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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한미방위조약 손대지 않는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들은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개정 요구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자세다.지난 2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주례 브리핑에 이어 외교·안보정책의 핵심관계자도 지난 주말 이를 재확인하고 나서는 등 논의 확산 자체를 사전 차단하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의 전세계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른 주한미군 성격 변화를 계기로,일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개정 및 폐지론의 핵심은 지난 53년 10월 한국전쟁의 산물로 만들어진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이다.그러나 개정 배경과 대안에 대해선 한국의 안보 상황과 북한,그리고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정부는 최근 극단의 스펙트럼 분포를 보이는 우리 사회 여론의 소용돌이에 더해 이 문제가 상정될 경우 국론 분열로 이어지고 국제사회에도 좋지 않은 메시지를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같은 조항에,각기 다른 해석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모두 6개항으로 간단하다.여기에 “상대국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가 아니면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게 아니다.”는 미측 양해 사항이 첨가돼 있다.1조는 무력 분쟁에 대해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유엔의 목적이나 유엔에 대해 무력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하는 조항이다.2조는 상대국의 정치적 독립이 무력공격 위협을 받을 때 서로 협의하고,당사국은 단독으로나,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해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며 이를 협의와 합의에 의해 취한다고 돼 있다.이에 대해 미군관련 시민운동을 주도해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은 “미국이 (위협에 대한) 판단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고,단독으로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상호 협의하도록만 돼 있어 유사시(북한의 침략)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지 않아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개입적 한·미동맹에 대비해 동북아 안정군으로서의 역할 범위를 조약 속에 투명하게 담아야 한다는 입장을 편다. ●정부 입장은 ‘NO’ 정부는 조약에 이미 태평양에 대한 안보 범위까지 담겨 있고,이 조약 자체가 방어적인 성격의 포괄적 조약이므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방침이다.조약은 그대로 두고,하위 법체계를 통해 새롭게 변하는 상황들을 융통성 있게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는 미·일의 경우도 조약이 아닌,지침(가이드라인)을 통해 군사동맹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Doctor & Disease] 美워싱턴의대 소아신경외과 박태성 박사

    ●‘뇌성마비에 의한 강직’에 있어선 1인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뇌성마비는 절망에 가깝다.뇌가 척수신경을 통제하지 못해 팔다리는 물론 전신의 근육이 강직과 경련으로 뒤틀리고 일그러지기 일쑤여서 배아파 난 부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천형(天刑)으로 간주되었다.이 뇌성마비 수술치료법을 개발해 세계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재미 한국인 의학자 워싱턴대의대 소아신경외과 박태성(57) 박사.뇌성마비 치료의 새 장을 열어 환자들로부터 ‘세인트(The Saint)’라며 존경을 받는다는 그를 만났다.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분야인데. -소아신경외과학은 뇌수종,뇌종양,뇌손상,선천성 척수질환 등 어린이의 뇌질환을 외과적으로 다루는 분야다.한국에는 많이 보급되지 않았으며 미국에서도 역사가 30년에 불과하다.이 중 내가 자신있고,관심있는 분야는 걷거나 앉지 못하는 뇌성마비에 의한 강직(强直)을 다루는 일이다.단언컨대,이 분야에서는 1인자라고 자임한다.자랑이 아니라 자부심이다. ●17년간 세계 25개국 환자 1200명 수술 스스로를 ‘1인자’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대가의 무게가 느껴졌다.지금까지 17년동안 그는 세계 25개국의 뇌성마비 환자 1200명을 수술했다.이 수술법은 이렇게 세계의 관심을 끌면서 의료 최선진국인 영국,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강연 요청이 줄을 이어 쉴 틈이 없다고 털어놨다. 박 박사가 뇌성마비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선택적 등배신경절단술’에 대해 알고 싶다. -뇌성마비에 의한 신체의 강직,특히 하체의 강직을 해소하는 치료법이다.너무 정교해 항상 두렵고 부담스러운 수술이지만 지금까지 1200건의 수술을 모두 성공시켰다.재수술은 단 1건에 불과했다.이 수술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보통 척추를 6∼7마디나 들어내고 수술을 했었지만 성과에 비해 부작용이 심각해 문제가 많았다.이에 비해 절개 부위를 최소화한 최소침습적 등배신경절단술은 수술은 어렵지만 강직 제거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척추 한마디 들어내 감각신경 조작 수술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허리의 척추 뼈를 한마디 들어내 척수에 이어진 신경다발을 현미경적으로 분류하는 게 우선이다.직경 5㎜ 정도의 신경다발 속에는 감각신경,운동신경,대·소변과 발기에 관련된 신경 등이 얽혀 있는데,이 가운데 하지에 연결된 감각신경을 찾아 조작,강직이나 비정상적인 운동을 제어하는 방법이다.매우 좁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수술이라 자칫 발기부전이나 치명적인 마비를 초래할 수 있기도 하다. 효과는 어떤가.수술 후 환자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가. -이 수술은 뇌성마비 자체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뇌성마비로 특정 신체 부위가 굳거나 운동중추의 통제를 받지 못하는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이다.이걸 전제로 얘기하면,많게는 연간 150건씩 지금까지 모두 1200건을 수술했지만 한건도 부작용이 없었다.대부분의 경우 수술 후 바로 강직이 해소된다.분명한 것은 이 수술법이 어떤 방법보다 강직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점이다.기본적으로는 다리 부위의 강직을 대상으로 하지만 더러 팔운동이 정상화되거나 말문이 트인 경우도 봤다. ●수술은 어릴 때 하는 게 좋아 그는 실제로 수술 전후의 환자 상태를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사지를 늘어뜨리고 부모에게 들려 힘겹게 걷는 시늉만 내던 어린이가 거실을 팔짝거리며 뛰거나,정상인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그는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자녀가 수술후 멀쩡하게 걷는 모습을 본 부모들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수술인가. -초기 방식의 수술은 가능하겠지만 최소침습적 등배신경절단술은 아직 어려울 것이다.내가 직접 서울에서 수술 시연을 하기도 했다. 모든 뇌성마비 환자가 다 수술 대상인가. -그렇지 않다.수술을 결정하기 전에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와 X-레이 사진 등 기본적인 의학정보를 근거로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지금까지 내가 한 수술은 2∼5세가 68%로 가장 많았고 6∼10세 24%,11∼18세 6%,19∼38세 2% 등이었다.그러나 이 수술은 빠를수록 좋다.늦으면 몸이 기형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의료기술 수준·출산환경과도 밀접한 관계 그는 뇌성마비의 실태도 덧붙였다.“미국의 경우 1000명 중 2명 정도가 뇌성마비로,전국에 50만명의 환자가 있는데,우리나라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실제로 뇌성마비는 의료기술의 수준이나 임신,출산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출산때의 호흡곤란증이나 출산 직후 인큐베이터에서 산소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면 뇌 조직이 괴사해 발병한다.다른 원인도 있지만 이 경우가 많으며,이는 의료사고의 개연성도 높다.”며 이런 환자는 80% 정도가 신체 강직을 동반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환자들도 박 박사로부터 수술을 받을 수 있나. -당연하다.수술 대상만 된다면 다른 조건은 없다. 관심사는 수술비일 텐데…. -입원비 포함 3만 달러 정도 소요된다.입원 기간은 5일 정도며,외국 환자는 예후를 관찰하고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술후 2∼3주 정도 현지에 체류해야 한다. ●“두려워 말고 희망을 갖고 치료해 보라” 28년 전,혈혈단신으로 도미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워싱턴의대 소아신경병원을 설치해 세계 3대 전문병원으로 일군 장본인. 그 분야의 엘리트답게 미국신경외과 기관지 논문심사위원에 선임됐는가 하면 미국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22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받은 몇 안되는 석학으로,저명한 시 후앙 석좌교수까지 겸하고 있는 그는 “뇌성마비에 의한 신체 강직을 해소하는 것은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을 바꾸는 중요한 문제”라며 “두려워 하지만 말고 누구나 새 세상의 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치료에 도전하라.”며 말을 맺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박태성 박사 △연세대의대 △미국 버지니아대학병원,오하이오주립대 콜럼버스아동병원 레지던트 △사우스캘리포니아대 의대,버지니아대 의대,워싱턴대 의대 교수 등 역임 △현,워싱턴대 의대 소아신경외과 과장,세인트루이스아동병원 신경외과 주임교수,버지니아대 의대 외래교수 △워싱턴대 의대 신경외과 시 후앙(Shi H Huang) 석좌교수 △미국국립보건원 제이콥 자비츠상 수상 외. ■ [뇌성마비란] 뇌 손상으로 운동장애 나타나는 질환 박 박사는 뇌성마비 어린이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그래서 그의 존재가 더욱 절실한 구원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필생의 업으로 삼아 연구하고 시험해 이룬 등배신경절단술은 이제 워싱턴대 의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술의 하나로,미국 의대 교과서에도 기술돼 있지만 뇌성마비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마디로 뇌성마비는 뇌가 손상을 입어 주로 신체 운동기능에 장애를 나타내는 질환.수태에서 생후 4주 이내의 신생아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즉,선천성이라기보다 외부 요인에 의한 경우가 많다.예전에는 소아마비와 구별해 뇌성소아마비로 불렸으나 최근에 뇌성마비로 정리됐다. 원인으로는 신생아가사(新生兒假死)·미숙아·중증황달 외에 최근에는 잦은 유산이나 임신중독증,자궁내 발달장애와 함께 출산 직후 유아기때의 관리 소홀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이를테면 인큐베이터에 있는 신생아의 경우 정전 등으로 수분만 산소 공급이 멈춰도 뇌조직 괴사를 초래,뇌성마비로 이어진다. 증상은 운동 및 자세 이상이 대표적이다.주로 몸의 한쪽에만 나타나는 편마비,하지에만 나타나는 대마비가 동반되며 정신박약이나 간질,언어장애,사시 혹은 약시 등 눈의 이상,치아와 지각이상 등도 흔하다. 박 박사는 “이 수술법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며 “국내에도 이 수술법이 빨리 보급돼 많은 사람들이 구제를 받았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 부동산거래 급감‘버블붕괴’ 시작되나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정부의 잇따른 강공책으로 주택시장이 갈수록 침체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존 시장의 거래가 중단되고 신규 분양시장마저 얼어 붙으면서 갑작스러운 거품 붕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수요마저 사라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아파트 인근 S공인중개소는 한달째 한 건도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지난 4월26일 서울의 강남·송파·강동구와 성남시 분당구가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신고제 실시 후 5월 한달 이들 지역의 주택거래는 전달의 5% 수준을 넘지 못했다.송파구는 전년 동기 대비 59%,강동구는 63.4% 줄었다.개발이익 환수 차원에서 재건축시 늘어나는 용적률의 25%만큼 임대주택을 짓도록 하자 수요자들이 아예 발길을 뚝 끊었다. 강동구 고덕동 F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수세가 없고,거래도 이뤄지지 않으니 가격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지금 사겠다는 사람이 제시하는 가격이 시세가 된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이 예상되면서 실수요자들마저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정부의 투기대책에도 불구하고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거래가 중단됐다. 전셋집도 안 나간다.서울 잠원동 한신아파트 25평형에 살다 분당에 집을 산 박모(46)씨는 40일째 전셋집이 나가지 않아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한달 전 보증금 7000여만원에 월세 40여만원에서 보증금을 6000여만원으로 낮췄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D아파트와 B아파트는 입주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절반 가까이가 빈집으로 있다. 시간과 공간사 한광호 대표는 “가수요자나 투기세력이 빠지면서 실수요자들까지 덩달아 빠져나가 기존 주택시장의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분양마저 발길 뚝 신규 분양시장도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기존 집값의 하락이 예상되는 데다 분양원가 공개 및 원가연동제,개발이익 환수제 등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점쳐지면서 수요자들이 청약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던 충청권 아파트도 청약수요가 사라져 분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또 남양주 등에서는 계약률이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시장마저 침체되자 대형 주택업체들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지방 소도시에서 틈새 상품에 매달리고 있다. 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서울·수도권 경기가 좋지 않아 지방 소도시 분양에 승부를 걸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역수요가 미미해 한 업체가 분양을 하고 나면 그 지역 수요는 모두 소진돼 떠돌이처럼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택업체들도 분양에 각종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LG건설은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분양하는 ‘LG상인자이’ 아파트 1개동 1층에 30여평 규모로 입주민의 영어공부를 위해 ‘영어마을’을 꾸밀 계획이다.영어마을은 입주 뒤 2년간은 시행사가 비용을 부담하고,무상 지원기간이 끝나면 교육 전문회사에 위탁,최소 비용만 받게 된다.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외국인 등 강사가 주부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영어회화 등을 교육하게 된다. ㈜신도종합건설은 강원도 강릉 송정해변 신도브래뉴 잔여분에 대해 ‘마이너스 융자’,입주 후 2년간 중도금 무이자 서비스를 실시한다. 현행 시스템은 중도금 무이자 융자의 경우 입주 후에는 대출금이 유이자로 전환되지만 신도브래뉴에 청약하면 입주 뒤 2년 동안 이자를 회사가 대신 내주는 것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가평격전지 흑백사진 주인공 유해 귀향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중부전선 화악산 기슭에서 나온 빛바랜 흑백사진의 주인공은 피란지 부산에서 자원입대한 학도병이었다. 전투가 벌어진 그날 쓰러졌던 그 모습 그대로 반세기가 넘도록 가족을 기다리던 그 학도병은 법원 서기 출신 나영옥(당시 18세) 상병이다. 현충일인 6일 사진 속의 미소년은 유해가 돼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1리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동생들과 상봉했다. ●똑같은 사진 54년간 간직 나 상병의 동생 나영일(59·서울 중랑구 신내동)씨는 이날 태극기가 덮인 형의 관을 어루만지며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어머니와 만나 행복하게 잘 사시라.”며 상상하지 못했던 ‘재회의 슬픔’을 나누었다. 여동생 옥자(64)씨도 “전쟁터에 나갔다가 소식이 없는 오빠 때문에 아버지는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흐느끼면서 전쟁이 낳은 가족사의 아픔을 비로소 털어내는 모습이었다. 나 상병의 신원을 확인한 것은 육군이 벌이고 있는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의 결실이다.육군 27사단은 지난 2일 341번 지방도로변 고추밭에서 발굴한 전사자의 주머니에서 비닐에 싸인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나영일씨는 “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본 아들이 ‘큰아버지와 비슷하다.’고 하기에 집에 있던 사진을 꺼내보니 바로 같은 사진이었다.”면서 “보관하던 사진은 어머니가 간직하고 계시다가 돌아가시면서 ‘형님을 잊지 말라.’고 물려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나 상병의 가족은 모두 20여명.가족들에 따르면 나 상병은 8남매의 둘째로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벌교에서 법원 서기로 근무하다 전쟁이 터지자 피란지 부산에서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이후 그는 5사단 36연대 본부 소속으로 1951년 1월 이른바 1·4후퇴 당시 화악산을 타고 내려오는 중공군에 맞서다 전사한 것으로 유해발굴단은 추정하고 있다. 가족들은 “이 사진을 찍을 때 입은 옷은 군복이 아니라 법원에 근무할 때 입었던 옷”이라면서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서 선물로 받은 만년필 2개를 왼쪽 가슴에 꼽고,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영일씨는 “휴전협정에 따라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왔지만 둘째 형님만은 소식이 없었다.”면서 “가족들은 명절이나 현충일이 되면 그저 꽃 한다발을 사들고는 동작동 국립묘지를 서성이곤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발굴된 29구 유해 국립묘지 안장 계획 한편 육군 27사단은 이번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서 나 상병을 비롯해 모두 29구의 유해를 발굴했다.27사단은 오는 17일 사령부 연병장에서 합동 영결식을 가질 예정이다.나 상병 등의 유해는 영결식이 끝난 뒤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나영일씨는 이날 “아직까지도 착잡하고 떨려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그동안 국군포로 얘기만 나와도 혹시 형님이 아닐까 안절부절 못했다.”면서 “형님을 찾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발굴단 관계자의 손을 꼭 잡았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독학사 응시생 ‘북적북적’

    독학사 시험 응시인원이 6배 가까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사법시험 수험생들이 대거 지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법대 출신 사시 수험생들은 법학과목이수제 때문에 2006년부터는 사시 응시원서를 낼 때 법학과목 35학점을 이수했다는 증명까지 함께 제출해야 한다. 독학사시험을 주관하는 독학학위검정원은 최근 2단계 법학전공과목시험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출원자가 모두 2682명으로 잠정집계됐다고 밝혔다.지난해 지원자 482명에서 5.56배나 증가한 수치다. 독학사 과정은 1∼4단계로 구성돼 있으며 법학과목학점이수제를 위해 들을 경우 교양과목인 1단계를 제외하고 전공과목인 2∼4단계를 신청해야 한다.2단계는 6월에 시험을 치르고 7월에 합격자 발표를 한다. 3·4단계는 각각 7월과 10월에 원서접수한 뒤 8월과 11월에 시험을 치른다. 독학사 과정에 수험생들이 크게 몰린 것은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대학 등록 등 다른 학점 취득 방법에 비해 쉽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공부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데다 굳이 강의를 듣지 않아도 시험 한번으로 학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 박모(30)씨는 “시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절대평가제인 데다 한 과목당 학점이 5학점이어서 학점을 채우기도 제일 좋다.”고 평가했다. 학원 가운데 유일하게 학점은행으로 인정받고 있는 H법학원에도 수험생들의 접수가 늘고 있다.학점은행 과목들의 경우 수강생이 2∼3배씩 늘고 있다. 그러나 수험가는 여전히 수험생들의 반응이 아직도 느리다고 평가하고 있다.H법학원 관계자는 “전체 사시 수험생들 3만∼4만명,이 가운데 비법대 출신을 30% 정도로 볼 때 1만여명 이상의 비법대생 수험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수치는 여전히 낮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내년에 한해 더 기회가 있다는 점 때문에 수험생들이 아직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영어대체제 도입 때도 ‘토익 700점쯤이야.’하다가 출원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면서 “토익처럼 법학과목 이수도 미리 마무리해둔 뒤 시험에 임박해서는 법학과목 공부에 전력 질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글로벌 한국차] (3) 노사시스템 상생의 해법

    1950년대만 해도 영국은 세계 제일의 자동차 수출국이면서 미국에 이어 제2의 생산 대국이었다.그러나 지난 89년 재규어가 포드에 인수된데 이어 94년 영국의 대표기업이었던 로버가 독일의 BMW,2000년에는 랜드로버가 포드에 넘어가는 수모를 겪으며 몰락했다. 이처럼 자동차 왕국이었던 영국이 무너지는데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결정적이었다는데 이론이 없다. 영국 자동차산업의 쇠락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세계 제6위의 생산국으로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영국의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현재와 같은 소모적인 노사관계가 유지됨으로써 초래되는 고비용은 고스란히 전체 산업의 부담으로 옮겨 가기 때문이다. 6월 들어 4개 완성차 노사도 임금·단체협상을 본격화하고 있다.자동차산업이 ‘글로벌 톱5’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노사간 상생의 해법이 무엇인지를 되짚어 본다. ●기본적인 노사간 신뢰는 있지만… 국내 자동차업체 중 대표 기업인 현대·기아차 그룹의 노사는 요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사측은 현대차 전천수 사장과 기아차 윤국진 사장 등이 주재하는 노무관련 회의를 수시로 열고 임단협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다.이에 노조측도 거의 매일 협상 실무회의를 갖고 임단협 요구사항에 대한 전략을 짜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최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앞으로도 노사문제와 회사 고용안정에 어떤 것보다 우선 순위를 둘 것이며 노사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면 바퀴 하나가 잘못돼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자동차와 같은 처지”라며 임단협에 임하는 사측의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정 회장의 이런 ‘친 노조’ 발언에 노조측도 우호적이다.현대차의 한 노조원은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 회장에 대해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할 정도다.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달라지는 노사 그러나 노사는 막상 협상에 들어가면 한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린다.국내 산업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자동차 노조의 위상이 크기 때문이다.자동차 노사간 협상 결과가 바로 전체 사업장 노사교섭의 기준점을 제시하게 돼 양측간 공방이 치열해진다.자동차업계 노사는 올해도 ▲노조의 경영참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 ▲사회공헌기금 조성 ▲토요일 근무수당 지급과 관련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별로 각종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 협상을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기아차의 경우 회사의 계열사 분리·통합 움직임에 노사간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노조는 2000년 7개이던 계열사가 17개로 늘어난 점은 노조의 힘을 분산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회사측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여러 계열사가 모두 편입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회사측이 추구하고 있는 계열사 분리·통합정책은 장기적으로 고용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조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생의 해법은 없는가 노동 전문가들은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출발은 노사간 신뢰 회복에 대한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선행되고 노조도 경영진에 대한 대립적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여기에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개혁을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도 주문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동차산업은 산업구조나 노동현실면에서 원청과 하청업체간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비정규직과 사회조성기금 조성 문제를 노사가 전향적으로 타협해 노사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대기업은 원청 위주의 수익독점 구조를 탈피해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비정규직과 사회조성기금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노조도 자기 몫을 기금조성에 출연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원은 “외국 자동차업계 노사는 그동안 업체들의 부침과정을 보면서 위기에 대한 공통인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런 인식이 결여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이어 “경영자측에는 노조를 진실한 파트너로 인식해 자본투자 제한 등에 응하는 사고전환이,노동조합측도 책임있는 경영·경제주체라는 점을 감안해 집행부의 반기업주의 정서를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정부, 한미방위조약 손대지 않는다

    정부, 한미방위조약 손대지 않는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들은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개정 요구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자세다.지난 2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주례 브리핑에 이어 외교·안보정책의 핵심관계자도 지난 주말 이를 재확인하고 나서는 등 논의 확산 자체를 사전 차단하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의 전세계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른 주한미군 성격 변화를 계기로,일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개정 및 폐지론의 핵심은 지난 53년 10월 한국전쟁의 산물로 만들어진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이다.그러나 개정 배경과 대안에 대해선 한국의 안보 상황과 북한,그리고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정부는 최근 극단의 스펙트럼 분포를 보이는 우리 사회 여론의 소용돌이에 더해 이 문제가 상정될 경우 국론 분열로 이어지고 국제사회에도 좋지 않은 메시지를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같은 조항에,각기 다른 해석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모두 6개항으로 간단하다.여기에 “상대국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가 아니면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게 아니다.”는 미측 양해 사항이 첨가돼 있다.1조는 무력 분쟁에 대해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유엔의 목적이나 유엔에 대해 무력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하는 조항이다.2조는 상대국의 정치적 독립이 무력공격 위협을 받을 때 서로 협의하고,당사국은 단독으로나,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해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며 이를 협의와 합의에 의해 취한다고 돼 있다.이에 대해 미군관련 시민운동을 주도해온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은 “미국이 (위협에 대한) 판단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고,단독으로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상호 협의하도록만 돼 있어 유사시(북한의 침략)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지 않아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개입적 한·미동맹에 대비해 동북아 안정군으로서의 역할 범위를 조약 속에 투명하게 담아야 한다는 입장을 편다. ●정부 입장은 ‘NO’ 정부는 조약에 이미 태평양에 대한 안보 범위까지 담겨 있고,이 조약 자체가 방어적인 성격의 포괄적 조약이므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방침이다.조약은 그대로 두고,하위 법체계를 통해 새롭게 변하는 상황들을 융통성 있게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는 미·일의 경우도 조약이 아닌,지침(가이드라인)을 통해 군사동맹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럼즈펠드 “주한미군 재편 불가피” 통보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서울 이도운 조승진기자·외신|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4일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 미군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한국측에 공식 통보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날 제3차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 아시아안보회의가 열리고 있는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조영길 국방장관과 단독회동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럼즈펠드 장관은 “냉전이 끝나고 위협이 사라진 곳에 오랫동안 너무 많은 군대를 배치해 왔다.”면서 “한반도와 유럽 지역의 미군 편제에 근본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또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 공군 E4-B기를 타고 가던 중 기자회견을 갖고 “이들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을 ‘붙박이식 국방 개념’에서 더 신속하고 더 유능하면서도 21세기 지형에 맞는 조직으로 바꿀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중대한 변화가 곧 다가올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특히 올 여름 주한미군 2사단 병력 3600명을 이라크로 파견하는 것이 그 변화의 시작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워싱턴을 방문중인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주한 미군 병력 1만명이나 2만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되는 병력 수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해 정부가 사실상 주한미군 감축을 미국측에 양해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권 보좌관은 “한반도의 안보 위협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주한 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있으나 한국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미국의 군사운용전략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게 한국정부의 입장”이라며 “미국은 병력 수와 관계없이 다른 억지력으로 보완할 수 있음을 거듭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권 보좌관은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한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며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겠지만 일일이 설득해 미국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점을 미국측에 전했다.”고 밝혔다.이라크 추가파병의 시기는 2주 이내에 결정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권 보좌관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동맹관계가 확고함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mip@seoul.co.kr˝
  • ‘여기 들어오는 자‘/앤터니 비버 지음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는 소련의 산업 중심지이자 카프카스 지방의 유전과 주요 지역을 잇는 석유공급로다.히틀러는 이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33만명의 나치군을 스탈린그라드로 진격시켰다.1941년 6월 첫 포성과 함께 역사상 최대의 시가전으로 기록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이렇게 시작됐다.막강한 화력과 효율적인 부대편제를 갖춘 독일군은 개전 이틀만에 소련군 전투기 2000대를 파괴했다.한 독일 지휘관의 말처럼 전투는 한달이면 끝날 듯했다.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의 승전가는 이내 지옥에서 울부짖는 비명으로 바뀌었다.1942년 2월까지 계속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결국 소련군의 승리로 끝났다.스탈린체제의 비효율적인 공포정치에 빠져 있던 소련이 어떻게 강력한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영국의 역사저술가 앤터니 비버의 ‘여기 들어오는 자,모든 희망을 버려라’(안종설 옮김,서해문집 펴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실상을 한 편의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제목은 단테의 ‘지옥’편에 나오는 구절로,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독일 부상병들의 수용소에 적혀 있던 말.전쟁의 참혹함을 실감나게 전해준다.저자는 소련과 독일 병사들의 전쟁일기,개인 메모와 편지,소련 비밀경찰(NKVD)의 포로 조서,인터뷰 등을 토대로 590일간의 전투를 상세히 기록했다. “병사들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들끓는 이 때문에 미친 듯이 몸을 긁어댈 때는 그래도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어느 병사는 자신이 잠든 사이에 쥐가 동상에 걸린 자신의 발가락 두 개를 갉아먹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독일군이 러시아의 겨울 날씨 때문에 패했다는 속설을 반영하는 대목이다.실제로 볼가강까지 밀려난 소련군은 완강히 저항했고,10월 중순 무렵부터 시작된 추위와 보급품 부족은 병사들을 적잖이 괴롭혔다.그러나 꼭 날씨가 승패를 가른 건 아니었다.주코프와 추이코프라는 두 걸출한 장군이 지휘하는 소련군은 무엇보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했고,끝없는 노동자의 희생은 소련의 공업생산력을 독일의 그것에 앞서게 만들었다.한편 저자는 히틀러의 광기와 편집증에 가까운 독선이 독일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한다.‘스탈린의 도시’를 반드시 점령하겠다는 히틀러의 집착이 오판에서 패전으로,마침내 독일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니다.이름 없이 사라진 소련의 무명용사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다.그들은 독일군조차 “개들이 사자처럼 싸운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용맹무쌍했다.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자 독일군이 소련사람들을 비하해 부르던 ‘이반’,그들이 소련을 지켜냈고 세계를 구했다.이 책은 그 ‘바보 이반’들에게 바치는 만가(輓歌)다.1만 85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런책 어때요]

    ● 안녕하세요 교황님/최성은 지음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담았다.교황의 본명은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1920년 폴란드 남부 도시 바도비체에서 예비역 육군장교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 출신의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책은 ‘하늘 아래 최고 성직자’로 불리는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폈다.크라쿠프 지역의 주교신부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그렇다고 제가 카누를 못타게 되는 건 아니겠죠.”라고 되물었다는 이야기,교황 취임식 행사를 앞두고 오후에 축구경기를 봐야 하니 오전중으로 행사를 마쳐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 등이 실렸다.8000원. ●트로이수전 우드포드 지음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은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의 탄생과 여신들(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의 사소한 다툼에서 비롯됐다.책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의 원천이 된 트로이 전쟁의 신화를 복원한다.미술사가인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벽화와 암포라(몸통이 불룩하고 목이 긴 항아리) 등에 남아 있는 그림들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아킬레우스의 죽음,아이아스의 자살,오디세우스의 계책에 의한 트로이의 함락,아이네아스의 탈출 이야기에 이어 6세기 비잔틴 시인 아가티아스의 노래로 끝을 맺는다.1만 1900원. ●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필립 쿤 지음 중국 역사에서 청나라의 전성기라면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의 치세를 꼽을 수 있다.특히 가장 뛰어난 만주족 황제였던 건륭제가 다스린 60년간(1735∼1795년)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이를 토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시기다.그런데 1840년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 근대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가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그런 건륭년간이 끝난 지 불과 반세기 만에 어떻게 청나라가 서양 열강들 앞에서 그토록 무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저자(하버드대 교수)는 1768년 중국 대륙을 휩쓴 ‘영혼절도’사건을 고리로 얘기를 풀어간다.1만 8000원. ● 마틴 루터 킹 / 마셜 프래디 지음 서른다섯 살에 노벨평화상을 받고 서른아홉에 극적으로 생을 마친 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평전.내성적인 어린 시절부터 1955∼1956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의 버스승차 거부투쟁을 통해 미국 전역의 이목을 끌며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떠오른 시기,1968년 테네시의 한 모텔에서 흉탄에 맞아 절명하는 순간까지 다룬다.간간이 내비치던 킹의 자만과 허영,난잡한 혼외정사 등 도덕적 약점과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기’를 고대했을 만큼 극심했던 심적 갈등,죽기 직전까지 시달렸던 ‘순교’에 대한 의무감 등도 숨김없이 보여준다.1만 6000원. ●야만의 시대/김성진 지음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인 이라크는 20세기에 들어 오토만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 됐다.2차대전이 끝나자 겨우 독립을 이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이란 새로운 적을 만나 신음하고 있다.영화 ‘왝 더 독’‘쓰리 킹즈’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전쟁에 반대한 유럽 각국의 의도를 헤아려 보게 한다.영화를 통해 문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의 실상을 파헤쳤다.‘착한 쿠르드,나쁜 쿠르드’‘살아 있는 붓다’‘마수드 아프간’ 같은 분쟁지역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분석도구로 삼았다.1만 1800원.˝
  • ‘아라크노피아 수목원’ 여는 거미박사 김주필 교수

    “거미줄로 미사일 공격도 막을 수 있다.거미농법은 최상의 무공해 환경농법이다.” “정말?” “암,그렇고 말고.또 있다.” “뭔데요?” “양귀비는 거미줄로 만든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다녔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고집스럽게 해온 사람을 만나면 절로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던가.‘거미군단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별칭을 얻은 사람이 있다.‘표준생물’의 저자로 이름이 귀에 익은 김주필(61·생물학과) 동국대 교수.‘거미박사 1호’이기도 하다. ●양귀비 브래지어도 거미줄로 만들어 그는 30년째 ‘거미와의 춤’이라는 유별난 인생을 걷고 있다.최근에는 국내 유일의 ‘아라크노피아’(Arachnopia,거미천국)를 만들어 신화속의 ‘아라크네’를 환생시켰다.일반인들에게 생소하기만 한 ‘거미학’은 신비의 나라에 꼭꼭 숨겨진 보물상자를 연상케 한다. 팔당댐을 지나 북한강 굽이굽이,차로 20분쯤 달렸다.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삼거리에 들어서자 ‘운길산’ 입구가 나왔다.오솔길 따라 3㎞가량 더 들어갔다.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른다는 진중천 계곡이 허리춤에 차갑게 와닿았다.어느새 뻐꾹새가 바로 옆에서 생음악으로 마중했다.눈앞에는 한 폭의 동양화가 흰 구름을 캔버스 삼아 기분 좋게 펼쳐졌다.왜 ‘운길(雲吉)’이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그 사이로 ‘아라크노피아 생태수목원’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본격적인 개장을 하지 않았지만 찾는 손님은 꽤 많아 보였다.지나는 산객(山客),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연인…,시인 이성부씨의 일행도 얼핏 눈에 띄었다. 작업복 차림의 김 교수가 개울가 옆의 낡은 의자에 의지해 잠시 쉬고 있었다.입구 바로 왼쪽에는 ‘거미박물관’이 낯설게 자리해 있었다.뒤쪽으로는 각종 야생화 단지,식물원,곤충·거미사육장 등이 산자락을 끼고 쭉 펼쳐져 있었다..김 교수는 2만평은 족히 된다고 했다.또 오는 8월1일부터 정식 개장하지만 벌써부터 입소문이 났는지 요즘 하루 평균 100여명 가량 입장한다했다. 거미박물관으로 들어갔다.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별천지였다.꿈틀대는 거미들이 유리관 속에 쭉 진열돼 있었다.그는 “이곳에 진열된 거미종류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2000여종(국내산 630종 포함)이다.”면서 “알코올로 보관된 샘플용 거미까지 포함하면 수만마리나 된다.”고 말했다. ●세계거미 2000여종 수만마리 모아 유리관 속에 갇혀진 거미들은 뭘 먹고 살까.그는 진열대 밑에 라면상자 하나를 쑥 꺼냈다.숭숭 패인 계란판과 하얀 녹말가루,그 사이로 메뚜기들이 잔뜩 기어다니고 있었다.메뚜기는 집단서식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먹이 등의 조건만 갖추면 얼마든지 번식한다고 했다.이 메뚜기들이 바로 ‘거미밥’이었다. 거미연구가 어디까지 왔는지 물었더니 “분류생태학까지 왔다.”고 대답했다.지난해 말 두 종류의 ‘거미도감’을 비로소 발간한 것이 그 결실이라고 덧붙였다.오대양 육대주,30년 가까이 발품을 팔아 수집한 전세계의 2000여종을 학문적으로 꼼꼼히 분류했다. 왜 하필이면 거미연구일까.그는 이같은 물음에 “거미줄로 미사일 공격까지 막을 수 있지.”라고 즉답했다.이어 “거미는 유충이다.파리·모기·바퀴벌레 같은 해충의 천적이다.또 거미줄로 의료용 봉합실,국부마취제,브래지어 등을 만들 수 있지.양귀비가 거미줄로 만든 브래지어를 착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며 줄줄 꿴다. 이뿐만 아니다.방탄조끼 같은 특수용품 제작과 우주항공,통신사업에도 활용된다.특히 거미독은 알츠하이머 같은 치매치료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아울러 누에의 실크보다 거미줄이 10배 이상 강하기 때문에 섬유산업에도 획기적 재료로 응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거미가 천연 살충제라는 것.논에 거미를 풀어 놓으면 벼멸구·매미충·이화명나방·삼화병나방 등의 유충과 어미 등을 모조리 잡아먹는다.그는 6년 전 농약을 쓰지 않고 거미로 해충을 퇴치하는 영농법을 개발해 냈다.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논 500평에 살충제를 쓰지 않고 거미를 풀어 농사를 지었다.벼 한 포기에 필요한 거미는 5∼10마리.늑대거미·깡충거미·게거미는 거미줄을 치지 않고 벼의 밑동·줄기·잎에 도사리고 있다가 침입해온 해충을 먹어 치운다. ●거미는 천연 살충제… 수확 20% 늘어 “거미군단을 논에 풀어 놨더니 쌀 수확량이 20% 가량 늘었지요.해충이 없어져 벼의 생육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거미는 인간의 생활에 무궁무진한 장점을 제공하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몰라주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반면 미국은 국방부 주도로 방탄조끼를 오래전부터 만들었는가 하면 최근에는 듀폰사를 통해 미사일 방어용 ‘특수그물’의 연구용역을 의뢰했다고 말했다.거미줄이 염소의 우유와 결합하면 더욱 단단해지는 성질을 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농림부 주도로 친환경 농법,과수재배 등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차원에서 70년 동안 거미연구를 해온 일본의 경우도 마취제와 소화제 등 의약품 응용연구에 한창이라고 설명했다.브라질 또한 오래 전부터 거미의 독을 전문으로 연구하며 미국에 납품해 오는 등 달러박스의 효과를 톡톡히 맛보고 있다고 말했다.거미독은 군 야전용 해독제로 일품이란다. ●거미연구가 국가수준지표라는거 아세요? 그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면서 “한국은 거미 연구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과거에는 비누와 종이소비량이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했는데 요새는 거미연구를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그만큼 거미는 환경변화를 감지하는 환경지표생물로 쓰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같은 질문에 몸소 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20년째 세계거미학회에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는 한편 세계 거미학자들을 해마다 초청하고 있다.일본의 경우 거미학회 회원이 5000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학회조차 없는 실정이다.그나마 다행히 김 교수가 상임 연구원 5명과 함께 고집스럽게 거미연구를 해와 국제무대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 그가 거미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30년전.학생들과 곤충채집을 위해 운길산 일대에 왔다가 신종 거미를 발견하면서였다.며칠 후 그는 600만원을 들고 다시 와 마을사람들과 담판을 지어 1800평의 임야와 집 한 채를 사들였다.이후 한국에만 서식하는 신종 거미 130여종을 잇따라 발견하면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연구비용은 1969년에 저술한 고교참고서 ‘표준생물’의 인세로 충당했다. “아침에 거미를 보면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영국의 경우 거미가 옷에 있으면 돈을 벌게 된다는 믿음이 있지요.” 그는 ‘한국거미’라는 영·한문 학술논문집을 20년째 전세계 400여 농생물학자에게 발송하고 있다.국제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에게 남은 일이 한 가지가 있다.사재를 털어 국내 처음으로 동물학상을 제정하는 것.후학들에게 거미연구의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김주필교수 프로필 △1943년 황해 연백 출생 △1967년 서울대 동물학 학사 △1985년 동국대 생물학 박사 △1976년∼86년 대영학원 원장 △1983년∼현재 방통대 강사.거미연구소장 △1985년∼현재 서울대동창회 부회장·곤충학회 이사 △1990년∼현재 동물학회 회장 △1991년∼현재 동국대 생물학과 교수·생물학과장.중국 후난대학 겸직교수 △주요저서=표준생물,거미학연구,환경생물학 등 ˝
  • 노원 ‘강북 문화특별구’로 뜬다

    오는 16일 노원문화예술회관 개관을 계기로 강북의 문화특별구로 부상하려는 노원구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노원문화예술회관이 문을 열면 서울 강북의 문화지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개관공연으로 16∼17일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등 수준급 공연이 잇따라 무대에 올려진다. 노원구 중계본동에 둥지를 튼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지상 6층,지하 3층,연면적 3983평에 616석의 대공연장,292석의 소공연장,200평 규모의 잔디광장과 150석의 스카이라운지를 갖춘 최고급 문화예술 전용공간이다. 지난 1998년에 착공,6년여에 걸쳐 완공된 이 시설은 사업비만 245억여원이 투입됐다.노원구가 145억원을 부담했고 나머지는 정부와 서울시에서 지원받았다.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서초동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대공연장에는 좌우 이동식무대와 상하 이동식 오케스트라 전용석이 설치됐고,내부 벽면을 흡음·반사처리해 객석 어디서나 똑같은 음질을 들을 수 있다.특히 객석의 앞뒤 의자 사이가 넓고 장애인 관람석이 따로 설치돼 있어 누구나 편하게 문화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다목적 공연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영사시설도 갖췄다.대학로의 여느 소극장보다 넓은 소공연장과 70평 규모의 전시실,40평 규모의 다목적홀 등도 크고작은 문화행사를 진행하기엔 안성맞춤이다.불암산과 중계동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6층 스카이라운지와 회관입구 잔디광장의 야외무대는 가족단위 행사와 어린이 야외학습에 이용될 계획이다. 노원구는 문화예술 전용공간인 만큼 ‘노원아트센터’로 명명하려 했으나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의회의 결정으로 무산됐다. 개관을 앞두고 지역주민들의 기대도 크다.상계동에 사는 임혜진(26·여·회사원)씨는 “수준높은 예술작품을 광화문이나 강남까지 가지 않고 관람할 수 있어 좋다.”며 “연극·오페라뿐만 아니라 대중가수들의 콘서트도 유치되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인근 지역주민들도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한국예술종합학교 조교를 역임한 연극배우 고승수(28·성북구 석관동)씨도 “자치구가 만든 문화예술공간 중 최고수준으로 생각된다.”며 “노원지역 뿐만 아니라 강북 전체 주민의 문화수준을 높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기재 노원구청장은 “노원문화예술회관의 개관으로 노원구가 교육과 문화의 메카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내년 9월에 디지털도서관이 완공되면 올해 문을 연 어린이도서관과 더불어 ‘문화의 삼각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첫 연작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낸 유재현씨

    유재현(42)의 첫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창비사 펴냄)는 우리 문단에선 드물게 캄보디아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배경뿐만 아니라 작품 속 등장인물이 대부분 현지인이어서 작가가 한국인이란 점 말고는 ‘한국 작품’이란 수식어가 낯설 정도다. “최근 ‘동북아시대’ 운운하면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먼 이웃’입니다.오히려 멀리 떨어진 미국은 이웃처럼 느끼지요.아시아에 대한 굴절된 시선을 바로잡고 그들의 상황 속에서 우리 문제를 볼 요량으로 소설에 담았습니다.” 20∼30대를 학생·노동운동으로 보낸 작가는 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등 급변하는 현실에서 방황하다가 92년 중편 ‘구르는 돌’로 등단했다.12년 만에 첫 소설집을 냈으니 과작인 셈이다. “등단한 뒤 1년 동안 작품을 거의 못썼습니다.능력도 능력이지만 제게 맞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죠.그래서 10년 가까이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했습니다.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모두 다 접고 90년대말 훌쩍 동남아시아로 떠났습니다.”. 태국,베트남 등지를 떠돌다가 아예 작품을 써볼 작정으로 99년 캄보디아를 찾았다.“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동소설에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정지한 ‘후일담 소설’에 갇히기는 더 싫었다.”는 그는 ‘바깥’을 선택했다.‘밖(아시아)’으로부터 들여다봄을 통해 ‘안(한국)’에서 잃어버린 전망을 찾으려는 희망으로 소설 ‘시하눅빌‘는 시작됐다. “한때 ‘대안의 땅’을 찾아 부모님이 사시는 미국을 비롯 멕시코를 전전했지만 ‘이곳은 아니다.’ 싶더군요.식민지·전쟁 등 우리와 역사적 경험이 비슷한 동남아시아에 눈길이 갔습니다. 특히 97년 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캄보디아는 우리와 역사적 배경이 비슷해 시사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연작으로 써내려간 6편의 작품은 해안가 작은 도시 시하눅빌의 비루한 일상을 담았다.작가의 경험을 녹여 냉철한 국외자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캄보디아의 표정은 우울하고,어둡고,참혹하기까지 하다. 도박과 마약,매춘이 횡행하는 풍경 속에서 돈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거나 생존을 위해 마약상이 되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솜산과 뚜이안’‘대마는 자란다’)과 시장 개방과정에서 “명분도 없이 오직 돈만을 위해 벌어지는 아귀다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이 겹친다. 그러나 작가는 이 지옥 같은 현실에 무릎을 꿇지 않고 희망을 길어 올린다.지뢰사고로 남편을 잃은 찬나가 딸과 합동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을 다룬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는 훈훈하게 다가온다. 언제까지 시선이 캄보디아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고 물었더니 치밀한 ‘소설 전략’을 들려주었다. “지금은 가는 단계이지만 언젠가 한반도로 돌아올 계획입니다.곧 발표할 장편에 한국인을 등장시켜 왜 캄보디아가 한국인의 의식이며 존재와 무관하지 않은가를 파헤치겠습니다.궁극적으로 전후 세대의 눈으로 한국전쟁의 의미를 찾아낼 계획입니다.” 황석영이 ‘심청’으로 씨앗을 뿌린 우리 문학의 ‘동아시아적 상상력’에다 늦깎이 작가인 유재현이 그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물을 주고 가꿔서 활짝 꽃피울지 기다려진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宋검찰총장 “공기업 비리 중점수사”

    송광수 검찰총장은 3일 공기업 비리 수사를 부정부패 척결,민생분야 수사와 함께 3대 과제로 정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공적인 성격을 띠는 기업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국민이 바라고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부단한 척결,민생분야에 대한 수사 등과 함께 공기업 비리 수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총장은 그러나 “재벌기업 등 대기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비리자료가 있으면 수사를 해야 하겠지만 일제 수사방식으로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다만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가 대기업 비리가 나오면 대선자금 수사발표때 밝혔던 기업수사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검찰은 지난달 21일 수사발표때 “새로 발생하는 기업비리는 한층 강화된 기준으로 엄벌하겠다.”면서 “특히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변칙적 부의 세습과 분식회계 등 불투명한 기업 경영,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이 드러나면 철저하고 집중적인 수사를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송 총장은 또 “기업형 폭력조직과 외국 마피아와 유사한 마약거래조직 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조직범죄 등 민생분야에 대한 수사도 강력하게 펴나가겠다.”고 말했다.나아가 검찰 내부의 정화작업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대선자금 수사과정 등에서 나타난 문제점 등을 개선하기 위한 ‘수사제도 관행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수사시스템을 총제적으로 재점검,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송 총장은 ‘중수부의 기능 축소 논의’와 관련,“중수부 기능은 상당기간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다만 중수부 3개과 가운데 1개과를 없애는 방향으로 기구를 축소하되 수사상 필요성이 제기되면 대선자금 수사때처럼 전국에서 검사들을 뽑아 중수부를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서울·뉴욕 이미지 팝니다

    9·11테러 이후 한동안 오락영화의 공간으로 뉴욕을 끌어들이는 데 망설였던 할리우드가 다시 ‘뉴욕 빅 세일’에 들어갔다.올 여름엔 태도를 싹 바꿨다. ●할리우드,‘뉴욕 빅 세일’ 4일 개봉하는 SF 재난영화 ‘투모로우’에서는 힘과 번영의 상징도시인 뉴욕을 극의 주요공간으로 전면에 부각시켰다.1억 2000만달러를 밀어넣은 기상이변 소재의 이 블록버스터에서 뉴욕은 빙하에 파묻히는 대재앙 도시다.도시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 부분만 남기고 몽땅 빙하에 잠기는 장면은 9·11테러의 참상만큼이나 끔찍이 사실적이다. 주드 로·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SF 대작 ‘스카이 캡틴 앤드 더 월드 오브 투모로우’(Sky Captain and the World of Tomorrow)에서도 맨해턴의 마천루는 인정사정없이 허물어진다.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로봇들의 공격으로 뉴욕이 초토화될 위기에 처하자 연인인 여기자와 비행조종사가 이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스파이더맨 2’ 역시다.2억달러를 들인 이 블록버스터도 뉴욕을 맘껏 ‘요리’한다.스파이더맨이 기어다니는 맨해튼 마천루의 실루엣 자체가 또 하나의 인상깊은 캐릭터임은 물론이다.뉴욕이라는 도시 브랜드가 미국영화에서 관객의 팬터지를 극대화하는 기반으로 활용된 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러브스토리=뉴욕’ ‘형사액션=LA’ 식의 의도된 공식이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 지 오래. 러브스토리쪽에선 특히 그렇다.외국영화의 마케팅을 해온 홍보사의 한 관계자는 “‘로맨스는 뉴욕에서 이뤄져야 제맛’이라는 편견이 생길 정도로 할리우드 사랑이야기의 공간은 끝없이 뉴욕 언저리를 맴도는 추세”라면서 “뉴욕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로맨스물은 관객들의 관심을 얻어내는 마케팅 작업도 그만큼 수월하다.”고 말했다. 최근만 해도 ‘러브 인 맨하탄’ ‘투 윅스 노티스’ ‘섬원 라이크 유’ ‘저지걸’ 등이 모두 뉴욕의 브랜드 이미지를 짭짤하게 써먹은 로맨틱 드라마들이다.러브스토리의 간판 ‘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도 수입사가 전략적으로 밋밋한 원제를 그대로 직역해 쓴 사례다. ●‘서울 브랜드’를 팔아야? 홍콩 월드프리미어,한국·홍콩 동시개봉 등 여주인공 전지현의 한류열풍을 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는 서울 도심의 화려한 야경이 롱테이크로 선보인다. 국가보안 차원에서 촬영금지돼온 서울의 마천루가 스크린에 와이드 노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해 말 제작사측이 쵤영허가를 요청해오자 서울영상위원회가 서울시,서울소방방재본부,수도방위사령부 등과 협상 끝에 야간 항공촬영을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성사시킨 것. 서울영상위의 장성연 기획홍보팀장은 “전지현이 주도하는 오프닝 장면의 고층빌딩에 ‘Hi! Seoul’ 문구를 그래픽으로 심어 4초쯤 노출시켰다.”며 “한류열풍을 타고 수출판도가 밝을 걸 기대하고,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월드컵경기장을 특별등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도시를 브랜드화하는 ‘윈-윈’전략의 가치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한해 250여편의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뉴욕주의 경우 필름커미션이 무려 7개.“그 중 대표기구인 뉴욕주정부 필름커미션은 촬영 지원과 비즈니스·관광을 연계한 패키징 효과를 톡톡히 챙긴다.”는 게 서울영상위측의 설명이다. 이미지의 환상이 문화동력이고,국제영화제 시상식장에 한국영화가 줄줄이 올라가는 이즈음,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서울의 이미지를 좀더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팔아먹어야’하지 않을까.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宋검찰총장 “공기업 비리 중점수사”

    송광수 검찰총장은 3일 공기업 비리 수사를 부정부패 척결,민생분야 수사와 함께 3대 과제로 정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공적인 성격을 띠는 기업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국민이 바라고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부단한 척결,민생분야에 대한 수사 등과 함께 공기업 비리 수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총장은 그러나 “재벌기업 등 대기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비리자료가 있으면 수사를 해야 하겠지만 일제 수사방식으로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다만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가 대기업 비리가 나오면 대선자금 수사발표때 밝혔던 기업수사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검찰은 지난달 21일 수사발표때 “새로 발생하는 기업비리는 한층 강화된 기준으로 엄벌하겠다.”면서 “특히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변칙적 부의 세습과 분식회계 등 불투명한 기업 경영,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이 드러나면 철저하고 집중적인 수사를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송 총장은 또 “기업형 폭력조직과 외국 마피아와 유사한 마약거래조직 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조직범죄 등 민생분야에 대한 수사도 강력하게 펴나가겠다.”고 말했다.나아가 검찰 내부의 정화작업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대선자금 수사과정 등에서 나타난 문제점 등을 개선하기 위한 ‘수사제도 관행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수사시스템을 총제적으로 재점검,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송 총장은 ‘중수부의 기능 축소 논의’와 관련,“중수부 기능은 상당기간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다만 중수부 3개과 가운데 1개과를 없애는 방향으로 기구를 축소하되 수사상 필요성이 제기되면 대선자금 수사때처럼 전국에서 검사들을 뽑아 중수부를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법무사시험 지원자 줄어

    토익점수가 반영되는 사법시험의 ‘대체재’로 평가받아 경쟁률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던 법무사시험 출원자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는 2일 제10회 법무사시험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120명 모집에 6588명이 지원,54.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100명 모집에 6633명이 지원,66.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지난해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출원자 수는 45명 줄어드는 데 그쳤지만 모집 인원이 10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 경쟁률 하락폭은 더 컸다. 올해 사법시험에 처음으로 영어대체제가 도입되면서 응시자가 40% 줄어들었을 때만 해도 영어점수를 못받은 장수 수험생들이 법무사 시험에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출제경향에서 차이가 있고 사시에 없는 실무과목이 포함돼 있긴 해도 사시와 시험과목이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00명으로 묶였던 선발인원이 올해에는 20명 더 늘어나 장수 수험생들이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험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출원자 수가 줄어든 것은 법무사 시장의 미래가 어둡다는 점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사시합격자 1000명 시대로 법무사 업무를 겸할 수 있는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고,등기 전산화가 이뤄지면서 법무사가 편하게 돈 벌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서울법무사회 관계자는 “인터넷 발달로 웬만한 법무사 업무도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 영업환경이 많이 위축됐다.”면서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젊은 법무사들만이 살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영향이 있던 1999년에 9000명대까지 치솟았던 법무사 시험 출원자 수는 차츰 줄어 최근 6600∼67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 사법연수생 실무실습 알차졌다

    ‘전문기관 실무수습’에 대한 사법연수원생들의 관심이 뜨겁다.연수원측은 이런 관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체수습제’ 도입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문기관 실무수습 제도 자체는 이미 지난 81년부터 도입됐다.그러나 그동안 연수원생들의 진로가 판·검사 임용이나 변호사 등 법조직역이 대부분이어서 제도에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고된 법률공부 중간에 끼어 있는 휴식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비법조 직역에 진출하던 연수원생이 지난 98년 2명,99년 20명,2000년 32명,2001년 41명,2002년 55명으로 차츰 늘었다.지난해 비법조 직역 진출자는 24명이었지만 연수원 수료 때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연수원생은 169명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연수원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관을 ‘콕’ 찍어 요구하는 등 전문기관 실무수습에 강한 열의를 비치고 있다.연수원측도 연수원생들의 적극성에 내심 놀라는 눈치다. ●‘소신지원’ 뚜렷 사법연수원은 연수원 37기생 958명에 대한 수습기관 배정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이들은 배정기관에서 7월 한 달 동안 2∼4주간 실무수습을 받는다.진로에 대한 고민을 반영해서인지 연수원생들의 지원에도 일정한 경향이 나타났다.우선 증권·금융·특허 등 지적재산권 관련 분야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증권거래소에 46명,증권연수원에 24명,증권예탁원에 29명이 각각 지원했다.금융감독원에는 48명이 배정받았다.지적재산권 관련해서는 한국MS사에 10명,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78명이 몰렸다. 이 분야들은 전문성이 높고 새로 생기는 분야여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거물 변호사만 찾는 형사사건과 달리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에 따라서는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원하는 곳에 가겠다는 연수원생들도 늘었다.올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실무수습을 가겠다고 나선 연수원생들은 중앙본부 9명,부산·대전본부에 각 2명 등 모두 17명이다.실무수습으로 1명을 받겠다는 금속산업노조 법률원에도 2명이나 지원,모두 실무수습으로 배정받았다.연수원측에서는 이들 가운데 최소한 반 이상은 노동계 쪽으로 진로를 굳혔다고 보고 있다. 언론기관에 대한 관심도도 높았다.중앙일간지와 방송사 두 곳에 각각 13명과 25명의 연수원생들이 배정됐다.기업으로서는 최근 크게 강화되고 있는 삼성 법무팀이 25명을 배정받아 눈길을 끈다. ●정부부처의 무관심 그럼에도 연수원의 고민은 깊다.각급 기관들이 연수원생들을 받으려 선뜻 나서지 않아서다.그나마 이번에 연수원생들을 배정받은 기관들은 변호사 자격자를 이미 채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변호사 자격자가 없는 곳에서는 공문을 보내도 아예 반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부기관의 ‘기피현상’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정부입법이 의원입법보다 훨씬 많은 현실에서 정부가 먼저 법률전문가 채용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국회 등에서 다듬어지기는 하지만 정부입법은 아무래도 행정편의주의적 시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면서 “보편적인 법의 관점에서 그런 부분을 교정하려면 법률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연수원 교수들 사이에서는 법조 일원화의 한 방안으로 정부기관에서 일정 정도 이상 경력을 쌓은 변호사들 중에서 판·검사를 뽑자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정부기관은 우수한 인력을 법무담당관으로 임용해 정밀한 입법안을 내놓을 수 있어서 좋고,미래의 판·검사들로서는 이해관계가 얽힌 각종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의 한 교수는 “판·검사 될 분이라 부담된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그렇더라도 각 부처의 고충을 널리 알리고 실상을 홍보할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사실상의 인턴십,‘대체수습제’ 연수원측은 연수원생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올해부터 ‘대체수습제’를 도입했다.분리 진행 중인 변호사 실무수습과정과 전문기관 실무수습과정을 통합하는 제도다.이럴 경우 실무수습기간이 3개월로 늘어난다.몇주나 한 달 정도 실무수습하는 정도로는 취업으로 실제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체수습제는 연수원생들이 3개월여 동안 사실상 ‘인턴’개념으로 해당 기관에서 일한다.물론 본인의 의사표시와 연수기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연수원측은 올해 이미 관련 규정을 고쳐 19명의 연수원생들에게 국무조정실,금융감독원 등의 기관에서 이 과정을 밟게 하고 있다. 사법연수원 임시규 기획총괄 교수는 “올해는 홍보가 늦어 19명에 그쳤지만 내년에는 각급 기관에 대한 홍보와 협조업무를 강화해 원하는 연수원생들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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