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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악성댓글 처벌 강화해야

    “어제까지 학교에 같이 다닌 친구가 자살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도 모자랄 판에 ‘잘 죽었다.’란 글을 올릴 수 있는지. 정말 인터넷이 싫어집니다.” 인터넷 사이버 공간이 욕설과 인신공격을 넘어선 악성댓글 ‘악플’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구석구석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이들을 향한 인신공격성 댓글이 이미 도를 넘어섰다. 지난 21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는 가수 유니(본명 허윤·26)의 사망기사가 나간 후 1시30분여 만인 오후 5시40분쯤 댓글차단 공지가 나갔다. 고인을 두번 죽이는 반인륜적인 글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인기 가수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에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댓글도 순식간에 1500건이 넘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댓글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매도하거나 왜곡하는 인신공격이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이런 ‘얼굴없는 자객’(일명 키보드 워리어)의 칼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가수 유니만 당한 것이 아니다. 지난 10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형은 관련 기사에서도 ‘못생긴 게 잘 죽었다.’는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악플로 가족과 친구들을 한번 더 울렸다. 또 지난해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승마경기 도중 숨진 김형칠 선수와, 지난해 11월 화재현장에서 붕괴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하다 숨진 고 서병길 소방장에서 대해서도 일부 누리꾼이 악플을 달아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어서 갑자기 이혼설로 곤욕을 치른 노현정 아나운서, 모 재벌가와 결혼설로 고발사태까지 치룬 탤런트 김태희, 갑자기 사망설에 시달린 모델 변정수(사진 왼쪽), 참다 못해 악플러 이모씨를 22일 형사 고발한 하리수(오른쪽) 등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익명성을 전제로 한 인터넷 댓글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공격성을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감정의 배설공간으로 생각하는 네티즌들이 문제다.”며 “우울증 등 심적으로 나약해진 사람들에겐 익명악플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정부는 오는 7월부터 하루 방문자가 10만명이 넘는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에 대해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한다. 이로 인해 악플이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타인 명의 도용 등으로 완벽한 차단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법으로 처벌하기에는 표현의 자유 침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리꾼들의 인식 변화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누리꾼 스스로가 우선적으로 ‘넷티켓’을 지키려는 생각이 확산되어야 한다. 또한 누리꾼들이 자체적으로 악플러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것도 급선무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악성댓글에 대한 처벌수위를 결정하는 표현의 수위를 조속히 정하고, 위반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엄격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빈라덴 또 죽었다고?”

    “빈라덴 또 죽었다고?”

    |파리 이종수특파원|지난 23일 전세계에 긴급 타전된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설은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을 옮긴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소문의 근원지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날 밤 늦게 긴급 성명을 발표 “사망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며 “보도된 내용은 순전히 추측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증명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딱 잘랐다. 과거 몇년간 그의 사망설과 중병설이 숱하게 제기됐지만 알카에다가 그의 건재를 증명하는 녹음 테이프를 공개함으로써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파문의 발단은 이날 프랑스 북동부 로렌에서 발행되는 지역 일간지 ‘레스트 레퓌블리캔’이 프랑스 국방부 대외정보국(DGSE)의 기밀문서를 인용해 “빈 라덴이 지난달 23일과 이달 4일 사이에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장티푸스로 사망했다.”고 보도하면서였다. 신문은 “그의 행방을 쫓던 사우디 정부도 지난 4일 이 정보를 입수하고 사실 확인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또 “21일 작성된 이 문서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고립된 처지의 그가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사망 사실을 최종 확인하기 위해 시신 매장지 정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 내무·국방 장관도 같은 문건을 보고받았다고 덧붙여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에 미셀 에이요 마리 국방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며 “법적으로 처벌 가능한 기밀문건 유출 경위를 면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AFP도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의 행방을 추적해온 익명의 유럽연합 관리 말을 인용 “이번 보도는 믿을만 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사주간 타임과 CNN방송은 사우디 정보관리의 말을 인용,“빈 라덴이 수인성 질병에 걸려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해 주목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 정보기관의 한 관리는 “만약 그가 사망했다면 여러 징후들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빈 라덴은 또 신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사들을 치료해준 혐의로 2002년 12월 파키스탄 당국에 체포된 한 의사는 “1년 전 진찰했을 때 그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인텔센터의 벤 벤츠케 국장은 “만약 그가 정말 눈을 감았다면 알카에다는 이를 재빨리 전세계에 알려 후계 문제의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사설] 北수해 지원 대화 즉각 시작해야

    북한의 폭우피해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주민 1만명 사망설까지 나온다. 북한은 아리랑행사에 이어 8·15통일대축전도 취소했다. 외부 지원을 받아도 복구가 쉽지 않을 상황에서 북한 정권은 오히려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사일 사태로 대북지원 재개에 소극적이다. 남북 당국 모두 태도를 바꿔야 한다. 북한 주민을 돕는 데 정치적 고려가 제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달 말 국제적십자연맹을 통해 수해복구 지원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 북측은 일단 거부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사태 이후 남측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자 심사가 뒤틀려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북측은 남측 민간단체의 지원은 받아들였다.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은 “남측 정부에 공개도움을 요청할 경우 내부 체제위기 우려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간지원을 확대하면서 우리 정부가 지원의사를 적극 밝히면 북한과의 대화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측도 민간뿐 아니라 남측 정부·적십자 차원의 수해 지원을 조건없이 받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주민을 굶기고 헐벗게 하면서 이를 ‘고난의 행군’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입대청원’을 하도록 유도해 한반도 안보를 불안케 하지 말아야 한다. 미사일이나 핵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면 쌀·비료 지원 중단 상황이 곧 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학자는 “북한이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6자회담 표류, 미국의 금융제재, 미사일 발사, 대규모 수해 등 북한의 처지가 궁지에 몰린 것은 틀림없다. 이럴 때 남측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수해 지원 대화의 시작은 미사일·핵 대화 복원의 단초가 될 수 있다.
  • 비틀즈의 폴이 죽었다는데…

    비틀즈의 폴이 죽었다는데…

    「비틀즈」라면 최근 까지도 전 세계 10대의 유일한 우상으로 군림해온 영국(英國)의 「보컬·그룹」. 그 한 「멤버」인 「폴·메카트니」가 2년전에 죽었다는 소문이 학생(學生)들 사이에 끈질기게 퍼지고 있어 미국의 「캠퍼스」는 요즘 왁자지껄하다. 「비틀즈」의 대변인은 이 소문을 부인했고 장본인인 「폴」이 최근에 영국 공항에 나타나서 「생존(生存)」이 일단 확인되었는데도 소문은 자꾸 퍼지기만 한다. 「폴·메카트니」의 사망설은 2년전부터 여기저기서 소곤거려지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미국의 고교(高敎) 대학「캠퍼스」에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퍼져 있었다. 요즘 갑자기 떠들썩하게 된 것은 「오하이오·웨슬리」대학의 한 학생의 「비틀즈」론(論) 덕택이었다. 그 논문이란 최근의 「비틀즈·레코드」를 분석한 결과 「폴」의 「파트」에서 「불길(不吉)」한 음조(音調)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편 것. 「레코드」를 각양각색의 속도로 회전시켜 분석한 결과 「폴」은 이미 죽고 없다는 증거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일부가 「미시건」주(州)에서 발행되는 학생신문 「데일리」지(紙)(10월 14일자)에 게재되었고 이것은 그동안 소곤거려지기만 하고 있던 「폴」사망설(死亡說)에 불을 지른 셈이었다. 뒤 이어 지난 10월 20일에는 미국 전역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WABC방송의 심야 「디스크·자키」한 사람이 불씨를 또 한개 던졌다. 『현재의 「매카트니」는 대역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일까?』하고 경솔한 발언을 방송해 버린 것이다. 미국의 「팬」들은 이 한마디에 대경실색. 방송이 나간 다음 「뉴요크」시중 「라디오」방송국에 쇄도한 문의전화가 무려 3만5천통이었다. 진위(眞僞)를 확인하려고 「런던」으로 걸려가는 국제전화 때문에 장거리회선이 꽉 차는 소동도 벌어졌다. 화가 난 방송국 간부들은 당장에 이 「디스크·자키」를 파면시켜 버렸다는 것. 그러나 쑤셔 놓은 벌집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하버드」대학이니 「조지타운」대학등 명문(名門)의 「캠퍼스」에서 소문의 진위(眞僞)를 가려 내려는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워싱턴」에는 정보수집을 위해서 『「폴·메카트니」에 대한 정보교환』이라는 전화 「서비스」시설까지 마련되었다. 현재 사망설(死亡說)의 가장 「유력한」근거는 67년 발매된 「앨범」『서전트·페퍼즈·론리·하트·클럽·밴드』. 이 「앨범」은 LP판인데 여기 수록된 곡(曲)중 마지막 것인 『어·데이·인·더·라이프』가 바로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는 자동차 속에서 심장이 터져버렸다』라는 구절이 이 곡(曲)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폴」의 자동차 사고를 암시하는 문구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앨범」의 「자키트」를 보면 이 죽음의 암시는 더욱 뚜렷해진다는 얘기. 「폴」의 머리위에 손이 하나 뻗쳐 있는데 「웨일즈」지방의 습관에 의하면 이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이라는 것. 또 이 「자키트」에는 「폴」의 악기(樂器)인 「베이스·기타」가 장식으로 윤곽지어져 있는데 이것이 추도(追悼)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얘기다. 더구나 이 「자키트」의 뒷면에는 네명중에 다른 세명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폴」만이 등을 보이고 돌아 서 있다는 것이다. 『천만에!「폴」은 건재합니다』 그리고 장본인인 「폴」이 공항에 씩씩한 모습으로 나타나 「생존(生存)」을 확인시켰다는 것. 그런데 이 직후에 「폴」은 또다시 「런던」의 「하이게스트」 묘지에서 이상한 연극 1막을 연출했다. 이른바 「폴」부활식(復活式). 그날 이 묘지에는 약 3천5백명의 「팬」이 운집했다. 「폴」은 무덤속에서 쑥 솟아 나오더니 다음과 같이 선언(宣言)했다. 『나는 분명히 3년전 자동차 사고로 목을 잘렸었다』그리고는 『죽음이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라고 말하더니 다시 관속으로 들어가 뚜껑에 못질을 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설(生存說)」의 시인인지 부인인지가 알쏭달쏭하다는 얘기. 「폴·메카트니」는 「존·레논」이 「비틀즈」에서 탈퇴하기 이전에 벌써 이들과 결별했다는 얘기가 도는 「멤버」. 일본인(日本人) 「오노·요꼬」와 사랑으로 독자적인 명성을 뿌리고 있는 「레논」과 함께 「비틀즈」의 「리더」격이며 지성파(知性派)라고 한다. 인기 충천하던 64~66년에 전속 「레코드」사(社) 「애플」을 잡은것도 이 「폴」의 머리와 수완이었다는 얘기다. 「비틀즈·멤버」중에서는 가장 보수적이기도 하다. 다른 세「멤버」가 다 「요가」하며 LSD에 빠져있을때도 「폴」만은 그런 일에 탐닉하지 않았었다. 결혼까지는 실현하지 못하고 동거(同居)만 했던 약혼녀(約婚女) 「제인·애셔」와 만난 첫날밤을 고스란히 처녀 총각으로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폴」은 「비틀즈·멤버」가운데서 유일한 「런던」출신이다. 그는 67년에 「런던」교외에 가지고 있는 자기집 뜰에 「요술의 집」이라고 이름붙인 탑 모양의 집을 지었다. 「제인·애셔」와도 이젠 헤어진 모양이고 그의 최근 소문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폴」자신이 자기의 「생존설(生存說)」에대한 괴상한 부인(否認)을 하고있는데도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폴」은 한번도 죽어 본 적조차 없다』고 말하는 축도있다. 이번 사망설(死亡說)조차도 시월 초순 발매된 새 「레코드」『아비·로드』를 팔아먹기 위한 PR운동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선데이서울 69년 11/16 제2권 46호 통권 제 60호]
  • 北서 열차충돌 1000명 사망설

    최근 북한에서 열차가 충돌,1000여명이 숨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고 한 대북인권단체 소식지가 1일 밝혔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은 1일 발행한 소식지에서 “지난 4월23일 함경남도 고원군 부래산역 근처에서 평양∼평강행 열차와 고원에서 양덕으로 올라가던 화물열차가 정면충돌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며 “이 사고로 열차승객 100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특히 여객열차는 만기제대 군인과 최근 새로 입대한 군인이 탑승한 군인수송 특별열차여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좋은 벗들’은 “사고원인은 여객열차가 고원군 부래산역 근처의 내리막길을 달릴 때 기관차에서 압축기 고장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제동 불량으로 화물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충돌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소개했다. 이 단체는 “사고 수습을 위해 북한 당국은 사망자 가족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이 정도의 충돌 사고면 위성 사진에 잡히거나 충격파가 감지됐을 가능성이 크나 아직까지 관련 징후는 없었다.”며 “좀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재난이 부른 수하르토 향수?

    인도네시아를 32년간 철권 통치하다 1998년 민주화 시위로 쫓겨났지만 수하르토(84) 전 대통령은 아직도 위세가 등등하다. 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민들이 그에게 향수마저 느끼면서 그가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점점 더 걷어내기 힘든 고통스러운 유산이 됐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한때 수하르토에 비판적이었던 인도네시아 최대의 자동차 기업 설립자의 한 후손은 수하르토 가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렇게 크고 호화로운 결혼식을 보라.”면서 “수하르토는 여전히 정·재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지진이 일어나 엄청난 피해를 당한 중부 자와의 욕야카르타는 수하르토가 태어난 마을과 가깝다. 인근 솔로에서 인쇄공장을 운영하는 아크마드 리마완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억세게 운이 없지만 어쨌든 수하르토 대통령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했다.”면서 노골적인 향수를 드러냈다. 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2004년말에는 쓰나미(지진해일)가 몰려왔고 지난해에는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창궐했다. 지난주 말에는 지진까지 오는 등 각종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므라피 화산이 폭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수하르토는 소화기관 출혈로 지난 한 달간 세 번의 수술을 받고 한때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안정을 찾고 퇴원 채비를 하고 있다. 주치의는 “폐에 물이 조금 차긴 했으나 걸어다니기 시작하면 증상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입원하면서 6억달러(약 6000억원) 횡령 등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도 중단됐다. 재임 중 그의 가족들은 각종 이권에 개입해 150억∼350억달러(약 15조∼35조원)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티모르와 아체 지방 등지에서 자행한 학살 피해자가 50만∼200만명에 이른다고 국제 인권단체는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 법률은 여전히 수하르토 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 기업가, 군인 등 지도층 대부분이 수하르토 정권에 복무했던 사람들이다. 유도요노 대통령 자신도 수하르토 시절에 장군을 지냈다. 그의 내각은 공개적으로 민주주의와 경제개혁을 표방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다른 아시아 경쟁국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최근 수하르토의 병상을 지킨 뒤 그를 “나의 선배님”이라고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공교롭게도 배호의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병마와 함께 시작되었다.1966년 2월, 신장염을 앓기 시작하면서 음색이 탁성으로 변해 바이브레이션조차 제대로 구사하기가 어려웠지만 가수로서 그는 되레 적극적이었다.‘황금의 눈’이 제법 방송을 타기 시작하자 배호는 그 해 말, 연세대 작곡가 출신인 당시 나규호 MBC PD를 직접 찾아간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작곡가 나규호(70)씨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를 이렇게 술회한다. “작사가 전우를 통해 알게 되어 형 아우로 지내던 배호가 방송국엘 찾아왔어요. 당시엔 PD들이 하루 50장 정도의 원고까지 직접 써야 하는 매우 분주한 때였는데 급하게 곡을 써 달라 부탁해서 배호를 10여분간 기다리게 해놓고 악상을 오선지에 그려준 기억이 납니다. 나로선 대중가요 작곡에 처음 손 대본 것이기도 합니다.” 이 악보는 전우에게 건네져 ‘누가 울어’와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으로 탄생된다. 이후 ‘전우-나규호-배호 콤비’는 ‘당신’ ‘안녕’ 등의 명곡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배호가 지닌 도회적인 분위기의 근간을 이룬다. 배호를 한 순간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돌아가는 삼각지’ 역시 노래에 ‘쉼표’ 몇 개를 자의적으로 넣겠다는 조건 하에 취입했음에도 병마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숨 가쁜 톤이 그러하듯 배호는 투병과 호전 상황에 따라 때로는 끊어질 듯 탄식에 가깝게, 때로는 비교적 건강한 음색으로 여러 가지 창법을 구사하며 당시 아세아-신세기-지구 등 메이저음반사 전속가수를 거치면서 5년간 무려 260여곡을 취입했다. “이를테면 배호는 ‘달러박스’로 각 방송사의 인기가수상을 휩쓸며 전성기 때는 ‘돈다발을 베개 삼아 잔적도 있다’는 일화가 회자될 만큼 인기에 비례해 수입이 좋았지만 약값으로 인해 그는 늘 쉴 틈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 회사의 전속가수로 있으면서도 다른 레코드사를 통해 ‘도둑 취입’을 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작곡가 김인배(74)씨의 회고다. 그렇듯 배호는 한 때 연예인 납세실적 3위에 올랐을 정도였지만 병원비, 그리고 가족을 위한 생계비를 감당하기 위한 무리한 공연과 취입으로 다시 병세가 악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빠르게 소진해 갔다. 그럼에도 자신의 ‘배호와 그 악단-사파이어스’를 이끌며 혁신적인 활동을 계속했고 점차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지자 차를 구입해 ‘멋쟁이의 대명사’인 마이카족의 대열에도 합류한다. 그러나 점점 몸은 부어올라 옷과 신발을 매번 새로 바꾸어야만 했다. 이 무렵부터 식사 때마다 꼭 소화제를 복용했고 말 수도 점차 줄어갔으나 입버릇처럼 ‘쓰러져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말만은 늘 입에 달고 다녔다 한다.‘행방불명설’과 ‘사망설’이 항간에 수시로 나돌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보란 듯이 나타났다. 때로 휠체어에 앉은 채 레코드판으로 노래를 대신해 무대에 올랐고 심지어 사회자의 등에 업혀 노래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각혈까지 하며 중도 퇴장하기도 했다.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환호만이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던 배호는 결국 71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배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으나 죽기 며칠 전 억지로 이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직계 혈육은 이제 아무도 없다. 얼마 전까지 경기도 장릉 신세계공원에 안치되어 있는 그의 묘는 장기간 무연고로 관리되어오고 있었다. 더 이상 방치되면 ‘파묘’된다는 관리사무실의 관례 소식을 접한 배호 팬들은 너·나 없이 십시일반으로그동안의 미납분과 향후 5년간의 선불금을 선뜻 지불했다. 이렇듯 배호는 그가 살았던 스물아홉해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을 대중들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놀랍게도 취입 당시 음반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배호가 남긴 미발표 릴테이프를 직접 찾아냈다. 그중 한 곡이 67년에 취입했던 곡,‘추억’. 외삼촌 김광빈씨의 곡으로 당시에는 이 노래가 히트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음반제작이 보류되었던 곡이라고 했다. 배호 사후 30여년 동안 레코드사의 창고에 묻혀 있던 그 릴 테이프에서 재생되던 생생한 원음, 감격스러웠다. 불안한 호흡을 스스로 조절하기 위해 당겼다, 놓았다하는 애드립으로 싱커페이션(syncopation)과 앤티시페이션 (anticipation)을 적절히 구사했던 그만의 독특한 창법. 그 속에 담긴 배호의 삶과 노래, 그 ‘한 박자 빠른 삶, 반 박자 느린 슬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마치 노랫말이 그의 음악적 스승, 김광빈씨가 배호에게 이제서야 바치는 ‘헌시’처럼 들려오기도 해 순간 묘한 감회에 젖어들었다.39년 전에 만든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글 박성서 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 sachilo@empal.com
  • 알 자지라, 빈 라덴 육성 테이프 공개

    오사마 빈 라덴이 돌아왔다.2004년 12월 이후 종적을 감춰 사망설, 위독설이 나돌았지만 이를 비웃듯 1년 만에 건재를 드러냈다. 알 자지라 방송은 19일(현지시간) 알 카에다의 최고지도자 빈 라덴이 지난달 녹음한 오디오 테이프라면서 그의 육성을 전격 공개했다. 테이프 속 주인공은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9·11 이후 보안이 강화돼 공격 못한 것은 아니며 준비기간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위해 휴전하자고 제의했다. 이라크 철군 외 다른 휴전 조건은 제시하지 않은 채 “무슬림의 땅에서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만 설명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이 아닌 ‘그들’의 땅에서 싸우는 게 낫다.”고 한 발언을 언급하면서 “수십억달러를 부시 정부와 연계된 ‘전쟁업자’에 쏟아붓는 것은 낭비기 때문에 (휴전은)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CIA “빈 라덴 음성 맞다” 미국은 일단 테이프 속 목소리가 “빈 라덴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는 분석경위는 밝히지 않은 채 “예전 것과 비교해 일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격 위협에 대해선 평가절하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대테러 관리들은 “공격이 임박했다는 어떤 특별하고 믿을 만한 정보는 없다.”면서 “공격 직전에 나타나는 테러리스트 간의 교신 급증도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보안등급도 상향 조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등 일부 도시는 공항과 항구, 에너지 시설 등에 폭발물 탐지활동을 강화했다. 미국은 휴전 제의도 일축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알 카에다와 테러리스트들은 분명 도망치고 있다.”면서 “그 점이 테러와의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폭스뉴스에 나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며 이라크 철군 요구를 거부했다. ●“건재 과시해 추종자 동요 막기” 빈 라덴의 목소리가 지쳐 보이는데다 실내에서 녹음된 흔적인 ‘울림(echo)’은 과거 야외에서 정열적으로 외쳤던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메시지를 녹음하고 방송할 수 있다는 점은 그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아랍계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며칠 전 파키스탄에서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조카 등 알 카에다 지도자 4명이 미군 폭격으로 숨진 뒤여서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동요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親美 실용주의 노선 부담 美와 일정거리 유지할 듯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이 1일 사망함에 따라 향후 사우디와 아랍권의 변화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새 국왕은 압둘라 왕세제, 차기는? 새 국왕으로 결정된 압둘라(82) 왕세제는 파드 국왕의 이복동생으로 95년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10년 가까이 사우디를 실질적으로 통치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압둘라 왕세제는 테러 및 부정부패와 싸워왔으며 경제를 자유화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사우디 국민들도 압둘라 왕세제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왕권은 순조롭게 승계됐지만 앞으로 ‘차기’ 국왕 자리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차기 왕세제는 파드 국왕의 동생인 술탄 부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결정됐지만 파드 국왕의 다른 동생들이 자리를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는 나예프 내무장관이 꼽힌다.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나예프 왕자는 사우디 내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파드 국왕 이후 당장 사우디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새 국왕이 등극하면 그동안 강경보수파에 눌려온 시민들이 민주화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고, 과격 이슬람주의자들도 왕정타도를 주장하고 나설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미국·아랍과의 관계에도 영향 있을 듯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고, 영토와 인구 규모에서도 중동의 최강국이다. 그만큼 원유시장과 중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미국도 사우디의 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외신들은 압둘라 왕세제가 그동안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어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수차례 미국을 방문하며 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한편 2001년 9·11테러 이후 사우디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미국과 일정 거리를 두는 정책을 취해왔다. 이같은 그동안의 행적으로 볼 때 그가 왕위에 올라 본격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면 중동의 안정을 위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편 파드 국왕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53센트 오른 61.10달러에 거래가 시작돼 장중 한때 61.45달러까지 치솟았다.AP통신은 투르키 빈 알 파이잘 영국주재 사우디대사의 발언을 인용, 석유정책 등 사우디의 주요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파드 국왕은 누구 지난 82년 즉위한 파드 국왕은 사우디 근대화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특별한 서구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친미 노선과 전통 이슬람 사이에서 균형잡힌 외교정책을 펼치려 노력했다. 이는 사우디가 비교적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91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에 대규모 미군 주둔을 허용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를 샀고, 이후 사우디도 테러의 타깃이 됐다.95년 뇌졸중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으며 지난 5월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다. 아랍권 방송들은 파드 국왕의 장례식은 3일 거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국제플러스] 사우디국왕 사생활 폭로 위기에

    사우디아라비아 파드(82) 국왕의 부인이 재산 분할을 요구하며 이혼 소송을 제기, 왕실의 은밀한 사생활이 공개될 위기에 처했다고 AFP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야난 하브(57)는 580억달러의 재산을 소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파드 국왕의 3∼4명의 부인 가운데 한 명이다. 하브는 2004년 1월 국왕이 합당한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며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출신에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이혼을 당했으며, 서구적인 사고를 가진 독립적인 여성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출신이나 현재는 영국 국적을 취득, 런던 최고 부촌인 나이트브리지 지역에 살고 있다. 사우디 왕실 변호인은 소송을 비공개로 할 것을 원했으나 하브는 끝까지 재판을 요구, 결국 영국 법원은 공개재판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초호화 생활을 누리며 많은 부인과 자식들을 거느린 사우디 국왕의 은밀한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됐다. 파드 국왕은 한때 사망설이 퍼지는 등 현재 건강이 안 좋은 상태다. 하브의 친구는 영국 언론에 “하브는 여전히 왕을 사랑한다.”면서 “그녀가 하는 이혼소송은 중동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로, 정의가 바로서기만을 원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 [종전60년…731부대 현장을 가다] 발굴 유해 급증…1만 5000명 사망설도

    [종전60년…731부대 현장을 가다] 발굴 유해 급증…1만 5000명 사망설도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만주지역에서 자행한 생체실험 현장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신청할 예정이다.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과는 달리 일본군의 만행은 그 실상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다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나치 수용소와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중·일관계가 최악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731부대’ 현장을 찾았다.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중국 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시내에서 남쪽으로 20㎞쯤 떨어진 핑팡지구 신장(新疆)대로 21호. 상가와 아파트가 섞여 있는 지역에 ‘731부대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식 이름은 ‘침화일군(侵華日軍) 731부대 죄증(罪證)전시관’으로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붉은색 벽돌 건물이다. 이 전시관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가 만주에서 비밀리에 자행한 ‘생체 실험’의 전모가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731 전시관’은 2차 대전 당시 부대의 본청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현재 14개 전시실로 개조해 수천점의 관련 자료와 일본군이 자행했던 주요 생체실험 과정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다소 어두운 전시관 내부를 안내원과 함께 돌아보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마루타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진과 실험에 쓰였던 도구, 모형을 이용한 생체실험 장면, 비디오 영상물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본 군국주의의 잔학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얼빈 사회과학원 731부대 연구소 진청민(金成民) 소장은 “731부대 유적지는 일제 군국주의가 세균전으로 인류를 말살시켜려 했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인류 말살을 기도한 역사 현장 31종의 세균 실험과 영하 60도에서의 동상 실험, 사람과 말의 ‘피교환 주사’, 공기없이 얼마나 생존 가능한지를 실험한 ‘진공 실험’ 등등. 일본군은 인간의 몸을 나무토막(마루타·丸太)으로 여겨 온갖 생체실험에 사용했다. 엄청난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으면 태워버리거나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일본 병사들의 동상 치료법 개발을 위해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실험실에서 맨발·맨손의 인간을 기둥에 묶고 강제로 동상을 입혔다. 그 상처에 끓는 물을 부어 보기도 했고, 찬 물과 미지근한 물을 번갈아 붓기도 했다. 강제로 얼린 손발을 도끼로 때려 뼈를 부러뜨리는 실험도 했다. 마취 없이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들은 자신의 배가 갈라지고 뼈에 붙은 살가죽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큰 유리 상자 속에 사람을 가두고 밖에서 공기를 빼내 완전 진공 상태를 만든 뒤, 인간의 생존 시간을 체크했다. 또 페스트 등 각종 세균을 강제로 몸 속에 주입, 인간의 장기가 어떻게 변하고 투입량에 따라 어느 정도 빨리 죽는지 실험했다. 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한국인을 동원한 인종별 실험도 자행됐다. ●한국인들도 마루타로 희생돼 왕강(王剛)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관람객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몹쓸 짓을 할 수 있을까.”라며 치를 떨었다. 헤이룽장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한 학생은 “말로만 듣던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오늘에서야 명확하게 알게 됐다.”며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인들이 직접 이러한 만행을 목격해야 한다.”며 분개했다. 전시관 관계자는 “실험이 끝나고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마루타들은 실험실 내부에서 소각됐거나 한꺼번에 구덩이에 파묻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죽어간 마루타들의 숫자는 대략 3000여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대의 책임자는 ‘인간 백정’으로 불렸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이다. 그는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 기소돼 재판을 받을 당시 마루타(생체실험 대상)가 총 3850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러시아인이 562명, 한국인이 254명,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최근 전시관 인근 지역 개발과 함께 발굴된 유해 숫자가 급증하면서 ‘1만 5000명 사망설’이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당시 조선인들도 다수가 마루타로 희생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것은 심득룡(沈得龍)과 이청천(李淸泉) 두 명뿐이다. 심득룡은 당시 소련 극동 코민테른에서 파견한 공산당원으로 확인됐다. ●중국 마을에서 세균전 실험 45년 8월15일 일본 항복 직후 731부대는 인체 실험실과 각종 건물을 철거하고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소각한 뒤 퇴각했다. 하지만 46년 페스트 실험용으로 사용됐던 쥐들이 튀어나와 당시 마을 주민 100여명을 몰살시킨 비극적 사건도 있었다고 전시관 관계자들이 전했다.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인체실험실은 731부대 이외에 창춘(長春) 100부대, 베이징 1855부대, 난징(南京) 1644부대, 광저우(廣州) 8604부대 등 5개이며, 이들을 주축으로 중국 전역에서 인체 실험이 광범위하게 운영됐다는 게 전시관측 설명이다. 일본군이 실제로 전쟁 당시 세균전을 감행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1940년 닝보(寧波)에서 페스트균을 대량 살포하여 100명 이상을 사망케 했고,1941년 봄 후난성(湖南省)에 페스트 벼룩을 공중 살포하여 중국인 400여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중국측의 주장이다. 최근 731부대 장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발견돼 일본군의 세균전 및 생체실험이 사실로 입증됐다.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吉林省) 눙안(農安)과 창춘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 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oilman@seoul.co.kr ■ 731전시관 청리화 부관장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일본 군국주의의 잔학상을 세계에 알리고 인류의 평화 애호사상을 함양하기 위해 731부대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게 됐습니다.” ‘731 전시관’ 청리화(程立華·여) 부관장은 “지난해 20만명이 731부대를 관람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300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며 앞으로 전시관 주변에 ‘731 공원’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731 전시관’을 통해 전세계에 일본과의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불한 중국인들의 희생과 고난을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82년 설립된 ‘731 전시관’은 85년 8월15일 처음으로 외부에 개방됐다.95년 중국의 반파시스트(중·일전쟁) 전승 50주년을 맞아 신관을 설립하고 새로운 자료를 보강했다. 세계문화유산 신청 준비 작업은. -2000년부터 하얼빈시는 731부대 인근 120 가구와 11개 기업을 이주시키고 유적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02년 5월부터 현 전시관 면적의 3배에 달하는 ‘731 공원’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예산은 모두 5억위안(약 650억원)이다. 일본이 이 부대를 설립한 이유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죽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세균 부대를 창설한 것이다. 세균·화학 무기는 총과 대포와 비교해 원가가 5분의1에 불과하다. 731부대는 수천, 수만의 인민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도살장이며 일본 군국주의가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시도했던 ‘세균전’의 현장이다. 생체 실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나. -페스트,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탄저, 결핵, 매독 등 31개 종류의 세균을 이곳에서 배양시켜 마루타들에게 실험을 했다. 생체 실험 대상이었던 마루타들은 대부분 항일운동을 한 경험이 있으며 특수 감옥에 수감된 채 세균 전문가들의 치밀한 실험계획에 따라 고통 속에서 살해됐다. oilman@seoul.co.kr ■ 731 부대란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관동군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세균전 부대이다.1932년 창설돼 1936∼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및 민간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 실험과 약물 실험 등을 자행했다. 바이러스·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마다 마루타라 불리는 인간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다. 1940년 이후 최소한 3000여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7년 미 육군 조사에 따르면 36년부터 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 출혈열 101개 등 수백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및 생체해부실험,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 냉동실험, 생체 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 실험, 가스실험 등이다.
  • [자오쯔양 사망] 실용노선 외길… 中개혁 ‘야전사령관’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가 17일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자오 전 총서기는 이날 오전 7시1분 베이징(北京) 시내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인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으로 숨졌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실각 이후 가택 연금돼온 자오 전 총서기는 결국 16년 만에 역사적 재평가는 물론 복권도 이루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자오쯔양의 사망으로 홍콩과 서방을 중심으로 톈안먼 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반혁명 폭란(暴亂)’으로 규정한 중국 당국의 평가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그의 85년 삶에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과 권력투쟁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허난(河南)성 화(滑)현 출신으로 중학 중퇴의 학력을 딛고 최고 권좌인 당 총서기에 올랐지만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았다. 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지시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리펑(李鵬) 총리 등 강경파에 맞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다가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그해 5월19일 새벽 비가 뿌리는 톈안먼 광장을 찾아가 눈물로 학생들의 시위 해산을 호소한 것이 TV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학생 제군들은 아직 젊다. 살아서 중국의 4대 근대화를 실현하는 날을 직접 보아야 한다.…”는 간곡한 설득 장면은 아직까지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각인돼 있다. 자오의 생애는 실각→복권→출세가도→실각이 반복되는 극적인 인생으로 점철된다.1967년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됐다 4년만인 1971년 네이멍구 자치구 당서기로 복권, 폭넓은 실용주의를 익힌다.75년 쓰촨(四川)성 당서기 시절 ‘식량을 원하면 자오쯔양을 찾아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농업개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도입한 자유시장의 일종인,‘가정생산청부제도(家庭生産請負制度)’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그는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정치국위원, 상무위원, 부총리, 총리로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물론 덩샤오핑의 전폭적인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80년 총리,87년 당총서기에 올라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오른팔로서 개혁·개방의 ‘야전 사령관’으로 맹활약했다. 천윈(陳雲)과 리셴녠(李先念) 등 당 보수파들의 치열한 견제 속에서 폭넓은 정치·경제개혁을 도입하는 등 고도성장의 레일을 깐 인물로 통한다. 덩샤오핑은 평소 ‘하늘이 무너져도 자오쯔양과 후야오방(胡耀邦)이 있기에 안심할 수 있다.’는 말로 각별한 신임을 표현했지만, 결국 ‘톈안먼 사태’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 실각 이후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王府井) 부근 자택에서 연금생활에 들어간 그의 ‘자유’를 위해 각계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홍콩과 서방을 중심으로 연금해제를 촉구하는 서한은 100만통을 넘었고,1998년에는 홍콩 인권단체에 의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여행이 허가된 그는 베이징 인근의 순이(順義) 골프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말년에는 홍콩과 서방언론 사이에서 사망설이 제기되는 등 온갖 풍설을 겪었고 결국 “6·4운동은 재평가될 것”이라는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oilman@seoul.co.kr ■ 자오쯔양 연보 ▲1919년 11월 허난(河南)성 화(滑)현 출생 ▲1932년 중학 중퇴후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가입 ▲1938년 중국공산당 입당 ▲1948년 위어(予鄂)지구 당위원회 서기 ▲1951년 광둥(廣東)성 인민정부 토지개혁위원회 부주임으로 토지개혁 주도 ▲1956년 중국공산당 광둥성위원회 서기 겸 광둥성 군구(軍區) 제1정치위원 ▲1963년 광둥성 제1서기 겸 당 중앙 중남국 서기 ▲1967년 문화대혁명으로 비판·숙청 ▲1971년 복권 ▲1975년 쓰촨(四川)성 당위원회 제1서기, 혁명위원회 주임, 청두(成都)부대 제1정치위원으로 농업진흥과 기업자 주권확대에 현저한 성과 거둠 ▲1980년 당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및 국무원 총리 ▲1987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임 ▲1988년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임 ▲1989년 5월19일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 농성중인 학생들 방문, 너무 늦게 온 것 사과. 마지막 공식행사 ▲1989년 6월24일 6·4 톈안먼 사태 때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숙청, 공직 박탈당한 채 연금조치 ▲2005년 1월17일 지병으로 베이징에서 사망
  • 中 ‘자오쯔양 사망설’ 부인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자오쯔양(趙紫陽·86)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사망설’이 신년 벽두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홍콩의 동방일보(東方日報)와 태양보(太陽報) 등 중화권 언론들은 11일 “자오 전 총서기가 지난 8일 베이징에서 호흡기 쇠약, 심장질환 등으로 사망했다.”고 전격 보도했다. 지난 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각한 자오의 사망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중국정치에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타이완 중앙통신과 중화권 인터넷 매체인 둬웨이(多維)뉴스는 “자오 전 총서기는 아직 사망하지 않았으며 병세가 위독한 상태일 뿐”이라고 사망설을 일축했다. 설왕설래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망설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은 자오의 딸인 왕옌난(王雁南·중국은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허용) 가디언경매회사 사장이다. 홍콩의 인권·민주화운동소식센터의 프랭크 루(盧四淸) 이사장은 “왕씨가 ‘아버지는 오래된 신병 때문에 한달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왔다. 특별히 위중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쿵취안(孔泉)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자오 전 총서기는 병을 앓았으나 세밀한 치료를 받고 지금은 매우 안정된 상태”라며 사망설은 물론 위독설도 부인했다. 중국 소식통들은 자오쯔양 사망설이 수차례나 급속하게 퍼진 배경을 놓고 “중국 정부가 실제 자오 전 총서기가 사망했을 경우 발생할 소요 등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소문 확산을 방임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3년 4월 일본 교토통신 등 일부 외신들은 자오쯔양 사망설을 보도했으나 모두 오보로 확인됐다. 자오쯔양 사망설이 꼬리를 무는 것은 ‘톈안먼 사태’가 함축하고 있는 폭발력 때문이다. 허난(河南)성 화셴(滑縣) 출신의 자오는 89년 6·4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지시했던 덩샤오핑(鄧小平) 최고지도자에 맞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다가 ‘당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축출됐다. 광범위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등 사회불안 요소가 만연된 상황에서 자오는 민주화의 기수로서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자칫 저우언라이(周恩來)나 후야오방(胡耀邦)의 사망이 몰고왔던 중국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oilman@seoul.co.kr
  • [지진해일 대재앙] 아체주서만 40만명 사망설

    아시아 남부를 강타한 쓰나미(지진 해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1일 현재 최대 13만 5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는 등 피해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구호단체들은 수인성 전염병 발병을 재차 경고하면서 구호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피해가 가장 심한 인도네시아 아체주(州) 등 일부 외딴 지역들은 통신·수송장비 부족으로 아직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CNN은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 지역에서 1만 4000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보고돼 사망자가 13만 5263명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보건부는 아체주에서만 종전에 발표된 것보다 2만 8000명이 많은 8만명 가량이 숨졌으며 사망자가 10만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아체의 해안가 마을들은 상당수가 이번 쓰나미로 물에 잠겨 자취를 감췄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시아의 베르나마 통신은 말레이시아 주재 인도네시아대사의 말을 인용, 인도네시아 아체주에서만 4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베르나마 통신은 루스디하르조 말레이시아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가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사망자 수 추산은 인도네시아 당국이 아체주의 메울라보, 풀라우 시메울루에, 타팍 투안 같은 지역을 항공기로 살펴본 결과 생존자가 있다는 징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 뒤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가별 사망자 수는 스리랑카가 4만 1000명, 인도 1만 1000명이며, 태국도 5000명에 육박했다. 한편 전세계에서 구호의 손질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까지 60개국에서 2억 5000만달러의 현금과 수억달러 상당의 구호물품이 답지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피해국가들에 2억 50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오는 1월6일 한국 등 지원국과 피해국간의 정상회담을 주최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정상회담에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및 한국, 중국, 일본의 정상과 함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유럽연합(EU),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보건기구(WHO) 대표 등 최소 23명의 지도자들이 초청된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seoul.co.kr
  • 사망… 번복… 說 난무

    |클라마르(프랑스) 함혜리특파원|초겨울의 찬 기운이 어둠과 함께 밀려온 9일 저녁(현지시간) 파리 외곽 클라마르시의 페르시 군병원 앞. 교외의 한적하고 조용한 병원은 ‘중동의 풍운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지난달 29일 입원한 이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스의 현장으로 변했다. 병원 건너편 바리케이드 뒤로는 전세계의 보도진들이 수백대의 카메라 앵글을 병원에 맞추고 있고 북미, 유럽, 아랍, 아시아 등 각 대륙에서 온 방송사 특파원들은 뉴스 시간에 맞춰 위성으로 현장 상황을 전하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의 건강 상태를 둘러싸고 여러차례 혼선이 빚어지고 각종 소문들이 난무했지만 뇌출혈로 혼수상태가 심해지면서 아라파트 수반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날 오후에도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었다. 그의 사망설은 병원측의 발표와 아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의 기자회견으로 진정됐다. lotus@seoul.co.kr
  • “아라파트 수시간내 사망”

    |파리 함혜리특파원| 프랑스 군병원에 입원 중인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상태가 극히 악화돼 생명이 수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팔레스타인 정부 관계자가 9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날 낮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아흐메드 쿠레이 총리는 파리 근교 군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아라파트 수반의 병실을 방문했으며 아무런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채 함께 파리에 온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합류하기 위해 병원을 떠났다. 앞서 페르시 군병원의 크리스티앙 에스트리포 대변인은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아라파트의 상태가 지난밤 악화돼 소생장치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통신은 팔레스타인 고위 정계소식통들을 인용,“아라파트 수반이 사망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아직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라파트의 측근은 “그가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AP통신과 AFP통신은 아라파트 수반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으나 아직 생존해 있다고 전했다.AP통신은 아라파트를 방문한 뒤 병원을 나선 팔레스타인 대표단 일원의 말을 인용, 그가 아직 생존해 있다고 전했다. 사에브 에라카트 팔레스타인 내각장관은 아라파트가 “위중하지만 아직 생존해 있다.”며 사망설을 부인했다. 이와 관련,CNN방송도 별도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결과 아라파트가 아직 생존해 있다며 사망설을 부인했다. 외신들은 아라파트의 생명이 “수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 그가 극히 위중한 상태임을 시사했다. 아라파트를 방문하기 위해 파리에 온 쿠레이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 사무총장, 나빌 샤스 외무장관, 라우히 파투 의회의장 등 팔레스타인 지도자 4명은 이날 오전 미셸 바르니에 외무장관, 오후에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각각 회담을 가졌다. 이들 팔레스타인 지도부 4명은 아라파트의 부인 수하 여사가 알자지라 TV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을 물려받으려는 사람들이 아부 암마르(아라파트)를 매장하려고 파리로 오려고 한다.”며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비난하자 방문계획을 취소했다가 수시간 만에 이를 번복했다. lotus@seoul.co.kr
  • 아라파트 사경…팔레스타인 권력이양 착수

    아라파트 사경…팔레스타인 권력이양 착수

    |파리 함혜리특파원| 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혼수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뇌사상태라는 말도 나오는 등 목숨이 위태로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라파트 수반의 측근은 5일 그의 상태는 뇌사가 아니라 ‘가역성 혼수상태’(reversible coma)라고 밝혔다. 프랑스 주재 팔레스타인 특사인 레일라 샤히드는 이날 프랑스 RTL 라디오와 회견에서 “아라파트 수반은 뇌사상태가 아니며 종류는 모르지만 회복 가능한 혼수상태”라고 주장했다. 샤히드 특사는 아라파트 수반이 뇌사상태이며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프랑스와 이스라엘 언론의 보도를 ‘명확히’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아라파트 유고에 대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파타운동 지도부 등이 라말라에서 비상회의를 소집했으며 일부 권력 이양 작업에 들어갔다.PLO 집행위는 아메드 쿠레이 총리가 아라파트가 갖고 있던 경제권 일부를 장악해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으며, 마흐무드 압바스 전 팔레스타인 총리는 쿠레이 총리가 5일 중 가자지구를 방문해 보안책임자를 만나 휴전 지속을 위해 경계를 강화할 것을 독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군도 아라파트 사후 혼란 상황에 대비해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앞서 프랑스 의료 소식통은 4일 오후 아라파트 수반은 “뇌사상태이며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숨쉬고 있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이스라엘의 채널2 TV도 아라파트가 뇌사상태이나 목숨은 붙어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가 3일 오후 4시40분(한국시간 4일 새벽 1시40분)쯤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정상회담장에 도착,“아라파트가 15분 전에 사망했다.”고 말해 전세계에 아라파트 사망설이 처음 보도됐었다. 그러나 쿠레이 팔레스타인 총리는 곧바로 “아라파트는 혼수상태가 아니다. 검사가 실시됐고 결과가 낙관적”이라며 사망 사실을 부인했다. 아라파트가 입원한 파리 클라마트의 페르시 군병원도 즉시 기자회견을 열고 아라파트가 사망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lotus@seoul.co.kr
  • [아라파트 사경] 점찍은 후계자 없어… 유혈투쟁 우려

    |파리 함혜리특파원|‘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혼수상태 돌입 및 권력 이양작업 개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관계는 물론 전체 중동 정세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감안할 때 그의 병세가 중동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갈등의 확산과 충돌의 격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라파트의 장례를 전후해 우려되는 소요사태와 치안 불안이 어느 정도까지 격화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데다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탓이다. ●한 시대의 마감 아라파트 수반의 위독으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구심점을 잃게 됐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최대기구인 PLO는 1969년 창설 이래 아라파트가 의장직을 맡아왔다. 아라파트가 사라지는 것은 중동지역 장기집권 지도자들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전주곡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아라파트가 사라짐으로써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은 증오와 대립의 완충지대를 상실한 셈이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저항과 독립투쟁의 대명사였으며, 아랍권은 아라파트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간접적으로 싸워왔다. 이제 아랍권은 이스라엘과 화해냐 대립이냐를 분명히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으며 과격 반이스라엘 단체인 하마스, 지하드의 테러 위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례 문제 처리 결과 주목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유대교 공동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고귀한 성지·템플 마운트)’를 아라파트의 장지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아라파트는 생전 자신이 사망하면 템플 마운트에 있는 황금 돔 사원 옆에 묻히고 싶다고 누차 말해왔다. 유대교 경전에 성전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는 회교 3대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이 6∼7세기에 건설돼 유대교와 회교 양측이 서로 성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아리엘 샤론 총리는 아라파트의 사망설이 나돌던 4일에도 그가 예루살렘에 안장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혀, 아라파트의 시신을 운구하는 수만명의 팔레스타인 군중과 템플 마운트에서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개 속의 후계구도 아라파트는 최근들어 권력 장악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맡아 자치지역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유일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다른 아랍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후계구도를 명시하지 않았다. 잠재적 정적들을 가차없이 제거해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확실한 후계자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주류 정파인 파타운동은 내분과 지도부의 비리 연계 등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으며, 알아크사순교여단 등 무장단체를 이끄는 젊은 세대는 무리지어 흩어져 있는 상태다. 자치정부 기본법은 아라파트가 사망하거나 축출 등으로 실권할 경우 자치의회 의장이 60일간 권한을 대행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자치의회 의장은 실제 권한을 행사하기에는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 현재 아라파트를 이을 지도자로는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자치정부 초대총리로 취임했다가 5개월만에 중도하차한 그는 PLO 집행위 사무총장을 맡고 있어 권력의 중심에 가장 근접해 있다. 또 이스라엘 신문 마리브는 아라파트가 PLO 정치국장 파루크 카두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는 정치적 유언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전 안전담당책임자 모하메드 달란, 반이스라엘 투쟁 지도자로 현재 이스라엘에 수감돼 있는 마르완 바구티도 주목받고 있다. lotus@seoul.co.kr
  • 아라파트 건강악화설 증폭

    이스라엘이 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병원 검진을 허용한다고 발표하면서 그의 건강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25일 아라파트가 라말라의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팔레스타인측의 요구를 샤울 모파즈 국방장관이 승인했다고 밝혔다.2001년 12월 이스라엘이 아라파트 의장을 잇따른 자살 테러 공격과 폭력사태의 배후로 지목한 이후 아라파트는 암살을 피하기 위해 라말라의 자치정부청사에서 칩거해 왔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라파트가 독감과 위장병을 앓은 적이 있지만 이스라엘에 어떠한 요청을 한 적이 없고 라말라 병원에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외신들의 분석은 각양각색이다.CNN은 “아라파트는 지난 92년 리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를 겪은 뒤 신경계통의 질병을 앓아 왔다. 지난주부터 몇 차례 회의를 취소시켰고 라마단 기도식에도 불참했다.”면서 중병설에 무게를 실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그의 병세가 생각보다 위중하기 때문에 연금을 일시 해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는 “아라파트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아라파트 사망설까지 흘러 나왔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아라파트는 손과 입술을 떠는 등 파킨슨병 증상이 있지만 몇 년 동안 증세가 악화되지 않았고 늦은 밤까지 회의를 진행하는 등 정상적인 업무를 했다.”고 전했다. 한편 아라파트에 대한 퇴진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5일 “아라파트는 원하던 것을 다 이뤘으므로 이제는 물러나야 할 때”라면서 “미국은 아라파트와 더이상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사설] 5·18 등 수사기록 공개 마땅하다

    12·12 군사반란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수사기록의 공개를 검찰이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검찰 수사가 끝난 지 10여년만이다.법률이 아닌 검찰 사무규칙 규정을 들어 공개를 거부할 수는 없고 검찰이 내세우는 거부 이유는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대법원의 판단이다. 검찰이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한 이유는 국가안보와 외교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20여년전의 작전 상황이나 지휘 체계를 공개한다고 해서 안보에 해악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두 사건은 나중에 재수사 결정이 내려져 관련자들은 이미 처벌을 받았다.공개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검찰로서는 같은 사건을 놓고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은 부끄러운 과거일 수 있다.혹여 그런 이유 때문에 공개를 꺼린다면 더 부끄러운 일이다.물론 완전 공개가 어렵고 정히 공개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면 숙고해서 제외해도 좋을 것이다. 아직도 두 사건의 희생자들은 의혹이 다 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5·18 당시에도 떠돌았던 2000명 사망설과 발포 최고책임자 등에 관한 의문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수사기록에 관련자들의 진실된 진술이 담겨있다면 그런 의문을 해소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역사의 진실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다.더 늦기전에 사실을 밝혀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바로잡는 게 옳다.더욱이 이미 재수사와 재판을 거쳐 심판을 받은 사건 아닌가.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은 수사기록은 무조건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고치기 바란다.국가적 기밀이 아니고 공개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관련자들에게 열람토록 하는 것이 떳떳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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