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장단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박형준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서인영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집무실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동해안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94
  • 현대기아車 ‘2세대 경영’ 본격화

    현대기아차그룹이 또 한번 ‘깜짝 인사’로 세대교체를 서두르고 있다. 김동진 부회장, 김상권 부회장에 이어 엔지니어 출신 부회장이 추가됐고 사장단 연령도 한층 젊어졌다. 정몽구 회장 특유의 감각으로 ‘수시 인사’가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지만 명색이 재계 2위 그룹의 사장단 인사가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이뤄지고 있어 ‘널뛰기식 인사’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현대차그룹은 20일 한규환 현대모비스 사장을 현대모비스 부회장으로, 정석수 파워텍 사장을 현대모비스 사장으로, 전천수 현대차 사장(울산공장장)을 파워텍 부회장으로, 서정현 파워텍 부사장을 사장으로, 윤여철 현대차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및 전보 발령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 박정인 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현대차그룹은 이로써 ‘1세대’를 마감하고 ‘2세대 CEO’ 시대를 본격화하게 됐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한 부회장은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기초기술 및 설계부문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자동차 전장제어 및 시스템 연구에 매진해 왔다. 정몽구 회장과 현대정공에서 ‘동고동락’했던 박정인 회장은 ‘일신상의 사유’로 9년간 유지했던 대표이사직과 36년간의 ‘현대맨’ 생활을 접고 용퇴했다. 박 회장의 퇴진으로 현대모비스는 정 회장, 한 부회장, 정의선 사장, 정석수 사장 체제로 재편돼 조직 개편을 앞두게 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대표적인 재무통인 박 회장 대신 엔지니어 출신인 한 부회장이 승진한 것은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현대·기아차의 부품 경쟁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여철 신임 울산공장장(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영업쪽에서 활약하다 경영지원본부장을 거쳐 올초 정몽구 회장의 ‘특명’을 받고 울산공장 노무담당 부사장으로 부임했다.이번 노사협상을 무난히 마무리지어 정 회장의 신임이 더 탄탄해졌다는 후문이다. 현대모비스 사장으로 ‘영전’한 정석수 사장은 중앙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현대정공 재무를 책임졌고 현대하이스코 재정담당,INI스틸 대표이사 부사장·사장,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부사장 등을 거친 현대차그룹의 ‘재무통’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잇단 낙마… CEO들 ‘수난의 여름’

    ‘박용오, 윤창번, 김윤규….’ 최근 대표이사직에서 ‘낙마’한 국내 간판급 최고경영자(CEO)들이다. 낙마한 CEO들의 퇴출 사유는 기존 대주주와의 갈등. 오너체제 하에서 전문 경영인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고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불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윤맹철 전 레이크사이드 대표이사, 한우봉 전 한성항공 대표이사 등 주주간 갈등으로 대표이사에서 ‘쫓겨난’ 사례가 적지 않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오너이면서도 ㈜두산 대표이사 회장,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 회장 등 화려한 CEO 경력을 자랑했지만 지난달 22일 ㈜두산과 두산산업개발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해임이 결정됐다. 두산측은 박 전 회장이 오랜기간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자신의 지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자기 회사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박용성 회장이 이번 ‘형제의 난’을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라고 명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회장은 두산건설 시절인 98년부터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를 맡아 왔다. 등기이사는 93년부터 시작했다. 둘째아들인 중원씨도 두산산업개발 상무로 일했었다. 2003년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던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회장은 지난 11일 이사회에서 ‘자진 사퇴’ 형식으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사퇴 배경은 최대 주주인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지분 39.6%)과의 ‘경영 철학’ 차이가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외국계 대주주의 반대로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사업권을 반납했을 때부터 갈등설이 불거진 터였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갈등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가장 확실한 답을 보여준 것은 지난 19일 김윤규 부회장의 대표이사 퇴진을 결정한 현대아산 이사회였다. 김 부회장은 98∼2001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99년부터 현대아산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온 대표적인 CEO. 지난 3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영전’했지만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퇴출 수순을 밟아왔다. 김 부회장 퇴진의 ‘도화선’이 된 것은 그룹의 경영감사에서 적발된 ‘개인비리 의혹’이지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측과의 갈등이 더욱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스타 CEO’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영광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수 CEO’로 분류되는 것도 극도로 꺼려한다. 특히 최근 눈부신 실적 속에 거의 이동이 없었던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는 실적이 예년만 못한 데다 연예인 X파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방해, 헌법소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X파일 등 숱한 악재가 쏟아져 나와 분위기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삼성측도 “인사수요가 많이 누적됐다.”고 인정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표이사를 오래 맡았고 크게 주목받는 전문 경영인들은 자칫 오너의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경우 오너측의 견제를 받아 낙마하기 쉽다.”고 말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2)-4세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2)-4세 경영

    지난 4일 경기도 광주 선영에서 가진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32주기는 침울했다고 한다. 생전에 인화와 우애를 가르치고, 강조했던 선친 앞에 얼굴 들기가 부끄러웠던 탓이다. 이날 가문에서 축출된 박용오 전 회장과 경원, 중원씨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형제의 난’ 이후 두산가는 ‘언론 기피증’을 보이며, 숨을 죽이고 있다. 내부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하루빨리 이 악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또 검찰 수사 이후 몰아칠 ‘후폭풍’과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한 단속도 눈에 띈다. 재계 최초로 경영에 참여하는 두산가 4세들이 이를 극복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 관심을 끈다. ●악몽 같았던 일주일 두산산업개발은 지난달 15일 ㈜두산 지분 280만주(12.8%)를 계열사와 박용곤 명예회장,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에게 시간외거래를 통해 매각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권 안정,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유를 댔다. 경영권 분쟁을 대비하기 위한 ‘용곤(73)-용성(65)-용만(50)’ 3형제의 치밀한 정지작업이라는 사실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지난달 18일, 용성 회장은 용곤 명예회장의 지시로 대한상의 제주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이어 두산그룹은 용성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용오(68) 현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형제간 경영권 승계의 일환으로 두산가의 우애가 또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용곤 명예회장의 ‘연막’도 그럴듯했다.“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두산그룹의 회장으로 폭넓은 인맥과 신망을 얻는 용성 회장이 적임자”라고. 그러나 안으로는 이미 ‘용곤-용성-용만’ 3형제와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우애 깊은 형제가 원수 사이라는 것은 사흘 후에 드러났다. 두산은 지난달 21일 용오 전 회장이 용성 회장 취임에 반발, 검찰과 모방송사에 그룹의 경영현황을 비방한 투서를 제출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를 확인시켜 주듯 용오 전 회장은 이날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내가 용성 회장 등과 관련된 비리를 적발하자 나를 밀어낸 것으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진실공방 게임은 이어 본격화됐다. 용곤 명예회장은 “그룹과 가족에 대한 반역 행위”라고 규정했으며, 용성 회장은 지난달 22일 “이번 사태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용오 전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승자 없는 ‘형제의 난’ 두산가 ‘형제의 난’은 다른 국내 재벌가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궤를 달리한다. 대부분 재산과 ‘대권’ 싸움이어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분됐지만, 이번 두산가 분쟁은 승자가 없는 오직 패자만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비리 의혹을 폭로한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마지막 ‘무기’를 던짐으로써 가문에서 축출이라는 비애를 맛봤다. 또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두산산업개발 경영권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동생들과 조카의 사법처리’ 빼고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용오 전 회장의 부인 최금숙 여사가 지난해 암으로 죽고 나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용오 전 회장이 극단적 행동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용오 전 회장 부부는 미국에서 만나 연애 결혼해 부부 금실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용곤-용성-용만’ 3형제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형제간 우애와 집안 망신,109년 전통의 명예, 경영 차질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또 자칫 집단 사법처리 가능성도 있어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단지 용오 전 회장 일가를 가문과 그룹에서 축출한 것이 유일하게 얻은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얻기 위해 이같은 처참한 분쟁이 일어난 걸까. ●‘원’자 돌림 4세 9명 경영수업 ‘원’자 돌림의 4세 15명 가운데 두산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는 총 9명이다. 이들 사이의 신경전도 예사롭지 않다. 두산 3세간 일어난 ‘형제의 난’도 사실상 4세들을 위한 ‘대리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두산측 설명은 이렇다.“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가 알겠나.(용오 전 회장)눈에 뭐가 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용오 전 회장이 나선 것은 자식들을 위해 총대를 멘 부문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4세간 역학 구도를 보면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가장 앞선다.4세 가운데 유일하게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또 용성 회장의 장남 진원씨는 지난 5월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관리 총괄 상무로 선임되면서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섰다. 두산 경영에 참여치 않는 박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태원씨도 네오플럭스 상무로 일하며, 두산의 M&A(인수합병)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네오플럭스는 최근 삼성전자의 소형가전 자회사인 노비타를 인수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정원 부회장과 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5%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1999년 벤처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며 자신감이 넘쳐났던 용오 회장의 장남 경원씨는 두산가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에 회의를 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2001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던 경원씨는 2003년 전신전자를 인수, 아예 독자노선을 걸었다. 수년 전부터 ‘밖’으로만 돌았던 경원씨의 행보를 보면 이미 ‘정원-진원’을 비롯한 4촌 형제와 경원씨간의 대립 구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오 전 회장이 지난해부터 두산산업개발을 탐낸 것도 결국 두산 지분이 4세대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두 아들만 소외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형제의 난’ 이후 용오 회장과 자제들이 경영에서 빠진 만큼 두산의 경영구도에서 용만 부회장과 장손인 정원 부회장의 ‘파워’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용성 회장은 사실상 그룹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동하고, 내부 살림은 용만 부회장과 정원 부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용만 부회장이 용성 회장에 이어 두산의 향후 ‘대권’을 잡을지도 관심사다. 정원 부회장은 두산가가 장자 상속의 전통을 이어온 점을 감안하면 미래의 그룹 총수 1순위다. 그는 올 초 그룹 사장단 회의로부터 ‘2004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경영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4세 경영 과외도 ‘형제의 난’이 마무리되면 빨라질 전망이다. 용만 부회장은 현재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과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 두산 4세들의 경영수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반면 가족간 우애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가는 계속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을 원칙으로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용오 전 회장 일가가 빠진 가족회의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물밑에서 용곤 명예회장과 용오 전 회장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경원-서미경 부부 곤혹 두산가 장손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공군 참모총장과 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 전 의원의 딸 소영(40)씨와 결혼했다. 부친인 박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선후배 사이로 동창회 모임에서 두 사람의 혼담이 오간 인연으로 맺어졌다는 후문이다. 김 전 의원은 포스데이타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상민(15)양과 상수(11)군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 박혜원(42) ㈜두산 잡지BU 상무는 의사인 서경석(4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자녀는 주원(18)양과 장원(15)군으로 학생이다.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평범한 집안 출신인 서지원(36)씨와 혼인했다. 아들 상우(11)군과 딸 상진(5)양이 있다. 두산가에서 요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는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의 부인 서미경(39)씨로 보인다. 박 사장이 이번 ‘형제의 난’에 깊숙이 연관된 데다 연일 시끄러운 ‘X파일’ 사태도 친정과 적잖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경씨의 부친은 서상철 전 동자부장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고려대 교수로 있다가 전두환 정권 때 경제관료로 영입됐다. 안타깝게도 1983년 아웅산 테러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 ‘X파일’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자금 전달자로 나오는 서상목 전 의원이 바로 미경씨의 숙부다. 장남 상호(16)군과 차남 상모(13)군을 두고 있다. 용오 전 회장의 차남인 박중원(37)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정윤주(37)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아들 상윤(6)군과 딸 상이(4)양이 있다. 용성 회장의 장남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와 차남 박석원(34) 두산중공업 차장은 모두 평범한 가문의 딸들인 김선영(34)씨와 정현주(35)씨를 배필로 맞아들였다. 상효(6)-상인(2)과 상현(7)-상은(2) 등 각각 딸만 두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는 최근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범 LG가(家)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셋째 남동생이다. 박용훈(두산산업개발 부회장)-구선희(고 구철회씨의 4녀) 부부에 이은 두산가와 LG 구씨가의 두번째 사돈이다. ●두산의 역대 악재들 이번 ‘형제의 난’ 외에도 두산가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악재는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두산중공업 노조원인 배달호씨 분신자살 사건과 낙동강 페놀 사태를 꼽을 수 있다. 2003년 배달호씨의 분신 자살은 두산가와 노조의 악연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용성 회장은 “결코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면서 “지금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불법 파업의 뿌리를 뽑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었다. 이는 노조의 극한 투쟁으로 이어졌고, 배씨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인화를 5대째 강조하는 두산가와 노조의 궁합이 맞지 않은 것도 꽤 아이러니하다. 두산가로서는 노사 합의만 되면 불법이 합법화되는 노조의 관행을 더 이상 둘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노조와의 악연은 두산가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올 초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의 노조도 한동안 두산 인수를 격렬히 반대했다. 또 두산 계열사 노조는 이번 ‘형제의 난’과 관련해 그룹 회장직을 둘러싸고 형제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하고, 두산의 도덕성을 바닥에 추락시킨 책임을 지고 박용성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즉각 퇴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두산가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사건으로 낙동강 페놀 사태가 있다. 여전히 반세기 최대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꼽힌다.1991년 ‘맥주로 돈 번 회사가 먹는 물을 망쳐 놓다니….’라는 구호가 전국을 들끓게 했으며,2차 페놀 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박용곤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었다. 또 두산 불매운동으로 매출액이 급감했으며, 당시 환경처 장관과 차관이 경질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숨은 그림자 박용욱 회장 ‘용’자 돌림 가운데 막내인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두산가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가장 먼저 깨뜨리고 독자사업에 나섰을 뿐 아니라 ‘KS(경기고-서울대)’가 수두룩한 두산가에서 박 회장은 서울고-인하대를 나왔다. 또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박 회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홀로 무역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당시 부친으로부터 받은 지분을 종자돈으로 삼아 지난해 매출액 1000억원대의 소그룹으로 키웠다. 반면 용곤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인 박용훈(63·박우병 전 고문의 장남) 부회장은 두산산업개발에 몸담고 있다. 박 부회장의 부인은 LG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씨의 4녀 선희(61)씨다. 구철회씨는 1999년 LG화재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박 부회장은 두산식품 부사장을 거쳐 92년부터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비상근으로 실제 경영에는 참여치 않고 있다. ●‘두산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유병택(61) ㈜두산 부회장은 일명 ‘면도칼’로 불린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기민함이 탁월하고, 현장 경험이 많다.69년 동양맥주에 입사한 후 두산기계와 두산음료 등 그룹내 요직을 거쳤다. 강문창(62)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68년 동양맥주로 입사한 이후 경리와 영업, 총무, 기획, 해외현장 등을 두루 거쳐 해박한 실무지식을 자랑한다. 제주에서 상고 야간을 나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수재형 경영인이다. 자신의 이력은 ‘두산 입사, 두산 퇴사’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싶다는 두산맨이다. 건설업을 주력기업으로 만든 주인공이기고 하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경(55) ㈜두산 전략본부 사장은 두산그룹 ‘10년 구조조정’의 숨은 공신이다. 전략기획통으로 통한다. 두산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부터 일찌감치 구조조정에 착수해 한국3M과 한국코닥, 코카콜라, 한국네슬레, 두산씨그램 등 돈이 될 만한 회사는 가리지 않고 팔았다. 모기업인 동양맥주도 매각했다. 이런 ‘무차별 구조조정’을 주도한 인물이 박용만 부회장이고, 그를 보좌한 이가 이 사장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했다는 평이다. 일 욕심 많기로 소문난 이 사장은 성격도 급하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북고 동기생이다. 김대중(57) 두산중공업 사장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69년 동양맥주에 입사했다.㈜두산 주류BG와 ㈜두산 테크팩BG 사장을 거쳤다. 두주불사형으로 알려진 그는 주류업계의 ‘히트상품 제조기’로 불렸다. 청하, 설중매, 그린, 산 등 두산의 주류 히트상품은 그의 손을 거쳤다. 김 사장은 불도저 같은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노사 화합과 현장 경영을 토대로 그는 중공업분야에서 ‘신인’이라는 우려를 씻고,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고 있다. 최승철(57)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77년 두산메카텍의 전신인 두산기계에 입사한 뒤 기계업종 외길을 걸어왔다. 김홍구(59) 두산산업개발 사장은 건설사 사장 가운데 흔치 않은 수주영업 전문가로 통한다.‘똑똑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 두뇌회전이 빠른 명석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똑게’로 불린다. golders@seoul.co.kr ■ 6형제가 좌장… 이사회보다 막강 두산가(家)의 가족회의는 좀 특별하다. 단순히 형제간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모임일 뿐 아니라 사실상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그룹의 중요 결정 사항은 가족 회의에서 정해진다. 이 때문에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가족회의는 평상시 한 달에 한 번씩 3대(3∼5세)가 모여 선친 박두병 초대 회장이 강조한 ‘가화만사성’을 되새기며, 인화와 우의를 다진다. 가족 중 그룹경영 참가 선수인 ‘박용곤-용오-용성-용만’뿐 아니라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전 서울대 병원장)와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등 ‘용’자 돌림 6형제가 가족회의의 좌장들이다. 집안 대소사 등이 화젯거리로 등장하지만 경영이나 사업 얘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룹에 위기가 오거나 비상 사태, 중대한 경영 결정을 내릴 때 열리는 가족회의는 ‘숨겨진’ 비공식 최고 기관이다. 경영진에 대거 포진한 ‘원’자 돌림의 4세들도 이런 경우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표시한다. 이 때문에 각 계열사 이사회는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추인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두산 오너가가 고작 5%대의 지분으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셈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지금까지 그룹 경영과 관련된 모든 중요한 결정은 가족회의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형제의 난’ 기폭제도 사실상 가족회의에서다. 지난 5월 열린 가족회의에서 용곤 명예회장은 용오 회장 일가의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M&A(인수합병) 시도 대가로 그룹 회장 교체를 언급했으며, 지난달 가족회의에서 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추대와 용오 회장의 퇴진을 최종 결정했다. 당시 가족회의는 보안요원이 배치되는 등 살벌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회의의 경영 행위에 대해 “기업을 가족 소유물로 여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시민단체와 두산 노조 등은 “가족회의를 통해 그룹의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전근대적 족벌경영 체제가 두산그룹의 현주소”라며 기업을 족벌의 사유물로 여기는 이같은 그룹 체제는 즉각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4세들도 분기별로 한번씩 ‘패밀리 미팅’을 갖고 우애를 나눈다. 모임의 주관은 장자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맡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두산가 4형제 경영스타일 ‘아름다운 형제’에서 한순간에 ‘돈 앞에 형제도 없는’ 처지로 추락한 ‘박용곤-용오-용성-용만’ 4형제의 성격과 스타일은 어떨까. ▲ 2000년 초 우애 깊은 형제였던 박용오(오른쪽) 전 회장과 박용성(왼쪽) 회장, 박용만 부회장 등 3형제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용곤 명예회장은 집안의 장자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용오 회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그의 통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묵한 성품으로 말이 거의 없다. 내부 회의에서도 말을 듣는 입장이지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 임원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를 가장 어려워한다. 그는 또 게임의 룰을 중요시 여긴다. 용오 회장의 이번 행위에 대해 “가문에서 빼버리겠다.”고 강경 대응한 것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깬 데 대한 분노로 보인다. 그는 골프에서도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두번 다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용오 전 회장은 어느 자리에서나 격의없는 대화와 만남을 좋아한다. 체면보다 실리를 챙기는 스타일이다.‘형제의 난’ 역시 이같은 그의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그는 미식가이자 애주가로 통한다. 술을 통해 상대의 스타일이나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 근로자들과도 곧잘 술자리를 갖고 어울린다. 그의 애주론은 이렇다.“술은 백년지기를 만나는 마음으로 즐겁게 마시면 오히려 호쾌해져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용성 회장은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정부와 재계, 사회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비유를 동원하는 그의 발언은 화제가 된다. 어느 사업이 좋다면 경쟁 업체를 무조건 따라서 투자하고 보는 풍토를 비판한 ’들쥐떼론’과 전통 산업은 외면하고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만 좇는 기업 풍토를 비튼 ‘첨단병론’ 등이 대표적이다. 또 소탈하면서도 집념과 추진력이 대단하다. 박 회장은 1995년 세계유도연맹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서울에 돌아갈 생각하지 말고 모두 창 밖에 뛰어내리자.”고 할 정도였다. 그는 사진과 음악을 좋아한다. 해외출장 때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사진을 찍는다. 또 클래식 마니아로 소장한 CD만 2만장이 넘는다. 용만 부회장은 꼼꼼히 따져 보고, 분석하는 일을 좋아한다.2002년 디스크 수술 이후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을 때다. 강사의 수영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분석했으며, 과도한 수영 연습으로 어깨 근육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또 재계의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통한다. 냉철하고 전략적인 그의 성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두산의 구조조정 10년 동안 15개 기업의 M&A를 진두지휘한 경험을 책으로 풀어내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운이 작용하는 ‘감(感)의 경영’을 싫어한다. 경영은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두산관련 물의 죄송”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이 그룹에서 퇴출된 뒤 처음으로 두산 주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자격으로 26일 두산베어스가 춘천CC에서 주최한 프로야구 구단주 및 사장단 골프모임에 참석했다. 박 전 회장은 골프를 마친 뒤 구단 관계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최근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KBO 총재로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이밖에 회사 사태와 관련한 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으며, 주로 야구와 관련한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참석자들은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은 라운딩 중에도 내내 깊은 상념에 잠겨 일행과 별다른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으며, 평소 핸디 10 수준의 골프실력에 훨씬 못 미치는 부진한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후문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김우중측 “이기호·이헌재씨 등이 출국 종용”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는 25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측근들이 김 전 회장의 출국 배경 관련 자료를 지난 22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전 대우그룹 사장단이 제출한 자료는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서모 심의관,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 오호근 기업구조조정위원장 등이 김 전 회장의 출국을 직·간접적으로 종용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대우그룹 전 사장단이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을 통해 A4용지 4∼5쪽 분량의 자료를 제출했으며 5∼6명의 정·관계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료는 1999년 당시 김씨의 핵심 측근이었던 장병주 전 ㈜대우 사장과 정주호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김태구 대우차 사장, 신영균 대우중공업 사장 등 4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앞서 거론된 정ㆍ관계 인사들이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김 전 회장이 밖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직ㆍ간접적으로 나타냈고 이를 김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거론된 인사들은 이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조만간 이 자료를 제출한 사장단을 소환해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김 전 회장을 상대로 확인할 방침이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두산그룹 박용성회장 시대 열렸다

    두산그룹 박용성회장 시대 열렸다

    두산그룹이 ‘박용오 회장 체제’를 10년만에 막내리고,‘박용성 회장 체제’로 새롭게 개편된다. 박용곤(장남)-용오(차남)-용성(3남) 회장으로 이어지는 형제 경영의 틀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두산은 창업 109년을 맞아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기 위해 박용성 두산중공업 및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박회장은 (주)두산 회장도 겸임한다. 박용오 현 회장은 ㈜두산의 명예회장직을 맡아 일선에서 한발 물러선다. 두산은 또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 상사BG 사장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4세 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변신을 위한 선택 두산이 박용성 회장 체제로 개편한 것은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의 고삐를 당기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두산은 최근 자산규모 2조 6000억원에 이르는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비전 마련을 위한 내부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룹 회장 개편도 이의 연속선상이라는 분석이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이날 사장단회의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그룹의 회장직으로 국제적으로 폭넓은 인맥과 신망을 얻고 있는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박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국제상업회의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 OC) 위원 등 공식 직함만 60개가 넘는 ‘마당발’이다. 두산 관계자는 “박용오 전 회장이 1996년 회장에 취임한 이후 10년 가까이 그룹을 이끌면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면서 “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위한 변화와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박용오(68) 회장은 건강엔 문제가 없지만 고희를 앞둔 고령이어서 대내외적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용성(65) 회장 체제로 개편을 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성 회장보다 15살 아래 동생인 박용만(50) 부회장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두산을 비롯한 6개 상장사의 등기이사직을 꿰차고 있어 향후 박용성 회장-박용만 부회장의 ‘쌍두마차 경영’이 예상된다. ●4세 경영인 입김도 커져 ‘젊은 그룹’으로 거듭나기 위한 두산가(家) 4세 경영인의 파워도 커지고 있다. 박정원 ㈜두산 상사BG 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맞물리면서 그룹의 안정과 변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오너가의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두산산업개발은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으로 4세 경영인의 주류 편승의 기폭제이며, 장남가에 대한 배려로 해석된다. 두산은 이에 앞서 4세 경영인들을 주요 계열사의 요직에 앉히며 세대교체를 준비해 왔다.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진원씨도 최근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로 발령났다. 박용오 회장의 차남인 중원씨는 두산산업개발 경영지원본부 상무로,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태원씨는 두산 계열 벤처캐피털인 네오플럭스의 상무로 각각 근무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달라진 문화지도] 기업 문화마케팅, 예술계 핵심주체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LG계열사 사장단과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은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 총출동했다. 독일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창작극 ‘러프 컷’을 보기 위한 공연 나들이였다.LG그룹은 ‘LG브랜드’출범 10주년을 맞아 한국을 소재로 한 이 공연에 10억원을 지원하며 문화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기업들이 문화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음악, 미술, 각종 공연 등의 후원에 나서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을 움직이는 파워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이미지 제고와 사회공헌 활동 참여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 마케팅’인 만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문화 사업 및 지원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다 보니 정부보다 기업이 우리의 문화 인프라구축의 핵심 주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각 기업들은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 걸쳐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저마다 오너들의 취향 등을 반영, 특정 분야에 지원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삼성그룹은 미술 분야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클래식 음악에서,LG그룹은 무용 등 공연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만들어 일찌감치 문화예술 지원활동에 나선 삼성그룹은 기업들 가운데 가장 ‘큰 손’이다. 삼성그룹의 지난해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981억원이고, 삼성문화재단은 922억원에 이른다. 문화재단은 삼성미술관 리움, 호암미술관, 로댕갤러리, 삼성어린이박물관 등에서 고유 사업을 펼치고 있고, 삼성전자 등 계열사는 다양한 공연 및 행사에 협찬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구분돼 있다. 지난 1977년 설립된 금호문화재단은 지난해 43억원을 음악 및 미술사업과 장학사업에 지원했다. 올해 57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금호문화재단은 지난 5월 작고한 고(故) 박성용 명예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클래식 전용홀인 금호아트홀 및 어린이전용 클래식 무대 개관, 유망연주자에 세계 명품 악기 무상대여 등 클래식 음악계의 저변을 넓히고, 차세대 유망 연주자들을 키워왔다. LG연암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LG아트센터는 무용, 재즈 등 공연에서 앞서간다. 지난 2000년 개관 이후 국내외 수준 높은 공연을 주최한 공로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기업에 주는 ‘2003 메세나 대상’을 받기도 했다. 문화예술 사업을 지원하는 기업들의 모임인 한국메사나협의회 회원 기업들은 올 1·4분기 기준 195개사. 지난 2003년 130여개사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메사나협의회 박찬 사무처장은 “문화 이미지를 기업의 브랜드에 접목할 경우 상품이 보다 고급스럽게 보일 수 있고, 사회 공헌활동 참여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기업들이 문화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밝혔다.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역동적 亞시장서 제2도약”

    ‘삼성의 미래는 아시아에 달려 있다.’ 삼성이 아시아와 동반성장을 통한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삼성은 13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이건희 회장과 구조조정본부·삼성전자 사장단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전략회의를 열고 세계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아시아 지역과 동반성장 하기 위해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타깃 마켓별 세분화 전략’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이 회장과 장남 이재용 상무,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기태 사장(정보통신), 이현봉 사장(생활가전), 최지성 사장(디디털미디어), 김순택 삼성SDI 사장,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 송용노 삼성코닝 사장, 김인 삼성SDS 사장 등 전자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했다. 박근희 중국본사 사장, 박상진 동남아총괄 부사장, 오석하 서남아 총괄 전무, 이병우 중동·아프리카총괄 상무 등 아시아지역 총책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삼성은 아시아 경제발전이 가속화되고 전체가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는 추세에 맞춰 아시아지역이 원가절감 목적의 단순 생산기지가 아니라 주요 시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상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로 했다. 베트남과 인도 등 국토·인구·자원 측면에서 잠재력이 큰 국가들에 대해서는 연구개발(R&D)을 확대해 기초기술과 소프트웨어 등 유망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프리미엄 전략을 통한 고급 마케팅을 전개해 초기 단계에서부터 일류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하는 한편 아시아 각 지역에 정통한 우수 인력을 확보, 양성하는 데도 역점을 두기로 했다. 이 회장은 “아시아는 인종·국가·종교 등이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국가간, 지역간 소득 격차가 심하지만 잠재력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높다.”면서 “삼성의 미래가 아시아와의 동반성장 여부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회장은 또 “아시아 각국이 경제발전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관심과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며 역동적인 아시아 시장에 긴 안목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 관계자는 “단순히 제품만 팔겠다는 생각으로는 복잡한 아시아시장 공략이 어렵기 때문에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회장은 지난 12일 하노이에서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와 접견, 베트남 투자확대 등을 논의했고 13일 회의에 앞서 삼성전자 베트남 사업장을 방문했다. 이 회장은 14일 인도네시아로 떠난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윤리경영지수’ CEO평가 반영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 계열사의 윤리경영 지수를 산정, 사장단 평가에 반영키로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윤리경영 활동을 종합·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새 판단지표 ‘윤리경영 지수’를 마련, 올해부터 최고경영자(CEO) 및 회사별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이를 위해 11일부터 2개월 동안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사별 윤리경영 지수 산정을 위한 실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 CEO들은 윤리경영 및 사회공헌 활동을 게을리할 경우 해당 연도 인사·성과급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윤리경영 평가지표에는 ▲윤리지향(40%)▲사회지향(30%)▲준법지향(30%) 등 3개 부문,27개의 평가지표와 123개의 세부평가항목이 담겨 있다. 항목별 배점에 차이를 둬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다. 윤리지향부문에는 CEO의 윤리경영 의지, 임직원 윤리의식과 참여도 등 13개의 평가지표와 50개의 세부평가항목이 들어 있다. 사회지향부문에는 사회공헌활동 계획·표준·조직 등 8개 평가지표와 30개의 세부평가항목이, 준법지향부문에는 협력회사와의 관계, 고객 및 경쟁업체·내부임직원과의 관계 등 6개 평가지표와 43개의 세부평가항목이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윤리경영실 관계자는“계열사간 상대적 평가를 통해 계열사들의 현 실태를 파악, 부족한 부분의 개선과 활성화를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하프타임] KBO “이상국 전 사무총장 복귀”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7일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박용오 총재 주재로 8개 구단 사장단 간담회를 갖고 배임수죄혐의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근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이상국 전 사무총장을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장들은 “이 총장은 그동안 많은 일을 해온 데다 무죄를 선고받아 복귀시키지 않을 명분이 없다.”며 강한 신뢰를 보냈다.
  • “신한·조흥 카드통합 내년1분기 돼야”

    홍성균 신한카드 사장은 21일 조흥은행 카드사업 부문과의 통합이 내년 1·4분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 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빨리 하고 싶지만 감성통합에 힘쓰다 보니 실질적인 통합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당초 계획인 올해 말보다 늦은 1·4분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한금융지주와 SK텔레콤의 카드 합작법인 설립 추진에 대해서는 “라응찬 지주 회장이 SK텔레콤 쪽을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사장단에 통고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특히 “비가격 경쟁에 힘쓸 생각”이라며 블루오션 전략 추구를 천명했다. 이와 관련, 국내 첫 기부전용 카드로 출시하는 ‘아름다운 카드’가 첫 번째 수단이라고 소개한 뒤 “기부 문화 확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카드는 고객이 신용판매 사용액의 0.5% 수준에서 적립되는 포인트를 자신이 원하는 기부처에 기부하는 카드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쌍두 체제’로 포스트 재벌을 향해 순항중이었던 SK그룹은 2003년 2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소위 ‘SK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악재로 오너가(家)인 최 회장이 전격 구속됐기 때문이다.2세 체제의 성공적인 착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그러나 ‘카운터 펀치’는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투기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보스’의 부재와 채권단의 압박, 소버린의 흔들기는 ‘SK호’의 최대 위기를 가져왔다. 한 임원은 긴박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시민단체의 공격과 채권단의 위협, 소버린의 가세는 그야말로 내부 구성원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시중에는 그룹 해체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또 소버린의 지분 매입 의도는 최 회장이 보석으로 나온 뒤에나 대책이 세워질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까. 산전수전 다겪은 최 회장은 ‘뉴SK’ 기치를 내걸고, 난제를 정공법으로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포스트 재벌을 지향한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투명성과 윤리경영을 핵심으로 강도를 더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해 10월 SK㈜ 창립 42돌에서 밝힌 내용이다.“나는 재벌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그룹이라는 말도 재벌이라는 지배구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입니다. 누가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독립된 각 기업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경영 ‘대표선수’ 패밀리 4인방 “내 아들은 5명이다. 경영능력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인으로 키울 것이다.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아들이든, 조카든 가리지 않고 경영을 맡기겠다. 나는 자식들 누구에게나 밥상(경영권 승계 후보)을 차려주겠지만 먹은 것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최종현 회장) 최씨가에서 현재 SK 경영에 참여하는 인물은 최신원(53) SKC 회장과 최태원(45) SK㈜ 회장,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 등이다. 최씨가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최씨가의 차세대 5인방인 사촌 형제들이 모여 당시 최태원 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패밀리 5인방’이 별다른 갈등없이 신속하게 후계구도에 합의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많지 않아 ‘뭉쳐야 산다’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기원씨는 아예 상속포기 각서를 썼을 정도였다. 또 연장자인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에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맏이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가족대표로 경영권을 승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적극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회장은 가족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룹 회장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SK그룹은 98년 9월 계열사 사장단회의격인 수펙스(SUPEX·슈퍼 엑셀런트의 준말)추구협의회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최 회장은 SK㈜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파트너십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토론해서 분석하고, 협의해서 합의한다.’로 요약된다. 합리적이며,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은 ‘파이낸싱’의 귀재로 통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일본계 증권사에서 18개월가량 근무한 경력도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에서였다. 당시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는 27.6%의 지분을 보유한 포항제철(현 포스코).SK가 이를 매입하려면 1조 7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최 부회장은 이를 SK텔레콤 지분 6.5%와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의 스와핑(주식 맞교환)으로 해결했다. 최 부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 스탠퍼드대 재료공학과 석사,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출신이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은 94년 선경(현 SK)그룹 경영기획실로 첫 발을 내디뎠다.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뛰어나다는 평이다. 특히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가 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는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했으며,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 경영 바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는 ‘구조조정 리베로’라고 불렸다. 특히 최 부사장이 계열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해당 임직원들은 긴장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90년대부터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비켜섰었다.SK케미칼 회장 때는 아예 회장 결재란을 없애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사교와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우석대와 미국 엘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2세 교육 “선친은 자식들이 결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엔 용돈이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뛰고,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한번은 중고차를 샀는 데, 이것도 어떻게 구입했는지 일일이 현지 지사장으로부터 자금 출처(?)를 확인 받기까지 했죠. 그리고 집도 제일 싼 곳에서 살아 일주일에 쥐를 40마리까지 잡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연구까지 했답니다.” 차남인 최 부회장은 남들처럼 어렵게 공부했던 미국 유학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자식 교육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최 회장은 자식들과 토론을 즐겼다. 주제는 사회·경제가 아닌 과학 분야. 가끔은 난센스 퀴즈와 같은 질문을 들이대, 자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부친이 살아계셨으면 최근의 토론 주제는 아마도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관련됐을 것”이라며 “그 만큼 과학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화학도’인 고 최 회장은 아들들은 모두 이과 전공을 권했다. 최종현 회장은 장남이 진학 문제로 고민할 때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선택해라.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합리적 논리를 펼 수 있는 객관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경제를 잘 알려면 ‘리(理)’와 관련된 분야로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남인 최 회장은 문과 지망생이었지만 선친의 뜻에 따라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최 부회장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고 최 회장은 또 자식들에게 최종 학력만큼은 최고를 주문했다. 최 부회장은 “선친은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은 아무 곳에서 졸업해도 괜찮지만 최종 졸업장은 최고 수준의 ‘학벌’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야 최고가 뭔지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가 3세들은 ‘공부 중’ 최씨가의 2세들은 대부분 연애 결혼했다.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났다. 최 회장의 설명이다. “대학 테니스 동호회에 선수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를 적극 끌어들였죠.”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진척될수록 SK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노 관장의 부친이 당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체육부 장관으로 정경 유착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가 미국에 건너가 맏며느리감인 노 관장을 직접 살펴봤으며, 고 최 회장도 미국 출장중에 노 관장을 면담했다. 고 최 회장은 사돈인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자 임직원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SK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정경유착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경영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위의 이목속에 결혼한 탓일까. 부부간 ‘애정 전선’은 세간의 이목 이상으로 견고하다는 평이다. 한 지인의 얘기다.“최 회장이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구속 수감됐을 때입니다. 노 관장은 공판 때마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1주일에도 세 차례씩 면회를 꼭 갔었어요. 당시 수감중인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생일에 사람을 통해 장미꽃을 전달하기도 했고요.” 최 회장과 노소영씨는 장녀 윤정(16)양과 차녀 민정(14)양, 장남 인근(10)군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차남인 최 부회장과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인연은 누이동생인 최기원씨 소개로 맺어졌다. 채 교수와 기원씨는 친구 사이다. 자녀는 2남1녀. 장남 성근(14)군과 장녀 원정(8)양, 차남 동근(6)군이다. 고 최윤원 회장과 김채헌(51)씨는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장녀 서희(28)씨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최성훈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은진(22)씨와 3녀 현진(20)씨, 장남 영근(18)씨는 모두 학생이다. 최신원 SKC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유진(27)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차녀 영진(25)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장남 성환(24)씨는 중국 복단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최유경(38)씨는 장녀 경진(8)양과 장남 민근(7)군을 두고 있다. 모두 초등학생이다. ●‘SK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조정남(64) SK텔레콤 부회장은 SK텔레콤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산파’로 통한다. 또 ‘CDMA 전도사’라 불린다. 조 부회장이 밝힌 1995년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의 개발 성공 일화다.“당시 손길승 부회장이 저에게 지속적으로 CDMA 성공 여부를 물어오셨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수천명이 동시에 통화를 시도할 수 있는 상업화 규모의 투자를 결심해야 하는 판국에 몰렸습니다. 그때 제가 손 부회장에게 ‘제게 400억원을 주십시오. 항상 물으시던 CDMA 성공 여부에 대해 확실한 답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손 부회장은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고,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신화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조 부회장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친근감이 넘친다. 자칭 ’리버럴리스트’로 말한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김창근(55) SK케미칼 부회장의 별명은 ‘마징가’다. 매일 서너 시간만 잠자며, 일에 매달리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처리와 관련,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후계자로 불릴 정도다. 그는 마지막 구조본부장으로서 1974년 ‘경영기획실’로 출범한 SK 구조조정본부를 30년 만에 직접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입사 이후 SK케미칼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담당 상무를 거쳤고,1997년에는 그룹 구조본 재무팀장을 맡는 등 SK를 대표하는 재무전문가다.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신헌철(60) SK㈜ 사장은 소탈한 외모와는 달리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평과 함께 노력형 CEO(최고경영자)로 불린다. 상고 출신으로 주판알만 튀기던 그가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때문에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아예 작품을 통째로 암기해 버릴 정도다. 그는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면 ‘메밀꽃 필 무렵’을 술술 읊어댄다. 신 사장은 본인을 ‘운 좋은’ CEO라고 평가한다.SK㈜ 사장도 운 때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 능력으로 뽑았다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겸손해한다. 신 사장의 얘기다.“최 회장으로부터 SK㈜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능력도 부족한 내가 맡아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최 회장이 지금의 SK㈜는 ‘아버지’ 같은 CEO보다 상처를 보듬아주고, 이것 저것 챙겨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CEO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CEO를 맡을)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그러나 ‘능력없다.’는 말과 달리 SK㈜는 신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과 수출, 순이익 면에서 역대 실적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신 사장의 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신 사장이 1998년 5월 SK텔레콤 수도권본부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서정욱 사장은 국제전화 식별번호 추첨식에 참가할 SK텔레콤 제비뽑기 ‘대표선수’로 신 본부장을 선택했다. 가서 모든 경쟁사가 희망하는 ‘00700’ 번호를 뽑아오라는 특명과 함께. 그런데 이 업무는 신 본부장의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무선사업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임직원이 염원했던 대로 기어이 ‘00700’번호를 뽑아내는 기염을 연출해냈다. 신 사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상고와 부산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김신배(51) SK텔레콤 사장은 논리적이며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가사를 외운 팝송이 100여곡에 이를 정도로 감성적인 면도 적지 않다. 또 순탄하게 CEO까지 오른 듯 보이지만 이공계 출신의 기획통 CEO로서 만년 하위권이던 수도권영업을 SK텔레콤 지사 중 1위로 올려 놓을 정도로 ‘야전 경험’도 많다. 그는 당시 현장 직원과 친해지기 위해, 또 바닥권이던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평소에 즐겨하지 않던 술이었지만 그때 마셨던 술이 그 전 동안 마셨던 술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신세기통신과의 통합작업을 2년간 잡음없이 해 낼 정도로 사업 조정 및 대인 관계에도 능수능란하다는 평이다. 그는 애창곡으로 분위기를 띄울 때에는 ‘오늘같은 밤’(이광조)이나 ‘골목길’(신촌블루스)을, 분위기를 탈 땐 ‘사랑이 지나가면’(이문세)이나 ‘사랑일 뿐이야’(김민우)를 부른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팝송 100곡 정도는 가사를 안보고 부를 정도였다고. 김 사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만원(53) SK네트웍스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CEO다.2003년 그룹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로 위기를 맞았을 때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으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같은 활약 덕분에 SK네트웍스 사장으로 취임, 채권단 조기 졸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21회 행시 수석 출신으로 1994년 통산산업부 과장에서 ‘SK맨’으로 변신했다. 그는 사령장을 받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서적 40권을 구입했다고 전한다.95년부터 OK캐쉬백 사이트의 원형인 쇼핑몰을 구상했으며,OK캐쉬백과 그 사이트를 기획해 SK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중앙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장석(50) SKC 사장은 오너가(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사위)의 일원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솔직함과 친근감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과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보유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CEO라는 평이다. 그는 1979년 ㈜선경 미주본부로 입사, 경영지원본부장, 관리총괄 부사장을 거치며, 방송·통신 장비업체인 SK텔레시스 인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미국 스티븐스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맏형’ 최신원 SKC회장 “분가요?시기상조입니다. 여건도 성숙치 않았는 데 무슨 분가입니까. 지금은 형제간에 서로 협력해서 SK를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최신원(53) SKC 회장은 최근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SK분가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이어 “형님(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이 돌아가신 이후 최씨가(家)의 맏이로서 형제간의 협력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며 “이를 위해 형제간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패밀리 미팅’으로 알려진 형제간 모임은 실상 집안 제사 행사인 경우가 많다. 또 해외 출장을 빼곤 형제들 모두 참석하는 것이 최씨가의 오랜 전통이다. 최 회장은 ‘음지’에서 동생들을 지원하는 소리없는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지난해 ‘소버린사태’로 경영권을 위협받았을 때 SK㈜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지분을 확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행동하면 불협화음이 나올 수 없어요. 사업이야 다들 알아서 잘 하니까.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 뭉치면 되고요. 선친과 숙부께서 상호신뢰 속에서 그룹을 키워오신 것처럼 우리 2세 형제들도 서로 협력해 SK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울 것입니다.” 최 회장은 또 “몸은 부실해도 부친을 닮아 통뼈”라며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선친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죽으면 돈 갖고 갑니까. 살아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해야죠.” 그는 앞으로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했다.“제 소박한 꿈은 이렇습니다.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재단’의 장학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국에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기술학교를 세워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최 회장은 “선친은 평소 교육에 열정이 대단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탓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셨다.”면서 “선친의 이름으로 재산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해병대 출신이다. 부친이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기 때문.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의 임직원은 반드시 해병대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병대 CEO’로 불린다.CEO(최고경영자)로 나선 지 8년째인 최 회장은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업무 추진력, 강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이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어져 SKC 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계사업의 과감한 철수와 정보통신 관련 사업 진출 등 적극적인 ‘턴어라운드’ 작업을 통해 SKC를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golders@seoul ● 최씨가 며느리·딸 ‘경영불참 불문율’ 국내 재벌가에서 며느리들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SK가(家)는 이보다 한 술 더 떠 딸들까지 아예 배제한다. 한 임원의 얘기다 “최종현 회장이 한번은 가족 회의를 열고 최씨가의 여성은 딸이든, 며느리든 경영 참여는 안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경영에 참여시키기로 한 거죠. 그래서 큰 집(최종건가)과 작은 집(최종현가)의 5남 5녀 가운데 ‘대표선수’ 5명(윤원, 신원, 창원, 태원, 재원)만 경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런 불문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요.” 큰 집 조카들까지 포함해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했던 고 최종현 회장(그는 생전에 형의 3남 4녀와 자신의 2남 1녀를 합한 ‘5남 5녀의 아버지’로 자처했음)이 기업 경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며느리와 딸들을 경영진에 참여시키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 한토막. 최 회장이 병마와 막바지 씨름할 때였다. 하루는 저녁 식탁에 앉았는 데 큰 아들(최태원 SK㈜ 회장)이 보이지 않자, 큰 며느리(노소영 관장)에게 “오늘도 못 온대.”라고 물었다. 노 관장은 시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듯 “네∼”라고 답했다. 이어 “요새 그 사람 얼굴 보기도 어려워요.” 그러자 최 회장은 무뚝뚝하게 “사업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사업이란 장난이 아니다. 전력투구해야 한다. 사업을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최씨가의 맏며느리인 김채헌(51·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부인)씨는 최씨 2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소리 안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이다. 시동생 얘기다.“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데 형수님으로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은 없지만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는 뭔가 해 보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동생의 평은 이렇다 “워낙 말이 없고, 착하기만 합니다. 마음도 대단히 여리고요.”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씨가의 며느리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편이며,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긴다.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예술쪽에 관심이 많다. 최태원 회장도 노 관장의 바깥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지인은 “최 회장과 성격이 비슷한 데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대단히 합리적인 분”이라며 “서로 바쁘기는 해도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테니스를 치거나 요리를 하는 등 부부 금슬이 대단히 좋다.”고 설명했다. 시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은 큰 며느리를 어떻게 봤을까. “저래도 아이들 교육은 잘 시킨단 말이야. 제 시어머니(고 박계희 여사)를 닮은 데도 많고….”고 최 회장과 50년 지기인 언론인 홍사중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겉으로는 제법 쌀쌀하면서도 조금도 표리가 없고, 야무지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뜻으로 최 회장이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부인인 채서영(41)씨는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집 사람이 좀 바쁘죠. 그래서 저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가능한 한 골프를 치지 않으려고 해요. 집안 일은 좀 거드는 편인데…. 와이프 눈에는 많이 부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만 쓰는 주방용 칼이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라며 웃는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부인 최유경(38)씨는 치과의사다. 개업을 않고 가끔씩 지인들 병원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golders@seoul.co.kr .co.kr
  • 故박성용 회장 ‘큰 뜻’ 기린 추모 선율

    故박성용 회장 ‘큰 뜻’ 기린 추모 선율

    “최근 타계한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을 추모하는 뜻으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오토를 연주하겠습니다. 이 콘서트가 예술계의 위대한 후원자였던 박 명예회장의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정식 연주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곡 연주를 시작하며 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100년 전통의 사운드를 자랑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빅5’에 속하는 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 예술 후원자에게 최고의 헌사를 바쳤다. 이날 콘서트는 박 명예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금호문화재단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부드럽고 유장한 듯하더니 어느새 거친 열정을 뿜어내는 선율. 연주회에 얽힌 사연을 들은 관중들은 환호와 박수로 응답했다. 추모곡 연주를 끝낸 에센바흐는 한동안 지휘봉을 허공에 고정시킨 채 마치 조각처럼 20여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짧은 침묵을 통해 단원들의 애도를 담아낸 것이다.‘현과 하프를 위한 아다지에토’로 불리는 이 4악장은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때 지휘자 번스타인이 연주하면서 추모의 곡으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이날 콘서트에는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연극인 임영웅 등 각계 예술인들과 박 명예회장의 동생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한 가족, 그룹 사장단이 자리를 함께했다. 콘서트 직후 열린 추모 모임에서 박 회장은 “형님은 항상 연주가 끝나면 무대를 향해 기립 박수를 치곤 했다.”며 “이 자리에 형님이 참석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콘서트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사돈관계인 삼성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와 아들 이재용 상무 부부, 전윤철 감사원장, 김영수 전 문화부장관, 장상 전 이화여대총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박 명예회장은 특히 자라나는 예술인들을 아꼈다. 해외 연주단을 초청하는 경우 꼭 한국계 음악인을 협연자로 내세우도록 배려했다. 이날 필라델피아의 단장인 한국계 데이비드 김을 바이올린 협연자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뉴욕필 오케스트라 초청공연에서 피아노 협연을 한 손열음(20·한국종합예술학교)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박 명예회장님을 뵈었는데 해외 공연 나갔다 돌아오면 공항에 마중나오고 가끔 용돈도 주시고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아껴 주셨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음악회는 고 박 명예회장의 예술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뒤늦게 확인한 무대였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케이블TV, 홈네트워크 기능까지

    케이블TV, 홈네트워크 기능까지

    안방에서 케이블TV를 보며 각종 공문서를 발급받는다. 케이블 모뎀 하나로 전화와 고화질 방송, 초고속 인터넷도 즐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방범 기능은 물론, 창문을 여닫거나 각종 전자제품을 켜고 끄는 등 홈 네트워크 기능까지도 가능해진다. 케이블 10년, 디지털 원년을 맞아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실현하겠다며 의욕을 다지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케이블 방송업계 최대 행사인 ‘제3회 케이블 방송장비 전시회 및 콘퍼런스’가 8일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막이 올랐다. 한국 케이블TV방송협회(KCTV·회장 유삼렬)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국내외 케이블방송 55개사에서 151개 부스를 마련했으며,700여개사 2500명이 참관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행사는 10일까지 계속된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 유균 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김태환 제주도지사, 스티븐 에프로스 미국케이블TV방송통신협회(NCTA) 수석고문과 조너선 스핑크 HBO 아시아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전시회는 ▲양방향TV 솔루션 및 콘텐츠관 ▲케이블방송 네트워크 시스템 ▲TPS와 홈네트워크 시스템 ▲공공서비스 시연관·디지털케이블TV체험관 등 4가지 테마로 꾸며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유삼렬 KCTV 회장은 개회사에서 “케이블TV 업계는 과거 10년 동안의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보다 고객지향적인 경영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번 전시회 및 콘퍼런스를 통해 고심에 찬 논의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자리를 함께 한 노성대 방송위원장은 “뉴미디어 매체의 바람직한 성장 모델을 찾아내는 의미있는 자리가 되기 바란다.”면서 “앞으로 상업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케이블TV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SO-PP 사장단 100여명은 ‘새로운 10년을 위한 케이블TV 협약식’을 갖고 다양한 채널 편성과 콘텐츠 강화 등을 통해 정당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제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오늘의 눈] ‘고독한’ 삼성을 위하여/류길상 산업부 기자

    지난 1일 삼성그룹 사장단 40여명이 2시간 동안 머리를 맞댄 끝에 내놓은 ‘안티 삼성’ 기류에 대한 대책은 새로운 것이 없었다.“1%의 반대여론이라도 적극 경청하고 사회공헌을 강화하며 국가 경제 기여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물론 “삼성이 너무 크다고 하지만 아직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기업 가운데 54위에 불과하다. 우리도 ‘Good for Samsung,Good for Korea’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삼성측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IMF이후 다른 그룹들의 위상이 낮아지면서 삼성만 ‘뭇매’를 맞는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삼성독주’,‘삼성공화국’ 등 삼성을 둘러싼 세간의 우려는 단순히 삼성이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인재를 다 끌어가고, 정부도 언론도 대학도 삼성을 견제하지 못해서 ‘시샘’하는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이건희 회장의 고민처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성을 ‘대단한’ 기업으로는 인정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삼성의 화려한 성공 이면에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주식 승계 과정에서의 논란, 취약한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비용,‘무노조 경영’ 등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무노조 원칙 등은 경영에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지만 전적으로 수긍할 정도는 아니다. 중국의 사상가인 루쉰(魯迅)의 글을 모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강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조그만 둑을 쌓았는데 해마다 둑을 높이는 바람에 이제 마을보다 훨씬 높아져 버렸다. 처음부터 강 바닥을 파 내려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비판을 받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둑(대책)을 쌓기보다 삼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래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정도면 됐다.”며 박수를 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류길상 산업부 기자 ukelvin@seoul.co.kr
  • [사설] ‘고독한 삼성’의 자기 반성

    삼성그룹이 지난주에 이어 어제 사장단 간담회에서 최근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삼성 독주론’에 대한 원인 진단과 대책을 논의한 뒤 사랑받는 국민기업으로 정착시켜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해외에서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는 삼성으로서는 국내에서 제기되는 일부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항변보다 자기 반성을 통해 국민에게 더 다가서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것이 삼성과 국가경제가 한단계 발전하는 ‘윈-윈’의 길이다. 그래야만 ‘반기업 정서’도 극복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출의 22%, 상장사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5∼6개면 선진국에 곧장 진입할 수 있고 16개면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도 삼성이다. 인재와 돈이 삼성으로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의 ‘독주’는 상대적 박탈감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면서 ‘동반성장’의 걸림돌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 걸맞게 사회공헌 프로그램 보급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보다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좋든 싫든 그것은 오늘날 삼성이 짊어진 숙명이다. 또 그렇게 해야 존경받는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삼성의 질주를 시기해 하향평준화하려고 해선 안 된다. 국가경제에 보다 기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질투의 경제는 자본 이탈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뿐이다.
  • ‘삼성독주’ 나눔경영으로 포용

    삼성그룹이 최근 강해진 ‘삼성경계론’에 대해 사장단이 2주 연속으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대신 더 좋은 실적을 내고 사회공헌과 국민여론 수렴을 강화하는 등 ‘정답’대로 나가기로 했다. ●“경제기여도 높이고 중기지원 강화” 삼성은 지난달 25일에 이어 1일 그룹 사장단 간담회인 ‘수요회’에서 ‘삼성 경계론’에 대해 논의한 결과 “삼성이 커지고 있는데 대한 일부 단체의 비판을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국가 대표기업으로서 경제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중소기업과 어려운 이웃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사랑받는 기업이 되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오전 8시에 시작된 회의는 평소보다 30분 가량 늦은 10시가 다 돼서야 끝날 정도로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삼성이 사장단 회의에서 이같은 주제로 토의를 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독주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사장단이 허심탄회하게 듣고 단순히 ‘좋은 기업’에서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직접 논의해 보라.”고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이 회장은 지난달초 벌어진 ‘고대사태’ 이후 ‘지성의 요람인 대학마저 삼성에 굴복했다.’는 여론을 직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고민해볼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른바 ‘고대사태’와 ‘인재싹쓸이’ 등으로 악화된 ‘삼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보고서로 작성, 지난달 25일 사장단 회의에서 발표했다. 연구소는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며 인정하는 층도 있지만 ‘삼성의 힘이 과도하고 우수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경제硏서 긍정·부정적 시각 분석 특히 IMF이후 삼성과 다른 그룹과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삼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해석했다. 실제 삼성은 지난 97년과 비교할 때 10대그룹 내 매출 비중은 23.8%(75조 6000억원)에서 30.4%(135조 5000억원)로 늘어나고 순이익은 27.4%(1740억원)에서 34.8%(15조 7000억원)로 커졌다. 지난 1주일간 내외부 ‘채널’을 통해 삼성에 대한 여론을 자체적으로 본석해 본 사장들은 “삼성경계론을 의식해 그룹이 경영을 축소시키는 것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면서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 제안했다. 2시간에 걸친 ‘난상토론’끝에 사장단은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청취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다양화하고 사회공헌 활동과 협력업체·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더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친기업’ 여론이 절실하다며 사회의 ‘격려’도 부탁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경계론은 특별한 해법으로 풀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면서 “다른 그룹들이 분발해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면 삼성의 비중이 작아져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재계인사이드] 현대家 ‘사업 앙금’ 풀리나

    현대가 가족들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빈소에 모인 것을 계기로 굳어진 앙금이 이번에는 풀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먼저 MK(정몽구 현대차 회장)와 ‘포니 정’(정세영 회장 애칭)의 앙금이다. 비록 가는 길이지만 두 사람이 응어리를 어떤 식으로 풀지 의문이다. 두 사람의 앙금은 자동차를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왕회장이 그룹 후계자를 지목할 때도 포니 정은 몽헌 편을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 불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포니 정은 지난 99년 32년간 자신의 회사라고 생각하고 몸바쳐온 현대자동차를 ‘왕 회장’의 지시로 MK에게 넘겨줘야 했다. 평생 바쳐온 사업을 하루아침에 넘겨준 뒤 포니 정 부자는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놓고 반발하거나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의 회고록을 보면 포니 정 부자의 가슴에 응어리가 커졌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당히 부드러워 졌다고 측근들은 얘기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미국 출장 중 서둘러 귀국, 병원으로 직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MK는 23일 김동진 부회장, 최한영 사장 등 현대차 사장단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조의를 표한 뒤 상주인 사촌동생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위로했다. 그는 한동안 정 회장 옆에 서서 조문객들을 몸소 안내하기도 했다. 재계는 비록 포니 정이 살아있을 때 서운한 감정을 모두 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사촌(MK-정몽규)간 앙금을 털어버릴 것으로 내다봤다. 현정은 현대회장과 정상영 KCC명예회장과의 만남도 주목된다. 지난해 3월 현대-KCC간 경영권 분쟁이 종지부를 찍은 이후에도 공식적인 만남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포니 정의 장례절차 협의과정에서 양측이 서로 어떤 교감을 가질지 주목된다. 경영권 다툼의 악연을 떨쳐버릴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 공식적인 화해는 없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中·日관계 일순간 붕괴 우려”

    |도쿄 이춘규특파원|후진타오(胡錦濤) 중국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22일 중국을 방문 중인 일본 연립여당 간사장단 일행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을 거론하면서 “중·일 관계는 일순간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지도층의 최근 움직임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해 일본 지도층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 의사를 거듭 천명했다. 후 주석은 이날 다케베 쓰토무 자민당, 후유시바 데쓰조 공명당 간사장 등을 베이징(北京)에서 접견하면서 ▲일본 지도자에 의한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 ▲타이완 문제 등을 보고싶지 않은 움직임이라고 거론했다. tae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