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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재판독립위’ 만든다

    대법원이 법관의 재판권 침해 구제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자문기구 형태로 명칭은 ‘재판독립위원회(가칭)’로 정해질것 같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부 안팎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권 침해를 검토할 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급 법관에게 재판권을 침해당했다고 법관이 신청하면 위원회가 조사해 사실로 인정될 경우 상급 법관에 대한 징계를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에 건의한다. 지난달 30일 전국 법원장 워크숍에서 위원회 설치 방안이 논의됐다. 앞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엄중 경고했고, 단독판사들은 법원별로 판사회의를 열어 재판권 독립을 보장할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헌재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헌재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문소영 문화부 차장

    이완용,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그에 대해 4~5년간 생각이 많았다. 미술관 갤러리를 다니면서 이완용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더 많았다. 가까이는 올 초 상업화랑에서 근대 서화전이 몇 차례 열려 이완용의 글씨가 등장하면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서당대유가서후’에서 “무릇 글씨는 그 사람을 닮는다. 옛적에 글씨를 논하는 사람들은 작가의 평생도 아울러 논하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완용의 유려하고 맺히는 데 없는 글씨체와 항일독립운동의 군자금을 댔다는 김진우의 단정하고 깐깐한 글씨체, 거칠 것 없이 호방한 안중근의 글씨체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이완용을 생각할 때 문득 머릿속으로 더듬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완용은 외교권을 헌납한 을사늑약과, 국권을 고스란히 갖다바친 경술국치를 체결했을 때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스스로의 자각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완용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인, 고위 공무원,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일본·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최신 저서를 직접 읽었을 것이고, 국제 정세에 대한 고급 정보도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조국의 운명이, 사실은 풍전등화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나라를 일신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은 물론 서양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로 서양과 대등하게 올라선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그의 불행은 일본이 1945년에 그렇게 빨리 패권을 잃어버릴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2009년 11월에 광화문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이나, 약지를 단지한 그의 손바닥 도장 대신 이완용의 얼굴이나 글씨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과 상상도 해본다. 정치인이자 고위 공무원인 이완용의 오판을 1905년, 1910년에 막아줄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행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평가해 뒤집을 수 있는, 이를테면 의회라든지, 법적으로 효력을 다투는 사법부 말이다. 그랬더라면 이완용의 판단은 국회나 사법부를 통해 바로잡힐 수 있지 않았을까. 이완용의 처지에서 100여년 전에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수 있겠다. 요즘 헌법재판소(헌재)를 자주 생각해본다. 헌재는 최근 미디어법과 관련해 국회 본회의에서 대리투표 등 위법행위가 있었지만, 미디어법의 국회 통과는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라는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해 배우고 자라온 상식선에서 볼 때 의외의 판결이다. 대리시험을 봤지만, 합격은 유효하다, 도둑질은 위법이지만 장물취득은 유효하다, 커닝해도 좋은 성적은 유효하다, 간통을 했지만 기존 결혼은 유효하다는 식의 인터넷 유머가 나돌아다니는 까닭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헌재는 1987년 학생·직장인 등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호헌철폐, 직선쟁취’를 외치고, 꽃 같은 목숨을 여럿 잃어가며 만든 제6공화국 헌법으로 탄생한 기구이다. 그간 사법부가 워낙 행정부(검찰)의 시녀처럼 굴었던 탓에 사법부를 불신하며, 헌법정신을 지켜보자고 대법원 위에 옥상옥으로 만들어졌다. 헌재는 집권당의 통치행위를 옹호하고 국민의 법 감정과 법질서를 교란하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라고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다. 이번 미디어법 결정을 볼 때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못하는 헌재가 존재할 이유를 통 모르겠다. 헌재는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나 수단이 없었던 이완용처럼 핑계도 없으면서 말이다. 문소영 문화부 차장 symun@seoul.co.kr
  • 타이완 천수이볜 前총통 부부 종신형

    재직 중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천수이볜(왼쪽·58) 전 타이완 총통이 11일 열린 1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부인 우수전(오른쪽)도 같은 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됐으며, 아들 천즈중도 돈세탁 혐의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일가가 중형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날 타이베이 지방법원은 천 전 총통 부부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종신형과 함께 5억 타이완달러(약 187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법원 대변인 황춘민은 “천 전 총통은 타이완에 큰 피해를 끼쳤고 우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부패 혐의에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종신형이 선고됐다.”고 밝혔다. 천 전 총통은 공모자와의 증거조작, 도주 등의 우려가 있다는 검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져 지난해 12월부터 타이베이 교외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이번 재판에 천 전 총통과 그의 가족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신 법원 판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판결을 거부하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천 전 총통의 지지자 수백명은 법원 밖에 모여 그의 무죄를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했다. 천 전 총통은 재임기간(2000~2008년) 세금 315만달러(약 38억원)를 ‘특별기금’ 명목으로 횡령하고 국유지 협상 등과 관련해 최소 900만달러의 뇌물을 받아 스위스의 은행 등을 통해 세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전 총통은 그러나 비밀외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금을 쓴 것일 뿐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 중국과의 양안관계를 대결구도로 몰아갔다. 2008년 집권한 마잉주 현 총통은 양안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있다. 천수이볜은 이번 판결이 마 총통의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마 총통과 사법부는 이번 판결은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타이완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천 전 총통의 주장을 일축했다. 외신들은 타이완 국민들이 천수이볜이 일정 부분 유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008년 치러진 총선에서 민진당이 현재 집권당인 국민당에 패배한 원인으로는 양안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 외에도 총통 가족의 부정부패가 거론됐다. 이미 자녀들이 거액의 재산을 해외에 은닉했다는 혐의가 임기 중에도 불거졌었다. 지난 1월에는 천즈중이 해외 돈세탁 혐의를 인정, 18억 7000만 타이완달러가량의 해외자금을 국고에 귀속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정치권 바람몰이에 사법부 여기저기 상처”

    “법관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당황스러운 것은 바람몰이인 것 같다.”11일 퇴임하는 김용담 대법관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부는 바람몰이 현상을 겪어 왔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37년 판사생활을 마감하면서 발간한 ‘김용담 대법관의 판결 마지막 이야기’다.김 대법관은 “정치권력이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회오리바람처럼 사법부를 몰아붙일 때 정치권력의 요구는 사법부에 대한 침해로조차 보이지 않지만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법부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자신이 대법관에 제청됐던 2003년의 사법파동도 기록했다. 서열에 따른 인사에 반발해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서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후 법원 내에 연판장 사태가 벌어졌던 때다. 김 대법관은 “정치권에서 태풍처럼 사법부를 몰아칠 때가 아니고 다른 때에 그렇게 거칠게 사법개혁을 주장했다면, 더 나은 재판을 위한 제언들이었다면 (후배들의) 법원독립에 대한 의지가 의심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9·3 개각] 장관 내정자 6인 프로필

    [9·3 개각] 장관 내정자 6인 프로필

    ■ 주호영 내정자 정무장관직이 부활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 2월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면서 사라진 자리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청와대와 정부의 규모를 축소하면서 없앴다. 현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이 당시 마지막 정무장관이었다. 정무장관직의 역사는 정부수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무임소 국무위원’으로 불렸다.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이 초대 정무장관인 셈이다. 박정희 정권 들어 정치와 경제로 나누었고 정무는 제1, 경제는 제2 무임소장관으로 구분했다. 5공화국(전두환 정부) 때 정무1이 당·정관계를, 정무2는 외교·안보를 담당했다. 6공 이후 정무 1장관은 김윤환, 이종찬, 박철언, 김동영, 최형우, 김덕룡, 서청원 등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당초 이명박 정권에서도 정치력 집중 등을 우려해 정무장관직 부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3일 “당·정·청간 소통부재 문제가 누적되면서 부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쇄신특위도 청와대와 정치권의 소통 강화를 위해 정무장관 또는 특임장관 임명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청와대로서는 정무특보, 정무수석 등으로 힘을 나눠 놓은 만큼 정치력 집중의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본 듯하다. 이번 정무장관은 남북관계 등에서도 주요 역할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대북 특사 임명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와대는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을 특임(정무)장관에 내정하면서 “여야에 두루 신망이 두터워 정무수석실 등과 유기적으로 협조해 당·정·청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불교계에 인맥이 두터운 것도 임명 배경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다. 주 장관 내정자는 대선후보 비서실장,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등을 지내며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부인 김선희(49)씨와의 사이에 2남.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최경환 내정자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의 입각은 화합형 인사로 꼽힌다. 친박의 핵심 의원이라는 점에서다. 최 의원의 입각이 친박 포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는 이유다. 최 의원은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의 정통 경제관료다. 2007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최 의원의 장관 발탁에 대해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유럽 방문차) 출국하기 전 청와대와 상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오늘 전화통화에서 ‘축하한다.’고 했고, 입각에 대해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느꼈다.”면서 “친박으로 분류되는 사람으로서 내각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당 화합의 단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박 쪽의 한 관계자도 “최 의원이 친박과 무관하게 입각했더라도 친이와 친박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의원의 입각은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최 의원이 ‘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황우여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출마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당시 최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요청으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화합뿐만 아니라 최 의원의 합리적인 업무처리 능력을 높이 평가해 발탁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 대통령은 최 의원을 지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인수위원으로 참여시켰다. 이후에도 당에서 수석정조위원장을 맡으며 실무책임자로서 당정협의를 이끌기도 했다. 대부분이 소극적인 친박의원과는 달리 스스로 ‘용병’이라고 일컬을 만큼 적극적인 당내 활동으로 친이쪽의 거부감도 적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경북 경산·청도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부인 장인숙(50)씨와의 사이에 1남1녀.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귀남 내정자 이귀남 법무부장관 내정자는 지난 7월 퇴임할 때까지 법무차관을 지냈고 검찰의 ‘빅4’로 불리는 대검 공안부장과 중수부장을 지낸 수사통이다. 법무부와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 행정 업무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고, 수사지휘선상에 있었던 만큼 특정 수사사건에 무턱대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이 내정자가 김준규(사법연수원 11기) 검찰총장보다 나이는 네살 위지만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한 기수 아래다. 물론 수사는 검찰이 독립적으로 하도록 돼 있지만 장관은 인사, 법무행정 외에 총장에게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수문화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물론 이전에도 기수역전 현상이 있었다. 2003년 2월 임명된 강금실(13기) 장관과 송광수(3기) 총장, 2005년 6월 임명된 천정배(8기) 장관과 김종빈(5기) 총장 및 정상명(7기) 총장 체제도 장관이 총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낮았다. 다만 강 장관은 판사 출신, 천 장관은 변호사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같은 검사 출신인 이 내정자와 김 총장과의 관계는 이와 다를 수 있다고 검찰 주변에서는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들 두 사람 사이에 권재진(10기) 민정수석이 적절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관과 총장, 그리고 청와대 사이의 역학관계를 권 수석이 조화롭게 해 낼 것이란 분석이다. 이 내정자가 전남 장흥 출신이라 대구 출신의 권 민정수석, 서울 출신의 김 총장과 함께 지역적 안배도 적절하다는 얘기도 있다. 집념이 강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이 내정자는 조직 내부의 신망이 두텁다. 서울지검 특수3부장 재직 시 음대 입시부정 사건 등을 깔끔하게 처리했으며, 대검 공안부장 시절에는 들쭉날쭉한 선거사범의 구형안을 처음으로 마련하기도 했다. 부인 서향화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태영 국방장관 내정자 야전지휘관과 기획·작전·전략 분야를 폭넓게 경험한 문무(文武) 겸비형으로 꼽힌다. 학자풍 군인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담당관,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1군사령관 등 군내 핵심보직을 두루 거쳤다. 합참의장 시절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완벽한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개혁, 군 전력 구조개편 등 한·미동맹 및 대북 군사 현안을 폭넓은 지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발전시켜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격식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합리적이며 유연한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통역 없이 숱한 국제회의에 참여할 정도로 영어실력도 탁월한 편이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의 경기고 4년 후배로 육사 재학시절 독일 육사에서 유학했다. 부인 이범숙(54)씨와 1남1녀. ■ 임태희 노동장관 내정자 옛 재무부와 청와대에서 금융과 세제 등을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재무부 시절 따르던 후배들이 많았다. 2000년 16대 총선(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당선돼 비교적 빨리 정계에 입문했다. 전문성 외에 정세분석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에는 이회창 후보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선 ‘당중심 모임’에 참여해 중립을 표방했으나 경선 이후 이명박 후보 및 당선인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떠올랐다. 신중한 성격과 입이 무거워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다. 손해를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평가도 있다. 4선 의원 출신인 권익현 한나라당 고문의 사위다. 부인 권혜정(48)씨와의 사이에 2녀. ■ 백희영 여성장관 내정자 한국영양학회 회장으로 있을 때 43년 만에 영양섭취 기준을 개정하는 등 지금까지 영양학 한 길을 걸어온 식생활 분야 전문가다. 연구영역은 한식생활과 질병관계, 환자의 식생활 관리, 한국인 식이에 맞는 식이섭취 조사법 등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 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여성계에서 활동한 경력은 없어 여성단체 등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학계열 연구자 중에선 드물게 사회의식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여성 과학자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가정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으며 3년 수료 뒤 미국 미시시피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남편 정용덕(60·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한국행정연구원 원장과 1남1녀가 있다.
  • 로스쿨 학생들 법정서 실력 겨룬다

    대법원은 올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원에 따라 오는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로스쿨 학생들이 참가하는 제1회 ‘가인 법정변론 경연대회’를 연다고 30일 밝혔다. 참가자들은 3인 1팀으로 민사재판과 형사재판 등 2개 분야에서 각각 실제와 같은 사건을 갖고 원·피고의 대리인 또는 검사,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 변론한다. 대회는 현직판사 3명을 재판부로 법정에서 실제 재판과 동일하게 진행되며 서면심사를 통과한 팀은 겨울방학 중 예선과 본선을 거쳐 내년 3월 우승을 다투는 결선을 치른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사법부의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인 김병로 선생의 호로 실제 ‘대법원장배’ 대회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참가신청은 다음달 21일부터 10월1일까지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발언대] 간도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최규익 국민대 겸임교수

    [발언대] 간도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최규익 국민대 겸임교수

    대략 중강진과 백두산 사이 압록강 위쪽이 서간도다. 북간도는 차치하고라도 서간도만 해도 강원도보다 넓은 땅에 백두산 수림이 끝없이 펼쳐지고, 만주벌판의 드넓은 대지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북간도의 용정 같은 낯익은 지명들에다 독립투사들의 군관학교와 송화강·해란강·일송정 등과 함께 시인 윤동주의 해맑은 꿈이 자라던 곳이다. 그 땅에 엉뚱하게도 1909년 9월, 대한제국을 무시하고 일제가 만주철도부설권과 푸순탄광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겼다. 1905년의 을사늑약 자체가 불법이므로, 그 바탕에서 이루어진 청·일간의 간도협약 역시 당연히 원천 무효임을 2005년 당시 반기문 외교부장관도 국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올해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일이다. 올해 9월 내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지 않으면 이것을 차후 뒤늦게 국제법적으로 문제 삼는다 해도 우리가 승소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사라진다. 100년간 제소하지 않으면 중국의 실점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간도 문제 앞에서 제소도 못 해본다면, 앞으로 북한의 변혁기에 중국을 포함한 주변 열강들은 또 우리를 얼마나 수월히 알 것인가? 정부가 정히 나서기 곤란하다면, 국회차원이나 민간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제는 19∼20세기 초의 몹쓸 야만적인 시대조류에 휩쓸려서 너나없이 서로를 강탈했던 시대를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성숙해진 21세기의 상황에서 새로이 역사를 되돌아보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돌려줄 것은 돌려주면서 서로 용서할 수 있는 평화의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와 더불어 유엔과 함께해 나가야 한다. 유엔과 함께 세계평화위원회를 만들고 간도문제를 우선적 주요 화두로 삼게 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도 세계평화와 인류역사의 진정한 발전에 동참해서 큰 눈으로 아름다운 결단을 내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최규익 국민대 겸임교수
  • 변협 “변호사도 부동산 중개” 논란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업무를 ‘못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과 달리 대한변호사협회가 이를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놔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공인중개사 관련 법에는 공인중개사가 아니면 부동산 시장 진출은 위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대한변협(회장 김평우)은 최근 모 법무법인이 분사무소 형태로 부동산 중개나 컨설팅 업무를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에 대해 “(부동산) 중개 및 컨설팅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법무법인 부동산시장 진출 근거 마련 답변서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업무가) 법률사무와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 업무라면 법무법인의 업무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법무법인도 법률사무적 성격을 위주로 하는 중개 및 컨설팅 업무는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변협은 이어 “법무법인의 구성원과 구성원이 아닌 소속변호사는 따로 법률사무소를 둘 수 없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갖고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은 법률사무소의 개설로 볼 수 없어 변호사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변협의 해석에 따르면 변호사나 법무법인은 부동산 매매계약 등에 공인중개사란 이름만 사용하지 않으면 ‘계약서 감수’ 등 우회적 방법으로 사실상 부동산 중개를 할 수 있다는 취지다. 또 법무법인의 경우 구성원 변호사가 공인중개사 자격을 가지고 사실상 법무법인에 소속된 별도의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낼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변호사와 법무법인이 우회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셈이다. 이 같은 변협의 해석은 대법원의 판결과 사실상 정면으로 배치된다. 2006년 대법원은 “변호사의 직무는 전문지식을 근거해 제공되는 소송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기타 법적 서비스를 처리하는 것”이라면서 “법률사무에 중개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었다. ●중개사協 “명백한 공인중개업법 위반” 특히 “변호사에게 부동산중개업이 허용된다면 변호사 직무의 독립성을 해할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비밀유지의무, 이익충돌회피의무 등 변호사의 신분상·직무상 의무를 규정한 변호사법의 입법취지와 상충될 여지가 있다.”면서 “변호사와 공인중개사의 가격제도 등 여러 차이점을 종합하면 변호사의 직무와 부동산중개업이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협 서석호 법제이사는 “대법원 판결은 변호사가 쌍방대리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면서 “변호사는 ‘부동산 중개’가 목적이 아닌 법률자문을 목적으로 업무를 하다 결과적으로 중개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 중개를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법률 자문료로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컨설팅 자체는 문제될 것 없지만 변호사가 부동산 매매, 전세, 임대차 등에 개입해 부동산 중개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명백히 공인중개업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협회는 지도단속위원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단속을 통해 변호사 등의 (중개)업권침해 행위가 발각되면 고소고발 등 법적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한변협의 이번 해석에 대해 일각에서는 변호사의 직역 통합 움직임과 맞물린 방향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오이석 장형우기자 hot@seoul.co.kr
  • [열린세상] 국가조직과 인력 충원의 문민화/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열린세상] 국가조직과 인력 충원의 문민화/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1987년 헌법체제 아래서 다섯 명의 직선 대통령이 배출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문민화가 진척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조직 곳곳에서 기득권에 안주하는 특정 전문가집단의 독식현상은 여전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즉시 전광석화와 같이 군 내부의 최대 사조직인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군사정부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관을 비롯한 핵심 요직은 전현직 장군들의 독무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시절에 6년간 재임한 도널드 럼즈펠드와 그 후임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모두 문민 출신이다. 게이츠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계속 재임한다. 외교부도 장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료가 직업외교관 일색이다. 선진국에서는 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가장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충원한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주요국 대사는 오히려 비외교관 출신으로 충원된다. 동종번식이 계속되는 한 핑퐁 외교를 통하여 중국을 개방시킨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 같은 훌륭한 외교관이 배출되기 어렵다. 법조계의 배타적 독식현상은 더욱 심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판사출신의 젊은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검사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전무후무한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가 TV를 통해서 생중계됐다. 그 이후의 ‘검사스럽다’는 유행어에서 드러나듯이 노회한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에게 열정만 앞선 젊은 검사들이 참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단명으로 끝났다. 법무부의 상층조직은 현직 검사의 독점 공간이다. 그 인적 구성에 관한 한 대검찰청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검찰의 전위조직이나 마찬가지다. 검사는 현장에서 수사를 지휘해야 한다. 대신 법무부는 인권, 범죄예방, 교정, 법교육 같은 고유한 법무행정을 담당해야 한다. 1년이 멀다 하고 단행되는 검찰의 인사이동에 휘둘려 법무행정의 안정적 수행은 불가능하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법원행정처장을 법원장 출신이긴 하지만 비법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하지만 후임은 종전대로 현직 대법관이 겸임한다. 법원행정처의 핵심 요직도 온통 법관으로 보임되어 있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법원행정처는 법원행정 전문가로 충원돼야 한다. 법관은 재판이 그의 소명이다. 그런데 심지어 법관이 해외주재 대사관 소속 또는 국회사무처 소속으로 파견 근무도 한다. 이는 법관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적 가치인 사법부의 독립 중에서도 핵심적 요구사항인 법관의 인적 독립에도 어긋난다. 국방부는 장군, 외교부는 외교관, 법무부는 검사, 대법원은 판사 출신이 행정의 수장으로 있으면 우선은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행정은 기관이기주의에 매몰될 것이다. 물론 외부인사가 관료조직에 휘둘려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물러나고 마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1년이 멀다하고 갈아치우는 장관직의 소모품화를 청산하고 장관이 실질적으로 업무를 파악하고 기관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장관직의 안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국가의 존립이유와 직결되는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전하고 국가안보를 책임지며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국가기관은 이제 문민화돼야 한다. 정부의 다른 부처에는 각종 직역의 다양한 인재들이 수장에 취임하고 핵심보직도 차지하지만 유독 이들 부처만은 여전히 장군, 외교관, 검사, 판사의 철옹성이다. 민주화 이후에 정권교체와 정부교체가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지도자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는 인사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서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 만주독립군 군자금 모금 베일 벗다

    만주독립군 군자금 모금 베일 벗다

    #1 “동지를 모아 총을 발사해 협박하고…, 금 1000원을 올해 12월20일까지 조달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케 하고…, 협박장을 보내고 우리 경찰(일제)의 엄중한 경계를 돌파하다 체포됐고….”(일제 간도총영사관의 대한민국 의민단의 군자금 모금 기록 중에서) #2 “독립사상을 선전하며 군자금 모집이라 칭하고… 영수증을 교부하고 기부금이 적은 촌락에 대해 위협적 언사를 일삼으며….”(임시군정부 소속 장남섭 선생의 일제 재류금지 처분 기록 중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단체들의 군자금 모금활동 실상을 알려주는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독립운동단체들은 ‘독립의무금’으로 단체 기부를 독려했다. 협박장을 발송하고 영수증을 교부하기도 했다. 아편거래의 이익금을 군자금으로 송금한 사례도 있었다. 국가보훈처가 13일 발간한 ‘만주지역 본방인(本邦人) 재류금지(在留禁止) 관계잡건(關係雜件)’에는 만주지역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한 인물들의 사진과 활동 내역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자칫 역사의 뒤편에 가려진 만주지역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재조명할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 자료는 일제가 1915~26년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불령선인’(독립운동가 지칭)의 거주를 제한하고 추방 이유를 담은 보고서이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175명의 사진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보고 내용이 담겨 있다. ‘본방인’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을 지칭한다. ‘재류’(체류) 금지는 본적지로 추방하는 행정처분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제도로 악용됐다. 일본 교토대 이승엽 교수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 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 전달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임시군정부, 독립의군, 북로군정서, 대한의군단,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등 만주지역의 군자금 모금 주체와 전달 경로 등이 상세히 기술됐다. 북간도 용정의 3·13 만세운동이 국내와 연관된 사실도 규명됐다. 국민회 소속인 조영(당시 29세), 유인학(33) 선생은 간도 일대에서 국제연맹에 독립 승인을 요청할 대표단 파견 비용을 모금하다 체포됐다. 이들은 1920년 2월 3년동안 재류금지 처분을 받고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 이송돼 사법처리됐다. 오지화(27) 선생은 1920년 5월 방우룡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의군에 가입, 무기구입 자금을 모금하다가 같은해 10월 간도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돼 재류금지 3년 처분을 받았다. 장남섭(미상) 선생은 군자금 모금을 하다 임시군정부에 가입했고 1919년 11월 체포됐다. 장홍국(39), 장의묵(31), 현성도(32), 황현범(30), 석태화(22) 선생은 북로군정서의 군자금 조달을 전담했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이번 자료를 통해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공백기와 새로운 활동 내용을 발굴하게 돼 만주 독립운동 영역의 역사적 확대를 가져온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죽산 조봉암/김종면 논설위원

    1950년대 극심한 사회 혼란 속에 자유당 이승만은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진통일론을 외쳤다. 이에 맞서 진보당 당수 죽산(竹山) 조봉암은 평화통일을 부르짖었다. 항일독립운동가로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그는 1952년 직접선거로 이뤄진 제2대 대통령에 출마하지만 차점으로 떨어진다. 모두가 명철보신하며 제 살 길을 찾고 있을 때 감연히 이승만 독재에 도전한 것이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에 출마하지만 다시 낙선한다. 박헌영의 공산당과 결별, 진보당을 만들어 위원장으로 정당활동을 하던 죽산은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다음해 처형된다. 혹자는 죽산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에 견주기도 한다. 대한민국 헌법제정에 참여하는 등 건국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고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죽산의 행적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1950년대 극우반동시대 평화통일·사회민주주의 강령을 내세운 진보당을 창당, 진보정치운동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이다. 6·25전쟁 이후 부패 특권경제 아래 신음하던 서민들에게 진보당의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은 큰 호응을 얻었다. 전후 농지개혁과 관련된 죽산의 역할과 사상은 농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절대적이던 ‘농업국가’ 한국의 기초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죽산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진보정치세력이 따라 배워야 할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죽산의 진보당이 뿌리내렸더라면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사회민주주의가 국정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죽산은 지난 50년간 북한의 공작금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사형돼 ‘간첩’ 대접을 받아 왔다. 정치보복에 따른 ‘사법살인’의 희생자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돼 온 것이다. 해방정국의 대표적인 진보정치인. 그는 과연 우리에게 잊혀진, 아니 잊혀져도 좋은 인물인가. 엊그제 여야의원과 사회원로들이 죽산 50주기를 맞아 선생의 명예회복을 청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도 지적했듯 진실과 정의, 인권의 문제는 이념을 떠나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다. 법원의 신속한 재심이 있어야겠다. 역사의 진실 규명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지자체들 “자치권 훼손 공감법 저지”

    감사원이 최근 입법예고한 ‘공공감사법률안(이하 공감법)’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공감법이 지방자치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수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정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 4대 지방협의체가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하는 등 집단 반발에 나설 태세다. 감사원은 지난 5월 지자체 감사기구의 조직과 예산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감사책임자를 개방직위로 지정하는 내용의 ‘공감법’을 입법예고했다. 감사의 독립성과 책임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자체 감사활동의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기초단체장 협의체인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난 29일 대전에서 공동회장단회의를 열어 공감법 저지 방침을 천명했다. 협의회는 공감법이 자체 감사를 개선한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감사 전반에 대한 감사원의 권한 강화로 지자체장의 인사권과 자율 행정권 등 지방자치의 고유권한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안이 전면 수정되지 않으면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 등 4대 지방협의체가 공동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30일 협의회 관계자는 “재정 조기집행 등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통상 규정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일부 발생할 수는 있다.”면서 “그렇다고 감사원의 지나친 관여는 지방행정 수행을 크게 위축시키고 공직사회에 복지부동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자체 감사는 정부합동감사, 부처 수시감사, 시·도의회감사 등 연간 130여차례에 이른다. 지자체가 자치권 훼손을 우려하는 공감법의 주요 내용은 ▲지자체의 모든 감사책임자를 개방형 직위로 임명 ▲감사원에서 감사책임자 교체 가능 ▲감사담당자로 감사원 소속 공무원 파견 가능 ▲감사원의 대행·위탁감사 가능 ▲자체감사기구가 감사원에 감사결과 직접 보고 등이다. 정부 부처에서도 공감법에 따른 감사원 조직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감사원 정원은 본부만 1045명이다. 한 사회부처 관계자는 “본부 정원만 1000명이 넘는 감사원의 지자체 직원 파견 등은 과도한 행정 간섭과 ‘밥그릇 챙기기’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등 집행부처에서는 지방재정 조기집행 등 지방행정정책이 발목이 잡힐까 우려하는 눈치다. 이와 관련, 성용락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감법을 통해 감사원 권한이 강화되는 것도 없고 자치단체 자율권이 침해받는 것도 없다.”면서 “자율감사시스템 구축을 통해 자체감사기구와 감사원이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국진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판사출신 강금실장관 임명 檢반발… 강정구교수 사건 수사지휘권 마찰

    판사출신 강금실장관 임명 檢반발… 강정구교수 사건 수사지휘권 마찰

    “장관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법무부와 검찰은 사건에 대해선 긴장관계다.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총장으로 와도 발톱을 세운다. (수사지휘권 발동이)강정구 교수 사건 1건밖에 없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 5일 퇴임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이같이 설명했다. 행정부 내 최고의 독립성을 자랑하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법무부 장관과 미묘한 입장 차가 있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정치권에 논란으로 번졌다.특히 임 전 총장의 이같은 발언은 현 정부에서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와 대검은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서면으로 일반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다.”며 즉각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검찰 관계자조차 “정권이 바뀐 뒤 임 전 총장을 ‘위’ ‘아래’ 구분 없이 흔들었다.”면서 “‘위’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테고, 검찰 수하들마저도 임 전 총장을 따르지 않고 무시했다.”고 털어놨다. 정권이 바뀐 뒤 검찰 내부에서는 김 장관을 위시한 대구·경북(TK) 출신이 실세로 부상했고 부산·경남(PK) 출신이면서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임 전 총장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정부 때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시 후배이면서 판사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파격적으로 임명하면서 갈등이 표출됐다. 검찰 출신이 장관으로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검사들의 반발은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집권 전에는 이같은 갈등이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역대 법무부 장관은 군사정권 시기를 제외하고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검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또 장관을 비롯한 주요 국·실장은 한결같이 검찰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법무부가 ‘법무행정’이라는 고유의 업무에 그치지 않고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받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미네르바’ 박대성씨에 대한 검찰 수사였다. 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변을 하자 검찰은 알았다는 듯이 박씨를 체포·조사한 뒤 구속시켰다. 지난 2005년 강정구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사상 최초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천정배(현 민주당 국회의원) 전 법무부 장관은 “행정부의 일원인 검찰이 민주적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법무부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다만 개별 사건에 대한 장관의 수사지휘는 국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공개된 서면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천정배 前법무장관 “검찰 수사권 분산… 민주적 통제 필요”

    천정배 前법무장관 “검찰 수사권 분산… 민주적 통제 필요”

    참여정부 시절 검찰개혁에 앞장섰던 천정배(55·국회의원) 전 법무부 장관은 11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을 지켜보면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절실해졌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모든 문제의 해결을 사법기관 및 준사법기관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그 와중에 독립성을 강조해 온 검찰은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 됐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천 전 장관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공표로 여겨질 수 있는 수사브리핑에 대해 스스로를 감시하는 대검 감찰부와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되물었다. 검찰에 대한 내외부의 견제와 감시장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경우처럼 중수부의 기능을 각 지검 특수부에 맡기고 대검은 검찰 조직에 대한 관리·감독기능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대검 감찰부와 법무부 감찰위원회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 내부 감시 기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쥐고 있는 기소권과 수사권 가운데 미국의 FBI처럼 수사권을 분산시켜야 한다.”면서 “수사·공소·구속심의위원회에 외부인사를 영입하고 검사의 법무부 근무를 최소화함으로써 법무부를 검찰에서 실질적으로 분리해 검찰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전 장관은 중도 사임한 임 총장에 대해 “‘품격과 절제’라는 원칙을 지켜왔던 훌륭한 분이 물러나면서 ‘힘들어졌고, 많이 흔들렸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고, 안타까운 심정이다.”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문화마당]북핵 위기와 저탄소 녹색문화/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문화마당]북핵 위기와 저탄소 녹색문화/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1962년 10월22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 조치를 발표했다. 쿠바는 1962년 9월에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 소련제 미사일을 도입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에 무기를 싣고 오던 소련 선박에 대한 해상봉쇄 조치를 취한다. 일주일 뒤인 11월2일 당시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자국 선박의 회항과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철수를 명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된다. 이처럼 196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과 공산진영이 심각한 양극 대립을 보였다. 세계의 패권 장악을 위해 양 진영은 앞다투어 군비를 증강했다. 쿠바 봉쇄 사건은 이러한 구도가 가져온 대표적인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의 베트남 전쟁은 냉전체제가 낳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는 미국에서는 1967년부터 히피문화가, 유럽에서는 ‘68세대’가 등장하는 등의 반전 및 반문화운동의 계기가 된다. 이들은 기성사회의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으로의 귀화 등을 주장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 지향과 인류 파괴에 대한 대안적 사회구축과 철학으로서 친환경 저탄소 녹색문화 운동을 추구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사상은 표현주의 건축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그 배경이 되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본질마저도 바꾸어 놓았다. 대량학살무기의 개발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발전이 가져다준 큰 폐해였다. 신무기는 소규모의 공격으로도 엄청난 살상효과를 보였고 사상자 수는 이전의 재래식 전쟁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표현주의 건축가들은 전쟁과 산업기술에 대한 반감을 특유의 비정형적 건축 언어로 그려 냈다. 또한 자연 형상을 닮은 유기적인 건축형태를 추구해 기술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했다. 이를 통해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도시와 문명사회의 건설을 동경했다. 냉전시대인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친환경 생태건축의 태동을 가져오게 된다. 최근 북한은 제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일련의 군비 증강 움직임을 보여 긴장감을 매우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에 대해 정부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인류와 문명사회를 파괴하는 군비증강 행위와 이를 위한 기술 도용행위에 대한 대응책은 저탄소 녹색문화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개념은 일부 경제적 개념에만 국한되어 있어 보인다. 게다가 단지 몇 개 정부부처가 모여 주도함으로써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 철학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의 광범위한 문화운동으로 확산해 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4대강개발 등의 즉각적인 시행 외에도 생태 기술의 개발과 축적을 위한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계획도 세워야 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저탄소 녹색문화운동은 무엇보다도 양극화로 인한 갈등 해소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에 있어 투명성은 사회 통합과 소통 원활을 위한 녹색 철학으로 강조되어 왔다. 현재 우리 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남북 간의 긴장고조 등으로 극단적인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성의 강화가 요구된다. 여기에는 우선 정치권의 반성이 앞서야 한다. 당과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를 통합하고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맑은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또한 재계도 밀실에서 이루어졌던 정경 유착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요즘 무리한 수사와 독립성의 훼손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검찰과 사법부도 자연의 투명성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저탄소 녹색문화는 우리 사회를 내부적으로는 건강하게 하고 외부적으로는 북핵 등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 [뉴스플러스] 법학교수들 “申대법관 탄핵을”

    진보적 성향의 법학교수 165명이 재판 개입 파문을 일으킨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법학교수들이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신분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의견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이들은 8일 ‘사법권 독립을 염원하는 법학자 일동’ 명의의 공동성명에서 “신 대법관이 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다양한 방법으로 구체적인 재판 내용과 진행에 간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는 행위를 해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다.”면서 “신 대법관의 탄핵소추와 사법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이용훈 “申대법관 감내하기 힘든 상황”

    이용훈 “申대법관 감내하기 힘든 상황”

    이용훈 대법원장이 5일 촛불 재판 개입 파문을 일으킨 신영철 대법관에게 한 엄중경고 조치에 대해 ‘대법관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는 ‘솜방망이 조치’에 그쳤다는 법관들의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우회적으로나마 신 대법관의 거취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최근 법원 안팎에서 법관의 재판상 독립에 대해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다.”면서 “각급 법원에서 단독·배석판사 회의가 연이어 열리면서 사법권 독립의 핵심인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스스로 확보하겠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는 등 이제 법관들의 의견이 무엇인지는 법원 내·외부에 충분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재판 개입’ 엄중 경고 의미 부여 또 “대법원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는 다소 관대한 의견을 냈지만 저는 신 대법관이 재판의 진행이나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엄중경고 조치를 했다.”며 “이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한민국 최고법원 법관들의 뜻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고 엄중경고 조치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이 대법원장은 “(엄중경고 조치를 받은 것은)한 나라의 법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대법관에게는 더없이 무거운 것”이라면서 “명예와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기면서 평생 재판업무에 종사해 온 사람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신 대법관에게 견디기 힘든 치명적인 윤리적 흠결이 생겼다는 의미로, 대법관으로서의 직무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근무 편정제도 전면 개선키로 이날 회의에는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해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 등 32명이 참석했다. 법원장들은 재판 독립에 관한 법률을 신설해 재판 독립과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명문으로 규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뜻을 모았다. 또 평정 등급을 조정하는 등 근무평정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법조경력 5년 미만의 판사에 대한 평정과 평정표에 통계자료를 첨부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울대發 시국선언 확산 조짐

    서울대 교수들이 이명박 정부를 향해 소통과 연대의 정치를 강조하는 등 전면적인 국정기조 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에게 소환장이 남발되고 인터넷과 집회·시위를 통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등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대 교수 124명은 3일 오전 11시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이같은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정치보복적인 성격을 띠었다며 관련자의 사과와 수사 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2004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반대 이후 5년여만이다. 이날 중앙대 교수 60여명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중앙대 교수 일동’이라는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폐기할 것과 내각 총사퇴를 주문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연세대와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성공회대 교수들도 조만간 비슷한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서울대발 시국선언이 교수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현 정부와 집권당이 국민과 소통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를 국정 동반자로 대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현 정부 들어 언론의 자유와 집회·시위를 통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등 민주주의 원칙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을 깊이 염려한다.”면서 “이번 임시국회에서 정부와 여권이 미디어법과 집회와 시위관련법의 개정을 서두르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촛불집회’ 재판 개입 파문으로 불거진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 위험에 빠진 남북관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서울대 한정숙(서양사학과) 교수는 “대립 정국이 극명해지고 있는 이때 민주주의와 시민적 기본권을 위협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는 것”이라고 시국선언문 발표배경을 밝혔다. 서울대와 중앙대에 이어 다른 대학의 교수들도 동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연세대 최종철 교수는 “이르면 다음주 초 시국성명을 낼 예정이며 100~200명의 교수가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균관대의 한 교수도 “다음 주쯤 뜻이 맞는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교수들은 현재 시국선언 초안을 작성하고 소속 교수들의 동참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한편 이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최근 경찰이 서울광장을 봉쇄하고 집회를 불허한 것에 대해 우려의 뜻을 밝혔다. 박건형 이재연기자 kitsch@seoul.co.kr
  • 평판사 4명중 1명 “신 대법관, 재판권 침해”

    지난 21일 서울고법을 마지막으로 일단락된 ‘릴레이 판사회의’ 결의 내용을 종합·분석한 결과 전체 평판사 4명 가운데 1명꼴로 신영철 대법관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결론 낸 것으로 드러났다.지난 14일 서울 남부지법을 시작으로 판사회의를 연 법원은 모두 17곳으로 회의에 참석한 단독 및 배석판사는 497명이다.497명 전원은 신 대법관이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촛불 재판을 독촉한 것이 법관의 재판상 독립과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대하고 명백하게 침해한 행위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25일 현재 전국의 법관 숫자는 2307명으로 전체 판사 가운데 21.5%가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전국 평판사 1808명 중 27.5%에 이르는 숫자이기도 하다.또 17개 법원 가운데 참석자 다수 혹은 전원이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거나 희생 및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힌 법원은 10곳, 판사 숫자로는 277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 판사 가운데 12.0%, 평판사 가운데 15.3%가 신 대법관의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촉구한 것이다.대법원 규칙상 판사회의는 판사 정원이 10명 이상인 법원에서만 열 수 있다. 이 규정을 충족하는 법원의 판사 정원은 1692명으로 판사회의를 통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판사들 가운데 29.3%가 신 대법관이 재판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셈이다.이는 과거 사법파동을 초래한 문제 제기 규모보다 결코 뒤지는 수준이 아니다. 1993년 6월 있었던 3차 사법파동은 불과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 판사 28명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이들은 법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관 신분 보장과 법관회의를 요구했고, 이는 김덕주 대법원장의 퇴진으로 일단락됐다.4차 사법파동은 2003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법관들의 의견’을 게시하고 이에 판사 144명이 서명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전체 판사 수는 1755명으로 8.2%의 연판장이 이에 당시 사법파동까지 이어진 것이다. 최종영 대법원장은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에 임명해 사태를 진화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로스쿨·참여재판 등 사법개혁 현실로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로스쿨·참여재판 등 사법개혁 현실로

    법률가 출신 첫 국가 원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법조계에서도 역시 ‘승부사’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짧은 판사, 변호사 경험을 토대로 오랫동안 탁상공론에 머물던 ‘사법개혁’을 현실화시켰다. 대법원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불과 3년 만에 기틀을 잡고 사법개혁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리들의 리그’로 재판은 바뀌어 갔다. 노 전 대통령의 유작(遺作)은 오늘도 법원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다양화 노 전 대통령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화를 개혁의 첫걸음으로 택했다. ‘4차 사법파동’을 계기로 김영란 대법관과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기수와 서열을 깨고 금녀(禁女)의 자리에 임명됐다. 2005년 9월 개혁 코드가 맞는 대법관 출신 이용훈 변호사를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에 앉혔다. 이 대법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지원과 법원 내 개혁파의 지지를 얻어 발빠르게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파동을 주도한 박시환 변호사와 노동법 전문가인 김지형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대법관에 각각 임명됐다. 진보 인사의 잇따른 입성으로 보수 일색이던 사법부가 다채로워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동기들이 대법관·헌법재판관에 오르면서 측근 인사, 정실 인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로스쿨, 법조 일원화 법조인 양성 방식도 확 바뀌었다. 2007년 7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법학전공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에게 법조계가 문을 활짝 열었다. ‘고시낭인’을 양산하는 사법시험이 아니라 로스쿨 교육(3년)으로 법률가를 양성하게 된 것이다. 물적·인적자원을 쏟아부은 대학들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겼다. 하지만 로스쿨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변호사 단체와 법학대학이 로스쿨 총정원을 두고 일대 ‘전쟁’을 벌였다. 변호사 급증은 기존 변호사들에겐 생존의 위협이 되는 만큼 변호사단체는 로스쿨 정원을 사법시험 합격자 수인 1000명으로 제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총정원은 물론 대학별 정원도 늘려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총정원은 꾸준히 늘리기로 합의했지만 로스쿨 인가과정에서 탈락한 대학들이 법원에 소송을 내는 등 분쟁이 꼬리를 물었다. 로스쿨의 도입으로 판·검사의 임용방식도 달라졌다. 검사나 변호사 가운데 판사를 임용하는 비율을 점차 늘려 법조 일원화를 실질적으로 이루게 된 것이다. 2006년, 2007년 전체 판사 120여명 가운데 20명이 재야에서 선발됐고, 2012년에는 신규 판사의 절반인 75명 정도를 이 방식으로 뽑을 계획이다. ●국민참여재판 시행 형사재판에서 배심원이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국민참여재판 제도도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 이뤄졌다. 헌법상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들은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의 이유를 들어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일어난 크고 작은 법조비리 사건은 결국 국민들이 직접 형사재판에 참여해 판결을 내리는 제도로 꽃을 피웠다. 그렇지만 이 제도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한 편은 아니다. 지난해 1월부터 시범 실시되고 있는 배심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건 접수율이 낮고 배심제를 신청했다가 철회하거나 법원이 배제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배심원의 판단에 불복해 피고인 대부분이 항소하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서는 국민참여재판제도가 고비용 저효율 제도라고 비판한다. 형사재판의 또 다른 혁신은 공판중심주의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법원이 불구속 재판 원칙을 천명하고, 피고인과 검사가 대등하게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는 풍경이 벌어졌다.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수사과정에서의 영상녹화 조사도 가능해졌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호주제 폐지…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법률 시행 지난해 4월 대한변호사협회는 참여정부 때 인권과 여권이 신장됐다고 평가했다. 호주제 폐지는 남성우월적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왔다. 호주제를 대신한 가족관계등록법은 호주(아버지)가 아니라 개인별로 출생과 혼인, 사망 등의 변동사항을 기록해 관리하도록 했다. 특히 자녀의 성과 본을 법원 허가를 받으면 변경할 수 있고 이혼 후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어머니가 가질 수 있게 됐다. ‘홧김 이혼’을 막기 위해 협의이혼 숙려제도와 이혼 전 상담제도도 도입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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