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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TV 하이라이트]

    ●산너머 남촌에는(KBS1 오후 7시30분) 저수지에 수상한 자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눈빛에 말이 없는 사내를 둘러싸고 말이 많아 질 즈음 이웃 마을에서 강도사건이 발생한다. 대흥리에서도 길수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정미가 원피스를 도둑맞는 등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마을에서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자경단을 조직해 순찰을 시작하는데…. ●30분 다큐(KBS2 오후 8시30분) 애초 광부들의 노동복이었고, 마초(macho)를 상징했던 청바지가 이제 섹시함이라는 무기로 여성을 유혹하고 있다. 발이 아파도 꾹 참고 하이힐을 신는 것처럼, 몸에 꼭 끼는 청바지를 입기 위해 목숨 걸고 다이어트를 한다. 20세기 청바지 변천사와 함께 그녀들이 청바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를 알아본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사면초가에 빠진 희진빵집에 파트타임으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 써니가 희진보다 백배 낫다며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준수의 새로운 영어 과외 선생님으로 들어온 제시카는 영어로 수학을 가르쳐 희진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희진은 자신의 능력을 칭찬하는 자작극을 벌인다. ●두 아내(SBS 오후 7시15분) 영희는 자신을 취재나온 사보 취재기자에게 동료들 덕분에 FC로서 빨리 성공했다고 말한다. 도희는 웨딩센터를 방문한 달자가 태수의 취직을 부탁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는 광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한편 남준은 미미에게 영희가 반대하지 못하게 임신했다고 거짓말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리얼리티 유아독존(EBS 오후 8시) 대한민국 대표 음식 김치. 우리 고유의 민속춤 꼭두각시 춤. 여름밤을 시원하게 해주는 죽부인을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외국의 문화를 배워 오라는 유아독존의 미션. 막중한 임무를 띠고 태극기 휘날리며 아이들은 세계 도시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2009인천세계도시축전’현장으로 떠난다. ●YTN 초대석(YTN 낮 12시35분) 2009년 한국영화 최초의 재난 영화 ‘해운대’가 23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5번째 1000만클럽에 가입했다. 그 중심에 기획, 제작, 각본, 감독 그리고 연기까지 다방면에서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윤제균 감독이 있다.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윤제균영화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 운전면허 수험서 불티

    광복절 특별사면 덕분에 운전면허시험 문제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23일 신세계 이마트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운전면허시험 문제집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0%나 늘었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도 같은 기간 문제집 판매량이 사면 이전에 비해 2배나 늘었다.
  • [모닝 브리핑] 노후차 교체시 세제지원으로 15만대 판매

    노후차 교체시 세제 혜택을 받아 팔린 차량이 지난달까지 15만대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경제부는 21일 노후차 세제 감면 조치를 적용받아 팔린 차량이 5∼7월 모두 15만 305대라고 밝혔다. 정부는 1999년 말까지 등록된 차량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새 차를 사면 개별소비세와 취득·등록세를 70% 감면해주는 제도를 5월1일부터 시행했다. 이 제도는 연말까지가 시한으로, 정부는 25만대가량의 신차 추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친서민 세제 개편] 윤영선 세제실장 일문일답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2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서민층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세제 지원은 주로 근로자(직장인)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번에는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윤 실장과의 일문일답. →폐업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세금 사면으로 재정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닌가. -영세 자영업자에게 500만원까지 결손처분한 세금 징수를 면제하는 것은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결손 처분액의 5년 누적치도 4400억원으로 많지는 않다. 현재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가 소액 대출을 하려 해도 세법상 전세보증금 압류가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번 조치를 취한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가 자기 이름으로 사업할 기회를 주자는 데 의미가 있다. →세금 사면 규모를 500만원으로 정한 이유는. -지난 5년간 500만원 이하 결손처분 사업자는 40만명에 총 4400억원으로 1인당 110만원 정도다. 그래서 500만원 정도로 정하면 큰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저소득층 월세 소득공제 대상 인원과 국세 신용카드 납부의 혜택은. -저소득층 중에 면세자가 많아 월세 소득공제 대상 인원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의 신용카드 납부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체납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현금이 없을 때 세금을 내려면 돈을 빌리기 어렵다. 세금을 체납하면 가산금리가 붙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1개월 정도 혜택을 보는 것도 크다. →근로장려세제(EITC)의 대상은 확대하지 않았는데. -근로장려금은 일단 현행 제도를 운영하면서 확대를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당초 근로장려금 지원액을 1500억원으로 잡았는데 5600억원으로 늘었다. 이 정도면 지원 규모가 커진 것이다. →주택청약종합저축에서 국민주택 규모를 초과하면 세액을 추징한다는데. -이는 조세특례제한법상 조항으로 다른 세제 우대예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조항을 어기면 은행이 세무서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세무서는 불이행 가산세를 부과하게 된다. 또한 기존 청약저축과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운데 하나만 소득공제가 적용된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그는 ‘대화의 힘’을 신봉했다. 뼛속깊이 민주주의자였다. 정치의 정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향해 대화와 설득으로 합의와 타협을 이루는 과정이라 했다. ‘공산국가를 향한 억압과 고립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로지 개방과 대화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흔들림없이 믿었다. 역사발전은 이를 실증하고 있다. 철의 장막, ‘중공’의 빗장을 열게 한 것은 닉슨이 먼저 찾아가 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몰아 넣고 생명을 위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선언’을, 그 대화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납치와 투옥, 감시와 연금 등으로 자신을 모질게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독재정권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형제적 경쟁’을 원했다.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원했다. 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을 갈구했다. 감옥 안에서도 그랬다. 그는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었다. 그런데도 머리맡의 물그릇이 얼어 터지는 혹한의 감옥에서도 그는 결코 독재자를 증오하지 않았다. 대신 한달에 한 장만 주어지는 봉함엽서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족과 대화를 시도했다. 엽서 주소란까지 촘촘히 메운 사연은 그가 참으로 자잘하고 섬세한 여성적 심성을 가진 남성임을 보여 준다. 이 ‘양성적’인간은 놀랍게도 영하의 감옥에서 오히려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경지에 닿는다.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기술을 터득한다. ‘대화지상주의자’인 그는 1980년대에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외투쟁’을 싫어했다. 그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사랑했다. 대의정치가 맺은 국민과 대표자 간의 계약과 신의를 존중하고자 했다. 그래서 재임기간에는 거부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너무도 부당했지만 국회의 결정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역시 그의 오랜 인내의 결실이다. 그는 북한이 거부하는 조선일보 기자의 방북취재와 김일성 주석이 잠들어 있는 금수산궁전 참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오히려 평생 동안 자신을 음해하고 괴롭힌 보수신문의 취재허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누구 못지않은 빼어난 논리와 달변을 갖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에 머무는 내내 북한 지도부의 말을 ‘경청’하기만 했다. 그는 극도로 자신의 말을 아꼈다. 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좌우명처럼 여겼다. 친지들에게 자주 붓글씨로 써주었다. ‘때로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이외에는 믿을 대상이 없었던’ 그는 오로지 국민의 힘에 철저히 의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사면복권되었을 때 그는 국민에 대한 그의 무한신뢰를 확인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는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자본주의 정글에서 소외되고 뒤처지는 이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간난신고를 거듭했다. 재원도 부족하고 일각에서는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이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굶거나 헐벗는 이들은 없다. 휴머니스트인 지도자의 힘은 그래서 존귀하다. 그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는 왕조의 수준을 ‘공화국’으로 변환시켰다.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군사정권이 조작하고 유포한 거짓들이 아직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더 기다려야 할까? 만인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소수를 오래 속일 수 있지만 만인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믿자. 한 시대 대중의 소망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김대중, 그는 진정 민주주의와 평화를 꿈꾸는 우리들의 캡틴이었다. 실로 너무 멀고도 험한 길을 외롭게 걸어온 당신. 이제 더는 음해와 핍박이 없는 하늘에서 부디 평안을 누리소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상임위원
  • 장미 향기 맡으며 가을 느끼세요

    장미 향기 맡으며 가을 느끼세요

    금천구는 서해안고속국도의 고가 하부인 금천한내 제방길(금천구청역~시흥빗물펌프장)에 총 4억 5000만원을 들여 700m 길이의 산책로 ‘장미원’을 만들었다고 20일 밝혔다. 이 곳에 장미꽃을 연중 감상할 수 있도록 해마다 3~4회 정도 꽃을 피우는 사계절 장미 1500그루를 심었다. 안양천을 바라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전망데크와 장미 기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금천구는 또 콘크리트 블록으로 이뤄진 하천변 경사면에 흙을 쌓고 야생화와 사계절 장미를 심은 자연형 호안도 만들었다. 내달 중순부터는 빨강·분홍·노랑 등 형형색색의 장미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사업으로 금천한내는 한강까지 연결되는 자전거도로를 통해 장미원, 가을야생화꽃길, 억새 및 수크령 단지 등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주민들이나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에게 훌륭한 관람코스가 될 것이라고 구는 설명했다. 안병도 공원녹지과장은 “금천한내 주변으로 가을을 대표하는 식물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돼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판결문으로 본 DJ

    ‘피고인 김대중 사형’ 1980년 9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육군계엄부의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을 배후 조정했다는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 혐의였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다. 불복해 항소했지만 11월3일 고등군법회의에 이어 1981년 1월23일 대법원에서도 항소가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17일 밤 11시30분 집으로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남산 중정 대공수사국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옷을 벗기고 모욕감을 주던 일, 며칠씩 잠을 안재우고 같은 질문은 반복하던 일 등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끌려와 고문받는 민주화 동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빨리 죽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고 김 전 대통령는 회고했다. 이 같은 고문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7월9일 육군교도소로 갈때까지 계속됐다. “피고인 김대중 무죄” 2004년 1월29일, 김 전 대통령은 재심을 통해 서울고법에서 내란음모와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사형확정 판결 이후 23년 만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외국환관리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이유로 면소가 선고됐다. 법률적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1981년 1·24 비상계엄 해제 등 전두환 등이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반대한 피고인 김대중의 활동은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려는 정당한 행위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그들(신군부)의 야심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아무런 원망이 남아있지 않으며 마음으로부터 용서했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문병 온 전두환 “DJ 집권때 제일 행복”

    1970, 80년대 신군부의 수장과 민주화의 상징으로 대척점에 섰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해후했다. 전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12·12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거머쥔 전 전 대통령은 이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옥고를 치른 김 전 대통령은 2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2004년 재심에서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종교적 용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입원 전까지 준비하던 자서전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용서는 최대의 용기이고, 관용은 정치의 최대 덕목’이라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12·12 및 5·18과 관련, 사형을 선고받은 전 전 대통령을 위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사면을 건의하고, 자신이 집권했을 때 이를 단행했다. 그는 또 국민의 정부시절 전 전 대통령을 수차례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날 병세가 위중한 김 전 대통령 대신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각별한 보살핌을 회고했다. “자꾸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휴가 중에 올라왔다.”는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외국 방문 후 꼭 전직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 방문 성과를 설명해주며 만찬을 성대하게 준비해주고 선물도 섭섭하지 않게 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연세가 많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틀림없이 완쾌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쾌유를 기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생계형범죄 152만 7770명 특사

    법무부는 광복 64주년을 맞아 운전면허 및 어업면허 정지·취소자 등 152만 7770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한다고 11일 발표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민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실시한다.”면서 “정치인·경제인·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특별 개별사면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대상자는 ▲운전면허 정지·취소 및 벌점자 150만 5376명 ▲초범·과실범 9467명 ▲어업허가 정지·취소자 8764명 ▲해기사 면허 정지·취소자 2530명 ▲가석방 841명 ▲소년원생 77명 ▲보호관찰 해제 715명 등이다.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은 6만 3224명과 면허취소 처분이 진행 중이던 6381명은 오는 15일부터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운전면허가 이미 취소된 19만 7614명은 결격기간이 해제돼 곧바로 운전면허 재시험을 볼 수 있다. 6월30일 0시 이전에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벌점을 받은 123만 8157명은 일괄 벌점 삭제로 ‘0점’에서 새로 시작한다. 그러나 운전면허 취소자 중 5년 내 2회 음주운전, 무면허 음주운전, 음주 인명사고, 음주측정 불응, 뺑소니, 단속 공무원 폭행범 등은 감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운전면허시험관리단 홈페이지(www.dla.go.kr)에서 특별감면 대상자인지를 조회할 수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8·15 특별사면·감면 수혜자 152만 7770명 가운데 150만 5376명이 자동차 운전자다. 농어민은 1만 1294명이고 일반 형사범은 9467명이다. ●운전면허 감면 대상자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언급한 지난 6월29일 24시(6월30일 0시) 이전에 운전면허 벌점·정지·취소 등 행정처분을 받거나 면허시험 응시 제한기간(결격기간)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왜 6월29일이 기준 대통령의 특별사면 언급 이후에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까지 포함하면 법질서가 흔들린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감면 배제자 ▲2004년 6월29일 이후 2회 음주운전 ▲무면허 음주운전 ▲음주 인명사고 ▲음주측정 불응 ▲뺑소니 ▲단속경찰 폭행 ▲차량이용 범죄 등(12만 6696명)은 제외된다. 또 적성검사 때 기준이 미달했거나 운전면허증 갱신기간이 지나 면허가 정지·취소된 사람도 배제된다. 대상자는 오는 15일부터 운전면허시험관리단 홈페이지(www.dl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운전면허 벌점·정지 123만 8157명의 벌점이 일괄 삭제돼 0점이 된다. 운전면허는 벌점이 40점이면 정지된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사람(6만 3224명)은 경찰서에서 면허증을 되찾아 가면 된다. ●운전면허 취소 음주운전 적발 등으로 면허취소가 확정됐지만 아직 행정처분이 진행 중이라 ‘임시운전면허증’을 소지한 6381명은 처분 면제 혜택을 받아 곧바로 핸들을 잡을 수 있다. 통상 적발 뒤 20~40일 지나야 행정처분이 완료된다. 그러나 운전면허가 이미 취소돼 1~2년간 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던 19만 7614명은 재시험을 봐야 한다. 응시를 제한했던 결격 기간은 없어졌지만 특별교통안전교육(6시간)도 받아야 한다. ●농어민 행정처분 2006년 1월1일부터 지난 6월30일 0시까지 어업면허·허가와 관련해 경고·정지·취소 등 행정처분을 받은 농어민(8764명)의 기록이 삭제된다. 면허·허가 구역을 벗어나 어구를 설치한 경우와 대형 어선이 금지구역을 침범한 경우, 유해약품을 사용한 경우(1155건) 등은 제외된다.소속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상자를 확인할 수 있다. 해기사면허 경고·정지·취소 등 행정처분의 기록도 폐기된다. 정지 처분을 받았던 해기사는 각 지방 해양항만청에서 면허증을 돌려받고 취소 처분을 받았던 해기사는 오는 9월12일 시험부터 재응시할 수 있다. ●일반 형사사범 징역형(2314명)은 지난 5월31일 이전에, 집행유예나 선고유예형 (7153명)은 지난 2월28일 이전에 확정돼야 한다. 도로교통법·수산업법·농지법 위반자가 대부분이며 살인·강도·조직폭력·성폭력·뇌물수수 등은 제외됐다. 해당 검찰청에서 문의하면 특별사면 대상자인지 확인할수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사설] 음주운전 사면은 이번으로 끝내야

    정부가 광복 64주년을 맞아 152만 777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특별사면·감형·복권을 단행했다. ‘생계형 서민’이라는 정부의 강조처럼 상당수가 운전면허 제재 등으로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국민들의 준법의식 약화로 빚어질 부작용이 우려되고, 특히 음주운전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교통법규 위반자 등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말 첫 단행된 뒤 이번이 6번째다. 현 정부 들어서는 지난해 6월에 이어 2번째로 사면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관련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조치가 이뤄진 후 1년간 평소보다 교통사고는 7000여건, 사망자는 200여명, 부상자는 1만여명 늘어났다고 한다. 그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수천억원으로 추산되었다. 손해보험업계는 교통사고율이 올라가면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울상이다.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음주운전의 폐해다. 대형사고로 이어져 남의 생명까지 순식간에 앗아가는 게 음주운전이다. 국제적으로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특사로 법과 원칙을 허물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정부도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5년내 2회 음주운전, 무면허 음주운전, 음주 인명사고 등은 사면대상에서 뺐다. 그러나 “한번쯤은…”이라고 봐주다가 습관성 음주운전자를 양산할 수 있다. 음주운전의 경우 이번이 마지막 사면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정부는 특혜성 사면·복권을 남발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 광복절 ‘생계형 특사’ 150만명 11일 발표

    법무부는 11일 오전 11시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8·15 광복절 특별사면의 기준과 대상자를 발표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말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생계형 사면, 농민, 어민 또는 서민, 자영업하는 분, 또 특히 생계형 운전을 하다가 운전면허가 중지된 분 150만명 정도를 찾아 (특별사면)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특별사면 대상자는 1회 단순 음주운전이나 가벼운 법규 위반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의 면허 재취득 결격 기간을 줄여주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죽음의 문턱에서야 풀린 50년 애증의 한(恨).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YS는 DJ를 직접 위문하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YS를 맞은 DJ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염려해 주시고 와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세기를 이어온 한국 정치사 두 거목 간의 반목은 이렇게 청산됐다. YS는 이날 “(DJ는) 나와는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했다. 또 “둘이 합쳐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목숨 걸고 싸웠다.”면서 정적이자 동지인 DJ를 회고했다.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협력과 반목을 거듭하던 두 거목은 1997년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민정부 말기 터져 나온 YS 차남 현철씨의 비리 사건이 화근이었다. YS는 DJ가 조속히 사면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 97년 DJ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유보를 결정하며 민주화 동지의 대선 승리에 길을 터줬다고 생각해온 YS는 DJ의 늑장(?) 사면을 ‘배신 행위’로 여겼다. YS의 독설이 늘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DJ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도 “상의 가치가 떨어졌구먼….”이라며 깎아내렸다. 지난 6월 DJ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자 “그 입을 닫으라.”고 했다. DJ는 묵묵부답,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했다. DJ는 이날 위중한 병세로 YS에 직접 화답하지는 못했다. 대리인격인 권노갑 전 의원이 “이번 일을 계기로 화해 문제가 해소됐다.”며 사의를 전달했다. YS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아버지가 대승적으로 생각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가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DJ의 병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일 병세 악화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10일 일정을 전격 취소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초 이날 전남 여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여수세계박람회 D-1000일’ 행사에 참석하려 했으나 청와대는 DJ의 병세에 따라 “이 대통령이 갈 수 없다.”는 뜻을 여수세계박람회 측에 통보했다. 8·15 전후로 예정됐던 개각과 청와대 개편도 상당기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여야 정치권도 병문안을 위해 줄줄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오전 10시20분쯤 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윤상현 대변인 등과 함께 이희호 여사를 위로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송영길·김민석·안희정·장상 최고위원 등은 병원에서 쾌유를 비는 예배를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 여사를 만나 DJ의 쾌차를 기원했다. 한편 병원 측은 “이날 새벽부터 혈압과 맥박 등 건강 수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고령에 지병으로 신체 기능이 서서히 저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성규 김지훈 오달란기자 cool@seoul.co.kr
  • ‘이태원 살인사건’ 감독 “‘고사’ 대신 ‘위령제’ 지내”

    ‘이태원 살인사건’ 감독 “‘고사’ 대신 ‘위령제’ 지내”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제작 선필름)의 홍기선 감독이 고사 대신 위령제로 영화를 시작한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모았다. 11일 서울 강남 신사동 압구정예홀에서 열린 ‘이태원 살인사건’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정진영은 “보통 영화의 선전을 위해 고사를 지내는데 우리 영화는 고인의 위령제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홍기선 감독의 영화 제작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홍 감독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에 대해 “피해자인 고(故) 조중필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2년 전 이태원에서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어난 미해결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무고한 한국인 청년이 살해됐음에도 증거불충분 등으로 한국계 미국인 용의자들이 사면돼 현재까지 ‘피해자는 있으나 범인은 없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의 실제 관계자와 피해자의 부모를 만나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다는 홍기선 감독은 “결말을 맺어야 하는 영화에 미해결로 끝난 사건을 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홍기선 감독은 “하지만 좋은 배우들을 만나 한 편의 영화를 완성했다.”며 “‘이태원 살인사건’의 결과가 좋다면 그건 모두 배우들 덕분일 것”이라고 겸손하게 덧붙였다. 한편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이태원을 배경으로 단지 재미로 대학생을 살해한 10대 용의자 2명 중 진범을 찾아야 하는 미스터리 현장살인극이다. 살인용의자 역의 장근석과 2명의 용의장 중 진범을 찾는 열혈검사로 분한 정진영의 열연이 기대되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오는 9월 개봉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슬리 나이트 크림 85만원… 초고가 화장품 잇단출시

    국내외 화장품 업체들이 초고가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불황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주름개선 등 기능성 라인을 중심으로 비싼 원료를 썼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고 업체들은 설명했다. 시슬리는 다음달 1일부터 나이트케어 제품 ‘수프리미아’(50㎖)를 판매한다고 10일 밝혔다. 가격은 85만원. 랑콤도 다음달부터 나이트크림 ‘세크레 드 비’(50㎖)를 45만원에 선뵌다. 이미 같은 라인의 데이크림(50㎖·100㎖)을 43만원과 68만원씩에 팔고 있다. 겔랑도 ‘오키드 임페리얼’라인의 마스크크림과 목크림을 43만 7000원에 출시한다. 앞서 지난 1월에는 15㎖짜리 4개 제품을 묶은 ‘오키드 임페리얼 트리트먼트’를 160만원에 팔았다. 에스티로더는 ‘리-뉴트리브’의 데이 크림과 나이트 크림을 각각 55만원에 내놓았다. 두 개를 한꺼번에 사면 110만원이다. 디오르의 초고가 화장품 라인 ‘로 드 비’에서는 세럼 ‘렉스트레’(15㎖)를 49만원에, 크림 ‘라 크렘’(50㎖)을 46만 5000원에, 아이크림 ‘라 크렘 이으’(15㎖)를 26만원에 선보였다. 샤넬의 크림 ‘수블리마주’(50㎖)는 43만원이다. 국내 화장품 회사 중에서도 LG생활건강이 2006년 68만원에 내놓은 ‘후 환유고 크림’은 최근까지 4만 5000개가 팔려 나갔다. 요즘에도 한달 평균 1000여개씩 꾸준히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도시와 산] (19) 인천 계양산

    [도시와 산] (19) 인천 계양산

    계양산(해발 395m)은 오랫동안 ‘인천의 진산(鎭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태’, ‘환경’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인천 시민들은 계양산 보존 운동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인천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의 뒷자락 개발이 추진되자 210일간 나무 위 시위, 삼보일배, 촛불집회, 두 차례에 걸친 100일 릴레이 농성 등 환경운동사를 새로 쓰게 할 만한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성과 유서도 깊어 인천시민들은 계양산에 대한 애정이 더 극진할 수밖에 없다. ●이규보 ‘망해지’서 계양지경 칭송 한강과 주변이 한눈에 들어와 예전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 역할을 한 산이었다. 양산 동쪽 기슭 능선에 자리잡은 계양산성(인천시기념물 제10호)은 삼국시대에 축조됐으며 돌로 쌓은 최초의 성이다. 오랜 역사 때문인지 ‘고산성(古山城)’으로도 불린다. 부평도호부(부평의 옛 행정명칭)의 성곽 역할을 해 왔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에 둘레가 1937보(步)에 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성 안이 사방으로 노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 해안 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해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져 있다. 생태와 환경 외에 역사성도 가미돼 있는 셈이다. 고려시대 대학자이자 문인인 이규보(1168~1241년)가 거처했던 자오당터와 초정지는 유서가 깊은 곳으로 학생들의 훌륭한 교육장소가 되고 있다. 이규보는 ‘망해지’라는 책에서 “길이 사면으로 계양지경에 났는데 오직 한면만이 육지로 통하고 삼 면은 물이다.”라고 계양산을 예찬한 구절이 나온다. 또 백제 초기부터는 현재의 공촌동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을 징매이고개를 넘어 서울 신정동 토성을 거쳐 지나던 소금통로 구실도 했다고 한다. 계양산에는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두더지, 도롱뇽, 두꺼비 등의 포유동물과 파충류가 살고 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노린재, 딱정벌레 등 곤충 36종과 황조롱이, 오색딱따구리 등 조류 61종도 서식하고 있다. 인천시는 이들 동물이 계양산과 인근 철마산을 드나드는 것을 돕기 위해 징매이고개에 생태통로(길이 100m,폭 80m)를 만들었다. 이 산에는 또한 이삭귀개, 삼지구엽초, 서어나무 등 진귀한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도시 속의 원시림이라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도시생활에 지친 시민들은 이 산을 즐겨 찾는다. 매일 1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계양산은 가현산-계양산-원적산-만월산-거마산-문학산-청량산을 잇는 인천의 ‘S자 녹지축’의 중심이며, 충북 속리산에서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의 핵심 축이다. 1988년 인천 시공원 제1호로 출발한 계양산을 중심으로 한 계양공원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도시민들의 휴식과 생태체험의 장소로 널리 이용된 지 오래다. ●시민들은 개발 방지 파수꾼 도심 속에 있다 보니 계양산은 늘 개발 논란에 휩싸여 왔다. 시민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덕에 계양산은 여전히 푸름을 자랑한다. 앞서 롯데건설은 목상·다남동 일대 244만㎡에 골프장과 위락시설 등을 갖춘 수도권 최대의 테마파크를 건립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업체도 1980년대 후반에 계양산 내 29만㎡에 위락단지를 조성하려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주민들은 개발이 이뤄질 경우 자연 생태계의 질이 크게 악화될 것을 우려한다. 또 인천의 ‘허파’라 할 수 있는 계양산에 특정인들을 위한 골프장 건설은 시민환경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천지역 45개 시민·사회단체는 2006년 6월 ‘계양산 골프장 저지 및 자연공원추진 인천시민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지금까지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펴고 있다.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롯데 측은 골프장 면적을 95만㎡에서 71만 7000㎡로 줄여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조건부 동의를 받아냈다. 하지만 예정지 3분의1가량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군부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군은 거듭 부동의 입장을 밝히고 있어 지난 6월에는 계양산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계양산 골프장을 저지하기 위한 축제한마당을 열었다. 어떤 이들은 가면에 글씨와 그림을 그려서 왔고, 어느 마을모임은 계양산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노란 천에 그렸다. 시민들은 또 ‘계양산 1평 사기운동’을 펼쳐 ‘내셔널 트러스트’(환경파괴 우려가 있는 지역을 주민들이 사들여 보존하는 운동)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통팔달 계양산 계산역서 500m 수도권 어디서든 OK 인천 계양산은 서울 인근 산 가운데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다. 지하철과 고속도로, 공항철도 등 입체적으로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춰 시민들이 찾기에 부담이 없다. 인천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계산역에서 계산고 방향으로 500m가량 가면 등산로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경인여대 입구인데 이곳에도 등산로가 있다. 산을 제대로 타려면 아예 400m쯤 더 가 계양문화회관 뒤편으로 형성돼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다른 코스가 산 동쪽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하는 데 비해 이 코스는 산 정면을 그대로 치고 올라간다. 정상에 이르면 인천시내는 물론 영종도를 비롯한 인천 앞바다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또한 서울, 김포, 부천, 과천 등 인근 도시들도 넓게 시야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경인전철을 타고 올 때에는 부평역에서 인천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고속도로의 경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계양IC에서 빠지면 계양산까지 1㎞ 남짓한 거리다. 경인고속도로를 탔을 경우에는 서운JC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빠져 일산 방면으로 3㎞ 정도 가면 계양IC가 나온다. 제2경인고속도로는 안현JC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빠져 마찬가지로 일산 쪽으로 가야 한다. 공항철도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계양역에서 내려 2㎞가량 걸으면 등산로 입구에 도달한다. 산 뒤편인 다남·목상동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계양산 특징인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현장을 보면서 산을 오를 수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퇴근하라고 컴퓨터 끄는 사장님 北 “김정운 지략으로 클린턴 방북” 먹는 조루 치료제 프릴리지 약효는 잭슨자녀 대부 마크 레스터 “패리스는 내 친딸” 탈모 예방하려면 머리 감은뒤 수건 두드려 말려
  • [美여기자 석방] ‘클린턴 1박2일’ 깔끔한 진행

    [美여기자 석방] ‘클린턴 1박2일’ 깔끔한 진행

    클린턴의 ‘1박2일’은 숨가빴다. 전격적인 방북부터 여기자 석방, 고국 송환까지 시나리오를 짠 듯 치밀하고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다. 22시간가량의 방북 일정 중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 1시간15분, 만찬 2시간, 모두 3시간15분을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민간 항공기를 타고 직항으로 평양 순안공항에 발을 디딘 건 4일 오전 10시48분. 도착 1시간 전에야 방북 소식이 언론에 타전될 정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 트랩에서 내려온 클린턴은 영접 나온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인사를 나누며 짧은 환영식을 가졌다. 이후 북측이 제공한 리무진을 타고 외국 국빈들이 이용하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면한 건 이날 오후. 클린턴은 김 위원장과 유나 리, 로라 링 두 여기자의 석방문제를 논의하고 기념촬영을 가졌다. 저녁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주최한 VIP 만찬을 대접받았다. 회동 중에는 때로 긴장감이 흘렀지만 양측은 결국 원하는 것을 거머쥐었다. 김 위원장은 이들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 석방을 전격 지시했다. 클린턴은 이날 두 여기자와도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ABC는 이 순간이 “매우 감동적이었다.”며 정부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클린턴은 지체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8시30분 바로 두 기자를 데리고 전세기에 탑승,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이들을 태운 비행기는 미국 서부 현지시간으로 5일 새벽 6시30분쯤 고국에 내려앉았다. ‘1박2일’의 여정 동안 북한이 시시각각 홍보전을 폈던 것과 달리 미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사면 조치가 떨어질 때까지 일체의 반응을 삼가며 신중함을 지켰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여기자들 “인생의 악몽 끝났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김정은기자│“돌연 끌려가 문을 여는 순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우리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우리 인생의 악몽이 끝났음을 알게 됐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142일 만에 석방된 미국 여기자 로라 링과 유나 리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특별기 편으로 5일 오전 5시50분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버뱅크 밥호프공항에 도착, 가족들과 상봉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우리가 TV에서 본 재회는 그들 가족들만의 행복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행복”이라며 여기자 2명이 무사히 풀려나 크게 안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2명의 기자를 석방시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탁월한 인도주의적 노력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도착 직후 뉴욕의 클린턴재단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여기자들이 석방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클린턴은 “이들의 고난은 긴 여정이었다.”며 “이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또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와 연안호 선원 4명의 문제와 관련,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 측에 “석방하면 매우 전향적인 진전이 될 것”이라며 특사를 통한 석방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CBS TV 인터넷판이 미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방북에 대해 추후 보고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기브스 대변인은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사과했고 클린턴이 오바마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북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메시지도 없었고 사과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미국 케이블방송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가 탄 특별기는 이날 오전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했다. 북한은 지난 6월8일 2명의 여기자에게 조선민족 적대죄와 무단으로 국경을 침입한 죄를 물어 각각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일 클린턴 전 대통령과 회담한 뒤 이들을 특별사면, 석방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여기자 2명이 북한에 불법입국해 반(反)공화국 적대행위를 한 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고 그들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하게 용서해 돌려보내 달라는 미국 정부의 간절한 요청을 정중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편 외교통상부도 이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 대변인 논평을 내고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기자 2명이 5일 석방돼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귀환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정부는 이번 방북과 관련, 미국측과 계속 협의해 왔으며 미국은 이번 방북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뤄진 개인적인 성격의 방문이라고 사전 설명해 온 바 있다.”고 밝혔다. kmk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군사작전 방불케 한 쌍용차 2차 진압 자기가 발의한 법안에 반대표 던진 의원들 돈 되는 환자만 가려 받는 몹쓸 병원들 이탈리아 로또 또 이월…당첨금 2033억원 눈만 높은 미혼 남녀들 2019년에는 서울 어디든 30분내 간다 통영vs화천…어디로 휴가 가지? 공무원시험 지역제한 5대 궁금증 해부
  • 22일 밤 ‘1만원의 행복’

    22일 밤 ‘1만원의 행복’

    오는 22일 밤 12시까지 서울의 밤이 환하게 빛난다. 서울시는 22일 정동, 대학로, 북촌, 홍대, 인사동 등 5곳의 문화시설을 자정까지 개방하고 저렴한 가격에 각종 공연·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서울 문화의 밤(Seoul Open Night)’을 개최한다. 정동지구에서는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밤늦게까지 개관한다. 1만원짜리 문화패스를 사면 ‘난타공연+덕수궁 입장’, ‘전통한국뮤지컬(미소·Miso)+덕수궁 입장’, ‘시립미술관 르누아르전+덕수궁미술관 보테로전+덕수궁 입장’ 중 하나를 골라 이용할 수 있다. 대학로지구에서는 문화패스로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라이어1탄’, ‘늘근도둑 이야기’, ‘영웅을 기다리며’ 등 인기 연극과 뮤지컬 12편 중 하나를 골라 볼 수 있다. 연극인들과 함께하는 대학로 연극투어, 마로니에공원 영화 상영, 대학로 꽃마차 투어 등의 행사도 마련된다. 다양한 박물관이 모여 있는 북촌지구에서는 60여개의 갤러리, 공방, 박물관 등이 야간에 개방돼 평일에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직장인들의 호응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패스로 가회박물관, 동림매듭박물관, 부엉이박물관, 서울닭문화관 등 12개의 유료박물관 및 미술관을 이용할 수 있다. 결련택견 공연, 북촌 한옥체험, 북촌 장인과의 만남 등의 행사도 열린다. 인사동에서는 전통문화 및 전통놀이 체험 행사와 진도북놀이 공연이 펼쳐진다. 문화패스로 넌버벌 댄스뮤지컬 ‘사춤(사랑하면 춤을 춰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홍대에서는 문화패스로 ‘퀸라이브홀’, ‘롤링스톤즈’ 등 라이브클럽 12곳과 소극장 4곳을 이용할 수 있다. 문화패스는 각 지구별로 한 장에 1만원이며, 온라인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남은 문화패스는 지구별 안내소에서 판매한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http://cafe.naver.com/seoulopennight)에서 확인하면 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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