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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지음-프랑스사회 ‘촌철살인’ 비판

    18세기 초 프랑스 사회는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루이 14세가 신의 대행자임을 자처한,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종교 또한 엄청난 권력체로서 만인 위에 군림했다.그런 삼엄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에 흩어진 지식을 집대성하려 한 ‘백과전서’의 정신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백과전서’의 집필을 주도적으로 이끈 백과전서파의 핵심사상은 계몽주의였고,몽테스키외는 바로 이 사상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당대뿐 아니라 후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몽테스키외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냥 넘겼을 리가 없다.1721년 출간된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지음,이수지 옮김,다른세상펴냄)는 한마디로 촌철살인의 프랑스 사회비판서다. 법·군주·종교·인권·자유·개인·덕·정의 등 책에 드러난 몽테스키외의 언어들을 좇다보면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었는지,국민이얼마나 권력자들의 우롱에 찬 행태에 휘둘리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은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하렘을 소유한 우스벡을 주축으로 그의 친구들,하렘에 있는 처첩들과 관리인들,그리고 종교인들이 주고받은 총 161통의 편지로 구성돼 있다.편지들을 읽어가다 보면 현재의 모든 제도적 장치나 이데올로기를 국민 스스로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무지한 채로 있다가는 어느 사이인가 자기도 모르게 당하고 만다는 것,정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는 몽테스키외의 외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간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적절치 않게 가혹한 형벌은 오히려 반란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나,부패한 절차로 임용된 관리는 본전을 뽑으려고 마치 점령자처럼 마을을 약탈하여 황폐화한다는 것 등은 읽는 이에게 사색에 잠기게 하는 그 무언가를 던져준다. “가장 완벽한 정부는 작은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정부인 것 같다.다시 말해 국민의 성향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방식을 빌려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완전한 거지.”“국민이 형벌이 좀 가혹하다고 해서 법에 더 복종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형벌이 가벼운 나라 국민은 형벌이 포악하고 끔찍한 나라 국민만큼이나 형벌을 두려워하는 법이거든.”“인간은 덕성을 지키기 위해 태어났으며 정의는 인간이 실존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네.” 비록 체계적으로 몽테스키외 자신의 의견을 저술한 사상서는 아니지만 오히려 명료한 사상서보다도 더 뚜렷하게 당시의 시대정신,즉 계몽의 모티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책에서 그린 인물상들과 권력자들의 행태는 여전히 우리 세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사회의 병든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1만4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임영숙 칼럼] 남산을 걸으며

    서울과 일산을 잇는 자유로를 달리던 아침 출근길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춰섰다고 합니다.길 옆 한강 둑 풀숲에서 나타났는지 아기 뜸부기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자기네들끼리 마음껏 유유자적하며,해찰할 것 다 하면서,천천히 도로를 걷는 그 아기 새들을 발견한 한 운전자가 급제동을 걸고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시동까지 끈 다음 뒤에 따라 오던 차들에게 신호를 보내 멈춰 서게 했다고 합니다. 1분이 아쉬운 아침 출근 길에 자유로의 자동차들은 뜸부기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기다렸다가 기분 좋게 다시 달렸다고 합니다. 자유로의 그 운전자들처럼 즐거운 멈춤을 저는 남산 산책길에서 자주 합니다.지난 여름 비 오는 주말,남산 야외식물원을 걷다가 앞 사람이 숨을 죽인채 서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바로 1∼2m 앞에 장끼 한 마리가,자신의 영역인 숲속을 벗어나 사람의 길을 따라 유유히 산책하고 있었습니다.또 어느 날인가는 산책길 옆 잔디밭에 앉아 있는 토끼를 만났습니다.온 몸이 하얀 털로 덮였으나 눈주변만 판다처럼 까만 털이 돋은 아주 잘 생긴 녀석이었습니다.서울시의 남산공원 소개 자료는,남산에 사는 짐승이다람쥐·쥐 등 2과 2종뿐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의외의 만남이었습니다. ‘동심의 화가’ 장욱진 선생은 “고궁이 가장 고궁다울 때는 비오는 날”이라고 했습니다.20여년 전 혜화동 자택을 찾았을 때였습니다.마당 한 쪽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웠는데 그 정자의 난간이 부자연스럽게 높았습니다.술에 취해 정자에 올랐다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한 가족들의 배려였습니다.그날도 술에 취한 채 기자를 만난 장 화백은 비 오는 날 고궁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남산도 비 오는 날이 가장 산다워서 그렇게 산책하는 장끼와 토끼를 만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그러나 지난 여름의 집중호우와 태풍은 그마저도 지나친 호사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했습니다. 남산 산책길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은 물론 아름다운 사람들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강아지와 달리기를 하며 까르륵 까르륵 웃는 아이들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다정한 연인들,그리고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젊은 부부를 보며저는 그들의 희망과 꿈을 짐작해 봅니다.건강을 위해 맨발로 공원을 열심히 걷는 뚱뚱한 아줌마와 아저씨도 정겹습니다.야생화 공원 원두막에서 어린 손자에게 등을 긁게 하고 부채로 더위를 쫓으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무엇보다 남산이 아름다운 것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산책길과 식물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장욱진 선생의 혜화동 집 정자처럼 추락방지용 난간을 설치하고 점자를 병행 표기한 산책로가 남산에는 있습니다.국립극장을 끼고 들어가는 북측순환로에서도 저는 경쾌한 지팡이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걷는 시각 장애인들을 가끔 만납니다.자동차 위주의 삭막한 도시에서 시각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산책하고 숲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할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이제 가을입니다.잠시 멈춰서서 분주한 일상에 매몰된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먼곳도 바라 볼 때입니다.이 가을 남산을 한 번 찾아 보시기를 권합니다.남산은 서울 시민들에게내려진 축복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산이지만 한 번 찾아 보시면 “이런 곳이 서울에 있었나.”하는 새삼스러운 느낌을 틀림없이 받게 되실 것입니다. 올해는 또 UN이 정한 ‘산의 해’입니다.국토의 66%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아직 산과 가깝게 지내지 않으시다면 가을 산을 꼭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산이든 산은 마음을 맑게 하는 평화와 고요함을 안겨 줍니다.가을 산에서 잠깐의 멈춤과 사색을 통해 어쩌면 작은 행복뿐만 아니라 깊은 깨달음에 이르게 되실 분도 계시리라 생각해 봅니다. 임영숙/ 미디어연구소장 ysi@
  • [2002 길섶에서] 가을연가

    계절은 참 정직하다.태풍 루사가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가 수재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지만,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처서가 지난 지 벌써 열흘,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올 여름은 유난히 비오는 날이 많았다. 고온다습했던 날씨 탓인지 태풍이 물러난 자리에 고추잠자리가 많다.심지어 아파트 주차장의 승용차 보닛 위에서도 날아다닌다.태풍 피해로 어물,과일류 등 추석 성수품 값이 뛰고 있어 서민들의 마음은 이래저래 무겁다. 해마다 마당에 고추잠자리가 맴돌 쯤이면 고향의 여자아이들은 밤새 손톱에 봉숭아 물 들이는 일로 부산했다. 첫눈 내릴 때까지 봉숭아 붉은 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고도 하고,또 첫사랑과 맺어질 거라고도 했다. 언제부턴가 가을은 추억으로 젖게 한다.사색과 상념의 시간들로 채워진다.그래서 시인들은 가을의 기도와 사색을,그리고 사랑을 노래했는지 모르겠다.연가의 계절 가을이 또 오고 있다. 양승현 논설위원
  • [2002 길섶에서] 신선한 충격

    고교 시절 학업보다는 사색과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던 친구가 있었다. 이십여년 이상 소식이 끊겼던 그가 얼마 전 동창 몇몇이 모인 자리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대리석 조각전을 연다.”” 부모가 닦달하는 바람에 어는 대학인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군제대후 복학하지 않고 외국으로 훌쩍 떠났다고 했다.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온갖 곳을 돌아다니다 십수년 전 이탈리아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외국에서 떠돌아 다녔으니 고생이 오죽했으랴. 그는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몇년 전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꿈이었던 조각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내년에 정식으로 작품 발표회를 갖는다는 설명이었다. 40이면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이 말은 요즘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40에 오히려 흔들리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40대 막바지에 불혹에 가까워진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박재범 논설위원
  • 책/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철창도 막지못한 생각의 자유

    스물넷부터 마흔하나까지.시퍼렇게 날선 독재는 청무같은 젊음을 송두리째 나꿔채갔다.생애의 한 허리를 뚝 잘려 영어(囹圄)의 몸으로 살아낸 세월이 17년.독재의 폭압은 그러나 생각의 자유만큼은 한 움큼도 훔쳐가지 못했다. 1971년 ‘유학생 간첩’으로 몰려 17년을 옥살이한 인권운동가 서준식(54·인권운동사랑방 대표)씨가 옥중편지를 보내왔다.야간비행에서 펴낸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무려 831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의 외장에서 모진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그의 몸부림이 한눈에 읽힌다.책은 지난 92년 절판됐다가 꼭 10년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재일교포 2세인 그가 일본을 떠나 한국에 첫발을 디딘 건 67년.어학연수차왔다가 이듬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또 하나의 조국을 목격하기 위해”70년 형과 함께 북한을 다녀왔다.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형을 마쳤지만 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다.사상전향을 거부해 보안감호처분을 받은 세월이 또 10년이었다. 철창 속의 그에게 편지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그리고 그 대상은 가족이었다.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85년 여동생 영실에게) 감방 복도의 외로운 집필대에 앉아 그가 쏟아낸 글들의 들머리는 늘 사변적이다.무심히 오가는 계절과 감방 ‘변소’창문으로 기어들어오는 한줄기 햇살에 대한 단상,어머니를 향한 속절없는 그리움,가까운 친척들에 대한 안부…. 그러나 그들은 자기반성,인간과 조국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되어 마침표를 찍곤 한다.“부지런히 노력하고 무엇인가를 이뤄놓는 것,세상의 온갖 악이나 어리석음과 타협하지 않고 강직하게 살아가는 것,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고 약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분노할 줄 안다는 것,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그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85년 조카딸 순자에게)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누군가는 따지듯 반문할지 모른다.“80년대에나 통하던 묵은 얘기들을 왜 새삼 들추냐?”고.친절하게도,책은 과거를 복기(復碁)한 이유를 책갈피 속에 에둘러 던져놨다.“불만이 불만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창조적인 노력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길고 긴 편지를 읽으며 이 여름을 접는 건 어떨까.다가올 사색의 계절 앞에 좀 더 떳떳이 곧추 설 용기가 생길 것 같다.3만 4000원. 황수정기자 sjh@
  • 15일 개봉 윈.드.토.커/ 지옥의 전장… 찡한 전우애

    미국에서 만든 전쟁영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미국식 휴머니즘·영웅주의를 부추기거나,아니면 망가져가는 인간의 광기에 초점을 맞추거나.‘라이언일병 구하기’‘진주만’등은 전자에,‘지옥의 묵시록’‘씬 레드 라인’등은 후자에 속한다.그런데 영화 ‘윈드토커’(Windtalkers·15일 개봉)는사뭇 질감이 다르다.영웅도 없고 철저히 망가지는 사람도 없다.‘우위썬(吳宇森)표 전쟁영화’라고 할 만하다.주인공은 전쟁의 충격 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그래도 순수함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한다.그리고 가슴 찡할 정도로 전우를 돕는다. 배경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사이판전투.일본군의 암호교란 작전에 고전하던 미군은 나바호 인디언의 복잡한 언어체계를 이용한 암호 ‘윈드토커’를 만든다.그리고 인디언 출신 암호병 벤 야흐지(애덤 비치)와,유사시 암호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죽일 목적으로 조 앤더스(니컬러스 케이지)중사를 전장에 투입한다.결정적인 순간,조는 과연 벤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을까. 영화는 이둘이 서서히 가까워져 가는 과정을 그린다.인간성의 극한을 실험하는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인디언 전통의식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정화하는 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전쟁의 상처로 비뚤어진 조도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이제 조에게는 개인적인 의리와 군의 명령 사이에 선택만이 남는다. 우위썬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결과를 예측하기란 쉽다.조는 총알을 한발두발 맞아 다리가 꺾이고 쓰러지면서도,위기에 빠진 벤을 안고 탈출한다.적들은 한발만 맞으면 다 죽는데 총알세례 속에서 벤을 구해내는 이 말도 안되는 설정이 그래도 먹히는 까닭은,사나이들의 의리를 비장미에 버무리는 우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빛나기 때문이다. 주제와 분위기는 분명 우감독의 것이지만 연출 기법은 달라졌다.춤추듯 아름답게 묘사한 액션이나 슬로 모션이 사라진 것.들고찍기,줌인,줌아웃 등을 통해 살점이 튀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투의 실상을 정직하게 담아냈다.그러나 새롭지는 않다.‘라이언…’이후 전쟁영화는 모두 전쟁다큐보다 더 사실적으로 살육의 현장을 눈앞에 펼쳐보였다.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은 최근 나온 다른 전쟁영화와 비슷해도,주먹을 불끈쥐게 하는 ‘영웅본색’류의 의리와 우정이라는 내용은 분명 차별성을 가진다. 특히 육체와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정신의 고결함을 간직한 인디언 벤 야흐지는,동양출신 감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국내보다 두달 앞서 개봉한 미국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다.2차대전으로 미국의 우월성을 증명하거나,전쟁의 참혹함으로 파괴되는 인간성에 관해 진지하게 사색하고 싶은 관객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한 듯.주말 박스오피스 최고 성적 3위에 그쳤다.한국에서는? 김소연기자 purple@
  • [사라지는 것을 찾아] 멍석

    “얘들아,비 온다 멍석 말아라.” 굵은 빗줄기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면 텃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은 급한 마음에 애들부터 부른다.곧이어 한걸음에 마당 앞까지 줄달음친다.다 마른 곡식이 물에 젖을라사색이 된 얼굴이다.재빠른 손놀림으로 마당과 고샅에 깔린 멍석을 대청마루 안으로 옮긴다.아이들은 비가 오는지바람이 부는지 딴청이다.그저 놀기에 바쁘다.부모님으로부터 ‘꿀밤’ 한대씩을 얻어 맞고 나서야 급박함을 알아차린다. 농경사회에서 멍석의 쓰임새는 다양했다.곡식을 거둬들여 건조시키는 유일한 도구였다.때문에 멍석 숫자로 가세(家勢)를 가늠하던 시절도 있었다.요즘처럼 곡식을 말리는 데 유용한 비닐류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땡볕에 금방 열을 받아 곡식을 단시간에 말려주는 아스팔트가 깔린 것도아니었다.멍석 위에서 검붉게 말라가는 고추가 한가한 시골 마을을 뒤덮을 쯤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 곡식 건조용뿐만 아니다.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을 멍석에 둘둘 말아 몽둥이로 때리는 ‘멍석말이’에도요긴하게 이용됐다.세도가에서 하인이나 상민에게 가하던사형(私刑)의 하나다.마을에서 ‘망나니 짓’을 하거나 죄를 지을 경우 촌장의 이름으로 멍석말이가 진행되기도 했다.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리라. 잔칫집이나 상가에서도 마당과 골목 어귀에 멍석이 깔린다.전통 혼례 때도 멍석 위에서 신랑 신부가 맞절하는 의식이 치러졌다.상주와 슬픔을 나누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문상객들도 멍석 위에서 술판을 벌였다.명절이나 농한기면 마을앞 광장이나 여염집 마당에서 윷판용으로도 애용됐다.누더기가 된 멍석 위에 쑥 등 풀잎으로 ‘말금’을 그려넣고 종지에 넣은 윷가락을 하늘높이 치켜 올린다.막걸리잔에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는 어른들의 ‘놀이용’으로도 그만이었다. 이처럼 생활 곳곳에서 ‘판’을 벌일 때 꼭 등장하는 것이 멍석이었다.그래서인지 멍석은 요즘도 먹고 마시는 업종의 상호에 수없이 나온다.‘멍석골 보신탕집’‘멍석촌음식점’‘멍석마당’‘멍석마루’등 넉넉함과 정겨움을풍기는 이름들이다. 그뿐이랴.속담에도 멍석이 자주 등장한다.‘하던 지랄도멍석 펴 놓으면 안한다.’는 하던 일도 더욱 잘하라고 떠받들어 주면 안 한다는 뜻이다.또 ‘강아지 메주 멍석 맡긴 것 같다.’는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겨 불안하다는 의미다.멍석은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는 중요한 도구임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짚이나 새끼를 촘촘히 엮어서 만드는 멍석은 긴 공정상‘사랑방 문화’를 만들어 낸 매개체 구실도 했다.시골집골방에서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멍석을 삼으며 기나긴 겨울밤을 지새웠다.개똥이네 집 숟가락이 몇개인지,아무개네 집안 사정이 어떤지도 이곳에서 퍼져 나간다.비밀이란 게 있을 수 없는 공동체의 산실이었다. 70년대 후반쯤부터 멍석·짚가마니 등 짚으로 만든 도구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산업기술의 발달로 만드는데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물품을 대신해 플라스틱류 등의 화학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멍석은 요즘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다.잔칫집이나 술판에 으레 깔리던 멍석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간다.속도와 경쟁하듯 살아가는 우리네 마음의 여유를 되돌아 보게 하는 물건들이다. 최치봉기자 cbchoi@
  • 신간 맛보기/ 카페하우스의 문화사

    ◆카페하우스의 문화사(볼프강 융거 지음,채운정 옮김,에디터 펴냄) 정신적인 촉진제로서 커피가 우리의 생활문화습관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피를 제공하던 카페하우스도 각 시대에 걸쳐 여러가지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카페하우스의 문화사’는 숱한 박해 끝에 17세기 중엽 기호품으로서 유럽에 뿌리 내린 커피의 정착사와 함께 공적 장소로서 카페하우스의 역사성을 추적한다.커피를 사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커피하우스는 사교형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교시설로 중요한 서열을 차지하게된다.카페는 정치적 문화적 또는 상업상의 살롱이 되기도하고 기존 질서에서 제외된 서클의 집합소가 되기도 한다.프랑스혁명의 봉수대 역할을 했던 곳도 카페하우스였고 처절한 인민재판의 장소가 된 곳도 이곳.예술의 전성시대엔창조의 샘터이기도 했던 카페하우스의 역할이 역사적 사건들과 짝을 지으며 파헤쳐진다.1만2000원.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양이현정 옮김,현실문화연구 펴냄) 지금은 고전이 된 미국의대표적 페미니스트의 83년 저작을 완역해 두 권의 책으로 냈다.또 한권의 제목은 ‘일상의 반란’.기자 출신의 스타이넘은 71년 페미니즘 잡지 ‘미즈’를 창간하면서 여성운동가로 나선다.‘남자가…’는 좀더 대중적인 글들로 ‘운동가’로서의 전투성과 함께 저널리스트 특유의 기지와 재치를 읽을 수 있다.여성망명정부에 대한 공상이 펼쳐지는가 하면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도 존재하는 성차별,남성의 시선에서 본 여성 육체,여성의 ‘수다’에 대한 고정관념,포르노그라피와 폭력의 관계 등이 풍자와 역설로 해부된다.후반부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정신병에 시달리던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여성 삶의 소외문제를 밝히고 플레이보이클럽의 플레이 메이트로 위장취업해 썼던 르포기사 취재기를소개한다.또한 페미니즘적인 자각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여성끼리의 연민과 연대를 말하며 자매애야말로 여성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한다.8500원. ◆삶의 철학 산책(알랭 드 보통 지음,정진욱 옮김,생각의나무 펴냄) 재기 넘치는 한 소설가가 고단한 삶에 필요한위안을 얻기 위해 유명한 철학자들의 삶과 저작을 산책한다.저자는 느긋한 사색을 통해 소크라테스로부터 니체까지 6명의 철학자들로부터 필요한 조언들을 구해낸다.예를들면 소크라테스로부터는 인기없음 보다 더 걱정해야 되는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듣는다.에피쿠로스로부터는 충분한 돈이 없는데 대한 위안을 얻으며 세네카로부터는 실직등 좌절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이런 식으로 성적 불능,지적 차별등 부당한 평가에 대해서는 몽테뉴로부터 위로를얻고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로는 쇼펜하우어의 삶에서 찾아진다.그리고 니체는 질병과도 같은 고독에 대해 철저히상담해 준다.개인적 일화와 기발한 그림들로 경쾌한 느낌을 주면서도 알맹이 있는 대중 철학서.1만7000원. 신연숙기자
  • 노원구 어린이전용도서관 착공

    노원구 중계동에 어린이 전용도서관이 건립된다.기초자치단체가 어린이를 위해 전용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원구는 23일 중계동 356 삿갓봉 근린공원에 지하 1층지상 3층,연면적 1275㎡ 규모의 어린이 전용도서관을 착공해 오는 12월 개관하기로 했다. 사업비 36억원이 투입되는 이 도서관에는 20평 규모의 유아놀이방을 비롯해 컴퓨터게임장과 전시실,자료실,전자정보실,문화교실,강당 등이 들어선다.열람실도 용도에 따라일반과 참고,,모자 열람실 등으로 세분해 어린이들의 이용편의를 돕기로 했다. 특히 구는 이 도서관을 인근 공원과 연계해 옥외에 사색·독서·놀이·정자마당 등 테마공간과 하늘공원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또 별도의 유아 화장실을 마련해 유아 및장애어린이들의 이용에도 불편이 없도록 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그동안 급격한 개발이 추진돼 상대적으로 문화·복지시설이 미흡했었다.”며 “앞으로 주민들의 복지수요를 만족시키는 다양한 시책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박범신·박완서 나란히 수필집

    소설가 박범신(56)과 박완서(72)가 최근 나란히 수필집을 출간,관심을 끌고 있다. 박범신이 낸 산문집은 지난 7,8년 동안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쓴 57편의 글을 한데 모았다.수필 가운데 하나인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라는 이름을 책 표제로 올렸다.깊은강 펴냄. 작가는 “나의 가족을 둘러보고 아들과 딸,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주워 담았다.”고 말했다.그는 “전통적·서열적 가족구조는 깨졌으며 형식만 남았다.”면서 “전통적 의미의 가족간 사랑과 존경은 이미 해체됐으나 아직 형식이 남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덧붙였다.“이제 가족관계는 각 구성원이 독립인격체인 민주적 수평구조로 가는 과정에 있는 만큼 혼란을 피할 수 없고 황폐해지고 살기어려워진다는 느낌도 지울 수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박범신의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설정해 딸과아들,아내,작가 자신에게 주는 편지 또는 사색적인 산문형식으로 꾸며졌다.4장(겨울) ‘작가이고 아버지인 그에게’를 읽으면 문학청년 시절의 작가가오직 문학을 위해 바쳤던 순수하고 광기어린 젊은 날을 회상하는 모습이 눈에선하게 보이는 듯하다.‘내가 사랑하는 그의 이야기1’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작가는 20와 30대에 동맥을 자르는등 자살을 시도한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또 작가로서 깊고 좁은 길을 가기 위해 신문연재소설을 중단하기까지의 심경을 밝히는 글도 들어있다.1장(봄) ‘젊은 날을 살고 있는 딸에게’에서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딸 아름이에 대한 아버지의 당부가 따뜻하게 읽힌다.2장(여름) ‘세상의 주인이 될 두 아들에게’에서는 대학졸업 후 영화사 연출부 PD로 사회생활을 하는 큰 아들캐나다에 유학 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작은 아들에 대한 부정이 잔잔하게 드러난다.3장(가을) ‘이제는 돌아와거울 앞에 선 그녀에게’에서는 가난했던 소설가 아내로서 갖은 고생을 할 뿐더러 괴팍한 작가의 신경질과 변덕을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아내에 대한 애틋한 정과 뉘우침이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세계사)는 지난 1977년 출간돼 세간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던 산문집을 개정 증보한 것이다.그때 책갈피에 “원태 간직하거라.엄마가”라고 쓴 책을 선물받았던 아들은 그 뒤 유명을 달리했다.아들을 잃은 애통함을 절절하게 토로한 ‘내가 걸어온 길’이라는 수필이 이번 개정판에 추가됐다. 유상덕기자 youni@
  • 한나라 예비주자에 듣는다/ 한나라당 이상희 후보

    한나라당 이상희(李祥羲) 후보는 8일 “정치의 변화를 갈구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20,30대가 희망을 갖는 과학기술 선진국 건설을 위해 대권도전을 결심했다.”고말했다.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은 국가위기만을 가져올 뿐”이라며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경쟁을 강조했다. [부산시장에서 대권도전으로 방향을 바꾼데 의아해 하는사람이 많다.출마 배경을 말해 달라.]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에서 부산시장 출마를 생각했었다.그런데 중앙 정치에 지각 변화가 일어났다.즉 지식기반사회로 나아갈가능성이 보였고, 이는 지금까지의 내 신념과 일치하는 것으로 대선후보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지각변화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고문의 부상을 말하나.]기존 정치 틀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징표를 말한다. 이것이 지금 노 후보 부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윤태식 게이트 연루의혹 수사를 무마하려는 출마라는 시각도 있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벤처기업들을 미국실리콘밸리와 연결시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상임위 활동이었다.그런데 이를 여당이 자신들의 권력비리를 덮기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법원에서 가려지겠지만 (비리)사건인지,정치적 (공세)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다. [본인의 당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인지도가 낮은데.] 나는 현실적 인기가 아니라 21세기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를해 왔다.당장의 인기에 연연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대의원 중에서 이공계통을 전공한 사람이나,이공계통의 자제를 둔 대의원의 경우 내 주장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회창(李會昌) 총재 체제의 문제점을 뭐라고 보나.] 이 문제는 많이 논의됐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후보로 나온 이회창 최병렬(崔秉烈) 이부영(李富榮) 의원 모두 개인적으로 다 훌륭하다.다만 중요한 것은 개인적 치적이 아니라 정치의 기본틀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예방하고 선진국으로 이끄는 쪽으로 바꾸는 것이다. [본인이 이회창 후보의 대안이라고 보나.] 이 후보의 경쟁력은 얘기하지 않겠다.다만 ‘노무현 바람’을 만들어낸 정치변화는 20,30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그리고 기업인이활력을 가질 수 있는,지식기반사회에 걸맞은 정치제도의 틀을 만드는 몸부림이라 생각한다.그런 점에서는 내가 갖고있는 생각과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변화를 갈구하는 바람이 노풍으로 나타났듯 한나라당도 변화의 욕구가 나타날 수있다. [경선정국을 맞아 여야 모두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본인의이념적 좌표는 뭔가.현정부의 햇볕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선진국에는 우리와 같은 이념논쟁이 없다.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정치한다는 차원에서 이념문제를 봐야 한다. 이념논쟁은 조선시대 사색당쟁과 다를 바가없다.이념논쟁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고,이는 국가위기를 가져올 뿐이다.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우호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도 상호주의가 필요하다. 진경호기자 jade@ ■이상희캠프 사람들. 이상희(李祥羲) 후보는 계파나 지원세력 차원으로 볼 때단기필마(單騎匹馬)나 다름없다.측근은 “당내의원 4∼5명이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지만 이들을 공개하지는않았다. 다른 주자 3명에 비해 열세에 있으나 과학기술 분야 등 당 밖의 지원세력은 남못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후보 캠프는 선거본부장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경제기적 ▲정부개혁 ▲교육개혁 ▲교통문제 ▲환경오염 ▲국방개혁 ▲여성·노인·장애인문제 등 7개 분야별로 교수,기업인 등 20여명의 정책자문위원을 둬 이들을 중심으로 정책토론 중심의 선거운동을 펼쳐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노벨의학상 후보에 올랐던 생의학 나노테크놀로지전문가 바누 P 제나 미 웨인대 교수와 분자생물학 권위자인김성호 미 버클리대 교수 등 5개국 10여명으로 구성된 해외과학기술고문단을 두고 정책자문을 받고 있다. 기획과 홍보 등 실무적 분야는 서초구에 있는 ‘방배동 캠프’에서 20여명의 실무진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 후보의 선거운동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네티즌을 적극활용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구성된 ‘상희사랑’ 회원 네티즌 50여명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선거운동에 적극 나설예정이다.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회원 1600여명으로이뤄진 ‘과학을 사랑하는 모임’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진경호기자.
  • 자녀 손잡고 ‘3·1정신’ 배우기

    중랑구 망우리고개 오른쪽에 자리한 망우리 묘지공원이 3.1절을 맞아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기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중랑구가 지난 97∼98년 도시환경림 조성과 자연관찰로(5.2㎞) 정비 등 묘지공원을 새롭게 단장하고 애국지사 묘역에 연보비(年譜碑)를 세운 이후 자연을 체험하며 독립정신을 고취시킬 자녀들의 산교육장으로 거듭난 것. 50만평 규모의 이 곳에는 2만 9600기의 일반인 묘소와 함께 만해 한용운 선생,호암 문일평선생 등 독립운동가가 10명과 정치가 조봉암,의학자 지석영,시인 박인환 선생 등모두 15명의 인사가 모셔져 있다. 중랑구는 애국지사 묘역을 조성하면서 이들의 생애를 기린 어록과 업적이 담긴 연보비를 통해 어린이들의 학습에도움을 주고 있다. 한용운 선생의 연보비에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이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다.”는 어록이 수록돼 있다. 호암 문일평 선생의 연보비에는 “조선 독립은 민족이 요구하는정의·인도로서 대세 필연의 공리요 철칙이다.”라고 씌여져 있다. 사색과 자연관찰을 할 수 있는 5.2㎞의 순환도로 외에 묘지공원을 껴안은 망우산과 용마산,아차산을 연결하는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다. 강남쪽에서는 567번과 657-1번 버스(고속터미널∼영동대교∼망우동),종로쪽에서는 302번 버스(종로∼동대문∼신설동∼망우동),지하철 7호선 상봉역에서는 55번과 165번을이용하면 된다. 조덕현기자 hyoun@
  • 보이지 않는 누군가 우릴 노린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혹시 망자(亡者)들의 영혼과 함께 사는 공간이 아닐까.” 이런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지.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근거로 스페인의 젊은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규모있는 심리공포물 한편을 만들었다. 내년 1월11일 개봉될 ‘디 아더스’(The Others)에서 감독은 대표작 ‘오픈 유어 아이즈’로 보여줬던 철학적 사색의 반경을 심령세계로까지 드넓혔다. 지난 8월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는 톰 크루즈와의 이혼 이후 주가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니콜 키드먼이 여주인공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됐다. 키드먼의 둥글고 다부진 눈매는 서서히 엄습해오는 공포에휘둘리는 주인공의 캐릭터에 더없이 안성맞춤.지난 여름 연속 8주 동안 전미 박스오피스 5위권에 머문 저력의 절반은그의 공일 것같다. 실제로 키드먼은 줄거리의 중심인물일뿐만 아니라 화면의중심이다.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장면은 전부 합해도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 ‘1인극’을 하듯 남편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강인한 모성애 연기와 공포에 질린표정연기를 흠집없이 잘 소화해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가 시대적 배경.해안가 외딴 고택으로 카메라를 좁혀들어간 영화는 악몽을 꾸다 깨어난 여주인공그레이스(니콜 키드먼)의 불안한 얼굴로 초점을 모은다. 고색창연한 저택 곳곳을 바삐 오가는 그레이스의 발걸음은뭔가에 쫓기는 게 틀림없다.하지만 정작 영화속 인물도 관객도 공포의 실체를 눈치챌 길은 없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는 억척이면서도 단아한 여장부의 모습이다. 부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나버린 집으로 세명의 새 하인들이 찾아온다.“전에 이 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묘한말을 하는 이들이 들어온 뒤로 집안에는 이해못할 일들이 꼬리를 문다. 눈치빠른 관객이라면 막판 반전의 실마리를 일찌감치 발견할 수도 있다.대목대목에 수수께끼같은 ‘복선’이 던져져있다. 햇빛을 쐬면 생명이 위독해지는 남매의 희귀병,죽은 자들의마지막 모습이 찍힌 다락방의 흑백사진 등도 영화의 결말을점치게끔 도와주는 큼지막한 힌트들이다. 귀를 찢는 비명이나 서늘한 기계음 효과는 없다.감독은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키운 두려움이 진짜 공포”라고 연출의도를 밝혔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실체를 내세워 심리공포물을 만든 감독은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걸까.“보이는 것,믿고 있던 것만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오싹한 막판 반전이 두번 있다.제작은 키드먼의 전 남편인 톰 크루즈가 맡았다.만약 이 세상에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산다 치자.그렇다면 어느 쪽이진짜 ‘타인’(The Others)일까. 황수정기자 sjh@
  • 남산, 낙엽길 사색… 떠오르는 ‘아픈 역사’

    서울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남산은 인구 1,000만이 넘는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허파로서 시민들을 위한 천혜의 휴식처이다.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과 도심을 기준으로 볼 때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간명하게 이름붙여진 남산.높이 해발 268m로 산이라기 보다는 그저 정겨운고향의 뒷동산같은 산.그 남산이 지금 늦가을 단풍으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에게 더없이 귀한 휴식공간인 남산은 한꺼풀만 벗겨보면 우리 근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남산위의 저 소나무’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으며,산중턱 곳곳도 이미 옛모습을 잃었다.구한말 이후50여년에 걸친 일제통치의 상채기 때문이다.서울 속의 ‘외딴섬’ 남산의 늦가을 낙엽길을 따라 남산의 아픈 역사를 더듬어보자. 남산 정상에 서면 서울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사람들이 남산을 찾는 이유는 대개 이 때문이다.80년대 후반에 나온 한 통계에 따르면,서울을 찾는 일본인들이 첫 방문지로 지금은 헐리고 없는 구 총독부 청사를,두번째로는 남산을 꼽았다.남산은 시내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지만 총독부 청사와 함께 일제통치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한때 ‘남산살리기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을만큼 남산은 지난 역사속에서 극도로 훼손돼 왔다.그 가운데서도 서북쪽 중턱이 가장 심하게 훼손됐다.1905년 을사조약 강제체결후 일제는 경복궁과 서울도심을 한 눈에내려다볼 수 있는 남산의 요소,현 리라초등학교 일대에 한국통감부 청사를 세웠으며,1910년 한일병합 후에는 이 건물을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했다.서울역 역사가 준공되던 1925년 현 남산식물원 일대의 소나무숲을 깔아뭉개고 일본신(神)을 모신 ‘조선신궁’을 세웠다.이때 남산 정상에 있던 조선혼의 상징인 국사당은 인왕산으로 내쫓겼다.지금 그 터에는 항일투쟁의 상징격인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과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남산 서북쪽이 일제의 통치·종교기관이 들어서면서 황폐해졌다면 반대편,즉 장충단 일대는 일제가 공원화작업을통해 민족정기를 훼손했다고 할 수 있다.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희생당한 한국인 관리들의 충혼을 기려 고종의 지시로 건립된 ‘장충단’ 일대에 일제는 벚꽃나무를 심어왜색화(倭色化)한데 이어 인근 현 신라호텔 자리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지어 조선의 충혼을 짓밟았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은 남산 북쪽 자락 예장동·필동 일대를 왜성대(倭城臺)로 부르며 연고권을 행사했다.이곳은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남산 성벽을 넘어와 진을 쳤던 곳이며,구한말에는 일본공사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일제당시 종로거리를 기준으로 남쪽 일대에 일본인들이 대거 밀집해 살았는데 최근까지도 필동 일대에는 왜식 민가가 즐비했었다.필동의 남산골 한옥마을은 일본군 헌병사령부가 진주했던 곳이며,인근 ‘한국의 집’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인 정무총감 관저 자리다.남쪽 기슭 정도를 제외하고는 3면이 일제의 ‘상흔’으로 얼룩져 있다.휴식공간으로만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 남산.그러나 이곳에는 이같은 역사를 알려주는 표지판하나 제대로 서 있지않다. 정운현기자 jwh59@. ■남산 최적의 산책코스는. 남산의 여러 등산로는 그 자체가 훌륭한 산책로다.또 남산 남쪽 중턱을 가로지르는 순환도로도 그에 버금간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산책로라면 차량이나 인파의 혼잡함에서 벗어나 사색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과연 남산에 그런 산책로가 있을까? 장충체육관 사거리에서 국립극장쪽으로 올라오다 타워호텔 맞은편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남산을 넘는 길이 나온다.이 길을 곧장 가면 남산타워를 지나 남산도서관 앞에 닿는다.인도와 차도가 분리돼 있으며,마치 깊은 산속같은 분위기여서 산책로로도 손색없다.그러나 경사가 가파른데다 빈번한 차량행렬로 조깅은 어렵다. 이 길 입구에는 오른쪽으로 포장도로 하나가 나 있다.바로 이 길을 산책·조깅코스로 강력 추천할만 하다.남산의북쪽 중간허리를 안고도는 길은 3∼4km 정도.차량통행도없는 데다 경사진 곳도 거의 없어 조깅코스로도 훌륭하다. 인근 주민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 코스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호젓한 편이다. 이 코스는 무엇보다 걷는 이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마력같은 것이 있어서 좋다.한 100여 m를 가다보면 한 굽이가돌면서 또 새로운 길이 나타나 마치 사람과 길이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서울 북쪽 도심과 남산자락을 구경해가면서 입구에서 300m 정도를 가다보면 ‘석호정궁도장’이라는 활터가 나타난다.평일에도 궁사들이 활을 쏘는 이곳은 원래는 ‘딸각발이’ 남산골 선비들이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다.그즈음에서 왼쪽으로 굽은 길로 접어들면 도심을 완전히 떠난 듯한착각마저 들 정도로 깊은 산속 길이 시작된다.중간에 필동으로 내려오는 오솔길이 두어 군데 있다.
  • 김동수플레이하우스서 ‘우어파우스트’ 공연

    극단 그림연극이 대학로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중인 연극 ‘우어파우스트’(괴테 원작,번역·연출 이현찬)는 괴테의 초기작이면서 ‘파우스트’의 기반이 된 작품. 흔히 비극으로 알려진 ‘파우스트’의 내용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한 게 특징.단순한 연극 형식을 떠나 마리오네트 인형극이나 그림자극,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요소들이 삽입돼 ‘어렵다’는 괴테의 작품을 쉽게 풀어간다.자신의 혼을 악마 메피스토에게 파는 고독한 사색가 파우스트의 면모에서부터 시작해 청순한 소녀 마가레테를 사랑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까지를 다루면서 괴테의 젊음과 사랑을 집약한다.28일까지 평일 오후7시30분 토·일 오후3시·6시.(02)766-2124. 김성호기자
  • 사색의 계절에 듣는 매력의 중저음

    소프라노,테너의 목소리는 맑고 화려하다.굳이 색깔로 치자면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이라고나 할까.이에비해 낮은 음역의 메조 소프라노,바리톤은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오페라에서 소프라노,테너가 주인공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나면 하녀,사기꾼 등 ‘만년 2인자급’배역을 메우기 일쑤다.하지만 최근 급부상중인 메조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와 바리톤 브라이언 터펠은 이러한 상식을 깬다.이들은 낮고 깊은 음색으로도 오페라의 주역을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화려한 바이올린의 기교보다 첼로의 사색어린 음색이 돋보일 때도 있는 법.때마침 서늘한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그늘진 음색이 빚어내는 깊은 울림에 귀 기울여보자. [제니퍼 라모어] 지난 5월 홍혜경과의 듀오공연에 이어 두번째 내한이다.22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모어는 음울한 색채를 띠는 낮은 톤,매끄러운 중간 음역,화려한 절정부 등 다채로운 음색으로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미국 애틀랜타 출신으로 86년 프랑스 니스에서 모차르트 ‘티토왕의 자비’로데뷔,95년 뉴욕 메트 무대에 올랐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피날레 콘서트를 장식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오페라 아리아와 함께 이탈리아,프랑스 가곡으로 꾸며진다.카스트라토(거세된 남성테너) 대신오페라에서 남성역할로도 단골 출연한 성악가답게 헨델 오페라 ‘리날도’중 ‘사랑스런 신부’,‘헤라클레스’중 ‘어디로 날아가리’등을 부른다.또한 로시니 ‘베네치아의 곤돌라 경주’,드뷔시 ‘아름다운 저녁’등 가곡도 준비한다.(02)720-6633[브라이언 터펠] 10월11일 오후8시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독창회를 갖는 터펠은 토머스 햄슨,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와 함께 ‘쓰리 바리톤’으로 꼽힌다. 장대한 기골에서 울려나오는 그윽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하는 그는 ‘타피로티’(터펠과 파바로티의 합성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웨일즈 출신으로 89년 카디프 국제 콩쿠르에서 흐보로스토프스키에 밀려 2위에 그친 뒤 와신상담,94년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피가로의 결혼’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92년 그라모폰지가 수여하는 ‘올해의 신인성악가상’을 받았고 오페라 아리아 음반으로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성악연주자 부문을 수상했다. 슈베르트 가곡 ‘사랑의 소식’,‘세레나데’,‘숭어’,‘음악에 부쳐’와 슈만의 ‘헌정’,‘두사람의 척탄병’등을 들려준다.(02)2005-0114허윤주기자 rara@
  • [사라지는 것을 찾아] 백지위의 사색 ‘원고지’

    신춘문예 응모작을 준비를 하는 예비작가나 원고 마감을 앞둔 전업 작가들에겐 ‘백지의 공포’로 다가온다는 원고지. 네모 한칸 한칸에 혼이라도 집어넣듯이 글을 채워나가다 또다른 영감이 떠오르면 거칠게 원고지를 찢어버린다.그러길여러번 글쓰는 작업을 마칠 때쯤이면 어느새 방안에는 구겨진 원고지가 수북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전업 작가나 신문 기자들조차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육필 원고와 함께 잉크,펜,만년필 등도 점점 기능이 무뎌져 가고 있다.요즘 이른바 컴퓨터 세대들은 예전에 펜과 원고지로 글을 썼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부산의 향토사학자 최해군(崔海君·76)옹은 지금도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부산대 임종찬(57·국어국문학과)교수는 “한장한장 넘어갈 때의 쾌감 때문에 원고지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컴퓨터에 의한 글쓰기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원고지를 고집하는 이들은 “컴퓨터가 문명의 이기(利器)임에는 틀림없으나 오랜기간 습관 때문에 종이와 펜을 가지고 쓰는 것이편하다”고 말한다.임교수는 “핑계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컴퓨터를 이용하면 자신도 모르게 문장이 단조롭고 기계화돼글이 무미건조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한글 타자기가 등장한 것은 40여년 전이지만 통계로 볼 때 80년대 초까지도 신문·잡지사 등에서 공모하는신춘문예와 외부 원고를 타자로 쓴 것은 채 10%도 넘지 않았다.당연히 육필원고가 압도적이었다. 당시 가장 흔했던 것이 200자 원고지.신문사에선 나름대로만든 원고지도 있었지만 전업 작가들은 400자나 1,000자 같은 원고지도 많이 썼다. 이같은 전업작가나 선배 기자들의 육필 원고는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휘갈긴 악필도 많았다.특히 한자를 섞었을 경우에는 고전문을 해독하는 것처럼 어려움도 뒤따라 상당한 노하우가 있어야 했다. 신문사의 수습이나 초년병 기자가 쓴 원고지는 데스크의 교정과정에서 온통 붉은 사이펜으로 색칠 되기도. 그러나 80년대 후반기부터 컴퓨터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으면서 원고지는 서서히 퇴조했다.또한 90년대 들어 PC통신과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종이와 펜이 푸대접을 받게 됐다. 도서출판 ‘해성’의 김성배 사장은 “요즘도 어쩌다 육필원고를 대하게 되는데 정성은 이해가 되면서도 촌스럽거나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원고지는 이제 학교에서 글짓기 시간에나 접할 수 있을뿐글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로 전락돼버렸다. 요즘도 원고를 청탁할 때나 글을 응모할 때 ‘원고지00장 내외로 보내세요’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다.하지만 이마저 ‘A4용지,B4용지∼’ 등의 말로 대체되고 있어 머지않아 원고지는 사전속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를 운명에 놓였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귀화 1년만에 외출 세계적 무용가 로이 토비아스

    지난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귀화한 전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로이 토비아스(74·한국명 이용재).인생의 종착역으로 한국을 택해 지난 95년부터 경기도 여주 북내면 외룡리에서 살고있는 그가 최근 한국귀화 1년여만에 첫외출길에 올랐다.이웃 이천 도자기엑스포를 둘러보러 나선 것이다. 고향인 미국 발레계에서 초청해도 마다하던 그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이천에 가기로 한 지난 19일 아침,이씨는 연신 대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수제자인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38) 단장과,상임안무가인 김씨의 남편 제임스 전(42)을 기다리는 것이다.이씨는 틈날 때마다 찾아오는 이들이 “이천까지 모시고 가겠다”고 하자,고맙기만 하다.점심 직전인 11시쯤 김씨 부부가 마침내 대문을 밀치고 들어왔다.“안녕하세요.어디 불편한데는 없으시구요?”“괜찮아 길이 많이 막혔지?” 어눌한 한국말로 두 사람을 맞는 이씨의 몸짓은 영락없는 아버지다. 그는 엑스포에서 전시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가며작품이름을 연신 물었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슬며시귀띔했다.“안내 팜플렛이 외국인이 보기에 너무 서툴고 허술해요.이것만 봐도 한국인들은 우수한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이런 부분을 보면 절로 화가 나지요.”국립발레단과 함께 한국 발레의 쌍축을 이루는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아 숱한 제자들을 키워내며 한국발레를 해외무대에 진출시키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던 세계적인 인물이지만 지금은 한낱 촌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이씨가 이곳에 정착한 데는 김씨의 따뜻한 마음이 큰 몫을했다.88년부터 95년까지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일하다 퇴임한뒤 김씨의 부탁으로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을 맡았다.이씨가 한국에서 살 뜻을 비추자,김씨가 이곳을 물색해주었다.허름한 한 칸짜리 한옥을 조금 개조해 거실이며 사랑방,부엌을 새로 들였다.안방 침대며 보료,등잔 등 가구는 모두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이다.옷도 서울 인사동에서 산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다.이주하면서 마당에 손수 심은 묘목이 어느새 키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자랐다.이들 나무며 화초에쏟는애정이 보통이 아니다.TV며 신문이며 모두 끊고 사색과 독서로 소일한다.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래야 이웃에 살면서하루 한차례씩 들러 식사며 빨래거리를 챙기는 김씨의 친언니와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게 고작이다. 전설적인 미국 뉴욕시티발레단 창단멤버로 현대무용계의 거장인 조지 발란신(작고)에 의해 수석 무용수로 발탁돼 세계무용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프랑스 테아트르 드 아트 발레수석무용수겸 상임안무가·일본 도쿄발레극장 창단 예술감독겸 상임안무가·미국 필라델피아 오페라발레단 창단감독 등화려한 춤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초야에 묻혔다. 실제로 그는 얼마전 미국 발레계의 초청을 거절했다.내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발레시어터가 그의 90년 안무작 ‘모차르트’를 무대에 올리겠다며 “미국으로 와 조언해달라”고 했으나 “이미 은퇴했는데 이러쿵 저러쿵하기 싫다”고 답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에 귀화한 이유에 대해 “차를 타고 정처없이 달리다가 기름이 바닥나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다 있었다”고 돌려답한다.또 한국이름을 이용재로 정한 데 대해서는 “용을 좋아하는데다,미들네임이 ‘제이’여서 ‘용재’로 한 것”이라고 덧붙인뒤 “일본에서 30년이 넘게 살았지만 일본보다는 한국이 정서에 더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서울발레시어터가 10월 LG아트센터에 올릴 공연에 대해 묻는다.“안무는 마쳤나”“무대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걱정하지 마세요.무리없이 순조롭게 돼가고 있어요.” 제임스 전이 내년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부추기지만 로이는 말문을 돌려 요즘 한·일관계에 대해 묻는다.“듣자하니 양국 관계 때문에 일본인들의 한국공연이 적잖이 취소됐다는데.어쨌든간에 문화예술이정치적 상황에 좌우돼선 안될 것이야.한국인들도 지나친 감정대응은 자제해야 하고…”한국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관심도 예사롭지가 않다.“한국엔 빼어난 인재가 많아요.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엔 어김없이 한국인들이 들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기량은 충분한데 문제는 한국 문화예술인들이 예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미흡해요.예술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데 시간과 힘을 빼앗기다보니 자연 결과가 부실할 수 밖에 없어.”한국인이 되고보니 한국의 이런저런 상황들이 자신을 화나게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20여년전 한 외국인 작가의 글을 통해 명성황후의 생가가 여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10여년전 생가를 찾아가보니 너무 보잘것 없게 방치돼 있어 몹시실망했다고 했다.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뒤졌지만 만족할 만한 것을 찾지못한 적이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며칠전 이웃 목아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문화재급 유물들을 대량 훔쳐갔다는 소식에“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요즘 해외이민이 유행이라고 들었어요.물론 한국보다는 그곳이 기회가 많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숙고할 필요가 있어요.순간의 감정적인 결단은 아주 멀리볼때 돌이킬 수 없는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평생 한번도 결혼하지않고,모은 재산도 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예술가란구도자와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글 여주 김성호기자 kimus@
  • [사라지는 것을 찾아] 낭만의 ‘원두막’

    무더위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요즘,매미소리를 자장가삼아 한여름 낮잠을 즐기던 어릴적 초가 원두막이 새삼그리워진다. 불가마같은 땡볕 더위에도 원두막에는 한줄기 바람이 있었고 벗어붙힌 가슴팍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던 시원함이있었다. 원두막은 한여름 잠시 집안일을 잊는 여유의 공간이었으며 고단한 농사일로부터의 가벼운 일탈의 장소였다. 사전적 의미로 원두막은 원두밭을 지키기 위한 막사다.원두(園頭)는 사과나 배같이 나무에 달린 과일이 아니라 오이,참외,수박,호박 등 줄기식물에 달린 열매를 일컫는 말이다. 초가 원두막은 참외며 수박이 탐스럽게 열린 밭 한켠에허름하게 세워져 있었다. 예전 원두막을 지을 때 우선 자연목을 이용,네 개의 기둥을 세운다.굳이 곧은 것을 고를 필요는 없다.길이 2∼3m정도의 나무가 좋지만 없으면 작은 것을 두 개 잇대도 그만이다. 다음 삽으로 기둥 묻을 자리를 깊이 판다.중간에 마루를만들 수 있도록 네 귀퉁이에 목재를 덧대고 못을 치거나철사로 묶으면 뼈대공사는 끝. 천장을 만들기 위해 어른팔목 굵기의 나뭇가지 이십여 개로 삼각지붕을 얽은 뒤 볏짚이나 밀짚으로 빙둘러 지붕을엮는다.제대로 지은 원두막에는 사방을 막는 짚말이가 있어 말아올리고 내리는 창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나무 사다리다.너무 높지않은,그렇다고 너무 낮아도 안되는 적당한 높이로 사다리를 걸쳐 놓는다. 원두막은 원래 원두를 잘 기르고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식농사처럼 원두농사를 짓다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곁에 있어야 했다. 여기에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고양이 발자국 같은 서리꾼들의 은밀한 침입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생김새가마치 망루와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골 외갓집을 찾은 도시 아이들에게 원두막은 외할아버지에게 구수한 옛날 얘기를 듣던 곳이며 동네 형들로부터기타를 배우던 낭만의 장소이기도 했다.그러나 이제는 이런 초가 원두막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대신 네모 반듯하게 건물처럼 지어진 원두막이 늘고 있다. 살림집을 옮기는 듯한 준비를 하고 자연을 찾아 떠나는요즘 나들이보다는 고즈넉한 공간에서 독서나 사색으로 망중한을 즐기던 시골 원두막의 여유가 새삼 그리워진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이사람] ‘느티나무 카페’ 매니저 이은희씨

    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가다음달 4일로 개업 3주년을 맞는다.요즘 이곳은 우리사회에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토론장, 기자회견 단골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서울 종로경찰서 맞은편의 안국빌딩 신관2층에 문을 연 느티나무 카페는 ‘더불어 함께’라는 시민운동철학을 실천하며 그동안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지만 이곳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우선 입구 카운터에 참여사회 등 각종 시민단체 소식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벽면에는 늘 아마추어 작가들의사진이나 그림이 눈에 띈다. 독립영화가 상영되고, 소규모콘서트 등이 이따금 열려 신진 예술인들에게 등용문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그런가하면 앳된 20대에서 흰 수염이덥수룩한 한복차림의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느티나무는 지난 98년 9월4일 국내 시민운동의 양축인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출자해 설립된 철학카페.개업초기에는 사회각층의 저명인사를초청해 시민들과 대화하는강연회·세미나,환경관련 사진전 등이 자주 열렸다. 그러던중 어느덧 문화 명소로 알려지고 대학 동아리, 사회단체 회원들의 발길이 잦다보니 시민운동의 대언론 창구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느티나무에서는 평균 이틀에 한번 꼴로,어떤 날에는 하루두차례씩 우리사회의 다양한 주제를 놓고 성명서 발표,기자회견이 열려 온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요즘 우리사회의 관심사가 무언지 한눈에 알 수 있어요.기자회견이 열리면 상근 직원들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마이크·의자 배치하랴 음료수 준비하랴 무척바쁩니다”느티나무 매니저 이은희씨(여·27)의 말이다.오전 11시쯤 기자회견이 열릴 경우에는 곧 점심시간과 겹쳐넋이 나갈 정도란다. 하지만 매니저 이씨는 “환경,노동,여성,인권,문화분야에종사하는 다방면의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 이곳이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최근에 열린 주요 행사만 해도 ‘이동전화요금 인하 100만명 물결운동’‘동성애자 차별반대 공동행동 발족식’‘조선일보 구독거부와 언론개혁운동’‘대학교수,새만금 간척사업 중단’‘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가요순위프로 폐지운동백서발간’‘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기자회견 등 한결같이 요즘 우리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특히 지난해 4·13총선 무렵에는 연일 기자회견과 토론회가 열려 ‘바꿔’열풍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총선 후에는아셈(ASEM)민간포럼 발족과 탤런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에대한 인권단체의 기자회견이 개최되면서 시민운동과 시민을연결시켜 주는 가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지난 70년대 정동 세실레스토랑이 유신정권을 반대하는 반독재 민주화 시민운동의 상징이었다면 느티나무는 새천년시민운동의 본산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느티나무는 철학카페라는 이름처럼 토론의 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민운동가들이 커피 한잔을 놓고 마주 앉아 우리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새로운 시민운동의 방향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총선연대의 출범 모태가 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98년 10월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새천년의 활동방향과 과제를 토론하던중 한 참석자의 입에서 ‘낙선운동’이란 말이 튀어 나와 16대 총선에서 2000년 유권자 혁명을 일으키는 단초를마련했다. 카페 벽면에는 대관료가 비싼 갤러리를 사용하기에 벅찬시민단체나 젊은 예술가들의 사진과 예술작품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지난해 연말에는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에서외국인 노동자들의 소외된 삶을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했고,올해 초에는 참여연대 회원 소식지인 ‘아름다운 사람들’의 삽화를 그리는 이수현씨의 전시회가 열렸다.요즘 여름철에는 전통 부채 전시회가 한창이다. 68평의 널찍한 느티나무 공간은 인테리어 전문가 이상철씨의 손질에 따라 편안하고 유니크한 장소로 갈무리되었다.공간 구석구석은 시의적절하게 전시장,토론장,영화상영장,도서관,공연장으로 쓰일 수 있게 조정된다.카운터 뒤의 장식장에 비친된 술과 옹기들은 전시품인 동시에 판매상품이기도 하다. 이곳은 환경운동연합이 만든 카페이기에 ‘먹거리’에 대한 고민도많이 한다.이 때문에 음식에 조미료 안쓰고,무공해 농산물 사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매니저 이씨는 “음식맛이 전문카페를 따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맥주에물타서 파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아무리 철학카페라고 해도 시민들의 명소가 되기 위해서는수익성을 내고 운영의 투명성도 지켜야 한다. 느티나무 카페는 3년전 개업때부터 ‘투명한 세무신고’를 고집,주변업소에 비해 5∼6배나 많은 부가세를 내고 있다. 이 업소의 한달 매출액은 1,700만∼2,200만원. 매출액 중카드 결제액은 400만∼500만원,나머지 1,300만∼1,700만원은 현금이다.분기별로 이 업소가 낸 부가세는 350만원 정도다.매년 1,400만원 가량의 부가세를 내는 셈이다.68평 규모에 좌석 70석인 이 업소와 비슷한 규모인 주변 업소들은 현금 매출액을 한껏 줄인 덕분에 분기별로 내는 부가세는 40만∼8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느티나무 카페는 성실하게 신고한 탓에 지난 2년동안 적자에 허덕이다 최근에야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다.매니저 이씨는 “얼마전 호프집을 운영하는 주변 업주로부터 부가세로40만원을 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몹시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느티나무의 ‘투명납세’는 주변 업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뿐 아니라 세무당국조차 부담스러워 한다는게 참여연대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대화가 부족한 우리 문화풍토를 바꿔 나가자’는 취지로만든 이곳은 열린 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언론의 관심보다는시민들의 발걸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커피 한잔의 여유와사색, 그리고 토론을 원하는 시민들은 누구나 환영받는다. 매니저 이은희씨는 “느티나무는 철저하게 법의 틀안에서영업하고 있어 카페운영 과정이 우리사회의 불합리를 개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을 지지하는 유명인사들의 ‘1일웨이터 제도’등 깜짝 이벤트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윤청석 편집위원 bombi4@. ●이은희 매니저 문답. ■느티나무 카페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시민단체로서는 거액인 2억원을절반씩 투자해 설립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문을 열고 식사비와 술,음료수,차값은 다른 카페와 비슷하다.매니저는 두 단체에서 번갈아 맡는다.다만 이곳에서는다양한 문화행사가 많고 기자회견이 자주 개최된다는 점에서 일반카페와는 다르다. ■두 시민단체의 기금마련이 설립목적이라고 하는데. 하루에 찾아오는 고객수는 70∼80명가량 된다.재정부족에시달리는 사회운동에 별로 도움을 못주고 있다.때로는 세금을 내기 위해 장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올바르게 수입을 올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개업 때부터 투명한 세무신고를 천명했지 않았나. 원칙대로 세무신고를 했더니 부가세가 엄청나게 나온다.자영업자들이 왜 탈세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장사를 해보니 3%의 수수료를 꼬박꼬박 내야하는 신용카드 결제도 무척 부담스럽다. ■명함에 ‘철학마당 느티나무 매니저’라고 적혀 있는데어떤 일을 하는가. 환경운동연합에서 나와 6개월째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저녁이면 맥주를나르고,재떨이 비우고,설거지 하고,카운터에서돈을 받고, 가끔은 손님과 더불어 술 한잔을 마시고….그날매상이 많이 오르면 기분이 좋고 손님이 없으면 기운이 빠진다. 환경분야 말고는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그동안 다방면의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세상물정을 많이 알게 된 것같다.나와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윤청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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