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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호중 “의원님, 김경수 자서전 50권씩 사주세요”

    윤호중 “의원님, 김경수 자서전 50권씩 사주세요”

    윤 측 “사비로 사서 돕는 것 문제 안 돼” 선관위 “재판비용 위해 구입땐 법 위반”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이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재판비용과 보석비용 마련을 위해 김 지사의 자서전 대량 구매를 소속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윤 총장은 20일 민주당 의원실에 보낸 편지에서 “이번에 김 지사의 자서전 ‘사람이 있었네’의 개정판이 출간됐다”며 “출판사로 직접 50권 이상 주문해 주시면 김 지사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겠다”고 밝혔다. ‘친전’이라고 적힌 봉투에 담긴 편지에는 책 구매를 위한 출판사 연락처와 1만 6000원인 책 정가를 소개하며 ‘출판사를 통해 직접 50권 이상 주문’이라는 내용이 밑줄로 강조돼 있다. 윤 총장은 “김 지사는 막대한 재판비용과 보석비용으로 인해 어깨가 더욱 무거운 상황”이라며 “민주당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김 지사의 동지이자 벗인 의원님께 간곡히 부탁드리고자 한다”고 했다. 당 일각에서는 사무총장 명의로 책 50권 이상(80만원 이상)씩을 할당해 구매를 요청한 것은 다소 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도울 사람은 알아서 돕는다”며 “이걸 왜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 총장 측 관계자는 “당 차원이 아니라 윤 의원 개인적으로 보낸 친전”이라며 “사비로 책을 사서 돕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반면 의원들이 사비가 아닌 의원실 공금 등으로 책을 구입하면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중앙선관위는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의원들이 후원회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으로 정치활동이 아닌 재판 비용 등을 위해 책을 구입한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일 수 있다”고 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광주교육청, 비리 사립 유치원 30곳 고발 … 세무조사 의뢰 등 초강수

    광주교육청, 비리 사립 유치원 30곳 고발 … 세무조사 의뢰 등 초강수

    광주시교육청이 회계 비리와 세금 탈루 의혹이 드러난 지역 사립유치원를 대거 검찰에 고발하거나 세무조사를 의뢰하는 등 초강수로 대응하고 나섰다. 15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사립유치원 30곳에 대해 감사를 벌여 전체 30곳에서 회계 비리 등 모두 218건의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교육청은 이가운데 6곳을 사기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발하고, 세금 탈루 의혹이 드러난 19곳에 대해서는 관할 세무서에 세무조사를 의뢰했다. 비리 금액은 총 21억여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은 이와는 별도로 교육청 감사반원 출입을 저지하고 자료제출을 거부한 11곳도 검찰에 추가 고발했다. 이번 검사에서 보조금을 부당 수령했다가 회수조치된 금액은 9억8000만원,학부모 반환금액은 1억4000만원에 이른것으로 각각 나타났다. 사기 혐의로 고발된 일부 유치원의 경우 ‘수업에 필요한 옷이나 교재를 사야 한다’며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거두고도 실제로는 헌옷이나 중고 물품을 지급하는가 하면 당초 고지한 금액보다 저렴한 물품을 구입한 혐의다. 창의력사고 수업이나 체험활동 비용을 학부모들로부터 거뒀음에도 정작 해당 수업이나 체험활동을 하지 않은 유치원들도 고발 조치됐다. 모 유치원은 지난해 원비를 전년 대비 1.01% 오른 44만9000원으로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원아 1인당 프로젝트, 영어, 창의수업 등의 명목을 추가해 실제 원비인상률은 교육청 기준을 훨씬 웃도는 24.6%에 달했다. 그럼에도 ‘학급 운영비가 필요하다’며 보조금 1200만원을 부당 수령했다. 또다른 유치원은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를 개당 400원에 납품받고도 최대 1200원씩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특정 유치원은 원장이나 설립자, 또는 설립자 가족 등에게 인건비를 지급하거나 유치원 시설 사용료 정산때 세금을 누락한 사실도 적발됐다. 한편 시교육청은 올해 대형 유치원 70곳을 집중적으로 감사한 뒤 내년까지 159개 전체 사립유치원에 대해 감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300℃ 견디는 소방 드론 개발…“화재현장서 1분간 비행 가능”

    300℃ 견디는 소방 드론 개발…“화재현장서 1분간 비행 가능”

    300℃까지 견딜 수 있어 화재 현장에서도 1분간 연속 비행하며 인명 구조를 도울 수 있는 무인항공기(이하 드론)가 일본에서 나왔다. 6일 NHK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일본 드론 제조업체 엔루트와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공동으로 내화성 드론(모델명 QC730FP)을 개발했다. 이날 도쿄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NEDO 분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다키카와 마사야스 엔루트 사장은 “하늘을 나는 소방관의 동료를 지향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무게 6.5㎏의 이 드론은 기체를 티타늄과 마그네슘합금, 프로펠러 부분을 마그네슘합금으로 제작해 경량화를 구현했다. 거기에 내화성을 높인 특수 도료 지르코니아를 도장함으로써 300℃의 고온 환경에서도 1분간 연속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 드론이 화재 현장을 자세히 조사하겠다는 목표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내화성을 300℃로 정한 이유는 소방관 방화복의 내화성 기준이 260℃인 점을 고려해 이보다 뛰어난 성능을 구현하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드론은 발화원에서부터 상공 5m~10m까지 근접 비행할 수 있어 탑재된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드론을 운용하는 대원에게 선명하고 자세한 이미지를 전송한다. 사다리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도로나 주택 밀집 지역 외에도 공장이나 빌딩 안에 들어가 인명을 구조하는 경로를 파악하는 등의 임무에 쓰일 수 있다.또 야간 등의 상황에는 적외선 카메라를 더해 열원을 더욱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카메라 전면부 역시 단열성과 투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석영 소재의 유리를 채택, 열원의 영향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런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화염 속을 연속해서 통과하는 시험에서도 기체에 손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NEDO는 “온도가 300℃에 이르는 고온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드론의 실용화는 이번이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엔루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빌 게이츠 “억만장자 된 후 첫 구매한 포르쉐와 전용기는 사치였다”

    빌 게이츠 “억만장자 된 후 첫 구매한 포르쉐와 전용기는 사치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이자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대표인 빌 게이츠(63)는 순자산 965억달러(약 108조 9002억원·포브스 발표기준)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사람이다. 그가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시기는 만 31세로, 역대 가장 젊은 억만장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은행계좌 잔액이 급격히 늘었지만 돈을 마구 쓰지 않았다고 최근 미국의 한 유명 TV쇼에서 밝혔다. 게이츠는 지난달 ‘엘런 디제너러스 쇼’에서 “사치스러운 취미가 많지 않아서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다”면서 “당시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쇼 진행자인 디제너러스가 “그러면 ‘아, 포르쉐를 사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느냐?”고 압박했다. 그러자 게이츠는 “맞다. 그랬다”고 답했다. 이어 “그것(포르쉐)은 사치였으며 결국 내 여행을 위해 전용기를 샀는데 그 역시 엄청난 사치였다”면서 “그럼 두 가지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제너러스는 또 “그러면 포스웨와 전용기가 전부인가?”고 되물었고, 게이츠는 “미친 짓(crazy thing)이라면 그렇다”고 답했다.이전에 게이츠는 아프리카로 자선재단 사업을 위해 오갈 때 사용하는 자신의 4000만 달러(약 451억원)짜리 전용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만족감을 준다”며 “엄청난 사치였다”고 말했다. 게이츠의 전용기는 캐나다 항공사 봄바디어가 제조한 19인승 BD-700 글로벌 익스프레스로 알려졌다. 또 게이츠는 자택에 트램펄린방이 있다는 사실도 밝힌 바 있다. 워싱턴주 메디나에 있는 그의 저택은 1억2500만 달러(약 1411억원)짜리로, 현재 세계 1위 부호인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자택에서 1.6㎞ 정도 떨어져있다. 이에 대해 게이츠는 “트램펄린방은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면서 “실내 트램펄린은 추천한다”고 말했다. 게이츠가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사치는 생각보다 검소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게이츠는 또 아내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운영하는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350억 달러(약 39조5000억원)가 넘는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부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게이츠는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은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고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게이츠는 미국의 커뮤니티 레딧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에서 네티즌이 건넨 “개인적으로 매년 얼마의 세금을 내야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하길 원한다면 그것엔 재원이 필요하다”면서 “난 우리가 교육과 건강 서비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므로 내가 낸 100억 달러(약 11조 2000억)의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사진=엘런 디제너러스 쇼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봄의 전령/이순녀 논설위원

    전남 구례에 사는 지인이 엊그제 SNS 단체 대화방에 집 근처에서 찍은 매화와 산수유 사진을 올렸다. “시나브로 봄이 점령하고 있다”는 선전포고와 함께. 기습공격처럼 느닷없이 날아든 남녘의 봄꽃 소식에 투항자가 속출했다. “거긴 정말 봄이네요. 눈이 환해지는 듯.” “미세먼지도 없어 보여요. 쨍소리 날 것 같은 매화 사진.” 올봄은 작년보다 열하루나 일찍 찾아왔다. 하루 평균기온이 영상 5도 이상인 기간이 9일 넘게 지속되면 그 첫날을 봄의 시작으로 보는 기상청 셈법으론 지난달 23일부터 공식적으로 봄이다. 봄의 전령인 매화의 개화가 빨라지면서 봄꽃축제 시기도 덩달아 앞당겨졌다. 광양매화축제도 일주일 당겨 오는 8일 개막한다. 그런데 일찍 찾아온 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화려한 봄꽃의 유혹보다 봄의 불청객인 미세먼지에 대한 두려움이 발길을 주저하게 한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채 봄나들이라니, 운치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렇다고 미세먼지에 발목 잡힌 채로 아까운 봄날을 흘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봄이 왔어도 봄을 즐길 수 없으니 옛말대로 ‘춘래불사춘’이다. 인간사야 어찌 됐든 봄은 여지없이 진군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 요술버선, 일본관광객 ‘최애’ 상품 1위 “터무니없는 따스함이 온다”

    요술버선, 일본관광객 ‘최애’ 상품 1위 “터무니없는 따스함이 온다”

    일본관광객이 한국 재래시장에서 가장 구입하고 싶은 품목 1위로 ‘요술버선’이 꼽혀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공사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일본인 회원들을 대상으로 2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 ‘한국 재래시장에서 쇼핑하고 싶은 아이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495건이 접수된 가운데 가장 쇼핑하고 싶은 품목은 ‘요술버선(10.3%)’, ‘양말(9.3%)’, ‘향미증진제(식품첨가물)(6.1%)’ 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스틱커피(5.1%)’, ‘스테인리스 반찬통(4.8%)’, ‘일바지(고무줄 바지)(4.4%)’ 등 독특한 품목들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가장 선호도가 높은 요술버선은 지난해 겨울부터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저렴하지만 따뜻하고 디자인이 다양해 선물하기에 좋다는 평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높은 연령대에 인기가 있는 버선이 일본인들에게는 연령대에 관계없이 인기가 높다고 알려졌다. 앞서 일본 만화가 다키나미 유카리(Takinami yukari)는 자신의 트위터에 요술버선을 극찬하는 만화를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만화는 “추위에 약한 사람이 반드시 사야 할 것, 최강 방한용품 요술버선”, “믿을 수 없다. 터무니없는 따스함이 온다”, “한국인 여러분! 이렇게 훌륭한 것을 어째서 지금까지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말 역시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디자인이 장점으로 꼽혔으며,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아 여행가방에 많이 가져갈 수 있고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사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쇼핑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여 유튜브, 페이스북 등 공사가 보유한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홍보하여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 쇼핑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다양화시킬 예정이다. 제상원 한국관광공사 해외스마트관광팀장은 “재래시장 쇼핑 ‘잇템’ 콘텐츠를 제작해 침체된 골목상권을 지원하고,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을 홍보하여 지역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청주도 “청년들 면접 정장 빌려드려요”

    충북서 처음…새달부터 연 3회 빌려줘 업체가 디자인·색상 코디 서비스 제공 먼저 시작한 서울·수원서도 인기몰이 청년 구직자들을 위한 정장 무료 대여 사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시급하다고 여기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만들 수 있는 게 ‘생색내기일 뿐’이라는 지적을 받는 단기성 일자리에 그치다 보니 평생직장을 위한 면접을 지원하는 데 옷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충북 청주시는 서울, 수원, 화성시 등에 이어 다음달부터 이 사업을 시작한다고 11일 밝혔다. 충북에선 처음이다. 대상은 신청일 기준 만 18~39세 이하의 청주 거주 청년 구직자다. 시는 맞춤형 정장 업체와 협약을 맺고 신청자에게 재킷과 바지, 스커트 등 면접용 정장을 연간 세 차례까지 대여해 주기로 했다. 한번 빌리면 3박 4일 동안 쓸 수 있다. 희망자는 청주시 홈페이지에서 대여를 예약하고 정장 업체를 방문하면 된다. 업체는 디자인과 색상을 코디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시는 공개모집을 통해 상당구 서문동의 한 정장업체를 선정했다. 시는 무분별한 정장 대여를 막기 위해 면접 대상자 통보 문자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 시 청년일자리팀 유주호 주무관은 “1건당 시가 업체에 4만원을 준다”며 “올해 4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이 확산되는 이유는 먼저 시행한 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서다. 지난해 4월 시작한 수원시는 연말까지 2000여건에 달하는 대여실적을 기록했다. 인기가 좋자 1곳이던 대여업체를 2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2016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서울시 대여실적은 연간 2만건을 넘어서고 있다. 시와 협약을 맺은 업체 3곳에서 정장은 물론 넥타이, 벨트, 구두까지 빌려준다. 시가 지난해 이용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7%가 ‘만족하다’고 답했다. 시는 청년 구직자들을 위해 이력서용 무료사진 촬영과 메이크업 특강도 해 주고 있다. 충북청년정책연대 김미진 운영위원은 “학자금 대출까지 안고 있는 어려운 사회 초년생들은 면접을 위해 정장을 구입하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최고의 시책은 아니지만 청년 구직자들이 바로 체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책 중 하나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청주시민 박모(50·여)씨는 “일자리를 찾는 딸을 위해 면접을 앞두고 있던 지난여름에 정장을 구입했는데 겨울에 다른 곳 면접을 보게 되면 계절에 맞는 정장을 또 사야 한다”며 “무엇보다 시 지원으로 가계 지출을 줄일 수 있어 부모들도 좋아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양승태 기소] ‘재판거래’ 양승태 공소장만 296쪽… 檢 ‘사법농단 정점’ 못박았다

    [양승태 기소] ‘재판거래’ 양승태 공소장만 296쪽… 檢 ‘사법농단 정점’ 못박았다

    일제 강제징용 판결·국정원 대선개입 등 재판거래 통한 朴정부와 결탁이 핵심 혐의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해 인사상 불이익 헌재 동향 수집…법관 비리 축소·은폐도 박병대·고영한도 대부분 혐의 ‘공모자’로11일 구속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96쪽에 이르는 공소장 속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지시자로 정의됐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부분 혐의에 공모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7년 3월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 제출로 촉발된 검찰 수사는 이렇게 결론지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혐의는 ‘재판거래’를 통한 박근혜 청와대와의 결탁이다. 상고법원 도입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을 추진하던 양승태 사법부는 청와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정치적 사건에 서슴없이 개입했다. 특히 한·일 관계 개선에 차질을 빚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이 주요 대상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외교부 입장을 반영한 시나리오 검토 문건을 작성하도록 행정처에 지시하는 한편 전범기업 측 변호사와 직접 만나 소송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아가 재상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정부 의견을 적극 반영해 심리하겠다는 재판 계획을 정부와 전범 기업에 알려주기까지 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에도 비슷한 이유로 개입한 것으로 봤다.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취한 ‘판사 블랙리스트’도 주요 혐의 중 하나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정기인사에서 사법행정에 비판적이거나 부담을 준 법관 31명(중복 포함)을 ‘물의 야기 법관 명단’에 올렸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글을 기고한 문유석 부장판사, 법원 내부 게시판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1심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 등 법관 8명에 대해 문책성 인사를 단행한 사실도 공소장에 적시됐다.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그리고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이사야) 활동을 저지하려고 한 정황도 함께 포착됐다.양 전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와의 ‘기싸움’에서 이기려고 헌재 파견 법관을 동원해 헌재 내부 동향을 수집하거나, 헌재소장의 도덕성을 흠집 낼 목적으로 기사를 대필해 법률신문에 게재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헌재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옛 통합진보당 의원지위 확인소송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 외에 법관 비리 사건을 축소·은폐하거나 공보관실 운영비 3억 5000만원을 유용해 격려금으로 지급한 사실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한편 박병대 전 대법관이 단독으로 기소된 범죄사실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2015년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서기호(당시 정의당 의원) 전 판사가 자신을 상대로 제기한 ‘연임 탈락 결정’ 취소소송을 원고 패소로 종결하도록 담당 재판장에게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2011년 고등학교 후배로부터 형사사건 청탁을 받고 19회에 걸쳐 진행상황 등을 무단 열람한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도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생’올리브가 아니라 ‘테이블’ 올리브입니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생’올리브가 아니라 ‘테이블’ 올리브입니다

    중국 창세 신화를 살펴보면 ‘신농’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한족에게 처음으로 농사짓는 법을 알려줘 농사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을 수 없는 식물을 구분하고자 온갖 식물을 먹어보며 생체실험을 자처했다. 각종 독초를 먹고 고생한 탓에 그의 몰골은 흉측하게 변해 흡사 도깨비와 같았다고 전해진다.신농이 실재했던 인물인지, 단지 신화 속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지는 알 수 없다. 요지는 애초에 난생처음 보는 식물을 맨 먼저 먹어 본 누군가가 있었고 그 덕에 사람들은 그것이 식용인지 아닌지에 대한 지혜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농은 어떤 용감한 특정인이 아니라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는 인간의 정신 내지는 속성을 은유하는 상징이 아닐까도 싶다. 만약 신농이 올리브 열매를 먹어 보았다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올리브 나무에 열린 열매를 보고 피자 위에 올리는 기름지고 고소한 올리브의 맛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생올리브 열매는 지독하게 떫고 맵다. ‘올레우로페인’이란 성분 때문이다. 얼마나 지독하냐면 종교가 없는 이도 신을 찾게 만들 정도랄까. 지독한 맛을 경험한 이로써 이야기하자면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신농은 ‘못 먹는 것’으로 올리브 열매를 분류했으리라. 오래전 누군가가 이 작고 떫은 열매를 쥐어짜면 향기롭고 쓸 만한 기름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열매를 물에 오랫동안 넣고 씻어내기를 반복하거나 소금물에 절이면 꽤 먹을 만한 것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대 로마 시대의 누군가는 재를 탄 물에 올리브를 절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가공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올리브는 압착해 기름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절인 올리브로도 많이 소비된다. 반찬이나 안주로 먹는 이른바 ‘테이블 올리브’다. 테이블 올리브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어려운 건 맛 좋은 올리브를 찾는 일이다. 올리브가 초록색 아니면 까만색 말고 뭐가 더 있나 싶지만 테이블 올리브의 세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국가별 품종은 물론 제조방식에 따라 다양한 테이블 올리브가 존재한다. 혹자는 ‘생’올리브라고도 하지만 테이블 올리브는 일종의 발효가공식품이다. ‘생’은 아니라는 말이다. 올리브 열매를 먹기 위해선 소금물이나 양잿물, 혹은 식초물에 담가 쓴맛을 제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효가 일어나는데 방법에 따라서 올리브의 맛이 더 농밀해지기도, 맛이 빠져나가기도 한다. 어떤 생산자는 소금에 절이기도 하고 햇빛에 말리거나 공기 중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어느 한 가지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한두 가지 방식을 혼용하기도 한다. 값싸고 품질 낮은 올리브와 비싸고 유통기한이 짧은 고급 올리브의 차이가 여기서 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테이블 올리브 제품은 알칼리 처리를 거친 것들이다. 올리브를 알칼리성 용액인 양잿물에 담그면 껍질에 미세한 구멍이 생기면서 쓴맛을 내는 올레우로페인이 분해된다. 이어 농도가 다른 소금물에 순차적으로 담그면 젖산 발효가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김치처럼 올리브에 약간의 산미가 더해진다. 이른바 스페인 혹은 세비야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가공 방식이다. 밝은 녹색의 시칠리아산 카스텔베트라노나 스페인산 올리브가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알칼리 처리를 하지 않고 소금물에만 담그기도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알칼리 처리를 한 올리브에 비해 신맛이 덜하고 올리브 품종별로 독특한 발효 풍미가 더해진다. 주로 고품질의 블랙 올리브가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다.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테이블 올리브를 파는 가게를 찾아볼 수 있다. 동네마다 장맛이 다르듯 올리브도 마찬가지다. 레몬이나 라임과 같은 감귤류에 올리브를 절이기도 하고 로즈메리, 오레가노 등 각종 허브와 향신료에 버무려 내기도 한다. 와인에 곁들일 간단한 안주로 치즈와 육가공품이 부담스럽다면 대안은 역시 올리브다. 새해부터는 매번 사는 저렴한 캔 올리브 대신 조금 가격이 나가더라도 병이나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담긴 올리브에 눈길을 줘보자. 카스텔 베라 트누나 체리뇰라, 칼라마타, 만자니야와 같이 올리브 품종이 적혀 있다면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비록 산지의 다양성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각기 다른 올리브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무엇을 사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역시 먹어 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 옛날 신농이 그랬던 것처럼.
  • 코스피, 반도체 강세·외국인 매수에 2140선 회복…3개월 만에 최고치

    코스피, 반도체 강세·외국인 매수에 2140선 회복…3개월 만에 최고치

    코스피가 24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의 강세와 외국인 매수에 힘입어 2140선으로 올라섰다. 코스피는 지난해 10월 22일 2161.71 이후 3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7.25포인트(0.81%) 오른 2145.03에 마감했다. 외국인이 4953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상승세를 견인했고 기관은 3188억원, 개인은 1750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특히 반도체 종목이 많이 올랐다. 미국 증시의 시간 외 거래에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중국의 수요가 견고하다고 밝힌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이날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올 하반기부터는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면서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까지 영업이익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지난해 4분기부터 진행된 주가 하락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면서 “올 2분기부터는 인텔의 신규 서버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스마트폰 신모델 출시 등으로 수요가 일부 회복되는 등 영업이익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부진한 상반기보다는 개선되는 하반기를 염두에 두고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가총액 상위주 중에서 SK하이닉스(5.24%)와 삼성전자(2.01%)가 많이 올랐고 네이버(-2.64%)와 포스코(-0.75%) 등은 하락했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좋지 않은 경기지표나 글로벌 수요 환경, 중국의 경제 여건, 반도체 업황 부진 등은 다 알고 있던 악재이고 이미 지난해 주가에 반영됐다”면서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의 실적은 시장 우려대로 지지부진 했지만 반도체 업황 자체가 코너에 몰리다보니 수요자들이 매수 타이밍을 지연시키면서 올 하반기에는 업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가격에 사야한다는 논리가 상승세를 강하게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8.78포인트(1.26%) 오른 704.41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2월 4일(708.63) 이후 한 달 반가량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총 상위주 가운데 셀트리온헬스케어(6.89%)와 바이로메드(3.89%) 등이 올랐고 아난티(-8.35%)와 파라다이스(-0.55%) 등은 내렸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달러당 1.3원 오른 1128.6원에 마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BTS 정국 섬유유연제 ‘다우니 어도러블’ 대란 “저도 사야하는데..”

    BTS 정국 섬유유연제 ‘다우니 어도러블’ 대란 “저도 사야하는데..”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자신이 쓰는 섬유유연제 브랜드를 공개한 이후 해당 제품이 품절 대란을 겪고 있다. 지난 20일 정국은 팬 카페에서 팬들과 만나 채팅을 하던 중 “빨래하고 자야겠다”면서 “나는 향에 되게 예민하다”고 말했다. 섬유유연제에 대한 질문에 ‘다우니 어도러블’이라고 밝혔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며 인터넷 쇼핑몰 곳곳에서 품절됐다. 한 네티즌은 섬유유연제 판매업체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업체는 “예상치 못한 상품의 주문폭주로 두 달치 판매수량이 하루 만에 판매됐다”면서 “22일 오후 2시 이후 갑작스러운 주문량 증가를 뒤늦게 인지해 품절 처리했으나 그 과정에서 업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주문 건이 인입됐다. 이러한 재고 부족의 이유로 고객님의 상품을 부득이하게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국은 21일 공식 SNS에 “아미들(팬클럽). 저 섬유유연제 거의 다 써서 사야 되는데 다 품절. 대단해 아미”란 글을 남겼다. 지난해 여름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를 시작으로 월드 투어 중인 방탄소년단은 2월 16일과 17일 일본 후쿠오카돔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뚝 떨어진 나뭇가지에 봉변당한 남성

    뚝 떨어진 나뭇가지에 봉변당한 남성

    길을 걸어가던 한 남성이 갑자기 떨어진 나뭇가지에 머리를 크게 다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14일 중국 국제TV방송 CGTN은 9일 중국 푸젠성 샤먼의 한 공원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67세의 왕(wang)이라는 남성이 공원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왕이 운동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걷던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나뭇가지가 왕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나뭇가지를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왕은 머리를 감싸 쥐며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병원으로 옮겨진 왕은 두피가 찢어져 수술을 받았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100만분의 1의 확률이다”, “로또를 사야 한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등의 반응을 보냈다. 사진·영상=CGTN/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사실 경희를 만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경희를 봤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J가 그녀의 어머니를 논현동 게장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굳이 몸을 구겨 가며 버스를 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 탓에 긴 행렬로 이어진 차들 사이를 뚫고 버스는 간신히 일 차선으로 빠져나와 정류장 쪽으로 겨우 몸을 돌렸다. 출입문 앞 쪽까지 가득 찬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며 몸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기어 오는 버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일찍 나오지 그랬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 문자에 대한 J의 회신에도 한숨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보다 도로 쪽에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입구까지 막아서 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밀어내며 올랐다. 내 바로 뒤에서 어깨로 등을 떠밀던 한 남자는 문이 닫히지 않자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낭패한 표정이 나에게는 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버스 문이 겨우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근래 들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다음 정거장에서 앞쪽으로 몇 사람이 내리면서 문이 열렸다. 출입구 난간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버스 안쪽으로 올라섰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좁은 버스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출입구 쪽의 사람들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퇴근 때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버스 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차례로 사람들을 훑어보다 버스 중간 즈음에서 나처럼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낮은 조도의 등 아래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희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닿아 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시선.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알아봤을 것 같은 시선.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가 서로 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희의 무겁고 오래된 시선에 사로잡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흔들림을 사이에 두고, 경희와 나는 창을 통해 비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려도 되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기사 쪽을 향해 몸을 치켜세웠다. 버스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버스 앞쪽으로 끼어들어 미적거리는 차량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기사는 후미 등을 반복해서 껐다가 켜 댔다. 버스 기사는 앞쪽 출입문은 되도록 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앞쪽으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한두 명 탈 수 있는 공간이라도 타기 위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깨로, 등으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스 기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뒷문을 먼저 열어 사람들을 그쪽으로 유도한 다음 앞문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쪽이든 앞쪽이든 누군가 탈 만한 공간은 없었다. 일단 버스 앞쪽 난간에 매달린 다음, 문이 닫힐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몸을 앞으로 밀어대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기사의 만류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타겠다며 몸을 구겨 넣다가 버스를 출발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나를 경희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고개를 쭉 뻗어서 경희가 있는 쪽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희를 볼 수 없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움직이지 않고 내게로 향해 있는 경희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 경희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독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경희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매년 경희의 생일을 챙겨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녀의 생일을 챙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경희였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꼭 나를 보고 떠나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다.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와 문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수개월간 회사의 급여가 체납된 끝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언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지 못했던 월세 비용과 저축, 보험, 통신 요금의 더미에 묻혀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 더미를 뚫고 나가 경희를 만나 웃으며 생일을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이나 연체된 카드 대금이 불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고 나서 경희가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배우가 무슨 돈이 있어, 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서 호기롭게 계산을 하고는 했다. 정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때야말로 나를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다짐하듯이 경희의 눈을 보며 얘기하면, 보통 그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이 낯간지럽다는 듯이. 오늘은 내가 살게. 경희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나는 옷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늘 만나던 홍대입구 8번 출구에서 만나 경의선 숲길 쪽으로 걸어가면서 경희는 딱히 어디를 가자거나 뭘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가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에 괜찮고, 또 무엇보다도 술이며 안주가 그리 비싸지 않은 익숙한 곳 몇 군데를 얘기해 봤지만 경희는 하나같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 싶어. 그럼 어디?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려던 참이었다. 와인. 경희를 따라 입 밖으로 뱉어진 단어의 모음 두 개가 허공에서 공허하게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개의 원 안으로 와인이 무한대로 부어지고 있는 게 떠올려졌다. 경희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가자, 안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비싸잖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일 뿐, 경희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와인과 곁들여져 나올 샐러드와 안주 같은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낼게.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자리를 뜰 때 경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경희가 그 말을 할 때면 아주 단호하고, 무엇보다 진짜 멋있어 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보인다며 경희가 앞장서 들어간 곳은 이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대형 수입차 세단이었다. 광택이 도는 창문 안쪽으로 와인을 마시며 앞에 앉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는 여자가 보였다. 푸른색을 띠는 롱 드롭 귀걸이가 여자가 웃을 때마다 흔들렸다. 거기 안쪽에 있는 여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는데 그래서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게 여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들은 저기에 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람처럼 스스로 여겨져서 그랬다. 와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경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옷가지들을 풀지 않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더 조여 맸다. 춥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경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마음도. 그 말과 동시에 머금고 있던 웃음이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경희의 표정은 차갑고, 두 눈은 아래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지만 그에 대해서 바로 묻지는 않았다. 경희는 나와 대화 중에도 반복해서 몇 번쯤 웃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겠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을 겨냥한 채 눈을 겨눴다. 경희는 내가 한 말을 자주 놓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경희와 나 사이의 대화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딱히 서로에게 닿을 만한 대화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내적 요구가 가장 큰 마음속의 것들을 꺼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가 와인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경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잔을 비웠다. 처음에는 와인 잔에 반쯤 따르던 나도 양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와인의 건조한 습기가 그녀의 입술에 붙어 입술 틈 사이로 갈라졌다. 깊숙이 몸 안으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한 사람처럼 경희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잔으로 담은 붉은색 와인을 몸속으로 들이부었다. 미처 저어할 틈도 없이 경희는 추가로 와인을 주문했다. 경희처럼 단번에 와인을 마셔 버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올 때 경희보다 앞서 나오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이십오만 원쯤이었는데, 내가 낼게, 라고 경희가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이 정도쯤 괜찮아. 내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게 아니냐며 한 번쯤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도 위로받고 싶다고. 와인을 마시는 내내 대화가 엇갈린 경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내가 힘들 때도 타인을 챙겨야 한다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 팔꿈치로 등을 짓이기는 듯이 세게 문질렀다가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는 사람은 내 뒤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등을 찌르듯이 뾰족한 팔꿈치로 계속 찔러서 나는 최대한 여자의 등과 멀어지려 앞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등을 활자로 폈다. 상대적으로 배가 앞쪽으로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배를 살짝 집어넣자 다시 여자의 팔꿈치 찌르기가 계속됐다. 내가 앞쪽으로 바짝 다가설수록, 그렇게 해서 생긴 빈 공간을 여자가 오히려 좁혀오는 것 같았다. 앞 남자는 몸이 닿는 게 싫은지 어깨춤으로 나를 살짝 밀쳐냈다. 하는 수 없이 활자로 핀 등을 일자로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팔꿈치와 닿았다. 왜 자꾸 밀고 그러냐는 여자의 거친 음성과 얼굴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저도 계속 밀려서요. 여자에게 따지려 들면 더 싸움이 날까 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싸가지가 없긴. 여자는 그렇게 자기 말만 하고는 몸을 획 돌렸다. 결국 그 말을 타인, 상대방에게 던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의도한 사람처럼 여자는 그 말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금 뭐라고 한 거냐며 따지며 물었을 텐데 나는 일부러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 뒤쪽의 경희도 여기를,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방어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버스에 탈 때부터, 여자가 팔꿈치로 나를 찌르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순간까지 전부 그대로를 경희는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경희와 친구로 지내면서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민낯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타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뇌에서 진동 주파처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주머니. 경희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방금 뒤에 있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신 아주머니요. 차들이 밖으로 늘어서 있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는 차들이 켠 주황색 방향지시등이 깜빡이고, 좁은 틈 사이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거나 끼어드는 차선을 막아서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헤드라이트 불빛과 뒤섞여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로 가려진 버스 뒤쪽을 고개를 돌려가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뭐야, 누구야. 방금 전의 격앙된 목소리보다 누그러진 신중한 목소리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구요, 아주머니 옆에 있는 남자. 싸가지 없는 사람 아니에요. 김이 서리기 시작한 창 위로 희미하게 얹힌 도로의 풍경이 캔버스에서 흘러내린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 낸 그림 같았다. 경희의 목소리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인지 바로 앞의 풍경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그래 지금. 여자는 연신 뒤쪽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줌마,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여자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내가 괜히 그래요? 여자가 정색을 하고 남자를 내려 봤는데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버스 기사의 욕설에 묻혔다. 버스 기사는 이제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경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고개와 시선이 다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경희의 그 말이 귓속에서 울리더니 가슴으로 내려와 울렸다. * 경희와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는 딱 한번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며 한번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쯤 경희가 먼저 연락을 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이 절실하기도 했고, 그만큼 일상과 일과 중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책상 한쪽에서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 경희라는 이름이 몇 번인가 떠 있었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나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진동이 그치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매번 무표정한 내 얼굴 표정이 비쳐 보였다. 다시 전화가 오면 받아야겠다고,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경희가 두 번 연속으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경희에게 연락도 없이 소극장으로 향한 건, 한 번도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던 뮤지컬을 떠나 갑작스럽게 다른 장르의 무대로 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 선 경희가 어떤 모습인지 멀리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독일로 그녀가 떠난 뒤로 내게 몇 번이나 연락했는지, 언제 연락했는지를 모두 세고 있었던 것처럼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릴 때,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등을 짚을 때, 차를 운전하다가 커브를 돌 때 같은 평범한 순간들의 틈을 타고 떠올려지는 기억들이었다. 나랑 사귀자. 농담이라며 경희가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얼마나 나를 들뜨게 했는지,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그녀를 단순히 객석에서 바라보던 일이 그렇게나 떨릴 만한 일이었는지를 재차 묻는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기억들은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경희와 멀어지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기억들이 완전히 소진되어 떠올릴 거리가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삶의 중심과 사건들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희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시절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관계의 인과와 고리가 있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막 그 인과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관습과 기억의 뜨거운 층위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경희의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연극 무대에 선 경희를 확인하면 끝내 그 층위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기억들의 저항에 설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 연극의 삼분의 일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경희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중년 남자의 딸이 경희일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내연 관계인 직장 후배도 아니었다. 극의 중반 즈음을 지나서 등장한 중년 여성이 경희였다. 앞서 등장한 여성들이 모두 경희가 아닐까 생각했던 탓인지 중년의 여성으로 나타난 경희가 뜻밖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분장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경희가 뮤지컬에서 맡아 왔던 역할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들을 차려입은 그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중년의 역할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적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연극이 끝난 후에 찾아가 경희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말이야,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텐데 굳이 왜. 나는 경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멈췄다. 넌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지. 정작 내가 경희에게 하고 싶던 말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말 안에 내가 경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얼마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경희가 독백을 할 때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놓기도 했고, 소극장이지만 그래도 무대 조명이 밝아서 어두운 객석의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경희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경희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혹시 말없이 소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보고 있던 나를 경희가 알아봤는지, 그리고 그녀가 뮤지컬에서 연극무대로 전향한 이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물어볼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경희네가 했던 연극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경희는 알아, 혹은 그랬어?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하고,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먼저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시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45번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신사동 고개에서부터 가로수길 입구를 거쳐 신사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신사동 고개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한 버스는 그나마 정체가 덜한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 갔다가, 신사역이 가까워오자 사 차선에서 일 차선으로 한 번에 가로질러 갔다. 그사이 각 차선에 겹쳐 있던 차들 몇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버스 기사의 거친 운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가 지겨운 표정이었다. 이번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앉으려는 사람, 내리기 쉽도록 문 옆으로 가 있으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안 사람들에게 밀려났는지 경희의 모습은 창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느릿하게 가는 동안 나는 자주 버스 뒤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등과 머리 사이 틈새 어딘가에 경희가 목에 두른 파란색과 검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스카프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버스는 신사역 정류장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정차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앞 뒤 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비집고 들어가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 한 버스를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경희는 없었다. * 아마도 신사역에 도착하기 전이나 아니면 그보다 전 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혹 다른 사람을 경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깊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경희밖에 없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자화상을 그려 냈는데,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비록 달라졌어도 눈빛만큼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는 사라져도 눈빛만큼은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한눈에 경희의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눈빛 하나로 그녀를 구분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을 통해서였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버스에서 내려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날이 지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가 있었으나 사라졌던 자리와 음성을 지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있었다. 몇 번쯤 핸드폰을 들고 경희의 연락처를 훑다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에게 집중되는 생각의 관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경희를 만나기 이전으로 그저,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그녀와 연결된 세계에 살고 머물게 될 것이었다. 그녀와 단절된 삶으로서의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에서의 만남과 기억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경희가 사라진 이유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경희가 정리가 된 적은 없었다. 삶의 어디선가 경희는 꼭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145번 버스에서처럼. 전우영씨죠. 굵고 낮은 목소리 톤을 가진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경희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회사 연수원에서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다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교육장을 나와 라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때였다. 그렇습니다만. 차경희씨의 오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경희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를 생각지 않고 지내던 시간들은 금세 증발되고, 애써 한쪽에 치워 놓고 쌓아 두려 했던 경희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함몰되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음성에서 느껴진 알 수 없이 무겁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자가 전한 것은 경희의 죽음이었다. 그저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우영씨가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요. 마지막에 경희는 우영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대신이나마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내 무의식의 심연보다 깊어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는 목소리. 반드시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의지와 무게로 나의 목을 끌어안는 목소리였다. 그건 그래서 남자의 목소리라기보다 내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남자를 통해서라도 경희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목소리. 그런데 혹시, 전화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경희의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저는 김재철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굵은 톤으로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기운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이어 꺼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경희와 같은 배우였습니다. 뮤지컬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해 경희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계속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경희에 대한 모든 사소한 기억까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경희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어떤 죄책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기억들을 끊어 내려 했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자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오 개월 전에 이미 떠난 그녀가 어떻게 불과 이 개월 전에 버스 안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서류 더미 위로 떠올려지는 그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경희, 차경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그 일에 대해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본 것이 경희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었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에게 갖게 된 어떤 죄책감이 버스 안에서의 기억과 강하게 밀착되어 내게서 한시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음이 괴로워서였다. 남자는 예상대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경희가 했던 한 뮤지컬 공연에서 수도 없이 그녀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던 상대 남자 배우. 남자는 그때처럼 팔 근육이 여전히 우람했다. 콧수염뿐이었던 수염이 턱 밑까지 깊고 거칠게 길러져 있었다. 더 달라진 게 있다면 한데 묵어 허리까지 내렸던 긴 머리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들어 올리기 쉽도록 해야 한다며 경희 스스로 다이어트와 금식을 하면서 몸무게를 조절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었던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경희가 버스 안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버스에 없었던 게 아니구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어긋난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과거의 시간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의 지형이 어긋나거나 뒤틀려서 현재의 시간 어딘가에 다시 배치가 된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우영씨가 본 건 경희가 맞아요. 그럼, 시간의 잘못된 인과다? 그렇다기보다 찢어 붙이기 같은 거죠. 저쪽 시간에서 잘못 끼워진 시간이 현재의 어떤 시간에 다시 조합된 거예요. 껴 맞춰진 거죠. 그런들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시간이 하는 일이니까. 깨진 거울의 한쪽 면에 새 거울 조각을 맞추듯이. 가급적 오류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가면서, 되도록 완벽한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영씨가 본 건 그와 같은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의 왜곡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데도 나타날 수 있는? 내가 반문하자 남자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들어 나를 쏘는 흉내를 냈다. 쿨.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그림자처럼 그녀 곁에 붙어있는 남자가 같이 떠올려졌다. 그 남자에 대해 아직도야? 그렇게 물으면 경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렇게 다시 경희에게 물으며 본론으로 돌아가면, 네가 싫어하잖아. 경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깊고 비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대화는 경희와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됐다. 나 역시 경희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매번 집요하게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뭐? 취기가 볼에 붉게 오른 경희의 오른쪽 눈가가 엷게 떨렸다. 이런 얘기를 더 이상 주고받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 만나러 가지 말라고, 독일에. 독일로 떠나기 전 만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날 건데, 너. 그래도 그 정도는 늘 경희에게 하는 얘기였으니 어쩌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어도 괜찮을 법했다. 경희는 내가 연이어 던진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까지 망치려는 거야. 그때, 경희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스럽게 말한 게, 오랜 실직 상태로 지쳐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정말 경희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만 챙기려 드는 것 같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편이 돼주기보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경희는 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노력했던 나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경희에 대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패배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그 감정을 살펴보니 더 깊은 안쪽에는 경희에 대한 부채의 감정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나를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 경희의 얼굴처럼. * 경희는 그즈음 자주 뮤지컬계를 떠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사랑하는 뮤지컬을 떠날 수 있겠냐고 농담조로 말하면 경희는 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제야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는 듯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건 주연급뿐이잖아. 그래서 경희가 그렇게 덜컥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정말 그녀에게 뮤지컬에 대한 권태로움이 심각하게 찾아왔구나 싶었다. 경희는 수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코러스와 춤을 뒷받침하는 앙상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주연의 뒷모습을 같은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했던 그녀였다. 주연에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경희가 말했을 때, 경희에게는 뮤지컬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연을 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경희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조 섞인 말투로 뮤지컬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을 말하던 끝에, 경희는 그 남자, 김재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막을 내린 뮤지컬에서 경희의 파트너 역할을 했던 남자 배우라고 했다. 경희의 뮤지컬을 빠지지 않고 보던 나에게도 익숙한 남자 배우였다. 한데 묶은 긴 머리와 양 팔의 근육을 드러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경희와 호흡을 맞추던 강한 인상의 그를 나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경희를 몇 번씩이나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경희의 두 손만을 잡고 몸을 쭉 뻗은 경희를 회전시키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 끝나고 시작한 지방 투어 때, 회식이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고 했다.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돌리기에는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고 경희는 고백했다. 경희는 남자의 아내가, 그 공연을 주최한 뮤지컬 회사의 안무가라는 사실은 남자와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 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경희는 매일 남자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묘해. 경희는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미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듯이 경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를 부서질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 사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런 셋을 단원들이 바라보고 있고 말이야. 너와 남자의 관계를 단원들이 알아?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경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이 극의 주인공이야. * 경희가 뮤지컬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뮤지컬에 대한 권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희를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다. 사실 나는 경희가 뮤지컬을 떠난 이유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것을 경희는 아마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버스에서 사라진 걸까. 나는 오래 경희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편에 서있던 순간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경희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들은 그래서 수거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 이상 경희에게 닿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145번을 탈 때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스 안쪽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사람들 사이 틈으로만 봐서는 경희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희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편을 들어 주는 경희의 목소리가 가끔 환영처럼 들렸다.
  • 뒤집어진 시장 달래는 트럼프 “美기업 주식 살 찬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패닉에 빠진 글로벌 금융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폐쇄) 등 자신이 던진 ‘폭탄’들로 뉴욕 증시는 물론 세계 증시도 동반 폭락하자 ‘혼비백산’한 그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에 대한 신뢰가 여전함을 표시했다. 그는 므누신 장관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는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이고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므누신 장관은 지난 23일 6대 은행 최고경영자들과 통화한 데 이어 ‘금융시장에 대한 대통령 워킹그룹’을 소집해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 했으나 오히려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으며 해임설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므누신 장관의 해임설을 불식시키고 미 경제정책과 미 경제에 대한 신뢰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기업들에 대한 ‘세일즈’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들이 있다. 나는 우리 기업들에 대해 엄청난 신뢰를 갖고 있다”면서 “(미국 기업들의 주식을) 사야 할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이 주식 매입 호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증시 폭락 악재인 연방정부 셧다운 장기화 등에 대해서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그는 “연방정부가 언제 문을 열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장벽을 갖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고 밝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이 의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셧다운이 계속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더군다나 최근 금리 인상을 단행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에 대해 “미쳤다”고 맹비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역시 기준금리를 너무 빨리 올리고 있다며 재차 불만을 표시했다. 연일 시장 개입성 발언을 이어 가며 ‘증시 악몽의 크리스마스’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또다시 뒤흔든 것이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증시를 겨냥해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내일까지 주식 사야 의결권 행사하고 배당받아

    26일까지 주식을 사야 12월 결산법인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주식을 계좌에 넣지 않은 주주라면 연말까지 명의개서(본인 이름을 주주 명부에 올림)를 해야 한다. 2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이 주어지고 연말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주식 매입 시한은 26일이다. 기준일에 주식 명부에 이름이 있는 주주가 의결권이나 배당을 받을 수 있는데 주식 결제는 매매하고 이틀 뒤 진행되기 때문이다. 올해 주식시장이 마지막으로 열리는 오는 28일이 기준일이다. 종이 주식을 가진 주주가 의결권과 배당을 받으려면 오는 31일까지 명의개서 대행 회사에 주식 실물과 신분증을 갖고 방문해 본인 이름을 주주 명부에 올려야 한다. 증권정보 포털 사이트에서 예결원,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가운데 보유한 주식의 명의개서를 맡은 곳을 확인할 수 있다. 실물 주식을 증권사에 입고해도 되지만 증권사마다 마감일이 다를 수 있다. 증권사 계좌에 주식이 있는 주주도 올해 이사를 했다면 증권사에 바뀐 주소를 알려야 주총이나 배당 관련 통지서를 정확하게 받을 수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네덜란드 조립식 승용완구 브랜드 인펜토(infento), 유럽 명품 백화점 입점

    네덜란드 조립식 승용완구 브랜드 인펜토(infento), 유럽 명품 백화점 입점

    세계 최초의 조립식 승용완구를 선보인 네덜란드 브랜드 인펜토(infento)가 온라인 판매에서 벗어나 유럽 백화점 입점에 나선다. 그동안 인펜토는 온라인을 통한 판매와 더불어 프랑스 파리 등지에 소규모 Shop 형태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해 왔지만, 유럽을 넘어 미주 대륙까지 인펜토 열풍이 불면서 오프라인 매장 확대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아짐에 따라 유럽을 대표하는 백화점 두 곳에 입점을 결정했다. 현재 오픈을 확정한 백화점은 네덜란드 내 백화점 중 가장 많은 명품관을 보유하고 있는 바이엔코르프(De Bijenkorf) 와 영국 런던의 Harrods 백화점과 더불어 유럽대륙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 베를린 소재의 카우프하우스 데스 베르텐스(Kaufhaus des Westens – 이하 카데베(KeDeWe)) 백화점이다. 그동안 완구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던 형태의 승용완구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모듈형 부품으로 높은 완성도와 활용도를 자랑하는 인펜토를 앞으로는 유럽 최고의 백화점들에서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펜토는 두 곳의 Luxury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백화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글로벌 완구 기업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올 2월 한국에도 공식 런칭하며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한 인펜토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등 국내 유명 백화점 내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한국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이에 국내 인펜토 독점 유통 판매 파트너쉽을 맺은 ㈜아이이노베이션은 앞으로 팝업스토어 외에 다양한 접점에서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들을 십분 활용하여 유럽 미주를 넘어 한국을 기점으로 아시아 시장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인펜토는 새로운 개념의 모듈형 부품으로 아이의 무한한 창의력을 개발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조립하고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제품이다. 인펜토 키트와 육각렌치만으로 아이들과 함께 조립하고 완성 후에는 실제로 탈수 있어 매번 다른 형태의 자전거를 사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제품 디자인 또한 우수하여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Reddot Awards 등에서 수상을 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께하는 중랑 ‘배움의 행복’

    서울 중랑구는 지난 11일 올 한 해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되돌아보는 성과공유회를 열었다고 12일 밝혔다. 이날 행사는 수화로 마음 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의 수화노래 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평생학습 운영 성과보고와 전문가 특강이 이어졌다. 아울러 수강생들의 작품 전시회, 레크리에이션 등도 진행됐다. 중랑구는 그동안 지역단위 학습 공동체를 만들고 평생학습 지역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평생학습관인 중랑엔누리봄대학에서는 경력단절여성, 중장년층, 은퇴자 등을 대상으로 패션봉제, 돌봄 봉사, 창의 목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무료 프로그램인 데다 지역사회 참여 활성화와 재취업을 돕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울러 행복학습센터에서 강의를 마친 주민들이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기도 했다. 행복학습센터의 동아리 중랑 북 큐레이터, 엄마표 독서논술, 역사야 놀자 등 7개 동아리의 86명은 ‘이웃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다양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배움의 즐거움이 나눔의 즐거움으로, 나눔의 즐거움이 지역사회 활성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궁민남편’ 조태관, 미모의 아내 노혜리 등장 “친구 여동생→부부”

    ‘궁민남편’ 조태관, 미모의 아내 노혜리 등장 “친구 여동생→부부”

    배우 조태관과 미모의 아내 노혜리가 ‘궁민남편’에 등장해 화제다. 9일 방송된 MBC ‘궁민남편’에는 조태관의 소울푸드를 함께 먹으러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조태관은 궁민남편들을 자신의 집 근처로 데리고 가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조태관은 집 근처 음식점을 선정한 이유로 ‘연애 때 오던 곳’이라고 밝혔다. 조태관은 “지금의 아내와 남자친구, 여자친구이던 2-3년 전 매일 오던 곳이다. 이 음식점은 아내 노혜리 집 근처였고, 아내가 통금이 있어 데려다주면서 마지막 코스로 이 집에 들렸다”라고 설명했다. 또 “여기서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조태관과 노혜리는 이 음식점에 자주 온 덕에 주인 이모께 결혼 축의금까지 받았다고. 조태관은 “여기서 항상 고추를 넣은 번데기탕을 즐겨먹었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아내는 친구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며, “영국에 갔다가 친구와 아내를 만났다. 사귀는 사이임을 친구에게 밝히고 두달 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주변 사람들이 동생을 만나는건 싫었는데 저라면 괜찮을거 같다고 하더라”라고 자랑했다. 이후 노혜리가 해당 음식점을 깜짝 방문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닮은 외모로 친남매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노혜리는 “남편이 모지리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하며 내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태관은 노혜리와의 첫만남에 대해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예쁘고 좋았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했다. 이어 “쇼핑을 하면 ‘이건 꼭 사야해’라는 느낌이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이었다. 또 이런 사람이 안 올 것 같았다”라고 진지하게 말해 부러움을 자아냈다. 이후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란에 ‘조태관’, ‘노혜리’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 사랑스러우면서도 유쾌한 조태관 부부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시청자들마저 단숨에 매료되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날 방송된 ‘궁민남편’ 8회는 자체 최고 시청률 5.8%(닐슨 수도권 가구 기준)를 기록한데 이어 순간 최고 시청률이 7.5%까지 치솟으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열린세상] 문체부 장관이 안 보인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문체부 장관이 안 보인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기대가 컸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빼고는 제대로 정책과 행정을 이끌어 간 문화예술인 출신 장관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시인으로서 행정 경험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도종환 장관에게는 소중한 국회 의정 활동 경험이 있다.구색 맞추기로 ‘이름표’만 달고 다니는 비례대표들과는 달리 장관이 되기 전까지 5년 동안 그는 ‘문화 불모지’나 다를 바 없었던 19, 20대 국회에서 문화진흥과 예술인들의 복지, 문화 경쟁력 확대를 위한 법안 발의와 제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미르재단 의혹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이슈를 주도한 것도 그였다. 이런 활동과 경험을 감안해 문재인 정부도 그에게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리를 맡겼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문화적 통찰력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의정 경험이 있어 문체부 장관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창의적이면서 역동적인 문화예술관광 분야의 새 틀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청와대의 설명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런 만큼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엉망이 된 문화생태계를 하루빨리 정상적으로 복원시켜 줄 것이란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동안 그의 모습은 이런 판단과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의원 시절의 날 선 각과 장관 취임 때의 각오와 공언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늑장 부리기, 결단력과 소신 부족, 눈치 보기와 정치적 안주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장관 스스로 “차별과 배제, 불공정한 지원으로 예술인들에게 불이익을 줬으며, 문화생태계를 왜곡하고 다양성을 잃게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분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부터 그렇다. 장관이 의욕적으로 위원장까지 직접 맡았으면 역량을 집중해 빠르고 과감하게, 공정하고 엄격하게 끝내야 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야말로 이 정부가 정의와 정상회복을 위한 시급하고 상징적인 과제이자 새로운 문화정책을 위한 출발이라고 강조했으니까. 그러나 조사는 너무나 느렸고, 1년이나 질질 끌면서 내놓은 ‘문체부 공무원 징계 제로(0)’란 결론도 허탈했다. 더구나 그 이유가 연루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형평성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라니 어이가 없다. 그래 놓고 장관이 문체부 공무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관료주의에 투항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문화예술계에서 터져 나오고, 정치권도 마뜩잖게 여기자 두 달 만에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건 또 뭔가. 소신이 아니다. 전형적인 눈치 보기다. 이미 신뢰와 공정성을 잃어버린 억지 춘향식 재검토로 몇 명을 징계한들 그것을 블랙리스트 청산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또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때의 누구처럼 마구잡이 칼춤을 추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장관 자신이 호언한 개혁의 칼만은 정확하게, 거침없이 휘둘러야 하지 않을까. 늑장 부리기와 결단력 부족은 체육계 적폐청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해 급기야 최근의 컬링까지 끝없이 터져 나오는 체육계에 만연한 고질적 비리와 전횡을 바로잡는 것에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정말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았다면,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했다면 누구보다 앞서 현장으로 달려가 목소리를 듣고, 과감하고 단호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정말 편안히 장관 자리를 지키다 1년 뒤인 선거철에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노태강을 2차관으로 발탁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은가. 문체부 장관이 이런저런 행사에서 축하와 격려를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바쁘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중점을 두는 남북 평화를 위해 문화체육 교류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정치나 경제에 밀려 문화는 늘 뒷자리다. 그럴수록 문체부 장관은 문화를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장관도 잘 알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눈치를 보면 문화는 힘과 가치를 잃는다는 것을. 삶이 힘들수록 문화가 더 간절하며, 즐거움과 위안을 준다. 정부가 외치고 있는 것도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 여상규 법사위원장, ‘마이웨이’ 호통 진행 논란

    여상규 법사위원장, ‘마이웨이’ 호통 진행 논란

    “법관대표회의 해산하라” 8분여 발언표창원 의원 “개인적 발언” 지적하자“내가 왜 개인이야” 삿대질하며 ‘버럭’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의 독단적인 회의 진행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8일 법사위 회의를 주재한 여 의원은 최근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의 탄핵을 촉구한 법관대표회의를 해산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여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여 의원은 8분여 동안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면서도 반박을 위해 발언 기회를 요청한 여당 의원들은 묵살했다. 급기야 여 의원은 “내가 틀린 말 했느냐”며 여당 의원들을 향해 삿대질하고 호통을 쳤다. 판사 출신인 여 의원은 이날 회의에 출석한 안철상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질의하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대한 불만을 전달했다. 여 의원은 “모든 법상 기구를 초월한 법관대표회의가 마치 사법부 대표 회의체인 것처럼 언론에 오르내린다”며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촉구한 결의를 했는데 그런건 정치권에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여 의원은 대표회의의 최근 결의 내용도 문제 삼았다. 그는 “105명이 모여서 53명이 찬성하고 52명이 반대했다”며 “이게 뭡니까. 0점 몇 퍼센트 차이로 결의하고, 재판을 그렇게 합니까?”라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여 의원은 안 차장에게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법적 근거가 없는 대표회의를 해산하라고 하시라”며 “김 대법원장이 자꾸 대표회의에 기대고, 데려다 밥 먹이는 게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 의원의 발언이 계속되자 여당 의원들은 “그만 하십시오”라며 제지에 나섰다. 하지만 여 의원은 “(사법행정권 남용에 연루된 판사의 탄핵을 촉구한) 결의를 한 사람들은 절대 옳지 않다”며 “김 대법원장이 가까이 두어선 안 된다”며 말을 이었다. 여당 의원들이 발언 기회를 요구했지만 여 의원은 “의사 진행 발언은 받지 않겠다. 그만하십시다”라며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시간 제한 없이 위원장 혼자서 얘기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여 의원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내가 틀린 소리 했습니까?”라고 말했다.이에 표창원 의원이 “위원장 개인 발언이었다”고 지적하자 여 의원은 삿대질을 하며 “내가 왜 개인이야. 위원장으로서 한 거야. 사법부를 아끼는 마음에서”라며 반말로 화를 냈다. 그러면서 여 의원은 “내가 언제 회의를 불공정하게 이끌었나. 여야 막론하고 공정하게 이끌었지”라며 “저는 위원장 이전에 위원이다. 사법부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사법부가 잘못 돌아가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여상규 의원은 과거에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 하는 언행으로 도마에 올랐다. 지난 9월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사법 농단과 관련한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 비율이 너무 높다고 말하자 여 의원은 (조 의원의 말이) 옳지 않다고 지적하며 사법부를 두둔했다. 다른 의원들의 추가 발언도 제한했다. 이에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위원장이 사회만 보면 됐지, 판사야 당신이?”라고 언성을 높이자 여 의원은 “뭐하는 거야 지금, 당신이라니?”라며 벌컥 화를 내고 회의를 3분간 정회시켰다. 여 의원은 올해 초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오만한 태도를 보여 온라인 상에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1980년대 간첩조작 사건의 1심 판사로 무고한 시민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여 의원은 책임을 느끼지 못하느냐는 ‘그것이 알고싶다’ PD의 질문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 정말”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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