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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그의 웃음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더 커지고 짙어진 것일까. 소박하게 꾸며진 사장실 문을 열면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적힌 액자가 첫눈에 들어온다. 사무실과 공장을 겸하고 있는 경기 일산 본사에서 지난 17일 만난 김원길(55) 바이네르 사장에게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며 넘어지고 일어나 달려온 40년을 들어봤다. -옷가지 몇 벌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영등포역에 내렸다. 처음 밟은 서울 땅.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2 새 학기의 시작에 들떠 있었을 1978년의 봄이었다. 당시 영등포는 사람과 상점, 공장, 유흥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번잡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겁이 났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이 탔다. 화장실에서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자, 이제부터 한 집 한 집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나서 보자. “제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 있는데요, 저 좀 써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땅거미가 내리고 전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와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퇴짜를 맞은 집이 스무 곳 가까이 되어갈 즈음, 문래동 쪽 허름한 구둣방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월급은 없이 하숙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기만 하는 조건이었지만 마다할 수가 없었다. -내 솜씨를 본 구둣방 주인은 좀 놀라는 눈치였다. 열일곱 살 먹은 ‘충청도 촌놈’치고는 실력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자 주인이 불렀다. “장마철이라 물건이 너무 안 팔린다. 더이상 널 먹이고 재워 줄 능력이 안 된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였다. -“구둣방에서 잘렸어요.” 몇 달 동안 하숙하며 친해진 룸메이트 형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내가 강원도 양양 출신이어서 잘 아는데, 설악산에 가면 일자리가 있을 거야.”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다음날 새벽같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 설악산. 몇 달 전 영등포 역전에서처럼 상점과 산장의 문을 한 집 한 집 두드렸다. 하지만 하숙집 형의 말과 현실은 달랐다. 서울로 돌아갈 차비는커녕 김밥 하나 사먹을 돈도 없는데 서늘한 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말할 요량으로 찾아간 산장에서 “방 청소하고 손님들 가방 들어 주면 한 달에 5만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당시 설악산은 신혼여행이 피크였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 주자 팁이란 걸 주는데, 한 번에 2000~3000원은 기본이었다. 새로운 삶의 희망에 들뜬 신혼부부들은 일반 등산객들보다 손이 컸다. 지배인이 보는 데서 받은 팁은 도로 토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팁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팁에 맛을 들인 나는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갔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해야 더 많은 팁을, 그리고 지배인이 안 보는 데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갔다. 한 달이 지나자 다락방에 몰래 감추고 벽돌로 눌러놓았던 팁이 50만원으로 불어났다. 월급의 10배였다. 그 돈을 들고 나는 미련 없이 설악산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1961년 충남 당진에서 5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났는데, 가족이 의지할 거라곤 손바닥만 한 논 몇 마지기가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허약한 형을 대신해 풀 베고, 땔감 구하고, 논에서 피 뽑는 노동의 무게를 다 짊어져야 했다. 그 보상일까. 초등학교까지만 보낸 형, 누나와 달리 아버지는 나를 중학교에 넣어주셨다. 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수시로 학업 중단의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저…학교에서…100원만 가져오래요.” 집안 사정 뻔한데 차마 말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진작에 얘기했으면 좀 더 일찍 알아봤을 것 아니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어머니의 긴긴밤 잠 못 드는 괴로움만 더 깊어졌을 거란 사실을. 풀이 죽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집을 나서곤 했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1977년 2월 중학교 졸업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중학교 3년이 나에게 보장된 최후의 학업이란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던 터라 고등학교 진학 얘기는 아버지도 나도 꺼내지 않았다. “원길이는 내 밑에서 구두 기술 배워라.” 서산 읍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시던 작은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 지게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조카의 손재주를 익히 알고 있던 작은아버지였다. 하지만 ‘좁은 곳’에서 평생을 ‘족(足)쟁이’로 썩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넓은 곳’을 찾아 경기 고양군 지축면(현재의 지축동)의 분재농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한 달 1만원을 받아서는 내 한 몸 먹고 자기에도 빠듯했다. 슬슬 염증이 났다. -“돈 번다고 올라가더니 사는 게 그리 만만하더냐.” 그해 9월 추석에 집에 와서 작은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가게로 와라. 이 기술 하나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 -서산 구둣방에서 처음 배운 것은 가죽과 밑창이 단단히 붙도록 망치질을 하고, 접착면에 ‘뻬빠질’(사포질)을 하는 일이었다. “역시, 원길이 손재주는 대단하구나.” 남들이 1년을 해도 떼지 못한다는 남성용 구두 제작 전 공정을 나는 5개월 만에 마쳤다. “그 재주로 시골에 있긴 아깝다.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우거라.” 동료 아저씨들의 말이 몇 번 반복되자 마음이 흔들렸다. 작은아버지는 나의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쥐여주신 차비를 들고 나는 1978년 그 봄에 영등포역 가는 기차를 탔던 것이다. -설악산에서 번 55만원으로 경기 성남 상대원동에 월셋집을 얻고 서울 중곡동 어린이대공원 근처 구두 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제화업계의 판도는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케리부룩의 순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케리부룩에 납품하던 참스제화였다. 본격적으로 여성용 구두 만들기를 익혔는데, 얼마 후 나는 참스제화 안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됐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즈음 케리부룩에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1983년 9월 스물두 살 때였다. -‘생산라인에 있으면 신발을 20켤레 만들 수 있지만 관리자가 되면 2000켤레, 2만 켤레의 생산을 직접 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더 큰 것’, ‘더 높은 곳’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나를 믿고 부른 케리부룩 김정현 사장님에게 ‘생산직’이 아닌 ‘관리직’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사장님은 원했지만 주변에서 말들이 나왔다. ‘생산관리를 고작 중졸 출신에게 맡기다니’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관리직의 문들 두드렸고, 얼마 후 포장반에 배치됐다. 구두에 상표를 붙여 사각 박스에 담는 단순노동을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관리직이라는 이름표를 갖고 있는 부서였다. 생산라인에 있을 때 100만원이던 월급이 포장반으로 오니 20만원으로 깎였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계산은 적중했다. 몇 달 후 완제품을 최종 검사하는 검수반으로 옮겼다. ‘완벽한 제품’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깐깐하게 검사를 했다. 어느 날 공장 기술자 100여명이 “우리를 괴롭히는 김원길을 자르라”고 대놓고 사장님에게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를 지지했다.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걸 마다할 사장이 어디 있겠나. 나는 ‘시키지 않은 짓’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다. 시장 조사였는데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 경쟁제품 중에 잘 팔리는 건 어떤 게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했다. -1989년 인천백화점에서 우리 케리부룩 매장을 퇴출시키겠다고 통보해 왔다. 내가 영업관리를 하며 어렵게 입점을 성사시킨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월 매출이 600만원으로 다른 업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 시간을 한 달만 더 달라고 했다. ‘저 많은 걸 나 혼자선 절대로 못 판다. 고객의 입소문을 통해 팔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값 특가 세일과 동시에 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케리부룩 CM송 부르시면 구두를 그냥 드립니다.” 당시 ‘허리를 미끈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으면~ 케리부룩 케리부룩 예쁘게 걸어요~’라는 우리 TV CM송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달 매출이 1억 1000만원으로 거의 20배가 됐다. 그걸 계기로 뉴코아, 롯데, 신세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속속 입점을 했고 나는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에 대한 시기와 모함도 커져 갔다. ‘사장이 되려고 한다’, ‘회삿돈을 제 맘대로 쓴다’ 악성 루머가 사내에 돌았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분노를 하니 더이상은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다. -1990년 사표를 던졌다. 언젠가는 예정됐던 일,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케리부룩 퇴직금 280만원과 사장님이 별도로 챙겨주신 200만원을 밑천으로 서울 용산에 선심(구두의 앞코에 들어가는 부속) 제조회사를 차렸다. 간판은 ‘원길’로 내걸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는데 돈이 안 들어왔다. 못 받은 외상값이 2000만원이 넘어갔고, 빚이 쌓여 갔다. 답답한 마음에 전에 거래했던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바이어를 만났다. “아이고, 김 대리 회사 관두고 나서 케리부룩 엉망 됐어요.” 케리부룩 김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롯데백화점에 물건 한 트럭 보내주세요. 제가 팔아볼게요.” 매출의 10%가 내 몫이었다. -“사장님, 제가 직접 구두 만들어서 케리부룩 상표 붙여 팔겠습니다.” 다시 기세가 오른 나는 케리부룩에 로열티를 주고 하청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는 이번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1993년 케리부룩 대표가 된 전문경영인이 케리부룩 상품권을 헐값에 불법 발행해 구속이 됐고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상품권들은 휴지조각이 됐고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구두와 빚더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 됐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하지만, 20대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씩씩하게 출근을 했던 나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어떤 고마운 분이 급전을 융통해 줘서 최종 도산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이름을 ‘안토니’로 바꾸고 그럭저럭 구두회사를 꾸려가고 있던 1994년 뜻하지 않은 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구두 박람회 ‘미캄’에 갔는데 바이네르의 컴포트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나와 한국 독점판매 계약을 맺자”고 했다. 당시 바이네르는 하루 1만 2000켤레를 생산하는 대형 업체였다. 한국 수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렵사리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국내에서 바이네르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주문을 넣고 제품을 받기까지 무려 석 달이나 소요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직접 생산이 절실해졌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주는 구두 기술자다. 바이네르 상표를 붙여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면 안 되겠나. 바이네르의 명성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들을 꼬박 6개월을 설득했다. 나의 한결같은 노력은 바이네르 회장을 감동시켰고, 결국 나는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하루 50켤레씩 컴포트화 생산을 시작했다. -바이네르로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졌다. 나를 아껴주었던 이탈리아 본사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분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회계사 출신인 그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는데, 로얄티를 이 정도 밖에 안 내나.’, ‘이탈리아 본사에서 수입해 가는 물량을 더 늘려라.’ 아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바이네르와의 결별을 준비했다. 광고도 바이네르의 비중을 줄이고 우리 자체 브랜드인 안토니에 집중했다. 그런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은 특히 충격이 컸다. 거기에서 바이네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바이네르는 당시 유럽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나는 이탈리아로 가서 아들을 만났다. “너희들 자금난이 심각하다는데, 내가 지원을 해줄 테니 바이네르 브랜드를 나에게 팔아라.” 그들은 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 이탈리아에 바이네르 공장이 10군데 정도 있는데 그들이 쓰는 브랜드 상표권은 내가 갖고 있다. -바이네르 신발이 편안한 비결이 뭐냐고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러면 나는 “고객의 마음은 당신이 그 질문을 하는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고객은 항상 더 예쁘고, 더 편안한 구두를 찾는다. 그걸 떠올리면 절대로 연구개발(R&D)을 게을리하거나,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고객은 혹시 한 번은 몰라도 절대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를 통해 연간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업계 3위 바이네르의 최고경영자(CEO)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구두 분야의 장인(匠人)으로, 특히 ‘중졸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바이네르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국 60여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던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안토니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골프 꿈나무에게 연간 2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수도권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박애원, 벧엘의집 등 수많은 복지시설에 물품을 보내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급여를 보장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다양한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61년 충남 당진 출생 ▲당진 도성초등학교, 미호중학교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수상 ▲1994년 안토니 설립 ▲2008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 2012년 철탑산업훈장,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수상
  • 대법 야쿠르트 아줌마 판결에 뿔난 넷심 “앞으로 사장님이라 불러라”

    대법 야쿠르트 아줌마 판결에 뿔난 넷심 “앞으로 사장님이라 불러라”

    대법원이 ‘야쿠르트 아줌마’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위탁계약을 맺고 독자적으로 일하는 개인 판매사업자라는 이유에서다. 24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한국야구르트 위탁판매원 출신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지급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위탁판매원은 근로자가 아니므로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전국적으로 1만3000여명에 달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여전히 노동권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티즌들은 이같은 판결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포털사이트 댓글란에는 “앞으로 야쿠르트 아주머니 보면 사장님이라고 불러라(zzan****)”, “이럴거 같으면 정부가 왜 필요하냐? 국민 다 개인플레이 하라는데. 아침엔 가습기로 허파 뒤집더니 오후엔 또 별(lazk****)”, “한국클라스 (mon_****)”, “대법원 판사님들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개인사업자 취급하여 그분들을 사장님이라고 부르시나요?(jaca***)”, “이제 야쿠르트아줌마랑 직거래하겠습니다(jusu****)”, “어떤이가 법은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했냐? 법이 약자를 위해 도움을 줬다는 기사는 한번을 볼수가 없네.(reto****)” 등의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근현대 유통 핵심지 종로5가…111년 패션 1번지 광장시장…상인정신 숨쉬는 방산·중부시장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근현대 유통 핵심지 종로5가…111년 패션 1번지 광장시장…상인정신 숨쉬는 방산·중부시장

    서울미래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미래유산의 유형은 문화적 인공물, 문화적 행위·이야기, 배경으로 구분된다. 문화적 인공물에는 토목구조물, 건축물과 같은 건조물, 그림, 조각, 공예품, 공산품 등이 포함된다. 문화적 행위·이야기는 의식이나 기술, 전통과 명성, 이야깃거리 같은 무형 유산을 의미한다. 배경은 문화적 인공물이나 문화적 행위, 이야기 등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특색 있는 장소나 경관이 포함된다. 미래유산 선정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보존이 필요한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미래유산에 대한 보존과 홍보를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앞으로 남은 답사 코스를 확인할 수 있고 참가 신청도 가능하다. “전국에 전통시장이 몇 곳인지 아시는 분?” 이희준(29) 전통시장해설사이자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질문을 던졌다. 답사에 나온 시민들은 어림짐작으로 답해 보지만 정답 근처도 못 갔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1398개의 전통시장이 있고 그중 330여개의 시장이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시장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선사시대 제전시가 열렸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시장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 네 번째 시간은 서울의 전통시장인 광장, 방산, 중부시장이 주인공이었다. 20대인 이 해설사는 전국 전통시장 798곳의 방문기록을 가진 ‘시장덕후’이다. 이 해설사는 MBC 생활정보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저녁’에서 전국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시장 전문가다. 얼마 전에는 구로시장 영프라자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파는 방앗간 ‘청춘주유소’를 개업한 청년창업가이기도 하다. 설명은 50대 아저씨처럼 구수하게 술술 풀어간다. 광장시장은 서울 전통시장 1호…동문 옆 신발점은 미래유산 지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은 어디일까요?” 이 해설사는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이날도 답사 내내 다양한 질문으로 시민들을 긴장(?)시키면서 전통시장 매력에 푹 빠져들게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2년(490년) 오늘날 경주 지역에 국가에서 직접 설치한 시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제 가요 ‘정읍사’에도 시장의 존재를 짐작게 하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7번 출구에 모인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단은 이곳에서 시장의 역사에 대해 선행학습을 하고 시장답사에 나섰다. 시장답사라서 그런지 앞선 답사 때보다 중년 여성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해설사의 설명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조선 초 1414년 경복궁 앞 시전에 무려 2827개 가게가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한성부조’에 남아 있는데 이를 운종가라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에 지금 남대문시장 자리에는 ‘칠패시장’이, 동대문시장 자리에는 ‘이현시장’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운종가는 지금의 광화문과 종로1가 인근을 말하는데 조선 왕조가 허용한 유일한 공식 시장 ‘육의전’이 있던 곳이고 칠패시장이나 이현시장은 이른바 ‘난장’이다. 답사팀은 광장시장 동문을 통해 시장으로 들어갔다. 동문 입구 옆에는 상호명이 서울고무상사(프로월드컵)인 신발가게가 있다. 1955년 개업해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60년 동안 신발가게로 한자리를 지켜온 이유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광장시장은 이현시장 후신으로 1905년 한성부에 등록된 서울 공식 전통시장 제1호이면서 최초의 사설시장이다. 청계천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어서 광장(廣長)시장으로 불렸다. 1905년 7월에는 동대문시장으로 이름을 확정했다가 나중에는 ‘넓게 저장한다’는 의미의 광장(廣藏)으로 정해졌다. 서울미래유산은 아니지만 문화재적 가치는 그 이상이다. 답사팀은 광장시장의 광장(廣場)에 모였다. 이곳은 먹거리 구간을 지나 견과물 구간에서 좌회전해서 포목부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시장의 중심이다. 포목을 사러오지 않는 이상 이 공간을 접해 보기 힘들다. 답사단은 광장에 다다르자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경윤(55·나눔마켓 대표)씨는 “지금껏 광장시장 하면 빈대떡이나 육회 같은 먹거리만 떠올렸지 이런 곳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포목부를 지나면서 이 해설사가 “뭔가 이상한 간판이 있을 것”이라며 궁금증을 유발했다. 주변을 살피자 포목점 간판들 사이에 ‘장안백화점’이란 간판이 낯설다. 이 해설사는 “과거 백화점들이 별도 건물을 짓는 대신 상권이 발달돼 있는 시장에 ‘숍인숍’(가게 안에 또 다른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 형태로 들어온 흔적”이라며 “지금도 수원 남문시장(글로벌명품시장, 팔달문시장 주변 9개시장 연합) 중 하나인 영동시장에는 영동백화점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섭(47·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씨는 “전통시장 안에 백화점이 있었다는 것도, 그 백화점이 지금은 초라하게 변한 것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예전의 화려함이나 생기는 잦아들었지만, 그럼에도 전통시장은 그 나름대로 멋이 있다”고 말했다. 성은도서 서울미래유산 후보감…예지동 시계골목 보존가치 높아 광장에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도 포목상점과 한복점들이 즐비하다. 구석진 상가 몇 곳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해설사는 “주인들이 고령화되면서 가업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점포”라며 “저곳에 청년들이 들어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중앙직물부 2층에 가면 ‘성은도서’라는 세 평 남짓한 허름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40년 넘게 패션 디자이너와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수입 패션도서를 공급하고 있는 곳이다. 사장님은 “작고한 앙드레 김도 단골이었다”며 “유명 패션디자이너 중 이곳을 거쳐 가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층 한쪽에는 저렴함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입 구제상가도 있다.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관은 “시장 답사를 통해 아주 오래간만에 전통시장의 정을 느끼고 왔다”며 “광장시장의 떡볶이 먹으러 꼭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답사지인 방산시장을 가기 위해 예지동 시계골목을 지났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옛 풍경을 간직한 골목이다. 고급 손목시계를 고치기 위해 일부러 외국서 찾아오는 곳이다. 시계태엽을 직접 깎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도 활동 중이다. 이 해설사는 “대부분 시계공들과 장인들이 예지동을 벗어나 인근 세운상가와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며 “세계 어느 장인보다도 월등히 우수한 이들의 숙련된 기술과 시계 골목의 역사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방산시장은 1976년 9월 폐교된 방산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방산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청계천에서 떠내려온 부산물과 흙이 쌓여 있던 걸 퍼 올려 산처럼 쌓아 놓았다고 해서 가산 또는 방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분뇨가 많이 쌓이자 향기로 덮기 위해 꽃을 심은 데서 유래한다. 방산시장의 주력 상품은 얼마 전까지 초콜릿과 제과제빵 재료였다가 지금은 공교롭게도 향수와 디퓨저다. 방산시장 이름과 어울리는 품목이 자리잡은 셈이다. 방산시장을 둘러보다가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적산가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다. 시장 인접에는 김치찌개가 유명한 은주정이란 밥집이 있다. 답사단은 이날 은주정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은주정은 문턱이 없어 이동장애를 가진 이경윤씨의 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광장시장·방산시장·중부시장…모두 후대를 위해 보존할 곳 답사단은 서울미래유산인 중부시장을 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이 시장은 1950년대 후반 남대문과 동대문 인근에서 건어물을 팔던 상인들이 모여 만든 시장이다. 개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개소식에 참석할 정도로 시장 규모와 거래액이 상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해설사가 답사단을 이끈 곳은 50년간 황태 등 건어물을 판매하는 서울상회다. 정문교 사장은 개성 있는 필체로 갖가지 교훈이 되는 글을 써서 점포 밖에 걸어 뒀다. ‘정직·정확·정성’이란 상훈(商訓)도 써붙여 놨다. 정 사장은 이날도 성경을 붓글씨로 필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 사장은 “장사는 모름지기 신용이고 사람은 됨됨이가 중요하다”며 답사단에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몇 마디 건넸다. 답사단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중부시장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서쪽 끝이다. ‘오신 손님 친절하게 소비자를 보호합시다’라는 오래된 간판이 보이고 회랑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서 있다. 이 해설사는 “시장은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른 것처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시장의 역사와 상인들의 이야기, 특화된 상품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시장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마무리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블랙핑크 ‘인기가요’, 최단기 지상파 1위 “사장님 데뷔 시켜주셔서 감사하다”

    블랙핑크 ‘인기가요’, 최단기 지상파 1위 “사장님 데뷔 시켜주셔서 감사하다”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식이 화제다. 블랙핑크는 21일 오후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더블 타이틀곡 중 한 곡인 ‘휘파람’으로 데뷔 후 첫 1위를 차지했다. 블랙핑크는 인기가요 1위 후 “낳아주신 부모님들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블랙핑크 멤버들은 “양현석 사장님 데뷔 시켜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곡 주신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블랙핑크는 21일 오전 10시 기준, 데뷔 곡 ‘휘파람’으로 멜론 올레뮤직 네이버뮤직 엠넷닷컴 벅스 소리바다 몽키3 등 국내 주요 음악 사이트 7곳의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 중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감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 특별한 인연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감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 특별한 인연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감이 화제다. 21일 오후 블랙핑크 SNS에는 블랙핑크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 속 블랙핑크 멤버들은 “안녕하세요. 저희 1위 했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며 ‘인기가요’ 1위 소감을 전했다. 이날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블랙핑크는 1위를 차지였다. 첫 1위를 한 블랙핑크 멤버들은 “양현석 사장님 데뷔시켜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곡 주신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블랙핑크는 21일 오후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아이오아이를 제치고 데뷔곡 ‘휘파람’으로 데뷔 후 첫 1위를 거머쥐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씨줄날줄] 올림픽 & ‘캔두이즘’/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올림픽 & ‘캔두이즘’/구본영 논설고문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임을 리우올림픽에서 거듭 실감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기적을 만들면서다. 그제 여자 태권도 49㎏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소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랬다. 올림픽에 46㎏급이 없어 체급을 올려 출전한 그녀였다.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선수들을 ‘극복’하는 장면이 안쓰러우면서도 장했다. “우리 엄마는 김밥집 사장님”이라며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나 “‘응답하라 1988’의 박보검이 이상형”이라고 밝히는 신세대다운 솔직함도 보기 좋았다. 다만 이런 시시콜콜한 뒷얘기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녀의 멘트가 가슴에 더 와 닿았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 여자이니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평범한 문구에 ‘필이 꽂힌’ 것은 며칠 전 펜싱 에페에서 청년 박상영의 투혼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13대9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혼잣말 주문과 함께 일군 기적의 역전극이 세계적 화제를 모았지 않았나. 이들의 근성과 “해낼 수 있다”는 ‘캔두이즘’(Can-doism)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다만,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일말의 자괴감도 든다. 청년 세대가 희망을 갖고 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말이다.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를 맞아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 구하기는 바늘구멍이란다. 해외 연수나 각종 자격증 등 청년들이 쌓은 스펙은 단군 이래 최고라는데…. 통계청의 5월 경제활동인구 통계에 따르면 청년 취업준비생 65만여명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 25만 6000명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민간 영역보다 안정적인 공직을 택하려는 추세를 반영한다. 이들에게 “왜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려 하느냐”고 ‘꼰대’ 같은 충고를 하기도 어렵다. 어른 세대가 1960년대 이래 ‘캔두이즘’으로 경제 기적을 일궜다지만, 개발 연대가 막을 내린 1990년대 이후 ‘고용 없는 성장’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도 무겁다. 까닭에 ‘헬조선’이라는 청년 세대의 자조 어린 유행어가 일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우리는 2차대전 이후 산업화·민주화를 함께 일군 보기 드문 나라다. 우리 사회는 소득 양극화 등 아직 많은 문제가 있지만, 대한민국이 지옥이라면 지구촌에서 지옥이 아닌 곳이 몇 군데일까. 여야를 떠나 정치 지도자들부터 공동체에 대한 청년들의 자학을 부추겨선 안 될 이유다. 초년병 스포츠 기자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우승했던 손기정옹을 단독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낡은 스크랩을 뒤져 보니 “식민지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달리고 또 달리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 비록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오늘의 청년들이 거친 근대사의 격랑 속에 우리에게 체화된 캔두이즘의 DNA(유전자)만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힛더스테이지 필독, 로맨틱+섹시 ‘극과 극’ 반전 무대(영상)

    힛더스테이지 필독, 로맨틱+섹시 ‘극과 극’ 반전 무대(영상)

    빅스타의 리더 필독(25)이 자신의 크루인 필크러쉬 멤버들과 스토리 있는 무대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17일 오후 11시 방송된 케이블 채널 Mnet ‘힛 더 스테이지’ 3회는 ‘디스 러브(This Love)’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필독과 필크러쉬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생각 차이’를 콘셉트로 무대를 꾸몄다. 이날 필독은 프로그램 출연 각오로 “제가 가수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목숨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사장님(용감한 형제)에게 어필하고 싶다. 잘돼서 빨리 컴백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필독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할 시 용감한 형제가 앨범 2개를 내주기로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필독의 춤에는 그런 각오가 절실하게 묻어났다. 한눈에 스토리가 느껴지는 퍼포먼스 구성과 섹시하면서도 유쾌한 매력이 묻어나는 필독의 춤이 인상 깊었다. 판정단 역시 유례없을 정도로 호평을 쏟아냈다. 안무가 배윤정은 “20대 남자에 설레기 참 쉽지 않은데..”라며 설렘을 드러냈다. 구준엽도 “사실 필독 씨를 잘 몰랐는데 오늘 너무 기억에 남을 듯 싶다. 제 동생하고 싶다”라며 극찬했다. 제이하트는 “저와 예전에 무대서 호흡을 맞췄던 친구다. 분명한 건 기량을 100% 다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다”고 말해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필독은 15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호야-최효진 팀이 161점을 받아 8팀 중 최종 1위에 오르며 2위에 만족해야 했다. ‘힛 더 스테이지’는 케이팝 스타와 전문 댄서가 한 팀을 이뤄 퍼포먼스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11시 Mnet에서 방송된다. 사진=Mnet ‘힛더스테이지’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허정민, 문차일드 해체 입 열다 “매니저가 멤버들 가지고 장난”

    허정민, 문차일드 해체 입 열다 “매니저가 멤버들 가지고 장난”

    문차일드로 데뷔해 배우로 입지를 굳힌 허정민이 해체에 대해 입을 열었다. 27일 bnt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허정민의 화보와 인터뷰를 공개했다. 탱탱 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허정민은 총 3가지 콘셉트로 그 동안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만의 색을 내보였다. 첫 번째 콘셉트로 린넨 소재의 7부 셔츠와 아이스 진으로 청량감과 실용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두 번째 콘셉트에서는 비비드 컬러의 버티컬 라인의 셔츠와 하트자수가 포인트로 들어간 화이트 5부 팬츠로 옆집 오빠같은 귀여운 보이프렌드룩을 완성했고 이어진 촬영에서는 차이나넥 포인트로 완성된 셔츠와 캐주얼한 슬렉스로 과하지 않은 멋스러움을 표현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허정민은 아역 배우에서 문차일드 멤버가 된 이유를 묻자 “문차일드 멤버는 우연히 됐다. 매니저가 연락와 시작했다”며 “기획사 대표가 연기자로 승승장구하게 활동시켜준다고 하여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문차일드의 탈퇴에 대해 묻자 “탈퇴가 아니다. 매니저가 중간에서 멤버들을 가지고 장난쳤다. 그때 매니저를 따라간 멤버가 ‘엠씨더맥스’가 됐다. 나는 사장님과 계약이 됐었다”며 “사이가 안 좋아서가 아니고 어른들의 장난 때문에 그렇게 됐다. 가수가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 잘 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청년 사장님의 꿈, 광진구에선 이루어진다

    청년 사장님의 꿈, 광진구에선 이루어진다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흐르면서 국내 기업의 고용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취업의 대안으로 청년 창업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청년들은 참신한 아이템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창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경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꿈을 펼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울 광진구가 청년 창업의 A~Z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는 ‘2016 광진 청년창업아카데미’를 준비했다. 교육은 오는 25일부터 8월 12일까지 주 3회, 모두 27시간 동안 건국대 창의관에서 진행된다. 아카데미 내용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 위주로 구성됐으며, 3개 교육과정에 모두 9개 강좌다. 1주차에는 창업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창업의 흐름’, ‘창업기업의 자금확보 방안’ 등 창업을 위한 기초 다지기로 꾸몄다. 2주차는 ‘요식업의 이해’, ‘기술창업의 이해’로 분야별로 접근하는 체계적인 수업이, 마지막 3주차는 ‘창업역량 강화’에 대한 강의로 모든 과정이 끝난다. 이번 청년창업아카데미 교육 대상은 창업에 관심 있는 지역 내 청년과 1년 미만 초기 창업자 가운데 선정된 30명에게 교육을 진행하며 모든 교재와 교육비는 무료다. 또 교육을 수료한 청년은 건국대 BI(Business Incubator)공간에 입주를 신청할 때 가산점이 부여되고, 일반인 실전창업 강좌 수강 기회도 얻게 된다. 구는 올해 더 많은 예비 청년창업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9~10월 중 한 번 더 창업포럼을 열 예정이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예비 청년창업자들에게 꼭 필요한 관련지식과 현장 중심의 창업 실습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면서 “앞으로 청년들이 마음 놓고 창업할 수 있도록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경제 블로그] 대출이자 한 달 면제…저축銀에 몰린 사장들

    [경제 블로그] 대출이자 한 달 면제…저축銀에 몰린 사장들

    저축은행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급전을 융통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중소기업 사장들입니다. 올 상반기에 ‘대출 이자 한 달 무이자’ 이벤트를 진행했던 OK저축은행 얘깁니다. ●신규 고객 확보 공격 경영에 뜻밖 호응 OK저축은행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모든 대출상품 이자를 한 달간 면제해 줬습니다. 신규 고객 확보 차원에서 벌인 단발성 이벤트였습니다. OK저축은행은 예주·예나래 저축은행을 인수해 2014년 7월 출범했습니다. 출범 당시 총자산 4000억원 규모였지만 출범 1년 반 만에 업계 2위(총자산 2조 6000억원)로 급성장했습니다. ●석달간 중기 553곳서 850억 빌려가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러시앤캐시) 회장의 공격적인 영업전략 덕분이었죠. 한 달 이자 면제 이벤트도 최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다. 올해 3월부터 법정 최고 금리가 연 34.9%에서 27.9%로 내려가며 저축은행들도 수익률 타격이 불가피했죠. 이에 OK저축은행은 ‘박리다매’로 정면돌파 전략을 택했습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은 고객을 확보하고 보자는 계산이었지요. OK저축은행 관계자는 “통상 서너 달 기간으로 급전을 융통하는 개인 고객들이 많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벤트가 시작되자 중소기업 사장들이 줄지어 찾아왔다고 합니다. 대개 중소기업 사장들은 거래처 납품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자금 흐름이 일시적으로 막히면 고금리 카드론이나 사채를 이용하곤 합니다. 이벤트 기간인 석 달 동안 중소기업 553곳이 850억원을 빌려 갔다네요. 1억원을 카드론으로 한 달만 빌려 써도 200만원가량 이자가 나갑니다. 영세한 중소기업들에겐 종업원 한 명의 한 달치 월급이 절약되는 셈입니다. ●지금도 절절한 감사 편지 보내오기도 한 푼이 아쉬운 중소기업 사장들이 한 달 무이자 이벤트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인 것이지요. 지금까지도 절절한 사연의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사장님이 있다고 합니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아직까지도 저축은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습니다. 중소기업과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본래 설립 취지를 돌이켜 보며 잃어버린 정체성 회복에 업권이 다 함께 노력할 때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新전원일기] 年매출 14억, 직업 5개…블루베리 키워 보랏빛 슈퍼맨

    [新전원일기] 年매출 14억, 직업 5개…블루베리 키워 보랏빛 슈퍼맨

    방황이 힘이다. 괴테는 그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방황은 살아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서른에 이를 때까지 방황했던 시절이 가장 후회스러웠다는 ‘모닝팜’의 양재영(56) 대표. 사실 청춘의 시절, 방황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눈앞의 길이 내가 꿈꾸었던 길인지, 주어진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괴테의 말 그대로 방황은 양 대표에게 분명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10년 가까운 방황의 강을 건너 블루베리를 만나면서 이제는 슈퍼맨이 되었으니까. # ‘슈퍼 푸드’ 블루베리를 사랑하는 남자 “이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겁니다. 블루베리를 완숙기에 수확할 경우 안토시아닌이 풍부해진다는 걸요. 안토시아닌은 특히 미세먼지로 인해 몸속에 생성된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혈액을 맑게 해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는 과일로 알려져 있죠. 한 마디로 면역력을 높여주는 과일인 겁니다.” 블루베리와 살고 블루베리를 먹고 블루베리만 생각해서 그런 걸까. 양 대표의 얼굴은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로 동안이었다. 희끗한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면 40대 초반이나 30대 후반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블루베리가 우리나라에 정착하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 전인 2004년이었다. 블루베리로 상거래가 시작된 것도 2005년의 일이다. 하지만 블루베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의 비행기 조종사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특히 시력이 좋았다는데 그 이유를 조사하다 보니 다른 것보다 블루베리를 특히 많이 먹어서였다고 한다. # 비즈니스맨 시절 100만불 수출탑 받기도 양 대표는 충북 제천 출신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영월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많은 인재들이 공업고에 입학해 졸업과 동시에 산업 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운명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장남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올림픽이 끝났을 무렵이었죠. 좀 아이러니이지만 카운슬러가 하고 싶은 거예요. 주변의 만류를 다 뿌리치고 일본 고베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입학했죠.” 6년간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후에도 마음의 방황을 끝내지 못하고 그는 영어 연수를 위해 곧바로 호주로 갔다. “돌아와 보니 그때 제 나이가 서른 가까웠어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장가를 갔고 직장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생활하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았어요. 저도 일을 하고 싶었죠.” 호주에서 돌아온 그는 1년 가까이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수입하는 일을 했다. 결국 공고 졸업이나 심리학과 졸업, 호주로의 영어 연수 등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일을 시작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주머니에 든 200만원으로 조카 사무실 귀퉁이에 회사를 차렸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알게 된 지인이 감귤을 수입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반 삼아 농산물을 수출하는 일이 어쩌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심정으로 창업했다. 그게 1998년 3월의 일이었다. 매일 코트라(KOTRA) 잡지 등을 보면서 3개월 동안 준비했고 ‘이지토마토’라는 상호로 출발했다. 그런데 수출이 되어도 너무 잘됐다. 사무실을 개업한 첫해에만 20억원 매출을 올려 더럭 겁이 났다. 당시 샐러리맨의 평균 월 급여가 3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그 후 앞뒤를 재거나 가리지 않고 일만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100만불 수출탑’도 받았다. 주로 일본에 수출했고 일본에 선별장까지 빌려서 한국의 토마토를 일본에 팔았다. 감귤, 토마토, 오이 등 판매할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그 과정을 통해 한국 농산물은 외국 농산물에 비해 경쟁력이 약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 시절 그에겐 우리 농산물이 어떡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는 자신과 인연이 닿은 농부들과 함께 일본 견학을 자주 다녔다. 견학 다니고 일본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농부들은 자신의 농산물에 대한 애착도 강해졌고 생산자와 판매자의 고충을 해결해야 하는 양 대표의 사정도 이해하게 됐다. “양 사장님, 내가 시골에서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는데 양 사장 덕에 일본까지 오고 일본 시장에 내 토마토가 팔리는 걸 보니까 마음이 뿌듯하네요. 농사를 지어서 국제적으로 교류까지 하게 되리라곤 생각해 본 적 없네요. 고마워요.” 전북 남원의 뱀사골 부근에서 방울토마토를 생산했던 농부였다. 그의 말 그대로 그들의 세계도 넓어졌고, 제품의 생산에도 더 각별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 무렵 양 대표는 신성한 노동에 대한, 진정한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일로서 농산물 수출업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그러니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농산물중개사 일을 미련 없이 접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 보라색 진주… 블루베리 첫 매출은 500만원 그는 2003년 블루베리 생산을 결심하고 전북 정읍 영원면에 정착했다. 2004년 블루베리를 심을 임야를 장만하고 그곳에 2년 된 블루베리 묘목을 심었다. 그렇게 시작해 2007년 처음으로 블루베리 생산을 통해 첫 매출 500만원을 올렸다.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농산물 수출중개사로 일할 때에 비하면 몹시 적은 금액의 매출액이지만 그는 자신이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은 블루베리로만 3t 정도 생산해 5억원 정도의 매출이 나오고, 나머지는 잼과 식초 그리고 즙 등 가공품도 만들고 다른 모종들 수출 중계도 하고 있죠.” 그의 지난해 매출액은 14억원 수준이었다. “저는 투잡이 아니라 파이브잡입니다.” 그를 슈퍼맨이라 생각한 근본적인 연유였다. 마이스터대 주임교수, 한국 농수산대학 현장 교수, 블루베리 생산, 토마토 모종 중개업, 농장 한쪽에 마련한 교육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강의와 교육, 체험학습 강의 등등. 매년 3000여명이 체험과 교육 등의 목적으로 다녀가고 유통업체나 연구기관 등 100여곳이 다녀가고 있다. 그는 지금 ‘모닝팜’을 블루베리 생산의 교과서로 만들자는 각오로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 터 잡을 때는 7000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3만평으로 블루베리 농장 단일 면적으로 국내 최대 크기라 한다. # 블루베리를 딸기처럼 성공한 귀농은 지역 사람들과의 소통과 융화도 중요하지만 배우자의 절대적 지지 또한 필요하다. 양 대표의 부인인 국중순(52)씨는 서울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서울 생활을 접고 양 대표를 따라 정읍에 내려와 같이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있다. “블루베리는 가공품으로 생산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어요.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과자며 빵 그리고 잼에서 와인은 물론 식초까지, 무궁무진하죠. 미국 블루베리 농장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생산하는 가공품 종류만 100종이 넘더라고요.” 최근 그는 블루베리 품종 중에 ‘래빗아이’ 품종에 주목하고 있다. 토끼눈을 닮아 ‘래빗아이’라고 불리는 이 블루베리는 수확량이나 수확 기간이 일반 블루베리보다 두 배 이상 길어 일손이 부족한 농가와 고소득을 원하는 농가에서 재배하기 적합하다고 말한다. “블루베리는 사람이 일일이 따주어야 상처가 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과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생산이 시작되는 계절에는 인건비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거죠.” 그가 래빗아이에 주목하고 한국의 블루베리 농장에 보급하려는 이유도 그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아직은 블루베리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그런데 딸기가 이 땅에 보급되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딸기가 처음 나올 때 너무 비싸서 쉽게 사 먹을 수 없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잖아요. 블루베리도 머잖아 딸기처럼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소비자를 확보하고 블루베리를 알리고 생산만의 농업에서 벗어나 체험과 관광까지 연계된 6차산업으로의 확장을 위해 ‘모닝팜’도 준비를 해두었다. “가까운 곳에 폐교가 된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캠핑장을 운영하고, 전통장도 담고, 발효연구소를 운영하는 분이 계세요. 영원면 농특산물홍보위원회가 있는데 나도 거기 위원이고 그분이 회장이죠. 저희 농장과 연계해서 농장에 와서 블루베리 수확 체험도 하고 발효연구소에서 캠핑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 사람이 일일이 따는 한국형 블루베리로 승부 머잖아 외국의 대형 농장에서 블루베리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국산 블루베리가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미국의 블루베리 농장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우리는 손으로 과일을 따는데 그들은 블루베리만 전문적으로 따는 기계로 나무를 털어서 따더라고요. 농장 규모가 워낙 크니까요. 그런 블루베리와 우리 블루베리가 경쟁이 될까요. 사실 경쟁 상대가 안 되죠. 만약 있다면 차별화입니다.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아무래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 블루베리는 사람이 상처 없이 직접 따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생산되고 있죠.” 큰돈은 아니지만 블루베리로 귀농을 결심한다면 모종을 심어 과일이 생산되는 5년차까지 견딜 수 있는 자본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장을 크게 지을 필요도 없고 1000평 정도면 부부 내외가 관리하면서 시골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가공시설은 필요 없어요. 노는 가공시설이 많거든요.” 신이 내린 보랏빛 선물인 블루베리. 그는 지금도 블루베리를 딸기처럼 흔한 과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농업은 삶에 대한 자기 철학의 실천이다. 블루베리를 딸기처럼 흔한 과일로 만들어 보겠다는 건 사람들에게 면역력 높은 삶을 선사해 보겠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데에도 좋다기에 손과 입 주변이 파랗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그가 내 손에 가득 쥐여 준 블루베리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나도 슈퍼맨이 되어버린 듯했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 강호동 1위, 간-쓸개 다 빼주는 착한 사장님 ‘전국 280여개 매장’

    강호동 1위, 간-쓸개 다 빼주는 착한 사장님 ‘전국 280여개 매장’

    방송인 강호동이 착한 사장님 스타 1위에 올랐다. 18일 방송된 tvN ‘명단공개 2016’에서는 ‘간, 쓸개 다 빼주는 착한 사장님 스타’ 순위를 공개했다. 이날 ‘착한 사장님 스타’ 1위에 강호동이 선정됐다. 강호동은 전국 280여개 매장을 소유한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대표로 청결을 위해 각 매장의 기름때를 무료로 관리하고 본사와 가맹점주의 매장 지분을 50대 50으로 분배하며 초기 창업비를 줄여주는 착한 프랜차이즈 기업을 운영 중으로 알려졌다. ‘명단공개’는 이날 방송에서 “강호동은 착하게 사업을 운영하는 인물”이라며 그를 1위로 선정했다. 이어 JYP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이 2위에 올랐고, 3위는 김흥국이 선정됐다. 그 외에도 박재범, 임창정, 박명수, 장수원, 서장훈 등이 착한 사장님 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tvN ‘명단공개’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건물주님, 우리 대화로 풉시다“ 상인들 협동조합·상인회 조성

    “건물주님, 우리 대화로 풉시다“ 상인들 협동조합·상인회 조성

    “법대로 하면 가로수길 상인들 다 쫓겨납니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건물주 눈치가 보이지만 똑같이 장사하는 처지에서 모른 척할 수 없죠.” 11일 오후 3시 가수 리쌍이 건물주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상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성호(49) 신사가로수길문화협동조합 대표는 “건물주를 욕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임차·임대인이 대화로 해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합은 다양한 식당의 주인 20여명이 모인 친목단체였지만 다음달 협동조합 신청을 내고 임대료 인상, 건물주 횡포 등에 맞설 조직으로 만들기로 했다. 지난 7일 리쌍 건물의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법원의 명도 집행이 이뤄졌지만 상인 및 시민단체의 반발로 4시간 30분 만에 중단됐다. 리쌍은 ‘우장창창’을 내보내고 직접 식당을 열 계획이었다. 리쌍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우장창창’ 측은 건물주의 횡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해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임대료를 대폭 올리고 상인을 쫓아내는 건물주에게 대항하기 위해 곳곳에서 상인협동조합·상인회 등이 생기고 있다. 상인들의 절박함과 건물주의 법적 재산권 행사 사이에서 뾰족한 사회적 해법이 나타나지 않자 이들이 직접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홍대 문화의 산실로 불리던 마포구 상수동 ‘이리카페’도 논란의 중심이다. 올 초 건물주가 바뀌면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자 상수상인회가 결성됐다. 상인회는 임대료 동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건물주는 ‘임대료 7.5% 인상에 2년 계약’을 제안했고, 상수상인회는 ‘임대료 1년 동결 뒤 7.5% 인상, 5년 계약’을 주장하고 있다. 상수상인회 김남균(44) 간사는 “원래 건물주와 친분을 쌓아 쫓겨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며 “건물주를 상대로 임대료를 공동 교섭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 상인들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공부하면서 건물주가 임대료를 연 9%만 올릴 수 있고, 5년간 임차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고 했다. 용산구 해방촌은 도시재생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3.3㎡당 2000만원이었던 상가건물 매매가가 2배로 치솟았다. 최근 상인 15명이 모여 상인회를 구성할 계획을 세웠다. 한 상인은 “상인들이 만든 상권 때문에 임대료가 올라 쫓겨난다는 건 모순”이라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주장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건물주의 계약 해지 금지 기간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 한도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2배로 제한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건물주의 입장도 강경하다. 리쌍 건물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법은 ‘임차인(우장창창)이 계약을 연장해 달라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과거 합의 내용을 볼 때 리쌍이 피해를 보았다’며 건물 명도소송에서 리쌍의 손을 들었다. 지난해 용산구 한남동 가수 싸이의 건물에서도 같은 갈등이 있었는데 싸이 측은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했다고 항변한 바 있다. 종로구의 한 건물 주인은 “상인들의 세력화로 법적인 재산권도 행사하지 못할까 우려된다”며 “건물주라고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은 “상인회나 상인협동조합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건물주에 대한 대항력을 키운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아직 실험적인 움직임인 만큼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임차인의 권리를 공부하고 화합하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자살 검사 어머니 “국가가 죽였다…눈만 뜨면 맞고, 검찰은 조폭”

    자살 검사 어머니 “국가가 죽였다…눈만 뜨면 맞고, 검찰은 조폭”

    지난 5월 19일 서울남부지검 소속 김모(33)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검찰 안팎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김모 검사의 어머니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건 엄연한 국가가 죽인 거다”라며 신속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김모 검사의 어머니인 이기남씨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이와 같이 말했다. 이씨는 “(아들이) 1년에 집에 많이 오는 기간이 한 번 아니면 두 번이었다”고 말했다. 김모 검사가 일이 너무 많아서 부모 집에도 찾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모 검사는 지난 5월 7일 어버이날 전에 부모와 통화를 하다가 펑펑 울었다. 이씨는 “정말 이런 일이 없는데 애가 울 때는 얘의 성격을 제가 아니까 큰일났다 싶더라”면서 “그때 달려갔어야 하는데 천추의 한이다”라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김모 검사는 평소에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할 정도로 업무에 시달렸다. 이씨는 김모 검사가 상사였던 김모 부장검사의 폭언 속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괴로워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은 김모 검사가 남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내용을 통해 드러났다. 이씨는 김모 검사가 친구들과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를 언급하며 “그냥 부장은 인간이 아니라고. 부장은 인간이 아니고 카톡의 글들이 한두 개가 아니고 많이 있다고”라면서 “도대체 우리가 평생에 한번도 욕 안 하고 키웠는데 이런 식으로 한 거하고, 또 작년에 부모 초대 받아서 갔을 때 검사장님에게 제가 분명히 그랬습니다. 이제 국가에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에 맡긴다 이랬는데, 이건 엄연한 국가가 죽인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이씨는 “신체 건장하고 한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아이가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김모 검사가 친구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가지고 자고 일어나니까 피가 나가지고 이불에 쏟아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씨는 아들의 상사였던 김모 부장검사에 대해 “부하직원 잘못이 있다 해도 인간적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해야 하는데, 비인격적이고 인간이 아닙니다”라면서 “그런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잘못된 거예요”라고 말했다. 앵커가 “지금 이제 이런 일을 당하고 나서 도대체 부장검사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알아보시려고 전화도 하고 카톡 메시지도 보내보셨을 텐데, 답은 아무것도 안 왔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이씨는 “답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도되기 전에 그냥 100% 잡아떼더라니까요. 술 먹으러 간 적도 없고. 설마 했겠죠”라고 답했다. 이씨는 검찰과 싸우는 심정을 묻자 “정말 제가 겪어 보니까 뭔가 많이 교육이 되어야 하고 바뀌어야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애가 너무 선하고 웃는 상이거든요. 항상 웃고 생글생글 웃고, 그렇게 하는 놈에게 맞고도 자기가 웃으면서 당당하게 대하면 그걸로도 해서 때리고 했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죠”라고 답변했다. 이어 “(아들이) 날이면 날마다 눈만 뜨면 맞고. 이게 뭐하는 거예요. (검찰이) 조폭의 세계도 아니고”라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건, 신속하게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서 처음 책임자가 책임지는 모습을 우리 가족들은 보고 싶거든요. 그거 꼭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가맨 마골피-KCM, ‘비행소녀’ ‘흑백사진’ 반응 폭발 “예의없는 아티스트였다”

    슈가맨 마골피-KCM, ‘비행소녀’ ‘흑백사진’ 반응 폭발 “예의없는 아티스트였다”

    ‘슈가맨’으로 소환된 가수 마골피와 KCM이 뜨거운 화제다. 28일 오후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에는 이수훈, 파이브, 이장우, 마골피, KCM이 ‘슈가맨’으로 소환됐다. 2007년 ‘비행소녀’로 사랑받았던 마골피는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등장하자마자 관심을 모았다. 마골피는 과거 독특한 콘셉트에 대해 “사장님이 예의 없는 아티스트 콘셉트로 가자고 하셔서 주변에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노사연 선배님께도 인사를 하지 않아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마골피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근황에 대해서는 “낮에는 8월에 공연하는 대학로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밤에는 동료들과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마망’이라는 새 이름으로 음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KCM은 지난 2004년 발매된 첫 정규앨범 타이틀곡 ‘흑백사진’을 불러 많은 이들을 감성에 젖게 했다. KCM은 근황에 대한 질문에 “음악 준비하고 사업도 새롭게 시작했다. 집안 자체가 제지업을 한다. 그래서 제가 지금 대표로 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29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8일 방송된 JTBC ‘슈가맨’ 시청률은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 2.51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1일 방송분이 기록한 2.660% 시청률보다 0.141%P 하락한 수치다. ‘슈가맨’은 오는 7월 12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설렘보다 편안함 내 생애 첫 베트남②다낭, 호치민

    설렘보다 편안함 내 생애 첫 베트남②다낭, 호치민

    ●무지개 매력을 품은 휴양지 다낭Da Nang 베트남 대표 럭셔리 휴양지, 다낭. 그러나 해안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더 다채로운 매력의 여행지들이 얼굴을 내민다. 옛 항구 도시와 산 정상의 테마파크, 신비로운 대리석 산까지. 베트남의 한강을 산책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다낭 시내는 강변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재밌게도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강 이름이 한강이다. 서울보다는 덜 복잡하고 한적해 운치 있는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한강 변에 접해 있는 한 마켓Han River Market은 현지인과 여행자가 함께 찾는 즐거운 장소다. 1층에는 식료품과 주전부리들이, 2층에는 의류와 신발 가게들이 주를 이룬다. 요즘 유명 브랜드의 OEM이 베트남에서 이뤄질 정도로 이곳 의류는 질이 꽤 좋다. 시장에서 흥정은 덤으로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저렴한 가격에 득템하는 기쁨을 누려 보는 건 어떨까. 점포 뒤편에서 부지런히 미싱을 돌리며 옷을 짓고 있는 광경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장 맞은편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예쁜 카페도 있다. 달콤한 베트남식 커피가 쇼핑에서 얻은 즐거움을 두 배 더 배가시켜 준다. 먼 옛날 참파 왕조Cham Pa의 유적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참 박물관Cham Museum도 한 번 들러 볼 만하다. 옛 사람들이 정교하게 조각한 석상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랜 세월에 조각품들이 많이 무뎌지긴 했지만 도구도 변변치 않았을 시절에 어떻게 이런 조각품들을 만들었을지 놀랍기만 하다. 도시는 밤이 되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저녁 무렵 한강을 가로지르는 용 다리의 야경을 감상하며 유유히 뱃놀이를 즐겨 보자. 다낭의 핫 플레이스로 소문난 노보텔 호텔의 루프톱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 보는 건 또 어떤지. 반짝반짝 빛나는 다낭 시내를 내려다보며 화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최적의 코스다. 음양오행의 철학이 깃든 산 다낭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오행산五行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이 산은 신기하게도 각각의 봉우리가 음양오행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형상화하고 있다. 산길 입구부터 꽤나 가파른 계단길이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체력이 걱정된다면 중턱까지 수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다. 반면 계단길 중간에 세워진 절이 아름다워 일부러 걸어 올라가는 이들도 많다. 걷기 시작할 땐 온갖 푸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절에 도착하니 그 모든 불평들이 쏙 들어가 버렸다. 하얗게 빛나는 부처님과 제자들, 사슴 한 마리가 보리수 아래 둘러앉은 조각상이 마음에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오행산은 산 전체가 대리석이어서 더 신비롭다. 어딘가 깎여 나간 곳이나 동굴 벽면들을 만져 보면 반질반질한 촉감이 여느 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잠깐 동안의 산행에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오래된 항구의 정취 다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호이안Hoi An은 16~17세기경 동남아 최고의 무역항으로 손꼽혔던 곳이다. 투본Thu Bon강 하구에 형성된 항구 도시 곳곳에서 번성했던 그때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다낭을 비롯해 다른 지역 항구들이 부상함에 따라 호이안의 역할은 점차 퇴색되었지만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분에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무역상 대신 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여행자들로 호이안은 제2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호이안 구시가지는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 코스다. 전통적인 목조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을 누비다 보면 순식간에 몇 세기를 훌쩍 넘어온 듯한 착각마저 인다. 예전 번성했던 무역도시답게 다른 나라의 건축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들도 눈에 띈다. 구시가지 끝자락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놓았다는 목조 지붕을 얹은 독특한 양식의 내원교가 남아 있다. 재밌게도 다리를 가운데 두고 왼쪽은 일본인들이, 오른쪽은 중국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구시가지는 차 없는 거리로 여행자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거리를 따라 기념품 숍과 갤러리, 카페, 각종 노점들이 즐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거리지만 구석구석 재미난 것들이 많아 하루 종일 이곳에만 있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호이안을 여행할 때는 최대한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다니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호이안의 매력은 밤에 더욱 빛난다. 오색찬란한 빛깔로 물든 밤거리는 오히려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호젓하던 낮의 거리와 달리 흥겹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여행자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한다. 노천 마사지숍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도 좋고, 환하게 불을 밝힌 노점상 사이를 오가며 못 다한 쇼핑 삼매경에 빠져도 좋다. 별빛 총총한 노천 바에 앉아 맥주 한 잔 들이키며 호이안의 밤을 맘껏 즐겨 보는 것 또한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베트남의 옛 모습을 엿보다 비나 하우스Vina House는 베트남 전통 생활 문화를 재현한 박물관이다.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Ao Dai에 논Non을 쓰고 나타난 여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전시물들을 설명해 준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관람하는 동안 소박하고 손재주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따뜻한 차와 다과까지 준비한 그녀의 배려 깊은 환대에 마음이 환히 열렸다. 비나 하우스Vina House Km 950, Highway 1A, Dien Ban Dist Quang Nam Prov, Vietnam +84 510 3717 888, 3717 999(102) www.vinahousespace.com 산 정상의 신기한 테마파크 다낭 북서쪽에는 높이가 1,487m에 달하는 바나Ba Na산이 우뚝 서 있다. 작년 4월, 이곳에 테마파크 ‘바나 힐스 마운틴 리조트Ba Na Hills Mountain Resort’가 개장하면서 다낭에서 가 봐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늘었다. 바나 힐스로 향하는 길은 마치 산꼭대기에 꼭꼭 숨겨 놓은 비밀의 성을 찾아가는 것 같다. 산줄기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케이블카만이 바나 힐스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다. 바나 힐스 케이블카는 전 세계 10대 케이블카 안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로프웨이5,801m, 17분를 자랑하며 산 중턱에 세워진 역간의 고도 차이가 1,368m에 달한다. 케이블에 줄줄이 매달린 캐빈 수만 210대, 시간당 3,0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규모에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케이블카는 막상 탑승하니 외의로 편안하다. 유럽의 안전 기준에 맞춰 시공됐다는 케이블카는 흔들림은커녕 안정감 있는 운행에 깜짝 놀랄 정도다. 운무를 헤치며 거침없이 쭉쭉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바나 힐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했다. 희뿌연 안개 너머로 바나 힐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 정상에 이런 공간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뾰족하게 솟은 성과 고풍스런 교회, 우체국, 노천에 펼쳐진 파라솔 테이블 등 프랑스식으로 꾸며진 작은 마을이 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휴양지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던 곳을 이후 베트남 기업인 썬그룹에서 테마파크로 단장해 세계적인 휴양지로 선보인 것이다. 그야말로 놀랍다. 바나 힐스 안에는 탑승 기구들이 가득한 놀이동산과 유명 인사들의 밀랍인형이 전시된 왁스 뮤지엄, 사계절 꽃향기로 채워지는 리 자딘 디아모르Le Jardin d’Amour 화원과 디베이Debey 와인 저장고 등 흥미로운 시설들이 많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고속 튜브 썰매Alpine Coaster와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는 기차도 인기 있는 코스들이다. 심한 안개 탓에 고속 튜브 썰매는 타 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즐긴 놀이동산에서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왁스 뮤지엄에서 만난 비와 싸이도 어찌나 반갑던지 함께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와인 한 잔 홀짝이며 꽃향기에 취해 있다 보니 잊고 지내던 원초적 즐거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바나 힐스에는 고성 호텔도 있다. ‘머큐리 바나 힐스 프렌치 빌리지 호텔’은 19세기 프랑스풍으로 꾸며진 멋진 잠자리와 수준 높은 식사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간다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객실과 로비, 레스토랑이 바나 힐스에서의 추억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시설을 확장 중인 바나 힐스. 다음에 찾아올 땐 어떤 즐거움이 더해질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바나 힐스 마운틴 리조트BA NA Hills Mountain Resort An So’n-Hoa Ninh, Hoa Vang Prefecture, Danang City, Vietnam +84 511 3791 999 www.banahills.com.vn/en ●사이공의 오늘호치민Ho Chi Min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 베트남에서 가장 번화한 대도시 호치민이다. 허락된 시간은 고작 반나절. 당연히 아쉬움이 컸다. 작은 파리 속을 달리는 오토바이 호치민의 옛 이름은 사이공Saigon이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미스 사이공>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영국에서 초연된 뮤지컬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사이공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이전인 1976년 베트남 남북이 통일되면서 이미 사이공은 호치민으로 개칭되었다. 호치민시의 또 다른 별칭은 ‘오토바이 도시’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풍경이 오토바이로 가득한 거리일 정도로 이곳의 오토바이 교통량은 어마어마하다. 소음과 매연이 심한 것은 당연지사. 호치민을 여행할 땐 마스크는 필수 품목이다. 오죽하면 이곳 주민들조차 외출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닐까.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오토바이 탑승자 모두 헬멧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헬멧 착용이 여전히 일상화되지 않는 국내와 비교해 볼 때 꽤나 신선한 풍경이다. 헬멧 미착용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고 하는데 실제 거리에서 벌어진 엄한 단속 활동을 접하고 나니 이 같은 풍경이 절로 이해가 된다. 호치민은 작은 파리로 불릴 만큼 곳곳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넘쳐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립된 옛 건물들과 세련된 현대식 건축물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케미가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식민지의 부산물들을 모두 없애기보단 오히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현재에 맞게 재활용한 베트남인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호치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성당과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의 걸작물인 중앙 우체국, 호치민시의 랜드마크인 인민위원회 청사 등이 서로 지척에 있어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에 좋다. 주변에 여행자 거리와 쇼핑센터, 오페라하우스, 공원 등이 자리해 구경거리도 많다. 벤탄 시장Ben Thanh Market도 잠깐 들렀으나 점포들이 빽빽이 밀집한 시장 안이 너무 더워 오래 있지는 못했다. 발품을 판 만큼 수확을 얻는 곳이라지만 이번엔 분위기만 살짝 엿보고 돌아설 수밖에. 호치민에서 보낸 시간이 고작 반나절에 불과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여행자에게 진리처럼 내려오는 ‘아쉬워야 다시 찾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음 베트남행은 호치민에서부터 시작해 볼 요량이다. 아아, 이렇게 베트남 첫 방문에 덜컥 발목을 잡혀 버렸다. ▶travel info AIRLINE베트남 최초의 민간 저비용 항공사인 비엣젯 항공은 인천-하노이, 인천-호치민 구간을 주 7회 매일 운항한다. 구간별 편도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국, 출국 도시를 다르게 하면 더욱 효율적인 여행 코스를 짤 수 있다. 비엣젯 항공은 국제선뿐 아니라 다낭을 비롯해 베트남 주요 도시들도 국내선으로 연결한다. 비엣젯 항공 스카이보스Skyboss 프리미엄 좌석을 이용하면 한결 편리하고 쾌적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스카이보스 프리미엄 좌석 구매시 전용 카운터를 통해 체크인할 수 있고 탑승시에도 우선권이 부여되며 인천(아시아나 항공 라운지)과 베트남 국내 공항에서 비즈니스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호치민에서 귀국하는 경우 비행기 출발이 새벽 시간대이기 때문에 라운지 이용 혜택은 무척 유용하다. 이 밖에 기내식이 무료로 제공되며 위탁수하물(무게 20kg 미만) 체크인 및 일정 변경시 발생되는 수수료도 면제된다. VISA베트남을 15일 이내 여정으로 여행하는 경우 귀국 항공권이나 제3국행 항공권을 지참하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단 베트남 출국 후 30일 이내에 재방문할 때에는 비자 발급이 필요하다. 베트남 입국시에는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2010년부터 입국 신고서 제도가 폐지되어 입국 수속시 여권만 준비하면 된다. TIME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베트남 도착 직후 시계를 현지 시간으로 맞추어 놓는 것이 편하다. 잠깐 미뤄둔 사이 박물관이나 공연 입장 시간 등을 착각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실례로 시계 맞추는 것을 깜빡한 기자는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갔다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시계가 7시30분인 것을 확인하고 느긋하게 내려갔으나 현지 시간은 5시30분이었던 것. 이미 체크아웃까지 한 상태여서 문조차 열지 않은 레스토랑 앞에서 홀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RESORT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Intercontinental Da Nang Sun Peninsula Resort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에 세워진 리조트는 휴식 그 자체이다. 전용 해변과 야외 풀장, 스파, 수준급 레스토랑 등 럭셔리한 부대시설과 더불어 4개 카테고리로 나뉘는 고급 객실은 쉼에도 남다른 품격을 부여한다. 직접 자신에게 맞는 베개를 고르는 필로우 테스팅은 이곳만의 섬세한 서비스를 느끼게 한다. 다낭 시내와 호이안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해 이곳에 머물며 편하게 다낭 여행을 즐길 수 있다. SHOPPING다낭 롯데마트 식품 코너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특화된 쇼핑 스폿이다. 반신반의하며 따라간 곳엔 이미 수많은 한국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바구니가 달린 카트를 끌고 다니며 선반에 진열된 물품들을 거의 쓸어 담다시피 쇼핑을 즐긴다. 늦은 오후에 가면 품절되어 살 수 없다는 인기 품목은 역시 커피다. 귀여운 다람쥐가 그려진 커피봉지는 베트남 여행자라면 하나씩 손에 들고 오는 대표 기념품. 커피 외에 유명한 차 브랜드도 불티나게 팔린다. 가격은 확실히 저렴한 편이다.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비엣젯항공 www.vietjet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小浜町 ②오바마가 꿈꾸는 에코 빌리지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小浜町 ②오바마가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가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가 심상치 않다. 이주민이 늘고 있다. 인구가 줄어 고민인 시골마을에서 오바마의 역주행은 반가운 일이다. 이주민이지만 오바마를 대표하게 된 그들을 만났다. ▶테라하우스 파티셰 사카가미 치에 비건을 위한 제안 사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베이커리인 줄 알고 불쑥 찾아갔는데 실은 쿠킹 클래스여서 당황한 탓도 있었지만 마침 수업 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리학교를 졸업한 후 10년 넘게 자연식품 매장과 마이크로바이오틱Macrobiotic 푸드카페를 경영하며 베이커리 수업을 진행해 왔고 3년 전 오바마로 이주하기 전에는 나가사키 대학에서 지역에서 재배하는 약초를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를 찾아서 나가사키에서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매월 마지막 주말에 걸쳐 진행되는 쿠킹 클래스의 메뉴는 우유나 계란 등 유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비건용 빵과 허브나 약초를 이용한 건강식들이다. 소량만 생산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그녀가 만든 효모식빵, 쌀가루빵, 핫도그 등을 맛보고 싶다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한다. 테라하우스Terra House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007 매월 마지막주 금, 일, 월요일에 4명 정원의 소규모 쿠킹클래스를 연다. 실습비 4,000엔 +81 957 74 5780 www.terrahouse.jp ▶가리미즈안 카페 & 숍 시로타니 코우세이 디자이너 밀라노에서 오바마까지 시작은 한 디자이너의 귀향이었다. 오바마에서 태어나 도쿄와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엔조 마리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시로타니 코우세이Shirotani Kosei씨는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스튜디오 시로타니를 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오바마 재생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5년간 출강했던 사가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디자인 캠프를 진행하면서다. 나가사키현의 지원으로 역사, 경관, 자연 등의 조건을 갖췄지만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작은 마을을 재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던 것. 시작이 반이 되어 시로타니씨 자신이 먼저 오바마에서 ‘가리미즈 에코 빌리지’를 시작하게 됐다. 2013년에 그는 마을의 빈집 중 하나를 골라 1층은 그가 직접 디자인하거나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판매장으로, 2층은 이탈리아와 한국 등지에서 수집한 가구와 소품으로 카페를 꾸몄다. 70년 된 고택의 폐기물을 실어내는 데만 1톤 트럭을 몇 번이나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가리미즈안 숍 & 카페Karimizuan Shop & Cafe는 현재 오바마 안팎 사람들에게 중요한 아지트가 됐다. 일본 디자인협회 이사이자 디자인, 공예, 건축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탈리아, 일본,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시로타니씨의 인적 파급력 덕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위해 먼저 이주해 왔고 도예가, 요리사, 농업을 배우는 학생, 요리사 등 오바마로 보금자리를 옮긴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오바마가 지닌 일본적인 삶의 양식이 깨지지 않으면서도 이탈리아처럼 소도시에서도 대도시와 같은 수준의 문화적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가리미즈안 디자인 마켓이 열리는 4월에는 가뜩이나 좁은 가리미즈의 골목이 사람으로 메워진다. 사례 연구를 위해 쇠락한 제련마을에서 예술가 마을로 되살아난 핀란드 피스카스에도 다녀왔고, 지역의 여러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동생들과 쌓았던 유년의 추억들 위로 그가 그린 오바마의 미래 설계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 가리미즈안 카페 & 숍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011 10:00~17:00 (매주 수요일 휴무) +81 957 74 2010 www.facebook.com/karimizuan ▶아이아카네 공방작가 스즈키 테루미 붉고 푸른 인생 2막 오바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신문에서 본 시로타니씨의 기사 덕분이었다. 살기 좋은 마을에 빈집이 있다는 것도,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그녀가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나가사키에서 1년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물색한 끝에 시노타니씨의 카리미즈안 카페 바로 뒷집에 터를 정하고 ‘아이아카네 염색 공방’을 오픈했다. ‘아이’는 푸른색을 내는 천연 쪽, ‘아카네’는 붉을 색을 내는 꼭두서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개조한 소박한 공방은 너른 마당을 끼고 있었다. 천연염색에 필요한 염료 식물을 직접 재배하기 위한 공간이다. 고운 적색 염료를 얻기 위해 서양 꼭두서니의 씨를 뿌려두었는데 꽃을 보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염료뿐 아니라 천까지 직접 만든다. 직접 물레를 돌려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그 실로 직조를 해서 천을 짜고, 그 천을 염색해서 옷으로 만드는 전 과정을 그녀 혼자서 해내는 것이다. 테루미씨는 주인과 5m도 떨어지지 못하는 애완견과 단둘이 살고 있지만 적막한 전원생활과는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직접 만든 스카프와 소품 판매 외에도 주민들을 위해 오래된 기모노를 리메이크해 주고, 쪽풀을 가공해 첨가한 소금, 허브티, 후리카케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일거리가 넘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염색체험 손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 취미로 시작한 염색이 인생 2막의 일상이 된 지금, 그녀는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 아이아카네 공방Atelier Aiakane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012 10:00~17:00 (화, 수요일 휴무) + 81 090 3899 1393 www.facebook.com/aiakane.kb ▶운젠시 농부 이와사키 마사도시 Iwasaki Masatosh 일본 자연주의 농법의 선구자 정확히 말해 그는 오바마가 아니라 운젠시 북쪽에 위치한 아즈마에서 농사를 짓는 촌부다. 하지만 그는 운젠이나 나가사키뿐 아니라 일본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농법의 선구자다. 35년 전부터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져 버린 일본의 전통품종 복원에도 성공했다. 슬로푸드의 고향인 이탈리아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고 2년 전에는 한국에도 다녀갔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과 주름이 그 세월을 가늠하게 했지만 정작 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의 몰이해였다. 전통농법으로 재배한 채소가 낯설어서인지 오히려 유전자 변형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 15년 전부터다. 현재 그는 아즈마 지역 2.7ha의 땅에 다양한 작품을 키우고 있다. 일본의 다양한 고유 종자와 좋은 것들을 지키고 싶다는 소박한 농부의 바람을 응원할 수밖에! 그에게 농법을 배우기 위해 오바마로 이주해 온 농업학교 학생들도 함께 응원한다! ●유혹하는 탕·찜·뽕 다시 돌아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그리고 그 이유는 놀랄 만큼 사소한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그 이유가 동네 목욕탕, 야채가 듬뿍 들어간 짬뽕 한 그릇, 온천증기에 쪄 낸 해산물이었다. 증기만세! 요리가 제일 쉬웠어요!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오바마에 홀딱 반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온천 찜요리였다. 일본의 위라고 불리는 시마바라 반도는 최고 품질의 감자를 포함해 품질 좋은 야채와 해산물의 보고다. 염화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온의 증기에 그 식재료들을 넣고 찌기만 하면 천연 염분이 더해져 감칠맛이 난다. 첫 경험은 ‘훗토홋토 105’에서 먹은 온센다마고온천달걀. 달걀이나 옥수수, 토란, 고구마 등을 구입하고 바구니를 대여해서 직접 쪄 먹는 방식이다. 오바마 사람들은 아예 집에서 준비해 온 재료를 전용 바구니에 담아 피크닉을 나온다. 더 다양한 재료를 즐기고 싶다면 마켓과 찜가마가 함께 있는 체험형 식당 무시가마야蒸し釜や를 이용하면 된다. 겨울에 제철인 미즈호산 양식굴이나 여름이 제철인 운젠 바위굴뿐 아니라 각종 조개와 생선, 다양한 야채와 찌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식품들도 구비했다. 식당 앞에 설치한 15개의 증기가마 위쪽에 감자 20분, 옥수수 10분, 돼지고기 세트 10분 등 재료마다 찌는 시간이 안내되어 있다. 방파제 옆에 위치해 있어서 바깥 테이블에 앉으면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낭만도 있다. 모든 것이 셀프인 곳도 있다. 운젠관광정보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유야도 죠키야 湯宿 蒸気家는 농한기에 지역 사람들이 와서 보름이나 한달씩 요양하듯 쉬어 가는 곳. 숙박료가 1박에 3,000엔 정도에 불과한 이유는 식음료 서비스가 없이 객실과 온천탕이라는 심플한 구성 때문이지만 넓은 주방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가까운 마트나 장에 가서 담백한 운젠규쇠고기, 감칠맛 나는 방어와 복어, 고소한 꽃게 등 직접 재료를 구입해 오면 모든 것이 갖춰진 주방에서 자유롭게 조리할 수 있고, 숙소 앞에 찜가마도 설치되어 있다. 찜도 좋지만 담백한 국물이 필요하다면 오바마 짬뽕도 별미. 나가사키에 살던 중국인 요리사 첸핑슈운이 1897년에 창안했고, 1910년대 온천 여행객들을 통해 나가사키에서 오바마로 전해진 요리지만 100여 년이 지나면서 오바마 고유의 맛을 갖추게 됐다. 고기 육수가 진한 나가사키 짬뽕에 비해 야채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담백한 오바마 짬뽕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시가마야蒸し釜や운젠시 오바마쵸 마리나 19-2 9:00~21:00 연중무휴 +81 957 75 0077 www.musigamaya.com 유야도 죠키야湯宿 蒸気家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4-7 1실 기준 2인 숙박시 1인당 4,500엔, 5인 숙박시 1인당 2,800엔, 조식 포함시 추가요금. 입욕 성인 1인 400엔, 전세탕 1인당 800엔. 림프마사지 90분에 6,000엔 예약 접수 9:00~20:00 +81 957 74 2101 오바마 짬뽕16개의 공인 짬뽕 레스토랑이 있는데 가격은 600~800엔 사이다. 지도 안내서를 보면 각 식당마다의 특징뿐 아니라 국물의 진하기도 1~5개의 숟가락 개수로 표시해 놓았다. ▶travel info Unzen, Obama transportations오바마쵸 찾아가기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로 2시간 반이 걸린다. 열차로는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이사하야역까지 1시간 50분, 여기서 오바마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시마테츠 패스를 구입하면 시마바라 반도 안에서 무제한으로 철도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오바마온천과 운젠온천 사이는 차로 20여 분이 걸린다. info center오바마온천관광협회 어쨌든 오바마엔 오바마가 있다. 오바마관광안내센터 앞에 서 있는 오바마상은 3번째로 세워진 것이다. 지난번 것은 태풍에 파손됐다. 오바마도 만날 겸 짬뽕 레스토랑 지도도 얻을 겸 안내센터를 방문해 보자.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초 키타혼마치 14-39 +81 957 74 2672 www.obama.or.jp Festival쟈카란다 페스티벌6월의 오바마엔 쟈카란다가 만발한다. 만발한다고 말하기에는 나무의 수도 적고, 큰 나무가 많지는 않지만 세계 3대 화목에 속하는 이 나무를 향한 오바마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실제로 쟈카란다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에 하나다. 보랏빛 옷으로 단장하고 6월에 열리는 오바마 쟈카란다 페스티벌을 찾으면 묘목을 받을 수 있다. TREKKING미나미시마바라 올레 규슈의 17번째 올레가 지난해 11월22일 반도 남부에 개장했다.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미나미시마바라시 구치노쓰항에서 출발하는 10.5km 구간으로 최고 표고가 90m 정도밖에 안 되는 평탄한 해안길이 대부분이다. 야쿠모 신사, 세즈메자키 등대, 하야사키 해협, 구치노쓰 등대 등을 볼 수 있다. 미나미시마바라시 상공관광과 +81 050 3381 5032 규슈여행정보사이트(올레길 정보) www.welcomekyushu.or.kr STAY 이세야 료칸伊勢屋旅館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을 잘 알고, 그래서 한국어도 구사하는 구사노 사장님과 싹싹한 오카미상 때문에 한국인 단골들도 많은 곳이다. 350년 동안 료칸 사업을 이어와 오바마 료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부부의 몸에 밴 배려와 깔끔한 성격이 료칸 곳곳에 보인다. 예를 들면 오바마의 보석 같은 석양을 놓치지 말라고 방마다 그날의 해지는 시간이 적혀 있다.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905 +81 957 74 2121 www.iseyaryokan.co.jp 하마칸 료칸 浜観ホテル오바마 유일의 비즈니스 호텔로 모두 침대가 있는 양실구조다. 휑하다고 느낄 만큼 넓은 객실에서는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전통 료칸의 아늑한 재미는 없지만 재단장한 지 오래되지 않아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는 사람에게는 제격. 가이세키 요리 대신 외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681 +81 957 74 2222 www.jisco-group.net 슈운료칸春陽館 가장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자부심 가득한 료칸. 1930년대에 지은 본관 건물에 신관을 증축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느낌. 객실에서 바라보이는 오바마 마리나와 항구, 석양이 압도적이다. 저녁 식사를 방에서 먹을 수 있도록 차려 주고, 아침은 식당에 내려가서 먹는다. 즉석에서 솥밥을 해 주는 것도 인상적.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680 +81 957 74 0514 www.shunyokan.com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진혁 취재협조 운젠시 관광물산과 www.city.unzen.nagasaki.jp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우리 구에서는 ‘새는 세금’ 없다] 탈루 주민세 종업원분 13억 추징한 강남구

    서울 강남구에서 종업원 50명 이상을 고용한 ‘사장님’은 종업원분 주민세 납부에 꼼수가 있을 수 없다. 강남구는 세금을 탈루한 사업장 338곳을 적발하고, 종업원분 주민세 13억 3400만원을 추징해 서울시 평가에서 우수구로 선정됐다. 구는 2011년부터 지난해분까지 종업원분 주민세 탈루가 의심되는 사업장 2358곳, 8만 8570건을 선정해 세무조사를 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 6개월 동안 중소기업공제 부적정 신고 전수조사를 했고 건강보험공단과 국세청 자료를 활용해 특별징수 활동을 벌였다. 종업원 50명이 넘는 사업장의 사업주는 급여 지급일을 기준으로 다음달 10일까지 매월 총급여액의 0.5%인 주민세 종업원분을 납세자가 스스로 계산해 신고·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용역·파견업종에서는 신고하지 않거나 축소해 신고했다. 일부 사업장에선 일용직을 종업원 수에 포함하지 않아 과세를 피하는 편법도 부렸다. 추징 사례를 보면, 삼성동에 있는 B업체는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일용직과 파견 직원을 종업원 수에 넣지 않는 방법으로 주민세를 피했다. 강남구는 현장 조사 등을 통해 1억 5000만원을 부과한 뒤 전액 징수했다. 강남구는 올해부터 주민세 종업원분 부과 기준이 변경됨에 따라 납세자가 신고납부를 누락하지 않도록 적극 안내할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최근 1년간 월평균 급여총액이 1억 3500만원이 넘으면 주민세 종업원분을 내야 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경제 블로그] “김 마담님!” “임 프로!” 소통 꿈꾸는 호칭 파괴

    [경제 블로그] “김 마담님!” “임 프로!” 소통 꿈꾸는 호칭 파괴

    요즘 기업체들 사이에 호칭 파괴가 유행입니다. 금융권에서는 교보생명이 대표적입니다. 직급이 아닌 직무 중심으로 바꿔서 부르는데요. 마케팅 담당, 고객보호 담당, 정보보안 담당, 자산운용 담당 등 명칭만 봐도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회장님, 부사장님 대신에 ‘○○ 담당님’이 자리잡은 것이지요. 언론 홍보를 맡고 있는 김성한 전무는 경영기획 담당이자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담당이라 부르는 데만도 한참이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약칭도 생겨났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호칭이 ‘마담님’입니다. 마케팅 담당님의 줄임말이라네요. 그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뭐라고 부를까요. ‘CEO(최고경영자) 담당님’입니다. 회장, 전무 같은 딱딱한 호칭은 직급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인데 ‘계급장’을 떼고 커뮤니케이션(소통)을 수월하게 하자는 취지랍니다. 한 직원은 “신 회장이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없애자며 제안한 아이디어인데 무슨무슨 담당님이라고 하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제일기획은 더 파격적입니다. 사장부터 사원까지 모두 ‘프로’입니다. 임대기 사장은 임 프로, 박규식 신문화팀장은 박 프로입니다. 광고를 만드는 곳이다 보니 좀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이라네요. 비슷한 이유로 삼성바이오는 이름 뒤에 ‘담당’을 붙이고, SK텔레콤은 ‘매니저’를 붙입니다. 오히려 계급 차이를 두기 위해 호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대표이사가 부사장급 이상이면 사장님, 전무급 이하면 대표님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직급 구분 없이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계열사의 ‘진짜 사장님들’ 눈치가 보여서라네요. 같은 대표이사라도 ‘급’이 다르다는 얘기지요. 이는 여러 계열사가 모인 그룹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그룹 내 보험사 CEO가 전무 1년차이고, 카드사 CEO가 부사장 3년차라면 호칭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같은 CEO 간에도 조직 서열이 있고 선후배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서와 문화가 그대로인데 호칭만 바꾼다고 무슨 소용이냐고 냉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달라진 호칭만큼 자유로운 조직문화, 가까운 노사관계를 기대해 봅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서울광장] 겨우 열아홉 살 ‘김군’들/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겨우 열아홉 살 ‘김군’들/황수정 논설위원

    청춘은 뭘 어쩌고 있어도 청춘이다. 어른인 척해 봤자다. 80㏄ 스쿠터를 운전하는 뒤태만 봐도 다 보인다. 총알배달 중에도 신호등 앞에서 ‘나는 청춘’이라고 티를 낸다. 그 짧은 순간에 스마트폰을 주무르고,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돈하고. 더운 날엔 삼선 슬리퍼, 추운 날엔 로고가 새겨진 브랜드 운동화, 하얀 발목. 열아홉 살은 고작 그런 나이다. 주민등록증을 몸에 지니는 게 어색해 흘리고 다니는 인생 얼치기들. 알이 한참 더 차야 하는 풋콩 꼬투리들. 지난 주말 집앞 큰 도로를 달리는 어린 아르바이트 배달원들을 오래 지켜봤다. 얼마나 쫓기는지 신호 위반을 밥 먹듯 한다. 자동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쳐 곡예를 하면서도 헬멧을 쓴 아이는 없다. 몇 번을 망설이다 피자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어린 친구들 헬멧은 좀 씌우면 좋겠다고. 나는 두 마디를 속으로 준비했다. 사장이 내 오지랖을 받아 주면 “감사하다”로, 그러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로. “아, 네” 외마디로 대답했던 사장이 어떻게 조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날 알바생 둘 중 한 사람은 헬멧을 쓰고 다녔다. 모르겠다. 내 오지랖이 절반의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 지하철 구의역 사고에 엄마들 마음이 며칠째 너무 힘들다. ‘김씨’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열아홉 살 ‘김군’ 때문에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만 2년. 아파트 위 파란 하늘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엄마들이 여전히 있다. 하늘이 바다 같고, 아파트 건물이 바닷물에 뒤집힌 배 같아서. 널린 게 밥집인데, 구의역의 열아홉 살은 사발면을 비상식량으로 지니고 다녔다. 정규직의 꿈이 간절했다는 어린 용역 정비공한테는 서울이 사막이고 정글이었다. 가방에 넣고 다닌 스테인리스 숟가락으로는 뭘 했을까. 사발면에 햇반을 말아 먹었을까. 엄마들은 이제 그 사발면을 먹지 못하겠다고 한다. 엄마들을 울리는 세상은 따지지 말고 비열한 사회다. 야당에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생명과 안전에 관한 업무에 정규직 근로자 채용을 의무화하는 법이다. 공공기관들의 직접 고용도 법제화하겠다고 벼른다. 그나마 여당에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청맹과니들이다. 누군가의 생때같은 아들 목숨을 내주며 쥐어박듯 가르쳐야 간신히 반응을 하니 청맹과니 아닌가. 용역업체 바깥의 노동 현장에도 바닥의 근로환경에 내몰린 청년들은 많다. 당장 도로의 천둥벌거숭이 배달원들이 안 보이는가. 원동기 면허만 있으면 되니 배달 알바는 10대들에게 만만한 일자리다. 햄버거집에서 일하고 있어도 그들은 근로자가 아닌 시급 6030원짜리 ‘사장님’이다. 배달을 대행하는 특수고용직 신분이어서 산업재해보험을 알아서 가입해야 한다. 헬멧 없이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보험을 들지 않았으면 전부 본인 책임인 것이다. 악덕 업주의 시급 떼먹기보다 잔인한 이 비겁한 제도를 아이들이 알 리 없다. 최근 2년간 교통사고를 당한 배달원의 30%가 17~19세 청소년들이다. 구의역의 김군이 2인 1조 근무를 요구할 수 없었듯 피자집의 김군도 산재 보호를 받게 해 달라고 말할 힘이 없다. 정부는 알바 청소년 보호 방안을 내년에 마련하기로 했다. 어째서 또 내년인가. 힘없는 여성가족부한테 맡겨 면피하지 말고 고용노동부가 움직이라. 국회 환경노동위가 같이 소매를 걷으면 될 일이다. 그끄저께 새누리당의 민경욱 대변인은 ‘민성(民聲) 경청 투어’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고단한 민생을 온갖 의전을 받으며 ‘관광’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공감 능력에 자신이 없으면 국어사전을 먼저 뒤져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 걱정인 정치인들에게 나는 찰스 디킨스의 책 한 권을 권한다. 런던 시내 밤거리 구석구석의 서민들을 기록한 수필집 ‘밤 산책’이다. 밤 골목을 살핀 작가의 눈에는 병든 공장 노동자, 날품팔이 여성 가장의 절박한 삶이 다 보였다. 고작 청년을 살피는 정책이 19세기 대문호가 빈민 복지사업에 나섰던 일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비정규직 아들이 저녁 밥상을 받을 때까지 엄마를 살얼음판에서 기다리지 않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복지다.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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