운전으로 넘어 다니며 애걸하다시피 영업을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사장단 가운데 유일하게 비서실에서 2차례(81∼85년,93∼94년) 근무해 시야가 넓은 편이다. 이상완(55) LCD총괄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분야에서 생산기술·마케팅 등을 담당하다가 93년 걸음마를 뗀 LCD사업을 맡았다. 초창기 아직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삼성 LCD를 팔기 위해 도시바, 소니, 미쓰비시 등 일본업체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는 등 개발부터 판매, 품질까지 책임진 ‘톱 세일즈’로 유명하다. 천안공장, 세계 최대 LCD단지인 충남 아산 탕정공장 준공 등으로 LCD사업을 삼성전자의 ‘수종사업’으로 키워 놓았다. 경쟁사 대표의 ‘배신자’라는 비난에 유난히 속상해 하는 등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상운(53) ㈜효성 사장이 친동생이다. 지난해 윤종용 부회장이 직접 맡았던 생활가전총괄 사장으로 최근 부임한 이현봉(56) 사장은 경남 함안출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상현 전 삼성전자 중국본사 사장,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박양규 삼성네트웍스 사장의 진주고 1년 후배다. 인사부장, 인사팀장 등 주로 인사부문에서 일한 때문인지 중앙인사위원회 자문위원,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 위원 등 외부활동이 많았다.2001년부터 2년간 국내영업사업부장을 맡으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내수시장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최도석 사장, ‘안방살림’ 꼼꼼히 챙겨 인사, 재무, 기획, 홍보 등 스태프 기능을 총괄하는 최도석(56) 경영총괄 사장(CFO)은 마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5년 삼성 재무인력의 양성소인 제일모직 경리과로 입사했다. 이학수 부회장이 당시 관리본부장이었다.80년 삼성전자로 옮긴 뒤에도 줄곧 경리·관리·재경·경영지원 등 ‘안방살림’을 도맡아 왔다. 삼성 사장단 가운데 가장 술이 셀 정도로 화통한 스타일이지만 연 매출 70조원(연결기준)이 넘는 회사의 재무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꼼꼼한 편이다. 삼성은 전자-SDI-전기-코닝-코닝정밀유리-테크윈으로 이어지는 ‘전자소그룹’을 유지하고 있다. 전자소그룹의 지난해 본사 매출(코닝·코닝정밀유리는 2003년)은 무려 69조 8897억원, 순이익은 11조 9618억원원에 달했다. 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중량감 있는 CEO는 삼성SDI 김순택(56) 사장이다. 72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합섬 소속으로 회장 비서실에서 주로 일했다.92∼94년 삼성전관 기획관리본부장을 지낸 인연으로 96년말 비서실을 떠나 삼성전관에 둥지를 틀었다.2000년부터 5년째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으며 사업구조를 브라운관에서 PDP,OLED,2차전지, 모바일LCD 등으로 바꿔놓았다. ●김순택 사장, 작년 해외출장 거리만 27만㎞ 무슨일이 있어도 신입사원 교육에는 빠지지 않는 데다 신입사원이 부서에 배치된 후에는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기업의 가장 위대한 자산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년 11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낸다. 중국, 말레이시아, 독일, 헝가리, 멕시코, 브라질의 10개 공장을 방문한 지난해 해외 출장거리가 27만㎞에 달했다. 삼성전기 강호문(55) 사장은 경기 부천 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석재(57)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이 전기공학과 68학번 동기다. 황창규 사장은 72학번, 권오현 사장(시스템LSI사업부장)은 71학번이다. 첫 사회생활은 금성전선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삼성전자로 옮겨와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등을 담당했다.2002년부터 삼성전기 사장을 맡으며 삼성전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큰 키(180㎝)에 미소가 인상적이다. 성균관대 예술학부장인 임학선(55) 교수가 부인이다. 브라운관 유리를 생산하는 삼성코닝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용산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송용로(60)사장이, 세계 최대 LCD유리기판 업체인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이석재 사장이 맡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항공기 엔진 등을 담당하는 삼성테크윈은 삼성물산·영상사업단·삼성생명 대표를 역임한 이중구(59)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IT축’인 삼성SDS 김인(56) 사장은 경남 창녕, 대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그룹 비서실 인사팀장, 호텔신라 총지배인 등을 역임했다. 네트워크, 인터넷전화·국제전화 등을 영위하는 삼성네트워크 박양규(57) 사장은 삼성SDS, 삼성자동차의 설립 작업에 관여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반도체 ‘30년 비화’ 삼성은 지난해 12월6일 반도체사업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2010년까지 25조원을 투자해 누적매출 200조원, 신규 일자리 1만개를 창출키로 했다.12월6일은 이건희 회장이 1974년 사비를 들여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날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평을 받는 반도체지만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본지가 입수한 1992년 삼성그룹 비서실의 보고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에 따르면 사업 초기 삼성은 기술확보에 애를 먹다 해외업체에 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기술을 도입하려 했었다. 이 보고서는 91년 4월 반도체 사업의 어제와 오늘, 문제점 등을 파악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 삼성반도체의 시련은 고 이병철 회장이 일본 NEC의 고바야시 사장을 초빙, 기술지원을 요청했지만 76년 방한한 NEC 엔지니어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면서 시작됐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등으로 반도체가 적자를 면치 못하자 이번에는 이건희(당시 부회장)회장이 미 페어차일드 본사를 수차례 직접 방문, 기술이전을 요청했고 마침내 승낙을 받아냈다. 페어차일드의 요구조건은 삼성반도체 지분의 30%를 내놓으라는 것. 이 회장은 지분을 양보하더라도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협상을 위해 미국에 파견된 이모 상무 등 실무진은 “삼성의 기술수준으로는 신기술(당시 페어차일드는 64KD램 개발에 성공)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기술도입이 좌절됐다.79년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병철 회장은 당시 가전·TV생산담당이었던 김광호(이후 삼성전자 회장을 역임)이사를 반도체로 보내 사업정상화 특명을 내렸다. 당시 강진구 반도체사장은 직원들에게 김 이사를 소개하면서 “만약 김 이사로도 삼성반도체를 살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강진구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73∼82년), 삼성전자 회장(88∼92년,93∼98년)은 물론 한국반도체 사장(75∼79년), 삼성반도체통신 사장(81∼88년), 삼성GTE통신 사장(77∼80년) 등을 역임하며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기까지 많은 공헌을 했다. 김 이사는 대방동과 부천으로 나눠졌던 공장을 부천으로 통합하고 80년말 삼성반도체를 삼성전자에 인수합병시키는 한편 홍콩 시계칩 시장을 집중공략, 전세계 시계칩 시장의 50%를 차지하던 홍콩 시장 점유율을 60%로 끌어 올리며 흑자회사로 변신시켰다. 82년 2월8일 유명한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 본격화를 선언한 이병철 회장은 부천공장을 대체할 대규모 반도체공장 부지를 물색했는데 후보지로 수원, 신갈저수지 부근, 관악골프장 부근, 판교 부근, 기흥이 선정됐다. 국내외 지질·수질 전문가들과 이 회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조사한 끝에 12월18일 기흥지역이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당시 기흥은 절대농지에다 산림보존지역으로 공장 설립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 회장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했던 최치환 반도체부문 사장 등이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1차로 10만평에 대한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도권 공장 억제 정책과 땅값 문제 등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고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②-막강 파워 구조조정본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②-막강 파워 구조조정본부

    지난해 삼성은 ‘건국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어려움을 뚫고 매출액 135조원, 세전 이익 19조원을 달성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였다. 경영혁신 신경영을 선언하기 전인 1992년과 비교해 볼 때 매출은 4배, 이익은 80배로 뛰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기술경영 자매지인 ‘닛케이(日經) 비즈테크’는 지난해 10월호에 ‘삼성, 역전의 방정식’이란 제목으로 48쪽에 걸친 특집을 게재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구조조정본부의 전략·보좌 시스템을 격찬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재벌 체제의 사령탑으로 지목하며 해체 압력을 가하는 구조본이 해외에서는 오히려 한국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재벌 개혁의 상징, 삼성 신화의 원동력 지난 98년 그룹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을 바꾼 삼성 구조본은 법무실, 재무팀, 경영진단팀, 기획팀, 인사팀, 홍보팀, 비서팀 등 7개 실·팀으로 구성돼 있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아 각 계열사에서 파견나온 100여명이 일하고 있다. 구조본은 그 자체로서 별도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들이 구조본 명함을 쓰지만 실제 소속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제일기획 등으로 나뉘어 있다. 구조본이 재벌체제를 상징하며 폐지 압력을 받고 있지만 삼성은 구조본 체제를 유지하면서 IMF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났다. 구조본에서 일하다가 계열사로 옮긴 임원들은 하나같이 “구조본이 계열사 전반을 넓고 높은 시각에서 조명해 주지 않으면 계열사간 중복투자, 과당경쟁 등 ‘누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삼성을 끈질기에 괴롭힌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문제도 구조본에서 해법을 내놓았다. 삼성에버랜드가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 일부(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고 일정기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의 결정이 공정거래법 15조 즉, 누구든지 지주회사의 행위제한의 적용을 면탈하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삼성의 ‘묘안’이 현행법에 어떻게 위반되는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신경영 전도사 이학수 부회장 구조본의 현재 수장은 삼성의 ‘2인자’ 이학수(58) 부회장이다.97년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8년째 구조본을 이끌고 있는 이 본부장은 이건희 회장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바로 뒤에서 수행한다. 이 회장이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보다 한남동(최근 이태원으로 이사) 자택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 본부장이 그룹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이 본부장은 이 회장의 의중과 경영철학을 누구보다 잘 꿰뚫어 낸다. 이 회장의 두터운 신임과 계열사 CEO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본부장은 200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연말에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삼성에 대한 기자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줬다. 반응은 “(이 본부장이) 생각보다 소탈하고 부드러워 보인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외부에 비친 그의 모습이 카리스마 그 자체였던 것이다. 경남 밀양생으로 부산상고, 고려대 상대를 졸업한 이 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라는 이유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주목을 받았다. 노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을 맡았던 주선회 재판관도 고향이 비슷하고 고대 동창이어서 가까운 편이다. 비서실에서 같이 일하다가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대한주택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한행수씨는 부산상고 2년 선배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중학교(마산중) 동창이다. 이 본부장은 “취임 이후 삼성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평가에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해 하지만 삼성자동차 사태와 외환위기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강력한 구조조정과 개혁으로 헤쳐나온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94∼96년 안국화재에서 막 이름을 바꾼 삼성화재 대표이사를 맡으며 경영 능력도 검증받았다.94년 삼성과 제일제당(CJ)의 관계가 불편할 때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파견된 사람도 이 본부장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그만큼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오른팔의 오른팔 김인주 사장 지난해 부활된 구조본 차장직에 오른 김인주(47) 사장은 이 본부장, 삼성전자 CFO인 최도석 사장과 함께 ‘제일모직 경리팀 사단’으로 불린다. 경남 김해생으로 마산고를 졸업했다.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사장은 80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 90년부터 비서실(현 구조본)에서 일하며 줄곧 재무를 담당했다. 김 사장은 97년 이사,98년 상무,99년 전무,2001년 부사장,2004년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 본부장의 마산중 후배인 김 사장은 유력한 차기 본부장 후보로 거론된다. 재무팀은 IMF때 전 계열사를 샅샅이 뒤져 각종 부실과 문제점 등을 찾아내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당시 김 사장은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그때 수립했던 전략이 오늘날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CJ, 신세계, 한솔 등을 분가시킬 때마다 대주주와 계열사간에 얽히고 설킨 지분관계를 말끔히 정리한 것도 재무팀의 공이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것도 재무팀의 역할이다. 재무팀이 ‘빛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 사장은 2003년 말 대선자금 수사때 고역을 치러야 했다. 당시 검찰 수사에서 구조본 재무팀이 맡아야 하는 ‘악역’이 공개됐다. 정치자금 마련부터 전달 수단과 방법까지 재무팀이 담당한 것이다. 궂은 일은 도맡아야 하는 만큼 ‘보상’도 철저하다. 삼성은 지난해 시민단체 등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이 본부장과 김 사장을 오히려 한 직급씩 승진시켰고 대선자금 제공에 연루됐던 윤석호 전무(대외협력담당)도 삼성SDS 부사장으로 영전시켰다. ●구조본의 ‘7인방’ 김 사장의 뒤를 이어 재무팀을 맡고 있는 최광해(49) 부사장은 부산 출생으로 경남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93년부터 줄곧 재무팀에서 일했으며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의 감사를 맡기도 했다. 이종왕(56) 법무실장(사장)은 경북 경산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법대를 졸업했다. 사시 17회로 노무현 대통령과 동기다.99년 대검 수사기획관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의 대표변호사를 지내다가 지난해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충기(51) 기획팀장(부사장)은 부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현 국제경제학과) 72학번이다. 그는 94년 기획팀으로 오기 전에는 삼성물산에서 영업과 전략기획팀장을 맡았다.‘불도저와 돌다리’라는 독특한 별명이 붙어 있는데 소신껏 밀어붙이면서도 섬세하게 고려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붙여준 것이다. 이런 스타일이 기획과 대외 관계를 총괄하는 기획팀장에 적격이라는 평이다. 노인식(54) 인사팀장(부사장)은 서울 중앙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인사팀에서 일하다가 97년 구조본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인사팀장의 전형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5∼10년후 뭘 먹고 살지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한 우수인재 확보와 글로벌 인재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의 감사를 총괄하는 최주현(51) 경영진단팀장(부사장)은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 미주 본사에서 일하다가 99년 구조본으로 이동한 뒤 지난해부터 경영진단팀장을 맡고 있다. 작은 구멍이 조직을 망가뜨리기 전에 이를 집어내는 ‘사전 진단형’ 감사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삼성의 모 해외조직의 잘못을 감사에서 적발해 현재 대대적인 개혁을 진행 중이다. 배재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이순동(57) 홍보팀장(부사장)은 홍보를 경영의 한 축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홍보팀을 창설, 책임자로 시작해 20여년간 일하다가 99년부터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이 부사장은 삼성이 최고의 기업 이미지와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데 기여했다. 전경련 경제홍보협의회장과 한국PR협회장을 맡으며 ‘반기업 정서 해소’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늘 함께하는 김준(47) 비서팀장(전무)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마치고 삼성생명에 입사한 뒤 94년 비서실 부장으로 비서 업무를 시작했다.2001년부터 비서팀장을 맡아 1년에 수개월을 해외에서 보내는 이 회장을 수행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업무에만 충실하다는 평이다. 이같은 ‘노고’를 인정받아 지난 12일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삼성의 인재 양성소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구조본의 업무 성격 때문에 구조본 출신은 ‘엔지니어’ 출신과 함께 삼성 CEO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SDI 김순택 사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경북대 경제학과 출신인 김 사장은 72년 제일합섬으로 입사했지만 78년 비서실 감사팀,91년 비서팀장 등 구조본에서만 17년을 일했다. 구조본 경영진단팀장을 6년간 맡은 박근희 중국본사 사장은 계열사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지난해 구조본에서 삼성캐피탈 사장으로 옮겨 삼성카드와의 합병, 증자 등을 마무리지은 뒤 ‘문제’가 발생한 중국본사로 옮겼다. 박 사장은 청주대 상학과 출신으로 ‘실력을 따지지 학력은 따지지 않는다.’는 삼성식 인사의 상징이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도 경영진단팀장을 2년간 맡았고 이우희 에스원 사장은 기획홍보팀장·인사팀장을, 김인 SDS 사장은 인사팀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은 재무팀장을 역임했다. 일본본사 정준명 사장과 이창렬 사장은 둘다 비서팀장 출신이다. 중국본사도 지난해까지 비서실 출신인 이형도 회장-이상현 사장체제로 움직였다. 최근 사장으로 승진한 삼성전자 북미총괄 오동진 사장도 비서실 감사팀장·경영분석팀장을 지냈다. 최근 세계 규모의 광고홍보대행사로 면모를 바꾼 제일기획의 배동만 사장도 전략홍보팀장 출신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 이석재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안복현 삼성BP화학 사장, 김상기 삼성벤처투자 사장, 한용외 삼성문화재단 사장 등도 비서실을 거쳐간 CEO다. ●한국 재계를 움직이는 구조본 ‘동문’ 구조본 출신으로 외부에서 맹활약하는 이들도 숱하게 많다.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1989년부터 94년까지 비서실 재무팀 이사로 일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사장으로 일하다가 우리금융 회장으로 뽑혔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도 78년 삼성에 입사해 90년 비서실 국제팀 차장을 지내다가 95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으로 옮겨갔다. 김 사장은 김인주 사장의 서울대 산업공학과 2년 선배로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과 동기동창(74학번)으로 ‘산공과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93∼96년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제주 출신인 그는 공무원에서 삼성인으로 변신, 비서실장까지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디지털방송 관련업체인 알티캐스트 지승림 사장은 비서실 기획팀장(부사장)까지 승진했다가 2000년 그만뒀다. 알티캐스트는 계열사인 알티전자 회장에 삼성물산 회장 출신의 이필곤씨를 영입하면서 삼성과의 끈끈한 연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은 구조본을 중심체로 움직이지만 보다 상위의 의사결정은 ‘구조조정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삼성은 지난해 구조위의 구성원을 6명에서 11명으로 늘렸다. 구조본에서는 위원장인 이학수 본부장과 김인주 사장이, 삼성전자에서는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최도석 사장, 황창규 사장이 참여한다. 금융계열사 대표로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이수창 삼성화재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이, 이밖에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도 계열을 대표해 참석한다. 구조위는 2주에 한번꼴로 회의를 개최, 신규 사업 진출과 투자, 사업조정, 구조조정 전략 등을 논의한다. 구조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이건희 회장의 최종 승인을 받고 실행에 들어간다. ukelvin@seoul.co.kr ■ 구조본의 역사 ‘재계의 청와대’로 불리는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1959년 5월 고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탄생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의 규모가 날로 커져 계열사의 일들을 직접 챙기기 힘들어지자 관리조직을 분산한다는 차원에서 비서실을 만들었다. 처음엔 삼성물산안의 과조직으로 출발, 직원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초대 실장은 당시 제일모직 총무과장이던 36세의 이서구씨로 2년 6개월간 비서실을 맡으면서 조직의 기반을 닦았다. 이씨는 제일제당, 중앙개발 대표이사를 거쳐 삼성문화재단 이사를 끝으로 삼성을 떠났다. 대림콘크리트 사장, 고문을 지냈지만 지금은 은퇴했다. 비서실이 막강한 파워를 갖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다. 삼성의 조직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비서실의 기능은 크게 확대됐다. 지난 72년 당시 비서실 구성을 보면 송세창 실장(전 나산 부회장), 이두석 실차장(현 성우회장), 이수빈 재무팀장(현 삼성사회봉사단 회장), 심명기 기획팀장(전 인천무역상사협의회장), 손병두 조사팀장(전 전경련 부회장), 양인모 비서팀장(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 이용석 감사팀장(전 삼성화재 전무), 한의현 마케팅팀장(전 유양정보통신 사장) 등이다. 계열사를 벌벌 떨게 만드는 감사팀은 67년 1월에 발족됐다. 당시 비서실 근무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이 어느 날 비서실 직원을 다 불러 놓고 문을 걸어 잠근 뒤 “계열사의 경영 진단과 능률 감사를 위해 감사실을 만든다.”고 전격 발표했다. 78년부터 90년까지 비서실장을 맡은 소병해씨는 강력한 추진력과 엄격한 관리로 비서실의 기능을 크게 강화시켰다. 소 실장 시절 비서실은 15개팀에 250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대조직으로 성장했다. 기능도 인사 위주에서 감사, 기획, 재무, 국제금융, 경영관리, 정보시스템, 홍보 등으로 다양해졌다. 소 실장은 삼성생명·삼성카드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비상임 고문으로 있다. 삼성의 은퇴 임원 가운데 최고 대우를 받고 있으며 최근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실은 자율 경영을 강조하는 이건희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기능과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이 회장의 취임은 87년 11월이다. 91년부터 93년까지 비서실장을 지낸 이수빈 회장은 이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로, 이 회장이 그룹 경영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포와 맞물려 93년 6월부터 비서실장을 맡은 현명관 현 전경련 부회장은 삼성 공채 출신이 아니어서 ‘개혁’ 작업에 적임이었다는 평가다. 현 부회장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회장을 법정에 세운 게 가장 가슴 아팠다.”고 회고했다. 90년 이후 점차 조직이 축소된 비서실은 98년 IMF 체제에 돌입하자 계열사 사업 및 인력구조조정이 핵심현안으로 등장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지금의 구조조정본부로 재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삼성의 사장단 50여명 가운데 20여명이 구조본 경력을 갖고 있고, 계열사 경영진에 구조본 출신이 중용되는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삼성전자 ‘톱3’ 야심

    삼성전자 ‘톱3’ 야심

    삼성전자가 오는 2007년 특허 출원 ‘톱 3’ 진입을 목표로 연초부터 ‘특허 경영’에 고강도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허 경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특허 경영’ 방침은 지난해 일본 등 외국업체들이 전방위 특허 공세를 펴고 있는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1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윤종용 부회장은 최근 경영진 회의에서 “계속 안정적 실적을 가져갈 수 있을지 의문인 만큼 미래를 위해 뭔가를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는 결국 ‘기술 중심’으로 귀결되며 특허가 그 핵심”이라고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단순한 양 중심에서 벗어나 질 중심의 특허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불황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에 먹고 살 길은 기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평소에도 “선진국, 일류기업들이 기술을 무기로 경제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특허 확대 등 표준 주도의 관건인 기술 경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 각각 2000여건의 특허 등록(미국 출원 기준)으로 ‘톱 5’에 진입하는 데 이어 2007년에는 ‘톱 3’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이달 초 단행한 삼성전자의 사장단 인사에서 이윤우 부회장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임명, 기술경영 체제를 강화한 것도 특허경영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250여명 수준인 특허전담 인력을 2010년까지 450명으로 늘리는 한편 변리사, 미국 특허 변호사 등 자체 인력의 교육, 양성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국내외 연구소 42개의 연구활동에도 박차를 가해 특허 출원에 앞장서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특허료 지급액이 지난해 1조 5000억원에 이어 2010년에는 2조 5000억원가량으로 늘어나는 등 특허료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미국 특허청이 발표한 2004년 특허등록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2003년 1313건보다 291건 늘어난 1604건으로 인텔(7위)을 누르고 6위에 올랐다. 한국기업으로 ‘톱 10’에 포함 된 곳은 삼성전자뿐이다. 반면 일본기업 5곳, 미국 기업 4곳이 포함됐다. 삼성전자의 전체 등록 특허 중 60% 이상이 미래 관련 기술로 반도체, 디지털 미디어, 정보통신,LCD 등 사업부문이 고르게 분포됐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삼성 사장단 대부분 유임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삼성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소폭으로 마무리했다. 올해 대내외 경영환경이 매우 불확실해 그 어느때보다 경영의 일관성과 조직 안정, 결속력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현 경영진으로 내실을 다져가며 난관을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11일 해외 전략거점인 미국, 유럽의 책임자들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사장으로 승진된 삼성전자 북미총괄 오동진 부사장은 지난해 북미 매출을 전년보다 55%나 늘어난 170억달러로 끌어올리는 등 북미에서의 사업성과를 인정받았다. 파나마지점, 동남아총괄 등 해외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3년 제일모직 함부르크 주재원으로 출발, 유럽에서만 30여년을 일해 온 ‘유럽통’ 양해경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제조 효율을 이끌어 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메모리사업부 제조담당(Fab 센터장) 김재욱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반도체총괄은 황창규(메모리 사업부장 겸임) 사장, 권오현(시스템LSI 사업부장) 사장, 김재욱 사장의 ‘3인 사장’ 체제를 갖추게 됐다. 승진인사가 난 미국, 유럽과 달리 중국은 지난해에 이어 수장이 또 바뀌었다. 삼성 구조본에서 6년간 경영진단팀장을 맡았던 박근희 삼성카드 사장이 중국본사 사장으로 발령남에 따라 지난해 초 중국본사 사장으로 발령이 난 이상현 사장은 현업에서 물러날 전망이다. 이에 앞서 이형도 회장도 지난해 중국본사 회장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발을 뗐다. 삼성은 카드사업의 구조조정 및 경영안정화에 기여한 박 사장이 중국에서 ‘제2의 삼성 실현’을 목표로 사업전략을 내실있게 지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본사가 지난해 그룹 감사에서 좋지 않은 진단을 받은 것도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윤종용 부회장이 겸임했던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은 국내영업사업부장 이현봉 사장이 맡게 된다. 지난해 생산라인을 수원에서 광주로 이전한 생활가전이 그동안의 ‘비상경영’ 체제를 마무리짓고 ‘일류사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치다. 이밖에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과 삼성종합기술원장을 겸임했던 이윤우 부회장은 삼성전자 기술총괄(CTO)을 맡는다.CTO였던 임형규 사장은 종합기술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삼성 관계자는 “기존 사장단이 좋은 경영성과를 냈기 때문에 인사수요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실적이 좋은 윤종용 부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은 96년부터 9년째 삼성전자와 구조조정본부를 이끌고 있다. 한편 12일로 예정된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는 대규모 승진이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오늘의 눈] 전남도 ‘미스터리 인사’/남기창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박준영 전남지사의 ‘미스터리’ 인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10명 가운데 9명은 “실망했다.”는 반응이다. 비판여론 속에 달변가인 박 지사는 “이해해 달라.”고 얼버무린다. 지난해 6·5보궐선거로 당선된 박 지사는 취임 7개월 만인 지난 6일 첫 인사로 정무 부지사를 내정했다. 내정자는 이모(58)씨로 기초자치단체인 순천시의회의 3선 의원이다. 내정 발표 몇 시간 전에 이 소식을 들은 광역자치단체 도의원들이 발끈했다. 도의회 의장이 상임위원장단 6명을 모아 도지사실에서 “절대 안 된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들 모두는 도지사와 같은 민주당 소속이다. 도청 출입기자들도 배경 설명을 요구했고 지사는 진땀을 뺐다. 이튿날 전남도청 공직협의회 홈페이지도 후끈 달아 올랐다. 정무부지사 내정자는 2003년 11월4일 순천시의회 의장 자격으로 의원 16명과 함께 지사실에 난입해 집기를 던지고 한동안 소란을 피운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 사무실이 순천시가 아닌 광양시로 결정된 데 대한 분풀이였다. 당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행정부지사는 기자실에 들러 순천시 의원들에 대해 고발조치를 검토하겠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정무 부지사를 내정한 6일 저녁 박 지사는 곤욕을 치렀다. 광주지역 신문·방송 사장단과의 저녁 약속에 3개 신문사 사장이 불참했다. 이 가운데 모 신문사는 민주당 중진인 이모 의원이 소유주다. 이 의원은 도의원을 정무부지사로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인사에 대한 의혹은 민주당 최고위층으로 모아진다. 누구 누구의 세대결이었다는 설이 파다하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 당내 전남 출신 중진들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지사의 단호한 의지다. 목민관은 인사에 사사로움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한번은 괜찮겠지.’하는 안일함은 더 큰 부정의 시작일 뿐이다. 박 지사는 초심으로 돌아가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는 게 순리다. 남기창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kcna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 인사이드] 송년 잊은 CEO들 ‘현장경영’

    [재계 인사이드] 송년 잊은 CEO들 ‘현장경영’

    연말연시 재계 최고경영자(CEO)들의 발걸음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SK㈜ 회장은 이날 대덕 SK기술원을 방문해 연말연시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연구개발 현장을 지키는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에 앞서 지난 29일에는 SK㈜ 울산 공장을 찾아 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송년을 현장에서 보내는 것은 회사의 근간인 울산공장뿐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인 R&D(연구개발)와 자원개발, 해외사업 등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사막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지난 28일 출국한 박 회장은 다음달 5일까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쿠웨이트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해 묵묵히 현장을 지킨 직원들의 ‘기(氣)’를 북돋워주고, 이들의 노고를 치하할 계획이다. 지난 27일 일본으로 출국한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도쿄지사를 찾아 고생한 직원들을 다독거려줄 계획이다. 정 사장은 내년 1월1일 귀국한다. 전자업계 CEO들은 새해 벽두부터 미국 라이베이거스로 달려간다.1월 6∼11일 열리는 세계최대의 가전쇼인 ‘CES’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LG전자는 김쌍수 부회장을 비롯해 정보통신사업본부장 박문화 사장,CTO인 이희국 사장, 디지털 디스플레이(DD) 사업본부장 윤상한 부사장, 디지털 미디어(DM)사업본부장 황운광 부사장 등 사장단이 총출동한다. 삼성전자는 정보통신총괄 이기태 사장과 디지털미디어총괄 최지성 사장이 참석한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김충훈 사장도 올해에 이어 참가한다. 반면 이건희 삼성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빅3’는 새해를 자택에서 보내며, 내년 경영 구상을 다듬을 것으로 알려졌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현대車 78명 임원 승진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28일 동시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관련인사 29면 현대·기아차는 노재만 베이징현대차 총경리(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임원 78명을 승진시켰다. 지난 1월 정기 임원인사(106명 승진)와 비교해 승진폭이 30%가량 줄었다. 기아차는 부사장 승진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윤여철 현대차 경영지원본부장은 올 한해에 상무(1월)-전무(4월)-부사장(12월)으로 수직 상승해 눈길을 끌었다. 김조근 홍보담당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현대그룹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 계열사 사장단을 전원 유임시켰다.KCC 정상영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당시 핵심참모 역할을 했던 현기춘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로 자리를 옮긴 점이 눈에 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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