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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20·30대 위암 환자가 늘고 있다. 실제로 한 대학병원의 위암 환자 분석 자료에 의하면 2000년과 2008년을 비교했을 때 50% 이상 증가했다. 인생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기, 20·30대. 위암은 왜 그들을 노리는가? 젊은 위를 공격하는 위암의 실체를 밝히고 그 예방과 치료의 길을 모색해 본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20분) 그림 같은 집에서 두 사람의 아이가 태어나 자랐으면…. 찬규씨가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한다. 수술로도 어쩌지 못하고 명약도 없는 병이라지만 은민씨의 사랑은 찬규씨에게는 최고의 치료제이자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이제는 서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부부. 그 사랑이 기적을 일으키리라 두 사람은 믿는다. ●돌아온 일지매(MBC 오후 9시55분) ‘일지매’를 사칭해 나쁜 음모를 꾸며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왕횡보 일당을 쫓아 전라도로 향한 일지매는 그를 제거하려는 벼슬아치 김자점이 보낸 무사들과 대결을 벌이게 된다. 옥에 갇혀있던 도적떼를 빼내 세력을 형성하려던 왕횡보 일당은 일지매의 응징으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또 나쁜 일을 꾸민다. ●순결한 당신(SBS 오전 8시30분) 단비가 입원한 것을 알게 된 정용은 와이프가 쓰러져 있는데 어떻게 아무 말도 안 할 수가 있냐고 화를 내며 다같이 병원에 가자고 한다. 한편 지환의 행동을 이상하게 본 희숙이 애들이 싸운 거 같다고 하자 유일은 지환을 찾아가 첫사랑과의 문제가 아직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았냐고 묻는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사랑과 믿음만으로 시작한 결혼생활. 하지만 꿈같은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체력이 약한 서연씨에게 육아와 살림이 쉽지만은 않고, 남편의 도움과 위로가 절실하지만 남편은 점점 지쳐가는 눈치이다. 박성덕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결혼 생활의 방법을 모색해 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지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인권에 관심이 특히 높은 프랑스에서 이색적인 이벤트가 펼쳐졌다. 프랑스 요식업 협회가 2년 전부터 프랑스 전역 550여개 음식점들에서 여성 고객에게 장미를 선사하는 이벤트를 해오고, 파리 시내에서는 여성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위한 거리 행진이 펼쳐졌다.
  • 화요비♡슬리피 “사랑은 죄 아니잖아요” (인터뷰)

    화요비♡슬리피 “사랑은 죄 아니잖아요” (인터뷰)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 화요비(27)가 사랑에 빠졌다. 3개월 간 예쁜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상대는 힙합 듀오 언터쳐블(Untouchable)의 슬리피(25. 김성원). 열애설이 보도된 12일 오전 9시, 언터쳐블의 소속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전날 화요비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문을 연 관계자는 열애설을 부인하기 바쁜 타 사례와 상반되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활동 중인 상태라 조심스러울 터. 하지만 화요비는 사랑에 있어 당당했다. 현재 화요비는 신곡 ‘반쪽’으로, 언터쳐블은 ‘텔미 와이’에 이어 ‘다줄께’ 후속곡 활동을 앞두고 있다. 관계자는 “화요비가 좀 더 솔직해 지고, 좀 더 편안해 지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만큼 따뜻한 시선 부탁드린다.”며 인터뷰를 수락했다. [ ○ 지난해 10월 ‘잇츠 오케이(It’s Okay)’ 첫만남 ] -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지난해 10월 언터쳐블의 데뷔곡 ‘잇츠 오케이(It’s Okay)’에 화요비 씨가 피쳐링으로 작업을 함께 하면서 처음 만났다. 서로 음악적 기호가 맞아 피쳐링을 하게 됐지만 당시에는 선후배였다. 물론 화요비가 6집 가수인데 선배다. -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때는? 음악적 선후배로 지내다가 지난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때 쯤 연인의 감정이 싹 트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했을 때 처음엔 믿지 않았다. 평상시 화요비가 언급한 이상형에 슬리피가 딱 맞진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음악이다. 둘 다 흑인 음악과 힙합 및 알앤비 등에 대한 조회가 깊고 음악 얘기를 나눌 때 코드가 딱 맞아 늘 즐거워 했다. [ ○ 3살 연상 화요비, 애교많아 나이차이 無! ] -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화요비가 빠른 82이고, 슬리피가 빠른 85이다. 3살 차이지만 알콩달콩 친구처럼 지낸다. 화요비가 애교가 있는 성격이라 전혀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 화요비가 평소 말하던 이상형은? 화요비는 남자답고 자신을 이끌어 주는 타입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슬리피가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 자상한 면도 있고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주는 타입이다. 이러한 점에서 화요비가 음악적 고민을 비롯해 자신의 얘기를 슬리피에게 툭 터 놓는 모습을 봤다. 편안해 보였다. - 음악적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렇다. 화요비가 상당히 밝고 엉뚱해 보이지만 실은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면이 있었다. 특히 음악적 작업을 할 때는 그런 시간이 많았는데 함께 음악 코드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됐다. [ ○ 화요비가 더 좋아해 “숨기지 않을 것” ] - 화요비·슬리피, 두 사람 중 누가 더 좋아하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옆에서 바라 본 이 커플은 화요비가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더 밝아지고 웃는 일이 잦아졌다. 행복해 보인다. - 열애설을 고백했는데 화요비 의견인가? 화요비가 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마음이 편안해 지고 싶다며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죄가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팬들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음악에 전념할 때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소속사 측은 둘 다 활동 중인 점을 고려해 끝나고 발표할 것을 건의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 소속사 측은 두 사람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존중해 준다. 솔직한 만남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한다. 행여 따가운 시선으로 다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인 만큼 예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긍정적인 응원 부탁드린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인간 문선명을 만나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구순(九旬)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를 펴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2년여의 집필과 탈고, 수정 끝에 나온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전 등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관통하며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문 총재의 역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 총재는 자서전을 통해 “16세 되던 해 부활절(4월17일) 아침, 기도 중 홀연히 인류 구원에 대한 천명을 자각하고 일평생 공의의 노정을 걷기로 다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평양과 부산에서 뜻을 펴다 서울 청파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게 1954년. 1957년 일본에서 해외선교를 시작해 197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선교를 본격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 총재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치렀던 여섯 번의 투옥, 평화 전도사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뒷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광복 이후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에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이단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이단으로 몰려 문 총재를 따르는 학생과 교수들이 퇴학·퇴직당하던 이야기며 초기 미국 선교 시절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멸시하던 일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384쪽 1만 4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일지매’ 김민종, 정혜영과 러브신 “몸 괜찮네!”

    ‘일지매’ 김민종, 정혜영과 러브신 “몸 괜찮네!”

    배우 김민종이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정혜영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탄탄한 상반신을 노출해 눈길을 끌고 있다. 11일 방송되는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15회분에서 백매(정혜영 분)는 구자명(김민종 분)의 애절한 청혼을 받아들여 드디어 한 이불을 덮게 됐다. 20년 사랑의 결실을 눈앞에 뒀던 백매와 구자명은 백매의 아들 일지매(정일우 분)때문에 엇갈리게 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구자명이 다시 아무 말 없이 사라진 백매를 끝까지 찾아내 “함께 가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소.”라며 당찬 구애를 시작한다. 결국 백매는 이런 구자명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여 떨리는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20년 동안 한결 같았던 구자명의 마음에 드디어 답을 하게 되는 백매는 “오늘밤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드러낸다. 구자명과 백매의 애틋한 하룻밤은 그동안 둘의 멜로라인을 애타게 기다려온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만에 러브신을 촬영하게 된 김민종은 탄탄한 상반신을과 시하며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으로 보인다. 백매로 분한 정혜영 또한 순백의 소복으로 백매라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선사할 예정. 구자명과 백매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둘의 러브신을 담아낼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15회분은 11일 9시 55분 방송된다. (사진제공 = 비단)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1일 TV 하이라이트]

    ●산너머 남촌에는(KBS1 오후 7시30분) 대흥리 부녀회는 농협 메주팔기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온천관광을 가게 된다. 승주, 은자, 정미는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한 남자 태석의 카메라를 찾아주게 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은자는 태석이 자꾸만 낯이 익고, 마침내 그가 오래전 자신의 첫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소비자 고발(KBS2 오후 11시5분) 눈깔사탕, 쫄쫄이, 달고나 등 화려한 색과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학교 앞 불량식품들.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먹어봤을 이 불량식품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교 앞에서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과연 학교 앞 불량식품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일까?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최은경에게 스카우트된 희준. 그러나 은경은 희준을 가수가 아닌 동생 장우의 매니저로 스카우트했던 것이다. 이를 알고 희준을 되찾아 오려 하는 선경에게 은경은 엄청난 조건을 제시한다. 한편 정리해고를 당한 국진이 재취업은커녕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하자 지민과 국진은 부부싸움을 한다. ●카인과 아벨(SBS 오후 9시55분) 한국에 온 초인은 영지와 자신의 기억을 찾겠다고 다짐하고, 조사를 받으러 국정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 대신 오강호란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온 초인은 국정원 요원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강철의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는다. 한편 초인의 장례를 마친 선우는 뇌의학센터 개설 준비를 빠르게 진행한다. ●다큐10+(EBS 오후 11시10분) 맞춤아기란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통해 인공수정을 거친 배아의 유전자를 검사해 원하는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이다. 최근 아이의 눈 색깔, 머리 색깔 등 외모까지 구체적으로 선택하여 낳게 해준다는 맞춤아기를 두고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맞춤아기를 시도하는 한 부부를 만나본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주가가 최고점에 비해 크게 하락해 있고, 코스피 지수 1000선이 깨질 때에는 외환위기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가치투자자는 이럴 때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치투자자인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을 만나 현 상황에 대해 들어본다.
  • [공연 리뷰] 청춘, 18대 1

    [공연 리뷰] 청춘, 18대 1

    “일식(日蝕)! 태양이 가려지는 시간. 태양에 상처가 났다는 뜻이지. 우리가 폭약을 던지는 날 이 작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거야.” 광복 한 달 전인 1945년 7월, 일본 도쿄 댄스홀에서 도쿄시청장을 암살하기위한 거사에 가담한 청춘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는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렇게 믿었던 것일까. 연극 ‘청춘, 18대1’은 일제강점기가 배경이고, 독립운동이 구심점이지만 ‘나라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애국 청년’식의 구태의연한 시대극과는 다른 길을 간다. 댄스홀에 폭약을 숨겨두고, 댄스광인 시청장을 유인하기 위해 춤을 배우는 이들의 나이는 열여덟, 열여섯. 징집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쳐온 이들, 살아남고자 부모와 고향을 등진 꽃다운 청춘들을 자폭 테러범으로 이끈 건 애국심도, 이데올로기도 아니었다. 나로 인해 타인이 죽었다는 죄책감, 동생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형의 의무감, 남편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겠다는 아내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춘이기에 가능한 열정과 무모함이었다. 때문에 이 연극은 장엄한 서사극이 아니라 18대1로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인 청춘에 대한 애잔한 서정시다. 뜨거운 열정이 무모함과 짝을 이루듯 지나친 서정은 감정 과잉과 신파의 경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그래도 어떠랴. 그 비극의 시대를 거대 담론의 압박에서 벗어나 차차차와 퀵스텝, 자이브 리듬이 흐르는 무대로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테러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토에의 비밀이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이 연극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아름 극작가와 서재형 연출가는 이전에 함께한 작품인 ‘죽도록 달린다’ ‘왕세자 실종사건’ 등에서 독창적인 형식미로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에선 그런 형식미는 약해졌다. 하지만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처럼 현재와 과거를 숨가쁘게 오가고, 한 공간 안에 다양한 장면을 요령있게 배치하면서 사건 당사자들의 시점과 취조관의 시점을 이물감 없이 교차시켜 연극적 재미를 배가시킨 점은 돋보인다.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혜자 “수단 난민 아이들 만나러 갑니다”

    김혜자 “수단 난민 아이들 만나러 갑니다”

    지난 2월27일 2009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국민배우임을 입증한 김혜자가 남부 수단의 내전 난민과 어린이들을 찾아간다. 월드비전(회장 박종삼)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자는 패션디자이너 이광희와 함께 오는 7일부터 15일까지 7박 8일간 남부 수단 톤즈 지역을 방문, 내전 귀향민들의 캠프를 찾아 오랜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난민들을 만난다. 김혜자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으로 바쁜 한 해를 보내고 나서 가장 먼저 계획한 것이 바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 이었다.”며 “아이들을 빨리 만나서 더 많이 안아주고 돌보며 마음 속 깊은 사랑이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구호 현장을 처음 방문하는 이광희 패션디자이너는 “평소 아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던 차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겨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김혜자는 지난 1991년부터 19년 동안 헌신적으로 전 세계 가난하고 소외된 어린이를 만나는 일에 앞장서오고 있으며 현재 월드비전을 통해 총 103명의 해외아동과 결연을 맺고 있다. (사진제공=월드비전)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고]연명치료 중단 요건 명확하고 엄격해야/김성수 변호사·의사(법무법인 지평지성)

    [기고]연명치료 중단 요건 명확하고 엄격해야/김성수 변호사·의사(법무법인 지평지성)

    서울고법이 최근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던 77세 할머니와 그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낸 인공호흡기 제거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번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어 사망 과정에 진입해 있고,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 중단 의사가 확인돼야 한다. 또 중단하는 치료는 현 상태를 유지해 사망 시기를 연장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통증을 완화하거나 일상적인 진료는 중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의사가 시행해야 한다. 의식을 잃은 지 11개월이 지난 이 사건의 할머니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자발호흡마저 불가능한 상태이다. 서울고법은 할머니의 뇌가 구조적 손상을 입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연명치료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가족의 진술을 증거로 채택해 연명치료 중단 청구를 받아들인 1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도 그렇지만, 앞으로 연명치료 중단 소송은 환자의 가족이 실질적인 원고로 나서 병원을 상대로 제기할 것이다. 오랫동안 치료했는데도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가족이나 병원 모두 경제적·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형식적으로는 소송의 대립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쪽이 모두 치료 중단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치료 중단과 관련한 반대 주장이나 증거를 제출하기 꺼릴 우려가 있다. 법원이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해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을 엄격하게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명치료 중단 요건과 관련해 많은 재판 사례가 있는 미국에서도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인정하려면 ‘명백하고도 확신할 수 있는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가 필요하다는 대원칙을 확립하고 있다. 명백한 증거로는 의식이 있을 때 써놓은 연명치료 의견서(living will)나 의료 사전지시서(ad vance directives) 등이 인정된다. 1990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크루잔 대 미주리주 보건부 사건을 주목할 만하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24세 여성, 낸시 크루잔과 그 부모는 미주리 주립병원을 상대로 급식 튜브를 제거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크루잔이 사고 1년 전에 식물과 같은 상태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룸메이트와 크루잔 가족의 증언만으로는 환자가 치료 거부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고 볼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모든 환자가 사랑이 넘치는 가족만을 두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법원이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를 좀더 엄격히 확인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또 법원의 오판은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져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는 특수한 상황도 고려됐다. 이처럼 환자의 연명 치료 중단 의사는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은 환자가 77세 고령이라 자연적 수명에 근접한 상태라는 점과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점, 환자의 평소 언행·태도에 관한 가족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앞으로 우리 법원이 가능하면 가족 이외에 제3자의 증언을 보강해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기억해 재판에서 진술한다는 것이 때로는 증인의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재현될 수 있고, 특히 가족처럼 환자의 생명 연장 여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증인이라면 남용의 위험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한번 잃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김성수 변호사·의사(법무법인 지평지성)
  • ‘슬픔보다 슬픈’ 정애연 “뒤늦은 합류…그래도 기뻐”

    ‘슬픔보다 슬픈’ 정애연 “뒤늦은 합류…그래도 기뻐”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의 ‘제나’ 역의 배우 정애연이 캐스팅 뒷이야기를 전했다.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극장에서 열린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감독 원태연· 제작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애연은 “캐스팅에 떨어져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크랭크인 이틀 전에 감독님께 연락이 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흔쾌히 촬영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정애연은 극 중 주환의 약혼녀(이범수 분)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의 사진작가 제나 역을 맡았다. 이 역할은 당초 전 KBS 아나운서 최송현이 출연하기로 결정됐으나 촬영 직전 스케줄 문제로 하차하면서 정애연이 최종 캐스팅됐다. 늦게 합류한 만큼 역할을 분석하는 시간이 짧은 것이 안타까웠다는 정애연은 “감독님 말씀과 준비한 것을 잘 조율하면서 열심히 쫓아갔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정애연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이 꼭 말로 표현해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말을 못해도 사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결혼할 나이가 다가오는데 점점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나보다는 상대를 위하는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3월 11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원미연 “이젠 이별여행 안할래요”

    원미연 “이젠 이별여행 안할래요”

    중학교 때부터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고 싶었다. 연기에 대한 끼도 있어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음대 선배들과 뮤지컬을 하며 도움을 얻었다. 재즈풍의 ‘들녘에서’를 들고 대학가요제에 나갔다. 예선에서 점수가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대상은 ‘저 바다에 누워’를 불렀던 높은 음자리에게 돌아갔다. 대상은커녕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도 있었다. 수상곡을 중심으로 꾸려진 기념 음반에 빈 자리가 있어 노래를 실을 수 있었다. 당시 ‘밤의 디스크쇼’를 진행하던 인기 DJ 이종환의 귀에 이 노래가 들렸다. 공개방송에 나가는 등 음악에 대한 꿈을 이어가게 됐다. 대학 시절 KBS 특채 탤런트가 됐다. ‘해돋는 언덕’, ‘사랑이 꽃피는 나무’, ‘형사25시’ 등 쟁쟁한 드라마에 나왔다. 주인공은 아니었다. 주변 인물이었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기에 “젊었을 때부터 강부자 같은 특색있는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음악에 더 욕심이 났다. 1989년 졸업하자마자 첫 앨범을 냈다. ‘혼자이고 싶어요’가 뜨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2년 뒤 나온 ‘이별여행’은 대박을 터뜨렸다. 발라드의 대명사가 됐다. 3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원미연(44)이 ‘가수’라는 타이틀을 확실하게 굳혔던 순간이다. 원미연이 13년 만에 새 노래 ‘문득 떠오른 사람’을 내놓으며 대중음악계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대중에게 원미연은 가수가 아닌 ‘방송인’이었다. ‘이별여행’이 돌풍을 일으킨 뒤 1993년과 1995년에 3, 4집을 거푸 냈다. 신재홍, 유영석, 민재홍, 김형석, 김동률 등 최고 작곡가들에게 노래를 받았다. 심지어 서태지도 ‘그대 내 곁으로’를 선물했다. 직접 제작하고 프로듀서를 맡았다. 당연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중은 외면했다. 곧 댄스 시대가 시작됐다. 여자 가수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 팬들과 긴 이별여행을 해야 했다. 그냥 쉰 것은 아니었다. TV나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와 초대손님으로 숨가쁘게 지냈다. 1997년 말부터는 부산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과 2004년 결혼했다. 딸 유빈이를 낳고부터는 신세대 엄마들처럼 ‘슈퍼우먼’이 됐다. 바쁜 삶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은 비어 있었다. 라이브하우스나 행사 등에서 계속 노래를 불러왔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삶의 무게가 짙게 묻어나는 ‘나의 노래’는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수가 자기 노래를 해야지.”라는 남편의 한마디가 든든한 힘이 됐다. 8년 동안의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복귀를 준비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무섭다고 했다. 이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건지 두렵다고도 했다. 요즘 대중음악계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빠르다. 요즘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잘 추고, 이야기도 잘하고, 성대모사까지 해야 한다. 몇몇 톱스타가 끌고나가는 음악시장의 현실도 아쉽다. 여러 장르의 선후배가 모여 정을 나누던 음악 프로그램 대기실의 훈훈함도 사라졌다. 하지만 차츰 용기가 난다. 새 노래를 발표한 뒤 간간이 날아오는 문자메시지 때문이다. 노래를 들으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고 친구가, 오빠가, 옛 사랑이 생각난다는 내용이다. 그는 감사하다고 했다. 원미연은 “다시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면서 “듣는 이의 마음에 오랫 동안 긴호흡으로 남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디지털 싱글로 노래를 냈지만 내려받기를 할 줄 몰라 남편에게 휴대전화 컬러링을 선물받았다고 웃는 그는 이르면 5월쯤 무대에서 팬과 만날 예정이다. 이번 싱글에 곁들여진 리메이크 곡의 노랫말이 의미심장하다. 부산에서 라이브하우스를 운영할 당시 신청을 받아 처음 불러봤는데 ‘내 노래다.’라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뮤지컬’이다.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세상으로 난 다시 태어나려 해…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돼야만 해…음악과 함께 가는 곳은 어디라도 좋아…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떨어지지 말아요. 붙여드려요-임정진

    [엄마와 읽는 동화]떨어지지 말아요. 붙여드려요-임정진

    끈끈이네 가족은 뭐든지 착 달라 붙게 하는 재주를 가졌어요. 집안 내력이 그랬어요. 집안마다 유전자에 어떤 특징이 전해 내려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끈끈이네 집안은 누구든 뭘 붙이는 재주를 타고 태어나는 거예요. 끈끈이네 가족은 모두들 그 재주를 잘 이용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지냈어요. 가족들이 열심히 일하는 곳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끈끈이네 엄마는 우체국에서 일해요. 우체국에서 가장 덩치 큰 우편물들이 오가는 소포 포장코너에서 일하는 초강력 테이프가 바로 끈끈이 엄마에요. 강력테이프 엄마는 배뚜껑을 열고 테이프를 끌어 내서 우체국에서 모든 소포상자 입구를 착착 붙여 주었어요. 그리고는 상자를 한 바퀴 빙 둘러 주지요. 그러면 먼 길을 가더라도 상자가 다시 열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그리고 가끔은 포스터 붙이는 일도 거들었어요. 그럴 때는 테이프가 보이지 않게 붙이는 게 중요하지요. 테이프를 잘라서 둥그렇게 말아요. 그런 다음에 포스터 뒤에 턱 붙이고 벽에 붙이면 양면테이프가 없어도 너끈히 포스터를 붙일 수 있어요. 집에 와서는 가끔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모으는 일도 했고요. 아주 급할 때는 바퀴벌레 잡는 일도 가끔 했어요. “빠, 빨리 버려.” 바닥에 놓아둔 테이프 조각에 바퀴벌레가 붙으면 엄마는 소리소리 질렀어요. 그러면 얼른 막내가 달려가 테이프를 반으로 딱 접은 다음에 얼른 내다 버렸어요. 끈끈이네 아빠는 초강력 딱풀이에요. 종이를 오려서 여러 가지를 만드는 화가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요. 가끔은 헝겊 쪼가리도 붙여 주고 나뭇잎을 붙일 경우도 있어요. 화가들은 뭐든지 자꾸 새로운 걸 가져 와도 붙여 보려고 애써요. 딱풀아빠는 되도록이면 다 붙여 보려고 애쓰지만 가끔 포기해야 되는 경우가 있어요. “흥. 오늘은 글쎄 나보다 합성수지 녹인 풀이 더 일을 많이 했다니까. 그 애들은 녹았다가 다시 딱딱해지면 두꺼운 몸집이 남잖아. 그런데 뭐가 좋다는 거야? 나는 말라도 부피가 없어서 찰싹 달라붙게 해 주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단추나 고무줄 같은 걸 붙이고 싶어하는 화가가 자꾸 글루건을 붙잡는 걸 지켜 봐야만 하는 딱풀아빠는 매일 점점 속이 탔어요. 형 끈끈이는 찍찍이 벨크로테이프였어요. 운동화 끈이나 점퍼의 주머니에 달라 붙어서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게 도와 주었어요. 끈끈이네 누나는 부끄럼이 많은 투명테이프였는데 가지가 뚝 꺾어진 꽃을 감쪽 같이 붙여서 다시 살아 나게 하는 재주를 가졌어요. 책이 찢어져도 잘 붙여 주었지요. 그런데 끈끈이네 막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커다란 양동이에 왕끈끈 찹쌀풀을 가득 담아서 큰 붓으로 여기저기 칠해 주고 다녔어요. 하지만 열 다섯 살이 되면 특별한 특징을 갖게 될 거라고 엄마가 말해 주었어요. 그래도 막내는 열심히 찹쌀풀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 나갔어요. “아이고, 또 어디로 간거야? 리모컨 내놔라.” “걱정마세요. 제가 여기 탁자에 붙여 둘게요.” 자꾸만 사라지는 리모컨을 탁자에 딱 붙여 두어서 칭찬을 받기도 하고 빨랫줄에 왕끈끈풀을 발라 빨래가 날아가지 않게도 했어요. 하지만 그 빨래는 떼내느라 엄마는 무진 애를 써야 했지요. “막내야. 미안하지만 다음부터는 빨래집게를 이용해줘.” 막내는 그날 하루종일 시무룩했어요. 막내는 고민 끝에 더 큰 세상에 나가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해봤으니까요. “엄마 아빠. 아무 걱정마세요. 난 떨어진 거. 깨진 거는 다 잘 붙일 수 있으니까 많은 일을 할 거예요. 멋진 일을 해보고 싶어요.” 가족들은 걱정했지만 곧 열 다섯 살이 되는 막내에게 그런 모험도 필요할 때라고 결정했어요. 막내는 가족들의 포옹을 받고 길을 떠났어요. “다 붙여 드립니다. 절대 다시 안 떨어집니다.” 막내 끈끈이는 그렇게 외치며 다녔어요. “오…저 좀 도와 주세요.” 대머리 아저씨가 막내 끈끈이를 불렀어요. “내 머리카락들이 자꾸 도망간답니다. 좀 붙여 주세요.” 막내 끈끈이는 머리카락들을 다 주워서 왕끈끈찹쌀풀을 대머리 아저씨 머리에 바르고 머리카락을 척척 붙여 주었어요. “우와. 인물이 산다 살어.” 대머리 아저씨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런 인사를 받으니 막내 끈끈이는 기운이 솟았어요. “회오리 바람이 자꾸 불어 오네. 어쩌면 좋아.” 막내는 커다란 포스터가 떨어져서 울고 있는 극장 주인을 만났어요. “걱정 마세요. 제가 해볼게요.” 막내 끈끈이는 있는 힘을 다 해서 간판도 도로 벽에 척 붙여 주었지요. “고마워요. 고마워. 영화배우들 얼굴이 다 반듯해졌어요.” 또 고맙다고 인사를 받으니 세상에 모든 걸 다 붙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어요. 정말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녀 보니 세상에는 떨어진 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붙여 주어야 할 게 참 많았어요. 막내 끈끈이는 이제 물어 보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척척 다 붙이게 되었어요. 산에 가보니 도토리가 다 땅에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척척 다 나무에 도로 붙여 주었고요. 도토리 나무는 속이 터져 씩씩거렸어요.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어서 나뭇가지를 밤새 흔들었어요. “앗, 이거 뱀의 허물이잖아? 뱀은 어디 간 거야? 이런 걸 버려 두고 가면 어떡해. 얼마나 춥겠어.” 막내는 고생고생해서 뱀을 찾아 허물을 도로 뱀 몸에 붙여 주었어요. 몸이 커져서 새 껍질을 장만한 뱀은 다시 작은 허물을 쓰고 있어야 하니 답답해서 몸부림을 쳤어요. 곰발바닥이 지나간 자리를 보니 발자국이 뚝뚝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 자국도 도로 곰발에 다 붙여 주었어요. 곰은 기가 막혀서 입을 떡 벌리고 뒤로 자빠졌어요. 떨어진 나무잎도 도로 다 나무에 붙여 주었어요. 새 잎이 나올 자리가 없어졌겠지요. 알에서 나온 까마귀 새끼를 보고는 막내 끈끈이는 혀를 찼어요. “이런 알이 깨지다니. 내가 도로 붙여 줄게 걱정 마.” 막내 끈끈이는 까마귀 새끼와 깨진 알을 잘 붙여서 동그랗게 만들어 주었어요. 막내 끈끈이는 참 흐믓했어요. 하지만 새끼 까마귀는 숨이 막혀서 캑캑 거렸어요. 막내 끈끈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막내를 미워하는 말들이 많았어요. 그 소문은 곧 끈끈이네 가족들 귀에도 들어갔지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막내가 그렇게 말썽을 피우고 다니다니. 이런 망신이 있나. ” 엄마 끈끈이는 훌쩍거리며 울었어요. “안 되겠어요. 도로 막내를 잡아와서 끈끈이 가문이 해야 할 일을 다시 잘 가르쳐 줍시다.” 아빠 끈끈이는 막내를 찾아 와야 한다고 말했어요. -왕끈끈 막내를 찾습니다. 찾아 주시는 분께 초강력 거미줄 한 다발을 드립니다.- 그렇게 포스터를 만들어 여기저기 붙여 두었어요. 막내가 갈 만한 곳에 강력 끈끈 빨랫줄을 여기저기 쳐 두었어요. 막내는 도대체 어디로 쏘다니는지 쉽게 잡히지가 않았어요. 그 때 막내는 폭포아래서 한숨을 쉬고 있었어요. “아 저렇게 많이 물이 떨어지다니. 저걸 어찌 다 붙여주나…세상엔 할 일이 너무 많군.” 그런데 그 때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앗. 구름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큰일이다. 얼른 붙여 줘야지. ” 그런데 빗방울은 너무 많은 데다가 끈끈액으로도 잘 붙지 않았어요. 아무리 붙여도 끝이 없었고 또 금방 다시 떨어졌어요. 헉헉거리며 밤새 일을 하다가 막내는 병이 들고 말았어요. 말썽꾸러기 끈끈 막내가 아파서 큰 바위 위에 누워 있다는 소문을 듣고 끈끈이 가족이 달려 왔어요. 막내는 아프면서도 끈끈이 양동이 손잡이와 붓을 꼭 쥐고 있었어요. 막내는 가족을 오랜만에 만나 기뻐서 기운을 내어 일어나 그동안 한 일을 자랑했어요. “아빠 엄마 형아 누나. 나 잘 했지? 응? 깨진 알도 다 붙여 주고 떨어진 나뭇잎까지 다 붙여 주었다니까.” 가족들은 막내를 칭찬해줄 수 없어 괜히 켁켁 기침만 했어요. 아직 어디에 끈끈액이 진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는 막내를 혼자 내보낸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 끈끈이 부모님은 막내 끈끈이에게 “막내야. 이 끈끈액을 아무 데나 쓰지 말고 좋은 데 써야지.”하고 타일렀어요. “어디 또 문제가 있어요?“ 막내는 기운을 차리고 일어섰어요. “돌을 붙이는 일은 아무나 못한단다. 아주 중요한 일이지. 우리 막내가 잘 할거야.” 막내는 엄마 말대로 얼른 무너진 성을 고치는 곳으로 달려 갔어요. 돌을 쌓아서 성을 새로 만드는데 그 돌들이 무너지지 않게 잘 붙여 주는 일을 막내가 했어요. 1년 후, 산성 보수공사가 끝났어요. 막내 끈끈이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어요.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오늘 가정법원 앞에서 막내 끈끈이는 서성거렸어요. 일자리가 있을 것 같다고 하네요. ■동화작가 임정진 ●작가의 말 어린이들이 만들기 작업을 할 때, 풀을 주로 썼는데 요즘은 강력 본드나 글루건도 선생님의 도움으로 사용하는 걸 보았습니다. 더 강한 접착제가 필요한 단단한 물건들을 어린이들도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를 붙여주는 접착제가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엔 부부 사이를 붙여 주는 접착제가 아이들이었는데 요즘은 아이들만으로도 힘든가 봅니다. 믿음이, 사랑이, 우리 사이를 잘 붙여 주기 바랍니다. ●약력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서울 디지털대 문창학부 초빙교수. ▲잡지사 기자, 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 구성 작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등의 일을 하다가 1988년 계몽아동문학상 수상으로 아동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꾸준히 써왔다.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지붕 낮은 집, 발끝으로 서다.’, ‘천방지축 개구리의 세상구경’, ‘나보다 작은 형’, ‘엄마 따로 아빠 따로’ 등의 작품이 있다.
  • ‘미워도… ’ 전인화 “배우는 노출된 직업”

    ‘미워도… ’ 전인화 “배우는 노출된 직업”

    최근 40~50대 사이에서 KBS 2TV 수목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번’의 인기가 뜨겁다.’미워도 다시 한번’(극본 조희, 연출 김종창)에 출연 중인 전인화는 2일 오후 KBS 수원센터에서 “첫 방송 부터 중년층에게 어필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큰 관심을 보여주신다. 감사드린다.”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밤새 촬영을 해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배우들 간에 호흡이 잘 맞는다.”고 행복감을 드러냈다. 이번 배역을 통해 배우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는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이 갇혀 있으면서 동시에 노출된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가족구성원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극중 모습은 실제 배우들의 애로사항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극중 삼각구도에 대해서는 “현실에서는 그럴만한 상황이 없고 첫사랑에 대한 추억도 따로 없다. 첫사랑이 남편이기 때문”이라며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고 전했다. 전인화가 연기하고 있는 톱스타 은혜정은 순수한 사랑을 지키면서 배우에 대한 열정을 뿜어내야 하는 캐릭터다. 자기 자신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행복감이 있다. “극중 정신적인 지주였던 오빠에 대한 마음이 가득하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질투하고 스스로 다스릴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 앞서가는 인물”이라고 밝힌 그녀는 “전인화라는 사람과 배역과 글과 연출이 어우러져 드라마가 끝날 무렵 새로운 인물이 창출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남편 유동근은 기존 이미지와 다른 그녀의 캐릭터에 대해 “좋은 기회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그 덕에 오랜만에 신나게 연기하고 있다는 전인화는 “직업이 같다보니 저녁에 차 마시면서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중견배우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힘이 되어 준다.”고 전했다. 은혜정이 ‘악역’이라는 평에 대해서는 “인간은 누구에게나 선과 악이 존재한다. 나를 만드는 것은 주변 환경과 사람, 그리고 자신만의 내공과 기질이 더해진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캐릭터를 악역으로 안 봐주셨으면 좋겠다. 혜정은 정훈이가 내남자가 된다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남자가 나에게 따뜻한 표현만 해줘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인물이다.”며 “성숙한 세 사람의 결말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영화리뷰] ‘라스트 프로포즈’

    재벌과 서민의 사랑.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라스트 프로포즈’(감독 류웨이장) 이야기다. 마카오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극적인 굴곡이나 충격적 반전 없이 예상 가능한 스토리 라인을 가만가만 따라간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진부하다.”며 한마디로 내치기도 어렵다. 이유는 ‘상투적 러브스토리’란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치의 영감을 살갑게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며, 홍콩의 두 유명 배우 류더화와 슈치의 사랑스러운 연기 호흡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최고의 재벌인 샘(류더화)은 백만장자답지 않게 털털하고 유머가 넘친다. 모자란 것 없는 그이지만, 3번의 이혼 경력이 말해 주듯 사랑만큼은 쉽지 않은 문제다. 어느 날 그는 사업차 방문한 마카오에서 클럽 댄서 밀란(슈치)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빈털터리지만 인생을 100% 즐길 줄 아는 그녀는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마침내 교제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마냥 행복하던 순간도 잠시, 그가 재벌임을 알게 된 밀란은 고민에 빠진다. 홍콩 사교계의 반응도 냉랭하기 짝이 없다. 최상류층을 다루는 만큼 영화에는 눈요깃거리가 넘쳐난다. 극중 샘이 묵는 스위트 룸은 하루 숙박료가 10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하며, 샘이 밀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건네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명품 카르티에의 6캐럿짜리라고 한다. 100억원이 소요됐다는 작품의 제작비는 이처럼 고급스러운 시각미를 선사하는 데 쓰였다고 보면 된다. 경제력의 차이, 곧 현대판 신분의 차이는 단지 조건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까. ‘조건없는 사랑’을 쉽게 이상화하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 사랑이 번번이 이 조건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혹은 이 조건을 뛰어넘어 결합에 성공하는 것은 정말 열광받아 마땅한 일일까. 영화는 ‘결혼’이란 인생의 중대지사를 축으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진다. “사랑은 유리구슬과 같다. 땅에 떨어지면 산산이 부서지는….” 영화는 이같은 구절을 읊조린다. 정작 작품 속 사랑은 솜구슬에 가깝다. 땅에 떨어지면 순간 부피가 줄어들지만, 다시 믿음이란 공기를 불어넣으면 원래처럼 커지는 솜구슬 말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진실한 사랑’에 이르는 두 사람의 연애 여정을 손에 쥔 구슬을 바라보듯 감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새달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2009년 3月, ‘3色 로맨스 영화’ 스크린 점령

    2009년 3月, ‘3色 로맨스 영화’ 스크린 점령

    올해 3월, 극장가에 유독 로맨스 영화가 눈에 띈다. 지난 25일 ‘라스트 프로포즈’가 시사회를 통해 첫 테이프를 끊으면서 화려한 로맨스 영화의 시작을 알린데 이어 오는 3월12일 화이트 데이를 겨냥해 개봉하는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와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역시 봄날, 감수성을 자극하는 로맨스 영화로 손꼽히고 있다. #총 제작비 100억원, 볼록버스터 로맨스 ‘라스트 프로포즈’ 유위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덕화와 서기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아온 ‘라스트 프로포즈’는 세상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사랑만큼은 서툰 백만장자 샘(유덕화 분)과 평범하지만 언제나 당당한 클럽 댄서 밀란(서기 분)의 조건을 초월한 사랑을 담고 있다. 총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한 초대형 로맨스를 그린 이 영화는 실제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와 부인 ‘안젤라 렁’의 ‘세기의 로맨스’를 모티브로 만들어져 제작 초기부터 세간의 큰 관심을 끈 기대작이다. 중국에서 먼저 개봉한 ‘라스트 프로포즈’는 로맨스 영화 오프닝 최고 성적 기록, 1300만불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2009년 최고의 로맨스 영화로 등극했다. #다양한 사랑이야기 담은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사랑과 이별을 그린 시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원태연 감독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풍부한 멜로 감성 감독과 배우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희생적 사랑’ ‘외톨이 사랑’ ‘눈먼 사랑’ 등 각기 다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 내며 한동안 부재했던 정통 멜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영화배우 권상우가 결혼 후 처음 출연해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오는 3월12일 개봉한다. #유쾌 상쾌 통쾌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같은 날 개봉하는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은 뉴욕 최고의 연애 박사에게 결혼 한 달 전 찾아온 러브 태클을 그린 영화다. 잘 나가는 연애 박사이자 뉴욕 최고의 싱글 엠마(우마 서먼 분)가 ‘자신도 모르게 결혼 당한다’는 소재를 바탕으로 그의 피앙세 콜린 퍼스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게 그려져 색다른 로맨스를 선사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10년 전 처음 읽고 한눈에 반했다는 우마 서먼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 첫 도전장을 내밀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위부터 영화 ‘라스트 프로포즈’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스틸 컷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비, ‘레이니즘’ 재구성한 ‘리콜렉션’ 발표

    비, ‘레이니즘’ 재구성한 ‘리콜렉션’ 발표

    비(Rain, 본명 정지훈)가 5집 ‘레이니즘’을 재구성한 ‘리콜렉션(Recollection)’을 발표한다. 비 소속사 제이튠엔터테인먼트는 “5집 음반을 새롭게 재구성한 ‘레이니즘 리콜렉션’을 한정 판매한다. 오리지널 곡 외에도 새로운 버전과 DVD 등을 추가해 새 앨범에 버금가는 신선한 내용과 파격적인 구성으로 팬들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앨범은 지난 연말 국내 가요계를 평정한 ‘레이니즘’, ‘러브스토리’, ‘프레시 우먼’ 등 5집 정규 앨범에 수록됐던 오리지널 12곡에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아시아 판 앨범의 수록곡 ‘레이니즘’, ‘러브스토리’의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버전의 곡이 모두 추가된다. 또한, ‘9월12일’, ‘내 여자’, ‘사랑이라는 건’ 등 3곡의 발라드는 감미로움을 배가한 어쿠스틱 버전으로, ‘프레시 우먼’은 하우스의 경쾌함과 노래의 신선함을 살려 어반 믹스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추가 삽입했다. 특히, 하지원과 동반 출연해 화제를 모은 뮤직비디오의 완결편 ‘러브스토리’ 뮤직필름이 장장 35분 분량의 DVD로 제작돼 삽입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국내에서 오랜 만에 선보이는 비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이번 앨범에서만 단독으로 공개되는 뮤직 필름의 미공개분을 감상할 수 있어 소장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3만 장 한정으로 판매될 이번 앨범은 오는 3월 5일 발매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이보영 ‘고교생’으로 깜짝 변신

    권상우·이보영 ‘고교생’으로 깜짝 변신

    배우 권상우와 이보영이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를 통해 고등학생으로 변신해 교복입은 모습을 선보였다. 25일 공개된 영화 스틸은 1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고교생이 된 권상우와 이보영의 교복 패션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이 스틸은 라디오 PD 케이(권상우 분)와 작사가 크림(이보영 분)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고등학교 시절을 담은 것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케이와 한날 한시에 가족을 모두 잃은 크림이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모습을 담았다. 제작진은 “오랜만에 교복을 입은 두 배우는 졸업한지 십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완벽한 교복 맵시를 선보였다. 동안배우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상우와 이보영은 “오랜만에 교복을 입으니 고교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입을 모아 소감을 밝혔다. 스틸을 본 네티즌들은 ‘너무 잘 어울린다’, ‘역시 동안이다’ 등 두사람의 고교생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가하면 ‘나이는 속일 수 없다’, ‘권상우 주름이 다 보인다’ 등 지적하는 네티즌도 적지 않았다. 한편 시한부 인생을 사는 라디오 PD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 크림, 그 여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의 삼각 사랑이야기를 그린 ‘슬픔보다 슬픈 이야기’는 3월 12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대통령의 딸/박정현 논설위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딸처럼 좋은 영화 소재도 없는 것 같다. 5년 전 개봉된 두 편의 영화 ‘체이싱 리버티’와 ‘퍼스트 도터’는 공교롭게도 18살 대통령의 딸을 소재로 하고 있다. 화려하면서 답답한 백악관을 떠나 자유를 추구하는 대통령 딸의 인간적인 면을 그린 영화들이다. 체이싱 리버티에서 미국 대통령의 외동딸 안나 포스터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벤이라는 남성과 우연히 만나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을 무대로 로맨스를 즐긴다. 대통령의 딸은 자유를 찾아 로맨스를 벌이지만, 실제로 벤은 대통령의 딸인 암호명 ‘리버티’를 보호하기 위해 투입된 비밀경호원이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뜻의 영화 퍼스트 도터에서 사만다 매킨지는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약속을 대통령에게서 받아낸다. 아버지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을 붙이지만, 대통령의 딸은 경호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다. 미국 대통령은 깜찍하고 당돌한 딸을 두고 있는 사례가 많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열살짜리 말리아와 일곱살짜리 사샤라는 두 딸을 두고 있다. 두 딸은 애완견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아빠의 패션감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천진난만함을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TV에 출연해서 “아빠가 선거 유세를 떠나면서 싸놓은 여행가방을 아무 곳에나 두는 바람에 가방에 걸려 넘어져서 불만이다.”는 솔직한 인터뷰를 했다. 그런 두 딸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엄격한 백악관 생활을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8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자명종 시계를 맞춰놓고 아침 등교시간에 맞춰서 스스로 일어나도록 한다. 침대 정리와 방 청소도 직접 해야 한다. 자의식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오바마 부부의 자녀사랑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딸을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딸도 부모 희망처럼 자라지는 않는 법.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인 바버라와 제나는 2001년에 음주 가능 연령이 되지 않았는데도 맥주를 마셔 물의를 일으켰다. 자유롭게 살고픈 희망과 대통령의 딸이라는 관심은 상충되게 마련인 듯하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살아있는 목마/원유순

    [엄마와 읽는 동화] 살아있는 목마/원유순

    나는 크고 화려한 놀이공원에 있는 회전목마예요. 반질반질 윤기 나는 갈색 털 대신 하얀 페인트를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있어요. 처음 목마가 되어 그저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똑같은 길을 끝없이 돌아야 할 때,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크신 이에게 빌고 또 빌었어요. 길 가에 돌멩이, 보잘것 없는 풀, 흐르는 냇물, 저 하늘에 구름을 만드시고, 세상에 모든 것을 만드신 그분, 또한 저를 목마로 만드신 그 분, 제발 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세요. 끝없이 같은 길을 돌고 도는, 이렇게 죽은 삶은 정말 견딜 수 없어요. 제발 제게 생명을 주셔서 푸른 초원을 맘껏 달리게 해주세요. 아니, 푸른 초원이 아니라도 좋아요. 그저 제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만 해주세요. 나는 동그란 원을 따라 같은 길을 끝없이 돌고 돌면서 빌고, 빌고, 또 빌었어요.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빌었던, 어느 밤이었어요. 놀이공원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남아 놀이시설을 점검하던 아저씨, 공원을 청소하던 아줌마들조차 돌아간 깊은 밤이었어요. 시끄러운 소리만 그득하다가 갑자기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 그 적막함이 얼마나 낯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밤이었지요. 게다가 달도 없는 그믐밤이라 쓸쓸함이 한층 더했지요. 나는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들어 별빛이 소근대는 밤하늘만 고즈넉하게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마음은 한없이 울고 있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어요. 슬프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생명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푸식푸시식…. 하루 종일 밧줄에 묶여 오르락내리락하며 돌고 도는 일에 지쳐 있던 다른 친구들은 낮게 코를 골며 이내 죽음 같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정말 말답게 살고 싶어서였지요. 그때 낮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어요. “얘야, 네가 밤마다 나를 원망하며 불렀느냐?” 소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처럼 샤악 제 가슴속으로 들어왔어요. 나는 즉각 크신 이의 목소리인 줄 알았어요. “네, 제가 불렀어요. 말답게 살고 싶어요. 제발 저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세요.” “오냐, 네가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간절히 원하니 소원을 들어주겠다. 네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너를 생명체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저를 생명체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고요?” 나는 놀라서 되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 그렇다. 너를 살아있는 말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너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크신 이의 목소리는 가느다란 빛이 되어 별빛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졌어요. 그동안 회전목마로 지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등에 태워봤지요. 대부분 어린아이들이었지만, 간간이 아이를 안고 타는 엄마나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아아! 나는 그만 힘이 쭉 빠져서 길게 한숨을 쉬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모습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분명 그런 사람도 있을 거라는…. 그 생각은 곧 가느다란 희망으로 바뀌었어요. 다음날부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등에 올라타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를 썼지요. 등허리를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만들어 아이가 편안하게 앉아 목마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도 했고요. 두 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나올 때면 앞발을 들어 겅중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고, 세 박자 왈츠풍의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실룩이며 우아하게 흔들기도 했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까르르 웃기는 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어주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일 년, 이 년…. 셀 수 없는 많은 날이 지났지만, 내가 생명을 가진 말이라는 걸 알아주는 아이는 만나지 못했지요. 나는 지치기 시작했어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열고 손님 하나하나에게 신경 쓰는 일은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기에 나는 더욱 빨리 지쳐갔어요. 크신 이여,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지 그러셨어요? 왜 저에게 희망이라는 실낱을 던져주고 그걸 붙들고 애쓰는 저를 즐기고 계시나요? 나는 크신 이를 원망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려 했어요. 그러나 크신 이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늦은 가을날, 찬비라도 내리려는지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오후였어요. 너덧 살 먹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햇살처럼 환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어요.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의 남자도 함께였지요. “아빠, 나 이거 탈래.” 아이 목소리는 탱탱한 고무공처럼 통통 튀었어요. “정민아, 아빠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올 테니까 타고 있어.” 남자 목소리는 매우 어둡고 무거웠어요. “알았어, 아빠.” 남자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내 등에 태웠어요. 그리고 아이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고 낮은 한숨을 쉬었어요. 나는 왠지 불길한 예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어요. 왈츠 음악이 흐르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꺼떡꺼떡 춤을 추었어요. 아이는 내 등에 앉아 까불까불 엉덩이를 흔들었어요. 천천히 두 바퀴를 돌고 나자 음악이 멈추었어요. “어? 벌써 끝났잖아.” 아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어요. 그때까지 남자는 오지 않았어요. 아이는 내 등에서 내려오지 않고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어요. 마치 한 바퀴 더 돌라는 듯이 말이지요. 나도 그러고 싶었어요. 내가 만일 살아있는 말이라면 아이를 태우고, 저 푸른 들판을 맘껏 달릴 텐데요. 그러면 아이는 이렇게 소리칠지도 몰라요. “야호! 나는 초원의 왕자다. 씩씩하고 용감한 초원의 왕자!” 목마를 조종하는 강씨 아저씨가 작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어요. “얘야, 손님도 없는데 한 번 더 태워주마.” 이번에는 네 박자 행진곡이었어요. 빰빠라 바암. 병정들의 나팔소리에 맞춰 우쭐우쭐 회전판을 돌았어요. 아이가 다시 들썩들썩 엉덩춤을 추었고요. 두 번째 음악이 끝나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이는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엎드렸어요. 어느덧 놀이공원 안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어요. 하얗게 빛나는 목마들만 어둠 속에서 두둥실 떠올라 보였지요. “얘야, 네 아빠는 안 오실 게다. 어서 내려오너라.” 강씨 아저씨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아이는 더욱 세게 내 목을 끌어안으며 소리쳤어요. “싫어요. 아이스크림 사갖고 울 아빠 꼭 올 거예요. 그렇지? 목마야. 너도 봤지?” 순간 아이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어요. 아이의 눈이 간절하게 빛났어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봐요, 아저씨. 목마가 봤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빠, 꼭 올 거란 말이에요.” 아이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 딱딱한 내 갈기 위로 뚝뚝 떨어졌어요. 그러자 내 갈기가 올올이 살아 푸르르 떨렸어요. “안다, 알아. 네 아빠는 언젠가는 오실 거다. 그렇다고 여기서 밤을 지낼 수는 없다.” 강씨 아저씨는 아이를 안아 내렸어요. 아이는 갈기를 쓰다듬으며 속삭였어요. “목마야, 우리 아빠 오면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말해 줘. 내가 꼭 다시 온다고. 알았지?” 아이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어요. 나는 어둠 속에서 수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요. 그날 저녁은 찬비가 내렸어요. 달도 별도 없었어요. 다만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어요. 아,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내 몸속 피가 조금씩 더워지며 혈관을 따라 돌기 시작하고, 불끈불끈 근육이 꿈틀거렸어요. 머지않아 반질반질한 피부에는 보드라운 털이 보풀보풀 돋아날 게 틀림없어요. “히히힝!” 나도 모르게 콧구멍으로 더운 김을 확 내뿜었어요.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 부드럽고 신비한 크신 이의 소리가 들렸어요. “얘야, 드디어 너도 생명을 얻었구나. 기쁘다.” “아아, 크신 이여, 고맙습니다.” “이제 저 너른 벌판을 네 맘대로 달릴 수 있겠구나. 망설이지 말고 어서 가거라.” 어디선가 후드득, 고삐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오랫동안 나를 옥죄어 왔던 고삐, 날마다 벗어 던지고 싶었던 멍에. 바로 그 줄이 끊어지는 소리였지요. “자…잠깐만요.” 순간 아이의 간절한 눈빛이 반짝 스쳐갔어요.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소리쳤어요. “며칠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크신 이의 목소리는 냉정했어요. 송곳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가웠어요. “그…그래도, 저…저는…지금은 안 돼요. 남자가 오면….” 가슴이 훅 더워지며 울컥 눈물이 솟구쳤어요. 아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요, 뜨거운 눈물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눈물이…. “됐어요. 눈물을 흘려봤으니 됐어요. 이제 되었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걸까요? 나는 크신 이의 목소리보다 더 단호하게 말했어요. 날이 밝았어요. 간밤에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은 낙엽 위로 빛 조각들이 반짝였어요. 어느새 내 등허리에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올라탔어요. 강씨 아저씨는 3박자 미뉴에트 춤곡을 틀었어요. 나는 우쭐우쭐 우아하게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괜찮아.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았으니 언젠가는 살아있는 말이 될 수 있어. 맞아, 틀림없어. 나는 할 수 있다니까. 나는 춤을 추며 혼잣말을 했어요. ●작가의 말 나이 쉰을 넘기면서 어린애처럼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탄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대요. 아, 이렇게 매어 있는 삶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생각으로 목마를 내려다봤는데, 목마는 웃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누구나 고삐에 매어 살아요. 가정이라는 고삐, 직장이라는 고삐…. 그 고삐만 벗어던지면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것 같지요. 날고 싶은 갈망을 꼭꼭 숨기고, 때로는 기회가 와도 포기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이겠지요. 크고 지순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사랑일지라도, 사랑은 큰 힘이 되지요. ●약력 ▲1957년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람 ▲경인교대 졸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3년 MBC창작동화 대상, 계몽사아동문학상 ▲‘까막눈 삼디기’, ‘열 평 아이들’, ‘얀손 씨의 양복’, ‘색깔을 먹는 나무’ 등 어린이 책을 펴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강사 ▲전업 작가로 활동 중
  •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추기경 신드롬 어떻게 발전시키나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추기경 신드롬 어떻게 발전시키나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이후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한국 천주교는 물론 로마 교황청까지도 놀라게 한 이 추모 열기는 종교와 이념 구별 없이 한국사회 전반에서 번져 이른바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으로까지 불려진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새기고 살려내자는 이 거대한 움직임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승화시킬 방안은 없을까. 조광 고려대 교수, 천주교주교회의 변승식 신부, 김종회 경희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의 양상을 짚어본다. ▶참석자 조광 고려대 교수 변승식 신부 김종회 경희대 교수 ▶사회 김성호 선임기자 변승식 신부 1. 40만 추모인파 의미 사회 추기경 선종에 일반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 선종 이후 전국적으로 이념, 종교를 가르지 않고 이어지는 추모 행렬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변승식 모두가 다 놀라고 있다. 추기경께서 장례 미사를 소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유지를 남기셨다. 그래서 천주교 교회에서는 빈소만 마련했을 뿐, 그 누구도 시민들에게 오라 가라 하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추위에 떨면서 이어간 조문 행렬을 보면서 종교계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일반 시민들이 종교에 대해 바라는 것이 많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추기경이었기에 그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김종회 지난 한주간 언론에서 추기경 선종 기사로 지면을 가득 메웠다. 그런 반응은 쉽지 않은 것이다. 시민들이 추기경의 구체적 행적에 대해서 잘 모르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그분의 업적을 알아가면서 감동이 더해간 점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없는 시절에 살고 있고 그에 따른 정신적 공백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추기경 선종을 기회로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아 이분이 이런 분이셨구나.’라고 감동하며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조광 추기경 선종 이후의 열광적인 추모 양상은 그가 생전 늘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과 함께하려 한 자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한 결과다. 그분은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늘 추구하셨다. 또 종교인으로서 자기 신념만 강조하지 않았고 모든 것들 속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다고 생각하며, 신성한 가치를 찾아 다른 것들이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자 했다. 그렇게 인정하고 대화하는 자세가 종교를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게 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2. 신드롬 일시적 현상인가 사회 추모 행렬이 7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천주교뿐 아니라 로마교황청에서도 각별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작 한국에서는 수많은 관측이 일고 있다. 김 추기경 신드롬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사회적 불안을 반증한 당연한 결과인가. 변 추모객들 중에는 그분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을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가 줘야 할 것을 주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치·문화 등 각계에서도 이 사람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를 살피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양떼들은 참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성경말씀이 있다.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김 추기경의 동성상업학교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 교사가 ‘황국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고 하니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고 한다. 이분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민주항쟁 때는 성당에 들어온 경찰에 ‘나를 밟고 가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 일화도 있다. 결국 우리는 소시민처럼 살고 있는 것인데, 이분은 실천적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사신 것이다. 시대적 양심을 지키고 또 역사의 훗날을 내다보면서 이분은 살다 가셨다. 조 추기경 신드롬은 어떻게 보자면 과거 어둡고 어렵던 시기에 그가 희망을 주었고 희망의 표지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다. 현재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가치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거듭 요구되는 가치라는 점을 집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추기경 신드롬은 불안한 사회의 심리표현이나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상당히 근거 있는 행동인 것이다. 그것은 추기경이 추구했던 가치에 대한 인정이라 볼 수 있다. 3.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 사회 그렇다면 추기경이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이어가야 할 과제가 우리사회에 남겨진 셈이다.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라면. 변 사제의 신분으로 추기경님을 회상하고 얘기하다 보면 그게 추기경님 이야기인지 예수님 말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정말 그분은 충실히 예수의 길을 따라가셨다. 그분은 늘 신앙을 가지고 고민을 하며 사셨다. 사람들은 책임과 지위가 지워지면 유혹에 빠지지만 추기경님은 늘 욕심 없이 살고자 하셨다. 나를 비롯한 성직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라면 끊임없이 그분을 닮도록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해 그분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따라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김 온 나라가 국장 수준으로 추기경께 존경을 바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앞으로 1주일쯤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분이 삶을 통해 가르치려던 것을 이어갈 작지만 튼튼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장으로서 명성이 알려져 있고 지위가 있었지만 이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됨의 실천을 보여주셨다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구체적 장치를 각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 그가 생전 갖고 보여주었던 가치를 먼저 확인하고 어찌 따라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그가 가진 가치 중에는 화해의 정신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신앙인이었기에 종교간 화해에 특히 관심이 깊었다. 늘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사랑이 없는 정의는 폭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의를 강조하면서도 늘 사랑과 함께해야 한다는 입장은 바로 종교 신앙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런 정신이 기초가 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전한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사회 사회에는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양극화, 경제위기, 이념대치 등 난제들을 지금의 추기경 신드롬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변 경제위기며 양극화, 남북은 물론 보수·진보간 이념 투쟁으로 사회는 병들고 있다. 사회가 점점 천박해져 가고 무한경쟁 논리에 빠져 각박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의 가치에 경도됐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추기경님을 바라본 사람들은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무작정 경쟁하고 남을 짓밟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가치, 이것이 원래 종교는 물론 정치,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추기경 추도 물결은 그런 새로운 인식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도층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추기경 개인에 대한 얘기는 더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분 자체가 당신 이름으로 무엇을 하자 한 게 아니었고 그저 보편적 가치를 따랐던 사람이다. 그가 추구했던 그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우리사회가 할 일에 대해선 사실 모든 이들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상식’일 것이다. 상식을 모두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추기경은 그 상식을 삶 속에서 실천하신 분이다. 우리는 이분의 상식을 응원하고 그걸 배워야 할 것이다. 정치 문제나 분단의 문제나 마찬가지다. 상식으로 돌아가서 상식의 차원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조 일반적으로 어떤 큰 업적을 남긴 분이 돌아가시면 기념사업을 하거나 집단 운동의 모델로 삼곤 한다. 물론 그런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안에서 그분이 추구한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이어갈지 찾아내고 결단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기초가 돼야 기념사업이든 운동모델이든 가능할 것이다. 김 추기경은 IMF때 교회 중심의 금모으기 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주변에 실천 가능성을 문제삼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분은 끊임없이 노력했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그 운동을 퍼뜨렸다. 그런 식의 그의 업적과 노력이 재음미되고 평가될 때 우리사회가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정호승 시인이 어디선가 ‘추기경님은 갔지만 우리는 추기경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말처럼 그분이 남기신 가치를 남은 우리가 잘 읽고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한다. 정리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그래도 이땅에 계십니다”

    “그래도 이땅에 계십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의 영원한 삶을 시작했다. 20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어제 내린 눈, 비는 흔적이 없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히 밝히기라도 하듯 성당을 감싼 하늘이 청정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신자와 시민이 성당 정문부터 들머리, 대성당 입구를 가득 메워 발디딜 틈이 없다. 밤사이 손이 시릴 만큼 쌀쌀했던 날씨마저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정성의 물결엔 주눅이 들었다. 입당 성가로 시작된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신자석을 향해 누운 채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김추기경의 뜻을 따라 일상 그대로 진행되는 미사의 의식들. 하느님이 고인을 평화와 빛으로 불러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말씀전례. 그리고 이어진 ‘가장 보잘 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복음은 김 추기경이 생전 즐겨 읽고 인용한 말씀. 성당 곳곳에 흐느낌의 파도가 인다. 성찬전례에 이어 주교단과 유족이 일일이 김 추기경을 돌아 올리는 영성체 예식, 그리고 고별사가 이어졌다. “세상살이가 어려운 시기에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바보 웃음의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떠난 님의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잊지 않겠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들을 고인은 듣고 있을까. 두 시간 만에 미사가 끝나고 성당 북쪽 문을 통해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운구를 시작하자 구름처럼 모여 있던 신자와 수녀들이 일제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린다. 운구차량이 서서히 성당을 벗어나자 아쉬운 듯 뒤를 따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울음이 명동을 뒤덮는다.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33번의 종소리. 추기경은 이제 더 이상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20분가량.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들기까지 길가 곳곳에서 손을 흔들거나 성호를 긋는 시민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운구차량 행렬이 매몰차게 느껴진다. 묘역에 다다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 사이, 첫 한국인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의 묘 바로 옆에 준비된 추기경의 자리가 눈에 든다. 기다리던 신도들의 찬송과 기도, 산에서 울려퍼지는 정진석 추기경의 축복에 이어 하관이 있자 울음과 기도가 바람에 섞인다. 이제 정말로 추기경을 보내야 한다. 주교단과 수도자, 유족 대표가 관 위에 흙을 덮자 참례자들이 입을 모아 위령 성가를 부른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 오라. 무거운 짐진 자 멍에 벗겨주고 영원한 생명을 네게 주리.’ 김 추기경의 영원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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