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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리스트 사회’

    불안정하고 집단이기로 서로 등진 사회와 조직에서는 늘 루머가 횡행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우리는 정권교체기 전후 어김없이 새로운 체제의 정착을 앞두고 과도기적 혼란을 겪어왔다.정치·사회적 욕구분출이 본격화한 노태우정부에 이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던 김영삼정부,반세기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정부,소외받은 사람들의 참여를 주창하는 노무현정부 아래에서도 그 현상적 증후군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대표적 현상을 ‘리스트 정치와 자살 신드롬’의 기막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한쪽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명분을 둘러대지만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고,다른 한쪽은 생활고에 지쳐 인생의 극단적 길을 선택한다.경험칙은 그 상반된 예시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요즘 희대의 상가분양 사기사건에 정치자금 수수 혐의까지 겹쳐진 ‘굿모닝시티 게이트’로 온통 야단법석이다.사업수완은 있지만 배경이 없는 한 사업가가 상가분양대금을 정치권과 검·경 등 힘있는 곳에 로비자금으로 엄청나게 뿌렸다는것이다.돈을 받은 사람의 리스트가 수십명에 이른다고 한다.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게이트니,××게이트니 정치적 사건마다 ‘증권정보지’에 오르내린 사람이 한둘인가.한때 로비 리스트에 끼지 못하면 팔불출이란 우스갯소리가 ‘그들만의 리그’에 회자되지 않았던가. 그러한 부패구조와 경제·사회적 환경에 짓눌려 한편에선 ‘사회적 타살자’가 늘고있다.얼마전 충격적인 30대 주부의 일가족 투신자살 사건이나 한 대학생의 엽기적 자살 동영상 사례에서 보듯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다.서울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을 웃도는 1만 3000명을 넘어섰고 올 상반기 자살관련 출동건수도 전년대비 30%가량 늘었다.경기침체기일수록 자살자와 실업자가 급증하는 연관성을 제시한 고려대의대측의 연구결과가 적중하고 있다.그 전조도 좋지 않아 서울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개인파산자가 전년보다 4.4배나 늘었다.젊은층 등의 신빈곤층이 급증하고,빈부차가 5년 전보다 악화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양극화사회의 우울한 단상을 치유하려면 리스트에 오른 그들부터 석고대죄해야 한다.그 분양자들의 피땀 앞에 어떤 꼼수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박선화 논설위원
  • “언론보도 본질인지 의구심 부풀려진 기사 많은것 같다”盧대통령 다시 언론 불신감 표출

    “요즘 괴롭고,힘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 민원담당 공무원 25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특별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이처럼 심경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원체 큰 주제들이 많고,그 주제들이 제게 그렇게 즐겁지 않은 방향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에 좀 괴롭다.”고 밝혔다.최근 대선자금,신주류와 386의 갈등설,노사문제,경제문제 등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완곡히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보도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대개 알고 있다.”면서 “요즘 가만히 보니까 저 보도에서 나오는 것들이 세상의 본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이어 “보도 중에는 중요한 일들도 많지만,많이 부풀려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해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아주 민감하고 시끄럽고 목소리가 큰 그런 사회적 갈등들로부터 한발 비켜서서 (민원 및 제도개선이라는)작은 얘기를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저는 이게 굉장히 크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여러분들도뭔가 해야 한다.이대로 그냥 가면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아니고 사가 가장 끝에 온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노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라며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공무원이든,사업가든,소설가든 성공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민원처리와 관련,“(민원처리를 위해 이곳저곳을 왔다갔다하면)민원인들 속 터지죠.”라면서 “오르락내리락 한참 하다가 남는 게 뭐냐.”고 반문했다.그러면서 “(민원인들이)개XX들,‘공무원들 절반 잘라야 돼.’라고 말하지 않느냐.”고 사례를 적시하기도 했다.청와대측은 대통령이 이같이 거친 표현을 하자 쓰지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中뤼순공원에 DJ동상/평화기여 102인과 함께

    중국 랴오닝(遼寧)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18일 현지 관계자 등에 따르면 2000년 9월 건립된 다롄(大連)의 ‘뤼순(旅順)평화공원’에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사 103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이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삼웅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및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사이트인 ‘www.djroad.com’ 게시판을 통해 “지난 16일 중국에 있는 사업가 김진근씨로부터 뤼순평화공원에 있는 김 전 대통령의 동상 사진 등을 전달받았다.”고 소개했다.김 전 대통령의 동상 옆에는 세계평화에 끼친 공적이 한국어,중국어,영어로 기록돼 있고,태극기 사진과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행동하는 양심으로’란 글이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의 지정으로 선정된 103명의 세계평화 인사에는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인도 간디,중국 덩샤오핑(鄧小平), 등이 포함돼 있다. 구혜영기자 koohy@
  • “브라질­터키전 심판 지금도 못잊어요”한국 월드컵 주심 1호 김영주 씨

    “축구 심판요? 그거 명예심 없으면 절대 할 수 없습니다.경기장 빠져나올 때는 경기에 져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은 선수들보다 더 처절하고 쓸쓸할 때가 많지요.체력과 집중력을 다 쏟아부은 뒤의 허탈감이라고나 할까요.” 몇 차례의 약속 끝에 서울 양재천 옆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주(46)씨는 1년 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와는 사뭇 달랐다.호리호리한 몸매는 여전했지만 심판복과 잘 어울리던 구릿빛 얼굴은 본래대로 돌아온 듯하다.옐로카드를 뽑아들던 깐깐한 표정도 그의 삽삽한 눈매만큼이나 부드럽게 변했다. ‘국내 1호’ 월드컵 주심 김영주씨는 지난 2월 은퇴한 뒤 사업가로 변신했다.아니 ‘원위치’했다.여느 국제 심판들처럼 그도 심판이 본업은 아니었다.20여년 전 외항선 용품 납품을 시작으로 해외이사,등나무가구 제조 등 사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고생도 많았고 대가로 ‘돈푼깨나’ 만진 그가 이제는 스포츠마케팅에 뛰어들었다.중국 체육시설 임대사업권을 따낸 것.중국의 재벌 홍타그룹이 건설한 26만평 규모의 쿤밍 종합스포츠단지 내13개 잔디구장과 숙박시설 등을 임대받아 국내팀과 선수들을 유치하고 있다.이밖에 광저우 인근의 유명 온천리조트인 칭신의 50개 축구장과 중국축구협회가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는 친황다오의 ‘중국족구학교’도 그의 사업 영역이다. 김씨는 지난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당했다.지난해 6월4일 한·일월드컵 1라운드 브라질-터키전에서 한국인 최초의 월드컵 주심으로 그라운드에 선 그는 경기를 역전당한 뒤 거친 플레이를 펼친 터키선수 2명을 퇴장시켰다.“브라질 히바우두의 할리우드 액션에 속았다.”는 논란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지만 지금도 소신엔 변함이 없다.김씨는 “심판위원회에서도 비디오 분석을 통해 나의 판정을 지지했다.”면서 “이후 경기에서도 대기심으로 출장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오래 전부터 꿈꿔온 월드컵 주심을 이룬 그에게는 호된 신고식이 아닐 수 없었다. 김씨가 심판이 된 동기는 아주 소박하다.지난 1974년 박스컵축구대회 도중 흑백TV에 비친 맹광섭(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씨의 심판 유니폼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군대축구’로 뒤늦게 ‘축구 맛’을 본 뒤 81년부터 4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이후 사업에 몰두하면서도 늘 심판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88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막 돌아온 허정무씨,한문배 한양대 감독 등과 함께 심판 자격증을 손에 쥔 김씨는 이후 A매치 56경기를 포함,160여 경기를 치러내며 전세계 그라운드를 누볐다.그러나 월드컵 무대가 늘 아쉬웠다.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권 심판 선발(4명)에서 당시 심판랭킹 3위이면서도 영어가 서툴러 탈락한 것.이후 김씨는 하루 100개의 문장을 100번씩 쓰고 외우면서 다음을 준비했다. 월드컵의 해 2002년이 시작된지 나흘만에 김씨는 한·일월드컵 선발 통보를 받았다.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 랭킹 1위인 그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김씨는 지금도 협회 심판 감독관으로 가끔씩 경기장을 찾는다.은퇴 경기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그라운드는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2002월드컵 때 쓴 휘슬,땀에 전 심판 유니폼은 장롱 속에 묻어두었는데 곧 다시 꺼내야겠어요.국제심판 김영주를 기억하는 분들을 위해 협회에 기증할 생각입니다.”한국인 최초의 월드컵 주심 김영주.그의 ‘축구사랑’은 더욱 깊어진 것만 같다. 글·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
  • [마당] 술 이야기

    요즘 모 미술관에서는 술에 관한 재미있는 전시를 열고 있다.각자의 술에 관한 기억과 존재 이유가 다른 만큼 각기 다른 작품들을 바라보며,우리의 지루한 일상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술의 철학에 관해 생각해본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예술가에게 술이란 강남의 환락가 룸살롱에서 아가씨들을 옆에 끼고 한 병에 몇십만원씩 하는 비싼 술을 마시는 사업가들의 술하고는 그 개념이 많이 다를 것이다.그래도 술값 대신 아가씨 얼굴을 그려주니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추억담은 그리운 옛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반주로 딱 한 잔이면 좋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술의 기능은 남들과 많이 다르다.할일을 끝내고 밥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술은 내게는 기분 좋은 일상의 축제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어쩌다 몇 번 가본 고급 룸살롱에서의 술자리는 그 술값이 얼마나 나왔을까 호기심을 갖는 순간 굉장히 불편한 자리가 되고 만다.그렇게 비싼 술을 그렇게 자주 먹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우리나라 남자들 밖에는 없을것 같다. 백만원이 우스운 술자리는 너무나 많다.그런 식으로 사교도 하고 사업도 한다는 구실이 꼭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런 자리를 무척 사랑하는 것일 게다.그렇지 않다면 하고한 날 밤마다 술 마시고 노래하는 술과 장미의 나날들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신용불량자가 날로 늘어나는 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 그 비싼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빚도 많고 한도 많아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장소가 룸살롱인지도 모른다.직장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 샐러리맨,직원들 봉급과 기울어가는 회사 사정에 노심초사하는 사장님들,그리고 규모가 큰 대기업의 대표까지 요즘 맘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들과 더불어 살아남아야 할 가난한 화가의 마음은 오죽하랴.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는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그리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술이 술을 먹고 온 세상을 다 삼켜버리고도 남을 그 비싼 술값을 다른 데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쓸 데 쓸 줄 알고 안 쓸 데 쓰지않을 줄 아는 돈의 존엄성에 관하여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하면 된다는 투지를 안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80년대는 씁쓸한 성공의 추억을 남기고 아스라이 사라졌다.낯선 외국에 가면 어디서나 휘날리던 우리나라 기업들의 당당한 깃발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그 모든 것들이 당장 보기 좋은 거품이었다 해도,다른 나라 땅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그 성공의 전주곡을 멀리서 듣기만 해도 그 깃발의 그림자를 훔쳐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다.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우리 경제도 덩달아 흔들리고,어쩌면 국운까지 나쁜 건지도 모른다.어쨌든 지난 세대는 피땀 흘려 일했다. 다음 세대의 성공의 밑거름이 너무도 불성실한 한탕주의의 당연한 결말이라는 흔한 말들도 술 마시고 싶은 우리의 쓸쓸한 마음에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어디선가 이런 칼럼의 구절을 본 기억이 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으스대기보다는 성공을 가져다 준 운의 작용에 감사해야만 한다.또한 불운 때문에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아량과 겸허함을 갖춰야 한다.” 어찌 보면 옳은 말이다.날이 갈수록 성공이 뭔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든다. 내실을 기하는 기업,빚이 없는 가계,가난하지만 허황되지 않은 개개인의 마음.백 번을 되뇌어도 그저 말뿐인,우리 생전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말지도 모를 건강한 세상을 위하여 딱 한잔,건배를 하고 싶다. 황 주 리 화가
  • “한민족의 비극적 현대사 외국인에 알리려 했어요”/500여쪽 영문소설 순이 펴낸 정종순 금강고려화학 부회장

    그는 ‘노무현 인맥’이라는 이유로 지난 연말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언론은 으레 ‘부산상고 49회,노 대통령의 4년 선배…’라는 표현을 앞세워 앞다퉈 보도했다.고교 동기생인 황두열 SK㈜ 부회장,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52회)과 더불어 부산상고 출신의 ‘재계 3인방’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바로 정종순(鄭鍾淳·60) 금강고려화학 부회장이다. “언론이 그렇게 쓰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부산상고를 나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그러나 노 대통령은 4년전에 딱 한번 만났을 뿐입니다.노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였습니다.그 때는 동기생들과 함께 정치판에서 손을 떼고 생활인으로서 변호사 역할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아픈 상처도 우리 몸의 일부입니다.” 그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순이’ 때문이다.환갑을 맞아 ‘순이-격랑위의 여행자(Soony-A Traveler on the Angry Wave)’라는 소설을 펴낸 것이다.그것도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써냈다.무려 500쪽에 이른다.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공부한 적도 없다고 했다.그래서 소설을 완성하는데만 꼬박 10년이 걸렸다.하루에 한 줄밖에 쓰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 삶을 묘사한 훌륭한 문학작품은 많지만 우리끼리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들 외국인들이 누가 알아주기나 합니까.” ‘순이-’는 일제 강점기인 1941년부터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007기가 피격되는 1983년까지 40여년의 세월을 헤쳐온 한 한국여성의 일대기를 그렸다.순이는 대갓집 머슴에게 겁탈 당하고 일본으로 팔려 가며,한국전쟁 이후에는 양공주로 전락하는 등 한국 현대사의 오욕을 함께 했다.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하지만 코리아게이트에 휘말려 옥살이를 한다.아들을 만나기 위해 1983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가 공중에서 산화하고 만다. ●“외국에 3000부를 기증할 것입니다.” “한민족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외국인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근대화 100년의 고단한 삶을 외국인들에게 이해시켜 보자는 것이었지요.혹자는 주인공 순이의 삶이 너무 가혹하고,우리 사회의 치부까지 드러내 외국인 독자가 한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그러나 “아픈 상처도 내 몸의 일부입니다.우리의 절치부심,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그래서 자비로 소설 5000부를 인쇄해 이 중 3000부를 외국 도서관에 기증할 작정이다. “1983년 사할린 상공에서 269명이 희생됐는데도 별다른 대책 없는 나라팔자에 대한 울분,틈이 있을 때마다 한국강점을 정당화하는 일본을 향한 분노,그런데도 우리는 도대체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성인 셈입니다.” 그는 수수하고 소탈한 인상을 풍긴다.얼굴이 가무잡잡해서 그런지 고향의 형님같다는 느낌을 준다.아무리 뜯어봐도 세련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연간 매출이 1조 7000억원에 이르는 대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7년이나 지냈는데도 말이다. 당한 달변가인데도 그의 말에서는 일관된 흐름이 감지된다.국력을 키우지 않으면 결국 국민들만 고생하게 된다는 것이다.사실 ‘순이-’라는 소설도 한 한국 여성의 고단한 인생 역정을 통해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국가간의 관계에서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나라가 힘이 없을 때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형상화했다. ●“나라의 힘이 없으면 백성만 고단해집니다.” 어수선한 시대,모두 애국자를 자처하며 정치판에 나선 시기에 공산주의를 민족의 구원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의사 친구와 제 자리를 지키려는 은행원의 입을 빌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 나라를 세우려면,각자가 자기 소명에 몸 바쳐야 할 걸세.농부는 열심히 밭갈고,어부는 매일 아침 고기잡고,물건 만드는 사람과 상인은 사람들에게 물건 대주고,자네같은 의사는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 걸세.모두 정치판에 나서면,농사는 누가 짓고,고기는 누가 잡으며,아픈 사람은 누가 돌보겠나.” 그는 4·19혁명 직후였던 고교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다.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가 투옥된 적이 있다.서울대 상대 3학년때는 교내 학예부장으로 일하면서 한·일수교 반대시위를 주도했다. 60대인데도 젊게 보이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음을 항상 편하게 갖는 것입니다.매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이오.”하면 됩니다.남의 탓을 하면 속이 끓고 얼굴이 찌그러들지 않습니까.직장 생활에서도 명예는 상사에게 돌리고,공(功)은 아래 사람에게 주고,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모든 일이 원만히 풀립니다.” 박건승기자 ksp@
  • 사회 플러스 / 대통령부인 친척 사칭 11억 사기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0일 대통령 부인의 친척이라고 속여 재미 교포사업가에게서 11억원을 가로챈 권모(42)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권씨는 지난 3월7일 이미 14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대전 대덕구의 20억원짜리 5층 건물을 구입한 뒤 31억원에 산 것처럼 계약서를 허위 작성하고,이를 담보로 재미 교포사업가 김모(72)씨에게 10억원을 빌려 가로채는 등 2차례에 걸쳐 11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 “프로야구선수 200여명에 ‘맞춤형 배트’ 만들어줘요”방망이 제작 목수 공금석 씨

    “2003년 7월 현재 프로야구 타격 10위안에 드는 선수 가운데 8명의 공통점은?” 국산 방망이인 ‘맥스’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일본에서 활약한 이종범(기아)도 맥스를 휘두르며 최다안타 2위를 달리고 있다.맥스는 국내산 방망이의 80%,외국산까지 포함하면 6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산 방망이가 득세하던 시장에 공금석(사진·41)씨가 들어온 지 4년만에 나온 성적표다.그는 3대째 목수 집안 출신이다.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어릴 때부터 여느 아이와는 다르게 끌질과 대패질을 놀이삼으며 자랐다. 그런 그가 야구 방망이를 만들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야구광이던 그가 지난 1999년에 TV를 보다가 방망이 대부분이 외국산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더욱이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온국민이 장롱속에 숨겨둔 금붙이를 내놓던 시기.목공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까지 상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대대로 물려받은 목공기술을 살려 88년에 나무상자를 만드는 승진산업을 설립해 상당한 돈을벌었다.잘 나가는 사업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무조건 방망이를 깎기 시작했다.당연히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시장이 크지 않은데다 국산 방망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목공예를 하면서 나무를 다루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매년 외국에 나가 직접 골랐습니다.” 그는 99년 맥스를 설립해 1년동안 1500여개의 배트를 깎으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야구 방망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하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국산 방망이를 보면 발로 걷어차버릴 정도로 푸대접을 했다. “내가 만든 방망이가 외국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 아닌지 회의가 들었습니다.선수들이 많이 찾는 일제 방망이인 미즈노와 사사키를 100자루 구입해 맥스상표를 붙여 프로선수들에게 시험을 해보았으나 전혀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하더군요.인지도의 문제일 뿐 성능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얻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일일이 우리 선수들의 체중과 손에 맞게 밸런스를 맞춰주는 노력도 기울였다.땀흘린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두산이맥스를 사용한 2001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국산 방망이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순식간에 시장 점유율이 50%로 치솟았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항상 추구한다.처음에는 물푸레나무로 방망이를 만들었다.어느날 미국 메이저리그를 보다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쓰는 방망이 재질이 단풍나무라는 것을 알게 됐다.당장 재질을 바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단풍나무로 방망이를 만들었고,반응은 선풍적이었다. 자동화 기계도 개발해 이종범 스타일을 입력하면 언제든지 그대로 깎을 수 있게 했다.그러나 최종 밸런스는 그만이 알고 있는 ‘노하우’로 직접 선수들의 특성에 맞춘다.현재 200여명의 선수에게 맞춤형 방망이를 만들어주고 있다.연간 생산량도 2만자루에 달한다. 그의 꿈은 방망이를 들고 세계로 나가는 것과,3대째 이어온 목공기술을 아들에게 전수하는 것. 이번 달부터 타이완에 공장을 세워 연간 1000자루가량을 생산할 계획이다.미국에서도 바이어가 오는 17일 쯤 방문할 예정이다. 아들 인식(22)씨는 대학을 휴학한 채 기술을 배우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 방황하고 있다.그는 피는 속일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가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나무 부스러기를 뒤집어쓴 채 야구 방망이를 다듬는 그는 사업가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이 시대의 장인이다. 글·사진 대전 김영중기자 jeunesse@
  • 100억대 미술품 광주시에 기증

    재일동포 사업가인 하정웅(65)씨가 100억원대에 이르는 세계적인 미술품 1000여점을 광주시립미술관에 추가 기증키로 해 화제다.광주시립미술관은 25일 “하씨가 오는 7월21일 광주를 방문,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 1182점을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기증하는 작품은 2억원에 달하는 이탈리아 작가 에지디오 코스탄티니의 유리 공예작품과 함께 프랑스 작가 마리 로랑생의 회화,알랭 본푸아와의 누드,일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재일교포 작가 조양규·문승근·김석출,국내 작가 홍성담의 ‘5월 판화’ 전작 166점 등이 망라돼 있다.
  • 부고/ 애국지사 신기철 선생

    애국지사 신기철(申琦澈) 선생이 23일 오전 1시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81세. 강원도 춘천 출신인 고인은 1938년 해체 위기에 놓인 춘천고등보통학교의 항일학생 결사단체 ‘상록회’를 재조직,회장을 맡아 독서활동과 귀농운동 등을 통해 항일운동을 펼치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돼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광복 후 1977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용월씨,상윤(재미사업가)·상대(재미사업가)·상진(산단에너지 경영관리팀장)씨가 있다.빈소는 서울 영동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다.발인은 25일 오전 10시,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02)572-0099.
  • 정몽헌·박지원씨 오늘 대질 ‘150억’조사

    ‘대북송금 의혹사건’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은 22일 현대 비자금 의혹과 관련,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을 23일 재소환,구속수감 중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질조사키로 했다.또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같은 날 소환할 방침이다. 특검팀은 정 회장과 박 전 장관의 대질 조사에서 비자금 전달 여부,비자금을 건넨 명목과 사용처 등을 집중추궁할 것으로 알려졌다.또 비자금으로 사용된 150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 가운데 재미사업가 김모(50·미국체류)씨가 직접 유통시킨 10억원이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을 통해 유신종 코리아텐더 사장에게 넘어간 사실을 확인하고 정치권 유입여부 등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김 전 사장은 지난해 초 골드뱅크(현 코리아텐더)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수백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으며 현재 해외도피중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박 전 장관의 공소유지를 위해 150억원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비자금 세탁과정에 개입된 사채업자 등은 수시로 불러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150억 추적·보완수사 필요” 특검, 30일연장 요청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은 2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특검 수사를 연장해주도록 ‘수사기간 연장승인 요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특검팀은 특검법상 규정된 1차 수사기간 70일이 오는 25일로 만료됨에 따라 2차 수사기간 30일을 늘려달라고 대통령에게 요청했다.특검팀은 연장이 승인될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사법처리 여부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리,2차 수사기간 안에 특검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3면 특검팀은 연장승인 요청서를 통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 및 자금추적 ▲국정원,현대그룹,외환은행에 대한 추가 보완수사 ▲여러 기관의 비리의혹 조사 등이 진행중이어서 1차 수사기간 안에는 도저히 마무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검팀 관계자는 “사법적 진실이든 실체적 진실이든 이 사건의 경우 100%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기간 연장이 거부되면 관련자를 일괄기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날 현대건설 비자금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상반된 진술을 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재소환,대질 조사를 벌였다.박 전 장관의 변호인인 김주원 변호사는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긴급체포한 뒤 진술에 대한 현장 검증도 생략한 채 구속한 것은 불법행위로 다음주 초 구속적부심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150억원의 양도성 예금증서 자금 세탁을 주도한 재미사업가 김영완(50·미국체류)씨와 사채업자 임모씨를 접촉한 정황을 포착했다.또 임씨가 김씨로부터 1억원짜리 예금증서 140장을 넘겨받아 자금 세탁한 사실을 확인,미국에 체류중인 임씨에 대해 입국시 통보 조치했다. 한편 특검팀은 계좌추적의 결과가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수사기밀 유출을 인정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안동환 홍지민기자 sunstory@
  • [씨줄날줄] 落花

    DJ정부의 2인자였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구속 수감은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케 한다.그는 18일 밤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기 직전 “꽃잎이 진다고 해서 바람을 탓하지 않겠다. 다만 한잎 차에 띄워 마시면서 살겠다.”고 했다. 한국 근대정치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대 정권의 2인자들은 어김 없이 수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5공시절 경호실장을 지낸 장세동씨,6공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씨,그리고 문민정부에서 ‘소통령’이라는 별칭을 들었던 김현철씨.그들은 모두 재임기간에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모시면서 위세를 떨쳤지만 다음 정권에 들어서는 감옥행을 피하지 못했다. 박지원씨도 마찬가지다.그는 지난 1983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시절 재미 동포 사업가로 만난 이후 91년 귀국해 뒤늦게 DJ사단에 합류했다.당시 평생을 동고동락한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많았지만 그는 타고난 부지런함과 빠른 판단력으로 DJ식 사고에 일찍 눈을 떠 DJ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DJ집권 후에는 청와대 대변인,문화관광부장관,정책기획수석,정책 특보,그리고 임기 말에는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승승장구했다.남북정상회담의 특사를 주무부서가 아닌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맡긴 것은 그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해준다. ‘리틀 DJ’로 통하는 그도 자신의 앞날을 예견했던 것일까.그가 특검에 불려가기 며칠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식사를 함께하자며 그를 동교동 자택으로 불렀다.그러나 그는 혹시라도 특검 수사의 와중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 김 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일제 말에 감시망을 피해 강원도에 숨어지낼 때 지은 ‘낙화(落花)’라는 시다.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며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사는 적막함과 망국한을 노래한 것이다.지는 꽃의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비애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감옥에 들어간 박 전 비서실장이 ‘지는 꽃’에 실어보낸 권력의 무상함이 진하게 전해온다. 염주영 논설위원
  • 특검, 150억 사용처 추적

    ‘대북송금 의혹사건’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은 19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의혹과 관련,비자금 운송책으로 알려진 사업가 김모(50)씨의 연결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추가로 발부받아 계좌추적에 나섰다.또 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김씨에 대해 입국시 통보조치를 내렸다.또 조만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및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관련기사 4면 특검팀 관계자는 “아직까지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들어갔다는 단서를 포착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박 전 장관에 대한 공소유지를 위해 150억원의 용처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특검팀은 구속수감된 박 전 장관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을 조만간 재소환,현대 비자금의 북송금 관련 여부,정치권 유입 여부 등을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또 현대가 150억원 외에 추가로 비자금 수백억원을 조성해 로비자금으로 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대측 자금 흐름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김주원 변호사는 이날 박 전 장관에게 비자금을 건넸다고 진술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공무집행방해,명예훼손 혐의로 특검팀에 고소·고발했다. 한편 특검팀은 오는 25일 1차 수사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이르면 2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간연장을 요청하기로 했다.특검팀 관계자는 “비자금 돈세탁 과정을 규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물리적으로 1차 수사기간 내에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은주 이유종기자 ejung@
  • ‘돈세탁’ 의혹 사업가 김모씨 / 율곡사업 헬기수입 중개 금강산카지노 ‘가교’ 역할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함께 ‘3자모임’을 자주 가졌던 사업가 김모(50)씨가 특검 수사의 초첨으로 떠올랐다.특검팀은 정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1억원짜리 무기명 양도성예금(CD) 150장을 박 전 장관에게 건넸고,이 돈은 김씨 계좌를 통해 돈세탁이 됐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무기중개업체를 운영했던 김씨는 93년 8월 율곡사업과 관련,CH470 헬기를 수입한 무기중개업체 대표로 국방위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했었다.김씨는 최근까지 재계·언론계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전 회장뿐만 아니라 현대 일가와도 두터운 친분을 쌓아 현대측으로부터 금강산 카지노 사업권을 획득하기도 했다.박 전 장관은 98년 청와대 공보수석 재직때 전직 장관의 소개로 김씨를 처음 만났다.이후 김씨는 정 회장과 함께 박 전 장관을 자주 찾아가 금강산 카지노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한 끝에 정부에 승인을 요청했다.하지만 정부는 카지노 사업권을 승인하지않았다. 김씨는 현재 J캐피털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 3월 특검법이 통과된 직후 미국으로 출국한 뒤 석달째 귀국하지 않고 있다. 정은주기자
  • 국제 플러스 / “아프리카 국립공원 인수계획”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기업이 잠비아,말라위,우간다,케냐,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일대 국립공원들을 인수,민영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고 BBC 인터넷판이 16일 보도했다. 네덜란드 출신 억만장자이자 자연보호가인 남아공의 사업가 파울 반 블리싱엔은 지난 1998년 넬슨 만델라 당시 남아공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국립공원 민영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이 계획은 만델라를 비롯,미국 국무부·세계은행 등 광범위한 개인과 단체들로부터 지원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4월 잠비아의 한 야당의원은 이 거래는 “잘못된 발상이며 폐기돼야 한다.”고 선언하고 “어떤 회사에도 우리 국민의 천연자원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 사회 플러스 / 홍콩 40대 교민사업가 흉기 피살

    |홍콩 연합|홍콩에서 여행업과 민박업을 하는 한국 교민사업가가 17일 숨진 채로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홍콩 경찰은 이날 “킴스 트래블(Kim’s Travel) 사장 김관식(金寬植·46)씨가 17일 낮 12시43분께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경찰은 “발견 당시 김씨는 둔기에 맞아 머리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으며,손이 테이프로 묶여 있었고 상의가 벗겨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시체 상태를 볼 때 김씨는 5,6일 전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日교도통신 서울지국장 히라이 히사시

    “특종을 했을 때의 쾌감,그 맛 때문에 앞으로도 현장에 있고 싶다.” 히라이 히사시(平井久志·51) 교도통신 서울지국장의 소망이다. 교도통신 서울지국은 일본인 기자 2명,사진기자 2명,한국인 3명 등 총 9명이 근무한다.일본인 기자가 4명에서 2명으로 줄어 지국장의 일이 많이 늘어났다.인터뷰 도중에도 편하게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일도 늘었지만 한국 사회도 변했다고 생각한다.가장 큰 변화는 세대교체였다.‘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일하면 오적)’ 등에서 느껴지듯 50대가 설 곳이 없는 사회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줄어든 반일감정·달라진 언론환경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세대가 사회의 주도권을 잡아 지역갈등이 많이 사라진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또 사회가 노화하고 있는 동시에 보수화 경향을 띠는 일본에 비해 활력은 느껴진다.하지만 40대 초반에 조직의 장(長)이 돼버리면 “나중에는 뭘 할 건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며 급속한 세대교체를 경계했다. 일본어를 병기한 간판도 많이 늘어났다.“비난할 거리가 사라져 섭섭할 정도”로 반일감정이 사라졌다며 히라이 국장은 반가운 내색이다. 한국의 언론도 조금 변했다.4년전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가판을 보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과거형으로쓰여 있었다.한번은 다른 언론사 보도를 보고 한·일 정상의 전화통화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었는데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양국 정상이 아직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어온 것이다.그제서야 사전 브리핑에 의한 기사였다는 것을 알았다. 히라이 지국장은 “더 우스운 건 통화 중 두 정상이 나눈 내용이 각료들이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을 하기 때문에 브리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요즘은 이런 풍토는 많이 사라졌다.히라이 지국장도 청와대 브리핑룸 개방에 따라 이달 초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노무현 정권의 언론정책에 대해 “방향은 옳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그는 지나친 사무실 접근 제한을예로 들었다. ●73년 한국과 첫 인연… 기자로 10여년 보내 히라이 지국장은 기자생활 30년이지만 아직 평기자다.교도통신은 본사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승진이 되지 않는다.히라이 지국장은 기자생활 대부분을 특파원으로 보냈다.히라이 지국장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유신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1973년 와세다 법대 4년생이던 그는 한국에 여행왔다가 한국의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83년 한반도 담당기자로 한국어 연수 1년,89년부터 92년까지 특파원,95년부터 99년까지 지국장,그리고 지난 2월 다시 지국장으로 부임했다. 전문분야는 북한이다.지난해 7월 북한의 경제개혁을 처음으로 보도한 장본인이다.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북한의 지하철 요금이 10배 올랐다고 전해왔다.당시 베이징 특파원이었던 그는 북한과 거래하는 사업가,북한 현지 소식통들에게 확인해 경제개혁 기사를 실었고 이후 전 세계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했다. 한국어 책도 두 권 냈다.한국인 아내와 겪는 갈등을 솔직담백하게 쓴 ‘얄미운 아내는 한국인(동아출판사·95년)’,한국의 다양한 사회현상을 소개한 ‘서울공화국 환타지아(청한·92년)’다.앞으로도 책을 쓰고 싶지만 한국에 4년만에 돌아와 보니 할 일이 산더미다. 전경하기자 lark3@
  • 검·경 조폭 합수부 설치

    서울지검과 서울경찰청은 11일부터 오는 12월10일까지 6개월 동안 서울지검에 ‘조직폭력사범 전담 서울지역 합동수사부’를 설치하고 조직폭력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검·경 합동수사부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3명과 직원 20명,서울경찰청 소속 조직폭력 담당 경찰관 10∼15명으로 구성된다. 단속 대상은 ▲조직폭력배들의 범죄단체 구성·가입 행위 ▲갈취·협박 등 시민생활 침해 행위 ▲각종 이권 개입 ▲국제 폭력조직의 국내 진출 관련 범죄 및 국내 폭력조직의 해외 범죄 행위 등이다.검·경은 특히 최근 조직폭력배들이 사채업과 경매,부동산 등으로 상당한 자금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하는 등 ‘기업화’ 추세에 있다고 보고 국세청 직원도 참여시켜 탈세 및 자금추적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상하이 최고갑부 저우정이 몰락하는 신화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 상하이(上海)의 최고갑부인 저우정이(周正毅·사진·42) 눙카이(農凱)그룹 회장이 은행대출과 뇌물 비리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중국 11대 갑부인 저우 회장은 청년시절 길거리에서 싸구려 옷을 팔았지만 주식투자로 갑부가 되면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중국 청년사업가의 성공신화로 통했다. 상하이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살에 구멍가게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1987년 일본으로 건너가 중국산 101 발모 촉진제 판매로 목돈을 만들었다. 2년 후 식당주인에서 사우나,가라오케로 사업영역을 넓히던 중 90년대 중반부터 주식으로 떼돈을 벌었다.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 헐값이 된 우량주 매매로 엄청난 시세 차익을 남겼고 그해 10월 부동산 회사인 눙카이 그룹을 설립했다. 그후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로 아시아 최대 재벌인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 회장과 비유돼 ‘상하이의 리카싱’으로 불리기도 했다.하지만 저우 회장의 성공 신화도 대출 비리와 부동산재개발을 둘러싼 이주민들과의 보상비 분쟁 등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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