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임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보수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시체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소식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소성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767
  • 대권 쥐었지만 험난한 「옐친의 앞날」(소련 소멸 그이후:상)

    ◎가격자유화등 공화국간 조율 급선무/민족갈등·영토분쟁 중재도 무거운 짐/식량난해소 조기가시화 못하면 수성 “불안” 고르바초프의 인기가 한창이던 지난 87년 모스크바시 당서기장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속도가 너무 늦다고 강력히 비난,서기장직에서 쫓겨났다.이때 오늘의 옐친이 있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옐친은 4년후인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의 직선대통령에 당선되는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그이후 지난 8월 쿠데타 기도분쇄,독립국가공동체(CIS)의 창설주도,핵버튼인수로 상징되는 최고실력자 부상등 급속한 정치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지금 옐친이 앞으로도 과거와 같이 순탄할 길을 걸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르바초프가 사임을 발표하는 날 모스크바시민들이 보인 반응을 봐도 옐친의 앞날이 밝지 않음을 쉽게 알수 있다.이들은 고르바초프의 사임에 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옐친의 등장에도 전혀 환호하지 않았다.새로 출범하는 CIS에 대해서도 상당수가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0% 이상이 앞으로의 경제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으며 CIS가 출범한다 해도 과거와 달라지는게 없을 것이란 비관적 대답도 60%를 넘어섰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국민들의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고 생필품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옐친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것인가.우선 서방세계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구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최고지도자로서 핵무기의 안전한 통제를 보증,국제사회의 불안을 해소하는게 그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라고 할 수 있다.또 구소련이 체결한 각종 국제조약을 준수하고 다른 공화국들도 이에 따르도록 책임을 지는 역할도 어쩔 수 없이 옐친이 떠맡을 수 밖에 없는 몫이 될것이다. 이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 파탄에 빠진 경제를 소생시켜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다.경제파탄이란 거센 격랑앞에서 침몰위기에 놓여 있는 구소련의 경제개혁호를 무사히 안전지대로 이끄는 선장의 역할이 이제 최고권좌에 오른 옐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내년 1월2일부터 실시키로 돼있는 가격자유화를 둘러싼 러시아와 여타공화국들간의 마찰을 해소하는 일이 가장 화급한 현안이 되고 있다. 옐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한다는 야심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이같은 옐친의 의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가 가격자유화조치를 둘러싼 러시아와 여타공화국들간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옐친이 자신의 의도대로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해도 그를 기다리는 또다른 과제가 있다.위기에 처한 구소련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어떻게 최대화하고 또 이를 각 공화국간에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문제를 옐친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구소련은 이제 15개의 공화국으로 분산됐지만 서방의 경제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창구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역시 옐친이 맡을 몫인 것이다. 경제문제와는 별도로 폭발직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민족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영토문제등을 둘러싼 각공화국간의 이해대립을 CIS를 유지하는틀내에서 조정·무마시키는 중재자의 몫도 옐친이 떠맡아야 할 과제이다. 또 알렉산데르 루츠코이부통령의 옐친자신에 대한 비난등 옐친진영 내부에서 빚어지는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도 새 체제의 안정적 출범을 위해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옐친으로선 어느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그러나 이제 최고지도자가 된 이상 이같은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그자신의 정치력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옐친 자신에 대한 서방세계 일각에서의 불안한 시선을 스스로의 힘으로 불식시켜야 하는 때가 된것이다. 이같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때 옐친은 진정 새로운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옐친 역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퇴진할 것이 확실하다.
  • “지금은 「대권」 보다 경제난극복 힘쓸때”/노 대통령 기자간담내용

    ◎민주계 「연대서명」 관심가질 가치없어/정주영씨 신당추진 이해할 수 없는 일/능력있는 사람 친인척이라고 배제 안해 노태우대통령은 26일 낮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에서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후보결정문제,14대 총선과 연관지은 내년도 정국전망,북한의 핵개발저지를 포함한 남북한관계 등에 대한 구상과 의견을 밝혔다.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올 한해를 어떻게 회고하시는지요. ▲참 바쁜 해였습니다.금년초에 나는 여러분에게 이제 북한도 변할 것이라고 얘기했었습니다.이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그토록 소망했던대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고 비핵화선언에 이어 남북한간에 합의서가 채택됐습니다.그리고 핵부재선언이 뒤따랐습니다.이같은 일들이 우리의 자주역량에 의해 주체적 의지로 이룩해 냈다는데 역사적 뜻이 있습니다. ­내년은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가 됩니다.복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외 정세와 연관지어 내년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금년 못지 않게 격동의 해가 될 것입니다.경제의 블록화현상 등 이념대립보다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주조로 해 국제적 신질서가 형성될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는 물가를 다스리는 일이 첫째 과제입니다.이를 위해서는 우리 상품의 국제적 경쟁력이 회복되는 징후가 연초부터 나타나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진력하겠습니다. 또 대통령선거때부터 공약한 사항을 성실하게 마무리짓겠습니다.오늘 열린 국정평가회의에서 공약사항의 95% 정도가 완료됐거나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민자당의 민주계가 내년 1월중순에 차기대권후보 가시화를 위해 탈당불사·연대서명 등으로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지금 국민의 관심이 제일 높은 것은 경제적 어려움의 극복입니다.통치권자를 위시해 경제인·정치인등 각 분야 지도자가 이것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내년도 정치일정과 관련,후보가시화다 뭐다 하는 것은 언론의 지나친 민감성 때문입니다.일부 소수 정치인도 이런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말릴 수는 없습니다.몇몇 신문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보도되지만 관심 가질 비중이나 가치가 없습니다. ­지난 연초 회견때 대통령 임기만료 1년전에 후계가시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총선전에 후계구도를 가시화하는게 좋다는 생각이었습니까. ▲이것 저것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가시화라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도 있고 어느 사람이 「내가 출마하겠다」고 할 수도 있고 대통령인 제가 「누구가 좋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이것이다」라고 확정짓고 보면 경직되고 상황을 그릇 판단하기 쉽습니다.원칙만은 지켜나간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연초에 가서 내년 정치일정이 많으니 당이면 당,여야막론하고 여러의견을 참작해 자연스럽게 결정을 할 것입니다. 이시점에서는 「이렇게 해야한다」 혹은 언제 해야한다라고 국민에게 밝힐 결정사항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 민자당 민주계에서 국정쇄신과 친인척배제 요구를 들고 나오면서 차기후보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신문이 잘못 쓴 것 같습니다.이런 저런 방법을 쓰는 것처럼 신문이 보도하고 있으나 그런 방법을 쓰는 사람이 우리 당내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한데서 공작을 하는지 흘리는지는 몰라도….글쎄요.제가 민주계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개각의 성격을 두고 특정지역 편중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사는 목표가 설정되면 그 목표에 맞추어야 합니다.나는 어느지역은 쓰고 어느지역은 배제하는 그런 대통령은 분명히 아닙니다.능력위주로 하는 것이 인사의 원칙이며 지역으로 나누면 안됩니다. ­친인척배제도 대통령의 공약이었습니다.박철언 금진호 김복동씨 등이 14대총선 출마의사를 표명했는데 이것은 친인척배제 공약에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은 친인척을 무리하게 공직에 임명않겠다는 것이었으며 그 공약은 분명히 지켰습니다.배제할 친인척이 있어야 배제를 할 것 가닙니까. 14대총선에 당선된 사람은 나의 뒤를 있는 정권에 이바지할 사람이지 나와 인연갖고 갈 사람이 아닙니다.내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친인척에 대해 그들의 능력과 자질,국가에 이바지할 역할을 죽여버리는 것은 나라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그런 원칙은 지켜왔고 앞으로 도 지켜갈 것입니다. ­민자당내에서 총선전에 대권후보를 가시화해야 총선에 이길 수 있다는 시각과 총선후에 해야 유리하다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어느것이 국정운영과 총선에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장단점이 있습니다.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장단점을 분석해서 장점이 많은 것을 때가 되면 건의해올 것이고 합리적인 건의는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최근 한 잡지에 6·29선언의 주체가 누구냐는데 대한 전직 청와대비서관의 글이 게재돼 물의를 빚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로 얘기할 것이 없습니다.큰 일이 있고난 다음에는 공다툼이 있게 마련입니다.2∼3년전 어느 잡지가 크게 다루었던 사안인만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민자당에 당분간 더 조용히 있으라고 특별지시할 생각은 없는지요. ▲당내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조치를 취해야할 것으로는 전혀 보지 않습니다.총재에게도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민주주의가 됩니다.언론에서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데 분란인 것처럼 보도하는 일이 많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군총사령관을 맡은 것과 관련,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정상회담이 빨라질 수 있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이는 늦어질 수 있다는 말도 포함되는 것이지요.김의 추대는 예측되어온 사항으로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니며 우리가 취할 대비책은 이미 취하고 있습니다.김이 군총사령관이 됐다해서 주목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정권을 언제 완전인수할지는 두고볼 일입니다.지금 속단키는 어렵습니다.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게 되는 일은 없을까요. ▲내가 대통령으로 임기를 가지고 있는 기간 동안에는 북한의 권력이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의 신당결성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잘 이해가 안갑니다.아마 본인이 연세도 많고 그동안 경험도 많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지만 스스로가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사임한데 대한 감회는 어떠신지요. ▲착잡한 심정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난 일들을 생각했습니다.위대한 사상가나 개혁자가 자신의 사상과 개혁의 희생물이 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그러나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반응을 보인대로 그는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개혁자로 업적은 희망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 “소연방 해체에 우려 갖고 떠난다”/고르비 사임 하던날 이모저모

    ◎엄숙함 잃지 않은채 또박또박 낭독/시민들 냉담… 식량구입에만 열올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연방대통령은 26일 자신의 사임을 발표하기 3분전에 사임발표문을 펴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당신이 가야 한다면 당신은 가야만 한다.이제 그럴 시간이 됐다』 방송시간이 되자 그는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크렘린궁내 리셉션룸의 TV카메라앞에 섰다. 그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면서 엄숙함을 잃지 않았다. 물론 즐겁거나 행복하진 않지만 떠나야 한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크렘린궁을 나서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음을 읽게 해주는 광경이었다. 지난 8월 군부쿠데타 당시 시시각각으로 돌변하는 급박한 상황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그가 보여줬던 담대한 자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또박또박 이어지는 그의 말들은 간결했으며 한편으론 위엄까지 느끼게 했다. 분노와 회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도덕적 의무감에서」 소연방의 해체에 여전히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만 더이상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소연방대통령직 사임서에 서명하는 역사적 순간은 너무도 간단했다. TV카메라 앞에 앉은 검정색 싱글차림의 고르바초프는 양복주머니에 펜을 넣고 나오는 것을 깜박 잊은듯 했다.이때 동석했던 CNN방송의 톰 존슨사장이 자신의 양복주머니에서 검은색 몽블랑볼펜을 꺼내 고르바초프에게 주었으며 이 볼펜을 건네받은 고르바초프는 곧이어 연방군 최고사령관직 사임과 핵무기 통제권한을 옐친에게 양도하는 내용이 담긴 포고령에 서명했다. 한편 모스크바 시민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발표를 환영하고 그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민들은 특히 성탄절을 맞아 물건을 구하기 위해 텅빈 상점들을 전전하는데 바쁠 뿐 사임발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높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순찰중이던 한 경찰관은 『소련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가 우리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라고 말했으며 과학자인 발레리 카르포프는 그를 신뢰한 것을생각하면 침을 뱉고 싶다면서 『그사람은 우리의 삶을 벌거숭이로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 이외에 무슨 가치있는 일을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노년층에서는 절망과 분노감이 팽배하고 있으나 고르바초프가 군림하던 시기에 성장해온 젊은이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모스크바대학의 한 학생은 『고르바초프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그러나 그는 경제에 약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식품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만 최소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핵단추 확보… 이젠 걱정마라”/옐친,미 CNN방송과 회견

    ◎시장경제 이행 6개월이 고비/경제난 틈탄 보수파반기 우려 고르바초프의 사임으로 사실상 권력승계자가 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25일 미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상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전망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제시했다. ­구소련의 핵무기는 앞으로 어떻게 통제될 것인가. ▲러시아,카자흐,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4개 핵무기 보유 공화국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제안에 따라 핵무기 통제는 한 곳에서 한 사람에 의해 행사돼야 한다고 결정했다.핵단추의 통제권은 고르바초프로부터 본인에게 이양돼야 한다는 결정이 있었다.따라서 핵무기는 한사람에 의해 통제될 것이며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기를 원한다. 또 구소련이 핵무기및 재래식무기와 관련해 서명한 모든 합의와 조약을 우리는 지지하고 지킬 것이다.전략핵무기감축조약에 대한 비준을 같은날 동시에 핵보유 4개 공화국 의회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고르바초프는 언제 사임하겠다고 처음으로 말했으며 좀 더 일찍 사임해야 됐다고 생각하는가. ▲91년2월 말고는 그보다 앞서 사임했어야 됐다고 생각지는 않는다.91년 2월에 고르바초프는 우파 보수주의자들 편을 드는 입장이었다.그러나 되씹고 싶지 않다. ­앞으로 경제·정치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외부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앞으로 6개월 동안 가격을 자유화하고 시장경제로 이행하면서 우리는 모든 주민들 가운데 3분의 2에 달하는 가난한 소비층은 이 조치로부터 제외시킬 계획이다. G­7등 여러 회의를 통해 많은 나라들이 지원을 약속했다.지금까지 말은 많았으나 구체적인 지원은 없었다.며칠전 미국으로부터 몇대의 비행기가 물품을 공수했다. ­극우세력의 반대를 예상하는지,또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 ▲어느 나라든 시장경제로 옮아 갈때 가격자유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우리도 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이 조치는 주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다.그리고 우익세력이 이 조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과 분개를 이 시점에서 이용할수 있다.따라서 우리는 경계를 해야만 한다. ­주민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내년 중반이나 내년 가을까지는 생활수준이 더 악화될 것이다.그 다음 내년말까지는 안정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그 후 생활수준이나 경제활동에서 향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소연방 소멸 공식승인/최고회의/의회 자진해산도 결정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구소련 최고회의(의회)는 25일 비공식 마지막 회의를 갖고 소연방의 소멸과 이를 승계한 새로운 독립국공동체를 공식 승인함과 아울러 자진 해체키로 표결했다. 한때 1백73명의 재적의원으로 구성됐던 상원인 공화국회의는 이날 의결정족수에 크게 밑도는 약 60명의 대의원들만이 참석했음에도 불구,거수표결을 통해 그같이 결정했다.하원인 연방회의는 이날 소집되지 못했다. 대의원들은 소련의 12개 공화국중 11개 공화국들이 지난 21일 독립국가공동체를 창설키로 합의했기 때문에 소연방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누알벡 알림자노프 의장은 최고회의의 자진해산 결정사실도 아울러 발표하면서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크렘린궁에서 적기가 내려졌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자리를 떠야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최고회의는 또한 국립중앙은행인 고스방크의 빅토르 게라센코 총재와 제1부총재,연방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의 사임도 아울러 승인했다.
  • “「소련 74년」이 남긴건 굶주림 뿐”(특파원수첩)

    ◎주민들,이념의 공백속 불확실한 미래에 초조 『고르비가 물러가고 소련이 없어지고 옐친이 부상하고…,다음은 어떤 차례이지요』 25일 하오TV를 통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사임연설을 지켜보던 블라디미르 쿨라긴씨(45·블라디보스토크지기자)는 마치 퀴즈게임하듯 기자에게 반문한다.담담한 그의 말씨가 나타내주듯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벌써 10일째 휘발유 판매가 중단돼 자동차들은 발이 묶였고 빵 한조각을 사려면 영하30도의 추위속에 새벽3시부터 빵가게 앞에 긴 줄을 서야하는 마당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떠나든 국민들의 큰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는 국민들은 오로지 어떻게 이 겨울을 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 이라고 얘기한다. 지난 86년 고르비가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했던 시영빈관은 하룻밤 1백20달러를 받고 외국인들을 재워주는 호텔로 둔갑해 소련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때 고르비를 시중들던 여종업원들은 달러를 갖고와 거들먹거리는 자본주의나라 비즈니스맨들의 비위를 맞추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난 74년간 자국민들에게는 억압과 공포의 절대지배자였고 서방세계에는 막강한 핵무기로 무장한 「예측불능의」 위험한 상대였던 소련의 몰락이 갖는 의미는 크다. 소련의 소멸은 무엇보다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던 공산주의이념과 그에 입각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완전몰락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는 그 체제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지난 한 세대 동안의 동서대결체제가 명실상부하게 종언을 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소련의 붕괴는 이데올로기면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의 우열을 확연하게 가려내준 역사적 이벤트임에 틀림없다.전통적 의미에서 이념대결시대는 이제 더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외도 빈부의 격차도 없고 그리고 눈물 없고 착취 없는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의 약속이 소련국민들에게 남긴 것은 기아와 눈물 뿐이었다』 이 대목을 얘기하는 쿨라긴씨의 목소리는 자못 흥분되었다.자본주의는 자체모순으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카를마르크스의 「위대한 예언」은 빗나갔고 오히려 정반대로 사회주의가 내부의 힘에 의해 스스로 그 막을 내렸다고 그는 단정했다. 물론 앞으로 사회주의가 물러난 과거의 소련땅에서 자본주의가 쉽게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소련국민 대부분이 지난 70년동안 사회주의 외에 어떤 이념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사회주의가 사라진 이념의 공백상태가 무엇으로 채워질지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로 대표되는 슬라브민족주의가 당분간은 이들을 묶어주는 큰 유대역할을 할 것이고 여타 군소 공화국들도 나름대로 국가의 결속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그 테두리 안에서 민족간 갈등과 경제난이 어우려져 혼란도 가중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새로운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긴장된 양자대결상태에서 어느 한쪽의 소멸은 나머지 한쪽에도 필시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그 변화의 모티브는 「대결」 「완승」 「패배」「공멸」등과 같은 과거세대의 수식어가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한 평화의 장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이 과거 냉전기간동안 소위 「공포의 균형」관계를 유지해왔던 소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러시아를 소련의 상속자로 신속히 인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도 자신들의 일차적인 과제가 구소련땅에서 일어나는 불안정,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같다. 과거엔 소련의 강대화가 서방세계의 위협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서방은 소련의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소련의 상속자가 된 러시아가 언제쯤 다시 기력을 회복하게 될지 또 어떤 성격의 국가로 등장할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근대적인 산업국가로서의 국가경영기법을 도입해 재건에 나설 경우 그 장래가 크게 어둡다고만 볼 것은 아니다. 쿨라긴씨는 조국의 엄청난 변혁을 담담하게 맞으면서도 소련의 몰락은 한 세대동안 지속돼온 반목과 갈등의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인류에게 「공존의 장」을 만들어갈 호기를 마련해준 『역사적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자의 견해에는 쉽게 동의를 표했다.
  • 미,소공화국 승인/부시,“러시아공등과 곧 수교”

    【워싱턴·제네바·런던 AP 로이터 연합】 미국을 비롯,유럽공동체(EC)영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이란 리비아등 세계 각국이 25일 잇따라 새로 독립국가 공동체를 결성한 러시아공화국을 비롯한 구소련의 각 공화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했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25일 미국은 러시아공화국과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국제기구들에서 러시아공화국을 소연방의 승계국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부시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연방대통령이 연방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한지 9시간뒤인 26일 상오11시(한국시간)백악관에서 행한 전국 TV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 “냉전종식·동구민주화 이룬 역사적 인물”/고르비 사임 각국 반응

    【워싱턴 외신 종합】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25일 사임을 발표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냉전을 종식시키고 동유럽의 민주주의 달성을 가능케한 금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중 하나였으며 역사에 기리 기억될 것이라고 그 업적을 치하했다. ▲미국=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5일 미국이 러시아공화국의 소련 승계를 승인할 준비를 갖춘 가운데 사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소련의 개혁을 위해 보여준 그의 개인적 용기와 지도력을 찬양 했다. ▲영국=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고르바초프의 사임이 임박한 가운데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역사의 방향을 변화시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나 고르바초프는 바로 그같은 일을 해냈다』면서 소련 대통령으로서 고르바초프가 이룩한 업적을 치하했다. ▲프랑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 옹호에 있어 고르바초프가 이룩한 업적에 개인적인 감사를 표명하며 그에 대한 우정과 행운을 비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말했다. ▲독일=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에 즈음하여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70년 이상의 경직됨과 억압으로부터 구해냈다고 치하했다. ▲일본=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일본 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는 『그의 신사고외교정책 하에서 분출된 동유럽의 극적인 변화를 맞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위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유럽의 혁명적 변화를 가능케한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북한=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26일 개혁정책으로 소­북한관계를 소원하게 한 장본인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을 아무런 논평없이 보도했다.
  • “부시­옐친,곧 정상회담”/미 행정부관리 밝혀

    【워싱턴·카이로 로이터 AFP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과 조만간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미행정부의 한 관리가 26일 말했다. 이 관리는 부시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발표 이후 25일 대소협상에서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옐친 대통령을 협상파트너로 인정했음을 지적,그같이 말했다. 한편 다른 미관리들은 『우리는 옐친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수립을 희망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옐친 대통령에게 매우 분명한 신호를 보내길 원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공화국이 지난 10월 30일 마드리드에서 개막된 중동평화회의 공동후원국으로서 구소련의 역할을 승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재임중 업적등 찬사/부시,고르비에 전달

    【워싱턴 AP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소련 대통령직을 사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재직중 이룩한 업적에 대한 찬사를 전달할 것이라고 미국 관리들이 25일 밝혔다.
  • 고르비,「대권7년」 사임/오늘 새벽 고별연설/핵통제권 즉각 옐친에

    【모스크바 외신 종합】 지난 85년 소련을 이끌어오면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펴 소련의 민주화를 이룩하고 동서대립을 종식시킨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자신이 성취한 개혁의 여파에 밀려 25일(한국시간 26일)사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하오7시 전국 TV 연설에서 사임을 공식발표했다. 이에따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사임연설 직후인 상오2시에 핵통제권을 넘겨 받음으로써 「단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핵무기 통제권이 이양됐다. 이날 사임발표가 즉각적으로 효력을 가지는지 혹은 수일 더 집무를 계속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소연방 대통령직제가 공식폐지되는 금년말까지는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분쟁지역 파견/소군 철수명령/옐친 한편 옐친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핵무기통제권 보유에도 불구하고 핵발사를 명령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등 나머지 핵보유 3개공화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옐친은 이와 함께 소련의 모든 분쟁지역에 파견된구 연방군의 철수를 명령했다고 밝혀 고르바초프로부터 군사·외교 등 모든 책임을 넘겨받았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그루지야 공화국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파견돼 완충군 역할을 하고 있던 2천4백명의 연방 내무부 소속 병력 중 6백명은 이미 철수했으며 이날 중으로 6백명이 추가로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문제 영향력행사 희망/야인 고르비 어떻게 지낼까

    ◎「사회·정치연구재단」에 전념할 듯/정부선 아파트등 제공… 생활 보장 소연방의 소멸로 세계초강대국의 최고통치자에서 러시아공화국의 평범한 한 국민으로 전락한 고르바초프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일단 전직 국가원수로서 물질적 생활기반은 보장받게 됐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24일 고르바초프의 퇴임이후 그에게 아파트와 별장,경호원 20명,전용차 2대를 제공하고 현직수행시의 급여수준인 월 4천루블을 연금으로 지급할 것이며 지급액은 향후 인플레를 감안,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장래계획과 관련,모스크바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회­정치연구재단」이사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이른바 「고르바초프재단」으로 불리는 이 재단은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에 설립됐었다.그러나 그는 지난 22일 미CBS방송과의 회견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정치의 세계를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언급,새로운 체제에서도 정치적 활동을 계속할 뜻임을 비췄다. 한때 그는 새체제에서 상징적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다.그러나 그가능성은 희박하다.옐친은 최근 『새로운 체제하에서 고르바초프가 할일은 없으며 어떤 직책도 준비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았다.고르바초프도 새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과 거부감을 표시화면서 의례적인 역할을 맡을 의사는 없다고 밝혀왔다. 그는 우선은 재단의 일에 전념할 것으로 보이지만 해외에선 인기가 높기 때문에 틈틈이 국제무대에서의 활동도 펴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도 정치에의 강한 의욕을 지니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쌓아온 민주화와 개혁 업적을 온존시키고 대중으로부터도 소외되지 않는 분야에서 자신의 진로를 조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그 어떤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르비어록 ▲핵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겠다(85.3.11 당서기장 취임연설). ▲지구를 핵의 파국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전인류적인 과제이다(86.8.18 일방적 핵실험동결연장발표). ▲국제적인 파급효과를 지닌 우리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국제사회에서 「소련위협」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87.11 연설에서). ▲냉전체제의 와해가 시작됐다.냉전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여는데 전력을 모으자(88.12.31 신년TV메시지). ▲동서분단의 가장 강력한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89.6.18 연설에서). ▲냉전의 참호는 사라지고 있다.편견과 불신,적의의 안개는 걷히고 있다.전세계에 살고 있는 현세대는 문명사에서 확고부동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90.6.1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나는 2년후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지도부는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90.7.5 제28차공산당대회). ▲이제 냉전은 종식되고 핵전쟁의 위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평화의 지평선이 넓어진 것이다(91.1.1 90년 한해를 마감하며 미국에 보낸 메시지). ▲오늘날 모든 사회세력과의 단결을 위해,그리고 모든 갈등을 잊어버리기 위해 상호 함께 일해나가야 할것이다(91.4 연설에서). ▲우리가 시장경제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경제의 일원이 될수없다.우리는 개혁이 필요하다(91.7.30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의 생애에서 주요과업은 이루어졌다.나는 불과 물,바꾸어 말해 공산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새로운 연방의 동료들에 의해 짓밟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연성을 보였다.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실책도 없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나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떠나버렸을 것이다(91.12.13 기자회견). 고르비 발자취 ▲31년3월2일=러시아공 스타브로폴시 인근 프리폴노예서 출생 ▲50년=모스크바대 법학과입학 ▲52년=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60년=스타브로폴지구 콤소몰 제1서기 ▲66년=〃 당제1서기 ▲78년=공산당 농업담당서기 ▲79년=정치국 후보위원 ▲80년=정치국 정위원 ▲85년3월11일=소련공산당서기장취임 ▲87년1월=당간부 비밀·경선도입등 개혁정책 본격화 ▲87년12월=워싱턴 방문,INF폐기협정 서명 ▲88년9월=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년10월=몰타정상회담,냉정종식선언 ▲90년3월15일=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년12월=노벨평화상 수상.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쿠데타 경고후 사임 ▲91년1월=리투아니아공 무력탄압 ▲91년4월=제주서 한소정상회담 ▲91년8월=쿠데타 발발,3일만에 분쇄 ▲91년9월=소련 국가평의회,발트3국 독립승인 ▲91년12월=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공화국 「독립국 공동체」창설선언.소연방 공식해체 발표 ▲91년12월26일=소연방대통령사임
  • 정부,러시아공 곧 공식승인/주모스크바대사관등 명칭도 바꿔

    ◎카자흐등 10개공 승인은 우방과 공동보조 정부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이 확정됨에 따라 이번주말쯤 러시아공화국을 공식 승인할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정부는 또 주소비에트연방한국대사관 명칭을 주러시아공화국대사관으로 바꾸고 공로명주소대사를 주러시아공화국대사로 변경시킬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함께 러시아공화국과 「독립국가공동체」창설에 동참한 카자흐공화국 등 나머지 10개 공화국의 승인문제는 미국 등 주요우방국과 협의를 거쳐 공동보조를 취할 방침이나 우즈베크·카자흐공화국 등 우리 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공화국에는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대로 대사관 교환설치를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알마아타 선언으로 러시아공화국이 구소연방을 승계하도록 했기 때문에 국제법상으로 러시아공화국과는 별도의 외교관계 수립이 필요하지 않다』며 『따라서 우리 정부가 러시아공화국을 공식 승인함으로써 주한소대사관은 주한러시아공화국대사관으로 지위가 변경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와함께 주소한국대사관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우크라이나공화국 등 나머지 공화국에 대해서는 승인문제를 신중히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소연방 이은 「초강국」 부상/막오른 옐친 시대

    ◎핵·중앙은등 장악… 전분야서 주도권/「공동체」는 경제조정역에 머물 공산/식략난등 해결 못할땐 타공화국의 반발 필연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사임하면서 지난 70여년간 세계사의 무대를 휘저었던 「시베리아의 붉은 곰」 소련방은 이제 15개의 독립공화국으로 쪼개져 공중분해됐다.그러나 그 빈자리를 지배할 새 제왕이 등장하고 있다.25일 고르바초프로부터 핵무기발사단추의 통제권을 이양받은 보리스 옐친의 러시아가 새 패자로 등장한 것이다. 외견상으론 11개 공화국으로 이뤄진 독립국가공동체(CIS)가 과거 소련의 법통을 이어받는 것으로 돼있다.그러나 CIS는 각공화국들간의 경제협력조정이란 필요에 따른 이름만의 기구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또 실제로 CIS가 가진 권한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CIS는 경제문제를 위주로 한 EC 형태의 기구가 될것으로 보인다.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CIS는 통합군을 관할할 것이라는 점에서 EC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볼때 소연방 중앙은행의 인수를 시작으로 소련의 전해외공관과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지위,핵무기발사단추의 통제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차지한 러시아가 정치·경제·군사·외교등의 모든 분야에서 다른 공화국들을 이끄는 주도역할을 맡을게 틀림없다.이는 미국이 23일 러시아공화국을 구소련연방의 승계국으로 승인하기로 결정,이를 26일 공식발표하기로 한데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같은 미국의 결정은 러시아가 국제정치무대에서 과거의 소련이 갖고 있던 권리와 의무의 승계를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CIS의 각공화국들이 독자군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군사부문에서의 앞날이 조금 불투명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핵무기의 통제권을 러시아가 장악한다는 점을 감안할때 결국 군사부문에서도 러시아의 주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외교분야에서도 서방의 지원이 절박하다는 점에 비춰볼때 러시아는 물론 모든 공화국들이 과거의 소련이 맺었던 국제조약을 성실히 준숌할 것으로 보이며 외교정책에서 큰 변화를 보일 것같지는 않다.러시아의 초강국 부상은 과거 소연방내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러시아가 CIS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러시아가 지게될 책임 또한 가장 크며 러시아의 앞날 또한 과거의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맞을 최대의 당면과제는 역시 경제파국으로부터의 탈출이다.옐친은 이를 위해 내년 1월2일부터의 가격자유화 실시등 매우 급속한 경제개혁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공화국들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24일 각공화국 총리들간의 첫회담이 아무 합의도 얻지 못한채 실패로 끝난 것도 가격자유화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그만큼 이 문제는 옐친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옐친의 페이스대로 경제개혁 정책이 추진될 것이다.이는 경제부문에서의 상호의존성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없고 경제적 협동이 불가피하다는 각공화국들의 판단에 따라 CIS가 창설된 것이란 점을 감안할때 각공화국들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싫더라도 옐친주도의경제개혁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옐친주도의 경제개혁 추진이 얼마나 빠른 시일내에 그 결실을 얻을수 있느냐는 점이다.카리스마적인 옐친의 통치방식은 강한 추진력을 갖는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한 국민들과 여타 공화국들의 불만폭발의 불씨는 상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경제문제해결 못지 않게 러시아의 목줄을 죄는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민족갈등의 해결 문제이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간의 분규를 비롯,슬라브민족의 주도에 대한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의 반발,그루지야공화국내의 남오세티아 문제등 이미 표면화한 것만도 처리하기에 벅찬 형편이다.여기에 다양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는 러시아공화국자체내에서만 이미 첸첸­인구셰티아와 타타르등 2개 자치공화국이 독립을 내걸어 중앙정부에의 반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광대한 영토로 구성된 러시아공화국 중앙정부의 권한은 이들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자치공화국들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볼때 이들 소수민족의 독립움직임에 대한 옐친의 대처는 이제까지 효율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같다.물론 옐친이 이제까지는 자신의 권력강화와 중앙정부의 해체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란 면도 있을 것이다.이제 과거 소련연방을 대신할 러시아의 1인자로서 옐친이 이문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파탄에 빠진 경제문제와 복잡한 민족갈등을 함께 해결할 묘안을 옐친이 찾을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 고르비의 퇴장(사설)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25일 마침내 사임을 발표했다.31일의 소련방공식소멸에 따르는 불가피한 퇴장이다.그가 영도하던 소련방과 함께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나는 것이다.85년 3월11일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지 6년 9개월만의 사임이요 퇴장이다. 공산종주국 소련의 개방과 개혁 그리고 신사고외교로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인물의 퇴장인 것이다.그는 74년간에 걸친 1당독재의 비이와 부정·부패 그리고 비능률의 한계에 이른 소련공산당과 공산체제에 과감하고도 혁명적인 개혁의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동구공산권을 해방하고 독일통일을 허용했다.미국과의 획기적인 군축으로 세계적인 화해·협력·공존의 탈냉전시대를 개척한 세계적 지도자였다.한·소수교의 문을 열고 제주도를 방문한 그는 한반도의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세계적인물의 한사람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물론 세계는 그의 퇴장을 보면서 아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가 시작한 개혁이 미처 성공의 결실을 거두지도 못한 상태에서아니 실패라는 평가의 혼돈 상태에서 바로 그 개혁의 결과에 강요당한 그의 퇴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사회주의의 완전포기가 아니라 개혁을 통한 구제와 강화에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그의 이상이었다.사회당으로 개혁된 공산당이 민주화된 사회주의 소련의 집권당으로 남기를 그는 바란 것이 분명하다.소연방의 소멸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소망대로만 움직여 주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르바초프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그의 희망은 바람직스러운 이상이었는지 모른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방법론상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오늘의 소련경제현실과 민족갈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방의 소멸과 그의 사임자체가 그것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에게는 나름대로의 소임이 있는 법이라면 고르바초프의 그것은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짐승의 얼굴을 한」1당독재의 공산주의체제 부정과 개혁의 과감한 시작에 있었는지 모른다.그런 시각에서 보면 그는 자신에 부여된 역사의 소임을 충분히 그리고 훌륭하게 완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을 수습하고 굳히고 발전시키는 것은 다음 지도자들의 소임임에 틀림없다.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지난 8월의 쿠데타 소동으로 한계를 드러낸바 있다.새출발의 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그렇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옐친의 독립국공동체는 그 전기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르바초프가 공산당해체와 독립국공동체 인정및 연방해체와 자신의 사임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의 퇴장은 그가 시작한 개혁의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일지 모른다.고르바초프의 위대한 시작이 옐친등에 의한 훌륭한 결실로 이어지길 우리는 바란다.
  • 그루지아 반군/의회청사 철수/외무장관 밝혀

    【모스크바 타스 연합】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 그루지야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정부군에 공세를 펴고 있는 반정부군이 정부군의 저항 거점인 의회 청사에서 철수,양측간의 전투가 중단됐다고 무르만 오마니드제 그루지야 외무장관이 25일 밝혔다.
  • 고르비/「해빙」을 부르고 「개혁」에 지다

    ◎「영욕의 7년」 집권서 퇴장까지/「통독의 문」 여는등 냉전종식을 주도/냉전장악 실패·「빵」 해결못해 “몰락 길”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5년 3월11일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제8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돼 6년9개월의 집권기간동안 철저한 현실노선에 입각한 정책으로 「제2의 소련혁명」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변화를 소련과 국제사회에 몰고 왔었다. 그가 권좌에 오르면서 동토의 소련국민들은 볼셰비키혁명 68년만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았다. 이어 89년에는 사상최초로 복수정당후보를 상대로 한 선거가 치러졌다. 90년 2월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포기했고 고르바초프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다.서구민주주의 개념을 도입,당과 정부의 국가경영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에 바탕을 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은 국제정치면에선 세계사의 변혁을 주도해 왔다.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항상 군비축소와 주권존중이라는 「신사고 외교」를 원칙으로 삼았다. 고르바초프는 집권한지 8개월만인 85년11월 제네바에서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던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눔으로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87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체결을 비롯,88년 동유럽주둔군 50만 감축,91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등 그의 혁신적인 군축정책은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난 45년 얄타협정으로 출발한 미소 양극체제의 동서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이와함께 고르바초프시대의 최대업적인 독일통일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이루어졌다. 그는 또 88년5월 아프가니스탄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단행했다. 89년12월 몰타에서 열린 미소정당회담에서는 정식으로 냉전시대의 마감을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중국·이스라엘등 갈등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과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연 것도 다름아닌 그의 신사고 외교의 결과였다. 고르비는 셰계를 움직인 정치인답게 다양한 별명도 갖고있다.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세계의 대도박사」 「기적의 마술사」등 경탄스런 수식어가 붙는가하면 「금세기들어 가장 탁월한 소련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고르비가 상을 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노벨상에 무게를 더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은 「신사고 외교」의 바탕이 되어 탈냉전·군축등에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빵」문제는 해결하지못해 그를 몰락의 길로 재촉했다.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자신이 사회주의에의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으며 개혁의 속도를 끝내 스스로 통제하려고 했기때문이다.그는 사유화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거부했다.그리고 경제적인 비상조치를 취할수 있는 포고령 발동권을 갖는등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90년 여름 급진적인 내용의 경제개혁안인 「샤탈린의 5백일 개혁안」을 거부하면서 개혁파인사들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보수파들이 득세했다.상황이 이렇게 바뀌게되자 그해 12월 그의 측근이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독재출현과 쿠데타를 경고하며 사임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발생,고르바초프는 이들에 의해 연금을 당했다. 이 쿠데타는 3일천하로 끝나기는 했지만 고르바초프와 연방정부의 권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그는 쿠데타이후 공산당 활동도 정지시키고 보수적인 색채의 내각도 물갈이했다.원성의 대상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도 숙정했다.그리고 발트해3국의 독립도 승인했고 각 공화국에 폭넓은 권능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연방조약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연방정부의 권위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지난 1일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으로 소련방과 고르바초프에게 결정타를 안겼다.그 뒤를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국 공동체 구성은 소련연방의 사망신고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환상적 꿈에서 깨트려 현실적 사회로 되돌리려 했으나 70여년간 경직될 때로 경직된 공산체제의 「현실」의 벽에 부딪쳐 끝내 실각을 자초하고 말았다. 1931년 3월2일 러시아 공화국 남쪽 스타브로폴지역의 프리폴노예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고르비는 학비 때문에 고등학교를 3개월이나 휴학하는등 어려운 청소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교시절 집에서 16㎞ 떨어진 읍에서 방 한칸을 얻어 자취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 모범학생이었다.이때만해도 그가 훗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 법대에 입학,마르크스·레닌저작 외에도 로마법,로크의 정부론,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나갔다.심지어 법대에는 미국헌법까지도 열람이 허용됐는데,이같은 서구사상을 담은 「금서」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탈린 치하에선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이때의 지식들이 현실정치와 접목되어 뒷날 페레스트로이카로 체계화 된다. 1954년 대학재학시절에 만난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한 고르비는35세의 나이에 고향인 프리폴노예 시당위원장이 됐고 4년후엔 보다 넓은 지역인 스타브로폴지구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그는 다시 대학에서 농업경영학을 공부,학위를 얻고 농업문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고르바초프는 1978년 농업담당 당서기가 되면서 중앙무대인 모스크바로 진출하게된다.그가 모스크바로 올라오게된 계기는 농정실패에 책임을 느낀 쿨라코프가 자살함으로써 농업담당 당서기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그에게는 확실히 소련 역대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관운이 따르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러나 소련사회에 평화와 자유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개혁가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역사의 아이러니임에 틀림없다.동토의 땅에 개혁의 문을 열어젖힌 그는 결국 그 문으로 퇴장한 것이다.
  • “고르비 내일 사임”/크렘린 대변인 밝혀

    【모스크바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은 25일 밤9시(한국시간 26일 새벽4시) 사임을 발표한다고 안드레이 그라초프 대변인이 24일 밝혔다. ◎핵버튼 옐친에 인계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5일 「핵단추」를 나에게 인계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24일 말했다. 【워싱턴 로이터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사임한 뒤 신설되는 국제연구기관의 책임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그의 부대변인인 알렉산더 리코탈이 24일 밝혔다.
  • 고르비,“정계은퇴할 생각없다”/미 CBS방송과의 회견요지

    ◎옐친 성실하지만 민주적이길 바라/개혁선택 후회없어… 위기처한 조국 안떠나 소연방의 소멸과 함께 사임이 임박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방영된 미CBS방송과의 단독회견에서 대통령직을 물러나더라도 정치에서 손을 뗄 생각은 없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개혁정책이 인민들의 생활을 악화시켰다고 인정함으로써 경제적 위기상황을 평가하는데 오판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다소 초췌한 표정의 고르바초프는 부시행정부가 최후 순간 자신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시행정부에도 오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의 대학같은 기관들로부터 강의를 맡아달라는등 여러가지 제의가 있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소련을 떠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회견의 요지. ­옐친이나 셰바르드나제가 한때 자리를 물러났다 복귀했듯 다시 돌아올 계획이라도. 『정치의 세계를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내가 할수있는 역할은 조만간 결정될 것이다.알마아타회의 결과의 공식문서를 받아 독립국공동체가 현실임을확인하는대로 수일내 나의 결정을 내릴 것이다』 ­당신은 지금 외교정책에서 아무 일도 해오지 않은 사람과 교체되고 있다.세계가 잘 알지 못하는 옐친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까지 그는 정치가로서의 면모만이 부각됐다.그러나 그는 많은 일을 할수 있음을 보여줬고 실제로 많은 일을 해냈다.엄청난 책임이 그의 양어깨위에 달려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그의 개인적인 인간성은. 『그는 성실하다.압력에 굴하지 말고 동요하지 않으며 일관성있기를 바란다.또한 그가 보다 민주적이기를 희망한다』 ­당신이 한 일에 대해 만족하는가. 『근본적으로 개혁의 길을 선택한데 대해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물론 개혁이 인민의 생활을 악화시켰음을 알며 다소의 오판이 있었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몇개의 미국대학들은 당신이 미국에 와 교수직을 맡는 일에 관심을 표명했는데.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고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이곳에 살 것이다.더욱이 이같은 위기상황속에서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이 없다.미국에서뿐 아니라 일본 독일프랑스로부터도 진지하고 흥미있는 제안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제안을 나의 이곳에서의 정치적·사회적 활동과 연관시키려 노력할 것이다』 ­부시대통령이 현재의 소련상황에 대해 입장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나. 『부시나 베이커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것은 이나라에서 벌어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그러나 세밀히 관찰하면 잘못 판단한 것은 우리뿐 아니며 미국쪽도 마찬가지다.그러나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미정부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 “고르비,사임후 세계순회 강연 희망”/딸 일리나양 밝혀

    【도쿄 연합】 독립국공동체 발족으로 퇴진이 확정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21일 자신의 거취에 대해 『협정 공문서를 받아 공동체가 현실적이라고 납득되면 수일내에 스스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미 CBS­TV와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우리나라에는 전진이 필요한데도 너무나도 시간을 쓸모없이 허비하고 있다.지금이야말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언급,독립국공동체의 발족을 인정했다. 그는 또 서방의 우려가 강한 핵무기의 관리 문제에 대해 『소련 핵무기의 지휘.관리기구는 미국보다 견고하고 관리가 느슨하지 않다』고 강조,장래 핵관리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앞으로 대처 전 영국총리와 같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하는 「국제적인 정치가」가 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22일자 영국의 일요신문 선데이익스프레스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딸 일리나양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