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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현철씨 사면 문제있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아들인 현철(賢哲)씨에 대한 광복절 사면설이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가 김씨의 사면문제를 좀더 신중하게 재검토 하길 당부한다.왜냐하면 무엇보다 현철씨의 사면에 대한 국민여론이 부정적이다.여권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73%가 김씨의 사면을 반대하고 있다.다른 한 조사에서는 무려 80%가 반대하고 있다. 국민은 또 김씨가 과연 사면대상이 되는지,왜 하필 이런 때인지도 이해를하지 못하고 있다.사면은 행정권에 의한 사법권효력의 변경으로 사면권 행사에는 사면법이 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사면 대상자는 양심범이 아닌경우 통상 형이 확정돼 형기의 3분의 2이상을채우고 자신의 범죄행위를 뉘우치고있어야 하며 국민화합에 도움이되는 대상이어야 하는 것이다.김씨는 아직 형기의 4분의 1도 채우지 않았을뿐 아니라진심으로 범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심증을 주지 못하고 있다.김씨는 또 수사과정에서 약속한 92년 대선 잔여금 70억원에 대한 헌납약속도 이행치 않고있다.때문에 김씨의 사면은 사면권의 남용,나아가 자칫 적법성 여부의 논란을 야기(惹起)할 수도 있다. 경실련과 정치개혁시민연대가 27일 내놓은 성명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성명은 “정치적 편의에 따라 김씨를 사면하는 것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사면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지적하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사면권의 행사는 신중하고도 제한적이어야 한다.특별히 정치적 사안일 경우 국민의 공감대를 전제로 해야하는 것이다.이사건은 김씨의아버지가 현직 대통령일때 기소되어 재판을 받기 시작한 사건으로 왜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이문제에 정치적 부담을 갖고 있는가도 의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현철씨가 이번에 사면·복권되고 내년 4월 총선에 나서서 정계에 진출한다는 얘기가 시중에 파다하다는 사실이다.이것이 소문일 뿐이길 바라지만 만에 일이라도 그런 일이 현실화 한다면 이나라의 사법정의는 희화화(戱畵化)되고 말것이다. 우리는 김씨가 사면을 받게되더라도 최소한의 법적요건을 갖춘 이후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그러나 부득이 한 이유로 사면이 불가피하다면 내년 총선 이후가 돼야한다고 본다.더구나 복권만은 어떤 경우라도 가까운 시일내에 이루어지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 美 “이런 상황은 꿈이라도 싫다”

    핵·생화학 등 대량파괴 무기를 세계평화와 자국안녕의 ‘공적1호’로 꼽고있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은 15일 공개한 대량파괴무기 확산대책 평가보고서를 통해 미국에 대재난을 가져올 수 있는 4가지 시나리오로 ▲탄저병균 지하철 살포 ▲북한의 핵무기 판매계획 ▲러시아 과학자들의 고농축 우라늄 이란판매 ▲터키 및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에 대한 이라크의 신경가스탄 장착 스커드 미사일 공격 등을 상정했다. 존 도이치 전 미국중앙정보국(CIA)국장이 이끄는 평가위원회는 우선 러시아워에 탄저병균이 보스톤의 한 지하철에 살포돼 6,000명이 응급실로 호송되는 상황을 가정했다.그러나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존슨홉킨스대학 연구팀이 지난 5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탄저병균 포자 100㎏이 워싱턴지역에서 바람부는 방향으로 분무됐을 경우 300만명이 살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호흡기 등을 통해 전염되는 탄저병은 고열과 설사,언어장애 등을 동반하며 치사율이 80%이상 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이미 지난해 3월부터 미군과 군속에 대해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에 대한 이라크의 신경가스탄 공격 또한매우 중대한 위협으로 꼽힌다.이라크는 이란과의 8년전쟁중 세균전을 실시했는 데다 95년 러시아에서 생물무기제조용 장비를 도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지원국인 북한의 핵도 심각한 위협요소로 지적됐다.보고서는 북한이 10개의 핵무기를 제조한 것으로 정보당국이 분석하고 있는 가운데 2개를 판매하는 상황을 가정했다.현재 개발중인 북한의 대포동 3호 미사일은 추정 사거리가 1만km여서 애리조나주와 위스콘신주까지 위협할 수 있다. 아울러 불만을 품은 러시아 과학자들이 20kg의 농축우라늄을 테러지원국중의 하나인 이란에 팔아넘길 경우를 미국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보고서는 90여개의 미 연방기관들이 사법권의 중복으로 대량파괴무기확산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비확산에 관한 대통령의 지도력강화,부통령에 특별한 역할 부여,백악관내 총괄조정기구신설 등의 변혁을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박희준기자 pnb@
  • 中, 홍콩 사법권독립 제동…민권단체등 거센 반발

    중국은 26일 홍콩의 대법원 격인 종심(終審)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본토 주민들의 홍콩 유입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해 홍콩 야당과 법률인,인권단체등은 중국 정부가 지난 97년 홍콩주권반환 당시의 약속을 어기고 홍콩의 사법권 독립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비판했다. 중국의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는 이날 상무위원회에서 “부모중한 사람이 홍콩 영주권을 취득하기 전에 태어난 본토인들은 홍콩 거주 권리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 주민들 가운데 홍콩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160만명에서 20만명으로 크게 줄어들게 됐다.이에 앞서 홍콩 종심법원은 지난 1월 “홍콩 영주권자 부모를 둔 본토 어린이는 당국의 허가없이도홍콩에 거주할 헌법적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했었다. 상무위는 또 본토 주민이 홍콩 영주권 신청 자격이 있더라도 본토 당국의허가를 받아야 하며 영주권 발급자 수도 하루 150명으로 제한하는 할당제를도입했다. 상무위는 이날 결정문에서 “홍콩 종심법원은 최종 판결 전에 전인대 상무위에 해석 요청을 하지 않았으며 판결 내용도 기본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정문은 또 본토와 특구 양쪽에 관련된 사안의 결정권은 베이징에 있다고강조하고 홍콩 종심법원이 기본법을 잘못 해석해 중국의 주권을 침해했다고비판했다. 이와 관련,둥젠화(董建華)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은 이미 홍콩에 들어와거주권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종심법원 판결에 따라 영주권을 인정할것이라고 말했다. 둥젠화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97년 7월 1일과 99년 1월 29일 사이에 홍콩에 들어온 사람들은 3,700명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인대의 결정은 외교·국방뿐아니라 홍콩의 사법·행정에 대한 최고 결정권한이 중국당국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홍콩주권은 중국에 있음을 확실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홍콩 야당 당원 수백명은 이날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이번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변호사 300여명 등도 다음주 중국당국의 결정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남정현의 분지(4)

    필화란 항용 그렇듯이 논리나 진실보다는 강압의 질서로 재단되는데,‘분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1966년 9월 6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은 1967년 6월28일 제1심 언도에 이르기까지 8회에 걸쳐 공판이 진행되었다.한승헌·이항녕·김두현 제씨가 변호인으로,작가 안수길이 특별변호인으로 등장했던 이재판의 절정은 1967년 2월 8일부터(박종연 부장검사로 교체) 시작된 증인심문이었다. 한재덕(공산권문제 연구소장),이영명(군속.함흥공산대학 출신),최남섭(간첩.구속 중),오경무(간첩.구속중) 등 검찰측 증인과 변호인측의 이어령 증인이 등장했던 이 호화 캐스트의 법정은 강변과 궤변이 난무하여 현대사에서 가장 문학적인 논쟁의 공판으로 남을 만하다. “어느 신사가 애용하는 파이프를 만드는데 쓰여졌다고 해서 장미뿌리는 파이프를 위해서 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는 등의 문학적 수사론으로 옹호한 것은 이어령이었고,홍만수가 태극기를 미국여인들의 배꼽 위에 꽂는다는 마지막 구절은 민족 자주성의 상징이라고 한 것은 안수길이었다.특히 북한 언론들이 전재했다고 작가를 처벌하는 것의 부당성에 대하여 안수길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나치 독일이 반미 선전자료로 삼았으나 그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고 변론했다. 이항녕은 미국의 시사지 ‘타임’이 1967년 3월 10일자호에서 ‘애국자에대한 보상’이란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뤘다면서 왜 애국자를 우리 법정이처벌해야 되느냐고 반문했으며,한승헌은 ‘분지(憤志)를 곡해한 분지(焚紙)의 위험’이란 제목으로 실정법의 오류로 비판의식의 문학을 말살시킬 수 있다는 경고성 변론을 했다. 한국문인협회는 법원 당국에 진정서를 냈고,여러 언론기관은 다투어 ‘분지’의 무죄성을 강조했는데 그 한 예를 ‘조선일보’ 1967년 5월 26일자 사설 ‘계급의식과 반미감정의 표현론’에서 볼 수 있다.재판에 계류중인 사건이라 판결에 영향을 미칠 보도나 사설은 피해야 되겠지만 “그대로 방관해 두었다가는 국가헌법의 해석상 자칫하면 큰 오해를 빚어낼 염려가 있고,또한그것이 외국의 식자들에게 잘못 소개될 때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그릇인식하는 자료로 왜곡될 가능성조차 엿보이는 내용이 있음을 우리는 중시”하여 언급한다면서 이 소설이 지닌 계급의식과 반미감정을 유죄시하는 사회적인 통념의 부당성을 지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미 감정에 대해서는 “미국의 정책 중 우리의 비위에 맞지 않은 것이 있으면,얼마든지 배척,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자주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갖고있다고 우리는 확신한다”고 주장하며,한창 반미감정을 부추기던프랑스의 드 골 대통령을 예찬하는 것도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냐고 비꼬았다.사설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우리 스스로 창살없는 감옥으로 만드는 우만을 절대로 범해서 안되겠기에 감히 일언하는 바이다”고 끝맺는다.최석채 주필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사설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뿐만 아니라 남재희 당시 문화부장은 백낙청교수에게 ‘분지’에 관한 글을 청탁하여 옹호하는 내용을 실어 둘 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동아일보의남중구(당시 법원 출입)기자는 한 번도 빼지않고 이 사건을 취재하여 정확한 기사를 남겼던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7년 6월 28일 제1심에서 ‘분지’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는데,이것은 사실상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곧바로 언론들은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 판결문은 (1)북괴가 대남적화의 수단으로써 우리나라에 ‘반미감정 조성’‘반정부 감정 조성’‘계급의식 고취’에 광분하고 있다함은 공지의 사실이다.(2)피고인의 표현에는 ‘반미적 감정’‘반정부적 감정’‘계급의식고취’의…요소가 다분하다.(3)행위자의 표현을 지득한 자가 반국가단체의활동에 호응하는 감동을 일으킬 요소가 있음을 인식함으로써…범죄요건이 성립된다는 삼단논법을 취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럴 경우 “대한민국에서 반공법에 저촉되지않는 언론이나 정당활동이나 예술활동이 있을 수 없게 된다는논리에 귀착된다”(조선일보 1967.6.29)고 경고했다. 작가 남정현은 뭐라고 했을까.“민족적인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언사가 용납되지를않는 것”을 재확인하여,“미국에 대한 비판은 곧 그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는,“미국이 없으면 나라도 없고 나라가 없으면 자기(수사관)도 없다는 식으로 미국이라는 존재와 자신의운명을 동일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사건은 변호인과 피고가 다 당시의 사법권 독립성에 대한 회의 때문에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막을 내렸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선관위에 준사법권 부여 추진

    선거 때 선관위의 감시기능을 강화토록 하기 위해 선거사범의 체포·조사권과 임의동행·출석요구권,증거물품 압류권,자료제출 요구권 등 준사법권을선관위에 부여하는 방안이 여권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선관위가 사실상 ‘선거경찰’의 역할을 맡게 돼 불법·탈법선거를 막는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 개혁추진위원회는 최근 이같은 ‘선관위 감시본부안’을 실무차원에서 마련했으며 정책위원회도 중앙선관위가 자체 작성한 ‘선관위 단속기능강화안’을 놓고 비공식 당정협의를 갖는 등 검토에 들어갔다. 국민회의는선거현장의 현행범이나 장기 3년 이상의 죄를 짓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에 한해 선관위가 체포·조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곽태헌 추승호기자 tiger@
  • 여권 “선관위 준사법권 부여” 의미·내용

    여권이 선관위에 준사법권의 부여를 검토하는 데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여당의‘프리미엄’을 포기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하지만 장기적으론 정국주도에 유리할 것이란 판단이다.공명선거 의지를 제도적으로도 명확히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국민회의는 16대 총선은‘선거경찰화’된 선관위 체제에서 치른다는 계획이다.야당도 이에 대해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선관위 강화방안은 두 채널을 통해 모색되고 있다.하나는 국민회의 개혁추진위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회의 정책위와 선관위간 당정 채널이다.양쪽논의의 공통분모인 선거사범의 임의동행·임의출석요구권과 증거물품압류권,자료제출요구권,장소출입권,사실조회권 등은 여권안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민회의 관계자의 말이다.이 가운데 압류권의 경우 방해시 처벌규정까지 고려되고 있다. 또 임의동행·출석요구권은 비록 불이행시 처벌규정은 없지만 혐의자를 선관위에 소환,상세한 후속조사를 하는 데 긴요한 조치임에는 분명하다.그리고지금까지 정부간 협조라는 관례에 의존해온 선거법 위반 단속과 관련한 경찰관의 원조 요구도 아예 법에 명문화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그동안 단속 강제권 없이 피단속자의 자발적 협조에만 기대온 선관위로서는 이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충분히‘날개’를 다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지만경찰·검찰과의 업무 중복 등의 문제점도 있어 확정 과정에서 논란을 빚을소지가 크다.그래서 선관위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선관위가 국민회의 정책위에 건의한 체포·조사권과 재정신청권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선관위가 내놓은 조직개편안도‘조직이기주의’라는 시각이 없지 않아 성사 여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선관위는 기관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 위원장의 위상을 헌법재판소장에 준하도록 격상하고 감사원법상 공무원 직무감찰대상에서 제외토록 요구하고 있다.또 신설이 검토되고 있는 산하 감시본부장에는 변호사 자격 15년 이상의 국가 유관기관 근무경력자를 임명토록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곽태헌 추승호 기자 tiger@
  • [제2공화국과 張勉](22)-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上)

    장면(張勉)정부는 실로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짊어지고 출범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남긴 유산을 4월혁명에서 확인된 민의(民意)대로 처리하는 일이었다.이정권이 저지른 정치비리인 ‘6대 사건’과 경제비리인 ‘부정축재자 처벌’이 주요 관심거리였다. 6대 사건이란 ▲4·19 때의 발포 ▲장면부통령 저격 ▲서울·경기도 부정선거 ▲민주당 전복 음모 ▲정치깡패 ▲제3세력 제거 음모 등을 말한다.한결같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노려 국민과 야당을 탄압한 사건들이었다.이와 관련한 재판을 ‘혁명재판’이라고들 불렀다. 혁명재판의 진행은 그러나 순조롭지 못했다.먼저 법리상의 문제가 제기됐다.피고인측 변호사들은 “6월15일 헌법이 개정되었으므로 ‘3·15선거’ 때의 관련법은 효력을 상실했다.따라서 몇몇 피고인은 무죄”라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4월혁명유족회’회원들이 법원에 들어와 규탄데모를 벌이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그러자 변호사들은 재판이 안전한 상태에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는보장이 없는 한 참석하지 않겠다며 출정을거부했다. 혁명재판은 지지부진했고 민심은 부정선거 원흉들이 그냥 석방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장면정부도 사태 진행을 우려했지만 과거 이승만이 했던 것처럼 법원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존중한다는 뜻에서였다.변호사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해 법정으로 돌아오게한 것이 고작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재판장 張俊澤부장판사)는 피고인 48명에게 1심형량을 선고했다.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13명 가운데 3명에게만 사형을 언도했고,8명에게는 무죄·공소기각·면소(免訴)판결을 내려 풀어주었다. 이에 앞서 마산지법은 ‘3·15부정선거’피고인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내린 바 있어 서울지법의 ‘경미한’ 판결이 불러일으킨 분노는 더욱 컸다.장판사는 훗날 “국민감정과 동떨어진데다 기존 법의 한계를 보인 판결이지만 증거에 따라 당시 법대로만 판결했다”고 밝힌다. 온유하기로 유명한 장면도 이 판결에는 크게 화를 냈다.그는 회고록에서 “나 자신도 분격했다.법조문에 의한 공정한 판결이었을지는 모르나 국민감정에 미치는 영향도 참작했어야 할 것이다.적어도 혁명재판이라는 성격을 띠었다면 말이다.여하간 평상시의 법조문에 의한 것으로도 너무 가벼운 형이었다”고 술회했다. 전국적으로 벌떼와 같은 시위가 벌어지고 3일 후 4·19 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소급입법으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피고인들을 엄중 처벌하라는 여론이 불길처럼 일어난 것이다. 민의원은 10월13일 ‘민주반역자에 대한 형사사건 임시처리법’을 서둘러통과시켰다.주요 내용은 ▲특별입법을 할 때까지 재판을 중단하고 ▲관련 피고인들에게는 구속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며 ▲재판에서 석방되더라도 즉시 재구속한다는 것이었다. 특별입법을 전제로 한 ‘임시처리법’이 통과된 뒤 소급입법을 위한 개헌논의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총리로서 장면은 이를 거부한다.보복을 목적으로한 소급입법은 정치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대신 현행법에서 가장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장면은 민주당 의원들이 소급입법을 놓고 최종 토론을 벌인 현장에서도 강력히 반대했다.심지어 “소급법을 고집한다면 나는 당을 떠날지도 모르겠다”고까지 굳은 결심을 보였다.그렇지만 소급법은 결국 제정되고,장면은 회고록에서 “격렬한 국민감정과 지배적인 공기로 보아서는 이를 안 할 도리가없을만큼 험악했다”면서 “소급법이 가능하게 된 점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심정을 밝혔다. 장면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원인은 신·구파 갈등과 소장파 반발 등으로 안정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데 있었다.민주당 구파는 이미 분당작업에 들어갔고 소장파도 공공연하게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 신·구파로 이루어진 제2공화국 행정부와 의회는 사회적 압력에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급입법은 구파의 주도 아래 차근차근 진행됐다.민의원은 10월17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해 11월23일 통과시켰다.투표에 참석한 200명 가운데 191명이 찬표를 던졌다.부정선거관련자·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고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소급입법을 할 수 있으며,이를 맡을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후속조치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및 특별검찰청 조직법이 잇따라 연내에 제정됐고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 61년 4월 공포됐다. 특별재판소는 61년 1월25일 5개 심판부를 구성,전국 각지의 법원이 맡던 관련사건을 이송받아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이 가운데 제1심판부(재판장桂昌業대법관)는 4월17일 부정선거 사건 피고인들에게 선고를 내렸다.최인규(崔仁圭)전내무장관에게는 구형대로 사형을,이강학(李康學)전치안국장에게징역 15년,이성우(李成雨)전내무장관에게 징역 7년,최병환(崔炳煥)전내무부지방국장에게는 징역 5년을 각각 언도했다. 소급입법은 이후 두차례 더 등장한다.박정희(朴正熙)가 만든 ‘정치활동정화법’과 전두환(全斗煥)의 ‘정치풍토쇄신특별법’이 그것이다.둘 다 구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법이었고,제2공화국에서 소급법을 제정한 당사자들이주로 대상에 들었다.이용원기자 ywyi@-실패한 許政과도정부 4월혁명이 난 뒤 장면(張勉)정부가 들어서기까지는 넉달이 소요됐다.그 넉달 동안 혁명과업의 첫 처리를 맡은 정치 주체가 허정(許政)과도정부이다. 허정정부는 이름 그대로 과도기에 한시적으로 존재했고 따라서 역사·사회발전에 큰 구실을 하리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정권이다.그렇지만 이승만(李承晩)정권이라는 구체제가 무너지고 처음 등장한 정권이라는 점에서,어차피 4월혁명이 제기한 갖가지 혁명적 요구를 수행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도 사실이다. 허정정부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실패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실제 과도정부가 행한 역할은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도 훨씬 미치지못했다“(孫浩哲 서강대교수 등)고 본다.그 이유는 “4·19 취지에 의거해구체제와의 단절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과도정부 자신과 민주당,그리고 4·19혁명에 참여한 중요한 지식인 및 사회세력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개혁을 위한 타협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崔章集 고려대교수)이다.그 결과 “후계정권(장면정부)에게 제한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혁명’을 수행해야하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주었다.”(韓昇洲 고려대교수)허정은 서울 각대학 교수들이 시위를 벌인 1960년 4월25일 외무장관에 임명된다.이틀 뒤 이승만이 하야하자 그는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된다.대통령승계권을 가진 장면부통령이 4월23일 이미 사임했기 때문이다. 과도정부의 내각수반이 된 허정은 각료진 구성을 마치고 5월3일 ‘5대 시책’을 발표한다.‘반공정책을 한층 더 견실하게 전진시키는 것’을 비롯해▲부정선거 처벌대상은 고위책임자와 잔학행위를 한 자에 국한하고 ▲혁명적 정치개혁을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단행하며 ▲4월혁명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내정간섭’운운하는 것은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를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전 국민이 이 시기에 위대한 관용을 보이고 그 정력의 전부를 국가의 부강과 국민 공익에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해 정치보복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했다.한마디로 “최소한의 정책변화를통해 현상유지를 담보하는 정책”(최장집)을 편 것이다. 이같은 기본원칙은 각 부문에 그대로 적용됐다.먼저 ‘3·15부정선거’등정치비리 관련자 처리를 이승만정권 때부터 유지된 법원·검찰에 맡겼다.이때문에 ‘혁명재판’성격은 사라지고 국민감정이 용납못할 판결이 잇따랐다. 서울지법 형사1부의 10월8일 선고가 대표적인 예이다.“공판은 장면이 이끄는 다음 정부로 넘겨졌으며,장면정권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의 원인이 되었다”(한승주)‘부정축재자 처벌’도 마찬가지였다.과도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처벌 의지를 여러차례 공표했지만 명백히 ‘축소지향적’이었다.6월 1∼20일을 부정축재 자수기간으로 정했고,7월2일에는 허정이 “부정재산을 정부에 반환하면 형사책임을 감면하겠다”고 밝혔다.사흘뒤 부정축재 1차 조사대상자로 기업인18명,기업체 61사를 공개했다. 결국 과도정부에서는 몇몇 사람이 부정축재 사실을 자진 발표하고 축재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그쳤다.장면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밖에 ▲고위장성의 반발을 두려워해 군 개혁을 외면했고 ▲민원(民怨)의 대상인 경찰을 민주화하는 방안도 자리바꿈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허정과도정부는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한다’는 슬로건을내세웠지만 결과는 “사회 내 어떤 부문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무능과 무작위 탓으로 장면이 이끄는 그후의 정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한승주)말았다.이용원기자
  • 가축방역관에 사법권 준다

    가축질병의 효율적 예방을 위해 가축방역관에게 사법경찰권이 주어진다. 농림부는 2일 가축방역을 소홀히 한 축산농가를 처벌할 수 있도록 사법경찰관리 직무자와 직무범위에 대한 법률개정작업을 법무부와 협의중이다. 가축방역관에게 사법권이 부여되면 돼지콜레라 등 가축질병이 발생한 농가나 농장에 돼지의 이동제한과 교통차단 등 명령과 함께 현장조사나 필요할경우 인신구속도 할 수 있게 된다. 이같은 조치는 일본이 내년 10월부터 돼지콜레라 발생국가로부터 돼지고기수입을 중단키로 하는 등 수출에 막대한 차질이 우려되는 다급한 상황인데도 일부 축산농가들이 예방접종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이와 함께 오는 7월부터 돼지콜레라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농가또는 농장에 부과하던 과태료를 현행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
  • 나타아트마자 印尼대사“한국과 국민車 협력재개 희망”

    자우하리 나타아트마자 인도네시아 대사는 24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는 금융위기의 회복단계에 있으며 중단된 한국기업과의 국민차 생산 협력사업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인도네시아 국내상황과 관련,올 6월 총선거,하반기의 대통령선거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이룩해 나갈 수 있을것으로 전망했다. ●두나라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두나라는 국제무대에서 협력자로서,활발한 경제협력국가로서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읍니다.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원자재 공급국이자 가공무역기지로서 각광받고 있지요.풍부한 지하자원과 싼 노동력은 한국의 기술·자본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면서 경제적 폭발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경제교류 상황은 어떻습니까. 누적액 기준으로 한국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8번째 투자국입니다.인도네시아의 4번째 수출 대상국이자 수입액으로도 6번째 국가입니다.한국에 가스,기름,고무,철,나무 등을 주로 팔고 전자제품과 차량을 한국서 수입합니다.지난해 인도네시아는 한국에서 17억8,000만달러어치를 사오고 30억5,700만달러어치를 팔아 12억7,300만달러가량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기아자동차와 진행하던 국민차 생산은 국제무역기구(WTO)와 미국 등이 불공정거래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인도네시아측은 재개 의사를 갖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남북한 양측과 모두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동시 수교국으로서 한반도의 현 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4자회담과 코리아 에너지개발계획(KEDO)을 지지합니다.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현안이 있다면. 두나라 관계에 만족합니다. 다만 한국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근로자에 대한 처우 및 임금 체불 문제 등을 한국정부가 더욱 관심 가져달라고여러차례 주문했읍니다.서울에 상주공관을 갖고 있는 8개 아세안 국가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한국정부 당국자를 만나 이 문제를 제기하며 논의하고 있습니다. ●수하르토 전대통령 하야 이후 인도네시아 국내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유수프 하비비 대통령의 지도아래 인도네시아는 전에 없이 근본적인 개혁을 진행중입니다.개혁은 정치,경제,사회 전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읍니다.그가운데 핵심은 인권 보호 강화입니다.사법권이 정치와 행정권력에 의해 간섭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중입니다. ●정치분야에도 큰 변화가 있지요. 민주적 질서와 법의 강화외에도 군을 국방에만 전념하게 하는 탈정치화 작업이 중요한 변화입니다.지난해 말 국회 결정으로 대통령 선출권이 있는 국민협의회(MPR)에서 군부 몫을 38명으로 줄였읍니다.전에는 직능 대표로 참석하는 군부의 몫은 100명이었습니다. ●올해 어떤 정치일정이 준비돼 있습니까. 오는 6월17일 5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실시됩니다.이들과 지역 및 직능대표 200명 등이 국민협의회(MPR)를 구성해 대통령을 뽑게됩니다. 대선 날짜는 총선 이후 결정됩니다.12월 이전에 실시해야 되지만 늦가을 무렵 실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거와 관련,폭력사태 및 부정 등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요. 세계에서 5번째인 2억2,000만명의 인구에 1만3,667개나 되는 섬으로구성된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어 일부의 걱정도 있읍니다.민주화로 느슨해진 통치력의 틈을 타 종교·종족 분규와 일부 지역분리 움직임이 가열되는 추세가그것입니다.효율적이고 공정한 선거의 진행을 위해 유엔개발계획(UNDP)의 협조를 얻기로 했습니다. ●아세안의 중심국가로서 아세안과 인도네시아의 역할은 어떤 것입니까. 아세안은 공동체 건설에 한발씩 진전을 이룩하고 있읍니다.지난해 12월 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추진등을 골자로 한 하노이 선언도 그 예입니다.단일통화 및 금융기구 설립도 목표중 하나입니다.
  • ‘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 노동 천시하며 지배계급에 동화 서양 중세시대 지성의 역사를 ‘지식인’이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다룬 책‘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지음·최애리 옮김)이 나왔다.기존의 중세 지성사가 주로 사상사적 관점에서 다루어졌던 반면,이 책은 구체적 정황속의 인간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저자는 여기서 문화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에도 정의에 대한 열정과 진리에 대한 치열한 탐색을추구한 일련의 지식인들이 있었음에 주목한다.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권력에동화되고 문화를 경직시켜 중세가 ‘암흑기’란 오명을 얻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지 세밀하게 짚어가고 있다. 이책에 등장하는 지식인은 현대의 지식인과는 그 범주와 의미에서 차이가있다.이들은 중세의 사회역사적 환경에서 탄생된 특정 부류를 의미한다.주로 학문 연구와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성직자의 직분을 갖기도 했지만 수도사나 사제 등과 달리 교사나 교수의 역할에 치중했다.이들은 학교와 거리를 두고 있는 시인들이나 작가들과도 구분된다.단테같은중세 서양사상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도 학교와 긴밀한 관련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단편적인 언급에 그치고 만다.저자는 이들이 독창적인 계보를 형성했으며 중세 지성사에서 뚜렷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12세기 유럽 각국에서 도시가 일어나면서 등장한다.중세에서 교육은 만인에게 개방하는 것이 원칙이었고,따라서 사람이 모인 도시에 수도원 교단들은 너도나도 학교와 대학을 세웠다.교사들은 처음에는 연구와 가르치는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지적 노동자’였다.이때 지식인의 또다른 유형으로는 번역가들과 골리아르가 있다. 번역가들은 대개 수도원 등에서 보수를 받고 그리스 아랍 등의 고전과 과학서 등을 찾아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골리아르(goliards)는 정해진 소속 없이 이름 높은 교사를 찾아 다니는 가난한 유랑학생들이었다.이들은 지적 자유추구 만큼이나 기성질서를 대변하는 성직자와 귀족 들을 비판했다.골리아르중 한 사람으로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인간주의자였던 피에르 아벨라르 같은이는 항상 새로운 사상을 고취시키며 발길 닿는 곳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이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기성특권층과 과감한 지적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13세기에 이르러 지식인들은 다른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동업조합을 조직해나름의 조직과 제도를 구축한다.이들은 대학을 교회와 세속권력들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교황권을 이용하려고 하나 오히려 교황의 일꾼으로 전락하고만다.대학조합은 교회사법권에 속해 대학인들은 속인이면서도 성직자라는 애매한 지위에 놓인다.그리고 교회의 ‘무상교육 원칙’에 의해 이들 지식인들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교황의 은급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과정은 결국 13세기 말에 이르러 대학의 교사들이 교회와 세속의 고위직에 나가 정치권력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14세기 중세말기에 한층 더 지배계급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경제적 기반을 잡은 이들은 귀족행세를 하고 대학의 교수직마저 세습화한다.중세말기를 풍미하는 반지성주의,신앙절대주의는 이처럼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생겨나는 것이다.그결과 이들이 12세기에 추구했던 지적 열정은 사라졌다. 이 책은 기존의 중세 지성사에서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중세지식인 집단의 존재를 새로이 부각시키고 있다.그리고 이들이 지적 ‘노동자’로서의 계급을 부인하고 노동을 천시하며 지배계급에 동화되어 결국 지적문화의 경직과 퇴조를 가져오는 과정을 교훈적으로 보여준다.동문선 1만8,000원
  • 尹厚淨위원장에 들어 본 여성특위 올 업무

    “업무 능력과 관계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尹厚淨위원장(67)은 4일 대한매일 辛然淑 문화특집팀장과의 회견에서 올해는 “남녀차별개선 및 구제에 관한 법(남녀차별금지법) 시행과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尹위원장은 헌법학자로 평등법을 전공했으며 그의 이런 경력이 이번 법 제정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을까를 짐작을 하는건 어렵지 않다.그는 한번 시작한 일은 저돌적으로 밀어 붙여 끝을 보고 마는 강력한 추진력도 갖고 있다.이화여대 총장 시절에는 학교발전기금 780억원을 거뜬히 모아 주위를 놀라게하기도 했다.尹위원장은 남녀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 합리적인 운용으로 누구든,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취임 11개월을 맞았습니다.그동안의 소감과 성과를 말씀해주십시오. 조직구성과 인원배치를 끝내고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는 6개월 됩니다.어려움은 많았지만 열심히 헤쳐 왔다고 생각합니다.지난해에는 여성실업자대책과 제대군인에 대한 가산점 부여 문제 제기,각부처 위원회 구성의 여성비율 상향조정(20%)등의 성과가 있었습니다.정부의 실업대책에서 제외됐던여성가장 실업자와 영세업체에서 일하다 실직한 여성의 문제점을 파악,혜택을 볼수 있도록 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지방자치단체의 여성담당 부서들을 지켜냈습니다. 7급 이상 공무원 시험때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기로 했던 것은 채용목표제가 끝나는 2000년에 재검토한다는 답을 얻어냈습니다.그러나 무엇보다 큰성과는 ‘남녀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여성특위가 준사법권을 갖게 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까다로운 규제로 기업들이 여성 고용을 기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상식적,합리적으로 생각해주기 바랍니다.여성인격권을 존중해 업무에 지장을 주는 행태를 제거하자는 것이 남녀차별금지법의 기본취지입니다.기준없이 무분별하게 차별로 규정,제약을 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차별하면서도 차별이란 의식조차 갖지 않았던 데서 여성도 동반자,인격체라는 인식을 갖도록 노력해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올해 중점을 둘 사업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와 남녀평등의식 확산을 통해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을 바꾸는데 주력할 것입니다.그리고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한 여성 전문인력양성에 중점을 두고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이 6월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여성들도 창업지원금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여성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 정부의 여성실업대책에서 제외된 여성가장실업자도 많습니다.이들에게 최저생계보장비 지원대책 등 보완책을 꾸준히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여성의 정치참여를 늘릴 방안은 무엇입니까. 먼저 여성의 정치참여 당위성을 설명하는 캠페인을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정치지망생들을 발굴,교육하고 훈련하도록 여성개발원이나 NGO에 요구하고 지원할 계획입니다. 여성유권자들이 여성후보를 외면하는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여성유권자 의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동안 여성이 정치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은 고정관념에도 원인이 있지만 돈이 있어야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고비용 정치구조에도 원인이 있습니다.그래서 각 정당 대표들을 만나 여성 정치할당제를 정당법으로 규정하도록 요구하고 정치자금법 등을 개정하도록 제안할 것입니다.▒‘할당제‘ ‘잠정 우대조치’는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나라들을 보면 여성 우대조치를 함으로써 여성 정치 참여가 확대돼 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여성의 정치참여가 안됐던 것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구조적,사회제도적으로 차별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할수 있도록 하려면 조건을 같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고 그동안은 잠정적인우대조치가 시행돼야 하는 것입니다.▒할당제를 하다보면 자칫 능력이 모자라는 여성이 자리를 차지할 우려도 있을텐데요. 아닙니다.시행착오는 있겠지만 해당 업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 능력도 없는여성에게 ‘할당제’라는 이름으로 기회를 줘야한다는 논리는 아닙니다.그러나 이럴수는 있겠지요.같은 조건이라면 여성에게 우선 기회를 주고 공천할때도 당선가능 지역에 여성을 배정하는 조치는 가능하다고 봅니다.▒법보다 의식전환은 더욱 힘든 것 같습니다.특히 남아선호사상은 수백년동안 계속돼 온 전통으로 바꾸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그냥 둘수는 없지 않습니까.남아선호사상이 계속될 때 한국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 의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대책을마련하겠습니다.▒여성의 국제사회 진출 지원계획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외교·통상분야와 민간기구에 여성참여폭을 넓혀야 합니다.준비단계로 최근 국제전문여성인명록을 내놓았으며 지난해에는 대학·대학원 졸업자 14명을선발,국제회의에 인턴으로 파견해 국제경험을 쌓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그리고 정부 대표단이 국제회의에 참석할때 여성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해 놓았습니다.▒金大中 대통령께서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보통 남성 정책결정자들과 여성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시각차가 너무커 많은 설득 과정이 필요합니다.그러나 대통령께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몇마디만 듣고도 내용을 꿰뚫어 보시며 다만 기존 제도,법률과 부딪치는 부분이 없는지 챙겨 보라고 말씀하시지요. 대통령은 여성들이 수적으로는 인구의 반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약자이며소수집단(minority)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 방송위원회 합의제 기구로

    방송개혁위원회(위원장 姜元龍)는 통합방송법이 제정되면 신설될 방송위원회의 위상을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처럼 실정법상의 합의제 행정기구로 확정했다.다만 행정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위해 독립규제위원회의 성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강원용위원장은 14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날 열린 제5차 본위원회에서 확정된 ‘방송개혁의 기본 방향’과 ‘방송규제기구의 위상 정립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방송위는 문화부와 관할 논란이 일었던 방송정책권도 갖고 실질적인 방송사업자 인·허가권 및 방송발전자금 관리·운영 등 총괄기구로서의 직무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또 법안제정을 건의하는 준입법권과 심의결과에 대한 제재 등 준사법권을 갖게돼 독립성이 강화된다.
  • 秋美愛·李美卿/올해에 빛난 여성의원

    올해 국회는 가장 비생산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이런 가운데서도 국민회의 秋美愛 의원과 한나라당 李美卿 의원은 ‘소신파’의원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돋보이는 활동을 펼쳤다.두 의원의 의정활동을 되돌아본다. ◎秋美愛 국민회의/특별검사제 주장 소신파 국민회의 秋美愛 의원(40·서울 광진을)은 당내에서 ‘소신파’로 불린다.당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검사제 주장이 대표적.秋의원은 “해보지 않고 특검제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문제”라고 당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朴相千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두눈을 부릅뜨고,자신의 소신을 밝혀 朴장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秋의원은 특히 최근 여성특위에서 남녀차별금지법에 제동을 걸어 ‘여성편을 들지 않는다’는 여성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여성특위 산하 ‘남녀차별개선위’에 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에 법률적 판단을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다. 秋의원은 ‘소신파’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데 반해 당 지도부는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李美卿 한나라당/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앞장 한나라당 李美卿 의원(48·전국구)은 국회 환경노동위와 여성특별위원회 소속으로 단연 돋보이는 활동을 했다.특히 ●환경 ●노동 ●여성 ●인권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남녀고용평등법을 심의처리하는 데 앞장섰다. 또 정신대문제와 관련,일본전범의 국내입국을 금지시키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최근 관심사는 민주유공자를 위한 명예회복법안이다. ‘교원노조 허용’ 문제에 대해서는 ‘당론’과 상관없이 ‘찬성‘입장을 분명히 했다.李의원은 “전교조 문제로 10년동안 논쟁을 해왔고,이제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진 만큼 교원노조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환경정치인상’을 수상했고,올해도 ‘시민운동 디딤돌 정치인’ 1위에 뽑혔다.
  • 규제개혁법 ‘로비 역풍’/이익단체들 입김… 정부 원안 되레 훼손

    ◎여야는 입씨름만… 328개 법안 처리 감감 규제개혁법안의 처리가 차질을 빚고 있다. 여야간 입장 차이, 여여간 갈등, 상임위간 대립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특히 규제개혁 입법과 관련,일부 상임위에서는 정부 원안을 훼손하거나 처리를 지연하고 있다.이익단체들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이익단체들의 입김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는 23일 간부회의를 열어 소속 의원들이 당론에 위배한 행위를 할 경우 경고하기로 하는 등 개혁입법 처리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연내 처리하기로 한 규제개혁 법안은 단일법안 157건,일괄법안 171건으로 모두 328건에 이른다.이는 정부 규제총량의 50%에 가까운 5,000여건의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다.이가운데 처리된 법안은 60건에 불과하다.나머지 규제개혁 법안은 국회에 계류중이다. 특히 사업자단체 규제개혁 관련 58개 법안들은 상임위에서 제동이 걸려있는 상황이다.재경위는 2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정부가 규제개혁 차원에서 제출한 공인회계사,세무사,관세사 등 3개 전문직종의 복수단체 설립 허용과 회원 강제가입규정 삭제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의 처리를 유보하기로 했다.이유는 변호사회 때문이다.“변호사는 하지 않으면서 세무사,관세사,회계사만 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들 법안이 계류된 것은 재경위가 관련 이익단체들의 ‘로비’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상임위 배정시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많이 포진해 공정한 법안심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국민회의는 이와 관련해 이날 변호사단체의 복수설립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다.법무부에 변호사 규제개혁법안의 제출을 촉구했다. 또 문화관광위는 볼링장,테니스장,골프연습장 등 7개 체육시설업의 신고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규제철폐 의지를 거두어 들인 것이다.이에대해 기존업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외국의 카지노영업 허용을 골자로 하는 관광진흥법은 국내 카지노업자들이 거세게반발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다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보건복지위는 약사법 개정안을 놓고 대한의사회가 연기를 주장하는 등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소속 의원들 간에도 찬반이 엇갈려 난항을 겪고 있다. 정년 관련법의 경우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정년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여여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내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여성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남녀차별금지법은 일부 여성의원들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여성특위 산하 ‘남녀차별개선위’에 준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이 발단이 됐다.국민회의 秋美愛 의원은 “대통령 자문기구에 법률적 판단을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며 반대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의 부인 李姬鎬 여사는 최근 국민회의 韓和甲 총무를 청와대로 불러 이 법안의 처리를 당부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후문이다. 보건복지위와 환경노동위는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의 이관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현재 환경노동위 산하단체인 이 공단은 한해 예산이 600억원이다.상임위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곱지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규제개혁 법안 로비 실태 법안명 규제완화 내용 및 로비 실태 체육시설설치 9개 체육시설설치 신고의무 폐지,탁구 이용개정안 롤러스케이트를 제외 볼링 테니스 등 신고 의무 존치, 수정 통과, 기존업자 반발 청소년법개정안 이익단체 로비, 내용 변질 공인회계사법 복수단체 설립, 강제가입제도 폐지, 관련단체 관세사법 반대 개정안 유보 세무사법 변호사법 법무부에서 파장 우려 개정법안 미제출 약사법개정안 의약분업,대한의사회 연기 주장,처리여부 불투명 독점규제 및 양조장 시군제한폐지, 양조업자 반발,2001년 공정거래법 실시로 변질 영화진흥법 성인전용관 설치 허용. 관련단체 이견 관광진흥법 외국인 카지노영업 허용,국내 카지노업자 반발 부동산중개업법 중개업자 겸업제한폐지, 관련단체 반발 개정안 교원노조설립 1기노사정 합의사항인 교원노조 허용. 야당 및 운영법 이해단체 반대.올해내 통과 난항. 교육공무원법 교원정년 60세 하향조정. 교총 등 관련단체 및 일부 교육위위원 강력 반발.62세 수정예상
  • 국민훈장 받은 李敦明 변호사/세계인권선언 50주년

    ◎“현정권 인권보호 진일보 환영”/‘정부가 주는 賞’에 세상 변화 실감/인권 지키는 것은 법조인의 기본 사명/약자들 위해 정부가 끝까지 노력해야 “인권을 지키는 것은 법조인의 기본 사명입니다.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상까지 받게 돼 쑥스럽습니다” ‘인권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李敦明 변호사(76)는 10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세계 인권선언 50돌 기념식에서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데 대해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35년동안 변호사로 재직하면서 한국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권침해 사건의 변론을 도맡았던 李변호사는 스스로 말하듯 꿈도 꾸지 않았던 ‘정부가 주는 상’에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이같은 사회진보에 작게나마 역할을 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그는 덧붙였다. 5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법조계에 투신한 그는 54년 대전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10년동안 법관을 지냈다. 지방판사여서 정치적 사건을 맡을 기회는 없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구속적부심을 적용,피의자를 석방해 ‘인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대통령 비방으로 구속된 한 야당 정치인을 적부심으로 풀어 준 것이다. 63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도 법률신문 기고를 통해 “변호사로 성공과 실패의 판단기준은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을 사고 자가용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실천했느냐로 따져야 한다”는 올 곧은 법조인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72년 10월유신 선포는 그가 본격적으로 인권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유신이 선포되던 날 정부가 입법 및 사법권을 독점하고 무엇보다 국민에게서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빼앗아 간데 대해 분노하며 밤잠을 설쳤다”면서 “이 때문에 인권운동에 앞장 서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金芝河씨 사건 변론 李변호사가 인권운동차원서 첫 변론을 맡은 사건은 지난 75년 시인 金芝河씨의 반공법 위반사건이었다. 이후 청계피복노조사건,朴正熙 대통령 시해사건,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삼민투 사건,權仁淑양 성고문사건,金槿泰씨 고문사건 등 한국 인권운동사의 한가운데에 늘 자리했다. 金大中 대통령이 연루된 76년 명동성당 3·1 구국선언사건의 변론도 그의 몫이었다. 동아일보 광고해약사태 땐 동료 변호사들의 협조를 얻어 광고게재운동을 주도했었다. ○5共때까지 암흑시대 그는 “유신이후 全斗煥 정권때까지 인권의 암흑시대라고 할만큼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극심했다”면서 “당시만 해도 인권변호사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 힘들기도 했지만 가장 보람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부지런히 뛰었지만 법관이 용기있는 판결을 내리지 않아 항상 졌다”면서 “나중엔 법관을 보고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방청객을 향해 변론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李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인권변호사 그룹은 80년대 이르러 그 趙永來씨. 李相洙 국민회의 의원 등 소장변호사들의 합류로 세를 불려 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을 조직했으며 李 변호사는 초대 고문을 맡았다. 87년에는 5·3 인천사태로 수배중이던 李富榮 현 한나라당의원을 숨겨준 죄로 6개월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 때 그는 “정치보복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처단하는 마지막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유명한 최후진술을 남겼다. 88년 모교인 조선대의 총장직을 제의받고 적임자가 아니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학교측에서 수십 번을 찾아와 부탁해 할 수 없이 승낙했다.어차피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승인이 나 총장을 맡게 됐고 재직중 李哲揆군 변사사건,어용교수 해직 등 큰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인권은 곧 민주주의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92년부터 한동안 변호사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재야운동에만 전념했다. 현재 덕수합동법무법인에 적은 둔 李변호사는 건강문제로 사건 변호는 맡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고문과 지난달 발족한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대책위원회’의 공동대표도 맡는 등 인권운동에 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던 인권변호사가 이젠 인권 신장에 관심을 갖는 후배들이 많아 든든합니다” 천주교 신자인 李변호사의 세례명은 ‘유토피아’의 저자 이름과 같은 토머스 모어. 성인(聖人) 이름을 쓰는 관례를 따르지 않은 것은 정의를 위해 단두대에 선 용기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인권은 곧 민주주의라는 신념이다. 李변호사는 “현 정권이 전 정권보다 인권에 관한 한 진일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면서 “아직도 그늘 속에 있는 약자들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은 만큼 정부가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 배설의 상해 복역(대한매일 秘史:6)

    ◎더위·모기떼 시달리며 3주간 혹독한 옥고 치러/판사 “한국민 선동” 판결.英 군함으로 상해 이소/한국인들 연일 몰려오자 형무소 면회 아예 금지/영어 공판기록 번역 대한매일 한달반 연재 4일째인 6월18일(1908년) 판사 보온은 배설에게 3주일간의 금고(禁錮)형을 선고했다.또한 복역 후 6개월간 근신을 서약해야 하며 350파운드의 보증금(피고 200파운드,보증인 150파운드) 납부를 판결했다.판사는 문제된 논설 3건은 한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에 대항한 봉기를 선동한 것이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단정했다.그러므로 앞으로 계속 반란을 선동한다면 추방령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판결 결과가 알려지자 재판정 밖의 많은 한국인들은 실망하고 격분했다.어떤 사람은 돈 4천환을 가지고 와서 배설의 금고형을 돈으로 대신 면제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놓겠다고 말했고,변호인 크로스의 노고를 치하하는 연회를 제의하는 사람도 있었다.주일 영국대사 맥도날드는 한국인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배설의 처벌로 그들의 감정이 악화될 것을 우려,서울의 영국 총영사관이 습격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미국의 한국교포들이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한 것을 보더라도 그런 위험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고 영국 총영사관 부근에 경찰관을 순회시키는 등의 예방조치를 취해달라는 편지를 일본측에 보냈다. 배설을 어디에 수감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주한 영국 총영사관이 해결해야할 문제였다.서울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수 있는 형무소 시설이 없었다.편법으로 호텔이나 집을 세내어서 감금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당국이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그렇다고 일본인 관할 하의 형무소에서 복역케 한다면 영국이 배설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이었다.마지막으로는 배설을 상해로 호송,그곳의 형무소에서 복역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었다.그러나 배설을 어떻게 상해까지 보내느냐 하는 것이 난관이었다.당시 인천­상해간 정기 배편이 없고 일본을 경유하도록 되어 있었다.그러나 배설이 일본을 거쳐 상해로 가는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일본의 사법권 관할하에 놓이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코번은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배설을 인천에서 상해로 직접 싣고 갈수 있도록 요코하마에 정박중인 영국 군함을 보내달라고 본국 정부에 건의했다.외무성은 이를 받아들여 요코하마에 있던 영국 군함 클리오(Clio)호를 단 한 사람의 죄인 배설을 상해로 호송하기 위해 급히 인천으로 파견했다.배설에게는 6월18일 오후에 금고형을 언도하였으나 상해로 싣고 갈 군함이 올때까지 일단 석방,이틀 뒤인 6월20일에 출두하도록 명령하였다.이에 따라 배설은 20일 오후 4시 총영사관에 출두,곧장 서울역으로 가서 5시20분 발 인천행 기차를 타라는 지시를 받았다.배설이 서울역을 떠난다는 소문이 퍼지면 많은 군중들이 서울역에 몰려올 것이고 그러면 소란이 일어날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상해로 가는 낡은 군함을 탄 이후부터 배설의 고생은 시작되었다.배 안의 생활은 이미 복역 기간이었다.더욱이 상해 형무소에 들어간 후에는 밤이면 더위와 모기에 시달리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팔다리를 격렬하에 휘저어대며 방안을 거니는 것으로 겨우 모기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배설은 자신을 「온정적으로 처리」한다면서 상해로 이송,복역하도록 결정한 판사가 원망스러웠다.판사가 감옥의 혹독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고 출옥 후 일본의 영국인 발행 영어신문 재팬 크로니클에 실은 옥중기에서 밝혔다. 배설의 상해도착 소식을 들은 상해거주 한국인들은 연일 면회를 왔다.형무소 당국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재소자들의 면회마저 금지시켰다.감옥의 3주간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한없이 느리게 갔다.그가 출옥한 날은 7월11일이었다. 한편 서울의 대한매일은 국한문판과 한글판에 배설이 상해로 떠나던 바로 그날인 6월20일부터 공판의 상세한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무려 한 달 반이 넘도록 연재되어 배설이 돌아온 뒤인 8월7일까지 실렸다.영어로 진행된 공판 내용을 번역하여 거의 완벽하게 게재하였다.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억압했기 때문이라는 피고의 주장과 변호인 크로스의 변론,증인들의 증언 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 여야,청문회 특위구성 첨예 대립

    ◎85조7,900억 규모 예산안 처리도 난항/쟁점법안 일정 빡빡… 졸속 심의 우려 경제청문회 협상 및 예산안 처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경제청문회는 여야가 특위구성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고,내년도 예산안과 계류중인 법안도 시일이 빡빡해 졸속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여야는 30일부터 3당 수석부총무회담 등 다각도로 접촉할 예정이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경제청문회/여,의석 비율따라 구성 당연/야,동수거나 위원장 야에 달라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특위구성이다.여당은 국민회의 7명,자민련 4명,한나라당 9명으로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이와 관련,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특위구성방식은 국회법에 명시돼 있는 만큼 여야간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양보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특위 명칭과 청문회 기간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특위 구성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고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20명의 조사특위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거나,이것이 어려우면 위원장은 한나라당측에 할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사대상은 여야가 사전에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여당은 당초 16개에서 10개 안팎으로 줄이기로 했고,한나라당도 11개 의제를 잠정적으로 선정해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여당은 여야 협상이 안되면 내달 2일 국정조사계획서를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처리한 뒤 3일부터 경제청문회 관련 대상기관의 보고를 받겠다고 야당을 몰아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朴熺太 총무는 “여권이 국정조사계획서를 단독으로 처리하려 한다면 실력저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예산안/여권 원안대로 통과 시키기로/야권 청문회 연계 협상 가능성 국회는 내달 1일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를 가동,2일까지 85조7/,900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다.법정처리기일(12월2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제2건국위 예산배정 등 ‘정치성 예산배분’ 문제로 여야간 대립이 심화,최종 통과까지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당은 가급적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키되 일부 항목조정을 통한 ‘예산전이’를 고려중이다.▲민간부문의 구조조정 지원과 고용창출 ▲성장잠재력 확보 ▲중소기업 수출 ▲사회안전망 확충을 최우선 지원할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세출분야에서 3조원 이상 삭감할 방침을 세웠다.특히 행정자치부 예산중 제2건국운동본부 지원예산 20억원과 새마을운동본부 등 국민운동지원 예산 150억원,공공행정서비스 지원 600억원을 완전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조원 규모의 공공근로사업도 도마위에 올랐다.한나라당은 ‘실효성’을 앞세워 중소기업·수출지원으로의 전환을 촉구한 반면,여당은 고용창출을 이유로 ‘삭감불가’로 맞서고 있다. 여기에 야권의 경제청문회 협상과 예산안 처리 연계 가능성 등 곳곳에 복병이 숨어있어 막판 계수조정작업을 통해 여야간 ‘나눠먹기식 빅딜’도 우려된다. ◎법안/부가세법 개정안 관련자 반발로 진통/인권법­부패방지법제정 최대 쟁점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543건에 이른다.의원 발의 327건,정부 발의 216건이다.쟁점 법안은 한둘이 아니지만 일정이 워낙 빡빡해졸속심의가 우려된다. 경제분야에서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공방이 뜨겁다.변호사·세무사·회계사 등 전문직에 부가세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이들의 반발이 거세 진통을 겪고 있다.농·수·축·임·신협과 인삼협동조합,새마을금고 등 7개 금융기관의 예탁금 및 출자금에 대한 비과세기간을 2∼5년 연장하는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도 쉽지 않은 사안이다.또 여러차례 ‘농안법’파동을 겪게 했던 ‘농수산물가격안정법’ 처리가 불투명하다.사회분야에서는 인권법과 부패방지법 제정이 최대 쟁점이다.인권법은 사법권 침해 시비가 일고 있고,부패방지법은 특별검사제 도입 여부가 관건이다.총풍사건으로 인해 ‘통신기밀보호법’ 개정문제도 주목대상이다.교육공무원 정년을 65세에서 60세로 낮추는 ‘교육공무원법’ 개정문제도 관심거리.또 통합방송법 처리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 사장 배설의 재판:4(대한매일 秘史:4)

    ◎‘日 강압에 못이겨 고종 퇴위’ 호외/裵說 “舊한국군대 해산 당시 참상 목격” 증언 대한매일은 전날에 이어 1907년 7월19일에도 호외를 발행하였다. 「조칙과 대리」라는 제목의 이날자 호외는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순종에게 양위한다는 조칙(詔勅)을 발표했다는 역사적인 내용이었다. 고종의 조칙은 통한에 사무친 어조였다.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왔으나 자주 환란을 겪으매 “다스리는 것이 뜻과 같지 못하여 혹은 사람을 잘못 써서 소동이 날로 심하고,정사가 많이 어그러져 어려운 근심이 급박하야 백성의 곤란과 나라에 위태한 것이 이때에서 더 심함이 없으니 두려운 마음이 깊은 물을 건너고 옅은 얼음을 밟는 듯 한지라…”로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광무신문지법’ 공포 언론탄압 ‘칼날’ 대한매일은 고종의 조칙을 게재한 다음에 이는 고종의 뜻인지 아닌지 일반인민이 주목할 일이라고 의미심장한 촌평을 가했다. 고종의 양위는 일본의 강핍(强逼)과 내각 대신들의 위협에 못이긴 때문임은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그러나고종은 차라리 양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을사조약에 도장을 찍지는 않겠다는 마음에서 이런 결심을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한매일은 비운의 황제 고종은 비록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지라도 끝까지 을사조약에 날인하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의 협박에 못이긴 황제의 퇴위,한해 전에 체결되었던 을사조약도 고종은 결코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한매일이 호외라는 긴박하고도 극적인 수단으로 보도하자 국민들의 감정은 더욱 들끓게 되었다. 대한매일은 7월17일자와 18일자 논설을 통해서도 일본의 침략을 맹렬히 비판했다. 일본이 한국 황실을 강핍하고 대신을 종으로 부리며,백성을 짐승으로 여기는 행동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에 원통한 마음을 품은 한국인들의 반발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모르며 각국의 공론도 일본의 잔학한 흉계를 더욱 폭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20일 하야시는 고종을 황제의 자리에서 몰아낸 뒤에 24일에는 한국의 내정과 사법권을 완전히 탈취한 「한일협약」과 이의 실행에 관한 비밀각서에 강제로 조인했다. 언론탄압을목적으로 ‘광무신문지법’을 제정 공포한 것도 같은 날이었다. 러일전쟁 직후부터 일본 헌병사령부는 강제로 한국 언론에 검열을 실시하고 있었다. 신문 인쇄 전에 미리 조판된 대장(臺帳)을 헌병사령부에 가지고 가서 검열을 받은 뒤에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한국 침략에 방해가 되는 기사는 모조리 삭제하도록 강요하였으므로 삭제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른바 「벽돌신문」이 매일같이 발행되고 있었다. 벽돌신문이란 기사가 깎인 자리가 마치 검은 벽돌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뜻에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이완용 내각으로 하여금 광무신문지법을 공포하도록 하여 언론통제의 근거를 제도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대한매일에 의병들 격문 밀물 사태는 더욱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8월1일,마침내 일본은 구한국의 군대를 해산하였다. 군대를 해산 당한 나라가 어찌 독립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저항하는 구한국 군대가 일본군을 공격하자 큰 충돌이 벌어져 양측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대한매일의 사옥은 대한문 건너편현재의 시청 앞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현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3층 건물에서는 고종의 거처였던 덕수궁으로 밀고 들어가려는 군중과 이를 막는 일본군의 충돌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일본 군인과 순사가 시위군중을 향해 총을 쏘면서 진입을 가로막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배설은 이날 군대해산 당시의 참상도 직접 목격하였다고 재판정에서 증언하였다. 일본군은 서소문 안에 있던 구한국 병영을 급습하였다. 졸지에 공격을 당한 군인들은 도망쳤으나 죽은 사람도 많았다. 배설은 미국 의사 에비슨과 함께 현장에 찾아가서 부상당한 사람을 병원으로 실어보냈는데 한 사람은 총검에 찔린 상처가 18군데나 되었다. 이때 도망한 사람들 가운데는 대부분 의병이 되어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의병활동을 보도하는 대한매일의 기사와 논설은 마치 의병대의 창의문(倡義文)처럼 격렬했다. 의병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한매일이라고 일본은 주장했다. 대한매일을 읽은 의병들이 더욱 격렬한 항일투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었다. 배설은 의병들이 대한매일에 보낸 격문들을 재판장에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 내용들은 너무도 격렬하여 신문에 그대로 실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각지에서 들어온 투고의 종류도 다양했다. 이등박문과 주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에게 보내는 항의문,각 도민들을 향한 격문,주한 각국 영사들에게 보내는 청원서,의병들에 대한 고시(告示),일본 물품의 배척,한국의 고관들을 공격하는 글 등도 많았다. 대한매일은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언론인 동시에 항일운동의 총 본산이었던 것이다.
  • 조계종 승려들 폭력 충돌

    ◎총무원장 선출싸고 月珠 지지­반대파 몸싸움/‘반대’측 총무원건물 점거… 선거 파행 불가피 11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宋月珠 총무원장의 3선출마를 반대하는 月誕 스님 등 승려 200여명이 5층짜리 총무원 건물을 완전 점거했다.宋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승려들은 건물 밖에서 밤새도록 대치했다. 이에 따라 宋총무원장과 月誕 스님 등 7명이 출마,12일 실시될 예정인 총무원장 선거는 연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宋총무원장은 이날 밤 조계사 옆 수성빌딩에서 기자들과 만나 “선거는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반대파 승려들은 이날 조계사 경내에서‘종단 제2정화를 위한 전국 승려대회’를 마친 뒤 宋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승려 30여명과 격렬한 몸싸움을 한 끝에 총무원으로 들어갔다.이 과정에서 승려와 신도 20여명이 다쳤다. 이들은 ‘정화개혁회의’의 출범과 함께 종단의 입법·행정·사법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았다고 선언했다. 개혁회의 상임위원장인 月誕 스님은 기자회견을 통해 “종정의 교시를 무시한 종무행정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종정의 권위를 폄하(貶下)하고 3선출마를 강행하려는 宋원장에게 제동을 걸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개혁회의 상임위원장단 공동기자회견에서 智源 스님(전국불교운동연합 부회장)은 “종단 내부의 불합리한 제도 개혁과 불교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일부 세력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제2정화 불사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반대파 승려들이 점거를 시도하자 건물 안에 있던 총무원측 승려 30여명은 소화액,폐유와 물을 뿌리고 화분과 먹물주머니를 던지며 격렬히 맞섰다. 이 과정에서 건물 1층 현관문과 유리창 대부분이 파손됐다. 반대파 승려들은 이날 승려대회에서 ●宋月珠 총무원장 해임 ●총무원장 선거 일시유보 ●종단의 입법,행정,사법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는 정화개혁회의 출범 등을 결의했다. 경찰은 조계사 주변에 1,5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나 경내에 투입하지는 않았다.94년에도 조계종의 ‘개혁승려’들은 徐義玄 총무원장의 연임을 반대하다 徐원장측과 충돌했었다.
  • 地上 최고의 계급 대령:7·끝(공직 탐험)

    ◎구축함 함장은 해군대령 선망의 대상/작전시 입법·사법·행정권 보유/제독도 배의 진로는 간섭못해/매년 평균 6개월 바다서 근무 육군과 공군 대령은 영어로 ‘colonel’이다. 그러나 해군 대령은 ‘captain’이라 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우두머리,조장,선장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해군 대령은 함장이다. 구축함,호위함,잠수함 함장도 대령이고 항공모함 함장도 대령이다. 아무리 배가 커도 함장은 대령이다. 해상작전 때 전함 3∼5척이 모이면 단대,10여척이 되면 전대가 구성된다. 이럴 때 각대에는 사령관이 함께 배를 탄다. 물론 사령관은 함장보다 상위 계급자가 된다. 단대 전대사령관은 함장을 거친 고참 대령이고 24척 이상 지휘하는 전단사령관은 준장이다. 그러나 이때도 사령관이 탄 배의 ‘우두머리’는 어디까지나 함장이다. 제독(提督)인 사령관은 자기가 탄 배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 대령인 함장한테 간섭하지 못한다. ‘사공이 둘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군함이 영해를 벗어나 작전할 때는 독립된 ‘영토’로 대우받는다. 그래서 국기도 달고 치외법권지대가 된다. 작전시 함장은 입법,사법,행정권을 모두 갖는다. 사법권의 경우 상부에 보고해 처리하는게 관례지만 전시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막강한 권한 탓에 함장 대령은 그야말로 ‘바다의 최고 계급’이다. 한해 해군사관하교 졸업생의 대령진급율은 40%미만. 해사를 나와도 대령을 달면 성공했다고 간주된다. 육군 연대장같이 함장은 해군대령이 거치는 필수보직이다. 항공모함이 없는 우리 해군에서 군함의 꽃은 구축함. 3,000t급 한국형구축함은 함장들이 가장 타보고 싶어하는 ‘꽃중의 꽃’이다. 경쟁도 치열하고 구축함장을 거치면 장군 진급이 그만큼 유리하다. 해군장교들은 스스로를 ‘신사’라고 부른다. 해군창설일도 ‘士(사)’자를 분리해 나온 숫자 11에서 따 11월11일로 정했다고 한다. 정복도 넥타이 맨 신사복이고 계급장은 다른 군 장교복과 달리 어깨의 견장 대신 신사복 소매에 금줄을 넣어 표시한다. 이렇듯 겉으로 멋있어 보이는 함장이지만 이들의 생활 이야기를 듣고나면 ‘자식을 해군에 보낼 마음이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74년 임관해 함장근무를 마치고 합참에 근무하는 J대령의 이야기. “중위때 결혼 첫날밤 새벽 5시에 비상출동해 바다로 떠나 63일만에 돌아왔다. 솔직히 아내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더라. 이후 매년 평균 180일을 바다에서 보냈다. 235일 배를 탄 적도 있다. 오랫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애들이 조금씩 자라있더라. 내손으로 애들 키워본 기억이 없다. 한번 돌아오면 1개월 정도 있다 다시 떠나는 생활의 반복이다. 거기다 지금까지 전출다닌 게 17번…” J대령은 함장생활을 ‘움직이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2∼3평 남짓한 함장 방에 갇혀 온갖 결단을 시시각각 혼자 내려야하기 때문이다. J대령은 “우측 5도라고 함장이 명령을 내렸는데 대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장애물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함장으로서의 업무능력뿐아니라 대원들이 믿고 따르는 인품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해군대령은 1등 항해사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제대 후 대부분 민간선박의 선장으로 취직해 다시 배를 탄다. 현재 대령 정년은56세. 그래서 다른 군과 마찬가지로 제대 후 일거리 찾는게 해군 대령의 큰 고민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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