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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 (7) 尹潽善과의 갈등/金在淳 前국회의장

    1960년 8월29일 이른 아침 張勉총리를 비롯해 제2공화국 장관들이 서울역으로 모여들었다.이들은 ‘尹潽善대통령이 휴가 겸 민정시찰을 떠나니 모두 나와 전송하라’는 대통령 비서실의 전갈을 받고 나온 참이었다.이윽고 ‘관1호’차를 타고 尹대통령 부처가 등장했다.尹대통령은 張勉내각의 정중한 배웅을 받으며 오전 8시 특별열차 편으로 떠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수군거림이 일었다.“내각책임제인데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전송나오라고 ‘지시’하는 짓은 무엇이며,그렇다고이에 군말없이 따르는 張내각은 또 뭐냐”하는 말들이었다.한마디로 “尹潽善은 월권한 것이고 張勉은 제 밥그릇도 못챙긴다”는 평이었다. 張勉정부 출범 닷새 후에 일어난 이 간단한 삽화는 ‘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는다.민주당 신·구파의 대결이라는 큰 구도 말고도 ▒권위주의적인 尹潽善과 다툼을 싫어하는 張勉의대조적인 성격 ▒처음 도입한 내각책임제를 양쪽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듯한 미숙함들이 이 삽화에는 들어 있다. 제2공화국은 의회가 정치의 중심인 내각책임제였다.대통령은 의전적인 의미의 국가원수에 불과하며,총리야말로 행정권 담당자인 동시에 국정(國政)에관한 총괄적인 책임자였다.그러므로 尹潽善대통령은 국민과의 접촉을 자제하고,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리를 두는 게 도리였다. 그런데 尹대통령은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록한다’에 수록)에서 “틈틈이 민정시찰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밝혔듯이 자주 거리로 나섰다.도로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절이라서 그가 지방시찰에 나설 때면 으레 특별열차가 동원되곤 했다. 문제는 대통령과의 잦은 접촉이 국민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느냐에 있었다.정치학자들은 “국가통치의 중심이 총리인지,대통령인지 국민들이 혼동을 일으킨다”면서 “이같은 혼란은 정치안정에 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또 “尹대통령이 내각책임제에 상관없이 李承晩대통령이 누린 권위를 자신도 유지하고 싶어한 듯하다”는 풀이도 뒤따른다. 尹대통령은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을 청와대로 자주 불러들여 모임을 가졌으며 張勉내각의 정책과 배치되거나,그것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불쑥불쑥 내곤 했다. 60년 10월10일 許政과도정부때 임명된 시도지사를 張정부가 경질하자 尹대통령은 구파의 입장을 반영해 ‘유감’을 표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張내각에서 “왜 정치에 관여하는가”라고 항의하자 그는 “국가적인 큰 잘못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했다”고 대응했다.다음해 1월12일 尹대통령은민·참의원 합동회의 치사를 통해 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규정하고 “정쟁의 휴전을(당파간에) 협정하라”고 촉구했다.그는 “한 개인,한 당파가당면한 난국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당파이익을 위해 이를 부정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張勉내각을 겨냥해 거국내각을 구성하라는 촉구였다. 張내각과 민주당 신파는 당연히 발끈했다.새해 들어 사회가 안정돼 가고 따라서 경제건설에 주력하려는 마당에 ‘국가적 위기’‘난국’ 운운하며 찬물을 끼얹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분개했다.朱耀翰·金永善 등 張내각의 핵심 각료들은 尹대통령이 내각을 붕괴시키는 명분을 쌓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張勉과 尹潽善의 갈등은 3월23일 ‘청와대 요인회담’(일명 청와대 4자회담)에 이르러 극점에 다다른다.그 전날 밤 서울에서는 반공법·데모규제법 제정을 반대하는 횃불데모가 있었다.張勉정부 때의 마지막 대규모 시위로,밤에 횃불을 동원한 방식 때문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23일 오후 8시 청와대에는 張勉총리·尹潽善대통령·郭尙勳민의원의장·白樂濬참의원의장이 모였다.張내각의 국방장관인 玄錫虎와 이미 신민당으로 분당한 구파의 金度演 柳珍山 梁一東 趙漢栢 徐範錫도 자리를 같이했다.참석자들이 남긴 회고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이어서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그 윤곽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張총리는 ‘반공을 위한 국민운동 전개를 논의하자’는 연락을 받고청와대로 갔다.처음엔 그런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전개되더니 어느결에 ‘정권문제’로 화제가 바뀌었다.이윽고 尹대통령이 “혼란한 정국을 극복할자신이 있느냐”면서 은근히 총리 사임을 종용하더라고 회고했다. 반면 尹대통령은,참석자들이 張총리에게 “거국내각이라도 만들어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고 밝혔다.이에 張총리는 “내가 그만두면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더라는것.그러나 尹대통령은 모임이 서로를 이해하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고 술회했다. 한편 柳珍山은 “尹대통령이 ‘현상유지책만으로 안된다면(정국을 담당할인물을)한번 바꿔 봐야 할 게 아니오’라고 일격을 가하자 張총리가 얼굴이창백해져 변명을 했다”면서 張총리가 끝내 궁지를 면치 못했다고 기록했다. 참석자들은 밤 11시30분쯤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내린 것은없었다.다만 이 모임에서 나온 말들은 일절 발설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다음날 白樂濬이 회담 내용을 공표하는 바람에 각 신문은 ‘尹대통령이 張총리에게 정권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대서특필했다.張정부와 신파가 격노한 것은 당연했다.李錫基 민주당 원내총무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야당 대표들만 불러 놓고 張총리에게 정권을 내놓으라고 말한 사실은 언어도단이다.청와대는 음모를 꾸미는 곳이다.尹대통령이 앞으로도 그런 식의 정치간섭을 한다면 우리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張勉과 尹潽善 사이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지경이 됐다.내각책임제에서 반목하고 갈등하는 총리와 대통령의 관계는 ‘정치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5·16쿠데타가 발생한 뒤 힘을 합쳐 쿠데타를 진압해야 할 두 사람은 최소한의 연락마저도 유지하지 않는다.그만큼 불신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 張내각 외무부 정무차관 金在淳 前국회의장 金在淳전국회의장(76·월간 ‘샘터’ 발행인)은 張勉내각에서 외무부와 재무부의 정무차관을 지냈다.5·16쿠데타 후 ‘혁명검찰’에 의해 ‘반혁명죄’로 구속돼 복역하다 주체세력내 지인의 도움으로 열달 만에 풀려났다.이후 공화당에 참여했고 金泳三정부에서 국회의장직을 사퇴하며 정계를 떠났다. 그때 남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유행어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金전의장은 “張勉정부는 탄환 대신 투표용지로 세운 민주정부인데 지키지를 못해 아직도 국민 앞에 죄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민주당이 비록 신·구파로 나뉘어 있었지만 해공(申翼熙)·유석(趙炳玉)이 계실 때는 張勉박사와의 사이에 조금도 틈바구니가 없었다”고 강조했다.그 예로 19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정·부통령 후보를 뽑을 때도 張勉이 趙炳玉에게 3표차로 석패했지만 아무런 잡음이 없었음을 들었다. “민주당 신·구파가 대통령 후보,당 대표 자리를 놓고 표대결을 벌이지만결과에는 승복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밝힌 金전의장은 “국무총리 인준때해위(尹潽善)가 상산(金度演)을 먼저 지명한 것은 배신”이라고 단정했다. ‘7·29총선’후 대통령은 구파에서,총리는 신파에서 나눠 맡기로 했는데尹潽善을 대통령으로 먼저 뽑고 나니 구파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그는 “학생·시민이 피 흘린 대가로 정부가 들어섰는데 구파가 민의를 거슬러대통령·총리를 독점하려던 게 배신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尹대통령의 정치 간섭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張총리의리더십 부족이라는 평가에 대해 金전의장은 “그것이 張박사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해위의 월권을 막으려면 사사건건 따지고 싸워야 하는데 張박사는 누구하고 다투는 분이 아니어서”라는 설명이다.그는 “훗날 되돌아보니 張박사처럼 책임을 맡은 분이 겸양만을 내세우는 게 꼭 옳으냐는 생각도 들었다”고아쉬워했다. 金전의장은 “사실 해위는 張박사와 신파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몇가지 사례를 소개했다.가령 59년 전당대회때 尹潽善이 최고위원으로 뽑힌 것도 신파에서 “점잖은 분이니 밀어주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張박사는 나를 평소에 ‘재순군’이라고 부르며 무척 아껴주셨다”고 회고했다.金전의장은 “민주주의는 결국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높아져야이루어지는 것인데 당시는 張박사 같은 분을 제대로 이해하는 상황에 이르지못했다”면서 “정말 아까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용원
  • EU집행위 싸고 英·獨 대립

    ┑브뤼셀 연합┑전격 사임을 선언한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의 과도체제 유지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차기 집행위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나올상반기 EU 의장국인 독일 정부 관계자들은 최소한 상반기 중 과도 체제를유지하면서 당면 과제인 재정 개혁 타결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각국 정상들과 협의해 조속히 해결한다는 방침 을밝혔으나 베를린 회담에서 후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는 어려울것이라고 말해 집행위 과도 체제의 유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 EU 부패얼룩 집행위원 전원사퇴…40년래 최대 위기

    연초 단일통화를 출범시키며 결속을 과시했던 유럽연합(EU)이 부정비리의혹으로 집행위원 전원이 사임키로 함으로써 40년래 최대 고비를 맞았다. 자크 상테르 EU집행위 의장은 16일 “특별위원회 보고서를 감안,집행위원전원의 사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U집행위원은 역내에 적용되는 법률 제안과 집행 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으며 15개 회원국 20명의 위원으로 각국 정부가 임명한다. 이들이 사임키로 함으로써 옛 동구권 국가의 EU편입에 따른 예산분담금 협상 등 다음주로 예정된 EU정상회담이 차질을 빚게 되고 회원국내에서는 정치바람이 불 전망이다. 특위는 지난 1월 이후 6주간의 조사를 마친뒤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집행위원이 비리에 개입한 명백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으나 집행위원이나 집행위 자체가 책임을 져야 할 비리사례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 (6) 尹潽善과의 갈등(上)/장면·윤보선

    1960년 8월19일 오후 1시24분 ‘張勉총리 인준’투표를 막 끝마친 민의원 본회의장에는 긴장과 흥분이 감돌았다.두번째로 총리 지명을 받은 장면이 인준에 성공해 취임할 것인가,아니면 그마저 실패해 정국이 계속 표류할 것인가. 1시37분 郭尙勳 민의원의장이 결과를 발표했다. “총투표수 225,가(可)에 117,부(否)에 107,기권 1.가가 정족수인 과반수이상이므로 가결된 것을 선포합니다.”4·19가 일어난 지 딱 4개월 만에 민주혁명 수행의 대임(大任)이 장면에게맡겨지는 순간이었다.총리가 된 장면은 곧바로 그를 지명해준 尹潽善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취임인사를 한다. 장면과 윤보선의 이날 만남은 유쾌해야 마땅한 자리였다.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한 지 5년 만에 ‘李承晩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치의 주역이 된 두 사람이었다.같은 당의 오랜 동지인 총리와 대통령은 ‘4·19정신’을현실정치에 구현하고자 서로를 격려하고 협조를 다짐했을 법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다.‘총리 지명’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민주당 신·구파간 갈등이 앙금으로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4월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유일했다.민심도 이를 인정해 7월29일 치른 민의원·참의원(상원)선거에서민주당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은 무려 172석(78.5%)을 차지했다. 문제는 민주당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의석 분포를이룬 사실이었다.따라서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려고 암투에 들어갔다. 그즈음 민주당 지도층의 면면을 보면 장면이 단연 으뜸이었다.그는 56년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선출됐고,‘3·15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부정 탓에 낙선했지만 민주당의 대표주자였다.게다가 59년 11월부터 당수인 대표최고위원을맡아왔다. 반면 구파쪽은 조병옥 서거 후 명확한 리더가 없었다.당시 구파였던 高興門(국회부의장 역임,98년 작고)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조병옥이 없는 민주당은 곧 신파인 장면의 천하가 될게 분명해 보였다.민주당 내에서 국민적 인기로 보아 그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평소 말이 없는 윤보선과 고집이 센 金度演이 있었으나 장면의 맞수는 아니었다.”국민 여론이나 당내 인식이 이같았는데도 구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김도연을 총리로 밀어 두 자리를 독점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그 까닭은 국회 부의장선거에서 표대결로 신파를 누른 적이 있어 자신을 가진 데다 구파 내 세력이 윤보선·김도연으로 양분돼 양쪽을 함께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추대해 구파에게 일단 한 자리를 준 뒤 총리는 자파의 장면이 차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8월12일 열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은 208표(재석 259명)를 얻어당선된다.이제 관심은 윤대통령이 누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인가에 쏠렸다.신파의원들이나 국민 대다수는 ‘설마 구파가 총리까지 차지하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고 구파 내에서도 鄭憲柱·閔寬植의원 같은 이들은 정치 도의를 내세워 독점에 반대했다. 8월16일 윤대통령은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한다.통보를 받은 민의원의장 곽상훈은 장면을 지명하리라는 믿음이 깨지자 즉시 청와대로 쫓아가 항의한다.윤대통령의 해명을 들은 그는 “아마 김도연씨는 안 될거요” 라고 말하고는물러나와 김도연의 총리 인준을 적극 방해한다(회고록에서 발췌). 김도연은 다음날 총리 인준 투표에서 정족수보다 3표 모자라게 득표해 인준에 실패한다.8월18일 윤대통령은 장면을 총리로 2차 지명했고 장면은 다음날 인준을 받는 데 성공한다. 60년 8월 민주당의 선택은 마땅히 장면이어야 했다.그런데도 당내 파벌의 이익을 앞세워 김도연을 1차로 총리 지명하는 바람에 신·구파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렇다고 신·구파 갈등이 장면총리와 윤보선대통령에게 그대로 옮겨갈 이유는 없었다.내각제 하에서 대통령은 당적(黨籍)을 떠나 국내정치에 초연하게끔 자리매김돼 있었다. 하지만 윤대통령은 이후에도 구파의 지도자처럼 행세하며 장면총리와 팽팽한긴장관계를 유지한다.그리고 그 긴장은 정치불안의 주요소로 작용한다. 이용원- 張勉과 尹潽善 장면과 윤보선은 제2공화국의총리와 대통령으로 만날 때까지 외형상 비슷한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둘 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해외유학을 다녀오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서 차근차근 위상을 높여나간다.그러나 그같은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장면은 인천세관 간부인 張箕彬의 맏아들로 출생해 21살때 카톨릭측의 주선으로 도미,뉴욕 맨해튼대에서 교육학·종교철학 등을 공부한다.귀국해 잠시카톨릭 평양교구 일을 보다 서울 동성상업학교에서 교직을 시작,그 학교 교장으로서 광복을 맞는다. 윤보선은 구한말 중추원 의관을 지낸 尹致昭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다.본인말고도 6촌 이내에 집권당 당의장서리,장관,서울대총장 등 장·차관 이상만 13명이 나온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이다.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고고학을 배웠다. 둘은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장면만 당선된다.윤보선은 54년 3대 의원 선거때 비로소 국회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출범하자 장면은 UN총회 한국수석대표,초대 주미대사,제2대 국무총리를 잇따라 하며 건국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을 세운다.이 기간 윤보선은 4대 서울시장,2대 상공장관을 지내지만 각각 재임기간이 1년도 안돼 물러난다. 두 사람은 55년 출범한 민주당에서 한식구가 된다.장면은 처음부터 최고위원 5명 가운데 하나였고 신파의 지도자였다.56년 부통령으로 당선된 데 이어 59년 전당대회때는 대통령후보 경쟁에서 조병옥에게 지지만 대표최고위원 선출에서는 조병옥을 누른다.윤보선은 이 대회에서 조병옥의 구파 몫을 이어받아 처음으로 최고위원이 된다. 60년 8월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 정치적인 경력에서 장면은 단연 윤보선을 앞선다.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다른 데 있다. 장면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 무슨 일을 했건 ‘성실하고 근면했다’는 점에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반면 윤보선은 달랐다.이는 66년에 발표한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술하다’에 수록)에서 스스로 밝힌 심경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윤보선은 상공장관에 취임해 “업무를 거의 파악한 서너달 후엔 벌써 입맛이 떨어져 버렸다”고밝혔으며,국회에 진출해 원내총무를 맡고는 “사임을 해도 안받아줘 병 난 것을 기화로 부산에 내려가 요양하며 겨우 수리시켰다”고 회상했다.심지어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찾은 민원인들로부터 들은 여러가지 하소연 내용을 설명하고는 “이같이 되풀이되는 고통은 하루빨리 청와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굳혀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던 그가 5·16쿠데타 후에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열달 동안 대통령직을유지한다.청와대를 떠난 뒤 반(反)朴正熙 투쟁의 선봉에 서지만 박정희 사후 또 한차례 변신한다.全斗煥정권을 인정하고 87년 대선에서 盧泰愚를 지지한 것이다. 이같은 윤보선의 정치역정을 두고 학자들은 ‘명사(名士)정치’의 한 행태로 풀이한다.劉載一 대전대 정외과교수는 “명사정치의 특징은 시대적 과제를고민하기 보다 권력 획득,품위유지에 더 집중하는 데 있다”면서 “따라서명사 정치인들은 종종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궤적을 걸은 듯한 장면과 윤보선의 삶에는 이처럼 본질적인 차이가있었다.이는 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 재조명할 때 필히 고려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용원
  • [사설] 정치개혁은 시대적 요청이다

    지난 11일 있었던 청와대의 주례 당무보고는 각별한 의미의 모임이었다.金大中대통령은 이날 여당내의 여러가지 엇갈린 쟁론들을 수습했다.그것은 지도체제 개편과 관련된 쟁론들이었다.金대통령은 또한 정치개혁작업을 될수있는한 빨리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물론 국민회의 당직자들에게 한 말이지만 그 화두의 반향은 야당을 포함한정치권 전체에 미쳤다.두말할 것 없이 정치개혁은 정치권의 절박한 현안이며 밀린 숙제다.정치권은 유일한 개혁의 무풍지대,사각지대로 남아있다.정치개혁은 언제 누가 누구에게 얘기하건 그것은 정치권 전체를 향한 얘기일 수밖에 없다.金대통령은 실로 정치권 전체에 대해 밀린 숙제의 해결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개혁은 국민의 정부의 공약이다.그 확고한 실천의지가 대통령의 선 정치개혁·후 전당대회의 표현으로 표명됐다.金大中대통령은 이미 올해가 정치개혁의 해가 될 것임을 천명해두고 있다.국민과의 TV대화,청와대출입기자 회견등 여러차례 그 계기가 있었다.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이번 청와대 주례회동이다.바라건대 이제는 정치권 전체가 소모적 쟁론과 정쟁에서 벗어나 정치개혁작업에 매달려 주어야겠다.대통령의 얘기가 있었다 해서가 아니다.정치개혁은 국민의 요청이자 시대의 요청이다.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金대통령이 여당 안의 소모적 쟁론을 시의적절하게 수습했다는 생각이다.의견이 엇갈리던 지도체제의 틀과 구성방법에 대해 매듭을 지었다.총재 외에는 경선불가,단일지도체제 유지 등의 방침을 제시했다.그것을 정략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하며 타당하지 않다.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몹시 따갑다. 국회는 고통받는 민생과 거리가 멀다.그렇다고 활발한 정치무대가 돼주는 것도 아니다.방탄국회란 말이 상징하듯이 국회는 파행으로 얼룩져 있다.정략과 파당의 대결무대다.지금의 국회는 한마디로 본령에 충실한 정치무대가 아니다.이 점 여야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공동여당간의 갈등,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자제되는 것이 마땅하다.어차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모든 정치인들과 정당이 얼굴을 마주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소모적인 쟁론과 정쟁은하루빨리 떨쳐 버려야 마땅하다. 정치개혁작업은 정치인들에게 고통스러운 작업이다.그런 만큼 시간도 많이소요될 수밖에 없다.이것이 바로 작업을 서둘러 주어야 하는 까닭이다.청와대 주례보고는 대통령과 집권당간의 행사임에 틀림없다.하지만 정치개혁은국민 전체의 화두다.따라서 그것이 정치권의 화두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을 야당도 명심해주기 바란다.
  • 초등교 전문교육 ‘전담교사제’ 실시전부터 반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초등학교 교사로 채용하는 교과전담교사 제도를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은 교과전담교사가 신분보장이 안되는 계약직이라고 불만스러워 한다.처음 알려졌던 것보다 모집인원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소식에도 못마땅해 한다. 반면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 제도가 초등학교 교사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자리를 빼앗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교과전담교사는 초등학교 교과목 가운데 영어·체육·음악·미술 과목을 맡아 가르치게 된다.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 교과목을 전공 교육을 받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에게 맡기자는 취지다. 오는 5월쯤 실시될 교과전담교사 선발시험 경쟁률은 치열해질 전망이다.자격증을 갖고도 중등교사 자리를 구하지 못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준비생들은 교과전담교사제가 교사임용 적체를 다소나마 해소해줄 것이라고 반기면서도 신분 보장이 안된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있다.1년 단위 계약직이어서 계속 교사생활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임용고사가 아닌 별개의 선발시험으로 채용하는것도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시험과목은 정식 임용고사와 같이 전공과 교육학·교육과정 등 3과목으로 정해졌다.시험을 준비중인 朴모씨(24)는 “정식필기시험을 치러 뽑는 교사를 계약직으로 발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초등학교 교사와 교육대학 교수 등은 중등교사 자격자들을 초등학교 교사의 위상과 기득권을 해칠 것이라며 정식 교사 임용을 반대하고 있다.초등학교 교사들은 “정식 교사로 임용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영입이 확대돼 초등교사들의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K초등학교에서 영어보조교사로 근무했던 李모씨(31)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등교사 자격자들의 초등학교 교사 임용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교과전담교사를 계약직으로 한 이유는 인건비 절감보다는 초등교사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양쪽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내년까지 일선 초등학교에 필요한 교과전담교사가전국적으로 5,000∼6,000명에 이르지만 채용인원을 대폭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교과전담교사 채용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다각적으로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李鍾洛 jrlee@
  • 다우존스 주가 지수 10,000P 돌파 초읽기

    미국 다우존스 공업평균 주가지수가 1만포인트 시대를 코앞에 두게 됐다. 지난 11일 (현지시간) 뉴욕증시의 대표적 블루칩(우량주) 지수인 다우존스는 오후장 초반 9,935.45포인트까지 치솟아 1만포인트에 64.54포인트차까지다가갔다가 9,897.44 포인트로 마감,연이틀 최고치 기록을 세웠다.지난 4,5일 한꺼번에 460포인트 급등한 데 이어 최근 이틀간 다시 200포인트 이상 속등,한달음에 1만고지를 점령할만한 에너지를 과시했다. 이날 대내외 호재가 한꺼번에 쏟아져 S&P 500,나스닥까지 뉴욕증시 3대지수를 일제히 끌어올렸다.2월 소매업 판매가 0.9% 늘었다는 상무부 보고서와 74년 이래 최초로 실업인구가 6주연속 30만 미만이라는 노동부 자료가 발표됐다.금리인상을 배제하고 있는 그린스펀 FRB(연방준비위원회)의장의 일관된입장도 장세를 밝게 보게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 중이라는 소식이 유가 선물가격상승 악재를 상쇄,석유화학기업 주가를 끌어올렸다.세금인상 주장등 강경파로 분류돼온 독일 오스카 라퐁텐 재무장관 사임소식도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이같은 분위기로 봐서 1만포인트 돌파는 초읽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하지만 향후 향배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랠프 어캄포라 프루덴셜 증권 기술분석 팀장은 “이같은 추세라면 3분기에는 1만1,500선 돌파도 무난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다우지수 거품론도 여전히 세를 잃지 않고 있다.8일자 비즈니스위크는 다우지수가 기업내재 가치에 비해 1.6배나 과대평가돼있다고 전했다.지난해 8월말 7,500대까지 폭락했던 다우지수가 조정다운 조정을 거치지 않은채지나치게 폭등했다며 경계하는 분석가들도 많다.
  • 라퐁텐 獨재무 전격 사임

    □프랑크푸르트 南玎鎬 특파원□오스카 라퐁텐(55) 독일 재무장관이 11일(이하 현지시간) 전격사임했다. 슈뢰더 총리는 라퐁텐 장관이 녹색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집권 사민당(SPD) 당수직에서도 물러났다고 밝혔다.라퐁텐의 사임은 그동안 노선다툼을 벌여온 중도 우파노선의 승리로 해석되고 있다. 사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권은 집권 4개월만에 일단 시련에 봉착하게됐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라퐁텐 장관의 퇴진으로 슈뢰더 총리의 집권 기반은 한층강화될 전망이다.좌익 성향의 라퐁텐 대신 세금감면,금리인하 등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비중을 두는 슈뢰더 총리의 정책이 독일 및 유럽연합(EU)경제운영에 보다 강하게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관측으로 그동안 약세를 면치 못하던 유럽 단일통화 유로화는 급등세를 나타냈다. 후임 재무장관으로는 사민당 경제전문가 한스 아이헬(57) 전(前) 헤센주 지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사민당 당수는 슈뢰더 총리가 겸임하게 될 가능성이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 現代일가 재산분할 마무리

    현대자동차 鄭世永 명예회장과 鄭夢奎 부회장 부자가 현대자동차 경영에서손을 떼고 현대산업개발로 분가(分家)한다. 鄭世永 명예회장 부자는 5일 기자회견을 갖고 “보유중인 현대자동차 지분(8·3%)을 모두 鄭夢九 현대자동차 회장에게 넘겼으며 주식맞교환을 통해 받은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鄭夢九회장이현대자동차 지분을 10% 이상 가진 개인 최대주주가 됐으며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놓고 지난달말부터 불거졌던 현대 일가의 분란이 일단락되고 鄭周永 명예회장 2세들의재산분할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鄭世永 명예회장은 “이번 일로 (집안에)이견이 많은 듯 알려져 있지만 오해”라면서 “큰 형님(鄭周永 명예회장) 덕분에 가장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고 처음부터 내가 오너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또 “형님이현대산업개발을 맡기며 우리 부자를 위해 배려해준 데 감사한다”고 덧붙였다.이에 따라 현대자동차는 오는 12일 이사회를 열어 鄭夢九회장을대표이사에 단독 선임키로 했다.鄭世永 명예회장부자의 사임에 따른 이사 2명도 오는6월쯤 열리는 임시주총에서 선임할 예정이다.
  • 金善吉해양부장관 辭意표명

    - 청와대 “金장관이 漁協 마무리 할것” 金善吉해양수산부 장관이 한·일 어업협정 체결 이후 계속되는 어민들의 반발과 최근 밝혀진 쌍끌이 어선의 일본수역내 입어대상 누락 등과 관련한 책임을 지고 2일 사의를 표명했다. 金장관은 이날 서울 역삼동 해양수산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 어업협정 실무협상에서 쌍끌이 조업이 누락된 것과 관련해 협상책임자인차관보와 실무준비자인 국·과장이 사표를 제출했으나 반려했다”고 밝히고“결자해지 차원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형기선저인망 중 외끌이 어선과 대형트롤에 이미 배분된 어획쿼터를 되돌려 받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15만t으로 정해진 어획쿼터에 쌍끌이 어선의 조업을 추가하도록 일본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농수산상과 조만간 추가협상을 갖겠다”고 밝혔다. 金장관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일 어업협정 사태에 대해 보고한 뒤 해양수산부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뜻을 밝혔다.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金장관이 일본과의 협상을 잘 마무리할 것으로기대하며 개각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제2공화국과 張勉](2)-국토건설사업(下)

    張勉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국토개발이라는 고유목적 외에도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증대,산업활성화,국가 인재충원제도 확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제도적 파급효과를 거두었다. 국토건설사업본부(이하 본부)는 중앙청 서남쪽의 목조 2층 건물에 자리잡았다.민(民)과 관(官)이 함께 참여한 이질적인 집단이지만 당대 엘리트를 모은 데다 대우도 좋아 본부는 활기차게 돌아갔다.본부 간사이던 朴敬洙씨(69·작가)는 “월간 ‘사상계’에서 받은 봉급이 일반직장인보다 훨씬 많았는데본부는 그 두배 정도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본부가 처음 한 일은 국토개발사업을 현장에서 지휘·감독할 일꾼을 뽑는 것이었다.국무원사무처(총무처 격)는 ‘병역을 마친 30세 미만의 대학졸업자’를 대상으로 국토건설추진요원(이하 건설요원)을 공개 모집했다.석달 동안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나면 국가공무원 4∼5급이나 지방공무원 3∼4급으로임용한다는 조건이었다.말하자면 공무원을 공채로 뽑은 것인데 이는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모집공고가 나자 대졸자 ‘1만수천명’(당시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증언)이지원했다.그 무렵 전국에 대학이 63군데,대학생 정원이 9만7,819명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합격자는 사무직 1,614명,기술직 452명 등 모두 2,066명이었다.여성도 21명 포함됐다. 건설요원들은 61년 1월9일부터 교육을 받았다.교육장에는 종교인 咸錫憲과朴鍾鴻 서울대 교수 등 당대의 지성들이 나와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이들은 2월27일 중앙청광장에서 수료식을 가진 데 이어 각 군(郡)에 15∼17명씩 배치돼 3월1일부터 현장근무에 들어갔다. 국토건설사업은 전국 각지에서 커다란 성과를 불러왔다.건설현장에는 배고픈 국민들이 새벽 5시쯤부터 몰려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섰다.하루 일을 끝내면 이들은 품삯으로 돈과,쌀·보리·비누·광목 같은 물건을 섞어 받고 만족한 표정으로 귀가했다.품삯에 현물(現物)이 포함된 까닭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이 사업의 주요 재원이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잉여농산물을 품삯으로 지급하면서도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를 계산했다.쌀·보리는 정미소에서 찧었고 면화는 방직공장에 보내 광목으로가공했다.유지(乳脂)는 비누로 만들었다.따라서 건설현장에 나온 국민은 구하기 힘든 생필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정미소나 방직공장·비누공장 등은 가동률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그만큼 장면정부의 경제정책은 정교했다고평가해줄 만하다. 국토건설사업은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나갔다.일부 지역에서 잡음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3월30일 농림부는 25일까지의실적을 공개했다.2만6,089정보에 조림(造林)을 해 계획의 50%를 달성했으며,산·바닷가의 흙·모래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고자 나무를 심거나 돌을 쌓는 사방(砂防)사업도 목표의 51%인 2만8,958정보를 끝마쳤다. 국토건설사업은 이같은 업적말고도 공무원 공채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큰의미를 갖는다.당시는 공개 채용 없이 기관장이 발탁해 쓰면 시일이 지남에따라 자동 승진하는 구조였다. 정헌주옹(84)은 “건설요원 선발 이후 공무원사회에 공채제도가 자리잡았다“면서 그 뒤 일반기업체에도 퍼져 나갔다고 회고했다.또 “공채가 공고되자 61년 들어 대학가에서 시위횟수가 크게 주는 등 사회안정에도 큰몫을 했다”고 강조했다. 첫 공무원 공채는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이는 당시 재무부 예산국장이었고 그 뒤 숭전대총장·부총리를 역임한 李漢彬의 논저 ‘사회변동과 행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전부총리는 건설요원 채용이 “관료제에 새로운 사회세력,특히 젊은이들을 흡수하는 기본적인 통로로서 활용됐으며 이 젊은이들은 점진적으로 승진해 관료제 전반에 걸쳐 눈에 띄는 활력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공무원 공채 1기’는 5·16쿠데타 후에도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우리 사회 정·관계,경제계를 주도하는 인물로 성장했다.鄭寅用전부총리,金泰鎬국회의원(내무장관 역임),崔同燮전건설부장관,金昌甲전교통부차관,朴進球울주군수들이 ‘1기 출신’이다. 그러나 장면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끝을 맺지 못했다.사업을 이어받은 쿠데타세력은 61년 말 “연인원 2,500만명을 고용해 계획의 94%를 완수했다”고 공식발표했다.장면정부의 공을 가로챈 것이다. 그 과정은 安京模전교통장관(82)의 증언에서 분명해진다.안옹은 본부 기술부 차장으로 일하다 5·16세력에게 불려가 국토건설사업 계획을 브리핑했다.이후 같은 업무를 계속하다 64년 교통부장관,67년 수자원개발공사사장으로 발탁돼 소양강댐 충주댐 안동댐 대청댐 등을 직접 건설했다. 60년대 국토개발의 주역인 안옹은 “장면정부도 국토건설사업을 완수할 수있었다”고 단언하고 그 근거로▒정부 의지가 굳건했고▒미국이 적극 지원했으며▒사업에 참여한 관료들이 능력을 갖추었음을 들었다.그는 쿠데타세력이 국토개발에 성공한 것도 장면정부의 사업계획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張勉총리의 생애▒1899년 8월28일=인천세관에 근무하는 張箕彬과 黃누시아 사이에 장남으로출생.본관 玉山,호는 雲石▒1906년=인천성당 소속 박문학교 입학▒14년=수원농림학교 입학▒16년 5월20일=金商集의 딸 金玉允과 결혼▒17년=수원농림 졸,서울 중앙기독청년학관 영어학과 입학▒20년=청년학관 수석 졸업,도미▒21년=뉴욕 맨해튼가톨릭대 입학▒25년=맨해튼대 졸업(교육학),한국천주교청년회 대표로 로마에서 열린 ‘한국 79위 시복식’에 참석 후 8월 귀국▒29년=천주교 평양교구에서 교회 일에 전념▒31년=동성상업학교 교사 시작▒36년=동성 교장으로 취임(광복 때까지 근무)▒46년=민주의원·입법의원으로 피선▒48년=서울 종로 을구에서 제헌의원 당선,9월 파리에서 열린 제3차 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12월 맨해튼대에서 명예법학박사 받음▒49년=초대 주미대사 부임▒50년=6·25 발발하자 유엔군 파병에 큰몫▒51년=2월에 제2대 국무총리 취임,11월 제6차 UN총회 한국수석대표▒52년=총리 사임▒55년=申翼熙 趙炳玉 등과 함께 민주당 창당,최고위원 피선▒56년=민주당 후보로 부통령 당선.9월에 피격,경상▒59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피선,▒60년 3월15일=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낙선▒4월22일=李承晩 규탄하며 제4대 부통령직 사임▒7월29일=서울 용산 갑구에서 국회의원 당선▒8월19일=국무총리 인준▒8월23일=1차 조각 마치고 내각 출범▒61년 3월1일=국토건설사업 기공▒5월16일=쿠데타로 정권 빼앗김▒이후=신앙생활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거,국민장으로 포천 가톨릭묘지에 안장됨■張勉은 누구인가 한국 현대사에서 張勉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그는 4월혁명의 결과로 태어난 제2공화국의 총리였다.尹潽善대통령이 있었지만 내각책임제였기에 제2공화국을 장면정부라고 부른다. 장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훌륭한 인격자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무능하고 나약했다”는 평도 따른다.이는 5·16세력이 조작해 전파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장면은 어떤 사람인가.장면은 부모 양쪽 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세례명 요안인 그는 인천성당 소속인 박문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해 이후 해방 전까지 신앙인·교육자로서 충실한 삶을 산다[연표 참조].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면모는 5·16이 나자 피신처로 선택한 곳이 수녀원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그만큼 그의 신앙심은 남다른 측면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장면은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였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길을 택했다.따라서 그가 이끈 민주당 신파 출신 중에는 기나긴 朴正熙시대에도뜻을 굽히지 않고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이들이 유난히 많다.金大中대통령을비롯해 金相敦 鄭一亨 鄭憲柱 金判述 金應柱 吳洪錫 등이 그들이다. 해방 후 장면은 미 군정하의 민주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다.건국 직후 열린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법통(法統)을 인정받은 것과 초대 주미대사를 지내면서 6·25때 UN군 파병에 큰몫을 한 것은 그를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케 했다.그 결과 제2대 총리로 취임하지만 이제는 정치적으로 너무 성장한 그를 李承晩이 견제하는 바람에 1년여 만에 총리직을 사퇴한다. 그후 야당지도자로 변신해 55년 창당한 민주당의 최고위 지도자 중 한사람이 됐고 56년에는 부통령에 당선됐다.부통령 시절인 1956년 9월28일 장면은 명동 시공관에서 암살범의 저격에 왼손을 맞았다.그런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민주당 최고위원인朴順天은 훗날 회고록에서 “그때 지켜본 장박사의 모습은 태연자약했고 너무도 의연했다”면서 거인다운 풍모를 소개했다. 4·19혁명 후 제2공화국을 맡은 장면은 8개월23일 만에 쿠데타를 만나 정권을 빼앗긴다.교과서에 나오는,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그의 꿈은 좌절되고 그는 “국민 앞에 저지른 잘못을 속죄의 심정으로 사과할 뿐”(회고록 표현)이라며 신앙생활에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서거한다.李容遠
  • [사설]농협비리, 철저한 수사를

    농협의 방만한 운영과 변칙대출 실태가 국민적인 분노를 사고 있는 가운데검찰이 본격적인 수사를 펴기로 했다고 한다.元喆喜 농협중앙회장의 전격사임에 이어 검찰이 금명 중앙회의 핵심 임직원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릴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런 와중에 충남 경남 전남지역의 전국농민회 회원들은 현재 14.3%인 농협의 대출금리를 시중은행 수준인 11.5%로 낮춰 줄 것을요구하며 농협 시·지부 건물을 잇달아 점거, 농성하고 있다. 농협은 이미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대적인 수술없이는 존립자체도 어려운 실정이다.대기업,회사채 지급보증으로 무려 6,200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한보,진로그룹 등 부도난 기업에 9,100억원을 대출해주었다.6개월이상 연체로 더이상 대출을 해줄 수 없는 6,517개의 적색거래업체에 대해서도 1,072억원을 대출해줬다.또 전국 1,332개 단위조합 중 절반에 가까운 647개 조합이 자본잠식상태로 사실상 ‘해체직전’에 놓여 있다.이같은 상황인데도 명예퇴직금으로 월고정급여의 13년 6개월분을 지급하고,퇴직금 지급률을 3배나 누진적용하여 1인당 최고 4억9,000만원까지 퇴직금을 지불하기도했다. 이런 정도면 농협은 부실과 방만경영의 표본이라는 지적을 넘어 부조리와비리의 복마전이라고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부실 대기업에 대한 대출과정에서의 커미션 수수나 사업자 선정에서의 금품수수 등과 관련한 중앙회 임직원 비리에 대한 단서는 이미 검찰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번 농협비리는 중앙회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전국 단위조합에서도 비슷한 수법의 내용이 적발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같이 일반화·전국화된 구조적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중앙회임직원들에 대한 대검의 집중수사와 함께 전국 지검·지청과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유지하여 개별 단위조합까지 수사를 동시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또한 적색거래업체 대출,과다한 퇴직금 지급 등의 부실 경영에 대해서도 형법상 배임죄 적용을 포함한 사법적 책임도 엄정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농협의 비리수사를 계기로 농·수·축협과 같은 특수은행에 대해서는 은행법을 적용하지 않는 현행 금융감독체계를 획기적으로 보완해야할 것이다.또한 정부가 추진중인 농업·축산·임업·인삼 4개 협동조합의 통폐합 과정에서도 금융감독의 사각지대가 다시는 존재하지 않도록 확실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이밖에 농정당국은 농민들이 시위,농성을 해야만 대출금리의 인하를 유도하는 식의 ‘소방(消防)행정’에서 하루빨리 탈피하고 농민소득증대를 뒷받침하는 전향적인 농정을 펴도록 강력히 촉구한다.
  • 농협 긴급이사회 표정

    농협중앙회는 1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차기회장 선거를 오는 19일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선거관리위원을 위촉,3일 농민신문에 선거공고를 한 뒤 9일까지후보자등록을 받아 19일 대의원인 1,300여명의 단위조합 조합장들이 참석하는 임시총회에서 차기회장을 선출할 계획이다. 농협 이사회는 2일 오후 최종 수습대책을 발표한다. ▒元喆喜 전회장이 사임한 뒤 처음으로 1일 오전 10시 농협중앙회 본부 16층 강당에서 열린 긴급이사회는 元전회장을 뺀 이사 17명 전원이 참석했으나침통한 분위기가 역력. 이날 농협중앙회에는 대부분 직원들이 출근,앞으로 ‘농협호’의 진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긴장된 분위기. 비공개인 회의에는 이사진 외에 중앙회 집행간부(상무)와 부·실장 등 60여명이 배석.이사들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지금의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빨리 대책을 마련해 조직을 살려야 한다”고 한 목소리. ▒회의를 주재하던 李來秀수석부회장은 오후 3시쯤 기자실로 와 중간발표.그는 “감사원 발표이후 모든 임직원들이 대오각성을 하고혁명적 발상으로 농협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며 “조합장 선거제도나 농협신용사업의 분리방안등을 정부와 협의를 통해 과감히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이어 “농민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해서 이같은 사태가 일어났다”며 침통한 표정. 한편 농협중앙회의 부회장 2명과 상무 8명 등 집행임원 전원은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있는 李來秀 경제담당부회장에게 사표를 냈으며,李부회장은 보관하고 있는 사표를 새로 선출되는 차기 회장에게 일괄 제출할 예정. ▒축협도 감사원 감사결과로 촉발된 농협중앙회 파동에 따른 후속조치가 급박하게 이뤄지면서 감사원이 지난해 9월1일부터 40일간 실시한 감사결과를이번주 중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농협의 사태 진행과정을 예의 주시중. 축협은 특히 협동조합의 부실이 자칫 협동조합의 통폐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
  • 검찰,元喆喜 전회장 내주초 소환

    대검 중앙수사부(李明載검사장)는 1일 농협중앙회 부실경영에 책임을 지고지난달 28일 사임한 元喆喜전중앙회장과 농협 임원진 10여명에 대한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해 말 元전회장의 개인비리 제보를 접수,내사를 벌였으나 일부 제보내용이 사실과 다른 데다 당사자들도 강력히 부인해 수사를유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중이어서 감사결과를 넘겨받은뒤 수사에 들어갈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주 중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독자적으로 수집한 대출 비리 등관련 자료를 취합,대검 중수부와 전국 지검·지청별로 중앙회와 전국 1,332개 회원 조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따라서 元전회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는 다음 주초쯤 시작될 전망이다. 검찰은 또 농협의 6,000억여원 지급보증 손실과 관련,元전회장 등에게 업무상 배임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주말쯤 감사결과가 나오는 축협중앙회에 대해서도 수사착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며,수협중앙회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元喆喜 농협회장 사퇴 이모저모

    元喆喜농협중앙회장이 28일 부실경영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자 농협 직원들이 충격에 빠졌다.특히 부실경영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자 불안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元회장은 이날 오전 8시30분쯤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집무실로 나와 곧바로 임원회의를 소집한 뒤 사퇴의사를 표명.元회장은 이후 집무실에혼자 있다가 오후 1시30분쯤 모처로 향했으나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오후3시쯤 元회장의 사퇴 소식을 전해들은 직원들은 “전 직원이 사태수습을 위해 일요일에도 출근했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농협중앙회 金國煥 홍보부 부부장은 “元회장이 모든 사태를 원만히 해결한 뒤 용퇴하기를 바랐는데 너무 이른 감이 있다”며 아쉬워했다.중앙회 직원들은 94년 정계 비자금 제공혐의로 韓灝鮮 전임 회장이 검찰에 구속된 데이어 元회장까지 불미스런 사건으로 중도 하차하자 더욱 허탈해 하는 모습. ▒농협 안팎에서는 元회장의 사임과 함께 앞으로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대검 중수부 관계자도 이날 “이번 주에 감사원으로부터 감사결과를 넘겨받는 대로 대검과 전국 지검,지청별로 중앙회 및 1,332개 단위조합에 대해 전면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강력한 수사 의지를 표명. 金泰均 全京夏 windsea@
  • [농협개혁](1)-조직·경영의 허점

    방만한 운영과 농민 위에 군림하는 자세로 일관,농심(農心)을 멍들게 한 ‘거대 공룡’ 농협이 마침내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감사원 감사결과 발표와 元喆喜농협회장의 전격 사임,검찰의 수사 착수로 농협은 격랑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농협의 부실 실체와 문제점,개혁 방향 등을 연재한다. 농협은 농민의 기관인가,농민 위의 기관인가. 농민들은 서슴없이 후자를 택한다.농민들이 스스로를 돕기 위해 만든 기관이건만 어느새 농민들이 도와야 하는 기관이 돼버렸다.역대 정권들이 출범초반 농협의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 누구도 이 거대 공룡을 건드리지 못했다. 전국 조직을 갖춘 거대 기구라는 위상에 눌려 정치권에서조차 농협의 비위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았다.그런 속에서 농협은 개혁의 무풍지대에 안주해왔고,총체적 부실을 쌓아 왔던 것이다. 농협의 부실은 크게 신용 부문의 왜곡과 방만한 경영,지역조합들의 토착 비리 등으로 압축된다.신용 부문에 있어서 농협은 대(對)농민 지원보다 대기업들에 대한 여신에 주력,고유기능이 상당 부분 퇴색했다.더구나 대기업 여신도 관리감독 소홀로 상당수가 부실여신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말 현재 농협의 부실여신은 총 72개 기업의 6,530억원에 이른다.지난 96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부도가 났거나 아예 문을 닫은 회사들에 빌려줬거나 지급보증을 섰던 돈 들이다.이 가운데는 회사정리 절차에 따라 일부회수가 가능한 여신도 있지만 아예 떼이게 된 돈도 있다. 대도시에 있는 농협의 점포 수가 195개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점포가 많은 국민은행(217개)과 엇비슷한 점은 농협이 농민 상조기관이 아닌 거대 금융기관임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반면 농민들이 빌려쓰는 상호금융은 시중은행보다 2∼3%포인트나 금리가 높아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극단적으로 말하면 농민들로부터 받은 고금리자금을 대기업에 빌려주고 떼이는 형국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농협은 내부적으로 방만한 경영을 일삼았다.특별상여금도모자라 인센티브상여금이라는 명목으로 지난 5년간 전 직원에게 300%를 지급했다.291억원의 빚을 져가며 이렇게 지출한 자금만도 2,345억원에 이른다.임금 역시 기본급은 27.6%에 불과하고,20여종의 수당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퇴직금도 과다 지급해 민간기업의 2∼3배에 이른다. 인력 조정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94년부터 97년까지 976명을 명예퇴직시켰지만 3,177명이 새로 채용되고 3,743명이 승진했다.명퇴가 인사적체 해소로 활용된 셈이다.유통 부문 역시 방만하게 이끌어 서울 양재 등 3개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데 5개 자회사가 설립됐다. 지역조합의 부실한 운영과 토착 비리는 농민들로부터 직접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전국적으로 지역조합이 1,300개를 넘으면서 상당수가 부실하고 영세한 조직으로 전락했다.97년 말 현재 회원이 1,000명도 안되는 조합만 306개에 이르고,전액 자본잠식 상태에 이른 조합만도 647개로 파악됐다.상호금융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일정액의 커미션을 수수하는 관행도 고질화돼 농민들의 허리를 더욱 휘게 하는 실정이다. 陳璟鎬 kyoungho@
  • 元喆喜농협회장 사임

    元喆喜 농협중앙회장이 18일 농협부실경영 문제와 관련,전격 사임했다. 元회장은 “국민과 농업인에게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며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元회장은 지난 94년 임기 4년의 농협회장 직에 오른 뒤 지난 해 3월 재선됐으나 임기 3년여를 남기고 중도퇴진하게 됐다. 농협은 “元회장 사임에 따라 30일 안에 보궐선거를 실시,새 회장을 뽑게되며 그때까지 李來秀 부회장이 회장직무를 대행한다”고 밝혔다. 농협은 1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후임 회장 선출일정 등을 논의하는 한편 경영혁신방안 마련 등을 논의한다. 朴恩鎬 unopark@
  • 국민연금 준비부족 한목소리/국회 보건복지위 설전

    23일 국회 보건복지위는 예상했던 대로 국민연금제도 파동을 놓고 뜨거운설전을 벌였다.여야의원들은 한결같이 보건복지부의 준비부족을 성토하고 철저한 보완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실시시기에 대해서는 여야간 의견이 엇갈렸다.국민회의 의원들은 보완책을 마련한 뒤 예정대로 실시할 것을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연기론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金洪信의원은 “야당을 비롯해 사회단체들이 조기실시에 따른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서 金慕姙장관의 사임을 촉구했다.金의원은 또 “신고권장 소득산정 기준을 정한 정부의 시행령 및 규칙이 있느냐”고 물은 뒤 “정부여당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보완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전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같은 당 鄭義和의원은 “복지부가 근본적 해결없이 절차 간소화와 같은 기술적 사항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오만한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국민연금 확대는 98년의 소득이 파악될 수 있는 2000년 이후로 연기하고 동시에 혼란을 초래한 정책결정자와 행정책임자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책임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金明燮의원은 소득산정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보건복지부는 탁상공론식 태도를 버리고 직접 서민들을 만나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金秉泰의원은 연기방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강력한 제도보완을 요구했다.金의원은 “생계보호 대상자와 실업자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기금에서 일시 대납한 뒤 분할 상환하도록 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 魚浚善의원은 “IMF사태 이후의 소득이 반영될 수 있도록 6개월 정도 실시를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나라당의 연기론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金장관은 “홍보활동을 강화하는 등 실시 이전까지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원칙론을 되풀이했다. 朴峻奭 pjs@
  • 오잘란 체포현장 목격 수행원 뒷얘기

    [이스탄불 나이로비 AP AFP 연합] 쿠르드노동당(PKK) 지도자인 압둘라 오잘란은 지난 15일 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공항 문턱에서 터키정보부(MIT)요원들에게 체포될 때까지 케냐 당국의 네덜란드 망명주선을 믿었었다고 그의 수행원이 18일 밝혔다. 오잘란이 체포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PKK의 정치조직원 셈세 킬리치(여)는이날 쿠르드 계열 Med-TV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킬리치는 오잘란 일행이 두대의 승용차로 나이로비 공항으로 가던 중 케냐경찰이 2대의 차량을 세우고 올라탄 뒤 오잘란이 탄 차량을 공항의 다른 출입구로 인도했으며,터키 정보요원들이 이 틈을 노려 오잘란을 체포했다고 설명했다. 킬리치는 또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모사드(이스라엘),MIT(터키) 등 3개국 정보기관과 케냐 당국이 모두 오잘란 체포에 개입했으며 이날 2명의 각료와 함께 사임한 그리스의 테오도로스 팡갈로스 외무장관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 洪世杓 외환은행장 전격 사임

    洪世杓 외환은행장이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洪행장은 “젊고 유능한 후진에게 경영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임기 전 용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洪행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였다. 외환은행은 오는 26일 주주총회를 열어 후임 행장을 뽑는다.현재 吳浩根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梁萬基 수출입은행장,魏聖復 전 조흥은행장 등이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洪행장은 최근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수출입은행을 통한 한국은행의우회출자를 이끌냈으나 추가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받고 심적 부담으로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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