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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정책 Q&A] 소나무재선충 감염 땐 회복 안돼 조기발견·피해목 이동 차단 관건

    [생활정책 Q&A] 소나무재선충 감염 땐 회복 안돼 조기발견·피해목 이동 차단 관건

    재선충, 사람·동물엔 전염 안돼 감염 예방차원 주변 소나무 제거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지금까지 사라진 소나무가 1000만 그루에 이른다. 2004년 피해가 확인된 제주도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과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조기 발견과 방제가 관건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의 심각성과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알아봤다. Q. 소나무재선충병이란. A. 감염되면 100% 말라 죽는 치명적인 병해충이다. 재선충은 크기가 1㎜ 안팎의 실 같은 선충으로 솔수염(북방수염)하늘소의 몸에 기생하다 나무에 침투해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를 막아 나무를 고사시킨다. 피해수종은 소나무류와 잣나무 등이며 치료약이 없고 매개충의 천적도 없다. 재선충이 침입하면 한 달 내 잎이 시들고 빠른 속도로 붉은색으로 변하며 결국 고사한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연간 이동 거리가 2~3㎞에 불과해 자연 확산보다는 감염목의 이동에 따른 감염이 피해 원인으로 분석된다. Q. 소나무 멸종 가능성은. A.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체 산림(640만㏊)의 23%(147만㏊·16억 그루)를 차지한다. 방제를 하지 않고 방치한다해도 우리나라 소나무가 멸종하는 데 70년 이상이 걸리고 700m 고지대에서는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단기간 내 소나무가 멸종될 가능성은 없다. Q. 감염목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A. 다른 병해충과 달리 재선충병은 한번 감염되면 회복되지 않는다. 1쌍의 재선충은 20일 후 20여만 마리까지 증식한다. 피해목을 방치하면 주변 나무들로 급속히 확산되기 때문에 발견 즉시 제거하는 것이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제다. 문화재보호구역·국립공원·군사시설보호구역도 예외가 아니다. 또 2차 피해를 막고 예방하는 차원에서 주변 소나무도 제거하고 있다. Q. 사람이나 동물에게도 전염되는가. A. 재선충은 식물에 기생하는 선충으로 소나무류에만 기생하며 사람이나 동물에게는 전염되지 않는다. Q. 훈증처리한 감염목은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나. A. 훈증은 제거한 감염목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에서 약제를 뿌린 후 녹색비닐로 덮어 밀봉하는 방제 방식이다. 훈증목은 방제 후 6개월까지 훼손 및 이동이 금지되고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매개충이 죽은 훈증 더미는 수집해 파쇄 처리한다. Q. 다른 하늘소류도 재선충병을 전파하나. A. 소나무류와 잣나무 고사목에는 솔수염하늘소 외에 다른 하늘소류가 서식하지만 소나무재선충병을 전파하지는 않는다. Q. 고사한 소나무를 발견하면. A. 감염목 반입으로 인한 재선충병의 인위적 확산을 막아야 한다. 감염된 소나무를 무단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 의심목을 발견하면 지방자치단체 산림부서나 산림청(1588-3249)에 신고해야 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동굴에서 채식만 하다 멸종된 곰이 실재했다(연구)

    동굴에서 채식만 하다 멸종된 곰이 실재했다(연구)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동굴곰(Cave Bear)이 채식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멸종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동물은 대부분의 화석이 동굴에서 발견됐다는 점 때문에 ‘동굴곰’이라고 불렸다. 지구상에서 멸종된 것은 2만 5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무렵이었다. 키 170㎝ 이상의 몸집이 현존하는 곰에 비해 조금 더 큰 편이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 대학교 연구진은 40만 년 전 유럽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동굴 곰의 뼈를 정밀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 활용된 동굴곰의 뼈는 벨기에의 한 동굴에서 발견한 것으로, 연구진은 이 뼈의 성분을 분석해 과거 이 곰의 식생활을 ‘재현’했다. 특히 뼈 내부의 콜라겐에서 동위원소를 찾아 뼈를 구성했던 식품의 종류를 분석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그 결과 과거 동굴곰이 지독하게 채식을 고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것이 멸종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현생 곰은 잡식성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과일부터 생선, 사슴까지 가리지 않고 먹는다. 하지만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동굴곰은 지나칠 만큼 철저하게 채식을 고집했다. 심지어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새끼 곰 역시 풀이나 열매 등만을 먹어 온 어미의 영향으로 모유를 먹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이러한 동굴곰의 특성이 오늘날의 자이언트판다와 유사한데, 먹는 음식과 관련해서는 매우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자이언트판다처럼 동굴곰 역시 먹는 것을 강하게 제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진은 “당시 동굴곰은 균형이 맞지 않는 이러한 식단을 유지하던 중 빙하기 막바지에 들어오면서 식물의 공급이 줄어드는 현상을 만나자,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이것이 결국 동굴곰의 멸종을 유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굴곰은 오로지 동굴에서만 겨울잠을 잤으며, 일생의 상당시간을 먹이를 찾아 헤매는데 썼다”면서 “채식만 고집한 탓에 빙하기가 온 뒤 먹이를 찾는 것이 힘들어졌고 이것이 곧 멸종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동굴곰의 뼈를 수집하고 현생 곰과 비교하는 연구 작업을 펼치는 한편, 당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 데일리에 소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8세 ‘최연소’ 공인회계사 나왔다…“숫자에 워낙 자신 있어”

    18세 ‘최연소’ 공인회계사 나왔다…“숫자에 워낙 자신 있어”

    초등학교 4년이 정규 학력의 전부인 10대가 올해 제51회 공인회계사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조만석(18·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군이다. 두 차례 월반으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고교과정은 검정고시, 대학은 독학사(경영학) 자격을 취득한 뒤 최근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했다. 공인회계사 역대 최연소 합격 기록이다. 국내 정상급 회계법인 두 곳에서 벌써 관심을 보여 조 군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회계법인에서 채용면접을 봤다. 그는 “숫자에 워낙 자신이 있었고, EBS방송 상업경제와 회계원리를 들어봤는데 이해가 잘 돼 시험에 뛰어들 생각을 했다”며 “최종 합격했으니 회계법인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회계감사와 재무자문 등을 공부해 업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영어에도 신경을 쓰고 민법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한 것도 공인회계사 일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민법이나 세법 등 관련 법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 군은 초등학교에 다닌 4년을 빼고는 학교는 물론 학원 근처에도 얼씬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 살다가 부모를 따라 4살 때 천안으로 옮겨와 2005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섯 살에 초등학교 6학년 수학경시대회에서 동상, 일곱 살에 한자 2급 자격을 따고 신문을 읽기 시작한 그는 15살 때인 2013년 그동안 딴 자격증 17개를 가지고 S그룹 고졸 공채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그해 대입 수시전형에서 S대 경영학과에 지원했다가 서류전형에서 탈락하자 2014년 아예 공인회계사 시험에만 ‘올인’했다. 책만 파서는 불가능한 전산학 등 일부 과목은 인터넷강의로 독학했다. 회계·세무·재무·금융 관련 실무자격증을 9개나 취득했고, 토익(865점)도 치르며 회계사시험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세법, 2차 과목인 회계감사가 어렵다고 생각됐는데 막상 해보니 크게 힘들진 않았다”고 말한 조 군은 “어떤 시험문제든 사람이 출제를 하는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차에 이어 2차 2과목, 올해 2차 나머지 과목에 합격, 회계사의 꿈을 이룬 그는 성적도 평균 73점으로 합격자 909명 중 상위권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조원상(60)씨는 “마흔셋에 낳은 늦둥이”라며 “유모차를 타고 다닐 때부터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더해 깜짝 놀랐는데 결국 회계사시험에 합격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조 군은 “아직 어리고, 혼자 공부했다고 해서 그런지 오늘 회계법인 면접에서 사회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면서 “처세술이나 이런 게 부족할지 모르지만, 친구도 많고 일을 하면서 배워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며 웃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락사 앞둔 고양이, 오히려 주인을 위로하다

    안락사 앞둔 고양이, 오히려 주인을 위로하다

    나이가 너무 많아 죽음을 앞에 둔 한 고양이가 오히려 주인을 위로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공개돼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최근 미국 소셜사이트 레딧의 ‘애도와 상실’(mourning/loss)이라는 제목의 게시판에 공개된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사진 속 고양이는 차량 조수석에 앉아 뒷좌석에 앉아 손을 내밀고 있던 한 남성을 바라보며 마치 위로하듯 자신의 앞발을 올리고 있으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여성도 잠시 그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사진을 공개한 레딧 사용자(아이디 abernha3)는 “자신의 고양이 앤드루는 내 동생”이라면서 “지난 15년 반을 함께 살았다”고 설명했다. 즉 앤드루는 인간으로 치면 78세 정도 되는 할아버지라는 것. 문제는 앤드루가 지난해부터 몸이 불편한 증상을 보여왔다는 것. 치료를 위해 동물병원에 가보기도 했지만 노환으로 인한 것이어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 며칠 사이에는 뒹굴뒹굴하거나 가르랑거리지 못할 정도로 아파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와 그의 어머니는 앤드루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자 안락사를 위해 함께 동물병원에 가게 됐다고 한다. 그는 “드디어 때가 와버렸다. 앤드루를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슬픈 속마음을 밝혔다. 이어 “차 안에서 앤드루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보다 앤드루는 여전히 강하다”고 덧붙였다. 이 안타까운 게시물에는 수백 명의 레딧 사용자가 댓글을 담겼다. 한 네티즌은 “고양이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알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내 고양이도 마지막 순간은 당신 고양이처럼 매우 침착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단 한 장의 사진이지만, 당신이 얼마나 앤드루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앤드루도 분명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 네티즌은 “안락사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괴롭다. 당신의 결정은 옳은 일이다”면서 “앤드루가 편히 잠들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진 게시자는 “친구를 잃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답하며 많은 사람의 격려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진=abernha3/레딧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시의회 김태수의원. 市와 면목동 버스차고지 개발방안 논의

    서울시의회 김태수의원. 市와 면목동 버스차고지 개발방안 논의

    중랑구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 컨트롤타워를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회 김태수 의원(중랑1.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원회관 의원연구실에서 서울시 관계공무원을 만나 면목4동 버스 차고지(북부운수) 부지 개발과 관련해 논의를 했다.이 부지는 약 962평으로 1974년부터 버스차고지로 사용됐다. 2000년 12월에 선진교통 소유 부지를 서울시가 매입해 현재 북부운수(2112번, 2233번)가 임대 사용하고 있다. 차고지 개발은 지난 4.13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영교 국회의원 후보는 부지 개발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요청했다. 이에 박 시장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서 후보가 패션타운(의류 공장)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서영교 국회의원은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버스차고지를 지하로 조성하고 지상은 패션타운으로 개발해달라고 서울시 관계공무원에게 전달했다. 여기에 김 의원도 힘을 보탰다. 관계공무원을 만나 차고지 부지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서울시는 버스차고지를 지하로 조성할 경우 800억 정도의 예산이 소요돼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용역조사를 통해 타당성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개발을 성사시키기 위해 대안을 제시했다. 버스차고지는 현행대로 두고 지하는 공영주차장으로, 지상은 패션타운을 비롯해 벤쳐타운, 창년창업센터, 협동조합센터 조성 등 다각도로 검토해달라고 서울시에 주문했다. 김 의원은 “중랑구는 의류공장, 가방공장 등 소규모 공장이 서울시내에서 가장 많은 지역으로 이들 공장을 성장시키고 더 나아가 고부가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컨트롤타워(센터)를 건립해 지역 상권을 살리고 건실한 기업을 육성해 중랑구 경제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세계 최하위권 남녀평등 격차지수 부끄럽다

    우리나라의 남녀 간 격차지수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발표하는 젠더 격차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체 145개국 중 115위에 그쳤다. 이 지수는 경제 참여 기회, 교육적 성취,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등의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계량화한 것이다. 세계 경제대국 10위대에 머무는 우리의 위상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여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남녀 간 불합리한 격차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97위에서 2008년 108위로 처음으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는데 지금도 최하위권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가 높은 미국보다 여성 대통령을 먼저 배출한 나라에서 어쩌다 이런 양성 간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도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외형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사시·외시·행시 등에서 여성들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공직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실력으로라면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일부 여성들의 얘기일 뿐 전체 여성들의 지위에는 큰 변화가 없다. 비슷한 일을 해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 대비 64%에 불과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5.6%로 남성의 77.6%에 못 미친다. 공직(5%)이든 기업(11%)이든 고위직 여성들의 숫자는 손꼽을 정도다.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양성 평등이 실현돼야 하는 이유는 여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양성 평등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이 이뤄지면 출산율이 높아지는 등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 과실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 기업들도 혜택을 나눠 갖게 된다. 성 평등이 이뤄진 국가의 국가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없애는 문제는 기업과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전략적인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남녀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마련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北 잠수함 SLBM에 놀란 한미, 북한 수역 수중정보 공유키로

    北 잠수함 SLBM에 놀란 한미, 북한 수역 수중정보 공유키로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측 수역의 수중환경 정보를 상호 분석해 공유하기로 했다. 평시 북한 잠수함을 추적하고 유사시 이를 차단·격침하는 대잠수함 작전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다. 군의 한 관계자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6월 열린 제2차 한·미 대잠수함전협력위원회에서 한반도 작전 수역의 해양 및 수중환경 정보를 분석하고 공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이는 양국의 대잠작전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한·미가 수중환경 정보를 분석해 공유할 작전 수역에는 우리 측 수역은 물론 북한의 잠수함 기지가 있는 신포항 주변 등 동해와 서해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전에 필요한 해양환경에는 해저 지형과 더불어 수온과 수심, 조류 등이 모두 포함된다”면서 “이런 변수들에 의해 잠수함 ‘소나’(음파탐지기)가 발신한 음파의 굴절률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중은 조류가 워낙 거세 해저 지형이 빠른 속도로 변할 수 있고, 북한 잠수함이 새로운 해저 이동로로 기습 침투할 수 있어 정보 분석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측 동해 먼바다 수중정보는 주로 미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동원해 은밀하게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태평양과 동아시아를 관장하는 미 7함대에는 괌 아프라 해군기지 등에 8∼12대의 핵추진 잠수함이 상시 배치돼 있다. 한·미 해군은 매년 수시로 양측의 잠수함을 동원해 북한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앞으로 훈련은 SLBM을 탑재한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식별·격침하는 연습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한편 우리 군이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추진해 온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의 북한 잠수함 탐지체계 구축사업은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체계는 서해 NLL 인근 해저로 침투하는 북한 잠수함(정)의 스크루 소리를 탐지하는 장비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금 체불·月100만원 수습…밥벌이 걱정하는 ‘육두품 변호사’

    임금 체불·月100만원 수습…밥벌이 걱정하는 ‘육두품 변호사’

    #개업 4년차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 A씨는 2년간 열심히 근무했던 법무법인에서 얼마 전 나오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300만원 남짓한 월급은 두 달째 밀려 있었고, 2000여만원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퇴직 뒤 두 달 동안 혼자 끙끙 앓던 A씨는 결국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 근로분쟁 조정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두 달여의 조정 끝에 전 회사는 반년 동안 나눠 A씨에게 퇴직금과 밀린 급여를 주기로 했다. #개업 4년차의 사법연수원 출신 B변호사도 올해 초 3개월간 근무한 법무법인에서 임금 1000여만원 중 400만원을 받지 못했다. 3개월간 법무법인에 직접 항의하던 B변호사는 결국 근로분쟁 조정을 신청해 한 달 만에 미지급 임금을 돌려받았다. 임금·퇴직금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한 젊은 변호사들이 서울변회의 변호사 근로분쟁 조정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운영된 조정센터에는 6건의 근로분쟁 조정이 신청돼 3건에서 조정이 성립됐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로스쿨 도입으로 법조인 시장에 신규 진입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소형 법무법인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젊은 변호사들이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당하고 있다”며 젊은 변호사들이 겪고 있는 임금 체불 실태를 전했다. 얼마 전까지 고액 연봉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전문직이었던 변호사 업종의 위상이 크게 추락하고 있다. 수습 기간에는 고작 100만원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고, 종종 임금을 떼이는 일도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법조인력의 급격한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사법시험 정원이 연 200명대에서 1000명 선으로 대폭 늘어난 데다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시장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2009년 법조인력 양성 시스템이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으로 바뀐 뒤 전체 변호사 숫자는 현재 2만명에 가까워졌다. ●전체 개업변호사 37%는 5년 이하 신참 특히 5년 이하 신참 변호사는 벌써 전체 시장의 40%에 육박한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전체 개업 변호사 1만 7894명 중 개업한 지 5년 이하의 신참 변호사는 모두 6624명으로 전체의 37.0%다. 법조인 시장에 신규 진입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은 변호사 업계다. 선호도가 높은 법원, 검찰이나 대형 로펌, 대기업 등으로 진출하지 못한 대다수의 젊은 변호사들이 중소형 법무법인에서 ‘고용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이들이지만 업무 환경과 처우는 당초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중소 법무법인의 초봉은 최근 5년 사이에 기존의 70% 정도로 떨어졌다. 개업 5년차의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로스쿨 1기 변호사가 2012년 처음 배출된 뒤 서울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소에 취직할 때 월급으로 적어도 세후 400만원에서 450만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300만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직접 채용을 진행하다 보면 유명하지도 않은 법률사무소에 쟁쟁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이력서를 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변호사가 ‘널렸다’는 것이다. 선배 변호사들이 자랑했던 고액 연봉은 사라졌는데도 야근과 주말 근무 등 격무는 여전하다. 6개월의 의무 연수를 받는 수습 변호사들은 박봉에 시달리기도 한다. 2년 전 로스쿨을 졸업한 한 변호사는 “로스쿨·사법연수원 출신 가릴 것 없이 지위가 하락하고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며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는 90% 이상이 수습 기간에는 정식 급여를 받지 못하고 대체로 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고용변호사 ‘집사 노릇’ 강요받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변호사가 본연의 변호 업무와는 거리가 먼, 피고인 접견만 담당하는 ‘집사변호사’를 강요받기도 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고객’의 잔심부름을 하거나 면회를 가 말벗을 해 주는 게 이러한 집사변호사의 역할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접견을 하고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받는 집사변호사가 적지 않다”면서 “얼마 전 대한변협에서 한 달에 수백건씩 접견한 변호사들을 징계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져 ‘편법 수입’에 기대는 변호사들을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로서의 정당한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대기업 소속 사내 변호사는 “중소형 로펌에 근무하는 주변 변호사들은 근로자의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해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근로조건은 웬만한 직장인들보다 못하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이 로펌에 취업할 때 여간해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관행도 문제를 일으킨다. 경력 3년차의 한 변호사는 “이직을 결심한 뒤 다니던 법무법인에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이직할 회사의 대표가 출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급여를 깎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며 “계약서를 쓰지 않다 보니 급여나 퇴직금 문제도 고용변호사는 대표변호사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업 후 사무실 월세 내기도 빠듯해 결국 법무법인에 취직하지 못하고 단독 개업 변호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상당수다. 그러나 이들 중 적지 않은 변호사가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못해 사무실이나 사무장을 두지 못하고, 아예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등록하기도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여러 곳에 원서를 넣어 봤지만 취직이 되지 않아 호기롭게 사무실을 개업하고 변호사로 출발했는데 사무실 월세 내기도 만만찮다. 의뢰인에게 받지 못한 성공보수와 수임료를 생각하면 ‘정말 소송이라도 해야 되나’ 싶다”고 말했다. 예전이라면 낮은 수임료 때문에 맡지 않을 사건도 적극적으로 따내려는 분위기다. 경험을 쌓기 위해 작은 사건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변회는 최근 ‘민사소액사건 소송지원 변호사단’을 출범시켰다. 변호사 수임료를 마련하지 못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약자들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감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변호사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주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변호사단은 청구 금액 2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에서 대법원에서 규정한 수임료인 최소 50만원에서 150만원의 수임료를 받게 된다. 일반적인 민사사건 최저 수임료인 300만원의 6분의1에서 절반 수준이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소위 돈 버는 일감이 아닌데도 일주일 새 500여명의 변호사가 민사소액 지원 변호사단에 지원했다”면서 “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실감했다”고 밝혔다. 국내 법률 소비 시장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변호사들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와 대한변협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청년 법조인 해외 진출 아카데미’가 창구의 하나다. 올해에만 변호사 경력 10년 이내의 청년 변호사 170명이 참여하고 있다. 약 10개월간 국제 법무 전반에 대해 교육을 받고 이후 한국무역협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의 법률자문관, 국내 로펌 해외사무소의 장기 인턴으로 일하는 프로그램이다. 1기 아카데미 수강생 중에서는 10명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법률사무소로 파견됐다. ●SNS 등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홍보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트렌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를 이용해 홍보하는 변호사들이 부쩍 늘었다. 정보기술(IT) 관련 소송을 주로 맡고 있는 5년차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굉장히 많은 상황에서 ‘홍보’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정기적으로 쓰고 있는 법률 블로그를 보고 사건과 관련된 문의 전화나 이메일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나쁘지 않은 변호사들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치열한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사법연수원 출신의 개업 15년차 변호사는 “요즘은 고객들이 하도 전문 변호사를 찾다 보니 관심 있는 분야의 강의나 연수를 찾아 듣고 있다”며 “200만원 정도 내고 6개월가량 강의를 듣는 등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지불해야 하지만 ‘무한 경쟁’ 상황에서는 전문성만 한 ‘무기’가 없다”고 밝혔다. 10년 가까이 소형 로펌을 운영하다 공공기관 소속으로 자리를 옮긴 한 변호사는 “젊은 변호사나 전관 출신이 아닌 이른바 ‘육두품’ 변호사는 고객들에게 내세울 게 없으니 사무장도 같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장 수입이 늘진 않지만 변호사단체나 대학원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을 받는 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연기 향한 욕망엔 끝이 없다 ‘칠순의 누아르’…나의 다른 모습을 찾고 있다 ‘엄마의 스릴러’

    연기 향한 욕망엔 끝이 없다 ‘칠순의 누아르’…나의 다른 모습을 찾고 있다 ‘엄마의 스릴러’

    이런 영화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70대 중반 할아버지와 40대 후반 아줌마 배우의 용기와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저예산 누아르, 스릴러 영화다. 한국 영화가 조금은 더 풍성하고 다양해진 느낌이다. ‘그랜드 파더’ 박근형과 ‘범죄의 여왕’ 박지영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배우 박근형 ‘그랜드 파더’에서 생애 첫 액션 “백 가지 역할이 있으면 다 해 보고 싶은 게 배우에요. 다른 사람이 빚어 놓은 캐릭터라 해도 자기만의 반론이 생기는 게 배우지요. 그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거지. 성공했다, 실패했다, 혹독하게 평가받지만 연기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지요.” ●평생 잊지 못할 배역…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죠 나이 들어 행복해지려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데 배우는 그렇지 않나 보다. 적어도 연기에 관해서는 말이다. 배우 박근형(76)이 그렇다. 1959년 데뷔 이후 육십갑자의 내공을 쌓아 오며 200편이 넘는 연극, 영화, TV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의 절대 고수는 오는 31일 개봉하는 ‘그랜드 파더’에서 생애 처음으로 액션 누아르에 도전했다. 그가 연기한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 기광은 고엽제 후유증을 앓으며 홀로 외롭게 소멸되어 가는 인간이다. 아들의 자살 소식에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손녀를 만나고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아들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을 알게 된 기광은 무자비한 응징에 나선다. “범죄 조직에 복수하는 상투적인 내용이 아니라 경쟁 사회의 이웃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들었죠. 메시지도 있고, 상업적인 부분도 있고, 새로운 스타일이라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어요.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하는 삶을 표현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말 수많은 역할을 했는데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죠. 평생 기억에 남을 겁니다.”●대형면허 따고 근육 키우고 응급실 신세까지 주인공 직업이 버스 기사라 6주 걸려 대형 면허까지 땄다. 몸에 근육을 붙이기 위해 한 달간 트레이너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한여름에 진행된 50회차 촬영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불볕더위에 폐쇄된 공간에서 촬영하다가 어지럼증을 느껴 두 차례나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죽을 지경이었는데 말도 못 하고 어떻게 용케 살아남았는데 결과물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활짝 웃는 박근형은 배우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불안함이 느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배우가 제일 섭섭할 때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불러 주지 않을 때죠. 나이가 들면 쓰임새가 적어지고, 역할이 축소되니까 아무래도 불안하죠. 또래 배우들도 네다섯 정도만 남았어요. 다양한 역할이 개발되어서 계속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연기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계속 현장에 후배들을 위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현장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게 극본을 뒤꽁무니에 찌르고 다니는 모습이에요. 자기 직업을 귀하게 여긴다면 귀하게 들고 다녀야죠. 책을 읽고 연극도 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야 하는데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경우도 많이 봐요. 감이 저절로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그에게 은퇴란, 쓰임새가 없어서 더이상 불려지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제 연기가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계속할 거예요. 불려질 때를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나무 밑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하지만 다음 생에도 배우를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것 같아요. 너무 고생스럽고 외롭기 한이 없으니까.”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배우 박지영 ‘범죄의 여왕’에서 상큼한 아줌마 대변신 “책을 받아들고 너무 좋아 소리를 지른 건 처음이었어요. 그냥 딱 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선물 같은 작품이었죠.” ●세련된 기존 이미지 벗고 털털한 친구처럼 배우 박지영(48)은 ‘범죄의 여왕’(25일 개봉)과의 만남을 이렇게 돌이켰다. 28년째 연기 인생에서 영화로는 처음 맛보는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배역 크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지 이미 오래다. ‘사랑스러운 오지랖 대마왕’인 아줌마 캐릭터가 너무나 상큼했다. 시골 미용실 원장 양미경이다.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사시 2차를 준비하는 아들에게 한 달 수도요금으로 120만원이 부과되자 해결사로 나섰다가 수상한 사건과 맞닥뜨린다. 그간 익숙하던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강하지만 털털하고, 친구 같고, 귀엽다. 여기에 섹시함까지 얹으며 영화를 유쾌한 스릴러로 이끈다. “한 역할이 좋았다 싶으면 계속 그렇게 소진되기 쉽잖아요. 드라마가 특히 심한데, ‘범죄의 여왕’은 그간 보일 기회가 없었던 표정들을 끄집어내 준 작품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지 않고 술술술 그려졌어요. 그만큼 캐릭터에 제 모습이 많이 들어 있었죠. 너무 편안하게 노는 것처럼 연기해 저도 모르는 제 얼굴까지 담겨 있죠.” ●결혼 이후 작아진 포지션… 다시 신인의 자세로 20대 중반 결혼을 한 뒤에도 ‘장녹수’(1995), ‘꼭지’(2000) 등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미시 파워를 뽐냈지만, 의외로 작품 수가 많지는 않다. PD 출신 남편의 사업 때문에 베트남에서 지내며 촬영 때만 한국에 오는 탓도 있다. 한편으론 스스로 이미지가 정체되지 않게 하려고 다작을 피하는 지점도 있다. 그리고 가족까지. “연기자는 평생의 직업이지만 제 인생도 살고 싶죠. 애들 때문에 연기를 놓치고 싶지도, 연기 때문에 애들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게 욕심쟁이라 더디게 갈 수밖에 없네요.” 영화도 2007년 ‘우아한 세계’가 데뷔작일 정도로 늦깎이. 이후 ‘하녀’, ‘후궁’, ‘성난 변호사’에서 조연으로 나왔다. “연기를 시작했을 땐 영화 쪽으론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았고 드라마에서 좋은 위치에 있다 보니 눈 돌릴 틈이 없었어요. 결혼 10년차쯤 드라마에서 포지션이 작아지더라고요. 신인의 자세로 영화에 도전하게 됐죠.” ●나이 들어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배우가 될래요 이번 시사회 때 처음으로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가슴이 울컥했다고 한다. “실제 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각별했죠. 뒤풀이를 하고 집에 갔더니 두 딸이 장문의 편지를 써 놓고 자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더라, 자기들도 (엄마에게) 그런 자식이 되겠다, 엄마 너무 멋졌다고.” 박지영은 나이 들어서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배우이길 바랐다. “배우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을 땐 제 화보 사진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낯설어졌어요. 집에 사진도 안 붙여 놔요. 불편하고 어색하다면 가짜니까요. 앞으로도 저의 다른 모습을 찾아주는 연출자들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영화와 여성 캐릭터가 많아지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박완서의 딸로 산다는 건… 그리움

    박완서의 딸로 산다는 건… 그리움

    ‘문학의 문밖에서 마냥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고 박완서(오른쪽) 작가의 맏딸 호원숙(왼쪽·62)에게 문학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쓰지도 않은 소설의 제목을 떠올려 보고, 내지도 않은 시집의 서문을 상상해 보는 게 일이었다. 한국 문학의 거목인 박완서를 어머니로 둔 것이 그를 문학 곁에 붙들어 둔 숙명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육필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나르던 것도 그였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어 가는 것도, 작가의 집인 구리 아치울 노란집을 보살피는 것도 그이기 때문이다. 그가 문학적 대지인 어머니와 문학을 향한 그리움을 동력 삼아 밟은 여정을 책으로 펴냈다. 2004년 박완서 작가와 떠난 네팔을 시작으로 고인을 잃고 다녀온 이베리아, 발트해 등 지난 10여년의 여행기를 묶은 산문집 ‘그리운 곳이 생겼다’(마음산책)이다. 그의 여정은 곧고 단정했던 대작가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길이기도 하다. 네팔의 한 재래식 화장실에 카메라를 빠뜨리고 징징거리는 중년의 딸에 어머니는 지긋이 말한다. “응석 부리지 마라. 더 좋은 걸로 사면 되지.” 딸은 아들과 남편을 연거푸 잃은 고통에도 대범했던 어머니의 생을 굽어보고 고개를 숙인다. 공항에서 현기증으로 기력을 잃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면서는 이런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는 그동안 참 많은 글을 쓰셨다. 그러나 모든 것을 쓰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사랑, 기쁨, 아픔, 자랑스러움, 그런 것들은 아껴서 다 쓰지 않으셨다.’(57쪽) 생전에 박완서 작가는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라고 했다. 이국의 땅에 발을 디딘 중년의 딸은 이제서야 그리워할 곳이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깨닫는다. 저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축복을 나눠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인생의 여정을 마친 엄마를 뜻도 없이 불러본다. 어머니는 이제 천상의 평화를 맛보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슬픔과 애절함이 느껴진다. 시간이 치유한다지만 울컥울컥 견디기 힘들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좀더 견디고 사시지. 남들은 펄펄히 잘도 사는데…반복되는 넋두리가 또 나온다.’(317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청년·청소년 중심으로 국내 신규 에이즈 감염 증가 추세

    국내에서 청년과 청소년을 중심으로 에이즈 감염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준명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25일 오후 결혼과 가정을 세우는 연구모임,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등 주최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청소년 및 청년 에이즈 감염 급증에 관한 정책 포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15년에 보고된 신규 감염인의 연령별 분포는 과거 30∼40대가 주를 이룬 것과는 달리 20대가 34.5%(351명)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대 22.5%(229명), 40대 18.0%(183명) 순이었다. 20대는 10년 전인 2006년 21.1%(158명)에 비해 약 10%포인트 늘었고, 10대 역시 2006년 1.7%(13명)에서 4.1%(42명)로 늘어났다. 김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의 연도별 신고현황에 따르면 이성간 성접촉은 35.8%, 동성간 성접촉은 28.3%로 나타난다”며 “역학조사시 감염인이 감염 경로에 대해 솔직히 말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동성간 성 접촉 비율은 더 높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로 미뤄봤을 때 청소년과 청년에서도 동성 간 성 접촉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일자리 추경안 방치하곤 잿밥에만 관심 두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추경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이른바 ‘서별관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이 이어지면서다. 내년 예산안을 심의할 9월 정기국회가 임박한 터라 자칫 추경안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우리 경제에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끄려고 여야는 일자리 창출과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추경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어제 본지 보도에 따르면 애초 취지와 달리 각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여야는 불요불급한 민원성 예산을 욱여넣은 것도 모자라 아예 추경안을 고사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협치의 전범을 보여 주기 바란다. 한국 경제는 지금 ‘수출 절벽’과 내수 위축이라는 복합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세계적 보호무역 추세 속에 수출은 19개월째 뒷걸음질이고 가계도 지갑을 열지 않자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보다 국회가 먼저 추경의 시급성을 거론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이후 여야의 행태를 보면 혀를 찰 노릇이다. 무엇보다 내수의 불쏘시개가 되고 일자리가 쓸려 나가지 않도록 방파제 구실을 해야 할 추경의 취지를 변질시킨 잘못이 크다. 농해수위에서 정부 추경안에 없던 광양항 인근 교량 건설, 산자위에서 울산의 컨벤션센터 건립을 위해 여야 합작으로 각각 수십억원이 넘는 예산을 끼워 넣은 게 단적인 사례다. 이 바람에 11조원 추경안에서 순수 일자리 창출 지원 예산은 겨우 1조 9000억원 규모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집행의 타이밍이 생명인 추경을 ‘식은 죽’으로 만들고 있는 여야의 행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경환·안종범·홍기택 등 3인의 청문회 증인 채택을 추경 처리의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고, 새누리당은 실세 망신 주기 청문회는 안 된다며 버티고 있다. 민생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데 추경안 처리보다 더 시급한 그 무엇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새해 예산안 국회 제출 시한(9월 2일)이 코앞이 아닌가. 국회 예산정책처는 추경이 무산되면 일자리 7만개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20대 국회가 국회선진화법에 막혀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들었던 19대 국회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될 말이다. 여야는 말로만 ‘민생 우선’이니 ‘협치’니 할 게 아니라 추경안 처리에서 그런 대타협의 정신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 [세종로의 아침] ‘부산행’과 ‘터널’이 주는 교훈/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부산행’과 ‘터널’이 주는 교훈/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올여름 영화 ‘부산행’과 ‘터널’이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인간의 내면을 잘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2009년 상영된 영화 ‘해운대’도 떠오른다. 이들 영화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희망을 이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휴머니즘 영화인데, 필자에게는 왜 재난 영화로 받아들여질까. 아마도 직업병인 듯싶다. 터널. 주인공이 집으로 가는 길에 터널이 무너져 홀로 갇히고 만다. 콘크리트 잔해물 속에 갇힌 뒤 연락이 여의치 않다.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구조를 놓고 벌어지는 여론 분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대형 재해 위기관리 대처 능력을 보는 듯하다. 부산행. 위기 상황에서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주변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상황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말라고 방송하는 부분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침몰하는 선박과 승객을 버린 채 달아나던 선장, 선박이 가라앉고 있는 위급한 상황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적극 구조에 나서지 못했던 당국의 안이한 대처로 연결된다. 반면 기관사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던 선생님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영화 해운대가 대박을 터뜨렸을 때다. 인도네시아에서 대형 쓰나미가 발생해 엄청난 목숨을 앗아 가는 재난이 생생하던 때라 정부는 대형 재난 대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재난 역시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형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앵무새식 처방만 있었을 뿐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대형 재난, 특히 자연 재해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제2의 우면산 사태와 같은 집중호우 피해 우려 지역이 도처에 널려 있다. 어린 학생들이 벽체 구멍이 숭숭 뚫리고 기울어진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대형 병원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집단 감염에 노출돼 있다. 정치인과 재난 담당 정부 당국자들은 두 영화를 관람했으면 한다. 영화를 보고 분야별로 실제 재난 발생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은 꼼꼼하게 갖췄는지, 매뉴얼대로 즉각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은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할 때다. 매뉴얼은 몸에 배어서 유사시 조건반사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정도로 반복 훈련해야 한다. 낡고 오래된 사회간접자본(SOC)의 개보수도 따라야 한다. 경제개발 초기에 건설된 도로·철도·교량 등 SOC 가운데 상당 부분은 노후화돼 심각한 안전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재난을 막기 위한 예산은 당장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관심 밖이다. 지난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정부 부처가 올린 노후 SOC 보수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역구 생색내기 사업 예산 확보에 써 버리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본격적인 예산철이다. 대형 재난 예방 예산을 적극 반영하려는 정부, 국회, 지자체의 노력을 보고 싶다. chani@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그의 웃음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더 커지고 짙어진 것일까. 소박하게 꾸며진 사장실 문을 열면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적힌 액자가 첫눈에 들어온다. 사무실과 공장을 겸하고 있는 경기 일산 본사에서 지난 17일 만난 김원길(55) 바이네르 사장에게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며 넘어지고 일어나 달려온 40년을 들어봤다. -옷가지 몇 벌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영등포역에 내렸다. 처음 밟은 서울 땅.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2 새 학기의 시작에 들떠 있었을 1978년의 봄이었다. 당시 영등포는 사람과 상점, 공장, 유흥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번잡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겁이 났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이 탔다. 화장실에서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자, 이제부터 한 집 한 집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나서 보자. “제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 있는데요, 저 좀 써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땅거미가 내리고 전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와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퇴짜를 맞은 집이 스무 곳 가까이 되어갈 즈음, 문래동 쪽 허름한 구둣방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월급은 없이 하숙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기만 하는 조건이었지만 마다할 수가 없었다. -내 솜씨를 본 구둣방 주인은 좀 놀라는 눈치였다. 열일곱 살 먹은 ‘충청도 촌놈’치고는 실력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자 주인이 불렀다. “장마철이라 물건이 너무 안 팔린다. 더이상 널 먹이고 재워 줄 능력이 안 된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였다. -“구둣방에서 잘렸어요.” 몇 달 동안 하숙하며 친해진 룸메이트 형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내가 강원도 양양 출신이어서 잘 아는데, 설악산에 가면 일자리가 있을 거야.”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다음날 새벽같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 설악산. 몇 달 전 영등포 역전에서처럼 상점과 산장의 문을 한 집 한 집 두드렸다. 하지만 하숙집 형의 말과 현실은 달랐다. 서울로 돌아갈 차비는커녕 김밥 하나 사먹을 돈도 없는데 서늘한 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말할 요량으로 찾아간 산장에서 “방 청소하고 손님들 가방 들어 주면 한 달에 5만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당시 설악산은 신혼여행이 피크였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 주자 팁이란 걸 주는데, 한 번에 2000~3000원은 기본이었다. 새로운 삶의 희망에 들뜬 신혼부부들은 일반 등산객들보다 손이 컸다. 지배인이 보는 데서 받은 팁은 도로 토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팁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팁에 맛을 들인 나는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갔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해야 더 많은 팁을, 그리고 지배인이 안 보는 데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갔다. 한 달이 지나자 다락방에 몰래 감추고 벽돌로 눌러놓았던 팁이 50만원으로 불어났다. 월급의 10배였다. 그 돈을 들고 나는 미련 없이 설악산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1961년 충남 당진에서 5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났는데, 가족이 의지할 거라곤 손바닥만 한 논 몇 마지기가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허약한 형을 대신해 풀 베고, 땔감 구하고, 논에서 피 뽑는 노동의 무게를 다 짊어져야 했다. 그 보상일까. 초등학교까지만 보낸 형, 누나와 달리 아버지는 나를 중학교에 넣어주셨다. 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수시로 학업 중단의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저…학교에서…100원만 가져오래요.” 집안 사정 뻔한데 차마 말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진작에 얘기했으면 좀 더 일찍 알아봤을 것 아니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어머니의 긴긴밤 잠 못 드는 괴로움만 더 깊어졌을 거란 사실을. 풀이 죽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집을 나서곤 했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1977년 2월 중학교 졸업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중학교 3년이 나에게 보장된 최후의 학업이란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던 터라 고등학교 진학 얘기는 아버지도 나도 꺼내지 않았다. “원길이는 내 밑에서 구두 기술 배워라.” 서산 읍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시던 작은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 지게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조카의 손재주를 익히 알고 있던 작은아버지였다. 하지만 ‘좁은 곳’에서 평생을 ‘족(足)쟁이’로 썩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넓은 곳’을 찾아 경기 고양군 지축면(현재의 지축동)의 분재농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한 달 1만원을 받아서는 내 한 몸 먹고 자기에도 빠듯했다. 슬슬 염증이 났다. -“돈 번다고 올라가더니 사는 게 그리 만만하더냐.” 그해 9월 추석에 집에 와서 작은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가게로 와라. 이 기술 하나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 -서산 구둣방에서 처음 배운 것은 가죽과 밑창이 단단히 붙도록 망치질을 하고, 접착면에 ‘뻬빠질’(사포질)을 하는 일이었다. “역시, 원길이 손재주는 대단하구나.” 남들이 1년을 해도 떼지 못한다는 남성용 구두 제작 전 공정을 나는 5개월 만에 마쳤다. “그 재주로 시골에 있긴 아깝다.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우거라.” 동료 아저씨들의 말이 몇 번 반복되자 마음이 흔들렸다. 작은아버지는 나의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쥐여주신 차비를 들고 나는 1978년 그 봄에 영등포역 가는 기차를 탔던 것이다. -설악산에서 번 55만원으로 경기 성남 상대원동에 월셋집을 얻고 서울 중곡동 어린이대공원 근처 구두 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제화업계의 판도는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케리부룩의 순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케리부룩에 납품하던 참스제화였다. 본격적으로 여성용 구두 만들기를 익혔는데, 얼마 후 나는 참스제화 안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됐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즈음 케리부룩에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1983년 9월 스물두 살 때였다. -‘생산라인에 있으면 신발을 20켤레 만들 수 있지만 관리자가 되면 2000켤레, 2만 켤레의 생산을 직접 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더 큰 것’, ‘더 높은 곳’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나를 믿고 부른 케리부룩 김정현 사장님에게 ‘생산직’이 아닌 ‘관리직’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사장님은 원했지만 주변에서 말들이 나왔다. ‘생산관리를 고작 중졸 출신에게 맡기다니’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관리직의 문들 두드렸고, 얼마 후 포장반에 배치됐다. 구두에 상표를 붙여 사각 박스에 담는 단순노동을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관리직이라는 이름표를 갖고 있는 부서였다. 생산라인에 있을 때 100만원이던 월급이 포장반으로 오니 20만원으로 깎였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계산은 적중했다. 몇 달 후 완제품을 최종 검사하는 검수반으로 옮겼다. ‘완벽한 제품’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깐깐하게 검사를 했다. 어느 날 공장 기술자 100여명이 “우리를 괴롭히는 김원길을 자르라”고 대놓고 사장님에게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를 지지했다.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걸 마다할 사장이 어디 있겠나. 나는 ‘시키지 않은 짓’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다. 시장 조사였는데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 경쟁제품 중에 잘 팔리는 건 어떤 게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했다. -1989년 인천백화점에서 우리 케리부룩 매장을 퇴출시키겠다고 통보해 왔다. 내가 영업관리를 하며 어렵게 입점을 성사시킨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월 매출이 600만원으로 다른 업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 시간을 한 달만 더 달라고 했다. ‘저 많은 걸 나 혼자선 절대로 못 판다. 고객의 입소문을 통해 팔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값 특가 세일과 동시에 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케리부룩 CM송 부르시면 구두를 그냥 드립니다.” 당시 ‘허리를 미끈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으면~ 케리부룩 케리부룩 예쁘게 걸어요~’라는 우리 TV CM송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달 매출이 1억 1000만원으로 거의 20배가 됐다. 그걸 계기로 뉴코아, 롯데, 신세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속속 입점을 했고 나는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에 대한 시기와 모함도 커져 갔다. ‘사장이 되려고 한다’, ‘회삿돈을 제 맘대로 쓴다’ 악성 루머가 사내에 돌았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분노를 하니 더이상은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다. -1990년 사표를 던졌다. 언젠가는 예정됐던 일,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케리부룩 퇴직금 280만원과 사장님이 별도로 챙겨주신 200만원을 밑천으로 서울 용산에 선심(구두의 앞코에 들어가는 부속) 제조회사를 차렸다. 간판은 ‘원길’로 내걸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는데 돈이 안 들어왔다. 못 받은 외상값이 2000만원이 넘어갔고, 빚이 쌓여 갔다. 답답한 마음에 전에 거래했던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바이어를 만났다. “아이고, 김 대리 회사 관두고 나서 케리부룩 엉망 됐어요.” 케리부룩 김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롯데백화점에 물건 한 트럭 보내주세요. 제가 팔아볼게요.” 매출의 10%가 내 몫이었다. -“사장님, 제가 직접 구두 만들어서 케리부룩 상표 붙여 팔겠습니다.” 다시 기세가 오른 나는 케리부룩에 로열티를 주고 하청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는 이번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1993년 케리부룩 대표가 된 전문경영인이 케리부룩 상품권을 헐값에 불법 발행해 구속이 됐고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상품권들은 휴지조각이 됐고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구두와 빚더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 됐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하지만, 20대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씩씩하게 출근을 했던 나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어떤 고마운 분이 급전을 융통해 줘서 최종 도산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이름을 ‘안토니’로 바꾸고 그럭저럭 구두회사를 꾸려가고 있던 1994년 뜻하지 않은 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구두 박람회 ‘미캄’에 갔는데 바이네르의 컴포트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나와 한국 독점판매 계약을 맺자”고 했다. 당시 바이네르는 하루 1만 2000켤레를 생산하는 대형 업체였다. 한국 수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렵사리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국내에서 바이네르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주문을 넣고 제품을 받기까지 무려 석 달이나 소요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직접 생산이 절실해졌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주는 구두 기술자다. 바이네르 상표를 붙여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면 안 되겠나. 바이네르의 명성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들을 꼬박 6개월을 설득했다. 나의 한결같은 노력은 바이네르 회장을 감동시켰고, 결국 나는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하루 50켤레씩 컴포트화 생산을 시작했다. -바이네르로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졌다. 나를 아껴주었던 이탈리아 본사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분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회계사 출신인 그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는데, 로얄티를 이 정도 밖에 안 내나.’, ‘이탈리아 본사에서 수입해 가는 물량을 더 늘려라.’ 아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바이네르와의 결별을 준비했다. 광고도 바이네르의 비중을 줄이고 우리 자체 브랜드인 안토니에 집중했다. 그런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은 특히 충격이 컸다. 거기에서 바이네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바이네르는 당시 유럽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나는 이탈리아로 가서 아들을 만났다. “너희들 자금난이 심각하다는데, 내가 지원을 해줄 테니 바이네르 브랜드를 나에게 팔아라.” 그들은 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 이탈리아에 바이네르 공장이 10군데 정도 있는데 그들이 쓰는 브랜드 상표권은 내가 갖고 있다. -바이네르 신발이 편안한 비결이 뭐냐고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러면 나는 “고객의 마음은 당신이 그 질문을 하는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고객은 항상 더 예쁘고, 더 편안한 구두를 찾는다. 그걸 떠올리면 절대로 연구개발(R&D)을 게을리하거나,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고객은 혹시 한 번은 몰라도 절대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를 통해 연간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업계 3위 바이네르의 최고경영자(CEO)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구두 분야의 장인(匠人)으로, 특히 ‘중졸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바이네르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국 60여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던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안토니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골프 꿈나무에게 연간 2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수도권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박애원, 벧엘의집 등 수많은 복지시설에 물품을 보내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급여를 보장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다양한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61년 충남 당진 출생 ▲당진 도성초등학교, 미호중학교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수상 ▲1994년 안토니 설립 ▲2008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 2012년 철탑산업훈장,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수상
  •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한국관광공사가 9월에 가볼 만한 6곳을 선정, 발표했다. ‘세계유산 다시 즐기기’가 테마다. 하나같이 역사와 생태가 잘 보존돼 산책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손색없다. 조선 왕릉의 박물관 만나다 ●조선 왕릉 9기 온전하게 보존 - 경기 구리 동구릉 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50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품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온전하게 보존된 문화유산이다. 특히 경기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가 모여 있어,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불린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동구릉을 대표하는 능은 태조가 잠든 건원릉이다.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아차산고구려유적전시관, 구리타워와 구리시곤충생태관, 구리한강시민공원 등을 묶어 돌아볼 만하다. 구리시 문화예술과 (031)550-8353. 백제인이 꿈꾸던 미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 전북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문화적으로 융성한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공주와 부여에 가려져 있다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금마면 익산 미륵사지는 가람 배치가 독특한 백제 최대 사찰 터이고,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은 백제 무왕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국내 최대 석탑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작업 중이며, 복원 과정을 참관할 수 있다. 왕궁면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직사각형 왕궁 터에서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등이 발굴됐다. 이웃한 보석박물관, 두동교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익산시 문화관광과 (063)859-5797. 고인돌에서 채석장까지 ●거석문화 진수 - 전남 화순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 등과 함께 세계 거석문화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화순은 강화, 고창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발견돼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산기슭에 분포해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5㎞ 구간에 있어 탐방 동선도 편리하다. 도곡면 효산리에서 진입하는 게 수월하나,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을 먼저 들르면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운주사, 적벽투어 등과 연계한 돌 문화 여행도 좋다. 화순고인돌유적 대신리 발굴지 (061)379-3907. 정조의 효심이 낳은 성곽의 꽃 ●우리 건축역사 독보적 건축물 - 경기 수원 화성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경기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정조가 화성 행차 중에 머문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 무사들이 날마다(월요일 제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며, 일요일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진행된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나혜석거리 등도 묶어서 돌아보면 좋다.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문무왕 만나러 가는 ‘왕의 길’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길 - 경북 경주 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아버지가 잠든 경북 경주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간 ‘신문왕 호국행차길’ 걷기는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신문왕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수렛재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고,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던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양동마을에선 조선시대의 풍경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경주시 관광컨벤션과 (054)779-6077~9. 화산이 빚어낸 시간 속으로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7㎞ - 제주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의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등 12개 명소는 2010년 세계지질공원에 각각 등재됐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성산리, 오조리를 두루 지나는 도보 여행 코스다. 내수면을 따라 7㎞ 남짓 걷는다.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비롯해 여러 용암동굴을 만든 모체다. 예약자에 한해 탐방이 허용된다. 해설사와 함께 신비한 화산지형, 곶자왈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용암동굴인 만장굴엔 용암 유선, 용암 선반, 7.6m짜리 용암 석주가 남아 있다. 제주관광공사 (064)740-6074,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1800-2002.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新국토기행] 전쟁 상처 서린 한탄강, 이제 낭만 안고 흐르네

    [新국토기행] 전쟁 상처 서린 한탄강, 이제 낭만 안고 흐르네

    70㎞가 넘는 비무장지대(DMZ)를 접하는 강원 철원은 6·25전쟁의 아픈 상흔을 간직한 ‘평화의 고장’이다. 철의 삼각지, 노동당사, 제2땅굴 등 수많은 6·25전쟁 전후의 아픈 상처와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자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통의 역사를 딛고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와 경원선 남북 연결, 금강산선 복원 연결로 통일시대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를 꿈꾼다. 9세기 후반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도읍지였던 철원은 도성의 성곽 등 유적지와 함께 궁예 왕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산지대로 이뤄진 현무암 단층의 한탄강 절경이 있고 우리나라 중부 제1의 곡창인 철원평야에서는 명품 오대쌀이 생산된다. 한탄강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10선’에 선정된 한여울길이 있어 한탄강의 기암절벽과 철원평야의 황금 들녘을 감상하며 자전거 등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은 지도 오래다.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지만 자연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철원으로 떠나 보자. [볼거리] ●백마고지 전투 등 6·25 격전지 ‘철의 삼각지’ 6·25전쟁사에 길이 남을 철의 삼각지는 북위 38도선 이북에 있는 철원, 김화, 평강지역을 잇는 삼각지대로 백마고지 전투 등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던 곳이다. 문혜리에서 시작해 지경리, 청양리, 와수리를 잇는 이 지역은 전쟁 때 공산군이 군수물자를 보급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으로 미8군이 이곳 일대 철원평야를 빼앗은 뒤 김일성이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로 남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2007년에는 중부전선 최북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철원평화전망대가 들어섰다. 2층 전망대에서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평강고원과 북한선전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초정밀 망원경시설과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지형 축소판이 있어 민족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관광객 수송 시스템인 모노레일을 운행,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육단리에 있는 승리전망대는 휴전선 155마일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전망대로 북한군의 이동 모습은 물론 오성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금강산철도,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 남북분단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발견한 제2땅굴 철원 제2땅굴은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발견한 땅굴이다. 시추 작업으로 땅굴 소재를 확인한 뒤 수십일간의 끈질긴 굴착 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한국군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북괴의 기습 남침용 지하 땅굴을 확인했다. 땅굴은 견고한 화강암층으로 지하 50~160m 지점에 놓여 있다. 땅굴의 길이는 총 3.5㎞에 이르고 군사 분계선 남쪽으로 1.1㎞까지 파내려 왔다. 규모는 높이 2m의 아치형 터널로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특수 설계됐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고,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 있다. 제2땅굴이 발견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됐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 ●北공산독재 시절 주민 착취 악명 떨친 노동당사 광복 이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이곳은 6·25전쟁 때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되며 주민들을 착취했다. 북한은 노동당사를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이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고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했다. 특히 건물의 내부작업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로 쌓은 3층 건물로 6·25전쟁 당시 주변 다른 건물들은 모두 파괴됐지만 유독 이 건물만 남아 있어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공산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고문·학살 등의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다. 한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했을 만큼 무자비한 살육이 저질러진 곳이기도 하다. ●기암괴석·주상절리… ‘지질 표본실’ 한탄강 주상절리는 용암이 굳어지면서 기둥 형태를 이룬 모양으로 한탄강과 대교천 현무암 협곡층에서 발견된다. 한탄강 유역은 한반도 제4기의 지질과 지형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교천은 한탄강의 지류이지만 하상에 현무암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한탄강 주류 하천이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대교천이 한탄강으로 유입되는 부근의 기반암은 쥐라기의 화강암이다. 쥐라기는 중생대를 3기로 나눴을 때 2기에 해당하며 1억 8000여만년 전부터 1억 3500여만년까지 4500여만년간의 시기이다. 대교천 현무암 협곡의 폭은 25~40m이고 높이는 30여m에 이른다. 강바닥과 강 주변 절벽들은 화강암이 부정합으로 덮여 있어 제4기 사력층 또는 추가령 현무암의 부정합면, 계곡지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용암류와 주상절리 등이 있다. 이런 이유로 한탄강 유역에서도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뤄 천연기념물 제436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의 근거지였다는 고석정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고석정은 철원 팔경의 하나로 한탄강 중류에 있다. 일반적으로 강 중앙의 고석(孤石) 정자와 그 일대의 현무암계곡을 아울러 고석정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라는 문무를 겸비한 천인이 산적 무리를 조직해 강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함경으로부터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분배해 줬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도 강 중앙에 위치한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 있다. 강 중앙에 약 23m의 높이로 우뚝 솟은 고석바위와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암절벽 아름다운 순담계곡 래프팅 명소 각광 순담계곡은 한탄강 물줄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진 곳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깎아내린 듯한 벼랑, 연못 등이 수없이 이어지고 물도 많을 뿐 아니라 계곡에는 보기 드문 천연 하얀 모래밭이 형성돼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연중 끊임없이 찾는다. 특히 계곡 뒤쪽으로는 래프팅 최적지인 뒷강이 있어 여름철 래프팅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근래 들어 수려한 주변 경관과 급하지 않은 물살로 인해 주말을 이용해 새롭게 래프팅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계곡 주변에 전문강사들이 운영하는 스포츠숍들이 많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먹거리] ●한탄강 최상류 메기로 끓인 풍미 가득한 매운탕 한탄강 메기매운탕은 철원지역 향토음식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아 철원의 대표음식으로 꼽힌다. 맵지 않고 깊게 우려낸 국물 맛이 기본이다. 계피, 감초 등 한약재로 달인 물을 육수로 사용해 민물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흙냄새를 제거해 비린내가 없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한탄강 최상류에서 잡아 올린 메기에 게를 넣고 끓여 맛을 돋우고 두부, 미나리, 무, 대파 등을 아낌없이 넣어 풍미가 가득해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매운탕과 사뭇 다르다. 메기는 단백질 함량이 풍부하고 비타민도 많이 들어 있으며 특히 당뇨병이나 빈혈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다. ●두릅밥·버섯잡채… ‘농가맛집 대득봉’ 한상차림 철원 역사를 배경으로 해 신라 금성(김화) 태수의 딸 혜원 비구니가 궁예에게 바친 산채 상차림을 현대에 대득봉 지킴이가 ‘농가맛집 대득봉’ 상차림으로 재현했다. 농가맛집 대득봉의 대표 메뉴인 오대두릅밥은 철원 오대쌀과 대득봉 자락에서 재배한 다양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 한식 상차림이다. 밥은 황기 등 건강한 재료로 우린 물을 이용해 두릅을 얹혀 짓고, 오가피 장아찌류와 도라지 튀김, 더덕구이, 산목이 버섯잡채 등이 상차림으로 나온다. 몸에 활력을 공급해 주고 피로를 풀어 주며 항암작용과 혈당조절 등에 효과가 좋은 두릅은 산채의 제왕이라고 부를 만큼 건강한 식재료로 알려졌다. ●깨끗한 물과 고지대 신선한 바람이 키운 오대쌀 철원오대쌀은 휴전 이후 인적이 끊긴 DMZ에서 흘러드는 깨끗한 물과 해발 250m 고지대의 신선한 바람, 기름진 황토흙, 깨끗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재배, 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철원오대쌀을 주원료로 만든 철원오대쌀국수 포포면은 멸치맛과 매운맛 등 두 종류로 생산되며 쫄깃한 식감과 쌀을 재료로 한 웰빙 식품이다. 또 철원오대쌀의 맛을 이어갈 가공식품전문점 ‘모락모락’에서는 우리쌀과 농산물을 기호 식품화한 쌀찐빵, 쌀쿠기, 쌀마들렌, 쌀와플, 쌀머핀, 쌀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하고 있다. ●‘비타민·철분·칼슘의 여왕’ 철원산 파프리카 철원산 파프리카는 주야간 온도 차가 크며, 겨울이 춥고, 논을 밭으로 만든 깨끗한 토양의 환경에서 재배돼 색깔이 곱고 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향이 좋고 단맛이 강해 다양한 요리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비타민, 철분, 칼슘 등이 풍부해 암과 비염 예방에 효능이 있어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는 철원의 특산품이다. ●민통선 샘통에서 생산한 국내 유일 물고추냉이 철원 최전방 민통선 안에 있는 샘통은 사시사철 수온이 13도를 유지하며 변화가 거의 없는 천연암반수 용출지역으로 이곳에서는 국내 유일 물고추냉이가 생산된다. 물고추냉이 잎과 줄기를 활용한 고추냉이 고추장, 장아찌, 미용비누, 탈취제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한반도·태평양 美기지 사정권… “北 핵잠수함 건조 착수 가능성”

    한반도·태평양 美기지 사정권… “北 핵잠수함 건조 착수 가능성”

    북한이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반도 전역과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파견될 태평양의 미군기지들을 사정거리에 두는 북한 SLBM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올 들어 세 차례,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의 공개 시험 발사를 거치면서 SLBM의 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이번 시험 발사에서 핵탄두 기폭장치 실험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날 신포급 잠수함(2000t급)에서 수중 발사한 SLBM은 수면 위에서 점화돼 정상보다 높은 각도로 500여㎞를 비행했고, 정상 각도로 발사됐을 경우 1000㎞ 이상을 날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군 당국은 북한이 SLBM의 연료 충전량을 늘릴 경우 2000㎞ 이상을 날릴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지난달 9일과 4월 23일 발사했던 SLBM이 각각 10여㎞, 30여㎞를 비행한 다음에 공중에서 폭발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날 발사한 SLBM은 기술적으로 큰 진전을 보인 것이다. 북한이 SLBM의 발사 각도를 높인 것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발사된 SLBM은 JADIZ를 80㎞가량 침범했으나 추진체의 최대 추력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연료량과 비행 각도를 조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9일 시험 발사에 실패한 SLBM과 마찬가지로 고체연료를 사용했고, 이번에는 1단 및 2단 분리도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발사한 SLBM은 정상 고도인 300~400㎞보다 훨씬 높게 솟구쳐 대기권(100㎞)을 벗어났다 재진입하면서 50㎞ 상공에서 마하 10의 속도로 하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성주군 내 배치가 검토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40~150㎞의 고도에서 최대 마하 14의 속도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드의 요격 범위 내에 있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SLBM 발사를 성공으로 평가하면서 나아가 북한이 SLBM의 실제 활용을 위한 더 큰 잠수함 건조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했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북한은 다음 단계로 SLBM을 3발 탑재할 수 있는 3000t급 이상의 잠수함을 만들고 그 이후 12발 이상을 탑재하는 대형 잠수함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SLBM을 개발하는 것은 핵탄두 다종화와 소형화 작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면서 “북한은 핵추진 잠수함의 건조계획도 수립해 추진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60년동안 결혼한 여직원 모두 강제퇴사시킨 주류회사 금복주

    60년동안 결혼한 여직원 모두 강제퇴사시킨 주류회사 금복주

    결혼하는 여성 직원에게 퇴사를 강요해 논란을 빚은 대구 지역의 주류업체 ‘금복주’가 창사 이래 수십 년간 이와 같은 성차별적 고용관행을 지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금복주·경주법주·금복개발과 이들 회사의 지주회사인 금복홀딩스 등 4개 회사의 성차별적 인사 관행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인권위는 이 업체에서 홍보팀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여성 직원 A씨가 결혼 계획을 회사에 알리자 퇴사를 강요받았다며 진정서를 넣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 업체의 성차별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정황을 확보하고 직권조사를 벌였다. 이들 회사는 1957년 창사 이래 현재까지 약 60년 동안 결혼하는 여성 직원을 예외 없이 퇴사시키는 관행을 유지해왔다. 퇴사를 거부하는 여성에게는 근무환경을 적대적으로 만들거나 부적절한 인사 조처를 해 퇴사를 강요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업체의 정규직 직원은 280여 명이지만 이 가운데 여성은 36명에 불과하다. 생산직에는 결혼 후 입사한 기혼 여성이 있지만, 사무직 여성 직원 가운데 기혼 여성은 A씨 1명뿐이었다. 업체의 핵심 직군인 영업직과 관리직은 모두 170명이었으나 여성은 A씨 1명뿐이었다. 인권위는 이 업체가 “장기적 전망으로 안정적 근무를 할 수 있는 업무에는 대부분 남성을 채용하고 여성에게는 주로 경리·비서 등 관리직 일부 직무만 맡겼다”면서 “여성은 고졸 등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 기준으로 채용해 주임 이상 승진을 배제하고 평사원으로만 근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승진이 가능한 근무 기간 요건에 군복무 기간을 반영해 같은 학력, 같은 직급으로 채용된 여성은 2년 늦게 승진하도록 하기도 했다. 경조 휴가는 친가와 관련한 것만 인정하고 외가와 관련한 것은 인정하지 않았고, 기혼 여성은 시가 관련 경조 휴가만 인정했다. 인권위는 이와 같은 관행이 1987년 제정한 남녀고용평등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복주 측은 직권조사 도중 여성 직원이 결혼하면 모두 퇴사하도록 했다는 관행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고 불합리한 고용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인권위에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는 수십 년 동안 누적한 불합리 규정과 관행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채용·배치·임금·승진·직원복리 등 인사운영 전반에 걸쳐 관행을 개선해 성평등한 인사운영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번째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에 ‘패닉’…원장은 잠적

    3번째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에 ‘패닉’…원장은 잠적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 강원 원주시 한양정형외과의원에 이어 서울 동작구 서울현대의원(현 JS의원)에서 또다시 C형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의료계가 패닉에 빠졌다. 이미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논란으로 국민 신뢰도가 크게 낮아진 상태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오자 의료계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을 더욱 강화하고, 정부 당국과 공동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정부 당국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현대의원에서 지난 2011년~2012년에 진료를 받은 환자 1만1천306명이 C형간염 노출 위기에 몰렸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자가혈주사시술(PRP) 등 아직 정확한 문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현대의원은 관절·척추 클리닉을 비롯해 주로 비만 치료, 신경차단술, 통증 치료와 같은 진료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까지 해당 의원을 운영한 K 모 대표원장(72년생)은 지역 재개발 등을 이유로 2014년 동갑내기 K 모 원장에게 병원 운영권을 넘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울현대의원은 지금의 제이에스의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서울현대의원이 소재한 동작구의사회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서울현대의원 K 원장이 제이에스의원에서도 진료를 봤다고 보고 있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라며 “병원 운영권을 이전한 후에는 진료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현대의원의 C형간염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이 조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안 직후부터 지역의사회 차원에서 예의주시해왔다”고 덧붙였다. 다만, 동작구의사회 관계자는 나이가 40대에 불과한 의료진이 돈 몇백 원을 아끼자고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서울현대의원의 병원 운영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서울현대의원은 건강보험을 부당하게 청구한 사례가 매우 많고,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해와 역학조사 자체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를 일으킨 K 원장은 현재 동작구의사회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윤리위원회 회부 검토에 들어갔으며, 서울시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태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서울시의사회는 “정부 당국의 감염경로 확인 및 의사협회 자체 조사 등을 토대로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앞으로 또다시 C형간염 환자 집단 발생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모든 회원과 감염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병·의원뿐 아니라 한의원이나 각종 침구 시술, 불법적인 미용 및 문신 시술 등이 이뤄지는 곳의 감염 관리 실태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감염 관리는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므로 정부 당국과 의료계가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2 정태영’은 없었다… 감사보수 후려치는 기업들

    ‘제2 정태영’은 없었다… 감사보수 후려치는 기업들

    2014년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고객’인 현대카드 측이 감사 보수를 4배 넘게 올려 주겠다고 해서다. 감사 보수를 현실화시켜 달라고 아무리 읍소해도 “감사를 맡길 회계법인은 많다”며 들은 척도 안 하는 게 국내 기업들의 대부분 풍토였다. 그런데 올려 달라는 요청도 안 했는데 알아서 올려 주겠다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그것도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네 배였다. 반신반의하는 딜로이트안진에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당시에는 사장)은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대신 감사를 제대로 해 달라”고. 정 부회장은 2억 2000만원이던 외부감사 보수를 2014년 9억원으로 파격 인상했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또 다른 계열사 현대캐피탈도 마찬가지였다. 전년(3억 300만원)보다 3배 많은 9억 1800만원을 삼정KPMG 회계법인에 지급했다. 선진국처럼 투명하고 제대로 된 감사를 받으려면 합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생각이었다. ●보수 2배 자진 인상 회사 작년 ‘0’ 회계법인은 감사의 품질을 높이는 것으로 답했다. 안진이 2013년 현대카드에 투입한 총감사시간은 1910시간이었으나 이듬해 9466시간으로 5배나 늘었다. 지난해에는 감사보수가 동결됐음에도 600시간 이상 더 증가한 1만 74시간을 할애했다. 삼정이 현대캐피탈에 투입한 총감사시간도 2013년 3630시간에서 2014년과 2015년 각각 8940시간과 8990시간으로 늘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감사시간은 100대 기업 평균 7385시간(2014년 기준)을 크게 웃돈다. 이는 기업과 외부감사 기관이 상생한 모범 사례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회계업계는 정 부회장과 같은 CEO가 계속 나오면 외부감사의 질과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제2의 정태영’은 없었다. 서울신문이 23일 한국공인회계사회를 통해 파악한 결과, 지난해 감사보수를 2배 이상 올린 140개 기업 중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처럼 자발적으로 인상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으로 감사업무 자체가 늘거나 그간 감사보수가 감사시간 대비 너무 낮아 협의를 통해 인상한 게 대다수였다. 현행법상 ▲자산총액 120억원 이상 ▲자산총액과 부채총액 각각 70억원 이상 ▲종업원 300명 이상인 기업은 의무적으로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2만 4951개사가 해당한다. ●자유수임제 폐해… 제도 개선 필요 감사보수는 관행처럼 계속된 기업들의 ‘후려치기’로 많이 떨어져 있다. 회계사회에 따르면 100대 기업(금융사 제외)의 시간당 감사보수는 2008년 8만 9000원에서 2014년 7만 5000원으로 15.7% 감소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09~13년 코스피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100곳 중 외부감사 기관을 변경한 47건을 분석한 결과, 29건(61.7%)에서 시간당 감사보수가 평균 2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기관 변경이 ‘보수 덤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중경 회계사회장은 “감사보수를 투자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많아 아쉽다”며 “갑을 관계에서 감사인을 선정하는 자유수임제의 폐해가 존재하는 만큼 법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수 탓만 하며 기업 유착을 일삼는 회계업계의 관행이 개혁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안진은 2010~15년 30억원에 이르는 보수를 받고 연 6000시간 이상 대우조선해양을 감사했지만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해 고의적인 묵인 의혹을 받고 있다. ●적정 보수 기준 두고 부실감사 문책을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은 “무작정 감사보수를 인상하면 회계법인이 기업에 종속되는 등 독립성 훼손 우려가 있다”며 “정부가 적정한 감사보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회계법인의 수익을 보장하고 부실 감사 시에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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