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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중취재] 居昌 등 양민학살 10여건 진상규명 본격화

    *노근리사건 계기로‘한국전쟁 의문사’관심 고조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노근리사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정은용(鄭殷溶·76)노근리사건대책위원장이 지난 94년 사건의 진상을 실화소설로 엮은 책의 제목이다.책 제목대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절감해 왔는가.피해자의 역사는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빚어진 동족상잔의 ‘상처’ 가운데 하나인 ‘노근리사건’에 반세기만에 ‘진실의 햇살’이 내리쬐고있다.지난 9월말 미국 AP통신은 1년여에 걸친 현장취재와 문헌조사,관계자들의 증언청취를 토대로 ‘노근리사건’은 피난민 400여 명이 미군의 무차별폭격과 사격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이라고 보도하였다.AP통신의 보도는 기존국내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가해자인 미군병사들의 증언과 관련자료를 추가로 발굴했다는 점에서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이 보도는 한국과 미국에서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특히 지난 4일에는 당시양민학살에 가담했던 미군병사 한 사람이 노근리를 사죄방문한 바 있다. 아울러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전후·전쟁중 공권력(군·경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문제를 종합적으로 재점검,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이들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과 논쟁이 예상된다. 우선 ‘노근리사건’을 보는 시각차 문제다.유족측은 이 사건이 ‘무고한양민에 대한 무차별학살’임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미국측은 ‘전쟁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는 보상문제를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이다.따라서 노근리사건에 대한 피해자 보상문제는 미국측의각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미국은 민간인 504명이 미군에게 학살당한,월남전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밀라이사건’을 처리하면서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육군중위 1명을 기소했을 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하지 않았다.이는미국이 이 사건이‘전쟁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과 관련,의외로 장시간이소요될 가능성도 있다.미국측은 정확한진상조사를 내세워 방대한 자료검토와 관련자 증언청취를 주장하고 있다.다만 미국측이 이 사건의 처리를 군 수사기관격인 육군성내 감찰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해자조사 문제는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전후에 다른지역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지난 96년 특별법이 제정돼 현재 명예회복·위령사업 등이 진행중인 ‘거창사건’을 비롯해‘함평사건’‘문경사건’‘고양사건’‘여순사건’ 등이 모두 10여 건의 ‘양민학살’이 당국의 진상규명·보상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피해자들은 대개 한국전쟁 전후에 ‘통비(通匪)분자·좌익분자 소탕작전’이라는 명목하에 군이나 경찰들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다.그동안 피해자나 유족들은 유족회등을 구성,수집한 자료나 증언을 바탕으로 반세기 가까이 관계당국에 진상규명을 호소해 왔다.‘함평사건’의 경우 60년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진상조사보고서까지 작성했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함평군청에서 이 사건을담당해온 전인균씨(법무통계 담당)는 “군 당국이 작전일지·전투상보 등은기밀자료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핵심자료에 접근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국방군사연구소 나종삼 전사부장은 “한국군에서 작전일지·전투상보 등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50년 12월경부터이며 ‘양민학살’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대개의 양민학살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증언 이외에 확보된 자료가 거의 없어 진상규명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이미 관련자료가 미국 등에서 확보된 사건의 경우 진상규명에 ‘서광의 빛’이 보이는 측면도 있다.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노근리사건이 마무리 되면 다른 지역의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20세기에 발생한 불행한 일은 20세기에 해결하고넘어가는 것이 역사의 정의”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차영구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문답 ‘노근리사건’이 군의 주요현안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올 정기국회 국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고 국방부는 진상규명 등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다음은 국방부 차영구(52·육군소장) 정책기획국장과의 일문일답. ■‘노근리사건’ 해결과 관련,국방부의 입장은. 우선 정확한 진상조사가 급선무라고 본다.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관련자료 검토,현장조사 등이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국방부 내에 별도의 조사기구 같은 것이 구성돼 있나. 현재 정부차원에서총리실 산하에 국무조정실장이 반장으로 있는 대책반이 구성돼 있으며 국방부 조사반은 그 산하에 포함돼 있다.국방부 자체 조사반은 국방부 정책보좌관이 반장,국방군사연구소장이 실무반장을 맡고 있으며,역사학 교수,6·25참전군인,유족 등으로 구성된 외부자문위원단을 현재 구성중이다. ■‘노근리사건’은 미국측의 반응·협력이 중요한데. 미 육군성 에커먼 감찰관(중장)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사건을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다루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현재 미국은 이 사건과 관련,트럭 1대분 분량의자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미국측 역시 피해자들의 증언내용과 이 자료들을 토대로 광범위한 조사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보상문제는 어떻게 됐나. 아직 거론된 바 없다.미국측은 ‘선조사 후처리’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결과에 따라 ‘처리’할 것으로 본다.한가지 덧붙일 것은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한미군사동맹체제가 위협받아선 곤란하다는점이다.억울한 개인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국가안보 역시 중요한 문제다.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과 관련,국방부가 관련자료 공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소관사항이 아니라 단언할 수 없다.다만 진상규명에필요한 자료라면 관계규정에 의거,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운현기자 * 49년만에 訪韓‘노근리 사격’美 데일리씨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분노와 회한을 안겨준 노근리 기관총 난사사건의 장본인으로 미 NBC방송 주선으로 지난 1일부터 닷새간 방한, 노근리 현장과 유가족들을 찾아보고 돌아온 에드워드 데일리씨는 5일 출국직전 기자와 만나 이번 방문을 “화해로의 여행”이라고 말하고 “이제야 원죄같은 악몽에서 조금은 벗어날 것같다”고 말했다. 한국전 개전 직후인 50년 7월26일 저녁 노근리에서 미 제1기갑사단 7연대소속 중사로 수백명의 피란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던 그의 노근리 방문은 49년여를 한(恨)속에 살아온 피해자들과의 화해인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였다.19살의 나이에 ‘전쟁’의 이름으로,‘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부녀자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이제 68세의 노인이 돼 그 피해자들을다시 찾아 사죄하고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던 것이다. ■유가족들과는 나눈 이야기는. 유가족들을 만나기로 한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나는 노근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대전에서 그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킬 것같은 기분이었다.유가족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많은 질문을했고 나는 기억하는 대로 솔직히 대답하고 그분들에게 사과했다. ■피란민들을 왜 쏘았나. 7월25일 오후 늦게 우리 부대는 영동에 있는 제8연대로 합류하라는 명령을받았다.대전은 이미 함락됐다고 들었다.우리 부대는 26일 오후 노근리 인근철교에 도착했다.주민들은 이날 새벽부터 폭격을 피해 굴다리밑에 숨어있었다.오후 늦게 중대장인 맬번 챈들러 대위로부터 기관총을 굴다리 양쪽에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피란민들이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사살하라고 했다. ■터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만 쏘았나.아니면 터널 안으로도 쏘았나. 터널 안으로도 쏘았다.우리도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피란민들 쪽에서 응사가 있었는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때였다.터널안쪽에서 나오는 서너번의 총구 불길을내눈으로 보았다.기관총은 우군끼리 겨냥하지 않도록 예각을 이루어 배치됐다.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반대편쪽 우리편에서 날아온 총탄이었을 가능성도배제할 수는 없다. ■왜 피란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는가. 북한군 게릴라들이 피란민 대열에 숨어있다는 풍문이 무성했고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죽은 피란민 사이에 북한군 복장을 한 시체들과 북한군무기들이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 ■왜 이제 와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을 하게됐나. 전우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지만 누구도 노근리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부녀자와 어린이들을 죽인 일을 누가 입에 담고 싶어하겠는가.2년전 노근리 사건을 취재하던 AP통신 기자가 국방부 사료를 뒤지다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찾아왔다.내게 ‘진실을 말해주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그에게서 생존자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노근리 사건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노근리에서 남하하다 그해 8월12일 고령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제10사단25연대에 포로로 잡혔다.그뒤 북한군의 선전용 겸 방패막이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됐다가 9월12일 왜관에서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부대로 복귀했다.한국전과 노근리 사건은 내 인생에 최대의 악몽이다.정신과 치료도 몇번 받았다. ■한미 양국에서 진상조사가 시작됐다.끝까지 진실을 말해주겠나. 조사단에게 진실을 말하겠다.유가족들의 고통을 더 이상은 외면하지 않겠다. 이기동기자 yeekd@
  • 러軍, 수도 그로즈니 외곽까지 진격 체첸대통령, 긴급협상 제안

    [그로즈니 AP DPA 연합] 러시아연방군이 체첸 수도 그로즈니 외곽지역까지진격하자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이 17일 긴급 협상을 제안했다. 마스하도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대통령이고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협상에 찬성한다”면서 러시아에 회담을 갖자고 촉구했다. 그는 또 체첸 야전사령관들 상당수가 이번 협상 제안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그들은 협상 제안이 체첸의 약세를 시인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리의 협상 제안을 합리성이라기 보다는 약세로 해석하기 때문에 나는 평화협상을 제안하는 것을 꺼려왔다”고 밝히고 국민들을 위해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체첸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마스하도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스하도프 대통령은 협상을 제의하면서도 “그들이(러시아) 전진해오면 격퇴시킬 것”이라며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며 이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일 러시아지상군 투입 이후 러시아군 1,500명이 사살되고 전투기 4대와 헬기 10대가 격추됐으며 탱크와 장갑차 60대 이상이 격파됐다고 주장했다.
  • 6·25참전 美軍증언

    [워싱턴 AP 연합] 1950년 8월 3일 미군은 왜관교와 고령교를 폭파하면서 수백명의 양민도 함께 숨지게 했으며,이 일이 있기 전에도 피란민들에게 총격과 포격을 가해 숨지게 했었다고 미 참전병사들은 증언했다. 제대군인인 에드워드 L.데일리는 왜관교의 경우 북한 인민군의 남진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피란민 머리 위로 경고 사격을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피란민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실패한 미 1기갑사단 사령관 호바트 게이 소장의 지시로 왜관교에 장전한 폭약을 터뜨렸으며,폭발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교량 지지대들이 산산조각났다고 데일리 등 다른 병사들이 전했다. 왜관교에서 40㎞ 하류에 위치한 길이 195m의 고령교 폭파도 이보다 약간 앞서 일어났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 육군 공병이었던 조지프 이포크는 “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외쳤지만 다른 병사들이 ‘폭파해야 한다.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제14 전투공병대 병장 출신의 캐럴 킨즈먼은 “제 14 공병대가 이틀간에 걸쳐 3,000㎏의 폭약을 설치한 뒤 당일 오전 7시 1분에 폭파 명령이 떨어졌으며 이어 폭발과 함께 다리가 산산조각났다.당시 다리에는 피란민들이가득했다”고 말했다. 앞서 1기갑사단 병사들은 다리 폭파가 있기 하루 전인 2일 수십명의 다른군인들과 함께 낙동강으로 퇴각중이었으며,이들 뒤를 80명 가량의 흰옷 입은 한국인 피란민들이 뒤따르고 있었다고 참전병사들은 전했다.그런데 오후 민간인으로 가장한 5명의 인민군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당시 상황을 에드워드 데일리는 “북한군이 발포하자 즉각 사살했다”고 말한 반면,유진 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항복해 끌려갔다”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피란민 사이에서 나왔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우리는 피란민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대부분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1주일 전쯤에도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60㎞ 떨어진 철길을 따라 걷던 피란민 수백명에 대해 미군의 박격포 공격이 이뤄졌다고 1기갑사단 재향군인들은 회상했다. 제임스 맥리어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령이 포대에 무전을 보내 그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죽이라고 지시했다”면서 “포탄이 떨어진 뒤 팔다리,몸뚱이가 어지럽게 널렸다”고 덧붙였다.
  • 인니군-다국적군 첫 교전

    [딜리 AFP AP 연합] 동티모르에 다국적 평화유지군(INTERFET)이 배치된 이후 처음으로 10일 평화유지군과 인도네시아 군이 동·서 티모르 접경에서 전투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보안군은 호주 병사들이 국경을 넘어와 경찰초소에 사격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경찰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국경 마을 모타인 인근에서 발생한 이번 충돌은 평화유지군이 동티모르에파견된 이후 3번째 전투이지만 민병대가 아닌 인도네시아 정부 병력과,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서 티모르 접경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터 코스그로브 평화유지군 사령관과 인도네시아의 시토루스 여단장은 11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고 전투지역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교전 사태는 동티모르의 현지 무장세력이 1만 2,000명을 동원,다국적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발생한 것으로 존 하워드호주 총리는 다국적군과 민병대간의 충돌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국적군도 동티모르 서부 지역에 다국적병력 2,000명을 추가 투입한다고10일 발표했다.동티모르 서부 지역에 배치되는 다국적군은 이번 병력 증파로전체 병력 6,500명의 거의 절반인 3,000명선으로 늘어나게 됐다. 한편 다국적군과 민병대는 지난 4일 동티모르 서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교전을벌여 민병대원 2명이 사망하고 호주 병사 2명이 부상했으며 9일에는 동티모르 주도딜리에서 남서쪽으로 110㎞ 떨어진 알토 레바스 마을에서 전투가발생,민병대원 1명이 사살됐다.
  • [발언대] ‘노근리학살’ 철저 규명

    1950년 7월 충북 영동에서 황간방향으로 피난중이던 우리 동포들이 노근리다리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당한 사건이 미 언론에 의해 확인됐다.미 지상군이 31년전 월남 밀라이에서 500명이상의 양민을 희생한 다음으로 큰 규모의학살이라 한다. 사건피해자와 유가족들은 60년 10월과 12월,94년 7월과 10월,네차례에 걸쳐 미 정부측에 손해배상요구를 했지만 미국은 묵무부답이고 우리 정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신청은 기각됐다한다.오히려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해 분개를 금할 수 없다. 미국이 6·25이후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찾기위해 아직까지 수많은 채널의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나 자국민 보호를 위해 취하는 조치를보면 미국민들의 자긍심이 높은 이유를 간단히 알 수 있다. 50년전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손해배상청구권이나 형사시효가 만료되기는했겠지만 국제협약상 전쟁범죄의 경우 시효를 정지시키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들이 미국이나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라 한다.클린턴 대통령이행정부차원의 조사를 지시했다는 소식에 접하며 이제사 우리 국방부에서 진상조사에 나서는 모습을 보는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사회적이란 말의 의미가 유형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중 가장 엄숙하고도 고귀한 형태가 국가이다.그 안에서 각 개인은 운명을 같이하고 또한 그것은 ‘소속감’과함께 든든한 ‘울타리’의 역할을 제공해준다.그래서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있을 때는 피를 흘리며 그 울타리를지켜낸다.그러나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가 있어야 국민은 애국심으로 뭉칠 수있다. 진준근[부산시 남구 우암1동]
  • 東티모르 다국적군사령관 제시 “민병대·독립파 통합하라”

    [딜리 자카르타 AFP AP 연합] 친 인도네시아계 민병대원들이 국제동티모르파견군(INTERFET)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을 거듭 다짐하는 가운데 피터 코스그로브 동티모르 다국적군사령관은 9일 동티모르의 안정을 되찾고 독립반대민병대와 독립파를 통합,국가건설에 참여시키기 위한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코스그로브 사령관은 양측에 대해 “무기를 내려놓을 경우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으로 간주,점진적이고 선택적으로 정부에 참여시키는 문제와연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립반대 팔린틸 민병대의 타우라 마탄 루악 사령관 및 인도네시아 군채널을 통해 이같은 제의를 전달했다. 한편 싱가포르 선데이 타임스는 10일 730명의 독립반대 민병대원들이 국경지대의 가톨릭 공동묘지 인근의 나무로 은폐된 훈련장에서 게릴라전에 대비한체력훈련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특히 훈련장 책임자인 도밍고스 페레이라는 1∼2개월 뒤에는 호주군에 산발적으로 공격할 것을 밝혔다고 전했다.앞서 9일에는 서티모르와 인접한 수하이 항구 북쪽 알토 레보스 인근국경지역에서 다국적군과 민병대간에 전투가 벌어져 민병대원 1명이 사살됐다.
  • CBS “노근리外 학살 더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CBS방송은 노근리사건을 포함,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국 양민학살사건은 적어도 3건이며 미군 당국이 이에 대해 함구령을내렸었다고 보도했다. CBS방송은 8일 뉴스프로에서 노근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양민학살에 가담한 레스터 토드 이병의 말을 인용,병사들의 사격에 의한 학살과 미 공군기에 의한 사살사건 등이 있었음을 보도했다. 최전선에서 싸웠던 레스터 토드 이병은 “사살작전이 개시돼 적을 향해 진격하면서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살했다”면서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이 방송은 그러나 미 육군이 그에게 이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을 지시해 그가 지금까지 언급을 하지않았다고 지적했다. CBS방송은 53년에 작성된 메모를 찾아냈는데 여기엔 “미국에 매우 당혹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폭로했다. 이 방송은 토드가 밝힌 이 사건은 최근 재조명된 3건의 미군 학살사건의 하나이며 이외 미군 공군기가 양민을 향해 발포한 것과 한 사찰에서민간인 83명이 학살된 사례도 있다고 보도 했다. hay@
  • [굄돌]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지난 주 내내 노근리 학살 사건으로 전 지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나는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몇 가지가 뚜렷이 대비되어 마음이 착잡했다.어린딸과 아들을 미군의 총탄에 잃은 팔순을 앞둔 대책위원장 정은용 할아버지와 명령을 따라 무고한 양민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던 퇴역 미군 증언자 할아버지.‘지구촌 경찰’을 자처한 미국의 추악한 두 얼굴.코소보와 동티모르 등다른 나라의 ‘인종청소’는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내가 태어난 한반도의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대다수 한국인들.사건의 사실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철저한 조사를 벌였던 미국의 통신사와 무고한 양민들을 잃고서도 피해자 증언조차 청취하지 않았던 정부.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있는 언론의 비겁함. 집요한 추적 끝에 이 사건의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한 것은 우리 나라의 언론이 아니라 가해자 미국의 통신사였다.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비밀 해제된 문서를 뒤져 그 당시 사살 명령서를 찾아낸 주역은 AP통신 한국인 민완기자다.그기자가 기초자료로 삼은 것은 1994년 우리 나라 진보지인 한 일간지와 월간지의 기사였다고 한다.그리고 그 일간지 기사의 바탕이 된 것은 바로 현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장인 정은용 할아버지가 쓴 실화소설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이 책의 서술은 분명 육하원칙에 따라 씌어진 건조한 기사체와는 다르다.노근리 사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은 물론,노근리 사건을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한다.그런데 왜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대다수 우리 언론들은 침묵했을까? 왜 우리 국민들은 여태까지 이 책의 출간을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를 ‘구해준’ 미국의 범죄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사상범으로 몰릴 수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나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지금이라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원한다.그래서노근리 사건 이외에도 거창,제주 4·3,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사건 등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증언에 뒤늦게나마 귀기울이기를 바란다.어쩌면 이것이 무고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는 진정한 길인지도 모르니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마산서도 美軍이 양민 학살

    6·25당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경남 마산에서도 같은 사건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마산시 합포구 진전면 곡안리 주민들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50년 8월11일오전 8시쯤 성주(星州) 이(李)씨 재실에 피난해 있던 주민 80여명을 미군들이 사살했다고 4일 주장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당시 곡안리를 사이에 두고 미군과 인민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날 인민군 정찰대의 총격으로 미군 1명이 사망하자 주민들이 피신해 있던 재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
  • 印총선 최종투표 개시…유혈사태로 62명 숨져

    [뉴델리 AFP DPA 연합] 한달간 실시되는 인도 총선의 마지막 투표인 제5차투표가 3일 시작됐다. 그러나 아삼연합해방전선(ULFA) 소속의 분리주의 게릴라들이 이날 북동부구와하티의 한 투표소를 습격한데 이어 인근 트리푸라주의 호송대원들을 급습,보안요원 9명등 11명을 사살해 이날 투표는 피로 얼룩졌다. 지난달 3일 총선 투표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선거와 관련된 폭력사태로 62명이 숨졌다. 1억 3,000만명의 유권자들이 1천87명의 후보 가운데 118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투표는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각) 10개주와 연방정부 직할령인 락샤드위프 섬에서 실시됐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집권 힌두인민당 연립이 간디총재가 이끄는 국민회의당에 비해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 총선은 지난달 5일 시작됐으며 투표함이 열리는 오는 6일부터 24시간이내에 투표결과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 피난 민간인 敵간주 발포명령

    ?워싱턴 AP 연합? 지난 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 부근에서 한국 양민을 살해한 ‘노근리 학살 사건’이 미 정부 공식 문서와 미군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미 제1기갑사단,육군 25사단 사령부 명령서 등 미군 공식 문건 2건과 참전 미군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은 7월26일 당시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 발발 5주째인 당시 북한군이 농민 옷차림으로 위장,피난민 대열을 통해 미군 방어선으로 침투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미군 병력이 이에따라 어린이·여성 등을 포함,피난민 수백명을 살해했다.참전 병사들은 7월과 8월 두 차례 이와 유사한 피란민 학살 사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미 육군 25사단장 윌리엄 B 킨 소장은 7월26일 야전 지휘관들에게 보낸 명령서에서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모든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또 제1기갑사단 사령부도 명령서에 “전선을 넘어오는 자에게 발포하라”고 전했다.제1기갑사단에 근무했던 6명의 참전 장병들은 민간인을향해 발포했으며 또다른 6명은 대량학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미군 병사들은 사건 발생 시간·장소나 희생자 중에 여성·어린이·노인들이 많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참전 미군병사들은 피살자 수가 100∼200명 또는 수백명에 이른다고 말했다.굴다리 부근에 있었던 참전 병사들은 사망자 수를 200여명으로 추산했으며 그밖에 상당수가 공군기의 기총소사로 숨졌다고 말했다.노근리 학살사건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 생존자들은 300명의 주민들이 노근리 다리 부근에서 살해됐으며 또다른 100명이 미군의 공습으로숨졌다고 말했다.사건 발생 당시 일본에서 한국전선으로 3일전 투입돼 우왕좌왕한 1기갑사단 7연대 2대대 소속 660명의 병력은 북한군이 침공해 오자인근 마을에서 피란민들과 만나게 됐다.한국 생존자와 몇몇 참전 병사들은미군기들이 피란민들이 있던 지역으로 갑자기 저공비행을 한 뒤 기총소사를하면서 학살이 시작됐다고 증언했다.미 공군 기밀 해제 보고서에 따르면 조종사들이 위장한 북한군이 피란민 대열에 있는 것으로 의심해가끔 민간인들을 고의로 공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인들에 대한 이같은 사살명령은 명백히 불법이다.참전 용사들은 중화기 중대장이었던 멜번 챈들러 대위가 상급자와 연락을 취한 뒤 굴다리 입구에기관총을 설치하고 발포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미 국방부는 AP통신의 이같은 추적 보도 내용에 대해 군 공식 기록에는 그같은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으며 학살사건에 관한 육군당국의 공식기록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밀 해제된 군 문서를 토대? 병력 이동상황을 재구성한 결과 제1기갑사단 4개 대대가 학살사건 당시 그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김삼웅 칼럼] 동티모르파병 무엇이 문제인가

    국군 보병부대가 베트남에 이어 두번째로 해외파병길에 오를 것 같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는 지난 16일 420명 규모의 보병부대를 동티모르에 다국적 유엔평화군으로 파견키로 결의했다. 파병문제는 오늘(21일)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동의를 거치는 최종 절차가 남았지만 여론의 흐름은 파병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해외파병은 국가적으로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명분과 실리, 국제 역학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최종결정해야 한다. 파병문제는 찬반에서 당위론과 불가론, 그리고 조건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을 거쳐 빠른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파병규모를 특전사 250여명을 주력군으로 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의무·공병·수송·통신 등 170여명 등 모두 420여명으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파병에 따른 문제점과 주변환경을 점검해 보자. [평화애호민족의 전통] 우리는 조선(朝鮮)이란 오랜 국호(고조선·기자조선·근세조선)가 의미하듯이‘조용한 평화의 나라’로 상징된다. 중국‘산해경(山海經)’에도 ‘호양부쟁(好讓不爭)’이라 하여 서로 사양하며 싸우지 않는 평화민족임을 평가했다. 평화애호의 민족답게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그대신 한(漢)나라의 고조선 침략 이래 무수한 외세의 침략을 당했다. 그때문에 평화의 소중함과 약소민족의 설움을 잘 안다. [식민지시대 국제사회의 외면] 일제식민지 시대 외국의 도움이 절실할 때 중국정부 외에는 모두 외면했다. 동티모르가 인구 3분의1을 희생하면서 독립투쟁을 벌이는 데 망국시절 우리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도와줘야 한다. [유엔을 모태로 태어난 한국] 대한민국은 유엔을 모태로 하여 건국한 신생국가다.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동티모르에는 23개국 8,000여명의 다국적 유엔 평화군이 파병된다. 유엔의 은혜를 입은 우리가 여기서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6·25전쟁당시 유엔군참전] 6·25전쟁을 치를때 우리와는 생소한 16개국이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하여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구하고 전화 복구를 도와주었다.유엔군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찌 됐을까. 개인이나 국가나 어려울때 돕는 것이 참된 우정이요 문명국의 의무다. [인권문제는 인류보편가치] 동티모르 주민은 주민투표에서 78.5%의 압도적다수로 독립을 원했다. 수백년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주민들의 독립의지를짓밟는 식민지배 동조세력의 반인륜적, 반인권적 학살극을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가 70∼80년대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 투쟁을 벌일때 국제사회의 지원과 성원은 큰 힘이 되고 용기를 주었다. [베트남 참전의 득실] 우리는 8년5개월 동안 국군 32만명을 베트남에 파견하여 월맹군 4만1,000여명을 사살하고 5,000여명의 아까운 아군희생자를 냈다. 베트남 파병은 조약상의 의무가 아닌,미국측이 파병 대가로 전력증강과 차관공여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용병’이란 비판도 따랐지만 약 10억달러의 외화를 획득하여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자원부국으로 인구 2억이 넘는 인도네시아에는 이미100억달러 상당이 투자되고 교민·근로자 등 2만여명이 거주한다. 민족주의세력이 군부를 앞세워 외국군대 주둔에 저항하거나 현지 민병대와 충돌할 경우 두나라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없지 않다. 우리 군은 민병대와 현지주민사이에서 평화와 안전의 중재자 역할만 해야 한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교민과 상사 주재원들의 안전문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비상사태시의 보험] 우리는 세계유일의 냉전지대라는 화약고를 안고 산다.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중이지만 언제 열전화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반도의 유사시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으로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책임을마다해서는 안된다. [파병부대의 성격] 자위권 행사와 평화유지기능 행사를 위해서는 경무장보병요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호전적’이란 인식을 불식시키려면 특전사보다 다른 정예부대를 선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파견부대원 선발은 지원자를원칙으로 하고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참여가 많았으면 한다. 김삼웅
  • 파이낸스 파동 진정 기미

    부산지역 파이낸스업계가 전면 마비라는 파국은 넘길 수 있을 것같다.상당수 파이낸스업체들이 16일 예탁금 환불을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의 동요가 일단 진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11개 대형 파이낸스사 가운데 한라와 NC,대민 등 자금여력이 있는파이낸스사들은 이날부터 만기 투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한라는 1억원 한도내에서 중도해지 원금도 환불했다.반도파이낸스는 만기 투자금을 두차례로나누어 10일이내에 지급하되 추석이후에는 중도해지금까지 환불해 주기로 했다.한결·삼익 파이낸스도 반도파이낸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기투자금을 환불하기로 했다.나머지 업체들도 간부들이 자금 확보에 나서는 등 사태 진정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영업점에서 해지 요구와 문의 전화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등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삼부와 청구 파이낸스 투자자들은 전날에 이어 모임을 갖고 경영실태 등을파악해 관계자들의 책임을 묻되 회사를 살리는데 적극 협조한다는데 뜻을 모았다.청구파이낸스 채권자 대책위원회는 모임을 갖고 1,600여 투자자들로부터 200여억원에 달하는 차입증서 사본을 넘겨 받아 재산실태를 파악해 재산압류 등 법적 조치가 끝나는 대로 회사정상화 절차를 밟기로 했다.삼부파이낸스 투자자들도 회사측과 모임을 갖고 관계자들의 민·형사상 책임은 묻되모든 채권과 채무를 동결시켜 회사살리기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편 ‘청구 사태’를 수사중인 부산 남부경찰서는 윤모(33) 부산총괄본부장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투자금을 김석원회장이 비서실을 통해 직접운용해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대한시론] 日국왕 訪韓前 풀어야 할 일

    지난 9월 2일 김종필 총리는 한·일 총리회담에서 아키히토 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하면서,“2002년 월드컵 이전에 방한이 이뤄지면 한·일관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내년이나 2001년의 방한을 거듭 요청했다.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한 한국정부의 자세가 국민의 미묘한 대일 정서까지 고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먼 시각에서 볼 때 일말의 전진적인 점을 엿볼 수있다. 그러나 김 총리가 지난번 방일에 이어 이번에도 공식석상에서 일본어 실력을 과시한 것이라든가 국민의 대일 정서에 앞질러 ‘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하는 정부의 자세는 아무래도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개인적으로는일본이 과거 저지른 문제의 해결 없이 방한하는 것은 반대한다. 한국정부의 거듭된 일본국왕 방한요청에 대한 오부치 총리의 답변은 ‘환경 조성에 양쪽이 노력해 나가자’는 것이었다.‘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밝힌 것이지만,뒤집어보면 한국이 분위기를 잘 조성해 더 간절히 요청하면방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다.대답의 이면에는 일본국왕의방한이 그동안 잠재우고 있던 한국인의 대일 정서를 자극해 예측할 수 없는결과를 돌출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점도 숨겨져 있다고 본다. 오부치 총리의 대답은 한국민의 내면에 흐르는 형언하기 어려운 대일 정서를 한국정부보다 더욱 면밀하게 간파한 것이지만,환경 조성은 오히려 일본측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무엇이 일본정부로 하여금 ‘일왕방한’ 요청에 ‘환경 조성’을 이유로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하게 하는가.또 그 소리냐고 역정을 낼지 모르지만,한마디로 그것은 일본이 청산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과거사의 문제이다.한·일관계에서 아킬레스건처럼 중요한 대목마다 소리없이 나타나 양국 관계의 진전을 괴롭히고 있는 망령같은 존재가과거사이다.일본은 잊어버리기를 원하지만,한국인은 해방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아직 그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일본국왕’의 방한이 바로 그런 과거사의 고리를 끊는 ‘환경 조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한국민은 한국정부만큼 그의 방한을 환영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언제 이뤄질는지 알 수 없는 방한에 앞서,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의 앙금을 걷어내려는 일본국왕의 노력과 결단이 기대된다. 불행했던 과거사 청산문제를 다시 건드리는 것은,그같은 잘못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촉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한·일간 과거사청산문제는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고 현재의 문제이며,한·일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북한과 일본,중국과 일본의 문제이기도 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다. 세계는 지금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지역간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동북아시아지역만 분단과 냉전체제,일본 군국주의의 미청산으로 지난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한·일간 과거 청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관계,나아가 세계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일본국왕은 그의 증조부 이래로 왜곡된 한·일관계의 한가운데 자리했던 만큼 방한에 앞서 과거 군국주의 침략행위에 대한 명백하고 솔직한 사죄가 있어야 한다.이것은 한국에 대한 표명일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것이며,일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더 높이는 계기도 된다. 일본이 청산해야 할 과거사는 이제 일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동학혁명 이래 부당한 군대 파견으로 동학군과 의병·독립운동자 수십만을 사살하였고,불법적으로 행한 한국 강점에 수많은 문화재의 강탈과 수탈통치,일제말기 100만이 넘는 노동자들의 강제연행과 사할린 동포,강제연행자들이 저축해놓은 저축금의 미반환 문제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지금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377차까지 행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보여주듯이,일본정부가 관여를 부정하고 있는 약 10만∼20만의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배상문제는 유엔 소위에서까지 결의된 것이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한국인들은 제사 때마다 일제에 의해 무참히돌아간 조상의 죽음에 동참하며 일본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한다. 한국인의 이런 고통의 한가운데 아직도 ‘일본국왕’이 자리하고 있다.과거사에 대한 앙금을 걷어내려는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진다면,일본국왕은 한국의 국립묘지에서 일본 국민들을 대표하여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 향불을 피우는 것도 거리끼지 않을 것이다.일본국왕의 방한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그때 한국민도 마음으로부터 일본국왕을 환영할 것이다. [李萬烈 숙명여대교수·한국사]
  • 민혁당 구축 간첩5명 구속

    북한이 80년대 학원가의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남한 내 지하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구축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국정원·원장 千容宅)은 9일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수사결과를 발표,‘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36),조유식(曺裕植·35·전 ‘말’지 기자),하영옥(河永沃·36.무직),심재춘(沈載春·29·대학강사),김경환(金京煥·35·‘말’지 기자)씨 등 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씨와 조씨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감안,공소보류 의견으로,하씨와 심씨는 기소의견으로 각각 검찰에 송치했다.김경환씨에 대해서는계속 수사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해군이 전남 여수 해안에서 격침시킨 반잠수정에서발견된 ‘전화번호 수첩’ 등을 단서로 격침 당시 사살된 간첩이 국내에서암약하던 진운방이라는 사실과 함께 민혁당의 실체 및 김씨 등 용의자들의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
  • 격침된 北 반잠수정 유류품서 단서 발견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2월 남해에서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발견된 ‘전화번호 기재 수첩’ 등을 단서로 사살간첩의 행적과 국내 연계망을 추적한 끝에암호로 적혀있던 김영환씨를 비롯한 용의자들의 전화번호를 밝혀냈다. 때마침 97년 10월 이후 중국에서 장기 체류하던 김씨가 어머니 조성자씨를통해 청와대에 입국 허용 탄원서를 제출한 뒤 지난 7월 29일 자진 귀국하자수사에 활기를 띠었다. 국정원은 8월9일부터 16일까지 김씨를 상대로 4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인 끝에 “89년7월 남파간첩 윤택림(56·북한 대외연락부 5과장)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한 후 91년 5월 서울대 1년 후배인 조유식씨와 함께 입북했다”는진술을 받아냈다.김씨 등은 공작원 전용시설인 모란 초대소에서 14일동안 체류하면서 국내정세 등을 보고하고 김일성과 묘향산 별장에서 2차례에 걸쳐면담한 뒤 김일성 훈장까지 받았다. 김씨는 91년 8월 경기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의 드보크에서 미화 40만달러(당시 약 3억원)와 권총 2정,무전기 3대,난수표 등을 확보한 뒤 92년 3월16일 북한의 지령에 따라 주사파 운동권인 반제청년동맹을 주축으로 민혁당을 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김씨는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주사파 활동뿐만 아니라 민혁당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하자 심경변화를 일으켜 지난달 16일 ‘말’지를 찾아가 “국정원이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하려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고 잠적했다.국정원은 소재를 추적하던 중 18일 홍콩으로 출국하려던김씨를 김포공항에서 긴급체포하고 관련자 조유식,하영옥,심재춘,김경환 등을 차례로 연행,혐의 일체를 자백받았다. 김씨는 95년부터 북한이 남한의 진보운동에 대해 배려하지 않고 탈북자의증언을 통해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 실태 등을 알게 되자 민혁당을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였다.이를 눈치챈 북한은 지난해 12월 민혁당의 합법연락원 등으로 활동하던 간첩 진운방을 남파시켰다. 하씨는 김씨가 97년7월 민혁당을 해체하려 하자 이를 인수한뒤 지난해 10월 남파 간첩 진운방에게 ‘원진우’라는 이름의 주민증을 발급받게 해주고 같은해 12월 진을 태운 반잠수정이 격침되자 인터넷 메일을 이용해 북한측과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사이버 간첩’ 활동을 해왔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심씨는 지난해 9월 하씨에게 포섭돼 진운방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무전 및 인터넷을 통해 북한과 접촉한 혐의를,김경환씨는 89년 9월 진운방을 알게된 뒤 노동당에 입당하고 지난해 10월 다시 남파된 진운방이 하씨와 접선토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진운방은 지난 87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 침투,강남 논현동에 ‘삿떼리아 코리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5년간 암약하다 92년 출국한뒤 98년 10월 재침투,‘정성용’,‘원진우’란 가명으로활동해오다 지난해 12월 반잠수정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살됐다. 이종락기자 jrlee@
  • BBC보도 네덜란드女기자 동티모르 수도 딜리 취재기

    영국 BBC방송은 네덜란드 여기자 이레네 슬렉트가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송고해온 현장 취재기를 7일 보도했다.슬렉트기자는 딜리 시내의 유엔 동티모르파견단(UNAMET)본부 건물에 피신해 있으면서 유엔파견단의 속수무책에분노를 나타냈다. [런던 BBC 연합] 지난 며칠 동안 끊이지 않는 총소리 때문에 제대로 잠을자지 못했다. 그동안 480명의 각국 언론인들이 동티모르에서 민병대들의 위협을 받고 철수했으며 이제 이곳에는 20명만 남아있다.UNAMET 주변 도처에서화재가 일어나고 있다. 민병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불을 지른 뒤 우리가 도망가려 하면 사살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인도네시아인들이 딜리에 건설한 모든 건물과 사회간접자본들이 체계적으로 불에 타 사라지고 있다.대학과 정부기관등 모든 것이 불에 탔다.식량과 물이 부족하다.파견단 본부 건물 내에는 이제 이틀분의 식량과 식수만 남아있다.시내 역시 모두 민병대들에 의해 불타고 약탈당하고 있다.파견단 본부 건물에는 현재 약 2,000여명이 있으며 대부분 민병대의 공격을 피해들어온 사람들이다.동티모르 주민들은 그동안 교회나 성당에서 성직자들의 보호를 받아왔으나 최근 민병대들이 이들을 쫓아냈으며 대부분 동티모르 외부로 추방됐다. 나는 이곳에서 파견단의 처사에 분노하고 있다.다가올 상황을 보지 못했던파견단은 주민들에게 주민투표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티모르인들은 투표결과가 발표된 뒤부터 민병대들에 의한 진짜 폭력사태가 시작될 것임을 수개월 전부터 경고해왔다.그러나 유엔은 이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동티모르인들은 외국 언론인 극소수라도 남아있는 것을 안도하고 있다.이곳 딜리에서만 약 5만명이 추방됐다.파견단은 동티모르 주민중 3분의 1이 이동중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이곳에 그대로 남겨져 학살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이들이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 체첸사태 갈수록 악화…80여명 사망

    [그로즈니·마하치칼라(러시아)외신종합] 체첸 회교반군의 다게스탄 침투가 러시아-다게스탄-체첸 3개국 분쟁으로 확산,94∼96년 체첸 독립전쟁 이후최악의 사태를 빚고 있다. 러시아군은 15일 다게스탄 보틀리흐등지 산악지대의 체첸 회교반군 장악 7개 마을에서 SU-25 대지공격기와 헬기,탱크 등을 동원해 야간공습을 감행,80여명의 반군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내무부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다게스탄 지원병과 합세해 체첸에서 넘어온 회교 반군세력을 격퇴했다면서 다게스탄 남서부 가가틀리 마을 부근에서 반군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연방군은 또 포병대의 지원을 받으며 다게스탄 남서부 보틀리흐 지역내 2개 마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이 과정에서 러시아군도 3명이사망하고 8명이 부상했다. 한편 회교반군 지도자인 체첸 출신 샤밀 바사예프는 “우리는 2단계 군사작전에 대한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해 장기전을 예고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공화국 대통령도 15일 확전에 대비,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체첸 국방부와 내무부 소속의 전부대가 경계태세에 들어가고 야간통금령이 시행됐다.
  • 김희로씨 오늘 가석방 신청

    ?도쿄 연합? 일본 법무당국은 15일 도쿄(東京) 후추(府中)형무소에서 복역중인 무기수 재일한국인 김희로(金嬉老·70)씨의 가석방을 16일쯤 간토(關東)지방 갱생보호위원회에 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 김씨는 이 위원회가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9월쯤 석방된다. 법무당국은 사건이 발생한 지 31년이나 지나 고령인 김씨의 가석방을 촉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한국의 박삼중(朴三中)스님이 후견인으로나서게 됨에 따라 가석방 신청수속을 밟기로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씨는 지난 68년 2월 일본인 조직폭력배 2명을 사살한 후 도주하던 중 인질극을 벌인 죄로 75년 일본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었다.
  • 러, 회교반군 맹폭격

    러시아 정부가 다게스탄 공화국을 점령한 체첸 반군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한데 이어 12일 대규모 병력을 파견,제2의 체첸사태가 우려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회교반군 진압이 정국혼란을 돌파하기 위한고의적인 음모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러시아 군 소식통에 따르면 포병대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 제트기와 공격 헬리콥터들이 이날 체첸 접경 탄두르와 라흐타 마을의 반군 거점을 맹폭,반군150명이 숨지고 300여명이 부상했다. 러시아군은 또 반군 거점인 남부의 보틀리흐와 남서부의 추마다 지역의 군사령부와 대공포 진지를 맹폭,큰 타격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서리는 13일 “다게스탄내 반군진압 작전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인테르 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러시아는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다게스탄에 증파했으며 수일내 회교반군 진압을 위한 ‘대규모 작전’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현재 회교반군진압에는 러시아 공수부대를 비롯,내무부 소속 102여단과 국방부의 136 차량화 소총여단 등이 참여하고 있다. 체첸 반군측은 12일의 전투에서 입은 반군 손실은 거의 없으며 러시아 헬리콥터 1대 격추,장교 1명 사살 및 고위 장성 3명 부상 등의 전과를 올렸다고주장하고있다.반군 지도자인 샤밀 바사예프는 산악지역 14개 마을을 장악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전투중 헬기 4대와 비행기 1대,장갑차 9대를 파괴했다고 반박했다. 최대 2,000명의 회교반군들은 지난 7일 다게스탄내 접경 3개 마을을 점령하자 러시아군과 다게스탄 정부군은 즉각 진압작전에 들어갔으며 10일 반군측이 이슬람회의를 열어 다게스탄을 러시아 공화국에서 분리된 독립국가로 선포함과 동시에 ‘성전(聖戰)’을 선포하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그러나 일부 러시아 언론들은 크렘린측이 오는 12월로 예정된 의원선거를연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태를 고의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음모설을 제기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희준기자 p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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