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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라덴 사살 이후] 美 이젠 시신사진 공개 두고 ‘골머리’

    [빈라덴 사살 이후] 美 이젠 시신사진 공개 두고 ‘골머리’

    미국 정부가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을 공개할까. 미 정부 당국은 빈라덴을 사살한 지 하루가 지난 2일(현지시간)까지도 이 물음에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담당 보좌관은 브리핑에서 ‘무슬림 세계의 음모론을 피하기 위해 빈라덴의 사진을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는 “빈라덴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는 근거를 갖지 못하도록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면서 “공개할 정보에 사진도 포함할지는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시신 사진을 공개하면 미국은 음모론이나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다. 반면 시신 사진 공개가 알카에다를 겨냥한 유사한 작전이나 정보원을 노출시킬 가능성도 있어 미국은 이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는 머리와 안면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빈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있다는 후문이다. 미 의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상원 국토안보위원장인 무소속 조 리버만 의원은 “백악관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미국 정부의 계략이라는 주장을 정리하기 위해 사진을 공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도 “터무니없는 얘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진이나 비디오, DNA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원 정보위원장인 공화당 마이크 로저스 의원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그가 죽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숨 가빴던 오바마 ‘그러나… ‘포커페이스’ 72시간

    [빈라덴 사살 이후] ‘숨 가빴던 오바마 ‘그러나… ‘포커페이스’ 72시간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 공습을 승인한 시점부터 그를 사살하면서 작전을 마무리짓기까지 72시간 동안 버락 오바마(얼굴) 미 대통령은 철저한 ‘포커페이스’로 주변의 눈을 따돌렸다. ●만찬서 ‘빈라덴’ 농담 듣고 껄껄 아내 미셸과 두 딸 샤샤, 말리아와 함께 지난달 29일 백악관을 떠난 오바마 대통령의 첫 방문지는 토네이도 최대 피해지역 가운데 한 곳인 앨라배마주였다. 뒤이어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의 발사를 참관하려던 오바마 대통령은 기계 결함으로 발사가 돌연 연기되자 미 항공우주국(NASA) 시설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틀었다. ●작전 당일에도 골프 ‘딴짓’ 심지어 작전 전날인 30일 워싱턴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빈라덴에 대한 농담이 나오자 오바마는 껄껄 웃어넘기는 태연함까지 보였다. TV 진행자 세스 마이어스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사람들은 빈라덴이 힌두쿠시 산맥을 숨어다닌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진행하는 CSPAN TV쇼에 그가 매일 오후 4~5시 출연하는 거 알고 있어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작전 당일인 1일에는 워싱턴DC 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골프를 하기도 했다. 오바마가 9홀만 돌고 4시간 만에 골프를 끝낸 것을 두고 기자들은 비 오는 날씨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각 그는 빈라덴 공습 작전을 마지막 검토하는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빈라덴의 최후’ 오바마 백악관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빈라덴 사살 이후] ‘빈라덴의 최후’ 오바마 백악관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우리는 작전 개시 때부터 목표물 발견, 시신 이동까지 모든 작전 상황을 ‘실시간으로’으로 모니터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0분에 걸친 오사마 빈라덴 공격작전을 백악관 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백악관 측이 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의 브리핑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상황실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과 함께 작전을 최종 점검했다. 그리고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화면을 통해 작전 모습을 지켜봤다. 브레넌 보좌관은 “아마도 백악관 상황실에 모였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초조하고 불안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라면서 “몇분이 며칠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실시간 상황 점검은 현장 전투요원들이 헬멧에 착용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암호화된 상태로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백악관 상황실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교전상황 생중계에 사용된 핵심 위성은 국방위성통신시스템(DSCS)3와 밀스타 시스템이다. 밀스타는 더 뒤에 개발된 위성으로 안정적인 통신을 가능케 하지만 DSCS3만큼 많은 신호 대역폭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 시스템은 지상 기지나 정박 중인 선박, 또는 공격용 헬리콥터에 설치된 통신 단말기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브레넌 보좌관에 따르면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작전 상황을 지켜보다 마침내 특수부대원이 진입한 건물에서 오사마 빈라덴과 마주치자 상황실에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특수부대가 습격한 은신처에 정말로 숨어 있는지 100% 확신하지 못했는데 화면을 통해 그를 발견하자 모두들 ‘작전 성공’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곧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특수부대원들한테서 암호명 ‘제로니모 E-KIA’를 보고받고서야 작전을 무사히 마쳤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로니모(1829~1909)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파치족 추장으로 미군에 맞서 신출귀몰한 활약을 펼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1885년 전후로 미군이 제로니모를 붙잡기 위해 동원한 군인이 5000명이 넘었을 정도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오사마 빈라덴에게 제로니모란 암호명을 붙인 것도 두 사람이 이미지가 상당히 겹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E-KIA’(Enemy Killed In Action)는 적이 사살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오바마 대통령이 전해 들은 ‘제로니모 E-KIA’는 임무 완수 신호였던 셈이다. 백악관은 어떤 기술, 어떤 경로로 현장상황을 실시간 전송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수장(水葬)/이춘규 논설위원

    장례(葬禮)문화는 주로 자연과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 불교는 화장(火葬)을 확산시켰다. 고대유럽의 화장 풍습은 매장이 주류인 기독교 전파로 끊겼다. 유럽엔 방부처리 뒤 교회·궁전의 지하나 복도에 안치하는 실내 안치장이 많다. 사체에 화장을 시키고 방부처리, 보존하는 엠바밍은 미국·캐나다에 많다. 영국의 스톤헨지는 축제나 장례의식이 행해졌던 곳. 고대국가 출현 뒤 피라미드·진시황릉·장군총 등 거대한 통치자 무덤이 건설됐다. 네안데르탈인은 시신 매장 때 생전 사용했던 물건을 함께 묻었다. 신석기시대 무덤에선 시신 위에 꽃을 놓아둔 것이 발견됐다. 매장(埋葬)은 흔한 장례문화. 수장(水葬)은 방글라데시에 남아 있다. 풍장(風葬)은 시신을 그대로 혹은 관에 넣어 야산·동굴 등에 두어 풍화작용이 일어나도록 한다. 고대 이집트나 잉카제국 등에서는 미라장이 많았다. 고대 로마에는 카타콤베라 불리는 지하동굴장도 있었다. 과학의 발달은 냉동장·우주장을 출현시켰다. 성스러운 땅 티베트의 조장(鳥葬). 시신을 새들이 쪼아먹기 좋게 특별한 대에 안치해 두는 장례다. 새가 시신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뼈까지 잘게 썰어 두기도 한다. 영혼이 새와 함께 하늘로 날아간다는 내세관 때문이다. 천장(天葬)이라고도 한다. 바이킹족들은 시신을 통나무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히는 수장을 했다. 선장(船葬)이라고도 한다. 1958년 작 커크 더글러스 주연 영화 ‘바이킹’은 장엄한 바이킹식 수장 장면과 함께 끝난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대왕암은 우리나라의 수장 사례다. 항해 중 사망자가 발생하면 선장이나 함대사령관의 직권으로 수장할 수 있게 법률로 규정된 나라가 많다. 우리 조상들은 땅에 시신을 묻어 봉분을 만드는 장례법이 일반적이었다. 풍장도 있다. 서민들이 명당에 조성된 권세가의 묘에 몰래 매장하던 투장(偸葬)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은 화장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미군에 의해 사살된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이 수장됐다고 한다. 빈라덴의 종교인 이슬람식에 따르자면 그가 숨진 곳인 파키스탄에 토장(土葬)을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측은 토장을 하게 되면 그곳이 이슬람 세력의 반미 운동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수장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말 수장을 했는지, 했다면 어디에 했는지도 미궁이다. 그는 죽었지만 한동안 쑥덕공론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항모서 시신 씻겨 가방에… 이슬람 장례후 추 매달아 水葬

    [빈라덴 사살 이후] 항모서 시신 씻겨 가방에… 이슬람 장례후 추 매달아 水葬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지 하루가 지나면서 구체적인 작전 당시 상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빈 라덴의 무장저항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빈 라덴이 현장을 급습한 미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과 마주한 순간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 빈 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아 총을 쏘며 미군에 저항했다는 설명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백악관의 설명이 맞다면 비무장 상태인 빈 라덴을 굳이 사살한 이유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빈 라덴의 최후의 순간에 대한 설명이 뒤집힌 이유에 대해 백악관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미 정부 당국은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요원 25명을 태운 블랙호크 헬기 4대가 파키스탄 시간으로 2일 새벽 1시 15분쯤 은신처를 급습하면서 작전은 시작됐다고 밝혔다. 빈라덴과 가족들은 3층짜리 맨션 건물 중 1~2층에 머물고 있었다. 빈라덴은 네이비실 요원들이 들이닥치자 같이 살던 한 여성을 인간 방패 삼아 AK47 자동소총을 쏘며 저항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이 여성이 빈라덴의 부인 중 한명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백악관 관계자는 “부인이 아니라 빈라덴이 비상상황에서 인간 방패로 이용하려고 데리고 있던 여성이었다.”고 정정했다고 CNN과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브레넌 보좌관은 “빈라덴은 (치졸하게도) 여성을 인간 방패로 삼는 인간이었다.”고 비난했다. 40여분의 작전 시간 중 마지막 10분 사이에 빈라덴은 머리와 가슴에 총을 한방씩 맞고 즉사했다. 인간 방패로 이용된 여성과 빈라덴의 아들 한명, 연락책 남성 두명도 네이비실의 총격에 숨졌다. 반면 빈라덴의 부인과 다른 여성 한명은 부상만 당했다. 네이비실 요원들은 절명한 빈라덴의 얼굴을 확인한 뒤 들것에 실어 헬기로 날랐다. 헬기는 시신을 아라비아해 북부에서 작전 중인 미 항공모함 칼빈슨함으로 옮겼다. 항모 위에서는 간략한 이슬람식 장례절차가 진행됐다. 미군 관계자가 주관했고 현지인을 통한 아랍어 통역이 이뤄졌다. 시신은 씻긴 뒤 하얀 천으로 덮어 관 대신 가방에 담아 바닷속으로 미끄러뜨리듯 빠뜨렸다. 시신이 물에 뜨지 않도록 가방에 추를 매달았다. 미 정부 관계자는 “사망한 지 9시간 만에 수장된 셈”이라면서 “빈라덴의 시신은 찾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빈라덴 사살에서 수장까지의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은 치밀한 준비 덕분이다. 네이비실은 빈라덴의 은신처와 닮은 모형 건물을 만들어 놓고 수차례 실전연습(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미국 측은 은신처를 발견한 뒤 습격하기까지 8개월 동안 한번도 빈라덴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통해 빈라덴이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작전 개시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라고 CNN은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미군이 빈라덴의 시신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인도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는 설도 나돈다. 이런 가운데 알카에다의 유력 이론가인 ‘아사드 알 지하드2’(온라인 필명)가 빈라덴의 사망 사실을 인정하고 복수를 다짐했다고 이슬람권 웹사이트 SITE가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네이비실 40분 만에 작전완료… “빈라덴 시신 바다에 수장”

    네이비실 40분 만에 작전완료… “빈라덴 시신 바다에 수장”

    2009년 1월 취임하기가 무섭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은밀하게 백악관으로 호출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일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은 빈라덴에 대한 정보망을 더욱 열심히 돌렸고 마침내 석달 뒤인 그해 4월 심상찮은 단서가 포착된다. 빈라덴을 숨겨 주고 있는 남자의 소재를 통해 빈라덴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곳이 파악된 것이다. 그곳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은신처는 주변의 집들보다 8배나 크고 고급스러운 3층짜리 고급 아파트였다. CIA는 그 건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차츰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CIA는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빈라덴의 은신처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고 정식으로 보고한다. 하지만 100%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더 확인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CIA는 8개월을 더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확신이 들면서 오바마 안보팀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확인된 것만 3월 14일과 19일, 4월 12, 19, 28일 등 다섯 차례의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팀 회의가 열렸다. 물론 여기에는 극소수의 핵심 멤버만 참여했고 웬만한 고위 각료들도 정보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아침 8시 20분 오바마 대통령은 토네이도 피해를 입은 앨라배마로 가기 직전 빈라덴에 대한 공격작전을 승인했다. 헬기에 소규모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을 실어 은신처를 습격하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CIA는 작전 D데이를 일요일인 1일로 잡았다. 아무래도 상대편이 긴장을 풀기 좋은 때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1일 오후 1시 백악관에 오바마 대통령과 극소수의 참모들이 모여 공격을 위한 최종 점검을 했다. 3시 32분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다. 3시 5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현재 은신처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파키스탄 시간으로는 2일 새벽 1시 15분)부터 30분 동안 은신처에 대한 공격이 헬리콥터를 통해 이뤄졌다. 이후 네이비실 요원 20~25명이 헬기를 통해 현장에 투입됐고 지상에서 약 40분간 임무를 수행했다. 헬기의 집중 공격으로 은신처는 화염에 휩싸였다. 상황을 목격한 현지 주민에 따르면 미군 헬기들이 빈라덴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자 빈라덴 측 병사들은 지붕에서 로켓식 유탄 발사기를 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했다. 추락 헬기에 탄 네이비실 요원들은 헬기를 부수고 밖으로 나와 작전에 가담했다. 빈라덴은 그 후 양측 간 총격전의 와중에 최후를 맞았다. 사살 당시 상황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CNN은 이번 작전에 정통한 미 의회 소식통과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 빈라덴이 머리에 총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시간으로 저녁 7시 1분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보고를 받는다. 8시 3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망한 게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후 백악관 참모들은 의원들과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에게 대통령이 곧 중대한 발표를 할 것임을 알린다. 밤 11시 35분 오바마 대통령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빈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사살됐다고 확인하면서 “정의는 실현됐다.”고 말했다. 미 특수부대는 교전 직후 빈라덴의 시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신을 헬기로 옮긴 뒤 바다에 수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의 한 관계자도 이날 “빈라덴의 시신은 수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수장된 곳이 어느 바다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도자를 잃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이나 추종세력이 어느 바다인지 알게 되면 빈라덴의 주검을 탈취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국민에 대한 약속 지켰다”… 美전역 휴일밤 ‘승리의 환호’

    “국민에 대한 약속 지켰다”… 美전역 휴일밤 ‘승리의 환호’

    일요일 밤 잠자리에 들려던 미국 국민들은 뜻밖의 엄청난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지난 10년간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잡지 못했던 오사마 빈라덴을 미군이 사살했다는 소식이었다. TV에서 접한 뉴스 속보를 시민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실어나르면서 순식간에 미국 전역이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동부 시간으로 밤 11시가 넘은 심야에 워싱턴 시민들은 백악관으로 몰려가 ‘USA’를 연호하고 미국 국가를 목청껏 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기념촬영을 하는 시민들도 보였다. 삽시간에 백악관 뒤편 라 파예트 광장은 시민들로 가득 찼고 시내 곳곳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와 시민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9·11테러 현장인 뉴욕의 ‘그라운드제로’에도 시민들이 몰려 환호했다. 9·11 테러 당시 구출작업에 참여했다는 케네스 스페치는 CNN 인터뷰에서 “오늘 밤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미 국방부를 겨냥해 날아간 항공기에 타고 있다가 사망한 승무원의 여동생인 데브라 벌링게임은 “빈라덴이 미군 병사에 의해 사살됐다는 소식을 듣고 스릴을 느꼈다.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성명을 통해 “미국인들은 빈라덴을 사살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9·11테러를 당하고 알카에다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빈라덴의 사망은 미국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이번 임무를 위해 목숨을 내건 미군과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오늘 미국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정의는 실현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9·11테러로 숨진 희생자 가족은 물론 평화와 자유를 원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밤 CNN 등의 일부 기자는 집에서 자다가 불려나온 듯 급히 갖춰 입은 옷에 다소 멍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에서는 한 출연자가 손을 번쩍 들면서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했으며, 진행자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에서 영어로 방송되는 아랍권의 알자지라 방송도 미국 언론과 큰 차이 없이 빈라덴 사망소식과 시민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또 빈라덴 사망 이후 아랍권 정세에 대한 전문가 분석을 인터뷰 형식으로 방송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발표 직전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빈라덴 사망 소식을 통보했고, 조 바이든 부통령도 의회 지도부에 이번 작전을 브리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국 정부는 빈라덴 사살로 인한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에 대비해 재외공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자국민에게 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국무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빈라덴의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한 직후 성명을 통해 미국인을 겨냥한 폭력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빈라덴 사살” 테러戰 1막 끝났다

    美 “빈라덴 사살” 테러戰 1막 끝났다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키며 지난 10년 동안 지구촌을 아프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 속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 오사마 빈라덴(54)이 마침내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밤(워싱턴 현지시간) 미 특수부대가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 교전을 벌인 끝에 그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빈라덴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고급 맨션에 머물고 있었다. 미 특수부대의 기습은 파키스탄 시간으로 2일 새벽 이뤄졌다. 이날 작전으로 빈라덴의 아들 1명을 포함한 남자 3명과 여자 1명도 사살됐다고 AP통신이 미국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교전 중 미군 피해는 없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밤 12시쯤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발표한 성명을 통해 빈라덴 사살 소식을 전한 뒤 “빈라덴의 사살은 (지난 10년간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며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주요 서방 각국은 이날 빈라덴 사살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반미 노선 국가들은 빈라덴 사망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등 엇갈린 기류를 보였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반미·반서방 테러를 주도해 온 빈라덴의 죽음으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 전기를 맞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사망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빈라덴의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미국을 향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언 패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날 “빈라덴을 잃은 테러리스트들은 거의 확실히 복수를 시도할 것”이라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빈라덴 사살에 반발하는 반미 테러 세력들이 조만간 세계 각지에서 무장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해외 공관에 경계강화를 지시하는 한편 해외여행에 나서는 자국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심야 발표에서 “수년간 공들인 작업 끝에 지난해 8월 빈라덴에 대한 단서를 보고받았다.”며 “수개월간의 정보 확인 뒤 지난주 우리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확보해 빈라덴을 잡아 법정에 세우기 위한 작전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공격작전을 승인했다고 AP 등이 전했다. 한편 빈라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은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에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에서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carlos@seoul.co.kr
  • 사살소식 후 주가 껑충·달러 강세 “알카에다 예측불가… 반짝 호재”

    사살소식 후 주가 껑충·달러 강세 “알카에다 예측불가… 반짝 호재”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소식에 세계 주가는 오르고 원자재값은 떨어지고 미 달러화는 강세를 보였다. 호재이긴 하지만 구심점을 잃은 알카에다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이라는 점에서 반짝 호재에 그친다는 전망이 대세다. ●코스피 2228.96… 사상 최고치 2일 코스피 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36.60포인트(1.67%) 오른 2228.96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154.46포인트(1.57%) 상승한 1만 4.20에 마감됐다. 지난 3월 14일 이후 처음으로 1만선 돌파다. 장 초반부터 오름세를 기록하다가 빈라덴 사살 소식에 상승폭이 확대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6.15원 내린 1065.34원으로 급락했다. 2008년 8월 25일(1064.10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5%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고 금·면화 등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빈라덴 사살 소식이 세계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미국 소비 심리 개선과 소비 확대→미 경제 회복 가속화→세계 경제에 긍정적 영향 등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우선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의 ‘경고’까지 받았던 미 재정적자의 축소 가능성이다. 빈라덴 사살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에서 10년간 벌어지던 미국의 추격전은 끝날 전망이다. 홍순표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전쟁이 끝나 군비지출이 줄면서 재정 건전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미 경제와 증시의 신뢰감을 높여 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직접 영향보다 美소비심리 개선 긍정” 지난달 말 발표된 4월 미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는 69.8로 전월보다 개선됐다. 빈라덴 소식 외에도 야외 활동이 많은 드라이빙 시즌에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설 빌미가 제공됐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미국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서서히 개선되고 있는 고용시장까지 가세하면 소비 심리 개선의 증폭 효과가 크다. 미국 소비의 증가는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각국의 수출 증가로 이어진다. 돌발변수는 알카에다의 후속 대응이다. 김중관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알카에다가 점조직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의 활동을 벌여 왔다는 점에서 빈라덴 사살이 알카에다의 무력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경하·오달란기자 lark3@seoul.co.kr
  • SNS 이번에도 20분 빨랐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소식을 가장 먼저, 가장 멀리 퍼뜨린 것은 이번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발표하기 20여분 전에 트위터에 관련 소식이 처음 올라온 데 이어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공식 발표 시점에 온라인에선 이미 ‘오사마 빈라덴 사망’이 기정 사실로 회자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 45분 댄 파이퍼 백악관 공보국장은 백악관 기자단에 “오늘 밤 동부시간 10시 30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한다.”고 공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문을 손보고 있던 오후 10시 25분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의 보좌관을 지낸 케이스 어반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빈라덴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곧이어 “그것이 사실이길 빈다.”고 썼다. 비슷한 시간 CNN 기자가 “국가안보와 관련한 중대 발표가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등 다양한 경로로 빈라덴 사망 소식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선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발빠르게 ‘오사마 빈라덴 사망’ 페이지가 등장했다. 이 페이지는 한 시간여 만에 20여만명이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현했다. 한편 미군 특수부대의 빈라덴 제거 작전은 부근에 살던 33살의 정보기술(IT) 컨설턴트 소하이브 아타르에 의해 생중계됐다. 그는 트위터에 “지금 새벽 1시(파키스탄 시각)인데, 아보타바드 위로 헬리콥터가 날고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어 “창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헬리콥터 중 파키스탄의 것이 아닌 게 있다고 한다.”고 올렸다. 이어 1시간 뒤 “헬리콥터 또는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비랄 마을 지역에 격추됐고 불빛이 비쳤다. 택시 운전사에게서 들었는데, 군인이 추락 지점에 저지선을 치고 주위의 집집마다 다니며 수색하고 있다.”며 “추락한 헬리콥터는 외국의 코브라 헬리콥터라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그가 처음 트위터를 시작한 지 7시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 사살을 공식 발표했다. 아타르는 뒤에 “오우, 나는 그것이 빈라덴에 대한 공격인 줄 모르고 실시간 블로그에 생중계한 사람이 됐군요.”라고 썼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10년만의 개가… ‘이름값’한 美 정부 기관들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제거로, 그동안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네이비실(Navy SEAL)이 오랜만에 웃을 수 있게 됐다. 빈라덴의 목에 2500만 달러(약 266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던 미 행정부도 체면치레를 하게 됐다. ●CIA ‘전담팀’ 불구 9·11테러 못 막아 CIA는 지난 10년 가까이 신출귀몰한 빈라덴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는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서도 최종 확신을 갖기까지에는 신중을 거듭했다. 그 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정식 보고를 CIA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발표에서 “첫 보고를 받은 뒤 정보를 확인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고 밝혔다. CIA는 마지막 순간에 빛나는 정보력을 발휘했으나 9·11테러 이후 10년 동안 헛발질을 되풀이하며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알카에다가 1996년 필리핀을 방문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CIA는 ‘빈라덴 전담팀’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감시에 실패해 2001년 9월 11일 본토를 공격당했다. 또 미국은 빈라덴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토라보라 산악지대의 복잡한 동굴 연결망에 숨어 지내는 것으로 예상해 이곳을 여러 차례 폭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산악 지역은 지형이 파키스탄 정보기관도 침투할 수 없을 만큼 산세가 험해 서방 정보조직 사이에서는 “진정한 블랙홀”로 통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8년 테러와의 전쟁이 ‘소득 없는 싸움’이라는 비아냥을 듣자 빈라덴 체포를 위해 정찰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나 빈라덴이 안전 문제에 민감해 팩스나 전화기 등 추적 가능한 통신기기를 쓰지 않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CIA도 행방을 쫓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폭로 전문 위키리크스가 2001년 미국의 아프간전 개시 직후 빈라덴이 수도 카불 등 아프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종자를 만나 공격 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CIA의 정보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해군특공대 6년전 실패 딛고 명예회복 미국의 엘리트 부대로 불리던 네이비실도 빈라덴 사살에 성공하면서 구겨졌던 자존심을 회복했다. 미 해군 특공대인 네이비실 부대원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맨션에 있던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40분 만에 작전을 완료했다. ABC방송은 이번 작전에 미군 헬기 2대가 동원됐고 이날 오전 1시 30분~2시에 20~25명의 네이비실 대원들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전 당시 정보 수집과 군사시설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로 군림해 온 네이비실은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더불어 미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총부대원은 2500여명으로 바다와 육지, 상공의 적 정보 분석 등으로 작전 수행을 지원하고 게릴라전과 대테러전, 특수 정찰 작전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투입된 부대원들은 1980년 창설된 테러 진압 특공대인 ‘SEAL팀6’ 소속으로 알려졌다. SEAL팀6는 현재 ‘데브그루’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고도의 체력단련 훈련을 통과한 정예 요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주로 대테러 훈련에만 집중한다. 최근 네이비실의 명성은 쇠락해 왔다. 2005년 네이비실은 아프간 동부 쿠나르 산악지대에서 알카에다 소탕 작전을 펴다 19명의 부대원을 잃었다. 2001년 이후 미군의 단일 작전으로는 최악의 실패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작전의 성공은 네이비실이 명예를 회복할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서린·유대근기자 rin@seoul.co.kr
  • 빈 라덴 ‘현상금 287억원’은 누가 받을까?

    빈 라덴 ‘현상금 287억원’은 누가 받을까?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한 가운데 그에게 걸린 현상금의 행방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첫 테러 이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공식 수배 명단에 오른 빈 라덴은 2001년 11월, 9·11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면서 현상금이 2500만 달러(약 266억원)까지 올라 국제 사회의 적으로 인식돼 왔다. 여기에 미국항공기조종사협회(APA)와 미국항공운수협회(ATT)가 내건 200만 달러(약 21억 원)까지 합치면 빈 라덴 목에 걸린 현상금은 총 2700만 달러(약 287억 원)가 된다. 미국의 공적 1호답게 최고의 몸값으로 알려졌다. FBI는 웹사이트 성명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잡거나 사살하는데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전 세계의 국제 테러 행위를 막은 사람들에게 현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현상금은 빈 라덴을 직접 사살한 미군의 특수부대보다는 정보를 제공한 현지 스파이가 받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파키스탄 정부에서 이 돈을 받아갈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살 소식을 전하던 중 “작전에 도움을 준 파키스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 누구도 현상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정보 당국에서 스파이에게 별도로 ‘정보비’ 명목의 돈을 지급했다면 미군이 직접 사살한 만큼 따로 현상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 2003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생포 때도 현지인 제보자가 있었지만 미군의 회유로 정보를 털어놨다는 이유로 현상금 2500만 달러는 지급되지 않은 바 있다. 당국은 보안상의 이유로 세부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보상금은 발표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명문가 아들로 태어나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의용군 조직으로 활동했다. 이어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 사우디 방어에 나섰고 사우디가 미국인들에게 방어를 맡기자 반대하다 연금됐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어 지내며 대미 테러 활동에 나서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맨해튼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자살테러 사건을 일으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시신 공개 않고 수장 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밝혔음에도 왜 빈라덴의 시신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왜 시신을 수장시켰는지 등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일단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빈라덴이 무슬림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슬람 전통에 따라 시신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슬람 전통은 무슬림이 사망하면 염(殮·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것)을 포함한 간단한 의식을 행한 뒤 24시간 안에 매장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슬람에선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다가 전사한 터키 군인들의 묘가 한국에 있는 것처럼 사망한 곳에 시신을 묻는다는 점에서 미국 측 해명과 차이가 난다. 외신들은 미국이 시신을 수장한 것은 추종 세력이 그의 시신을 탈취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정 지역에 매장했다가 위치가 노출될 경우 이른바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미 관리는 이와 관련, “전 세계에서 수배 대상 1순위인 사람의 시신을 받아들일 국가를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수장 위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보스턴헤럴드는 빈라덴 사살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의문점들을 2일 소개했다. 보스턴헤럴드는 무엇보다 빈라덴에게 걸려 있는 2500만 달러나 되는 현상금을 받게 되는 사람, 즉 그를 사살한 사람의 이름이 공개된 적이 없으며, 빈라덴을 재판에 세우지 않기 위해 생포가 아니라 사살을 택한 것은 아닌지 등을 꼽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오바마 대통령이 사망?!”…美언론 황당 방송사고

    “오바마 대통령이 사망?!”…美언론 황당 방송사고

    철자와 발음도 비슷한 ‘오사마’와 ‘오바마’…“현지인도 실수 연발” 미국 전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으로 뒤덮인 가운데, 한 방송사가 자국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웃지 못 할 방송 사고를 냈다. 지난 2일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지역방송인 ‘폭스40’ 뉴스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소식을 속보로 전하던 중 화면 아래에 ‘오바마 빈 라덴 사망’(OBAMA BIN LADEN DEAD)이라는 자막이 떴다. 앵커가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동안 자막은 여전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방송사가 오바마(OBAMA)와 오사마(OSAMA)의 철자를 혼동하며 생긴 실수인 것. 언뜻 보면 이상할 점이 없을 만큼 비슷한 철자와 발음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과 오사마 빈 라덴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대화할 때에도 자주 틀리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송사고는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가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던 빈 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살됐으며, 그의 시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PRT부대 경계 강화… 재건임무 계속”

    “PRT부대 경계 강화… 재건임무 계속”

    정부는 2일 오사마 빈라덴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바로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오후 늦게 청와대 홍보수석 명의의 성명을 내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외교통상부·국방부는 상황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특히 알카에다 등 테러 조직의 보복 공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향후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李대통령 오바마에 지지 메시지 이명박 대통령은 빈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 것과 관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서면 메시지를 보내 지지의 뜻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테러척결 과정에서 이룩한 중요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 관계자들이 전했다.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도 성명을 통해 “이번 작전이 테러 종식을 향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며 앞으로 국제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현재 제공 중인 지방재건팀의 파견을 포함한 재정적·물적 지원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 연락을 받았다.”며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필요한 조치에 대해 관계부처 간 협의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빈라덴 사망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보복 공격이 있을 수 있으니 경계를 강화하는 등 모든 대책을 협의하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당국자는 “우리도 대테러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전망을 고려할 때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며 “미국이 2년 전부터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작전 강화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미군이 오는 7월부터 아프간에서 철수한다고 하지만 알카에다·탈레반 등 테러 조직의 활동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는 알카에다 조직이 갈수록 글로벌화되고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예멘 등 테러 조직의 근거지 등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의 안전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으로 예상돼 중동 지역 불안에 대한 대책을 강화할 방침이다. 외교부는 전 세계 155개 공관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테러조직 보복 배제 못해 예의 주시 정부는 또 빈라덴 사망이 대테러 활동 차원의 아프간 지방재건팀(PRT) 및 오쉬노부대 운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최근 PRT 부대를 상대로 한 로켓포 공격 등이 있었던 만큼 경계를 강화하는 등 만반의 태세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 당국자는 “아프간 재건 활동이 더욱 필요한 상황에서 PRT 활동은 현 상태가 유지되거나 확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경계태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미군 철수엔 희소식… 자생 테러조직과 전쟁은 지속될 듯

    미군 철수엔 희소식… 자생 테러조직과 전쟁은 지속될 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직접 발표한 오사마 빈라덴 사살 소식은 오는 7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개시를 앞둔 미군에겐 상당한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군이 철군을 시작하면 알카에다 활동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게다가 주요 친미국가인 이집트, 예멘, 바레인 등에서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면서 골치를 앓아 왔던 미국 정부에 빈라덴 사살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사마 빈라덴이 알카에다를 움직이는 유일한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아 자생적으로 생겨난 뒤 알카에다와 연계해 활동하는 급진 테러조직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더구나 탈레반에 미치는 알카에다의 영향력도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을 겨냥한 춘계 대공세를 개시하겠다고 공언해 온 날이었다. 이날 12살 소년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인 팍티카에 있는 한 시장에서 폭탄조끼를 터뜨려 4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AP통신은 이날 벌어진 자살폭탄테러 소식을 전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 심문기록을 인용해 탈레반이 조직적으로 모스크와 이슬람 종교학교 등에서 소년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육군사관학교 소속 대테러전센터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도 탈레반은 미성년자를 위한 별도 테러훈련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대 최연소 자살폭탄테러범’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러조직 수괴’ 처단이 향후 아프간 정세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와 관련,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직후 아프간 전장에서 다리를 잃고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해병대 소속 캐머런 웨스트 소위가 “아프간에서 복무했던 모든 전우들의 승리”라고 기뻐하면서도 “그는 단지 한 명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전했다. 웨스트 소위는 “(아프간에는) 우리가 처치해야 할 적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우리는 반군 전체를 파괴해야만 한다.”면서 “오사마 빈라덴은 뱀의 머리였지만 그 뱀의 머리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그걸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역시 “테러리즘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빈라덴 사살 국제테러 종식의 계기 삼자

    미군 특수부대가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의의 승리라고 기뻐하는 등 미국 언론들은 환호하는 분위기다. 빈라덴은 전 세계를 경악시킨 테러를 주도했고, 그날 이후 10년간이나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잉태시킨 핵심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 더 이상 테러를 지휘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만으로도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그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지는 않는다. 빈라덴의 사망을 테러와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무장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저지른 테러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아프간 전쟁을 시작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무자비한 보복테러로 맞서 왔다. 이로 인해 숱한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환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장기전에서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인 미국 등 막강한 서방국에 맞설 만큼 빈 라덴의 지도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는 알카에다의 정신적 지주이며, 그를 잃은 알카에다는 위축될 수도 있다. 반면 2인자 역할을 해 온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후계자로 나서 조직의 결속력을 강화하려고 빈 라덴 사살에 대한 보복 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다. 오히려 후자의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는 게 후회하지 않는 결과를 남긴다. 지금은 빈라덴의 죽음으로 국제테러가 사그라질 것이라고 섣부른 기대를 할 때가 아니다. 전 세계가 제2의 빈라덴, 제3의 빈 라덴 등장 가능성을 더 경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심야 성명을 통해 빈라덴의 사살 소식을 전하면서 알카에다의 도발에 대한 경각심을 주문했다. 알카에다 역시 민간인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현재의 투쟁방식을 전환하려는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다. 물론 이런 기대만으로는 아프간에 파병돼 있는 국군 오쉬노 부대 장병의 안전을 기약할 수는 없다. 합동참모본부는 탈레반 세력이 춘계 공세에 나선다는 첩보가 있어 부대 경계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한치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일이다.
  • 빈라덴은 누구

    “미국이 우리를 죽이기 때문에 나도 늘 미국인을 죽인다.”고 했던 세계의 공적 오사마 빈라덴. 9·11테러 10년을 4개월 앞둔 1일 미군에 사살되기 전까지 그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지를 오가며 미국의 포위망을 10년간 보기 좋게 따돌렸다. 그런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2500만 달러(약 267억원)였다. 1998년 8월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1999년 연방수사국(FBI)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2001년 9·11테러를 주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수배범이 됐다. 하지만 꼬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1998년 미 대사관 폭탄 테러로 아프간 캠프에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다국적군이 아프간전을 개시한 2001년 말 그가 아프간 산악지대 토라보라의 동굴 요새에서 교전 도중 숨졌다는 소식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파키스탄으로 넘어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야심차게 펼쳤던 대대적인 체포작전도 실패로 끝났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흔적도 없다.”는 굴욕적인 시인을 해야 했다. 이는 탈레반에 충성하는 파슈툰족이 은신처를 제공했기 때문으로 파키스탄에서 빈라덴은 팝스타나 영화배우급의 숭배를 받아 왔다. 2007년 다시 한번 빈라덴 사망설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미국을 놀리기라도 하듯 간간이 자신의 모습과 육성을 담은 테이프 등을 공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3월까지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9·11테러 주동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사형시킬 경우 미국인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빈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사우디 최대 건설회사 사장이던 아버지 모하메드 빈라덴의 자녀 52명 가운데 17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로 공사 80%를 독식하는 등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68년 헬리콥터 충돌 사고로 숨진 그의 아버지는 빈라덴에게 2억 5000만 달러(약 2700억원)의 유산을 물려준 것으로 알려졌다.전술 핵무기를 구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수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빈라덴의 재력은 막강했다. 사우디 킹압둘아지즈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던 학생 시절부터 종교에 열중해온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서방에 의한 타락을 막을 방어물로 여기게 됐다고 BBC는 보도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아랍 의용군을 무장시키고 소련군에 대항한 그는 1996년부터 2년간 미국에 대한 성전을 다짐하는 세 차례의 이슬람교 교령을 선포하고, 미국 군인과 민간인을 살해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 국적을 박탈당했고 집안과도 의절하는 등 개인적 희생도 치렀다. 17살의 나이로 시리아인 사촌과 처음 결혼한 그는 이후 최소 5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23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바마 ‘포커페이스’ 화제…빈 라덴 사살 전까지 속여

    오바마 ‘포커페이스’ 화제…빈 라덴 사살 전까지 속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포커페이스’가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 공습을 승인한 뒤 사흘 동안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과 표정으로 감쪽같이 사람들의 눈을 속였다. 이에 속마음을 숨긴 무표정한 얼굴을 뜻하는 ‘포커페이스’의 실사례를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작전을 승인한 날 오전에도 토네이도로 342명이 사망한 앨라배마주 일대를 방문했다. 바로 전날 대형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데 이어 피해지역 주민을 위로하고 복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또한 30일 워싱턴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는 자신의 출생 의혹을 거론하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머 한 방을 날리기도 했다. 작전 당일인 1일에도 워싱턴 D.C. 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찾아 평소 즐기는 골프를 쳤지만, 9홀 라운딩에 그쳤다. 기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4시간 만에 골프장을 떠나자 날씨 탓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길로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빈 라덴 공습 작전을 검토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했다. 그가 평소와 달리 골프화를 갈아 신지도 않고 백악관 집무실로 곧장 향한 점이나 상기된 채 턱을 꽉 물고 있었던 데 따른 의문은 자정께 빈 라덴 사살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야 풀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용기와 능력을 겸비한 소수의 미국인이 이 작전을 실행했다.”면서 “총격이 벌어진 뒤 미군은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고 그의 시체를 포획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진=유튜브(백악관)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1일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환호하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미국인들이 9·11테러의 주범을 쫓아온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깊은 속앓이를 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명분 잃은 싸움’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지속해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10년 만에 최대 성과를 얻었다. 미국의 대테러전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대원들이 미 본토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테러범들은 이날 아침 미국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세계인의 눈을 의심하게 한 충격적 범행으로 모두 3000명 가까운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를 처음 꺼내들며 이슬람 무장세력 등 테러단체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특히 빈라덴을 숨겨 주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테러 주모자를 넘겨 달라는 요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같은 해 10월 7일 아프간을 공습했다. 전쟁의 최우선 목표물은 당연히 빈라덴이었다. 미 의회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간전 개전 이후 2010년까지 4006억 달러(약 430조원)를 전비로 쏟아부으며 주적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백악관은 특히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한 해에 1593억 달러를 쓰겠다는 ‘2011년 회계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2003년 3월에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확산 방지를 명분 삼아 이라크 침공도 감행했다. 그러나 빈라덴을 중심으로 한 테러 세력들은 미국의 노력을 비웃듯 대규모 테러를 기획해 성공했다.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쿠타 해변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모두 202명이 숨졌다. 또 2004년 3월과 2006년 7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인도 뭄바이에서 통근 열차를 겨냥한 폭탄 테러가 터져 각각 191명과 20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공습 초기 주춤하던 탈레반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8년에는 탈레반 무장 반군의 역습이 극에 달해 미군 등 연합군 200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테러전이 명분을 잃었다.’는 국제적 비판 역시 미국으로서는 부담이었다. 미군이 9·11 이후 테러 용의자를 수용해온 관타나모 수용소는 ‘인권의 무덤’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특히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관타나모 수용소의 기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인권 수호자’로서의 미국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미국이 테러 용의자에게 소변을 자신의 몸에 싸도록 강요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아프간에서 미군 무인 공격기의 폭격 등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간 것도 부담이었다. 또 올해 재스민혁명 이후 아랍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불붙으면서 이 지역 친미 정권이 물러나거나 위기를 맞은 것도 미국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특히 테러 조직의 거점인 예멘에서 정정 불안이 이어지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대대적인 역공을 위한 기지개를 펴 왔다. 올해부터 아프간 전력을 철군시키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빈라덴 사살 소식은 미국의 위기상황에서 들려왔고 이 때문에 미 대륙은 더욱 들뜰 수밖에 없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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