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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과도한 양적패창 후유증 “몸살”

    ◎신학교 난립,자격없는 목사 양산/교파분열·도덕성 실추 위험수위/「종말론」 등 폐해 속출… 과감한 개혁 필요 선교2세기에 돌입한 한국교회가 과도한 양적팽창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국제적으로 「교회왕국」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신학교의 난립·교파의 분열·도덕성 상실등이 이미 그 위험수위를 넘기고 있어 문민정부의 개혁운동에 맞춰 한국교회도 어떤 형태로든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한국교회의 수는 92년 현재 3만7천여개,교인수는 1천2백50만으로 지난 10년간 각각 연평균 6∼7%포인트의 성장률을 보여왔다.반면에 교직자수는 6만7천명으로 그동안 평균 10%포인트가 넘는 성장을 해왔다. 이같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신학교 난립으로 인한 무자격 목사의 양산.교계 통계에 따르면 92년을 기준으로 교육부 인정을 받은 정규신학교육기관은 신학과가 개설된 8개 일반대학,18개 신학대학,30여개 학력인정 신학교등 50여개인데 반해 교파별로 세워져 있는 무인가 신학교는 2백70여개에 달한다.해마다 배출되는 신학생수는 6천5백명,정규신학교 출신 1천5백명을 빼면 5천여명이 무인가 신학교에서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목사가 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정규교육과정에 따르면 학부과정 4년,신학대학원 3년,목회수련기간 1년을 거쳐 목사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통상 8∼10년.그러나 이들 무인가 신학교에서는 빠른곳은 6개월,보통 2∼3년이면 목사안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자격 목사의 양산이 가져오는 폐해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사이비종파를 탄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성을 실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지난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시한부 종말론등 만연되고 있는 각종 사이비종교의 폐해와 목사의 자질시비등 전체적인 기독교의 위상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양산된 목사들에 의한 대도시에 집중된 교회개척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전국 3만7천개 교회 가운데 65%인 2만5천개가 도시에 있으며 서울에는 20%에 달하는 7천2백개가 모여있다.이같이 교회가 도시에 집중돼 있는 이유는 교인확보 때문.현재 교회당 평균교인수는 서울이 5백56명,부산 대구등 4대도시가 4백36명인데 비해 농촌은 4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같은 한국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김영한교수(숭실대)는 『한국교회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면서 신한국창조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기독교가 스스로 신학교 난립을 자체정화의 능력으로 제어할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 대통령,문화체육부·공보처 업무보고 청취

    ◎국립중앙박물관·30경비단 이전/94년 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추진/사이비기자 수사전담반 운영/CATV 연내 선정·지방민영방송 검토/“문민정부선 언론 장악할 발상해선 안돼”/김 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 1일 구총독부 건물인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다른 곳으로 이전,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상오 청와대에서 이민섭문화체육장관으로부터 올해 문화체육부업무를 보고받고 『경복궁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구총독부 청사의 철거와 30경비단의 이전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면서 『다만 구총독부청사는 민족의 정기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이전,보전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관변문화단체는 자생력을 길러 나가야하며 정부에 의존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특히 정부는 재야문화단체의 건전한 문화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달라지는 문화정책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오린환공보처장관으로부터 금년도 주요업무계획을 보고받고 『문민정부에서는 고압적인 자세로 언론을 장악하거나 지배하려는 어떠한 발상도 있어서는 안되며 또한 필요이상 저자세로 언론의 환심을 사려고 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앞으로 개혁추진은 언론과 함께 하는 개혁이어야 한다』며 『정부는 과거처럼 사실을 은폐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털어놓고 공정한 평가를 받겠다는 정정당당한 자세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 전국 49개소에 신고센터 운영

    오인환공보처장관은 1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사이비기자에 대한 종합실태를 조사하고 시도별로 수사전담검사를 지정,수사전담반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장관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공보처의 올해 주요 업무를 보고,이같이 밝히고 『부실 언론사를 응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오장관은 또 『사이비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고의식을 높이기 위해 전국 49개소에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건전언론과 사이비언론의 차별화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보고했다. 오장관은 종합유선방송(CA­TV)추진과 관련,『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반적인 쟁점사항을 종합점검,보완후 시행하겠다』면서 『금년말 이내에 사업자를 선정,프로그램 공급자와 방송국을 단계적으로 허가해 오는 95년초에 방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오장관은 『지방화시대에 맞춰 대도시 중심으로 지방민영 TV방송을 신설하고 주파수범위내에서 도별 라디오방송과 종교방송 라디오지방국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보처는 이날 보고한 내용을 기초로 사이비언론에 대한 응징방안을 빠른 시일내에 발표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응징대상 언론사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언론기관으로서의 제역할을 하지 않고 별도의 사업을 벌이는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언론사를 일컫는다』고 말했다.
  • 보사부 방역과장 신동균씨(인터뷰)

    ◎“에이즈예방 조기교육 철저히”/최소한 고3부터 콘돔사용법 등 알려야/2백52명 감염자 확인… 날로 심각성 더해 「20세기의 천형」으로 일컬어지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는 세계적으로 2백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감염자는 1천만∼1천2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게다가 오는 2000년에는 감염자의 숫자는 3천만∼4천만명의 수준을 넘어서며 이중 2천만명이 아시아지역에서 집중 발생하리라는 전망이다. 「감염이후 10년내 50% 사망,15년내 나머지 50% 사망」,「감염에서 환자로 발전하면 2년내 1백% 사망」,「10년내 치료제 개발 불가,20년내 예방백신개발 불가」등 전문가의 진단을 들지 않더라도 에이즈의 공포는 이미 현대인의 뇌리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85년 첫환자가 발견된 이래 올 1월말 현재 모두 2백52명(사망 29명,이민 1명,관리대상 2백22명)이 감염자로 확인됐으며 실제 감염자는 이보다 2∼3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등 해마다 에이즈의 심각성은 더해가고 있다. 『에이즈는 최소한 발병경로만큼은 확실히 규명된 이상 국민 각자가 건전한 성생활을 통해 사전에 이를 예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중요 질병의 방역업무를 맡고 있는 보사부의 신동균방역과장(52)은 현재로서는 예방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신과장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에이즈의 감염경로는 ▲감염자와의 성접촉 ▲수혈을 통한 감염 ▲감염자의 모태를 통한 태아감염등 세가지밖에 없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대비책만 강구하면 된다고 말한다.즉 세계적으로 유일한 예방책으로 권장되고 있는 무절제한 성생활 자제,불가항력시 콘돔 사용만이 유일한 예방책이라는 것이다. 신과장은 그러나 에이즈감염자와 목욕을 함께 한다든가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로는 감염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서 성접촉이나 수혈등을 통해서 감염시키지 않는 이상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공포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감염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감염자에 대한 인권도문제지만 1명을 격리시켰을 경우 1천명의 감염자가 지하로 잠적해 버린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세계적으로 감염자를 격리,수용하는 나라는 북한과 쿠바밖에 없으며 에이즈예방법과 같은 별도의 입법을 통해 특수업태부나 외항선원등 감염 우려가 높은 직업층에 대해 강제 검진을 하고 있는 나라도 한국을 포함,몇 개국에 지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비교적 엄격한 예방대책이 마련된 나라라고 지적한다. 신과장은 지난해 9월 이래 내국인과의 성접촉에 의한 감염자가 국외인과의 성접촉에 의한 감염자를 앞지르기 시작한 추세로 볼 때 과거처럼 성을 무조건 기피의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등 선진국처럼 최소한 고교 3년생정도부터는 콘돔사용법을 학교에서 교육하는 등 적극적인 예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한방요법등 사이비요법에 현혹되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 이건 혁명이다(김호준/정치평론)

    어느날 갑자기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이 개방되더니 궁정동의 으스스한 「안가」를 허물어 공원으로 조성하는 작업이 시작된다.번듯한 재산이라곤 상도동에 있는 집 한채 뿐이라고 「청빈」을 공개한 대통령은 재임중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으로 정치권을 경악시킨다.일부 각료의 도덕성 문제를 둘러싼 인사파동으로 새 정부가 출범 초부터 상처를 받는가 싶더니 공직 윤리가 단숨에 선진국 수준으로 뛰어 오르는 극적인 반전이 국민을 열광시킨다.어디 그 뿐인가.정권 안보의 전위로서 서슬이 시퍼렇던 안기부와 기무사는 평범한 정보기관으로 돌아가고,군 서열 11위를 1위로 발탁한 국방장관 인사에 이어 육참총장을 전격 경질하자 군을 주름잡던 「하나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며칠 사이에 세상이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하루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숨가쁘게 이어지는 개혁과 변화에 어지럼증이 날 정도다.보수파들 사이에선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이냐』고 두려움을 나타내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그러나 시중에선 『역시 YS답게 시원 시원하게 잘한다』는 지지와 찬사가 더 많다.경제가 신통치 않은데 개혁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응가 있으나 신명론의 목청이 더 높다.일한 만큼 보상받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인 사회 정의가 구현된다면 그 신명만으로도 하루 한끼쯤 굶는 고통 분담쯤이야 너끈히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혁명이다.김영삼대통령 취임후 지난 2주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변화와 개혁을 표현하는데 있어 「혁명」이란 단어처럼 더 적절한 용어는 없을 것 같다.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대통령의 조각과 군지도부 개편을 「혁명적 인사」,정치자금 배격을 「혁명적 결단」이라고 평가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우리는 5·16을 비롯하여 혁명,또는 혁명에 준하는 상황을 몇차례 겪었지만 이번처럼 과감한 개혁을 경험한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혁명하면 그 폭력성과 강제성 때문에 흔히 군사혁명을 연상하나 개혁의 본질에 있어 김영삼정부의 문민혁명은 과거의 군사혁명을 왜소화시키고 있다.더구나 김대통령은 총칼이나 계엄령에 의존하지 않고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군사통치자들을 무안하게 만들고 있다. 32년전 5·16 군사혁명 직후 혁명주체들은 계엄령 아래서 깡패 소탕·용공분자 검거·사이비 언론 정화·공무원 비이 단속·농어촌 고리채 정리령 발표·부정축재자 구속등의 강력조치로 민심을 잡아갔다.이 개혁 유형은 그후 박정희대통령이 장기집권의 길을 연 72년 「10월 유신」과 이른바 신군부가 등장하는 80년 「5·17사태」에서도 거의 그대로 답습된다.그러나 권위주의 시대의 개혁이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었지 역사관과 국가관에 입각하여 사회 병리를 치유하려는 순수성이 결여된 것이었다.그들은 개혁 대상을 자신들 밖에서 찾았고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과 금력에 대해선 개혁의 손이 미치지 못하도록 성역화했다. 김대통령의 개혁은 자신을 필두로 한 청와대·내각·여당등 집권층의 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구별된다.부정부패를 척격한답시고 말단 공무원만 못살게 굴자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장관부터 수범하겠다는 것이며 그 의지가 뚜렷하다.특히 대통령의 정치자금 거부선언과 장·차관 재산공개는 역대 어느 통치자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결단이다.이 획기적 결단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자르면서 앞으로 우리 정치의 모습과 공직사회의 풍토를 엄청나게 바꿀 것이다. 적임 시비로 조각 11일만에 개각을 단행하게 만들었던 인사파동은 많은 걸 남겼다.무엇보다도 사회전반의 도덕성을 제고하고 공직자 임명에 앞선 충분한 검증의 필요성을 일깨우는데 기여한 바가 컸다.이제 고위 공직자 임명은 국민이 이를 공개 심사하는 시대가 되었다.국민이 요구하는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공직에 앉을 수도,자리를 지킬 수도 없게 되었다.불과 몇달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문민시대의 자율 혁명이 낳은 이러한 공직관이야말로 총칼과 타율로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다.이제 문민혁명의 초점은 재산공개의 정치권 확대로 모아지고 있다.일부에선 이런 저런 이유로 재산공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양이나 재상공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알아야 한다.아무쪼록 개혁이 후퇴·퇴색하는 일이 없도록 민자당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해 본다.
  • 「부패와의 전쟁」 포문 연 검찰/칼 빼든 특수부의 활동방향

    ◎인사청탁서 금융비리까지 총체적사정/감사원 등과 연계… 환부도려내기 지속화 검찰의 「부정부패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공직사회와 기업등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박혀있는 고질적인 「비리의 뿌리」를 잘라내기 위해 검찰이 「사정의 칼」을 뽑아 든 것이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전국 검찰청에는 8일부터 「부정부패 사범특별수사부」가 설치돼 무기한 사정에 들어갔다. 검찰이 전담수사부를 설치한 것과 함께 설정한 16개 비리유형은 인사청탁 비리에서부터 수사관련 비리까지 모든 형태의 부정이 포함돼 있어 사회전반에 만연된 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지난 정부에서도 청와대에 특명사정반과 이어서 검찰에 「고위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비리 특수부」가 설치됐지만 대상이 한정적이었고 단속성과도 이렇다 할만한 것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부정부패사범 특수부」는 지금까지의 비리전담 수사부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고위공직자 뿐 아니라 하위직 공무원의 대인관계 비리까지 모두 중점단속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부정부패척결작업의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처벌받을 사람이 처벌받았다」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고위공직자가 우선 단속될 것이라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단속유형을 세부적으로 보면 승진·전보등 인사청탁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와 사업승인·입지심의·준공검사등 건축허가 과정에서의 비리,그린벨트 훼손과 형질변경 묵인,공사금액과 입찰가격 누설등 대민업무와 관련된 비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한 유흥업소와 공해배출업소의 인·허가와 불법행위를 둘러싼 금품수수,교통사고 편파처리와 교통운수업체로부터의 사례금 수수,소방시설 불합격 묵인,사업장 정기감독,산업재해조사 비리등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 사건편파처리등 수사관련비리,세무사찰에서의 탈세묵인및 금품수수,학교설립및 입시부정관련비리,허위진단서제출,정신질환위장등 병무관련비리,대출커미션수수등 금융비리,납품관련비리,브로커를 통한 청탁등 법조주변비리,사이비언론등 국민생활과 관련된 부조리가 총망라돼 있다. 검찰은 이번 단속활동이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악적인 비리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지속적인 수사를 벌여나가겠다고 해 이번 수사가 지난날처럼 결코 「엄포」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예상케 했다. 검찰관계자는 이와관련,『이미 전국 각지검별로 정보가 상당히 수집돼 있기 때문에 단속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해 가까운 시일안에 대규모의 비리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의 개혁의지에 어긋나지 않게 이번 기회에 강력한 검찰력을 행사해 사회분위기를 일신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기도 하다. 특히 공직자들의 무사안일,보신주의 풍조에 따른 「눈치보기」식 직무유기와 기밀누설행위등을 엄단함으로써 해이해질 우려가 있는 공직기강을 바로 잡는 다는 방침이다. 이번 부정부패사범수사를 위해 전국지검에 수사전담부가 설치되는 것과 함께 수사의 지휘부인 대검중앙수사부도 4개반으로 재편성돼 수사팀의 전열이 정비됐다. 더불어 업무협조를 위한 정부 각기관과의 수사지도협의회의 설치도 부패척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 “언론의 사회적 책임 검토할때”/오인환 공보처 일문일답

    ◎한국병치유 차원서 사이비기자 축출/개혁조류에 국민동참하게 동기부여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만큼 대통령의 개혁의지실천과 국민들의 동참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오린환공보처장관은 2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정개혁의 전면에 나선 대통령과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의 고통과 불만을 수시로 파악해 이를 국정에 반영토록 하는 것이 공보처의 주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오공보처장관과의 일문일답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임장관으로서의 포부는. ▲개혁하지 않으면 「이대로 주저앉지 않느냐」는 것이 국민적 합의이다. 점진적이든 단계적이든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개혁은 국민이 지지·협력하고 동참해야만 이룩될 수 있으며 공보처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의 일환으로 문민정부의 언론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개혁을 하게되면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국정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언론이라고해서 변화와개혁의 물결에서 무관하게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언론의 자기변화와 새로운 역할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정책은 자율화를 그대로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며 언론자유가 만개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과거 정부가 언론을 지도·간섭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새 정부 아래서는 대등한 관계로 대화하며 긴밀한 관계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자유의 신장에 비례해 사회적 책임이 진지하게 검토될 시점이 됐다. ­올해의 중점사업은. ▲신한국창조에 관한 국민홍보에 가장 역점을 두겠다. 신한국창조는 부단한 개혁을 통해 가능하며 대통령과 정부만이 짐을 져서는 어렵다.국민이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정권 및 정부차원의 홍보를 지양하고 대통령과 정부의 생각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는 동시에 국민의 생각과 고통·불만을 수시로 파악해 국정에 반영하는 차원에서 국민홍보에 나서겠다. 이것이 공보정책 목표의 핵심이다. ­언론자유에 따른 일부 폐단도 있는데. ▲언론자유 신장에 비례해책임문제가 자연히 표출될 것이다. 정부가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언론에서 자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지방으로 갈수록 심각한 사이비언론에 대한 대책을 서두르겠으며 관계기관과 협력,실태를 조사해 「한국병」치유차원에서 도려내고 축출하겠다.이와함께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도 시도하겠다. ­해외홍보에 문제점이 있다던데. ▲과거 외국의 유력지나 방송에서 국내문제가 보도되면 국내언론이 이를 전재해 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선전을 극대화했다.문민정부는 이같은 소아병적인 관행을 없애고 알릴 것은 알리고 알리지 말것은 안알리는 정정당당함을 추구하겠다. ­정부와 언론은 긴장관계가 필요하지 않은가. ▲언론이 권위주의체제 밑에서 투쟁해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공헌한 사실은 국민이 인정한다.아직도 불행한 과거의 불신찌꺼기가 남아있으나 이를 깨끗이 씻어내고 정부와 언론의 신뢰관계구축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종합유선방송망(CA­TV)사업허가와 AFKN 채널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CA­TV는 정책적 검토가 끝나서 실무작업이 진행중이며 금년 상반기중에 사업신청접수를 받을것이다. AFKN은 아직 민영화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 “정권홍보 아닌 국민홍보 추진”/오 공보처 회견

    오린환공보처장관은 2일 『과거 정부하에서 공보처는 정권홍보 또는 정부홍보등의 일방적인 역할을 했으나 새로운 문민정부 하에서는 국민홍보를 한다는 차원에서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장관은 이날 하오 공보처에서 가진 출입기자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새정부가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려면 대통령이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줘야 가능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오장관은 『지역민방의 허가,주한미군방송(AFKN)채널 이양문제는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될 사항』이라고 밝히고 『다만 종합유선방송(CATV)의 경우에는 예정대로 금년 상반기중에 사업자 선정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사이비기자 문제에 대해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사이비기자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계기관과 협조해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할 것이며 한국병을 치유한다는 차원에서 도려내고 처벌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장관은 『사이비기자문제 역시 언론계에서 자율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라며 『공보처도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신장과 관련,『언론의 자유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사회적인 책임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6)

    ◎소년시절:17/「ㅌ·ㄷ」강령의 출처/30년 결성 「농민총동맹」의 강령 개작/68년부터 「조선노동당 뿌리」로 선전/민족주의 단체에 소속… 공산운동과는 무관 김일성이 날조하여 1968년부터 등장시킨 타도제국주의동맹은 그후 「조선노동당의 역사적 뿌리」를 내린 모체로서 백방으로 선전되어 나간다. ○사이비 공산주의자 필자는 전고에서 그가 을 결성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그러나 당시의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동급생이나 학교당국과 고립되어 있었고 김시우의 집에나 가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그리하여 결국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고야 말았다.따라서 의 날조는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생활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의 당시의 사상은 민족주의가 아니었다.이 때문에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었다.또 그가 당시 살부회에 속하거나 살부회의 영향하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유치한 극좌적 사고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그리하여 이것은 당시 그가 일종의 사이비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에게는민족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어떤 사상적 맹아상태가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필자는 이것이 그후 북한에서 유일독재를 실시하는 으로 되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1966년은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자신의 사상임이 명백히 되어 나가는 시기였다.또 67년은 그가 저지른 일종의 쿠데타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가 있었다.그는 이 회의를 열어서 보천보전투 때에 중공유격대를 국내에서 도운 박금철등을 숙청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라고 전 당원에게 강요하였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란 김일성의 말만 들으라는 야만적인 탄압을 당원들과 대중들이 감수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상체계인데 이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다.북한에서는 74년에 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의하여 밝혀진 이론과 방법의 체계로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현시대의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레닌주의들과는 근본 다른 독자적인이론이다」 ○유일사상체계 강요 따라서 주체사상의 맹아로 되는 그 어떤 사상상태를 추정할 때 화성의숙 시절의 김일성의 정신상태는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김일성의이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전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고 있는 부분은 날조로 밝혀졌다.하지만 필자는 지금 「주체사상의 뿌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의 화성의숙 시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의 이른바 「강령」문제에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이께서는 의 목적을 장차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며 당면하게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것이 68년 전기의 기술인데 물론 결성되지도 않았던 에 이러한 강령이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그러나 없었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 김일성 전기연구의 숙명이므로 이 강령의 추처를 알아 본다. 김일성이 화전의 을 날조할 때 그는 1929∼1930년에 남만주에서 사귄 인물들의 사적과 그들이 가담한 사건들을 자기의 업적 날조에 대거 동원하고 있다.최형우의 「소사」도용과 국민부 산하 남한청총 청년들의 맹원 만들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의 강령도 1930년 3월에 남만주 흥경현에서 있었던 동성조선인농민총동맹의 강령 내용을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남한청총에서는 한번도 간부가 되지 못하였으나 남한청총이 합류하여 결성된 이 농민총동맹에서는 하부말단 임원으로 선발되었다.그는 이 동맹의 강령에 접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강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일본제국주의를 박멸하고 조선의 절대 독립을 완성함. 2,노동자 농민의 민중정권을 건설함. 3,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민에게 무보상 대여함. 4,청년 부녀의 독자적 발전을 기함. 5,전세계의 무산계급 및 피압박민족과 단결함. 이 농민총동맹의 강령 제1조가 강령의 당면목적이 되고 나머지 조목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하여 싸운다고 추상화되었다.당시의 국민부는 공산주의조류의 도도한 흐름에 못 이겨 민족주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청년층의 좌경화가 촉진되고 있었다. ○재* 번져가던 시절 우리는 이상과 같은 분석으로 조선노동당 강령의 「뿌리」가 된다고 선전되어 있는 이 엉뚱하게도 당시 약간 좌경화된 국민부 산하단체의 강령에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1920년대의 김일성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관계가 거의 없었다.그는 실제로는 민족주의단체 정의부나 국민부의 청소년 단체에 소속해 있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공산주의운동이 아니라 사실은 민족주의 단체 정의부나 국민부 내에 있었던 김일성 개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①평전 295면 ②「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49면 ③「현대사자료 29」 562면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5)

    ◎소년시절:16/「ㅌ·ㄱ」구성원도 조작/민족주의 단체 국민부소속 청년들/가공의 공산주의 조직멤버로 도용/일경기록,1명도 공산주의자로 분류 안해 김일성이 화성의숙에서 「김일성」했다고 날조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은 ㅌ·ㄷ(트·드)이란 조직을 북한에서 선전하기 시작한 1968년부터 조선로동당을 김일성의 사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68년부터 선전시작 김정일은 결성 56주년이 된다는 1982년부터 10월17일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거기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나열되어있다. 「ㅌ·ㄷ」의 결성은 조선공산주의 운동과 조선혁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의 선언이었다」 「ㅌ·ㄷ」의 결성은 우리나라에서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 형의 당,주체의 혁명적 당을 위한 투쟁의 출발점으로 되었다」 「ㅌ·ㄷ」의 결성으로서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은 자기발전의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우리당의 영광스러운 뿌리가 내리기시작하였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조선공산주의운동은 1920년대에 발생했지만 그것은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와 블라디보스토크,중국의 상해,일본의 동경 그리고 조선의 서울 등으로 그 중심이 옮겨지고 1925년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이 창건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리고 이 당은 그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내부의 종파싸움으로 끊임없이 약화 되었고 28년에는 드디어 코민테른(국제공산당)에 의하여 그 승인이 취소되는 굴욕을 당한것도 알고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해나 도쿄·서울같은 선진사상에 접하기 쉬운곳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인 만주의 오지화전에서 「조선공산주의운동」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한다.비단 남한에 있는 우리들 뿐아니라 1968년에 「민족의태양 김일성장군」이란 허황한 전기가 나올때까지 북한의 최고위급 당간부들조차 우리 민족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이 순전히 김일성 혼자의 주장이었던 것은 이번 회고록에서 밝혀졌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화성의숙시절의 나의 동창생들 가운데 그 시절을 회고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김일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없었다.그가 「ㅌ·ㄷ의 조직원」이라고 이번 회고록에서 처음으로 거명한 최창걸·김리갑·이제우·강병선·김원우·박근원·이종락·박차석,그리고 계영춘 등은 단 한명도 해방후까지 살아남지 않았다.이러한 「ㅌ·ㄷ 성원」들은 지금 모두 자신이 「ㅌ·ㄷ」을 모른다는 아무런 증언도 못하는 저승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청년들이 일본의 경찰기록에 나오는 것은 1929년부터인데 이 때 그들은 한사람 빠짐없이 민족주의단체 국민부 산하의 청년단체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의 간부들이었다.당시는 반공단체에도 조선공산당의 재건파가 잠입하고 있었고 국민부에서는 그들을 적발하고 있었다.그러나 위의 명단에 나오는 청년들은 한사람도 「조선공산주의자」로 간주되지 않았다.국민부는 그들을 모두 민족주의 진영의 청년들이라고 신뢰하고 있었다. ○중공당가입도 못해 물론 그들 중에서도 30년에 이르러당시의 시대적 조류에 따라 공산주의에 접근하려 한 이종락들도 있었다.그러나 이론 수준이 낮고 폭력배였던 그 일당은 끝내 중국공산당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당시 이종락의 졸개노릇을 하고 있었던 김일성도 중공에 못 들어간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일성이 거명한 청년들이 1928년까지에 조선공산당원이 아니었고 그후에 조선공산당 재건파도 아니었으며 30년에 코민테른의 1국1당원칙에 따라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지도 못한 것이라면 과연 이들이 공산주의자이겠는가.공산당이 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공산주의자」같으면 그것은 객관적으로는 「자칭 공산주의자」이거나 「사이비 공산주의자」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그런데 그들의 태반은 스스로가 공산주의자라고 자칭하지도 않았었다. 한편 최형우가 거명한 진정한 「ㅌㄷ」의 성원인 장기명,이정락(이종락),현균 등등은 30년 무렵에는 공산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이 회간의 ㅌㄷ」자체는 공산조직은 아니었다.또 이 「ㅌㄷ」에서는 김일성은 조직에 망라된일개 피동적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을 보면 김일성이 날조한 「ㅌㄷ」을 가지고 김정일이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 형의 당,주체형의 당의 뿌리」라고 말한 것은 백번 지당하다. ○일개 구성원에 불과 김일성이 결성한 「ㅌㄷ」이란 실지로는 없었는데 없는 것을 있다고 한다면 「새형의 가공조직」이 아닐 수 없고 김일성이 제멋대로 만든 것이라면 「주체형의 날조 조직」이라고 할 수 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조선로동당의 영광스러운 뿌리」를 내리게 하는 씨앗으로 되는 「26년제 ㅌㄷ」이란 사실은 유일독재를 실시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김일성의 머리 속에서만 1966년부터 움트기 시작한 새형의 조작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①82년 10월17일 당간 논문 1∼3면 ②「세기와 더불어 1」136면 ③평전7장4절 ④〃 10장 4절 ⑤〃 347면 기타
  • 「딱지어음」 사들인뒤 고가상품 구입/헐값에 되팔아 26억 사취

    ◎사이비신문사대표 등 넷 구속 서울지검 특수3부 권령석검사는 1일 주간 「대한건설신문」 대표 황선철씨(54·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690의 5)등 4명을 사기등 혐의로 구속하고 대룡엔지니어링 대표 김길수씨(48·서울 노원구 상계동 624)등 8명을 수배했다. 황씨는 지난해 12월 유령회사가 발행한 속칭 「딱지어음」에 신문사명의의 이서를 한뒤 대우전자 등으로부터 전자제품및 사무용품을 사들여 이를 용산전자상가등에 헐값에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26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있다. 검찰 조사결과 황씨는 88년부터 자본및 취재기자도 없이 일간지 기사를 오려붙이는 수법으로 신문을 발행,기업체의 비리폭로 등을 미끼로 금품을 뜯어오다가 운영난에 처하자 부도에 직면한 유령회사의 「딱지어음」을 공급받아 배서한뒤 전자제품등을 대량매입해 되파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 “민주화·북방외교 큰 성과”/노 대통령/6공 국정평가종합보고회주재

    ◎선진진입·경제재도약 발판 마련/공명대선으로 선거선진화에 진전 노태우대통령은 14일 『지난 14대 대통령선거는 우리가 민주화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음을 내외에 과시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다만 금권선거와 지역감정문제는 앞으로 우리정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현승종국무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과 각부처 1급이상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6공화국 5년동안의 국정운영전반에 대한 「국정평가 종합보고회」를 주재,이같이 말하고 『그동안 성취한 국정성과가 차기정부의 국정운영에 밑거름이 되어 국정의 연속성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지난 5년간 우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각종 관련법률이 개정·폐지되고 관련제도도 개선되어 자유와 인권이 크게 신장되었다』면서 『그러나 급격한 자유화가 가져온 법질서 경시풍조,사이비 언론의 폐해등 부작용은 바로 잡아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북방외교의 성과와 남북한관계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최근들어 남북관계가 다소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현재의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흐름등을 고려할 때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동안 다져온 남북관계를 기반으로 교류·협력과 통일에의 새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대통령은 6공의 경제성과와 관련,『지난 5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3천1백달러에서 6천7백달러로 2배이상 늘었고 경제규모도 세계 19위에서 15위로 올라갔고 순외채규모는 2백24억달러에서 1백10억달러로 줄었으며 수출신장률은 연평균 10.6%,물가는 87년이후 최저수준인 4.5% 상승에 그쳤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총체적으로 볼 때 경제의 안정이 정착되고 기업의 기술개발과 경영개선노력이 확산되는가 하면 노사안정속에 일하는 분위기를 되찾는 등 우리경제는 선진국진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을 지나온 셈이며 이는 다음 정부의 경제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8)

    ◎소년시절:9/무송체류의 의문점/26년 봄 학업중단… “집에 있었다” 주장/김형직 암살한 살부회 관련 가능성/국내전문가 추론 사실이라면 존속살해 공범 무송 제1소학교는 제2학기가 2월4일부터 6월30일까지였다.따라서 김일성은 그냥 학교에 있었으면 이 학교 고급부를 무사히 졸업할 수가 있었다.그런데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1925년 봄부터 26년 초봄까지 무송 제1소학교에 재학하고 26년 초봄부터 부친이 사망하는 6월초까지,그리고 부친의 초상을 지낼 때까지 그냥 집에 있었다고 한다. ○전기 이상한곳 많아 그들은 그 이유를 부친의 중병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아무리 중병이라도 부친 같으면 공부를 중요시하여 자식을 학교에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또 이 무렵 김일성의 집에는 모친 강반석도,삼촌 김형권도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사실은 김형직 자신도 건강하였으므로 김일성이 집에만 붙어 있으면 오히려 가족들의 방해가 되는 형편이었다. 종래 필자는 이 문제를 그가 26년 4월에 화성의숙에 입학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사실 초봄에 퇴학하여 4월에 입학하면 날짜상으로는 별로 모순된 점이 생기지 않는다.그러나 그래도 학교에 가야 할 학생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고 하는 전기의 서술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여기에는 무슨 숨은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이 연재를 보고 필자와 만났을 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들이 있다.그 중의 한분으로서 국토통일원에 근무했던 박만포씨가 있는데 박씨는 오랜 기간 김일성을 연구한 분이다.필자가 김형직의 급사문제를 연재한 직후 어느 모임에서 만났더니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이 화성의숙에 들어간 것은 26년 4월이 아니다.김형직이 죽은 6월 이후가 맞다… 김일성은 무송에 있을 때 아주 못된 짓을 하며 돌아다녔다.당시는 간도에 공산주의 풍조가 파급되기 시작할 때여서 청소년들이 급속하게 오염되었다.그들은 민족주의자를 반동이라고 하여 그 타도를 일삼았는데 뜻대로 되지않자 살부회를 조직하였다. ○못된짓 일삼고 다녀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민족주의자였다.그런데 그를 반동이라고 하여 살부회의 청년이 암살한 것이다.그 청년은 김일성이 알고 있는 청년이었다… 당시의 정의부는 이것을 「사고」로 꾸며서 당국에 보고하였다.그리고 김일성을 구제해야 한다고 그를 화전으로 보냈다.그는 김형직이 죽은 후에 화성의숙에 들어간 것이다』 박만포씨은 이 이야기를 무송시절의 김형직의 친구 이도일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이 이도일은 필자가 김형직의 죽음을 다루었을 때 증언을 인용한 바로 그 인물이다.이명영교수의 「4인의 김일성」에서는 이도일은 부친을 죽인 자의 정체를 김일성이 모르는 것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학자의 의견은 일견 상반된 것 같지만 세부에서 크게 틀린 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이명영교수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주의 한인 사회에는 1920년대에 공산주의사상이 들어왔다.그러나 초기는 그 공산혁명운동이라는 것이 마적이나 불량패라도 판에 박은 것 같은 구호를 부르면서 떼를 짓고,약간이라도 여유있는 집에 가서 부르주아니 반동이니 불러서 돈이나 재물을빼앗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마골이란 자칭 공산혁명가가 그런 패거리였다.학교(화성의숙·인용자)에도 가지 못하고,할 일도 없이 집에 있었던 김성주는 이 마골 일당에 들어가 심부름이나 하고 있었다.정의부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이종락소대장을 시켜서 마골 일당을 소탕하게 하였다.이때 이종락은 그 일당에 있었던 어린 김성주를 구출하여 그를 데리고 돌아와 봉천의 평단중학교에 넣어 주었다」 이명영교수는 화성의숙에 들어간 후의 김일성과 당시의 유치한 공산주의 수준,그리고 무송지방에 마골이란 인물이 존재했던 사실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마골은 자칭 공산주의자였기는 하였지만 정의부 인사였다.1925년 당시 정의부는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을 조직하였는데 그 중앙위원장이 마골이었다.이 남한청총의 조사부에는 최창걸의 이름도 보이는데 그는 김일성 전기의 단골 등장인물이다 따라서 살부회란 민족주의단체 정의부의 청년단체 일부에 생긴 사이비 공산조직의 별명이다.또 화성의숙에 가기 이전의 김일성도 간 이후와 마찬가지로 무송에서 마골의 말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끝으로 문제를 되돌려서 박만포선생의 주장을 분석해놓는다. ○평단중학교도 전학 ①26년 당시 김일성은 나이가 겨우 15세였다.그러나 그가 살부회 성원이었고 「동지」의 김형직 암살을 알고 있었더라면,이것은 천인공노할 존속살인의 공범이다.얼핏 보면 황당한 주장 같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무자비한 인륜 유린과 가혹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김일성이다. ②북한에서는 70년대 이후 그가 화성의숙에 재학한 기간을 26년의 6월부터 12월 초순까지 4개월 정도로 잡고 있다.그런데 봉천의 평단중학교도 그 개학은 다른 중학교와 같이 8월 하순일 것이다.따라서 북한의 4개월 재학 주장과 이교수의 상기 문장을 참작해 보면 김일성은 평단중학교도 중도에서 「전학」하였다. ①「4인의 김일성」242∼3면 ②「한국독립사」김승학 편 1965년 판 358∼9면
  • 맹수석조물 송곳니 “수난시대”/전국곳곳서 파손 잇따라

    지역사회보호 또는 불을 막는 상징으로 전국 곳곳에 세워진 호랑이·사자 등의 석조조형물 송곳니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잘라져 없어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이들 석조상은 풍수지리설 또는 전래의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지역사회 보호의 상징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맹수의 송곳니가 불치병치료 또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무참히 뽑혀지고 있다. 이때문에 많은 맹수석조상들은 원래의 송곳니 대신 틀니를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잇는 한남대교의 양쪽 끝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4마리의 호랑이및 사자상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입을 벌리고 앉아있다. 지난 69년 당시 「제3한강교」의 이름으로 다리를 준공할 때 서울시가 석상조각가인 홍익대 전뢰진교수(64·조소과)에게 특별히 부탁해 한강과 대교의 수호상으로 만든 것이다. 강남쪽에는 암수사자 2마리가,강북쪽에는 호랑이 2마리가 각각 한강을 등진 상태에서 서로 마주보며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 길이 2m,높이 1m 정도의 실제크기로 1·5m 높이의 기단위에 받쳐져 있다. 이가운데 북쪽의 오른쪽 호랑이는 아랫송곳니 2개,왼쪽 호랑이는 윗송곳니 1개를 틀니로 갈아끼웠다. 또 남쪽의 오른쪽 암사자도 아랫송곳니 1개를 새것으로 바꿨다. 모두가 10㎝쯤 되는 송곳니의 절반이상이 부서져 수호상으로서의 위용에 상처를 입었다. 자식없는 부부나 대입수험생을 둔 학부모,몹쓸병에 걸린 환자들이 근거없는 민간신앙에 빠져 한밤에 몰래 사다리까지 동원해 망치등으로 이빨을 부순뒤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거나 갈아서 물에 타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석불의 코를 갈아 마시면 부처의 힘을 빌려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술신앙」이나 명망있는 문인의 비문을 갖고 과거를 보면 장원급제한다는 민간의 「기복신앙」에 기인한다. 즉 힘이나 기적을 상징하는 물건을 몸안에 지니면 똑같은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유감주술의 영향이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험을 느꼈다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신앙때문에 이빠진 제왕들이 「틀니」일망정 뒤늦게 제모습을갖춘것은 지난 9월말. 차를 타고 우연히 한남대교를 지나던 이종구 전국방부장관이 이를 보고 이상배서울시장에게 시민의 입장에서 『사소한 것일수록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며 보치를 귀뜸해준 것. 이시장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장안의 유명한 석수장이 김세중씨(38)에게 틀니 제작을 의뢰했다. 김씨는 훼손된 부분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어 강력접착제를 쓰기위해 쌓인 때를 염산으로 3일동안이나 씻었다고 했다. 또 며칠만에 가까스로 찾은 똑같은 석재에 강력접착제를 바른뒤 부서진 이빨주위에 시멘트로 보강했다. 처음 석상을 만든 홍익대 전교수는 『비록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지만 이빨이 부서져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말못하는 석상이라 해도 허황된 믿음때문에 시민의 재산인 수호상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계도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사이비 믿음때문에 전국의 오래되고 유명한 석불이나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코가 거의 남아나지 않았으며 치악산 용머리상의 뿔과 소요산 사자상의 이빨도모두 뽑혀져 있다.
  • 이단종교 연구가 탁명환씨(92문화계 주역:5)

    ◎“시한부 종말론 끝나지 않았다”/“회개” 발언불구 헌금 되돌려주지 않아/기성교회 내실 기하지 못한데서 비롯/사회불안 계속땐 더 은밀히 퍼져나갈것 시한부 종말론의 여파로 기성교단이나 휴거를 주장하던 이단교파나 모두 상처뿐인 한해가 되고만 92년의 종교계를 돌아보는 이단종교연구가 탁명환씨(56·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그는 『시한부 종말론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제 더 은밀하고 더 절박하게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퍼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이 회개하는 듯한 발언들을 하고 있긴 합니다.그러나 아직 헌금을 전혀 되돌려주지 않고 있어요.가출했던 아이들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것도 물론이구요.휴거의 망상이 끝났다고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지요.적어도 2000년까지는 휴거의 여파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복지국가가 실현되면 유토피아와 현실적 약속으로 신자들을 호도하는 이단종교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것입니다』 그는 지난 86년부터 시한부 종말론의 심각성을 기성 교단에 경고하고 자신의 연구소에 불량종교 고발센터를 개설,피해방지에 앞장서왔다.특히 금년은 휴거론자들이 주장하는 종말의 해여서 이에 대처하느라 진땀을 흘렸다.지난 10월28일에도 휴거 현장설이 나돌았던 성산동 다미선교회 앞에서 자정이 넘도록 유인물을 돌리고 돌아가다 집앞에서 괴한들에게 왼쪽 어깨를 깊이 찔려 1달여 입원치료를 받고 최근 퇴원했다. 『이같은 현상은 기성 교회가 질적 내실을 기하지 못한 부작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지금이라도 교회들이 이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 시한부 종말론에 빠졌던 2만신도들을 구원해야 합니다.그것은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입니다』 기존종교가 제구실을 하면 사이비종교가 발붙일 틈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하루빨리 이단종교연구도 필요없고 고발센터도 문닫게 되는때가 오는것이 그의 소망이기도 했다. 『지난 85년 자동차 폭탄테러를 당한후 실명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시력을 되찾았습니다.그래서 육신이 내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 안구 기증서까지 써놓았습니다.그리고 제 장기및 시신은 물론 가족들의 장기와 시신까지도 모두 기증키로 약속했지요.내년부터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이비종교 피해자 구조모임과 연계,국제적인 활동을 벌일 작정입니다. 새해에 그가 실현하고 싶은 일은 농아인교회를 세우는 것이다.지난해말부터 20년간 나가던 교회를 서울임마누엘농아인교회로 바꾸고 농아인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수화도 상당히 배웠다.『사이비종교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면 뛰어들려던 일이었으나 그들의 사정도 급해 바쁜대로 그일도 서두르기로 했다』며 건강과 강한 신념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돌렸다.
  • 사이비종교 제재 등 요구/종말론피해자 단식농성(조약돌)

    ○…11일 하오3시부터 서울 여의도광장 새마을봉사대본부앞에서 「시한부종말론」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박근창씨(40·중랑구 면목동)가 사이비종교를 규제하는 「종교법」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 눈길. 박씨는 『아내가 6년전부터 생활고에 못이겨 교회에 자주 나가면서 이혼을 요구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어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사회적 혼란을 틈타 극단적 신비주의에 빠져 신자들을 속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종교지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힘있는 연줄” 미끼 피해자 등쳐/적발된 법조브로커 사기실태

    ◎고객 알선해주고 변호사와 수임료 분배/폭력배동원 입찰방해… 경매물 헐값인수 전국검찰에 구속돼 11일 대검이 밝힌 법조주변브로커들은 법을 잘 모르는 민·형사사건관련자들에게 사건해결을 미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을 받아 가로채 온 것으로 드러나 비리규모가 점차 대형화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에도 법조 주변에서 이들 브로커에게 사기당해 고소·고발을 해오는 경우,간간이 이들을 단속했으나 이들의 비리가 간헐적인 대처로는 근절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선분위기에 편승,더욱 조직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게 된 것이다. 지난 9월부터 전국 50개 본·지청에 브로커단속반을 편성,수사해온 검찰은 ▲민·형사사건청탁자 1백16명 ▲경매브로커 40명 ▲민사사건대리·알선자38명 ▲공무원의 금품수수자 14명 ▲해결사·사이비기자 10명 ▲기타 30명등 모두 2백48명을 단속,이 가운데 죄질이 무거운 1백50명을 구속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상황이 급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구속피의자들에게 잘 해결해줄수 있는 「묘약」이 있다고 속여 거액의 돈을 챙기는 수법을 써왔다. 민·형사사건관련으로 법의 제재가 불가피한 사람들로서는 이들의 「위세」가 사건해결의 열쇠로 보였을 것이고 따라서 거액의 돈이라도 써서 해결하려는 몸부림을 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위세」는 결과를 보장못받는 「사기」였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에는 벌써 이들이 꼬리를 감춘지 오래이고 사기당한 사람은 또다시 법에 이를 호소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무지청에 구속된 엄정웅씨는 법원·검찰공무원에,서울북부지청에 구속된 종합법률신보대표 박종근씨는 법원고위층에,서울동부지청에 구속된 문종금씨는 청와대에 각각 『아는 사람이 있어 잘 처리해주겠다』고 속여 엄씨는 1억5천9백여만원,박씨는 7천6백여만원,문씨는 9천8백여만원 씩을 챙긴 것이다. 검찰은 법조주변에서 브로커짓만 해온 이들의 수법이 워낙 그럴싸한데다 최근에는 서로 짜고 사기를 벌이는 조직화 현상도 나타난 것으로 파악돼 「칼로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각오로 단속을 벌였다고 밝히고 있다. 법원경매장에서 날뛰던 브로커들은 실제로 겁없는 조직폭력배들을 동원,입찰을 방해해 유찰시키거나 헐값낙찰을 받아와 조직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번에 구속된 소민영씨는 서울지역 법원뿐만 아니라 수원·인천등 법원경매장을 모두 장악,엄청난 물량의 부동산을 헐값에 거머쥐어 「경매거부」로 떠오른 인물이었다는게 검찰측의 설명이다. 법조주변브로커가 횡행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 병폐인 「이권청탁」「안면장사」등이 아직도 발붙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는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특히 변호사 가운데서도 브로커를 통해 사건을 알선받거나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는게 법조계 주변의 공공연한 비밀이어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 법조브로커 150명 구속/검찰/대선분위기 틈타 전국서 활개

    ◎사이비기자 등 2백48명 입건/두달간 50개 본·지청서 단속반 운영 대검은 11일 법원이나 검찰주변에서 불법으로 민·형사사건을 해결해준다며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여온 브러커에 대한 단속을 벌여 2백48명을 입건,이 중 종합법률신보 대표이사 박종근씨(56·전과5범)등 1백5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사회분위기가 느슨해질 것이란 예상에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브로커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9월중순부터 전국적으로 이들에 대한 일제단속을 벌였다. 검찰은 전국 50개 본·지청에 「법조주변 부조리사범 단속전담반」을 가동,적발된 사람 가운데 죄질이 무거운 선라이즈필름 대표이사 문종금씨(34)와 건축업자 엄정웅씨(50)등 1백10명의 악덕브로커를 구속하는 한편 법원에서 압류한 재산을 경매하는 과정에 끼어들어 고의적으로 유찰시키거나 담합해온 소민영씨(57)등 40명도 함께 구속했다. 이번에 적발된 브로커들을 유형별로 보면 ▲민·형사사건 청탁 1백16명▲경매브로커 40명 ▲민사사건대리·알선 38명 ▲공무원금품수수 14명 ▲해결사·사이비기자 10명 ▲기타 30명 등이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들브로커로부터 사건을 소개받은 대가로 변호사수입료의 30%를 떼준 최모,진모,전모씨등 변호사3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해 구체적 혐의사실이 드러나는대로 형사처벌과 함께 법무부에 징계를 요청키로 했다. 구속된 법률신보대표 박씨는 지난4월 간통죄로 서울지검에 구속된 나모씨에게 『법원고위층에 부탁,구속적부심단계에서 석방되도록 해주겠다』며 9천8백여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선라이즈필름대표 문씨는 지난해 10월 무면허의료행위로 구속된 성동구 금호동 K산부인과 사무장 정모씨에게 청와대의 아는 사람에게 부탁,선처해주겠다며 사례비조로 5천5백여만원을 받은 혐의이다. 함께 구속된 엄씨도 지난해 8월 간통혐의로 창원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심모씨에게 같은 수법으로 1억5천9백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경매브로커 소씨는 지난 9월 빚으로 압류된 유모씨의 성동구 구의동 땅3천여평과 공장 9백여평등 모두 5백억원 상당의 부동산 경매과정에서 일당과 짜고 7차까지 유찰시킨뒤 결국 44억7천여만원에 낙찰받아 곧바로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이들 경매브로커들은 폭력배를 동원,경매장에서 일당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협해 몰아낸뒤 서로짜고 낙찰을 받아 헐값에 인수하는 방법을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앞으로도 이들 법조주변 브로커는 물론 변호사밑에서 사건 알선을 해주거나 채권회수를 빙자해 협박을 일삼는 폭력배,그리고 법조주변에서 기생하는 사이비기자에 대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벌여 이를 근절시켜 나갈 방침이다.
  • 탁명환씨 한밤 피습/휴거반박 회견뒤 귀가길 주차장서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인 종교연구가 탁명환씨(55)가 29일 상오 2시15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삼호아파트 31동 앞 주차장에서 「10·28휴거」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귀가하다 30대 괴한 2명으로부터 피습당했다. 탁씨는 왼쪽어깨와 오른쪽 옆구리 등을 흉기로 찔려 중상을 입고 인근 상계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탁씨는 이날 상오 1시쯤 서울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앞에서 기자들에게 『휴거는 다미선교회의 사기극』이라고 말한 뒤 귀가중 이같은 변을 당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 홍용표씨(55)에 따르면 주차장쪽에서 『악,사람살려』하는 비명이 들려 뛰어가보니 탁씨가 피를 흘린채 쓰러져 있었고 은색점퍼 등을 입은 30대 남자2명이 아파트단지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탁씨는 병원에서 『승용차로 아파트주차장에 도착,차에서 내리자 30대로 보이는 1명이 흉기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여 평소 갖고 다니던 가스총을 겨누고 『사람 살려』라고 소리치자 갑자기 뒤에서 다른 1명이 달려들어 어깨와 등을 찌른뒤 도망갔다고 말했다. 탁씨는 70년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전신인 신흥종교연구소를 설립한뒤 20여년동안 사이비이단 종교를 연구해 왔으며 지난 8월 경기도 부천에 본부를 둔 한 시한부종말론 교파에 대한 비판세미나를 연 뒤 여러차례에 걸쳐 『몸조심하라』는 협박전화를 받아온 것으로 알
  • 겨울문턱,마음의 깃을 여미자(사설)

    낙엽이 뒹구는가 싶더니 하루이틀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초겨울이 발아래 다가왔다.불과 얼마전까지도 낮동안의 볕이 머리를 벗길듯 했는데 산간에 눈도 뿌렸다는 소식이다.절기의 어김없음에 새삼 옷깃이 여며진다. 이렇게 바뀌는 계절에는 마음이 먼저 스산해진다.다가오는 추위와 겨우살이 준비에 마음이 먼저 을씨년해지는 것이다.못먹고 헐벗던 시절에 비하면 이제는 겨울이 그렇게 두렵고 무섭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야한다.물리적 대비도 대비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황량함을 다스리는 일이다.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했을 때 위해를 가하려던 북의 음모가 불거져 나오고,정당하게 협상테이블에 마주하여 대화로 문제해결을 꾀했어야 할 노사가 뇌물거래를 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그 때문에「시민의 발묶기」 파업을 간신히 모면한 택시가 또 다시 술렁이고 있다.집단마다 해묵었거나 새로운 갈등때문에 눈만 뜨면 지옥처럼 처절하다.민생이 어떻게 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때여서 겨울이 더 걱정스럽다. 특히 우리를 을씨년스럽게 하는 것은 아들이 아비를 쏘아 강물에 던지면서 아비의 주검이 강위로 떠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자루안에 벽돌을 『넉장씩이나』넣었다는 이야기다.그 손으로 아버지가 남긴 통장에서 아비를 청부살인하게 교사했던 악당들의 입막음 돈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는 날씨보다 훨씬 무서운 추위로 우리를 엄습한다. 부모를 벤 손으로,그 죄깊은 손으로 행복한 인생을 일굴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우리에게 정말로 무서운 일은 사람들에게 깃들어가고 있는 이 무도한 품성이다.맑고 바르고 따뜻한 품성을 잃지 않아야 이 미친듯이 잘못되어가는 성정에서 자신을 지킬 수가 있을 것이다. 「소중한 내 자식」이 그렇게 그르친 인생으로 살게 되는 일처럼 부모를 불행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자식이 악몽으로 가득한 인생을 산다면 부모의 인생도 실패한 것이 되고 만다.돈으로 지킨 어떤 삶도 그 실패를 메워주지는 못한다.수십억의 재산을 지니고도 주차관리나 파출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미덕일 수 있지만 돈을 뺏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을 둔 죄는 누구도 사면할 수가 없다. 절기가 이렇게 바뀌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철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변을 돌아보고 가족구성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챙겨둬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일이 더 급하다.사기꾼과 정상배와 사이비종교와 온갖 범죄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그것을 물리치고 정화하는 노력을 이런 계절에는 특히 기울여야 한다.이 계절의 기능은 눈이 맑아지고 생각이 밝아지는데 있다.좋은 부모로,좋은 자식으로,좋은 시민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반성의 아침이 거듭되면 실패도 최소화하고 죄짓는 불행도 예방하고 혼돈과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헤어나올 수도 있다.싸늘한 기운이 대기를 채우는 초겨울의 일요일 아침은 깊은 자기성찰로 심신의 겨울을 예비하기에 알맞은 아침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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