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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궐:7(서울 6백년 만상:44)

    ◎창경궁/1983년 옛이름 되찾아/창경원시절 73년간 서울시민의 쉼터/지금은 신랑신부들 야외촬영 명소로 서울나들이가 곧 창경원구경인 시절이 있었다.휴일이면 창경원주변은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미아가 속출했다. 창경원은 사시사철 시민들에게 항상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봄이면 각 신문들은 「창경원의 봄맞이」라는 큼직한 제목아래 「백향의 난초들 경염 한창」 「봄은 사랑의 계절­사랑속삭이는 동물가족」 「맹수들도 기지개」 「오는 ○○일 창경원 벚꽃 만개」등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기사를 내보내 시민들의 발길을 창경원으로 돌리게 했다. 여름이 되면 「동물가족 건강진단」 「동물들의 피서방법」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지면을 메웠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엔 「창경원에 새식구­새끼사자 남매탄생」등 숱한 화젯거리로 독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겨울에는 「동물가족 겨우살이준비 한창」 「맨션아파트가 부럽지 않다」등의 겨울나기 기사가 주종을 이루었다. 『시민들의 귀여움을 받는 코끼리·원숭이들은 요즘 주말이 괴롭다.창경원측이 이들을 주말나들이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야외우리로 내보내기 때문이다.원숭이들은 재롱피울 생각은 하지 않고 부둥켜안은 채 떨고 있고 코끼리는 내실로 통하는 문을 「쾅 쾅」 두드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기린 역시 관람객을 외면하고 몸을 떨며 내실쪽으로만 다가간다』(서울신문 76년11월20일자)며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창경원에 화제가 만발하던 시기는 지난 60년대.창경원 개원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입장한 것도 이 시기로 67년5월7일(일요일) 하룻동안 무려 25만명이 붐벼 6백30명의 미아가 발생했다. 창경원에는 그러나 훈훈한 이야깃거리만 있었던 게 아니다.56년11월13일엔 반달곰이 사육사를 물어 중태에 빠뜨리는 등 난동을 부려 긴급출동한 육군헌병에 의해 사살됐다. 서울시민들의 쉼터이던 창경원은 83년6월30일 73년8개월동안의 외도를 마감하고 다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이곳에 있던 동물들은 과천서울대공원으로,일제가 심은 벚나무 1천여그루는 남양주군 동구릉으로 각각 옮겨갔다. 86년8월23일 편전인 문정전을 복원중건한 창경궁은 이틀 뒤인 25일부터 일반에 공개했다.그 많던 전각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고궁의 한적한 멋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주인인 왕족들이 제도가 요구하는대로 자신들의 행복을 연출해냈듯이 한때 원숭이가 뛰어놀던 창경궁.그러나 이곳은 최근들어 신랑신부들이 옛날 왕과 왕비가 입던 의복을 갖추고 사진사들이 요구하는대로 포즈를 취해가며 행복을 연출하는 또다른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 장벽/김중태 지음(화제의 소설)

    ◎남북 병사통해 통일의지·동포애 부각 휴전선 철책 안에서 만난 남북 병사를 통해 통일에의 의지와 동포애를 부각시킨 소설. 철책안에서 작전중 낙오돼 길을 잃은 남한 병사가 남한 기습작전중 부상당한 북한 병사와 마주친다는 다소 생소한 배경에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처음엔 서로를 견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화를 나누게되고 남한 병사가 북한 병사를 부축해 귀환하다가 사살당하는 비극이다. 적대관계에서 우정 동포애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분단을 뛰어넘은 남북 젊은이들의 고뇌와 동족애,그리고 분단현실의 아픔을 부각시킨다. 일선출판사 6천원.
  • 비 회교반군 인질16명 사살

    【잠보앙가 AP 로이터 연합】 필리핀 회교반군이 8일 남부 바실란 섬에서 민간인인질 약 50명을 붙잡은후 이들중 적어도 16명을 사살했다고 필리핀 관리들이 밝혔다. 회교반군은 이날 아침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백50㎞ 떨어진 술루제도에 있는 바실란 섬에서 버스 1대,지프2대 등 민간인 차량 3대를 정차시킨 뒤 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민간인을 인질로 붙잡았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사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생존자 한명은 라디오 회견에서 무장한 회교반군 4명이 남자 인질을 정부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는 데 장애물로 판단해 사살해 버렸다고 말했다.
  • 팔 과격지도자 납치/이 특공대/가자 이군2명 살해/팔 테러단

    【예루살렘 AP AFP 연합】 이스라엘 군특공대원들이 21일 레바논 동부지역에서 활동중인 과격파 회교단체인 헤즈볼라(신의 당)의 지도자 1명을 납치했다고 이스라엘군의 한 대변인이 밝혔다. 대변인은 특공대원들이 이날 상오 2시(현지시간)쯤 두대의 헬리콥터를 타고 동부 레바논의 베카계곡에 위치한 회교도 지도자 무스타파 알 디라니(46)의 자택으로 침투,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를 납치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니코시아 AFP AP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자치가 개시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이 사살된 사건과 관련,팔레스타인측이 그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할 경우 자치는 종식될 수밖에 없다고 20일 일제히 경고했다.
  • 신팔균선생/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 이끌어(이달의 독립운동가)

    ◎충북 진천에 사립학교 세워 인재 양성/만주망명후 독립군 총지휘… 일 괴롭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이후 수많은 선열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항일투쟁을 벌여왔다. 동천 신팔균선생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조국광복의 제단에 바친 대표적인 애국선열로 손꼽히고 있다. 선생은 김좌진,홍범도,김동삼등과 함께 만주를 무대로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한 무장이다. 선생은 부친이 한성부판윤과 좌변포도대장등을,조부가 금위대장·삼도수군통제사·형조와 병조판서를 지낸 명문가출신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 서울 정동에서 출생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한 선생은 육군참위로 임관,강계 진위대에서 첫 근무를 했다. 선생은 1909년 대한제국군대가 해체되자 인재양성에 힘을 쏟기로 하고 충북 진천에 사립 보명학교(현 이월국교 자리)를 세웠다. 이와함께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을 갖고 80여명으로 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결성,항일무장독립운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데도 성공했다. 대동청년단은 국권회복을 위한 지하단체로 광복때까지 은밀한 활동을 벌였다. 이 단체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보안 때문이었다. 이들은 처음 단체를 출범하면서 단원이나 단명등에 관한 사항은 일절 문자로 표시하지 않으며 경찰등에 체포될 경우 다른 단원을 연루시키지 않는다는 「피의 서약」을 맺었다. 선생은 1910년 마침내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종지부를 찍고 일제통치가 시작되자 무장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선생은 일단 만주로 망명,독립운동 단체 중광단에 가입했으며 3·1운동에 앞서 만주 동삼성의 민족지도자 38인 가운데 1인으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선생은 이어 만주 서간도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경학사의 후신인 한주회 소속 독립군단 서로군정서에 가입,군단무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후진교육을 맡았다. 당시 교관으로는 일본육사출신인 지청천과 김경천,한말 무관출신인 김창환등이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청산리독립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선생을 비롯한 애국투사들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3·1운동을 전후해 만주지역에는 50여개의 독립군단이 조직됐으며 이들은 각각 일제에 전쟁을 선포하고 일제 주재소와 헌병대등을 습격하는등 맹렬한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선생도 서로군정서의 독립군을 이끌고 수시로 일제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을 가졌으며 친일주구들을 처단하는등 용맹을 떨쳤다. 독립군부대는 그러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1천여명의 병사를 잃은 일제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지역의 한인들을 무차별 살육하는등 초토화작전으로 맞서자 어쩔 수 없이 근거지를 이동하게 된다. 당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독립군 연합부대는 북만으로 옮겼으며 선생이 활약하고 있는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등은 남만의 홍경현으로 이주했다. 1922년 봄,남만에 있던 독립군부대들은 강력한 독립군단의 조직을 위해 기존 부대를 해체,대한통군부를 결성했으며 이 통군부는 그해 가을,북만의 독립군부대까지 결합시켜 대한통의부로 새로 출발했다. 선생은 1923년 대한통의부 의용군사령관에 임명돼 독립군병력을 총지휘하게 된다. 이 의용군은 5개중대와 유격대,헌병대로 조직됐으며 각 중대는 5백∼9백명의 병력으로 구성됐다. 의용군은 당시 압록강 접경에서 일제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며 국내에도 잠입,게릴라전으로 일제를 괴롭혔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이 의용군은 1923년 1월 유격대원 7명이 평북 창성군 후평주재소를 습격,일경을 사살하는등 무수한 전과를 남겼다. 선생은 그러나 1924년 7월 홍경현 밀림에서 야외군사훈련중 중국 마적 3백여명의 급습을 받고 총격전을 벌이다 총에 맞아 쓰러져 42세로 운명했다. 선생은 『일제와 싸우다 죽으려했더니 중국사람과 싸우다 죽는구나』라고 외치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생을 숨지게 한 마적들은 사후 일제의 사주를 받은 장작림 군벌부대와 경찰들로 밝혀졌다. 한편 선생이 순국할 당시 서울 셋방에서 만삭의 몸을 이끌며 살고 있던 부인 임수명여사는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고 쓰러져 운명,일가족이 조국독립에 몸을 바친 셈이 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추서했다.
  • 인권,그 최고의 가치/지명관(시론)

    시베리아 원시림속 벌목장에서 추위와 중노동,굶주림과 감시에 견디다 못해 탈출했다는 북한동포들 소식에 놀라움과 슬픔이 교착되다 못해 절망감에 몸을 가눌수 없음을 느꼈다.탈출도중 발견되면 사살이고 무사히 탈출했다고 해도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이러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하여 북한의 정치체제는 엄중한 고발을 받아야 한다. 인권이란 어떠한 정치적 흥정거리도 될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그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남북통일이나 연방제를 외치고 민족의 주체성이니 민족주의니 하면서도 헤어진 가족의 아픔을 강제수용소에 갇힌 쓰라림을 은폐하려 했다면 그 모든 구호는 헛된 것이며 기만이라고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우리는 또 북한 당국이나 그 정치체제에 대해서 분개하지 않을수 없다.물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번에 시베리아를 방황하는 우리 동포문제에 대하여 갈팡질팡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우선시키지 못했었다는것에 대하여 우리 자신에게 채찍을 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한사람의 인권보다 정치나 경제 또는 질서라는 것을 우선하려고 해온 것 아닐까. 나는 며칠전에 신문에 나타난 2단짜리 조그만 기사를 보고 그런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그것은 청주발 기사로 「전경 신병폭행치사,경찰 부대장 문책 직위해제」라는 제하로 돼 있었다.이 기사의 내용인즉 지난 16일 밤에 충북에서 전투경찰대 소속 신병 임창순이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선임전경의 군화발에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경찰은 폭행한 전경을 구속하고 부대장을 직위해제시켰다고 한다. 이것으로 신문의 보도에 관한한 이사건은 끝났다고 할수 있을는지 모른다.나는 그야말로 스무살의 꽃같은 나이로 목숨을 잃은 젊은이와 슬픔에 젖어있을 그의 가족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리고 우리가 정말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의 아픔과 그들의 인권을 귀중하게 생각해 왔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 기사가 이렇게도 작게 취급될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느 탤런트의 결혼 관련기사는 그렇게도 커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에 바로 현대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이 반영돼 있는지도 모른다.그런 발상이라면 그런 사건을 파헤쳐 다시는 그같은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인권에 대한 강한 의지는 있을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30년도 넘은 옛일을 회상했다.1960년대 처음 아폴로1호가 달에 착륙할 때였다.그야말로 전세계가 이 역사적인 광경을 텔레비전이 뚫어지라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의 기사를 대서특필하면서도 그것과 거의 같은 지면으로 또하나의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기자가 이 시간에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모여앉아 있는 할렘의 흑인들을 찾아갔던 것이다.흑인들은 「인간이 달에 가서는 뭣하는가.지상에 이러한 불평등과 비참함이 있는데…」라고 입을 모았다는 것이다.그리고 아폴로1호의 발사를 반대하는 수천명에 불과한 데모대 기사를 거기에 곁들였던 것이다. 처음 나는 불균형을 이룬 이 신문기사를 의아스럽게생각했다.그러나 그후 귀국해서 70년대초에 우리나라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됐다고 축제무드에 휩싸였을 때 비로소 나는 뉴욕타임스에 나타났던 「불균형」의 뜻을 깨달았다.그것은 불균형이 아니라 참다운 균형이었다. 우리나라 신문에 전면을 뒤덮다시피한 기사속에서 나는 이 역사적인 공사에서 77명이 숨졌다는 단 한줄의 기사를 발견하고 놀랐다.성공속에 있는 슬픔,인간생명의 희생이 거의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건설회사 사장들은 표창장을 받고 있는 속에서 그들의 울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불균형을 이제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경제나 정치도 선진국 그것이상으로 인권에 있어서도 굳건한 나라일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 애,반정단체 기습/회교도 11명 사살

    【카이로 AFP AP 연합】 이집트 경찰은 25일 반정부 회교 과격파들의 은신처 두곳을 기습,지난 2년동안 정부 전복 운동을 주도해온 탈라아트 야신 하맘 등 11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회교 과격파의 지하 운동 단체인 자마 이슬라미야의 카이로 은신처를 기습,이 단체의 지도자로 지난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하맘 등 7명을 사살했다. 경찰은 또 아시우트의 공동묘지에 있던 이 단체의 다른 은신처도 기습,4명을 사살했다.
  • 동독난민 5백20만명 서독 이렇게 처리했다

    ◎「긴급법」 제정… 철저한 동화정책 시행/지역별로 분산… “무리없는 정착” 유도/일시적 보상보다 자립여건 조성 조력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을 어떻게 우리품으로 맞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는 통일의 방법및 시기와도 맞물리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만이 저항없는 통일을 가져다 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무혈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동독피난민 처리방법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에 틀림없다. 지난 90년 10월 동·서독이 완전히 통일되기까지 서독에 있어 동독 난민은 계속 「뜨거운 감자」였다.동·서독으로 나뉘어 두나라가 된 49년이후 통독때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유입된 인구는 무려 5백20만명에 이르렀다.서독에서 동독으로 건너간 숫자는 47만이었으므로 동독은 국가로 존립하는 동안 4백70만명의 구성원을 독일로 보낸 셈이다.이들 가운데 합법적 절차를 밟은 이주민은 50만명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4백만명이상이 최근의 북한 벌목노동자와 같은 탈출피난민인 셈이다. 서독이 동독 피난민으로 고심했던 시기는 둘로 나눌수 있다.첫번째는 2차 대전이 끝난 뒤로부터 61년 베를린장벽이 구축되기까지이다.한해에 10만∼30만명의 피난민들이 공산치하를 피해 서독으로 넘어왔다.전후 어려운 경제여건이었던 서독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수 없었다. 서독정부는 50년 「독일인의 서독지역에의 긴급수용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이 법은 처음 동독지역에서 특별히 정치적 박해를 받은 사람말고는 피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나 탈출자를 추방하기도 사실상 어려워 그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61년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설치하고 탈출자에 대한 무차별 사살령을 내리자 서독쪽에서는 더 이상 동독인의 희생을 지켜볼수만 없다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됐다.결국 61년과 65년 긴급수용법의 모법과 시행령을 차례로 고쳐 피난민을 모두 수용하도록 했다. 마침내 72년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되어 양독사이에 합법교류의 길이 열렸으나 동독 피난민문제가 다시 뜨거워진 것은 89년 중반 대규모의 「엑서더스」가 시작된 때이다.통일때까지 겨우 1년남짓동안 60만명이상의 피난민이 생겨났다.89년 말에는 이들 피난민을 수용하는 서독의 난민수용소만 1백개이상에 이를 정도였다.그 때 서독국민들 사이에서는 『통일을 않는게 낫겠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서독 정부는 합리적 정책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서독정부는 동독피난민에게 철저하게 동화정책을 시행했다.각 주정부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이들을 지역별로 적절히 배분해줌으로써 피난민이 서독에 무리없이 정착하도록 했다.난민으로서의 동정이나 일시적 보상보다는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자립하는 것을 돕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볼수 있다. 서독정부가 동독 피난민에게 제공했던 지원은 두갈래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첫째는 피난민이 긴급수용소에 체재할 때이며 두번째는 정착할 주에 도착한 이후의 지원활동이다. 피난민이 수용소에 들어가면 연방정부에서 2백마르크,주정부에서 15∼30마르크,사회복지기금에서 10∼15마르크등 현금으로 받는 액수는 고작해야 용돈수준인 2백50마르크(12만5천원)에 불과했다.그러나 숙식 의료서비스진학상담등 생활에 필요한 사항들은 모두 무료였다.그러다 정착지에 가면 복지주택 우선입주권,생활용품 구입을 위한 저리 융자,각종 수당·보험등의 혜택이 주어졌다.자영업이나 취업을 위한 지원도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 “중국군·경찰 선박에 총격/승객 사살후 엔진 불태워”

    ◎홍콩지,「대만인참사」 원인 폭로 【홍콩 연합】 중국은 24명의 대만관광객이 떼죽음을 당한 「천도호사건」의 주범으로 군인과 경찰관들에 혐의를 두고있으며 사건당시 총탄이 발사되고 흉기와 선박까지 동원돼 범죄가 자행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홍콩의 중국전문 월간지 동향 최신호가 15일 수사결과를 폭로했다. 이날부터 발매되기 시작한 동향 4월호는 지난 87년 중국과 대만이 교류를 개시한 후 양측관계를 가장 악화시킨 「천도호참사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사건수사본부인 「천도호사건전안판」이 국무원(중앙정부)에 올린 수사보고서를 인용,이 사건의 주범으로 군인과 경찰이 혐의를 받고있으며 이들중 10명이상이 재물을 빼앗기 위해 계획적으로 총기와 흉기,칼 및 선박까지 동원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범인들이 선원 6명과 대만 여행객 24명,관광안내원 2명등 32명을 강제로 배 밑바닥으로 가게한 후 엔진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 이 배에 탄 사람들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막으려했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이미 15명의 사건 관련자들을 확보해 수사중이며 이들의 신분은 비밀에 부쳐져있다고 동향은 말했다.
  • 백제의 신화/무왕때부터 “왕은 용의 아들”(백제를 다시본다:11)

    ◎건국신화 없어 고구려·신라에 열등감/권위회복·단결위해 「용 설화」 만들어/능산리 금동용봉향로의 태자상 장식이 그 증거 우리나라 상고사중 한민족 중심인 단군조선,부여와 고구려에는 각기 고유하면서도 서로 맥이 통하는 신화가 있다.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인 설화에는 신화,전설과 민담이 포함된다.어떤 학자는 신화를 건국,씨족,마을과 무속의 네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한국의 신화에서는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벗어나 과업을 성취하거나 주인공의 원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생­성장­혼인­즉위­죽음의 통과의례에 대한 과정을 다룬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쳐왔다.왕권을 신성화하고 있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신화에서 벗어나 역사화된 것으로,그리고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이념으로 삼은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고 한다.국가창건신화의 경우 국가가 바로 증거물에 해당하며,만일 신화에서 이와같은 증거물이 없다면 전승은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 「삼국유사」권제1기이 제2에 의하면,왕검조선은 상제인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지상(신단수아래 신시)에 내려와 3.7일을 굴에서 지낸후 여자가 된 웅녀와 결혼해서 난 단군왕검이 아사달에서 나라를 엶으로써 생겨난다.그 해가 요제 즉위후 50년 경인년(실제는 정사)으로 기원전 2333년(동국통감에 의해 당고 무진년)에 해당한다.그는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일컫고 이어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5백년을 다스리다가,주 무왕(호왕) 기묘년(기원전 1122년)에 기자조선이 들어서매 장당경으로 옮기고 후일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그의 나이는 1천9백8세였다 한다.최근 그의 무덤(소위 단군릉)이 평양근교 강동군 대박산기슭에서 발굴되었다고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무덤의 위치,연대,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 등에서 여러가지 모순점을 보인다. 북부여의 경우 해모수가 하늘에서 다섯마리의 용을 타고 내려옴으로써 나라가 이루어진다.그 해가 전한 선제 신작 3년으로 기원전 59년에 해당한다.그의 가계는 해부부(가엽원으로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함)­김왜(하늘이 점지한 개구리같은 어린이로,해부루의 수양아들이며 태자임)­대소에게로 세습된다.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 15년,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황에게 망하고,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주몽,성은 고)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가지가 전한다.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그는 북부여의 건국자인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사이에 알로서 태어났는데(난생),그 해가 한 신작4년,기원전 58년이다.그리고 그는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와는 이모형제가 된다.그가 금와의 태자인 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아 졸본주(졸본부여,홀본 골성)로 가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리상국집」동명왕편에 의하면,그 해가 한 원제 12년으로,기원전 37년(최근 북한 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77년으로 잡고 있으며 그 이전단계를 「구려」로 보고 있다)이며 그의 나이 21세 때이다.그리고 기원전 19년에는 그가 부여에 있을때 예씨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로서,자기집 일곱모의 소나무 기둥 아래(칠령칠곡의 소나무위에 선 기둥)에서 부러진 칼을 찾아 온 유이(기원전 19∼기원후 18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백제의 건국자는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기원전 18∼기원후 28년)이다.그는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 부여에서 내려온 유리왕자(고구려의 제2대왕)존재에 신분의 위협을 느껴 한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 형인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하북위례성(현 중랑천근처이며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에 옮긴 하남위례성은 강동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으로 추정됨)에 도읍을 정하고,형인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근거를 삼는다.이들 형제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삼국사기 백제본기 별전(권23)에는 북부여의 둘째왕인 해부루의 서자인 우대의 아들로 나와 있다.이는 그의 어머니인 서소노가 처음 우태의 부인이었다가 나중 주몽에게 개가하기 때문이다. 이들 신화에서는조지훈과 이동환을 비롯한 이 관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조탄생설화,이주개국형,난생설화,개탁국가,중서자립국과 이모형제들이 공통된다.다시 말하여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는 같은 맥이나 한핏줄을 이루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최근 북한에서 이러한 맥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정당화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그러나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는 천손인 해모수,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의 신화적인 요소와,알에서 태어난 주몽의 탄생과 같은 난생설화가 없이 처음부터 주몽­서소노­우태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난다.그래서 백제에는 부여나 고구려다운 건국신화나 시조신화가 없다.이것이 백제가 어버이 나라인 고구려에 항상 열등의식을 지녀온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점은 온조왕 원년에 동명왕묘를 세운 것이나,백제 13대 근초고왕(346∼375년)이 371년 평양으로 쳐들어가 고구려 16대 고국원왕(331∼371년)을 사살하지만 평양을 백제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한성으로 되돌아 오는 점 등에서 이해된다. ○왕권 신성화 애써 그래서 백제의 왕실은 고구려왕실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과 아울러 왕실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애를 써왔다.그것이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용이 왕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왕권의 탄생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중국과 한국에서 용은 물(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왕이다.최근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뚜껑과 몸체에 표현된 도교와 불교적 문양과 용봉(또는 주작과 현무),연화문 가운데의 태자상의 장식등이 그러한 증거로 보여진다.이것은 후일 신화가 없어도 될 것 같은 고려나 조선도 「제왕운기」나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건국의 정신적,이념적 틀을 꾸준히 보완해 나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농경사회의 수신… 왕권 상징/부여 절터에서 용무늬 벽돌 출토/용의 의미 백제는 신화나 설화의 자료가 사실상 희박하다.특히 건국신화는 없다.우리 신화의 원전격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경우 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만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신라 중심의 호국,인문신화에 치중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건국신화 말고는 무왕(?∼641년)과 관련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용이 등장하는 설화다.그 어머니가 서울 남쪽 못가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못 속의 용과 관계한 이후에 낳은 아들이 무왕이라는 것이다.용을 모티브로 한 숱한 「삼국유사」기록 가운데 하나인 이 무왕과 용에 대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용은 대체로 호교의 상징 내지는 호국의 상징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 무왕은 호교와 호국 두 요소에 바로 연결된다.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했고 부소산성과 마주하는 백마강 건너 울성산성 근처에 호국사찰 왕흥사를 완공시켰다.그는 금강 언덕의 바위에서 예불한 다음 배를 타고 건너가 법회에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추풍령을 넘어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신라를 위협했다.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가장 막강한 군주로 문화를 꽃피우는 가운데 영토를 관리하는데도 주력했다.이렇게 보면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와 비교되는 용은 왕권이나 왕위를 상징할 수도 있다.그래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과 무왕의 연관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 사비시대 백제의 고토인 부여 능산리 출토품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용은 왕권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뚜렷한 신화가 없는 백제가 사비시대에 창조한 신화적 요소가 용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그렇다면 용에는 백제인들의 융합을 위한 신성성이 내포된다.이는 역사와 관련을 가지면서 민족의 단합을 꾀하는 신화구성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 한만국경(외언내언)

    한만국경 하면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을 생각하게 마련이다.그리고 일제시대의 독립투사들이 위경의 눈을 피하며 조국광복을 위해 넘나들던 한많은 국경선을 연상한다.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간도 즉 사잇섬 이라는 이름의 땅을 떠올리게도 된다. 예부터 압록·두만 양강연안에 살던 우리 사람들은 흉년이 들거나 난리를 당하면 강건너 대안의 기름진 땅에서 농사를 지어오기도 하고 살기도 했다.19세기 들어 청나라가 국경순찰대를 두고부턴 몰래 건너가 도둑농사를 짓다 붙들려 목숨을 잃기도 했던곳.그런 우리의 슬픈 사연들이 서린 간도다. 그곳 중심지가 바로 오늘의 만주 연변이며 중국 유일의 한주자치주다.2백만 인구의 40%인 82만의 동포가 살고있는 그곳이 오늘에 와 다시 또 우리한주의 목숨을 건 새로운 선택의 땅이 되고있다니 이무슨 기구한 인연인가.기아와 공포의 북한탈출 동포들이 줄을 이어 그숫자가 이미 수백 수천에 달한다는 것이다. KBS의 충격적인 르포에 이어 30년전 월북한 서울대생이 50대가 되어 탈출했으나 붙들려송환될 운명에 처하자 차라리 자살을 택했다는 처절한 소식도 날아들었다.연이은 흉년에 경제파탄의 난리고 보면 인내에 숙달된 북한 동포들이지만 별수 있겠는가.강건너 개혁중국의 유혹이 있고 그로부터 흘러드는 서울소식 또한 만만치 않을터. 한만국경이 한반도의 베를린장벽 되지말라는 법 없다.동독인들처럼 쏟아져 나온다면 바로 여기서부터일 것.북한이 개혁을 않는한 그것은 반드시 일어날수밖에 없다.그리고 핵고집과 전쟁위협은 그것을 앞당길 뿐일 것이다. 월경자에 대한 무차별 사살령과 공개화형보도도 나왔지만 최근 북한의 한만국경 경비도 수차에 걸친 김정일의 명령으로 크게 강화되고 삼엄해졌다고 한다.그런다고 막아질까.핵으로도 못막는것이 민심인 것을.
  • 대탈출(외언내언)

    소피아로렌인가가 출연한 옛날 영화가 있다.좀도둑질을 하다가 신부앞에 나와 고해를 하게된 여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신부님 가난한 사람들은 천당에도 못갑니다.배가 고프니까 도둑질을 하지요.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탈출」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연일 일어나고 있다.북의 동포들이 여기저기서 탈출을 감행하고 있고 북한당국은 탈주자를 현장사살하라고 명령했다는 보도다.우리정부는 「원칙적」으로 그들의 귀순을 허용키로 했다. 「탈출」을 통해 짐작하건대,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살 수있는 최소한의 경제생활이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한 데서 오는 품성의 황폐화와 도덕률의 붕괴현상 같은 것이 북의 사회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 중조국경선을 넘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북한동포들을 취재한 KBS기자는『…북한 사회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인부의 수기에는 무차별로 횡행하는 북한사회의 뇌물이야기와 무법천지의벌목장 실태가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일본 언론이 전하는 바로는 벌목장에서는 동료를 위한 수혈조차 기력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거부하여 급할 때에는 러시아 주민의 선의를 구걸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언젠가 통일되어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반쪽 동포들의 실상이 바로 이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그것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는 정도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결정적인 시기가 의외로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고통받는 동포의 구출을 우선해야 하고,그리고는 「찾아온 삶」과 「받아들이는 삶」의 이질성이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 것인지,경제적 삶의 기반조성문제며 법적 지위나 사회적 입장등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한 연구와 대비도 있어야 할 것이다.
  • 북,국경탈출자 사살령/러·중 망명 막으려…수차례 발포도/홍콩지보도

    【홍콩 연합】 북한은 인접한 중국과 러시아국경을 통해 급증하고있는 망명자등 탈출자들을 강력히 저지하기 위해 국경 경비대에 이들을 발견하는 즉시 현장에서 발포,사살토록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가 4일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과 중국간 국경지대를 방문하고 막 돌아온 서방 외교관의 말을 인용,북한 경비대가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통해 외부세계로 탈출하는 북한인들에게 발포한 사건들이 최근 수주동안만 해도 이미 여러차례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서방 외교관은 이같은 발포사실을 중국에 사는 북한인들로 부터 자세히 전해들었다고 말하고 『탈출자들은 주로 야간을 이용해 국경을 넘고있다』 밝혔다. 포스트지는 국경 경비대에 대한 이같은 『발견즉시 사격』명령은 국경을 넘으려는 북한인들이 최근들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외교관은 북한 경비대가 특히 국경 북부지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으며 북한국경으로 유입되는 사신등 문서들을 종전보다 훨씬 엄하게 검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국경을 통해 북한인들의 탈출이 늘어나는 것은 북한의 경제난과 식품부족때문이지 핵사찰 거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 이­PLO 자치협상 난항

    ◎아라파트/「이」측 협상카드에 불만 표시/헤브론서 팔인 사상자 발생 【카이로·예루살렘 연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23일 카이로에서 자치협상 재개를 위한 2차고위급 접촉을 가질 예정이나 PLO측이 이스라엘측의 협상카드에 강력한 불만을 제기,난항이 예상된다. 또 이날 회교사원 학살사건이 발생했던 헤브론시에서는 작전중이던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과격파 3명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여자 주민 1명이 숨져 양측간의 감정대립이 격화될 조짐이다. 야세르 아라파트의장은 이날 이집트의 라디오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이스라엘측이 점령지 주민보호를 위해 제시한 몇가지 제안은 PLO측이 자치협상의 전제로 내세운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헤브론시에서 팔레스타인 임신부 1명이 진압군의 총격에 희생된 사건은 평화노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이 즉각 개입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팔레스타인 해방통신(WAFA)이 전했다.
  • 게릴라 교도소 습격/죄수 천명 탈옥시켜/알제리

    【카이로 연합】 알제리에서 가장 삼엄한 교도소에서 최근 집단 탈옥사건이 발생,정부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카이로에서 입수된 보도들이 전했다. 21일 이집트판 영자주간 미들 이스트 타임스지에 따르면 지난10일 1백여 게릴라들이 동부 바트나지역의 람베세 교도소를 습격,수감중인 복역수 약1천명을 무더기탈옥시켰다. 정부 당국은 즉각 광범위한 수색작전을 전개,79명의 탈옥수를 체포했으며 24명을 사살했다고 이 주간지는 밝혔다. 게릴라들은 교도소내 경비원들과 복역수들이 라마단 첫 식사를 기다리고있던 초저녁시간을 택해 공격을 개시,수감자 3천여명중 1천명을 인근 아우레사 산악지대로 도피시키는데 성공했다.
  • 등소평의 「천안문 유혈지시」 입증자료/보수파,사후폭로 채비

    ◎중국권력투쟁 심화 예고 【홍콩 연합】 중국의 보수파들은 등소평(89)의 사망즉시 그가 1989년 피의 학살인 천안문사태에 관련된 사실들을 국내외에 폭로할 것이라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7일 정통한 중국 소식통들을 인용하여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보수파들이 등이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사살까지 하도록 지시한 책임자임을 보여주는 상당한 자료들을 이미 수집했으며 이 비밀계획은 암호로 「두가지 폭로」로 불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트지는 보수파들이 등의 6·4사태 죄악을 백일하에 공개해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는 한편 그의 명예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이같은 계획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보수파들이 등의 유혈진압 관련사실을 사망 즉시 널리 배포 가능한 출판물을 통해 폭로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그의 사후 치열한 권력투쟁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인민해방군은 천안문사태후 사살명령으로 이른 과정을 밝혀주는 문서들과 정보들을 폐기 또는 은폐했으나 한보수파 원로는 이 결정을 내린 사람이 등소평임을 보여주는 기록과 자료를 가지고있다고 밝혔다고 포스트지는 말했다.
  • 중동평화회담 재개/미에 아랍설득 촉구/이스라엘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43명이 사살된 헤브론 학살사건에 항의해 중동 평화회담에서 철수한 아랍국들이 회담장으로 되돌아오도록 미국이 개입해 설득할 것을 28일 촉구했다. 요시 베일린 이스라엘 외무차관은 시리아와 요르단,레바논이 27일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중동 평화회담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우려할 만한 사태 발전』이라면서 『상황악화를 막기 위해 미국의 본격적인 개입이 있어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광견병 확산/경기북부

    【연합】 연천군등 경기북부지역에서 광견병에 감염된 주민과 가축이 발견되고 젖소가 죽는 등 광견병이 확산됨에 따라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는 24일 가평·파주·포천군등 경기북부지역을 광견병 제1차 방역지역으로 지정해 주도록 농수산부에 요청했다. 또 연천군도 전방 군부대에 들개나 야생고양이·너구리등 야생동물이 발견되는대로 사살할 것을 당부했다. 광견병 제1차 방역지역으로 지정되면 개와 소·돼지등 지역내 모든 가축은 광견병 예방접종을 맞아야 한다. 지난 12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3리 월하목장(주인 김성길)에서 젖소 1마리가 갑자기 침을 흘리고 괴성을 지르는 등 발작을 일으키다 다음날 죽어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뇌세포에서 광견병 바이러스가 발견돼 광견병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 알제리서 정치테러 1주새 30여명 사망

    【알제 AP 로이터 연합】 알제리에서는 회교근본주의자들의 테러로 지난 한주동안 30여명의 게릴라 및 민간인이 숨졌다고 20일 보안군이 밝혔다. 보안군은 지난 주 수도 알제에서 남서쪽 3백㎞지점에 위치한 마스카라지방에서 6명등 회교 무장 게릴라 21명을 사살했고 부녀자등 민간인 7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며 APS통신은 교전과정에서 경찰관등 공무원 2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또 이날 수도 알제에서는 현행 80%에 이르는 세율의 인하를 요구하는 1천5백개주유소들의 파업이 임박함에 따라 각 주유소마다 미리 기름을 사려는 자동차 행렬이 한꺼번에 몰려 극심한 교통마비가 빚어졌다.
  • 전국에 광견병 비상/감염된 개에 물린 환자 5명 발생

    광견병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경기및 강원지역에서 광견병 감염우려자가 잇따라 발생,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보사부는 18일 경기도 연천군의 김모씨(48·농업)가 지난 14일 미친개에 물린데 이어 이날 같은 연천군내에서 생후 9개월된 강모양과 강원도 화천군에서 박모씨(36)등 주부 2명,박모군(국교2년)등 4명의 새로운 광견병 감염우려자가 집단으로 발생,방역당국의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보사부는 『이들이 아직 광견병증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면서 『이들을 문 개 6마리에 대해 농림수산부의 가축위생연구소에서 역학조사한 결과 모두 광견병에 걸린 개인 사실이 확인돼 이 가운데 5마리를 사살했다』고 말했다. 보사부는 최근 계속된 휴전선부근의 민간인 통제선 출입완화로 광견병에 걸린 개와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광견병이 이들 지역에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사부는 개를 비롯,가축에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가축나 야생동물등에게 물렸을 때는 즉시 가까운 보건소에 신고해 주도록 당부했다. 보사부는 최근 계속된 휴전선부근의 민간인 통제선출입완화로 광견병에 걸린 개와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광견병이 이들 지역에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사부는 개를 비롯,가축에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특히 경기·강원지역의 경우 가축이나 야생동물등에 물렸을 때는 즉시 가까운 보건소에 신고해 주도록 당부했다. 광견병환자는 지난 84년 서울에서 1명이 발생한 이래 지금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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