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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 척, 자조해도 예술이 되니… 거참 신통방통

    잘난 척, 자조해도 예술이 되니… 거참 신통방통

    #1. 유화 하나가 걸려 있다. 하얀 벽면에 네모난 틀, 딱 떨어지는 조명까지. 일반적인 미술관의 FM에 맞춰 전시된 그림이다. 들여다보면 추상화다. 노란색과 갈색 느낌이 강한 색들이 한 방향으로 쭉 그려져 있다. 제목을 보니 ‘노란 비명’. 이건 뭘까. 그 옆에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이 작품의 제작 과정 동영상이 있다. 제목이 노란 비명인 이유가 확연히 드러난다. 화가(실제로는 배우)가 근엄하게 ‘썰’을 풀어대면서 붓을 물감에 담가 찍은 뒤 캔버스에 굵은 선 하나 쭉 그리면서 붓 움직임에 맞춰 “아악~!” 고함을 지른다. 그래서 노란 비명이다. 누군가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겼을 때 나는 비명, 어두운 방 안에서 무릎을 부딪쳤을 때 나는 비명 등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김범, ‘노란 비명’과 ‘노란비명 그리기’, 2012년. #2. 외부인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는 식사 자리. 먹고살기 바빴던 압축성장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드러내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안온한 중산층을 드러내는 미장센으로 많이 쓰인다. 취향과 교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취향과 교양이란 놈은 언제나 그렇듯 노출증 환자다. 이걸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tvN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풍 내레이션으로 풀어냈다. “집주인으로서, 언제나 손님을 잘 파악하고 손님끼리 잘 어울리도록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관심사를 공유하고 지위가 같은 사람만 불러야 할까요? 이 또한 똑같이 현명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기자나 의사, 세무관 세 명이 저녁 내내 일 이야기만 한다면 다른 손님들은 기분이 상하고, 사실 괴로워할 것입니다.” 아나 휴스만, ‘점심식사’, 2008년. #3.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저쪽 벽에는 교회 안에 늘어선 사람들이 보인다. 반대쪽 벽엔 하나의 입술이 있다. 이 입술이 질문한다. “평상시 또는 전쟁 때 전쟁범죄,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 혹은 학살에 관여했거나 관여했다고 의심받은 적이 있습니까?” “어떤 수단과 매체를 통해, 테러리스트의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찬양하는 관점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까?” “예”라고 대답하는 게 진짜 테러다 싶을 질문들이다. 이 입술 건너편에 서 있는 동유럽풍 공간 속 사람들은 경건하게 “아니오”를 외친다. 입술은 목사의 설교 투로 질문하고, 사람들은 신도들이 ‘아멘’을 복창하듯 답한다. 나디아 카비-린케, ‘아니오’, 2012년. 지켜보고 있노라면 크하하 웃음이 터져나온다. 오는 6월 16일까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기획전 ‘끈질긴 후렴’(Tireless Refrain)에 나온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문턱’ 혹은 ‘의례’에 대한 얘기다. 예술에도 문턱와 의례의 문제는 고스란히 적용된다. 미술, 디자인, 건축? 그거 안 좋아할 사람 어디 있던가. 예쁘고 멋지고 폼 난다는데 그거 마다할 사람 어디 있던가. 그런데 어디서부터가 예술인가. 같은 붓질을 해도 어느 대학 미대를 졸업했는지, 혹은 미국 영국의 내노라하는 곳에 유학을 갔는지, 아니면 해외 어느 유명한 갤러리에서 작품을 샀는지 기타 등등, 그때부터 예술이요 영감이요 천재던가. 이 답은 함께 진행되는 상설전 ‘부드러운 교란’(Gentle Disturbance)전에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쇤베르크에 심취해 음악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던 백남준의 행적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백남준의 친구이자 설치예술가였던 크리스토의 인터뷰 영상이다. 여기서 크리스토는 예술가란 기존 자본주의적 행태에 일침을 가하지만 결국 자본주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예술가도 땅을 임대하고 엔지니어들을 동원해 작품을 제작하는 일종의 비영리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라는 얘기다. 자본주의의 괴력이란 자본주의를 비아냥대는 전위적 힘마저 상품화하는 데 있지 않던가. 체 게바라가 티셔츠와 배지에 박혀 팔려나가듯 말이다. 거기서 나온 게 크리스토의 말이다. 예술가의 파격적인 그 무엇이란, 무지하게 거창한 게 아니니 그냥 ‘부드러운 교란’ 정도로만 불러두자고. 잘 걸어가다 발목 한번 삐끗하는 정도가 예술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예술, 거참 신통방통하다. 목에다 힘주고 잘난 척해도 예술이 되고, 축 늘어져 자조해도 예술이 되니 말이다. 4000원. (031)201-8512.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이원, 황사손으로서 도쿄 조선왕실 문화재 열람

    이원, 황사손으로서 도쿄 조선왕실 문화재 열람

    조선 왕실의 황사손(황실의 적통을 이으려 들인 양자)인 이원(50) 조선왕실문화원 이사장이 5일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왕조 문화재를 열람했다. 이 이사장은 박물관 소장품들이 조선 왕실 소유물일 가능성이 높다며 유출 경위를 확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이날 동양관 수장고에 넣어 뒀던 익선관(翼善冠·왕이나 세자가 평상복으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과 투구, 갑옷 등 9점을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공개했다. 그동안 박물관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일본인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다. 익선관과 투구, 갑옷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남선합동전기회사를 운영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가 1910~195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1000여점의 문화재로 이뤄진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것들이다. 오구라의 아들이 1982년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익선관 등에 특히 관심이 쏠린 것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문화재 전문가 이소령씨가 오구라가 1964년 숨지기 직전에 작성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을 입수하면서부터다. 이 책에는 익선관 등 3점 옆에 ‘이태왕(李太王·고종) 소용품(所用品)’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화재 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 등이 이를 근거로 문화재 입수 경위 등을 따져 묻자 도쿄국립박물관은 지난해 4월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물품”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후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잇는 이씨가 열람을 신청하자 마지못해 사진 공개 금지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이날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이사장은 한 시간가량의 열람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투구와 갑옷이 조선 왕실, 정확히는 1897년 성립한 대한제국 이후에 만들어진 황실 소유물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투구 뒷면에 장식된 8개의 이화(李花·자두나무꽃) 금장문양이다. 그는 “대한제국이 이화를 황실의 문양으로 제정한 바 있는데, 투구의 장식이 이화 문양임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보통 드라마 등에 등장하는 익선관은 검은색인 데 반해 박물관이 소장한 익선관은 보라색이고 통풍이 잘 되도록 안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익선관과 투구 등이 고종의 물건으로 확인된다고 해서 바로 한국에 반환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물건이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경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물품이 일본 측에 기증 등의 형식으로 넘어갔다는 기록이 없는 만큼 강탈되거나 불법적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특별사면 강행] 대통령 공신·멘토·사돈…몰염치한 면죄부

    [특별사면 강행] 대통령 공신·멘토·사돈…몰염치한 면죄부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단행한 ‘설 특별사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실시했다고 강조했지만 ‘측근을 구하기 위해 대통령이 명예와 양심마저도 버렸다’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7일 형이 확정된 이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이번 특별사면으로 31일 석방되는 것과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대통령이 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최 전 위원장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를 수사해 구속 기소한 검찰도 허탈한 분위기다. 최 전 위원장과 천 회장은 실형을 선고받고도 최근 사면을 앞두고 상소를 잇따라 포기하면서 이미 청와대와 특별사면을 위한 교감을 이뤘다는 비판이 있었다. 권력형 비리 사범에 대해서는 사면을 제한하는 등 사면 요건을 강화하는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알선수재 혐의로 1,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12월 상고를 포기했다. 기업체로부터 산업은행 워크아웃 청탁 등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파기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천 회장도 상고장을 내지 않았다. 최 전 위원장과 천 회장은 이번 특별사면으로 각각 형기의 31%와 47%만 채우고도 수감 생활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명박 정부 개국공신’으로 불리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된다. 박 전 의장은 최 전 위원장과 함께 이 대통령 최측근 인사인 ‘6인회’ 멤버로 꼽힌다. 박 전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시 고승덕 의원에게 돈봉투를 건넨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대통령의 경선 캠프인 ‘안국포럼’ 출신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박 전 의장과 같은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지만 특별사면됐다. 법무부는 대통령의 주요 친인척, 재벌그룹 총수, 저축은행 비리 사범, 민간인 사찰 사건 관련자 등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지만 경제인 가운데 형선고 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이 확정된 조현준 효성섬유 사장은 이 대통령과 사돈 관계다. 조 사장은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이와 관련, 이동열 법무부 대변인은 “조현준 사장은 법적으로 이 대통령과 인척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 정서상 친인척으로 보일 수 있어 특별사면 발표 자료에는 ‘주요 친인척을 제외했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친이계’인 장광근 전 의원과 현경병 전 의원은 특별복권이 결정됐다. ‘친박계’ 정치인 중에는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가 특별복권 대상자에 포함됐다. 특별사면과 관련해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특별사면권이 대통령의 권한이긴 하지만 일부 인사들을 보면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유감”이라면서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무리하게 행사하면 법치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면 대상자로 거론되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친박계 좌장인 홍사덕 전 의원은 사면에서 제외됐다. 홍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 사업가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같은 해 10월 기소됐고, 지난 11일 벌금형이 확정됐다. 결국 유죄가 확정된 지 불과 18일 만에 홍 전 의원을 특별복권시키는 것은 이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 비리로 지난 24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은 실형 선고 즉시 항소해 이번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명박 정부에서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현 정부의 ‘문고리 권력’으로 불린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저축은행 비리로 실형이 확정됐으나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주말 영화

    ■분홍신(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유명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보리스(안톤 월브룩)는 우연히 초대받은 파티에서 젊고 아름다운 비키(모이라 시어러)를 만난다. 아마추어는 질색이라던 보리스는 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비키를 대하자 생각이 바뀐다. 수석 발레리나가 결혼 때문에 춤을 포기하는 것을 보며, 재능 있는 무용수가 사랑 때문에 예술을 버리는 것은 낭비라고 말하는 보리스. 그는 공연에서 비키의 재능을 발견하고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한편 천부적인 작곡 실력으로 발탁돼 오케스트라를 맡게 된 줄리안(마리우스 고링)에게 동화 분홍신을 각색한 발레 음악의 작곡을 맡긴다. 보리스가 악의를 품고 줄리안을 혹평하자 그는 발레단을 나와 버린다. 보리스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줄리안과 함께 있으면 위대한 무용수가 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하지만 비키는 줄리안과의 결혼을 택한다. ■독립영화관(KBS1 토요일 밤 12시 35분) 공부 잘하는 박진주는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하는 모범생이지만 이름만 같은 마진주는 전교 꼴등을 도맡아 하는 귀여운 말썽꾸러기이다. 어느 날 열심히 공부하던 박진주는 글자와 숫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안을 가득 채우는 환영을 보게 되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마진주를 만나게 된다(진주는 공부 중). 갈대가 하늘하늘 흔들리는 둑길을 차은이가 달리고 자전거를 탄 영찬이가 뒤따른다. 달리는 걸 좋아하는 차은이는 육상부인데 육상부가 없어지고 육상부 아이들은 도시로 전학을 간다고 한다. 차은이도 아빠에게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빠는 그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달리는 차은). ■라스트 프로포즈(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외모의 샘(유덕화)은 홍콩 최고의 백만장자 사업가다. 모든 것을 가진 그이지만, 세 번의 이혼이 말해주듯 사랑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편 샘은 사업차 방문한 마카오에서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당차고 매력적인 클럽 댄서 밀란(서기)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키워가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들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사교계는 발칵 뒤집힌다. 이로 인해 밀란이 상류층 여자로서의 덕목을 배우는 동안, 샘 주변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결국 샘은 주위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혼전 계약서를 내밀고 상처받은 밀란은 샘을 떠난다.
  • 실제 강도사건 영상을 광고로 제작해 ‘대박’

    실제 강도사건 영상을 광고로 제작해 ‘대박’

    지겹게 당한 강도사건. 보통 사람이라면 사업을 접을 만도 하지만 강도사건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업가가 있어 화제다. 브라질의 디자이너 로니 메이슬레르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 ‘레세르바’라는 브랜드로 의류를 생산해 파는 그는 브라질 주요 도시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강도사건은 고질적인 골칫거리였다. 고민하던 메이슬레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강도사건을 광고소재로 이용하기로 한 것. 메이슬레르는 감시카메라에 잡힌 강도사건으로 동영상 광고를 제작했다. 끔찍한 강도사건을 포착한 영상에 배경음악을 넣고 “서둘러라. ‘레세르바’를 가지려 미친 짓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자막을 넣었다. 광고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유튜브에 오른 광고는 벌써 조회수 16만 회를 기록 중이다. 메이슬레르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도사건으로 수천 헤알(브라질 화폐단위)의 손해를 봤지만 광고로 만회가 가능할 듯하다.”고 말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씨줄날줄] 싱크탱크/함혜리 논설위원

    미국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사업가 로버트 S 브루킹스는 매우 창조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워싱턴에 진출한 그는 군수산업위원회에서 정부와 산업체를 잇는 역할을 하면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경제연구를 수행할 훈련된 집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16년 몇몇 개혁주의자들과 함께 팩트에 근거한 정책연구를 목적으로 정부연구소(Institute for Government Research)를 설립했다. 이 최초의 민간연구소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꼽히는 브루킹스연구소의 모태가 된다. 워싱턴 D C에 위치한 브루킹스연구소는 800여명의 학자, 연구원들이 정치·경제·외교·대도시정책· 재개발연구 등 각 분야에서 정책 전반을 연구한다. 100년 가까운 역사 동안 각 분야의 정책 제안을 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큰 틀을 설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외교안보 문제, 저개발국가 문제 등을 다루면서 세계의 두뇌로 역할 범위를 넓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마셜플랜과 국제연합(UN) 창설 청사진을 내놓은 것에서 보듯이 통찰력 있는 연구로 정평이 나 있다. 학문적으로는 중도진보적인 성향이지만 연구결과는 엄정하게 중립적이다. 순수하게 연구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고,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엄격한 검증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업이나 자산가들의 기부로 운영함으로써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산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이 발표한 ‘2012년 세계 싱크탱크 보고서’에서 브루킹스연구소가 2년 연속 경쟁력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 미국 카네기재단,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뒤를 이었다. 아시아권에선 일본 국제문제연구소(JIIA)가 16위, 중국사회과학원(CASS)이 17위에 오른 반면 우리나라는 50위권에 든 연구소가 한 군데도 없다. 글로벌 이슈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올바른 정책결정의 길잡이로서 싱크탱크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싱크탱크의 수준이 그 나라의 현재 위상뿐 아니라 미래 국력을 가늠하는 또 다른 지표가 되는 현실이다. 현재와 미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예측하는 통찰력 있는 연구와 엄정한 가치 중립성, 그리고 독립성은 싱크탱크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이다. 그 많은 우리나라의 연구소들 중에 제대로 싱크탱크라고 부를 만한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中골프관광 가요” 15억 갈취 40대 꽃뱀 4년만에 자수 왜?

    “中골프관광 가요” 15억 갈취 40대 꽃뱀 4년만에 자수 왜?

    재력가에게 접근해 함께 중국 골프관광을 떠난 뒤 사기도박에 끌어들여 거액을 뜯어낸 이른바 ‘꽃뱀’이 4년간의 해외도피 끝에 자진 귀국해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2일 배모(47·여)씨를 사기 및 인질강도 혐의로 구속했다. 배씨는 2007년 7월 중국 골프관광에 동행한 부동산사업가 김모(60)씨를 산둥성의 한 호텔에 차려놓은 사기도박판으로 유인, 1억 5000만원을 뜯어내는 등 같은 해 11월까지 피해자 3명에게서 15억 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총책과 전문도박꾼, 자금세탁책 등 13명으로 구성된 사기단의 일원인 배씨는 국내 유명 골프클럽에 다니며 재력가에게 접근, 골프관광을 제의해 중국으로 유인하는 꽃뱀 역할을 맡았다. 배씨 등은 피해자들에게 약을 탄 음료수를 먹여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나 미리 패를 맞춰 놓는 수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일당 13명 중 9명은 2009년 검거돼 총책 김모(78)씨 등 5명이 구속됐다. 배씨는 2009년 중국으로 출국해 식당 허드렛일 등을 하며 전전하다 도피생활에 지쳐 한국대사관에 자수,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검거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평창 스페셜올림픽] 1등만이 아닌 참가자 모두가 승자…‘Together We Can!’

    [평창 스페셜올림픽] 1등만이 아닌 참가자 모두가 승자…‘Together We Can!’

    오는 29일 막을 올리는 스페셜올림픽은 세계 지적 장애인들의 축제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사회사업가인 고(故)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제안으로 1968년 시작돼 1975년부터 비장애인 올림픽 주기에 맞춰 4년마다 열리고 있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발달 장애인의 운동 능력과 사회 적응력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승패보다 장애를 극복하려는 도전정신과 치열한 노력에 더 의미를 둔다. 1~3위에겐 메달을 수여하지만 나머지 참가 선수들에겐 리본을 달아 준다. ‘참가자 모두가 승자’가 스페셜올림픽의 모토인 것이다. 신체능력과 관계없이 8세 이상의 모든 지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엘리트 선수가 참여하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과도 구분된다. 올림픽, 패럴림픽과 함께 3대 올림픽에 들어가는 이 대회의 32개 종목 가운데 동계대회에서 치러지는 종목은 알파인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 스노슈잉 등 4개 설상종목과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플로어하키 등 3개 빙상종목 등 전체 7개 종목에 모두 55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10회째인 평창 대회는 5년 뒤 같은 곳에서 열리게 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리허설은 아니다. 애당초 대회가 목적하는 바가 다르고, 참가자들의 성격부터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29일 용평리조트에서 막을 올려 알펜시아리조트, 강릉빙상경기장 등에서 다음 달 5일까지 8일 동안 열리게 될 이번 대회는 2005년 나가노동계대회, 2007년 상하이하계대회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평창에서 개최된다. 국제사회 기여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과 해당 지자체 브랜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대회 슬로건은 ‘Together We Can!’이다. 선수는 물론,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이 힘을 합침으로써 스포츠 활동은 물론, 이들의 도전 정신을 격려하면서 지적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스코트인 반달가슴곰(Ra)과 붉은 양(In), 양치기 개(Bow) 등은 각각 스페셜올림픽의 안전과 배려, 편견없는 교류와 사랑, 그리고 푸른 평창을 상징한다. 엠블럼은 역동과 환희라는 거대한 콘셉트 아래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달려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개회식은 29일 오후 6시 용평돔에서 열린다. 세계 111개국 3190명의 선수단과 자원봉사자 87명, 초청인사 등 약 4200여명이 평창의 축제를 연다. 다음 날인 30일 알펜시아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는 김황식 국무총리와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 등 정상급 지도자 300여명이 참가하는 ‘글로벌 개발 서밋’도 막을 올린다. ‘지적 장애인들의 유엔 총회’로 불리는 이날 회의는 세계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적 장애인들의 건강과 사회적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지난 1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돼 이틀 뒤 한국에 도착한 대회 성화는 2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국내 도착 환영 및 봉송식을 가진다. 전국 40개 시·군을 순회한 뒤 28일 대회장에 도착한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세계 연구중심대학을 가다] 독일 자브뤼켄 잘란트 주립대 산학 클러스터

    [세계 연구중심대학을 가다] 독일 자브뤼켄 잘란트 주립대 산학 클러스터

    독일 서부에 위치한 잘란트주는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다. 주 전체 인구가 10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1960~70년대 석탄·철강산업의 전성기에는 호황도 누렸지만, 그 후로는 ‘가난하고 척박한 동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원랜드조차 없는 강원도의 산골 폐광촌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잘란트는 지식산업을 기반으로 한 부흥에 가슴이 설레는 곳이 됐다. 그 중심에 잘란트의 주도인 자브뤼켄의 잘란트 주립대학이 있다. 한때 프랑스 낭시대학 분교였던 잘란트대는 대학 자체로는 별다른 경쟁력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독일 4대 연구회’와 함께 구성한 ‘산학 클러스터’ 덕분에 훌륭한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헨공대나 에콜 폴리테크니크처럼 우수한 인력을 처음부터 유치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연구중심 대학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좋은 사례다. 잘란트대 일대에는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치 등 독일 연구회 산하 연구소들과 한국 정부 출연연구소의 유럽진출 교두보인 한국과학기술원(KIST) 유럽연구소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독일 4대 연구회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과학강국을 자부하는 독일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기초과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막스플랑크는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정부는)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탓에 연구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선망하는 연구회로 유명하다. 막스플랑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설립된 후 지금까지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11년 설립된 전신인 카이저빌헬름협회의 16명을 포함하면 미국 하버드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손색이 없다. ‘노벨상 사관학교’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한해 1만 5000여건에 달하는 연구 결과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는 독일 전체 연간 우수 논문의 40%에 해당한다. 막스플랑크는 3개 분야 80여개의 연구소를 독일 전역에 갖고 있다. 자브뤼켄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정보학연구소(MPII) 역시 이 같은 구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베트람 소미에스키 박사는 “무엇이 될지 생각하지 않고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것이 막스플랑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막스플랑크는 최소 20~30년 후를 내다보는 연구를 맡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연구소의 특성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막스플랑크는 각 연구소가 위치한 지역의 대학들과 학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때문에 막스플랑크의 영년직 연구원 중 상당수는 ‘대학교수’ 직함도 갖고 있다. 이 같은 구도는 주변 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 막스플랑크에서 연구하면서 실력과 아이디어를 키우는 원동력이다.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 것이다. 소미에스키 박사는 “연구원은 논문으로만 평가받고, 상당 시간을 학생들의 교육에 할애하는 역할을 동시에 부여받는다”면서 “80여개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간에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여럿이 연구하면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역시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막스플랑크의 대척점에 프라운호퍼가 위치해 있다. ‘프라운호퍼 라인’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발명가, 사업가였던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의 이름을 딴 연구소답게 철저하게 실용적인 연구를 중시한다. 1949년 설립된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조다. 60개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각 분야별로 정보기술, 광학, 제품, 방위산업 등 7개 그룹으로 나뉜다. 이 예산 중 프라운호퍼 재단은 평균 30%만 부담한다. 나머지는 산업체나 지역사회 등에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소들은 끊임없이 협력 프로그램을 모색한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들은 지역 대학 및 중소기업과의 공동연구에 전체 연구 비중의 40% 이상을 할애한다. 그 결과, 독일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40%가 넘는 강소기업들이 1300여개나 된다. 막스플랑크가 논문으로 평가받는다면 프라운호퍼는 ‘특허’가 핵심이다. 얼마나 산업에 기여하는지를 보기 위한 핵심 지표다. 잘란트대 인근에 위치한 프라운호퍼 비파괴시험연구소(IzFP) 역시 특허와 기업 서비스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건축물이나 교량, 원자력발전소, 철로 등에 손상을 주지 않고 외부에서 강도와 내구성 등을 측정하는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중점적으로 제작된다. 1972년에 설립돼 드레스덴 분원을 포함해 모두 377명의 박사급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프라운호퍼 IzFP의 주요 연구원들 역시 잘란트대 교수직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기초과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기술이 어떻게 산업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제 연구소 운영을 통해 보여준다. 지그프라이드 크라우스 부소장은 “40년 전 자브뤼켄에 IzFP가 처음 설립된 이후 다른 연구소들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는 지역 활성화의 중요한 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막스플랑크나 프라운호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라이프니치 연구회 역시 독일을 이끄는 중요한 축이다. 라이프니치 연구회의 구조는 거대과학을 담당하는 헬름홀츠를 포함한 나머지 3대 연구회와는 구조가 크게 다르다. 다른 연구회들이 재단본부의 판단에 따라 설립과 폐쇄가 결정되는 데 반해 라이프니치 연구회는 ‘가입된 기관들의 연합’ 형태로 구성된다. 라이프니치 연구회 소속 86개 기관 중에는 연구소뿐 아니라 뮌헨의 ‘독일 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도 포함돼 있다. 나머지 연구소들 중 상당수도 민간이나 주정부에 의해 설립된 것들이 많다. 연구회의 까다로운 가입 심사 평가를 통과하면 개별 연구소들은 라이프니치 연구회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다. 매 5~7년마다 연구회의 중간 평가를 실시해 역량이 기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되면 연구회 이름을 환수한다. 대신 이름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연간 14억 유로의 예산을 골고루 분배해 사용하게 하는 특전을 누릴 수 있다. 잘란트대 인근 라이프니치 신소재연구소(INM)는 태생적으로 잘란트 주정부가 잘란트대 클러스터를 키우기 위해 25년 전에 유치한 연구소다. 전체 예산의 51%를 잘란트대에서 지원받고, 연구성과 역시 대학과 공유한다. 이에 맞춰 INM은 지역특화적인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롤란드 롤스 소장은 “재단은 기초와 응용 어느 쪽에도 치중하지 않는 구조를 원한다”면서 “두 가지 부분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이 각 연구소에 부여된 임무”라고 밝혔다. 연구소가 응용을 전담한다면, 기초연구는 주로 잘란트대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라이프니치 INM은 100명 규모에 불과하지만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800편 이상의 국제논문을 출간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잘란트대 학생들을 연구에 참여시키면서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INM 연구원인 이주석 박사는 “용액에서 파우더를 만들어내는 기술, 태양전지의 반사를 줄이는 코팅 기술, 자동차를 균일하게 도장하는 기술 등이 이곳 연구소에서 개발돼 상용화로 이어졌고, 지역사회에 기술기반 기업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면서 “아직까지 잘란트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근로자 임금이 10~15% 낮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빈곤하지만, 클러스터 덕분에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자브뤼켄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법원 “잦은 고장 새 차, 전액 배상하라”

    사업가인 구모씨는 2011년 3월 고급 승용차를 새로 샀다. 그러나 이 차는 불과 넉 달 만에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결함이 나타났고, 1년 동안 같은 일이 4차례나 반복됐다. 그때마다 자동차 회사 측은 수리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 구씨는 차값을 환불하거나 차를 바꿔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거절했고 구씨는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엄기표 판사는 구씨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7일 밝혔다. 엄 판사는 “승용차 매매는 자동차 회사가 ‘고객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비스 내용이 포함된 계약”이라면서 “안전에 대한 신뢰가 깨졌으니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맞다”고 판시했다. 이어 “제조사 잘못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만큼 차값은 물론 취·등록세 등 차량 구입에 들어간 비용 전액을 자동차 회사가 배상하라”고 밝혔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함께할 친구가 있어 세상 두렵지 않아”

    “요지와 같은 젊은 세대는 거품 경제가 붕괴된 뒤 청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좋은 자리는 기성세대가 모두 독점해 버리고, 정규직으로 일하기도 어려웠다. 극도의 취업 빙하기가 계속되었다.”(253쪽) 거품경제가 무너진 20여년 전 일본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 놀랍도록 닮았다. 명문대를 나와도 절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빈곤과 기회의 불평등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튼 사회에 끊임없이 불만을 터트린다.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이시다 이라(53)가 2011년 발표한 청소년 소설 ‘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 펴냄)는 이 같은 혹한기를 헤쳐 나가는 두 소년 요지와 간타의 얘기를 담았다. 두 소년은 돈이 없으면 자유로워질 수도, 정당해질 수도 없는 현실에 너무 일찍 눈을 뜬다. 휴대전화 게임 회사인 ‘로켓파크’를 세우고 모바일 게임업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과정은 기존 청소년 소설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독특한 소재다. 가끔 방송에서 본 고교생 사업가나 청년 최고경영자(CEO)의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설정은 성공과 좌절 속에서 다시 찾은 소중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두 소년은 성공의 마천루에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며 추락한다.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지만 인생의 가치를 되찾는다. “평생 함께할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인생은 두렵지 않아”란 두 소년의 다짐처럼. 소설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적나라하다. 학교 또한 어른들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다. 절대 평등하지도, 자유롭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동정하는 법이 없고 괴롭히고 난 뒤에는 통쾌해한다. 요지와 간타가 마주한 사회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섯 살 때부터 단짝인 두 소년은 남다른 아픔을 안고 산다. 간타는 발달 장애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헤아릴 수 없고, 요지는 생계를 위해 긴자의 술집에서 일하는 엄마 때문에 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 17세 때 게임기를 사기 위해 찾은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서 마주친 불량배들과의 다툼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간타를 지키려고 몸싸움을 벌이다 요지가 그만 불량배의 허벅지를 칼로 찌른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할 수 없던 요지가 모든 비난을 뒤집어쓴다. 촉망받던 영재인 요지는 이때부터 간타와 아르바이트에 매달리고 100만엔(약 1200만원)의 종잣돈을 모아 창업에 성공한다. 거친 세상에서 펼치는 힘찬 도전, 성공과 좌절 속에서 다시 찾은 소중한 것들을 다룬 성장 소설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영웅으로…‘톰 아저씨’의 변신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영웅으로…‘톰 아저씨’의 변신

    피츠버그 도심 한복판에서 5명의 시민이 ‘묻지마’ 저격당한다. 벤치에 앉아 있던 비즈니스맨, 아이를 안고 가던 유모, 히스패닉계 청소부, 백인 여성 사업가 등 피해자 사이에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현장의 지문·탄피 등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이라크전에 저격수로 참전한 예비역 제임스 바를 체포한다. 하지만, 그는 자백을 거부한 채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메모를 남긴다. 검찰은 바를 사형시키려고만 한다. 바의 변호를 위해 나선 헬렌으로선 역부족인 상황. 그때 리처가 제 발로 나타난다.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저격했던 바를 육군 수사관으로 조사했던 리처는 사건 뒤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챈다. 영국작가 짐 그랜트(필명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는 1997년 1편 ‘킬링 플로어’ 이후 지난해 ‘원티드 맨’까지 17편이 출간된 베스트셀러다. 전 세계에서 4000만부가 팔려나간 비결은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덕이다. 리처는 2년 전 육군 헌병대 수사관을 그만둔 뒤로 운전면허, 휴대전화, 이메일 등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유령처럼 살아간다. 연금을 타는 은행계좌만 존재한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집착할 뿐 악당을 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일 따위는 관심 없다.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능력만 놓고 보면 이단 헌트(‘미션임파서블’ 시리즈의 주인공)나 제임스 본드(‘007’ 시리즈)를 떠올릴 법하지만, 사회·도덕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양식은 해리 캘러헌(‘더티 해리’ 시리즈)에 더 가깝다. 다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연기한 캘러헌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이다. 심지어 잘 생겼다. 작가 스티븐 킹이 리처를 일컬어 ‘현존하는 가장 멋지고 근사한 시리즈 캐릭터’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터. 2005년 원작자 리 차일드와 제작자 돈 그레인저의 만남으로 영화화는 급물살을 탔다. ‘유주얼 서스펙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각색·연출을 맡았다. 원작소설(시리즈의 9권 ‘원샷’)에 푹 빠진 크루즈는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했다. 크루즈는 매쿼리 감독과 ‘암호명 발키리’에서 호흡을 맞췄다. 17일 개봉하는 ‘잭 리처’의 얘기다. 지금껏 다섯 번의 내한에서 남다른 매너로 사랑받은 크루즈가 10일 ‘잭 리처’의 홍보를 위해 전용기를 타고 입국했다. ‘미션임파서블: 고스트프로토콜’ 이후 1년여 만이다. 크루즈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잭 리처는 다른 사람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가진 못 하지만 고독한 캐릭터는 아니다.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지적 능력도 갖췄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매쿼리 감독도 “리처는 서부영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다. 원작에는 ‘셰인’(1953)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또한, IT 기술이나 물질문명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시계도 차지 않는다. 요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전화 한 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잭 리처’는 여러모로 1970~80년대 영화들을 떠오르게 한다. 중화기를 동원한 화끈한 총격전이나, 컴퓨터그래픽과 와이어를 쓴 현란한 액션은 없다. 대부분 육탄전이다. 악당이 총을 놓치면, 자신도 총을 버리고 맨손으로 응징하는 식이다. 팔꿈치와 무릎을 활용하는 스페인의 케이시 무술을 활용했는데, 50대에 접어든 크루즈의 몸놀림은 기대 이상이다. 스턴트용 차량 대신 1970년대 미국의 머슬카로 찍은 카 체이스 장면도 눈길을 끈다. 크루즈는 “액션과 차량 추격 장면도 리처의 아날로그적인 캐릭터를 드러내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특수효과나 스턴트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몸을 썼다. 차를 8대나 부서뜨리면서 찍었다”고 덧붙였다. 조연배우의 존재감도 만만찮다. 로버트 듀발은 리처에게 도움을 주는 전직군인 카시 역을 맡았고, 독일의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는 악의 배후인 제크 역으로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탄탄한 각본이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으로선 리처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왜 그가 군을 떠나 유령처럼 살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프랜차이즈(시리즈)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쿼리 감독은 “요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간에 충실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작비 6000만 달러(약 636억원)를 들인 ‘잭 리처’는 북미에선 지난해 12월 21일 개봉했다. 영화통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10일 현재 북미에서 6638만 달러(약 704억원), 전 세계에서 1억 2198만 달러(약 1294억원)를 벌었다. 크루즈의 출연작 평균 흥행수익(북미)이 1억 5261만 달러(약 1619억원)임을 생각하면 기대에 못 미쳤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지구로 못돌아오는 ‘화성 기지’ 건설 우주인 모집

    지구로 못돌아오는 ‘화성 기지’ 건설 우주인 모집

    네덜란드의 한 비영리 단체가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우주인을 모집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벤처 사업가 바스 란스도르프와 과학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마스 원’(Mars One)은 지난 8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화성을 개척할 우주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게재했다. 모집 요강을 보면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학력 등 구체적인 자격 조건은 없다. ‘마스 원’이 가장 중요하게 지원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심성’으로 목적 의식과, 신뢰, 호기심, 창의성이 풍부해야 한다. 특히 우주인 선발과정은 TV 리얼리티쇼를 통해 방송돼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게된다. ‘마스 원’ 측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내 프로그램을 통해 총 24명의 우주인을 선발할 예정이며 이들은 8년 동안 우주 여행과 관련된 각종 훈련을 받게 된다. ’마스 원’은 “선발된 우주인들은 8년 동안 건설, 전기, 장비 수리, 의료 등 화성 기지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받고 2022년 9월 부터 2년 간격으로 화성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2016년에 먼저 기지 건설에 필요한 장비들을 실은 우주선을 화성으로 떠나 보낼 예정”이라며 “2023년 부터 본격적으로 화성 기지 건설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모집 공고를 통해 공식화되자 이에대한 윤리적 논란도 일고 있다. 화성으로 떠나는 우주인들이 다시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편도 티켓’만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장시간의 우주여행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과학원 생의학문제연구소(IBMP)는 장기간의 화성여행이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유발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나사의 우주 방사선 연구소(Space Radiation Laboratory)도 오랜 기간의 우주여행이 사람에게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5) 저출산·고령화 해소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5) 저출산·고령화 해소

    13년 전인 2000년 ‘고령화사회’(만 65세 이상이 인구의 7% 이상)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18년이면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중 14% 이상)에 접어들게 된다. 일본이 24년, 미국이 72년, 프랑스가 115년 걸린 ‘고령화사회→고령사회’ 도달을 우리나라는 불과 18년 만에 맞게 되는 것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를 적게 낳으니 나라가 빨리 늙어 가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나라를 뿌리부터 쇠약하게 만드는 일종의 재앙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 속도는 무섭게 가속도가 붙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이유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이석례(59·여)씨는 자녀 셋이 석·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늘그막에 애들 덕을 보겠다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다들 크고 나면 최소한 노후 걱정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회의감에 빠졌다. “자기들 먹고살기도 힘든데….” 허무와 우울이 가슴을 때렸다. 이씨는 글쓰기를 통해 노후를 설계해 나갔다.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해 배움에 목말랐던 이씨는 1998년 40대 중반에 방송통신대 국문학과에 입학해 10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내친김에 문예창작 석사 학위까지 받은 이씨는 시인 겸 수필가로 등단했다. 한국어 강사, 논술 교사 등의 자격증도 따 요즘은 다문화센터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 이씨의 목표다. 서동진(52)씨는 은행원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다니던 은행이 퇴출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사업가로 변신한 서씨는 2001년 우리나라의 유자차를 중국의 대형 유통 매장에 입점시키며 ‘수출 유공자’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국산 차를 수출하기 위해 중국에 세운 유통회사를 현지 직원들의 농간으로 빼앗기고 말았다. 법정 투쟁 끝에 관련자들은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막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회사를 되찾기 위한 민사소송을 포기했다. 2011년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온 그는 재기를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중소기업개발원 등에서 재기를 위한 교육을 받는 한편 중국에서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리포트 공모전에 응모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을 돕는 데 기여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실시한 제2회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에세이 부문 수상자들이다. 이씨와 서씨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에겐 최소한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가 가구주인 1027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후 소득 보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당 평균 노후 준비 부담액은 월 19만 8800원이었다. 금액 자체가 크지 않은 가운데 소득 계층별로 양극화가 심했다. 소득 하위 20%인 사람들은 5만 3600원에 불과해 상위 20%(49만 1200원)와 9.2배의 격차가 났다.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2030년 5216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2060년에는 인구의 약 40%를 노인 계층이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중 50세 이상의 비중은 2005년 20%에서 2016년 30%, 2051년 40%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세금 감소 등으로 재정 수입은 줄지만 노인들을 위한 복지 지출은 증가한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9.6%였던 공공복지 지출이 2050년에는 21.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재정도 저출산의 여파로 압박을 받게 된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55년에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수급자보다 적어지고 건강보험의 누적 적자가 2030년 31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은 대선 과정에서 출산율 증대의 해법으로 ▲보육시설 확충 및 양육비용 국가 지원 확대 ▲임신 기간 중 근로시간 단축, 아빠 유급 출산휴가 실시 등의 여성 근무 여건 개선안을 제시했다. 고령화에 대비해서는 ▲정년 연장 및 노인 일자리 확대 ▲중증질환에 대한 100% 건강보험 적용 등을 공약한 상태다. 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 “법안을 제정한다고 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고 큰 부담 없이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잘 지원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저출산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차기 정부가 임기 5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얼마만큼 확충하느냐 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 첫발을 들이는 2018년은 박근혜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해다. 그때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주목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섹시스타’ 소피아 베르가라, 가슴노출 사고 ‘아찔’

    ‘섹시스타’ 소피아 베르가라, 가슴노출 사고 ‘아찔’

    할리우드 섹시스타 소피아 베르가라가 바닥에 넘어지면서 가슴이 노출되는 사고를 당했다. 베르가라는 새해 이브(2012년 12월 31일)를 맞아 미국 마이애미비치에 있는 나이트클럽 ‘스토리’를 방문해 파티를 즐기던 중 벌어진 몸싸움을 말리려다가 넘어져 가슴 윗부분이 노출되는 사고를 당했다고 미국 뉴욕포스트 등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베르가라는 약혼자인 닉 로브는 물론 친구들과 함께 클럽을 방문해 파티를 즐겼다. 하지만 로브는 베르가라가 이 클럽의 사장인 크리스 파치엘로와 1990년대 한때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심 때문에 파티가 어색해졌었다고 그 신문은 전했다. 이에 로브는 이웃 테이블의 누군가와 말다툼을 했고 베르가라가 이를 말리다가 그만 넘어지고 만 것. 당시 사진은 티엠지닷컴을 통해 공개됐다. 베르가라는 당시 로브의 실수를 눈감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데뷔 전 결혼해 20대 아들을 두고 있는 베르가라는 지난해 7월 사업가인 닉 로브와 약혼했지만 아직 결혼식 날짜는 잡지 않고 있다. 베르가라는 현재 미국 ABC방송의 인기 시트콤 드라마 ‘모던패밀리’에서 글로리아 피쳇 역을 맡고 있다. 이 드라마는 미국 대표 미드로 손꼽히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상당수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모델 출신인 베르가라는 섹시한 몸매를 소유한 콜롬비아 여성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녀는 다음 주말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다수의 부문에서 후보로 올라 참석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 위), 페이스북(모던페일리 한 장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에 따뜻한 관심을/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서울시립대 교수

    [열린세상]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에 따뜻한 관심을/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서울시립대 교수

    새해가 밝았다. 이제 곧 새 정부도 들어선다. 대통합의 기치를 내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장애와 복지분야에 오래 몸담고 있는 필자도 무척 마음이 설렌다. 이렇게 특별한 새해에 말 그대로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다. 바로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대회다. 스페셜올림픽은 전 세계 지적장애인(자폐장애·발달장애·다운증후군 등)들의 스포츠 축제다. 1968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사회사업가였던 고(故)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의 제안으로 미국에서 시작됐다. 지적장애인에게 지속적인 스포츠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여 운동능력과 사회 적응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양성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동계·하계로 나눠 4년마다 홀수 해에 개최된다. 신체능력과 상관없이 8세 이상의 모든 지적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엘리트 스포츠인 장애인 올림픽, 즉 패럴림픽과는 구별된다. 아시아에선 일본과 중국에서만 열렸다. 평창 대회는 벌써 열 번째다. 지난해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그 환희와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웅장한 평창의 역동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120여개국 3300여명의 선수단과 선수가족, 국내외 귀빈, 운영인력 등 1만 4900명이 참가하는 행사다. 참가 선수단의 규모 면에서는 일반 동계올림픽대회와 비슷하다. 2011년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 약 250만명 중 지적장애인은 17만명. 자폐장애인을 합치면 19만명에 육박해 전체 장애인의 7%를 넘는다. 발달장애인(지적장애·자폐장애)들은 장애 등급이 1~3급만 진단될 정도로 스스로 자립이 힘든 장애 유형이다. 취업 등 독립된 성인기 전환이 특히 어렵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체 장애인의 절반 수준이다. 대부분 인지력이나 사회성이 매우 부족하다. 자기 권리를 제대로 옹호하지 못해 성폭력과 학대의 피해자가 되는 안타까운 사건도 많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살게 해달라는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전후 우리나라의 보건 수준이 열악한 때에 소아마비 장애인이 많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후진국형 지체장애는 거의 사라지고, 임신·산전 검사로도 잡히지 않는 지적장애인의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 지적장애 혹은 자폐장애인을 둔 부모의 절반 이상은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 하니, 이들 가족의 문제는 사회와 국가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도 제4차 장애인정책발전 5개년 계획에서 중증·자폐장애 등 발달장애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화한다고 한다.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조직위는 스포츠·문화·스토리·배려를 주제로 대회를 개최한다. 나경원 조직위원장은 지적장애인을 둔 부모이기도 하다. 나 위원장은 “스페셜올림픽은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한다. 승패나 순위는 별 의미가 없다. 달리기를 하던 선수가 중간에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거나, 골인 직전에 멈춰 서서 다른 선수들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도 한다. 필자 또한 조직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다. 사실 필자는 ‘스페셜올림픽’이라는 명칭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특별한’ 시선을 보내지 말고 그저 모든 사람들이 와서 즐기는 일반적인 스포츠 축제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평창 동계유니버설올림픽’이 낫지 않을까? 오는 29일부터 평창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에 많은 국민들이 따뜻한 발걸음을 옮겼으면 한다. 1만원짜리 ‘스페셜 패스’ 쿠폰 한 장으로 모든 경기 관람과 함께 평창·강릉 일대의 스키리조트, 관광지를 할인해서 즐길 수 있다. 아이들 방학 때 딱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평창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응원과 관심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세상을 밝힐 따뜻한 불씨를 피웠으면 한다.
  •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1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의 영조(靈鳥) 피닉스는 수명이 다하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태양의 신전으로 날아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피닉스는, 이윽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영조는 불사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르헤스는 불 속에서 파괴되며 재생하는 이 영원한 순환을 묘사한 적이 있다. ‘원형의 폐허들’의 주인공은 ‘불의 신전’에서 한 소년을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소년의 폐동맥과 심장, 뼈대, 눈꺼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 등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게 떠올렸다. 정교한 상상 속에서, 소년은 마침내 실체가 되어 현신했다. 그런데 이 창조자는 소년이 언젠가 자신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 걱정했다. 불의 신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불이 될 것이다. 환영은 불에 탈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 소년은 불에 닿았을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으로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노심초사하다가 불타는 신전으로 뛰어들었다. 이 기나긴 고민을 끝내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불타는 폐허 안에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지 않음을, 그러니까 자신도 누군가의 환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또한 먼 훗날 환영을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 되리라…. 피닉스와 보르헤스의 환영은 모두 반복을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영구히 되돌아오는 원환이다. 그러니까 끝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반복이다. 끝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끝과 무한(無限). 최근 소설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일련의 메타픽션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참으로 이렇다. 한유주는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한유주, ‘농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30쪽)고 말한다. 이때 새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대홍수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박살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창작의 가능성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유주는 끈질기게 자신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한유주는 자기 글쓰기의 한 조건으로 ‘이야기의 끝’을 상정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 (한유주, ‘죽음의 푸가’,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48쪽)어서 그 어떤 처녀작도 새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제훈은 끝없는 이야기의 모델을 보여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제공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흡혈귀 전설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패러디했던 그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에도가와 란포, 오스카 와일드, 스티븐 킹, 로베르트 비네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기성의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제훈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유주에게 제약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기회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최제훈은 바로 이러한 조건 아래서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82쪽)를 상상했다. 2 플롯 없는 소설들 왜 차라리 ‘소설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가.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에서 진실로 끝나버린 것은 바로 플롯이다. 바꿔 말해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서사가 부재하고 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 내용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는 드물게 출현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대부분 그녀의 의식을 (불)투명하게 묘사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진위는 참으로 모호하다. ‘흑백사진사’에서 ‘아이’는 유괴당한 지 일주일 만에 목이 졸려 살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의 화자는 납치된 지 나흘 째 되는 날 풀려났고 중학생이 되어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의도적인 교란은 화자의 모든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 이야기는 진술들의 나열일 뿐이지 통일되고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유주의 소설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사건(event)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유주는 어떤 행위를 묘사하거나 진술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는 나지” 않고 “재는 떨어지지”(한유주, ‘재의 수요일’,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208쪽)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 허구(虛構)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킨다. 이것은 부정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허구0’에서 한유주 본인으로 짐작되는 화자는 현재진행형 시제의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행동, 계획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허구0’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진술들이, 그러니까 가장 투명하게 작가의 머릿속을 베껴낸 이 문장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암시한다. ‘불가능한 동화’ 역시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부정문, 혹은 명명(命名)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이제 소설의 형식 자체를 통해 실천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이 소녀는 반 급우들의 일기에 “나도 죽여보고 싶다”, “바늘 끝은 뾰족하다”, “불은 뜨겁다” 따위의 문장들을 몰래 적어 넣었다. 선생님은 이 테러의 진의를 알 수 없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내지만, 이것이 왜 나쁜 행동인지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이 교실에는 “없어진 것도, 사라진 것도 없”으므로. 그저 “의미도 불분명하고 출처도 없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므로(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 사회” 2011년 겨울호, 165쪽) 이것은 타인의 문장에 가해진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인 것이다. ‘불가능한 동화’는 이렇듯 모호한 폭력을 가한 소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발아시킨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소녀의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한편 소녀는 미아라는 급우가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소녀는 미아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이제 우리는 미스터리의 해결(소녀는 누구인가)과 서스펜스의 지속(소녀는 잡힐 것인가)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유주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 도중 강의실 뒤편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그 아이는 바로 ‘소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을 끔찍한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제 한유주는 앞선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음을 고백하고, 허구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유주 소설의 시그니처와 같은 부정문은 형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말한 다음, 바로 부정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시한 다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만다라와 같은 작업이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만들어지는 이 신성한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물에 씻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유주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회의 때문에 생겨났다. 그녀는 언어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 이는 사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K에게’에서 사전은 “모두 다섯 권이었지만, 첫 번째 사전부터 마지막 사전까지 합친 두께가 손바닥 한 뼘을 넘지 않”는 “무성의한 생일 선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야한 방식으로 선별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펼쳐 놓고,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 아무런 해답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유주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은 틀린 것”이라고 진술한다(한유주, ‘K에게’,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72~73쪽). 사전이 결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할 수 없다.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열등하게 모사한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문학에서 삶과 현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유주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19쪽)라고 선언한다. 언어는 그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유주의 해답은 바로 메타픽션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현실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언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에게 ‘이야기의 끝’이란 단순히 모든 이야기가 이미 쓰였다는 인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의심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한유주 소설의 특징은 좀처럼 요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이디푸스왕’을 오이디푸스에게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이오스왕의 죽음, 이오카스테와의 결혼,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신탁…. 하지만 한유주의 소설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고롭게 그러한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 소설의 특징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할 수 없다는 것은, 최제훈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최제훈이 한유주처럼 사건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최제훈의 소설에서 사건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다만 그것들은 좀처럼 결말을 향해 회수되지 않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편소설’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소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 나오는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의 인물들은 뒤의 세 작품 안에서 조금씩 설정과 역할을 달리하여 변주된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의 연우와 ‘π’의 M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연우와 M은 모두 번역가인데, 자기가 번역을 맡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꾼 일이 있다.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을 슬그머니 죽은 것으로 오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스페인어 번역가인 데 반하여 M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맞는다. 연우가 눈이 오는 산장에 고립되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면, M은 소설을 쓰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는 탐욕스러운 셰헤라자드에게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58쪽). 한 편의 장편소설에서 인물이 복수(複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고 어떠한 인간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건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185쪽). 많은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과 흑”은 줄리앙 소렐의 죽음으로 끝나며, “레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죽음으로 끝나고, “보바리 부인”은 엠마 보바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들의 죽음이 삶과 소설의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다. 하지만 최제훈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복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연극이다. 예컨대 햄릿의 죽음은 연출가의 각색에 따라 매번 달라지지 않는가. 이러한 최제훈 소설의 특징은 그가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에 의해 촉발되었다. 바로 패스티시다. 한유주 소설이 부정문의 특징을 형식적 차원에까지 확장한 결과라면, 최제훈은 패스티시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활용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쓴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인용하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서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은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탐구하는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어느 겨울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회장의 초대장을 받고 산장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회원들은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살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판사, 사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명의 사람이 외딴섬에 모인다. 그들은 어느 사업가에게 초대 받았다. 그런데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의 주인은 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노랫말에 맞추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한편 ‘쥐덫’에서도 사람들은 밀실에 갇혀 있다. 이들은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에서 ‘붉은 방 클럽’은 ‘실버 해머’처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취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인용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섯번째 꿈’은,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재현하는 글쓰기이다. 소설의 인물이 두 개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제훈의 소설에는 이야기만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재현하는 인간의 삶이 없다. 그런 것은 도무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야기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적 삶의 내용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저 한 기능으로 퇴락한다. 그러니까 “돈키호테”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기사는 다만 “무관한 일화와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통일을 주기 위해”(프레드릭 제임슨, 윤지관 옮김, “언어의 감옥”, 까치, 1977, 61쪽) 고안되었다는 식이 된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 재료들의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3 전문가로서의 작가 그래서 패스티시의 소설은 반인간적이다. 소설 속의 인간에게 고유한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스티시는 소설 바깥의 인간에게서도 존엄성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서 창조주의 권위를 앗아간다. ‘π’에서 M은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번역가이다. 즉, 그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M이 결코 글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M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밤마다 M에게 으스스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M이 쓰고 있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M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드이자, M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 위해서, M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는 맵시벌의 다큐멘터리에서 우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맵시벌은 거미의 몸에 알을 깐다. 세월이 흘러 다 자란 “유충은 쓸모없어진 거미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숙주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M은 “맵시벌 다큐멘터리를 전에도 본 것 같았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44쪽). 채널을 돌려도 화면에는 계속 맵시벌만 나타났다. 여기서 M은 사실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그의 배역은 다름 아닌 거미인데, 이야기가 완성되자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M의 운명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고 지칭했던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바르트가 주장한 바, 근대적 글쓰기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32쪽)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른 소설을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은 단지 M의 운명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문학론은 실제 ‘π’의,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작법(作法)을 통해 실현된다. ‘π’는 그 자체로 “인용들의 짜임”이다. 우선 우리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셰헤라자드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π’의 액자 속 주인공 하루는 어느 터널에 49일이나 갇혀 있었고, 결국 미쳐버렸다. 그는 이제 정신병원에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 간호사, 동료 환자들을 상상 속에서 변형시키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로베르토 비네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박람회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상자를 보게 된다. 그 상자에는 체사레라는 몽유병 환자가 누워 있다. 체사레는 프란시스의 약혼녀인 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칼리가리 박사는 이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상의 이야기는 매우 기이하다. 비현실적이며 악몽을 닮아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프란시스가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며, 체사레는 병원의 직원이다. 제인은 프란시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이들 인물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대중문화 안에서 여러 번 변주된 바 있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의 ‘토탈 리콜’(1990)이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 활용되었다. 요컨대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최제훈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작가의 역할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독창적인 트릭을 고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트릭에 의존한다. 다만 그 트릭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붉은 방’을…. 이때 최제훈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창조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저자가 아니다. 자기 작품의 “유일하고 동일한 목소리”(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28쪽)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언어와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자기 작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서로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건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인 것처럼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묶음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이제 소설의 인물과 작가는 모두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제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창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조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일까? 그는 문화산업의 많은 ‘크리에이터’(creator)들이 하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불가사리’(1962)가 ‘고질라’(1956)를 참조하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를 차용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진귀한 구경거리(spectacle)를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쯤은 옳다. 그는 창조하기보다 생산한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만한 것이다. 아마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아버린 M의 모습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어느 현대 노동자의 비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제훈은 뒤샹이 예술가인 만큼은 예술가이다. 레디메이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방식은 자유에 맡겨진다. 아무리 풍부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그것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뉴욕의 어느 배관공이 ‘샘’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정말이지 없다. 뒤샹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신의 가능성은 나의 가능성과 같지 않은 것이다”(“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Calvin Tomkins, The Bride and the Bachelors: Five Masters of the Avant-Garde, Penguin, 1968, p.33)).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specialist)로서의 작가이다. 무엇인가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짜깁기의 예술은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최제훈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자기가 조작하는 이야기의 관습을 썩 훌륭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점을 좀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한유주는 ‘저자의 죽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조건으로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이미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심지어 미리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적을 때도 그것은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유주는 “모든 사물들은, 혹은 모든 사물화 된 문장들은,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전시된 죽음들”이며, “검은 플라스틱판에, 흰 글씨로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패가 달린 박제이다(한유주, ‘자연사 박물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87쪽). 한유주는 이러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를 참조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구를 ‘베끼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허구0’이라는 제목은 “픽션들”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단편집 표제를, 그리고 “얼음의 책”이라고 하는 표제는 ‘모래의 책’이라고 하는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의 영점(零點)과 허구의 복수형은 분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거기에 만들어지자마자 모두 녹아 사라지는 얼음의 책과, 영원히 모래처럼 변화하며 두 번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칠 수 없는 모래의 책은 모두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지는 책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주의 깊게도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유주 스스로 어떤 작품을 베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와 달라지려 하는 한유주의 부단한 노력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연극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 한 사내가 어느 광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광인은 자신이 22년 전에 살해한 여성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짤막한 이야기의 틈을 헤집고 억지로 자신의 언어를 밀어 넣는다. 한유주는 이 사내와 광인을 각각 트리스탄과 햄릿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조우에 복잡한 운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아마 한유주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흔적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란 시간을 물어보는 행위, 다리 위에서의 대화 등 몇몇 지점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나타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독자라도 이 정도의 단서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 주인공 하령은 대재앙이 닥쳐 대륙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린 세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는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껴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베끼려고 하는 소설은 책장에 없거나, 아니면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무엇인가 베끼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189쪽). 하령은 무엇인가 참조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결말과는 다른” 페이지들을 마주하게 된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3쪽). 그래서 하령의 베끼기는 계속해서 원작과 달라진다. 이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작업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관습들을 익혀야 한다. 이미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잠깐의 방심은 ‘베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멜로디를 검토하는 작곡가나, 신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존의 특허를 검토하는 기술자의 태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유주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베끼는 와중에 조금씩 변화할 뿐이다. 그것은 진화의 개념이 사라진 돌연변이와 같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가미를 발달시켰다. 물에 잠긴 세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진화인가 퇴화인가” 말할 수 없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1쪽). 한유주의 소설 역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그녀의 ‘베끼기’가 박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문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다만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은 인류와 함께 절멸했다. 이 ‘끝’에서 문학은, 그리고 글쓰기는 과거의 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조의 엿새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으므로. 4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이야기의 끝’이거나 ‘끝없는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움’의 쇠퇴이다. 이제 작가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다만 기왕의 설계도를 다소 변형시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유주와 최제훈의 작품이 새롭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자의 언어를 베끼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에 없이 독특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도 한유주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정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제훈은 기성의 관습들을 짜깁기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마치 괴물처럼 낯설다. 이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아이러니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이지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4분33초’를 만들었으며,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 속의 이미지를 조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예술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파천황의 것이며 예술의 경계를 도전적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다. 마치 ‘4분33초’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그 다음은? ‘4분33초’는 결코 녹음되거나 재연(再演)될 수 없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워홀의 유명한 병뚜껑, 혹은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질문하고,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공허함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다.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반 고흐의 신발이 가진 직접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프레드릭 제임슨, 강내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문화과학사, 1989, 150쪽)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분명 새롭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은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19쪽)기 때문이다. 이때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모든 책무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한 형식이 된다. 즉, 자족적인 동시에 자기폐쇄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와 최제훈 소설의 공간들이 감옥을 닮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모든 생명들이 박제되어 진열된 공간이며,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사람들은 온통 물에 잠겨버린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불가능한 동화’에서 선생님은 마치 취조실의 형사처럼 아이들을 겁주고 추궁한다. 최제훈을 살펴보면, M은 맵시벌의 둥지에 갇혔고, 하루는 동굴 속에 갇혔으며, 영수는 산장 안에 갇혔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액자 속의 미미는 스토커에게 납치당해 갇혔고, 액자 바깥의 ‘나’는 망막박리에 걸려 눈이 먼 채 병실에 갇혔다. 모두가 갇혀 있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메타픽션이며, 이들은 모두 알레고리 속의 인물이다.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사실 상징적인 방식으로 글쓰기 자체를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언어의 감옥이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글쓰기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타인의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모든 발화가 랑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글쓰기의 관습이나 전통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흉내 내며 말을 배운다. 소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소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때 언어는 자기를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동어반복과 다름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며, 작가란 발언을 하는 사람(parleur)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위해, 혹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27쪽).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책무가 다만 다른 소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되었을 때, 글쓰기는 베끼기가 된다. 이때 독서란 소설 안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의 흔적을 찾는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78쪽). 오직 언어로 이루어진 곳을 헤매는 것이 독서라면,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를 유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감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지나야 그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179쪽).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평생에 걸쳐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신학까지 열성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탄식했다. 그가 마술의 세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던 것은, 정통한 지식들이 세계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 “부질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31~33쪽).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처녀를 희롱하고, 신화 속의 전쟁에 뛰어들고, 바다를 메우는 개간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선언한 후였다. 가장 열심히 말의 세계를 믿었던 자가,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와 같은 모험이 필요할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벗어나 시공을 뒤집는 모험에 나섰던 것처럼, 한유주와 최제훈도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소설 역시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당선소감 책은 끝없는 미로… 내 모든 단어 빚지고 있어 아직 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은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듬더듬 잘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문득 어지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은 앞이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세상은 그만큼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숙제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길은 목적지가 분명한 대로가 아니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미로이다. 이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그들이 전해준 것을 비로소 적었을 뿐이다. 나는 모든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박광현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들은 전부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주셨다. 한만수 선생님은 어떻게 학문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김춘식 선생님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책읽기의 즐거움’의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병식 선생님, 복도훈 선생님, 서희원 선생님, 조형래 선배, 김민선, 박진솔, 임세화, 전호성, 한정현, 홍덕구 등 모두들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거나, 혹은 반박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즐겁게 읽어준 경연에게 감사한다. 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집 센 아들의 선택을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께는 가장 큰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약력 ▲1983년생 ▲ 2002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심사평 균형적 함의 도출 … 평론가로서의 앞날 기대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편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들 작품을 통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으로 4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정독한 후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당선작을 확정하였다. 심사기준으로는 응모 평론이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잘 부각시키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두었으며, 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평적 견식을 담보할 수 있는 문장력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올해의 평론 응모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성향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부적 탐색과 분석에 치중하고 동시대 사회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구명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론이 단순하게 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배태하고 산출한 환경과 문학사적 친연성 등을 두루 고찰하고 있을 때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터이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4편의 평론 가운데 이은이의 ‘희미해져가는 인간다움에 대하여’는 유연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보다 정치한 시각과 정론적 방식으로 대상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정영의 ‘비린내, 혼종의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성’은 후각적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규정하는 독창성이 참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독창적 사유가 총괄적 해석력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고 비린내와 혼종성의 상관관계도, 좀 더 명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만영의 ‘유령의 서사, 열림의 정치’는 시종일관 무난하고 균형성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분석 대상이 된 두 작품의 저변을 보다 치열하게 드러내고 그 상관성에 대해서도 입체적 조명이 있었으면 하는 후감이 있었다. 당선작이 된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는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함의를 비교적 정확하고 균형성 있게 도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도 폭넓은 공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평론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 10억 수뢰 김광준 검사 첫 공판 “돈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

    10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광준(51)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28일 열린 첫 재판에서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뇌물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대웅)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김 부장검사 측 변호인은 “돈을 받은 것은 대부분 사실이지만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각종 증거로 명백히 드러나 있는 금품 수수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시인하면서도 수사 무마 알선 등을 전제로 한 뇌물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김 부장검사는 유진그룹에서 5억 9000여만원, 다단계 사기범인 조희팔씨 측근으로부터 2억 7000여만원 등 10억여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함께 기소된 유경선(57) 유진그룹 회장과 동생 유순태(46) EM미디어 대표 측 변호인은 “유 회장은 돈이 오간 사실 자체를 몰랐고 유 대표도 단순히 빌려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업가 이모(52)씨도 “금품을 준 것은 맞지만 직무 관련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재소자용 흰 운동화를 신고 출정한 김 부장검사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재판장이 인적사항을 확인하며 직업을 묻자 머뭇거리다가 “검사…”라고 짧게 답하기도 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역대 대선 막판 돌출사건은

    선거 막판에 터져 민심을 뒤흔들었던 돌출 사건은 대선 때마다 일종의 ‘법칙’처럼 어김없이 재연됐다. 이번에도 같은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 때는 선거를 사흘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BBK 동영상’이 공개돼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이 후보가 2000년 광운대 강연에서 BBK 투자 자문 회사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발언한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 12월 16일에 공개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에 재수사를 지시했고 이 후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BBK특검법’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 동영상’을 무기 삼아 남은 화력을 집중했지만 이 후보의 당선을 막진 못했다. 2002년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 18일 밤에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선거운동 마감을 1시간 30분 남겨두고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메가톤급 충격으로 대선 판이 휘청거렸다. 노 후보는 유세 일정을 중단하고 정 후보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찾았지만 문전 박대당했다. 그러나 위기를 느낀 야권 성향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지지 철회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1997년 대선 12일 전인 12월 6일에는 안기부(현 국정원)가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앞으로 보냈다는 편지를 공개했다. 북한의 고위층이 김 후보의 대선 승리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닷새 뒤엔 재미 사업가 윤홍준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후보가 북한 김정일에게서 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풍의 영향은 미미했다. 김 후보는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2년 대선 직전에는 ‘초원복집’ 사건과 ‘이선실 간첩 사건’이 불거지면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당선됐다. 정부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김영삼 후보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히려 역풍이 불어 보수층이 결집했다. 1987년 대선 전날인 12월 15일에는 칼(KAL)기 폭파 사건의 용의자 김현희씨가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로 압송됐고 유권자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하면서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출판은 인간의 DNA 같아… 후퇴 없을 것”

    “출판은 인간의 DNA 같아… 후퇴 없을 것”

    “미리 말해둡니다. 해피 뉴이어!” 11일 팔순을 맞아 자서전 ‘책’을 낸 박맹호(79) 민음사 회장은 기자간담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 현역으로서 300권을 갓 넘어선 ‘세계문학전집’을 1000권까지 내고 싶다는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활기찬 목소리였다. 박 회장은 1966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사무실에 첫 간판을 단 이후 민음사를 한국의 대표적 단행본 출판사로 키워낸 출판계의 산증인. 그 민음사는 이제 비룡소, 황금가지, 사이언스북스 등을 자회사로 두고 문학과 인문을 넘어 아동, 과학을 아우르는 거대 출판사가 됐다. 장녀 박상희(50) 비룡소 대표 등 2세가 박 회장의 뜻을 잇고 있다. 자서전에는 성공한 사업가로 정치인의 꿈을 갖고 있었던 아버지의 집요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사업과 정치를 벗어나 문학도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그럼에도 자식들에게는 자신의 출판업을 물려주게 된 얘기, 출판을 하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뒷얘기와 인연들을 빼곡히 채워넣었다. 박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아무래도 첫 책 ‘요가’를 꼽았다. 1966년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3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인기를 끌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었다. “쉽게 만들어 쉽게 돈 벌 수 있겠구나 생각한 거죠. 그래서 쉽게 했는데 두 번째 책부터 완전히 박살이 났죠.” 약사이던 부인이 팔았던 활명수가 10원하던 시절이었는데 빚이 3000만원이었다고 했다. 출판의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라는 게 1960년대에 2만부, 1970~1980년대에 50만~60만부, 1980년대 이후 밀리언셀러 정도가 됐어요. 우리 산업 발달과 함께 출판도 꾸준히 커온 것이지요. 출판은 인간의 DNA와 같은 겁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책을 찾을 수밖에 없고, 결국 어떤 책을 언제 어떻게 공급하느냐의 문제이지요. 그래서 출판 자체가 후퇴한다라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서전에는 박 회장이 문학청년 시절이던 1955년에 쓴 단편소설 ‘자유 풍속’도 함께 실려 있다. 이 소설로 작가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지만 자유당 정권을 너무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등단에는 실패한 작품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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