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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대 성장·7% 초반 실업률 ‘숙제’… 美는 경제회복 원한다

    2%대 성장·7% 초반 실업률 ‘숙제’… 美는 경제회복 원한다

    6일(현지시간)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4년간 최우선적으로 경제를 회생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그가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 막판 대추격을 당한 것도 장기화된 경기침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선거 기간 둘로 갈라진 민심을 융합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도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한 뒤 2기 임기에서는 경제 회복과 재정 균형을 이뤄 높은 인기로 백악관을 떠난 바 있다. 지상과제는 국민 불만의 진원지인 높은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지난달 현재 8% 미만(7.9%)까지 떨어진 실업률을 적어도 7% 초반까지 낮추기 위해 오바마는 당분간 저금리 기조 아래 돈을 대규모로 푸는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3차 양적완화의 조정이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단기국채 매도, 장기국채 매수) 연장 실시 등은 언제든 단행될 수 있다. 부동산시장 활성화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최소 2%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달성을 1차적인 경기 회복 조짐으로 보고 있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감축도 숙제다. 오바마는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종식에 따른 국방비 삭감과 부유층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또다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협조가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어서 계획 관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자칫하면 지난해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을 불렀던 여야 간 극한 정쟁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 오바마가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는 건강보험개혁(오바마케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정책이 됐다. 이번 선거 내내 “당선되면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했던 롬니가 패배했기 때문에 오바마케어는 명분을 다지게 됐으며, 관련 법률에 따라 오는 2014년부터 ‘전국민의료보험’ 체제가 본격 가동된다. 이민정책도 더욱 유화적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오바마는 이미 올해 대선 국면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젊은 층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목표로 한 ‘외교적 성과’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이스라엘의 이란 핵 시설 공격 가능성이다. 이스라엘의 성향상 미국의 ‘허락’ 없이도 감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바마로서는 외교적 해결 노력을 우선시하며 이스라엘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시코쿠 기차 여행

    시코쿠 기차 여행

    매일 서너 시간씩 꼬박 기차를 탔다. 명승지가 많은 도시도 갔고, 역장 없는 간이역도 들렀다. 오솔길처럼 난 숲 속을 한 량짜리 기차로 달릴 땐 거의 창문에 매달려 갔다. ‘올 시코쿠 레일 패스’로 본전 뽑고 돌아온 시코쿠 기차 여행.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동미 취재협조 럭키투어 02-734-6656 4박5일간의 느린 여행 기차여행에는 비행기나 배로 하는 여행과는 다른, 막연한 낭만이 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릴 때, 생각은 아무런 제약 없이 쑥쑥 커지고 상상이 되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여행의 기술>에서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에서도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기차일 것’이라고 썼다.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며’ 영감을 준다. 한가로운 논과 밭을 옆에 두고 달리면서 나의 생각들도 적당한 속도로 함께 달렸다. 2년 전에 왔던 시코쿠의 늦겨울을 기억해냈고, 폭염이 쏟아지는 시코쿠의 여름 속에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서 사라졌다. 돌아다니느라 땀을 흠뻑 흘리고 올라탄 시코쿠의 열차는 시원한 여유와 휴식을 제공하며 다음 목적지로 데려다주었다. 4박5일 동안 기차를 타고 시코쿠에 있는 네 개의 현들을 모두 밟아 봤다. 시코쿠는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섬이지만, 섬 안에 네 개의 현(우리나라로 치면 도)이 있는 큰 섬이다. 때문에 네 개의 현을 다 다니려면 여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올 시코쿠 레일 패스’가 있어 더욱 살뜰히 돌아볼 수 있었던 여행이다. 올 시코쿠 레일 패스는 JR 노선뿐만 아니라 지역간 특급열차와 기타 사철, 전차 등을 정해진 기간 내에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2일, 3일, 4일, 5일짜리 패스 중 자신의 일정에 맞게 선택해 원하는 지역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면 된다. 한두 여행지에서 충분히 머무는 게 목적인 사람보다는 다양한 열차를 타고 시코쿠의 작은 마을들을 만나 보고픈 여행자에게 더 유용하다. 한 칸짜리 카이요도 하비 열차를 타고 좁은 숲속 길과 작은 마을의 간이역들을 지난 시간은 이번 기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도 다녀왔고, 무인역에서 일하는 개암나무 할아버지도 만났으며, 고치에 사는 요괴들도 만나고 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고토히라에서 고토덴 열차를 타고 리츠린 공원에 도착하는 중 2 오보케협곡을 따라 30여 분간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 3 세토내해의 드넓은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이시즈치 특급열차 4 작은 간이역들과 깊은 산속 길을 달려 도착한 오보케역의 풍경 5 고토히라구 신사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비석들. 신사에 헌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비석들이다 6 도롯코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던 도카와역 ▶travie info * 시코쿠 가는 방법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다카마쓰(가가와현)와 마쓰야마(에히메현)로 가는 직항편을 일주일에 3회 운영하고 있다. 마쓰야마로 가는 항공편은 화·금·일요일, 다카마쓰로는 화·목·일요일에 출발한다. 다카마쓰로 입국하고 마쓰야마에서 출국하는 일정(그 반대)도 가능하다. 인천에서 소요시간은 각각 1시간 30분여 정도다. * ‘올 시코쿠 패스’란? JR뿐만 아니라 기타 사철 및 지역철도도 이 패스로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한 칸짜리 특급 열차에서 전차, 지역간 특급열차 모두 탑승 가능하다. 자유석은 물론 패스를 이용해 좌석을 미리 지정할 수도 있다. 시코쿠의 다카마쓰역, 마쓰야마역, 도쿠시마역, 고치역 내 관광안내소와 간사이 우메다역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판매 신청서를 작성하면 바로 구입 가능하다. 한국판매점 럭키투어 02-734-6656 www.tourismshikoku.kr 가격┃어른┃2일 패스 6,300엔, 3일 패스 7,200엔, 4일 패스 7,900엔, 5일 패스 9,700엔 어린이┃2일 패스 3,150엔, 3일 패스 3,600엔, 4일 패스 3,950엔, 5일 패스 4,850엔 칙칙폭폭 첫째 날 다카마쓰에서 시작하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인천에서 바로 도착하는 가가와현의 다카마쓰 공항이나 에히메현에 있는 마쓰야마 공항을 통해 시코쿠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다카마쓰에서 시작해 에히메현의 마쓰야마시를 거쳐 고치현의 시만토 강을 건너고, 도쿠시마현의 오보케 협곡을 지나 고토히라에서 머문 뒤 다시 다카마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꼬박꼬박 3~4시간 이상 기차를 탔는데, JR기차를 포함해 호빵맨 열차, 피규어로 장식된 가이요도 하비 트레인, 사방이 뚫려 있는 토롯코 궤도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로 갈아탔다. 게다가 내리는 역에서는 타고 온 기차 노선의 이름이 적힌 호빵맨 도장을 찍을 수 있었는데(심지어 기차 안에서도!), 꼬마들은 당연히 좋아하거니와 어른들도 꾹꾹 도장을 찍는 게 그리 유치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행은 평소에 하지 않는 일탈과 엉뚱함과 자유를 위한 시간 아닌가. 그래서 읽던 책 맨 뒤 페이지에 나도 호떡만큼 큰 호빵맨 도장을 꾸욱 찍고 다카마쓰역에 내렸다. 다카마쓰시가 있는 가가와현은 400년이 넘은 리츠린 공원과 연간 수백만명의 참배객이 찾는 고토히라 궁, 세토대교 부근에 위치한 세토우치 미술관 등 볼거리가 풍부한 여행지다. 특히 다카마쓰항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나오시마섬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과 베넷세 하우스 등 섬 전체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예술품으로 꾸며진 ‘아트의 섬’으로 유명하다. 가가와현에서 하루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나오시마 섬을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다카마쓰 시내에서 머문다면 다카마츠츄오 상점가는 필수 코스다. 총길이 2.7km에 이르는 일본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 상점가로, 이 안에는 무려 800여 개에 달하는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워낙 상점가가 거대하다 보니 안에는 다시 8개의 개성 강한 쇼핑거리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거리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다. 20년에 걸쳐 단계별로 정비해 온 이 거리는 오래된 일본의 상점가를 되살리려는 사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유리로 천장이 만들어진 아케이드는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고, 날씨에 관계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 편리하다. 루이비통 매장까지 들어선 이 상점가의 한 이자까야에서 닭다리 구이와 맥주를 마시며 첫날밤을 보냈다. 다카마쓰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닭다리 구이인데, 어미 닭다리 구이와 새끼 닭다리 구이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살이 연하고 야들야들하면서도 독특한 후추맛이 나는 영계 닭다리 구이와 기린 생맥주를 마시니 일본 여행이 달착지근하게 감겨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이시즈치 열차 앞 기차 안내원 2 현재 일본에 12개밖에 현존하지 않는 에도시대 이전에 건축된 천수의 마쓰야마 성 3 이마바리역 내에 위치한 자이언트 스토어 4 에히메현의 도고온천역 앞에 있는 봇짱 가라쿠리 시계. 매 정시마다 시계탑이 열리고 <봇짱>의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5 정겨운 마을과 숲속 오솔길을 달리던 한 량짜리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 칙칙폭폭 둘째 날 봇짱열차 타고 과거로 다카마쓰 ▶▶▶ 마쓰야마 도고온천 다카마쓰에서 마쓰야마로 가는 특급열차 ‘이시즈치’는 시코쿠섬 북서부의 세토내해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바다와 경사면을 따라 자리한 마을의 경치를 기차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코스다. 구루시마 해협 근처에 있는 아마바리역에 잠시 내려 구루시마 해협의 대교와 시마나미 바닷길도 헤아려 본다. 시마나미 해도는 이마바리와 히로시마현을 9개의 다리로 잇고 있는 해도로, 약 70km의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사이클링 명소로도 손꼽힌다. ‘사이클링의 성지’답게 이마바리역 옆에는 유명한 스포츠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자이언트 스토어가 위치해 있다. 일본 전역에 있는 8곳의 자이언트 스토어 중 최초로 렌탈 사이클 서비스를 선보이는 이곳에는 전문장비와 샤워룸까지 갖추어져 있어 사이클링 루트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사람들은 이곳에서 크로스 바이크와 헬멧을 대여해 ‘선라이즈 이토야마’로 먼저 간다. 60번째 사이클링 터미널인 이곳에 구루시마 해협 대교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에히메현의 최대 도시인 마쓰야마에서는 도고온천을 빼놓을 수 없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1894년에 건축된 도고온천의 본관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목욕탕 ‘아부라야’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에도 등장한다. 저녁 무렵이 되자 유카타를 입고 수건을 든 사람들이 온천 앞 거리를 활보한다. 그 풍경이 시계를 되돌려 19세기로 돌아간 듯 낯설고 옛스럽다. 마침 봇짱 가라쿠리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튀어나왔고,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나는 마쓰야마에서 봇짱열차를 타고 과거로 가고 있었다. 칙칙폭폭 셋째 날 호빵맨, 피규어와 함께 고치 ◀◀◀ 마쓰야마 아침 일찍 마쓰야마에서 우와지마로 가는 특급열차 ‘우와카이’에 올랐다. 특급열차들은 속도가 빠르고 편안했지만 셋째 날까지 타고 온 열차들이 비슷비슷해서인지 기차 여행에 대한 감흥도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 탄 호빵맨 오렌지 열차가 동심 어린 볼거리를 던져 준다. 호빵맨 열차는 이 만화를 그린 야나세 다카시 작가가 고치현 출신이라 시코쿠에서 운행하는 열차노선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다행히 호빵맨 열차 뒤에 탄 카이요도 하비트레인부터 풍경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푹푹 찌던 날씨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비를 뿌렸다.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은 일본 피규어 제조회사인 ‘카이요도’사의 피규어들을 차량 안팎에 디자인한 기차인데, 달랑 한 량짜리 열차라는 점이 특이했다. 한 량짜리 기차에 기관사는 세 명이다. 앞에 두 명, 뒤에 한 명이 앉아 운전을 한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철로가 미끄러워 열차는 경사면을 오르지 못했다. 기관사들이 내려 철로 위에 모래를 뿌려놓고 다시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기차를 몰았다. 그 숲 속에서 예고 없이 15분 정도가 흘렀다. 멀리서 나란히 달리던 논과 평야는 어느새 사라지고, 고치현의 산속 작은 마을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작은 마을과 간이역을 촘촘히 지나면서 비를 맞은 풍경은 더욱 싱그러운 녹색으로 진해졌다.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와 도사만으로 흘러가는 시만토강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만토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휴게소에서 이 지방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소박한 점심도 먹었다. 도카와역에서 일행은 도롯코 열차로 갈아타고 여정을 이어간다. 이번엔 두 량짜리 열차다. 뒤에 달린 칸은 그나마 창문도 없다. 사방이 다 뚫린 기차는 터널과 숲속 길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달렸다. 비가 들이쳤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앞 칸으로 피하지 않았다. 시만토강을 내려다보면서 달리는 이 절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도롯코 열차가 우쓰이가와역에 섰고 그곳에서 일행은 카이요도 하비관과 갓파관을 둘러보았다. 카이요도 하비관은 2009년에 폐교가 된 우쓰이가와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으로, 카이요도사의 역사와 피규어 콜렉션을 모아 놓은 곳이다. 세계적인 프라모델들과 최신 피규어, 공룡, 미소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름부터 생소했던 갓파관은 쉽게 말하면 일본에서 전래되어 오는 상상의 동물 ‘갓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시코쿠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갓파는 머리에는 접시, 손과 발가락에는 물갈퀴가 달렸고 입이 튀어나온 요괴인데, 인간의 나쁜 액을 막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시코쿠의 내륙에는 깊은 산과 계곡이 많아서인지 산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요괴도 많다. 요괴 인형은 식당 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하면, 사물함에도 붙어 있다. 마음 한켠에는 요괴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요괴들을 정겨운 이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인상 깊게 남았다. 1 폐교가 된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 카이요도 하비관 2 개구리와 원숭이를 합쳐 놓은 듯한 상상의 동물 갓파를 다양한 조각과 캐릭터로 전시해둔 갓파관 3 기차 안 한켠에 공룡과 다양한 캐릭터의 피규어들을 전시해둔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 4, 6 열차의 외관과 내부가 호빵맨과 그 친구들로 그려진 호빵맨 열차 5 지난해 7월 카이요도 하비관의 개장과 함께 1년간 운행하기로 했던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은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 1년 더 연장 운행 중에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칙칙폭폭 넷째 날 비경을 가르는 도산선 루트 코토히라 ◀◀◀ 도쿠시마현의 오보케 ◀◀◀ 고치 시만토강을 굽어보고 고치를 거쳐 오보케 협곡을 지나는 JR 요도선과 도산선 루트는 이번 기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었다. 고치의 자연 비경과 순박한 사람들을 고스란히 만나는 길이라 더욱 생동감이 넘쳤다. 오보케역에 내리니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역장 모자를 쓰고 앞니가 두 개뿐인 남자 형상의 나무 조각상이 서 있다. “오보케역은 무인 간이역입니다. 도착하신 분들이 이곳에 아무도 없어 쓸쓸할까 봐 마을 사람들이 개암나무로 역장 할아버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 위에 보시면 위임장도 보이시죠? 고나키 할아버지는 작년 7월부터 이 역으로 출근을 하고 계신데요, 아직 한번도 안 나온 날이 없으시답니다.” 마을 관계자의 말을 듣고 보니, 고나키 역장의 표정이 마치 ‘어서 오십시오’하고 말하는 듯했다. 역 안에는 역무원 모자를 쓴 개의 사진도 걸려 있었는데, ‘고오타로’라 불리는 이 개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에 출근해 고나키 역장 할아버지의 일을 돕는다고 했다. 이 정겨운 스토리에 나는 오보케 마을을 보기도 전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인역 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쓸쓸함을 이 마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오보케역에서 보이는 빨간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 지역은 오보케와 이야 마을로 나뉘는데, 우리가 들어선 곳은 이야 마을쪽이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보께마트에서는 주인 유키코 아주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맞는다. 이 마트에서는 이야 마을에서 만드는 식료품들을 살 수 있는데, 겉이 매우 딱딱한 이와 두부와 이 마을에서 만든 녹차 등을 쉴 새 없이 권하신다. 훈훈한 이야기만큼 후한 인심과 정이 뚝뚝 묻어나는 마을이다. 일본에서 3대 비경으로 꼽히는 이야 계곡은 츠르기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강의 물줄기가 시코쿠 산지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20km에 걸쳐 이어진다. 우리는 2억년 전의 지층인 함력편암이 바위와 절벽을 이룬 오보케 협곡 아래의 강줄기를 따라 30분 동안 뱃놀이를 즐겼고, 덩굴나무를 엮어 만든 흔들다리 ‘카즈라바시’도 건넜다. 10여 미터 아래의 계곡물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길이 45m의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영원히 건너지 못할 다리처럼 여겨졌으나, 거의 울다시피 하며 겨우 건넜다. 어쨌든 짜릿한 스릴을 느끼기에는 최고다. 신선한 가다랑어를 통째로 꼬치에 끼워 구운 것을 사람들이 핫도그처럼 들고 다니며 먹는 모습도 신기했다. 오보케의 마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다. 오보케 협곡에서 뱃놀이와 다리 건너기로 기력을 소진한 채 난푸 20호를 타고 고토히라에 도착했다. 온천 호텔에 머물며 낮의 피로를 풀고 싶었으나, 온천욕은 밤으로 미루고 고토히라구에 먼저 올랐다. 일본에서 2대 신사로 꼽히는 이곳은 ‘곤피라산’이라 불리는 수호신을 참배하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참배길은 사람이 못 오면 개의 목에 돈을 달아 대신 보낼 정도로 유명했고, 일생에 한 번은 참배하고 싶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785단의 긴 돌계단을 오르면 고혼구에 이르며, 여기서 583단의 계단을 더 오르면 최종 목적지인 오쿠샤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부적을 사고 소원을 빈다. 탁 트인 사누키 평원과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사누키 후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 소원이 사누키 평원을 지나 후지산에도 닿기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1 무인역인 오보케역에서 고나키 역장을 도와 일요일마다 역으로 출근을 하는 고오타로 강아지 2 덩굴나무만을 엮어 만든 카즈라바시 다리 3 오보케 협곡 유람선 표를 파는 지역 휴게소 내의 음식점 한켠에는 고치현에 사는 요괴 인형이 놓여 있다 4 고토히라구의 고혼구 부근에 세워져 있는 석등 5 오보케역에서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개암나무로 만든 고나키 역장 6 고토히라역에서 내리면 유난히 낡은 상점과 집들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운치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1 이야 계곡 주변에는 카케나가시 원천의 노천탕을 갖춘 온천도 여러 곳 있다 2 100여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야마을의 오보케역에 놀러나오신 동네 할머니 3 이야마을로 시집 와 51년째 살고 있는 보께마트의 유키코 아주머니. 마을에서 직접 딴 고추 바구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4 고토히라 신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길거리의 작은 사물함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미주통신] 뉴욕시장 ‘도로는 차를 위한 것 아니다’ 선언

    평소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진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이번에도 공식 석상에서 대중교통 이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뉴욕포스트가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블룸버그 시장은 이날 뉴욕대학(NYU)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사람들은 종종 원래 길이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면서 “길은 사람들이 통행하기 위해 있었던 것이며 차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중교통, 자전거와 통행자가 도로를 정체하게 하는 자동차보다 더욱 중요하다.”면서 “생필품 등을 운반하는 트럭 등은 막을 수 없지만, 따라서 대중교통은 무엇보다고 경제를 마비시키는 차량 정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한편, 블룸버그 시장은 뉴욕이 더욱 안전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여러분이 여성이라면 대낮에는 어느 이웃이든 걸어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단지 밤에는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범죄율이 많이 하락하고 있는 원인이 반드시 아이폰 때문만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사람들은 아이폰5는 사면서도 갤럭시3는 사지 않는다”고 농담을 던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Weekend inside-’대선 풍향계’ 여론조사 해부] 100여곳 난립… 상위 10곳 매출 60% ‘독식’

    26일 여론조사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많게는 100여곳 정도의 여론조사기관이 있다. 이 가운데 53개 업체가 한국조사협회(KORA)와 한국정치조사협회(KOPRA)에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한국조사협회는 마케팅·시청률·정치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 41곳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정치조사협회에는 사회정치 분야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12개 업체가 속해 있다. 협회에 가입되지 않은 군소 업체도 30~50곳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마케팅과 정치 분야 등을 망라해 한해 여론조사 시장의 매출액 규모는 4000억~5000억원쯤 된다. 여론조사 업체 사이에도 양극화 현상은 있다. 상위 10개사가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상당수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체 양극화는 직원 규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닐슨컴퍼니코리아의 직원 수는 지난해 기준 410명이다. TNS 코리아 297명, 입소스코리아 265명, 한국리서치 260명, 한국갤럽 150명, 엠브레인이 128명에 이른다. 하지만 직원 수가 채 50명을 넘지 않는 업체도 많다. 매출액도 상위 업체의 100분의1도 안 되는 업체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선전화보다 휴대전화가 확산되면서, 비싼 통신료에 부담을 느끼는 업체도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직원 숫자가 여론조사의 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직원 수는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마케팅 조사 업체가 선거 등 정치 전문 조사업체보다 사정이 더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케팅 조사가 업계 전체 매출액의 80%를 차지할 정도다.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정치 이벤트가 많아야 1~2년에 한번꼴로 이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희소성 탓에 조사 비용은 정치 조사가 마케팅 조사보다 최대 5배까지 비싸다. 마케팅 조사는 1회에 100만~200만원이지만, 정치사회 조사는 1회에 700만~1000만원에 육박한다. 1000명 대상 여론조사면 응답자 1명당 1만원에 해당하는 셈이다. 현재 사회정치 분야 여론조사를 주로 하는 업체 가운데 ‘빅5’로는 한국리서치, 밀워드브라운미디어리서치, TNS코리아, 한국갤럽, 엠브레인이 꼽힌다. 영세 업체들은 선거 시즌에 반등의 기회를 노린다. 이때면 각 언론사와 정당, 정치 관련 단체들의 여론조사 의뢰가 빗발친다. 특히 올해는 ‘초 성수기’로 통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초미의 관심사인 데다, 여야 후보 간 양자 구도에서도 박빙의 승부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10원이라도 더 싸게” 대형마트 삼겹살 전쟁

    “10원이라도 더 싸게” 대형마트 삼겹살 전쟁

    라면과 햇반, 과자 등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으려는 대형상점들의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1, 2위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창립행사의 하나로 주요 생필품들에 대한 가격을 최대 50%까지 인하하는 데 이어 대표 서민 음식인 삼겹살을 둘러싸고 10원 단위의 할인 경쟁을 벌이는 등 업계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하는 데 만족해하면서도 일부에서는 잇단 가격 변동에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이마트는 25일부터 3주간 주요 생필품 2000여개를 최대 50% 싸게 파는 개점 19주년 맞이 고객 감사행사를 벌인다. 개점 이래 최대 규모로 ‘10년 전 가격으로 판다’는 캐치프레이즈도 내걸었다. 대표 품목이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폭락한 돼지 삼겹살이다. 이마트는 삼겹살 100g을 기존 판매가보다 43% 저렴한 850원에 내놓았다. 풀무원 두부도 시중가보다 50% 싼 3400원(390g), 종가집 포기김치(1.7㎏)와 계란(30개)은 각각 46% 저렴한 1만 4100원, 2800원에 살 수 있다. 참굴비는 40마리에 9900원이다. 이에 질세라 롯데쇼핑 창사 33주년을 맞아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1000여개 상품을 최대 50% 할인해 팔겠다고 발표했다. 생필품에서 의류까지 다 포함했다. 돼지뒷다리, 훈제오리 등 인기 육류를 하루에 한 품목씩 정해 50% 싼 가격에 파는 ‘일별 초특가전’도 벌이기로 했다. 31일까지는 서귀포 감귤(3.5㎏)을 시세보다 30% 저렴한 8900원에, ‘못난이 신고배’도 25% 싸게 판매한다. 폴라플리스와 발열내의도 40%씩 저렴한 1만 9800원, 9900원에 팔며 2개를 사면 1개를 추가로 주는 행사도 준비했다. 삼겹살 가격 전쟁이 가장 치열하다. 롯데마트가 전날 창사기념으로 삼겹살을 40% 저렴한 100g에 980원에 판다고 나서자 이마트는 롯데마트보다 130원 더 저렴한 850원에 판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롯데마트가 곧바로 이마트보다 10원 더 낮은 840원에 판다고 나섰고 이에 이마트는 다시 850원에서 830원으로 롯데마트보다 가격을 10원 더 낮췄다. 롯데마트는 또다시 삼겹살 값을 추가 인하, 이마트와 똑같은 830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결국 ‘삼겹살 10원 전쟁’이 830원 선에서 마무리된 셈이다. 업체들이 삼겹살 가격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배추와 삼겹살 등을 대형마트의 핵심 제품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서로 홍보에서 밀릴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마트 측은 “아마 롯데마트가 삼겹살 가격을 너무 내리면서 물량 부족으로 고객들의 원성을 살 것”이라면서 “우리는 일주일간 400t에 달하는 돼지고기를 준비했다.”면서 승리를 자신했다. 반면 롯데마트 측은 “삼겹살이 가격 민감 상품이다 보니 경쟁사 가격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값을 조정했다.”면서 “준비한 물량은 모두 180t으로 1인당 2㎏으로 한정 판매하기 때문에 물량이 부족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文 “5대 부패범죄자 사면권 제한”

    文 “5대 부패범죄자 사면권 제한”

    문재인(얼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24일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과 국가청렴위원회 부활 등을 담은 반부패 정책을 발표했다. 문 후보는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청렴비전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 범죄’로 규정하고, 5대 부패 범죄자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도록 사면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5대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 단계에서부터 ‘봐주기’가 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개혁하고, 국민참여재판을 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처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 기간 공직자 임명 기준이 완전히 무너져 부동산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병역비리·논문표절이 공직 임용의 필수조건이라는 말까지 생겼다.”면서 “5대 중대 부패 범죄와 함께 이들 5가지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 절대 공직자로 임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국가청렴위원회를 다시 독립기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 주변과 친·인척 비리 척결 의지도 강조했다. 문 후보는 “나부터 실천하겠다.”면서 “대통령의 형제자매의 재산도 함께 공개하도록 제도를 개혁해 대통령 주변의 비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사회와 재벌의 부정 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공직자의 유관기관 취업 제한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공직자가 퇴직 관료와 접촉 시 부처 감사관실에 서면 보고하도록 의무화해 부적절한 로비를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중소건설사 896개 年실적 ‘0’

    지난 4월 행정안전부가 발주한 고양지방합동청사 신축 전기공사. 15억 6700만원짜리에 불과한 작은 공사였지만 공사를 따내기 위해 무려 3357개 건설업체가 달려들었다. 결과는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부산 업체가 공사를 따냈다. 이 업체는 수주는 성공했지만 현장 주변 연계 공사가 없는 터라 공사를 해도 수익이 남지 않는다. 건설공사 수익률을 8%라고 가정할 때 이 업체는 제대로 공사를 한다면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 지난해 국토해양부가 발주한 6억 2300만원짜리 한강홍수통제소 수문관측소 공사에도 1715개 업체가 참여해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였다. 중소 건설업체들이 ▲업체 수 과잉 ▲수주경쟁 과열 ▲일감 축소 ▲수익성 부진 등 사면초가에 빠졌다. 23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건설업체의 8.5%에 해당하는 896개 업체가 연간 기성 실적이 전혀 없는 무실적 업체로 집계됐다. 8000위권 이하 업체의 55%는 적자를 냈다. 종업원 50인 이하의 중소 규모 건설사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건설투자액은 145조 8000억원. 이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150조 2000억원)보다 3% 포인트 줄었다. 1970~1997년의 국내 건설투자 연평균 증가율은 10.4%를 유지했다. 1997~2011년 경제성장률이 둔화됐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4.2%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건설투자는 연평균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 당연히 건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1%에서 5.3%로 떨어졌다. 건설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중소건설사들이 설 땅은 사라지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건설업체의 98.9%가 중소건설업체이고, 종사자의 60%가 중소 건설업체에 근무한다. 하지만 중소건설사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32%, 부가가치 생산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특히 건설사의 46%가 설립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신생업체다. 건설 수행 경험이 적은 업체의 난립은 수주난으로 이어지고, 한정된 공공시장을 놓고 ‘제 살 깎아 먹기’ 식으로 경쟁하다 보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소건설사가 주로 참여하는 공공기관 발주의 적격심사공사의 2010년 평균 입찰경쟁률은 359대1을 기록했다. 경쟁률이 1000대1을 넘는 공사도 269건이나 됐다. 4억 7000만원짜리 건축 공사를 놓고 2135개 업체가 달려들기도 했다. 90%가량은 연간 공사 낙찰 실적이 한 건에 불과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자진폐업 및 등록말소 업체가 947개, 영업정지 업체가 1600개에 이른다.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전체의 22%가 건설업에서 퇴출당했다. 권오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상식적으로 높은 입찰경쟁률을 종식시킬 수 있는 변별력 있는 발주제도 개선과 중소 건설업체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골프소식]

    아이언세트 사면 하이브리드 덤 캘러웨이골프가 ‘레이저X’ 아이언세트를 사면 ‘레이저 XF’ 하이브리드를 주는 행사를 다음 달 18일까지 진행한다. 이 아이언은 넓어진 솔(헤드의 밑부분) 내부 무게를 저중심으로 배분, 정교한 컨트롤을 제공한다. 하이브리드는 헤드 크기를 키우고 ‘오프셋’(샤프트 연장선과 페이스 날 사이의 간극)을 증가시켜 최적의 볼 탄도와 비거리를 낼 수 있게 했다. (02)3218-1980. 스릭슨 2013모델 Z-시리즈 던롭스포츠코리아가 상급자용 2013년 신모델 ‘스릭슨 Z-시리즈’를 23일 출시했다. 원하는 탄도로 과감한 공략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연철 단조 아이언으로 3가지 유형의 헤드와 다양한 샤프트를 선택할 수 있다. 특수 밀링 가공으로 볼과 접촉면의 마찰력을 균일화, 안정된 스핀 성능을 실현시켰다. 헤드 타입에 따라 스릭슨 Z-925, Z-725, Z-525 모델이 있다. (02)3462-3957.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서재필(1863~1951)와 윤치호(1865~1945) 두 사람은 개화파의 막내들로서 10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을 거쳤고, 1884년 갑신정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정식 대학교에 진학해 근대 서구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근대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들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크게 엇갈린다. 서재필은 독립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면 윤치호는 친일파의 대표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만들었을까. ●갑신정변 행동대장 vs 美 공사관 통역관 서재필은 19세였던 1882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으나 무관으로 과감히 변신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를 나온 후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변 과정에서 고위 대신들을 살해하는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 길에 올랐다. 한편 윤치호는 16세였던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의 수행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남아서 도진샤(同人社)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발탁돼 귀국하였다. 윤치호는 갑신정변 주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변에 반대했고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치호는 당시 김옥균 일파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중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냉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서재필은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야간 의과 대학을 나와 마침내 1893년에 의사 면허를 받았다. 1890년에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4년 뒤에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였다. 한편 윤치호는 1885년 초 중국 상하이 중서학원에서 유학을 시작했으며 1887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88년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으로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였지만, 시민권 취득이나 국제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친 후 중국 중서학원으로 돌아가 교사가 됐다. ●서재필, 의사 되며 ‘원조’ 아메리칸드림 이뤄 서재필은 1894년 갑오개혁 정권의 귀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1895년 12월 귀국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중추원 고문관에 취임하였고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데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1897년 후반 러시아의 만주 침략과 조선 진출 정책이 강화되자 반러적 입장을 드러내다가 중추원 고문에서 해고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해 이름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사용했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때는 제손 박사 또는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였다. 한편 윤치호는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학부협판이 되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동파’로 분류됐고 을미사변으로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그는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다녀왔다. 따라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귀국 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개조했다. 그는 서재필이 떠난 후 독립신문을 운영했고, 이완용에 이어 1898년 8월부터 독립협회 회장을 맡아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개혁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만민공동회가 폭력화되어 결국 강제 해산되자 지방관으로 떠남으로써 독립협회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대한제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선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재필은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잡지, 책자를 발행했다.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고 노력하였다가 실패하자 항일활동을 마감하였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한자강회의 회장이었고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했으며 안창호와 협력해 대성학교 교장과 청년학우회 회장을 맡았고 YMCA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윤치호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는 3·1 운동을 전후하여 파리 강화회의 대표, 임정 참여,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미국 망명 등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열강이 조선을 도와 일본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일본의 통치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을 품었지만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설령 독립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 vs 일본인 된 윤치호 서재필은 1922~1927년 갑자기 국내 일간지와 잡지 등에 다시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식민지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에서 찾았고,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주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그가 1937~1938년에 미주 한인 2세를 위해 ‘신한민보’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MY DAYS IN KOREA’(나의 조선 시절)를 보면 대부분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고 개화파를 정당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맞서 싸우는 미국 시민으로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 日전쟁 승리를 백인인종차별 극복 간주 한편 윤치호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시작되고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는 시기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일본 국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한국 기독교의 ‘일본화’를 주도했으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까지 선임되었다. 그의 친일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강요라기보다는 당시의 조건 속에서 조선 민족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이 구미 열강에게 승리하는 것을 황인종이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이긴 것으로 열광하였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일본이 소련에 승리하기를 기원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를 통해 민족차별 정책이 철폐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군정 고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 대해 반대하면서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국에 머무르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윤치호는 더는 공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죽기 몇 달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해방은 항일민족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이루자고 호소하고 있다. 윤치호가 1945년 12월 사망하여 1947년 7월 미군정 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과의 재회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년 볼 것인가 vs 인생 전체 평가할 것인가 서재필은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도전과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투쟁과 희생을 요구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희생적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재필이 서재필로 산 것은 불과 27세까지였고 나머지는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해방 후 부모의 묘소조차 참배하지 않았다. 그의 묘지명에는 분명히 필립 제이슨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택한 필립 제이슨의 유해를 억지로 국내로 모셔와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분명히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반면에 윤치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 국민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필요로 한 민족 저항의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이 합해서 5년이 안 되지만 대체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서재필은 긴 세월을 자의에 의해 미국인으로서, 윤치호는 타의에 의해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필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반면에 윤치호에 대해서는 매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윤치호의 친일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을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이 든다. 하지만 그의 친일을 ‘협력’ 또는 ‘친일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인물의 굴곡에 찬 긴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학자로 살아가면서 점점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文 “당선 땐 인수위부터 재벌개혁 시작”

    文 “당선 땐 인수위부터 재벌개혁 시작”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5일 “경제민주화는 기업을 옥죄는 조치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살아나기 위한 예방주사”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인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가 대기업의 경제활동을 억제하거나 투자와 성장을 저해하자는 취지는 아니다.”라며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재벌구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70년대 이후 한국에 이렇다 할 대기업이 출현하지 않는 것도 공고한 재벌체제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 단체를 방문한 건 처음이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 때보다 법인세 부담을 더 늘릴 생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중소기업에 법인세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이어 “조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실효 세율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면서 “중소기업 고용에 대해 세액 공제를 강화하고 대기업에 집중되는 조세 감면은 축소하거나 정비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형 뉴딜 정책’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뉴딜의 핵심인 규제 및 복지의 제도화를 통해 중소기업·자영업자·골목상권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뉴딜정책으로 1930년대 미국을 경제 대공황에서 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문 후보는 이날 저녁 여의도 기자간담회에서도 “재벌이 창업 정신을 잃은 것 같다.”며 “대통령이 되면 인수위 단계부터 국민 지지를 동력으로 (재벌 개혁을) 곧바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면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건희 회장을 사면한 건 잘못된 것이며 이런 것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09년 8월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후 4개월 만인 그 해 12월 특별 사면됐다. 앞서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 글로벌연구개발(R&D)센터에서 열린 초청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문 후보는 정보통신부 복원 등 정보통신기술(ICT) 진흥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경제민주화’ 배경과 정의

    현행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2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헌법 개정과정에서 신설됐다. 바로 앞선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상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면서도 이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부작용과 문제점을 막기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통해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헌법 119조 2항은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개념을 가지게 된다. 적정한 소득분배를 강조하면 복지, 경제력 남용에 초점을 맞추면 독과점, 경제주체 간의 조화에 방점을 찍으면 기업구조 문제와 각각 연결된다.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시사경제용어 설명에서는 “현재 정치권에선 119조 2항을 근거로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 현상을 법으로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칭해서 ‘경제민주화’라고 부른다.”고 정의했다. 현재 대기업과 관련된 경제민주화 이슈로는 순환출자와 금산분리, 독과점, 일감몰아주기, 하도급 문제, 대기업 총수의 사면 문제 등이 꼽힌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오케이아웃도어닷컴서 3개 사면 1개 공짜

    아웃도어 쇼핑몰 오케이아웃도어닷컴(www.okoutdoor.com)은 아웃도어 제품 3개를 사면 1개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3개 사면 1개 공짜’ 표시가 붙은 제품 4개를 고르면 그중 가격이 가장 낮은 제품 또는 동일한 가격 제품 하나를 무료로 준다. 제품은 재킷, 바지, 등산화, 등산모자, 배낭 등 아웃도어 의류를 포함해 캠핑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모 소재 안감으로 촉감과 보온력을 높이고 마모가 쉬운 무릎 부위에 캐니스판 소재를 덧대 변형을 줄인 더포엘리언츠의 폴라클라이밍 바지가 인기다.
  • 朴, 대통합위·공약위 직접 챙겨… ‘국민통합’ 방점

    朴, 대통합위·공약위 직접 챙겨… ‘국민통합’ 방점

    11일 모습을 드러낸 새누리당 ‘박근혜호(號)’는 기능에 따른 수평적 결합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선거대책위원회(선거 지원)와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갈등 해소), 정치쇄신특별위원회(정치 개혁), 국민행복추진위원회(정책 개발), 공약위원회(정책 이행) 등 5개 조직이 병렬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박 후보는 대통합위와 공약위를 직접 챙기기로 했다. 국민대통합을 시대정신이자 자신의 정치 브랜드로 앞세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통합위는 앞으로 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싼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합위 인선에서는 호남, 민주화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우선 수석부위원장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임명했다. 한 전 고문과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과의 인선 갈등 해결을 위한 고육책 또는 생색내기용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넘어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부위원장으로는 미국 출신으로 5대째 우리나라에서 선교·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인요한 연세대 교수와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인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장이 선임됐다. 위원에는 광주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인 김규옥 목사와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특별사면된 김현장 광주국민통합2012 의장, 한경남 전 민청련 의장 등이 포함됐다. 박 후보가 공약위원장을 맡은 것은 향후 대선 가도에서 공약으로 상징되는 정책 대결을 펼치겠다는 뜻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공약위는 박 후보가 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기구”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민행복추진위가 정책 개발, 공약위가 정책 실천을 각각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당 일각에서는 공약위와 국민행복추진위가 기능 충돌에 따른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보단에서는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 대변인 출신으로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 북송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벌였던 박선영 전 의원을 북한인권특보로 기용한 게 눈에 띈다. 다만 당내 비박(비박근혜) 진영의 ‘양대 축’ 가운데 정몽준 전 대표는 공동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재오 의원은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은 점 때문에 당내 화합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캠프 내에 지지 취약 계층인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개혁 성향의 인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라는 평가가 있다. 최근 인적 쇄신 논란을 겪으면서 박 후보의 리더십에 생채기가 난 것도 향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무르시 “정치범 전원 석방”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지난해 민주화 혁명에 참여해 기소되거나 실형 선고를 받은 민간인 전원을 사면하기로 결정했다. 무르시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대통령 공식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통해 “2011년 1월 25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1급 살인을 제외하고 혁명을 지원하거나 혁명을 이뤄낼 목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면 결정을 내린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1981년부터 이집트를 30여년간 철권통치해 오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지난해 발발한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으로 물러난 이후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 6월 이집트 최초의 민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동안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청년 시위대들과 이집트 민간 활동가들은 이집트 정부에 구속 기소된 민간인에 대한 군사재판을 즉각 중단하고 사면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 7월 군사법원에서 실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민간인 457명을 석방한 바 있다. 대통령의 이번 사면 결정으로 풀려날 구체적인 사면 대상자 숫자와 석방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민주화 시위 기간에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거나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민간인 최소 1000명 이상이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에서는 민주화 시위 이후 1만 2000여명의 민간인이 군부에 의해 구금됐으며 이 가운데 9700여명이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무르시 대통령의 법률 고문인 무함마드 가달라는 “이번 결정은 혁명의 가장 중요한 승리 중 하나”라며 “혁명 세력이 현재 권력을 잡고 정책 결정을 이끌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버스폰’ 막으니 편법 폐쇄몰 뜬다

    ‘버스폰’ 막으니 편법 폐쇄몰 뜬다

    최근 ‘갤럭시노트2’와 ‘아이폰5’ 등 거물급 스마트폰들이 잇따라 쏟아지는 가운데 온라인 판매업자들보다 휴대전화를 싸게 판다는 ‘폐쇄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의 제재로 ‘버스폰’(버스요금처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휴대전화) 판매가 가로막히자 법인제품 판매업자들이 저렴한 스마트폰을 찾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편법 운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스마트폰 과잉 보조금에 대한 시장조사에 나서면서 휴대전화를 온라인 판매업자들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폐쇄몰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은 비공개로 운영되지만, 일부는 포털 사이트의 지식검색 등을 통해 인터넷 주소를 알아낼 수 있다. 원래 폐쇄몰은 기업이 임직원과 VIP 고객들에게 제품을 시중보다 70~80% 저렴한 가격으로 은밀하게 판매하는 곳을 말한다. 의류 및 유통업계에서 일반화된 ‘패밀리세일’ 사이트들이 대표적이다. 제품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가져가면서도 재고를 소진하고 임직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스마트폰 폐쇄몰들은 초대받은 회원들에 한해 최신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휴대전화들을 할인 판매한다. 누구나 가입해 공동 구매로 스마트폰을 싸게 사는 ‘버스폰 카페’들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폐쇄몰들은 카페 쪽지 등을 통해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법인영업용 특판 제품들까지 판매한다. 법인용 제품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파는 것은 불법이다 보니 폐쇄몰들이 방통위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다. 최근 폐쇄몰이 인기를 끄는 것은 지난달 100만원에 가까운 최신 스마트폰들이 10만원대에 팔린 ‘버스폰 대란’이 큰 역할을 했다. 시장 왜곡을 경험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스마트폰을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어떻게든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구입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한 폐쇄몰에서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3’ 등 최신 제품들을 할부원금 없이 판매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통사나 제조사, 대리점들이 아직도 방통위의 눈을 피해 은밀히 보조금과 장려금 등을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통사가 가이드라인(27만원) 이상의 스마트폰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제재를 가하도록 하고 있지만, 폐쇄몰에 대해서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버스폰 대란 이후 제조사 차원에서의 장려금 지급은 중단된 것으로 안다.”면서 “아마도 상당수 카페는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폐쇄몰로 위장 홍보하는 일반 휴대전화 커뮤니티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열린세상] 안철수 후보에게 기대하는 정치혁신/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열린세상] 안철수 후보에게 기대하는 정치혁신/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안철수 전 교수가 지난달 19일 구세군 아트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또 지난 7일에는 일곱 가지 정책 비전을 발표했다. 하지만 출마선언 회견문이나 정책공약문에서는 국정을 담당할 최고책임자로서의 구체적인 비전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후보에게 정말로 기대할 내용이 보였다. 안 후보는 말했다. 그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있다. 정치가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혁신이라는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고 결론지었고, 정책선언문에도 문제가 아니라 답을 주는 정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망가뜨린 불신의 극치인 정치 혁신이라는 역사적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대선에 출마하게 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논리적으로 안 후보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흐트러지고 분열되고 서민의 삶이 질곡으로 가득한 것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여의도 정치에, 기성의 정치꾼들에게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은 기존의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잘못된 모든 책임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몰아붙인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여기에서 안 후보의 진정한 정치적 역할과 대권 출마의 진정성을 기대해 볼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 혁신이라는 역사적 숙제는 무엇이고, 그런 정치 혁신의 역사적 숙제는 과연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일까? 또한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풀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한 것일까? 그러나 모든 문제의 출발이 정치판에 있다는 안 후보의 문제 인식과는 달리 정치 혁신의 문제는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여도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국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표현만 달리 했을 뿐 역대 거의 모든 대통령들, 그리고 이번 대선에 도전하는 박근혜·문재인 후보도 결국 정치 혁신을 이루고 대한민국을 제대로 경영해 보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철수 후보가 말한 정치 혁신 또는 답을 주는 정치라는 역사적 숙제는 엄청난 기득권에 사로잡힌 정치집단 스스로가 기득권을 포기할 경우에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즉, 정치 혁신은 여의도 정치꾼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만 양산하는 저들에게 정치 혁신을 바라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돌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안 후보가 말한 정치 혁신이라는 역사적 숙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다! 안철수 후보와의 연대가 대선 필승 방정식이 됨으로써 정치 혁신의 단초가 생겨났고, 안 후보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는 역설의 희망이 탄생했다. 단적으로 안철수 후보가 말한 정치 혁신이라는 역사적 숙제는 정치의 참된 민주화이다. 이 경우에 정치에 질릴 대로 질린 국민들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답을 위한 정치, 그러므로 안 후보가 그렇게 바라는 정치 혁신을 위한 제도적 방안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첫째, 국회의원 숫자를 반으로 줄인다. 둘째, 국회의원의 세비를 반으로 줄인다. 셋째, (사면과 죄명을 불문하고) 금고 이상의 경력자는 국회의원 출마자격을 제한한다. 안철수 후보는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을 받아들일 대선후보, 그리고 이런 정치적 공약을 내세울 정당과 연대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런 정치적 약속을 지킬 대선후보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안 후보가 직접 그런 정당의 대선후보가 되어 정치 혁신을 이룰 대통령으로 선택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정치 혁신이라는 역사적 숙제를 푸는 길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안철수 후보는 대한민국 정치의 민주화를 이룩한 역사적인 인물로 영원히 우뚝 남을 것이다. 이것이 안철수 후보에게 주어진 진정한 역사적 숙제가 아니겠는가?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1895년 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과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의 간섭에 굴복하여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였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러시아가 동아시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 하겠다는 것과 일본이 아직 그에 맞설 만한 힘을 갖지는 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노출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는 조선의 왕실과 개혁관료들이 힘을 합하여 일본의 간섭을 배제한 근대개혁도 가능한 상황이 왔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이 택한 방법은 왕실을 무력화시키거나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왕실의 반격으로 박영효와 유길준은 권력에서 쫓겨나 오랜 일본 망명생활을 했다. 박영효는 삼국간섭 이후의 정세변화를 이용하여 일본 측의 반대에도 김홍집을 총리대신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박정양, 이완용과 같은 친미근왕적 관료들과 함께 박정양-박영효 연립내각을 출범시켰다. 한편, 일본이 강요했던 차관교섭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이때 박영효는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개혁을 주도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조선협회를 조직하여 개화세력의 정치조직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박영효, 왕실 무력화 계획 드러나 ‘몰락’ 그러나 여기서 그는 과욕을 부리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1895년 6월 말 박영효는 당시 궁궐을 지키던 시위대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던 훈련대로 교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왕실마저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고종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였으나 박영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모종의 과격한 조치’를 취하려 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무력으로 왕실을 제압하고 왕비를 폐비시키는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전에 일본인 장사의 편지가 유길준에게 입수되어 고종에게 보고되었고, 7월 6일 궁정회의를 통해 박영효의 체포가 결정되었다. 결국, 박영효는 일본 공사관의 협조를 얻어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하늘을 찌르던 그의 권력은 8개월 만에 좌절되고 만다. 이후 왕실은 본격적으로 왕권 회복을 시도하였다. 근왕세력들을 내각에 포함하는 한편, 유길준을 의주부 관찰사로 좌천시켰다. 왕실 측근 홍계훈을 훈련대 연대장에 임명한 것도 일본의 지휘를 받는 훈련대를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보호국화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무력을 이용한 권력의 재탈환을 위해 외교 경험이 전무했던 군 출신의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파견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일본군과 민간인이 주도하고 조선의 훈련대가 협력하여 왕비를 시해하고 김홍집-유길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이었다. 유길준이 여기에 직접 개입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지만, 그는 왕비를 폐서인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정당화시켜 주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왕비를 ‘세계 역사상 가장 나쁜 여자’라고 하면서 시해를 정당화하는 편지를 미국의 모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왕비 시해사건의 방조자로서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유길준, 단발령 반대 의병운동 부딪쳐 ‘추락’ 이후 유길준은 내부대신으로서 김홍집 총리대신과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며 개혁을 주도하여 이 시기를 김홍집-유길준 내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불과 1년 만에 주사에서 대신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도했던 단발령의 시행은 결국 갑오개혁은 물론 그 자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단발령에 반대하여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유길준은 한성을 수비하고 있던 병력을 지방으로 출동시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 상황을 이용하여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난 것이었다. 유길준은 체포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 일본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결국, 박영효를 왕실에 고발하여 몰락시킨 유길준은 왕실에 의해 자신도 역시 몰락하고 말았다.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일본 망명 시절에도 계속해서 정변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시 일본 측 정보문서에 의하면 두 사람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고베에서 회동을 한 적이 있었으나 망명 기간 내내 별개로 활동하였다. 박영효는 독립협회 활동을 이용하여 권력을 되찾으려 시도하였다. 그는 핵심 측근세력을 귀국시켜 만민공동회를 과격화하고 이를 통해 조성된 정치적 위기를 틈타 정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으나 일본정부의 제지로 실패하였다. 이때 독립협회 내의 추종세력들이 중추원에서 투표를 통해 대신으로 임명할 만한 인물을 추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박영효가 포함돼 있었고 이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고종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고종은 결국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고 말았다. 한편, 유길준은 박영효와 별개로 일본 육사에 유학했던 장교들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혁명일심회 사건을 주도하였다가 1902년에 발각되었다. 이로써 그는 일본의 외딴섬에서 유배생활을 4년 정도 경험해야 했다. 고종은 망명자들을 소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일본은 고종의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이용해 고종이 추진하는 자주적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바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를 전후하여 일본의 주선으로 귀국하였다. 박영효는 고종의 강제퇴위 이전에 1907년 6월 비밀리에 귀국하였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그의 특별사면을 주선하여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강제병합 후 박영효는 후작 작위를 받고 조선귀족회 회장이 되었으며 일제의 지배 아래서 대표적 친일파로 활동하다가 1937년 79세로 생을 마쳤다. 한편, 유길준은 고종이 강제로 퇴위된 이후인 1907년 8월 순종의 특사령에 따라 귀국한다. 그는 귀국 후 일본이 보호조약을 맺은 진의는 평화에 있고, 대한제국이 자초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통감정치는 한국외교의 대변이며 내정의 지도라고 옹호하였다. 또한, 헤이그 특사사건은 경거망동이었고 의병운동은 시국을 오해한 오합지졸이라 비난하였다. 그는 철저히 일본의 통감정치에 협력하였다. 유길준은 다시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활동에 주력하면서 친일적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성부민회를 조직하여 일본 통감의 부임 환영행사에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안중근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자 이완용 등과 함께 중국까지 가서 조문하였고, 이토의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이 강제병합을 당한 후 주어진 작위를 반납하였다. 그가 지향한 것은 일본의 지도로 자강을 이룩하는 것이었지 식민지배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1914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나마 부끄러움을 알았던 그의 처신은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결과로 나타났다. ●朴 끝까지 친일·兪 식민지배 반대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당대에 가장 깊이 있는 문명개화론을 바탕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개화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현실개혁을 주도했던 시기는 각각 1년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세월은 대부분 망명과 유배생활로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 것도 일본의 절대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일본을 모델로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왕권과 대립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명목상의 군주였던 일본의 천황과 달리 조선의 국왕은 국가권력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권을 조선 근대화의 걸림돌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려 하였고 전복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힘에 의존하여 왕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곧 일본의 침략이 확대됨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시도는 친일매국으로 치부되었고 몰락을 초래했던 것이다. 당시 대한제국이 자주적 근대국가를 수립하여 국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따라서 왕권과 개혁관료들이 일치단결하여 외압에 맞서면서 근대개혁을 추진하였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은 서로 끊임없이 반목하면서도 공통으로 왕권과 대립하고, 일본에 의존한 근대개혁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는 대한제국의 개혁사업 실패와 보호국화 그리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근대지상주의가 민족의식과 유리되었을 때 국가는 물론 개인들에게 어떤 비극이 나타나는지를 박영효와 유길준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서울신문·푸른역사 아카데미 공동기획
  • “대통령 임명직 10분의1로 축소…낡은 체제 끝내겠다”

    “대통령 임명직 10분의1로 축소…낡은 체제 끝내겠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7일 제시한 ‘정치 개혁’ 비전의 핵심은 특권·독점·반칙으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쇄신 및 국민의 정치 참여를 강화하는 ‘협치(協治) 시스템’ 구축이다. 이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집권 구상으로 내세웠던 ‘특권과 반칙없는 사회’의 2012년 버전이라는 지적이다. 안 후보가 제시한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 대통령 임명 및 사면권 제한 등은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참여정부의 비전과 전반적으로 맥이 닿아 있다. 이 점에서 안 후보가 정치 혁신 비전에 강한 개혁 의지를 표명하며 야권 후보의 선명성을 부각했지만, 기존 정치권에서 제기됐던 쇄신안과 크게 다르지 않고, 집권을 담보로 한 공약 과제라는 측면에서는 구체성과 실행력이 의문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안 후보는 후보 단일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의식한 듯, 정치개혁과 정권 교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자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철수식 정치개혁의 핵심 대상은 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다. 청와대·입법부(국회)·사법부(법원), 검찰 등 권부 핵심을 개혁하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안 후보는 국회 동의를 통한 대통령 사면권 행사,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 부정부패 독립 수사기구(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대법원장 및 대법관의 호선 추천제, 국회의원 겸직 금지 입법화, 국회 윤리위의 국민배심원제 도입 등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내세웠다. “현행 1만여개에 달하는 대통령의 직·간접적 임명 권한을 10분의1 이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도 했다. 그는 또 “공직자의 독직과 부패에 대한 처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감사원장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하겠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공화국에는 정의가 없고,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으로 이 원칙에 따라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전방위적인 사법 체계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참여, 범정치권이 주요 정책 공약을 공동 합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여야 합의체’ 구성도 제안했다. 안 후보는 국민과의 협치 개념과 관련해 “대통령이 혼자 나라를 끌고 가는 시대, 군림하고 통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국민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협치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지금 대한민국은 궤도를 벗어난 아폴로 13호와 같다.”며 “아폴로 13호가 나사(NASA)를 떠나 우주에 발사된 뒤 문제가 생기자 나사는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무사히 귀환시켰다.”고 말했다. 안동환·송수연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안철수 후보 정책 실천방안 내놓고 검증 받길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어제 ‘비전선언문’을 통해 집권 후 국정 운영방향과 정치개혁 등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달 19일 대선 출마선언 이후 ‘정책 없는 정책경쟁’만 강조함으로써 국정운영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던 안 후보가 비로소 구체적인 정책의 일단을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장밋빛 총론만으로는 정책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균형과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제안한 대통령 사면권의 국회 동의, 독립된 공직비리수사처 신설, 감사원장 국회 추천, 대통령 임명 공직 10분의1로 축소 등은 남은 대선기간 동안 실현성 여부를 놓고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공약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출마의 변을 담은 본인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국민의 열망을 모아놓은 ‘총론’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소수 기득권의 편만 들던 낡은 체제를 끝내겠다.’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경제를 만들겠다.’ ‘노인 빈곤 제로시대를 열 수 있다.’…. 여전히 누구나 듣고 싶어하는 당위론만 읊고 있다.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인들 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한 과제가 아니다. 구체적 정책으로 입안해 집행하자면 수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지금까지 누군가 누리던 부분에서 가져와야 한다. 갈등과 대립이 상존하는 이유다. 안 후보가 얘기하듯 ‘예의’와 ‘정성’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론 법적인 강제력이나 공권력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안 후보 측은 국민포럼을 통해 접수되는 아이디어를 다듬어 구체적인 공약으로 계속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소수 기득권층의 어떤 특권을 어떤 방식으로 박탈할 것인지,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가시적인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또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자리를 무슨 수로 만들 것인지, 노인 빈곤·등록금·취직·내 집 마련·출산과 육아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과 재원 대책도 제시하기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안 후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정책 경쟁의 토대가 마련된다. 후속조치를 기대한다.
  • 이대통령, 내곡동 특검 이광범 임명

    이대통령, 내곡동 특검 이광범 임명

    이명박 대통령은 5일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 이광범(53) 변호사를 임명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악법도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특검을 임명한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밝혔다. 최 수석은 “청와대는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해 국민적 의혹 해소에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특검은 사시 23기로 법원 내 진보 성향 연구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출신으로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법원장 비서실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이 특검은 이상훈 대법관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특검은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34)씨가 내곡동 사저 터를 경호처와 함께 사는 과정에서 실제보다 싸게 샀고 경호처가 더 비싸게 사면서 결과적으로 국고를 낭비했는지, 매입한 땅이 시형씨 명의로 돼 있어 부동산실명제법을 어겼는지 등의 의혹을 조사하게 된다. ‘내곡동 특검’은 10일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30일 동안 수사를 할 수 있고 필요하면 15일간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11월 말쯤 수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이 특검은 임명 직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입견과 예단 없는 수사, 법과 원칙에 의한 수사가 필요하다.”면서 “논란이 종식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사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김성수·홍인기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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