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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 고- ‘고시병’ 진단/복거일, 김성재

    - 교육·사회제도 개혁으로 해법 찾아야 [뜨거워진 사법시험 열기로 대학교육이 왜곡되고 있으며,일부 직장인들도 직장을 뛰쳐나와 고시촌으로 몰려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을 ‘고시병’이라고 부르고 고시생들을 ‘고시환자’로 비웃기도한다.과연 고시열풍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대한매일은 이와관련 소설가 겸 경제평론가인 복거일씨와 로스쿨 방안을 마련중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김성재교수의 의견을 각각 들어본다.]이른바 ‘고시열풍’에 관한 논의에서 생산성이 비교적 낮은 분야에 너무 많은 인적 자원이 투자되고 소중한 지식들이 사장된다는 걱정은 자연스럽고 정당화된다.하지만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은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비웃거나 훈계하는 일이다.그들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까닭이 없다는 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그런 비난은 고시를 준비하는 개인들의 판단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근년에,특히 이번 경제위기 속에,새로 직업 시장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얻기 어려웠다.그런 상황에서각종 고시들은 좋은 대우와 안정성과 장래성을 함께 지닌 일자리를 얻는 지름길이었다.따라서 그런 비난은 문제를 잘못 짚었을 뿐 아니라 효과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 처방은 고시준비를 그렇게 합리적으로 만든 사회적조건들을 바꾸는 것이다.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정부의 몸집과 힘을 줄이는것이다.정부가 시장 위에 군림하는 한,관리라는 직업의 매력은 여전히 클 것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은 고시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보다 직접적이고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대책은 고등교육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학과들의 종류와 정원을 엄격하게 묶어 놓은 탓에,대학들은 그동안 사회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고 직업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학위들을 많이 생산했다.만일 대학들이 학과들의 종류와 정원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면,직업 시장에서 바라지 않는 학위들을 가진 젊은이들은 많이 줄어들고,자연히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도 줄어들 것이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그러나 노동시장의 자유화다.지금노동법은 너무 경직돼서,기업들이 덜 필요한 종업원들을 내보내고 꼭 필요한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이런 사정은 젊은이들에게 너무 불리하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개혁돼야 비로소 고시 열풍이 사그러질 것이다.그것을 개인의 단견이나 욕심에서 나온 현상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것이고 올바른 처방이 나오는 것을 막을 것이다. 卜 鉅 一 소설가·경제평론가- 사법시험이 특권층 선발제도로 변질 [뜨거워진 사법시험 열기로 대학교육이 왜곡되고 있으며,일부 직장인들도 직장을 뛰쳐나와 고시촌으로 몰려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을 ‘고시병’이라고 부르고 고시생들을 ‘고시환자’로 비웃기도한다.과연 고시열풍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대한매일은 이와관련 소설가 겸 경제평론가인 복거일씨와 로스쿨 방안을 마련중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김성재교수의 의견을 각각 들어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본래 시험을 통해 사람을 선발,임용하게 된 것은 출신성분 또는 경제적 빈부의 조건을 넘어 훌륭한 인재를 선택하려는 목적에서비롯됐다.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인권의 한 제도로 발전되었다.따라서 시험이란 제도는 특권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시행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시험의 본래적 정신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특히 사법시험제도는 특권층을 선발하는 제도가 됐기 때문에 인권이나 사회정의 차원에서 볼 때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무엇보다도 사법시험에 합격한사람들이 스스로를 특권층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법의 정의가 존재하기 어렵다. 또한 사법시험은 특권층이 되는 유일한 기회의 사다리가 되어 초·중등 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까지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원인이 되고있다.인문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소 1∼2% 이내의 수재들은 거의 모두법대를 지망한다.그러나 법대에 가서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시준비를 한다.정상적인 법학교육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서울대의 경우 법대만이 아니라 인문,사회,자연계열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고시준비를 하고 있고인문·사회·사범계열 등은 고시준비하는 학생이 약 70%에 달한다고 한다.이 때문에 서울대가 고시학원이 됐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리고 사법시험은 다른 시험과는 달리 한 시험을 통해 변호사 자격 인정과 판·검사 임용을 모두 성취시키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도 모순일 뿐 아니라변호사,판사,검사 상호간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이들이 폐쇄적인 동류의식으로 특권층을 형성하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이 때문에 사법연수원에서 변호사가 되는 사람까지도 국비로 연수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을위한 것이 아니라 법조인 만을 위해 불평등하게 특권층을 형성하는,이런 불의한 사법시험제도는 시급히 개혁돼야 한다. 金 聖 在 한신대교수·새교육공동체委 위원
  • [김삼웅칼럼] 5·18 진혼곡

    소돔과 고모라시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지만 까레시는 여섯명의의인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군사정권시대에 광주민주항쟁이 없었다면,그들 의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 현대사는 정신적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을지 모른다. 마치 사육신의 의혈(義血)이 조선왕조의 건강성을 유지해온 역설과 비유될수 있겠다. 군사정권시대에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그들은 대부분이 일방적인 사법살인·암살·테러·의문사·고문치사의 희생자들이다.그러나 광주항쟁은 폭력집단에 맞서 싸우다가 희생된 차이가 있다. 오늘(18일)은 광주민주항쟁 19주년이다.학살자와 부상자·‘시민군’이 살아 있는,그래서 어느 측면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이를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동시대인들에게 194명의 사망자와 1,059명의 부상자를 낸광주학살은 불의와 폭력이 판치는 반이성의 시대로 각인된다. 고려 100년 동안 11명의 무신이‘칼로 칼을 갈고,피로 피를 씻는’폭력의논리가 지배한 이래 8백년 후 이 땅에서는 또다른 무인시대가 열리면서 반이성의 광란이 칼춤을 추었다. 고려 무신들은“문관(文冠)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남김없이 죽이라”면서 학살을 일삼았고,나중에는 어용문인들만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현대의 무인정권도 비슷했다.무자비한 학살과 양심세력을 묶어놓고 그들을 추종한 반민세력과 어용문사들이 한시대를 주름잡았다. 아카시아꽃 향기로운 80년 5월,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고 꽃 한송이 꺾지 못하는 여린 학생과 시민들이,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찍어 죽이는학살자들을 상대로 무장항쟁에 나선 것은 나약한 시대의 양심의 불꽃이고 저항의 횃불이었다. 돌이켜보면 동학의 피울음,의병의 한맺힘,독립군의 애국혼,4·19의 민권의식이 합쳐서 마침내 광주민주항쟁의 불꽃이고 횃불이 되었던 것이다.우리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민족혼이요,당당한 저항의 맥박이었다. “내 손에 숨진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어떤 벌이라도 달게받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그동안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비밀경찰 책임자로킬링필드 대학살의 실무총장 두크(본명 카잉케프예프)가 최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말이다.그는 20년 만에 정체를 드러냈다.기독교인으로 변신한 이 학살자는‘죄값을 받겠다’고 뒤늦게나마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스페인내전의 장본인 프랑코는 독재와 학살을 참회하면서 내전 당시 전몰자의 계곡에서 사망한 수십만명 장병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사원을 세우고,숨지기 전에 그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지금‘전몰자의 계곡’은 용서와 화해의 성지가 되었다. 얼마 전 5·18 관련 단체 회원 250여명이 당시 진압부대를 차례로 방문하여 용서와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부상자회와 구속자회·유족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편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광주항쟁의 민주와 평화정신의 맥락을 거듭 살피게 된다.가해자들이 여전히 5·18을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으로 규정하고‘폭동 진압’ 자긍심을 느낀다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용서와 화해의 손길은 바로 까레의 의인정신과 연결된다 할 것이다. 5·18 당시 현장에 달려간 뉴욕타임스 기자는“광주시민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폭동(Violence)이 아니라 봉기(Insurrection)였다.나의 판단은 광주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고 썼다.민중봉기·민주항쟁을 폭동으로 호도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자들은 역사에대한 바른 안목을 갖고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캄보디아의 두크나 스페인의 프랑코보다 못한 학살자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지역색 조장이‘오역죄(五逆罪)’라면 양민학살과 참회를 모르는 죄는 무슨죄에 해당될까.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건립지원을 통해 역사적 용서와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이 기회에 5공세력도 피해자들이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펼 때 진정으로 참회하면서 지역화합과 IMF극복에 동참해야 한다.그리하여 20세기의 불행했던업보를 모두 풀고 화합의 새 세기를 맞아야 한다.광주의 영령들도 그러길 바랄 것이다.
  • 검·경 수사권독립 공방 가열

    법무부는 7일 경찰자치제의 도입을 계기로 경찰이 수사권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불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법무부는 이날 ‘경찰의 수사권 독립 주장에 대한 법무부의 기본입장’이란 자료를 통해 경찰의 수사권 독립 주장은 ▲형사소송구조의 근간 붕괴 ▲인권상황 악화 등 두가지 근본적 문제 때문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검찰제도 자체를 부정,국가의 형사소송구조의 뿌리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경찰의 불법 수사 등을 감시하는 유일한 견제장치인 검사지휘권 폐지는 인권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지적했다. 특히 미국·일본·독일 등 각국의 수사제도에서도 수사종결권 및 영장직접청구권 등은 검사에게 속한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대안으로 교통·정보 등을 담당하는행정경찰과 법을 다르는 사법경찰을 분리,사법경찰을 법무부 직속으로 하는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경찰이 처리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현행제도를 유지하고 사건 처리기준에 관해 통일된 지침 등을 마련한다면 법집행의통일성과 형평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서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영장실질 심사제도나 국가인권위원회,시민단체감시 등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박홍기 김재천기자 hkpark@
  • 외국의 수사제도

    수사권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각국의 사례를 살펴본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대등한 협력관계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실제로는 경찰이 수사단계에서부터 검찰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특히 구속권한은 검찰에게만 인정하고 있으며 경찰에게는 체포권한만을 부여하고 있다.소추권과 수사종결권도검사에게만 인정하고 있다. ?嵐堅뮈【?는 경찰이 검찰과 함께 수사의 주체로서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하지만 영장을 청구하거나 수사를 종결할 권한은 검사에게 있다. 검사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기록을 검토하여 수시로 수사지휘를한다.실제로 대부분의 주에서는 법원에서 검사의 서명이 없는 영장에 대해서는 영장발부를 거부,검사의 지휘감독권을 인정하고 있다. ?藍瞿뼈? 검찰과 경찰이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선언규정을 두고 있다.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받고 있다.경찰은 자신이 수사한 모든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해야 하며 검사의 지휘·지시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검사에게는 사법경찰에 대한 징계 및 파면소추권까지 부여하고 있다. ?蘭뗌?,프랑스,영국 등 기타 국가에서도 검찰과 경찰의 대등한 협력관계를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수사과정에서는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검사의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스코틀랜드·웨일스 ‘自治 걸음마’

    ‘수퍼 목요일’.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웨일스가 6일(현지시간) 300∼700년만에 처음으로 런던 의회와 다른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각각 치렀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영국에 합병된 이후 처음으로 자치 입법권을 갖는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대표 129명을 선출한다.지금까지는 상원 16명,하원 71명의 대표를 런던에 파견해왔다. 13세기말 영국에 정복당한 웨일스도 사상 처음으로 자체 의회를 구성하는 60명의 대표를 뽑는다.웨일스의 경우 지난 97년 주민투표에서 50.3% 대 49.7%로 간신히 턱걸이했을 정도로 자체 의회구성에 냉담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들 2개 지역이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집권 노동당 덕분이다.스코틀랜드에 지지기반을 둔 노동당으로서는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노동당이 97년 집권 이후 헌법개정을 통해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작업을 계속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2000년부터 각각 독자적인 의회를만들어 국방과 외교·재정 등의 부문을 제외한 각종 행정권한을 영국 정부와는 별도로 행사할 수 있어 폭넓은 자치를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영국과는 다른 로마법에 기초한 사법체계를 유지해온 데다,입법권과 함께 제한된 징세권(소득세의 3%)과 유럽연합(EU) 대표권까지갖는 등 독립성이 한층 강화됐다. 물론 이들 지역은 런던 의회에 할당된 의석은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김규환기자 khkim@
  • 崔仁基경찰개혁위원장 일문일답-”경찰 수사권 독립…”

    “내년 7월1일부터 자치경찰제를 시행한다는 목표아래 일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15만 경찰의 숙원인 자치경찰제 도입의 산실인 경찰개혁위원회 최인기(崔仁基) 위원장은 4일 그동안의 강행군에 따른 피로도 잊은 채 자치경찰제 도입의 필요성 등을 하나하나 힘주어 설명해 나갔다. 다음은 최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가 제기됐다.어떤 취지인가. 수사권 독립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검찰총장도 만났다.수사권을 경찰에 줘야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 형벌권을 인권보호,사법 서비스 개선,범죄예방및 검거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해 보자는 취지다.지금까지 이에 대한 공개 토론이 없었다.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토론을 해 그 결과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수사권 독립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1차적 수사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대신 경찰의 인권침해 소지,법률 소양 부족이나 업무처리 미숙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대륙계 국가도 (경찰이 수사권을)다 갖고 있다.지휘를 받으면 자율과 창의성이 생기지 않는다.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면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자치경찰제의 형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인사·예산에 있어 완전한 자치인 미국식으로 자치경찰을 할 수는 없다.남북분단 상황에다 국토도 좁다.절충형을 택해야 한다.우리나라 지방자치는 분할지배구조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미국식으로 지방경찰이 시·도지사 밑으로 들어가면 큰 일 날 것이다. ●국가 공무원의 범위에 대해 경정 이상이라든지 총경 이상이라든지 말들이많은데. 경정 이상으로 결론났다.시·도에 근무하는 경감 이하는 지방직이 된다.물론 본청에 근무하는 직원은 경감 이하라도 국가직이다. ●국가 차원의 공조체제가 잘 될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완규정을 뒀다.지방청장은 국가비상사태나 대간첩 작전등 국가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나아가 경찰청장에게 특별조치권을 부여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한 일선 경찰의 반응은 어떤가. 경찰들은 좋아한다.일선 경찰관의 전화와 편지를 많이 받았다.인사제도의공정성과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에 대한 것들이었다.자치경찰은 경찰에 크게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 경찰 수사권 독립 찬성/ 반대

    *찬성 자치경찰제 실시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경찰 수사권 독립문제가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자치경찰제를 채택하고 있는 모든 나라가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하고 있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검사를 수사 주재자로,경찰은 보조자로 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하고 있어 수사 진행상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다. 경찰은 매년 발생하는 150여만건의 범죄 가운데 96.7%를 실질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그런데도 경찰은 제도상으로 수사의 주체가 아닌 보조자에 불과하다.이는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엄청난 모순이다. 현행 소송법상 경찰은 시종일관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만 하지만 소수의 검사 인원으로 연간 150만건에 이르는 범죄사건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경찰에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경미한 사건도 절차상 검사의 검토와판단을 거치게 돼있는 점은 국민의 불편과 심리적 부담감만 가중시킨다.사법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어 피의자나 참고인이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서장 등 경찰간부의 지휘와 검사의 지휘가 중복되다보니 지휘·명령체계가 이원화돼 있어 수사지연과 업무혼선이 초래된다. 이처럼 중첩된 검·경의 수사업무는 국가 인력과 예산의 비효율적인 집행이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 수사상 인권 침해의 가능성이나 법률소양 부족,법 적용의 형평성과 일관성 결여 등을 우려하고 있다.하지만 영장실질심사제도나 국가인권위원회,시민단체의 감시 등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경찰 또한 그동안 고시특채나 경찰대생,간부후보생,법대생 특채 등을 통해 고급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경찰이 처리한 사건 전부를 검찰에 송치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사건 처리기준에 관해 통일된 지침 등을 마련한다면 법집행의 통일성과 형평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金學培 총경]*반대 경찰이 이번에는 자치경찰제 도입과 관련하여 검사의 수사지휘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즉 수사권 독립 주장을 하고 있다. 경찰은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검찰이 일일이 지휘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자치경찰제의 정착이 어렵다며 경찰 수사권 독립을 자치경찰제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적극 추진중이라고 한다.그러면서 수사 소추 재판을 각각 경찰 검찰 법원에 분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자치경찰제도는 경찰 내부의 조직 인사 예산 등 권한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이양,자치단체가 치안분야에 대해서도 책임행정을 하도록 하자는것이다.반면 검사의 수사지휘는 인권침해 사례를 방지하고 수사의 적정성을확보하기 위해 법관과 같은 자격을 가지고 신분이 보장된 검사의 지휘통제를 수사절차 진행과 동시에,또는 사전에 철저히 하자는 형사사법절차의 기본원리에 속한 것이므로 서로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이다. 지역갈등이 심화되어 있는 현단계에서 자치경찰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지않고 지역의 이해만을 고려한 경찰권 행사를 할 경우 전국적인 법집행의 형평성 통일성을 해할 뿐 아니라 통치권 행사에도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일찌감치 그 논의가 종결됐고 최근에는 경찰의 기능 중 수사기능은 법무부에 편입시켜 그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미국 영국 일본 등도 현실제도와는 상관없이 검찰의 경찰수사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감독권한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 수사 소추 재판을 경찰 검찰 법원에 분배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병원에서 수술준비,수술,수술후의 회복과정을 3분하여 별개의 자격을 가진 자가 담당해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수사권 독립문제는 기관간의 권한쟁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와 소추의 불가분성,국민의 인권 및 적법 절차보장이라는 형사사법정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검토돼야 한다. [尹錫正 변호사]
  • ‘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 노동 천시하며 지배계급에 동화 서양 중세시대 지성의 역사를 ‘지식인’이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다룬 책‘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지음·최애리 옮김)이 나왔다.기존의 중세 지성사가 주로 사상사적 관점에서 다루어졌던 반면,이 책은 구체적 정황속의 인간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저자는 여기서 문화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에도 정의에 대한 열정과 진리에 대한 치열한 탐색을추구한 일련의 지식인들이 있었음에 주목한다.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권력에동화되고 문화를 경직시켜 중세가 ‘암흑기’란 오명을 얻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지 세밀하게 짚어가고 있다. 이책에 등장하는 지식인은 현대의 지식인과는 그 범주와 의미에서 차이가있다.이들은 중세의 사회역사적 환경에서 탄생된 특정 부류를 의미한다.주로 학문 연구와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성직자의 직분을 갖기도 했지만 수도사나 사제 등과 달리 교사나 교수의 역할에 치중했다.이들은 학교와 거리를 두고 있는 시인들이나 작가들과도 구분된다.단테같은중세 서양사상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도 학교와 긴밀한 관련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단편적인 언급에 그치고 만다.저자는 이들이 독창적인 계보를 형성했으며 중세 지성사에서 뚜렷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12세기 유럽 각국에서 도시가 일어나면서 등장한다.중세에서 교육은 만인에게 개방하는 것이 원칙이었고,따라서 사람이 모인 도시에 수도원 교단들은 너도나도 학교와 대학을 세웠다.교사들은 처음에는 연구와 가르치는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지적 노동자’였다.이때 지식인의 또다른 유형으로는 번역가들과 골리아르가 있다. 번역가들은 대개 수도원 등에서 보수를 받고 그리스 아랍 등의 고전과 과학서 등을 찾아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골리아르(goliards)는 정해진 소속 없이 이름 높은 교사를 찾아 다니는 가난한 유랑학생들이었다.이들은 지적 자유추구 만큼이나 기성질서를 대변하는 성직자와 귀족 들을 비판했다.골리아르중 한 사람으로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인간주의자였던 피에르 아벨라르 같은이는 항상 새로운 사상을 고취시키며 발길 닿는 곳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이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기성특권층과 과감한 지적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13세기에 이르러 지식인들은 다른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동업조합을 조직해나름의 조직과 제도를 구축한다.이들은 대학을 교회와 세속권력들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교황권을 이용하려고 하나 오히려 교황의 일꾼으로 전락하고만다.대학조합은 교회사법권에 속해 대학인들은 속인이면서도 성직자라는 애매한 지위에 놓인다.그리고 교회의 ‘무상교육 원칙’에 의해 이들 지식인들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교황의 은급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과정은 결국 13세기 말에 이르러 대학의 교사들이 교회와 세속의 고위직에 나가 정치권력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14세기 중세말기에 한층 더 지배계급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경제적 기반을 잡은 이들은 귀족행세를 하고 대학의 교수직마저 세습화한다.중세말기를 풍미하는 반지성주의,신앙절대주의는 이처럼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생겨나는 것이다.그결과 이들이 12세기에 추구했던 지적 열정은 사라졌다. 이 책은 기존의 중세 지성사에서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중세지식인 집단의 존재를 새로이 부각시키고 있다.그리고 이들이 지적 ‘노동자’로서의 계급을 부인하고 노동을 천시하며 지배계급에 동화되어 결국 지적문화의 경직과 퇴조를 가져오는 과정을 교훈적으로 보여준다.동문선 1만8,000원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 개편안 주요내용

    정부조직 2차 개편안 기능조정 및 운영시스템 혁신방안을 간추린다. ▒국정홍보기능 강화 분산돼 있는 국정홍보 기능을 종합화·체계화하기 위해 국정홍보처(차관급)를 신설한다.국내외 홍보를 일원화하고 국정홍보처장이정부대변인 역할을 수행한다.총리공보기능은 총리비서실로 이관한다.언론관리 기능은 통제가 아니라 인허가 등 지원 업무만 한다. ▒중앙인사위원회 설치 대통령 직속으로 중앙인사위원회를 신설한다.1∼3급의 고위공무원 채용과 승진에 대해 공정·투명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심의·의결한다.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그 기준에 맞춰 대통령에게 임용 제청하며,중앙인사위는 기준 준수여부를 심의한다.소청심사위원회는 행정자치부에 존치한다. ▒경제정책조정 및 예산기능 보완 헌법상 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구성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다.경제현안 중심으로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해 재정경제부장관이 주재한다.당면 현안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한다.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을 통합해 기획예산처로 개편한다.공공부문 개혁과 예산,재정운영,재정관련 기획·조정회의를 담당한다. ▒중앙기능의 지방이양 교육부의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를 대폭 지방에 이양한다.교육부 조직과 기능을 교육자치에 대비한 구도로 개편한다. 자치경찰제를 실시하되 구체적인 추진시기 및 방법은 경찰개혁위원회 보고서 내용을 반영해 결정한다. 부처별로는 행정자치부 교육부 농림부 등 7개 부처의 23개 기능을 우선적으로 지방에 이양하고 부처별로 자치단체 이관 대상기능을 추가로 검토한다. ▒정부기능의 외부위탁(아웃소싱)·민영화 행정자치부의 정부청사 조경과 식당·매점관리 기능 등 18개 기관의 38개 기능을 대상으로 추진한다. ▒집행기능의 책임운영기관(에이전시)화 조달청 등 17개 부처,25개 기관을책임운영기관화 검토대상으로 선정,우선 올 하반기부터 10개 기관을 선정해시범운영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재정경제부 외국인 투자유치 기능은 산업자원부로 이관한다.금융기관 설립 인허가권과 특수은행의 건전성 감독권을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한다.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은행연합회 농수축협중앙회 등 자율규제 기관에 대한 감독기능을 금융감독위원회로 넘긴다.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국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넘긴다. ▒법무부 중립적 인사로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4∼8월 구성해운영한다. ▒행정자치부 육지 소규모 어항 개발사업은 해양수산부로 이관한다.지역신용보증조합 관리지원 기능은 중소기업청으로 이관한다.도심철도 이설사업 지원기능을 철도청으로 넘긴다. ▒농림부 농과계 대학교 지원기능을 농촌진흥청으로 넘긴다. ▒산림청 야생조수 관련 정책 및 연구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한다. ▒농촌진흥청 대구사과연구소·나주배연구소를 국립 지방대로 넘기고,해외병해충 관련기능의 농림부 이관을 검토한다. ▒산업자원부 지역통상 협력기능을 축소한다.방문판매·할부거래 등 소비자보호기능을 공정거래위원회로 넘긴다.추가로 남북경제협력 대비 기능을 통일부로 이관하는 것을 검토한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 안전정책 기능을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넘긴다. ▒개방형 임용제도 퇴직·승진·전출 등 공석을 충원하는 방식으로 하되 2000년말까지 실국장급 30%를 개방형으로 임용한다.개방형의 적용범위,대상직위,임용대상자의 자격기준,임용자의 신분,계약기간,보수,성과평가 등 세부추진방안은 신설될 중앙인사위에서 마련한다. ▒인사·조직·예산의 부처 자율성 제고 외무·행정고시를 통합해 외무공무원을 통상 전문가로 육성한다.고시 시험과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차관보나 담당관 등을 장관 직속기관 등으로 운용한다.대사·총영사·공사 등 외교의 직급을 하향조정한다.각 부처 비상계획관 도 직급도 2∼3급에서 3∼4급으로 낮춘다. ▒부패방지제도 강화 정부기능과 사업의 민간이양 추진,행정절차 간소화 및원스톱서비스 체제구축,민원업무 전산처리범위 확대로 인한 공무원 재량권축소,행정정보공개,예산집행 공개,정책실명제 등 ‘사전적’ 부패방지시스템을 구축한다.‘사후적’으로는 뇌물의 실체와 대가성 기준,단순선물과의 구분 등 뇌물의 개념을 구체화해 명확한 처벌기준을 마련한다.시민감사청구제도의 활성화와 부정,비리센터운영 및 몰수·추징금 일부를 장려금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리와 부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등의 활동도 지원한다. ▒복식부기제도 도입 정부 재정활동의 효율성,투명성,책임성 제고차원에서복식부기제도를 도입한다.중앙정부는 정부회계제도개선추진협의회를 구성해내년중 특별회계에 적용하고 2003년부터 일반회계까지 복식부기 적용을 확대한다.지방자치단체도 광역·기초단체의 유형별로 시범 실시한 뒤 2002년까지 전 지자체로 확대한다. ▒정보기술(IT)활용제고 전자결재를 의무화해 2000년부터 부처간 전자문서를 교환하고 50인 이상 모든 공공기관은 2000년말까지 웹사이트를 개설한 뒤정보공개목록을 작성해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고객헌장제도 확대 시범 실시중인 소방·우편·교육 등 10개 분야외에 검찰청과 병무청,조달청,국민병원 등 대민서비스기관 단위로 고객헌장을 시행한다. ▒국민권리구제절차 개선 행정심판 기능,조정·중재 담당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충처리위원회와 법률구조공단도 인사와 예산상 독립을 보장하고 조사·시정권고와 법률상담·소송대리 등 고유기능을 강화한다.
  • 정부조직개편 회견- 정해주 국무조정실장,金杞載 행정자치부장관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23일 정해주 국무조정실장,金杞載 행정자치부장관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조직개편 방향을 설명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당초 방침과 달리 국정홍보처가 신설되는 등 오히려 덩치가 커지지 않았나. 처음부터 기구조정이 아니라 기능조정이라고 했었다.부처의 수보다는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민간 금융기관이 34%,공기업이 22%의 인력을 줄인 데 반해 정부는 불과 17.5% 감축방안을 내놓았다.이것이 고통분담인가. 공기업은 아웃소싱 등 자체 구조조정 부분까지 합한 수치다.정부 역시 철도청 민영화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30% 이상 구조조정을 하는 셈이다. ▒민간진단팀 용역비로 46억원이나 쓴 것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있다. 반드시 기구를 통폐합해야만 46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민간진단팀을 통해 각 부처가 세금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부처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한 것만 해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에서 예산기능을 떼어낸 것과 관련,정책과예산의 분리에 따른부작용이 지적되는데. 환란의 원인에 비춰 보더라도 한 부처에 너무 많은 권한이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국정홍보처를 신설하려는 것은 옛날 공보처처럼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홍보는 공보와 달리 쌍방교신이다.알릴 것은 알리고 알아야 할 여론은 적극 수렴하겠다는 것이다.언론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개방형 임용제 도입으로 신분 불안과 함께 정실인사로 흐를 우려도 제기되는데. 공무원들은 불안해하기보다는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국가정보원 감사원 검찰 경찰 등 조직이 제외된 이유는. 국정원과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자율조정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므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통해 개혁안을 마련하는 게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자치경찰제 도입 등에 대해 경찰개혁위원회가 의견을 제출해오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 2차 정부조직 개편안-특징과 과제

    7일 발표된 2차 정부조직 개편안은 크게 기구개편과 운영혁신의 두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이 가운데 기구개편 쪽은 획기적인 내용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이 때문에 41억여원을 들여 처음 경영진단을 했지만 기대에 못미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운영혁신 쪽은 민간 경영기법과 개방형 공무원제의 도입,외무고시와 행정고시 통합 등 혁신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특히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공무원의 퇴출이 당초 목표 10.9%를 넘어 25%선에 이를 전망이어서 관가에메가톤급 인사태풍이 예상된다. ◆특징은 이번 안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기구와 운영체계,인력감축의 세마리 토끼를 잡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조직의 슬림화와 직급 인플레가 억제됐다. 개편안이 복수안이어서 어느 게 채택될지 모르나 2,3안의 경우를 생각하면최대 6개 부처의 통폐합까지도 가능하다.현 17부 2처 16청 1외국(外局) 등 36개 정부조직이 30개 정도로 줄어들 수도 있다. 경제부총리제를 부활하지 않고 장차관급 자리를 가급적 늘리지 않은 점도작은 정부 지향의 일환이다.공보실장을 현행 1급으로 유지하고 비상기획관을 2급에서 3급으로 낮춘 게 대표적이다. 정부기능을 미래형에 맞춰 재조정한 점도 특징의 하나다.산업기술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관련부처간 통폐합안을 제시한 점과 기초과학 인력양성 등 인력재활용 기능을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내용 등이다.정통부 해체시 대통령 직속의 ‘지식정보위원회’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며,문화재관리국을 문화유산청으로 승격한 점은 참신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국정관리기능의 효율성을 높인 대목은 경제정책조정 기능을 내각에 되돌린점에서 잘 나타난다.통계청에 앞으로 노동통계를 비롯한 국민계정 작성업무까지 맡겨 나간다는 방침이다.병무청과 비상계획위원회를 합쳐 동원관리 기능을 일원화하기도 했다. 정부기능을 대폭 민간에 이양한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다.정부기관에도 민간의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책임과 권한을 줘 독립성을 높인다는 뜻이다.무려 52개 기관이나 기능을 지방에 넘기거나 민간에 맡긴다는 계획이다. 운영시스템 개선안이 관가에 미칠 파급효과는 엄청나다.한마디로 공무원사회에도 민간처럼 경쟁원리를 뿌리내리겠다는 뜻이다.‘철밥통’을 깨고 조직을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탈바꿈시켜 생산성과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이다.기구개편이나 기능 재조정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안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다. ◆과제는 개편안에서는 지방계층구조 개편에 연계된 교육자치와 경찰자치제의 시행방안이 빠졌다.정부는 일단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에 일원화하기로 했다.즉,광역지자체장과 지방의회가 교육권을 갖는 것이다. 경찰자치제는 중앙과 지방간의 인사권과 기능배분이 쟁점이다.정부는 별도로 두 방안을 마련,발표할 예정이다. 법조계 개혁 역시 4월 청와대 직속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해 8월까지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검찰인사의 중립,인권보장 강화,판·검사 예우조정,법조 부조리 근절방안 등이 망라된다. 앞으로 추진과정에서 부처이기주의와 정치권의 로비를 차단하고 인력감축에따른 조직동요를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정부가 가급적 일정을 앞당기려는것도 이 때문이다. 朴先和 psh@■지방-민간 이양되는 중앙업무 이번 개편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중앙정부의 업무가 대폭 지방 또는 민간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중앙기능의 지방이양을 비롯,책임운영기관화(에이전시·Agency),민간위탁(아웃소싱),민영화 등 다양하다.무려 52개 기능 및 기관에 이른다. ◆지방이양 모두 9개 기능으로 가장 중요한 분야는 교육자치제와 자치경찰제 도입이다. 교육자치의 구체적인 방안은 교육부가 마련중이지만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와 일원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즉,초·중등 교육업무를 13개 광역시·도에 맡겨 특성있는 교육을 하는 것.특히 현행 선거인단이 뽑는 교육감을 지자체장선거시 러닝메이트로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의결권을 지방의회가 맡으며,교육위원회는 집행기능에 국한된다.어느 지자체까지 교육자치를 할지가 관건이다.자치경찰제의 경우 경정급(총경급) 이상 간부를 중앙경찰로 하고 그 이하는 광역지자체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게 핵심이다.형사,대공을 제외한대부분의 업무도 지자체에 넘기는 방안이 유력하다.나머지는 병무청,식약청 등특별지방행정조직을 지자체에 넘기는 게 대부분이다. ◆에이전시 경쟁원리를 도입,기관장에게 인사·예산 등 운영상의 자율권을주되 운영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행정기관.공무원 신분이란 점에서 정부투자기관,출자기관 등 공기업과 다르다. 대상은 집행기능만을 지닌 기관으로 17개 부·처·청의 28개 기관이 해당된다.특허청,기상청,우정사업 등이 눈에 띈다.우정사업은 우정사업본부로 전환해 집·배송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고 인센티브제를 도입한다.매년 1,700명씩2001년까지 정원을 7,000명 줄인다.국립중앙극장과 국립의료원은 일단 에이전시화한 뒤 나중에 민간위탁,민영화하기로 했다. ◆아웃소싱 민간위탁 또는 민영화 대상으로 9개 부·처·청의 15개 기관에이른다. 일부 국립대와 철도청의 2001년 민영화가 주목 대상이다.철도청의 시설건설,유지·보수기능은 고속철도건설공단으로 넘기고 화물수송,여객수송,차량정비 부문은 단계적으로 민영화한다.인력 3만3,000명 가운데 6,000명은 공단으로,나머지는 민영화하면서 감축할 계획이다.한국예술종합학교와 정부간행물,영상홍보물 등도 아웃소싱 대상이다. 朴先和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7) 친일승려 이종욱

    우리 역사에서 불교는 ‘호국불교(護國佛敎)로 자리매김돼 있다.평시에는 속세와 떨어져 구도자로 살다가도 국난을 당하면 의연히 일어나 군대를 조직하거나 민족진영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우리 불교계였다.임진왜란 때의 서산대사와 사명당이 그랬고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韓龍雲)과 백용성(白龍城)이 그랬다. 항일운동을 한 승려 가운데는 이종욱(李鍾郁)이라는 사람이 있다.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그는 지난 77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돼 정부로 부터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받고 현재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다.그러나 그는 지난 93년 국가보훈처가 재심(再審) 대상자로 발표한 8명 가운데 포함됐었다.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지사인 그는 왜 재심대상에 오른 것일까. 임시정부시절 이후 그의 행적 때문이었다.일제말기 그는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동시에 1급 친일승려로 활동한 인물이었다.종교인 출신이었음에도 그는 해방후 참회나 자숙은 커녕 오히려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불교계의 거물로 행세하였다. 이종욱(1884∼1969,창씨명 廣田鍾郁)은 강원도 평창사람이다.일찌기 출가하여 월정사(月精寺) 승려로 있다가 3·1의거가 일어나자 고을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이틀 뒤인 3월 3일에는 이탁(李鐸·건국훈장 독립장)등 27명으로 구성된 ‘27결사대’ 대원으로 매국 역적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3·1의거’를 계기로 서울에서 이승만(李承晩)을 집정관으로 한성(漢城)임시정부가 구성되자 그는 강원도 대표로 참가하였다.1919년 4월 13일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상하이로 망명,임시정부 내무부 참사로활동하다가 이듬해 3월 임시의정원에서 강원도 의원으로 선출됐다.임정의 국내 비밀연락조직인 연통제(聯通制)조직을 위해 국내로 파견돼 활동하기도 했다.이 무렵까지 그가 독립진영에서 활동한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없다.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국가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5권)에 따르면,이종욱은 1920년 6월29일 청년외교단운동으로 대구지방법원의 궐석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그뒤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고 하나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돼있다.무슨 사건에 관련돼 체포됐는지가 분명치 않아 현재 이 부분은 일단 미확인 상태로 남아있다. 다시 ‘공훈록’에 따르면 그는 출옥후 오대산 월정사에 은거하면서 송세호(宋世浩·건국훈장 애국장)와 함께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지하에서 활동한 것으로 돼있다.그러나 그가 ‘은거’하면서 지하활동을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1920년대 중반 이후 그는 불교계에 복귀하여 공공연히 활동을 하였다. 여기서부터 얘기는 역전된다.이무렵부터 그는 친일대열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3년 월정사의 사채 정리위원으로 얼굴을 드러낸 그는 26년 중앙교무원의 사무원을 거쳐 27년부터 월정사 감무(監務)로 취임하였다.29년에는 각황사(覺皇寺)에서 열린 승려대회에서 의안심사위원 7인중 1인으로 선출되었고 대회 부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이듬해 그는 31본사(本寺)의 하나인 오대산 월정사의 주지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본사 주지는 총독이 임명하는 주요 승직(僧職)중 하나였다.이무렵 그는 총독부측의 회유로 이미 친일로 기운 상태였다. 36년 8월 ‘황민화정책’의 사령탑인 미나미(南次郞)가 7대 조선총독으로부임해오자 그는 마침내 친일의 본색을 드러냈다.그는 종회(宗會) 의장및 월정사 주지 자격으로 불교계 인사들을 대동하고 경성역(서울역)으로 나가 미나미를 환영하였다.이듬해 37년에 그는 31본사주지회의에서 다시 의장으로선출되어 총본산 설립을 의결하고 자신은 총본산건설위원회의 31본사주지대표로 취임하였다.이로써 그는 조선불교의 종권(宗權)을 장악,당대 불교계의최고권력자로 부상했는데 그 뒷배경에는 총독부가 있었다. 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전쟁발발 1주일만인 7월15일 남산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참배하고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에 참석했다.이틀 뒤 그는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김대우(金大羽,일제말기 경북도지사 역임)를 찾아가 조선내 사찰에서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를 지내는 문제를 상의하고 며칠뒤 조선내 각 절에서 기원제를 지내도록 하달하였다. 또 8월5일에는 개운사에서 중앙교무원 주최로 대일본제국 무운장구 기원법회를 열었으며 다음날에는 경성 부민관에서 그의 사회로 친일강연회를 개최했다.이밖에도 그는 자신이 주도하여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나 시국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중국으로 출정하는 일본군 송영(送迎)행사에 조선승려들을 이끌고 참석하기도 했다. 40년 2월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일본 고노에(近衛)내각의 외무대신히로다(廣田弘毅)의 성을 따 히로다 쇼우익(廣田鍾郁)으로 창씨했다.같은 창씨라도 그의 창씨는 친일성이 짙게 배어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흔히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총독부의 강요로 할 수 없이 창씨는 하였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래 김(金)씨였다는 의미에서 ‘김(金)’을 ‘김원(金原)’으로 창씨한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종욱은 당시 승려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선불교 총본산건설을 완료하여 총본사의 명칭을 태고사(太古寺,현 曹溪寺)로 고치고 그 자신이 종단의 종무총장(현 총무원장)에 취임(41.8.18)하였다.이로써 그는 조선불교의명실상부한 1인자가 되었다.그는 종무총장 취임사에서 “지난 날 이조(李朝)의 압정하에 근근히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일한병합(日韓倂合)후 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은(皇恩)에 힘입어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으며 사찰령에 의하여 조선불교가 발전되었다”(‘신불교’ 제31집,1941.12월호)며 총독부의‘황도(皇道)불교’ 건설을 찬양하였다. 이 무렵 그는 전시(戰時) 협력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에 참여하여 길거리에서 전쟁채권을 판매하는 등 일제의 전쟁비 조달에도 앞장섰다.또 조선내 사찰과 승려들을 쥐어짜 5만3,000원을 갹출,조선군사령부를 방문하여 전투기 1대 구입대금으로 헌금하였다.1941년 12월8일 태평양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조선내 1,500여 사찰에 12월15일부터 일본군의 연전연승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라고 전국 사찰에 명하였다. 전쟁이 말기로 치닫자 이종욱은 부족한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임시종회를 소집,국방자재헌납을 결의하고 사찰의 범종과 쇠붙이 불구(佛具)를 거두어 일제당국에 헌납했다.42년 5월에는 일본어 상용(常用)을 종용하는일제의 정책에 호응하여 ‘국어(國語,일본어) 전해(全解)운동’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전국 본사에 하달하기도 했다. 43년 8월 드디어 징병제가 실시되자 감사법요식에서 ‘검선일여(劍禪一如)의 신생활’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7,000여 승려와 아울러 반도민중은 검선일여의 정신에 투철하여 용약 군문에 달려가 젊은이의 지성과 충성을다하여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학병권유 대열에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 그는 불교관련 매체에 10여 편의 친일문을 남겼다. 해방이 되자 이종욱은 8월17일 종무원 3부장과 함께 종무총장직에서 사퇴하였고 이어 9월22일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친일승려 제1호’로 지목돼 승권(僧權)정지 3년의 중징계를 받았다.그러나 그는 승권정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47년 1월 강원도 교구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반탁세력과 연계해 자신의친일경력을 위장하였다. 50년 5월 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해 강원도 평창에서 당선됐으며 51년 동국대 재단 이사장,52년 7월에는 제4대 중앙총무원장에 취임했다.해방후7년만에 이종욱은 일제때의 ‘위상’을 완전 회복하였고 사후에는 건국훈장과국립묘지 안장의 예우까지 받았다.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이제는 바로잡아야되지 않을까. 鄭雲鉉 jwh59@
  • 美 특별검사제 존폐론 첨예 대립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클린턴 탄핵재판 이후 특별검사제 폐지주장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미상원은 24일 특별검사제의 존속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청문회를 시작했다. 특별검사제는 지난 73년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을 계기로 법제화됐으며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에 주안점을 두고있다. 5년간 한시법인 미국의 특별검사법은 지난 94년 재발효돼 오는 6월 30일 시한이 만료된다.그 이전에 재연장여부를 결정해야하지만 현재 존속여부를 놓고 공화,민주당간 의견이 팽팽히 맞서있어 큰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성추문 조사와 대통령 탄핵재판 이후 특별검사제도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타검사는 무려 4,000만달러의 예산을 들이면서 클린턴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얻은 것은 미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회의뿐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맹점은 한번 특별검사를 임명한 뒤에는 특별검사의 행동이 적절한지,혹은 수사에 대한 비용이 적절한지에 대해 전혀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점으로 지적돼고 있다. 최근 리노법무장관이 클린턴 대선자금과 관련,특별검사를 임명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것 역시 특별검사제의 실효성을 의심케한 요인이 됐다. 정치권력자들의 마음에 따라 특별검사가 임명되며,한번 임명되면 견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고위공직자 부패척결의 화신으로 주목받던 특별검사제가 이제 서서히 본고장이자 주무대인 미국에서 그 인기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 외언내언-쿠르드족

    ‘나라 없는 설움’의 대폭발이 유럽을 휩쓸고 있다.베를린과 빈,런던과 파리,브뤼셀 등 유럽 전역이 쿠르드족의 유혈 격렬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이들은 쿠르드 독립투쟁의 영웅인 오잘란을 터키가 테러리스트로 간주,체포한데 대해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인 쿠르드족은 현재 2,300만명선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터키 남동부에 1,200만명을 비롯해 이란,이라크와 인근의 시리아,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이들은 4,000년의 오랜역사에 이란의 파르시고어(語)계의 쿠르만주(또는 키루다시)로 불리는 독자언어를 사용하는 등 독립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강대국들의 견제로 뜻을이루지 못했다. ‘중동의 집시’로 통하는 이들은 1차 대전 당시 독립지원을 약속받고 유럽편에서 터키군과 싸웠으나 대전이 끝난 뒤에는 유럽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독립국가 건설은 좌절됐다.이라크의 쿠르드족은 한때 인구비례에 따른 의회의석까지 배분받았으나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터키내 쿠르드족과 연계해 독립을 꾀한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탄압을 받았고 88년에는 이라크군이 쿠르드족거주지에 독가스 공격을 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쿠르드인의 분노는 최대 염원인 독립국가 건설이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무산되고 터키가 그들을 잔혹하게 무력진압을 하고 있는데도 터키를 군사동맹국으로 삼는 서방국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데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탈냉전 이후 세계사의 흐름은 인종,민족,종교간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보스니아사태에 이은 코소보사태도 따지고 보면 기독교(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간의 종교분쟁이고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사태도 쿠르드족 유혈시위와 마찬가지로 종족,민족간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유엔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사회는 이제 동서냉전체제때 쏟은 물적 인적자원의 물량 이상으로 지구촌의 국지분쟁 해결에 눈을 돌려야 한다.한때나마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로서도 쿠르드족의 운명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반(反)후세인운동에 가담했던 한 쿠르드인이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21일 법무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난민인정 불허결정 취소 청구소송의 귀추가 주목된다.95년 한국에 들어와 인천지역 공장을 전전해 온 그는 지난해 법무부에 난민지위 인정을 요청했으나 “이라크에 돌아갈 경우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던 것이다.
  • 법무부 올 업무계획 내용·의미

    법무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정개혁을 적극 지원하면서 인권신장에역점을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8일 발표한 ‘99년도 주요업무계획’은 ‘인권을 최대한 높이되 사회안정을 해치지 않겠다’는 말로 요약된다. 지난해를 인권 신장을 위한 ‘준비 단계’로 분류한다면 올해는 본격적인‘실천 단계’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법무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인권법을 올 상반기에 확정,시행에 들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미결수의 사복 착용,민영교도소의 설립 토대 마련 등 인권 신장을 위한 갖가지 제도를 추진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논란의 대상이었던 국민인권위원회의 설립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있다.당정은 인권위의 위상을 특수법인체,인권위원은 독립된 신분으로 보장하는 선까지 합의를 본 상태다.이견과 잡음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결수는 법정에서 사복을 착용토록 한 것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획기적인 진전으로 평가된다.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죄수복을 입고 포승에 묶인 채법정에 서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예산이나 재소자 관리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행형법을 개정,수갑·족쇄 등 계구(戒具)의 사용도 엄격히 제한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중 제정될 ‘민영교도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도 교정행정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2002년 처음으로 문을 열 민영교도소는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종교단체나 비영리 법인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재정신청 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주목의 대상이다.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견제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검찰이 공무원들의 불법을 눈감아주더라도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재정신청 확대라는 원칙만 세운 상태지만 조만간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형사법 개정심의위’는 공무원 관련 범죄 또는 모든 범죄로 재정신청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朴弘基 hkpark@
  • 오잘란 신병처리 딜레마…터키, 어떻게 할까

    터키 마르마라해의 임랄리 교도소에 구금된 쿠르드 반군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신병처리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잘란의 죄명은 반역 및 살인죄.쿠르드족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반역을꾀하고 이 과정에서 14년간 3만5,000명 이상의 터키인들이 희생됐다는 게 터키의 주장이다.법정에서 테러혐의가 확정되면 사형을 받을수 있다. 따라서 오잘란이 사형판결을 받을 것이 확실하지만 집행될 공산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터키정부가 사형집행 가능성을배제하고 있는 데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공정한 재판을 거쳐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뷜렌트 에제비트 터키총리는 17일 터키가 지난 15년간 단 1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특히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1,200만명의 쿠르드족의 저항을 무릅쓰고 처형하기는 쉽지 않은 점도 작용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극형을 피하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오잘란이 공정한 대우와 적법한 절차를 받아야 한다”고밝혔다.유럽연합(EU) 등도 오잘란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옵서버들이 재판을 참관하도록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극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터키는 오잘란의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고 사법처리 절차를 감시토록 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일축했다.에제비트 터키총리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자신하고 예언할수 없다”며 복선을 깔았다.‘뜨거운 감자’ 오잘란을 둘러싸고 터키와 국제사회가 한바탕 힘겨루기기 이뤄질 전망이다. 金奎煥 khkim@
  • 비리판사 처리 앞둔 대법원

    대법원이 대전 법조비리 관련 판사 5명의 처리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대법원은 검찰이 관련 판사들의 명단과 비위사실을 통보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단죄를 바라는 검찰과 여론,대법원장의 경고 선에서 끝내야 한다는 판사들의 ‘항변’ 사이에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법원이 거물 변호사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수원지법 文興洙부장판사의 주장이 제기돼 대법원 수뇌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처리방향과 관련,검찰과의 형평성이나 여론보다는 내부의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측면에서 여론에 끌려가지 않고 최대한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부산고등법원 배석판사들과 서울지법 단독판사들은 지난 6일 법원장을 통해 대법원장에게 전달한 의견서에서 “지난날의 전별금을 이유로 법관들을 퇴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같은 움직임에 힘을얻어 설 연휴 직전에 관련 판사들에 대한징계 등 처리를 마무리짓기로 했다.대법원은 ‘소환조사 후 진상규명’이라는 정공법을 채택하고 있는 듯이 언론에 흘리면서도 ‘일부 대법원장 경고’‘일부 소명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에비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도 있겠으나 인사·제도 개혁방안을 함께 내놓으면 최소한 내부의 반발여론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법원 수뇌부의 판단인 것 같다.
  • 서울법대 학생회 성명…비리척결 실질대책을

    서울대 법대 학생회는 3일 ‘법조비리 완전척결과 사법구조 전면 개혁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사건의 수사 결과에 경악과 분노,우려와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면서 변호사 수임비리 척결을 위한 제도적장치 마련,전관예우 금지 법제화,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수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全永祐 ywchun@
  • 수임비리 사법부로‘불똥’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여진(餘震)이 사법부로 확산되고 있다. 검찰이 1일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향응 및 금품수수 등 비리에 연루된 현직 판사 5명의 명단과 비위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기 때문이다.검찰이 이날 통보한 현직 판사는 고법 부장 2명,지법 부장 2명,판사 1명 등 모두 5명이다.대법원은 우선 자체조사를 통해 검찰이 통보한 비위내용을 확인하는 수순을밟을 계획이다.대법원은 조사결과에 따라 검찰과 형평성에서 큰 문제가 없는수준에서 관련 판사들을 징계하되 지난해 초 공표한 법관윤리강령을 잣대로삼기로 했다.이에 따라 법관의 독립성이 보장된 법원조직의 특성을 감안,검찰처럼 ‘사표 종용’이라는 초강수는 두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부 소장판사들은 “검찰이 李宗基 변호사의 비밀장부에 올랐던 판사 8명의 비위사실이 확인되지 않자 李변호사의 진술에만 의존,판사들의 비위사실을 엮어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즉,판사를 끼워 넣음으로써 ‘물타기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조계 정화를 바라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 팽배한 이 시점에서 대법원이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朴弘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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