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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속에 아름다운 세상 있었네…/각 분야 60인 참여

    ‘한 그루 나무에 대한 시인의 명상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매력으로 살아와서,수도원의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으레 이 시가 떠오르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는 느낌이다’.조이스 킬머의 시 ‘나무들’을 읽으며 이해인 수녀(시인)는 성스러운 기도자 모습의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한다.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이라는 끝연은 자신의 기도처럼 느껴진다고 이해인 수녀는 말한다.그는 신의 무한성과인간의 유한성을 생각케 하는 ‘나무들’이라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시를 좋아하는 각계의 인사 60명의 애송시 이야기를 담은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시’라는 책이 두권으로 나왔다.문학사상사 각권 7,000원 이 책은 이어령·차범석·손숙·김경동·박동규·박춘호·김영덕·유안진·박재삼·황병기·이해인·이윤택·유지나·최태지·조영남·노영심 등 문화예술·종교·학계 등 각분야 인사들의 가장 좋아하는 시와 그 시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 이상의 애송시로 꼽힌 시인은 박목월·윤동주·이상·정지용 등 4명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들의 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음을보여준다.외국 시중에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걸어 보지 못한 길’을 애송시로 꼽은 사람이 김경동(서울대 교수)·배창호(영화감독)·김형모(‘십대들의 쪽지’ 발행인)등 3명으로 가장 많았다.60명의 애송시는 대부분 서정시로 사랑을 주제로 한 시(10편)와 신과 자연을 노래한 시(10편)가 많았다.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박목월의 ‘나그네’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그는 ‘나그네’는 한국말 가운데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세음절의미학을 최대한 살린 시라고 평했다. 손숙 환경부장관(연극인)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익숙한 동작으로 책꽂이세 번째 칸에서 이성복 시집 ‘남해금산’을 꺼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로 시작되는 ‘남해금산’ 시집의 표지글을 읽으면 여러명의 ‘당신’ 얼굴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그 얼굴은 큰 딸일 때도 있고 존경하는 스승과 벗이 되기도 한다”.권영민 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는 ‘책을 펴내며’라는 글에서 “언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시는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으로부터 빚어진다.그래서 잃어버린 시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한가운데에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는 길이다”고 강조한다.우리의 정서는 메말라 있고 현실은 각박하지만 커피 한잔 값이면 살 수 있는 빛나는 언어의 시집은 고단한삶을 위로하고 마음의 풍요를 느끼게 할 것이다. 이창순기자
  • 항공기업문화 이렇게 바꾸자(상)

    대한항공이 잇따른 사고로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족벌경영 타파 요구로 지난 30년간의 조중훈(趙重勳)회장체제도 기로에 서게 됐다.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의 기업문화는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본다. 대한항공은 지난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당시 47개이던 국제노선을 현재 97개 노선으로 두배 이상 늘렸다.운항횟수도 89년 주 200회에서 주 352회로 증편했다.지난 97년 기준 매출액이 4조2,000억원에 여객 수송능력은 세계 13위를 자랑했다.오는 2000년대 초까지 13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 7위권의항공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항공전문가들은 그러나 대한항공의 조직이 너무 비대해져 현재의 중앙집권식 경영체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총수 1인에 모든 의사결정을 의존하는 경영방식으로는 한해 2,500만명의 생명을 책임지고세계를 누비기에는 이미 한계를 벗어났다는 얘기다. ‘몸집’부터 과감히 줄여야 전문가들은 인명 중시 풍토 조성을 위해 대한항공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형 위주의 확대경영을 지양하는 것이라고말하고 있다.과감한 분사(分社) 경영을 통해 스스로 감당하기 버거운 ‘몸집’을 적정선으로 줄임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안전체계를 확립하라는 소리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항공사가 여객·화물수송에서 기내식업무까지 할 경우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워 조직의 순발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기내식업무 등 일부사업에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독립시킨 뒤 대한항공은 여객수송분야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통개발연구원 김연명(金淵明)박사는 대한항공이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문어발식 노선확장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김박사는 “항공사들이 무분별하게 노선확장에 나선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대한항공은 인력과 장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노선 확장을 지양하고 장거리노선에 주력하는 쪽으로 경영방침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사고를 줄이려면 모든 국내·국제노선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며 우선 사고다발기종인 MD-11,A300-600,MD-82의 운항 제한조치를 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투자의 우선순위를 올바로 판단해야 대한항공이 30년간 성장일변도로 기업을 이끌어오는 바람에 안전운항이 영업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게 전문가들의공통된 견해다. 건교부 관계자는 “조종사들이 회항 및 결항으로 호텔·연료비 부담 등 막대한 손실을 낼 경우 회사의 문책이 뒤따르기 때문에 무리한 운항을 하게 된다”며 경영진의 그릇된 안전의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하대 박기찬(朴基贊)교수(경영학)는 “노선·항공기 확충에 따른 투자비를 인건비 절감으로 보충하려는 대한항공의 잘못된 경영방침이 화(禍)를 자초했다”며 “지난해 인건비를 아끼려고 정비사를 대거 퇴출시켰다가 요즘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느냐”고 반문했다.‘선(先) 안전투자-후(後) 비용절감’의 경영풍토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영구도 어떻게 바뀔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0일 대한항공의소유와 경영 분리를 강력히 촉구하면서 조중훈(趙重勳)회장-조양호(趙亮鎬)사장 체제의 거취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는 우리 정치문화 특성상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구체적인 법조문 이상의 힘을 갖는데다 대통령의 발언이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에나온 것이어서 더욱 예민하게 받아 들이는 눈치다.이런 맥락에서 조회장의퇴진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이면서 대한항공의 향후 경영구도를 놓고 추측이무성하게 일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조만간 대한항공이 ‘제 2의 창업’을 선언하며 새로운 경영진을 출범시킬 것으로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우선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는 조회장이 명예회장,조사장이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이 대한항공 사장으로 영입될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하지만 이 보다 조회장 부자의 동반 퇴진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회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조사장도 명예회장으로 물러앉는 대신사장에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방안이다.전문경영인 후보로는 대한항공의L씨와 S씨 등이 거론되고 있다.이들은 대한항공에서 두루 요직을 거친 항공전문가일 뿐 아니라 조회장의 신임도 두텁다.현재 하와이에서 머물고 있는조중건(趙中建) 전 회장을 다시 영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그러나 조 전 회장이 대한항공과 지분관계를 완전히 청산한데다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게 대한항공 주변의 분석이다. 박건승기자*대한한공 움직임 대한항공의 경영체제 개편 요구 등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에 대해 한진그룹측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그러나 분위기는 침울했다.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회장과 대한항공 조양호(趙亮鎬)사장을 비롯한 계열사 대표,심이택(沈利澤) 대한항공 부사장 등 임원들은 21일 아침 일찍부터 소공동 한진해운센터 21층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청와대의 지시가 단순경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한 탓인지 경영체제 개편문제에 관해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회장 집무실과 회의실이있는 본관 21층으로 통하는 출입문은 굳게 닫힌채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는 등 회사측은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경영층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만간 나올 경영진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직원들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항공안전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조종사들은 차제에 조직을 재정비해‘대한항공=사고뭉치’라는 오명을 떨쳐버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력 9년째인 한 부기장은 “대한항공은 ‘비행기는 뜨면 돈’이라는 생각에 수익올리기에만 급급해 조종사들의 불만이 컸다”면서“‘안전’이라는 절대목표를 최우선으로 모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수기자 sskim@ *금감원 현대 주가조작 고발 안팎 금융감독원이 현대중공업과 상선 회장을 시세조정 혐의로 검찰에 고발,재계가 긴장하고 있다.특히 반도체 빅딜 타결을 앞둔 시점에서 금감원이 초강경방침을 굳혀 구조조정 압박용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금감원은 규정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하나 재계는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검찰도 수사에 적극 나설 뜻을 비쳐 앞으로 현대의 구조조정노력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수법 사자주문을 여러차례 쪼개서 내는 분할매수 방식을 활용했다.주식을 매집한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현대중공업의경우 1,882억원을 들여 805만7,420주를 사들이면서 매수주문을 무려 1,952차례나 냈다.하루에 149차례 주문을 낸 적도 있으며 현대전자의 하루거래량 가운데 93.2%를 사기도 했다.현대상선도 252억원을 투입,88만5,830주를 총 207회에 걸쳐 샀다.하루에 146차례의 주문을 내기도 했다. 종가를 높이는 수법도 썼다.장이 끝날 무렵,사자가격과 매도잔량을 파악해고가로 대량매수 주문을 내 종가를 뛰게 했다. 현대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 일가의 시세차익 현대전자의 주가조작 배경이 규명되지 않았으나 정씨 일가가 세금을 내지 않고 주식을 처분하기 위해주가를 높였을 개연성도 충분하다.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 4월1일까지 보유중인 현대전자 주식 285만4,508주를 팔았다.정몽규(鄭夢奎) 산업개발 회장도 지난 연말 유상증자 직후 100만주를 처분했고 정몽준(鄭夢準) 의원과 정몽근(鄭夢根) 금강개발 회장은 지난해 7∼9월을 전후해각 8만주와 41만주를 팔았다. 대주주들의 불공정거래 경기화학 권회섭(權會燮) 대주주 겸 대표이사는 증시 거래에서 포괄적 사기혐의가 적용된 첫 케이스다.권 대표이사는 계열사인 경기엔지니어링으로부터 57억4,000만원을 편법으로 대출받아 경기화학 CB(전환사채·전환가격 5,400원)를 샀다.그는 97년 반기 실적이 101억원 적자임에도 16억원 흑자가 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한데 이어 신문광고를 통해 실현가능성이 없는 유통센터건립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7,100원에서 1만9,000원으로 높였다.권 대표이사는 CB 전환주식 106만주와 기존에 갖고 있던280만주를 팔아 100억여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나승렬(羅承烈) 거평그룹 회장은 대한중석과 (주)거평 등 일부 계열사가 부도가 날 것을 알고 98년 4∼5월 중 대한중석 주식 19만여주와 (주)거평 주식 8만여주를 차명계좌로 팔아11억원의 손실을 회피했다. 처리전망 5대그룹 계열사가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고발된 것은 처음이다. 시세조정 혐의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상사기와 같은 형량을 적용하고 있다.그러나 현대측이 시세를 조정할 목적이없다고 끝까지 부인하고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무혐의 처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백문일기자 mip@
  • ‘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 노동 천시하며 지배계급에 동화 서양 중세시대 지성의 역사를 ‘지식인’이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다룬 책‘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지음·최애리 옮김)이 나왔다.기존의 중세 지성사가 주로 사상사적 관점에서 다루어졌던 반면,이 책은 구체적 정황속의 인간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저자는 여기서 문화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에도 정의에 대한 열정과 진리에 대한 치열한 탐색을추구한 일련의 지식인들이 있었음에 주목한다.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권력에동화되고 문화를 경직시켜 중세가 ‘암흑기’란 오명을 얻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지 세밀하게 짚어가고 있다. 이책에 등장하는 지식인은 현대의 지식인과는 그 범주와 의미에서 차이가있다.이들은 중세의 사회역사적 환경에서 탄생된 특정 부류를 의미한다.주로 학문 연구와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성직자의 직분을 갖기도 했지만 수도사나 사제 등과 달리 교사나 교수의 역할에 치중했다.이들은 학교와 거리를 두고 있는 시인들이나 작가들과도 구분된다.단테같은중세 서양사상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도 학교와 긴밀한 관련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단편적인 언급에 그치고 만다.저자는 이들이 독창적인 계보를 형성했으며 중세 지성사에서 뚜렷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12세기 유럽 각국에서 도시가 일어나면서 등장한다.중세에서 교육은 만인에게 개방하는 것이 원칙이었고,따라서 사람이 모인 도시에 수도원 교단들은 너도나도 학교와 대학을 세웠다.교사들은 처음에는 연구와 가르치는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지적 노동자’였다.이때 지식인의 또다른 유형으로는 번역가들과 골리아르가 있다. 번역가들은 대개 수도원 등에서 보수를 받고 그리스 아랍 등의 고전과 과학서 등을 찾아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골리아르(goliards)는 정해진 소속 없이 이름 높은 교사를 찾아 다니는 가난한 유랑학생들이었다.이들은 지적 자유추구 만큼이나 기성질서를 대변하는 성직자와 귀족 들을 비판했다.골리아르중 한 사람으로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인간주의자였던 피에르 아벨라르 같은이는 항상 새로운 사상을 고취시키며 발길 닿는 곳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이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기성특권층과 과감한 지적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13세기에 이르러 지식인들은 다른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동업조합을 조직해나름의 조직과 제도를 구축한다.이들은 대학을 교회와 세속권력들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교황권을 이용하려고 하나 오히려 교황의 일꾼으로 전락하고만다.대학조합은 교회사법권에 속해 대학인들은 속인이면서도 성직자라는 애매한 지위에 놓인다.그리고 교회의 ‘무상교육 원칙’에 의해 이들 지식인들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교황의 은급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과정은 결국 13세기 말에 이르러 대학의 교사들이 교회와 세속의 고위직에 나가 정치권력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14세기 중세말기에 한층 더 지배계급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경제적 기반을 잡은 이들은 귀족행세를 하고 대학의 교수직마저 세습화한다.중세말기를 풍미하는 반지성주의,신앙절대주의는 이처럼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생겨나는 것이다.그결과 이들이 12세기에 추구했던 지적 열정은 사라졌다. 이 책은 기존의 중세 지성사에서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중세지식인 집단의 존재를 새로이 부각시키고 있다.그리고 이들이 지적 ‘노동자’로서의 계급을 부인하고 노동을 천시하며 지배계급에 동화되어 결국 지적문화의 경직과 퇴조를 가져오는 과정을 교훈적으로 보여준다.동문선 1만8,000원
  • 金三雄칼럼-방탄국회와 소도사상

    여당의 단독 청문회가 열리고 야당의 장외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국회는 어떤 상태인가. 제 200회 임시국회가 1월 8일 소집되었지만 여야는 장 밖에서 따로 논다. 국회는 지난해부터 올 연초까지 총 8회의 임시국회를 열었다. IMF사태를 맞아 국난 극복을 위해 열린 것은 물론 아니다. 정기국회를 제외하면 모두 한나라당이 비리와 관련된 소속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방탄국회'를연 것이다. 지난해 5월 1일부터 9월 2일까지 5회에 걸쳐 검찰의 체포동의안이 발부된李信行의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국회가 열리고,9월 4일부터 9일까지는徐相穆의원 등을 위해 또 임시국회가 소집되고,이어서 100일 동안의 정기국회가 끝나면서 다시 12월 19일∼1월 7일까지,그리고 해를 바꿔 제 200회 임시국회가 또 소집되었다. 소집일수로 치면 가히 연중국회라 할 만하다. 한나라당의 거듭되는 임시국회 소집으로 비리의원들의 검찰소환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권력분립을 목적으로 마련된 국회의원의 회기중 불체포특권 조항이 엉뚱하게 비리의원의 보호장치로 남용되고 국가형벌권의 정당한 행사가차단되고 있다. 며칠전 朴相千법무장관은 국회의장에게 공문을 보내 비리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국회의원 10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공식요청했다. 일부의원의 경우 공소시효가 이달 말로 만료되는까닭에 체포동의안 처리를 무작정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 한다. 국회의원은헌법기관이기 때문에 보호받고 권위가 인정돼야 한다. 그렇지만 범법자까지보호받을 수는 없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반독재투쟁에 앞장선 야당의원을 보호하고자 임시국회를 여는 것이 국민의 공감을 받았지만,지금 비리 혐의사실이 드러난 의원을 보호하려고 방탄국회를 연중무휴로 소집한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라 하겠다.고대사회의 신성지역 우리 역사는 고대 부족국가 단계에서 벌써 상당한 수준의 인권보호장치를마련하고 있었다. 원시 민주사상의 효시라 할 소도(蘇塗)사상도 그 중의 하나다.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당시에 산천에 제사 지내던 곳을 소도라 불렀다. 본래 소도는 고대국가단계의 의례(儀禮)행사의 하나로서 거기에는 사상사적으로 제천(祭天)을 통한 경천사상과 가무화락을 통한 애민정신이 깃들여 있었다. 부족국가들이 하늘과 산천에 지내는 제사는 보통 정월과 10월에 행해졌는데,‘위지(魏志)'에는 소도에 참석한 사람은 설혹 도망자(죄수)라 하더라도 돌려보내지 않고 받아들였다 한다.(諸亡逃至基中 皆不還之…) 이로 미루어 소도가 일정한 성역으로서 고대의 제천기능과 함께 사법적 역할을 했던 것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서양 고대에 범죄자·부채자 등이 관헌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 들어간 사원이나 교회를 상징하는 asylum제도와 비슷한 일종의 신성지역이었다. 고대 부족국가의 소도 행사에는 부여의 영고(迎鼓)·마한의 농신제의(農神祭儀)·고구려의 동맹(東盟)·예맥의 무천(舞天)·백제의 사중지제(四仲之祭)와 교천(郊天)·신라의 입추지제(立秋之祭)를 들 수 있다.국사는 팽개치고 지금 야당이 각종 비리와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을 보호하고자 연거푸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은 고대사회의 소도사상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회기중불체포특권의 헌법정신에도 배치된다. 소도사상은 경천과 가무화락을 통한 애민정신에서 범법자까지 동참시켜 선량한 백성으로 융화시키려는 것이었지,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범죄자를 보호하자는 제도는 아니었다. 현대국가는 삼심제를 포함,각종 인권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가 언제까지 국사를 팽개친 채 임시국회를 열어 범법자를 보호하고법률을 악용하는 전당이 되려는가.국민은 국회의 행태를 주시한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4회)

    ◆종교계 '민주운동 거목' 박형규 목사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의 실천운동을 벌이면서 숱한 옥고를 치렀던 朴炯圭목사(76).유신체제 아래서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로 꼽히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재야 원로다. 박목사는도시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운동으로부터 시작해 남산 야외음악당사건과 민청학련 사건,그리고 교회탄압에 맞선 노상예배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주역으로 92년 은퇴때까지 가시밭길을 걸었던 종교인.유신체제 하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인한 탄압과 압박은 5·6공 군사정권까지 계속돼 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종교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박목사가 세인들의 관심대상이 된 것은 73년 남산야외음악당 사건.이로부터 시작된 민청학련 사건과 이와 관련한 그의 금서(禁書) ‘해방의 길목에서’(74년 사상사刊)에는 잊지못할 사연이 담겨 있다. 남산 야외음악당사건은 서슬퍼런 유신체제에 대해 공식 항거한 첫 집단운동.10월 유신이 시작된지 6개월만인 73년 4월22일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당시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목사는각 교단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빈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20개 교단의 연합예배가 열리던 이날 행사장에는 10만명이 운집했다.언론자유와 학원자유 교회갱신 등을 주장한 플래카드와 전단을 마련,행사 당일 알리려는 사전 준비가 돼 있었다.행사장 주변에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 전단과 플래카드를 준비한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정작 행사장 근처엔 접근도 못한 채 전단과 플래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두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날 행사에 참가하려다 불발에 그친 한 주민이 장롱속에 감추어 두었던 플래카드가 보안사 출신 이웃에게 알려지면서 불거졌다.집요한추궁끝에 박목사가 행사를 주동했음이 밝혀졌다.박목사는 7월부터 9월까지재판이 진행된 뒤 내란예비죄로 7년을 구형받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선고 이틀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내가 주도하는 활동중 도시빈민선교에 당국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요.보건소 이용이나 오물처리에 대한 혜택 등 실질적인 문제에서 철저하게 소외된도시빈민들이 스스로 항의하고 요구하도록 만드는 것에 치중했는데 좌경용공으로 몰렸습니다.정치적 자유없이는 이웃사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빈민선교와 정치적 투쟁을 병행한 것인데 결국 철퇴를 맞은 것입니다” 남산 야외음악당사건이 이렇게 끝나자 맨 먼저 찾아온 사람들은 학생들과대학교수 등 지식인층이었다.그들은 서슬퍼런 상황에서 박목사가 보석으로풀려나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이때부터 민청학련이 시작된다.당시 민청학련 10인위원회에는 박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서울제일교회 대학생부 학생들이 소속돼 있었다.74년 정초에 세배하러 온 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알렸다.그리고 자금주선을 요구했다.박목사가 尹潽善 전대통령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尹 전대통령도 선뜻 응했다.그러나 민청학련은 결국 발각돼 모두 묶여 들어갔고 박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사정권은 이 사건을 북한의 지령을 받고 한 것으로 몰아갔고 여기서 박목사는 대통령긴급조치4호 위반,국가내란음모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해방의 길목’은 박목사 재판이 진행되던 때 전국기독학생총연합회 간사였던 서울대학생인 아들 박종렬목사(현 전국기독학생회총연맹 총무)와 부인,종교계 인사들이 박목사의 좌경성을 부인하기 위한 증명차원에서 펴낸 책이다.68년부터 70년까지 박목사가 기독교잡지 ‘기독교사상’의 주간으로 일하던 때 쓴 권두언과 설교들을 묶은 것이다.박목사는 감옥에 있을 때였다. 책이 나온 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출판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책은 처음에 1,000부를 발간했으나 매진되자 다시 2,000부를 찍었다.그러나 이듬해 5월 마침내 ‘금서’로 묶였다.이책은 모두 압수당하고 지금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당시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습니다.서슴없이 유신비판을 하고 나선데 대한 제재였지요.그때는 박형규 일당만 제거하면 기독교계는 문제없다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까요” 5공에 들어서는 박목사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박목사가 제일교회에서 목회활동을 못하게 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그래서 ‘노상예배’가 시작된다.보안사의 사주를 받은 조직폭력배들이 교회건물 방에서 합숙하면서 직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결국 84년 추석 전날 감금당하고 다음날까지 경찰들이 포위한 가운데 깡패와 반대파 교인들이 ‘박형규는 항복하라’며 수도 전기 전화선을 끊어버린사건이 일어났다.그해 12월9일부터 노상예배의 험로가 시작돼 90년 12월9일까지 6년동안 계속됐다.매주 치안본부장에게 전화를 걸고 중부경찰서 앞에서 예배를 지속했다.이 노상예배는 일종의 ‘순례지’가 됐으며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참석해 설교를하기도 했다. 그는 유신정권과 5·6공은 물론,문민정부에 들어서도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여권 발급을 자유롭게 못받아 필요할 때마다 정부에서 내주는 단수여권을 써야만 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1년짜리 복수여권만 받을 정도였지요.95년 사면된 뒤에야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박목사는 92년 8월 서울제일교회에서 은퇴,험하고 험한 현역 목회자 생활을마감했다. 글 金聖昊 kimus@
  • 정직한 역사되찾기-친일의 군상(20회)

    ■친일 고문경찰 盧德述 지난 8월 정부기록보존소가 건국 50주년을 맞아 공개한 ‘이승만관계 문서 철’(1949년 1월분) 가운데는 이런 내용의 기록이 있다. ‘반민특위(反民特委)의 무분별한 난동은 치안과 민심에 중대한 영향을 주 는 터이므로 헌법 범위 내에서 단호한 대책을 강구하신다는 유시(諭示)에 대 하여 법무장관은 노덕술을 반민특위 조사관 2명이 반민특위 사무실내 금고에 2일간 수감하였다는 보고가 유(有)하고 대통령 각하는 차(此) 불법 조사관 2명과 그 지휘자를 체포하여 의법처리하며 계속 감시하라 지령하시다’(‘시 정 일반에 관한 유시의 건’중에서) 위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49년 2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일제때 고등계 형 사 출신이자 수도청(서울시경 전신) 수사과장을 지낸 노덕술을 체포한 반민 특위 조사관들을 체포,감시하라고 지시한 내용이다.그동안 이 대통령이 반민 특위의 활동을 못마땅해 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을 체포한 반민특위 조사관과 그 지휘관을 체포하라고 직접지시한 사실은 처음 밝혀진 내용이다.즉 이 대 통령이 친일파를 비호했다는 주장이 문서로 공식 확인된 셈이다.전 국민이 친일파 처단을 부르짖던 그 시절,대통령까지 나서 비호한 노덕술은 대체 어 떤 인물인가? ▲제1사단 헌병대장 시절의 노덕술(당시 계급은 소령임) 盧德述(1899∼?·창씨명 松浦鴻)은 일제때 대표적인 친일경찰 가운데 한 사 람이다.해방무렵 그는 조선인으로서는 불과 수 명에 불과한 경시(警視·현 총경계급에 해당)까지 승진한 극소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특히 그는 일제하 27년간 사상관계 사건,즉 독립운동 관련 사건만 취급한 고등경찰 출 신으로 일제로부터 훈7등 종6위의 훈장까지 받았다.그의 친일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다. 1949년 1월 9일 화신백화점 사장 朴興植에 대한 검거를 시작으로 반민족행 위자 검거에 돌입한 반민특위는 보름만인 1월 25일 새벽 2시경 마침내 노덕 술을 검거하였다.그를 체포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반민특위는 1월초 부터 ‘노덕술 체포대’를 편성,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좀처럼그의 은신 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유는 간단했다.경찰이 그의 신변을 보호해주면서 비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중 특위는 노덕술이 그의 애첩 金花玉의 집(관훈동 29번지)을 들락거 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을 급습,그의 은신처를 알아냈다.체포대는 곧바 로 그가 은신해 있던 李斗喆(당시 동화백화점 사장)의 집(효창동 소재)을 덮 쳐 그를 체포하였다.체포 당시 노덕술은 권총 여섯 자루와 도피자금 34만 1 천원이 든 가방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체포후 서울형무소에 수감중이던 그는 3월 30일 특별검찰부 徐成達 검찰관에 의해 정식 기소돼 재판에 회부됐다. 이로써 친일경찰에 대한 단죄가 시작된 것이다. 노덕술은 경남 울산출생으로 울산보통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일본인이 경영 하던 잡화상의 고용인 노릇을 하기도 했다.1920년 경남 순사교습소를 졸업한 후 경남 경찰부 보안과 근무를 시작으로 친일경찰의 길에 들어섰다.20년대 에 그는 주로 경남지방의 여러 경찰서에 근무하였는데 당시 그의 직책은 사 법경찰이었다.그러나 그는 고등계 경찰의 소관업무인 사상사건(독립운동 관 련사건)을 자발적으로 취급하면서 일제에 충성을 과시하였다. 1929년 金圭直이 회장으로 있던 비밀결사조직 ‘혁조회(革潮會)’를 탄압, 김규직 외 1명을 사망케 하고 그 관계자들을 2∼3년간 복역케 하였으며 동래 경찰서 사법주임 시절에는 ‘동래고보 맹휴(盟休)사건’에 관련된 학생들의 사찰과 검거에 앞장선 것으로 밝혀졌다.또 1929·30년 여름 조선인 일본유학 생들이 하계휴가를 이용,귀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자 이들이 일본정치를 비 난했다는 구실을 들어 강연자 수 명을 검거,취조하였다. 1932년 통영경찰서 사법주임 시절에는 반일단체인 M·L당(黨) 조직원 金載 學이 메이데이 시위행렬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직접 검거하여 혹독한 고문 끝에 송국(送局),벌금형을 받게 하였다.이같은 공로로 그는 1934년 평 남 보안과장으로 승진,출세가도를 달렸다.일제말기인 1944년 평남 경찰부 보 안과장 재직시에는 화물자동차 다수를 직권으로 징발하여 군수품 수송에 제 공케 하는 등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에 협력한사실도 있다.조선인이라는 신 분과 빈약한 학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위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일제 에 대한 그의 남다른 충성심 때문이었다. 한편 반민특위가 그를 체포할 당시 그의 죄목은 ‘반민법 위반’ 하나만이 아니었다.그는 이미 ‘수도청 고문치사사건’의 피의자였으며 체포후에는 다 시 ‘반민특위요원 암살음모사건’ 피의자 죄목이 추가되었다.소위 ‘수도청 고문치사사건’은 張澤相 저격용의자 林和가 수사도중 사망하자 경찰은 임 화가 조사도중 도망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경무부 수사국장 趙炳^^이 담당경찰관을 조사한 결과 고 문치사로 밝혀졌고 그 배후에는 노덕술과 崔雲霞 두 사람이 있었다.그러나 당시에는 장택상이 수도청장으로 있으면서 노덕술 일파를 비호하고 있어 수 사를 못하고 있다가 48년 9월 金泰善이 새 수도청장으로 부임하면서 노덕술 에 대한 체포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김태선 역시 “당시 공산당 타도에 공이 많은 선배를 경찰의 손으로 체포할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어서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경찰관 4명을 그의 궁정동 자택에 파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국립경찰 창설’ 51회, 중앙일보·74.12.11) 한편 노덕술이 반민특위에 검거된 직후 극우 테러리스트 白民泰(일명 鄭民 泰로 해방전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는 주장도 있음)가 놀랄만한 사실 하 나를 폭로하였다.구속된 노덕술이 주동이 돼 서울시 경찰국 수사과장 崔蘭洙 ·부과장 洪宅喜 등이 자신에게 반민특위의 중견요원인 盧鎰煥·李文源 등 간부 7∼8명에 대한 암살을 부탁했다는 것.노덕술 등은 백민태에게 이들을 시외 모처로 납치해 강제로 ‘우리는 이남에서 살 수 없으니 이북으로 가겠 다’는 내용의 유서를 받은 후 암살해버리면 뒷처리는 경찰이 알아서 하겠다 고 했다는 것이다. 특위요원들에 대한 암살음모가 공개되면서 특위와 친일경찰 진영은 극한대 립으로 치달았다.당시 친일경찰 세력을 정권의 한 축으로 삼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노덕술의 석방을 요청하지만 반민특위는 이를 묵살하였다.49년 6월 6일 발생한 친일경찰들의 반민특위습격사건(소위 ‘6·6사건’)은 이때부터예견된 사건이었다. 노덕술을 비롯해 이 사건 관련자 4명은 검찰에 구속돼 재판에 회부됐다.49 년 5월 29일 열린 제7차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수사의 권위자로 많은 공로 가 있으나 증거가 충분한 만큼 만행을 묵과할 수 없다”고 하여 각각 징역 4 년을 구형받았다.그러나 반민특위 습격사건 후 특위가 무력해진 가운데 열린 선고공판에서 노덕술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인정받았고 최난수·홍택희 등은 각각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노덕술은 당장 석방되지는 않았다.‘반민법위반’ 사건처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이 역시 그리 오래 끌지 않았다.반민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8월 31일로 단축돼 반민특위는 껍데기만 남은 형국이었다.반민피 의자로 기소된 자 가운데 극소수만 재판을 받았으며 이들도 대부분 공민권 정지나 집행유예·병보석 등으로 풀려났다.또 실형선고를 받은 자들도 재심 청구를 통해 대부분 석방되었다.김태선의 증언에 의하면,노덕술 역시 병보석 으로 출감돼(일자 미상)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반민특위가 해체되면 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헌병사’에 따르면 그는 9·28수복 당시 제1사단 헌병대장(소령)을 지냈다.이후 부산CID(육군범죄수사단)와 서울 15CID 대장을 역임한 그는 金 昌龍 특무대장이 모종의 비리사건 관련자로 그를 구속시키면서 역사의 무대 에서 사라지고 말았다.경찰청 조회결과 그의 생사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흔적도 없이 사라질 한 생애를 그는 악행(惡行)만 쌓다가 간 것이다.
  • 책속으로 떠나는 겨울여행/간행물윤리위 권장도서 40종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겨울방학을 맞아 청소년에게 권하는 좋은 책 40종을 최근 발표했다. 간윤은 추천도서를 초·중·고·대학생 등으로 독서능력에 따라 분류했다.(책이름,지은이·엮은이,출판사 순) ●초등학생 ○하늘 끝 마을(조성자,대원사) ○흰머리산 하늘연못(김향이·김혜숙,두산동아) ○개미 꼬비(권영상,문원) ○EQ동시(권영세 등,문공사) ○새 먼나라 이웃나라(6권,이원복,김영사) ○말하는 백과사전 시루스 박사(12권,크리스티안 뒤셴 등,비룡소) ○별을 찾아 떠난 여행(엔리케 바리오스,시인과촌장) ○아이벡스가 되고 싶은 샤무아(리아 카리니 알리만디,서광사) ●중학생 ○산천을 닮은 사람들(고은 등,효형출판) ○조선 대장부 이순신(박선식,규장각) ○서울 근현대 역사기행(정재성 등,혜안) ○세계사 신문 1(편찬위,사계절)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삼성문화재단,학고재) ○아인슈타인도 몰랐던 과학이야기(로버트 월크,해냄) ●중·고생 ○강의실 밖 고전여행(이강엽,평민사) ○오이디푸스의 결혼(미셸 코스타 마냐,끌리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채우는 불경이야기(감장호,문화사랑) ○인간과 기술(O 슈펭글러,서광사) ○쾌락(에피쿠로스,문학과지성사) ○CD­ROM과 함께 가는 별자리여행(곽영직 등,사이언스북스) ○프로야구 왜? 나무방망이 쓰나(진정일,동아일보사)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들(로버트 리드,김영사) ○금강산(유홍준,학고재) ○한권으로 보는 한국미술사 101 장면(임두빈,가람기획) ○지리산골에서 세계의 바다에서(박춘호,문학사상사) ○더불어숲(2권,신영복,중앙M&B) ●고고생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최하림,문학과지성사) ○세계를 움직인 열두명의 여성(조기숙,여성신문사) ○대한민국건국사(양동안,이승만 박사기념사업회) ○IMF 고통인가 축복인가(정창영,문이당) ○꿈의 신기술을 찾아서(허창욱,양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과학노트(A 리히터,서해문집) ○나의 아버지 박지원(박종채,돌베개) ●대학생 ○한국에 제2의 위기가 오고 있다(스티브 마틴,사회평론) ○혁신유통의 벤치마킹(조연상 등,동인)
  • 카멜레온과 하이에나/강준만 지음(화제의 책)

    ◎변신 거듭해온 언론 해부 권력의 탄압으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거듭해야 했던 ‘카멜레온 언론’,떠오르는 권력은 추켜세우고 쓰러지는 권력은 짓밟는 ‘하이에나 언론’.이는 100년 이상 계속되온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다. 부정기간행물 ‘인물과 사상’을 창간해 우리 사회의 금기와 성역에 도전해온 저자가 한국언론 115년사를 정리했다.저자는 “우리나라에서의 언론사 연구는 학술적 객관성을 강조한 나머지 탈정치화로 흘러 언론개혁이라는 현실적 목표는 배제돼 왔다”며 “언론사 연구도 미시적 실증주의에 근거한 기초 언론사 연구와 언론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응용언론사 연구로 대별해 이 두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인물과 사상사/1만원
  • 지난 삶에 대한 고해성사/병석의 具常시인 신작‘인류의 盲點에서’

    ◎‘… 이승을 떠난… 아내처럼… 다시 만나 더불어/영원을 누릴 것을 굳게 믿어…’ 진득하게 한 길을 걸어온 대가의 역작은 아름답다.교묘한 말의 치장보다는 진실을 담은 시를 줄곧 써온 ‘문단의 어른’구상시인이 신작시집 ‘인류의 맹점(盲點)에서’(문학사상사)를 상재했다. 모진 세파가 한결같이 맑은 그의 시심을 시샘했을까.시인은 시집이 나오기 전 뜻밖의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다.몸은 병마와 싸우고 마음은 시집을 통해 파렴치한 세상과 겨루고 있다.부지런함이 시인의 삶이었듯 여든을 바라보는 세월인데도 쉴 틈이 없다. 92∼93년에 걸쳐 문학사상에 연재한 ‘관수재시초’36편과 최근작 37편을 묶은 이번 작품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성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겉치레로 시를 쓰며 한 평생 자신을 속여왔다는 한탄마저 서슴지 않는다. 한 걸음 나아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노시인의 예감을 투영한 듯 군데군데 세상이라는 군더더기를 버리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인생의 노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고 차분하다.시인에게 죽음은 “영원에의 통로요,회귀요,/또 하나 새 삶의 시작일 뿐”이기에 그 이미지는 어머니의 부름처럼 정겨운 것이다. 저만치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초월한 시적 경지는 현세를 넘는 우주적 연민으로 나타난다.“…이 민들레와의/순수한 만남은 결코 끝난 게 아니라/마치 이승을 떠난 어버이나 아내처럼… 다시 만나 더불어 /영원을 누릴것을 굳게 믿고 바란다”는 심정 피력이나 30년전 주워온 검정 바윗돌과 나누는 궁극적 완성에 대한 교감은 범신론적 인식마저 느끼게 한다.장독대나 고목(枯木)둥치서 시인이 평생 의지해온 ‘그 분’을 찾는 모습은 가톨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모든 사물에게서 존재의 숨결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도도한 경지는 “늙음과 병약과 무사를 핑계로 삼아 태만과 안일과 허위에 차 있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존재론적 탐색이 빚은 열매다.항상 주위에서 과실을 따먹기만 해온 남들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때를 내보이면서 더 남루한 사람들의 때를 씻어주려고 애써 온 큰 걸음의 자취다. 세상살이와 시가 하나가 되기 어려운 시대에 시인의 잠언은 보기드문 진실로 다가온다.그 노래는 아파트의 콘크리트 숲에서도 인정을 꽃피우고,뿌리의 숨은 인고(忍苦)를 찬양하고,하나의 낱말에서 소우주(小宇宙)세운다. 순백의 동심으로 일관해온 시심의 고갱이는 강요하지 않아도 감동으로 다가온다.하루빨리 병상에서 박차고 일어나 ‘황금 송아지’의 노예가 된 ‘맹점(盲點)의 인류’에 다시 한번 자성의 빛을 던져주었면 하는게 그를 아는모든 이의 바람이 아닐까.그는 아직 할 일이 많은 ‘문단의 어른’이다.
  • 高大 김화영 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 재출간

    ◎시인으로 거듭 난 카뮈/문학 상상력으로 작품세계 고찰/‘이방인’ 분석통해 낭만성 재발견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문학 상상력이라는 방법론에 입각해 고찰한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과)의 저서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가 (주)문학동네에서 나왔다.김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지난 82년 문학사상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한동안 절판됐다가 이번에 새롭게 고쳐 재출간된 것이다.‘카뮈를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문학 상상력 연구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은 역작이다.이 책은 단순한 개별 작가론에 그치지 않는다.무엇보다 문학 상상력 이론과 미학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카뮈의 작품세계에 접근하는 김교수의 방법론은 색다른 데가 있다.그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원용한다.그 이론을 토대로 금세기의 대표적인 고전주의 작가로 인정받는 카뮈에게서 온갖 색깔의 상상력을 지닌 낭만적인 ‘시인(詩人) 카뮈’를 발견해낸다.카뮈는 실존주의 철학의 지주이자 장식없는 문체의 소유자였다.이 책은 그러한 카뮈에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적 세계가 숨겨져 있음을 그의 문제작 ‘이방인’에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문학 상상력이란 무엇인가.그것은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와 질베르 뒤랑에 의해 그 이론적 골격이 완성되고 롤랑 바르트와 장 피에르 리샤르가 미슐레·말라르메 등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가능성의 문을 연 문학연구의 한분야다.문학 상상력은 정적이거나 형태적인 상상력이 아니다.그것은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이다.그 상상력은 작품이라는 총체적 세계를 매개로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마주쳐 울림으로써 깊이를 획득한다.문학 상상력 연구는 흔히 주제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상상력의 혼융에 의해 작품의 주제로 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카뮈의 모든 글을 하나의 닫혀진 총체로서 바라보며 그 중심적 주제를 찾아내는 데 몰두한다.그 작업의 중심동력이 되는 것은 이미지다.카뮈의작품을 분석해 추출된 주제는 동적 이미지로 확대된다.이렇게 확장된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모든 문단을 모으고 그것을 포갠 뒤 그 이미지의 의미상을 밝혀내는 게 김교수의 문학 상상력 연구론의 핵심이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김교수의 카뮈론과 관련,“카뮈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주제는 태양과 바다이다.태양과 바다를 원초적 질료로 확대해 빛과 물로 확산시킨 뒤,그것을 포함한 모든 문단을 포개본 결과,그 이전의 연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돌의 주제가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 돌이야말로 카뮈 상상력의 중심이다.요컨대 김교수는 물과 빛과 돌의 이미지를 분석,카뮈의 문학적 상상력을 설명함으로써 카뮈를 소설가의 자리에서 시인으로 다시금 태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무자격 운전기사시켜 세정제 만들다 폭발/부산 세기유화 대표 영장

    【부산=이기철 기자】 부산시 사하구 장림 2동 (주)세기유화 폭발사고를 수사중인 사하경찰서는 4일 (주)세기유화 대표 박춘식씨(43)와 운전기사 허문용씨(46) 등 2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표 박씨는 3일 하오 6시 2분쯤 공장안에서 위험물 취급자격이 없는 허씨를 시켜 섬유세정제를 만들다 화공약품 혼합용 반응로가 폭발,공장 2층에 있는 우성화학 연구실 천성진 과장(35)이 숨지는 등 41명의 사상사를 낸 혐의다. 한편 이날 폭발사고 직후 실종됐던 우성화학 연구실 천성진 과장(35)이 4일 상오 11시 10분쯤 사고 현장에서 숨진채로 발견됐다.
  • 인간의 무의식 해부/‘프로이트전집’ 완간

    칼 마르크스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사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19세기 말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심리치료방법인 정신분석을 처음 도입,20세기 현대사상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그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이트 전집’(전20권)이 완간됐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이 지난 96년 정신분석학 정립 100주년을 기념해 펴내기 시작한 프로이트 전집이 최근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을 끝으로 2년만에 마무리 된 것. 독일 피셔 출판사의 프로이트 전집과 지금까지 나온 프로이트 전집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스트라치편집의 ‘표준판 프로이트 전집’을 저본으로 했다. 이성을 강조한 서구의 합리주의 정신은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꿈의 영역혹은 무의식의 영역을 오랫동안 무시해 왔다. 특히 지적 쇼비니즘이 강한 프랑스의 경우,정신분석 이론의 도입과정은 ‘100년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데올로기의 퇴조현상과 맞물려 사회적 환경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개인의 심리나 그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번에 완간된 프로이트 전집은 정신분석에 관한현대의 이론보다는 그 근원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원텍스트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주목된다. 이번 ‘프로이트 전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꿈의 해석’‘정신분석강의’‘히스테리 연구’ 등의 논문과 ‘늑대인간’이나 ‘꼬마 한스와 도라’같은 증례모음집,당대의 세계정세에 관한 견해를 밝힌 에세이 등이 실렸다. 한편 이 전집을 통해 독자들은 탁월한 산문가로서의 프로이트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사실 그의 저서 하나하나는 곧바로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한 예로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은 일종의 문학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문학비평가 해롤드 블룸은 그의 저서 ‘서구의 정전’에서 “프로이트는 작가이고 정신분석은 문학이다”라고 했다. 나아가 블룸은 프로이트를 괴테,셰익스피어,호머,단테,조이스 등과 함께 후세에 길이 남을 28명의 문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 20세기 사상계 거목 영 이사야 벌린 타계

    【런던 AP 연합】 이사야 벌린경의 타계로 20세기 사상계의 한 거목이 사라졌다. 지난 5일 밤 옥스퍼드대 애클랜드 병원에서 88세를 일기로 작고한 철학자 겸 정치사상가인 벌린경은 정치사상사와 자유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금세기 최고의 석학중 한명이다. 1909년 6월 6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를 따라 1919년 영국으로 이주,옥스퍼드대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60여년간 미국·영국 등에서 강사,교수,단과대학장 등으로 일한 벌린은 에라스무스,리핀코트,아그넬리 상을 받았고 평생 시민자유를 옹호한 공로로 예루살렘상도 수상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카를 마르크스에 관한 책(1939)을 비롯해 에세이집 ‘고슴도치와 여우’(1953년),‘1940년의 처칠’(1964년) 등이 있다. 그의 미망인은 한때 프랑스 골프 챔피언이었던 알린 드 귄즈부르.그들은 56년에 결혼했다.
  • 다도인 채원화(이세기의 인물탐구:150)

    ◎예절과 정성을 달이는 ‘다도연출가’/중·고등학교땐 법관 지망생으로/대학서 ‘공의 철학’인연 불교 입문/42세 연상 효당 스님을 스승·부군으로/결혼후 특봉과정서 ‘다선삼매’ 터득/‘반야로’ 개원하며 전통다도계승자로 ‘반야로’란 ‘지혜’의 ‘반야’와 ‘이슬’의 ‘로’와 함께 차한모금이 한방울의 지혜란 뜻이리라. 한방울 한방울 마시는동안 지혜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초입에 위치한 반야로차도문화원에 들어서면 ‘다도무문’의 서필아래서 승복차림의 원화가 단정하게 정좌하여 차를 거른다. 채정복은 속명이고 주변에서는 그를 ‘원화보살’로 칭한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노동의 ‘칠완다가’에 비친것처럼 원화의 차도는 ‘근육의 뼈가 맑아지고 선령에 통하는 경지’로서 학업을 무르익게 수행한 사람만의 유창한 언변에는 감성과 지성이 넘쳐난다. 그의 인생의 길은 타고 태어난 운명이라기보다 스스로 파란만장을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에게 지기싫어하는 정의감과 옳은것을 위해끝까지 투쟁하려는 앙분과 시시한 것을 외면하는 호불호가 선명하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중고교시절에는 진주시내가 자랑하는 모범생이었고 장래 서울대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이 된다는 대망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진주사범출신인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죄와 벌’이며 ‘전쟁과 평화’ 등 문학서적을 탐독하는 동안 ‘사람은 왜 사는가’‘이세상은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도 결국 죽게된다’는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고교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주변의 친구들이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나만이 홀로 소도시에 쳐진다는 자책감으로인해 염세주의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다. 공부하기가 싫어져서 1년동안 휴학하다가 뒤늦게 연세대 사학과에 진학, 우연히 ‘공’의 철학과 마주친것이 불교에 입문하게된 동기다. 졸업논문 제목은 ‘원효성사의 사회사상사적 소고찰’로 이에대한 자료수집차 처음에는 송광사에 드나들었고 원효불단을 선포한 효당 최범술스님의 명성을 듣고 경남 사천에 있는다솔사로 찾아갔다. 스승과의 첫대면은 ‘거대한 산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으며 박학다식에서 우러나온 고명의 인품에서 그는 ‘그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느꼈다’고 했다. 효당은 ‘원효성사 교학의 복원’에 앞장선 청정한 종교인에다 ‘한국의 차생활사’ ‘한국의 다도’ 등 차전문 저서를 펴낸바 있다. 스승을 만난것은 69년이었고 다음해 대학졸업과 함께 다솔사로 거처를 옮겨 스승과의 평생의 연을 맺게 되었다. 효당과의 사이에 자녀는 남매. ○승복차림 ‘원화보살’로 그는 하맣터면 판사가 될뻔도 했고 대학에 와서는 한태동 교수의 권유로 일본에 유학후 모교의 교수가 될뻔도 했다. 그러나 효당과의 숙세의 인연이 있어 42세 연상의 효당을 스승겸 부군으로 극진히 시봉하는 과정에서 차달이는 법과 철병속의 솔바람소리를 들을수 있게 되었다. 북송 휘종의 ‘대관다론’에서 보듯 ‘차는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고 맑고 아늑한 기운을 준다’는 다선삼매의 터득이었다. ○송광사서 효당과 대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으며젊음의 열기와 객기를 바로 잡아준다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한몫을 하게된다”고 다시한번 권유한 것이 77년에 창설한 ‘한국차도회’다. 다동호인은 다회를 통해 다화를 나누면서 다도의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모임을 이끌어 갔다. 쓰고(고) 떫고(삽) 시고(산) 짜고(염) 단(감) 모든 맛을 지닌 차는 ‘인간성의 평등과 인간생활에서의 중정의 대도를 실천하는 것’이며 ‘광대무변한 대자대비로서 만인간이 향유해야할 무사심의 대화’일 것이다. 산사에서의 만 9년간은 세속을 벗어난 선경의 세월이었으나 효당이 지병으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말할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다솔사를 떠나 거처를 서울로 옮길수 밖에 없었다. 종교적으로 격렬한 분쟁에 휘말린 복잡한 사건때문이지만 “이는 책한권으로도 쉽게 밝힐수 없는 만단의 사연이 깃들어있다”고만 전한다. 서울에 온지 1년만에 효당은 76세를 일기로 79년에 입적,‘원화보살’의 나이 아직 30대 중반에 미치지 못했으나 ‘하늘같고 태산같은’ 효당이 남겨준 차도회를 잇기로 하고 홀연히 차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83년 ‘반야로 모임’ 결성 그는 해마다 4월과 5월사이 지리산으로 달려가 차밭에서 새순을 채취하여 직접 제차에 들어간다. 이른 새벽 이슬을 먹음었을때의 생잎을 가마솥에 찌고 꺼내어 비비다가 다시 구수하게 덖는 부초차에서 섭씨 100도의 끓는 물에다 차잎을 데쳐가며 물기를 빼고 덖고 띄우고 증하는 정제증차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까다로운 전과정을 그는 손수작업으로 이끌어나간다. 색과 향이 뛰어난 이 명차는 효당본가에서만 전승되는 바로 ‘반야로’이다. 결곡하고 야무진 그는 효당의 제자요 부인이라는 자리에서 한치의 누가 되는 일은 한사코 마다하지 않는 단호함을 지닌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드나들던 차인들의 권유로 83년,‘반야로 차도모임’을 결성하고 문화원을 정식개원하여 현재는 해마다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도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일상속에 있으며’‘차는 오며가며 마시는것’이란 효당의 뜻을 받들면서 ‘이무소득의 경지, 즉 무슨 댓가나 찬양을 바라서가 아니라 사람노릇을 하지않고는 배길수 없는 세계’를 굳건히 이어갈 뿐이다. □연보 ▲1946년 경남 진주 출생 ▲1966년 진주여고 졸업 ▲1969년 연세대 사학과 3년재학시 경남사천군 곤명면 원효불교 다솔사입산,효당 최범술문하 입문 ▲1970년 연대졸업 ▲1970∼77년 다솔사체재 ▲1977년 한국차도회 발족(회장 효당 최범술스님),재무이사 ▲1979년 효당입적후 서울체재 ▲1983년 반야로 차도문화원개원(서울종로구 가회동 1­90),원장취임,반야로차도강좌 ▲1992년 연세대 대학원 졸업,논문 ‘초의 선사의 다선수항논’ ▲1993년 반야로차도문화원 안양지부개원 ▲1994년 ‘반야로’차명,특허청에 출원공고 결정 ▲1994년 반야로차도문화원 대구 경북지부 개원,‘전통차도 계승자’로 한양정도 6백년 기념사업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1995년 백두산에서 반야로 차제,사적지답사 및 효당부도참배,반야로차도문화원 제1회 수료식
  • 봉건제의 상상 세계/조르주 뒤비 지음(화제의 책)

    ◎중세시대 계급간의 갈등 폭넓게 다뤄 중세사가로는 보기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누린 프랑스의 역사가 조르주 뒤비(1919∼1996)가 처음으로 이데올로기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접근한 책.뒤비에게는 ‘언어의 조각가’‘문장의 화가’‘이야기의 건축가’‘과거 완료형의 작가’‘역사의 연출가’ 등의 숱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하지만 ‘거대한 종합’의 역사가로서 그는 무엇보다 역사학과 인접학문의 통합이라는 아날운동의 취지를 성실하게 구현한 인물로 주목받았다.이 책에서는 1020년경부터 1220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북부를 무대로 수많은 사상가·문필가들이 주역과 조역,단역을 서로 나누어 맡으며 지적·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위해 벌였던 투쟁을 다룬다.기도하는 자(성직자),싸우는 자(귀족),일하는 자(제3신분)라는 공리로 표현되는 중세사회의 세 위계를 논의전개의 축으로 삼는다. 중세 사회에 대한 뒤비의 견해와 학설이 집약적으로 반영된 이 책은 영주와 농민 사이의 계급적 갈등은 물론 성·속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이나 성과 세대,문화에따른 갈등까지도 폭넓게 다뤄 중세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한 예로 서기 1천년을 전후한 거대한 변동,즉 봉건혁명과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되었다고 하는 이른바 ‘뒤비 테제’는 중세사를 성찰하고 기술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이 책은 ‘권력의 수사학’이 중심소재를 이루고 있지만 단순히 중세 지식인들의 집단전기나 정치사상사를 다룬 것은 아니다.그보다는 사회적 불평등과 계서제를 정당화하는 하나의 담론이 생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분석한 연구서로 읽힌다.성백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만3천원.
  • 이탈리아서 한국문학통사 발간/나폴리 동양학대 리오토 교수

    ◎고대가요서 향가·현대문학까지 망라/자료수집만 5년… 유럽내 최초 단행본 한 이탈리아 학자가 우리 문학을 개괄적으로 다룬 한국문학 통사를 발간,한국문학을 이탈리아에 본격적으로 알릴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동양학대학 한국어·한국문학 교수인 마우리치오 리오토씨(39)가 그 주인공으로 한국문학 역사를 통관한 연구서 ‘STORIA DELLA LETTERATURA COREANA(한국문학통사)’를 최근 이탈리아에서 펴낸 것.통사가 유럽에서 단행본으로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출판사는 미술관련 서적을 주로 펴내 명성을 얻고 있는 이탈리아의 노베첸토사.한국의 대산문화재단 후원으로 출간됐다. “이탈리아에서 한국문학은 아직 낯선 ‘변경의 문학’에 불과합니다.그런 만큼 한국문학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사적 성격의 문학사 책은 더욱 필요하죠.이탈리아에 한국문학의 혼을 심어가는 파이어니어의 심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한명뿐인 한국어·한국문학 교수라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리오토씨는 이번 ‘STORIA…’의 출간으로 이탈리아에서의 한국문학 연구는 적잖은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책은 현재 나폴리대학의 한국문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또 외국어판도 곧 내 서구에서의 한국문학사 정전으로 삼는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 책은 ‘공무도하가’등 고대가요에서부터 향가,시조,90년대 현대문학에 이르는 한국 문학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한국문학 작품 중에서도 특히 향가는 “한민족 고유의 심성을 엿볼수 있는 매력있는 장르”라는게 리오토씨의 설명.그는 “향가설화문학의 고대사상사적 혹은 문학사적 배경 등을 파악하기 위한 이차문헌조차 거의 없어 집필에 어려움이 컸다”며 “자료수집에만 꼬박 5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유럽의 경우 한국문학은 프랑스의 파리 7대학,독일의 훔볼트 대학,체코의 찰스 대학 등에서 동아시아 문화강좌의 일부로서 실험적으로 개설되어 있는 것이 고작이다.그것도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이탈리아에서의 한국문학 연구 역시 걸음마 단계다.리오토씨는 “중국이나 일본의 문학연구가해외에서 거두어들이고 있는 성과에 비하면 한국문학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꼬집는다. 리오토씨는 한국문학의 이탈리아어 번역작업을 도맡아 왔다.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금시조’‘그해 겨울’‘시인’,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조정래의 ‘유형의 땅’,김승옥의 ‘무진기행’ 등은 그가 이탈리아에 번역 소개한 대표적인 작품들.지금은 우리의 고대소설인 ‘이춘풍전’과 ‘인현왕후전’을 이탈리아어로 옮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원래 이탈리아 로마 국립대에서 동양고고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은 고고학자다.지난 87년에는 서울 석촌동 백제고분 발굴작업에도 참여했다.한국문학 특히 한국 고대문학에 대한 그의 깊은 소양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사독학의 산물인 셈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관련,리오토씨는 문학작품의 외국어번역에만 신경 쓰는 것은 절름발이 세계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전통미술이나 민담,인형극 등 한국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다양한 분야의 번역작업이 병행되어야만 한국문학은 진정한 세계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한국문학의 세계화는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그럴때 비로소 한국문학도 노벨상 등 국제적인 문학상을 탈 수 있어요” 그는 이문열 서정주 고은 등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았다.부인의 나라인 한국에 잠시 들른 리오토씨는 이번 주초 고향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로 돌아갔다.
  •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 시집 ‘북한기행’

    ◎따뜻한 가슴으로 그린 ‘분단 현실’/고목밑에/녹슬은 철모하나/…패랭이꽃 한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남은 ‘풍요의 비극’ 북은 ‘빈곤의 비극’ 현실 통탄 〈…비애의 절정을 딛고 선 보릿고개는/해발 1만 미터 상공에서 /이지러진 속세의/비운을 탄식한다/고개 너머엔 무엇이 기다릴지/허망한 꿈을 안고/타박타박 무거운 발길이/허기진 세상/가파른 황톳길을 덮고 있었다〉(‘원산가는 길목에서 만난 보릿고개’중에서)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65)가 최근 북한의 모습을 한권의 시집 ‘북한기행’(문학사상사 펴냄)에 담아냈다.중국의 2백만 조선족 교포를 대표하는 그가 이번 시집 출간을 위해 서울에 왔다. 중국 55개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기관지 ‘민족문학’의 주필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억을 헤아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을 이끌어가는 ‘1급문인’.특히 이번 시집은 분단 52년만에 처음으로 북한의 안타까운 현실을 서정적인 시어로 고발한 ‘기행시집’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모두 4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에서 김씨는 분단현실이 낳은 북한의 참혹한 정황과 정경을 이데올로기를 넘어 따뜻한 시인의 가슴으로 그린다.시인은 남한에는 ‘풍요와 포만의 비극’이,북한에는 ‘빈곤과 굶주림의 비극’이 휩쓸고 있는 현실을 통탄한다.그리고 ‘죽음 아니면 통일’을 목청껏 외친다.〈…가슴에도 걸려 있는 가시철망을 거두어/용광로에 처넣어 쟁기를 만들고/가벼운 저 구름 하­얀 넋이 되어/남과 북 훨훨 거침없이 날아봤으면…〉(‘녹슨 철보망 앞에서’)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의 한은 상감령 마루 전투에서 산화한 병사의 영혼에도 어김없이 깃들여 있다.〈포탄에 허리 잘린/고목 밑에/녹슬은 철모 하나/뚫어진 탄구멍을 비집고/패랭이꽃 한 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휴전선 상감령 마루에서’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죽은 병사의 소망과 그리움이 마침내 풀꽃이 되어 통일의 넋으로 피어있음을 시인은 절절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김씨는 조선족으로는 드물게 우리말을 아름답게 구사하고,민족전통의 원형을 살려내 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원로시인 구상씨는 그를 탁월한 민족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그의 시편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심미적 정서의 표상인 ‘멋’과 ‘한’의 가락이 배어 있다.그는 긍·부정간의 이념적 당위성이나 선입견 없이 오직 사무사한 시심으로 노래한다”는게 구상시인의 말이다. 전남 곡성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부모를 따라 중국 길림으로 이주한 김씨는 57년 첫 시집 ‘변강의 마움’을 낸뒤 25권의 우리말 시집과 두권의 중국어 시집을 냈다.이번에 나온 ‘북한기행’은 88년과 89년에 각각 나온 장편서사시 ‘동틀 무렵’(동광출판사)과 ‘샛별전’(을유문화사)에 이어 한국에서 펴낸 세번째 작품집.중국의 ‘계관시인상’과 극소수의 문인에게만 주어지는 ‘국가특수공헌상’을 수상한 김시인은 지난 91년에는 한국문인협회가 수여하는 제2회 ‘한국해외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 ‘해외돈줄’ 조총련 붕괴 막기 안간힘

    ◎식량난·황장엽망명 영향 조직 동요/사상무장 강화운동 등 대대적 전개 북한은 그들의 돈줄이자 해외전위조직인 조총련 내부가 동요하면서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조직이탈자가 급증하자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이 조총련의 조직이탈과 내부동요를 막기 위해 최근 보이고 있는 움직임은 ▲조직강화 독려 ▲사상교육 강화 ▲김정일에 대한 충성운동 전개 ▲조총련 지도부에 대한 신임 표시 등이다.북한은 최근 일본 각지에 산재한 조총련 지부별로 30∼40대의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상공회를 조직·확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이와함께 조총련에 대해 실시중인 ‘동포방문 봉사·단합 3개월 운동’을 통해 조직기반을 한층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상교육과 관련해서는 ‘민족생활권 확대 4만명 조선청년 방문담화운동’을 통해 주체사상으로 무장토록 사상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청년학교,토요아동교실강좌,출판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또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김정일이 6월15일에 발표한 ‘주체성·민족성 고수’논문 관철 켐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김정일의 ‘충성스런 애국대오’가 되자고 독려하고 있다.이와함께 조총련 지도부에 대해 대대적인 신임을 표시하며 다독거리고 있다.김정일은 지난 7월8일 의장인 한덕수가 인솔하는 조총련의 김일성추모대표단을 면담했으며 이에 앞서 1월12일 한에게 김일성훈장을 수여했었다. 북한이 이처럼 조총련에 대해 조직강화 및 사상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은 식량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체제에 대한 회의와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는 가운데 당국제담당비서였던 황장엽의 한국 망명 영향으로 조직이 동요하고 이탈자가 갈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조총련 이탈 움직임은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다.하나는 조직탈퇴이고 다른 하나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반북단체의 결성이다.조총련출신인 일본 간사이(관서)대학의 이영화교수는 최근 일본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오사카 나라 교토 등에 거주하는 조총련동포중 올들어 5월까지 8백28명이 조총련을 탈퇴했다고 전했다.여기에 6,7월중 탈퇴자 2백53명을 더하면 올들어 1천81명이 조총련을 뛰쳐나온 셈이다. 반북단체로는 조총련 효고현 니시고베 상공회이사장을 역임했던 김정일씨(56) 등 조총련에서 나온 상공인 51명이 지난 7월12일 조직한 ‘민주무궁화회’가 있다.이 모임의 결성은 최근 조총련동포들의 반북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총련을 떠받치고 있는 상공인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은 갈수록 심상치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는 조총련의 동요를 막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고 있으나 조총련 중앙본부의 지침이 하부조직까지 잘 전파되지 않고 겉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북한 체제에 대한 불신감으로 상부의 이러한 지시에 반발하거나 거부감을 갖고 있는 회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북인 조총련은 현재 70만명에 육박하는 재일교포 사회에서 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친한인 민단을 압도했으나 이후 세력이 갈수록 약화되기 시작했다.특히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 88년과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조직이탈자가 급증하는추세를 보였으며 황장엽이 망명한 올들어 다시 크게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비평이 지켜야할 참다운 자리/조남현 서울대교수 비평선집 출간

    ◎20여년간 써온 대표적 평문 23편 엄선/90년대 우리문학의 나아갈 길 제시도 “창작의 위에도 밑에도 아닌 옆에 있는 비평,옆에 있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둔 비평,문자 그대로 연구하는 비평,작가나 작품의 본질적 국면을 외면하지 않는 비평이 바로 우리가 지켜나가야할 참다운 비평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문학평론가 조남현 교수(49·서울대 국문과)가 20여년동안 써온 평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엄선한 비평선집 ‘조남현 평론문학선’을 냈다.제7회 김환태 평론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이 책에는 지은이 특유의 비평철학과 문학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 조 교수는 이 선집을 통해 자신의 비평작업을 냉철하게 되돌아 본다.소아병적인 비평이나 뇌동비평에 빠져든 적은 없는가.주례비평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인 체하는’ 비평태도를 보인 글을 쓴 적은 없는가…. 그는 “계도비평,원론비평,거시비평에는 무능했거나 무관심했던 측면이 있지만 비평으로서의 독자성과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스스로를진단한다.이 책에는 지은이의 이같은 비평정신을 압축한 23편의 글이 실렸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1부에서는 현상학적 시론,순수·참여논쟁,문학사회학의 수용양상,우리 문학의 나아갈 길,근대비평의 자취 등을 다루며 2·3·4부에서는 50년대 이후 우리 문단의 흐름과 문학사적인 성과를 검토한다.우리 문학의 시대별 특성과 과제를 살핀 평문 ‘우리 문학이 나아갈 길’은 특히 현장비평가로서의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이는 글이다.조 교수는 이 글에서 70,80년대 한국문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90년대 우리문학의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70년대에는 문학의 상업화와 상업적인 문학이 문제가 되었지만 80년대에는 아예 상업이 문화가 되고 광고기술이 곧 예술로 대치되어 버리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불거졌다”는게 그의 견해.특히 80년대 키치(Kitsch)화,개그(Gag)화,비속화 등의 경향을 보인 작가들과 작품들은 고급문학,본격문학 등을 소외시킬뿐 아니라 고사시키려고까지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다.90년대 우리 문학의 지향점과 관련해 조 교수는 무엇보다 이데올로기를 보수­진보,좌­우의 이분법으로 좁게 파악하는 것을 경계한다.나아가 탈이념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문학은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것’이라는 명제에도 주목,이데올로기가 안고 있는 긍정적 속성을 적극적으로 살려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책 끝부분에는 ‘문학연구와 비평의 조화로움을 위해’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도 실려 눈길을 끈다.“대부분의 강단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문학연구와 비평의 조화라는 문제에 부심해온 편이다.그러나 두가지 일을 다 잘 해내기란 쉽지 않다.앞으로의 내 비평작업의 지향점 역시 그 둘의 조화로운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고 조 교수는 말한다.
  • ‘흘러간 명작’ 잇따라 재출간

    ◎‘금은탑’ ‘광화사’ 등 30∼80년대 화제작/‘분례기’ 발표 30년만에 단행본 선봬 박태원의 ‘금은탑’,방영웅의 ‘분례기’,이문구의 ‘관촌수필’,이제하의 ‘광화사’.이제는 ‘고전’이 되다시피한 1930∼80년대 화제의 장편소설들이 잇따라 새옷을 입고 재출간됐다. ‘금은탑’은 30년대 말 ‘우맹’이란 제목으로 당시 일간지에 연재됐던 작품으로 48년 ‘금은탑’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나왔다.도서출판 깊은샘은 신문연재본을 저본으로 48년판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해 정본 ‘금은탑’을 펴냈다.‘금은탑’은 1930년대 조선을 뒤흔들었던 유사종교 백백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당시의 사회상과 유사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추리적 기법으로 그린다.박태원은 이태준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1930년대 중반 이후 모더니즘 문학운동을 전개한 ‘구인회’의 대표적인 작가다. ‘분례기’는 67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됐던 농민소설.이번에 작가 자신의 대폭적인 수정을 거쳐 발표된지 30년만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선보였다.작가의 고향인 충남 예산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어머니 석서방댁이 화장실에서 낳았다고 해서 똥례라고 불리는 주인공 분례의 이야기다.작가는 이를 통해 농촌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남존여비사상,순결이데올로기,남성위주의 사회가 가하는 정신적 폭력을 고발한다.느리고 진한 충청도 내륙 사투리와 무지막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석서방댁의 태도,샛서방과 붙어 지내다시피 하는 노랑녀의 행태 등이 소설읽는 재미를 더해준다.“생명과 삶에 대한 본능적 긍정이 야만스러울 만큼 징그럽게 그려져 있다”는 평을 들었던 작품이다. 작가 이문구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관촌수필’은 그의 대명사와도 같은 작품.72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일락서산’으로 시작된 이 연작 장편소설은 77년 ‘월간중앙’에 발표한 ‘월곡후야’로 끝맺었고,그해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다.작가의 고향인 관촌을 무대로 한 이 소설에서는 고색창연한 이조인이었으나 자신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던 할아버지,사회운동에 투신하며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보게 했던 아버지,한 마당에서 자라며 자신을 여러모로 키워준 동네아이들 모두가 주인공이다.작가는 특유의 걸쭉한 입담과 해학적 어조,풍부한 전통어와 토속어로 자신의 체험적 이야기를 풀어낸다.이 소설은 이문구 전집을 내고있는 솔출판사에서 20년만에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분례기’와 ‘관촌수필’이 60년대와 70년대의 문제작이라면 ‘광화사’는 80년대의 화제작이다.87년 문학사상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낸 이 작품은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린 서울 인사동 화랑가를 배경으로 일탈과 광기로 가득찬 화가들의 삶을 해부한다.고용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강인하게 일어서는 한 여성의 초상을 통해 미술계의 복마전같은 인맥상을 사실적으로 그린다.이 작품은 문학동네에서 기획한 이제하 소설전집(전12권)의 첫째권으로 제목을 ‘열망’으로 바꿔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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