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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장 누볐던 ‘피아노 거장’… 66년 만에 듣는 위로의 선율

    6·25 전장 누볐던 ‘피아노 거장’… 66년 만에 듣는 위로의 선율

    최전방서 8개월간 100여차례 공연 전쟁 공포 시달리는 전우 용기 북돋아 27일 감사 만찬 행사서 연주회 열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89)이 6·25 전쟁 참전용사 자격으로 방한한다. 번스타인은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의 주인공으로, 1951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미 8군 일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국가보훈처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번스타인을 비롯한 미국인 6·25 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해외교포 참전용사 등 70여명을 23∼28일 5박 6일 일정으로 초청, 예우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연다고 20일 밝혔다. 번스타인 등 참전용사들은 이번 방한 기간에 6·25 전쟁 66주년 기념식 참석, 판문점 방문, 국립 서울현충원 참배, 전쟁기념관 헌화 등의 일정과 함께 이태원, 인사동, 청와대 사랑채 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번스타인은 최전방에서 8개월 동안 100여 차례 피아노 공연을 하며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군인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소총을 들고 피아노를 치며 군 복무를 했다. 그는 “군인들은 언덕 경사에 앉았고 포탄이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공군들이 언덕을 넘어 비행해 우리를 지켜줬다”고 회상했다. 번스타인은 한국인들을 위해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전역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1955년 서울교향악단 지휘자였던 존 S 김의 초대로 방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1960년 미 국무부 후원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는 방한 기간 4·19혁명이 일어나 콘서트 계획이 모두 취소됐다. 당시 그는 콘서트 대신 이승만 정권에 항거하다 다친 이들이 입원해 있던 서울대병원에서 연주했다. 번스타인은 오는 24일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를 위한 위로연과 27일 감사 만찬 행사에서 6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유엔참전용사들을 위해 당시 전쟁터에서 연주했던 피아노 선율을 다시 들려준다. 24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국을 찾은 소회도 밝힌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움집에서 아파트로… 한반도 주거문화 변천사 한눈에

    [명인·명물을 찾아서] 움집에서 아파트로… 한반도 주거문화 변천사 한눈에

    집은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물리적 공간이고 정신적인 안식처다. 1만년 전, 긴 빙하기 추위가 끝나고 따듯한 기후로 급변하면서 그전까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됐다.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은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 19일 경남 진주시에 따르면 경남혁신도시인 남가람신도시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박물관’은 우리나라 주거문화와 건축기술 변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토지·주택 전문 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박물관이다. 한국토지공사와 한국주택공사는 LH로 통합되기 전 경기 성남시에 본사를 두고 있을 때부터 각각 토지박물관(1997년 7월 설립)과 주택도시박물관(2005년 12월 설립)을 운영했다. 두 기관이 2009년 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곳 박물관도 토지주택박물관으로 통합됐다. LH는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진주혁신도시 충의로19 일대에 새 사옥을 지으면서 사옥 안에 독립된 박물관 공간을 함께 설계해 건립했다. 박물관을 완공한 뒤 성남 토지주택박물관에 전시됐던 5만여점에 이르는 토지·주택 관련 각종 자료와 유물을 특수 운반 차량 30여대를 이용해 옮겨 왔다. 전시 전문 기관에 의뢰해 자료, 유물을 다양한 기법으로 새로 설치, 전시하고 전시물을 보완한 뒤 지난해 7월 1일 박물관을 개관했다. 성남시에 있었던 두 개의 박물관보다 규모가 크고 전시 내용도 다양해졌다. LH 사옥은 20층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본관동을 가운데에 두고 동쪽에 ‘늘벗동’(의료·금융 시설)과 서북쪽 ‘나래동’(보육시설), 서남쪽 ‘공감동’(토지주택박물관동) 등 모두 4개 동의 건물이 부드러운 곡선 모양으로 이어져 하나의 건물을 이루고 있다. 부지 9만 7165㎡에 연면적 13만 5686㎡로 경남의 랜드마크 건물이다. LH 본사 정문에 들어서면 웅장하면서도 날렵하게 우뚝 솟아 있는 LH 사옥 건물 작품을 먼저 감상하게 된다. 박물관이 있는 공감동은 3층 규모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1층에 홍보관과 다목적 전시실 등이 있다. 토지주택박물관은 2층에 있다. 3층은 박물관 사무실로 쓴다. 2층 박물관 시설은 전체 면적이 2390㎡로 제1전시실(1106㎡)과 제2전시실(603㎡), 기획전시실(327㎡) 등 모두 3개 전시 공간으로 나뉜다. 1, 2전시실은 상설 전시실이다. 1층에 있는 다목적 전시실도 토지 및 주택 관련 기획전시를 하는 전시 공간이다. 제1전시실은 ‘삶의 공간’을 주제로 우리나라 주거시설과 주거 생활 문화를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각종 희귀 자료와 시설이 설치, 전시돼 있다. 특히 청동기시대 움집과 고구려시대 부엌, 조선시대 양반집의 사랑채, 근대 신당동 문화주택,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12평 크기의 마포아파트 등 시대를 대표하는 5채의 집을 실물 크기에 가깝게 당시 모습으로 재현해 놨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주거 형태가 시대에 따라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마포아파트 전시 공간에는 방 2개와 거실, 부엌, 베란다, 수세식 화장실 등 아파트 실내를 당시 구조 그대로 설치해 놨다. 아파트 안에 전시돼 있는 상자 모양의 흑백 TV를 비롯해 당시 전자제품과 생활용품 등의 소품도 눈길을 끈다. 마포아파트는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우리나라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마포형무소 농장 부지를 구입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다. 오래된 건축 자재와 다양한 도구를 비롯해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의 갖가지 기와 종류, 조선시대 각종 토지대장, 토지 매매 기록, 토지등기문서 등도 1전시실에서 구경할 수 있다. 조선시대 울산에 살았던 심원권이 84살로 사망할 때까지 64년 동안 쓴 생활일기는 토지주택박물관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희귀 자료다. 제2전시실은 우리나라 토목·건축 기술의 흐름과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터전의 기술’을 전시 주제로 삼았다. 흙, 돌, 나무, 철을 비롯한 건축 재료와 다양한 건축 공구를 비롯해 우리나라 전통 난방시설인 온돌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온돌 시설 모형 등 흥미 있는 전시물이 많다. 귀로 듣고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체험시설도 있다. 소나무로 만든 공포(?包)도 눈에 띈다. 공포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춰 댄 나무 부재다. 이 공포는 숭례문을 복원할 때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숭례문 복원에는 이 같은 공포 84개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3전시실은 토지주택박물관이 소장한 희귀한 유물과 자료 등을 기획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공간이다. 현재 제3전시실에서는 ‘토지주택박물관의 진주(眞珠)’를 주제로, 구석기시대 돌 도구, 죽음 뒤의 집인 석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주먹도끼인 연천 구미리 주먹도끼를 비롯해 구석기시대 돌 도구와 고려시대 사신도문의 석관 등을 전시해 놨다. 1층 다목적 전시실에서는 ‘터전의 여정 70년’이라는 주제로 광복 이후부터 최근까지 추진됐던 우리나라 민간주택 및 공공주택 건설 사업과 도시 개발 사업 등을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소개하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주차 공간은 LH 사옥 앞 광장에 넉넉하게 조성돼 있다. 박물관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은 무료다. 단체 관람 예약을 하면 해설사가 안내와 설명을 해 준다. 박물관 전시 안내 업무를 맡은 천윤진(25)씨는 “진주시민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관람객들이 평일에는 100여명, 토요일에는 200명 넘게 꾸준히 찾아온다”고 말했다. 토지주택박물관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세계의 역사와 문화, 인문학 등을 배우는 박물관 대학을 상·하반기 두 차례 운영한다. 방학 기간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인 어린이문화교실을 연다. 지역민들을 초대해 명사 초청 특강을 진행하고 지역 초등학교를 찾아가 전시하는 ‘찾아가는 박물관’도 운영한다. 글 사진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55일간 피로 물든 강… 날마다 붉게 번지는 상흔

    55일간 피로 물든 강… 날마다 붉게 번지는 상흔

    1950년 8월, 경북 칠곡은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투는 낮밤을 가리지 않았고, 남북으로 갈린 젊은이들은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쏘고 찔렀다. 낙동강은 시퍼런 아가리를 벌려 젊은 꽃넋들을 닥치는 대로 삼켰다. 그렇게 피의 대가로 지켜낸 곳이 칠곡이다. 나라 안에 한국전쟁이 남긴 핏자국으로 얼룩진 곳이 어디 한둘일까만, 낙동강과 그 언저리를 적신 자국은 유난히 붉다. 호국 보훈의 달에 칠곡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한국전쟁 당시 상황을 개략적으로나마 짚자. 그래야 칠곡의 여행지들을 이해하기 쉽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몰아쳤다. 기습 남침에 허를 찔린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내준 데 이어 한 달 만에 국토의 대부분을 잃고 낙동강 아래로 후퇴했다. 남은 곳은 대구와 부산뿐. 두 곳을 잃으면 대한민국도 끝이다. 당시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던 월턴 워커 미 8군 사령관은 두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구축했다. 낙동강과 그 상류의 산악 지대를 잇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칠곡은 그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이었다. ●한국전쟁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 흔적 배수진을 친 곳인 만큼 전투도 치열했다. 그중 가장 처절했던 곳이 칠곡 동북쪽의 다부동이다. 대한민국 전승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부동 전투’의 전설은 바로 이때 쓰였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간 이어졌다. 국군 제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맞서는 동안 북한군 2만 4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승리는 얻었지만, 우리 또한 학도병을 포함해 1만여명이 총탄과 포탄에 스러져 갔다. 그런데 왜 하필 다부동이었을까. 다부동은 대구에서 불과 22㎞ 떨어진 전략 요충지다. 여기가 뚫리면 대구, 부산 함락은 시간문제다. 그러니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온전하지 못할 만큼 처절한 전투가 이어진 것도 당연했다. 이 같은 피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라면 다부동을 지날 때 잠시라도 발을 멈추고 흙먼지처럼 스러져간 젊은 꽃넋들을 기릴 일이다. 다부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조붓한 언덕 위에 전적지가 조성돼 있다. 탱크를 형상화한 기념비가 특히 인상적이다. 기념관 안에 당시 총기류와 수류탄 등이 전시돼 있다. 수량은 많지 않아도 전쟁의 상흔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명부전 지닌 송림사 다부동 서북쪽은 유학산이다. 골골마다 붉게 물들었다던 격전지다. 산자락 중턱의 팥재휴게소와 그 위쪽의 도봉사에 오르면 일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집 담장에 기대 망연히 산하를 굽어보자면 당시의 젊은 넋들이 바람 되어 흐르는 듯하다. 도봉사 진입로가 협소하다. 경사도 급해 오르내릴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다부동 동쪽엔 송림사와 가산산성이 있다. 송림사는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전탑(보물 제189호)이 있는 절집이다. 다만 현재 보수 공사 중이어서 전탑 기단부에 가림막을 둘러친 게 아쉽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명부전은 그대로다. 다양한 형태의 건물 벽화가 특히 볼만하다. 가산산성도 격전지 중 하나다. 차로 돌아볼 수 있다. 다시 전쟁의 복판으로 들어가자. 낙동강에서 국군의 저항에 발이 묶인 북한군은 다부동으로 연결되는 통로였던 매원마을에 주둔하게 된다. 매원마을은 광주이씨 집성촌으로, 한때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영남 3대 반촌’으로 불리던 곳이다. 마을이 최고로 번성했던 1905년엔 무려 400여채에 이르는 기와집들이 언덕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한데 북한군이 박곡종택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지경당을 야전병원으로 운영하면서 매원마을도 전쟁의 한복판으로 빨려들고 만다. 미군은 적의 사령부가 있던 박곡종택을 겨냥해 집중 폭격을 퍼부었다. 대부분의 고택이 이때 소실됐다. 한데 신기하게도 포탄이 가려 떨어졌다. 살림집들은 혹독한 피해를 입었지만 재실과 사당은 대부분 화를 면했다. 여태 박곡종택을 지키고 있는 광주이씨 종부 이명숙(74)씨는 “예전엔 담장 안에 잣나무로 지은 건물이 86칸이나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며 “바늘이 떨어져도 어렵지 않게 찾을 만큼 촘촘하게 지은 집이었다는데 이젠 사당과 사당 앞을 지키는 회화나무 그리고 주춧돌 몇 개만 남았다”고 아쉬워했다. 마을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됐다는 해은종택도 여기저기 새로 손본 흔적이 역력하다. 그나마 문이 잠긴 경우가 많아 들여다보기조차 쉽지 않다.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자경당은 토담이 허물어진 상태다. 다행히 담장 안 건물은 비교적 옛 모습을 잃지 않아 곰삭은 시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1895년 세워진 가실성당… 전쟁의 포화에 살아남아 매원마을을 지나면 곧 낙동강이다. 이제 옛 왜관철교(현 호국의 다리, 등록문화재 제406호)를 만날 차례다. 1905년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낙동강 위에 세운 다리다. 개전 이후 속수무책으로 낙동강까지 밀린 한미연합군 측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군의 남하를 막는 것이었다. 결국 연합군 지휘부는 낙동강의 모든 교량을 폭파해 적의 도하를 저지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왜관철교 폭파는 미군 제1기병사단에서 맡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8월 3일 오후 8시 30분. 마침내 왜관철교가 폭파됐다. 다리 위에 있던 수많은 피란민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후 국군은 낙동강 전투를 통해 북한군을 괴멸시키면서 북진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종교 시설물이 전쟁의 포화에서 살아남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낙동강변의 가실성당이 대표적이다. 1895년 세워져 1922~23년 중건된 가톨릭 교회로, 대구 계산성당에 이어 경북 지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당시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덕에 비교적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옛 성당 건물도 아름답다. 원래 1928년 ‘왜관성당’으로 지어졌는데, 1952년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베네딕도회가 북한 정권에 성당을 몰수당한 뒤 칠곡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름도 바뀌었다. 가실성당 맞은편 강 건너엔 노석동 마애불상군(보물 제655호)이 있다. 7세기 후반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일반적으로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 등 삼존불로 구성되는데, 오른쪽 협시보살 옆에 작은 불좌상을 하나 더 배치한 게 특이하다. 글 사진 칠곡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낙동강 전적지는 칠곡 곳곳에 흩어져 있다. 지역 안배를 잘해야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가산 나들목으로 나오면 유학산이 지척이다. 팥재 휴게소 옆길로 도봉사까지 오르면 유학산과 낙동강 일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어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송림사, 가산산성 순으로 돌아보면 된다. 다부동 일대를 먼저 보겠다면 중앙고속도로 다부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다부동 전적지가 고속도로 나들목 인근에 있다. 옛 왜관철교, 왜관수도원, 매원마을, 가실성당 등은 경부고속도로 왜관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노석동 마애불상군은 성주군과 경계지역에 있다. 다른 여행지들과 떨어져 있어 별도로 계획을 짜야 한다. 게다가 도고산 중턱의 외진 곳에 있어 찾아가는 데 시간과 품이 적잖이 든다. →잘 곳:매원마을의 관수재, 풍각댁, 이석고택 등 몇몇 한옥들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다만 객실 수가 1~2개로 적은 데다 사랑채를 통째 빌려야 하는 집도 있어 사전 확인이 필수다. 칠곡 문화관광 누리집(tour.chilgok.go.kr) 참조. 도개온천 쪽에도 칠곡도개온천모텔(054-975-4811) 등 숙박업소가 몇 곳 있다.
  • [한방으로 잡는 건강] 임신 중 하루 1~2잔 커피는 괜찮대요

    임신 중 담배를 피우거나 술, 약물 등을 함부로 섭취해선 안 된다는 사실은 상식이지만 커피는 알쏭달쏭하다. 5분 거리마다 커피전문점이 있을 정도로 커피 판매점이 많아 임신부들은 늘 커피 한잔의 유혹에 시달린다. 커피는 꼭두서니과 커피속(가배속)에 속하는 커피나무의 씨다. 꼭두서니과 가운데 조구등, 치자, 파극천 등이 한약으로 쓰인다. 커피 역시 중추신경흥분작용, 강심, 이뇨작용을 하는 약물식물이다. 게다가 커피에는 카페인 외에 수십 종의 성분이 함유돼 있다. ‘임신부가 커피를 마셔도 과연 안전한가’에 대한 답을 얻고자 오래전부터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커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던 1980년 임신부에게 과도한 커피 섭취를 피하라고 권고했다. 2005년에는 ‘하루 4잔 이상의 커피 섭취는 사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덴마크 코호트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1~2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안전하다는 게 대다수 연구진이 내린 결론이다. 2015년 일본에선 ‘임신 중 과량의 카페인 섭취는 조산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반대로 2012년 덴마크에선 ‘체중감량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카페인과 에페드린 복합제제의 경우 태아의 유산을 증가시키지 않았으며 또한 임신 중 커피 복용이 태아신경관결손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결론적으로 임신 중 커피 섭취는 하루 1~2잔 이하가 적당하다. 하지만 카페인이 든 식품은 커피 외에도 다양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적정 섭취량 이상의 카페인을 섭취하게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도움말 공병희 사랑채움한의원 원장
  • ‘세월호 특조위’ 예산 든다는 박근혜 대통령…전국은 박정희 우상화 사업 중

    ‘세월호 특조위’ 예산 든다는 박근혜 대통령…전국은 박정희 우상화 사업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인 경북 구미시가 최근 ‘박정희 대통령 테마밥상’까지 내놓으면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박정희 탄신제(11월 14일)와 추모제(10월 26일)까지 시 행사로 지내는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의 테마밥상까지 내놓으면서 구미시는 ‘박정희시’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구미시뿐만 아니라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별로 진행 중인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사업만 14개에 달한다. 이 사업에는 모두 1900억원의 국가 및 지자체 예산이 쓰였거나 쓰일 예정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연장과 관련해 예산 지원 문제로 난색을 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추모 사업 중 일부를 알아봤다. 1. 박정희 생가 복원 사업 - 286억원 경북 구미시 소재, 경상북도기념물 제86호로 1917년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1937년 대구사범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생가에는 안채와 사랑채, 1979년에 설치한 분향소가 있다. 2. 박정희 기념공원 - 297억원 서울시 중구가 2013년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공원을 조성하려던 사업으로 박 전 대통령 가옥(신당동)과 50m가량 떨어져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구가 서울시와의 이견으로 추진하지 못한 기념공원 건립 사업을 올해 자체 예산으로 재추진한다고 해 논란을 빚고 있다. 중구는 2018년까지 총 297억 원을 투입해 지하 4층 지상 1층, 1만 1075m² 규모의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297억원은 중구청 전체 복지예산의 1/3에 해당한다. 3. 박정희 민족중흥관 - 65억원  경북 구미시가 시비 65억원을 들여 건립한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은 부지 2328㎡, 연면적 1207㎡(지하 1층∼지상 1층)로 완공됐다. 전시실 3곳과 돔 영상실, 기념품 판매소 등이 있는데 전시실에는 박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사용한 책상과 의자 등 유품, 세계 각국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 등 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4.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 785억원 박 전 대통령 생가 주변인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 일원 25만㎡에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이 들어선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공원은 전시관과 재현촌, 글로벌관, 연수관, 새마을광장 등을 갖추고 주 건물인 전시관은 한옥 처마의 곡선을 지붕 선형에 도입해 테마공원의 관문을 형상화할 계획이다. 전시관은 이념관, 시대관, 주제관, 새마을전당, 글로벌비전관으로 구성된다. 5. 박정희 기념도서관 - 208억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사와의 화해’ 차원으로 제안해 국비 208억원이 지원되면서 추진됐다. 하지만 개관 만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곳에는 공공도서관은커녕 기록물 열람실조차 굳게 닫힌 상태다. 관람객들은 박 전 대통령의 업적과 생애를 기리는 기념관만 둘러볼 수 있다.6. 박정희 1박 기념관 - 12억원 박 전 대통령이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울릉도를 하루 방문해 묵었던 옛 울릉군수 관사가 ‘울릉도에서 만나는 박정희 1962 옛 군수관사’로 명명돼 기념관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이밖에 경북 문경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교 시절 하숙집 복원비로 17억원을 쓰기로 했다. 7. 기타(박정희 동상, 박정희 소나무, 박정희 테마밥상) - 박정희 동상 박 대통령 동상은 윤종용 전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이 기부한 3억원으로 제작됐다. 동상 제막식은 지난 3월 4일 KIST 설립 50주년 행사 때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특정 인물을 우상화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연기됐으나 같은 달 11일 진행됐다. - 박정희 소나무 구미시 공단동 옛 금성사에 있는 이 소나무는 박 전 대통령이 1975년 금성사 구미사업장 준공식 때 방문한 자리에서 소나무에 얽힌 추억을 회고하면서 ‘박정희 소나무’란 별칭을 얻었다. 이 소나무는 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소를 매어 두고 시간을 보냈던 나무로 알려졌다. 최근 경북 구미시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박정희 소나무’를 박정희 대통령 동상 옆으로 옮겨 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박정희 테마밥상 이 테마밥상은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의 근검·절약 정신을 되새기고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기획했다. 메뉴 개발에는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요리사 손성실씨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연 인턴기자 julie31080@seoul.co.kr 
  • 봉하마을 사저 일반 공개… 밀짚모자 쓰던 소박한 흔적 고스란히

    봉하마을 사저 일반 공개… 밀짚모자 쓰던 소박한 흔적 고스란히

    한옥 구조… 서가·사진·안경 등 유품 그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서거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살았던 봉하마을 사저가 1일 일반에 공개됐다.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 귀향 당시 보수 진영에서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던 이곳은 4개 공간이 복도로 연결된 ‘소박한’ 모습이었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 7주기를 맞아 사저를 5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일요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날 일반 공개에 1시간 앞서 오전 10시 언론에 먼저 문을 열었다. 2008년 3월 완공된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뒷산 자락 4265㎡(1290평) 부지에 정남향으로 자리해 있다. 전체 건축면적은 595㎡(180평)로, 이 중 경호·비서 직원들이 사용하는 국가 소유 경호동이 231㎡(70평)다. 고 정기용 건축가는 사저를 채광과 통풍이 잘되는 한옥 구조로 설계했다. 나무와 강판 등을 재료로 삼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현관까지 돌계단 18개가 완만하게 설치돼 있다. 건물은 크고 작은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서 사랑채 공간이 손님을 맞는다. 노 전 대통령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보좌진 등과 식사를 했던 곳으로, 전망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동편에 나 있는 창문에는 봉화산과 사자바위, 부엉이바위가 펼쳐져 4쪽 병풍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창으로 봉화산을 보거나 자신이 토굴을 짓고 공부했던 과수원을 풍경화처럼 감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방엔 고 신영복 선생이 쓴 ‘사람 사는 세상’ 액자가 걸려 있고 액자 아래 벽에는 노 전 대통령의 큰손녀 서은양이 연필로 그린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다른 쪽 벽에 걸린 취임식 사진은 취임식에 초청받지 못한 한 해외교포가 근처 높은 빌딩에서 촬영해 보관하고 있다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기증한 것이다. 안채는 거실과 침실로 나뉘어 있고 거실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하고 서거 직전 유서를 작성했던 컴퓨터와 모니터 2대가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거실 왼쪽 서재에는 책 1000여권이 꽂힌 책장과 노 전 대통령이 시민들을 만날 때 썼던 밀짚모자도 걸린 옷걸이가 있다. 사저를 관람하기 위해 경기 남양주시에서 친구들과 왔다는 김시은(62)씨는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정취가 느껴져 마음이 찡하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측은 이달 시범 개방에 이어 1~2차례 시범 개방을 더 한 다음 상시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양숙 노 전 대통령 부인은 사저를 개방하기 위해 재단 측에 기부한 뒤 사저 인근에 개인 주택을 지어 지난해 11월 이사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봉하마을 노무현 전대통령 사저 일반 공개… 밀짚모자 쓰던 소박한 흔적 고스란히

    봉하마을 노무현 전대통령 사저 일반 공개… 밀짚모자 쓰던 소박한 흔적 고스란히

    한옥 구조… 서가·사진·안경 등 유품 그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서거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살았던 봉하마을 사저가 1일 일반에 공개됐다.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 귀향 당시 보수 진영에서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던 이곳은 4개 공간이 복도로 연결된 ‘소박한’ 모습이었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 7주기를 맞아 사저를 5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일요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날 일반 공개에 1시간 앞서 오전 10시 언론에 먼저 문을 열었다. 2008년 3월 완공된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뒷산 자락 4265㎡(1290평) 부지에 정남향으로 자리해 있다. 전체 건축면적은 595㎡(180평)로, 이 중 경호·비서 직원들이 사용하는 국가 소유 경호동이 231㎡(70평)다. 고 정기용 건축가는 사저를 채광과 통풍이 잘되는 한옥 구조로 설계했다. 나무와 강판 등을 재료로 삼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현관까지 돌계단 18개가 완만하게 설치돼 있다. 건물은 크고 작은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서 사랑채 공간이 손님을 맞는다. 노 전 대통령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보좌진 등과 식사를 했던 곳으로, 전망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동편에 나 있는 창문에는 봉화산과 사자바위, 부엉이바위가 펼쳐져 4쪽 병풍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창으로 봉화산을 보거나 자신이 토굴을 짓고 공부했던 과수원을 풍경화처럼 감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방엔 고 신영복 선생이 쓴 ‘사람 사는 세상’ 액자가 걸려 있고 액자 아래 벽에는 노 전 대통령의 큰손녀 서은양이 연필로 그린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다른 쪽 벽에 걸린 취임식 사진은 취임식에 초청받지 못한 한 해외교포가 근처 높은 빌딩에서 촬영해 보관하고 있다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기증한 것이다. ▶[포토]안경·손녀와 찍은 사진 그대로…관련 사진 보러가기안채는 거실과 침실로 나뉘어 있고 거실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하고 서거 직전 유서를 작성했던 컴퓨터와 모니터 2대가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거실 왼쪽 서재에는 책 1000여권이 꽂힌 책장과 노 전 대통령이 시민들을 만날 때 썼던 밀짚모자도 걸린 옷걸이가 있다. 사저를 관람하기 위해 경기 남양주시에서 친구들과 왔다는 김시은(62)씨는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정취가 느껴져 마음이 찡하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측은 이달 시범 개방에 이어 1~2차례 시범 개방을 더 한 다음 상시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양숙 노 전 대통령 부인은 사저를 개방하기 위해 재단 측에 기부한 뒤 사저 인근에 개인 주택을 지어 지난해 11월 이사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북한산 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한옥마을엔 역사와 문화가 숨쉰다

    [서울 핫 플레이스] 북한산 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한옥마을엔 역사와 문화가 숨쉰다

    서울 서북쪽 끝자락에 은평구가 놓여 있다. 은평구라 하면 수려한 북한산을 먼저 떠올릴 테고 그다음은 ‘개발 소외 지역’ 정도의 이미지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개발은커녕 변변한 공연장 하나 갖추지 못했던 은평구는 최근 몇 년 사이 눈부신 문화적 발전을 했다. 지역 최고의 자연 자원인 북한산과 천년 고찰 진관사를 중심으로 전통 한옥이 모여 장관을 이루는 한옥마을, 한옥과 문학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등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참에 은평구는 곳곳에 깃든 문학적 역량을 길어 올려 전통과 문학의 고리를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지정된 ‘한문화체험특구’에 다양한 문화를 들여다보고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첨가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진관동 기자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선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은 “역사와 문화를 입히면 사람이 온다”면서 “이곳에 문화예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종합적인 테마공원을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이말산 자락을 따라 2㎞ 정도 들어가면 고즈넉한 한옥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5만 2000㎡ 규모의 한옥지정구역은 2011년부터 조성에 들어갔다. 2014년 11월 155필지 분양을 완료했다. 38채가 건축허가를 받았고, 12채는 사용승인까지 마무리됐다. 몇 년 전까지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40~124평짜리 한옥이 들어서서 마을 모양을 갖췄다. 단층 또는 2~3층짜리 한옥을 구경하면서 여유를 만끽하기 좋다. 은평구는 한옥마을로서 품격을 높이기 위해 올 초 한옥건축팀을 신설했다. 한옥 건축 심의 허가,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의 장점을 살린 신한옥 적용, 한옥 유지 관리 지침 개발, 한옥마을 발전 방안 모색 등 다각도로 촘촘한 역할을 한다. ●전통 한옥을 체험하고 문학을 즐기는 마을 한옥마을 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셋이서문학관’은 한옥마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이다. 총면적 142㎡ 크기의 은평 한옥체험관을 리모델링했다. 천상병과 중광, 이외수 작가의 그림과 시 등이 전시돼 있고 북카페가 있는 휴식 및 한옥 체험 공간으로 조성했다. 셋이서문학관에서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가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은평의 역사와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지하 1층~지상 2층(총면적 2901㎡)으로 지었다. 지하 1층에는 장난감도서관과 교육실이 들어섰고, 1층에는 은평역사실이 있다. 은평역사실은 은평의 유래와 지리적 의미, 파발꾼과 사신 행렬, 은평뉴타운에서 발굴한 유물로 본 옛 서울 사람들의 문화, 북한산이 오랜 세월 간직한 유적 등을 소개한다. 2층에는 한옥을 체험하는 한옥전시실을 마련했다. 한옥의 변천사와 과학적 원리를 보고, 등록문화재 제229호 민형기 가옥 사랑채를 재현한 모형을 만날 수 있다. 한옥 모형을 조립하는 시간도 있다. 오는 6월 19일까지 아주 특별한 전시도 연다.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은 해방 전후 은평에 거주하던 문인 130여명의 작품 초간본과 은평에 거주했거나 연관 있는 문인들의 희귀본을 확인할 수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 황순원의 ‘곡예사’ 등도 공개한다. 또 최인훈의 ‘광장’, 이호철의 ‘소시민’ 등 우리나라 분단문학 거목의 초간본을 전시한다. 이 전시와 관련해 오는 23일에는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에서 이호철 작가를 초청해 ‘토크콘서트’를 진행한다. ‘무속 콘텐츠 관련 금성당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술대회’와 ‘김훈 작가 초청 토크콘서트’도 줄줄이 기획해 놨다. ●숨은 역사문화의 발견, 진관사와 청담사지 은평구 통일로는 조선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중국으로 통하는 의주로를 근간으로 한다. 의주로는 전통문화와 중국에서 유입되는 문화가 소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통일로와 한국의 오악(五嶽)에 드는 명산 북한산 사이에는 은평구의 숨은 문화유산이 많다. 사찰 문화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곳이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사찰인 ‘진관사’다.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쪽의 진관사는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혔다. 고려 현종이 1011년 진관대사를 위해 지은 진관사는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가 복구돼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매년 10월이면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펼친다. 조선 태조는 고려 왕실의 영혼을 기리는 한편 왕조가 바뀌어 동요한 국민을 달래고 조선 왕실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수륙재를 개설했다. 조선 왕실이 수륙재를 주로 진관사에서 진행해 국찰로 자리매김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진관사 수륙재는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장관을 연출한다. 석가탄신일, 수륙재 기간이 아니더라도 진관사를 들러볼 만하다. 초가집 같은 정겨움에 눈길이 가는 보현다실은 아늑한 공간에서 차 한잔 누리기 좋다. 진관사에서 운영하는 산사음식연구소에서는 사찰 음식도 배울 수 있다. 진관사에서 이말산 쪽으로 향하다 보면 조선시대 단종 복위운동에 실패해 죽음을 맞은 세종대왕 6남 금성대군을 신격화한 금성당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통일로를 건너가면 화엄10찰 중 하나인 청담사지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핵심 사상인 화엄사상을 전파하는 곳이었다. 정조가 선왕 영조의 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금암기적비(서울유형문화재 제38호), 조선시대 공문서가 전해지던 파발로 등에서 역사의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 은평’의 종착점은 국립한국문학관 은평구는 한옥마을과 역사한옥박물관, 진관사 등 지역의 역사문화 시설을 연계한 대규모 ‘문화테마파크’를 꿈꾸고 있다. 그 종착점에는 한국문학관이 있다. 김 구청장은 “기자촌의 역사, 그리고 은평구의 역사는 문학과 뗄 수 없는 관계”라면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상징하는 이광수, 채만식, 이육사, 심훈, 주요한 등 수많은 작가들이 기자 활동을 하며 근대문학을 꽃피웠다”고 운을 뗐다. 기자촌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기자들의 마을’이다. 1969년 박정희 정부는 한국기자협회에 5000평 규모의 국유지를 내줬다. 1974년까지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월급도 변변찮고 집도 절도 없던 기자들이었다. 정부의 의도를 떠나 한국 언론을 일으켜 세우던 기자 선후배들이 모여 살며 애환과 정서를 녹여낸 이곳은 기자 출신 문학인을 배출한 텃밭이 되기도 했다. ‘기자촌 옆 한국문학관’을 중심으로 은평구는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문인들의 발자취를 네트워크로 이을 계획이다. 녹번동에 있는 정지용 초당(草堂), 1938년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된 숭실학교가 해방 후에 자리한 신사동 숭실중·고, 이호철의 불광동 주택과 최인훈이 지냈던 주택 등이 연결된다. 기자촌 인근에 이전할 예정인 한국고전번역원부터 한국문학관을 거쳐 올 하반기에 한옥마을 끝자락에 들어설 삼각산미술관까지 이어지면 은평구에는 거대한 문화고리가 완성된다. 김 구청장은 “정지용이 납북되기 전 1948~1950년에 거주했던 초당, 시인 윤동주·김현승과 소설가 황순원·김동인·주요섭 등이 다닌 숭실학교 등 은평에는 문학 인프라가 충분하다”면서 “한국문학관이 건립되면 문인을 포함한 문화예술인을 위한 레지던스, 명인마을, 한옥마을, 한옥역사박물관을 이어 문학테마구역이 완성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생활정책 Q&A] 무료 공공시설 예식장 연초에 신청 접수… ‘작은 결혼’ 홈피서 각종 정보제공·상담도

    [생활정책 Q&A] 무료 공공시설 예식장 연초에 신청 접수… ‘작은 결혼’ 홈피서 각종 정보제공·상담도

    과거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종합관광홍보관으로 변모한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청와대 사랑채’가 최근 들어 예비부부에게 인기가 높다. 해마다 5~7월, 9~11월 첫째주 주말이면 특별한 예식장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한 ‘작은 결혼식 수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수요가 가장 높은 결혼 관련 공공서비스는 예식장소 대여, 결혼 관련 물품 대여, 관련 상품 및 서비스 정보 제공 순이었다. 정부가 현재 작은결혼정보센터 홈페이지(www.smallwedding.or.kr)를 통해 지원 중인 서비스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 봤다. Q. 무료로 개방되는 공공시설 예식장을 사용하려면. A. 인기가 높은 청와대 사랑채, 국립중앙도서관, 서울시민청은 해마다 연초에 대여 신청을 받습니다. 약 3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청와대 사랑채에서는 해마다 사연이 당첨된 24쌍이 결혼식을 올립니다. 시청, 구청, 사회복지관, 문화회관, 각종 공단·공사 강당이나 대회의실 등 일반 공공시설은 연중 신청이 가능합니다. 서울시는 자치구별로 무료 예식장을 1곳씩 개방할 경우 예산상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했습니다. Q.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등 정보 제공은. A. ‘대지를 위한 바느질’, ‘영선꽃방’, ‘플레르’ 등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등록된 기업들이 작은결혼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상담도 가능합니다.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웨딩플래너 8명이 온라인으로 접수된 각종 질의에 직접 대답을 해 줍니다. 올해부터는 ‘1대1 컨설팅’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시범적으로 웨딩플래너 30명을 선발해 작은 결혼식에 대해 직접 교육시킨 뒤 공공시설 예식장 10곳에 3인 1조로 배치한다고 합니다. Q. 예식 대행업에 대한 대책 마련은. A. 각종 ‘스드메’ 등 웨딩대행업체들은 사실상 통계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일반 사업자로 등록되기 때문에 웨딩대행업체들이 국내에 얼마나 있고, 합리적인 서비스 가격 수준이 얼마인지는 측정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5년마다 실시되는 한국 산업 분류표 개정(2017년)을 앞두고 산업 통계에 웨딩대행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웨딩 업계 전체에 공정거래 관행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방으로 잡는 건강] 소화 안 될 땐 ‘침’ 또는 ‘육군자탕’

    상복부 불쾌감, 메스꺼움, 구토 등은 매년 성인의 최대 4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이다. 이 가운데 내시경검사, 초음파검사, 혈액검사 등에서 뚜렷한 이상은 없는 상태를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진단하는데, 아직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의 약 80%가 변화된 위장운동(위마비, 위의 율동장애, 이완장애)으로 인해 이런 증상을 호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기능 이상 정도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심각도는 대체로 일치하지 않는다. 기능성 소화불량은 심리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다. 스트레스가 위 운동성과 과민성에 영향을 미쳐 증상을 악화시킨다. 소화불량과 함께 우울과 불안장애를 겪는 환자도 있다. 따라서 기능성 소화불량을 치료할 때는 원인을 다양하게 살펴야 한다. 기능성 소화불량에는 산분비억제제, 위장운동촉진제, 항우울제 등의 다양한 약물을 처방한다. 그러나 약물 효과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고 심장부정맥, 유즙누출증 같은 다양한 부작용도 있다. 일부 환자는 산분비억제제나 위장운동촉진제를 복용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데, 이럴 때 한의학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에 침, 뜸, 한약 등을 사용한다. 먼저 침 치료는 소화 호르몬인 가스트린 분비에 영향을 미치며, 족삼리 등의 경혈 자침은 소화불량 환자의 위장관 활동을 촉진한다. 또 한약인 ‘육군자탕’은 서양의학의 위장운동촉진제와 유사하게 위장 움직임을 조절한다. 위장 움직임 조절 외에도 위점막 혈류 증가, 위산 분비 억제 작용, 지각과민 개선, 식욕 부진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밖에도 기능성 소화불량에는 ‘반하사심탕’, ‘반하후박탕’, ‘평위산’, ‘시호소간탕’ 등의 한약을 처방한다. 육군자탕을 제외하고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가격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다. 더 편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알약 또는 짜 먹는 약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도움말 공병희 사랑채움한의원 원장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툇마루 끝까지 늘린 창호, 옹색한 임시 궁궐의 흔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툇마루 끝까지 늘린 창호, 옹색한 임시 궁궐의 흔적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난을 떠났던 선조는 전세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한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불타버려 남아 있는 전각이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과정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적었다. 선조 25년(1592) 4월 14일의 기록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 대신 월산대군 사저로 ‘궁성에 불이 났다. 임금이 탄 수레가 의주로 떠나려 할 즈음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다투어 가졌는데, 이윽고 난민(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과 형조를 불태웠으니 두 곳에 공사 노비의 문적(文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하고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 이듬해 10월 1일 아침 벽제역을 출발한 선조는 저녁 무렵 서울의 월산대군 집에 들었다.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고 있었다. 이날 월산대군 사저를 행궁(行宮)으로 삼았다는 기사는 ‘선조실록’의 ‘수정실록’에 보인다. 행궁으로 공식화하는 절차상 문제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실과 조정이 쓰기에 월산대군 집만으로는 당연히 좁았다. 이웃 계림군의 집도 행궁에 포함시켜 각 관서를 들였다. 청양군 심의겸의 집은 세자궁(東宮)으로 삼았다. 그러니 세자가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려면 민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입궁해야 할 만큼 옹색했다. 1597년 일대에 목책을 둘러치고 문을 달면서 임시 궁성은 모습을 갖추었다. ●규모 갖춘 덕수궁은 대한제국 성립 이후에야 덕수궁의 역사는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됐다. 오늘날 대한문으로 들어가면 정전인 중화전을 중심으로 편전인 경효전과 침전인 함녕전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대한제국 성립 이후의 역사를 보여줄 뿐이다. 임진왜란 당시 행궁의 흔적은 중화전 뒤편 단청도 입히지 않은 석어당(昔御堂)과 즉조당(卽祚堂)에 남아 있다. 행궁의 정전(正殿)으로 쓰인 즉조당의 규모는 세도가의 사랑채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비좁은 즉조당에서 열린 조회(朝會)는 초라했을 것이다. 당시의 옹색한 처지는 석어당과 즉조당, 그리고 즉조당과 이어붙인 준명당(浚明堂) 뒤편으로 가면 더욱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좁은 전각을 최대한 넓게 쓰려는 듯 오늘날 아파트 베란다를 확장하듯 창호를 툇마루 끝까지 늘려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큰아들인 도원군의 큰아들이니 세조의 큰손자다. 도원군은 세자로 책봉됐지만 18세에 죽는 바람에 세자빈 한씨는 궁궐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때 왕실에서 지어준 집이 훗날 월산대군 사저다. 한씨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곧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이다.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등극하고, 한씨도 입궐하자 월산대군 후손이 대를 물려 살았다. 임시 궁궐은 정릉동 행궁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미국대사관저 언저리에 태조의 제2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종은 등극 1년 만에 이 배다른 어머니의 묘소를 당시 양주땅인 오늘날 돈암동 고개 너머로 옮기고 석재는 광통교 복구공사에 쓰게 했다. 이장에 앞서 능역(域)을 크게 축소했는데, 이때 조선왕조 개창 공신들이 다투어 땅을 차지하고 왕실도 상당 면적을 확보할 수 있었던 듯하다. 지금의 중구 정동이다. ●문화재청, 29일부터 석어당 등 전각 내부 공개 선조는 정릉동 행궁에 16년을 머물다 즉위 41년(1608) 승하한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것도 훗날 영조가 즉조당으로 이름 붙인 행궁의 서청(西廳)이었다. 광해군은 한때 창덕궁에 환궁했다가 정릉동 행궁으로 돌아와 경운궁이라 이름 짓고 한동안 머문다. 인목대비가 유폐된 서궁(西宮)도, 반정(反政)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즉위한 곳도 여기다. 중화전을 비롯해 행궁 권역을 둘러싼 전각은 1902년 완성됐다. 하지만 석어당과 즉조전은 물론 중화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각은 1904년 대화재로 주저앉고 만다. 석어당과 즉조전의 복구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역사성은 어쩔 수 없게 훼손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고종이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붙인 것이다. 마침 문화재청은 오는 29일부터 4월 3일부터 석어당 등 덕수궁 전각의 내부를 공개하는 ‘궁궐 내부를 엿보다’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즉조당은 지금도 정면에서 내부를 볼 수 있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新국토기행] (65) 전남 해남군

    [新국토기행] (65) 전남 해남군

    대한민국 최남단에 있는 해남은 ‘한반도의 땅끝’이란 브랜드 이미지로 유명하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 형태로 동서 간 44.2㎞, 남북 간 54.8㎞, 1013.3㎢ 면적의 전남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다. 특히 면적의 34.5%인 349.5㎢의 광활한 농경지는 전국 최대 규모로 청정 땅끝 바다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명품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전국 12대 고품질 브랜드쌀에 최다 선정된 대표 명품 쌀 ‘한눈에 반한 쌀’을 비롯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해남배추, 전국 최초 수산물 유기인증을 획득한 해남김, 지리적 표시제로 품질을 인정받는 전복 등 농수산물은 풍요로운 해남을 대표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땅끝마을, 신비스러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문화유산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보석 같은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합계 출산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최근에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 언론까지 비결을 취재하러 오고 있다. 땅끝이란 심리적 거리감이 있지만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호남고속철(KTX)을 이용하면 넉넉잡아 3시간 안에 서울에서 닿을 수 있다. 당일로도 오감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볼거리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이자 대륙의 시작인 땅끝마을은 한 해 8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망망대해 바다에 맞서 또 다른 희망을 담아 간다. 땅끝 바다가 마주 보이는 사자봉 정상에 선 전망대를 통해 아련한 서해의 섬과 오가는 고깃배, 노을 물드는 바다 등 그림 같은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올라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어 땅끝의 또 다른 명물이 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46만 2000㎡(약 14만평)에 이르는 매실농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1만 4000여 그루의 매실나무에서 일제히 희고 붉은 꽃을 피워 낸다.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등 각양각색의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 ‘너는 내 운명’, ‘연애소설’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땅끝 주변에는 고운 모래로 이뤄진 유명 해수욕장이 곳곳에 있고 체험어장, 해양자연사박물관 등도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다. 송호리 해수욕장 인근에는 땅끝오토캠핑리조트가 조성돼 있다. 캐러밴 10대, 오토캠핑장, 야영장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 땅끝에서 북평, 북일면을 잇는 해변도로도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다. 한자리에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연간 70여만명이 찾는 해남의 대표 관광 명소로 전남도가 최근 발표한 ‘전남 으뜸경관 10선’에 선정됐다. 두륜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돼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개의 옥불이 모셔진 천불전과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된 표충사, 조선 차의 중흥기를 만들어 낸 초의선사의 일지암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흥사까지 오르는 십리 숲길 또한 각양각색의 난대림이 터널을 이루고 있고 계곡과 물이 어우러져 구곡구유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또한 1.6㎞ 거리의 국내 최장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에 오르면 새순이 돋아나는 두륜산의 봄과 멀리 다도해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해남읍 연동리에는 국문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조선시대의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종가가 있다. 고산 윤선도 고택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종택이자 전통 고가로 잘 알려져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녹우당’으로 불리는 사랑채와 한때 아흔아홉 칸에 달했던 수백년 된 고택 곳곳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와 전통의 고즈넉한 멋을 풍기고 있다. 고산 윤선도 전시관에서는 국보 240호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과 고산의 어부사시사 등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녔던 윤씨가 인물들의 가보들을 둘러볼 수 있다. 고산 문학의 배경이 된 금쇄동과 수정동이 있어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살아갔던 고산의 심경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산재해 있다. 2007년 개관한 우항리 공룡박물관은 400여점의 공룡 관련 화석과 희귀전시물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이다. 아시아 최초로 전시되는 알로사우루스 진품화석, 높이 21m에 이르는 조바리아, 공중에 재현된 우항리 익룡 등 45점의 공룡 전신화석 등이 갖춰져 있다. 각종 전시물의 거대한 위용은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의 세계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들게 하기 충분하다. 박물관은 시대별 공룡실, 중생대 재현실, 해양파충류실, 익룡실, 새의 출현실, 거대 공룡실 등 전시실과 공룡 관련 영상을 상영하는 영상실, 어린이 공룡교실 등이 있다. 공룡박물관과 연결된 황산면 우항리는 천연기념물 394호로 세계 최대의 익룡 발자국 등 희귀한 공룡유적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일대의 해안가를 따라 5㎞에 이르는 공룡 화석지는 공룡 발자국 등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물 교과서다. 이곳은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25~30㎝)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익룡·공룡·새 발자국 화석이 함께 발견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새 발자국 화석 등 화려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세계적인 화석지로 알려졌다. 야외공원에도 실물 크기 공룡들과 놀이시설이 넓게 조성돼 가족단위 관광객과 어린이 체험학습 장소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문내면의 우수영 앞바다는 거센 물살로 인해 조류의 흐름이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 ‘울돌목’이라고 부른다. 울돌목에서 1597년 음력 9월 16일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은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파해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대전승으로 기록되고 있는 명량대첩을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이 강조했던 ‘필사즉생 필생즉사’(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전투 장소다. 이를 기념해 조성된 우수영 기념공원에는 명량대첩비와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각종 전술 장비들을 보여 주는 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어 소중한 역사체험의 현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근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무사도 있다. 명량대첩 시기를 즈음해 매년 가을 명량대첩제가 개최된다. 해상전투 재현, 조선시대 문화 체험 등의 행사가 열려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우수영은 임진왜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우수영 강강술래가 전해 내려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먹거리 한국 대표 하얀 명품쌀… 해풍이 키운 초록 배추… 국민 간식 노란 고구마 <명품쌀> 해남 옥천농협의 ‘한눈에 반한 쌀’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소비자가 뽑은 전국 고품질 브랜드 쌀에 선정됐다. 13년 연속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로 선정된 우리나라 대표 명품 쌀이다. 재배 초기부터 고품질 생산과 품종 혼입 방지를 통한 엄격한 유통관리로 2005년에는 전국 최초 러브미 인증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영국·독일 등 유럽에 수출을 개시했고 올해는 중국 쌀 수출 가공공장으로 선정되는 등 외국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배추> 해남은 전국 최대 배추 주산지로 겨울배추 기준으로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다. 해남배추는 중부지역의 작기가 짧은 배추에 비해 70~90일을 충분히 키워 내 쉽게 무르지 않고 황토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미네랄이 풍부하다. 특유의 단맛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절임배추로 김장 문화가 확산되면서 해남산 절임배추의 인기도 상종가를 보이고 있다. <고구마> 노오란 속살에 달짝지근한 맛으로 늦은 저녁 시간 출출할 때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 간식거리로 그만인 게 바로 고구마다. 고구마의 명성을 지켜 온 지역인 만큼 웰빙 자연식으로 영양도 듬뿍 담겨 있다. 해남고구마는 전국 생산량의 12%, 전남 생산량의 52%가량을 차지한다.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은 물론 전국 최초 조직배양 무병묘 육성 등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해남고구마를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해남고구마는 2008년 지리적 표시 42호로 등록됐다. <김> 청정한 땅끝바다에서 나는 김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담은 바다의 선물이다. 전국 최대 물김 생산지인 해남군은 지난해 8만 9000t의 물김을 생산해 사상 최고액인 660억원의 전체 위판액을 기록했다. 특히 전통 지주식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황산면 지주식 김은 2014년산 김이 전국 최초로 친환경 유기수산물 인증을 받은 데 이어 2015년산 김도 인증을 획득하면서 고품질 해남 수산물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토종닭> 해남읍에서 삼산면으로 넘어가는 돌고개를 중심으로 토종닭과 오리 요리 전문점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육회에서부터 불고기, 백숙, 닭죽까지 토종닭을 이용한 코스 요리로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또한 음식점마다 한방전복탕, 닭날개구이, 묵은지 삼계탕, 소금구이 등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해 선보이는 해남의 대표 먹거리촌이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朴대통령 “대기업 노하우·中企 창의성 융합해야”

    朴대통령 “대기업 노하우·中企 창의성 융합해야”

    정치인 초청·발언 안 해… 정치권선 “총선 행보”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부산을 방문했다. 지난해 3월 ‘미주개발은행 및 미주투자공사 연차총회’ 개회식에 참석한 이후 1년 만이다. 이날 방문은 개소 1년을 맞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성과를 보고받고 창조경제 확산과 청년 일자리 창출 현장을 점검하는 일정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총선을 겨냥한 정치 행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정치적 행보를 내보이거나 관련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대구에서처럼 이번에도 부산 지역 의원 및 예비후보들을 초청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부산창조센터와 수산가공선진화단지를 방문한 데 이어 오후에는 사하사랑채 노인복지관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부산창조센터가 개소 후 1년 만에 145개 혁신 상품의 판로 개척을 지원해 매출 163억원을 달성했다는 보고를 받고, 부산창조센터가 지역 창조경제의 거점 역할을 넘어 전국 창조센터 판매망으로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박 대통령은 “외국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을 갖고도 판매망이 없어 수출 기회가 사장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면서 “부산창조센터가 대기업의 노하우와 중소기업의 창의성을 융합하는 데 좀 더 노력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수출이 안 된다, 물건이 안 팔린다’ 이렇게 걱정만 하지 말고 창조경제 정신으로 소비자한테 어떤 좋은 서비스를 할까, 소비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연구해 거기에 맞춘 것이 나오면 부가가치도 올라가고 팔린다”고 강조했다. 사하사랑채 노인복지관에서는 “정부도 어르신들이 노후를 더욱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내실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많이 발굴하고 있다. 더욱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맞는 일자리도 발굴하고 기회도 많이 드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서울포토]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朴대통령

    [서울포토]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朴대통령

    16일 오후 박근혜대통령이 부산광역시 사하구 사랑채노인복지관을 방문을 마치고 나가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이경훈 부산 사하구청장, 임종린 사하사랑채노인복지관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朴대통령, 부산 사하구 사랑채노인복지관 방문

    [서울포토] 朴대통령, 부산 사하구 사랑채노인복지관 방문

    16일 오후 박근혜대통령이 부산광역시 사하구 사랑채노인복지관을 방문해 이르신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朴대통령 방문을 환영하는 시민들

    [서울포토] 朴대통령 방문을 환영하는 시민들

    16일 오후 박근혜대통령이 부산광역시 사하구 사랑채노인복지관을 방문을 마치고 나가자 시민들이 대통령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씨줄날줄] 한옥호텔과 문화 콘텐츠/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옥호텔과 문화 콘텐츠/서동철 논설위원

    북촌댁이라고도 불리는 안동 하회마을의 화경당(和敬堂)은 규모가 72칸에 이른다. 중요민속문화재인 북촌댁은 양진당과 함께 하회를 대표하는 가옥이다. 북촌댁은 1797년 첨지중추부사 류사춘이 사랑채와 문간채를 짓고 1864년 증손자 류도성이 안채와 큰사랑채, 사당을 더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애초 만수당(萬壽堂)이던 당호를 화경당으로 바꾼 것은 류사춘의 아들 류이좌라고 한다. 북촌댁은 고택 체험에도 활용되고 있다. 큰사랑인 북촌유거(北村幽居), 중간사랑인 화경당, 작은사랑인 수신와(須愼窩), 안채, 초가집을 모두 개방한다. 큰사랑은 정면 일곱 칸, 측면 세 칸으로 손님맞이에도 썼던 할아버지의 공간이다. 방 두 칸과 대청, 누마루로 이루어졌는데, 하회마을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해 전 북촌댁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풀을 먹인 듯 희고 빳빳한 이불이며 베갯잇이 인상적이었다. 낯선 잠자리였지만 정갈한 분위기 때문인지 밤새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이 집에서 아침도 먹었는데, 국과 나물도 입에 맞았지만, 특히 간고등어와 김이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안동 ‘구름에 리조트’는 더욱 적극적으로 고택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안동댐 하류에는 1976년 수몰 지역의 옛집 일곱 채가 이전됐지만 제대로 관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 안동시, SK그룹이 협력해 출범시킨 사회적기업이 재작년 리조트로 변신시킨 것이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퇴계 후손의 계남고택은 옛 모습에 충실하지만, 다른 집들은 특급호텔이 부럽지 않게 내부를 깔끔하게 고쳤다. 단순한 숙박 시설의 개념을 뛰어넘어 지역문화 체험 공간으로 발돋움한 고택도 있다. 역시 안동의 지례예술촌이 그렇다. 임하댐 건설에 따라 지례마을이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의성 김씨 지촌파는 1986년 종택과 서당, 제청 등 10채를 뒷산 자락에 옮겨 지었다. 이곳에서는 안동 지역의 생활문화, 의례문화, 정신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연출되지 않은 의성 김씨 종갓집의 실제 제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도 13차례 기제사 일정을 공개해 놓고 있다. 호텔신라가 서울 장충동 면세점 부지의 ‘한국전통호텔’ 건축 허가를 받았다. 겉모습만 한옥이 아니라 한국 문화 콘텐츠를 가진 전통 호텔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설계에서부터 한옥의 주거 특성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 식음료도 당연히 호텔신라와 다른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콘텐츠 차별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없다면 그저 기와를 얹은 서양식 호텔일 뿐이다. 호텔 아래는 지금보다 면적이 40% 늘어난 면세점이 다시 들어선다고 한다. ‘한국전통호텔’이 객실을 늘리고, 면세점을 확충하기 위한 경영 전략적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방으로 잡는 건강] 정향은 통증, 계피는 감기, 산초는 변비… 향신료는 특효약

    이른바 ‘쿡방’이 대세다. 텔레비전을 틀면 어떤 채널에서나 요리 예능을 볼 수 있고, 인기 있는 요리사는 어느새 스타가 됐다. 쿡방 덕에 우리는 굳이 세계 요리 전문점을 가지 않아도 거실에 앉아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한국 요리에는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향(클로브), 고수, 육계(시나몬·계수나무 껍질), 육두구(넛메그), 장홍화(샤프란), 회향(펜넬) 등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한 전통음식을 찾아볼 수 없다. 향신료는 한국과는 먼, 이국의 향일까. 하지만 가까운 중국과 대만만 해도 요리에 수많은 향신료를 사용한다. 사실 향신료는 ‘한약’이란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클로브는 정향나무의 꽃봉오리다. 이 작은 꽃봉오리는 과거 유럽의 귀족들이 특히 아꼈던 향신료의 하나다. 정향의 향은 매우 독특하다. 이 향기를 알고 싶다면, 치과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떠올리면 된다. 치과에서 나는 냄새는 ‘유게놀’이란 마취제 향이다. 이 유게놀 성분이 바로 한약재 정향의 주성분이다. 한의학은 다양한 통증 치료에 정향을 포함하는 처방을 사용하고 있는데, 유럽 역시 정향을 향신료로 쓰면서 치통에도 사용했다. 계피는 다양한 디저트와 음료에 사용하는 향신료다. 3000년 전부터 일찌감치 약물로 사용됐다. 한의학 초기 처방전을 보면 계피가 들어간 경우가 많아 그 역사를 짐작게 한다. 현재도 계피는 가벼운 감기 등의 치료에 쓰고, 소화기질환과 부인과 질환, 당뇨병 등의 한의학 치료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시나몬에서도 한의학 또는 중국이 연상된다. 시나몬이란 명칭은 향신료를 뜻하는 그리스 단어와 중국을 뜻하는 접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회향은 미나리과에 속한 성숙한 과실로, 요리나 제빵 또는 허브차나 사탕에 응용되는 향신료이다. ‘펜넬’(Fennel)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국가별로 100여개의 다른 이름이 존재한다고 한다. 회향 역시 약물로 사용된다. 한의학뿐 아니라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도 회향을 약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화기 및 부인과 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병을 치료하는 데 쓰고 있다. 향과 맛이 강한 향신료 고수는 소화기 질환에 효과가 있다. 가격이 비싸 고급요리에 주로 사용하는 장홍화는 신경계 및 심혈관계 약리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의 향신료인 산초는 흔히 ‘추어탕의 짝’으로만 생각하지만, 한의학에서는 당당히 주요 약물에 이름을 올린 한약재다. 산초는 만성변비, 수술 후 장폐색에 사용하는 대건중탕에 쓰인다. 우리는 한의학을 한의원뿐만 아니라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만난다. 향신료가 대표적인 예다. 한의학은 멀리 있지 않다. ■도움말 공병희 사랑채움한의원 원장
  • [명인·명물을 찾아서] 전통 잇는 한옥… 문화 있는 쉼터

    [명인·명물을 찾아서] 전통 잇는 한옥… 문화 있는 쉼터

    조선 후기 사대부 한옥 14동 그대로 복원 주말 관람객 200여명… 휴식 장소로 역사민속관은 민속 자료 보존·체험 학습 경남 창원시에 있는 사라져 가는 전통 한옥과 지역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문화시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창원시 의창구 사림로와 창이대로 인근(사림동), 주택지역 안에 나란히 있는 ‘창원의 집’과 ‘창원역사민속관’이 바로 그곳이다. 21일 창원시에 따르면 두 시설은 도심에 있어 접근이 편한 데다 입장료가 없어 동시에 둘러보며 전통문화와 역사를 두루 체험할 수 있어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게 방문한다. 옛 창원·마산·진해 3개 시가 합쳐 출범한 통합 창원시 가운데 옛 창원시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성한 계획도시다. 1973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창원지역을 둘러보고 그해 8월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을 확정해 공업단지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인구 50만명 수용 규모의 산업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에 따라 도시건설 예정지에 포함된 논밭과 임야, 마을을 모두 수용했다. 수용한 지역은 공업용지, 주거지, 공공용지, 도로 등으로 구분해 터를 닦아 산업도시를 조성해 경남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켰다. 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 창원지역은 논밭·구릉지·야산과 함께 옹기종기 자연마을을 형성한 인구 3만 5500여명의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자연마을에는 명문가 집안 등이 몇 대에 걸쳐 대대손손 살던 오래된 전통 한옥도 많았다. 그러나 공업도시 개발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한옥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나 현대식 단독주택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경남도청 인근 주택단지 안에 있는 창원의 집은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 한옥 보존과 함께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한 전통 한옥 체험 시설이다. 조선 후기 한학자인 퇴은 안두철(1809~1877) 선생이 건립해 당호(堂號·집이름)를 ‘성퇴헌’(省退軒)이라 짓고 살았던 전통 한옥 옛집이 있었던 곳이다. 퇴은을 비롯해 순흥 안씨 7대가 성퇴헌에서 대대로 살았다. 창원시는 성퇴헌 건물과 부지를 매입한 뒤 1984년 9월부터 1986년 6월까지 새 성퇴헌 건물(사랑채)을 비롯해 여러 동의 한옥을 복원·신축해 ‘창원의 집’으로 이름을 붙여 문을 열었다. 1만 208㎡ 널찍한 부지에 솟을대문, 중문, 곁문, 사랑채(성퇴헌), 안채, 민속교육관, 정자, 팔각정, 연자방아 등 모두 14동의 한옥 시설을 조성했다. 이들 한옥은 성퇴헌 건축 구조와 양식을 그대로 따라 지어 조선시대 사대부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갖추고 있다. ‘창원의 집’ 표지판이 걸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커다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분수가 치솟는 연못이 있다. 중문채를 지나면 사랑채와 본채가 앞뒤로 위치해 있다. 대문에서부터 가장 안쪽에 있는 안채는 집안 주인마님을 비롯해 여성들의 생활공간이다. 정면 6칸, 측면 1.5칸 크기로 정지(부엌)와 온돌방 3칸, 대청 2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손님을 맞이하는 집인 사랑채는 사랑방과 서당, 주인이 기거하는 방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온돌방 3칸과 대청 1칸이 있다. 농기구 전시관 건물에는 갖가지 농기구와 베틀, 생활 도구 등 450여점이 전시돼 있다. 민속교육관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다도와 예절 등 전통생활과 풍습을 배우고 익히는 장소로 사용한다. 가축의 힘을 이용해 맷돌을 돌려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 시설도 마당 한쪽에 보존돼 있다. 갖가지 나무와 꽃, 자연석으로 곳곳에 크고 작은 정원과 화단을 조성해 놨다. 맨 뒤쪽 언덕에 있는 2층으로 된 팔각정에 오르면 한옥 전체 모습이 기와지붕과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전문해설사가 근무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요청하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 창원역사박물관 쪽으로 연결되는 후문 옆에 빨간색의 느린 우체통 하나가 서 있다. 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주소가 적힌 곳으로 1년 뒤 배달이 된다. 창원의 집 안에 있는 한옥시설과 마당은 전통혼례식장으로 개방했다. 원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빌려준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 주말에는 전통 혼례식이 자주 열려 외국인을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구경거리를 선사하기도 한다. 김옥순(68·여) 문화해설사는 “하루 평균 방문객이 평일에는 100명, 주말과 휴일에는 200여명에 이르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온다”고 소개했다. 지난 15일 창원의 집을 찾아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던 23세 동갑내기 친구인 대학생 성진영·한가혜씨는 “옛날에 지었던 모양 그대로 복원해 놓은 한옥을 둘러보니 당시 생활 모습과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창원시는 전통 한옥의 멋과 여유,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창원의 집이 접근이 편한 도심에 있는 덕분에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체험학습이나 휴식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고 밝혔다. 창원의 집과 나란히 있는 창원역사민속관은 창원의 역사와 민속문화를 다양한 자료와 영상 등을 통해 시대별로 전시해 보여 주는 전시관이다. 3135.1㎡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립해 2012년 8월 24일 문을 열었다. 1층에 있는 역사관과 현대관은 선사시대부터 산업도시로 발전해 통합시에 이르기까지 창원의 역사를 유물과 모형, 영상 등을 이용해 알기 쉽게 전시해 놨다. 2층에 마련된 제1민속관은 연도여자 상엿소리, 마산 오광대 등 지역 내 각종 무형문화재의 유래와 공연모습을 보여 준다. 무형문화재를 재현할 때 사용하는 전통악기 소리도 들어 볼 수 있도록 꾸며놨다. 제2민속관은 조상들이 사용했던 농기구와 의복, 가옥형태 등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3차원(3D) 영상을 관람하는 영상실도 마련돼 있다. 방문객들이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쉴 수 있게 건물 밖에는 공간이 넉넉한 누각이 들어서 있다. 창원의 집은 일년 내내 개방하고 창원역사민속관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문을 닫는다. 두 시설 모두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두 곳 다 주차공간도 여유 있게 조성돼 있다. 글 사진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

    문화, 전통, 품위 그리고 디테일.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는 ‘잘나가는 건축 전문가’로 쌓아 온 모든 것을 뒤로하고 ‘종로의 목민관(牧民官)’으로 제2의 삶을 선택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행정에 접목, 구현하기 위해서다. 김 구청장은 일 욕심이 대단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탐심이 아닌 뜨거운 열정이기에 주민들로부터 박수를 받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그의 열정에 감탄하며 “발품과 애정, 철학과 청사진 없이는 불가능한 행정”이라고 평했다. 김 구청장은 대학 시절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사사무소를 차리기도 했다. 그는 “돈을 벌려면 구청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웃는다. 건축사로서의 생활은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종로에 살게 된 뒤 이 도시를 제대로 살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근사한 건물이 아닌 ‘좋은 도시’를 설계해 보고자 구청장만큼은 꼭 하고 싶었다고 한다. 김 구청장은 공공의 영역에 자신의 전문성을 접목시켜 명품 도시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민심을 얻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는 ‘삼수생’이다. 12년 동안의 도전과 기다림이 이어졌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을 기회로 삼았다. 행정과 지방자치를 공부하고, 선진국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자비로 해외 답사에도 나섰다. 구청장에 당선돼 펼친 각종 정책과 사업 구상의 발판이 됐다. 그는 2010년 7월, 드디어 제33대 종로구청장에 당선됐다.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행정에 대한 배움과 건축가로서의 전문성, 종로에 대한 애정이 합쳐져 단단한 자질을 갖춘 뒤였다. 올해로 그는 구청장 생활 6년째를 맞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도시가 만들어지니 재밌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실감시켜 준다. 아내는 종종 “저 양반은 집 생각은 않고 혼자 신났다”고 서운해한단다. 매일 늦게까지 직원들과 정책 토론을 하는 탓이다. 하지만 그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 역시 아내라고 한다. 구청장에 당선된 뒤 한동안은 막상 종로에서 무엇을 할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깔끔한 성격의 김 구청장에게 눈에 띈 게 있었다. 1400여t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다. 김 구청장은 48개 마을의 공터 관리에 대한 위임권을 넘겨받아 산처럼 쌓여 있던 쓰레기를 치웠다. 악취가 심해 주민들이 산책도 못 하던 곳이었다. 그는 쓰레기를 치운 자리에 좋은 퇴비를 뿌려 총 2500여평의 텃밭을 만들었다. 거기서 직접 기른 배추로 김장을 담가 지역의 홀몸 노인들에게도 나눠 줬다. 차원이 다른 도시 관리의 시작이었다. 그는 건축사다운 꼼꼼함으로 도시를 바꾸기 시작했다. 마을경관 개선 사업이 그중 하나다. 이화동에는 ‘눈물의 계단’이 있었다. 계단의 높이가 제멋대로인 데다 경사가 심했다. 산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장을 보고 올라가다 계단에 걸려 넘어져, 산산조각 난 채소와 과일을 보며 눈물 흘렸다는 데에서 이름 붙여졌다. 김 구청장은 이곳에서 눈물을 지워 냈다. 계단 때문에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일률적인 높이로 반듯하게 재정비했다. 차가운 벽면에는 따뜻한 벽화를 그렸다. 이제 그곳은 하늘계단, 바람계단으로 불린다. 종로 곳곳에는 이처럼 김 구청장의 애정 어린 손길이 스쳐 간 장소가 많다.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윤동주 문학관’도 그의 작품이다.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 지을 사업추진비가 부족했던 2010년. 김 구청장은 청운가압장을 발견했다. 고지대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하던 곳으로 청운아파트 철거 후 방치돼 있었다. 이를 새롭게 활용해 문학관을 짓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느낌을 재현한 영상관을 만들었다. 흉물로 방치했던 곳이 감각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김 구청장의 특기가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라면, 취미는 토론과 조언이다. 크고 작은 건축·공사 관련 조언을 듣고자 종로구청장실에는 다양한 이들이 찾아온다. 건축 전문가가 설계에 대한 조언부터 도면 수정까지 무료로 도와주니 만족도는 최고다. 김 구청장의 조언을 거쳐 간 작품들 중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비 소녀상’이다. 2011년 5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비석을 세우겠다고 찾아왔다. 그러나 김 구청장은 소녀상을 제안했다. 일본군에 끌려갈 당시의 앳된 모습, 사과를 기다리며 평화적으로 앉아 있는 모습, 나무 걸상 등은 모두 그의 의견이었다. 제목도 ‘기다림’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큰 만큼 김 구청장의 소녀상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얼마 전 “중앙정부의 요청이 있어도 소녀상을 철거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물론 도쿄신문 등 일본 일간지 기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 그의 소신과 신념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올해 김 구청장과 종로구청 직원들의 목표는 ‘절문근사’(切問近思)다. 절실하게 문제를 묻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는 뜻이다. 특히 종로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발전한 도시로 나아가는 것은 김 구청장이 늘 고민하는 숙제다. 그 중심에는 도시재생 사업이 있다. 내년까지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창신·숭인 지역에는 봉제마을 거리박물관과 공공 작업장 등을 조성한다.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자원화로 관광객을 유치할 예정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인사동, 북촌 한옥마을, 세종마을 등은 지역 특성과 전통을 잃지 않는 게 방점이다. 전통 한옥 보존을 위해 경복궁 서측 옥인동에는 ‘상촌재’를 개관할 계획이다. 내버려둔 한옥을 매입해 사랑채에 온돌을 전시하고, 안채에선 한글을 주제로 한 교육과 강좌를 연다. ‘문화 구청장’을 꿈꾸는 그가 올해 또 한 가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자문밖(부암·평창동 일대) 창의 예술마을’ 조성이다. 북한산이 감싼 이곳에는 미술관, 갤러리 등이 밀집해 있고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김 구청장은 이곳을 세계적인 아트 밸리로 만들기 위해 복합 문화시설, 종로문학관, 국민대 예술조형대학 등을 건립, 유치할 계획이다. 자연과 문화, 이야기가 있는 예술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아울러 ‘청진구역 스토리텔링화 사업’도 박차를 가한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1호선 종각역까지 이어지는 지하 보행로가 현재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보행로를 완성하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이곳에 ‘책의 거리’를 조성해 이야기를 입힐 예정이다. 김 구청장의 집무실 앞에는 서예가 소헌(紹軒) 정도준 선생이 쓴 ‘도편수의 마음’이란 액자가 걸려 있다. 김 구청장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쓴 것이다. 도편수는 조선시대 건축공사의 총책임자였다. 김 구청장은 “도편수는 집을 짓고 난 뒤에도 자신이 지은 집이 괜찮은지 찾아가 다시 확인한다”면서 “‘우두머리 도(都)’자를 쓰듯 무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돌아봤을 때에도 스스로 “참 야무지게 잘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게 우리 종로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할 겁니다.” 글 사진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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