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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마데이라섬서 관광객 최소 29명 교통사고로 사망

    포르투갈 마데이라섬서 관광객 최소 29명 교통사고로 사망

    포르투갈 마데이라섬에서 독일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추락해 최소 29명이 숨졌다. 로이터통신은 17일(현지시간) 오후 6시 30분쯤 서쪽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섬 카니수 마을 근처에서 관광버스가 비탈길 아래로 추락해 가옥을 들이받고 전복됐다고 전했다. 사고 버스엔 포르투갈 운전기사와 투어 가이드를 포함해 모두 56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날씨가 쾌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 이외에 28명 이상이 부상당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상자는 대부분 40~50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병원의 대변인은 “(부상자들로) 병상이 가득 찼다”면서 “부상이 심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고 독일 빌트지가 전했다.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자 포르투갈 대통령은 버스에 타고 있던 관광객은 모두 독일인이지만 일부 보행자가 사고 버스에 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소자 대통령은 “비극적인 순간에 포르투갈 국민을 대표해 슬픔과 연대를 표한다”며 독일인 희생자 유족에 위로를 전했다. 안토니오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도 트위터를 통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조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총리실 대변인은 트위터에 “마데이라에서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다”면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깊이 애도한다”고 전했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정부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핫라인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마데이라는 아프리카 대륙 해안에서 520㎞, 유럽 해안에서 1000㎞ 정도 떨어진 포르투갈 자치령이다. 연중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해마다 14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유럽의 유명 관광지다.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고향이기도 하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진주 방화·흉기난동 40대 “불이익 당해 홧김에 범행”

    진주 방화·흉기난동 40대 “불이익 당해 홧김에 범행”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룬 안모(42)씨가 1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그는 “불이익을 당해 홧김에 흉기를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군청색 점퍼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후드를 푹 눌러써 얼굴이나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다. ‘왜 흉기를 휘둘렀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는 “불이익을 좀 당하다가 저도 모르게 화가 많이 나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제대로 좀 밝혀 달라.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10년 동안 불이익을 당했다”고 답변했다. 안씨는 심지어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접견실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진을 향해 “제대로 밝혀 달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진주지원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안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었다. 안씨에 대한 구속 여부는 오후쯤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씨는 지난 17일 오전 4시 29분쯤 자신이 사는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 4층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사망 5명 등 모두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연기를 흡입한 9명도 치료를 받았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스라엘 매체 “지난 13일 시리아 미사일공장 공습 때 북한인 사망”

    이스라엘 매체 “지난 13일 시리아 미사일공장 공습 때 북한인 사망”

    이스라엘이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시리아 군사기지를 공습했을 때 미사일을 개발하던 북한 기술자가 사망했다고 이스라엘의 군사전문매체 데브카 파일이 보도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 공군 전투기는 새벽 2시 30분쯤 시리아 중서부 마시아프 소재 무기공장을 폭격해 최대 17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회계학교로 알려졌던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 장소가 시리아의 미사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이었고, 이 시설에서 근무하던 북한인과 벨라루스인이 사망하거나 부상 당했다고 이 매체는 최근 보도했다. 또 사망한 북한인과 벨라루스인들은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시리아 등에 중거리 미사일 개발과 고체 연료 생산을 위해 고용된 이들이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시리아와 오래 전부터 군사협력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07년 9월에도 북한이 지원한 시리아의 원자로를 비밀군사작전을 통해 파괴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시리아 북동부 오지에 비밀리에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는 징후를 처음으로 포착한 것은 2006년 말이었다. 그런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2000년 북한과 계약을 맺고, 2002년부터 북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시리아에 도착해 이 비밀기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의심이 짙었다. 2007년 2월 미국에 망명한 이란 고위 관리 출신도 미국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미국은 즉각 이스라엘에 이를 전달해 오랜 논의 끝에 공습이 감행됐다. 한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7일 이스라엘 외교부에 북한인 사상자 여부를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영상] 파리 노트르담 성당 화재, 첨탑 무너져

    [영상] 파리 노트르담 성당 화재, 첨탑 무너져

    프랑스 파리의 명소 중 한 곳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5일 오후(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6시50분쯤 노트르담 성당의 꼭대기 부분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 나자 파리 소방당국과 치안당국이 곧바로 출동해 시민과 관광객들을 접근을 차단하고, 화재 진압작업에 나섰다. 화재로 인해 노트르담 성당의 첨답은 붕괴됐고, 성당 지붕도 전소됐다. 사상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화재 원인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프랑스 경찰은 방화가 아닌 사고로 불이 났을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건립된 지 850년이 넘은 노트르담 성당은 보수 중이었고, 첨탑 보수를 위해 세워진 비계 부분에서 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매우 슬프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안타까워했다. 영상부 seoultv@seoul.co.kr
  • 노트르담 대성당 큰불 ‘지붕 붕괴’…공중 살수도 불가능

    노트르담 대성당 큰불 ‘지붕 붕괴’…공중 살수도 불가능

    프랑스 파리의 최대 관광명소이자 역사적 장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15일 저녁(현지시간) 큰 불이 나 지붕과 첨탑이 붕괴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소방당국은 “앞쪽의 두 탑은 불길을 피하는 등 노트르담의 주요 구조물은 보존됐다”고 전했다. 파리시와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50분쯤 파리 구도심 센 강변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갑자기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쳤다. 경찰은 즉각 대성당 주변의 관광객과 시민들을 대피시켰고 소방대가 출동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발생 시점에서 4시간 가까이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다행히 건물 전면의 주요 구조물은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클로드 갈레 파리시 소방청장은 화재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노트르담의 주요 구조물은 보존된 것으로 본다”며 “(전면부의) 두 탑은 불길을 피했다”고 말했다. 갈레 청장은 “현 단계에서 주요 목표는 성당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라면서 “최종 진화까지 몇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랑 뉘네 내무부 차관은 “불길의 강도가 누그러졌다”면서 “아직은 매우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 공사를 위해 첨탑 주변에 촘촘하게 설치했던 비계에 연결된 목재와 성당 내부 목재 장식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진화작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당국은 건물 붕괴 위험 때문에 공중에서 많은 양의 물을 뿌리는 화재 진압 방식은 진행하지 못 하고 있다. ‘공중 살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불이 난지 1시간여 뒤 나무와 납으로 만들어진 첨탑이 무너졌을 때는 파리 도심 전역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위로 치솟는 짙은 연기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프랑스2 방송이 전한 현장 화면에서는 후면에 있는 대성당 첨탑이 불길과 연기 속에 무너지는 모습도 잡혔다.로이터통신 등은 현장에서 아직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고 검찰이 화재 원인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남쪽 정면에서 2블록 거리의 5층 발코니에서 화재를 지켜본 자섹 폴토라크는 로이터통신에 “지붕 전체가 사라졌다. 희망이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파리에 사는 시민 사만다 실바는 “외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노트르담 대성당을 꼭 보라고 했다”며 “여러 번 찾을 때마다 늘 다른 모습이었던 노트르담 대성당은 진정한 파리의 상징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장에서 투입된 경찰관들도 “모든 게 다 무너졌다”며 허탈해했다. 소방당국은 오후 9시 30분쯤 “앞으로 1시간 30분이 진화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은 보수 공사를 위해 설치한 시설물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서 사고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프랑스2 방송은 경찰이 방화보다는 실화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제궁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로 예정된 대국민 담화도 전격 취소한 채 화재 현장으로 이동했다. 마크롱은 현장이동 전에 트위터에서 “매우 슬프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마크롱은 당초 이날 1∼3월 전국에서 진행한 국가 대토론에서 취합된 여론을 바탕으로 다듬은 조세부담 완화 대책 등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현장 근처에 있던 파리 시민들은 충격을 호소하며 울먹거리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현장에서 취재진에 “안에는 많은 예술작품이 있다. 정말 큰 비극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시테섬 동쪽에 있는 성당으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다.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의 무대로도 유명하고,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열리기도 했다.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 역사가 숨쉬는 곳으로 하루 평균 3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각국 정상도 신속한 진화를 당부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엄청나게 큰 화재를 지켜보려니 너무도 끔찍하다”며 빨리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파리에서 일어난 일에 큰 슬픔을 느낀다”며 파리 시민들을 위로했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파리 시민과 진화작업에 나선 소방대원들을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원유 통제·강대국 방관… 장기화되는 리비아 내전

    美는 주둔군 철수… 러 “외국 개입 안돼” 동부 유전지대를 장악한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이 리비아 서부의 통합정부(GNA) 측을 공격한 지 열흘 만에 양측에서 147명이 죽고 614명이 다쳤다. 원유, 정치적 득실 등으로 이해가 얽힌 열강들이 사태를 방관하면서 내전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4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와 그 주변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76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리비아에 거주하는 난민과 이주민의 생명도 경각에 놓였다. 알자지라는 이날 유엔 산하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을 인용해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수단 등지에서 전쟁과 박해를 피해 리비아로 피신한 1500여명이 트리폴리의 난민 센터 등에 위험하게 갇혀 있다”고 전했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이번 공격을 ‘테러 집단과의 전쟁’으로 명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원유 생산량을 통제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온 하프타르 사령관이 러시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의 지원을 받아 트리폴리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고 평가했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이날 이집트 수도 카이로를 방문해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과 LNA의 트리폴리 진격 문제를 논의했다. 시시 대통령은 하프타르 사령관의 지지자로 두 사람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을 ‘공공의 적’으로 갖고 있다. 강대국들은 발을 빼는 모양새다. 미국은 안전을 이유로 지난 7일 리비아 주둔 미군을 일시 철수시켰다. 하프타르 사령관이 장악한 리비아 동부의 유전지대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하프타르 사령관 규탄 성명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는 외국의 개입 없이 리비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WP는 “이슬람권이 지배하는 트리폴리에는 비(非)이슬람계인 하프타르를 미워하는 정서가 뿌리 깊어 (카다피 정권이 몰락한) 2011년 이후 가장 치열한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여기는 일본] 지진으로 딸 잃은 두 어머니와 튤립이 이어 준 인연

    [여기는 일본] 지진으로 딸 잃은 두 어머니와 튤립이 이어 준 인연

    구마모토 지진이 일어난지 3년이 되는 이번달 14일, 튤립으로 이어진 두 어머니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4일 마이니치 신문 등 현지언론은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으로 딸을 잃은 두 어머니가 튤립으로 인연을 맺게 된 사연에 대해 보도했다. 구마모토 시(熊本市) 히가시 구(東区)에 사는 마쓰자키 구미코(松崎久美子)씨(49)는 구마모토 지진으로 당시 16세였던 딸 구루미(胡桃) 양을 잃었다. 구루미 양은 1999년 11월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심장병을 진단받았다. 구마모토 시민병원에서 2번의 대수술과 7개월의 입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지만, 2살 되던 해 가슴의 통증으로 긴급 입원, 저산소뇌증으로 계속 누워있게 되어 대화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간신히 움직이는 왼쪽 손을 사용해 노트북으로 시를 짓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지만, 구마모토 지진의 강한 흔들림 후 경련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구마모토 시민병원은 내진시설 부족으로 붕괴 위험이 있어 구루미 양은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고, 후에 패혈증으로 지진재해사로 인정되었다. 구루미 양이 죽고 2년 정도 지난 작년 11월, ‘불단에 예쁜 꽃을 올리고 싶다’는 결심이 선 엄마 마쓰자카 씨는 자택 정원에 화단을 만들어 튤립 씨앗을 심었다. 화단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예상치 못한 특별한 답글이 달렸다. ‘멋진 화단이네요.’ 마쓰자키 씨와 마찬가지로 구마모토 시민병원에서 진료 받지 못해 딸 가린(花梨) 양(당시 4세)을 잃은 미야자키(宮崎) 씨로부터의 답글이었다. 미야자키 씨도 집에서 튤립을 키우고 있어, 두 사람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힘내서 키워 나가자’며 의기투합했다. 두 어머니는 서로 딸에 대한 이야기, 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딸을 잃은 아픔을 조금씩 극복해 나갔고, 우울했던 마음도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쓰자키 씨가 키워 온 튤립이 이번 봄 처음으로 분홍색 꽃을 피워내자, 이 이야기를 들은 미야자키 씨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마쓰자키 씨는 오는 10월 개원을 목표로 공사중인 새로운 시민병원에도 튤립을 심고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매년 봄마다 튤립을 보고 구루미 양과 가린 양을 추억해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구마모토 지진은 2016년 4월 14일과 16일에 걸쳐 구마모토 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서 전진, 본진, 여진 모두 합쳐 사상자 1100명을 넘겼고 현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임시 거주시설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고 현지언론은 보도했다. 강보윤 도쿄(일본) 통신원 lucete1230@naver.com
  • 손들고 항복하는 北 소년들…한국전쟁 흑백사진, 컬러로 부활

    손들고 항복하는 北 소년들…한국전쟁 흑백사진, 컬러로 부활

    한국전쟁(1950~1953)의 참상이 담긴 흑백사진이 색을 머금고 컬러로 재탄생됐다. 사진은 영국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는 로이스턴 레너드(55)가 한 장당 4~5시간가량 작업한 끝에 완성됐다. 남동생을 등에 업은 어린 소녀와 탱크, 적군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미군의 모습 등 전쟁의 잔혹함이 컬러로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권총을 든 미군 앞에서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북한 소년들의 사진. 1950년 9월 20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는 매복 중이던 미군에게 붙잡힌 북한 소년들이 담겨 있다. 권총을 겨눈 미군 뒤로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던 탱크가 보인다. 1951년 6월 고양시 행주산성 부근에서 남동생을 등에 업은 남한 소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M-26 탱크 앞에 서 있는 모습 역시 인상 깊다.1950년 8월 부산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군인을 들것에 실어 나르는 미군 사진도 컬러로 복원됐다. 부산 교두보 전투로도 불리는 이 싸움은 유엔군 사령부가 부산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 동안으로 모든 병력을 후퇴시켜 방어선을 재편한 작전이다. 이를 통해 부산항으로 병력과 물자를 안정적으로 보급받은 유엔군은 9월 18일 반격 전환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1950년 9월 미 해병대가 널브러져 있는 적군의 시체를 지나치는 모습도 보인다. 반자동 소총을 메고 가슴까지 흠뻑 젖은 미군이 논두렁을 달려가고 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1950년 1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2주간의 혈투 끝에 중국군에게 패해 퇴각하던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제7연대의 사진도 볼 수 있다.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의 사진도 제 색깔을 찾았다. 총을 들고 탱크에 올라 있는 사진 속 8명의 영국 군인은 중국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날 전투에서 임진강을 건넌 600명의 영국군은 중국군 1만 명을 사살하고 59명의 사상자를 냈다.이번 복원작업을 이끈 레너드는 “이번 작업은 그저 오래된 흑백사진이 아닌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라 의미가 남달랐다”면서 “역사를 잊지 말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음 세대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쟁터로 보내야만 했던 가족들의 아픔을 상기시키는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20년 뒤 운전자 3명 중 1명이 고령”…면허 반납 보상법 발의

    “20년 뒤 운전자 3명 중 1명이 고령”…면허 반납 보상법 발의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교통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스스로 반납할 경우 이를 보상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6일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은 고령 운전자의 안전운전 및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 근거를 마련하고,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 보상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김 의원이 장래인구추계와 운전면허 소지자 현황 자료를 근거로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의 비중은 2018년 9%에서 2028년 기준 22%, 2038년 기준 35%로 전망된다. 고령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 건수와 사상자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는 2010년 547명에서 2013년 737명, 2015년 815명, 2018년 843명으로 집계됐다. 앞서 국토부와 경찰청 등은 지난해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통해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기간에 교통안전교통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갱신 기간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국토부는 고령 운전자를 위해 도로 표지판을 글자 크기 확대를 추진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65세 이상 운전자가 운전명허를 자진 반납할 경우 교통비 지원 등 혜택을 준다. 김 의원은 “현행법상 고령운전자 관련 제도는 교통안전교육 및 정기 적성검사의 강화에 그친다”며 “고령운전자의 증가 추세에 따른 장기대책 수립이나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제도에 관한 법적 근거는 미비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정부, 강원 고성·속초 일대 재난사태 선포…특별교부세 40억원 지원

    정부, 강원 고성·속초 일대 재난사태 선포…특별교부세 40억원 지원

    정부는 지난 4일 강원 동해안 일대 발생한 대형 산불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자 범정부 차원의 총력대응을 위해 5일 오전 9시부터 강원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군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행정안전부는 강원 산불 피해를 조기에 수습하고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40억원과 재난 구호사업바 2억 5000만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재난사태 선포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피해 현장을 방문해 대처 상황 등을 파악했고 조기 수습을 위해 가용 자원을 신속하게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선포지역에 재난경보 발령과 인력, 장비, 물자 동원을 비롯해 위험구역 설정, 대피명령, 응급지원, 공무원 비상소집 등의 조치가 시행된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재난 수습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난선포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중앙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행안부 장관이 선포한다. 2005년 4월 강원 양양산불이나 2007년 12월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유출사고 때 선포된 바 있다.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위험지역에 대한 출입제한과 통제가 강화된다. 대피명령에 응하지 않거나 위험구역에 출입하는 등 제한행위를 하면 벌금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산림청·소방청·경찰청 등 전 행정력을 동원해 산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주민에 대해서는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하고 재해구호물품 지급 등 긴급 생활안정 지원 대책을 마련한다. 사상자에 대해서는 장례지원과 치료지원, 재난심리지원서비스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한편 재난안전 특교세 40억원과 구호사업비 2억 5000만원을 긴급 지원해 산불진화를 위한 인력과 장비 동원, 소실된 산림과 주택 잔해물 처리, 이재민 구호 등에 쓸 예정이다. 특교세 지원 규모는 과거 지원 사례와 피해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이번 특교세와 구호비 지원이 산불 피해 조기 수습에 기여하고 이재민께서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강원 산불이 완전히 진화될 때까지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李총리 “강원산불 국가재난사태 선포건의…곧 발표”

    李총리 “강원산불 국가재난사태 선포건의…곧 발표”

    이낙연 국무총리는 5일 강원도 산불 사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께 국가재난사태 선포를 건의드렸다”며 “곧 발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강원도 산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리는 “자연재해를 막을 순 없지만,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면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 과제이고,민가와 생업시설 피해를 예방하는데도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민) 대피 안내를 정확하고 체계 있게 해주시고,사상자에 대한 대응을 해주기 바란다”며 “학교가 쉬면 아이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하는 문제를 포함해 부처별로 대처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모든 현장에서 소방인력 안전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총리는 이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고성) 현장에 가셨지만,내일 0시를 기해 장관이 바뀌기 때문에 이 회의가 끝나자마자 제가 현장에 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난대응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제 수행인력을 최소화해주시고 현장에서도 의례적인 보고를 할 필요가 없다”며 “각자 현재 위치에서 할 바를 다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예정됐던 다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로 이동해 현장 상황을 직접 챙길 예정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고성 산불로 사상자 발생…정부 주민 대피 등 총력 대응

    고성 산불로 사상자 발생…정부 주민 대피 등 총력 대응

    강원 고성군에서 지난 4일 저녁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 시내로 번지면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산림당국 등에 따르면 산불이 휩쓸고 간 고성군 토성면의 한 도로에서 50대 남성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또 최소 11명이 다친 것으로 현재까지 파악됐다. 여전히 강풍 탓에 산불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산불이 확산되면서 대피 인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고성 지역 주민들은 동광중 등에 긴급 대피했다. 속초시 장사동과 영랑동 주민 500여명도 영랑초교로 대피했다. 교동 일대 주민은 교동초교와 설악중에, 이목리와 신흥리 일대 주민들은 온정초교에 각각 대피한 상태다. 속초 강원진로교육원에 입소한 춘천의 봄내중 학생과 교사 179명은 춘천으로 이동 중이다.정부는 야간이다 보니 산불이 어느 정도 번졌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일단 밤사이 인명 피해가 없도록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성 산불은 전날 오후 7시 17분쯤 발생해 불과 1시간 만에 5km가량 떨어진 곳에 번질 정도로 확산 속보가 빨랐다. 앞서 소방청은 전날 오후 8시 31분을 기해 서울과 인천, 경기, 충북 지역에 이어 추가로 전국에 소방차 출동을 지시했다. 이어 전날 오후 9시 44분을 기해 화재 대응 수준을 2단계에서 최고 3단계로 높였다. 1단계는 국지적 사태, 2단계는 시·도 경계를 넘는 범위, 3단계는 전국적 수준의 사고일 때 발령한다. 청와대도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중심으로 산불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전날 밤 11시쯤 고성 산불 현장에 소방차 66대과 소방인력 1000여명이 투입돼 있으며, 주민은 600여명 대피했다고 설명했다.문재인 대통령은 “산불 조기 진화를 위해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라”고면서 “진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각 지자체가 중심이 돼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산불이 번질 우려가 있는 지역은 주민 대피 등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라”면서 “인근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도 유사시에 대피할 수 있도록 하고, 피해지역 학교 휴교령 등 아이들의 보호방안을 강구하라”고 밝혔다. 강원교육청은 이날 속초 지역의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휴업 학교는 초등학교 12곳, 중학교 4곳, 특수학교 1곳, 공립유치원 2곳, 사립유치원 3곳 등 모두 25개 학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5·18 가해자와 피해자 ‘치유의 악수’ 나눈다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발생한 ‘주남마을 학살사건’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음으로 만나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상처를 다독인다. 5·18기념재단은 오는 12일 오후 2시 30분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제주와 광주, 베트남을 기억하다’를 주제로 한 ‘2019 광주 평화기행 워크숍’을 연다고 2일 밝혔다. 5·18 당시 광주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 학살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홍금숙(여·54·당시 춘태여상 1년)씨와 1989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계엄군의 양민학살을 증언한 7공수여단 출신 A씨가 참여한다. 1980년 5월 23일 7·11공수여단이 화순 쪽으로 가던 25인승 버스를 총격해 승객 18명 중 15명을 숨지게 했다. 부상자 2명은 11공수 부대원에 의해 확인사살을 당했다는 게 당시 33대대 중사였던 A씨 증언이다. 이후 A씨는 극우인사들의 협박과 행패에 시달렸다. 홍씨와 A씨의 만남을 주선한 기념재단은 이들의 5·18 트라우마 해소 과정을 보여주며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제주4·3 및 여순사건 유족에게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계기를 만들 생각이다. 길게는 5·18항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제주4·3사건은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민중을 미 군정과 극우단체들이 무력 진압하면서 집단항쟁을 불렀고, 6·25 종전 뒤인 1954년 9월까지 계속됐다. 여순사건도 같은 해 10월 19~27일 이승만 정권이 여수에 주둔하던 육군 제14연대에게 제주4·3사건 진압을 명령했으나 거부하고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숱한 사상자를 냈다. 이기봉 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사건 당사자 등 사전 선발된 25명만 참여한 가운데 비공개로 예정됐지만 참석자 동의를 전제로 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중국 쓰촨성 산불 현장 소방관 최소 26명 사망

    중국 쓰촨성 산불 현장 소방관 최소 26명 사망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대형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된 소방관 중 최소 26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과 AP통신이 1일 보도했다. 이번 산불은 지난달 30일 오후 6시쯤 쓰촨성 량산주 무리현 해발 4000m 안팎 고산 지대에서 발생했다. 중국 비상관리부에 따르면 약 700명이 현장에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였으나 지형이 복잡하고 강한 바람이 불면서 어려움을 겪었고,그 와중에 소방관 30명이 연락 두절됐었다. 소방당국은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서 거대한 불구덩이가 만들어진 뒤 소방관 30명이 실종됐었다”고 밝혔다. 구조대원들은 26구의 소방대원 시신을 발견한 뒤 나머지 실종자 4명을 찾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이번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지침을 내렸다. 중국 신화통신은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달 31일 큰 불길이 잡혔으며,이번 산불로 9천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으나 민간인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3월 28일부터 의사상자 가족, 서울동물원과 식물원 등 무료입장

    3월 28일부터 의사상자 가족, 서울동물원과 식물원 등 무료입장

    의사상자 가족 및 유족들은 3월 28일부터 서울동물원을 비롯한 서울시가 운영하는 모든 유료 공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이호대 의원(더불어민주당·구로 제2선거구)은 지난 3월 22일 개최된 ‘서울특별시 조례·규칙심의회’에서 의사상자 등에 대한 지원 내용을 담은 「서울특별시 도시공원 조례 일부개정조례공포안」, 「서울특별시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공포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으로, 사망한 사람은 의사자, 부상을 입은 사람은 의상자로 구분한다. 현재 서울시 거주 의사상자는 146명, 전국적으로는 786명 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예우와 지원은 의사상자 특별위로금과 기념표석 설치 정도가 전부인 실정이다. 이의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의사상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고자 서울시가 관리하는 서울동물원, 서울식물원 등의 유료 공원과 서울시 소유의 공연장 등의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거나 그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개정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3월 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두 개정 조례안이 가결되었고, 시 조례 규칙심의회에서도 의결됨에 따라 두 조례안은 3월 28일 공포된 직후 바로 시행된다. 이에 따라 오는 3월 28일부터 의상자와 활동 보조가 1명, 의사자유족, 의상자가족 중 배우자 및 자녀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동물원(5,000원), 테마가든(2,000원)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5월 1일 개원하는 서울식물원(5,000원)도 마찬가지로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다만, 해당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때에는 의상자증이나, 의사자 유족증을 해당 시설 관리인에게 제시해줘야 한다. 의사상자의 숭고한 의(義)가 쉽게 잊혀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이번 조례안을 준비한 이호대 의원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일상 속 영웅인 ‘의사상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마음이 전달된 것 같다”며 “앞으로 의사상자분들이 보여주신 가치를 기억하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장군의 손녀’ 최성주가 말하는 잊혀진 장군 ‘최운산’“99년 전 봉오동전투는 당시 세계 최강이라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긴 빛나는 전과입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 특히 홍범도(1868~1943)·김좌진(1889~1930) 같은 영웅이 화승총으로 매복을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독립군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무기와 군장비를 잘 갖췄기 때문에 이긴 겁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잊혀진 영웅 최운산(崔雲山·1885~1945)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당시 사진사를 동원해 전쟁 현장을 촬영했던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이지요.”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61) 이사를 최근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신이 장군의 손녀라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에서 익히 배웠던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영웅담’과는 결이 달랐다. 기자만 최운산 장군에 대해 모르나 싶었지만 최 이사는 “역사학자조차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기에 지난 22일 서울신문사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최 이사는 노트북을 들고와 현장에 다녀왔던 사진과 관련 서류들을 보여줬다. 이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그의 형인 최진동(崔振東·1883~1941), 참모장은 최운산이고, 홍범도·김좌진은 그 부대의 연대장이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봉오동 전투 현장이 수몰됐다고 했지만 실제 전투가 있었던 곳은 봉오저수지를 10km 정도 거슬러 올라간 곳”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거의 해마다 전투지를 답사한다고 했다. “봉오동전투 사진사 동원한 준비된 전쟁전투 모습 3장…임정에 보냈다는 기록만”- 봉오동전투 당시 현장을 촬영했다고?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최진동이 국민회에 보낸 공문(‘기안104’)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기록을 보면 ‘봉오동전쟁 전황 촬영사진 3매, 상해를 보낼 예정. 별지 전쟁 촬영 사진 3매는 제2남지방의 박준재씨가 전쟁 당시 실시 전황을 보고 촬영한 것이다. 이것은 임시정부로 보내서 석판으로 인쇄하여 세계에 선전하려는 것인데 보신 뒤에 반송하기 바란다.’고 적혀 있습니다. 번역해서 문서로 남아있는 것을 역사자료실에서 찾은 것입니다. 최운산 장군은 당시 종군기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사진사를 동원해 기록을 남기도록 했던 겁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던 거지요.” - 당시 돈이 있다고 무기를 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했을까. “최운산 장군이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던 관계로 지속적으로 무기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러나 뒷거래로 수천명이 무장할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은 소련에 배속됐던 체코 군의 무기로 무장한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은 체코군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시킵니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 1918년 말에 동쪽 끝에 도착합니다. 체코군은 무기는 필요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반면 우리 독립군은 대량의 무기 확보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무기가 있어도 돈이 없었거나, 돈이 있어도 무기를 파는 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요. 하늘의 뜻인지 최운산 장군에게 재력이 있었고, 체코군은 무기보다 현금이 더 필요했지요. 체코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산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니 우리 독립군도 당시로서는 최신의 미국 무기를 갖췄다고 봅니다.” “독립군들, 귀향하는 체코군 무기로 무장독립군들의 무기 구매 대금 출처는 최운산1920년 토지 팔아 5만원 마련… 무기 매입”- 막대한 무기 구입 대금은 어디에서 나왔나. “이 부분이 만주 무장독립운동 연구에서 가장 미진한 부분입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최운산 장군이 지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병 수준의 독립군 통합 부대원들을 훈련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1920년 1월 최운산 장군이 석현의 대규모 토지를 5만원에 팔아 그 돈으로 대한북로독군부 부대원 전원을 완전무장시켰습니다. 당시 5만원은 전투기 한대 가격이라 합니다. 최운산 장군의 부인인 김성녀(金性女·1894~1975) 할머니가 1969년 남편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면서 밝힌 장비를 보면 ‘대포 10여문, 기관총 수십정, 수류탄 수천개, 장총 천여정, 권총 수백정, 실탄 수만 발’을 갖췄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격인 사관연성소 병사 1인당 무장 상태를 보면 ‘소총 1정, 실탄 500발, 수류탄 1개, 좁쌀 6되, 짚신 1족이었다’는 일제의 밀정보고서도 있습니다.” - 최운산 장군, 얼마나 부자였나. “간도 제1의 거부였죠. 부를 일군 배경으로 중국이 토지 정리사업을 할 때 엄청난 규모의 황무지를 헐값에 불하받았습니다. 이를 조선 동포들과 함께 개간해 옥토로 바꿔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습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우리 땅은 사흘을 둘러봐도 다 못 본다.’고 하셨습니다. 1960년대 우리가 부산에 살 때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부하 한 사람이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할머니께 인사와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최운산장군의 땅 면적이 이 부산의 6배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콩기름공장·국수공장·주류공장·성냥공장·비누공장·과자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생필품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 대곡상이자 축산업자로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소를 창춘이나 훈춘으로 몰고 가서 팔았답니다. 이 소떼와 곡물은 러시아 군대 식량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게 연결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1858~1920) 선생이 소고기를 러시아군에 공급했다고 하는데 두 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 되는 재벌이었지만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습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습니다.” “최운산… 간도 최고의 갑부이자 대지주부산 6배 넓이 땅 소유…무장투쟁에 소진”- 최운산 장군, 정확한 이름은 어떻게 되나. “일본군의 눈을 속이자면 변장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여러 개를 썼습니다. 어릴 때는 최명길(崔明吉), 장작림 군벌에 있을 땐 중국식의 최풍(崔豊), 간도 제1의 거부로서 경제활동을 할 때는 최만익(崔萬益), 무장투쟁을 할 때는 최문무(崔文武)·최빈(崔斌)·최운산(崔雲山)을 사용했고, 러시아에서 무기를 밀매할 때는 최고려(崔高麗), 중국 장사꾼으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할 때 최복(崔福)을 사용했습니다. 8개의 이름을 가졌지만 모두 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삶을 사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장작림 군벌서 군사지식 습득중국군 이직시 자위대 조직…私兵 100여명” - 무법천지 만주에서 대규모 재산 지키자면 자위대가 필수였겠다. “최운산 장군은 청년 시절, 중국 동북3성 지배세력인 장작림(張作霖·1875~1928) 군벌에 들어갔습니다. 전투에서 장작림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어 장작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때 형 최진동, 동생 최명순과 함께 3형제가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군사 지식과 군조직 운영을 익히며 만주군벌과 혈맹의 관계를 맺은 겁니다. 최운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신뢰를 다졌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최운산 장군이 중국군을 이직하고 마적떼로부터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명목으로 자위부대 구성하겠다고 했을 때 장작림이 기꺼이 허락해준 겁니다. 그가 사병(私兵)을 모집할 때 1개 중대 이상의 병력이 따라 나왔다 합니다. 100명이 넘는 규모라 처음부터 정규 군대와 같은 편제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몇 명의 중국 사병이 포함된 이 자위부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작은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도독부(都督府)의 복장은 중국군과 같은 색깔이어서 잘 구별되지도 않았답니다. 독립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1915년엔 봉오동 산중턱을 벌목하고 개간해 연병장과 막사를 지어 독립군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때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3·1운동 후 열혈청년들 간도로 몰려 들어6개월 과정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도 창설안무·홍범도 등과 함께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과정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임시정부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670명의 자위부대를 대한민국 첫 정식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합니다. 그때 중국 지방정부에서 일하고 있던 최진동, 최치홍 두 사람도 대한군무도독부에 합류합니다. 사령관인 부장(府長)에 형인 최진동 장군을 추대했습니다. 자신은 참모장으로 재정 등 군대 운영의 전반을 책임졌지요. 병참을 맡은 겁니다. 동생 최치홍도 참모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최운산 장군은 자신의 소유지인 서대파에 대한북로군정서를 창설합니다. 3·1운동 이후 간도로 들어오는 열혈 청년들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들을 모두 받아들여 다음해에 6개월 과정의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를 십리평에 설립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북로군정서 무장과 사관연성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군자금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소진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언했습니다. 일본군과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대군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최운산 장군은 만주의 독립군 모두에게 무기와 식량, 군복 등 군자금 일체를 제공하기로 약조하여 본격적인 대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만주의 대소 독립군부대가 모두 합류했고 최종적으로 안무(1883~1924)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에 최씨 형제의 군대를 합쳐 독립군 통합부대를 만들었습니다. 명칭은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였고, 통합 서약서에 서명 날짜는 대한민국 2년 즉 1920년 5월 19일이었습니다. 국민회, 신민회, 광복단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독립부대가 대한북로독군부 기치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의 신분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 봉오동전투 상황은.“통합을 이룬 대한북로독군부는 두만강을 건너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며 실전 훈련을 쌓아갔습니다. 봉오동을 중심으로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기에 당시 일제는 독립군 토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정보전으로 이를 파악한 우리 독립군은 마을 주민을 미리 대피시키고, 연대별로 각 산에 주둔하고 산능선을 따라 참호를 파고 매복했습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봉오동전투 현장에 가면 낙엽이 가득 차있는 참호를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6월 7일 새벽 일본군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이 봉오동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봉오동을 둘러싼 산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어서 봉초봉 아래에선 백병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돌멩이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뿌연 안개가 앞을 가렸던 거죠. 우리 독립군이 짙은 안개와 비,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승세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퇴하던 일본군이 지원부대 일본군을 독립군으로 오인해 서로 총격전을 가해 더욱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봉오동전투서 적군 500여명 사살…기존보다 많아청산리전투는 봉오동전투 연장… 6일간 교전”- 봉오동 전투 전과는. “전과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낸 진정서를 보면 ‘적군 사살이 500여명, 중상자 700여명, 경상자 1000여명입니다. 노획물자는 대포 4정, 기관총 수십 정, 장총 500여정, 탄환 수만 발에 수류탄 다수’라고 기록합니다. 홍범도 일지에도 일본군 사망자가 5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는 여전히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경상 100여명으로 축소돼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가 거의 없다고 했지만 독립군도 사망자 수십명과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고 김성녀 할머니가 증언합니다. 총상 환자 치료를 위한 의사가 부족해 애를 태웠고, 용정 제창병원에 의사를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군 지도부는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고, 더 많은 독립군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연해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합니다. 4000여 명에 이른 독립군들이 부대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이 그해 10월 21일 청산리에서 따라 잡아 전투를 벌인 게 청산리전투입니다. 청산리전투는 하루 전쟁이 아니라 대한북로독군부의 여러 부대가 6일 동안 치른 전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청산리전투가 별개의 전투가 아니라 봉오동전투의 연장전이라 생각합니다.” “최운산, 6차례 옥고…이름 8개 사용광복 40일 전 평양 장남 집에서 사망”- 최운산 장군, 역할에 비해 많이 잘못 알려졌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이 몇몇의 영웅담 위주로 신화화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들이 겨우 화승총으로, 청나라 및 러시아에도 이긴 세계 최강의 일본군에 승리했다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학계도 언론도 처음의 잘못된 기록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논문을 낸 역사학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면 ‘앞선 논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역사학계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운산 장군 그 뒤 어떻게 됐나. “연해주에서 자유시참변을 겪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무장독립운동을 계속합니다. 1930년대에도 우수리강전투, 나자구전투, 대황구전투, 도문대안전투, 안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장남 최봉우(일명 최치영·1922~2001)가 학도병 징집을 피해 고향 봉오동으로 돌아왔다가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장례나 치르라며 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최봉우가 평양으로 숨어들자, 아버지 최운산장군이 아들을 보러 왔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 40일 전인 1945년 7월5일 평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최운산장군은 1924년~1926년 3년간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1939년 일본 경찰서 습격과 군자금 모집,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10개월간 감옥에 갇힌 것까지 일생동안 모두 6번 옥고를 치렀는데, 매번 심하게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습니다. 가족들도 그가 언제 감옥에 갔다 왔는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유공자 인정 조건 뒷돈 요구에 주먹 날려1977년 서훈…동생 최치홍은 여태 안 돼”- 정부는 최운산 장군의 역할 일찍 인정해줬나. “1961년 1월 최운산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정부로부터 받고 총무처로 아버지 최봉우가 갔더니 담당공무원이 ‘뒷돈’을 요구하더랍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모든 가산을 독립군 무장에 썼는데….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아버지가 그 공무원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 이후론 독립유공자 선정에 번번히 밀려났습니다. 십수년동안 미운털이 박혔던 게지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가렸다’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1969년에 진정서를 냈지만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인 197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셨습니다. 같이 독립운동한 동생 최치홍은 100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김성녀 할머니도 큰 역할을 했다. “저도 할아버지의 삶을 살펴보다보니 할머니의 역할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독립운동가를 내조한 차원을 넘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해 낸 진정서를 보면 독립운동을 내조한 정도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북로독군부의 조직 현황과 봉오동전투의 전과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를 바로 앞두고 최운산 장군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 도착한 중요한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직접 산속의 본진으로 올라가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군사들이 없을 때 집으로 쳐들어 온 마적들을 향해 직접 총을 쏘고 일꾼들을 독려해 무장 강도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물론 주민 부녀자들을 동원해 군복제작과 세탁 등 의복을 조달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한 끼에 3000명분의 식사를 마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김성녀 할머니에 대해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군의 부인 김성여도 무장독립운동 한 축무장독립운동사, 영웅담서 벗어나야 할 때”-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우리 5남매는 만주 무장독립 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후손들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가들의 연구가 깊어지면 언젠가 역사가 바로 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여태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잘 못된 기록이 반복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가 직접 일제 문서를 찾고,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삶을 역사학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반가워하면서 학술적 재조명이 필요한 일이니 기념사업회를 설립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셋째인 제가 60대입니다. 독립전쟁의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을 들은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 남매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자 뜻이 맞는 분들을 중심으로 2016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안 자랑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군들이 함께 지켜낸 만주의 무장독립전쟁의 진실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웅담 위주의 독립운동사를 넘어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 봉오동전투 100주년이다. 계획한 행사는. “사실 최운산 장군이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5남매가 비용을 갹출해서 학술세미나 개최나 봉오동 답사 등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주들도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에서 물러나 있으니 기념사업회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이 어려워 필요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를 열고 7월 5일 국립현충원에서 순국 74주기 추도식을 개최합니다. 100주년이 되는 내년엔 봉오동전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행사와 최운산 장군을 연구한 책을 한 권 펴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아이템’ 김강우,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악행 “얼마나 짜릿한데”

    ‘아이템’ 김강우,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악행 “얼마나 짜릿한데”

    ‘아이템’ 김강우는 또다시 참사를 일으킬까.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전개에 시선이 집중된다. MBC 월화미니시리즈 ‘아이템’(극본 정이도, 연출 김성욱) 조세황(김강우)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구동영(박원상) 신부에게서 빼앗은 반지가 원래 소유하고 있던 팔찌와 힘이 합쳐지며 드림월드로 이동한 것. 폴라로이드와 사진첩을 빼앗겼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강곤(주지훈)의 조카 다인(신린아)의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남은 이야기에서 어떤 악랄한 게임을 펼칠까. 강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 혹은 죽음에 빠트리며 절대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조세황. 그는 인생을 이겨야 하는 게임이나 도박으로 여기지만 쉽게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에 늘 새롭고 위험한 자극 욕구를 찾는 소시오패스다.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화재 참사를 일으키고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너 또 불장난 하고 싶지 않냐? 떠올려 봐. 그때 얼마나 짜릿했는지”라고 말할 정도. 그런 그가 유일하게 흥미를 자극하는 아이템 중 두 가지를 잃고도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드림월드로 갈 수 있는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힘을 잃은 아버지 조관(김병기), 그리고 다인이 있다. 이는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던 조관을 쉽게 제압할 수 있고, 자신이 다인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빼앗긴 아이템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강곤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고 궁지로 모는 완벽한 계획이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앞서 공개된 25-26회 예고 영상(https://tv.naver.com/v/5758151)에는 조세황이 다시 드림월드로 이동, 다인에게 “아저씨가 삼촌 만나게 해 줄게. 같이 가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또한, 지하철 모형을 만지며 “기대되네요. 또 어떤 새로운 물건이 나올지”라고 읊조려, 다인이 드림타워에서 본 미래이자 강곤의 꿈에서 펼쳐졌던 열차 참사가 그의 새로운 계획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바. 그가 이런 끔찍한 계획을 실행한다면, 새로운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짜릿했던 예전의 느낌을 다시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 강곤을 짓밟을 수 있다. 조세황의 악랄한 빅픽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절대악이 어디까지 손을 뻗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이템’ 매주 월, 화요일 밤 10시 M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민주 “지열발전소 MB정부 책임” 공세…한국 “포항지진특별법 추진할 것” 응수

    지난해 발생한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 때문인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4일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포항 지열발전소가 보수정권 시절 만들어졌다는 책임론이 불거지자 정면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경북 포항시 북구에 위치한 포항 지열발전소를 방문해 “포항 지진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가 3000억원이 훨씬 넘고 그로 인해 밝혀지지 않은 사상자도 있는데 저희 당에서 피해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빨리 만들겠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정부의 발표에 따라 인재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결국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 ‘추후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며 “포항 시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는 국회가 해야 할 부분을 잘 챙기도록 하겠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포항 지진을 특정 정권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결정적 책임은 현 정부에 돌렸다. 나 원내대표는 “포항 지진을 갖고 누구 탓이냐, 누구의 잘못이냐, 심지어 전 정권이나 현 정권까지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것을 지금 따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단 굳이 따진다면 지금 물을 주입한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실질적으로 2017년 8월 물 주입을 두 번 한 것이 지진의 큰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발전소를 폐쇄하고 더이상 물을 주입하지 않으면 지진의 위험성이 없는 줄 알았더니 사후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은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부터 시작됐다며 포항 지진의 책임이 보수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문제가 된 지열발전 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말 시작됐다”며 “지진을 촉발시킨 지열발전 사업 진행과정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네덜란드·뉴질랜드 테러 뒤엔 ‘IS 그림자’

    네덜란드 경찰, 범행 동기 명확히 안 밝혀 “IS 연계로 구속 전력” “사이 나쁜 친척 쏴” IS “뉴질랜드 이슬람 테러에 복수 할 것” 뉴질랜드 “반자동 소총 거래금지 등 규제” 18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중부 도시 위트레흐트의 트램(노면전차)에서 총기를 난사해 최소 3명을 숨지게 하고 5명을 다치게 한 터키 출신 용의자 괴크멘 타느시(37)가 사건 발생 7시간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범행 후 차량으로 도주한 타느시를 검거한 경찰은 범행 동기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해 가족간의 문제가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지난 15일 호주 출신 백인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28)의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모스크) 총기 테러 이후 사흘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무슬림의 보복 테러 아니냐는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경찰은 이날 타느시를 체포해 구금했으며 추가로 2명을 더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타느시 체포 과정은 물론 뒤늦게 신원을 확보한 2명이 이번 사건과 어떻게 연루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경찰은 또 당초 이번 사건의 사상자수를 사망 3명, 부상 9명으로 확인했다가 이후 별다른 설명없이 사망 3명, 부상 5명으로 정정했다. 네덜란드 공영방송 NOS 등 현지 언론은 타느시가 이미 절도와 기물파손, 살인미수, 성폭행 등 혐의로 7차례 기소되는 등 여러 차례의 범죄 전력이 있다고 전했다. 사건 당시 트램에 함께 타고 있던 목격자인 단 몰레나르는 총격범이 한 여성을 겨냥한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영국 BBC방송은 타느시가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연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타느시의 친척을 인용해 총격 동기가 단순 가족 내 분쟁이라며 보복 테러 가능성을 일축했다. 타느시가 트램에 타고 있던 친척 여성에게 총을 쐈고, 그 여성을 도우려고 한 사람들을 겨냥해 발포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경찰은 범행 동기가 테러인지 사적 불화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IS는 이날 선전 매체 ‘나시르 뉴스’에 44분 분량의 녹음 파일을 올려 “뉴질랜드 모스크 두 곳의 살해 장면은 잠자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깨우고 칼리프의 추종자들을 복수에 나서게 할 것”이라는 내용의 연설문을 발표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한편 유례없는 총격 참사로 슬픔에 빠진 뉴질랜드 정부는 오는 25일 반자동 무기 거래를 금지하는 새 총기규제안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총격범 태런트는 범행에 반자동소총 AR15를 이용했다. 태런트가 범행 전 올린 선언문에서 미국 증오범죄에서 범행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면서 온라인을 통해 서로 영향을 받는 각국 극단주의자에 대한 국가별 첩보 공유가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네덜란드서 총격사건 3명 사망…터키 출신 용의자 검거

    네덜란드서 총격사건 3명 사망…터키 출신 용의자 검거

    네덜란드서 총격사건…30대 괴크멘 타느시 체포테러 공격, 가족 분쟁 가능성 등 조사네덜란드 중부도시 위트레흐트에서 18일(현지시간) 오전 총격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숨진 가운데 경찰이 터키 출신 30대 용의자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네덜란드 경찰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5분쯤 중부도시 위트레흐트의 트램 안에서 총격이 발생했다. 경찰은 당초 사상자 수를 사망 3명, 부상 9명으로 확인했다가 이후에 특별한 설명 없이 사망 3명, 부상 5명으로 수정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빨간색 르노 클리오 승용차를 이용해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은 이후 위트레흐트 시내에서 발견됐다. 네덜란드 경찰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터키 출신 30대 남성을 지목한 뒤 사진을 공개하고 대대적인 검거작전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7시간여 지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용의자인 터키 출신 37세 남성 ‘괴크멘 타느시’를 체포해 구금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다만 회견에서 타느시 체포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함에 따라 정확한 범행동기와 공범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네덜란드 당국은 일단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당국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한 명이 아니라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NOS 방송은 대테러 당국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번 총격 사건이 테러공격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도 총격 사건이 발생한 뒤 “우리나라는 오늘 위트레흐트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충격에 휩싸였다”면서 “테러 동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얀 반 자넨 위트레흐트 시장도 “범행동기가 테러와 관련돼 있음을 배제할 수 없고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면서 “범인이 한 명 같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BBC 터키어 웹사이트는 이번 총격 사건의 용의자인 타느시가 몇 년 전 터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연계 혐의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인물이라면서 과거 체첸공화국으로 건너가 무장활동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은 터키에 사는 타느시의 친척의 말을 인용해 총격의 동기가 ‘가족 내 분쟁’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타느시의 친척은 타느시가 불특정한 트램 승객에게 총을 쏜 게 아니라 트램에 동승한 친척인 여성에게 총을 쐈고, 그 여성을 도우려고 한 사람들을 겨냥해 총을 쏜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검찰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범행동기가 분명하지 않다며 가족 문제가 이유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네덜란드 검찰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타느시가 예전에 당국에 체포된 적이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혐의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날 총격 사건이 발생한 뒤 위트레흐트 지방의 테러 위협 경보를 최고단계인 5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네덜란드에서 5단계 테러경보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용의자가 체포된 뒤 네덜란드 당국은 이 지역의 테러 위협 경보를 이전처럼 4단계로 내렸다. 한편, 네덜란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지금까지 파악된 한국 교민이나 유학생 피해 상황은 없다”고 밝혔다. 이윤영 대사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총격 사건을 접한 뒤 네덜란드 당국 및 위트레흐트시 측과 긴밀히 연락하는 한편, 현지 유학생과 교민을 통해 한인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위트레흐트에는 100명 미만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고, 유학생도 7명 정도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네덜란드에서는 작년 8월 독일에 거주하는 아프간 출신 난민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흉기 테러를 저질러 미국인 관광객 2명이 다쳤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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