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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수협] (상)맞보증으로 마을전체가 빚더미-무너지는 수협 : 양식어민 5억~7억 빚더미

    국내 최대 어류 양식어가가 밀집한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리.마을입구에 들어서자 앞바다에 빼곡히 들어선 해상 가두리 양식장이 한눈에 들어온다.일부 시설물은 지난해 태풍 ‘매미’로 부숴진 뒤 지금껏 방치되고 있다. 몇년전만해도 ‘잘나가던’ 양식업자들이 요즘은 신용불량자로 몰려 야반 도주하거나 위장 이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이곳 39개 어가는 10여년 전부터 정부의 ‘기르는 어업’ 정책에 힘입어 양식업에 손을 댔다.초기 투자비는 대부분 정부 정책자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중국산 활어 수입증가,태풍·비브리오 발생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양식어가들은 빚더미 속으로 빠져들었다.이미 3개 어가가 파산하고 이곳을 떠났으며,일부는 이혼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10년째 이곳에서 양식업을 하고 있는 김장백(41)씨는 “수협 등에서 초기시설자금 4억여원을 대출받아 양식업에 뛰어 들었으나 지금은 빚만 6억여원에 이른다.”며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토해 냈다. 장모(45)씨는 “대출자금을 못갚아 집이 경매에 부쳐졌다.”며 “10여년 동안 이 사업을 했지만 지금처럼 힘든 때는 없었고,더 큰 문제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털어 놨다. 초기 투자비 및 시설 운영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어류 양식 어가들의 파산과 자금압박은 수협 부실의 최대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마을 문승민(37)씨는 지난 1996년 자신의 재산 8000만원과 형제들에게 빌린 6000만원 등 모두 1억 4000만원을 들여 앞바다에 7조(7x7m,30칸)의 가두리 양식장을 설치했다.이곳에 우럭 20만 마리를 새로 입식했다. 그러나 10개월쯤 기른 시점에서 사료가격이 오르고 운영자금이 바닥났다.농·수협과 일반 은행,친지들을 통해 수천만원씩 빚을 끌어들였다.이 과정에서 2주 동안이나 먹이를 주지 못해 80% 가량이 폐사해 버렸다.하루 아침에 4억여원을 날려 버린 셈.해마다 닥치는 태풍과 적조,비브리오 등도 그의 재기 의지를 꺾었다. 그는 “활어(우럭)가격이 ㎏당 1만 5000원이라야 겨우 생산비를 건지는 데,장기간 1만원을 밑돌고 있어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며 ““해마다 빚내서 투자하고,원금 이자갚기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을 전체 주민이 맞보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됐거나 더 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다.”며 “양식어가 당 평균 5억∼7억여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상당수 어가들이 태풍 등으로 파손된 양식시설을 복구하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으며,해상가두리 양식장의 절반 정도가 빈 껍데기로 남아 있다. 완도 최치봉 남기창기자 cbchoi@ ˝
  • [부고]

    ●애국지사 성장환 선생 애국지사인 성장환 선생이 19일 0시30분 별세했다.88세.유족은 부인 홍태현씨와 백경·명숙씨 등 1남 1녀.빈소는 충남대 병원.발인은 22일 오전 8시30분.(042)257-1704. ●金昇煥(동아일보 미디어전략팀장)씨 부친상 尹善永(스포츠서울 사회부 차장)씨 시부상 18일 오후 7시 강원 강릉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33)644-6098 ●具光吉(서울 구산타워 대표)本宇(㈜나비야 대표)本浩(전 관세청 근무)씨 모친상 朴容鍵(전 제일종금 대표)씨 빙모상 19일 오전 5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1일 오전 9시 (02)392-0299 ●金津植(농협사료 안동공장장)씨 모친상 18일 오후 4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6시 (02)3010-2253 ●張炳賢(㈜예동기술단 대표)炳萬(㈜평화기술단 전무)씨 모친상 金斗元(자영업)鄭在元(㈜한국기계 이사)씨 빙모상 18일 오후 8시10분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20일 오전 10시 (02)958-9552 ●李元雨(KT 서울강남망운용국 직원)元赫(자영업)씨 모친상 19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 (02)3010-2235 ●吳宅洙(전 서기산업 상무)씨 별세 根培(현대산업개발 부장)根午(전 국민은행 울산남지점장)씨 부친상 盧哲鎬(미국 거주)씨 빙부상 19일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68 ●鄭雄敎(한나라당 부대변인·안산시 단원갑 후보)夏敎(태백건설 대표)씨 모친상 韓基淑(명일여고 교사)씨 시모상 19일 오전 2시 강원 삼척의료원,발인 21일 오전 8시 (033)570-7446 ●金判述(전 국회의원)씨 상배 19일 오전 9시30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발인 21일 오전 5시 (031)787-1502 ●權五澤(자영업)五泰(에스이비전㈜ 상무)씨 모친상 李相悳(충주MBC 보도부 차장)씨 빙모상 18일 오후 5시30분 충북 충주의료원,발인 20일 오전 9시 (043)841-0385 ●朴均官(영화회계법인 대표)哲玉(영풍치킨 대표)씨 부친상 18일 6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0일 오전 9시 (02)3410-6917 ●盧鍾培(한국산업은행 인천지점 기업금융팀장)씨 별세 18일 오후 1시5분 인천 구월동 길병원,발인 20일 오전 9시30분 (032)466-1805 ●鄭奇桓(㈜삼현 대표)씨 상배 載憲(삼현 경영지원팀장)在恩(삼현 부장)씨 모친상 18일 오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95 ●朴在煥(한국은행 부총재보)宗煥(자영업)昌姙(망우초등학교 교사)圭煥(상주대 교수)錫煥(국제컨설팅 이사)씨 모친상 劉載哲(송중초등학교 교감)金炳和(대구성광중 교사)씨 빙모상 19일 오후 1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2)3410-3153 ●崔東烈(강원도민일보 영동본부 취재부장)씨 부친상 18일 오후 9시40분 강원 동해시 영동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33)535-0240 ●張勝喜(회사원)勝哲(현대증권 국제영업본부장)씨 모친상 19일 오후 4시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10시 (02)3010-2292 ●宋鎭龍(전 외환은행 부장)鎭虎(한국표준협회 부장)씨 모친상 河聖基(전 상명대 부총장)吳憲鎭(변호사)李完善(우신워터스 이사)李熙寬(자영업)서병연(경주외동중 교사)文英周(자영업)씨 빙모상 19일 오전 11시4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 (02)929-2499 ˝
  • [부고]

    ●애국지사 성장환 선생 애국지사인 성장환 선생이 19일 0시30분 별세했다.88세.유족은 부인 홍태현씨와 백경·명숙씨 등 1남 1녀.빈소는 충남대 병원.발인은 22일 오전 8시30분.(042)257-1704. ●金昇煥(동아일보 미디어전략팀장)씨 부친상 尹善永(스포츠서울 사회부 차장)씨 시부상 18일 오후 7시 강원 강릉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33)644-6098 ●具光吉(서울 구산타워 대표)本宇(㈜나비야 대표)本浩(전 관세청 근무)씨 모친상 朴容鍵(전 제일종금 대표)씨 빙모상 19일 오전 5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1일 오전 9시 (02)392-0299 ●金津植(농협사료 안동공장장)씨 모친상 18일 오후 4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6시 (02)3010-2253 ●張炳賢(㈜예동기술단 대표)炳萬(㈜평화기술단 전무)씨 모친상 金斗元(자영업)鄭在元(㈜한국기계 이사)씨 빙모상 18일 오후 8시10분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20일 오전 10시 (02)958-9552 ●李元雨(KT 서울강남망운용국 직원)元赫(자영업)씨 모친상 19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 (02)3010-2235 ●吳宅洙(전 서기산업 상무)씨 별세 根培(현대산업개발 부장)根午(전 국민은행 울산남지점장)씨 부친상 盧哲鎬(미국 거주)씨 빙부상 19일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68 ●鄭雄敎(한나라당 부대변인·안산시 단원갑 후보)夏敎(태백건설 대표)씨 모친상 韓基淑(명일여고 교사)씨 시모상 19일 오전 2시 강원 삼척의료원,발인 21일 오전 8시 (033)570-7446 ●金判述(전 국회의원)씨 상배 19일 오전 9시30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발인 21일 오전 5시 (031)787-1502 ●權五澤(자영업)五泰(에스이비전㈜ 상무)씨 모친상 李相悳(충주MBC 보도부 차장)씨 빙모상 18일 오후 5시30분 충북 충주의료원,발인 20일 오전 9시 (043)841-0385 ●朴均官(영화회계법인 대표)哲玉(영풍치킨 대표)씨 부친상 18일 6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0일 오전 9시 (02)3410-6917 ●盧鍾培(한국산업은행 인천지점 기업금융팀장)씨 별세 18일 오후 1시5분 인천 구월동 길병원,발인 20일 오전 9시30분 (032)466-1805 ●鄭奇桓(㈜삼현 대표)씨 상배 載憲(삼현 경영지원팀장)在恩(삼현 부장)씨 모친상 18일 오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95 ●朴在煥(한국은행 부총재보)宗煥(자영업)昌姙(망우초등학교 교사)圭煥(상주대 교수)錫煥(국제컨설팅 이사)씨 모친상 劉載哲(송중초등학교 교감)金炳和(대구성광중 교사)씨 빙모상 19일 오후 1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 (02)3410-3153 ●崔東烈(강원도민일보 영동본부 취재부장)씨 부친상 18일 오후 9시40분 강원 동해시 영동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33)535-0240 ●張勝喜(회사원)勝哲(현대증권 국제영업본부장)씨 모친상 19일 오후 4시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10시 (02)3010-2292 ●宋鎭龍(전 외환은행 부장)鎭虎(한국표준협회 부장)씨 모친상 河聖基(전 상명대 부총장)吳憲鎭(변호사)李完善(우신워터스 이사)李熙寬(자영업)서병연(경주외동중 교사)文英周(자영업)씨 빙모상 19일 오전 11시4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 (02)929-2499
  • 폭설피해 양돈농민 자살

    폭설피해를 비관한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일 오후 2시쯤 충남 논산시 연무읍 마삼리 야산 중턱에서 이모(53·논산시 광석면)씨가 쓰러져 신음중인 것을 마을 주민 조모(66)씨가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발견 당시 이씨 주변에는 소주병과 극약병이 놓여 있었다. 이씨의 아내는 “폭설로 양돈장 3채가 무너져 기르던 돼지 150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뒤 남편이 술만 마시는 등 괴로워하다 이틀 전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양돈업을 하는 과정에서 6300만원가량의 빚도 진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씨가 사료값 등을 정리해 둔 작업일지에서는 “한 많은 세상살이 괴롭다.부채는 늘고 살림은 줄고 인생을 마감해야 해결된다.”는 등의 글이 발견됐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
  • 밤10시이후 자율학습 제재

    일선 학교의 아침 8시 이전 ‘0교시 수업’과 밤 10시 이후의 방과후 보충·자율학습이 엄격히 금지된다.이를 어기면 강한 제재를 받는다.보충학습은 하루 2시간 정도 편성되며 나머지 시간에는 자율학습하게 된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영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2∼3개 학급을 학력수준별로 2∼4개 그룹으로 다양하게 나눠,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넓혀준다. EBS 수능 강의내용은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연합학력평가에 반영,중요도가 더욱 높아진다.하지만 수능방송을 정규수업 때 시청할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12일 이같은 내용의 ‘학교정상화 추진계획의 세부지침’을 발표했다.이 지침은 학교 밖의 교육 수요를 학교 안으로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르면 방과후 보충·자율학습은 개설과목과 운영시간,강사채용,강사료,학생부담액,교재선정 등 모든 사항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받은 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율 결정하도록 했다.또 0교시 수업이나 밤 10시 이후 보충·자율학습을 하는 학교는 예산지원을 줄이는 등 처벌한다. 학생들은 개설과목에 따라 원하는 교사나 강사의 강의를 선택할 수 있다.수강료는 과목당 월 2만∼3만 5000원선에서 정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외부강사를 활용해도 무방하다. 수준별 수업은 일단 영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하되 학교 여건에 따라 2개 내지 3개 학급의 학생을 2∼4개가량의 수준별 그룹으로 나눠 ▲모든 수업시간마다 교실을 옮겨 수업하거나 ▲주단위로 일정 시간을 정해 놓고 해당 시간에만 이동수업을 하는 등의 방식을 자율적으로 고르도록 했다. 국어나 사회·과학과목 등은 학급 안에서 분단별로 학생들을 나누거나 구성해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도록 했다.제2외국어 등 학교에서 개설하지 못한 과목은 인근 3∼4개 학교를 묶어 과목별 거점학교를 지정,방과 후나 방학 중에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이 있는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수준별 수업의 학생평가방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상·중·하 그룹이 똑같이 배운 공통학습 내용에 대해 평가하는 쪽으로 비중을 두고 있다. 박홍기기자 hkpark@˝
  • [정책진단] 응급 의료체계 손질한다

    긴급을 요하지 않는 경증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불필요하게 몰려드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관련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응급의료 수가(酬價·의료행위의 가격)를 조정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응급의료기관의 수익성이 낮은 점을 감안해 수가는 현실화하되,질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응급실도 종합병원만 찾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비응급환자, 응급의료관리료 전액 부담 국내 응급의료시설은 크게 권역 응급의료센터(14곳),지역 응급의료센터(106곳),지역 응급의료기관(289곳) 등으로 나뉜다.권역센터는 가장 난이도 높은 중증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곳이다.지역별로 1∼2곳씩 선정돼 있으며,서울은 서울대병원이 해당된다. 지역 응급의료센터도 대학병원급이 대부분이지만,권역센터보다는 덜한 중증환자의 치료를 맡고 있다.지역 응급의료기관은 대부분 200∼500병상의 병원들이 중심이다.현재 이들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면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는 3만원을,지역 응급의료기관은 1만 5000원을 각각 응급의료관리료로 내야 한다. 환자가 28가지의 응급증상에 해당하면 응급관리료의 절반만 부담하고,비응급환자면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물론 나머지 검사료·처치료 등은 별도여서 환자의 부담이 크다. ●응급실도 대학병원만 선호 이런 와중에도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사람의 55% 정도는 감기·복통 등을 앓는 비응급환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더구나 응급실도 대학병원만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대학병원급 응급실은 병상을 못 구해 복도까지 환자 침대가 길게 늘어서 있는 반면,소규모 병원급 응급실은 환자 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로 대학병원급의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하는 환자는 연간 2만 7000여명선에 달하지만,병원급인 지역 응급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는 1만 7000여명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응급의료체계의 왜곡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의대 김용익 교수팀에 ‘응급의료수가체계 개선방안’을 의뢰했다.5월 말쯤 결과가 나오면 공청회를 거쳐 하반기부터 곧바로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우선 대학병원급 응급실의 이용료를 높여 불필요한 이용을 막고,병원급 응급실의 이용료는 크게 낮춰 진료비를 차등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응급의료관리료 대신 응급진찰료를 신설,응급의학전문의를 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진료비를 더 받도록 할 계획이다.반면 지역응급기관은 응급실을 이용할 때 보험적용 범위를 넓혀주고,응급의료관리료를 아예 없애는 것을 포함해 대폭 낮추는 방법으로 환자의 부담을 줄여줄 방침이다. 김성수기자 sskim@˝
  • [폭설대란] ‘융단폭격’ 받은 상주 비닐하우스단지

    “이런 꼴은 난생 처음 당합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7일 경북 상주시 이안면 오이 비닐하우스 단지.계속된 제설작업으로 도로는 겨우 뚫렸으나 비닐하우스촌은 융단폭격을 받은 듯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이 동네 비닐하우스 90동 가운데 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2동뿐.나머지 88동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1400여평(11동)의 비닐하우스를 모두 날린 김병하(50)씨는 “워낙 많은 양의 눈이 내리는 바람에 손을 쓸 수도 없었다.”며 “눈을 치워야 알겠지만 출하할 수 있는 오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허탈해했다.4년전 오이 비닐하우스 농사에 뛰어들면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는 김씨는 “올해 오이 수확으로 원금 일부를 갚을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이자도 못내게 됐다.”면서 “대학생인 두 자녀도 2학기에는 휴학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한 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웃 이봉호(46)씨의 비닐하우스 9동도 맥없이 붕괴됐다.정성스럽게 가꾼 오이가 비닐하우스 철제에 깔려 상품성을 잃었다.오이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 씌운 보온막은 찢겨져 나갔으며 비닐하우스내 온풍기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이씨는 “출하시기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피해조사에 나선 이안면 김관식(55) 총무계장은 “이안면에서 생산되는 오이는 500여t으로 출하된 100여t을 제외한 400여t이 눈에 파묻혔다.”며 “오이 10억여원을 비롯,자동 농약살포기 등 비닐하우스 자재를 합하면 피해액은 3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지역 인삼밭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해가림을 위한 인삼재배시설이 내린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영주시 관계자는 “전체 인삼밭 400여㏊ 가운데 해가림을 한 곳은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 예천읍 청복리 대한축산(대표 구창모·37)의 오리와 닭 사육장 18동도 처참하게 무너져 앙상한 뼈대만 드러냈다.비닐하우스 사육장 쇠파이프가 엿가락처럼 휘어졌고 1200만원짜리 사료 자동공급기는 엉망이 됐다.곳곳에 죽은 오리도 나뒹굴었다.“사육장 시설 등을 합해 피해액은 1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구씨는 말했다.안동에서도 비닐하우스와 버섯재배사 등 시설 382동이 파손됐다.이모(40·풍산읍 괴정리)씨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고 탄식했다. 상주 한찬규기자 cghan@˝
  • 부산 양정동 애견거리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송상현 동상 맞은편 도로는 ‘애견의 메카’로 불린다.서면 쪽에서 양정 방면 왼쪽으로 쭉 따라 올라가면 낡은 목조건물과 슬래브주택,가건물이 뒤섞인 거리가 눈에 띈다.다닥다닥 붙은 가건물에는 각종 애완견센터임을 나타내는 상호가 줄지어 있어 이곳이 애완견 거리임을 짐작케 한다.20여분을 계속 걸어도 애견거리는 끝나지 않는다. 양정동 애견거리는 서면·남포동과 함께 부산의 3대 애견거리로 꼽힌다.매장 규모는 5∼20평으로 그리 크지 않다.족히 30∼40년은 돼 보이는 낡은 목조건물과 가건물 사이로 한 집 건너 들어서 있는 ‘애견센터’의 역사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때만 하더라도 시내 번화가인 중구 남포동에 애견센터가 대부분 몰려 있었다.이곳에는 3∼4곳만이 영업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그러나 애완견 붐을 타고 10여년 전부터 하나둘 애견센터가 들어서기 시작해 부산·경남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애견거리로 자리잡았다. 애견 200여종을 취급하는 이곳엔 웬만한 종류는 다 있다.젊은 여성층 사이에 인기가 높은 슈나우저·말티르·페지니즈·시추·코커스파니엘·미니핀·요크셔테리어 등은 물론 진돗개·셰퍼드 등 큰 개까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애견센터들이 자리잡게 된 것은 도심이면서도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집세가 싸기 때문.상인들은 “다른 데보다 값이 싸고 종류가 다양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부산·경남 일대 애견 마니아의 왕래가 잦다.”고 소개했다.동네 가게와 달리 한 곳에 수십군데의 매장이 밀집해 있다 보니 손님들이 여기저기 둘러보며 자신이 원하는 종류와 스타일의 강아지를 구매할 수 있는 점도 애완견 거리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애완견을 사러 온 김휘수(28·여)씨는 “양정동 애견거리는 애견센터들이 밀집해 있어 원하는 종류의 개를 쉽게 만날 수 있고,다른 곳보다 값이 싸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양정동에서 가장 오래된 애견센터는 20여년 전 문을 연 ‘부산애견센터’.롯데애견·보스애견·불독·취미애견사 등도 오래 전부터 간판을 걸고 성업 중이다.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가게가 현재는 모두 33군데로 늘어났고 동물병원 2곳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다른 곳보다 값이 10∼20% 정도 싸다 보니 인근 울산과 김해 등 경남지역에서도 손님들이 많이 온다. 대부분의 애완센터가 그렇듯 가게에는 개와 관련된 용품도 함께 취급하고 있다.사료와 간식거리는 물론 애완견용 샴푸·비누·옷·액세서리·개집·향수·티슈·개목걸이 등 각종 용품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 거리도 최근 경기불황 탓 등으로 예년에 비해 매상이 반 정도로 뚝 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불황 여파로 예년보다 애완견 값이 전체적으로 30∼40% 정도 내렸고,최근 어린아이가 강아지로 인해 기생충에 감염됐다고 소문나면서 장사가 더 안된다고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게를 내놓은 곳도 더러 눈에 띈다.개업 6년째인 취미 애견사 주인 배경수(57)씨는 “여름철을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영업실적이 비슷한데,최근에는 불황으로 애견 수요가 급감해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친일규명법 통과 의미

    광복 이후 처음으로 친일행위 진상 규명,친일잔재 청산 등 ‘역사바로세우기’의 길이 열리게 됐다.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해 12월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별위에서 법안을 만든 뒤 법사위,특위를 오가는 과정에서 의원들간에 격론을 거친 끝에 상정된 어려움에 비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표는 고작 두 표에 불과할 정도로 쉽게 통과됐다. 특별법은 대통령 소속으로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3년동안 친일인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활동을 벌인 뒤 그들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해 자료수집 및 조사보고서 작성,사료 편찬 등 ‘역사적 단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친일반민족행위란? 특별법이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는 ▲일본군과 싸우는 부대를 토벌하거나 이를 명령한 행위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독립운동가 및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지시·명령한 행위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조인하거나 모의한 행위 ▲징병,징용을 전국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중앙의 문화기관 등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등 19개 항에 이른다. 이밖에 친일행위 대상자로는 ▲일제 귀족원·중의원 의원 ▲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참의 ▲중좌 이상 일본군 장교 ▲위안부 전국적 강제 동원자 ▲민족탄압 판·검사 ▲민족탄압 고등문관 이상 관리·헌병·분대장·경찰간부 ▲일제통치기구 중앙·외곽단체 수뇌부 ▲동양척식회사,식산은행 중앙조직 간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친일파 면죄부법(?) 하지만 특별법안은 애초 원안이 많이 훼손돼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로부터 ‘누더기 법안’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나아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면죄부 법안’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가장 큰 이유는 조사대상자를 대폭 축소시킨 반면 조사대상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대거 신설한 점때문이다.이밖에도 위원회 조사권과 활동기간의 축소,위원추천권을 국회에서 행사하는 문제 등도 민간단체에서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배경이 됐다.반면 일각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범주가 광범위한데다 ‘마녀사냥식’으로 친일파로 내몰 수 있어 사회분열 나아가 국론분열까지 우려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학교는 선거중’ 뒤로밀린 보충학습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학교교육 정상화 시행 방안을 놓고 일선 학교들이 개학하자마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이에 따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실종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달부터 자율적으로 보충학습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2일 개학을 맞은 서울지역 1200여개 초·중·고교는 일제히 학교운영위원 선거전에 돌입했다.보충·자율학습의 세부안은 학운위를 통과해야 확정된다.따라서 교육당국이 교육현장의 사정을 도외시하고 일단 방안부터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게다가 교육청의 구체적인 시행지침이 이달 중순쯤 나올 예정이어서 혼선이 확산되고 있다.이에 따라 자율학습 실시 여부를 학기 중반쯤에나 결정할 수 있는 학교들이 속출할 전망이다.일부 학교에서는 보충수업뿐 아니라 자율학습도 ‘수익자 부담’원칙을 주장하고 있어,공교육기관이 사교육장으로 변질될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보충·자율학습 당분간 시범운영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24 후속대책안’의 핵심인 ‘보충학습’은 학교별 학운위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다.보충학습의 교과 과정 및 교재 선정,우·열반 편성 등 수준별 운영도 학운위의 심사 내용이다. 올해 각 학교의 학운위 임기가 만료되면서 일선 학교는 신학기부터 선거전에 나섰다.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조례에 따르면 3월 한달 동안 국·공립 5기,사립학교 3기 학운위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일선 고교는 이번 학기 보충·자율학습을 당분간 시범 운영하거나 선거가 끝날 때까지 유예한다는 방침이다.서울 강남의 S고 김모(49) 교감은 “보충학습은 교육청 지침이 나오고 학운위가 새로 구성된 이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경복고 박영선 교감은 “교재 선정과 편집 등 결정할 사안이 많아 당장 2일 학교운영위 선출 공고를 내고 오는 15일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 B여고는 보충·자율학습 시행을 유예했다.이 학교 교무부장은 “교사협의회와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내부 논의가 끝나야 돼 학기 중반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초·중학교는 교육 당국의 의지와 달리 특기교육 및 자율학습 시행 자체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Y중학교 최모(50) 교감은 “교사 회의에서 아직 논의도 해보지 않았다.”면서 “사교육에 익숙한 학부모들이 공교육에 신뢰감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서울 배문고 손동빈 교감은 “교육청이 정확한 지침을 하루빨리 공문으로 보내줘야 일선 학교에서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율학습이 수익자 부담? 일부 사립고의 경우 보충수업비를 현실화하고 자율학습도 수익자 부담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어서 학부모의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서울 강남의 경우 보충·자율학습에 사교육 의존 현상이 겹쳐 ‘이중부담’이 예상된다. 사립고인 서울 Y고는 자율학습을 수익자 부담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보충수업은 외부강사를 초빙하는 만큼 기존 학원비의 절반에서 3분의2 수준으로,자율학습은 돈을 낸 신청자에 한해 실시한다는 방침이다.Y고 관계자는 “시간당 4000원의 수당을 주고 감독교사에게 밤 10시까지 근무케 한 뒤 다음날 수업을 하라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서울 강북의 S고는 보충학습 비용을 현행 특기적성 교육의 강사료인 월 2만 5000∼3만원 수준으로 책정하고 별도의 자율학습비 부담을 검토하고 있다.계성여고 최영균 교무부장은 “보충학습 때 학원 단과반처럼 강의를 개설,학생들이 직접 선택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교사 수급·교실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안동환 박지연기자 sunstory@˝
  • “중국의 우리역사 왜곡 일본보다 심해”

    “중국이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세상 살다보면 욕심을 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쳐요.” 1일 고구려 연구재단이 공식출범하기에 앞서 지난 주말 서울 고려대 법학관 1층 교수실에서 만난 김정배(64·고려대 사학과 교수·임기 4년)재단 초대이사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중국측이 느닷없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들고 나와 고구려사를 자신의 지방사로 만들려는 데 대한 분노가 역력했다.교수실은 얘기를 나눈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노학자가 내뿜는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다. 김 교수는 조목조목 중국 주장의 부당성을 꼬집었다.“그들의 주장대로 우리 반만년의 역사에서 고구려 부분을 빼면 200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민족이 됩니다.또 단지 역사적인 측면을 넘어 향후 국경이라는 문제까지 비화될 수 있어요.” 중국 주장 대로라면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했으므로,현재의 북한 역시 중국 땅이 된다.한국은 고작 남한 땅으로 좁혀진다.노학자의 차분하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톤이 높아졌다.“세계적으로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한 예가 없습니다.일본도 이보다 심하지 않았어요.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여기 비하면 양반입니다.”(임나일본부설이란 왜가 4세기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 ●고구려 중국사되면 우리땅은 남한 뿐 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동안 책상위를 뒤져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이 사람이 실제 동북공정의 지휘를 맡고 있는 마대정(馬大正)인데,신강쪽에서 변방문제를 주로 연구하던 사람입니다.이런 점을 봐도 이들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중국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나라인데 21세기에 이런 패권주의로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북공정에는 조선족 문제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진단했다.“국내의 불법체류 조선족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통치기반을 흔드는 중대사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사실 감정적인 측면을 벗어나 법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중국인입니다.중국으로서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김 교수는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중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포석의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다.“한국이 경제력이나 정치적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 교수는 향후 재단의 활동을 연구와 현실참여 두가지 모두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를 위해 시민단체들을 지원할 방침이다.“시민단체들은 아무래도 행동을 중시해,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공론화하는데 맞으리라고 봅니다.외교문제가 걸린다면 상황에 따라 정책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도록 할 예정이에요.” 물론 시민단체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정·관계의 의견에도 귀를 귀울일 계획입니다.또 북한 학자들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해 통일·외교부 등과 연계해 합동조사나 세미나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중국과 맞부딪히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우리 작업이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비쳐져서는 안 됩니다.마치 영토분쟁의 문제로 발전하는 것은 양국에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영토분쟁으로 이어져선 안돼 그는 역사지키기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연구여건과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국내에서 고구려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겨우 14명 정도입니다.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고대사 연구를 하는 후학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겁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단숨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없는 만큼 착실히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예컨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만 보더라도 고구려라는 문헌과 말갈족이라는 것이 공존하는데,중국은 말갈족이라는 문헌만 택합니다.발해가 말갈족의 지방정권이라고 중국이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지요.하지만 고대사는 단지 사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당시 유물을 보면 고구려의 것이 대거 발견됩니다.그리고 어떻게 한 나라가 갑자기 세워질 수 있습니까.상식으로 말해야지요.” 비록 중국이 자국에 민감한 사료의 경우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든지 접근을 불허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는 부지기수라는 것이다.중국 러시아 몽골 등을 모두 뒤져 고구려 관련 자료를 모아 실증적으로 고구려가 한국사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번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외홍보라고 강조했다.“역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알리는 부분도 중요합니다.외국 연구기관 대학 등에 연구결과를 정기적으로 보내,고구려사에 대한 세계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입니다.” 아울러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데 특히 북한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북한은 고구려를 뿌리로 삼고 있어요.심지어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고구려에서 고려로 정통성이 이어졌다고 봅니다.그런데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지방사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중국과 담을 쌓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조만간 중국과 대화하기로 돼 있습니다.앞으로 학술회의나 대담 토론회 등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 등과도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국민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동북공정이란? ‘동북관련 지역이 역사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역임을 확인’하려는 이 작업은 지난 96년 중국의 국가기관인 사회과학원의 핵심연구과제로 추진되기 시작했다.‘학술은 대중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등의 원칙 아래 고구려사를 연구중이다. ●김정배 교수는 누구 한국사를 전공했다.단군학회를 첫 결성,단군을 신화에서 역사로 연구하는 단초를 쌓았다.고대 총장 시절 김일성대와 교류를 추진,두해째 평양을 오가며 고대사를 연구중이다.그는 한국사를 전공했음에도 몽골 등에 관한 저서를 여러권 냈다.이에 대해 “젊을 때 이것 저것하니까 주변에서 ‘왜 힘들게 그러느냐.’고 말렸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눈이 넓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점에서 그는 늘 프론티어 정신을 중시한다. 그는 “황야를 달리며 황무지를 일군 정신은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건 국제화시대에 통하는 정신”이라면서 “학생도 학자도 외국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박재범 사회교육부장 jaebum@˝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친일 반민족’ 실체 밝힌다

    국회 법사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27일 본회의에서 처리될지 주목된다. 그러나 관련자나 후손들의 반발로 사회적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에 따르면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친일 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며,위원회는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사료를 편찬할 수 있도록 했다.위원회의 활동시한은 3년이다. 법안은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토벌하거나 토벌하도록 명령한 행위와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등을 친일 반민족행위로 규정했다.또한 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고용돼 행한 밀정행위와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도 포함시켰다. 특히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와 중앙의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도 친일 반민족행위로 간주했다. 이와 함께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전국적 차원에서 돕기 위해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자발적으로 헌납한 행위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법사위는 당초 원안에 있었던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위원들의 극렬한 논란 끝에 ‘중좌 이상으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로 수정해 통과시켰다.이 부분은 친일행위 여부와 관련,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조항이랄 수 있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당시 일본군대에서 중좌 이상의 계급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은 없었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시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복무한 자체는 친일 행적행위가 짙다.”고 반대했다. 이에 민주당 조재환 의원은 “민족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당리당략적 의도가 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주자로 부상하니까 공격하기 위해 그렇게 주장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법사위는 결국 ‘중좌 이상’을 놓고 표결을 한 끝에 찬성 5명(한나라당),반대 2명(열린우리당),기권 1명(조재환)으로 수정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국내 最古 ‘그림토기’ 발견

    국내 처음으로 사슴 그림이 그려진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됐다. 부산시립박물관은 25일 부산 영도구 동삼동 패총에서 발굴한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국내 처음으로 사슴 그림이 그려진 빗살무늬토기 조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기원전 3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 13㎝,세로 8㎝ 크기의 이 토기 조각에는 두 마리의 사슴이 그려져 있으며,그림의 배치로 미뤄 토기 둘레 전체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동물의 뼈 등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사슴의 특징만을 묘사한 단순한 모양이다.몸체는 사다리꼴로 표현했고 머리와 뿔은 특징만 잡아냈다.사냥 대상이었던 사슴을 그린 점과 붉은 색소를 바른 점 등으로 미뤄 의식 등 특수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박물관측은 설명했다. 이 그림은 신석기시대의 원시미술을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추정돼온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와 회화양식이 거의 일치해 암각화의 제작 시기를 재해석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토기 조각은 지난 1999년 발굴된 유물 속에 포함돼 있었으나 흙에 덮여 있었고,당시 발굴된 토기 조각만 수만 조각에 달해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는데 유물을 세척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수수료는 푼돈’ 편견을 버리세요

    “가랑비에 옷 젖을라….” 온라인 송금이나 현금인출 등을 할 때 내는 은행 수수료에도 ‘절약의 철학’이 있다.대개 푼돈인 데다 은행들끼리 얼마나 다르겠나 생각하기 쉽지만 따져보면 적잖은 차이가 난다.최근들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이자의 차이) 중심의 영업에 한계를 느낀 은행들이 수수료로 돈을 버는 이른바 ‘피(Fee)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어 은행간 수수료 격차는 더욱 커질 것 같다. ●타행송금 수수료 은행별로 천차만별 고객의 이용빈도가 높은 타행송금(계좌이체)만 해도 은행별로 수수료가 천차만별이다.은행 영업시간에 5만원을 현금인출기(CD)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타행환송금(자기 은행→다른 은행)을 할 때 제일은행은 수수료가 900원이지만 국민·신한·하나·한미·외환은행은 1000원,조흥은행은 1300원이다.영업시간이 끝난 뒤 붙는 추가 수수료 역시 은행마다 300에서 600원까지 차이가 난다. 창구를 통한 타행 송금수수료는 100만원 이하일 경우 조흥은행이 가장 비싸다.조흥은행은 3000원을 받고 있지만 다른 은행들은 2000원을 받는다.반면 100만원이 넘으면 조흥은행이 3000원으로 가장 저렴하다.우리은행은 3500원이고 나머지 은행들은 모두 4000원을 받는다. 다른 수수료도 마찬가지로 은행별 격차가 크다.가계당좌를 개설할 때 국민·조흥은행은 신용조사료 명목으로 3만원을 받지만 나머지 은행은 5만원을 받는다.예금주 명의변경은 한미은행이 3000원으로 가장 싸다.나머지 은행들은 모두 5000원이다.통장 재발급 비용은 2000원으로 모두 같다. ●창구수수료가 제일 비싸고,인터넷이 가장 싸다 똑같은 금융서비스라고 해도 영업점 창구를 통하게 되면 수수료가 올라간다.창구→폰뱅킹→인터넷뱅킹 순으로 수수료 부담이 적다고 보면 된다.인터넷뱅킹과 텔레뱅킹을 이용하면 송금 수수료가 같은 은행 내에서는 무료이고 타행이체를 해도 1000원 이하다.창구를 통하지 않아야 경비(인건비)가 절감되기 때문이다.은행들이 인터넷통장이나 전자통장을 개설한 고객에게 각종 송금 수수료를 면제해 주고 보너스 금리를 얹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우리은행의 ‘우리닷컴통장’은 일반예금에 비해 금리가 0.5%포인트 높다. 단골이나 우수고객들도 수수료 할인혜택이 많다.국민은행은 매월 수익 기여액이 1000원 이상인 고객,수신이나 여신의 평균잔액이 3개월간 각각 100만원 이상인 고객,은행창구가 한산한 매월 1∼10일 이용하는 고객을 ‘할인고객’으로 분류,각종 수수료를 20∼30% 깎아 준다. 김유영기자 carilips@˝
  • 김훈 세번째 장편 ‘현의 노래’

    장편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단편 ‘화장’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눈부신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 김훈(56)이 세번째 장편 ‘현의 노래’(생각의나무 펴냄)를 냈다. ‘칼’에서 ‘현’으로 나아간 작가가 섬세한 문학적 촉수를 뻗은 곳은 가야금의 예인 우륵.삼국사기와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사료를 훑은 작가는 한 역사적 인물에 특유의 상상력으로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소설은 ‘소리’를 이루려는 일념 하나로 가야에서 신라로 나라까지 바꾸는 우륵의 삶을 큰 얼개로 삼아,소리를 통해 득도(得道)에 이르는 과정을 부각시키며 풀어진다.물론 우륵의 제자이자 ‘소리 벗’인 니문,가야의 무기 제조장 야로,진흥황 가야왕의 시녀 아라 등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을 불러들여 이야기 그물을 촘촘히 엮는다.그 속에서 작가는 세상사의 모든 것이 담긴 ‘소리’(우륵,니문)라는 원초적 감각과,그것의 울림판인 ‘쇠’(야로 父子)의 비유를 통해 삶의 의미와 현실을 투영한다.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덧없음으로 늘 새롭다.”(285쪽).죽음을 앞에 둔 우륵의 말에 기대어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작가 특유의 문체는 ‘현의 노래’에서 빛을 발한다.골자만으로 이어지는 대사,빠른 사건 전개,묘사와 배치를 섞어 완급을 조절하는 수사로 읽는 이들을 강하게 빨아들인다.‘칼’에서 ‘현’으로 나아간 작가는 “악기가 통과해온 살육과 유혈의 시대를 생각하는 일은 참담했다.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악기가 아름답고 무기가 추악한 것은 아니다.무기가 강력하고 악기가 허약한 것도 아니며,그 반대도 아닐 것이다.이 작품은 그 악기들 내면의 맹렬한 적막에 대해 쓴 것”이라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 [조류독감 2개월-나주를 가다] 박양기 사육농 대책위원장

    “사육농가는 지난해 4월 이후 회사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이혼하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전기도 끊기는 등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400여 농가로 구성된 오리와 닭 사육농가 대책위원장 박양기(46·전남 나주시 동강면 양지리)씨는 “다시 공장이 돌아가고 있으나 사육농가들은 굶어 죽게 생겼다.”며 “밖에서 보는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못 받은 사육 수수료(80억∼100억원) 규모조차 회사에서 자료를 내주지 않아 파악이 안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지난 1월20일 이후 대화가 단절되면서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현 경영진이 물러나야만 대화가 된다.”고 전제를 단 뒤 “이들과 수십차례 만나 약속한 것중 단 한 가지도 지켜진 게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박 위원장은 “현 경영진을 유지하는 화의개시에 이어 오는 4월쯤 있을 화의인가에는 절대 반대한다.차라리 회사가 파산될망정 화의는 안 된다.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막겠다.”고 물리력을 동원할 의지를 밝혔다. 또 “병아리 1만마리를 기르면 한달에 사료비 등 500만∼600만원이 들어가는데 법원 결정대로 매월 몇십만원 받아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박 위원장은 “화의는 기업주만 살리는 길이며,사육농가들은 현 경영진이 물러나고 대리관리인이 들어서는 법정관리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21일 나주시청 앞에서 채권자 생존권 투쟁 집회를 열고 4월19일 채권자 집회에서도 법정관리를 촉구할 것임을 강조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 남도로 가는 감성나들이

    요즘같은 겨울 끝엔 을씨년스럽기가 한겨울보다 더하다.긴 추위에 지친데다 심리적으로 따스함을 주는 눈 덮인 풍경도 보기 어렵기 때문.그래서 마음마저 메마르고 팍팍해지기 쉽다.이렇게 되기 쉬운 감성을 어루만져줄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전남 순천 선암사와 순천만 갈대숲,보성 차밭으로 감성나들이를 떠난다. ■ 순천 갈대숲 & 보성 차밭 선암사는 언제 찾아도 편안하고 정겨운 천년고찰이고 순천만 갈대숲은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시고도 남음이 있는 곳이다.이미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유명해진 보성 차밭은 사철 초록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선암사 주차장까지는 10분 정도 거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포장길을 따라 선암사로 향했다.왼쪽에 선암계곡을 끼고 일주문까지 이어진 1㎞ 남짓한 길은 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 이곳의 명물은 일주문 가까이 이르러 나오는 승선교(보물 400호).임진왜란 때 불타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하면서 놓은 다리라고 한다.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돌다리로 그 단단함과 아름다움이 빼어나다.그런데 승선교는 보이지 않고 중장비가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있다.해체해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사람만 다니던 다리가 차량까지 다니는 통에 ‘골병’이 들었기 때문이란다.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길 옆 고로쇠 나무엔 벌써 여기저기 물통을 매달아 놓은 것이 봄을 느끼게 한다.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광중 하나는 돌담이 많다는 것.대부분의 사찰은 경내가 모두 트여있는 것과 달리 선암사엔 전각들 사이에 돌담이 쌓여 있다. 이는 태고종 사찰의 대표적 특징으로,선암사가 태고종 총림이라는 것을 알면 비로소 이해가 간다.3월 말쯤이면 돌담마다 매화가 꽃그늘을 드리우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선암사 초입엔 긴 알 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의 연못인 삼인당(三印塘)이 있다.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말하는 것으로,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르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든다는 불교사상을 말해준다. 순천만 대대포구로 향했다.30만평에 이르는 갈대숲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광활한 갈대숲 옆으로 난 둑길을 걷다보면 해풍에 도미노처럼 쓰러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황금물결이 메마른 가슴에 비를 뿌린다.안개 가득한 날 갈대숲 사이로 난 좁은 수로를 따라 빨려들어가듯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보면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는 이들도 있다. 순천시내를 흐르는 하천이 순천만에서 퇴적해 쌓이면서 20여년 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갈대숲은 지금도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태.갈대 숲속은 펄밭이다.그래서 갈대숲 사이를 마음껏 거닐어보지 못하는 게 다소 아쉽다.순천시청에선 조만간 나무다리 등을 이용해 갈대 산책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순천에서 2번 도로를 타고 보성으로 넘어가는 길.벌교를 지나다 보니 벌판에 드문드문 대형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고,길 옆엔 ‘벌교딸기’란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다.딸기 크기가 어린애 주먹만하다. 벌교에서 보성읍을 지나 보성다원에 도착했다.보성엔 크고 작은 차밭이 여러개 있지만 대한다업이 운영하는 보성다원이 가장 넓고 분위기도 좋다.차밭 입구로 이어지는 길 양쪽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삼나무숲도 볼거리. 추위에 지친 이들에게 온 산자락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는 차밭은 보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밭 입구엔 보성녹차 전시·판매장을 겸한 찻집이 있다.찻값은 1000원.녹차가루로 만든 과자도 먹을 수 있다.(061)852-2593. 보성다원에서 77번 도로를 타고 10여분쯤 남쪽으로 가면 율포해수욕장이다.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과 점점이 떠있는 작은 어선들이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겨울에도 주말이면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데,이는 순전히 율포해수 녹차사우나 때문.은빛 물결이 아름다운 율포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해수탕과 녹차탕을 즐기다 보니 이틀간 쌓인 여독이 싹 씻겨나가는 듯하다.보성군청이 직접 운영한다.입욕료 5000원.(061)853-4566. ■ 이렇게 가세요 ●교통 선암사는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빠져 832번,857번 지방도로를 차례로 갈아타고 10분 정도 가면 주차장에 닿는다.순천만 갈대숲은 서순천IC에서 빠져 22번 도로를 타고 가야 빠르다. 순천만 갯벌에서 보성차밭으로 가려면 2번 도로를 타고 벌교를 거친 뒤 보성읍내에서 77번 도로를 갈아타야 한다.1시간 정도 소요.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가 하루 18회 있다.5시간 소요.열차는 서울역에서 여수행 열차를 타고 순천에서 내리면 된다.하루 9회 운행.순천버스터미널(061-744-8877). ●숙박 순천 시내에 특급호텔은 없고 1급호텔로 시티관광호텔(061-753-4000),로얄관광호텔(061-741-7000) 등이 있다.선암사가 있는 조계산 인근 죽학리에 관광장여관(061-754-5773) 등 여관이 많다.또 유평리 알프스산장(061-754-5348) 등 민박을 이용해도 된다. ●남도 맛집여행 패키지 ㈜여행그룹에서 남원,순천,보성을 있는 섬진강 여행상품을 운영한다.매주 화요일 출발.지리산 정령치,매화마을,율포 바닷가,보성차밭,선암사 등을 둘러본다.남원추어탕,매실한우,수문포 바지락회,녹돈,전주비빔밥 등을 맛볼 수 있다.17만 500원.(02)548-9996. ■ 이것도 맛보세요 순천시 연향동에 가면 ‘一品梅牛’(일품매우)’라는 유명한 고깃집이 하나 있다.재작년 8월 문을 연 뒤 1년도 안 돼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식당이다. 이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매실을 먹여 도축한 쇠고기를 쓴다. 대표 김용배씨는 광양 청매실농원 홍쌍리 여사의 양아들.매실 당저림 등 농원의 다양한 매실제품들의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사료에 섞어 먹인다.이곳 고기는 부드럽고 담백한 것으로 전국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씨는 “매실을 먹은 소는 육즙이 많은 게 특징”이라며 “육즙이 많을수록 육질이 부드럽다.”고 말한다.김씨는 광양시와 협약을 맺고 소 사육농가에 매실 부산물을 공급해 키운 소를 구입해 쓴다. 매실을 먹인 소라도 도축 등급에 따라 최상급엔 마리당 50만원씩 더 주는 등 고품질의 재료 확보에 신경을 쓴다.메뉴는 생갈비와 등심,갈빗살 모둠구이,육회 등.이중 소 뒷다리 부위를 두툼하게 저민 육회 맛이 특히 일품이다.구이용 고기도 모두 생고기를 쓰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음식값은 부위별로 1인분(130g)에 2만∼2만 2000원.부위별 고기를 한꺼번에 맛보고 싶으면 모둠구이(3인기준 7만원)를 시키면 된다.육사시미는 1접시 3만원.(061)724-5455. 보성의 율포해수녹차사우나에 갔다면 ‘녹차호떡’을 꼭 맛보자.사우나를 끝내면 출출하기 마련인데,사우나 정문 옆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녹차호떡 맛이 독특하다.반죽에 녹차가루를 섞어 연녹색 빛깔을 띠는 호떡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고소한 맛과 은은한 녹차향까지 느낄 수 있다.1개 500원. 율포해수욕장에서 77번 도로를 타고 장흥쪽으로 30분쯤 가면 장흥군 안양면 수문포에 이르러 ‘바다하우스’란 음식점이 나온다. 키조개전문점이라고 씌어 있지만,키조개 못지않게 바지락회무침을 잘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지락회무침은 살짝 데친 바지락 살을 몇가지 야채와 양념초장에 버무려 만든다.예전엔 겨울에 생바지락을 그대로 썼으나 요즘엔 조심성 많은 손님들이 꺼려 데친 것만 쓴다. 하지만 생바지락을 써야 제맛이 난다며 주인 장유환씨는 아쉬워했다. 이집은 바지락회를 무치는 양념초장이 맛있기로 유명하다.자연산 식초와 고추장에 몇가지를 더 넣어 만드는데,영업비밀이라며 입을 다문다.새콤달콤하면서도 바지락살의 쫄깃함과 야채의 싱싱함을 살리는 게 바지락회무침의 생명이라고 장씨는 설명했다. 2만원짜리 1접시면 3인 정도가 먹을 만하다.(061)862-1021. 글 순천·보성 임창용기자 sdragon@ ˝
  • 음식쓰레기로 오리 ‘쑥쑥’ 환경 ‘생생’

    “평소 재활용에 조금만 관심쏟으면 어려울 때 큰 밑천이 되죠.” 서울 자치구들이 경제난 타개와 자원절약을 위해 재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송파구(구청장 이유택)는 ‘헌책 은행’을 만든다.오는 23일 지하철 8호선 잠실역 지하상가에서 1호점 개설 기념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앞으로 주요 지점마다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다. 헌책은행에서는 주민들의 책을 맡아뒀다가 다른 책으로 교환해주거나 기증도 할 수 있도록 했다. 헌책은행은 면적 15평으로,아동도서와 부동산 등 전문서적은 물론 시집·소설 등 총 1만여권을 보유하게 된다.송파구는 주택가를 돌고,폐지 재활용업체에 쌓인 헌 책에서 선별하거나,주민들로부터 기증받아 물량을 확보할 예정이다.기증 뒤 교환을 원하면 무료 교환권 쿠폰을 발급해준다.재활용 자원의 소중함을 심어주기 위해 판매가격을 정가나 상태와 관계없이 1권당 200∼500원으로 정했다.(02)410-3375.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는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로 이용하는 비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리농장을 직영하고 있다.항동 209번지에 위치한 농장은 1000평에 이른다.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 실업자 구제책으로 아이디어를 짜냈다. 농장 운영으로 얻는 효과는 뜻밖에 컸다.음식물쓰레기 직매립 또는 소각에 따른 환경오염의 최소화는 물론,침출수로 인한 수질 및 토질오염과 소각에 따른 대기오염 방지,음식물쓰레기 자원화,구청 예산절감,사료 및 오리수입 감소에 따른 외화절약,오리농장을 어린이들에게 자연학습장으로 개방함에 따른 자연보호 의식 고취과 휴식공간 제공 등 무려 ‘1석 10조’다. 큰 오리 한 마리는 버린 음식물을 하루에 2㎏이나 먹어 농장에서 사육중인 청둥오리 3500마리는 하루 7t이 필요하다.(02)2615-5246. 송한수기자 one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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