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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미스터 김’ 모르시나요

    “54년 전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서 나를 구해줬던 소년병 ‘김씨’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6·25 전쟁 때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그리스의 예비역 대령이 전쟁터에서 부상한 자신을 구해준 당시의 한국인 청년을 애타게 찾고 있다. 주인공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29일 그리스군 육군 중위로 강원도 철원 인근 ‘스코치 313’ 고지에서 중공군과 대치했던 알렉산더 카라차스(84). 그해 10월 카라차스는 ‘스코치 313’ 고지에서 중화기부대 부지휘관으로 전투를 벌이다 복부에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나 두달가량 함께 막사생활을 했던 당시 18세 가량의 한국군 군무원에게 구조돼 다행히 목숨을 건지게 됐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줬던 이 청년에 대해 그가 지금 기억하는 것은 그의 성이 김씨였다는 게 유일하다. 카라차스는 지난 3월에도 그리스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김씨’의 소재를 파악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지금도 당시만 생각하면 그때의 ‘김씨’가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스코치 313’ 고지는 강원도 철원 서쪽 6∼7㎞(당시 지명으로 갈곡과 독산리 사이)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당시 전투에서 그리스군 49명이 전사하고 120여명이 부상하는 등 그리스군이 6·25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것이다. 카라차스는 최근 한국에 입국해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에 마련된 그리스군 참전기념비 단장공사를 직접 맡았으며, 지난 10일엔 보수공사가 완료된 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김씨의 소재에 대해서는 주한 그리스대사관(02-729-1400)이나 수원보훈지청(031-259-1705)으로 연락하면 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휴지 한 장에 경보먹통…보석단지 뚫렸다

    휴지 한 장에 경보먹통…보석단지 뚫렸다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희대의 귀금속 절도사건이 전북 익산 귀금속센터에서 발생했다. 경찰은 내부 사정을 잘아는 2인조 전문털이범의 소행으로 보고 몽타주를 배포, 뒤를 쫓고 있다. ●범행 11일 오전 2시에서 4시 사이 전북 익산시 영등동 이리 귀금속보석판매센터에서 100억원대(상인 주장)의 귀금속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털렸다. 사설경비업체인 캡스 익산지사는 이날 오전 3시54분쯤 비상벨이 울려 현장에 출동, 건물 뒤편 화장실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도난사실을 신고했다. 절도범들은 건물 뒤편 화장실 쇠창살과 창문을 뜯고 들어와 매장으로 통하는 나무합판 출입문 밑부분을 톱으로 잘라내고 침입했다. 절도범들은 앞서 지난 9일 경비업체 직원을 가장, 판매센터에 들어와 천정에 있는 15개 열감지센서의 뚜껑을 열고 화장지를 붙여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도록 했다. 범인들은 매장내 유리 진열장을 뜯고 귀금속을 쓸어담다가 열감지센서 중 하나에 붙인 화장지가 떨어져 비상벨이 울리는 바람에 도주했다. ●피해액은 얼마 29개 업체 77개 진열장 가운데 80%에 이르는 25개 업체 61개 진열장이 털렸다. 다이아몬드, 루비, 자수정을 비롯한 각종 보석과 금붙이 등 5만여점에 이르며, 대부분 50만원대 이하나 100만원 이상의 고가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업주들은 진열장 1개당 1억 5000여만원 상당의 상품이 들어있어 피해액은 적어도 90억∼100억원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범인은 누구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귀금속전문털이범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정기휴일인 지난 10일 업주와 직원들이 야유회를 간 틈을 노린 것으로 보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자일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2명 이상이며 범행시간은 11일 새벽 2시부터 비상벨이 작동한 3시54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업주들은 도난당한 물품이 500㎏이나 돼 범인이 적어도 5∼6명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9일 점심시간에 경비시설을 점검한다며 매장에 들어와 사전작업을 했던 20대와 30대 남자의 몽타주를 전국에 배포하고 현상금 500만원을 내걸었다. 경찰은 이날 하오 3시쯤 귀금속센터에서 500m 떨어진 도로에서 용의차량으로 추정되는 1.5t화물차를 발견, 정밀감식에 나섰다. ●문제점 100억원대의 귀금속과 보석을 판매하는 대형 매장치고 경비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판매센터측은 경찰이 여러차례 폐쇄회로 카메라 설치를 권유했지만 고객들의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거부했다. ●귀금속판매센터는? 지난 1988년 전북도의 건의로 정부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대지 1만 4000㎡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2599㎡ 규모다. 29개 업체가 입주해 연간 97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익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금융사고 예방책 ‘티격태격’

    금융사고 예방책 ‘티격태격’

    ‘의심이 가는 직원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금융거래를 미리 스크린할 수 있어야 대형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다.’(시중은행 경영진) ‘기존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지키면 금융사고는 줄일 수 있다.’(금융당국) ‘개별 직원에 대한 금융거래 조회는 프라이버시 침해이며,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금융권 노조) 최근 들어 횡령·유용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고 방지 해법이 금융권의 도마에 올랐다. 금융권은 금융당국과 노조측에, 금융당국과 노조는 금융권의 경영진에 1차적인 책임을 묻는 식이어서 해법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 “금융실명제법 따라 거래조회 못해” 시중은행들은 금융사고의 대부분이 한순간에 터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금융사고를 낸 직원들의 금융거래를 사후에 점검해 보면 사고 이전에 금융거래상의 문제점이 적지 않았으나,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거나, 의심이 드는 직원에 대해서는 금융거래를 미리 파악해 보면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거래실명제법, 신용정보이용에 관한 법 등에는 개인의 금융거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현실적으로 금융사고가 터진 뒤에 경영진에 대해 문책하고, 해당 직원에 대해 횡령·유용 금액을 환수하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금융관련법에 따른 시행령 개정 등으로 이를 사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 “내부통제 시스템 안지키고 책임 떠넘겨”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주장에 대해 ‘자기집 단속은 자기가 해야 하는데, 책임을 미루는 꼴’이라고 일축한다. 금융사고가 잦은 데는 금융권의 구조조정 여파와 직원들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 등이 겹친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한다. 중요한 업무를 한 가지 이상 맡기지 말고, 유관 업무끼리 상호감시 및 견제할 수 있는 기존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지키면 금융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고는 ‘문제가 있는’ 직원이 아닌 모범적인 직원인 예가 적지 않다.”며 “인력 부족으로 특정 업무에 오랫동안 일하게 하다 보니 한순간 주식투자 등에 빠져 돈이 부족하면 이같은 사고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실명제법 등 관련법 개정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이를 고쳐 금융사고를 막는다고 것은 난센스라고 말한다. ●노조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범죄행위 취급” 시중은행 노조측은 금융권의 관련법 개정 요구 움직임은 ‘약자에 대한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시중은행 노조 간부는 “상당수 시중은행 경영진은 줄곧 노조측에 이같은 요구를 해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발생하지도 않은 사고에 대해 범죄행위로 간주해 개인의 금융거래를 조회하는 것은 위법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굳이 관련법을 개정하려 든다면 금융권에만 국한될 사항은 아니다.”라며 “돈을 만지는 정부조직내 공무원, 일반기업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SK텔레텍 인수 팬택 박병엽 부회장은

    SK텔레텍 인수 팬택 박병엽 부회장은

    국내 3위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인 팬택계열의 박병엽(44) 부회장이 또 하나의 ‘큰 일’을 벌였다. 팬택계열은 지난 3일 국내 최대 이동통신 서비스업체인 SK텔레콤의 단말기 제조 자회사인 SK텔레텍 인수를 전격 발표했다. 시장은 ‘충격’이었다.SK그룹이 글로벌사업 전략의 한 축으로 키워왔다는 회사였기에 더욱 그랬다. 팬택은 ‘벤처기업의 기린아’에서 매출 5조원대의 대기업으로, 박 부회장으로선 ‘IT업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그에겐 ‘단돈 4000만원을 15년만에 매출 3조원대로 키운 통신업계의 젊은 사업가’란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시장에서는 두 업체의 합병을 두고 서로가 밑지지 않은 ‘절묘한 컨버전스’로 평가했다. ●세계시장 ‘빅5’ 현실화 팬택계열은 올해의 매출 목표와 SK텔레텍 매출을 합치면 5조원대의 대기업 반열에 오른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LG전자와 함께 국내 3인자 자리를 확고히 구축하게 된다. 박 부회장은 “일단 국내시장 기반을 다진 뒤 해외시장에 진력할 것”이라고 밝혔다.SK텔레콤의 브랜드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 국내시장을 공고히 하고 목표지점인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겨루겠다는 것이다. 팬택계열의 올 1·4분기 국내시장 점유율은 삼성·LG전자에 이어 14%대였다. 중국, 브라질, 독일 등지에 현지공장 및 법인을 설립했고, 세계시장에서 70∼80%를 자사 브랜드로 공략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그동안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을 탈피,‘애니콜’ ‘사이언’ 같이 독립 브랜드화하겠다는 뜻이다. 국내시장 점유율이 7%인 SK텔레텍은 여기에 대단한 원군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박 부회장은 소문대로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다.‘귀공자 스타일’이지만 좌중에서는 격식을 따지지 않고, 연장자에겐 깍듯이 ‘선배님’이란 호칭을 쓴다. 기자가 만난 그를 종합하면 말은 차분하지만 ‘경영 승부사’다운 내면이 배어 있었다. 그는 가끔 “편히 살아갈 수 있는데….”라며 새로움을 찾아가는 ‘운명론’을 말하곤 한다. 그에게 “왜 부회장 직함만 계속 쓰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매출이 최소한 10조는 돼야 호칭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라며 기업을 건실히 키우는 데만 신경쓰겠다고 했다. 세간에는 호탕하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만 알려졌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스타일이란 게 주변의 말이다. 팬택의 회계장부는 하루에 한번씩 수치가 바뀐다. 가용자금을 점검해 적정수준 이상을 유지한다. 이래서 팬택계열은 3000억원 정도의 현금을 항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다 갖춰준다. 열심히 일하라.” “팬택의 가치는 ‘사람과 기술’입니다.” 그는 팬택의 오늘은 이 두가지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가끔 말한다.‘사람은 대접을 받아야 능력을 발휘하고 직장은 자아실현의 터전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관이다. 이런 이유로 수익의 3분의1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쏟아부어 왔다. 최근엔 남다른 후생복리제도가 공개돼 화제를 낳았다.‘가족 1명당 의료비 최대 3000만원 무료 지원, 주택자금 최대 1억원 저리 대출, 결혼자금 최대 1000만원, 의료·장례비 최대 500만원 2% 저금리 지원….’ 대기업에서조차 보기 힘든 제도로 직장인의 부러움을 무척 사고 있다. 지난해 말, 박 부회장은 팬택노조가 “회사가 어려우니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하자 “무슨 소리냐.”며 임금을 올릴 것을 지시, 평균 10.4% 더 주었다. 하지만 ‘당근’만 있지는 않다. 외부에 알려진 ‘자유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임직원의 사생활은 철저한 점검 대상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업체이기 때문이란다. 박 부회장에겐 오래도록 전해지는 단말기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저녁 자리에서 지인의 단말기를 느닷없이 던진 사건(?)이 벌어졌다.“왜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에 “단말기는 던진 뒤 다시 켰을 때 통화가 돼야 정상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을 한 지난 15년간 큰 실패를 겪지 않았다. 이를 주위에선 ‘불패 신화’라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아 잘 넘겼다.”고 말한다. 팬택계열사의 올해 전체 매출액은 4조원대 가까이 이를 전망이다.SK텔레텍까지 합치면 올해 5조원대는 될 것으로 본다. 지난 2003년에는 매출 2조원을 올려 국내 제조업체로선 40여년만에 처음 이룬 성과로 평가됐다. 팬택계열은 최근 중국의 단말기 제조기술이 한층 좋아지면서 ‘고급 폰’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의 경영행보는 아직 ‘두발 자전거’를 탄 채 페달을 밟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완전한 성공’보다는 ‘진행형 성공’이란 뜻이다.SK텔레텍 경영권 인수도 대기업 및 글로벌기업으로 옮아가는 큰 시험대다. 한 컨설턴트가 최근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국내에서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창조적 최고 경영자(CEO)는 결코 없습니다.” 시장은 박 부회장이 창조적 대기업인으로 자리할지 주목하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박병엽 부회장 1962년 서울 출생 1980년 서울 중동고 졸업 1985년 호서대 경영학과 졸업 1987년 10월 맥슨전자(주) 입사 1991∼2000년 팬택 대표이사 사장 1998년 11월 미 클린턴 대통령 초청,6인 원탁회의 참석 1998년 일본 NHK, 아시아 리더 500인 선정 2000년 2월 팬택 대표이사 부회장 2002년 8월∼현재 팬택계열 부회장 ■ 팬택의 도전 15년 박병엽 부회장의 발자취는 ‘거침없는 도전’이었다. 지난 1991년 첫 직장이던 맥슨전자에서의 평사원직을 박차고 나와 4000만원에 직원 6명으로 팬택을 설립, 사업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90년대 초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돈을 꽤 벌었다. 영업현장 노하우와 이를 활용한 공격적인 경영이 주효했다. 이후 통신시장이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말을 갈아 타자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로 바꿨다. 2001년엔 또 한번의 ‘베팅’을 했다. 팬택보다 덩치가 몇배 큰 현대큐리텔을 인수, 팬택&큐리텔이란 법인을 설립한 뒤 단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박 부회장은 적자에 시달리던 팬택&큐리텔을 1년여만에 흑자기업으로 바꿔 놓았다. 팬택&큐리텔 인수 당시에 구조조정이 아니라 거꾸로 격려금을 지급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박 부회장 개인적으론 지난 2003년 9월 팬택&큐리텔이 거래소에 상장돼 국내 기업인 중 15위 자산가로도 등록되기도 했다.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2) 호찌민家 사람들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2) 호찌민家 사람들

    1945년, 베트남이 8월혁명을 통해 독립국가를 수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중부 응에안성의 킴리엔 마을로 청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 청년이 찾아간 집은 오딴(O Tan)이라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오딴 할머니의 원래 이름은 응우옌 티 딴(Nguyen Thi Tan).1884년 태어난 그녀는 젊은 시절, 베트남 중·북부를 누비며 활동한 항불 독립운동가였다. 미모에 키가 훤칠했지만 결혼은 안했다. 프랑스 경찰에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청춘은 지나가버렸다.1916년에 체포됐을 때는 불에 달군 동세숫대를 타고 앉아야 했다. 엉덩이 살이 타들어갔지만 동지들을 팔아넘기지 않았다.1918년 노역형 9년을 선고받고 꽝응아이성에서 출감했을 때 이미 마흔이 훌쩍 넘었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관숙인(보호관찰대상자) 신세였다. 조국은 독립했지만 지나간 그녀의 청춘은 되돌릴 수 없었다. 고문으로 망가진 몸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습하는 견디기 어려운 통증에 시달리던 그녀 앞에 청년이 불쑥 내놓은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낯익은 사진의 주인은 독립정부의 주석 호찌민이었다. “이 얼굴은 틀림없는 응우옌 탓 딴입니다.” 오딴은 그 청년이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브엉 툭 오안(Vuong Thuc Oanh), 이 청년 역시 옥살이하다 8월혁명으로 출감한 항불혁명가였다. 그는 자기 동생 딴이 배운 스승의 아들이기도 했다. “사실 제가 1940년 중국의 광저우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거기서 그가 세운 베트남혁명청년회의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나도 내 동생일 거라고 생각은 했다. 이 눈매는 세월이 흘렀지만 틀림없는 내 동생이다. 그리고 여기 이 귀를 봐.” 오딴은 사진 속 인물의 귀를 가리켰다. “동생 귀는 한 쪽이 유난히 크지. 그렇지만 함부로 말을 꺼내 나라 일에 바쁜 주석을 욕보이게 할까봐 입을 다물고 있었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서 자신이 서지 않기도 하고. 외국으로 떠난 뒤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브엉 툭 오안은 오딴의 동생이 고향을 잊지 않았다며 중국에서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얘기를 듣고 오딴은 하노이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오딴은 평소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집에서 기르던 오리 두 마리를 광주리에 담아 마을을 출발했다. 동네 사람들은 옷차림이 그게 뭐냐며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누나로서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일 뿐이다. 왕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다.”호찌민이 10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 뒤 호찌민에게 그녀는 곧 어머니였다. 또 주변에서 가는 동안에 죽고 말 것이라며 놓고 가라던 오리도 기어코 챙겼다. “가져 갈 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지고 가는 것이네.” 미국이나 프랑스 연구자들은 오딴이 닭 두 마리와 달걀 20개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의 누나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리를 챙긴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며칠만에 하노이에 도착한 오딴은 곧바로 주석관저로 바뀐 옛 프랑스 총독부로 갔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주석에게 동생을 만나러왔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경비원은 오딴을 이상한 눈빛으로 봤다. 경비원이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화가 난 그녀는 경비원을 나무랐다.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착하고 총명했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나도 좋은 옷이 있지만 이렇게 가난한 누이를 반겨 맞을 것인지 아닌지 보기 위해서 이렇게 입고 왔다. 당장 연락을 해라. 동생이 나를 맞지 않겠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비원은 비서실에 연락했다. 곧 비서가 나와 오딴에게 어느 집의 주소를 일러주며 그곳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오딴은 발끈해서 오리가 든 광주리를 들고 일어섰다. 늙었다지만 프랑스 경찰의 혹독한 고문에 맞서던 결기가 그대로 나타났다. “나는 돌아가겠네. 수십년 만에 누나가 왔는데 내일 보자는 말인가.” 비서가 당혹스러워하며 오딴을 붙들었다. “사실은 제가 아까 응우옌 티 딴이라는, 누이란 분이 찾아왔다고 말씀드렸을 때 주석께서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석께서는 장제스군대에 쌀 1만t을 주는 업무를 처리하고 계신 중입니다.” 당시 베트남에는 일본군 무장해제를 핑계로 남쪽에는 영국군, 북쪽에는 장제스군이 들어와 있었다. 이들의 행패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뿐 아니라 완전한 독립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었다. 호찌민은 장제스군을 하루빨리 내보내기 위해 어르고 달래느라 애쓰고 있던 참이었다. 오딴은 비로소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이것이 관리가 백성을 대하는 태도라면 나는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나라 일로 그러하다면 내가 기다리겠다.” 오딴은 당 티 마이 교수 집으로 갔다. 당 티 마이교수는 호찌민과 동향으로 베트남의 전쟁영웅 보 응우옌 잡 장군과 함께 교사생활을 했다. 호찌민정부의 초대 교육부장관을 맡고 있기도 했다. 당 티 마이 교수의 집에 간 오딴은 오리를 내놓으며 요리를 부탁했다. “두 마리 오리를 그대로 삶아서 내주세요. 발 4개도 잘라 버리거나 으깨지 말고 꼭 통째로 내놓아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 호찌민은 당 티 마이 교수 집에 들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오딴은 벽을 바라본 채 돌아앉지 않았다. 호찌민은 오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찌어이(누나), 이 순간에 누이는 왜 이렇게 동생에게 화를 내고 계세요?” 그제서야 오딴은 돌아서 일어서 호찌민을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오딴은 호찌민의 뺨과 턱을 쓰다듬으며 안쓰러워했다. “왜 이렇게 늙었니. 어릴 때 그렇게 잘 생겼던 내 동생의 볼이 왜 이렇게 홀쭉하니. 그래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빛나는구나.” 감격적인 상봉 뒤에 아침식탁이 차려졌다. 물론 식탁 가운데에는 오리 두 마리가 놓여졌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오늘 너무 푸짐하게 차렸군요. 그런데 어쩌자고 오리를 이렇게 많이 올렸어요?” 그렇게 묻는 호찌민에게 당 티 마이 교수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오리는 제가 준비한 것이 아니고 누이께서 응에안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이랍니다.” 그 말을 듣고 호찌민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리의 다리를 집어 들었다. “찌어이(누나), 오늘 이렇게 내 잘못이 낱낱이 드러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식탁에 앉았던 당 티 마이 교수의 가족들은 모두 의아한 눈으로 오딴을 쳐다봤다. 한동안 가만히 앉았던 오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오늘 아주 기쁘네. 내 동생이 40여년 동안 세계 각국을 떠돌다 돌아왔는데 우리 집안의 가르침을 잊지 않은 것을 확인했으니, 얼마나 기쁜가.” 호찌민은 어려서 오리발 때문에 외할머니에게 매맞은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댁 제삿날, 외할머니는 제삿상에 올리고 남은 오리발을 오딴의 남자동생들인 키엠과 호찌민에게 하나씩 주었다. 형인 키엠은 자기의 오리발을 들고 동생을 놀렸다. “내 오리발이 더 크∼다.” 약이 오른 호찌민은 자기 오리발은 내려놓고 형의 오리발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오리발을 마주잡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동생들을 오딴이 나무랐다. “키엠, 형인 네가 양보해야지.” 그 말에 키엠은 잡아당기던 오리발을 놓았고 호찌민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바람에 밥상 위에 있던 할머니의 사기 밥그릇이 깨지고 말았다. 평소에 인자하기 그지없던 외할머니가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깍자우(손자들아), 잘 들어라. 너희들이 아무리 총명하고 학교에 다니며 문자를 배워도 남의 것을 탐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커서 탐관오리밖에 될 것이 없다. 그러니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종아리를 걷어라.” 누이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호찌민은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옆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호찌민은 틈틈이 당 티 마이 교수 집에 들러 누나와 식사했다. 열흘 정도 머물던 오딴은 호찌민 비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열흘을 지내면서 동생이 식사하고 생활하는 것을 지켜봤다. 주석이면 다른 나라로 치면 대통령이고 왕인데, 비서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식사하는 것을 보니 이제 내가 돌아가도 될 것 같다. 마음의 근본을 잃지 않았으니, 내 동생이 탐관오리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게야.” 당 티 마이 교수가 오딴을 말렸다. “왜 동생을 돌봐주시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세요.” 허리 굽은 시골 노인네는 교육부장관인 교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동생은 이미 큰 사람이 됐네. 내가 여기 있으면 내가 동생을 돌보는 게 아니라 동생의 그늘에 내가 기대는 것이 되네. 우리 조국이 프랑스 식민지가 됐을 때 가족들은 찢겨지고, 심지어 왕도 아프리카로 쫓겨났지 않았나.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되찾았고 나는 여한이 없네. 그리고 나는 권력 가까이에서 행세하는 사람이 아닐세. 내 동생은 여기에서 나라를 돌봐야 할 사람이고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내 집을 돌봐야 할 사람이네.” 당 티 마이 교수는 그래도 한 번 더 오딴을 붙잡았다. “고향에 돌볼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난 자식이 없지. 그렇지만 내 마을 아이들은 모두 내 자식이라네.” 그렇게 킴리엔으로 돌아간 호찌민의 누이는 1954년 7월20일 고향집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는 하노이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호찌민이 형 키엠과 누나 오딴을 챙기지 않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사실, 특히 엄마와 같은 누나 오딴의 장례식에 전보 한 장도 보내지 않은 것을 두고 사가들 사이에는 온갖 억측이 많았다. 특히 호찌민을 비정한 전쟁광으로 묘사하려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러나 1945년 8월혁명 직후부터 키엠과 오딴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작가 썬뚱은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오딴이 죽었을 때 호찌민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어요. 디엔비엔푸에서 승리한 뒤 제네바협정을 두고 주언라이와 입장을 조율했지요.” 호찌민은 중국에서 돌아와서야 누이의 죽음을 전해들었다. 볼펜을 떨어뜨린 채 책상다리를 꽉 움켜쥐고 겨우 몸을 지탱하던 호찌민은 한참 뒤에야 비서에게 조전이라도 보냈는지 물었다. “박(아저씨)이 돌아오면 의견을 여쭈려고 기다렸습니다.” 호찌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고향 킴리엔이 있는 남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 주이 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빌딩 X파일] 잠실 시그마타워

    [빌딩 X파일] 잠실 시그마타워

    지난 1990년대 중반 당시 서울 잠실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만 하더라도 상가와 아파트가 결합된 주상복합의 개념은 낯설던 시절, 기껏해야 종로 낙원상가·세운상가 등 ‘슬럼화’된 주상복합이 전부였다. 잠실 시그마타워가 업무공간과 거주공간이 균형을 이룬 1세대 최첨단 주상복합 빌딩이라는 점에서 각광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그마타워는 지상 30층 지하 7층 연건평 2만 600여평 규모로 잠실롯데월드 대각선으로 맞은편 송파구 신천동 7의19에 지어졌다.93년 착공해 96년 10월 완공됐다. 당시로는 최첨단의 환경시설을 갖춰 ‘국내 최초의 환경아파트’라는 호칭이 뒤따랐다. 시그마타워에는 중앙집중식 청정공기 정화시스템, 자동쓰레기 처리장치 등 당시 거주공간에는 처음 적용되는 환경시설을 갖췄다. 특히 중앙집중식 청정공기 정화시스템은 실내 공기의 오염물질을 없애는 것은 물론 실내습도 조절, 정전기 방지기능까지 하면서 당시 언론의 초점이 됐다. 또 중간층인 12층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30층 옥상에는 전망대도 설치돼 서울 동남부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당시 소유주인 한라그룹은 96년11월 대치동 사옥에서 이곳으로 대거 옮겨왔다.89평 등 주거공간의 83가구는 당시로서는 최고급인 평당 900만원대의 분양가로 입주했다. 그러나 시그마타워의 앞날은 평탄치 않았다.97년말 경제 위기로 경영난에 빠진 한라그룹이 99년 싱가포르투자청에 평당 400만원에도 못 미치는 330억원에 팔았다. 지난해 초 다시 500억원에 부동산투자회사인 K-1리츠로 넘어간 상태다. 시그마타워는 1∼12층까지 사무공간이다. 그중 7∼10층까지는 ㈜한라건설 등 한라그룹이 사용하고 있다. 이어 외환은행, 교보생명,LG카드 등 10여개 업체 지점과 국민건강보험 송파지사 등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13층부터 29층은 아파트에 해당한다. 따로 출입문을 만들어 사생활을 보장했다. 지하 1층 상가에는 30여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대부분 음식점들이다. 주변에 사무실들이 제법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한 음식점은 별로 없는 편이라 점심 시간이면 발디딜 틈없이 붐빈다. 백반부터 칼국수, 감자탕, 추어탕, 삼겹살, 중화요리 등 대중적인 음식을 4000∼5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스포츠클럽, 당구장, 약국 등도 입주해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유비쿼터스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유비쿼터스

    생활과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미래의 정보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유비쿼터스 혁명이다. 유비쿼터스는 홈네트워크 등에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집 밖에서 집 안에 있는 가스불을 끄고 세탁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파트가 분양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는 주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민원서류를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지난 21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유비쿼터스가 일상화된 사회는 과연 사이버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인간은 컴퓨터와 통신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은 점점 메마를 것이다. 인터넷이 마비됐을 때 통신대란이 일어났듯이 유비쿼터스가 중단됐을 때의 혼란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현재 유비쿼터스의 개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고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보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유비쿼터스란 유비쿼터스는 라틴어로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이다.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1988년 미국의 사무용 복사기 제조회사인 제록스의 와이저(Mark Weiser)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와이저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메인프레임과 퍼스널컴퓨터(PC)에 이어 제3의 정보혁명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컴퓨터에 어떠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냉장고·안경·시계·스테레오장비 등과 같이 어떤 기기나 사물에 컴퓨터를 집어넣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정보기술(IT) 환경 또는 정보기술 패러다임을 말하는 것이다. 유비쿼터스화가 이루어지면 가정·자동차는 물론 산꼭대기에서도 정보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광대역통신과 컨버전스 기술의 일반화, 정보기술 기기의 저가격화 등 정보기술의 고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유비쿼터스가 세상을 바꾼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구축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유비쿼터스의 일상화는 개인이 모든 네트워크에 접근 가능하다는 점을 말한다. 무슨 정보든지 알아낼 수 있고 사물을 원격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유비쿼터스의 예로 휴대전화 단말기로 은행계좌를 조회하거나 송금을 하고 네비게이터로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들 수 있다. 더 미래로 가보자.2015년 어느날. 김철호씨는 침대에서 말을 하는 로봇이 깨우는 소리를 듣고 잠이 깬다. 밖으로 나가려고 손잡이를 잡자 건강 상태가 체크되고 주치의의 컴퓨터에 자동으로 입력된다. 승용차에 오르면 로봇이 뉴스를 읽어 준다. 외출중인 김씨의 아내에게는 역시 로봇이 저녁에 먹을 음식이 모자란다며 사야 할 식품 목록을 알려준다. 집에 가면 이미 음식이 배달되어 있다. 이런 생활을 하는 미래 인간을 ‘유티즌(U-tizen)’이라고 부른다. 네티즌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만다. 광고에도 이런 유티즌의 생활이 나온다. 목욕을 하며 휴식하는 여자는 문득 최근 개봉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가 내뱉은 말을 인식한 거울 TV(Mirror Vision)가 ‘오페라의 유령’을 초고속으로 다운로드하여 즉시 보여준다. 있는 곳이 바로 극장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 길을 가다 PDA로 냉장고에 남아 있는 음식을 검색한다. 화면에 냉장고 안 식료품의 개수와 유효기간 등이 뜬다. 집 안의 모든 기기는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가 실생활에 적용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런 아파트의 홈 네트워크다. 광고에도 나오듯이 이미 홈 네트워크는 실현되고 있다. 원하는 시간에 에어컨이나 세탁기를 가동할 수 있다. 세대간 화상통화, 부재시 방문자 리스트 영상저장, 월별 관리비 내역조회, 실시간 검침조회도 가능하다. 자동차에서는 위성으로 신호를 받는 텔레매틱스 서비스(자동차와 무선통신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교통 정보를 확인한다. 물건을 살 때는 계산대만 통과하면 물건명과 가격이 자동으로 기록되고 결제는 휴대전화로 한다. ●유비쿼터스 유의할 점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서는 과연 유토피아 같은 삶을 살게 될까.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비쿼터스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면도 내포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돼 대인관계는 소원해지고 가족 간의 거리도 갈수록 멀어질 것이란 주장이 있다. 전자태그가 일반화되면 상품 구매정보가 기업 쪽에 저장돼 개인의 취향과 생활패턴이 노출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좋아할 만한 옷을 내놓을 것”이라면서 “사생활 침해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또 홈네트워킹 시스템이 불통되면 집에 불이 안 들어오고, 뜨거운 물이 끊기는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KISDI 이호영 박사 등은 “유비쿼터스 개발 단계에서부터 기술의 사회적 성격과 다양한 기술외적 측면을 검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명확한 개념정의가 되지 않았는데도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강홍렬 미래한국연구실장은 “유비쿼터스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국가가 전략적·정책적 용어로 채택해 전략적인 의미를 전달하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사생활 벗기기 어디까지…

    YTN이 정형근 의원 ‘묵주사건’을 보도한 데 이어 SBS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이야기를 방송했다. 두 사건을 두고 공인의 사생활이 어디까지 보도돼야 하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생활 보호라는 차원에서는 정 의원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평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두 사건 보도에는 일정 부분 차이가 있다. 정 의원 사건 보도는 ‘여성과 장시간 호텔에 함께 있었다.’는 정도지만 김 전 대통령의 경우는 숨겨진 딸의 존재뿐 아니라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는 점이 부각됐다. 당사자들이 법적 대응을 했거나 검토 중인 상황에서 쟁점은 역시 취재·보도한 언론이 ‘사실로 믿을 만큼’ 사전에 충분한 확인취재를 했었느냐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리적 논쟁과 별도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사생활면에서 히틀러는 금욕주의적이었고 루스벨트는 쾌락적이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극우파시스트로,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극복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가까운 예로는 클린턴의 섹스스캔들 때 전통가치 수호를 내건 공화당이 특검수사 결과라는 이름으로 한 편의 포르노물을 버젓이 내놓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섹스스캔들 보도를 비웃어왔던 프랑스는 한 주간지가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을 공개하자 “한건주의 폭로를 중시하는 저질 앵글로색슨형 저널리즘이 침투했다.”는 비판이 일어났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국정원 ‘특수사업’ 진실 밝혀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숨겨진 딸이 있으며,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이를 감추기 위해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한 방송이 보도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또 김 전 대통령측은 사실과 다른 보도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김 모 여인과 주변인물들의 행적과 증언으로 볼 때 전부는 아니더라도 큰 줄기는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라도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고, 윤리나 도덕적인 판단도 개인의 몫이다. 사안이 흥밋거리로 번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의혹에 등장하는 국정원의 개입여부는 개인의 사생활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국가정보기관이 현직 대통령의 사생활 관리에 동원되었다는 의혹은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관계자들이 김모씨 모녀의 입을 막기 위해 ‘특수사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진승현게이트’의 당사자인 진씨로부터 돈을 받아 전달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측이 검찰에 진씨의 선처를 부탁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국정원이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윗선의 지시로 개입했건, 스스로 알아서 처리했건 간에 국가최고정보기관이 대통령의 사생활 보호에 동원됐다는 것은 권력 오·남용의 후진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당시 국정원 관계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불과 5년전 일이라서 어물쩍 넘어갈 일도 못된다. 김 전 대통령과 국정원은 상식과 법치에 입각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 DJ측 ‘국정원 개입’ 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측은 뒤늦게 ‘숨겨진 딸’ 문제가 터져나오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사생활 문제’라며 언급을 회피하거나,SBS TV의 보도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며, 일부 의원은 국정원 개입 의혹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시하는 등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딸 아니냐’ 질문에 부정 안해 김 전 대통령의 공보업무를 맡고 있는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퇴임 후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애쓰고 노심초사하는 분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국정원 개입 문제는 해당 방송에 나온 국정원 관계자들조차 모두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승현씨 측의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마치 뭔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비서관은 ‘숨겨진 딸’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만을 반복해 궁금증을 남겼다. ●“중요한 역할하는 분을…” “국정원개입 있을 수 없는 일”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북한 핵과 외교 문제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인데 이런 식으로 상처를 입히는 문화가 안타깝다.”면서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그런 걸 갖고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면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당 권영세 전략기획위원장은 “가장 민주화된 정부라고 자랑했던 ‘국민의 정부’의 국정원이 그같은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나는 DJ의 숨겨진 딸’ 최초공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SBS ‘뉴스추적’은 19일 오후 8시55분 방송을 통해 지난 2000년∼2001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진승현 게이트’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친다. 제작진은 ‘진승현 게이트’수사 당시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국정원의 ‘특수사업’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로비자금 2억원 등 ‘특수사업’의 실체에 주목했다. 제작진은 게이트 관련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진승현은 정치적 희생양이며, 국정원 특수사업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사생활을 정리하기 위한 사업이었다.’는 등 기존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증언을 확보, 공개한다. 즉 국정원 간부들이 진승현씨의 돈을 끌어들여 김대중 전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과 그 어머니의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한달 남짓 취재끝에 김 전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김모(35)씨를 찾아내 인터뷰에 성공했다.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이 여성은 카메라 앞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직접 찾아가기도 했으며, 김홍일 의원이 생활비를 대 줬다. 아파트는 조풍언씨가 사줬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이 여성의 어머니는 2000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도 전한다. 미국 현지 취재에 나섰던 제작진은 “김씨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을 통해 아주 어릴 적부터 불규칙적으로 생활비를 보조 받았으며, 통장 입출금 내역 등 관련 기록을 통해 그녀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임을 확인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측에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김 전대통령이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감출 수 있었으며, 왜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이런 내용을 알고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집중 의혹을 제기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아인슈타인, 사망50주기 평전 잇따라 발간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00주년,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해. 국내 출판계에서는 이에 맞춰 아인슈타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평전 혹은 전기물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책으로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토머스 레벤슨이 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김혜원 옮김, 해냄)과 영국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의 필자인 피터 스미스의 ‘인간 아인슈타인’(최진성 옮김, 시아출판사) 두 권을 꼽을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이 35세 되던 1914년부터 히틀러 집권을 앞두고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인 1932년까지 18년 동안 베를린에서 보낸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기간은 아인슈타인에게는 영욕이 교차한 ‘황금시절’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이름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몇명 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뉴턴의 역학을 뒤흔든 상대성이론 때문이 아니라 광전효과 연구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서였다. 영국 배우 찰리 채플린이 어느날 아인슈타인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차를 타고 가다 열광하는 군중을 가리키며 했다는 말은 이같은 아이러니를 잘 말해준다.“사람들이 당신에게 환호하는 건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나에게 환호하는 건 모두가 나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천재로서만 각인된 아인슈타인을 좀더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영광 뒤에 감춰진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은 한마디로 실망스럽고 부도덕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결혼과 연애를 별개로 생각한 ‘쾌락주의자’였다. 두번 결혼했지만 한번도 부인과 화목하게 지낸 적이 없는 그는 아내를 “내가 해고할 수 없는 가정부”라고 묘사한 방탕한 연애유희자였다. 또한 자신의 아들에게 “아이는 낳지 마라. 그러면 이혼할 때 복잡한 일이 생긴다.”고 충고아닌 충고를 한 아버지이기도 했다.‘유대인의 성자’ 아인슈타인이 국제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결국 유대인 국가 건립을 지지한 시온주의자였다는 점도 종종 지적되는 대목이다.2만 8000원. ‘인간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의 저서와 편지, 전기작가들의 기록들을 인용하며 퍼즐조각처럼 난해한 그의 삶과 사상을 복원한다. 늘 꿈을 꾸듯 ‘병적으로 조용한’ 아이였던 평범한 어린 시절부터 야망과 희망이 뒤섞인 청년기, 현대 과학의 이단아이자 혁명가로 인식되던 장년시절, 그리고 당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노년기까지 전 생애를 아우른다. 아인슈타인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낸 것은 유전이나 내가 자라온 환경이 아니라 호기심과 집념 그리고 인내력”이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사생활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은 아인슈타인이 사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게 해주었지만 ‘개인적인 하찮은 것들’로부터의 도피는 평생 아인슈타인의 마음 속에 주홍글자처럼 남아 있었다. 마침내 아인슈타인은 “나는 나의 조국, 나의 집, 나의 친구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들에게조차 진심으로 속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결코 ‘고독의 필요성’을 잊지 않았다. 자기 이름이 곧 천재라는 뜻의 보통명사가 돼버린 아인슈타인. 이 지적 거인의 삶이란 얼마나 벅차고 고단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뒤, 아인슈타인이 정신적 피로가 극도에 달해 2주 동안 계속 잠만 잤다는 짤막한 일화를 들려준다.“미래는 걱정할 새도 없이 금방 다가온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우리의 정신적 나태를 경계하는 참다운 격언으로 가슴에 새길 만하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6성급 호텔 ‘파크 하얏트’ 개관

    서울 강남 ‘파크 하얏트’호텔이 15일 문을 연다. 파크 하얏트 서울은 147개의 일반 객실과 38개의 스위트룸을 갖고 있는 ‘6성급’호텔이다. 일반 특급 호텔들과 달리 층마다 10개의 객실만 들여 고객들의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했다. 일반 객실도 13평으로 국내 일반 호텔방보다 넓게 꾸몄다. 서울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로비를 24층 최고층에 배치한 것도 특징이다. 제한된 객실수로 고객들에게 개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헬스클럽과 실내 수영장, 스파 시설도 갖추고 있다.6개의 회의실을 마련해 다양한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아! 100번째 프러포즈

    |뉴델리 연합|결혼 100회라는 목표를 세웠던 한 인도인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IANS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인도 오리사주에 살면서 지금까지 92번 결혼했던 우다야나트 다키나 라이라는 남자는 93번째 배필을 놓고 저울질하다 안타깝게도(?) 목표달성 8회를 남겨두고 지병을 이기지 못해 지난 5일 숨을 거뒀다.1924년 4월29일생인 라이가 처음 결혼한 여성은 이웃마을인 덴카날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시바프리야라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첫번째 결혼은 신접살림을 어디에 차리느냐는 문제로 불과 보름 만에 파경을 맞게 된다. 라이는 자신이 거주하던 오랄리 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었던 반면 시바프리야는 직장이 가까운 덴카날을 원했던 것. 첫 부인이 떠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라이는 “세상에 여자가 너밖에 없느냐.”며 자신이 괜찮은 남편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최소한 100명의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게 이 통신의 설명이다. 이후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했던 라이는 나야가르 마을의 쿠니 다키나를 92번째 부인으로 맞아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뒀고 이들이 그를 임종했다. 라이는 사망 직전에 미국(3건)과 일본(3건), 독일(2건)에서 들어온 8건의 혼처를 놓고 고심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들은 내 목표 달성을 도우려고 시집오려는 것”이라며 자랑했다는 전언이다.
  • 美명문대 진학 3인이 말하는 공부법

    美명문대 진학 3인이 말하는 공부법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미국 고교생들의 SAT(Scholastic Aptitude Test) 평균 점수는 1500점대. 영어와 수학 점수를 합해 1600점 만점으로 계산하는 SAT는 미국 대학에 입학하려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미국 고교생들도 어려워하는 SAT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리고 명문대에 당당히 합격한 한국 고교 졸업생 3인을 만나 그들의 합격 비결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목표를 뚜렷하게 세워라.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해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게 즐겨라. 나만의 시각을 가져라. 자신을 표현하되 포장하지 마라. 미국 명문대학에 진학한 3인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명문대 합격 비법이다. 힘든 유학 준비 과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NYU stern과정에 입학하는 김형석군은 오로지 농구가 좋아서 유학을 결심했다. 영어로 된 농구 잡지를 읽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취미생활이었다. 미국에 가서 스포츠 에이전시로 활약하겠다는 목표는 힘든 고교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코넬대에 합격한 하현우군은 영어를 공부하면서 자신이 언어를 배우는 감각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원어민의 발음을 그대로 따라하는데 소질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즐겁게 영어를 공부했다. 예일대에 진학하는 전지혜양은 고3 생활에도 TV드라마를 즐겨봤다. 쉬는 시간에는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전양의 생각이다. 김형석군도 매일 2∼3시간씩 농구를 즐겼다. 미국 대학들은 지원자의 SAT 점수뿐만 아니라 이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기 때문에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시한다. 하현우군은 고교 재학시절 한 여성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가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을 에세이에 담았다. 미국의 인기 가수 조시 그로반의 히트곡을 직접 부른 CD도 제작해 원서와 함께 보냈다. 전지혜양은 중학교 재학시절 교회에서 주일학교 보조교사로 봉사하며 가르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돼 교수가 될 것을 결심했다는 포부를 에세이에 밝혔다. 김형석군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미래의 삶을 주제로 A3용지 15페이지 분량으로 포트폴리오를 제작해 원서와 함께 제출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코넬대 합격 하현우군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에 입학하는 하현우(19)군은 불굴의 의지와 성실함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바른생활 청년’이다. 하군이 미국 대학 진학을 결심한 것은 고교 2학년 6월.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해보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하군은 명덕외고 동기생들보다 유학 준비를 늦게 시작했다는 부담감이 컸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독서실로 달려가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하루에 영어단어 60개 이상을 암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녁을 굶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한국 대학도 미국 대학도 진학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루 취침 시간은 5시간. 집에서는 4시간만 자고 나머지 1시간은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을 쪼개서 잤다. 하군은 유학을 준비하는 동안 체중이 무려 7㎏이나 빠졌다고 한다. SAT 시험을 앞두고는 학원에 다녔다. 과목별 시험 1∼2개월 전에 특강 형태로 수업을 들었다.SAT 시험에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시험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SATⅡ 수학시험을 2학년 말에 마쳤다.3학년 1월에는 SATⅠ을,5월에는 SATⅡ 화학을,10월에는 SATⅡ 쓰기(writing)를 마쳤다. 하군은 SATⅠ에서 1430점,SATⅡ 수학에서 750점, 화학은 760점, 쓰기(writing)는 660점을 받았다. 하군은 진실하게 쓴 에세이 두편이 합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교 2학년 겨울, 사촌 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며 느낀 바를 솔직하게 기록했다. 다발성경화증을 7년간 앓다가 시력을 잃은 누나에게 클래식 기타를 배워 바흐의 곡을 연주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다. 하군은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이룰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을 에세이에 담았다. 하군은 또 다른 에세이에서도 자신의 평소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한국전쟁을 예로 들어 한국인들은 이를 남한과 북한만의 전쟁으로 알고 있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열강들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휘말렸던 비극이었다고 기술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역사와 사회현상을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군은 “SAT 시험은 공부한 만큼 점수를 낼 수 있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 시험”이라면서 “스스로와의 지독한 싸움을 이겨내겠다는 굳은 의지로 유학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하군은 대학에 진학하면 국제관계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예일대 합격 전지혜양 낙천적인 성격과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고교 3년을 지낸 전지혜(19)양은 올해 예일대에 입학한다.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중·고교 시절을 보낸 전양에게 유학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성재중학교 재학 시절 내신성적이 상위 3∼5%였던 전양은 이화외고에 진학한 후 보통 학생들과 같이 수능 시험을 준비했다. 미국 대학에 진학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2학년 말. 외고 입학과 동시에 유학 준비를 시작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늦은 결정이었다. 전양은 “부모님이 워낙 걱정을 많이 하셔서 망설였지만 늦었다고 생각하고 유학을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결심했다.”고 말했다. 유학을 준비해 온 동기생들보다 훨씬 늦었지만 친구들과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거나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막상 SAT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눈앞이 깜깜했다. 영어권 국가 체류 경험도 없었고 영어로 쓰인 전문 서적을 이해할 정도로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유명 SAT 관련 문제집을 구입해 단어부터 외웠다.1년간 공부한 영어 문제집을 차곡 쌓으면 1m가 넘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전양은 SATⅠ에 주력하면서 SATⅡ의 3과목을 3∼4개월 단위로 나누어 시험을 치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수월하다는 SATⅡ의 수학을 먼저 2학년 말에 마쳤다.3학년 5월에는 화학을,10월에는 쓰기(writing)를 끝냈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학교 유학반에 합류해 밤 10시까지 공부했다. 유학 준비는 늦었지만 고교 내신 성적은 꾸준히 관리해왔기 때문에 1·2학년까지 내신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한국 대학 수시 1학기도 동시에 노렸다. 전양은 연세대 인문학부 수시 1학기 모집에도 합격했다. 전양은 SATⅠ에서 1470점,SATⅡ 수학에서 800점 만점을, 화학은 790점, 쓰기는 710점을 받아 예일대 수시 모집에 합격했다. 고3 여름방학 2주 동안 인도 뭄바이 지역의 농아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도 합격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전 양은 인도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됐지만 한편으론 한국에서 보았던 빈부 격차가 인도에서도 역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느꼈다. 빈민과 부유층이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인도의 도시를 묘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는 뜻을 에세이에 담았다. 전양은 “SATⅡ 화학 시험을 준비하면서 자연과학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면서 대학에 진학하면 생화학을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NYU stern합격 김형석군 “마이클 조던이 농구공 하나로 미국을 제패했다면 나는 조던의 어깨에 제트 엔진을 달아 날려주겠다.” 올해 서울외고를 졸업하고 미국 NYU stern 정시 모집에 합격한 김형석(18)군이 유학을 결정한 것은 농구 때문이다.NYU stern은 뉴욕대 비즈니스 스쿨로 미국 대학 중 경영학으로는 최상위권이다. 중학교 시절 미국 프로 농구 선수 크리스 웨버의 열렬한 팬이었던 김군은 어느 날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보고 스포츠 에이전시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스포츠 에이전시는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 협상과 훈련 일정, 체력 관리, 사생활 등 스타의 모든 것을 조언하고 이끌어주는 전문가다. 그 뒤 김군은 스포츠 에이전시가 되려면 어떤 학교에 진학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보편적인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군은 고교 진학과 함께 SAT 공부에 매진했다. 정규 수업이 끝난 오후 4시부터 SAT와 토플 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은 학교 유학반에서 공부하고 두번은 SAT의 기본을 다지기 위해 학원에 다녔다.1학년부터 2학년 중반까지는 주로 문법과 SAT 단어를 익혔다. 집에 와서는 1∼2시간 복습하고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었다.2학년 여름방학부터는 본격적으로 SATⅡ의 화학과 수학 시험을 준비했다. 수학은 우리나라 고1정도의 문제풀이만 하면 되기 때문에 화학과 수학의 공부 비중을 8대 2로 잡았다.3학년 초까지 SATⅠ·Ⅱ시험을 마쳤고 3학년 10월에 SATⅠ시험을 한번 더 보았다. 김군은 SATⅠ에서 1570점,SATⅡ 화학은 770점, 수학 760점, 쓰기(writing)는 720점을 받았다. 공부하면서 힘들 때면 농구를 벗삼았다. 가까운 교회 운동장에 들러 틈틈이 농구를 즐겼다. 미국 프로농구 전문잡지 ‘슬램’도 정독했다. 역동적인 표현법과 생동감 넘치는 문장을 익히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김군은 “자신의 미래를 가상으로 꾸민 포트폴리오와 서울외고 농구부 활동 역시 합격에 중요한 요소였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과 스포츠 에이전시 전문 기업의 CEO가 된 2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 회사 운영 계획서와 함께 입학원서에 첨부했다. 고교 재학시절에는 농구팀의 주장을 맡을 정도로 농구를 사랑하는 소년이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김군은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 아마추어 농구팀에서 활약하는 것이 꿈”이라면서 “미국 NBA 선수들을 움직이는 한국 최초의 스포츠 에이전시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학교소식]

    ●전국소년체육대회 서울시 최종 선발전 제34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서울시 최종 선발전인 서울소년체육대회가 6일(수)∼12일(화) 목동 운동장과 보조경기장에서 열린다.11개 지역교육청 449개 학교에서 대표로 선발된 3012명의 선수가 29종목에서 기량을 겨룬다. 각 종목 우승자는 새달 28(토)∼31일(화) 충청북도 청주 등 10개 시·군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 서울시 대표로 참가한다. ●교내 과학경진대회·환경 관련 전시회 반포고등학교(www.banpo.hs.kr)는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교내 과학 경진대회와 환경전시물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20일(수)에는 과학경진대회와 과학경시대회가 열린다.1·2학년 재학생들은 과학 독후감, 환경 포스터, 과학 발명품 등을 제출한다. 출품작은 1학기 중간고사 과학 성적에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된다. 과학경시대회는 각반 대표 학생 5명씩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실력을 겨룬다. 이 경시대회에서 우수학생으로 선발되면 5월 중 열리는 서울시 경시 대회 학교 대표로 참가한다.18(월)∼22일(금)에는 학교 중앙현관에서 ‘멸종위기종 저어새와 습지 생태계 보전’이라는 주제로 환경관련 전시회도 열린다. ●인하대 사대와 연계 학습동아리 운영 인천 논곡중학교(www.nongok.ms.kr)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인하대 사범대학과 연계해 학급별 학습 동아리를 운영한다. 한 반당 1개팀씩 8명으로 동아리를 꾸려 논곡중 재학생 26개팀 200여명의 학생들이 일주일에 두차례씩 모임을 갖는다. 학습동아리 학생들은 인하대 명예교사 학생들과 방과 후에 EBS교육방송의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지도 받는다. ●신입생 500명 대상 적응교육 실시 건국대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konkuk-sub.cschool.net)는 새달 6(금)∼7일(토) 강원도 횡성 둔내유스호스텔에서 1학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적응교육을 실시한다.1학년 재학생 500여명은 이번 적응 교육 기간 동안 원활한 교우 관계와 스스로 삶의 목표를 세우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된다. ●이종현군 글짓기 부문 대상 수상 잠원초등학교(www.jamwon.es.kr) 이종현(11)군이 ‘제12회 2005전국예술대회’에서 서울특별시장상에 해당하는 글짓기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 군은 ‘서울의 봄이 찾아오면… 우리는’이라는 제목의 산문을 출품해 입상했다. 신세대문화예술교류단이 주최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후원한 이 대회는 전국의 초·중·고교생이 참가해 무용ㆍ음악ㆍ미술ㆍ글짓기ㆍ국악ㆍ댄스 스포츠 등 9개 부문에 걸쳐 실력을 겨뤘다. ●3개학과 189명·5학급 100명 규모 동두천 외국어고와 의정부 과학고가 지난 7일 윤옥기 경기도교육감과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기념식을 가졌다. 공립인 동두천외고는 영어와 중국어·일본어 등 3개 학과에 6학급,189명으로 운영되며 9명은 지역할당제로 선발했다. 전교생 30%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전원 기숙사생활을 한다. 외국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국제반도 신설했다. 의정부과학고는 5학급 100명이며 과학문화센터와 생태학습공원 등 부속시설을 갖췄다.
  • “여성이여, 이웃남자를 조심하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샌드라 그로스(가명)는 지난주 아파트 주민간의 내부 통신망에 “여성 입주자들이여, 주변의 남자를 살펴보라.”는 메모와 함께 인터넷 주소를 게시했다. 이를 본 한 여성 입주자가 이 인터넷 주소를 찾아들어가 보니 성 관련 범죄자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였다. 그녀가 호기심에 생각나는 남자 이름을 입력하자 전국에서 강간 등 성폭행 전력을 가진 같은 이름 18명의 명단이 나타났다. 또 그녀가 사는 지역의 우편번호를 입력하자 같은 마을에 사는 성폭행범 4명의 정보가 제공됐다. 성폭행범에 대한 정보는 매우 자세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은 물론 나이, 인종, 키, 몸무게, 눈동자 및 머리 색깔 등 개인신상은 물론이고 주소와 근무처까지 나왔다. 또 그가 몇년에 어느 재판소에서 어떤 혐의로 얼마의 형량을 받았는가도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이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criminalcheck.com으로 퍼블릭 데이터(PublicData.com)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최근 데이트 중이거나 관심있는 남자들을 점검해보는 여성들의 방문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이트는 제공하는 정보의 성격 때문에 공개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지만 입소문을 통해 여성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성폭행 전과자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낱낱이 공개돼 이들의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97년 설립된 퍼블릭 데이터는 “정부는 가급적 개인의 정보를 수집해서는 안되며, 일단 수집한 정보는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단체다. 이 단체는 성폭행범 정보 말고도 강력범과 운전면허, 자동차 번호, 유권자 등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이들은 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는 수집한 정보를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dawn@seoul.co.kr
  • [CEO 칼럼] CEO퇴진의 미학/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CEO 칼럼] CEO퇴진의 미학/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화가가 있었다. 그는 궁중 화가로 일을 하면서 금릉(현재의 남경)에 있는 사찰인 안악사 주지의 정중한 부탁으로 절의 벽에다 용을 그려 주게 되었다. 이윽고 두 마리 중 한 마리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고 뇌성이 치더니 그 용이 살아나서 하늘로 승천해 버렸다. 이것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즉 가장 요긴한 곳과 때에 맞춰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내용의 고사다. 할리우드 서부영화인 1960년대 ‘셰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인기배우 아란 랏드가 주인공 카우보이 역을 멋지게 해냈다. 재빠른 솜씨의 총놀림으로 맞대결에서 최후의 악당 두목까지 쓰러뜨렸다. 그런 뒤 그는 황혼을 향해 미련없이 말고삐를 거머쥐고 표표히 떠나는 라스트 신은 관객을 뭉클하게 감동시켰다. 요컨대 CEO는 떠날 때를 알고 또 끝맺음이 좋아야 한다. GE의 CEO 자리를 물러난 천하의 잭 웰치도 심심찮게 뒷소리가 들린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당한 전관예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 소송을 당한 사생활 때문에 더욱 시끄러워졌다. GE로부터 받는 연간 1000만달러의 연금 외에 GE소유 전용 제트기도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GE소유의 아파트도 웰치는 공짜로 제공받고 있다. 심지어 화장지와 신문 구독료와 레스토랑 식사비까지 회사로부터 지불받고 있다. 그래서 20년간 쌓아올린 ‘웰치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알렸다. 그래도 쩍하면 국민의 피와 땀인 공적자금을 집어먹었으면서도 뻔뻔하게 호화판 생활을 즐기는 상당수 한국의 대기업 CEO들보다는 낫다. 감옥을 들락거리는 국가 최고경영자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이런 판국에 ‘아름다운 은퇴’로 CEO의 끝맺음을 보여준 미래산업의 정문술 전 사장의 사례는 멋진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잘 나가는 알짜 기업을 평소 ‘투명경영’을 강조해오다 몇 해전 전문경영인에게 전격적으로 바통을 넘겼다. “제가 한 은퇴 결단을 ‘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수렴청정’의 유혹도 받았지만 신앙으로 극복했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아야 지휘봉을 놓는 창업주들이 많습니다.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지요. 회사가 ‘자기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기업 활동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지만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자선문화를 개발하는데 매일 매일을 바쁘게 보낼 예정입니다.” 설사 어려움을 겪더라도 항상 활기찬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KSS해운 박종규 전 사장도 전문경영인에게 CEO자리를 멋지게 물려줬다. 박세일 전 국회의원이 정책정당의 꿈을 안고 정치에 입문했다가 당 정책의장직을 사임하고 끝내 탈당이라는 수순으로 국회의원직을 버렸다. 그가 지키고자 한 정책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정책에 직책을 걸고 퇴진을 결행(決行)한 것은 장쾌하다. 이로써 한 국회의원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정치가는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사즉생(死卽生)-죽는 것이 곧 사는 길’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아쉬운 때다. 토머스 모어(1477∼1535)는 영국이 낳은 인문주의 사상가요, 대법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헨리8세가 영국교회의 수장이 되려는 야심에 반대하다가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1935년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려졌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 美, 테러자금 추적 금융거래 접근방안 추진

    미 행정부가 테러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수억건에 달하는 국제금융 거래내역을 볼 수 있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뉴욕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 재무부의 실무진이 마련한 이번 구상은 미국내 은행을 통한 국제적 자금거래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지만 은행 관계자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구상은 지난해 12월 미 의회에서 통과된 정보개혁법안 가운데 거의 주목받지 못한 ‘짧은 조항’에 근거했다. 이 조항은 재무부에 금융기관을 상대로 ‘특정한 국제적 자금이전 내역’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돈 세탁과 테러자금 방지 등에 활용토록 했다. 재무부는 현재 20명의 직원으로 실무진을 구성, 미 연방수사국(FBI) 및 국토안보부 등과 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같은 전자거래가 9·11 테러 당시 자금조달 통로였으며 지금도 테러 자금책들에게 유용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오용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가 포함될 것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취한 과감한 테러자금 차단책은 은행의 기술적인 실수마저 범죄시해 은행권과 일부 연방관리들이 반발해 온 만큼 이번 계획은 신중해야 한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백문일 기자 mip@seoul.co.kr
  • [사설] ‘어린이 일기 검사는 인권침해’

    초등학교 교사의 일기장 검사 관행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개선돼야 한다는 인권위의 의견이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한국교총과 전교조 등 교사들은 교육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우리는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와 전문성도 충분히 인정하지만 인권위의 권고는 경청해야 한다고 본다. 어린이도 양도할 수 없는 기본권을 가진 인격체인 것은 어른과 다를 바 없으며 극히 사적인 고백인 일기 공개를 강제한다는 것은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권과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일기쓰기가 어린이들의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 향상, 좋은 생활 습관 형성에 교육적 효과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기록을 습관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일기쓰기의 교육적 효과와 일기장 검사행위는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인권위의 지적대로 검사를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다 보면 솔직하게 쓸 수 없어 소재에 압박을 받거나 교사의 기준에 맞춰 사고를 하게 돼 개성 형성에 방해를 받는 등 교육적 역효과마저 나타날 수도 있다. 숙제에 대한 의무감으로 일기를 쓸 경우 기록 습관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어른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굳이 일기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일기쓰기와 같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교육부와 교사들이 인권위 결정을 권리 침해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이는 옳지 않다. 오히려 이번 인권위 결정은 우리 사회의 어린이 인권에 대한 인식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다함께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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