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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과 닮은… 성냥불 같던 올드 상하이

    지금과 닮은… 성냥불 같던 올드 상하이

    그림은 한 점인데 뻗어나갈 수 있는 서사는 무한대다. 배경은 1930년대 ‘동양의 파리’라 불렸던 중국 ‘올드 상하이’.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자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변혁의 중심, 온갖 무역으로 축적한 황금의 도시였다. 유럽식 건축물, 고급 사교 클럽, 백화점, 영화관들로 흥성거렸던 격정의 순간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조덕현(61)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가 그 극적인 순간들을 소환한다. 다음달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에픽 상하이’전에서다. ●시공간 넘나드는 1930년대 ‘황금의 도시 ’ 갤러리를 들어서자마자 폭 5.8m, 높이 3.9m의 초대형 화폭에 옮겨진 올드 상하이의 풍경과 인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제목은 ‘1935’. 그림은 어느 한곳에 시선을 오래 두게 놔두질 않는다.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여 빚어내는 관계는 상상하는 만큼의 다채로운 서사를 펼쳐내고, 시간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비틀려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대 최고의 상하이 여배우 롼링위(阮玲玉)가 말 등에 올라타 한껏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촬영에 한창인 장면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의 주인공 역시 롼링위다. 건물 2층에서는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상하이로 건너가 중국 영화 황제가 된 김염(金焰)이 아내 진이(秦怡)와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들과 한 풍경에 녹아든 인물은 상하이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조선인 남성 조덕현과 상하이 여성 소설가 홍이다. 191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만주로 흘러들어 갔다가 상하이에서 일하게 된 조덕현 작가는 20세기의 풍랑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1995년 고독사한 것으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이다. 조덕현 작가는 2015년 일민미술관 전시 ‘꿈’에서 그의 말년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프리퀄’ 격으로 그의 20대 상하이 시절을 불러냈다. 이번 전시의 서사는 조 작가가 상하이 출신 소설가 미엔미엔(홍의 분신)과 합작해 만들어낸 것. 조 작가는 이번 전시의 서사를 이끄는 ‘조덕현’에 대해 “나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지만 지속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투영해 주는 인물”이라고 했다.●관객들이 스스로 맞춰가는 서사의 퍼즐 왜 그는 한 점의 그림에 이렇게 다양한 시대와 공간, 관계를 중첩해 보여주는 걸까. “제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만 제공하는 게 아니고 관람객들에게 여러 관계와 단서를 주고 퍼즐 맞추듯이 짜맞추기를 해 보라는 겁니다. 그림이 펼치는 서사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죠. 문학과 영화는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장르지만 그림은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그간 다양한 시공간의 자료를 한데 모으고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는데 이는 이전 역사화에서 진화된 형태라고 생각해요.”●화려했지만 격렬한 위협의 시대 매료 한 편의 거대한 역사화 같은 ‘1935’에는 인물들의 드라마뿐 아니라 전쟁과 계층 간 암운 등도 드리워져 있다. 왜 지금 ‘올드 상하이’일까. “1930년대 올드 상하이는 성냥불을 켜면 확 켜졌다 꺼지듯 화려하게 빛나다 사그라든 시대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시공간이지만 삶의 질과 속도가 같은 시대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시대 같은 공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극적이고 격렬했던 곳이자 시대였죠. 그 극적인 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서사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지진, 핵위협 등 사회의 모든 요소가 너무도 격해지고 위협적인 현재의 시대와 닮은꼴 아닌가요.” 극사실주의적인 필치가 특히 돋보이는 다른 대형 회화 ‘꿈꿈’은 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여기서도 시간과 공간은 경계 없이 뒤엉켜 있다. 수몰되는 ‘올드 상하이’를 배경에 둔 채 지구촌 곳곳의 참상들이 펼쳐져 있다. 1·2차 세계대전 난민, 베트남 보트피플, 팔레스타인 난민, 이탈리아 지진 피해자, 시리아 난민, 미얀마 로힝야족, 중일전쟁 당시 상하이 주민 등 각종 테러와의 전쟁, 재해의 희생자들이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 바로크 회화처럼 곳곳에 배치돼 ‘묵시록’의 풍경을 빚어낸다. ●‘꿈꿈’ 지구촌 곳곳 참상, 화폭에 펼쳐 이번 전시에는 ‘1935’, ‘꿈꿈’ 등 대작 회화 2점을 포함한 회화, 사진, 영상 설치작업 등 신작 18점이 공간에 맞게 부려져 있다. 전시의 동선 마지막인 갤러리 지하 1층에 자리한 영상 설치작업 ‘에픽 상하이’는 1930년대 상하이의 유명 영화 장면과 독거노인 조덕현의 골방 모습을 5면의 거울에 투영해 일파만파로 확장되는 영상의 파편들 사이에서 낯선 시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기묘한 경험을 안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호영의 그림산책1]별이 빛나는 밤…고흐에 다가가기

    [이호영의 그림산책1]별이 빛나는 밤…고흐에 다가가기

    별이 빛나는 밤. 푸른 하늘. 수직으로 솟은 사이프러스. 바람은 별들 사이로 지나간다. 달마저 꿈틀거리는 밤. 사물은 고요한 움직임 속에 있다. 은하수. 흐르는 하늘. 무한의 하늘아래, 별빛을 받아 풍경을 이루는 사람의 집들이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이다. 아픔과 고통. 고흐가 이 작품을 할 때 겪었을 마음일 것이다. 작업실을 같이 했던 동료 친구와의 헤어짐은 그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시린 마음이 그가 머문 병실의 창을 밝혔을 것이다. 그 마음이 밤하늘에 투사되고, 별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마음이 밤하늘의 별이 되었고 은하수로 흘렀다. 쉴 사이 없이 쏟아지는 마음의 편린들은 그가 그리는 붓의 터치와 터치에 실려 흘러가고 있다. 이 푸른 외로움. 그는 그 외로움을 별들에게, 하늘에게, 마을에게, 나무에게 보낸다. 무수한 외로움과 삶의 열망은 폭발하는 숨결로, 붓 터치로 세상에 손을 내민다. 고흐는 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짧게 활동했다. 1853년생인 고흐가 1880년 다른 직업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그림을 시작하였으니 그의 나이 27세. 1890년 7월 27일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우아즈 보리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을 쏜 나이가 37세이다. 짧은 인생을 살다 별들의 나라로 가버린 화가. 고흐의 삶은 광기에 넘쳐 있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고흐가 그림을 시작했을 당시, 화단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의 화가들이 주류였다. 대가의 화실에서 견습생으로 출발하여 살롱전 입상을 통해 화가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였다. 이러한 화단의 풍토는 전통과 기존의 방식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구조였다. 이런 풍토에서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로 분류할만한 젊은 화가들의 등장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방식에 대한 탐구이자 수용에서 시작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사진술의 발명, 산업사회의 변화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화가들, 새로움에 열정적인 청년화가들이었다. 고흐의 열정에 가려 그의 열린 태도, 수용적 태도는 가려져 있는 편이다. 고흐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그러한 생각을 주저함이 없이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네덜란드에서 시작한 ‘감자먹는 사람들’같은 그림은 우울한 어두운 색감의 그림이었으나 동생 테오의 권유로 파리 생활을 하면서, 인상파 친구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생각과 방식들을 수용하면서 그의 그림은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파리 시절 그의 습작(아래 그림들)은 쇠라의 방식, 일본화의 모작, 새로운 방식과 방법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죽기까지 작품에서 이러한 수용적이고 열린 방식은 지속적으로 유지됨을 볼 수 있다.별이 빛나는 밤. 이 작품을 그릴 때 그는 사람과 시대와의 불화로 인한 상처투성이의 마음이 가득했을 때이다. 정신병원에 여러 번 입원했던 삶. 푸른 타오름. 일상의 생을 어렵게 만들었던 광기는 화면의 열기로 타오르게 됨으로서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광기는 그의 삶이 욕망과 현실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혼돈의 상태. ‘고흐의 삶은 혼돈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그림은 결코 혼돈스럽지 않았다. 그는 그림에서 하늘과 별과 바람과 나무들을 구분하고 있으며 사물의 경계, 질서를 유지한다. 유지된 질서 안에서 타오르는 것은 그의 감성과 그의 꿈들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이 그림의 진본을 마주하였을 때 이미 이 그림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30호 정도 되는 이 그림의 힘은 앞 전시실 모네의 대작에도 전혀 그 힘을 잃지 않았다. 고흐를 알게 된 것은 대중매체와 교육 등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작품 진본을 마주한 것은 그의 작품을 알고 한참 지난 시간이다. 작품의 진본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은 인쇄물이 가져다주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작가의 숨결, 물질을 만졌던 손길들이 보이는 것, 그것이 진본이 갖는 힘이다. 대체할 수 없는 힘이다. 그렇지만 진본을 못 봤다고 작품을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 진본이 아닌 복제된 예술작품을 보는 것이 일상화된 지금이다. 진본과 복제의 경계를 수용하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다. 그의 작품이 작은 꿈을 열게 하고, 어떤 의미가 되었음이 분명하였다면, 그 작품은 복제, 진품의 여부를 가릴 필요가 없다. 내가 처음 만난 고흐의 작품은 복제된 인쇄물이다. 일상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고자 할 때 우선되는 것은 열린 눈이다. 혹은 순수한 마음이다. 저녁놀을 보러가서 저녁놀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고 그 풍경을 마주하는 사람이 없듯이 작품은 작품으로 볼 마음이 중요하다. 눈으로 먼저 만나고, 그 만남이 흥미로우면 점차로 알아가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길을 여는 방식이다. 붉은 저녁놀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오듯 작품은 작품의 언어로 순수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해는 그 후로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고흐 작품이 그러하듯이. 이 호 영 (미술학 박사, 아티스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원한 화두’, ‘화엄’, ‘꽃들의 시간’ 등의 명제로 3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하였다.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우수상’,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조형학회, 한국영상미디어협회, 한국미술협회, 아트인 강원, 예술과 지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탄생 120주년…‘해바라기’ 초판본 공개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탄생 120주년…‘해바라기’ 초판본 공개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삼대’의 작가 횡보 염상섭(1897~1963) 탄생 120주년을 맞아 1924년 ‘해바라기’의 초판본이 공개됐다.국립중앙도서관은 28일부토 염상섭 선생의 문학세계를 살피는 기획전을 열고 횡보의 작품을 재해석하려는 학계의 시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종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는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횡보는 자연주의,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졌으나 궁극적으로 추구한 이념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하며 “제국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같은 근대의 주류적 권력과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을 형성하면서 평생에 걸친 글쓰기를 통해 기존의 지배질서와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비판적 시선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열리는 기획전에는 1924년 7월 박문서관에서 펴낸 ‘해바라기’, 1926년 간행된 소설집 ‘금반지’와 함께 오성식 전 보성고 교사고 소장하고 있는 아동문학책 ‘채석장의 소년’ 같은 횡보와 관련한 희귀 서적이 공개된다. 해바라기는 근대 여류 화가인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을 소재로 한 소설로 초판본이 일반에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횡보의 막내 딸인 염희영 여사가 보관하고 있던 육필 원고와 계약서, 원고지함, 지갑, 군번표 등 횡보의 유품들도 볼 수 있다. 전시는 7부로 구성돼 1919년 3.1운동부터 1960년 4.19 혁명까지 40년 간 현대사가 그대로 담긴 횡보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펼쳤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주인공이 아내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묘사한 ‘만세전’을 시작으로 대표작인 ‘삼대’, 30대 과부의 외로운 생활을 다룬 ‘일대의 유업’, 한국전쟁 당시의 보편적 인간애에 집중한 ‘취우’까지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 또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일간지 기자로 근무했던 횡보의 폭넓은 삶의 궤적까지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이어지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세계적 예술가 아르망…유족 간 ‘10년 전쟁’ 마침표

    세계적 예술가 아르망…유족 간 ‘10년 전쟁’ 마침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만든 현대예술가이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명예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문화영웅인 아르망(Arman)의 유족들 사이에 10여 년간 끌어온 법적 다툼이 해결되었다. 이브 클라인(Yves Klein)과 함께 ‘신사실주의운동’을 창시한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인 아르망은 76세로 2005년 미국에서 숨졌다. 그는 사망 당시 뉴욕에서 거주하는 둘째 부인이 관리하는 신탁사에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첫째 부인의 자손들은 그의 유언에 항의했다. 아르망(A.R.M.A.N.)이라는 재단을 설립하고 즉각 소송에 돌입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적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현지 법률사무소는 “2005년 이후 기나긴 법적 다툼을 벌인 끝에 ‘둘째 부인과 딸이 국제조각페스타운영위원회에 임명되어 아르망의 작품을 목록하고 입증하며 작품을 위한 박물관을 개발한다’는 내용에 양측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마침표를 찍기까지 1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재산권 분쟁의 대상인 작품들은 그에게 ‘현대 사회의 고고학자’라는 별칭을 붙여줄 정도로 사회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59개의 차를 하나씩 쌓아 올린 20m 높이의 탑인 ‘장기 주차장’(Long Term Parking) 같은 굉장한 규모의 작품을 비롯해 레바논 내전의 종식을 기념해 83개의 탱크와 군용차로 만든 ‘평화를 위한 희망’(Hope for Peace)은 그의 대표작들 중 하나다. 아르망은 바닥에 쓰레기를 뿌려놓은 설치작품인 ‘푸벨’(Poubelle·쓰레기통)과 같거나 비슷한 물건을 배열하는 ‘어큐뮬레이션’(Accumulations·집적) 작품으로 1960년대에 명성을 얻었다. 또한 일상용품이나 폐품을 절단하거나 모으고 때로는 태우는 아상블라주(assemblage) 기법으로 현대의 소비문명을 비판적으로 표현한다는 평을 듣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2011년 4월 예술의전당에서 아르망의 절단한 첼로 조각들을 캔버스에 붙이고 풍부한 색감의 아크릴로 그린 회화 작품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형상을 표현한 실크스크린 기법의 판화 등 작가의 심도있는 작품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장관섭 프리랜서기자 jiu670@naver.com
  • [새 영화] 파울라

    [새 영화] 파울라

    불과 100여년 전 독일이다. 여성은 애를 낳는 것을 빼고는 창조적인 일을 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그림은 정확하고 정밀하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껴지는 대로, 자신의 감성과 직관대로 그림을 그리며 시대적 편견과 한계를 깨뜨린 독일의 여성 화가의 짧지만 폭풍 같은 삶이 스크린에 채색됐다.9일 개봉하는 ‘파울라’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 파울라 모더존베커(1876~1907)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취직하거나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물리치고 독일 브레멘 지역의 예술가 공동체 보르프스베데를 찾아가는 파울라를 보여 주며 시작한다. 사실주의적인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설립한 그곳에서 파울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족족 어겨 가며 눈 밖에 난다. 빈민촌에서 그림 대상을 찾기도 하고, 당시로서는 금기시되는 (노인)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도 한다. 파울라는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드러낸 화가 오토 모더존과 결혼하지만 가정 또한 그녀의 예술혼을 가두지는 못하고, 파울라는 결국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창작열을 불태운다. 교과서에 나오는 여러 예술가의 낯선 삶이 등장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파울라는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솔 메이트로 교류한다. 릴케가 당대 최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비서였고, 또 릴케와 결혼한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가 생계를 위해 로댕의 작업실에서 회반죽을 주물러야 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카미유 클로델도 스치듯 등장해 스승(로뎅)이 작품을 가로챘다고 한탄한다. 파울라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폴 세잔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재미. 반면 예술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예술혼이 마냥 멋있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광기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성을 벗어난 행동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관객의 몫이다. 영화 초반에는 카메라가 캔버스 안을 비추지 않아 파울라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중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보여 주는데 색과 선을 단순화한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파울라는 누드 자화상을 그린 첫 여성 화가로 서양미술사에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관능적인 여성 누드화와는 거리가 먼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이 대표작이다. 늘 걸작 세 점과 아이 한 명을 세상에 남겨 놓고 싶다고 말하던 파울라는 실제 딸을 출산한 이듬해 세상을 뜨며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다. 느닷없이 영화가 끝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엔딩 크레디트 사이로 여운이 많이 흐른다. 스위스 출신 카를라 주리가 파울라로 열연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리플리컨트에게 이식할 기억을 만들던 아나 스텔리네 박사 역을 연기한 배우다.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산불’ 스펙터클 창극으로 타오른다

    ‘산불’ 스펙터클 창극으로 타오른다

    극작가 차범석의 ‘산불’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한국 현대 사실주의 희곡의 정수로 꼽힌다. 배경은 1951년 겨울, 한국전쟁으로 노인과 과부만 남은 지리산 자락의 한 마을이다. 어느 날 과부 점례의 집에 빨치산에서 탈출한 젊은 남자 규복이 숨어들고 점례가 규복을 뒷산 대밭에 숨겨 주면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이웃집 과부 사월이 규복을 함께 보살필 것을 점례에게 제안하면서 갈등을 빚는다는 내용이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신음하는 비참한 인간사를 보여 준 이 작품은 1962년 초연된 이래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돼 왔다.익숙한 명작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다 아는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하는 방법은 ‘낯설게’ 포장하는 것. 창극이란 옷을 입고 ‘산불’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유다. 국립창극단은 25~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신작 ‘산불’을 올린다. 기존 작품들이 원작을 충실하게 따랐다면 이번엔 요즘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연출, 무대, 음악 등에서 현대적 각색에 공을 들였다. 창극에 처음 도전하는 연출가 이성열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보다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라는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과 본능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 연출가는 “워낙 사실주의의 대표 격으로 이야기되다 보니 너무 정형화됐던 측면이 있었는데 보다 표현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의미를 뒀다”면서 “마침 창극은 소리와 노래로 하는 장르이다 보니 인물들의 보편적 비극을 극적으로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극본을 맡은 최치언 극작가는 시대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을 도입해 서사에 입체감을 더했다. 원작에서는 1951년 겨울부터 1952년 봄까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1965년 점례의 시어머니 양씨가 죽어서 점례와 종남 부부가 장례를 치르러 돌아온 고향에서부터 시작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까마귀들, 죽은 남자들, 점례의 남편 종남과 같은 원작에 없는 새로운 인물을 배치해 재미와 볼거리를 더했다. 특히 원작에서 강조한 이데올로기 대립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대형 뮤지컬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무대다. 등장인물만 해도 50여명에 달한다.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은 지름 16m의 거대한 회전무대 위에 진짜 대나무 1000그루를 심어 대나무숲을 만들었다. 무대는 보통 초가집들을 품은 작은 마을이었다가 회전하면 대나무숲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점례와 규복의 밀회 공간이자 사월과 규복의 욕망이 꿈틀대는 장소로 변모한다. 무대 왼편에 설치된 실제 크기와 비슷한 대형 폭격기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암시한다. 음악 역시 파격을 꾀했다. ‘부산행’, ‘곡성’, ‘암살’ 등 영화부터 무용, 연극, 음악극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여 온 작곡가 장영규가 맡았다. 창극에 처음 참여한 장 작곡가는 애절한 정서의 음악을 주로 사용한 기존 창극과는 달리 배우들의 목소리가 돋보이도록 악기 사용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미디 음악만을 사용했다. 장 작곡가는 “기존 판소리와 토속 민요를 분절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며 “국립창극단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보여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작곡뿐 아니라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들을 수 있는 바람소리, 활활 타오르는 불의 소리 등 효과음까지 직접 창작해 관객들을 극 속으로 깊숙이 이끌 예정이다. 관람료는 2만~7만원.(02)2280-4114.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영혼 깨우는 영화…존엄성 있게 관객과 만날 것”

    “영혼 깨우는 영화…존엄성 있게 관객과 만날 것”

    “영화는 시대의 산소탱크여야 합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야 하죠. ‘황제’는 배우와 스태프는 물론 관객까지 힐링되기를 바라며 만든 작품입니다. 그만큼 존엄성 있게 관객들과 만났으면 합니다.”데뷔 이후 줄곧 영화의 미학을 탐닉해 온 민병훈(48)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극장에 걸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명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만든 ‘황제’로 초청받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다. ‘황제’는 저마다 이유로 삶의 의미를 잃고 나락에 빠진 사람들이 김선욱의 연주를 들으며 구원을 얻는 과정을 심미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김선욱은 영화 속에서 단순히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사는 없지만 주인공 중 한 사람으로 연기를 한다. “감독으로서 극장 상영을 안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너무 원해요. 그럼에도 극장의 노예가 되기는 싫었어요. 제 작품이 극장 개봉한다면 미래가 뻔해요. 조조나 심야에 배정되고, 좌석 점유율이 떨어진다며 2주도 안 돼 간판을 내리겠죠. 극장망을 벗어나면 자존감이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관객과의 만남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단 몇 명이라도 요청이 들어오면 배우들과 영화를 들고 찾아가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상영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그런 곳이 진정한 영화관 아니겠냐며 민 감독은 웃었다. 그는 승자 독식 시대에 영화인들 사이에서 공감의식, 동료의식이 옅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2007년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다양성이 존재했고 영화의 흐름이 있었죠. 하지만 1000만 영화가 나오면서부터는 영화의 자본화가 가속화되고 스크린 독과점이 빈번해지며 흐름이 깨졌어요. 사람 몸으로 치면 지금 우리 영화는 고도비만이에요. 거듭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존엄성 있게 상영해 달라는 거예요. 아예 안 건다면 극장의 선택이니 뭐라 할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걸기로 했다면 아침부터 밤까지 틀어 관객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극 영화에 김선욱이라니, 정말 파격적인 조합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침을 음악과 함께 시작하면 숲속에서 산소탱크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로 이런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했죠. 선욱씨 연주회에 갔다가 영감이 떠올랐어요. 대부분 미쳤다고 했어요. 솔직히 저도 그랬어요. 대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런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유명 감독도 아니고요. 그런데 바로 오케이해 줬어요. 음악의 힘으로 아픈 관객들을 힐링하고 영혼을 깨우려 한다는 진심을 믿어준 것 같아요. 예술가로 예술가의 이야기로 들어주며 서로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를 좋아해 러시아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민 감독은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대상을 받은 ‘벌이 날다’(1998)를 시작으로 장편 다섯 편과 여러 단편 영화를 통해 예술에 천착해 왔다. “저는 영화가 물이라고 생각해요. 콜라는 순간적으로 ‘캬~’ 할 수 있겠지만 다시 목이 마르죠. 저는 물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지금도 타르콥스키, 페데리코 펠리니,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선 대사나 이야기보다 이미지로 전달하려는 것이 많다. ‘황제’ 또한 마찬가지다. 김선욱이 연주하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이 곳곳에 흐르지만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영화에는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저는 그런 게 시시해요. 억지로 쥐어짜내는 이야기, 감동 주려고 작정한 이야기, 그런 가짜들에 속으면 안 되죠. 화가는 한 폭의 그림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잖아요. 영화라고 안 될 건 없어요. 한 시간짜리면 5만 프레임인데 한 프레임 한 프레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어요. 영상미만 추구한다기보다 영상미도 추구하려고 하고 있죠.” 최근 다른 영역의 예술가와 함께 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극사실주의의 대가 백영수 화백의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 ‘가면과 거울’(2012)을 만든 게 출발이었다. 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 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 굴업도’(2012),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펑정지에와 호흡한 장편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2014)를 거쳐 ‘황제’까지 왔다. “예술가를 영화에서 만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겠어요. 겉모습이 아니라 이면을 찍어 예술가를 조명하면 예술가도 좋고 영화의 폭도 넓어져 관객들이 더 다양하고 건강한 영화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내외 예술가 세 명에 대한 프로젝트가 이어질 거예요. 모두 허락을 받아놨어요. 아직 프러포즈하지 않았지만 조용필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어요. 우리 시대 가왕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요. 백건우 프로젝트도요.” 글 사진 부산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 영화가 존엄성 있게 상영되는 날이 왔으면” 민병훈 감독

    “우리 영화가 존엄성 있게 상영되는 날이 왔으면” 민병훈 감독

    “영화는 시대의 산소탱크여야 합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야 하죠. ‘황제’는 배우와 스태프는 물론 관객까지 힐링되기를 바라며 만든 작품입니다. 그만큼 존엄성 있게 관객들과 만났으면 합니다.”데뷔 이후 줄곧 영화 미학을 탐닉해온 민병훈(48)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극장에 걸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명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만든 ‘황제’로 초청 받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다. ‘황제’는 저마다 이유로 삶의 의미를 잃고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이 김선욱의 연주를 들으며 구원을 얻는 과정을 심미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김선욱은 영화 속에서 단순히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사는 없지만 주인공 중 한 사람으로 연기를 한다. “감독으로서 극장 상영을 안한다는 게 말이 안돼죠. 너무 원해요. 그럼에도 극장의 노예가 되기는 싫었어요. 제 작품이 극장 개봉하면 미래가 뻔해요. 조조나 심야에 배정되고, 좌석점유율이 떨어진다며 2주도 안돼 간판을 내리겠죠. 극장망을 벗어나면 자존감이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관객과의 만남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단 몇 명이라도 요청이 들어오면 배우들과 영화를 들고 찾아가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상영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그런 곳이 진정한 영화관 아니겠냐며 민 감독은 웃었다. “관객들에게 안보여주려고 극장 상영을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자유를 얻고 정말 보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보여주려는 거죠. 지금 상황만 질투하며 입을 삐죽 내민 채 있을 수는 없잖아요. 자존감 있게 제 길을 가야죠. 그게 관객들에 대한 예의죠. 환경을 좇는 게 아니라 환경을 개척하고 싶었어요.” 그는 승자 독식 시대에 영화인들 사이에서 공감의식, 동료의식이 옅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2007년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다양성이 존재했고 영화의 흐름이 있었죠. 하지만 1000만 영화가 나오면서부터는 영화의 자본화가 가속되고 스크린 독과점이 빈번해지며 흐름이 깨졌어요. 사람 몸으로 치면 지금 우리 영화는 고도비만이에요. 거듭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존엄성 있게 상영해달라는 거에요. 아예 안건다면 극장의 선택이니 뭐라할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걸기로 했다면 아침부터 밤까지 틀어 관객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제 영화는 대작을 위한 패키지나 액세서리, 꼼수가 아닙니다.”극 영화에 김선욱이라니, 정말 파격적인 조합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침을 음악과 함께 시작하면 숲 속에서 산소탱크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독으로는 괴롭기도 했죠. 영화로 이런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요. 선욱씨 연주회에 갔다가 영감이 떠올랐어요. 대부분 미쳤다고 했어요. 솔직히 저도 그랬어요. 대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런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유명 감독도 아니고요. 그런데 바로 오케이 해줬어요. 음악의 힘으로 아픈 관객들을 힐링하고 영혼을 깨우려 한다는 진심을 믿어준 것 같아요. 예술가로 예술가의 이야기로 들어주며 서로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좋아해 러시아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민 감독은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대상을 받은 ‘벌이 날다’(1998)를 시작으로 장편 다섯 편과 여러 단편 영화를 통해 예술에 천착해 왔다. “우리가 목 마르면 물을 마시잖아요. 저는 영화가 물이라고 생각해요. 콜라는 순간적으로 ‘캬~’할 수 있겠지만 다시 목이 마르죠. 몸에 안좋은 것은 분명하고요. 물은 맛은 없는 것 같아도 그렇진 않잖아요. 저는 물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지금도 타르코프스키, 페데리코 펠리니,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작품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선 대사나 이야기 보다 이미지로 전달하려는 것이 많다. ‘황제’ 또한 마찬가지다. 김선욱이 연주하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이 곳곳에 흐르지만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영화에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데 저는 그런 게 시시해요. 억지로 쥐어 짜내는 이야기, 감동 주려고 작정한 이야기, 그런 가짜들에 속으면 안되죠. 화가는 한 폭의 그림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잖아요. 영화라고 안될 건 없어요. 한 시간짜리면 5만 프레임인데 한 프레임 한 프레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어요. 영상미만 추구한다기 보다 영상미도 추구하려고 하고 있죠.” 최근 다른 영역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극사실주의의 대가 백영수 화백의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 ‘가면과 거울’(2012)을 만든 게 출발이었다. 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 굴업도’(2012),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평정지에와 호흡한 장편 ‘평정지에는 평정지에다’(2014)를 거쳐 ‘황제’까지 왔다. “예술가를 영화에서 만나는 것은 얼마나 재미 있는 일이겠어요. 겉모습이 아니라 이면을 찍어 예술가를 조명하면 예술가도 좋고 영화의 폭도 넓어져 관객들이 더 다양하고 건강한 영화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내외 예술가 세 명에 대한 프로젝트가 이어질거에요. 모두 허락을 받아놨어요. 아직 프로포즈 하지 않았지만 조용필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어요. 우리 시대 가왕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요. 백건우 프로젝트도요.” 일상이 영화 작업이라는 민 감독이다.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죽어도 영화는 남기 때문에 소홀하게 만들면 안되죠. 한땀 한땀 촉각을 세우고 세포를 깨워서 영혼이 있는 컷을 만들어 내는 게 제 소명입니다. ‘황제’는 제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자부합니다. 물리적인 시간만 2년이 걸렸어요. 부끄럽지 않고 혁신이 있는 영화에요. 우리 삶은 고통과 역경이 함께하잖아요. 삶의 희망과 여운을 찾아주는 영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산 글·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극작가 윤조병씨 별세

    [부고] 극작가 윤조병씨 별세

    극작가 겸 연출가 윤조병 극단 하땅세 예술감독이 11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78세.1939년 충남 조치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3년 영화전문지 월간 국제영화사의 시나리오 공모에서 ‘휴전일기’로 입선하면서 등단했다. 희곡으로는 1967년 국립극장의 장막희곡 공모에서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고인은 유치진, 차범석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참새와 기관차’, ‘농토’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1978년), 대한민국연극제 대상(1981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술문화상(2010년) 등을 받았다. 한국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제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윤시중 극단 하땅세 대표 등 2남이 있다. 빈소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 203호. 발인은 14일 오전 7시. (032)583-4444.
  • 무대로 부활한 20세기 명작들

    무대로 부활한 20세기 명작들

    20세기 국내외 명작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명작들이 끊임없이 무대에 불려 나오는 이유는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메시지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 터다. 올 가을 한국 대표 연출가들의 손에 의해 재탄생한 원작의 색다른 재미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연극 ‘서푼짜리 오페라-나는 깡패입니다’(5~15일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는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동명 서사극을 196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고쳐 쓴 음악극이다. 원작은 브레히트가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존 게이 대본의 음악극 ‘거지 오페라’에서 큰 줄기를 가져와 1928년 재구성했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원작의 배경인 영국 런던의 암흑가를 1960년대 초 부산으로 바꿨다. 1960년 5월 군사혁명재판소에서 조직폭력배, 윤락녀, 부랑자 등 102명이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모티브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의 꿈과 사랑, 배신과 용서를 그린다. 연희단거리패의 배우장 이승헌이 ‘아버지를 찾아서’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에 도전한다. 연희단거리패 젊은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부산·경남 지역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극단 가마골이 제작했다. 3만원. (02)766-9831.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유리동물원’ 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8일~11월 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는 문삼화 연출가가 재조명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희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1959년 리처드 브룩스 감독,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1947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퓰리처상을 받은 윌리엄스에게 1955년 두 번째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65세를 맞이한 아버지 빅대디의 생일날 모인 아들 브릭, 브릭의 아내 마가렛 등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가족들을 중심으로 허위 안에 갇힌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3만~6만원. (02)580-1300.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마지막 걸작을 원작으로 한 연극 ‘1984’(20일~11월 19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는 빅브라더의 감시 아래 모든 것이 통제되는 디스토피아를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영국의 차세대 극작가 겸 연출가인 로버트 아이크와 던컨 맥밀런이 각색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사상경찰과 텔레스크린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끊임없이 국민을 감시하는 당에 의심을 품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를 중심으로 전체주의 체제에 반기를 든 개인의 심리와 그 최후를 냉철하게 그린다. 연출가 한태숙이 원작 속 통제 사회의 지배 시스템에 의해 일그러진 인간의 심연을 스산하게 그려낸다. 2만~5만원. 1644-2003.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차범석의 ‘산불’은 현대적인 창극으로 재탄생한다. 국립창극단은 오는 25~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산불’을 공연한다. 원작은 1951년 지리산을 배경으로 전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아낸 사실주의 희곡이다. 전쟁으로 노인과 과부만 남은 지리산 자락 촌락에 젊은 남자 규복이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다. 이성열 연출가는 “사실주의의 정수로 알려진 원작을 비사실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연출 방향을 밝힌 만큼 원작이 지닌 한국전쟁이라는 사실적인 상황을 거둬내고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과 보편성에 초점을 맞춰 원작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예정이다. 더불어 음악극 형식에 맞게 풍성한 요소를 도입해 비극성을 강조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조,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 도입 등을 통해 서사의 입체감을 더하고 죽은 남자들, 까마귀들, 점례의 남편 종남 등 원작에 없는 캐릭터도 등장시킨다. 2만~7만원. (02)2280-4114.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아리아의 선율, 달구벌 달군다

    아리아의 선율, 달구벌 달군다

     열다섯 번째를 맞는 대구 국제오페라축제가 다음달 12일부터 11월 12일까지 한 달 동안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대구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오페라 & 휴먼’이다.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오페라라는 의미로 이같이 정했다. 또 축제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변화’와 ‘도약’에 방점을 찍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주 한 편씩 다섯 편이 무대에 오르던 메인 오페라를 네 편으로 줄인 것이다. 그 자리에는 ‘오페라 콘체르탄테’가 대신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등 2편으로 구성된 오페라 콘체르탄테는 무대장치 등이 사라진 대신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콘서트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축제 15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독일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과 오스트리아 뫼르비슈 오페레타 페스티벌이 오페라 콘체르탄테를 준비했다. 개막작은 베르디의 ‘리골레토’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룬 베르디의 대표작인 리골레토는 다음달 12일부터 14일까지 세 차례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대구시향 상임지휘자인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휘를, 헨드리크 뮐러가 연출을 맡았다. 리골레토 역은 바리톤 한명원과 피에로 테라노바가, 질다 역은 소프라노 강혜정과 이윤정이, 만토바 공작 역은 테너 데니즈 레오네, 김동녘이 맡아 열연한다. 주인의 권력 뒤에 숨어 귀족들을 비꼬는 것을 즐기던 궁정 광대 리골레토가 사랑하는 딸을 유혹한 자에게 복수하려다 불행히 자신의 딸을 죽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는 다음달 26일과 28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한 장의 티켓으로 세 편의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의 ‘일 트리티코’는 푸치니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세 편의 단막 오페라를 모은 것이다. 죽음에 관해 다양하고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아내의 불륜을 참지 못한 남편이 내연남을 살해하는 비극 ‘외투’, 낳고서 한 번도 안아 보지 못한 아이가 몇 년 전 죽었음을 뒤늦게 알고 목숨을 끊는 수녀 이야기인 ‘수녀 안젤리카’, 한 부자의 죽음과 유산을 차지하기 위한 유족들의 다툼을 그린 희극 ‘잔니 스키키’ 등 3부작이다.  세 편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사례는 그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었고, 아시아 최고의 음악단체 중 하나인 대만의 국립교향악단과 합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들로 사실주의 오페라 특유의 매력을 느낄수 있는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11월 3일과 4일 무대에 오르는 베르디의 ‘아이다’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자체 제작한 작품이다. 베르디 후기 대표작인 ‘아이다’는 아름다운 선율을 자랑하는 성악과 관현악뿐만 아니라 합창과 발레의 비중을 높여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초연 당시 관객으로부터 30번 이상의 커튼콜을 이끌어 냈고, 소년 푸치니에게 오페라 작곡의 꿈을 안겨 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축제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 가며 대구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로 존재감을 증명해 왔다.  국내 및 이탈리아 무대에서 수십 편의 오페라를 연출해 온 베테랑 이회수가 연출했으며 미네소타 오페라의 부지휘자 조나단 브란다니가 지휘를 맡았다. 여기에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들의 출연이 더해져 또 하나의 신화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대구오페라하우스 측은 밝혔다. 전문 합창단 외에 10여명의 시민합창단이 오디션을 거쳐 선발돼 함께 공연에 참여한다. 축제의 폐막작은 2009년 초연한 창작 오페라를 보완해 새롭게 탄생한 ‘능소화, 하늘꽃’으로, 11월 10일과 11일 각각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능소화 하늘꽃은 2009년 ‘원이 엄마’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창작 오페라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안동 지역에서 발굴된 420년 전의 미라와 편지 한 통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쓴 편지는 죽음도 막지 못한 부부의 절절한 사랑을 그려 내 세대를 넘은 큰 감동을 안겨 주기도 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대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야심차게 개작을 했다. 국내 톱클래스 연출가로 꼽히는 정갑균이 연출했다. 중국 톈진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 백진현과 실력파 성악가들이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다.  이 외에도 ‘헨젤과 그레텔’, ‘리타’, ‘팔리아치’, ‘이화부부’ 등의 작품이 북구어울아트센터, 대구은행2본점 대강당, 롯데백화점 대구점 문화홀. 대구오페라하우스 별관 카메라타 등 소극장에서 열린다.  ‘헨젤과 그레텔’은 유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가족 오페라다. 아이, 친구와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폭력적인 아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 남자의 사투를 그린 ‘리타’는 오페라가 뮤지컬보다 더 재미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으로 기대된다.  팔리아치는 극적인 내용과 음악이 돋보이는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이다. 베테랑 제작진과 출연진의 환상적인 만남을 볼 수 있다.  이화부부는 부조화 속 조화, 동상이몽 부부들의 희극적인 일상을 담았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부부 세 쌍의 폭풍 공감 에피소드다.  축제를 마무리할 폐막 행사는 11월 12일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서거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월드투어 콘서트가 장식한다. 축제 기간 중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개인 및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는 오페라대상 시상식에 이어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는 세계 투어의 첫 번째 공연이다. 이탈리아 베로나 원형 극장 공연의 지휘를 맡은 지휘자 유진 콘 , 코소보 출신으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 세계 오페라의 신성으로 떠오른 테너 라메 라하,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의 디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한국을 대표하는 바리톤 고성현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감동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파바로티가 생전에 즐겨 불렀던 ‘카루소’, ‘라 보엠’ 중 ‘그대의 찬 손’ 등 유명 아리아들로 구성돼 있다.  부대 행사도 다양하게 열린다. 축제 메인 오페라와 작곡가를 주제로 한 무료 강의 프로그램 ‘오페라 오디세이’가 다음달 10일과 16일, 23일, 31일, 11월 6일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대구오페라하우스 별관 카메라타에서 진행된다.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 진출 오디션도 개최된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독일의 세계적인 극장 베를린 도이체오퍼, 유럽의 문화예술기획사 WCN과 손잡고 젊고 실력 있는 성악가를 선발하는 오디션이다. 서울 지역 예선은 다음달 25일, 대구 지역 예선은 27일 각각 열리고 결선은 30일로 예정돼 있다.  이와 함께 초연부터 지난해까지 무대에 오른 오페라축제 작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구오페라 타임머신전과 무대 장식을 50분의1 크기로 축소한 미니어처전, 오페라 의상을 입어 볼 수 있는 오페라존 등이 준비돼 있다.  이 밖에 오페라 공연의 감동을 엽서에 써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오페라 우체통과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성악가들의 뜨거운 열정과 스태프들의 땀방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백스테이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레콘서트, 당일 공연되는 오페라의 내용 및 감상 포인트를 미리 공부할 수 있는 프레토크 등이 계획돼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측은 “이번 축제는 국제 오페라 축제에 걸맞게 외국의 수준 높은 작품을 초청한 것은 물론 예술성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이파니, 완벽한 S라인 몸매 ‘도발적 섹시미’

    이파니, 완벽한 S라인 몸매 ‘도발적 섹시미’

    방송인 겸 가수 이파니가 이번엔 웹툰(애니툰) 작가로서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거기다 대국민 다이어트송인 ‘내장 지방 털어(내지털)’ 미니앨범을 앞두고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어느새 20만여 명이 구독할 정도로 그 인기는 예상대로 폭발적. 또한 그동안 3집 내지털 앨범이 나오기까지 피처링과 꾸준한 가수 활동을 벌여 왔다. 과감한 섹시 포인트로 히트 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 이번 만큼은 유익한 건강 송으로 누구나 대중에게 사랑 받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파니. 초보작가 데뷔 전을 치른 그녀가 음반 유통을 코앞에 두고 두 가지 활동 배경과 숨은 사연을 공개했다. 이파니는 GanGee(긴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10만여명이 구독할 정도로 인기다. 사실 작품에 영향을 줄 것 같아 (그동안)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애니툰 제목 ‘밥은 먹고사냐?’는 실제 연예인들이 밥 먹고(연예인 수입을 빗대어 표현) 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이라 작가명 ‘이바(IVA)’를 공개했다. “밥 이라는 소재는 밥을 먹으면서 나오는 인생얘기를 다룬 것으로 밥을 컨셉으로 잡았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부분이 사실주의로 표현 되는 점이 포인트다. ‘밥은 먹고 사냐?’는 포토와 웹툰 형식의 작품으로 매화 다르게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1주일 1회 연재중이고 많은 관심 가져달라” 고 전했다. 이어 3집 미니앨범 ‘내장 지방 털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2집까지 냈고, 이번이 3집인데 중간 중간 피처링과 가수활동은 꾸준히 많이 해왔다. 매번 기획사에서 진행 했던 곡들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었고, 항상 섹시 포인트 쪽으로만 방향이 잡히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유익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다이어트를 평생 해오다 보니 ‘내지털’ 의 활기차고 재밌는 다이어트 송이 탄생했다” 또한 “대한민국 모든 헬스장과 운동하는 다이어트 마니아분들의 집에서 나의 목소리가 신나게 들렸으면 좋겠다. 살찌는 가을의 계절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 만큼 ‘내지털’ 노래로 자극 받고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라이프를 누렸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한편 마카오에서 진행된 GanGee와 이파니의 이번 콜라보레이션 ‘유부녀도 여자다!’ 라는 컨셉으로 촬영 됐다. 그만큼 자유 분방한 ‘섹시’, ‘당당함’, ‘멋스러움’ 의 3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공들였다. 아이 둘을 키운 이파니만의 몸매 관리와 최강 동안을 유지 할 수 있었던 비결과 진실을 과감히 보여 주는 화보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예쁜 몸매를 과시하며, 이번 6년만에 3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마카오 촬영을 기획했다. 이파니의 ‘내장 지방 털어’ 음원은 9월중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제공: 이파니, GanGee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자학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슬픔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자학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슬픔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다시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되뇌게 한다. 영화는 자식을 앞세워 보낸 어미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다가 다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과정을 담고 있다.주인공 줄리엣(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15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으나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여동생 레아(엘자 질버스테인 분)의 집에 머물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자매는 서먹하고 어색하다. 레아네 식구들에게 줄리엣은 미스터리하다. 그녀의 비밀을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 같은 제부의 부자연스러운 행동, 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모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조카, 레아의 친구 등 주변 인물에 이르기까지 줄리엣은 관심의 대상이다. 이들은 줄리엣을 향해 호감을 동반한 일반적 관심이 아니라 불현듯 등장한 그녀에게 경계를 품은 호기심을 보인다.감옥을 벗어났지만 줄리엣은 여전히 15년이란 시간 속에 갇혀 있다. 줄리엣은 시종일관 쌀쌀맞다. 누구에게나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꾸밀 줄 모른다. 세상과 불화하는 줄리엣의 냉담한 이미지는 영화를 이끌어 가는 축이지만 보는 이들은 조금 참기 어렵다.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녀의 이런 자세는 의지할 곳 없는 아픈 상처를 지닌 그녀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달래 줄 것을 요청하는 일종의 구원 신호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관심, 그리고 도움이었던 것이다. 가족과 사회의 격리, 그리고 스스로 닫아 건 마음의 빗장은 감옥을 나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감옥 안에 가두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줄리엣은 자신이 아들을 죽인 살인죄로 15년간 복역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아들을 죽인 어미는 이유와 동기를 불문하고 괴물이 되고, 돌멩이를 맞는 마녀가 된다. 언니의 살인 동기를 알지 못하지만, 언니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려고 레아는 노력한다. 영화는 줄리엣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레아는 언니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줄리엣을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세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 관객들 스스로가 상상하며 개입할 여지를 준다. 관객들은 아들을 죽인 동기가 제일 궁금할 테지만 영화는 아들을 죽인 줄리엣을 향한 상반된 시선을 다루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단정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만 그런 경우가 많다. 줄리엣은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일일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설명하려고 들면 이해해 달라는 게 될 테니까.’ 자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시간뿐이다. 비록 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말이다.영화를 만든 필립 클로델은 사실 우리에게 소설가로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된 ‘회색 영혼’과 ‘무슈 린의 아기’를 통해 르노도상을 수상한 인기 작가로 영화는 ‘무슈 린의 아기’와 구조가 같다. 영화에서 줄리엣과 세상의 화해를 암시하는 극적 전환은 낭시미술관에서 일어난다. 레아의 동료이자 줄리엣을 가장 잘 이해하는 미셀(로랑 그레빌 분)과 함께 미술관에 간 그녀는 에밀 프리앙(Emile Friant·1863~1932)의 ‘슬픔’(La Douleur·1898)을 만난다. 남편인지 자식인지 모를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땅에 묻는 여인의 마른 눈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모두가 비통해하는 가운데 울 힘조차 없는지 그녀는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사실적이며 비극적 묘사가 뛰어난 이 그림을 아들을 떠나보낸 줄리엣의 모습과 교차하면서 그녀의 아픔과 외로움을 강조한다. 특히 검은색의 상복은 슬프고 비통한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 이 작품은 프리앙의 출세작 ‘만성절’(La Toussaintm·1888)과 맥을 같이하는 걸작이다. 프리앙은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고 감독인 클로델의 활동 무대였던 낭시에서 가난한 열쇠 수리공 아버지와 옷을 짓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부잣집에 입양되어 자랐다. 15세 때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낭시의 살롱전에 입상을 할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타고났다. 이 시절은 고전주의와 사실주의풍의 그림이 주를 이루던 시기로 부모에게서 손재주를 물려받은 그에게 사실주의적 경향의 작품은 어려울 것이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7살이 되던 해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간다. 파리에서 유명 화가 카바넬을 사사하며 아이메 모로와 교류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화풍에 질린 그는 파리 생활을 접고 낭시로 돌아와 두 도시를 오가며 작업을 계속했다. 프리앙은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의 그림에는 살냄새 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을 마치고 고단하게 벤치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 식사를 만드는 어머니와 이를 기다리는 아이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씨름에 열중인 아이들. 그는 인물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상태까지 포착해냈다. 마음까지 그리는 사실주의 화가였던 셈이다. 감독은 프리앙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단절한 줄리엣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암시한다. 깊은 한숨과 불안, 무관심과 슬픔 그리고 순간순간의 분노와 놀람을 표출하는 줄리엣의 얼굴은 프리앙의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과 다르지 않다. 불치병에 걸린 6살의 어린 아들을 두고 의사지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어미의 애통함이 ‘잃어버린 15년’의 이유였다. 그 세월은 제 손으로 자식을 보낸 어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식이 죽는 일보다 더 끔찍한 감옥은 없어. 그 감옥에는 영원히 석방이라는 게 없는 거야.” 석방 없는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줄리엣의 고통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 영화의 대미는 “여기에 있어요, 바로 여기에”라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줄리엣의 자기 선언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아프고 저릴 것이다. 원망을 하거나 위로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오롯이 살아 여기 있는 나의 몫이다. 피할 수 없어 더 아픈.
  • “국내 미술관에 권진규 작품 위작 상당수”

    “국내 미술관에 권진규 작품 위작 상당수”

     한국 현대 구상조각의 거장 고(故) 권진규(1922~1973)의 위작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는 한국의 대표 사립미술관인 삼성리움미술관의 소장품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인의 조카로 유족을 대표하고 있는 사단법인 권진규기념사업회 허경회 이사와 권진규의 작품을 연구해 온 무사시노미술대학의 박형국 교수는 23일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가진 ‘권진규의 에센스전’ 기자간담회에서 “권진규의 전작 자료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소장자들 작품 중에 위작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사업회에 따르면 권진규의 작품 가운데 작가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저작권을 가진 기념사업회가 제작한 사후 복제작만 진작으로 인정되고, 작가의 작품을 모방한 모작은 위작에 해당한다. 오리지널 작품은 2017년 8월 현재 조각이 430점(오리지널 325점, 사후복제 105점), 유화 및 데생이 550점으로 파악됐다.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로서 꼽히는 권진규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앙투안 부르델의 제자 시미즈 다카시 교수의 가르침을 받으며 사실주의적 조각수업에 몰두했었다. 졸업하던 해 일본의 유명 공모전인 이과전에서 특대의 상을 받으며 일찍부터 인체의 구축적인 아름다움을 간결하고 예리하게 표현하는 독창적인 조형어법을 구사했다. 사실적 표현법으로 서구적 조형미를 수용했지만, 궁극적으로 동서양의 구분을 뛰어넘는 절대적 숭고미를 추구했다. 주로 인물상 등 구상적 형태를 통해 대상이 품고 있는 정신적 지향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성은 당시 국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작가는 이에 상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교수는 “ 지난 2009년 무사시노미술대학 80주년 기념전으로 ‘스승을 넘어선 제자’로서 권진규의 개인전을 열기 위해 한국에 있는 권진규의 작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작품들이 위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권진규의 작품 중에서도 위작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권진규는 테라코타 작품을 만들 때 브루델의 방식대로 인체의 상반신 구조를 8등분한 틀을 만들었다”라면서 “진작에서는 작품의 석고틀에 의한 분할선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고, 작가의 지문이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위작은 주로 테라코타 작품을 실리콘 틀로 떠서 복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경우 분할선이 뭉개지고, 지문의 흔적도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사업회의 허 이사는 “국내의 이름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드로잉이나 테라코타 작품에 권진규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있었다”면서 “가짜다, 위작이다 시비를 걸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타날 위작들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조각, 회화·드로잉 등 총 5권의 권진규 자료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권진규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권진규기념사업회가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감정권을 지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편, 25일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는 ‘권진규의 에센스전’이라는 주제로 석고, 돌, 브론즈, 테라코타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조각과 드로잉 23점을 선보인다. PKM갤러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일본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 위주로 구성된다”며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며 기품있는 조형의 경지에 이른 일본 시기의 조각 및 드로잉을 중심으로 고도로 응집된 권진규 조각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0월14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청춘,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청춘,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예술은 굳이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도 새롭게 인정되면 예전의 것과 공존하거나 또는 스스로 고전이 되어 뒷자리로 물러나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대체하거나 밀어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사회와 제도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과거와 현재의 질서를 대신하는 속성이 있어 늘 기성체제로부터 배척당하기 일쑤다.때문에 진보와 혁신은 항상 어렵고 전통 또는 고전은 걸림돌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그 반대이기도 하다. 새가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 고전과 혁신, 원칙과 변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공존해야 한다. 세상에 새로운 좋은 것들이 가득해도 ‘오래된 것은 좋은 것’(Oldies but Goodies)이라는 말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다. 사실 고전이란 단순하게 오랫동안 굳어진 진리가 아니라 동시에 끝없는 새로움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칭호다.불과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굿 윌 헌팅’(1997)이 고전의 반열에 든 것도 단지 오래된 영화라기보다는 시선과 관점에 따라 끝없이 새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로맨스영화이며, 성장영화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로도 꼽힌다. 법학, 수학, 역사 등등 거의 모든 학문에 재능을 지닌 천재소년 윌(맷 데이먼 분)은 상처투성이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비리그의 본산 보스턴 남부에 사는 그는 MIT대학의 청소부로 일하며 대학생들도 어려워 쩔쩔매는 수학문제를 칠판에 낙서처럼 쉽게 풀어낸다. 그의 수학실력을 알아본 수학교수 램보(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분)는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두고 싶어 하지만 정작 윌은 아랑곳 않는다. 동네친구들과 사고를 친 윌을 램보는 고액의 보석금을 내고 데려와 자신의 연구실로 끌어들이지만 윌은 고분고분하기는커녕 더욱 삐딱하게 나간다. 그의 상처를 달래고 보듬기 위해 정신과 의사까지 붙여도 소용이 없자 램보는 동창이자 라이벌인 션 맥과이어에게 윌을 맡긴다. 션은 영원한 ‘오 마이 캡틴’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다. 영화는 윌과 션의 만남으로 진부한 성장영화가 아닌 인생영화로 반전한다. 마음을 닫은 윌과 션의 관계는 한 폭의 작은 그림 덕분에 풀린다. 영화에서 이 그림은 션이 그린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영화를 연출한 구스 반 산트가 솜씨를 부린 것으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윈즐로 호머(1836~1910)가 그린 유화 ‘안개경보’(The Fog Warning·1885)를 모사한 것이다.호머는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삽화가로 가장 미국적인 화풍으로 일컫는 풍경화가들의 모임인 ‘허드슨강파’(Hudson River School)의 일원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자생한 최초의 화파로 광활한 대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낭만적이며 사실적인 필치로 담았다. 허드슨강파의 풍경화는 6·25전쟁 전후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물레방아와 폭포, 초가집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소위 이발소그림의 원형이 되었다. 영화는 호머에게 상당 부분 빚졌다. 특히 윌과 션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단초가 되는 그림은 호머의 ‘안개경보’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안개 때문에 잡은 고기를 버리고 빨리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잡은 청어를 가지고 사력을 다해 항구로 복귀할 것인가’ 하는 실존적 고민을 윌의 입장에서 풀어냈다. 영화 후반부에 윌이 그의 친구로 배운 것은 없지만 충고를 아끼지 않는 처키(벤 애플렉 분)와 광대한 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조선소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뒤로 노인들이 오래된 탑을 철거하고 있다. 처키는 범선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다. 이것도 호머가 삽화가로 일하던 하퍼스 위클리(1873년 가을판)에 실었던 음각 목판화 ‘배짓기, 글로스터 항구’를 연상시킨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조선소와 철거지가 교차하는 대목에서 문화지리학자 피어스 루이스의 ‘경관 읽기에 필요한 공리’를 떠올리게 된다. 자연을 배제하고 인간이 만든 경관을 문화경관이라 하는데 문화경관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 왔고, 살고 있고,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증거다. 사실 엄청난 변화나 압력, 동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크게 경관을 바꾸지 않는다. 항구 근처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계급은 불가피하게 스스로가 풍경의 일부가 되어 그 삶을 영위한다. 처키는 영화에서 통찰력 있는 말로 윌에게 충고한다. “내일 나는 일어나서 50살이 될 것이고 나는 여전히 이 일을 할 거야.” 이외에도 영화는 장면마다 문화적 경관을 놓치지 않는 관찰자로서 호머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초입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라든가, 윌이 칠판 앞에서 문제를 푸는 모습도 호머의 작품 ‘칠판’에서 빌려 온 것이다. 사실 영화와 그림, 회화는 매우 흥미로운 관계다. 영화는 예술적인 문제를 풀고자 회화가 획득한 일련의 효과들을 이용한다. 회화의 고정성과 단면적인 성격은 영화의 유동성과 방향성과 어울려 서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회화는 형상의 움직임은 없지만 관람객의 눈의 움직임에 의해 영화와 같은 연속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회화는 같으면서 다르고 또 다르면서도 같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이성과 감성, 두 가지 속성이 모두 필요한 게 수학이다. 윌은 아무도 손을 못 대는 수학문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램보 교수도 정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술술 푼다. 그가 수학문제를 머리로만이 아니라 직관 즉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머리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중요하다.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지만, 마음으로 다가간 이는 같지만 다른 상처를 공유한 션뿐이었다. 혁신도 좋고 새로운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른과 선생 즉 고전과 전통 그리고 뿌리와 원칙도 필요하다.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는 이 시대에,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세상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게 오로지 일자리뿐일까.
  • “마음 움직이는 작품 선택해야 나만의 컬렉션 구성”

    “마음 움직이는 작품 선택해야 나만의 컬렉션 구성”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는 순간 어린아이가 됩니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고 좋은 감정을 감추질 못해 바로 작품을 구입하죠.”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화랑을 운영하며 안목 높은 미술품 수집으로 주목받는 신홍규(27) 신갤러리 대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그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 또는 에너지가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면서 “수집 이전에 예술적 안목을 키우고 미술사와 작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강남 케이옥션 아트타워에서 미술시장 트렌드와 컬렉션 비법 등에 관해 특별 강연을 한 신 대표는 “마음에 들고 내가 원해서 구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후회해 본 적은 없다”며 “나만의 색이 있는 컬렉션을 구성하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모딜리아니, 베이컨 등 거장의 작품 경매에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으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신 대표의 컬렉션은 국내에 공개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미국 뉴욕 MoMA,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전시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선택이 옳았는지는 나중에 미술관을 개관하면 관객들이 평가를 해주리라 믿어요. 처음부터 나의 눈과 직관을 믿고 작품을 구입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 “어릴 때부터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사와 전쟁역사를 매우 좋아했다”는 그는 13세 때 2차 세계대전 독일군 반합을 모으며 수집의 세계에 눈을 떴다. 컬렉션에 대한 진지한 꿈을 키운 것은 14세 때 우연히 접한 우타가와 구니요시의 우키요에 작품(채색 목판화)을 용돈 30만원을 털어 사면서부터다. 아직 젊지만 이미 13년을 미술 수집에 완전히 빠져 살아 왔다는 그는 “13년 동안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은 작가 발굴, 작품 조사 그리고 미술역사 공부를 했다”고 했다. 자신의 컬렉션에 대해 “옛 거장의 그림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하게 수집하고 있다”면서 “우아하고 경쾌한 S자형의 곡선을 자유분방하게 그려낸 프랑수아 부셰부터 평범한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실주의의 화가 발튀스, 그리고 화려한 색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현실 또는 작가의 자신 일부를 그려낸 한국 작가 현경까지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델라웨어대학에서 미술품 보존학을 공부하던 2013년 뉴욕에 연 신갤러리와 프로젝트 스페이스 외에 오는 9월 세 번째로 전시공간을 열 계획이다. 말 그대로 열정적인 갤러리스트인 그는 “올해 7명의 전속 작가 중 6명이 카네기 미술관, 테이트 모던, 휘트니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했거나 하고 있다. 많은 관객이 전속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감탄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디스토피아, 현실과 멀다고 느껴지나요”

    “디스토피아, 현실과 멀다고 느껴지나요”

    “결국 우리 세대에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문단 내 성폭력이 불거졌을 때 일상에 만연해 있던 불평등인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낼 때까지는 못 느꼈잖아요. 문제는 느끼고 난 지금이죠. 그간 한국 문학에서는 여성뿐 아니라 이민자, 난민, 다문화 가정 등 소수자 이슈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어요. 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작품에 담아낼지가 요즘 늘 따라다니는 고민이에요.”소설가 정지돈(34)은 ‘문학이 무엇인가’란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2010년대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동인 ‘후장사실주의’ 멤버인 그의 작품들은 찬사와 혹평의 극단에 놓였다. 예술사, 세계 문학 등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허구와 경계 없이 섞어 ‘도서관 소설’, ‘지식조합형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한국 문학의 미래’로도 불렸다가, ‘이것도 소설이냐’는 비판도 함께 감당해 왔다.첫 장편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스위밍꿀)는 우리 세대의 새로운 윤리에 대한 탐색으로 읽힌다. 원고지 400매가량의 경장편이지만 소설 속에 쌓아 올린 세계는 국경의 경계도, 선악의 경계도 무의미해진 거대한 디스토피아다. 배경은 2063년 한반도. 총기 소지가 합법화되며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총을 겨누는 게 당연해졌고, 해수면 상승으로 미국과 일본이 잠기며 각국에서 난민이 밀려들어 오는 무간지옥이다. “과장을 조금만 하면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지금과 그렇게 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외부로 나갈 때도, 외부인을 대할 때도 알 수 없는 공포를 품고 있죠. 고립주의로 외부인을 배제하고 언제 테러가 터질지 모르는 미국, 유럽 등을 봐도 그렇고요. 조선족 노동자들이 범죄에 엮이면 선동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단일민족임을 내세우는 우리나라도 그렇고요.” 소설은 버스 운전기사인 짐이 안드레아에게 사람을 한 명 태우고 중국 옌지까지 가 달라고 제안하며 시작된다. 129세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남파 간첩인 ‘무하마드 깐수’의 부탁을 받은 이들은 서울에서 개성, 평양, 함흥을 거치는 여정에 나선다. 통일 한국이지만 희망은 한 줌도 찾아볼 수 없다. 평양 류경호텔은 거대한 난민 수용소가 됐고, 폐공장과 콤무날카(옛 소련의 공동아파트) 등은 과거 이데올로기의 무덤으로 비쳐진다. 영화를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소설이 구현하는 풍경들은 선명한 이미지로 이어진다. 그는 소설에서 과거 세대와 젊은 세대가 어떻게 다른지 이런 문장으로 압축한다. ‘무하마드의 삶은 그(짐)가 좋아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학문에 대한 열의, 민족에 대한 애정, 가족에 대한 사랑, 미래에 대한 확신, 과거에 대한 그리움. 짐은 어느 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27쪽) “과거 세대는 미래엔 확실히 더 나은 세계가 있다고 믿고 움직였죠.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뚜렷한 미래나 이상향을 품고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에요. ‘특정 체제가 우리를 더 낫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은 사라지고, 어떤 예술적 목표가 세계를 혁신할 것이라는 기대도 없죠. 외부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품고, 희망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고민과 동력이 뭔지 보여 주고 싶었어요.” 결국 소설은 극악한 세계와 그 안에서 사투하는 겁쟁이,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짐, 보리 등은 진보적이라 난민 문제, 빈곤 문제 등에 가 닿고는 싶은데 막상 행동하는 것은 두려워하죠. 현실에 만족하지 않지만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에는 겁이 나고 미래에 특별한 기대도 없고요. 이런 심리는 저나 제 주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인데 요즘 중산층, 청년 세대들의 정서와 겹치지 않나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에이리언’ 시리즈와 그로테스크한(?) 인간상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에이리언’ 시리즈와 그로테스크한(?) 인간상

    오싹한 영화나 소설을 읽는다고 더위가 가시랴마는 그래도 습기에 옷이 몸에 척척 감기는 여름엔 역시 납량물이 최고다. 올해 5월 개봉한 ‘에이리언-커버넌트’는 여름에 딱 맞는 SF 스릴러다. 흉악한 외계생물과 인간의 혈투를 다룬 ‘에이리언’은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86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에이리언2’를 만들고 이어 1992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에이리언3’, 1997년 장피에르 죄네 감독이 4편을 만들었다.‘스콧 감독은 2012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프리퀄 ‘프로메테우스’로 다시 에이리언 시리즈에 복귀했다. 그러곤 5년 만에 내놓은 후속작이 ‘에이리언-커버넌트’였다. 이로써 시리즈는 지금까지 총 6편이 나왔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SF영화의 흐름을 바꾼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속편들은 전편에 구애받지 않고 편마다 독특한 스타일과 영상미로 관객의 눈을 호사시켰다.스콧 감독은 각본을 읽고 매우 끌렸지만 영화 속 ‘우주괴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었다.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H R 기거의 화집 ‘네크로노미콘’(1977)을 보면서 ‘바로 이 괴물이야’라고 무릎을 쳤고 화집 속 이미지를 영상으로 고스란히 옮겼다. 미술가들의 상상력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준다. 현대미술 감상은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대할 때 놀라지 않는 넉넉한 태도와 침착함을 길러 주기도 한다.기거의 작품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는 매우 익숙하게 붓이 아닌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금속성의 인체를 매우 섹시하게 그렸다. 또 장기나 성기를 연상시키는 것들을 회색 조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 당시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잡지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저 삽화로만 대하기에는 아쉬운 초현실적인 기이함과 편집광적인 정밀함이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하이퍼리얼리즘이나 포토리얼리즘과 맥을 같이했지만 너무나 독특한 나머지 주류 세력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어려서부터 초현실주의자였던 장 콕토와 달리에 심취했던 그는 건축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1966년쯤부터 음험한 느낌의 초기작을 완성해 나가며 화가, 조각가, 일러스트레이터, 괴물(크리처)·세트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그는 초현실적이고 음울한 환상, 불안하고 왜곡된 형체, 그리고 인체와 기계가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림을 그렸다. 무명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본 화가 달리가 영화 ‘성스러운 피’의 조도롭스키 감독에게 소개해 영화계와 인연을 맺고 1979년 에이리언에 참여하면서 일약 유명 화가 반열에 들었다. 기거는 그 후 인간의 생체를 뜻하는 ‘바이오’와 사실적이고 정밀한 기계를 뜻하는 ‘메카노이드’가 결합된 엽기적인 ‘바이오 메카노이드’를 완성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사투르누스나 르네상스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 나오는 괴물, 19세기 말 미국 공상소설가 H 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괴물 이야기들로 꾸며진 크툴루 신화는 그의 기괴스러운 작품 탄생에 영감을 줬다. 또 시각적으로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나 스위스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 그리고 폴란드의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와 맥이 통한다. 기거는 늘 악몽을 꾸었다. 이런 경험은 예술적으로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의 그림은 충격적이고 불합리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사람들을 놀라움, 불편함, 매혹, 공포 등으로 이끈다. 빅토르 위고는 그로테스크를 새로운 예술의 방법론으로 채택해 세계가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한 것이 아닌 혼돈 즉 ‘모순의 결합’이라며, 이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선과 악, 비천과 고귀를 하나로 묶어 양면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은 현실계 너머의 세계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는데 1970년대 후반 등장한 극사실주의 즉 하이퍼리얼리즘 화가들은 이를 즐겼다.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 즉 만들어진 상상의 세계를 보여 주는 데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붓을 대신하는 에어브러시의 등장은 사진만큼이나 미술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작가의 개성을 중시하던 모더니즘적 태도를 버리고 사진처럼 또는 사진보다 더 정교하며 객관적으로 세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포토리얼리즘이 등장했다. 이를 슈퍼리얼리즘, 래디컬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팝아트처럼 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좀더 극단적으로 객관적이며 즉물적이다. 돋보기나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얼굴의 피부 조직이나 땀구멍까지 극명하게 그려내 관객들을 질리게 하거나 충격을 준다. 또 사진은 렌즈의 왜곡현상 때문에 화면의 주변이 휘거나 흐릿해지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수정해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여 준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정교한 현실 묘사는 역설적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이를 표현할 적절한 방법을 상실한 현대미술의 무기력함을 보여 준다. 하지만 ‘손의 복권’을 통한 ‘그림’의 본질적 의미를 일깨웠으며 구상과 추상,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구별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점은 중요하다. 여기에 그림의 예술적 목표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제아무리 사실적인 그림도 결국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드러내 그림의 허구성을 부각시킨 점은 역설적이다. 아무튼 상상을 초월하는 기거의 그림 한 장에서 비롯된 영화 ‘에이리언’은 문화가 됐다. 수많은 덕후(?)들이 오늘도 여기에 몰입해 그들 나름대로 스토리를 입혀 새로운 에이리언들을 만드는 등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저’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징그러움의 궁극인 제노모프 즉 에이리언은 소름끼치게 기괴한 생명체이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기거의 말처럼 그 바탕은 인간의 모습에 두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진정 인간일까. 문득 으스스해진다.
  • 한·불 수교 131주년 기념 ‘봉쥬르! 프랑스 현대미술 7인전

    남한산성아트홀에서는 한·불 수교 131주년을 기념 ‘봉쥬르! 프랑스 현대미술 7인전’을 오는 7월 12일부터 29일까지 연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Claude Gaveau(끌로드 가보)를 비롯해 프랑스 화단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화풍을 가꾸며 대학 강의 및 저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대표적 작가 7인을 초대해 회화 작품 50여 점을 선보인다. 프랑스 오송갤러리 송정칠 관장의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진수와 명작을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대사관 공보관, 프랑스문화원 문정관 등을 역임한 송 관장은 “국제적 규모의 기획전을 지역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 미술 작품을 한 점 정도는 소장하고 싶은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라며 소감을 밝혔다. 전시 작품은 참여 작가 개개인의 고유한 사고와 표현의 다양성 가운데 진정한 프랑스와 인체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빛과 근원적인 엑소시즘의 환희, 영적인 분별력을 색채의 풍요로 표현하는 Claude Gaveau(끌로드 가보), 몽환적 형체의 구상화가 Hervé Loilier(에르베 로알리에) 신이 내린 여인의 나체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Michèle Taupin(미셀 또빵)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우주를 창조하는 추상미술의 대가 Arcade Latour(아르카드 라뚜르) 일러스트레이터 특유의 극세밀화 테크닉의 Olivier Hubert(올리비에 위베르) 사실주의적 구조주의를 재해석한 Robert Boudroit(로베르 부드로아) 일상에서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 그 순간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고유의 상징문법에 따라 표현한 Guy Demun(기 드멍) 등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치며 서로 다른 개성을 빛내는 7명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프랑스 현대 미술을 경험할 수 있다. 참여한 작가는 건축과 풍경, 시간과 공간, 예술과 테크닉, 현실과 초현실, 신화와 현대, 절제와 욕망 등을 작품 속에 녹여 다름과 대립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봉쥬르! 프랑스 현대미술 7인전’은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프랑스 최고의 작품들을 한국에서 편하게 감상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남한산성아트홀 임호균 상임이사는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 경기 광주의 이름에 걸맞게 수준 높은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를 향유하고 보다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음악·영화·3D… ‘융합 예술’의 하이라이트

    음악·영화·3D… ‘융합 예술’의 하이라이트

    명품업체들은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관리를 위해 문화예술 후원에 적극적이다. 프랑스 명품업체 카르티에도 현대미술 후원을 위해 1984년 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방법은 아주 다르다. 전시를 후원하거나 유명 작가의 소장품을 구입하는 일반적인 미술재단과는 달리 전시될 작품의 제작을 의뢰하는 ‘커미션’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이렇게 제작한 작품을 소장한다.독창적 기획과 학제적인 작업으로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확장해 온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주요 소장 작품들을 보여 주는 ‘하이라이트’전이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50개국 350명 작가의 작품 1500점 가운데 핵심적인 작업 100여점을 골라 소개한다. 소장품 가운데 유일무이한 작품들, 다양한 학제적 프로그래밍을 통해 제작된 독창적인 작업들, 작가 커미션 작업들을 모았다. 생태음향 전문가, 과학자, 음악가로 활동해 온 미국의 버니 크라우스와 영국의 컬렉티브 그룹 유브이에이(UVA)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진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는 학제 간 협업과 융합예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크라우스는 전 세계 육지 및 해상동물 1만 5000여 종의 소리를 포함해 총 5000시간이 넘는 자연 서식지의 소리를 50년 가까이 녹음했다. 그룹 유브이에이는 그 녹음된 데이터를 빛 분자로 변환한 뒤 3차원 설치물로 구현했다. 캐나다,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해양지대의 일곱 가지 사운드스케이프가 벽을 타고 서서히 흘러가며 소리를 통해 원초적인 자연을 느끼게 해 준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의 개념에 기반해 뉴욕 건축가 그룹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가 제작한 비디오설치작업 ‘출구’는 데이터에 기반해 인구이동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레이몽 드파르동이 아내 클로딘 누가레와 함께 제작한 영화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는 2008년 카르티에 재단이 기획한 전시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춰라’에 소개된 작품이다. 유목민, 외딴섬의 주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디언 종족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뿌리, 인구와 땅의 문제, 언어, 역사 문제를 다룬다. 호주 출신의 작가 론 뮤익의 극사실주의 조각은 매혹적이고 충격적이다. 걱정스러운 눈빛의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을 가로 6.5m, 세로 1.6m, 높이 3.9m의 거대한 크기로 만든 ‘침대에서’, 실제보다 작게 만든 ‘쇼핑하는 여인’과 ‘나뭇가지를 든 여인’은 크기와 무관하게 실핏줄부터 주름, 머리카락, 피부톤까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세계적인 프랑스 SF 만화가 뫼비우스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과 드로잉작업, 중국작가 차이궈창이 화약 퍼포먼스로 제작한 작품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재단의 작가 레지던시 출신으로 세계적 예술가로 성장한 프랑스의 장 미셸 오토니엘의 초기작업과 콩고민주공화국 작가인 셰리 삼바의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회화작품도 있다. 미술작가로도 활동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더 이름을 떨친 유명인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꽃과 동물을 연관시킨 꽃병 연작을,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드로잉작업과 석판화(리소그래프) 작품을 보여 준다. 미술가 겸 음악가 패티 스미스의 설치작품 ‘산호초 바다의 방’은 스미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89년 사망)에게 헌정했던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알베롤라와 마크 쿠튀리에는 미술관 내의 라운지 벽에 월 드로잉작업을 했고 미국 작가 세라 지는 1999년 카르티에재단 공간을 위해 제작했던 대규모 설치작품을 재구상해 설치했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작가 박찬경으로 구성된 예술가 듀오 파킹찬스는 이번 전시의 커미션 작품으로 몰입형 3D 이미지 영상설치작업 ‘격세지감’을 선보이고 있다. 박 감독의 작품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오픈세트를 17년이 지난 현재 3D 영상으로 촬영하고 실제 영화의 소리를 입혀 색다른 시각적, 지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웹툰작가 선우훈은 현재 서울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에 대한 리포트 형식으로 웹툰을 만들어 전시장과 온라인에서 상영한다. 작가 이불이 2007년 파리 카르티에재단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 ‘천지’도 소개된다. 전시는 무료이며 오는 8월 15일까지 계속된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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