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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슬램덩크]의 배경 속으로 가마쿠라 추억여행

    해외여행 | [슬램덩크]의 배경 속으로 가마쿠라 추억여행

    <슬램덩크>의 배경 속으로 가마쿠라 추억여행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는 칼의 문화가 시작된 곳이다. 1185년 최초 무인정권이었던 다이라 정권을 제압하고 쇼군將軍이 된 요리토모는 군사거점이었던 가마쿠라에 막부를 설치했다. 이로써 민간 정부인 조정은 교토에, 군사 정부인 막부는 가마쿠라에 있는, 한 나라 두 정부의 무사 정권 시대가 시작된다. 가마쿠라에는 대불大佛이 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으뜸 관광물이다. 교토, 나라가 귀족 불교의 고장이라면 가마쿠라는 사무라이 불교 혹은 시민 불교의 고장이다. <슬램덩크>를 보며 농구의 세계에 빠졌던 세대에게 가마쿠라는 성지와 같다.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도시가 바로 가마쿠라다. 이 고풍스런 작고 예쁜 도시에서 에노덴江ノ電 기차를 탔다. 1900년에 운행을 시작한 기차로, 기관사의 수신호가 아날로그의 정취를 제대로 발산한다. 그 안에서 강백호와 채치수를 닮은 검은 교복의 일본 학생 무리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마쿠라코코마에역鎌倉高校前駅에 내린다. 가마쿠라 고교 앞 철로 건널목을 가기 위해서다.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강백호가 채소연을 기다리는 장소로 나왔고, 만화책에서는 안선생이 능남고와 경기를 마친 북산고교 선수들을 데리고 가던 길로 등장했다. 건널목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가면 가마쿠라고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은 윤대협, 변덕규, 황태산이 다니던 능남고의 모델이 됐다. 에노덴 기차를 타고 계속 가면 에노시마江道에 닿는다. 작은 참새 모형이 반겨 주는 예쁜 역이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어느 한때, 교과서 안쪽에 슬램덩크를 숨겨 보며 강백호의 치기에 웃고 윤대협과 서태웅의 대결에 숨죽이고 안선생의 묘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던 경험이 있다면, 가마쿠라는 좋은 추억여행의 장소가 될 것이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 Travie writer 윤용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www.jroute.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교류交流에 대하여-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해외여행 | 교류交流에 대하여-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교류交流에 대하여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사실에 의도를 개입시킨 ‘불순한 장난’이라면, 그 장난을 가능케 하는 원인은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에 있다고 생각했다.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첫 번째 행동은 기록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 4,000km를 오갔던 조선통신사, 그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나는 잠시 부끄러웠다 강우량 많다는 도시답게 닛코日光에 들어서자 눈발이 날렸다. 눈은 온천마을의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더 도드라지게 해주는 소품 같았다. 기누가와鬼怒川 온천은 소박하면서 깨끗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조선통신사 숙소 터가 있다는 이마이치今市 객관으로 가는 날이었다. 통신사 300명을 포함해 일본인 경호원까지 약 2,000명이 이틀 동안 머물렀다는 숙소는 지금 유적비 하나만 남아 있다고 했다. 안내원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 갈 수도 있다며 염려했다. 그러나 고작 기념비 하나 세워져 있는 곳이라니 설령 가지 못한다 해도 크게 낙담할 건 없다 싶었다. 점심 무렵 눈은 멎었고 가이드는 낭보라며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버스는 황량한 공터에 취재진을 내려 줬다. 유적비가 있는 풀밭 속까지 누군가 애써 눈을 치운 흔적이 선명했다. ‘닛코 조선통신사 연구회’의 야나기하라 가즈오키씨가 일정이 취소될까 노심초사하며 오전 내내 낸 길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노신사는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유적비를 설명했다. 통신사의 최종 목적지는 천황이 있는 에도(江戸, 현재의 도쿄)였지만 1636년 4차 통신사 300명은 도쿄에서 150km 떨어진 닛코까지 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신으로 모신 도쇼구東照宮, 동조궁를 보여 주고 싶은 막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것을 위해 일본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약 100억원을 들여 임시 숙소를 지었다. 지금은 그 터에 기념비를 하나 세웠다. 2007년 조선통신사 400주년을 기념해 600만엔의 모금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조선통신사보다, 기념비보다, 이것 하나를 보여 주기 위해 전날부터 일기예보를 점검하고 오전 내내 홀로 눈을 치웠을 야나기하라씨의 열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직업적 책임감이라기엔 그의 눈빛과 음성과 분위기가 연출 없이 정직했다. 그것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형형함이었다. “당신에게 조선통신사는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는 “스승과 대마도를 가서 우연히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스승이 돌아가신 후 깊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지금의 한류처럼 당시의 조선통신사는 한시, 서도, 문화, 그림 등을 일본인들에게 전파해 준 공로가 분명히 있다”는 말도 강조했다. 그는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보존해서 타인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눈 속의 길을 만들어 낸 힘이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한국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쟁점이 사실에 의도를 개입시키면서 발생하는 ‘불순한 장난’이라면 역사에 있어 무지無知는 그 장난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첫 번째 행동은 기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존이며 세 번째는 관심이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관심이 일천하다는 이유로 나는 기록을 일구는 노인 앞에서 잠시 부끄러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 일본을 통일하고 250년 지속된 에도 막부 시대를 연 초대 쇼군將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단절되었던 조선과의 무역을 재개하기 위해 1607년 조선에 먼저 국서를 보냈고, 이후 조선이 제시한 제한적 무역조건 아래 조선통신사의 길이 열렸다. 조선통신사의 장대한 여정 조선시대에 12번의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활성화됐다. 일본은 조선의 앞선 문화를 통신사를 통해 접하고 싶었고 조선은 일본의 재침략 의도를 점검하면서 조선인 포로를 생환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양국이 믿음信으로 소통通하자 해서 통신通信사가 되었다. 정사(당상관급), 부사, 종사관 3사가 인솔하며 군관, 역관, 의원, 화원(화가), 마상재(달리는 말 위에서 무예를 하는 사람), 소동(심부름꾼 아이) 등이 따라갔다. 약 300~500명으로 구성됐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 4,000km 거리를 수로와 육로로 이동했다. 8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현해탄 건너기도 쉽지 않았으니 차출된 사람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무사귀환을 빌며 해신제를 지냈다. 행렬은 일본 사무라이 호위무사까지 800명이 넘었다. 도로를 닦고 숙소를 짓고 배를 만들고 하는 준비기간만 반년이었다. 한 번 통신사를 맞이하는 데 일본의 1년 국가 예산을 모두 쏟아 부을 정도(NHK 보도에 따르면 현재 가치로 약 1,000억엔한화 약 1조750억원)였다니 일본 입장에서도 무척 큰 외교행사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고립된 섬나라 일본은 중국의 앞선 문명과 조선 고유의 문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를 적극 환영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본인 특유의 실용주의良いとこ取り, 이이 토고 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조선통신사는 그러지 못했다. 침략전쟁을 겪고 얼마 후였으니 마음에 꽃바람이 불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유교국가 조선의 눈에 일본 문화는 계통 없는 잡스러움이 아니었을까. 통신사로 참석했던 김인겸과 신유한은 <일동장유기1764년>와 <해유록1719년>에서 오사카를 본 후 도시의 발전된 문명을 놀라워하면서도 오랑캐의 번영을 원망하고 애석해하는 것에 기운을 더 쏟았다. 게다가 대다수 도공 포로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대신 장인 대우를 받는 일본에 남기를 원했다. 돌아가면 죽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많이 주고 덜 가져온 탓인지 한국에서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의는 많이 노출되지 못했다. 다행히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일 양국이 조선통신사 관련기록물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조선통신사 기록에 대한 핵심적 정리다. 한성(지금의 경기도 광주)-동래(부산)-이즈하라(대마도)-시모노세키-아카시-사카이-교토-나고야-하마마쓰-에도(도쿄)-닛코로 이어지는 통신사의 여정. 그중 이번 취재지였던 도쿄와 닛코 주변의 흥미로운 관광지 몇 개를 더한다. “일본은 중국의 앞선 문명과 조선 고유의 문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를 적극 환영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본 특유의 실용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쇼구를 자랑하고 싶었던 막부와 스토리텔링 한국 여행객에게 일본의 신사神社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역사적으로는 신사참배의 부정적 이미지가 있고 이념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자 예우를 기억한다. 그러나 일본 여행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사이며 사당이다. 신사를 중심으로 한 사당 문화가 일본인의 종교이며 생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종교, 신도神道는 일본의 토착 신앙에 유교와 불교를 혼합한 것이다. 비록 그 발원의 과정에서 태양신을 덴노(천왕)의 조상신으로 둔갑시키고 태양신의 아들 덴노에게 충성을 다해 섬기라는 정치적 오염의 혐의도 받고 있지만 일본의 신사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과 일상을 응축해 놓은 곳이다. 닛코의 가장 대표적인 신사가 도쇼구東照宮, 동조궁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이 이곳에 있다. 그의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1636년에 금 56만8,000냥이라는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현재의 규모로 호화찬란하게 증축했다. 에도 막부는 이것을 통해 막부의 권위를 통신사에게 과시하고 싶어했다. 4차, 5차, 6차 통신사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다. 도쇼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보이는 종은 5차 통신사의 선물이다. 도쿠가와 무덤 앞에는 통신사가 전달한 삼구족(화병, 향로, 촛대)이 놓여 있다. 이것이 조공이냐 하사냐 하는 것을 두고 양국이 대립했다. 그 첨예한 갈등 때문인지 설명문 하나 붙어 있지 않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쇼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보물도 많고 예술품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야기가 많다. 울창한 삼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점점 좁아지는 계단을 오르면 신사의 입구인 도리이鳥居가 나온다. 도쇼구의 도리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돌로 만들어졌다. 높이 9m. 기둥둘레 3.6m. 재미있는 것은 도리이 하단부에 조각된 연꽃 문양이다. 신불습합神佛習合, 불교를 믿는 게 신도를 믿는 것이라는 일본의 혼합주의 종교관을 도리와 연꽃 문양에서 본다. 기도할 때 ‘하느님 부처님(카미사마かみさま, 호토케사마ほとけさま)’을 찾는 것도 같은 정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저들은 도쇼구를 일컬어, 불교의 사원과 일본의 신사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축의 백미라고 말한다. 입구를 지나면 정문인 요메이문陽明門이 나온다. 닛코를 보지 않고 미美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이곳에서 나왔다. 그 화려한 문의 외경과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원숭이를 거꾸로 조각한 의도다. 완벽함보다는 허술함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일본의 철학을 또 여기서 본다. 원숭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은 경내의 마구간에서 절정을 이룬다. 부모가 아들에게 해주는 인생 이야기가 8개의 원숭이 이야기로 마구간에 조각돼 있다. 연애, 결혼, 임신과 희로애락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산자루三猿·さんざる다. 유년기에는 세상의 나쁜 것을 보지 말고(미자루), 듣지 말고(키카자루), 말하지도 말라(이와자루)는 부모의 말에 원숭이는 눈과 입과 귀를 막고 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잠자는 고양이(네무리네꼬眠り猫) 조각이다. 히다리진 고로 左甚五郞의 작품이며 고양이 뒤의 참새 조각과 더불어 공존과 평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명성에 비해 잠자는 고양이의 실체는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보다 더 작게 숨어 있다. 기대감이 무너지는 의외성도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그 의도는 200% 성공한 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과 그 앞의 삼구족을 보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힘이 든다고 생각할 때, 도쿠가와의 유훈 하나를 만난다. “인간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신 일본 신사 일본의 야요이 시대BC200~AD300에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현해탄을 넘어갔다. 일본은 이들을 도래인渡來人, 도라이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도래인은 일본 열도에 농경과 금속기 사용법을 전파하면서 큰 변혁을 선물했다. 두 번째 도래인은 5세기 백제 유민들이다. 일본에 제철기술을 전수했고 바느질과 비단, 소와 말을 보급했다. 7세기에 이르러 도래인 수는 토착 일본인인 조몬인보다 훨씬 많아졌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7세기 일본 인구 540만명 중 80% 가량이 한반도에서 이주한 이들이었다”라고 말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 이제는 고구려인들이 도래인이 되어 일본으로 갔다. 2년 전 외교사절로 일본에 간 약광若光은 ‘왕’이라는 성性을 받았다. 716년, 7개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 1,799명이 무사시노 지방으로 이주해 고려군을 창설했다. 일본에서는 고구려인을 고마비토高麗人, 고려인라고 불렀다. 약광은 초대군장이 됐다. 오늘날 가나가와현 오이소에는 고려산이 있고 주소에도 고려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초기 고구려인이 정착했던 지역이다. 고구려인은 고려사라는 절도 세웠다. 지금 그 절은 다카쿠高來 신사가 되었다. 일본 거리의 표지판에서 문득 고려라는 지명을 만나니 신기하고 반갑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좀 더 선명한 고구려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면 고마군의 중심지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를 가면 된다. ‘고려강高麗川, 고마가와’이 있고 ‘고려역高麗驛, 고마에끼’이 있다. 약광을 신으로 모신 고마신사高麗神社도 있다. 산악·하천·호수·늪·민속신·실존인물·전설인물 등이 모두 신이 되는 신도의 나라 일본에서, 고구려인 약광도 신이 되었다. 우수한 문화를 일본에 전하고 무사시 지역을 개척한 공로였다. 고마신사 입구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서 있다. 한일국교 40주년을 맞아 민단(재일동포)이 기증한 것이다.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시고, 그 후손들이 터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신사 입구엔 한국의 조각물이 서 있으니, 한국 여행객들은 여느 신사와 다른 친숙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 연예인 등도 방문 기념으로 나무와 명판 등을 남겼다. 고구려인으로서 신의 반열에 오른 탓일까? 요즘 약광은 출세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등 6명의 역대 총리가 이곳을 참배한 뒤 총리대신 또는 국무대신에 올랐다고, 관계자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자랑을 한다. 뒤로 돌아가면 400년 전에 지어진 고려씨의 구주택이 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고마신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쇼텐인聖天院, 성천원이란 절이 있다. 일본식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고 한국의 대웅전을 닮은 사당도 웅장하다. 쇼텐인 뒤쪽 고마산 중턱에는 ‘고구려 성지’도 있다. 성지 우측으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태종무열왕, 백제의 왕인 박사, 고려의 정몽주, 조선의 신사임당 상像이 모셔져 있다. 2차 대전 때 징용되어 돌아가신 무명의 조선인 위령탑이 있어 더 특별하다. 남북한 재일동포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 Travie writer 윤용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www.jroute.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막국수와 소바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막국수와 소바

    겨울이 제철인 메밀에는 각종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이 다른 곡류에 비해 많다. 그럼에도 메밀국수의 열량은 감자탕의 절반에 불과하고, 라면보다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성인병인 혈관계·간 질환을 예방하며 동시에 다이어트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메밀은 원산지가 북중국의 바이칼 호수 등지로 알려져 우리 선조도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다. 석 달만 돼도 다 자라니 끼니 걱정을 덜어주는 구황식품이었다. 함경도에서는 뜨끈한 국물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를 즐겼지만, 강원도 평창 등 영서 지방에서는 시큼한 김치를 양념으로 쓰는 막국수가 유명하다. 메밀과 전분을 섞은 국수에 듬성듬성 썬 김치와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짠 오이를 얹어 김칫국에 말아 먹는다. 특히 무는 얇게 썰어서 고춧가루로 물들인 뒤 식초와 설탕을 넣고 재웠다가 고명으로 쓴다. 한국에 양념 맛이 강한 메밀 막국수가 있다면 일본에는 감칠맛이 있는 메밀 소바가 있다. 소바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가다랑어 포와 함께 고등어 포 또는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에다 일본간장과 파, 무, 고추냉이 양념을 넣은 뒤 채반에 담긴 메밀국수를 찍어 먹는다. 소바를 말할 때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빼놓을 수 없다. 학자들은 도쿠가와가 한반도의 신라, 고려, 조선 왕조와 관련이 있는 (통일)신라계 무사 집안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백제계 후손이라는 오다 노부나가와 일본 원주민이지만 주군인 오다를 추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시절엔 은인자중하다가 결국 도요토미가 임진왜란 패전 후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한다. 도쿠가와는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막부의 거점을 관서 지방인 교토에서 관동 지방인 도쿄(에도)로 옮긴다. 귀족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도쿄를 외면했지만, 도시개발에 필요한 일자리를 원했던 젊은이들이 도쿄로 모여들었다. 도쿠가와는 무사인 사무라이를 우대하며 상업과 공업을 중시하는 군사정권의 세습 통치를 한다. 도쿄로 모여든 젊은이들에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던 일자리가 많았지만, 먹을거리는 오랜 전통의 교토나 융성하던 오사카에 비할 수 없었다. 이때 길거리에서 후다닥 배를 채우고 일하러 갈 수 있는 일종의 포장마차와 패스트푸드가 등장한다. 그 포장마차의 인기 메뉴가 바로 소바, 스시, 덴푸라인 것이다. 소바는 미리 만들어 둔 간장 육수만 있으면 메밀국수를 빨리 삶아서 후루룩 먹을 수 있다. 아울러 척박한 도쿄 근처에는 메밀밭이 흔했다. 덴푸라는 바다와 가까운 도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생선과 어패류 등에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 기름에 튀긴 요리다. 반면 옛 모습이 된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그전엔 무시했던 도쿄의 소바, 덴푸라 등을 받아들였으나, 콧대가 센 만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소바의 육수에 비린 맛의 고등어 포 대신 맛깔스런 다시마를 넣었고, 더 연한 간장을 썼다. 덴푸라도 생선 등을 그대로 튀기지 않고 생선살을 곱게 갈아서 채소를 함께 넣으며 고급스러운 맛을 즐겼다. 우리가 아는 어묵의 원형이다. 결국 한반도에서는 농사꾼 등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던 메밀국수가 동해를 건너 일본 역사상 최고의 중흥기에 상공업 성장을 이끈 중요한 먹을거리로 각광을 받았던 셈이다. kkwoon@seoul.co.kr
  • 사무라이검 들고 친구 살해… ‘파워레인저’의 추락

    국내에서도 많은 어린이 팬들을 확보했던 영웅, ‘파워레인저’의 ‘추락’ 소식이다. 지난 2002년 이후 어린이용 TV 및 영화 시리즈 ‘파워레인저’에서 ‘와일드포스’로 출연한 배우 리카르도 메디나 주니어(38)가 살해 혐의로 또다시 체포됐다.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TMZ는 이날 메디나가 룸메이트인 조슈아 스터터 살해 혐의로 재수감됐다고 단독보도했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상하게 한 이 사건은 지난해 1월 31일 캘리포니아 팜데일의 가정집에서 벌어졌다. 이날 메디나는 룸메이트인 조슈아 스터터와 말다툼을 벌이다 칼로 복부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살해 도구인 칼이 사무라이 검으로 마치 ‘파워레인저’ 속의 와일드포스가 무기로 사용하던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사건 직후 메디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가 스터터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 이후 메디나는 스터터 살해용의자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으나 정당방위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풀려났다. 그러나 이번에 LA카운티 경찰은 정당방위 주장을 무력화시킬 만한 새로운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메디나의 유죄가 입증되면 26년 형에 처해질 것으로 보이며 관련 재판은 오는 19일 열린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日언론 “악몽, 최악…” 고쿠보 감독 지략 싸움서 졌다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제패를 목표로 내걸었던 일본이 우승은커녕 결승 진출조차 실패했다. 경기 일정을 멋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자국인 좌선심을 배정하는 등 온갖 유치한 짓을 벌였지만 끝내 한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기 다음날인 20일 일본 언론은 ‘악몽’, ‘최악’, ‘실패’ 등 강도 높은 표현으로 실망감을 표출했다.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유력 일간지가 한국전 패배를 비중 있게 다뤘다. 스포츠 신문들은 1면에 고개 숙인 일본 선수와 관중, 일본의 결승 좌절 기사를 배치했다. 닛칸스포츠는 “‘사무라이 재팬’(일본 대표팀의 별명)이 한국에 역전패를 당했다”면서 “이대호의 적시타에 한국 벤치는 잔치판이 됐다”고 전했고 스포츠호치는 “고쿠보 히로키(44) 일본 감독이 ‘한 일’(一) 자 입모양을 하고 환희에 들끓는 한국 대표팀을 지켜봤다”고 적었다. 산케이스포츠는 “세계 랭킹 1위의 일본이 8위의 한국에 역전패했다. 불펜이 9회에 힘 한 번 못 쓰고 4점을 내줬다”고 안타까워했다. 언론은 특히 “고쿠보 감독이 투수 교체 시점을 놓쳤다”고 비난을 집중했다. 85구를 던져 11개의 삼진을 빼앗고 안타 하나만 내준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7이닝 만에 강판시킨 것과 9회 1실점 이후에도 투수 노리모토 다카히로를 고집한 것을 패인으로 꼽았다. 고쿠보 감독은 경기 뒤 “오타니가 7회까지 막아준 걸로 충분하다고 봤다. 노리모토로 남은 2이닝을 막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8회까지는 우리가 완벽하게 잡은 경기였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졌다. 억울하다”고 털어놓았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차 한 모금, 지구 한 바퀴

    차 한 모금, 지구 한 바퀴

    차의 지구사/헬렌 세이버리 지음/이지운 옮김/휴머니스트/288쪽/1만 6000원 “차나 한 잔 할까?”라는 말이 상징하듯 차는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다. 세계 어디에서든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실 수 있고 명칭, 맛과 향이 다양하다. 차를 마시는 문화도 나라마다 특색이 있다. 중국인은 자그마한 찻잔으로 차를 홀짝이고, 일본인은 차를 휘저어 거품을 만든다. 티베트인은 우유를 넣어 마시고 러시아인은 레몬을 넣어 마신다. 실크로드 지역에서는 세 잔의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이는 “첫째 잔을 마실때 당신은 낯선 사람, 둘째 잔은 친구가 되며, 세 번째 잔은 가족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차의 지구사’는 이처럼 여러 모습을 지닌 차가 어디에서 탄생해 세계 각지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 어떻게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료로 자리를 잡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중국과 서유럽은 물론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 미얀마, 티베트,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등 아시아 지역의 차에 대해 다루면서 차 생산지로 유명한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의 차의 역사도 들려준다. 저자의 고향인 영국 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상세하며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긴 시간을 지낸 저자의 경험 덕분에 우리가 잘 모르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차와 문화도 꼼꼼히 다루고 있다. 차는 중국 전설 속 인물인 신농씨가 발견한 이후 차마고도와 티로드를 따라 더 먼 지역으로 여행을 했다. 대형 범선에 올라 대서양을 건너 서양문화를 만나면서 새롭게 변신한 차의 역사가 흥미롭다. 비밀 첩보 단체의 아지트가 된 중국의 어느 찻집, 사무라이의 병을 낫게 한 ‘만병통치약’ 녹차, 영국의 우아한 사교계를 대표한 애프터눈티, 미국 독립을 향한 혁명의 상징이 된 ‘보스턴 차 사건’,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오지)에서 마시는 깡통차, 기찻길에서 차를 파는 인도의 차이왈라 등 전 세계 각양각색 차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손에는 어느 사이 찻잔이 쥐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女전사와 맞닥뜨린 ‘무단침입 도둑’의 최후

    女전사와 맞닥뜨린 ‘무단침입 도둑’의 최후

    여성이 혼자 살고 있는 남의 집에 몰래 침입한 도둑이 마치 중세의 여전사와 맞닥뜨린 상황이 되어 그대로 녹다운이 되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실제로 이런 일이 미국 인디애나주(州)의 주도인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한 가정집에서 발생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인 제이콥 베셀(30)은 지난 8일 밤 이웃에 여성이 혼자 거주하는 집의 뒷문을 강제로 열고 침입했다. 하지만 그는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은 꼴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집 주인인 카렌 돌리(43)는 18살 때부터 중세 무술을 연마한 유단자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침입하는 인기척에 잠에서 깬 돌리는 몰래 집안으로 들어온 베셀을 발견하고 10여 차례의 공격을 통해 그녀의 무술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말았다. 땅바닥으로 녹다운된 베셀을 제압한 후 돌리는 서랍에서 권총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자 주위에 있던 일본 사무라이 검으로 베셀을 꼼짝 못 하게 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베셀은 도착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면서 연신 돌리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연발해야 했다. 돌리는 "내가 제압하고 있을 때, 범인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해서 내가 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며 "더 이상 상황이 확대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단 도둑이 집에 침입하면 집 밖으로 도망치면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서만 주위 도구를 이용해 자기방어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돌리 역시 자신도 손가락을 다치는 등 "연습과 실제는 너무 달랐다"며 "내가 배운 무술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사진=무단침입한 도둑을 때려눕힌 돌리와 과거 무술 연습 장면 (돌리 페이스북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글로벌 시대] 안동에서 만난 퇴계 정신/이에스더 아리랑TV 글로벌네트워크 부장

    [글로벌 시대] 안동에서 만난 퇴계 정신/이에스더 아리랑TV 글로벌네트워크 부장

    얼마 전 안동에 다녀왔다. 국학연구원이 주최하는 전통 마을을 활용한 한류체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을 둘러보았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에는 처음 가 보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개혁 정치에 나섰던 사림의 잇단 좌절을 경험한 후 군주의 변화를 통한 도학의 구현이 아니라 서원건립운동을 통해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 즉 선비를 양성해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던 퇴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퇴계 종택에서 접한 퇴계 정신의 전통은 인상 깊었다. 종손 어르신께서 무더위에도 의관을 갖추고 노환으로 몸이 불편함에도 시종일관 무릎을 꿇고 앉아 정중하게 손님을 맞았다. 평생 종손으로 무거운 책임을 다했을 그분의 인간적인 고뇌를 상상해 보았다. 삶이 어떠할지라도 매일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자기 자신을 책 속에서, 삶 속에서 닦으라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보는 것 같아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국 방문 중에 안동을 찾았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여왕의 안동 방문은 안동의 자랑거리가 됐다. 하회별신굿을 관람하던 여왕이 발장단을 맞추는 것이 BBC 카메라에 잡혀 전 세계로 방송됐고, 안동 방문 중 73세 생일을 맞은 여왕이 임금님 생일상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 등 훈훈한 장면이 남아 있다. 여왕이 방문했던 천둥산 봉정사에 나도 가 보았다. 문화재로 지정된 극락전 앞마당도 좋았지만 절 뒷자락에 자리한 영산암이 유난히 마음을 끌었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백일홍이 청초하게 피어 있는 소담한 정원이 아름다워 오래도록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절 주변의 자연이 아름답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더니, 서구인들에게 안동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정신적 고양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공간인 듯하다. 당시 봉정사 문인 스님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일념만년거’(좋은 생각은 만 년을 간다)라 쓴 족자를 선물했고, 여왕은 안동을 둘러보고 ‘전통과 문화가 잘 보존된 초현대적인 도시’라는 소감을 남겼다. 베스트셀러로 관심을 끈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 에마누엘 페스트라이시는 한국의 객관적 수준과 한국인들의 저평가 간 불일치는 세계인이 한국인을 파악하는 매개가 되는 대표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 존경할 만한 나라라는 인식을 세계인의 머리에 심어 줘야 한다”고 했다. 선비 정신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창조한다면 ‘사무라이’ 개념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로 확산해 지구인이 향유하는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재발견은 한국이 독특한 발전을 추구할 때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안동에서 발견한 퇴계 선생을 다시 떠올린다. 21세기의 문제는 합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가짐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닦고 인간성을 찾으며, 임금에게 직언 상소를 올리는 등 용기와 정의감을 몸소 실천했던 선비정신이 21세기 시대정신을 갈구하는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에서 미래의 모습을 보았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4] 막국수와 소바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4] 막국수와 소바

    맛과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음식으로 메밀국수가 있다. 메밀에는 각종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이 다른 곡류에 비해 많다. 그럼에도 메밀국수의 열량은 감자탕의 절반에 불과하고, 라면보다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성인병인 혈관계나 간 질환을 예방하며 동시에 다이어트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국물에도 유효 성분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에 쭉 들이키는 게 좋다. 다만 찬 음식인 만큼 몸에 냉기가 있으면 주의해야 한다. ●메밀 원산지 바이칼호 부근... 함경, 강원도 주로 재배 메밀은 원산지가 북중국의 바이칼 호수 등지로 알려져 우리 선조도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강원도 등의 춥고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석 달만 돼도 다 자라니 끼니 걱정을 덜어주는 구황식품이었다. 하지만 열량이 낮기 때문에 힘을 써야 하는 옛 농사꾼 등에겐 그리 반가운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함경도에서는 뜨끈한 국물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를 즐겼지만, 강원도 평창 등 영서 지방에서는 시큼한 김치를 양념으로 쓰는 막국수가 유명하다. 메밀과 전분을 섞은 국수에 듬성듬성 썬 김치와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짠 오이를 얹어 김치 국물에 말아 먹는다. 특히 무는 얇게 썰어서 고춧가루로 물들인 뒤 식초와 설탕을 넣고 재웠다가 고명으로 쓴다. 무는 메밀의 일부 유해 성분을 해독하는 작용을 한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작가 이효석의 생가터가 평창군 봉평면에 있다. 한국에 양념 맛이 강한 메밀 막국수가 있다면 일본에는 감칠맛이 있는 메밀 소바가 있다. 소바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가다랑어 포와 함께 고등어 포 또는 다시마로 우려된 육수에다 일본간장과 파, 무, 고추냉이 양념을 넣은 뒤 채반에 담긴 메밀국수를 찍어 먹는다. 요즘 우리는 여름철에도 메밀 소바를 즐기지만 일본에선 예부터 섣달 그믐밤에 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으로 여겼다. 소바를 말할 때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빼놓을 수 없다. 학자들은 도쿠가와가 한반도의 신라, 고려, 조선 왕조와 관련이 있는 (통일)신라계 무사 집안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백제계 후손이라는 오다 노부나가와 일본 원주민이지만 주군인 오다를 추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시절엔 은인자중을 하다가 결국 도요토미가 임진왜란 패전 후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한다. 집권자가 기득권 세력을 떨쳐 버리고 혼란한 정국을 이끌려면 수도를 옮기는 천도가 효과적이다. 도쿠가와는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막부의 거점을 관서 지방인 교토에서 관동 지방인 도쿄(에도)로 옮긴다. 귀족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도쿄를 외면했지만, 도시개발에 필요한 일자리를 원했던 젊은이들이 도쿄로 모여들었다. 도쿠가와는 무사인 사무라이를 우대하며 상업과 공업을 중시하는 군사정권의 세습 통치를 한다. 1603년부터 1867년 에도 시대가 스러질 때까지 조선과는 우호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봐선, 일본 역사에는 한반도의 고대사가 제법 깊숙이 관여돼 있다. ●소바, 도쿠가와 시대 도쿄서 덴푸라와 함께 인기 젊은이들에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던 일자리가 많았지만, 먹을거리는 오랜 전통의 교토나 융성하던 오사카에 비할 수 없었다. 이때 길거리에서 후다닥 배를 채우고 일하러 갈 수 있는 일종의 포장마차와 패스트푸드가 등장한다. 그 포장마차의 인기 메뉴가 바로 소바, 스시, 덴푸라인 것이다. 소바는 미리 만들어 둔 간장 육수만 있으면 메밀국수를 빨리 삶아서 후루룩 먹을 수 있다. 아울러 척박한 도쿄 근처에는 메밀밭이 흔했다. 덴푸라는 바다와 가까운 도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생선과 어패류 등을 밀가루와 계란으로 튀김옷을 만들어 기름에 튀긴 요리다. 덴푸라의 어원은 당시 일본에 등장한 포르투갈 상인들의 언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분명치 않다. 어쨌든 이 튀김을 소바의 육수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반면 옛 모습이 된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그전엔 무시했던 도쿄의 소바, 덴푸라 등을 받아들였으나, 콧대가 센 만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소바의 육수에 비린 맛의 고등어 포 대신 맛깔스런 다시마를 넣었고, 더 연한 간장을 썼다. 덴푸라도 생선 등을 그대로 튀기지 않고 생선살을 곱게 갈아서 채소를 함께 넣으며 고급스런 맛을 즐겼다. 우리가 아는 어묵의 원형이다. 결국 한반도에서는 농사꾼 등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던 메밀국수가 동해를 건너 일본 역사상 최고의 중흥기에 상공업 성장을 이끈 중요한 먹을거리로 각광을 받았던 셈이다.  <봉평의 메밀밭> 시인 이갑상  봉평에 가면  벌들이 어디선가 메밀꽃을 부르고  메밀꽃은 사람을 찾아오게 한다   메밀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소금 뿌린 듯이 눈부시게 포근하고  나비와 벌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사무라이검’으로 상대 운전자 위협한 남성 체포

    ‘사무라이검’으로 상대 운전자 위협한 남성 체포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운행하던 도중 느닷없이 사무라이 검을 꺼내 상대 운전자를 위협한 남성이 체포됐다고 미 현지 언론들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욕 뉴저지 항만관리청에 의하면, 이날 오후 2시쯤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홀랜드 터널 맨해튼 출입구 방향에서 리처드 로시우스(32)로 이름이 알려진 남성이 갑자기 주행하던 자신의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이어 자신의 차에서 길이 약 30cm에 달하는 사무라이 검을 꺼내 뒤따라 오던 차의 운전자를 위협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흉내를 내며 다른 운전자들을 위협하는 로시우스의 엽기적인 행동으로 당시 터널 안은 정체를 빚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로시우스가 뉴저지 방향으로 터널을 빠져나오는 즉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현재 로시우스를 흉기 소지와 폭력 혐의 등으로 입건하고 자세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상대 운전자를 위협한 사무라이 검과 체포된 로시우스 모습 (현지 사법당국 제공)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스타뷰] ‘뮤지컬 슈퍼스타’ 마이클 리

    [스타뷰] ‘뮤지컬 슈퍼스타’ 마이클 리

    국내 뮤지컬계에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는 많다. 하지만 마이클 리(42·한국명 이강식)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재미교포 2세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0여년간 활동하다 돌연 한국행을 택했다는 점도 이례적이지만, 그가 보여 준 배우로서의 진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독보적인 가창력과 연기력, 뮤지컬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겸손함까지, 뮤지컬 팬들에게 ‘마이클 리’라는 이름은 브로드웨이에서 날아온 선물과도 같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는 2013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마저스’(마이클 리+지저스)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 그가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간다. 오는 10월 초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엘리전스’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오픈런’(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탓에 ‘기약 없는 작별’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더 큰 무대를 누비게 됐다는 뿌듯함과 한동안 그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벌써부터 한국에서의 다음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우리나라 뮤지컬계와 마이클 리의 첫 만남은 생경했다. 2006년 ‘미스 사이공’의 라이선스 초연에 주인공 크리스 역으로 이름을 올린 그에게 국내 언론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한 배우’라는 것 외에 별다른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 무대에 오른 그에게는 “가창력과 연기력은 일품이나 대사 전달이 안 된다”는 뜨뜻미지근한 평가가 내려졌다. ●혹독한 훈련으로 신뢰 쌓은 ‘미스 사이공’ 하지만 4년 뒤 그는 다시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을 찾았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그는 4년 전보다도 더 혹독한 훈련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다. 2년에 걸친 전국 투어를 통해 관객들로부터 신뢰를 쌓아 간 그는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시작으로 아예 한국에 눌러앉았다. 그를 팬들도, 공연계도 다시 브로드웨이로 보낼 수 없었다. 세상 모든 뮤지컬 배우들이 꿈꾸는 ‘꿈의 무대’인 브로드웨이를 뒤로하고 한국 무대에 매진했던 이유는 뭘까. 그는 “한국 활동은 내게 큰 기회가 됐다”고 돌이켰다.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몇 년 새 크게 발전해 있었습니다. 한국의 뮤지컬 산업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저를 알리고 싶었죠.” 그는 한국 활동에서의 성취 중 하나로 “브로드웨이에서는 맡기 힘든 배역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을 꼽았다.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에게는 아시아인 배역이 주로 주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와 유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유대인 제이미 등 피부색의 경계를 넘어선 도전으로 호평받기도 했으나 데뷔작인 ‘미스 사이공’의 베트남 장교 투이, ‘태평양 서곡’의 일본 사무라이 카야마 등 아시아인 배역을 자연스레 맡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제가 아시아계라는 건 배우로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시아계 배우가 필요한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제약이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물론 열린 생각을 가진 연출자와 제작자를 만나 아시아인이 아닌 배역도 맡을 수 있었던 건 행운입니다.”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그는 비로소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 시인,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 ‘프리실라’의 틱 등 국가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배역에 스스로를 던질 수 있었다. ●매번 파격적 배역… 소심남 듀티율 역할이 ‘딱’ 관객들은 그가 매번 새롭고 파격적인 배역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에 놀라움을 표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진중하고 중후한 이미지로 각인됐지만 이내 소심한 우체국 공무원(‘벽을 뚫는 남자’), 파격적인 의상과 분장으로 치장한 드래그퀸(‘프리실라’)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심지어 ‘서편제’에서 동호 역을 맡아 한국인의 정서를 탐구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그는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을 가장 도전적인 배역으로 꼽았다. “한국의 뮤지컬 팬들은 배우의 이미지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처음 캐스팅이 발표된 뒤 소심하고 덤벙거리는 듀티율이 저에게는 안 어울린다는 우려가 많았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배우를 더 흥분시키곤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제가 왜 그 배역을 맡았는지 다들 이해하셨죠…. 그리고 사실 전 듀티율과 정말 닮았어요.(웃음)” 한국 활동에 매진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는 2년 넘는 공백이 생겼다.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브로드웨이 대극장이든, 지하실의 작은 극장이든 모든 곳이 똑같은 무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로운 기회”를 꿈꾸며 찾은 한국 무대에서 그는 훌쩍 성장했다고 한다. “처음엔 한국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습니다. 지금 1시간이면 할 수 있는 걸 처음엔 5시간 동안 매달려야 했죠. 덕분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넘어 남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좋은 청취자이자 더 진실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가 한국 뮤지컬 팬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듯, 그 역시 한국 활동이 “큰 선물”이었다고 돌이킨다. 그는 출연 중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9월 1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를 다음달 말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단 하루 휴식을 취하고 바로 ‘엘리전스’의 리허설을 시작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엘리전스’는 영화 ‘스타트랙’으로 유명한 일본계 배우 조지 다케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편견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여기서 리더십과 정의감으로 반란을 이끄는 대학원생 ‘프랭키 스즈키’ 역을 맡는다. 2011년 리딩 공연부터 참여해 온 작품이어서 애착이 남다르다. ●2년 넘는 한국 활동은 ‘큰 선물’ 이었죠 한국계 배우가 일본계 미국인 역할로 무대에 오르는 것을 아쉬워할 팬들도 있을 법하지만, 그는 국적과 민족을 넘어 ‘이방인’의 아픔에 주목한다. 스스로도 미국에서 ‘이방인’이었으며,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연기와 노래로 승화해 온 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것이 내 외모와 피부색, 혈통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인이 검은 머리와 황색 피부를 가진 사람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죠. 이는 한국도 조만간 고민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는 배우뿐 아니라 연출가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어쩌면 브로드웨이와 한국에서 모두 성공한 뮤지컬 연출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계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한국에 살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한국에 터를 잡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예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 꿈꾸는 목표도 있다. “한국에는 재능 있는 후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후배들의 재능을 키워 주고 싶어요. 그게 연기든, 뮤지컬 제작이든, 무엇이든 말이에요.”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사진 속 4살 소녀 다리 사이로 나타난 사무라이 유령

    사진 속 4살 소녀 다리 사이로 나타난 사무라이 유령

    사무라이 유령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형체가 사진에 포착돼 화제다. 지난 2015년 4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데일리뉴스는 캐나다 토론토의 마틴 스프링올(Martin Springall)이 지난 2014년 7월 일본 가나가와현 즈시시의 한 해변에서 찍은 자신의 4살 된 딸 사진에 사무라이 유령으로 보이는 사람 다리 형체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스프링올 친구 브라이언 퍼브리커버(Brian Publicover)는 약 2분여 동안 총 5장의 사진을 촬영했으며 이들 중 한 사진에 직물 모양의 사무라이 부츠로 보이는 검은색 물체가 포착됐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을 확대해보면 어린 소녀의 팔꿈치 아래 하늘색 무언가가 보인다. 스피링올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com)에 이 사진들을 게재하며 “내 친구가 딸 사진을 촬영했다. 친구는 사진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면서 “내가 대신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사진들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해당 사진이 촬영된 지역은 사무라이 무덤과 가까운 곳으로 알려졌으며 같은 장소, 동일 시간대의 또 다른 사진에는 사무라이 유령 모습이 없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영상= bagan serai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시론] 넥슨과 엔씨, 한국판 오월동주의 결말은/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시론] 넥슨과 엔씨, 한국판 오월동주의 결말은/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손자의 구지편에는 ‘예로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은 평소의 적개심을 잊고 서로의 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라는 서술이 있다.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게 오월동주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유명한 고사와 달리 정작 중국의 오나라와 월나라가 ‘동주’의 처지에서 동맹을 맺었던 적은 없다. 중국과 달리 일본에는 오월동주의 역사가 존재했다. 바로 ’삿초동맹‘이다. 1867년 맺어진 삿초동맹은 일본 서남부의 맹주였던 사쓰마현과 조슈현이 힘을 합쳐 에도막부를 타도한 동맹이다. 사실 동맹을 맺기 전 두 현은 원수지간이었다.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두 현의 사무라이가 조우하면 반드시 칼을 뽑았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증오는 알 만하다. 하지만 두 현은 사카모토 료마 등의 중재로 에도막부를 타도하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일본은 부국강병의 근대화 길을 열게 된다. 국내 게임업체 1위 넥슨과 2위 엔씨소프트의 동맹이라는 ‘한국판 오월동주’는 일본과 같은 새로운 역사를 열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 6일 넥슨이 엔씨소프트 이사회에 참여해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의 주주 제안서를 보냈다. 엔씨소프트를 두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김정주 넥슨 두 창업자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셈이다. 앞선 2012년 6월 엔씨소프트와 넥슨은 하나의 동맹을 맺는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주식 14.7%를 매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두 회사가 힘을 하나로 모은 것에 대해 당시 김택진·김정주 두 창업자는 글로벌 게임 시장에 대한 의지 때문이라고 했다. 김택진 대표는 주식 매각 배경에 대해 “게임, 정보기술(IT) 산업의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엔씨소프트와 넥슨 두 회사가 힘을 합쳐야 세계 게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파트너십으로 엔씨소프트가 가진 개발력과 넥슨의 글로벌 퍼블리싱 플랫폼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넥슨 역시 동일한 취지의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반 후인 2015년 두 회사는 엔씨소프트를 지배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다. 넥슨은 지배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엔씨소프트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누가 옳은가를 따지기에 앞서 양자의 싸움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과 같은 초기의 대의명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원래 두 회사는 물과 기름 같은 다른 회사다. 엔씨소프트는 역할수행게임(RPG)에 강한 기업이지만 넥슨은 캐주얼게임에 강하다. 엔씨소프트는 개발력이 강하지만, 넥슨은 퍼블리싱 능력이 강하다. 두 기업은 핵심 역량과 기업 문화가 전혀 다르다. 서로 간에 강한 라이벌 의식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처음에 두 회사가 하나로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주식 매각 협의를 했다고 한 점도 그리 석연치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의 게임산업은 위기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두 기업의 동맹을 선의로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드러난 두 기업의 거래는 이런 기대와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간의 갈등이야 항상 있는 일이다. 그러나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갈등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의 게임산업에 바로 충격을 주기 때문에 고민스럽다. 향후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중국 자본이 엔씨의 지배적 주주로 들어올 가능성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게임사는 개발력 면에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가격도 높지 않다. 실제로 중국의 텐센트는 5억 달러를 투자해 CJ E&M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들에게 엔씨는 아직까지 매력적인 존재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게임산업의 주도권은 이미 중국이나 구글, 애플에 넘어가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두 간판 기업은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은 성공적인 한국판 오월동주를 기대한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던가.
  • ‘파워레인저’ 배우 ‘사무라이 검’ 들고 친구 살해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파워레인저'의 '추락' 소식이다. 지난 2002년 이후 어린이용 TV 및 영화 시리즈 '파워레인저'에서 '와일드포스'로 출연한 배우 리카르도 메디나 주니어(37)가 살해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주고있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상하게 한 이 사건은 지난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팜데일의 가정집에서 벌어졌다. 이날 오후 메디나는 룸메이트인 조슈아 스터터와 말다툼을 벌이다 칼로 복부를 찔러 살해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살해 도구인 칼이 사무라이용 검으로 마치 '파워레인저' 속의 와일드포스가 무기로 사용하던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사건 직후 메디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구조대가 스터터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 LA 경찰은 "메디나의 여자친구가 숨어있던 침실로 스터터가 들어가자 이를 만류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면서 "살해 도구로 사용된 검이 실제 파워레인저 촬영에 사용됐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메디나는 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자세한 살해 동기는 추가 수사로 밝혀질 것" 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강등에 분노…오사카 팬들, 포를란에 “돈 돌려주고 돌아가라!”

    강등에 분노…오사카 팬들, 포를란에 “돈 돌려주고 돌아가라!”

    “돈 돌려주고 돌아가라!” 우루과이 출신의 세계적인 공격수 디에고 포를란에게 연봉 6억 엔(약 57억 원)을 지급하고도 팀이 강등당한 세레소 오사카 팬들이 SNS 및 축구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포를란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일본의 축구 커뮤니티 '풋볼스테이션', '사무라이골' 등은 세레소 오사카의 강등이 확정된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모인 선수단에 팬들이 건넨 메시지를 동영상에 담아 배포하고 나섰다. 그 메시지 속에는 포를란에게 "책임을 져라"거나 "돈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팬이나 "제일 기대 이하는 바로 너다"거나 "돈 돌려주고 돌아가라"고 외치는 팬도 있었다. 한편, 포를란은 오사카의 최종경기 직후 동료 공격수 카카우와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현장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며 또다시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카카우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팀의 강등이 확정된 상황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포니치' 등 일본 언론에서는 오사카가 포를란의 연봉 일부를 지급해서라도 그를 이적시키고자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J리그 입성할 당시 엄청난 인파가 공항에 나와 포를란을 맞이했던 것을 돌아보면, 불과 1시즌 만에 포를란과 J리그의 인연은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성모 객원기자 London_2015@naver.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inlondon2015 트위터 https://twitter.com/inlondon2015
  • [구본영 칼럼] 이순신 리더십 바로 읽어야 길이 보인다

    [구본영 칼럼] 이순신 리더십 바로 읽어야 길이 보인다

    어디 가나 영화 ‘명량’이 화제다. 울돌목(명량) 인근 맹골수도에서 세월호 참사를 겪은 때문일까. 아니면,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마다 이순신의 리더십에서 구원의 빛이라도 찾으려는 걸까. 최단기간 내 1000만 관객 돌파라는 한국 영화사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 며칠 전 전직 해군 제독이 낀 저녁 모임에서도 명량이 토픽이었다. ‘이순신 전문가’인 그는 잘 만든 영화지만 주연배우를 잘못 캐스팅했다고 주장했다. 고뇌에 찬 이순신 장군의 진면목을 담아내기에는 배우 최민식의 얼굴 살집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사족 하나. 조선 수군이 왜병들과 배 위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설정도 역사적 고증이 부족한 결과라고 했다. 사무라이들이 포진한 왜군을 농어민 백성들이 주축인 조선 수군이 칼싸움으로 이길 순 없고, 사려 깊은 이순신이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문득 6년 전의 비화가 떠올랐다. ‘신의 방패’로 불리는, 최첨단 함정 방공전투 시스템인 이지스체계를 개발한 ‘록히드마틴’사를 방문했을 때다. 미 외교관이나 해군 제독 출신의 간부들이 “16세기 이순신 장군의 조선 해군은 세계 최고였다”고 연신 치켜세웠다.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만든 당시의 조선술까지 높이 평가하면서다. 칭찬 속에는 이지스체계를 세일즈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인 한국의 선박 건조 능력에다 이지스체계를 얹어야만 최강의 구축함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란 점에서다. 사실 이순신은 선입견과 달리 호방한 성격의 지휘관은 아니었다. 그는 극한의 생사 갈림길에서도 매일 난중일기를 썼다. 소심할 정도로 노심초사하면서 치밀하게 앞날을 대비했다는 얘기다. 영화 명량에도 나오지만, 이순신은 겁에 질려 도망가는 장졸의 목을 벨 정도로 까칠한 면모를 보였다. 반면 명량해전 직전 칠전량에서 대패한 원균이 외려 호쾌한 돌격형 장수였다고 한다. 정사(正史)를 봐도 이순신을 띄우기 위한 사극에서처럼 그는 혼자 도망다니는 비루한 장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영웅인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은 “조국을 위해 죽지 말고, 적들이 그들의 나라를 위해 죽게 하라”고 병사들을 다그쳤다. 패튼의 명언에 비춰보면 이순신이 원균에 비해 얼마나 나라와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설령 임금의 명이라 하더라도 민·군을 사지에 몰아넣는 무모한 전투는 최대한 피했다. 조선 수군의 연전연승 비결도 그런 애민정신에 따른 그의 선견지명과 헌신에 있었다. 선체 하부가 뾰족한 왜선과 달리 우수한 화포를 많이 실을 수 있는 판옥선을 미리 건조해 포격전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이순신을 성웅으로 받드는 작업을 폈다.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야말로 이순신 리더십의 요체임을 잘 파악했던 듯하다. 요즘 정치권에서도 명량 열풍이 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참모진이 영화를 관람하고,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무민무당’(국민이 없으면 당이 없다)이라며 이순신 정신을 거론했다. 하지만, 여든 야든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을 제대로 읽고 교훈을 얻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심쩍다. 이순신은 한낱 촌로의 말도 허투루 듣지 않고 울돌목 조류의 특성을 분석해 전술에 반영했다. 반면 청와대는 그렇게 잦은 ‘인사 참사’를 빚고도 코미디언 자니 윤을 전문성과 동떨어지게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해 다시 비판을 자초했다. 민생이야 도탄에 빠지든 말든 현 정권을 궁지에 몰아야만 차기 정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정략적 착각이 잇단 선거 참패의 원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야당은 또 어떤가. 이순신을 배우려면 확실히 배워야 한다. 그는 신출귀몰한 작전을 펴겠다는 허장성세 대신 평시에 유사시를 차근차근 대비하는, 어찌 보면 상식적 인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말로만 국리민복이나 민주를 외치는 얼치기 신료들이나 정치꾼들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논설실장
  •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다른 일본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다른 일본

    당신들의 일본/유순하 지음/문이당/352쪽/1만 5000원 속이 아리다. 틀린 곳이 있다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 줄 텐데 죄다 옳으니 그 불편한 ‘지적질’을 감내하며 읽을 수밖에 없다. 새 책 ‘당신들의 일본’ 이야기다. 일본과 우리는 참 많이 다르다. 책은 구체적으로 둘이 어떻게 다른지 조목조목 짚어 낸 사회비평서다. 우리 사회에서 걸핏하면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들 가운데 30개를 골라 일본과 비교 분석했다. 책은 직설적이다. 에둘러 돌아가는 법이 없다. 우리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통에 읽을수록 더 속이 아리다. 책에 담긴 정신을 요약하면 은인자중과 자강불식이다. 저자는 ‘능력 있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는 일본 속담을 인용했다. 흥분해서 욕만 하지 말고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본 뒤에 극일의 칼을 세우라는 지적이다. 먼저 선비와 사무라이. 선비는 붓으로 조선을, 사무라이는 칼로 일본을 지배했다. 두 집단이 숭상하는 건 비슷했다. 선비 하면 기개, 지조, 고매함, 청빈, 충절 등이 퍼뜩 떠오른다. 사무라이의 철칙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충성, 신의, 염치, 명예, 용기 등 표현만 살짝 다를 뿐이다. 한데 사무라이와 달리 선비들은 이를 ‘덜’ 지켰다. 저자는 그 이유를 “사무라이들이 선비들에 견줘 특별히 고매한 인품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라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에 각오해야 하는 형벌의 차이” 때문이라고 봤다. 그게 곧 붓과 칼의 계율 차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둘 다 ‘변변찮은’ 학력의 소유자이면서 국가수반에까지 오른 이력을 갖고 있다. 한데 노 전 대통령의 ‘가방끈’은 걸핏하면 조롱당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조롱이 국민적인 스포츠”였을 정도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다나카 전 총리의 학력에 대해 일었던 논란이나 비판은 없었다. 외려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책은 시종 이런 방식으로 논지를 이어 간다. 결론을 말하자. 책이 원하는 게 뭔가. 323쪽에 적혀 있다. 첫째 ‘쪽발이’라는, 배만 고픈 소리는 내지 말 것, 둘째 궐기 대회라는 헛짓, 때려치워라. 저자는 여기까지만 지켜져도 좋다고 했다. 셋째 와신상담, 칼까지 갈아 준다면 더욱 좋겠단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페북 CEO 주커버그는 사무라이 폭군?

    페북 CEO 주커버그는 사무라이 폭군?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세계 최고의 갑부 대열에 있는 마크 주커버그(30) CEO가 페이스북이 급성장할 당시 일본 사무라이 검을 가지고 다니면서 직원들을 위협하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7일(현시 시간)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언론 매체 보도에 의하면, 2005는 당시 서른 번째로 페이스북에 입사한 전직 프로그램 매니저였던 노아 케이건은 자신이 페이스북에 근무할 당시에 관한 회고록을 전자책 형태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급성장할 2007년, 당시 23세였던 주커버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약 한 달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만들 프로젝트를 보고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기랄(s**t)”을 연발하며 갑자기 해당 직원 컴퓨터에 물을 쏟아 부어 온 직원들이 놀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케이건은 또한, 주커버그는 당시 일본 사무라이 검을 회사 내에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농담조로 “잘못하면 당신 목을 자를 수도 있다”고 직원들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론 농담으로 위협한 것이지만, 당시 주커버그의 나이가 성숙하지 못한 젊은 혈기의 23세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며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케이건은 결국 페이스북을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바람에 그가 페이스북에 계속 근무했으면 받을 수 있었던 스톡옵션 주식 가치인 1억 달러(1,000억원) 상당의 수입도 날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케이건은 영국의 일간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며 “결국, 내가 받은 경험상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곳이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 직원의 주장에 관해 아직 페이스북 측은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진=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사무라이 주방장?’ 1분 만에 140개 레몬 자르기 화제

    ‘사무라이 주방장?’ 1분 만에 140개 레몬 자르기 화제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66초에 140여 개의 레몬을 자르는 달인’ 영상을 영국 매체 미러가 29일 소개했다. 영상 속 남성은 레몬을 하나씩 공중으로 던져 절반으로 자르는 기술을 보여준다. 1분이 조금 넘는 66초 동안 그의 ‘귀신같은’ 칼질에 잘려나간 레몬이 무려 140개. 사무라이들조차 이 남성의 칼 솜씨를 본다면 주눅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러는 이 남성의 칼 솜씨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66초에 140개의 레몬을 자르다니 놀랍다”, “기계처럼 정확한 듯. 레몬자르기의 달인이다. 최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영상=Ben P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일본 축구 반응 “세계 수준과 차이가 있다” 탄식과 한숨

    일본 축구 반응 “세계 수준과 차이가 있다” 탄식과 한숨 ’사무라이 재팬’이 25일(일본시간) 브라질 월드컵 C조 콜롬비아와의 최종전 참패(1-4)로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마시자 일본팬들은 허탈함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4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을 달성한데다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의 조련하에 ‘패스 축구’의 날을 벼리며 최종 평가전 3연승을 달렸기에 많은 일본팬은 ‘8강 진출 이상’을 예상했다. 그런 만큼 1무2패의 저조한 성적표에 대한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자력 16강’이 좌절된 상황에서 경기가 열렸지만, 오전 5시 킥오프 때부터 일본팬들은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집과 단체 응원 장소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장이었던 사이타마(埼玉) 스타디움에서는 푸른색 일본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2800여 명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전하며 응원했고, 전국 각지의 스포츠바도 새벽부터 분주했다. 전반 종료 직전 오카자키 신지(마인츠)가 헤딩슛으로 1-1 동점을 만들 때 도쿄의 주택가에서는 ‘와’하는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희망의 순간은 짧았다. 후반 내리 세 골을 내주며 침몰하는 동안 각지에서는 탄식과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인근 도치기현에서 사이타마로 원정응원 온 쓰바야마 마사아키(30)씨는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결정적인 장면들이 있었는데…”라며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자고 싶다”고 말했고, 교도통신의 취재에 응한 대학생 오오타니 가오리(21)씨는 “상대와의 격차가 컸다”며 “아쉽다”고 말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일본 선수들 수고했다”는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아직 세계수준과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일본은 역시 ‘높이’가 부족하다. 수비를 강화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등의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다. 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씨는 “우승을 목표로 한다고 공언했던 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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