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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락 맛은 어떨까?” 검지 조리해 먹은 30대 남자

    “손가락 맛은 어떨까?” 검지 조리해 먹은 30대 남자

    황당한 호기심이 작동한 남자가 자신의 손가락을 먹어버렸다. 고기를 먹고 뼈는 기념으로 보관하기로 했다. 엽기 행각을 벌인 남자는 영국 에식스 태생인 데이비드 플레이펜즈(30). 가구 제작자인 그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불의를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실려간 남자는 수술대에 올랐지만 의사들은 심하게 다친 검지를 절단해야 했다. 남자의 엉뚱한 행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남자는 의사들에게 “절단한 손가락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는 “(퇴원하기 전까지 손가락을) 간호사들이 차에 넣는 우유를 보관하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고 말했다. 드디어 퇴원. 남자는 병원이 내준 손가락을 가져가 집에서 조리했다. 정확한 맛을 보기 위해 소금물에 손가락을 삶아 소스를 얹지 않고 그대로 먹어버렸다. 손가락 살을 모두 먹어치운 그는 남은 뼈를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 남자는 “인육의 맛이 어떤지 평소 궁금했지만 사람고기를 먹는 건 불법이 아니냐.”며 “내 살을 먹는다면 법정에 서지는 않을 것 같아 손가락을 조리해 먹었다.”고 말했다. 사진=인터넷 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을 넘나드는 원상들 중에는 정한조가 행수 노릇하고 있는 소금장수 행수 상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곽전(藿田)에서 매수한 미역이나 건어물을 지고 십이령을 넘는 건어물 상단이 있었는데, 15~16명을 헤아리는 그 상단의 행수는 울진 토박이로 조기출(趙基出)이란 사람이었다. 그 역시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정한조와 같은 접소의 공원이었다. 울진 봉화 보부상 관할 지역은 대개 삼척부 울진현의 흥부장과 매야장, 안동부 내성현(奈城縣)의 내성장과 현동장, 장동장을 손꼽았다. 조기출을 행수로 하는 건어물 상대는 이들 장시에서 고포 미역과 김 그리고 건어물로 거래를 트고 있었다. 조기출은 원래 명색이 책상물림으로 궁반 출신이었다. 그는 임오년에 있었던 군란 이후에 반명을 하는 선비들도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후부터 과감히 투필하고 늦깎이로 원상의 신표를 받았다. 수하에 거느린 행중들 역시 가근방 출신들이 많았다. 선비 출신답게 길미를 노리는 수완이 출중하고 시세를 읽는 안목도 탁월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허우대는 책상물림답게 금방 씻은 배추같이 멀쑥하게 생겼으나, 괴이하게도 목소리는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시는 듯 요란스럽고 시끄러워 듣기에 거북했다. 원래는 언사가 순박하고 조근조근했으나 장시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대접받는다는 어떤 쓸개 빠진 구실아치의 조언을 듣고 그를 좇은 까닭이었다. 글줄깨나 읽은 이력이 있어 원상들이 관아에서 쟁송이라도 생기면 앞장서길 인색하지 않았으나, 장시의 우락부락한 무뢰배들과 대치라도 할라치면 일찌감치 가위가 질려 대차게 헤집고 나가는 담대함이 모자랐다. 아직 큰 풍상을 겪지 못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술도 배움술이라 많이 먹어야 두 잔이었다. 그도 임방에선 공원의 직책을 얻어 행세하지만 곧잘 도감인 정한조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성품도 무던해서 행중 식구들로부터 걸핏하면 양반 행티 너무 마시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좀먹은 탕건에 책상다리하고 뼈빠지게 글을 읽어도 오직 허황될 뿐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궁반 시절과 견주어 보면, 만리 행역 눈보라에 부대껴 육신은 더없이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해서 일찌감치 신표를 얻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임오년 난리 이듬해인 계미년(1883년)부터 조정에서는 경상, 전라, 강원, 함경도 연안의 조업권을 일본에 허가해 버렸다. 그런 연유로 연안 어업이 위축되고부터 덩달아 건어물의 수확도 줄어들었다. 생업을 걸었던 상대들도 하나둘 내륙의 상대로 이탈하고 말았다. 야거리배만으로는 종선까지 몰고 다니는 일본 선단의 위세당당한 조업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해촌의 어부들은 끽해야 팔을 뻗으면 손이 육지에 닿을 것 같은 연안을 맴돌면서 생선 몇 뭇* 낚아 말리거나, 곽전에서 수심곽*과 오들곽*을 걷어 내는 일에 생계를 의존했다. 고포리 해안선을 따라 10여 리에 형성된 바위 밭의 돌곽 미역은 얕은 수심에서 햇볕을 보고 자라 검푸른 색을 띠고 잡벌레가 없을뿐더러 국을 끓이면 그 향기가 온 방안에 퍼졌다. 동짓달에 시작해서 이듬해 4월 사이에 채취한 미역은 크기도 일반 미역이 따르지 못해 고려시대부터 진상품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정어리나 청어, 오징어, 임연수어 같은 어종들이 잡혀 그나마 내륙으로 가져가면 길미가 쏠쏠하였다. 꼭두새벽에 말래 도방에서 발행한 소금 행상들이 샛재에 당도한 것은 산기슭에 서 있는 마른 자작나무 가지들이 우수수 설레는 그날 해거름 무렵이었다. 말래부터 바릿재를 넘어 샛재까지 노정에는 벼룻길과 잔도와 치받이길이 계속되었다. 때문에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욕심껏 걸어도 노정 줄이기가 수월치 않았다. 당도하고 보니 미역 짐과 건어물 짐을 진 조기출 행중들이 먼저 당도해서 맞은편 숫막의 봉노를 지키고 있었다. 숫막이 세 군데나 있어 20여 명의 행중이 한꺼번에 들이닥쳐도 봉노가 비좁은 경우는 없었다. 비좁다 하더라도 서로 빗장거리하듯 어슥버슥 누우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서로 막역한 사이인 두 떨거지들이 왁자하게 떠들어 대는 와중에, 정주간에서 뒤트레방석을 깔고 앉아 군불을 지피던 월천댁이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 상단 행중이 당도한 것을 얼른 알아채고 봉당 쪽마루에 널린 도깨그릇들을 서둘러 치우고 나서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뭇: 열 마리가 한 뭇. *수심곽: 잠녀들이 깊은 물에 들어가서 채취한 미역. *오들곽: 얕은 물에서 낫대로 건진 미역.
  • [씨줄날줄] 아소의 웃음/박정현 논설위원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고대 그리스의 웃음의 어원은 ‘헬레’(hele)였고, 그 뜻은 건강(health)이었던 것을 보면 고대인들도 웃음의 효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혈액순환도 좋아지고 뼈도 튼튼해진다고 한다. 웃음이 갖는 의학적 효과를 오랫동안 연구한 미국 리버트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에게는 암의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세포의 양이 증가했다. 면역력 증가는 물론이고 감기에도 쉽게 걸리지 않는다. 웃으면 얼굴 근육의 14개가 펴지고 찡그리면 72개의 근육이 수축된다. 웃음은 건강뿐 아니라 행복도 가져다 준다. 미국 한 대학의 조사에서 50명은 시종 웃는 표정을 짓도록 했고, 50명은 험상궂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물건을 판매하도록 했더니 ‘웃음팀’은 목표량의 3~10배까지 팔았다. 이에 비해 인상을 쓴 팀은 하나도 팔지 못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를 그대로 실증해 주는 조사결과다. 웃을 때는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의 양이 급증한다. 엔도르핀은 인간의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는 점에서 모르핀과 같지만 모르핀보다 300배 강력하면서도 중독성이 없다. 엔도르핀의 최대 장점은 공짜라는 데 있다.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분비를 위해 하루에 한번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웃음에 인색하다. 어린이는 하루에 평균 400번 웃지만 어른들은 6번에 그친다. 웃음에도 많은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포복절도(抱腹絶倒) 같은 호탕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미소(微笑), 웃음을 머금는 함소(含笑) 등은 조용한 웃음에 속한다. 비아냥거리는 조소(嘲笑)와 코웃음인 비소(鼻笑), 바보같이 웃는 치소(痴笑)는 호르몬과는 무관하다.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의 웃는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것도 모자라 두 다리를 팔짝 들어올린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엔저정책을 위주로 한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견이 나오지 않아 무제한 엔저정책이 면죄부를 받은 게 감격스러웠을 법하다. 일본은 2015년까지 무제한 엔저 공습을 펼 수 있게 됐고, 달러당 엔화는 107엔까지 오를 기세다. 그럼에도 “엔저정책이 주변국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과 반발을 의식했더라면 대놓고 웃었을까. 그의 웃음은 아무래도 호르몬 분비와는 무관해 보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성균관 스캔들/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성균관 스캔들/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한국 유림의 수장’인 최근덕 성균관장이 결국 구속 수감됐다. 오랫동안 종교를 담당해 왔던 기자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른바 ‘7대 종단’의 현직 수장이 구속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국고보조금 유용 지시와 공금 유용 혐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10년 화제의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타이틀을 놓고 당시 최 관장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니 실소마저 나온다. ‘우리 전통사회 유일한 국립대학이며 국가를 경영한 인재를 양성한 성균관에 왜 스캔들이란 이름을 붙이느냐’고 항의했던 최 관장이다. 최 관장의 구속 사태를 살펴보면 일단 내부 갈등의 소산으로 보인다. 최 관장은 잘 알려졌듯이 최장수 성균관장이다. 지난 1994∼98년 관장직을 맡은 데 이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관장직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잇따른 연임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인사들이 문제 제기를 해왔던 터다. 실제로 지난해 부관장이 자금 유용 사실을 들어 최 관장을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혐의는 법정에서 가리겠지만 최 관장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 관장의 구속으로 사회 일반이 종교계를 보는 시선은 한층 더 삐딱해질 전망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이 괜한 게 아닐 듯싶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비아냥조의 쑤군거림 말이다.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내분과 분열만 해도 대표회장 선거 과정에서 이어졌던 금권타락 선거가 원인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백양사 승려 도박’사태 이후 이어졌던 불교계의 은처승이며 룸살롱 출입 승려들에 대한 의혹 제기가 여전히 무성하다. 세상에 흠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만 해도 독재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도마에 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태도를 보여 배신자라는 눈총을 받았고, 서울대교구장 은퇴 후 구설수에 올랐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천명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예외는 아니다. 1970∼80년대 군사정권이 정권 반대자들을 탄압해 3만여명이 실종·살해된 이른바 ‘더러운 전쟁’에서 당시 아르헨티나 예수회 총장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군에 끌려가 고문당한 사제들을 방조해 인권단체들로부터 고발당했다. 지금 전국 선방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기치를 걸고 뼈를 깎는 수행에 매진하는 부처님 제자들이 넘쳐난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나를 따르라’고 외쳤던 예수님의 뜻을 따라 청빈한 사목과 나눔의 봉사에 목숨을 거는 목회자와 사제들이 부지기수다. ‘종교는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믿음 아래 ‘빛과 소금’이 되려는 일반의 신도도 태반이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떳떳해야 한다. ‘조고각하’(照顧脚下·머리 숙여 자신의 발밑을 살핀다)라는 좋은 경계도 있지 않은가. 이제 ‘성균관 스캔들’같은 참사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kimus@seoul.co.kr
  • “中 노동교화소, 사지 뜯기는 고문”

    악명 높은 중국 노동교화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문과 무자비한 구타 등 인권 침해 참상이 폭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마산자(馬三家) 여성노동교화소 구금자들이 지난 2월 출소한 한 여성을 통해 교화소 내부의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며 노동교화 제도의 폐지를 촉구했다고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인터넷포털 인민망 등이 9일 보도했다. 랴오닝성 당국이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사는 이날 오후 모두 삭제됐다. 이들이 폭로한 내용은 끔찍했다. 일상적으로 폭행이 자행되고 있으며 전기고문과 사지를 잡아당기는 고문 등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 한 여성 출소자가 이 같은 참상을 담은 편지를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숨겨 빼낸 뒤 다른 구금 여성의 남편에게 전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외부에 공개됐다. 편지에는 “교화소 측이 정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자 며칠간 폭행을 가해 얼굴과 머리가 온통 검게 멍들었다. 수갑으로 양 손목이 침대 난간에 묶인 채 몸이 눌리는 고문을 6시간가량 당해 팔이 빠지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두 사람이 사타구니가 쓰리도록 열불 나게 걸어 당도한 곳은 샛재 턱밑인 비석거리였다. 이름하여 선정비나 공덕비란 것들은 길손들의 내왕이 번다한 길목에 즐비하게 세워두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번화한 곳을 가리켜 비석거리로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 곳에 숫막이 들어서고 간혹 들병이들도 술 단지를 끌어안고 길손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춘궁기를 앞두고 있는 시절이어서 내왕도 뜸하고, 숫막 경영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석거리에는 숫막 세 집이 나란하게 문을 열고 있었고,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돌을 쌓아 바람막이를 한 마방도 갖추고 있었다. 마방이 딸린 숫막에는 어림잡아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나이가 이팔인 구월이라는 여식과 사팔뜨기에 밤이나 낮이나 눈에 눈곱을 달고 사는 늙은 중노미 한 사람을 데리고 숫막질을 하고 있었는데, 택호가 난데없는 월천댁이었다. 그것은 6, 7년 전에 역병으로 열명길에 오른 남편이 이곳에서 한식경 거리에 있는 말내(두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사람을 업어 내를 건네주는 월천꾼이자 길라잡이로 연명했기에 붙여진 택호였다. 월천댁은 여식 하나를 남기고 졸지에 명줄을 놓아버린 아비를 이곳 비석거리 언덕에 묻고 시묘살이를 하더니, 아예 이곳에 숫막을 열어 자리잡고 말았다. 죽은 남편의 무덤을 떠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 한미한 집 자손이지만 심덕 한 가지는 열녀의 반열에 올려둘 만하였다. 궐녀는 샛재를 오가는 길손들 중에 반명하는 위인이든 상것들이든 층하를 두지 않고 상종하였다. 선비라고 호들갑스럽게 아양 떨며 납죽거리지 않았고, 상것이라고 체면을 깎고 홀대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간혹 도포 입고 행세한다는 표객이 궐녀의 숫막에 식주인을 정하고 객고나 풀자 하고 지분거리기도 하였다. “여보게, 술어미. 그냥 두면 곰팡이만 슬고 젓국 냄새만 등천을 한다네. 더러는 뒷물할 일도 생겨야 쓸모가 있는 게 바로 임자 불두덩 아래 붙어 있는 가죽방아가 아닌가. 어떤가? 내 말의 깊은 이치를 알아듣겠지? 임자가 살보시만 질탕하게 해준다면 먼 길 행보, 만리 행역이 싹 가시지 않겠는가. 해우채는 섭섭하지 않게 헤아려줌세.” “길거리에 나와 앉은 본데없는 계집이라고 깔보고, 실없는 언사가 낭자하시구려. 공규를 지키는 하찮은 계집을 상종하여 양반 행티 너무 마시오. 댁이 남행* 부스러기로 벼슬길 맛을 보았는지… 작둣간에서 풀무질이나 하다가 공명첩으로 양반의 직첩을 얻었는지 어느 개 아들놈이 알겠소. 말본새하며 행티 하는 거조가 댁이 겉보기와는 달리 가문 있는 집 자손이 아닌 것은 분명하오. 육허기가 목젖까지 차올랐거든 나보고 지분거리지 말고 봉놋방 외짝문 닫아걸고 혼자 실컷 용두질이나 해서 육허기를 채우시지요. 그러나 해보았자 허망하긴 마찬가질 것이오.” “술어미… 내 잠깐 실언을 했기로서니 면박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집구석이 망하려면 제석 항아리에 말 좆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간구하게 살다보니 댁과 같이 비위짱 사나운 꼴을 보아도 주리 참듯 참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가련하네요.” 그런 꼴같잖은 위인에겐 가차없이 면박을 주지만, 평소에는 범절이 더없이 무던한 아낙네여서 병자를 샛재까지 한달음으로 업고 온 것이었다. 병자를 좁은 툇마루에 내려놓자 파랗게 질린 월천댁은 불당그래를 손에 든 채로 부엌의 널쪽문을 밀치고 엎어질 듯 내달았다. 봉당 쪽마루에 사지를 늘어뜨리고 누운 병자를 이리저리 살피던 월천댁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장독을 입었는지 오장육부를 다쳤는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된장밖에 약이 없네요.” 정주간으로 달려가더니 된장을 한 바가지나 떠왔다. 우선 병자를 바로 눕힌 다음 서둘러 된장을 발랐다. 정한조가 말했다. “어성초나 소리쟁이 뿌리 말려둔 것은 없소? 어혈을 풀어주는 데 그만한 갈약*이 없소.” “쑥이나 명아주 말린 것은 있습니다.” “지네 말린 것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게 하면 그것도 효험이 좋소. 타박상에는 광대나물이 제격이오.” “지네나 광대나물 말린 것은 말내 도방에 당도하면 돌팔이를 불러 구처하시고 우선 된장이나 바릅시다. 된장도 만병통치라 하지 않습니까.” 부러진 다리와 상처에는 쑥을 두드려 발라준 다음, 소나무 껍질을 벗겨 지지대로 싸매주고, 경황중에 끓인 미음을 떠먹였다. 그러나 병자는 미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병증이 뼈에 사무친 것이었다. 발을 싼 감발을 벗겨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동상까지 앓았던 듯 두 발등이 죽장같이 부어올라 있었다. 구완 않고 오래 방치하면 화농되어 썩어들어갈 것이 뻔했다. “어허 이런 야단이 없군.” “한군데도 성한 구석이 없네요. 말린 쑥은 있으니, 싸매주어야 하겠소.” *남행: 음직을 낮추어 부르는 말 *갈약: 상비약
  • [Weekly Health Issue] ‘인공치아 심기’의 모든 것

    [Weekly Health Issue] ‘인공치아 심기’의 모든 것

    ‘건강한 치아’가 오복으로 꼽히던 시절에는 한번 이를 잃으면 대책이 없었다. 이는 서로 지탱하는 구조여서 하나가 빠지면 옆의 이가 잇따라 자빠질 수밖에 없다. 이가 빠지면서 입술과 볼살이 주저앉아 쪼글쪼글해진 얼굴은 한창 삶을 향유해야 할 사람들을 늙은이로 만들기 일쑤였고, 그런 와중에 나온 틀니는 ‘복 받은 사람’의 상징이었다. 틀니에서 브리지로 이어지는 치아 대체술은 아예 턱뼈에 인공 치아를 심는 임플란트로까지 발전해 오복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임플란트는 치아 대체술의 혁명이라고 불리지만 이 역시 모든 치아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의 키는 아니어서 여기에도 한계와 제약이 있다. 이런 임플란트를 두고 연세대 치과병원 병원장인 치주과 조규성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임플란트란 어떤 치료인가. -임플란트란 잃어버린 치아를 대체해 해당 부위에 인공 치아를 심는 치료를 말한다. 이런 임플란트 치료는 외형이 자연 치아와 유사할 뿐 아니라 턱뼈에 강하게 고정함으로써 저작기능을 회복해 자연 치아와 다름없이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임플란트는 어떻게 구분하며 특장은 무엇인가. -임플란트는 다양한 기준으로 구분한다. 보철물 접합 형태에 따라 ‘인터널’과 ‘익스터널’로, 디자인 유형에 따라 티슈레벨과 본 레벨 또는 원통형과 나사형으로도 구분한다. 원통형은 예전에 많이 사용됐으나 실패 사례가 많아 이후 나사형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표면 처리에 따라서도 다양한 구분이 가능한데, 최근에는 친수성 표면 처리 기술을 이용해 골융합도를 높임으로써 치료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임플란트가 개발돼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 수술을 한번에 끝내거나 두번으로 나눠 하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임플란트는 환자의 임상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임플란트는 어떤 사람에게 적용하는 치료법인가. -임플란트 치료는 사고나 치주질환 등으로 잃어버린 치아를 대체하는 치료로, 치골의 성장이 완료된 성인에게는 모두 적용할 수 있다. 임플란트 이전에는 치아를 잃으면 틀니나 브리지 등으로 대체했으나 틀니의 경우 사용이 불편한 데다 통증이 따르고, 브리지 역시 멀쩡한 주변 치아를 손상시키는 문제가 있어 갈수록 임플란트 치료를 선호하는 추세다. →반대로 임플란트 적용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텐데…. -골(骨)융합과 혈액의 원활한 공급이 임플란트의 중요한 수술 조건이다. 따라서 골다공증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는 반드시 치과 의사와 상의해 임플란트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 노약자의 경우 임플란트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 회복에 필요한 영양 공급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뼈와 잘 융합되는 임플란트를 선택해 치료 기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인은 잇몸뼈가 부실해 임플란트 수술 시에 골증대술 등 추가 시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추가 시술 없이 좁은 골폭이라도 바로 심을 수 있도록 강도가 높고 직경이 작은 임플란트가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수술은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가. -구강검진을 통해 환자의 임상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통해 결손 부위를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 계획을 수립한 후 턱뼈에 임플란트 픽스처라는 고정체를 심는다. 이어 고정된 임플란트 픽스처 위에 상부 보철물을 얹는 시술이 이어진다. 이렇게 보철물 작업까지 마치면 임플란트 치료가 끝난다. 이후에는 관리 차원에서 정기 검진을 하면 된다. →임플란트 수술에 앞서 주로 어떤 점을 점검·검사하는가. -사전 검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임상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환자가 골다공증 약이나 당뇨 치료제를 복용한다면 사전 검진을 통해 이에 걸맞은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이미 턱뼈가 많이 흡수돼 약한 사람이나 흡연자도 적절한 치료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수술 경과와 예상 가능한 부작용을 설명해 달라. -임플란트가 잇몸뼈에 심어지면 기존의 뼈가 흡수되고 새로운 뼈가 생성돼 골융합이 진행된다. 이때 기존의 뼈가 흡수되고 새로운 뼈가 생성되기 전 단계가 임플란트 초기 실패가 자주 발생하는 위험한 때이다. 이때 가능한 한 골융합이 빨리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임플란트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에는 이처럼 위험한 초기 임플란트 실패 가능성을 낮추고 치료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친수성 표면을 가진 임플란트 제품이 출시돼 호응을 얻고 있는데, 임상적으로도 실패 위험도를 크게 낮추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알다시피 임플란트 치료는 사후 관리가 매우 중요한 수술이다. 따라서 환자에 대한 철저한 구강 위생교육 및 정기 검진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런 사후 관리가 소홀하면 치주염과 유사한 임플란트 주위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다. 이런 상황이 우려된다면 임플란트 주위염 발생률이 낮은 제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 또 선천적으로 잇몸이 안 좋은 환자라면 티슈 레벨 임플란트를 선택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이득이 많다. →임플란트 제품은 의사가 정하는데, 환자가 선택할 수는 없나. -성공적인 임플란트 치료를 위해서는 치과 의사의 수술 능력과 환자의 상태에 적합한 임플란트를 선택하는 일, 그리고 환자의 철저한 구강 위생 관리가 필요하다. 이 조건 중에 한 가지라도 부족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성공적인 임플란트 치료를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임플란트를 심을 것인지는 환자의 임상적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치과 의사가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임플란트 비용에 거품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임플란트 수술은 종류와 재료, 다양한 보철의 옵션, 골이식 여부 등에 따라 상당한 비용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임플란트 수술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환자의 임상적 상황과 경제적 여건인데, 최근에는 다양한 임플란트 제품과 보철이 개발돼 개별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등짐을 정리한 다음 행수 역시 곰방대를 꺼내 한 대 달아 물었다. 그는 지금 막 동이 트려는 동쪽 하늘로 시선을 던지면서 견마 잡았던 만기에게 일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앞장설 테니 자네는 뒤따르게….” “절음난 나귀 때문입니까?” “그렇다네.” 절뚝거리는 나귀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견마 잡는 대신 비교적 가벼운 등짐을 진 것이 거북했었던 만기가 공치사를 하였다. “빛내골 마방에 있는 대장간에 맡기고 올걸 그랬습니다.” “그 마방의 대장장이 심보가 실로 고얀 놈이 아니던가. 여간한 말에는 대꾸조차 않는 그 뻣뻣한 행동거지에 비위가 뒤틀려서 무리를 한 것이야…시절이 수상해서 빈부귀천이 어느덧 물레방아가 된 세상이라지만, 그놈 역시 말구종 주제에 구실아치들처럼 평소에 생트집은 왜 그렇게 많던가. 말도 못 하고 눈망울만 굴리는 짐승을 다루는데도 걸핏하면 매질이고 욕지거리를 퍼붓는 게 아닌가. 그런 몹쓸 위인에게 식솔이나 다름없는 짐승을 맡겨 두고 차마 돌아설 수가 없었네. 그게 이런 무리를 한 단초가 되었네.” 그렇게 말하자, 벼랑길에 쪼그리고 앉아 쇄골이 깊숙하게 파이도록 담배 연기를 들이켜고 있던 동무 하나가 벌떡 일어서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놈 풀무꾼은 어떻구요. 아직 황구의 나이인데도 버릇없이 가탈을 부리고 방자하게 행세하는 꼴을 볼 때마다 배알이 뒤틀립디다…엽전 한두 닢 길미를 바라고 매기 잔등같이 미끄러운 십이령길을 사흘이 멀다 하고 넘나드는 우리들에겐 숫막거리에서 마시는 한 주발 막걸리가 불편한 심기를 달래줄 뿐이지요.” “풀무꾼을 험담하다가 난데없는 막걸리 타령인가. 벌써 속이 출출한 게군. 목이 콩가루 삼킨 듯 칼칼해도 길참을 먹으려면 샛재 주막에 당도해야 하네….” “목젖이 타들어가는 것은 임자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지?” “물귀신처럼 나를 왜 끌고 드나?” “하긴 빛내골 발행할 적에 나귀만 해장술을 마시지 않았나.” “나귀들이 막걸리를 좋아하는 대신 물 마시기는 좋아하지 않으니, 우리와 동행하기는 소나 말보다 낫지. 게다가 소나 말보다 귀와 좆이 홍두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 짐을 져도 참고 견디는 힘이 사람을 앞지를 정도이니 우리네 행상들과 동행하기는 딱일세.” “행상들뿐만 아니고 행세한다는 선다님들도 나귀를 좋아하지 않나. 좆이 커서 좋아할까.” “잘도 주워섬기는군. 저것들이 한결같이 고집 센 것은 잊어버렸나. 동고동락하려면, 다음부턴 막걸리부터 나눠 마셔야 하네.” 분위기가 거북해질 것을 걱정했던지 성품이 무던한 만기가 얼른 끼어들어 말머리를 돌렸다. “하긴 성냥일 하는 위인들이 오죽 못났으면, 짐승을 상종하여 거드름을 피울까요. 부담을 내려주었으니 샛재까지는 그럭저럭 대겠지요.” “자, 얼추 땀들 들였거든 또 발행일세. 이제 몇 행보 남지 않았네.” 그토록 큰 등짐을 진 행수 정한조가 앞장을 섰다. 샛재까지는 내리받이길보다 치받이길이 많은 데다가 단출하지 못한 등짐 때문에 길 줄이기가 손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 동녘이 훤하게 밝아오고, 콧등을 스치는 바람은 차갑지만 한결 상쾌했다. 늘어지게 쉬었으니 발걸음도 가벼워진 터라, 일행들은 가벼운 농까지 주고받으며 또다시 구억터의 산협길로 접어들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사계절을 언제나 똑같은 얼굴들과 어울려 똑같은 길을 걷고 있었으나, 나누는 농담과 대화는 언제나 새로웠다. 저잣거리에 당도하면 그곳에서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들과 마주치기 일쑤였고, 그곳에서 만나는 닳고 닳은 거간들이며 말감고며 장주릅들과 물화를 두고 입씨름하고 흥정하면서 듣고 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다시 모여서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따끈따끈한 것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는 사이, 네 필의 나귀를 혼자서 몰고 있는 만기는 자꾸만 일행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절음난 나귀에게 회초리를 내리지 말라는 행수의 분부가 있었을 때, 십이령길에서 태어나 나이 먹어가는 눈치 빠른 나귀들이 먼저 알아채고, 그때부터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선머리에서 걷는 행수 일행과 당나귀를 뒤따르는 만기는 먼발치로 멀어지게 되었다. 선머리의 행중들이 산코숭이를 돌아설 때는 뒤따르는 나귀들의 요령 소리가 귀를 모아야 할 정도로 먼 뒤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선머리의 일행은 자주 쉬면서 만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쪽지게를 내렸다가 다시 발행하는 사이에 겪어야 하는 구차스러움이 뼈에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워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뒤처진 만기를 배려하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옴부즈맨 칼럼] 기쁜 소식은 크게 크게/안혜련 주부

    [옴부즈맨 칼럼] 기쁜 소식은 크게 크게/안혜련 주부

    요사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많다. 이 사람은 이래서 맘에 안 들고, 저 사람은 저래서 맘에 안 차고, 그 사람은 그래서 그저 그렇다. 분명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고, 공자님이 예의를 가르친 아름다운 이 땅인데, 뉴스를 보면 언제부터인가 사기꾼과 폭력배, 무례와 술수로 가득 찬 아수라장 같은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미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더럽고 끔찍한 벌레들이 수시로 내 눈앞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니, 이 불편하고 거북한 마음을 어디서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리와 시도 끝에 그래도 선과 진실을 찾는 사람들, 삶을 성실하고 건강하게 사는 이들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 잠시라도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갈증 날 때 마시는 차가운 물 한 잔에서 느끼는 청량감이랄까.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오승은 박사에 관한 기사가 그런 소식에 속했다. “나를 교황으로 뽑은 여러분을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길…”이라는 유머로 목자 직무를 시작한 새 교황에 관한 소식은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난이 부끄러움을 넘어 마치 사회악이라도 되는 듯 생각되는 오늘날, 그는 2000년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청빈과 겸손의 상징인 프란치스코를 새 이름으로 택함으로써(3월 18일 자 22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꿈꾸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 화려한 관저가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사제들과 함께 생활하기로 함으로써(3월 28일 자 16면) 이전부터 살아온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이어갈 뜻을 밝히고 있다. 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의대에서 생물학 연구를 하는 오승은 박사에 관한 기사(3월 27일 자 27면)도 신선했다. 1998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초 400점 만점을 받았던 소녀는 15년의 시간이 흐른 후 ‘뼈 성장의 비밀’에 관한 의미 있는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했다. 오 박사의 논문 ‘연골 세포의 분열, 성장과 뼈 길이의 관계’는 성장판 관련 질환 치료 등에 핵심 원리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되며, 특히 오 박사 전공인 물리학을 이용한 시스템생물학으로 접근해 더욱 주목된다고 한다. 시원한 바람과도 같은 기분 좋은 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선한 바람을 가슴 깊이 호흡하지는 못했다. 알고 싶고 궁금한 마음을 만족시키기에는 기사의 내용과 분량 모두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받는 연예인 소개에는 신문 전면을 할애하기도 하면서,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걸고 정진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관심도 지면도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언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노력과 선택을 했으며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와 같은 내면의 삶을 독자는 더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언론의 특성인 비판과 감시 역할을 감안하더라도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은 더 크게, 더 자세히 보도해 주어 힘겹고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라도 오아시스를 찾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서울신문과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도 이와 같은 드러나지 않은 독자의 욕구와 갈증을 풀어주는 심층적 보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들어서 기분 좋은 이야기,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더 자주 보기를 기대한다.
  • 전설의 바다괴물?…어부가 인양한 거대뼈

    중국에서 ‘전설의 바다짐승’을 닮은 거대한 뼈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함께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중국 뉴스 ‘레코드차이나’는 2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청양구에 사는 어부가 최근 새우잡이 도중 인양한 거대한 뼈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현지 매체 양저우왕을 인용해 보도했다. 화제가 된 뼈의 길이는 약 3.5m, 153개 정도의 관절이 길쭉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 뼈를 발견한 어부의 말을 따르면 보통 물고기의 뼈는 넓적한 가시가 있지만 발견된 뼈는 (포유류에서 보이는) 원기둥 형태이며 가시도 없다. 이 어부는 경력 35년의 베테랑이지만 “지금까지 이같이 생긴 뼈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변 마을 베테랑 어부 역시 “이게 무슨 뼈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예전부터 바다짐승에 관한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일부 주민은 이 뼈가 “전설 속 바다짐승의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길쭉한 몸통에 큰 머리가 특징인 이 뼈를 보고 “용의 뼈일지도 모른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전해졌다. 한편 현지 과학자들도 현재 이 뼈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어 분석을 통해 알아볼 예정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란 핵 저지, 협상 우선” vs “말로 할 시간 지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란 핵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이견을 드러내는 등 아슬아슬한 장면도 펼쳐졌다. 사흘 일정으로 중동 순방길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해 네타냐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무기”라면서 “이란 핵 개발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것은 미국의 신성한 의무이고 우리의 동맹은 영원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올해 2억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인의 권리를 지지해 준 데 감사한다”면서 “미국이 이란 핵 개발을 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미묘한 입장 차이도 표출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과 관련해 “만일 외교가 실패하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며 아직 그럴 시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까지의 외교와 제재는 이란 핵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이견을 드러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려면 적어도 1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네타냐후 총리는 “뭐라고 말해도 중요한 것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점”이라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 1967년 이전의 국경선으로 이스라엘이 철수하도록 요구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두 사람은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 왔다. 이를 의식한 듯 두 사람은 이날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려 애썼지만 주요 현안에 대한 시각차는 감추지 못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이틀째인 21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고 이스라엘 경찰이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로켓 두 발이 발사돼 이스라엘 남부에 떨어졌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중심지인 서안지구의 라말라를 방문해 팔레스타인 독자 국가 건립을 지지했다. 그는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마무드 아바스 수반과 정상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만의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며 “미국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고 독립적인 주권 국가를 수립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깔깔깔]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 ▶친구와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 드라마:어딜 가도 주차할 곳이 꼭 있다. 현실:주차할 곳을 찾아다니느라 시내를 세 바퀴 이상 돈다. 친구가 짜증을 내며 얼굴을 붉힌다. ▶삼각관계 드라마:자연스럽게 경쟁하고 그럴듯하게 괴로워한다. 현실:그나마 있던 애인한테 귀싸대기 맞고 울며 지지리 궁상을 떤다. ●난센스 퀴즈 ▶싸움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과일은? 사과. ▶방귀를 잘 뀌는 나무는? 뽕나무. ▶개들이 좋아하는 귀는? 뼈다귀.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3) 통영 도다리쑥국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3) 통영 도다리쑥국

    파닥파닥. 경남 통영 앞바다에 내려앉은 금속성 볕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 근육을 푼 흙, 툭툭 터져 오르는 기운들. 남녘은 완연한 봄이다. 이즈막, 납작모자에 옷깃을 닭 벼슬처럼 세우고 통영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잠시 묻어놓았던 내면의 풍류와 객기를 끌어내는 것이며 가슴속에 낭만을 채우는 일이다. “도다리 쑥국 한 그릇 먹어야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봄은 통영 도다리쑥국에서부터 시작됐다. 된장 살큼 푼 말간 국물에 통영의 그 푸른 기운처럼 동동 뜬 쑥과 도다리의 흰 살점. 국에서 파란 바다냄새가 난다고 해두자. 딱 두 달이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애타는 봄 국. 그래서 통영의 봄은 가게마다 폼 잡고 양반글씨로 써 내려간 ‘입춘대길, 도다리쑥국’이 팔자걸음처럼 내걸리며 활기를 얻는다. 첫새벽. 시락국 집은 밤새 다찌에서 술을 마셨거나 서호시장 4시 경매를 끝낸 사람들이 아린 속을 움켜잡고 몰려드는 ‘해장 성지’다. 서성서성 포장마차에서 콩국과 빼대기로 허기를 때우는 모습도 흔히 만난다. 그 먹먹한 서민의 시간. 도다리쑥국과 멍게 비빔밥을 시켜놓고 객지의 아침을 맞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방 노란 냄비에서는 국물이 새벽잠처럼 끓고 토막 친 도다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국물 속으로 던져진다. 쑥을 넣고 한 소큼 끓여 익숙하게 퍼내는 손놀림이 재봉틀 실 땀처럼 빈틈없다. 앞자락에 김 모락모락 오르는 도다리쑥국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향긋한 해쑥 향이 멀미처럼 올라온다. 쑥을 수저로 지그시 누르고 국물부터 떠먹는다. 입 안 가득 향긋한 초록이 넘실댄다. 봄이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담박함이 온몸을 편안하게 다스려준다. 여린 쑥은 씹히는가 싶더니 목젖으로 넘어가고 수저로 편편하게 뜬 도다리 살점은 달다. 절로 시원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래서 통영 사내들은 복이 많다. 종일 술독을 끼고 살아도 속 다스려 줄 해장국이 넘쳐나니까. 두부와 무쳐낸 톳나물이며 통멸치 젓갈, 간이 센 남도 김치가 국에 밀려 그대로 남았다. 30년간 맑은 국을 끓여왔다는 사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음식을 추억하기에 바쁘다. “도다리쑥국은 말 그대로 도다리와 쑥만 들어가야 합니다. 콩나물이나 묵은지를 헹궈서 넣기도 하는데 재료의 향긋한 맛을 즐기는 것이 봄 밥상이잖아요? 쌀뜨물에 된장을 약간 풀기도 하지만 도다리가 비린 생선이 아닌데다 향긋한 쑥이 들어가니 맨 물에 끓여도 비리지 않아요. 바다와 육지의 오묘한 향이 어우러집니다.” 말마따나 통영 도다리쑥국은 바다를 건너온다. 봄이 이른 욕지도나 한산도, 소매물도 등 섬에서 해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격도 제법 나가서 한 그릇에 1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맛을 아는 토박이 미식가들은 “2월 쑥국은 이르다”고 말한다. 도다리 살이 얇기 때문이다. 먼 바다 살집 두터운 도다리로 끓여야 국물 맛이 깊은데 2월 도다리는 뼈째 썰어먹는 ‘세꼬시’용이다. 육지에서 늦은 쑥이 나오는 4월 초순 도다리가 더 뭉근한 맛이 나온다는 얘기다. “살갗이 거칠거칠한 옴도다리가 최고지요. 지금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하기 힘들어요. 바닥부터 싹 쓸어 올리는 고대구리 배로 조업할 때는 싸고 많았는데, 이 옴도다리로 끓인 쑥국의 깊은 맛은 궁중음식 부럽지 않습니다.” 4월로 가야 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멍게 때문이다. 이때가 돼야 멍게가 속이 차기 시작하니 도다리쑥국과 더불어 멍게 비빔밥을 맛봐야 통영이 시리게 다가올 테니까. 거개는 멍게 비빔밥이 생물인 줄 알지만 제법 알려진 주방에선 속과 향이 그렁그렁한 ‘그해 5월 것만’ 쓴다. 숙성해놓고 1년을 사용한다. 그러지 않으면 특유의 향이 적다. 갓 건져낸 멍게는 미끌미끌하여 밥과 겉돌아 비벼지지 않는다. 간을 하여 숙성시키면 참기름만 얹어 내도 그 향이 몇 시간 입안에 머문다. 멍게 비빔밥에 유곽을 넣는 곳도 있다. 유곽 얘기가 나오자 커피 집에서 만난 최진혁(62)씨의 눈빛이 촉촉해진다. 어머니 손맛이 떠올랐던가 보다. “유곽은 손이 많이 가서 예로부터 제법 사는 집이 아니면 해먹지 못하던 음식이에요. 개조개를 다져 된장에 물기 없게 볶아 내지만 본래는 개조개 외에도 돼지고기나 소고기, 게살을 함께 썰어 넣었어요. 여기에 방아이파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개조개 뚜껑에 담아 숯불에 구워 낸 것이 정통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해내는 집이 없어요.” 도다리쑥국 나오는 집은 어김없이 졸복국을 낸다. 졸복은 크기가 작아 독을 손질하려면 애통 터지는 생선이다. 한 입 크기다. 하지만 속 달래는 데 미나리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졸복국만한 것이 없지 싶다. 또 통영 대표음식 시락국은 장어머리를 푹 고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 건강식이다. 방아이파리나 부추를 듬뿍 얹어 먹는다. 500원에서 시작한 시장밥상이었으나 지금은 4000원이다. 밥 말아 뚝딱 비우게 되는데,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밥상이다. 서호시장의 시락국 전통은 반찬이 뷔페식이다. 찬 통에서 스스로 덜어 먹는데 가짓수가 10여개는 된다. 그 외에도 어부들의 점심이었던 충무김밥이며 우짜, 꿀빵 등 종일 입에 달고 다닐 만한 ‘한 끼형 간식’이 수두룩하다. 먹을 것 천국이다. 배를 꺼트리기 위해 산책을 나선 길은 곳곳이 ‘꽃 편지’다. 통영의 바람은 너무나 달아서, 동백꽃처럼 붉어서 사랑도 피우게 되었으니 먼저 간 풍류객들 동선을 따라 가는 것도 봄날의 애상이지 싶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을 듯’한 그녀 ‘경련’을 기다린 백석의 시가 핀 충렬사 계단이나 청마 유치환이 ‘정운’의 맘을 얻기 위해 5000여통의 시를 부쳤다는 중앙우체국에서 ‘행복’이라는 시비를 읽어보는 일은 애잔한 즐거움이다. 잠시 스쳐간 사랑의 상처로 동네사람들에게 미움을 사 끝내 명정동에 안기지 못한 박경리의 아리고 쓸쓸한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숨어있는 곳이 통영이고 보면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도 연정이 묻어난다고 우겨도 될 법하다. 해는 길어지고 도다리는 살찌고 있다. 글· 사진 손현주 음식평론가 marrian@naver.com
  • [씨줄날줄] 부대찌개/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의정부시의 부대찌개 특화거리에는 14개의 전문점이 모여 있다. 부대찌개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6·25전쟁과 미군 주둔의 산물이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생소했을 햄과 소시지 등 육가공품을 토종 입맛을 가진 사람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창조력을 발휘한 음식이다. 이런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최근 이 골목에서는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고 있는 미군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명동의 부대찌개집에는 한국 사람보다 외국 손님이 더 많을 지경이다. 의정부시청이 이곳에 ‘글로벌 문화체험 존’의 하나로 ‘부대찌개 홍보 체험관’을 만들기로 한 것도 매력 있는 문화자원으로 이 음식의 잠재력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대찌개의 시작을 전쟁 직후의 ‘꿀꿀이죽’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곤궁하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내다 버린 음식찌꺼기를 한데 모아 끓여낸 잡탕이 곧 꿀꿀이죽이다. 미군이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에서 햄이나 소시지 조각만 골라내 만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올바른 문화해석법이라고 할 수 없다. 건강음식으로 전 세계적인 칭송을 받는 비빔밥이 음식의 영양과 색조의 조화를 고민한 창조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밥상에 남은 반찬을 한데 쓸어넣고 마구 섞어 먹던 데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자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두천 미군부대 취사반의 한국인 군무원들이 통조림에 든 미국산 재료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데서 비롯됐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부대찌개를 부대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프라이팬에 소시지 등을 구워 먹는 음식을 부대고기라고 일컫기도 한다. 부대찌개는 지역마다 재료와 맛이 조금씩 다르다. 크게 의정부식과 송탄식으로 나누고, 의정부식은 다시 동두천식·의정부식·파주식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의정부를 비롯한 경기 북부의 부대찌개가 비교적 맑은 육수에 채소를 적당히 넣는 특징이 있다면, 송탄식은 뼈를 고은 듯 진한 육수를 써서 기름진 편이다. 하지만 의정부 특화거리만 해도 집집마다 재료와 맛이 모두 다르니 이런 구별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 음식전문가는 부대찌개가 탕이라는 국물요리법을 충실히 따른 우리 전통음식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햄과 소시지, 통조림콩, 치즈와 같은 서양의 가공식품을 한국의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응용한 결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다시 태어난 음식이 부대찌개이다. 맛의 수도라는 뉴욕이나 파리에 부대찌개집이 줄지어 들어서는 날을 기대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골다공증, 골절될 정도면 이미…예방법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허리가 구부러지고 팔다리 등이 아프다고 하시거나 가볍게 넘어졌을 뿐인데 뼈가 부러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이는 뼈에 구멍이 많아지고 약해지는 골다공증이라는 질병 탓이다. 골다공증이란 골량이 현저히 감소해 뼈가 체중이나 기계적인 압력에 견디는 힘이 약해지고 실내에서 가볍게 넘어지는 것 등의 미약한 충격에도 골절이 생길 수 있는 질환을 말한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 서부지부 이대일 원장의 도움말을 통해 이 같은 골다공증에 대해 알아본다. ▲골다공증, 왜 생기는가? 우리 몸의 뼈는 흡수되고 생성되는 재형성 과정을 반복한다. 골다공증은 궁극적으로 골형성과 흡수과정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것이다. 즉, 골흡수 속도가 너무 빨라지거나 생성속도가 느려져 흡수량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하면 뼈가 점점 엉성해지고 얇아져서 약해지고 부러지기 쉽게 되는 것이다. 특히, 폐경기에는 뼈의 흡수 속도가 빨라지게 되는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골흡수를 막는 중요한 작용도 갖고 있다. 이 호르몬의 감소로 골흡수가 계속 진행되므로 뼈 손실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골손실은 매년 전체 골량의 약 1% 정도이지만 폐경기 초기에는 3~5%까지 골손실이 일어날 수 있다. 폐경 후 10년이 넘으면 골흡수 속도가 다시 감소해 연령증가에 따른 완만한 골량 감소를 나타내게 된다. 결국, 평생 여성은 최대 골량의 3분의 1가량, 남성은 4분의 1가량의 골 손실이 일어난다. 골다공증은 여성, 폐경기 이후, 동양인과 백인, 칼슘섭취량이 적은 경우, 체중이 미달이거나 운동부족인 경우, 술·커피·담배를 많이 하는 경우, 만성 간 및 신장질환 등 골대사에 영향을 주는 약물을 장기간 섭취한 경우, 부모나 형제 중에 골다공증이 있는 경우 등 이러한 요인들이 함께 존재하는 사람의 경우, 고령에서 골다공증이 쉽게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골다공증의 증상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점차로 등이나 허리에 둔한 동통 및 피로감이 있을 수 있고, 뼈가 더욱 약해지면 골절이 생길 수 있다. 일단 골절이 발생하면 이때는 이미 골량이 지나치게 감소한 상태로 치료가 힘들게 된다. 주로 골절이 일어나는 부위는 척추와 고관절 그리고 손목관절이다. 골절이 생기면 골절부위에 통증이 동반되며, 척추 골절 시는 등이 굽어지고, 키가 작아질 수 있다. 심한 경우 앞쪽 맨 아래 늑골과 골반이 서로 맞닿을 정도가 되며 복강 내의 면적이 감소하여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골절이 생기면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사망하기도 한다. ▲골다공증의 예방 및 치료 성장기에 충분한 칼슘섭취와 활동량을 유지해 골량을 최대한으로 증가하도록 해야 한다. 일단 많은 골량이 형성되면 폐경 후 골량의 감소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골량이 충분해 골다공증의 정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골다공증의 위험인자가 되는 약물의 사용을 조심하고 골다공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들을 빨리 진단해 치료하도록 해야 한다. 가능한 한 과다한 알코올 섭취나 흡연을 피해야 하며 충분한 운동량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일단 폐경이 되면 위험인자가 많은 사람은 폐경 후 급속하게 일어나는 골량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성호르몬제는 반드시 의사의 지시 하에 여성호르몬제 금기증이나 부작용 유무를 관찰하면서 복용해야 한다. 골다공증의 치료는 골형성을 증가시키거나 골흡수를 감소시키는 약물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골형성을 증가시키는 약물은 불소제와 부갑상선호르몬제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사용이 어려운 상태이며 그 효과도 연구 중이다. 따라서 대부분 약물이 골흡수를 억제하는 약물이며 여성호르몬, 칼시토닌, 비스포스포네이트제재, 칼슘, 비타민D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약물의 사용으로 골량이 감소하는 속도가 현저히 억제되지만 실제로 만족할만하지는 못하다. 결국, 골절이 생길 정도로 심한 골다공증은 치료되기가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골다공증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철인 3종 출전 후 붉은색 소변, 근육손상으로 인한 급성콩팥염

    평소 자신의 건강을 믿었던 이재호(31)씨는 운동광이었다. 운동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 만능 재주꾼으로 통했다. 그런 이씨가 아마추어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 뒤 문제가 생겼다. 다음 날, 움직이기 어려울만큼 다리가 아팠고, 평소보다 소변량이 많았던 데다 붉은 색조까지 보였다. 이씨는 ‘경기에 출전하느라 무리해서 그럴 것’이라고 여겨 병원을 찾는 대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 되자 허벅지에서 장딴지에 이르는 부위에 팽창감과 함께 참기 어려운 통증이 몰려왔다. 게다가 소변색까지 더욱 붉어져 핏빛이 완연하자 이씨는 놀라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진은 서둘러 뼈주사 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양쪽 허벅지 근육에서 동위원소 흡수가 관찰되었으며, 심한 근육 손상이 확인됐다. 병명은 횡문근 융해증(가로무늬 근육이 손상되는 질병)에 의한 급성 콩팥손상이었다. 소변 상태가 심각해 지체 없이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씨는 이후 일주일간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병세가 일부 호전돼 퇴원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강덕희 교수는 “이씨처럼 평소에 건강을 자신하는 젊은 사람도 급성 콩팥손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면서 “이는 무리한 운동으로 인한 근육 손상이 급성콩팥병으로 발전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심한 근육통과 함께 소변이 붉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때 보이는 붉은 색 소변은 피가 섞인 것이 아니라 손상된 근육에서 배출된 근육색소가 피에 섞여 혈뇨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강 교수는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운동능력이나 신체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근력운동을 하거나 마라톤 같은 운동을 무리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또 운동 중에는 수시로 물을 마셔 탈수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콩팥 손상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수칙”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민주, 아직도 대선패배 원인 분석

    민주, 아직도 대선패배 원인 분석

    민주통합당이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패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취임했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된 패인 분석과 처방을 못 내놓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지도 27일로 50일이 지났지만 5·4전당대회 규칙을 놓고 친노(친노무현) 주류와 비주류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책임지는 사람도, 세력도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뒤 각종 토론회를 수십 차례 열며 ‘토론회당’이 됐다. 이날도 세 차례나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와 한국선거학회는 대선 패배 원인 토론회를 열었다. 대선평가위는 앞서 전국 12개 권역에서 대선평가간담회를 가졌다. 이낙연 의원도 이날 한국 정치에서 호남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초·재선 의원 모임 주춧돌도 민주당 대선 패배 극복 방안을 토의했다. 이날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대선평가위와 선거학회가 개최한 대선 패배 원인 분석 토론회에서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리더십 부재와 계파주의 만연을 대선 패인으로 지적하고 “유력 차기 주자의 발굴과 육성, 파격적 세대교체”를 주문했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하방의 정치, 새로운 리더십, 탈지역주의 정치로 정체성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에 나서야 하는 시점인데 뒷북을 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국민들을 향해 진정성 있는 환골탈태 모습을 보여 주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 비주류 인사는 “총선 패배 때는 평가도 내놓지 않고 얼버무렸다. 늦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평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1960∼70년대 기타 하나 들고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신중현(75). 그에겐 ‘록의 대부’며 ‘록의 비조’ ‘6현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많은 가수와 음악인들은 역사의 기억 너머로 묻혀졌던 그의 묵은 음악을 다시 꺼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현을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당대의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고 배출한 불세출의 명인이지만 정작 그의 삶은 굴곡으로 점철돼 있다. 그 질곡의 길을 걷게 한 단초는 배고픔과 외로움이라고 신중현은 말한다. 하지만 그의 삶과 분신인 음악에 담긴 메시지는 한 가지, ‘새로운 것들을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 그래서일까, 한국 가요계의 이단아이자 진보주의자였던 그는 2006년 은퇴를 앞두고 내놓은 자서전 제목도 이렇게 썼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006년 7월 신중현이 전격 은퇴 선언을 한 뒤 마지막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할 무렵,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록의 대부’라는 제목으로 신중현의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최근 경기 용인시 양지면의 거처에서 만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기억하느냐’는 첫 질문에 신중현은 “나도 의외였다”고 했다. 유난히 작은 키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이 겹쳤다. 신장이 얼마나 되느냐는 미련한 질문에 “한 번도 재 본 적이 없어 모른다”며 무심코 던진 한마디. “돌이켜 보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꼭 곡예 같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줄 위에서 움직이는 꼴이라고 할까.” 용인 거처는 은퇴와 함께 1986년부터 20여년간 음악 활동의 아지트로 썼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우드스탁’ 생활을 마감하고 2007년 새로 튼 보금자리. 거처 겸 연습실, 작은 공연장을 갖춘 공간이다. 지금도 대패며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을 다듬고 만들고 있다. 혼자 작업실을 꾸미느라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어린 시절 그 험한 고생을 했는데 이까짓 거야”라며 초년 시절로 이야기를 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주에서 이용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6·25전쟁 통에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충북 진천으로 옮겨 어렵게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 새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사별한 고아. 동생을 친척 집에 맡기고 상경해 제약회사를 하는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공장 일이 너무 힘들고 서러웠어요. 판자 쪼가리에 군용 전화선을 매어 만든 기타를 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공장 일을 해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서 혼자 연습하다가 고교 2학년 때 집을 뛰쳐나와 서울 종로 바닥을 전전했다. 당시 종로엔 ‘기타 잘 치는 신중현’이란 명망이 파다했고 미8군 무용수 눈에 띄어 오디션을 거쳐 미8군 플로어쇼에 데뷔한 게 음악 인생의 시작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보수도 당시로선 큰돈이었고 미군부대 공연 때마다 최상급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재키’ ‘히키’ ‘스코시’라는 별명이 미군들 사이에 퍼졌고 공연이 끝나면 악수를 청하는 미군들이 줄을 섰다. 미군 정보부 요원들이 출입하는 용산역 건너편 ‘시빌리언 클럽’에서 1960년 가졌던 첫 기타 독주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주가 끝난 뒤 떨려서 인사도 못 하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보니 미군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미8군 스타 생활을 5년 정도 했을까. 베트남전이 터지고 주한 미군이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군부대 쇼도 시들해졌다. 미8군 생활을 접은 건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을 하면서 늘 외국곡을 그대로 따라 연주하고 부르는 데 회의가 들곤 했지요.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 가던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남진, 나훈아로 대변되는 트로트의 세상. ‘한국 가요계를 바꿔보자’며 국내 가요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중들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가 천착했던 로큰롤이며 사이키델릭 록은 낯설기만 한 것이었다. “우리 가요계의 수준이 서방세계의 음악과 너무 차이 났어요. 당시 미군부대 공연 때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는 미군들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훌륭한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서도 문화적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걸까.’ 그 창피함과 문제의식은 이후 한국적 특성을 살린 록으로 뻗친다. 한국 최초의 록 밴드 ‘애드4’(Add4)를 시작으로 그룹 ‘조커스’ ‘던키스’ ‘퀘스천스’ ‘더 맨’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을 구가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룹 활동을 하면서 발굴해 낸 스타들은 숱했고 음반사와 가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빗속의 여인’이며 ‘커피 한잔’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인’…. 그리고 그 노래들을 부른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미화, 장현, 박인수…. 인생의 굴곡은 사이클을 이룬다고 했던가. 전국에 ‘신중현표’ 음악이 깔리고 입을 통해 번져 갈 무렵, 그는 군사정권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괘씸죄’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격리다.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던 게 미운털이 됐던 것 같아요.” 죄목은 ‘대마초 공급책’이다. “미군부대 공연장엔 당시 월남전에 반대하는 히피들이 많이 모였어요. 대마초며 마리화나를 상습적으로 즐겼던 그들은 우리 집에도 드나들었고 집에 그런 환각제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모진 고문과 심문 끝에 정신병원과 교도소 신세를 졌고 그가 만든 100여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그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1987년에야 그의 곡들이 해금됐지만 ‘대마초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기만 한 생트집이다. “따져 보면 저를 지옥으로 몰아간 이벤트지요.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어요.” 이후 소공연을 하면서 기타 산조 ‘무위자연’이며 ‘김삿갓’ 같은 한국적인 곡들을 발표했지만 회생 기미가 없었다. 마침내 2006년 은퇴선언을 하고 용인에서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런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건 2009년 미국 기타 전문 회사 펜더로부터 헌정 기타를 수여받은 일이다.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에디 반 헤일런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만 받았다는 그 기타다. 세계에선 여섯 번째, 아시아에선 처음이라는 펜더 기타 헌정. “마치 신의 선물 같았어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계시라고나 할까.” 그는 ‘신의 부름’이라는 그 사건 이후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무엇보다 록 음악이 태동된 본향으로부터 이어진 그에 대한 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은 2011년 사이키델릭 록 모음집과 그가 제작한 김정미의 ‘나우’를 발매한 데 이어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CD로 제작해 현지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9월엔 미국 음반사의 초청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무대에도 섰다. 오는 10월 그 음반사의 초청으로 같은 장소에서 재공연도 예정돼 있다. 칩거에 들었던 황혼의 음악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좀처럼 뒤돌아볼 줄 모르는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은 먼저 치열한 수양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지요.” 실제로 신중현이 ‘6현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바탕엔 뼈를 깎는 수행과 노력이 있다. 미8군 데뷔 전 기타 교습서며 주한 미군방송 AFKN을 통해 접한 곡들을 손이 갈라지도록 연습했다. 1960년대 초반엔 해군 군악대장을 지낸 이교숙 선생을 사사하며 화성법을 배웠고 그 덕에 작곡에 천착했던 것도 사실이다. 약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 중 세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3·3주법’이며 5음계를 적용한 화성법이나 곡 편성도 전 세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철학은 또 무엇일까. 놀랍게도 노자와 장자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대마초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두 살 연하인 부인 명정강씨가 가져다준 노자와 장자 책은 그의 음악과 인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낮은 자세로 살다 보면 다칠 게 없어요. 책을 보면서 마음을 비울 때 많은 것을 얻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도 낮은 데로 묵묵히 흐르는 물을 이길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에게 낮음의 철학을 깨우치게 한 책들을 소개한 부인은 미8군 시절 만난 여성 그룹 드러머 출신.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큰아들 대철, 기타와 키보드에 모두 능한 둘째 아들 윤철, 드럼 스틱을 잡은 셋째 석철은 모두 아버지 신중현의 길을 따르고 있는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다. 4부자는 지난해 12월 함께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대견합니다.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걱정스러우면서도 흐뭇하지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실력자라는 세 아들을 포함해 가족들에겐 못난 가장이자 아버지였다고 말하는 신중현. “지금은 떨어져 사는 부인과의 사실상 별리도 음악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는 말을 전하는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그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었으면서도 드러난 스캔들 한 번 없었다는 그의 꼿꼿하고 고집스러운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읽히는 대목이다. 그가 남은 생애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평생을 받쳐 천착했던 한국적인 음악이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입에 올린다. 각설이 타령조를 록에 얹은 ‘미인’과 국악풍의 전설 같은 노래. 그토록 열정을 쏟아 만들고 세상을 향해 외쳤지만 번번이 외면받았던 노래들을 요즘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고 다시 찾아 불러 신이 난단다. 요즘은 자신의 음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작은 공연을 생중계할 수 있는 공연장 만들기도 한창이다. 6가닥의 기타 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노장의 버팀목은 철석같은 의지일 것이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해발 600m 설산의 오아시스… 그 달달함, 육지 것에 비할까

    “울릉도 우산고로쇠는 육지와 달리 눈 속에서 채취해요. 전국 고로쇠 나무 중 유일하게 순수 국산 유전자를 지녔지요.” 경사가 40도쯤 될까. 서면 남양산 아래에서 시작한 농사용 모노레일은 달달거리며 깎아지른 숲을 30여분 올라갔다. 3년째 우산고로쇠를 채취해 온 이수철씨가 시동을 멈춘 곳은 해발 600m. 산중은 오직 눈과 우산고로쇠 나무뿐, 어마어마한 원시 군락지다. 그 기운이 참으로 싱그럽다. 나무는 볕 닿는 곳부터 비닐 주머니를 하나씩 달기 시작했고 흰 수액이 뚝뚝 떨어진다. 한 모금 맛을 봤다. 육지의 것보다 당도가 높다. 이 단맛은 자당으로 다른 지역보다 2배는 달다고 한다. 사포닌에서 오는 향긋한 인삼 향이 특징이다. 특히 우산고로쇠의 주요 무기성분은 칼슘, 칼륨으로 전체 무기질의 81%를 차지하는데 이는 골다공증과 성장기 어린이 뼈 발육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산에서 내려와 농가의 시설을 둘러보니 과거 ‘약수터 물통’은 사라졌다. 수거해 온 수액은 저온 살균 정제 설비를 거쳐 1.5ℓ 페트병에 담겨 밀봉되고 있었다. ‘울창한 큰 언덕’ 울릉(鬱陵). 울릉도 사람들은 이 우산고로쇠 널판으로 너와집을 짓고 수액을 음용하며 그들만의 긴 삶을 지탱해 왔다. 어쩌니 해도 이 또한 이들에겐 건강을 지켜주는 ‘야생’이고 설산에서 얻는 귀한 음식이다. 지금 울릉도는 우산고로쇠 철이다.
  • 다윈의 ‘비둘기 수수께끼’ 154년만에 답을 찾다

    다윈의 ‘비둘기 수수께끼’ 154년만에 답을 찾다

    1855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자신의 농장에 커다란 비둘기장을 짓고 런던의 시장에서 비둘기를 잔뜩 사다가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다양하고 예쁜 부리와 볏 모양을 만들어 내기 위해 비둘기 교배에 정성을 기울였다. 다윈은 4년 뒤인 1859년 이에 대해 “교배로 얻어낼 수 있는 다양성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라고 적었다. 또 “교배의 결과 이런 변화는 확연히 드러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라고도 썼다. 비둘기 교배 얘기로 앞부분이 가득 찬 이 책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출판물 ‘종의 기원’이다. 비둘기는 지난 수십년간 ‘평화의 상징’에서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왕성한 번식력과 강인한 생활력, 천적이 없는 환경 등으로 비둘기는 도심을 빠르게 채워 나갔다. ‘닭둘기’라고 불릴 만큼 비대해져 날지도 못하는 비둘기는 혐오감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비둘기는 수천년간 인류와 함께해 온 동물이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비둘기는 중동 지역에서 중요한 식량이었다. 식량을 구하기 힘들었던 이 지역의 농부들은 아예 야생 바위비둘기를 잡아다 사육했다.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경기의 결과를 각 도시로 전하는 데 이용했고, 12세기 칭기즈칸은 거대해진 제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비둘기를 이용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이후 비둘기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관상용’으로 변신한다. 16세기 인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는 지역을 순시할 때마다 1만 마리의 비둘기를 데리고 다녔다. 축제 때면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보냈고, 훈련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1835년, 26세의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에 도착, 거기서 서식하는 핀치새 14종이 조금씩 다른 부리 모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4종이 각기 다른 먹이를 먹는다는 점에 착안, 자연이 이들의 부리 모양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을 세웠다. 진화론이 다윈의 머릿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때다. 다윈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었던 비둘기를 이용해 가설을 입증하고자 했다. 비둘기 사육·판매상들이 “어떤 날개라도 3년이면 만들고, 원하는 모양의 머리와 부리를 만들어 내는 데는 6년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할 정도로 교배 기술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다윈은 농장에서 교배를 통해 원하는 모양과 특성을 만들어 내며 ‘자연선택설’을 확립했다. 사육장 속의 인위적 교배를 자연상태에서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진화의 축소판으로 가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다윈은 비둘기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시작됐고, 대를 거치며 다양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종의 기원’에 서술한 것과 같이 다윈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진화의 핵심인 ‘유전자’의 존재를 당시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후예들은 비둘기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샤피로 역시 그중 한 명이나다. 2001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샤피로는 캐나다의 호수에 서식하는 큰가시고기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샤피로는 큰가시고기가 자연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인 수천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진화했다는 점을 밝혀내면서 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2006년 유타대 교수가 된 샤피로는 ‘비둘기는 하나의 조상에서 시작됐는가’라는 다윈의 수수께끼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다윈과 달랐다. 다윈의 시대에 없었던 DNA 분석이 동원됐다. 또 다윈이 핀치새의 교훈 덕분에 비둘기의 부리 모양 변화에 집착한 반면 샤피로는 비둘기의 진화와 변이를 보여주는 가장 간단한 지표가 ‘볏’과 ‘얼굴뼈’라는 점을 찾아냈다. 그는 축제장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비둘기의 유전자 샘플을 모았다. 또 자신의 연구실에서 교배를 병행하며 유전자 변이를 관찰했다. 연구팀은 수많은 분석을 통해 닭이나 칠면조 같은 여느 조류와 달리 비둘기의 볏과 얼굴뼈에만 관여하는 유전자 ‘EphB2’를 찾아냈다. EphB2는 비둘기의 배아 상태부터 발현돼 특정한 형태로 볏과 얼굴뼈가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볏이 전혀 없는 일반적인 비둘기와 달리 EphB2에 돌연변이가 생긴 비둘기는 길거나 폭이 없는 볏이 만들어지고, 갈기 모양의 볏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샤피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EphB2 유전자 변이를 비교해 서로 다른 비둘기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조상이 누군지도 알아낼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은 것은 비둘기의 가계도를 그리는 일뿐이었다. 화려한 색과 풍성한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비둘기는 주 거주지가 인도이지만, 수수한 모습인 이란 비둘기와 유전자가 거의 일치했다. 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을 거치자 현존하는 모든 비둘기가 야생 바위비둘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둘기의 조상이 하나라는 다윈의 수수께끼가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154년 만에 풀린 셈이다. 특히 연구팀은 비둘기가 다른 조류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성을 갖게 된 배경도 찾아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한 비둘기들이 사람에 의해 사육되면서 진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전서구(傳書鳩)로 이용되거나 관상용으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면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조류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교배와 자연선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지역과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한 섬에서 발견된 비둘기는 조상인 야생 바위비둘기의 유전자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7년간의 추적 끝에 얻어진 수수께끼의 답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렸다. 다윈의 진화론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면서도, 150년 넘게 풀리지 않았던 중요한 뼈대가 입증된 것이다. 진화학계의 거두인 애덤 보이코 미국 코넬대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로 우리는 진화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윈은 1809년 오늘(2월12일) 태어났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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