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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홍지민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홍지민 사회부 차장

    미국 뉴욕의 고등학생 피터 파커는 우연히 유전자 조작 거미에게 물려 슈퍼 파워를 얻게 된다. 그 힘을 하나하나 깨달아 가던 피터는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친구를 한껏 혼내 주며 우쭐해진다. 중고차 살 돈을 마련하려고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이웃집 소녀에게 잘보이고 싶어서다. 무지막지한 챔피언을 상대로 3분만 버티면 3000달러를 준다는 대회인데, 피터는 챔피언을 손쉽게 거꾸러 뜨린다. 그러나 2분 만에 경기를 끝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손에 쥐어진 것은 단 100달러. 마침 대회 사무실에 무장 강도가 들이닥쳐 돈을 털어 가지만 강도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힘이 있는 피터는 애써 외면한다. 터덜터덜 밖으로 나와 보니 자신을 마중 나왔던 벤 삼촌이 총에 맞아 쓰러져 있다. 복수심에 불타 범인을 뒤쫓은 피터. 범인을 잡고 보니 조금 전 자신이 방관했던 그 강도다. 피터는 벤 삼촌에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을 곱씹게 된다. “큰 힘에는 항상 큰 책임이 따른다.”(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 영화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다.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외면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도 목도할 수 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 10년 전, 6년 전 불거졌을 때, 검찰의 입버릇인 ‘거악 척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편부당한 수사가 이뤄졌다면 갖가지 의혹의 진위가 상당수 규명됐을 게 분명하다. 적기를 놓쳐 증거가 흐려지고 공소시효에 노심초사하는 상황에서는 수사 의지가 하늘을 찔러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 신뢰를 되찾겠다며 벌인 이번 수사 또한 부실하다는 ‘예견된’ 비판을 받고 있다. 진상 규명은 공염불로 만들고 갈등과 불신은 부풀리는 등 만만치 않은 사회적인 비용까지 발생시킨 원죄에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는 점은 또 다른 큰 문제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1년 6개월간 활동하며 검찰권 오남용을 수차례 지적했지만 징계나 처벌은 전무하다. 이러한 상황이 검찰뿐이랴. 사법부는 2년 넘도록 사법농단 사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전임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비롯해 십수명의 전현직 법관들이 재판을 받고 있지만, 애매모호한 직권남용죄 법 조항 때문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믿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상황이 이러니 큰 책임을 스스로 알아서 다하겠거니 개개인의 선의에 맡겨 놓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법 왜곡죄 도입은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지난해 9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을 처리하며 법을 왜곡해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들 경우 1년 이상의 유기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고 공소시효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법 왜곡죄 적용 대상을 경찰 공무원까지 확대하고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를 한층 높이는 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엊그제 발의하기도 했다. 사법정의 실현의 책무가 방기돼 사법정의가 지연되거나 어그러지는 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고 보니 법 왜곡죄와 관련해 개점휴업 수준이 아니라 폐업 상황인 국회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뼈에 새겨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평균 연봉 1위 직업을 뽐내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의 권한과 인원을 줄이고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는 이야기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간단한 이치인데, 이를 내팽개치고서도 당당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icarus@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 ‘유능한 후배들이 스스로 알아서’…책임 미루는 양승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 ‘유능한 후배들이 스스로 알아서’…책임 미루는 양승태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 두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 중계 합니다. 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사이가 그렇게 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유능한 사람이기에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지시한 적이 없다”, “인사심의관실에서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회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피의자신문 조서가 일부 공개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짙어지자 집 옆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밝힐 때부터 검찰 수사 과정 내내 양 전 대법원장이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가 검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진술을 했는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개된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나는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로 모인다. 사법행정의 최종 결재권자이자 책임자인 만큼 각종 문건을 승인한 것은 자신이 맞고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 것도 맞다고는 인정했다. 그러나 그 보고 내용들은 결국 하급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고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보고를 듣기만 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서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이 청와대, 외교부와 재판 관련 논의를 했다는데도 양 전 대법원장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 “그런 것 하는 데 왜 대법원장 지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2013년 12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회의’에서 청와대와 대법원, 외교부, 법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논의한 데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회의에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들은 적이 있으면 기억하겠지만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2014년 3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난 사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분을 알지 못한다”며 부인했고, 윤 장관에게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요청한 사실 있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윤 장관을 만난 사실도 없다고 잡아뗐다. 검찰이 외교부 직원의 이메일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윤병세 장관과 조우한 계기에 양 대법원장이 재외공관 확대에 대해 논의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발견됐다고 제시하니 양 전 대법원장은 “조우라는 것은 우연히 만났다는 건데 우연히 만난 것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2014년 10월 열린 2차 소인수회의에서도 당연히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2차 소인수회의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사실에 대해 “사후에 보고받아 알게 됐고 사전에는 몰랐다”고 밝혔다. “박 대법관이 다녀와서 얘기한 것 같다. 전혀 사전 보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박 전 대법관과의 진술이 엇갈린 것이 확인됐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에서 “그런 정도의 자리라면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참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거듭 물었다. “박 전 대법관이 2차 회의에 참석하기 전 각급 법원을 상대로 일제 식민지 시대 관련 과거사 사건의 현황을 조사한 뒤 이를 회의에 지참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박 전 대법관이 이를 지참하고 회의에 참석 한 것 아닌가”,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박 전 대법관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챙긴 것 아닌가”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은 오히려 “처장은 업무 하나 하나마다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고 하는 게 아니다. 처장은 대법관이다”, “대법원장과 처장 사이가 그렇게 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처장은) 대법원장이 사건 하나 하나를 갖고 지시를 하는 지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 실행자이자 중간 책임자인 임 전 차장에게도 전혀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임 전 차장이 2016년 4~5월쯤 청와대 등을 통해 외교부에 강제징용 사건 관련 의견서를 내라고 독촉한 것과 관련,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기에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지시한 적이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어서 챙겨보라고 따로 지시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외교부와 청와대)을 직접 접촉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임 차장이 의견서를 내기로 했는데 왜 안 내냐고 했을 뿐이다. 저와 연관된 사안은 아니다.” 처장도 차장도 대법원장의 지시 없이 ‘알아서’ 청와대와 외교부를 접촉한 뒤 모든 논의가 이뤄진 뒤에 대법원장에게 결과만 보고됐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지낸 후배 법관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과 관련, 특정 쟁점에 대해 재판연구관에게 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나요?”(검찰), “지시한 적 없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정다주 전 기획조정심의관(현 지방법원 부장판사)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알고 있나요?”(검찰),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입장이 담긴 문건을 전달하도록 승인하지 않았나요?”(검찰), “그런 것을 하는데 왜 대법원장이 꼭 지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이 통진당 소송 현황을 상시적으로 보고했는데,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던 것 아닌가요?”(검찰), “제가 시켜서 보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한 것입니다”, “대법원장이 최고위급 간부에게 그런 식으로 지시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양 전 대법원장)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결재는 시인···“인사 조치 이유는 인사실이 알아서”당시 사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밝힌 법관들을 비롯해 이른바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를 작성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와 관련해서는 양 전 대법원장은 최종 결재를 했음은 인정했다. 그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들이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대법원장에게 보고할 때 한 명 한 명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책 결정을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인가”라는 검찰의 질문에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인사조치 방안에 승인한다는 뜻으로 문건에 표시된 ‘V’표시에 대해서도 “제가 했다. 제가 했거나 옆 사람에게 체크하라고 했으니 제가 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인사조치를 왜 했냐는 질문에는 “인사실에서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서 “결재를 했다고 해서 이런 내용까지 다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 인사안에 대해서도 “결재는 내가 한 게 맞다”면서도 “행정처에서 올린 의견대로 결정한다. 실질적으로 대법원장이 관여하는 게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벌어진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이 지목됐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유능한’ 후배 법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논의하고 처리해 온 일들을 결과만 보고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법정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인정한 유능하고 스스로 일한 후배 법관들이 증인으로 나와 그와 마주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에서의 진술을 후배 법관들이 어떻게 설명할지 주목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씨줄날줄] 대도의 추락/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도의 추락/이동구 논설위원

    ‘물방울 다이아’는 1980년대 지하 경제의 큰손이었던 장영자씨 덕에 유명해졌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 주택에 살고 있던 장씨는 81년 6월 어느 날 밤 3인조 도둑에게 보석과 현금 등 1억 2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털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가 쪽 인척이었던 장씨는 국회의원과 안기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씨를 등에 업고 경찰에 은밀히 도난품을 찾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 장씨는 “다른 도난품은 찾지 못하더라도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물방울처럼 생긴 다이아 반지는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명령 같은 당부를 했다고 한다. 이듬해 초 경찰이 3인조 강도를 잡아 세상에 알려진 물방울 다이아 반지는 서양의 배 모양을 한 3캐럿짜리였다. 이후 물방울 다이아는 부정과 비리의 대명사로 회자됐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의적(義賊)과 관련된 실화나 전설은 모두 갖고 있다. 우리에게 홍길동과 임꺽정이 있다면 일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 반발한 ‘이시카와 고에몬’이 있고 중국에는 ‘양산박’, 영국에는 ‘로빈 후드’가 있다. 프랑스에는 1800년 후반에 나타난 ‘아르센 뤼팽’이란 도둑이 유명하다. 그들은 졸부나 사회 지도층만을 대상으로 도둑질을 했으며 그들의 위선까지 폭로해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물을 탐내거나 제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훔친 재물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준다. 그리고 훔친 재물의 원래 주인들과 권력자들을 혼내 주는 등 정의를 대신 실천해 줬다. 부패한 권력이 민중을 괴롭히거나 극심한 빈부격차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주로 의적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미화된 부분도 많을 것이다. 최근 절도 혐의 등으로 경찰에 붙잡힌 조세형(81)씨는 대도(大盜)로 통했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 초까지 부유층과 유력 인사들의 집을 드라이버 하나로 뚫고 들어가 물방울 다이아 같은 귀중품을 털었던 것으로 유명세를 탓다. 훔친 금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한때 의적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져 강남부자들과 권력자들에 대한 반발감이 팽배하면서 일시적이나마 그를 의적으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80대 노인이 된 조씨가 이번에 훔친 돈은 불과 몇 만원. 젊은 날 대도니 의적이니 불렸던 이름값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새 삶을 살아 보기도 했다지만, 이후 수시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사법처리 횟수만 이번이 16번째라고 한다. 경찰에서 “살기 어려워 훔쳤다”고 진술했다니 인간적인 연민 또한 없지는 않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고치지 못한 그의 삶이다.
  • [문현웅의 공정사회] 일제강점기 판사와 사법농단 판사

    [문현웅의 공정사회] 일제강점기 판사와 사법농단 판사

    “대한민국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위와 같은 헌법 규정의 취지는 일본제국주의집단의 강점기 동안 시행된 법령은 적어도 항일독립운동의 이념에 배치되는 부분에 한하여는 정당성을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판사의 재판이 일본제국주의집단의 강점기 동안 시행된 법령을 준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항일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이 항일독립운동의 이념에 배치되는 한 우리 헌법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김세완 전 대법관(1894~1973)의 후손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조사 대상자 선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가 원고 패소판결하면서 선고(2010. 12. 24)한 판결문이다. 김 전 대법관 후손들은 위 소송에서 “판사로서 형사 관련 법규에 따라 기소된 사건에 합당한 법을 적용하고 합의된 결론을 토대로 작성된 판결문에 서명날인한 것을 두고 반민특별법 제2조 제15호 소정의 ‘감금·고문·학대 등의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판사의 항일독립운동가에 대한 형 선고에 의하여 항일독립운동가는 죽임을 당하거나 일정 기간 교도소에 감금되게 되는데, 사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은 법집행의 외관을 가지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제국주의집단의 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법은 우리 헌법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당성이 없는 법에 따른 사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은 실질상 살해, 감금과 다를 바가 없고, 그로 인해 항일독립운동가 본인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항일독립운동에도 타격이 가해짐은 자명하므로 이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에 대한 감금·고문·학대 등 탄압행위에 해당된다”며 김 전 대법관 유족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러면서 “대한제국 시절 판사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으나 경술국치를 지켜본 후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행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 법관은 이런 사명을 위해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명예를 굳게 지키며 국민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관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의식에 충실하여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판사가 있었던 반면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법관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의식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채 항일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앞장선 판사도 있었던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하거나 지시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법관들의 재판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들 재판에서 경력 15년 내외의 부장판사들이 ‘윗사람’의 지시를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무력하게 수용해 왔는지 낱낱이 공개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 사회가 법관들에게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의식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법관들이 정의·공정성·독립성 등에 충실할 것이라고 한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버렸다.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판사와 스스로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판사가 있었던 것처럼 사법농단이 자행되던 전 정권 시절에도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하고 그러한 지시를 폭로하면서 스스로 사직을 한 판사가 있었던 반면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하여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에 충실해 판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업무를 수행한 판사가 있다. 법관윤리강령에 규정된 직업윤리에 충실했던 판사는 법원을 떠났고 그러한 직업윤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던 판사는 여전히 법원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형사재판에서 항일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가 법대에서 여전히 판사 봉을 휘두르는 듯하다.
  • 서양호 중구청장 “낡은 정치와 싸운 1년”

    서양호 중구청장 “낡은 정치와 싸운 1년”

    “인사 청탁 거절하자 추경 상정도 안 해” 조영훈 의장은 “대부분 예산 통과시켜 인사발령 문제점 지적·시정 요구한 것”“지역의 낡은 정치와 싸우는 것이 힘든 1년이었다.”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이 구의회가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시급한 민생예산을 볼모로 부당한 인사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공개 비판했다. 서 구청장은 12일 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느 구청장의 하소연’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구청 직원 인사에 대한 (구의회의) 개입과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구민의 생활, 삶과 직결된 예산 문제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납해선 안 되기 때문에 그 부당한 실체와 맞서 싸우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충무로뮤지컬영화제를 비롯해 침수로 누전 사고가 났던 명동주민센터의 시설 개선 등 49억원의 추경을 편성해 구의회에 제출했지만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달 정기회에도 초등학생 돌봄 확대, 소상공인 지원, 노인복지관 화재예방 등 301개 사업에 걸쳐 223억원의 추경 심의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덧붙였다. 서 구청장은 “구의회는 올해 총 2회, 단 사흘간 구의회를 열어 단 한 건의 조례 심의도 하지 않았는데 구의회가 사용한 예산은 구의원 월급 1억원을 포함해 10억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구의회가 요구한 인사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생예산을 볼모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의회 파행은 지난 1월 실시한 구의회 사무과 인사가 부당하다고 구의회가 주장하면서 시작됐다”면서 “직능단체 간부 인사에도 개입했고, 중구 환경미화원의 부당한 채용을 청탁하기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구체적인 인사 개입 정황이나 경위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서 구청장은 구의원들의 갑질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구의원들이 구청 직원들에게 반말이나 욕설하는 것은 예사고, 구의회가 소집돼 본회의 개최를 앞둔 시점에 노래주점에서 술을 마신 뒤 구청 직원을 불러 술값을 대납시킨 일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또 “구의원들이 금연건물인 구의회 본회의장에서 버젓이 흡연했고, 불법 건축물에서 수년째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아 가면서 거주했다는 등의 제보도 여러 건 들어왔다”고 밝혔다. . 서 구청장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등 위법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법당국에 수사 의뢰와 고소·고발을 진행할 것”이라면서 “구청에 ‘채용청탁 및 부정비리 신고센터’도 설치해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법 절차를 밟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조영훈 중구의회 의장은 성명을 통해 “지난 연말 역대 의회를 통틀어 최소 예산인 18억원만 삭감하고 대부분의 사업예산을 통과시켰다”면서 “이런 진정성은 온데 간데 없고 구의회가 추경 예산을 심의해 주지 않아서 숙원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처럼 논리를 펴고 있다”고 반박했다. 조 의장은 인사 개입에 대해서는 “인사발령을 한 결과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 시정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위조 증거 제출한 변호사 법정구속

    조작된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한 현직 변호사가 법정구속됐다. 전주지법 형사2단독 오명희 부장판사는 12일 의뢰인의 재판 과정에서 조작된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한 혐의(증거위조·위조증거사용)로 기소된 현직 변호사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변호사 A씨는 지난해 6월 의뢰인인 B씨의 항소심에서 B씨가 업체로부터 부정하게 받은 3억 5000만원을 갚았다는 허위 종합전표와 입금확인증을 재판부에 제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완주군 산업단지 시설 사업 과정에서 “시행사로 선정되도록 도와주겠다”며 업체로부터 3억 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자 항소했다. 가짜 증거는 B씨 가족이 만들었으며 허위 입금자료는 A씨가 팩스로 받았다. A씨는 가짜 증거들을 재판부에 제출했고 “B씨가 받은 돈을 전액 반환했으니 감형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변론요지서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는 교도소에서 B씨를 접견하며 “업체 측에 돈을 입금한 뒤 돌려받고 이를 반복하며 ‘돌려막기’하는 방법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이 증거를 토대로 원심을 파기하고 B씨에게 6개월이 감형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오 판사는 “피고인은 B씨가 돈을 반환하지 았는데도 업체에 모두 돌려준 것처럼 입금증과 종합전표를 제출했다”며 “이런 행위는 B씨의 형사사건에 관한 양형 자료를 허위로 만든 것으로서 증거위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의) 범행이 B씨의 양형 판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은 사회 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로서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저버린 채 적극적으로 증거를 위조했고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매년 3000여건 거짓 증언, 사법 정의 흔든다

    매년 3000여건 거짓 증언, 사법 정의 흔든다

    대구지검 작년 위증 인지 0.78%로 높아 인정·친분 얽힌 허위 증언이 61% 차지 “위증 공직자 엄단해야 위증범 줄어들 것”법정에서 선서까지 한 증인이 허위 증언으로 사법 질서를 훼손하는 일이 많자 검찰도 단속팀까지 만들어 위증 사범을 걸러내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 ‘신한금융 남산 3억원 사건’ 등 과거사 조사 과정에서도 위증 혐의가 새롭게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9일 대검찰청 범죄백서에 따르면 위증(증거인멸 포함) 발생 건수는 2014년 3447건, 2015년 3947건, 2016년 3461건, 2017년 3629건 등 매년 3000건 이상 집계되고 있다. 또 2017년 전체 공판 사건 중 위증사범 인지 비율은 0.36%, 지난해 1~11월 0.34%로 나타났다. 형사 재판 1000건 중 3건꼴로 위증이 적발된 셈이다. 검찰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재판에 큰 영향이 없어 문제 삼지 않은 건수까지 포함하면 위증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선 검찰청 중에서도 위증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끝까지 찾아내 처벌하는 곳은 위증사범 인지 비율도 더 높게 나타났다. 공판검사를 중심으로 단속팀을 구성한 대구지검은 지난해 1~5월 위증사범 인지율이 0.78%로 전체 평균 0.34%보다 0.44% 포인트 더 높았다. 위증 의심 증인에 대한 카드를 작성해 관리 중인 인천지검도 지난해 1~11월 위증사범 인지율은 0.42%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 재조사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서 장씨 소속사 대표 김모씨가 조선일보와 이종걸 의원의 명예훼손 재판에서 허위 증언한 혐의가 뒤늦게 드러나 과거사위가 수사 권고했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남산 3억원 사건에서도 신한금융 전·현직 임직원의 위증 혐의에 대해 과거사위로부터 수사 권고를 받은 검찰은 이백순 전 행장과 신상훈 전 사장 등을 최근 불구속 기소했다.검찰이 밝혀낸 위증 유형은 크게 4가지다. 인정·친분에 얽매인 허위 증언부터 금전적 대가를 바라거나 공범을 감추기 위해 또는 피해자가 심경 변화로 진술을 번복하며 위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중 친분 관계에 의한 위증이 다수를 차지한다. 인천지검이 지난해 위증사범 82명을 대상으로 위증 유형을 분석한 결과, 50명(61.0%)이 인정에 얽매여 허위 증언한 것으로 조사됐다. 위증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만 대법원 양형기준상 위증은 최대 3년형, 모해위증(남을 해치기 위한 목적의 허위 증언)은 최대 4년형을 권고하고 있다. 경제적 대가를 받았거나 허위 증언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면 형이 가중되는 구조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위 공직자 등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위증 행위부터 엄격하게 처벌하면 일반 재판에서도 위증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보다 단속을 강화해 위증하면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회] ‘지연된 정의’ 되짚는 재판도 지연?… ‘재판 속도’ 샅바싸움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회] ‘지연된 정의’ 되짚는 재판도 지연?… ‘재판 속도’ 샅바싸움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 두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생생 중계합니다. 속도를 붙잡고 당기기 시작한 검찰과 변호인의 샅바싸움조차 속도를 내지 못하고 더뎠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세 번째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검찰과 변호인의 밀려있던 설전이 시작됐다. 지난 5일 예정됐던 재판이 한 차례 취소된 뒤 검찰은 부쩍 서두르는 모양새였다. 이미 피고인들이 재판에 넘겨진 지 넉 달이 다 되어갔고, 세 사람 중 유일하게 구속 상태인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기간(6개월)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 증인들을 언제 법정에 부를지조차 정하지 못했으니 거듭 답답함이 터져 나왔다. 지난 5일 예정됐던 재판은 박병대 전 대법관의 눈 수술 등 건강상의 이유로 열리지 않았다. 검찰은 “건강상태로 인한 공판 출석 어려움 그 자체를 문제삼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기일변경 과정이나 절차가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고 생각되거나 적정성에 의문이 있다”며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수술은 이미 예정돼 있었을 텐데 공판기일(5일) 바로 직전인 전날 오후 4시에야 기일변경 신청서를 접수해 그 과정에서 검찰은 어떠한 의견도 제출할 기회가 없었고, 구체적인 사유도 알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또 “갑작스런 기일변경과 공전으로 사실상 오늘까지 마치기로 돼있던 서증조사를 제 때 마칠 수 없게 됐고 아직 증인 채택 및 신문 일정조차 결정되지 않아 증인신문이 언제 시작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검찰은 구속 피고인인 양 전 대법원장과 나머지 두 전 대법관의 재판을 분리해서 심리하는 방안도 검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 피고인들 ‘재판 지연’ 비판… “양승태 분리 심리해 달라” ‘재판 지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이 시작되고부터 검찰에게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자리잡았다. 지난해 11월 이 사건으로 가장 먼저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벌써 여러 선례를 남긴 이유에서다. 변호인 11명의 전원 사임으로 2명의 변호인을 새로 선임하는 과정까지 거쳐 첫 공판이 3월 11일에야 열렸다. 재판이 시작되서도 USB의 증거능력을 두고 다투느라 한참 입씨름을 벌였고 가까스로 증인신문이 시작됐지만 초반에 나오기로 했던 핵심 증인인 현직 법관들은 자신의 재판 일정을 이유로 일정을 미뤘다. 그리고 지난 2일 오후 임 전 차장은 돌연 재판부가 자신에 대한 유죄 판결을 정해놓고 불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이번주로 예정됐던 재판은 물론 다음주 재판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석 달 가까이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 다뤄진 사안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 관련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각종 재판개입 의혹 등으로 앞으로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지연된 정의’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재판마저 한없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경계가 검찰에 깔려있다. 그러나 정작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에게 속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공판준비절차에서 일주일에 며칠씩 재판을 열 것인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면 재판이 시작된 뒤에는 하루 중 몇시까지 재판을 할 것인지를 매번 다툰다.이날도 검찰이 “지난 5일 하지 못한 서증조사를 위해 당초 예정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재판 외에도 다른 날을 하루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변호인들이 즉각 반발했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공판 진행은 절차에 따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지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조건 욱여서 넣을 게 아니다”라면서 “이 사건이 이렇게 번잡스럽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증거가 너무 많아서 그러다. 증거가 10개, 20개, 100개면 끝날 것을 20만 페이지가 넘는데 이걸 저희가 증거법칙대로 꼼꼼히 보려고 하니까 그렇게 된(늦어진) 것이지 서증조사를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 이런 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두 번도 재판부 사정을 감안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는데, 이 이상으로 하는 것은 너무 무리다. (피고인들이) 하루종일 뒤에 가만히 앉아있지만 스트레스와 신경쓰는 것을 보면 건강이 앞으로 버틸 수 있을지 많이 걱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협조하겠지만 건강상태를 봐달라”고도 덧붙였다. 정해진 증거조사를 어느 정도 진행하고 이날 재판을 오후 7시 30분쯤 끝낼 계획이라고 재판장이 말하자 이번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지난 재판에 이어 ‘식사시간’을 또 언급했다. “오후 5~7시 사이에만 식사 제공을 받을 수 있어 재판이 오후 7시 반이 넘어 끝나면 식사가 불가능해진다”며 재판을 너무 늦게까지 진행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다음 기일을 온종일 꽉 채워 하더라도 저녁까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다. 형사재판을 받는 구속 피고인들은 식중독이나 음독 등의 위험성 때문에 외부 음식을 먹지 못하게 돼있다. 그러나 검찰과 변호인단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다 보면 해는 금방 저물고, 그러면 구치소에서 마련한 식사를 정해진 시간에 하지 못하면 그날 끼니를 거르거나 다 식은 밥을 삼켜야 한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매주 3회 재판을 받던 박근혜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도 재판부에 자주 식사시간을 확보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국정원 정치공작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한 전직 국정원 간부의 가족은 법정 밖에서 “사람을 잡아 넣었으면 밥은 먹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는 원망을 종종 쏟아냈다. 임 전 차장은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거의 저녁을 먹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정작 피고인들은 “원칙대로, 천천히”…양승태 변호인 “저녁식사 거르지 않게 해달라” 누군가는 자주 거르는 것일 수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소하느라 몇 번쯤은 빠뜨리게 될 수도 있는 것도 저녁밥 한 끼이고 또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시간 속에서도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챙겨야 하는 것도 저녁 한 끼일 수 있다. ‘밥은 먹게 해달라’는 요청에 재판장은 다시 확인을 했다. “(오후 7시반에 재판이 끝난다고 해서) 아예 못 드시는 건 아니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식사시간에 대해 답해줄 교도관을 다급하게 찾았다. “교도관들께서 확인을 해주실 텐데…”하며 눈을 돌리고는 “지금 여기에 안 계신가 봅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방청석 앞 쪽에 앉아있던 교도관 두 명이 각자 턱을 괴고 조느라 그 눈빛을 보지는 못했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저도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고 싶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하며 속도론에 힘을 더하면서도 “증인신문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있을 수 있어 그 전에 증거조사를 통해 정리했으면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증거와 관련한 새로운 의견도 내놨다. “검찰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압수한 문건은 위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라며 또다른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 공판까지, 그리고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사건의 재판에서 잇따라 흘러나오는 돌림노래와 같은 ‘임종헌 USB’와 비슷한 맥락이면서 다른 이야기였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의견서를 통해 “검찰은 김앤장을 압수수색할 때 변호사의 업무상 비밀과 관련된 문건에 대해 압수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았다”라면서 “검찰이 김앤장으로부터 압수해 제출한 문건은 위법수집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업무상 비밀누설죄 처벌 가능성이 있어 김앤장 변호사 등 증인들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앤장은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이 됐고 압수대상에게 적법하게 고지해야 한다고 명시된 형사소송법을 지켰다”면서 “변호사 다수가 참여해서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거부권은 행사되지 않았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일축했다. 검찰은 특히 “전범기업 소송 대리인들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변호인의 의견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해당 증인이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할지 말지는 증인의 권한이고 증언을 거부하는 합당한 사유가 있는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인데 피고인 측이 증언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형사처벌 운운하면서 증언을 거부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양승태 측, ‘김앤장 압수문건’ 문제삼아…유명환 전 장관 증인 채택 지난달 31일 재판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임종헌 USB에서 출력한 문건과 심의관들이 작성한 문건의 동일성을 문제삼으며 증거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날도 “임종헌 USB는 증거물로서만 동의하고 압수 절차가 위법하다는 점은 계속 주장하겠다”고 말했다.재판부는 “지난 기일에 이어 새로운 증거능력 문제가 제기된 만큼 해당되는 증거의 압수수색 절차에 대해 검찰이 의견서를 내고 별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면 추후에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김앤장에서 압수된 문건의 작성자인 김앤장 소속 최모 변호사와 김앤장 고문을 지낸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2015년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상고심과 관련해 피고 측 소송대리인인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와 수시로 접촉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는 이들을 포함해 13명의 증인을 더 채택했다. 신광렬·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유해용·김현석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심의관을 지낸 법관들이 양 전 대법원장과 법정에서 대면하게 된다. 검찰은 당장 14일부터, 그게 어렵다면 19일부터 증인신문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오는 21일부터 이 법정에 증인들을 불러 신문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증인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그는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가장 먼저 증인석에 앉았다. 정 부장판사에 이어 시진국·박상언·김민수 부장판사의 순서로 법정에 나올 예정이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오전 재판은 이렇게 미뤄진 서증조사는 하지도 못한 채 끝이 났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석기 등 통진당 의원 7명, 재심 청구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9년형이 확정된 이석기전 의원 등 통합진보당 의원 7명이 5일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불거진 뒤 ‘재판거래’ 의혹이 있던 사건들 가운데 첫 재심 청구다.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은 이날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공안 검찰뿐 아니라 사법부도 정권 유지를 위해 심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 전 의원 사건은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 이뤄진 대표적인 재판거래였다”고 재심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정개특위 “시한연장 안되면 선거법 의결” 한국당 “반대”

    정개특위 “시한연장 안되면 선거법 의결” 한국당 “반대”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오는 30일까지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시한이 연장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이달 중 심의·의결하겠다고 5일 밝혔다. 정국 경색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개특위 시한이 연장되지 않으면 법안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국회가 정상화될 때까지 정개특위 개의를 보류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정개특위 산하 제1소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제1소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개정안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정개특위에 주어진 소임”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만약 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선거법개정안 관련 논의를 전혀 해보지 않은 행정안전위원회에 법안이 이관된다”며 “이는 선거법 개정을 바라는 국민의 뜻에 대한 배신이자 정개특위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정개특위가 이달 중 선거법개정안의 심의·의결 절차를 마무리하면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부의 60일이 걸리는 일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하게 된다. 다만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로 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이 연장되면 정개특위 내 심의·의결 일정도 이에 맞춰 이달 이후로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김 의원은 설명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1소위 정회 후 진행된 여야 간사 간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국당은 국회가 정상화될 때까지 1소위 개의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정개특위 연장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으면 다음 주부터는 선거법개정안의 심의·의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간담회에는 김종민·이철희·최인호 민주당 의원, 장제원 한국당 의원,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참석했다. 김재원 한국당 의원은 “민주당 주도로 선거법개정안을 합의 처리 없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서 문제가 벌어진 것이고 오늘 회의 개의도 잘못됐다”며 “최소한 여야 간사 간 협의를 거쳐 회의를 소집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는 회의에 반대하는 의미로 온 것이니 앉을 필요도 없다. 이런 식으로 정개특위를 진행하면 상황은 계속 더 나빠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지금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정상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개특위 때문”이라며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상임위라면 몰라도 정개특위 소위를 여는 것은 너무 일방적이다”라고 항의했다. 장 의원은 “국회가 정상화 된 후 정개특위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최장 330일, 최소 180일이면 선거법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나”라며 “이렇게 급히 소위를 열어 여야가 감정적으로 더 나빠지는 상황을 만드는 게 선거제 논의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종민 의원은 “간사 간 협의를 3차례나 거쳤지만 한국당의 반대로 결론이 나지 않아서 나머지 당의 동의로 소위를 소집하게 됐다”며 “선거법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지 한 달이 지난 상태에서 정개특위 회의 소집 자체가 안 된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정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도 “패스트트랙 상정 후 37일이 지났고, 정개특위에 남은 시간은 24일”이라며 “한국당 주장대로 앞으로 시간을 더 갖는다는 것은 ‘정개특위는 끝났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김성식 의원은 “오늘까지 한 달 이상 정개특위가 공전했는데 적어도 논의를 개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며 “다음 주부터는 매일 정개특위 소위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내란선동’ 이석기 재심청구…“잘못된 판결 바로잡아야”

    ‘내란선동’ 이석기 재심청구…“잘못된 판결 바로잡아야”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형을 확정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은 5일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앞에서 이 전 의원 등 통진당 관계자 7명에 대한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호인단은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잘못된 판결은 바로잡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사건이 헌법과 법, 그리고 양심에 따라 다시 다뤄질 때 우리 사회는 한 발 더 전진하게 될 것”이라며 재심청구 배경을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졌던 사건을 두고 제기된 첫 재심청구다.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다른 6명은 만기 출소했으나, 이 전 의원은 아직 수감 중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 도움을 얻기 위해 전략 문건을 작성하면서 ‘사법부가 청와대 국정 운영에 협조한 사례’ 중 하나로 이 전 의원 사건을 거론했다. 법원행정처는 또 2014년 8월 서울고법이 내린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판결의 내용과 의미 분석’ 등의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은 무죄·면소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 수사 기관이나 법관이 직무 처리 과정에서 위법을 저질렀다는 게 명확한 경우 등을 재심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황교안 “막말 논란 더 이상 안 돼…재발하면 응분의 조치”

    황교안 “막말 논란 더 이상 안 돼…재발하면 응분의 조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4일 당내 의원들의 잇따른 막말 논란과 관련해 “우리 당의 몇 분들이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 부분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이런 일들이 재발하게 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응분의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을 참배한 뒤 기자들을 만나 이런 뜻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 잘못된 언행들에 대해 그때그때 여러 조치들을 취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계속 이런 것들이 논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당 대표로서 당을 적절하게 지휘하고 또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들께서 우리 당에 돌이라도 던지시겠다고 하면 그것까지도 감당하겠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곽상도 의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수사 관련 외압 행사 의혹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데 대해서는 “이 정부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나”라며 “의욕만 갖고 소환 조사하고, 온갖 망신을 주고, 여론재판을 하고, 결과적으로 법치에 합당한 처분이 되지 못하고, 사법절차가 왜곡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정부가 적폐청산을 한다며 무고한 사람들에게 많은 희생을 덮어씌웠다”며 “5명이 수사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다시는 법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정신질환 핑계 댄 그놈 감정해 보면 반은 멀쩡

    정신질환 핑계 댄 그놈 감정해 보면 반은 멀쩡

    감형 노린 연기에 감정의들 어려움 겪어 사법당국 ‘꾀병 범죄자’ 거를 장치 절실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범죄자에 대해 국가가 정신감정을 실시한 결과 2명 중 1명은 범행 당시 멀쩡했거나 정신질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을 위장한 범죄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이들을 가려내는 게 사법당국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서울신문이 3일 법무부 공주치료감호소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형사 정신감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감정을 받은 444명 중 152명(34.2%)은 형사 책임능력 ‘건재’(정상) 판정을 받았다. 정신질환 증세로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해도 범행 당시 판단력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결과다. 정신질환 증세가 보이지 않는 ‘진단 없음’ 판정을 받은 인원도 68명(15.3%)에 달했다. 2명 중 1명은 ‘이상 없음’(건재 또는 진단 없음)으로 나온 셈이다. 올 들어서도 지난 4월까지 감정 인원 131명 중 63명(48.1%)은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지난 5년간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은 인원은 2014년 604명에서 지난해 444명으로 4년 새 26.5% 줄었다. 반면 책임능력이 ‘건재’로 판명된 인원은 같은 기간 107명에서 152명으로 42.1% 늘었다. ‘진단 없음’을 받은 사람도 48명에서 68명으로 41.7% 증가했다. 임명호(정신과 전문의) 단국대 교수는 “심신장애 판정을 받으면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정신질환 위장 범죄자도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이문 경찰대 교수는 “작정하고 정신질환을 가장한 범죄자 때문에 감정의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정신감정은 통상 1개월 정도 실시된다. ‘한 달’이란 기간을 두는 이유는 피감정 유치자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면담을 통해 범행 당시 책임 능력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함이다. 조현병 환자라 해도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았다면 범행 당시에는 멀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유치자는 멀쩡한데도 의사 앞에서 환청이 들린다는 식으로 연기를 한다고 한다. 치료감호소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 “첫눈에 꾀병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헷갈릴 때도 있다”면서 “3~4주 정도 지나면 ‘꾀병이구나’라는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감정 기간 안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감정의가 기간 연장을 신청할 때도 있다. 일부 범죄자는 감정서 결과(건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돌아온 뒤 감정의에게 “두고 보자”며 협박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靑 “강경화·정의용 교체, 사실 아냐…검찰총장 후보 검증 중”

    靑 “강경화·정의용 교체, 사실 아냐…검찰총장 후보 검증 중”

    청와대는 3일 문무일 검찰총장 후임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문 총장의 임기는 다음달 24일까지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청와대는 현재 검찰총장후보추천위에서 천거된 후보 중 검증에 동의한 8인에 대해 검증을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날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최근 경찰 등 사정당국에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를 인선할 목적으로 현직 검사 4명에 대한 평판 등 검증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검증자료가 요청된 4명은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54·사법연수원 19기)와 김오수 법무부 차관(56·20기), 이금로 수원고검장(54·20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9·23기)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후보추천위는 내주 중 회의를 열어 이 가운데 최종후보자 3~4명을 선정, 법무부장관에게 추천하고 법무부장관은 후보추천위 심사를 토대로 총장 후보자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이후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칠 총장 후보자 1명을 지명한다. 청문회 절차에 한 달쯤 소요되는 만큼 늦어도 이달(6월) 중순쯤에는 후임 후보자 지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청와대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교체설 보도에 대해선 “외교·안보라인 교체설과 관련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이날 한국경제신문은 강 장관이 정부 출범 때부터 외교부를 이끌어온 데다, 최근 미중 무역갈등,한미정상 통화 유출 건 등이 겹치면서 이르면 내달 교체되는 방안이 유력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지명과 맞물려 이뤄질 예정이며 일각에서는 강 장관 후임으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거론된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또 진전없는 남북대화를 풀어내기 위해 정의용 실장을 교체해 분위기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으며, 정 실장 후임으로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유력하나 서 원장 후임이 마땅치 않아 교체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 “과거사위, 수사권고 없어 매우 실망”

    용산참사 진상규명위 “과거사위, 수사권고 없어 매우 실망”

    檢과거사위 조사결과에 양쪽다 반발용산참사규명위 “특검 재조사해야”당시 수사팀 “의심을 사실처럼 발표”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31일 용산참사와 관련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수사 권고가 내려지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날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펼쳤는지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소극적이고 편파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총장의 사과와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이에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검찰총장 사과와 제도 개선만 권고하고, 수사 권고가 내려지지 않은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검찰 조사단은 수사검사 외압 논란으로 지난 1월 말에 새로 구성됐다”면서 “강제 수사 권한도 없고 조사 기간도 짧아 애초부터 충분히 조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국회와 정부가 나설 때”라면서 “철저한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검을 비롯한 수사·기소의 권한이 있는 특별조사기구를 통해 제대로 된 재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검찰 수사팀은 “과거사위가 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한 채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의심을 객관적 사실처럼 발표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수사팀은 입장문을 내고 “기소된 농성자 16명은 화재원인과 형사책임을 모두 인정하고 불복하지 않았으며 상고한 9명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면서 “농성자가 던진 화염병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과거사위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사팀은 “경찰 진압의 많은 문제점을 밝혀내고 경찰로부터 잘못까지 시인받았으나 객관적 사실관계와 법리에 따라 형사처벌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향후 사법절차를 통해 수사팀의 명예를 훼손한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앞서 검찰과거사위는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용산참사 사건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31일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건 관련 철거민들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를 검찰에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화재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진압작전을 강행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지휘부는 철거민들이 소지한 염산과 화염병 등 위험물질을 파악하고 있었고, 극단적인 돌출 행동도 우려되는 상황임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특공대원들은 농성장에 다량의 시너 등 인화물질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고, 소방차도 단 2대만 출동하는 등 화재 발생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게 이뤄졌다. 과거사위는 “당시 무리한 직업 작전을 결정·변경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했음에도, 검찰은 최종 결재권자인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주요 참고인 또는 피의자로 조사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 전 서울청장에 대해 서면 조사만을 한 뒤 ‘혐의없음’ 처분을 했다. 무리한 진압 작전의 이유와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 대상에서도 김 전 청장의 개인 휴대전화는 누락됐다.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 사건으로 인한 촛불시위 차단을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철거용역업체 직원의 불법행위 및 경찰과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검찰이 소극적 수사를 펼쳤다고 과거사위는 판단했다.과거사위는 “용역업체 직원의 살수(撒水) 및 방화 행위에 대해 묵인·방조한 경찰의 위법행위(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망자들의 시신을 유가족 동의 없이 긴급부검하도록 구두 지휘한 부분, 용산참사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대책위 관계자들의 재판에서 변호인들의 수시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한 부분 등도 사건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수사가 기본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거나 왜곡시켰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거리로 내쫓긴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로움’을 충족하기엔 부족했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유족들에게 사전통지 없이 진행된 긴급부검과 수시기록 열람·등사 거부 등에 대해 검찰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교육 및 제도 개선, 긴급부검 지휘에 대한 검찰 내부의 구체적 판단 지침 마련, 검사의 구두 지휘에 대한 서면 기록 의무화 등도 권고됐다. 과거사위는 이날 심의를 끝으로 약 1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32명이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하던 중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법서라] 정보경찰 각각 수사하는 검경…동시에 출동한 까닭은

    [법서라] 정보경찰 각각 수사하는 검경…동시에 출동한 까닭은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국정농단부터 사법농단까지 지난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를 계속한 검찰의 현재 과제는 정보경찰 수사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경찰이 위법하게 정보수집을 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사찰이나 정치관여 의혹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정보경찰 의혹은 국정원이나 국군 기무사령부의 정치관여 혐의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정보수집을 하는 국가 기관이 권한을 남용해 정치에 개입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최근 경찰이 정보경찰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로 송치했는데, 검찰이 다시 수사하라고 돌려보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현재 수사권 체계에서는 경찰의 수사를 검찰이 지휘하게 돼 있으니까요. 정보경찰 수사가 여느 수사와 다른 점은 같은 사안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각각 동시에 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예를 들면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검찰과 경찰 모두 출동한 겁니다. 그리고는 살인 사건 피의자와 목격자를 각각 검찰과 경찰에 불러서 조사한 거죠. 똑같은 범죄사실에 대해 적용한 법조문도 살인과 상해치사로 다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경찰청장 책임 크다는 검찰, 청와대 탓이라는 경찰  정보경찰 수사는 지난해 3월 영포빌딩에서 시작합니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을 수사하면서 청계재단이 있는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했는데, 지하실에 문건이 있었던 겁니다. 청와대 자료를 무단으로 반출한 게 3000여건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정보경찰 문건도 있었습니다. 검찰로서는 ‘노다지’를 발견한 거죠. 검찰은 경찰청 정보국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정보경찰 수사를 시작했고, 경찰은 특별수사단을 만들어 자체 수사를 벌였습니다.  검찰과 경찰에 수사 상황에 대해 물어보면, 둘 다 상대방의 수사 내용을 모른다고 답합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수사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공작’으로 구속기소됐지만 유독 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경찰 수사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경찰 내부 저항이 컸다고 합니다. 경찰 관계자는 “특별수사단이 현직 고위 간부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정보경찰 피를 말릴 것처럼 수사하니 경찰 조직원들의 충격과 불만이 상당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경찰 위법 의혹에 대해 검찰은 강신명 경찰청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법원은 강 전 청장만 구속하고 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 당시 정보국장이나 청와대 치안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전직 정보심의관과 청와대 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기각됐습니다. 법원은 “본건 가담경위 내지 정도 등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달았습니다. 쉽게 말해 ‘경찰청장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 거죠.  경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수사 결과를 보고 기자들이 의아했던 점이 있습니다. 검찰 수사에서는 구속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경찰은 이번 사태를 청와대 책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송치 대상자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현기환·조윤선 전 정무수석, 이철성 전 경찰청장·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박화진 경찰청 외사국장(당시 청와대 사회안전·치안비서관)입니다. 사건 당시 경찰청에 있던 인물은 전혀 없고 청와대 근무자만 있습니다.    ◆檢“고위직 책임져야”vs警“관행인데 억울”  수사권 조정을 두고 투닥투닥 싸우는 검경인데, 이번 정보경찰 수사 반려를 두고는 양쪽 모두 일언반구 없습니다. 수사권 조정 갈등으로 비칠까 의식한 탓인지 서로 아무런 이유도, 입장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취재 결과 법리 적용을 이유로 반려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 확인됐습니다. 유사한 범죄사실을 두고 검찰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을, 경찰은 직권남용만 적용했거든요. 결국 남은 것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 미진’입니다. 검찰이 ‘직권남용을 지시한 경찰청장 등 고위직에 대한 수사를 보완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간 검찰은 적폐청산 수사를 하면서 최고위직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물었습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직권남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무원에게 대가는 곧 자리입니다. 관행적으로 하던 일이라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면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고위직에 있었고, 과거 정권에서 잘 나갔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검찰은 이 논리를 과거 정권의 권력기관에 적용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했습니다. 원세훈·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직 국정원장 4명을 구속기소했습니다. 이들의 주요 혐의에는 직권남용이 빠지지 않습니다.  경찰이 같은 직권남용을 두고 최고위직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자칫 ‘제식구 감싸기’로 비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경찰청 정보국장을 지낸 전직 경찰 간부의 말입니다.  “정보경찰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정책·치안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런데 정당한 업무와 위법한 업무 사이 경계에 있는 일이 많아요. 세월호 유족 집회 대응 정보는 당연히 정당한 업무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사찰이 될 수 있죠. 지금 정부의 정보경찰도 과거와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어요. 지금 청와대도 그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정보가 있어야 정책을 펴고, 정책에 대한 반응을 알아야 되거든요. 청와대 지시를 따른 것뿐인데 죄가 된다고 하면 참 씁쓸합니다.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기다려봐야죠.”  정보경찰에 대한 검·경의 시각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경찰은 다소 위법한 정보수집은 관행이고, 설령 불법이라 하더라도 청와대 지시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현직 경찰 간부는 강 전 청장이 구속된 날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는 “검찰이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불리하니까 경찰 망신주기를 하려고 강 전 청장을 보란듯 구속했다”며 “과거 정보경찰 업무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제부터 하지 말자고 하는 게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정 폐지한 검찰, 정보경찰은 어떻게 통제할까  검찰은 문무일 검찰총장 취임 후 범죄정보과를 폐지하고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했습니다. 수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정보 기능만 남겨뒀다는 설명입니다. 반면 정보경찰 개혁은 수사권 조정 논의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부, 청와대는 지난달 20일 열린 경찰개혁 당·정·청 회의에서 정보경찰의 통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법령에 ‘정치관여시 형사처벌’ 규정을 넣고, 정보 활동범위를 명시하겠다는 겁니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협의회 종료 후 브리핑에서 “현재 경찰은 준법지원팀을 신설해 모든 정보활동의 적법성 여부를 상시 확인·감독하고 있으며, 정보경찰 활동규칙을 제정해 정보수집의 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실효성 없는 개혁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보경찰의 정보는 ‘풀뿌리 정보‘라고도 불립니다. 밑에서부터 촘촘히 끌어올린 ‘밑바닥 정보’라는 뜻입니다. 과거 검찰에 범죄정보 기능이 있을 때도 정보 수집만큼은 검찰이 경찰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정보경찰은 고위공직 후보자의 인사검증도 맡고 있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양복 상의를 벗어흔든 문 총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보경찰 관련 문제는 수사권 조정과 직접적 관련은 있지 않다. 수사권 조정으로 독점적 권능들이 결합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보경찰이라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권이라는 간섭 없이 수사권을 오롯이 갖게 되면 위험하다는 겁니다.  사실 정보경찰은 수사권 조정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반면 검찰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는 분명합니다. 이를 위해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수사권 조정의 선결 과제가 정보경찰 개혁은 아니지만, 관련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수사권 조정과 관계 없이 이번 기회에 정보경찰 개혁에 대해 논의할 필요는 있습니다. 수년이 흐른 뒤에 경찰청장, 정보국장, 정보경찰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게 되는 비극은 없어야 하니까요.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전라감사 서유구의 ‘완영일록’ 출간

    조선 후기 전라감사를 지낸 풍석(楓石) 서유구 선생(1764∼1845)의 공문서 일기인 ‘완영일록(完營日錄)’이 한글로 번역돼 발간됐다. 전북 전주시는 1833년 4월부터 21개월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한 서유구 선생이 재임 기간 필사한 공문서 기록 약 33만 2000자(字)를 번역한 ‘완영일록’을 출간했다고 31일 밝혔다. 한문으로 된 2권의 책을 한글로 풀어 4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185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완영일록에는 전라도 56개 지역에서 있었던 송사·환곡 ·농정 ·향시 ·효자 열녀의 장려·망궐례·기우제·진상품·부임 과정·각 지역 수령의 인사고과 등의 내용이 기록돼있다. 수록 방식은 먼저 날짜를 쓰고 공문의 요지를 두어줄 쓴 다음에 공문의 성격을 분류한 뒤 그 내용을 적었다. 전라감영이 설치된 전주성은 당시 한양, 평양과 더불어 3대 도시의 하나로 제주를 포함해 전남·북을 관리한 호남의 심장부였다. 특히 완영일록은 관찰사가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고 오로지 행정, 사법, 군정 등 감사의 직무 전반에 걸친 공문서만을 기록해 남긴 일기다. 현재 유일하게 전해지는 일기로 감사의 직무와 감영 문화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서유구는 조선판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11번째 지(志)인 ‘상택지’(相宅志)에서 황산촌(黃山村·익산시 여산면), 서지포(西枝浦·군산시 나포면) 등 전국 233곳의 명당 정보를 담기도 했다. 풍석문화재단 전북도지부는 완역작업을 기념, 이날 전주향교 문화관에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가치를 조망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180여 년 전 전라도 감영의 공문서를 공개하다’는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세미나에서는 ‘완영일록과 전라감사 기록을 통한 관찰사 근무평가 분석’ 등을 주제로 다뤘다. 황권주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완영일록은 관찰사의 근무지인 감영에서 벌어진 일상을 우리말로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음은 물론 당시 지방의 사정과 행정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좋은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트럼프 탄핵론’ 다시 불지핀 뮬러 특검

    ‘트럼프 탄핵론’ 다시 불지핀 뮬러 특검

    침묵 깨고 “대통령 기소 애초 선택 못해무죄였다면 보고서에 그렇게 썼을 것” 의회로 공 넘겨… 민주 “탄핵 시작돼야”“(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애초 옵션(선택지)이 아니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의 공모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오랜 침묵을 깨고 29일(현지시간) 이같이 밝혔다. 현직 대통령을 범죄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는 법무부 지침에 따라 대통령 기소는 특검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기소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죄가 입증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자, 반(反)트럼프 진영은 다시 ‘탄핵 카드’를 꺼내며 총공세에 나섰다. 22개월에 걸친 조사를 지난 3월 끝낸 뮬러 특검은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직접 발표한 성명에서 “대통령이 분명히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만약 우리가 확신했다면 우리는 (보고서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면서 “현직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공식적으로 고발하려면 형사사법 체계 이외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뮬러 특검이 입법부의 독자적 권한으로 탄핵 소추를 시도할 수 있는 의회에 공을 넘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뮬러 특검의 성명이 나온 뒤 2020년 미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앞다퉈 대통령 탄핵론에 불을 지폈다. 베토 오루어크 전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결과와 책임,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탄핵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이끌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공개된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여전히 그 사실(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부인하는 미국 지도자는 한 명뿐”이라고 비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 1회] 긴장감 속 첫 재판…양승태 “모든 것이 근거 없고 소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 1회] 긴장감 속 첫 재판…양승태 “모든 것이 근거 없고 소설”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 두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직업이 무엇입니까?”(재판장) “직업이 없습니다.”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두 전직 대법관이 잇따라 피고인석에 서서 “직업이 없다”고 답하는 장면을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평생 법대에서 피고인들을 내려다 보다가 후배 법관 앞에 서서 집 주소와 등록기준지를 읊어대는 장면을 정작 자신들은 상상이라도 했을지. 세 사람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된 뒤 그들은 자신이 여느 피고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29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첫 공판기일이 열렸다. 재판이 열린 곳은 417호 대법정으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1심 재판을 받은 곳이다. 특수부 검사 12명, 세 사람의 변호인으로 14명이 법정 앞을 가득 채워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모집한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 30여명도 ‘두눈부릅’이라는 글귀와 함께 부엉이가 그려진 스티커를 각자 옷에 붙인 채 법정을 메웠다. 오전 9시 59분 남색 양복에 흰 셔츠를 입은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혼자 법정으로 들어왔다. 불구속 상태인 박·고 전 대법관과 눈이 마주쳤고, 이들쪽으로 다가가자 고 전 대법관이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려는 듯 일어섰다. 잠시 자리를 헤매다 자신의 변호인 옆자리로 발걸음을 옮겼고, 재판장을 기준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 순서로 나란히 자리했다. ●‘사법부 정점’ 양승태·박병대·고영한, 피고인석에서 첫 대면 검찰 측에서 제시하는 서류증거에 대한 조사를 몇 번에 걸쳐 할지, 어떤 증거들을 어떤 순서대로 조사할지를 논의한 뒤 10시 24분 검찰의 모두진술이 시작됐다. 첫 공판에서는 검찰이 피고인을 재판에 넘기게 된 공소사실의 요지를 간략히 밝히고 이에 대해 변호인과 피고인이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말하게 된다. 검찰은 “양이 좀 많다”며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이 법원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지가 먼저 설명됐다. “피고인들은 대법원장 또는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사법행정을 총괄 또는 관장하고 법관 조사, 징계, 대외관계, 인사 등 사무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권한을 갖는다. 재판의 명백한 실수 또는 중대한 잘못이 있을 시 재판 진행 및 절차에도 사법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어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당시 사법부 상황은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이 마련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가 단계적으로 시행돼 고법부장 승진제가 폐지될 예정이어서 대법원장의 법관들에 대한 장악률이 약화될 상황이었고 헌법재판소의 중요한 결정들이 대법원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이 있던 때”라면서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유지하면서 행정처 차장이 제청되는 식의 인사제도가 확립되면서 점차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일사분란한 조직으로 변모해 개별 법관들이 독립을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그리고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들이 줄줄이 언급됐다. 상고법원 도입을 사법부의 최대 역점사업으로 두고, 정부와 청와대의 협조를 얻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상고심에 개입하고 이른바 ‘재판거래‘를 했고,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도 개입한 혐의가 먼저 나왔다. 서기호 판사의 연임 탈락 관련 행정소송 개입,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떨어뜨리기 위해 헌재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칼럼을 대필해서 언론사에 게재한 의혹,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업무방해 사건을 두고 청와대를 통해 헌재를 압박하려던 시도,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에 개입한 혐의, 상고법원에 반대하거나 당시 사법부를 비판한 판사 등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 검찰의 공소요지 설명은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검사 12명 vs 변호인 14명…모두진술부터 신경전 ’팽팽‘ 공소요지와 입장을 밝히는 것에서부터도 검찰과 변호인의 신경전이 일어났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검찰이 공소요지를 밝히면서 어떤 증거들로 혐의를 입증할 것인지 계획을 말하려고 하자 “이의 있습니다”라며 제지했다. 혐의와 적용 법조만 언급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주장이다. 공소요지 낭독을 마친 검찰은 이에 대한 입장을 변호인들보다 피고인들이 먼저 밝히라고 요구했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는 별로 거론되지 않던 진행 순서까지 모두 규정이라며 다툰 것이다. 몇 차례 공방이 오가자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시작으로 피고인들이 먼저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를 밝힌 뒤 변호인들이 구체적인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설명하고 다시 피고인들이 보충하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말했다.“공소사실에 관해 인부(인정 또는 부인)를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이것이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고 변호인이 얘기한 다음에 다시 말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재판장이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를 먼저 밝히라고 하자 양 전 대법원장은 다시 목에 힘을 주었다. “검사들께서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이야기했는데 그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깁니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은 40여개. 양 전 대법원장은 이 한마디에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 전 대법관도 간단했다. 그는 “구체적인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문제 일체에 대해 다투는 취지”라면서 “공판준비절차에서 변호인들이 낸 의견서와 저도 같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은 “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일단 전부 부인하면서 재판에 임하는 소회를 준비해왔기 때문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다”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형사법정에 서고 보니까 이루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메어진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제가 이 자리에 선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여러 부분으로 재판에 임하시는 양승태 대법원장님을 잘못 보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으로 죄송스럽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고영한 “양승태 보필 잘못…죄송스럽고 가슴 아프다” 고 전 대법관은 이어 “무엇보다 저의 가슴을 천근 만근 무겁게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이 사법부에 가진 신뢰가 전례없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라면서 “재판을 통해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34년 법관생활을 하면서 심복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절제된 삶을 살았고, 행정처장 근무 당시에는 오로지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사법부가 존립할 수 없다는 가치 아래 어떻게 신뢰를 가질 것인지를 사법행정의 주안점으로 삼고 일했는데, 공소사실은 마치 제가 소신을 져버린 채 권한을 흔들며 남용했다고 표현돼 그 자체로 마음이 참담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재판을 하는 법관과 달리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조직의 위상을 강화하고 안정적이 방향으로 정책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여러 합목적적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폭넓은 재량을 갖고 있다”며 “사후에 보기에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 수 있어도 곧바로 형사범죄로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볼 수는 없다”며 검찰이 지목한 범죄사실을 반박했다. 고 전 대법관은 또 “저에게 양심적이나 도의적으로 어떠한 책임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고 질 것이고 제가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으면 마땅히 그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면서 “판사님께서 유감스럽게도 일방적 시각에서 언론보도를 접하며 갖게 됐을지도 모르는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저의 간절한 말에 귀기울여 주시고 과연 형사법정에 이를 수준으로 권한을 남용해 후배 법관들에게 의무없는 일들을 시킨 것인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고 전 대법관이 말을 마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판장은 오후에 본격적으로 변호인이 공소사실에 대한 진술을 하고 피고인들이 입장을 밝히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하고 오전 재판을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사법행정권 남용’ 첫 재판 양승태 “모든 것이 근거 없고 소설”

    ‘사법행정권 남용’ 첫 재판 양승태 “모든 것이 근거 없고 소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정점으로 꼽혀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열린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 그 모든 것이 근거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함께 법정에 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29일 열린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첫 공판기일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사들께서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이야기했는데 그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라면서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공소사실을 1시간 반 이상 설명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정부의 협조를 받아낼 목적으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심에 개입하고 외교부·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한 의혹을 비롯해 법관 불이익 인사 조치 등 47개에 달하는 범죄사실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월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은 2월에 열린 보석 심문에서도 “검찰이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과 처음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박·고 전 대법관도 단호한 말투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박 전 대법관은 “구체적인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문제 일체에 대해 다투는 취지”라면서 “공판준비절차에서 변호인들이 낸 의견서와 저도 같은 의견”이라고 간단히 의견을 말했다. 반면 고 전 대법관은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냈던 법원의 형사법정에 서고 보니 이루 말씀을 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메워진다”면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에 대해 참으로 송구하다”며 입을 열었다. “양 대법원장을 잘못 보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으로 죄송스럽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 전 대법관은 이어 “무엇보다 저의 가슴을 천근 만근 무겁게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이 사법부에 가진 신뢰가 전례없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라면서 “재판을 통해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공소사실에 대해서는 “34년 법관생활을 하면서 심복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절제된 삶을 살았고, 행정처장 근무 당시에는 오로지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사법부가 존립할 수 없다는 가치 아래 어떻게 신뢰를 가질 것인지를 사법행정의 주안점으로 삼고 일했는데, 공소사실은 마치 제가 소신을 져버린 채 권한을 흔들며 남용했다고 표현돼 그 자체로 마음이 참담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재판을 하는 법관과 달리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조직의 위상을 강화하고 안정적이 방향으로 정책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여러 합목적적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폭넓은 재량을 갖고 있다”며 “사후에 보기에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 수 있어도 곧바로 형사범죄로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볼 수는 없다”며 검찰이 지목한 범죄사실을 반박했다. 고 전 대법관은 또 “저에게 양심적이나 도의적으로 어떠한 책임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고 질 것이고 제가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으면 마땅히 그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면서 “판사님께서 유감스럽게도 일방적 시각에서 언론보도를 접하며 갖게 됐을지도 모르는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저의 간절한 말에 귀기울여 주시고 과연 형사법정에 이를 수준으로 권한을 남용해 후배 법관들에게 의무없는 일들을 시킨 것인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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