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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티베트 무인구 첫 횡단 박철암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티베트 무인구 첫 횡단 박철암 교수

    지구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하여 그곳을 탐험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이다. 무인구(無人區)라는 말을 들어봤을까. 티베트 장북고원(藏北高原) 해발 5000m 지점에 있다. 인류 문명의 모든 기기가 정지되는 곳이다. 잘 가던 시곗바늘이 멈춰버린다. 나침반도 작동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발사된 총알도 날아가지 않는 ‘수수께끼의 땅’이다. 티베트 무인구는 국가금구(國家禁區) 지역으로 지도에서조차 지명을 찾을 수 없는, 세상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곳이다. 수억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심오한 곳이다. 말 그대로 자연의 장엄함과 태고의 신비가 펼쳐진다. 티베트 사람들은 현세나 내세에서도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생존할 수 없는 땅으로 여긴다.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22만㎢의 광활한 규모임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다. 대신 스라소니, 곰, 늑대, 황양, 야생 당나귀 등이 천국처럼 살고 있다. 원로 탐험가 박철암(88) 경희대 명예교수(중문학)는 2007년 세계 최초로 티베트 고원지대 무인구 2200㎞를 횡단했다. 1990년 한국 최초로 티베트에 들어간 이후 30차례나 다녀왔고 무인구 횡단은 11번 도전 끝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에서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곳이지만 그의 끝없는 집념에 탄복해 중국 측 지질학 박사 1명, 의사 1명, 통신원 1명, 티베트 지질학 연구원 1명, 호수학 박사 1명 등 9명의 수행원과 함께 탐험대를 조직해 마침내 평생의 꿈을 이루며 새 역사를 썼다. 그는 2007년 12월 티베트 과학조직위원회로부터 ‘장북고원 무인구를 세계 최초로 탐험한 과학자’라는 호칭과 함께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데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다시 한번 무인구를 꿈꾸고 있다. 다음 달 티베트에 가서 무인구 출입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남·북극 이어 제3극 무인구 그는 1962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나서 당시 화제가 된 주인공이다. 그때 다울라기리 2봉(네팔과 티베트 접경지역 위치)에 도전했고 1971년에는 로체샤르에 도전한 경력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티베트 고원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티베트 무인구만 생각하면 지금도 어린 소년처럼 마음이 막 설레지요. 더 늙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무인구에 가고 싶습니다. 미지에 도전한다는 것은 늘 행복이자 즐거움입니다. 북극과 남극은 난센과 아문센이 탐험했고 제3의 극인 무인구는 박철암이 탐험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잠시 생각하더니) 1988년 중국이 티베트를 개방했다고 했거든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티베트에 처음 갔을 때를 잠시 회고한다. “해발 5250m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에 들어가 한 고원지대에서 잠시 앉아 쉴 때였죠. 마침 유목민 아가씨가 양 떼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17살 정도 됐나요. 그런데 그 아가씨가 꽃을 입에 물고 그걸로 피리 소리를 내는 것이에요. 꽃 이름을 물었더니 파파화(巴巴花)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아름답던지 별천지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티베트의 꽃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지요.” 박 교수는 당시 한 명언을 떠올렸다고 한다. ‘누가 말했던가, 누구라도 티베트 창탕고원에 단 1분만이라도 설 수 있으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이후 티베트의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500여종의 식물을 수집, 1998년에 ‘티베트의 꽃과 생물’이라는 책을 세계 최초로 발간하게 된다. ●대륙의 버뮤다 삼각지 무인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6년 6월이었다. 티베트 라싸대학 총장을 만났을 때 박 교수는 무인구 얘기를 처음 듣게 됐다. ‘과거에도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고 앞으로 100년 후에도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또 ‘국가금구 지역이니 절대 가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더욱 궁금해졌던 것. 이때부터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무인구 탐험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무인구에는 정말 모든 기기가 정지되는 곳일까. 그러자 지체없이 무인구의 위치부터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티베트의 아리(阿里)고원 일부 지역과 장북고원의 서북부, 동북부의 광대한 지역을 창탕고원이라고 합니다. 창탕은 북방의 하늘이라는 뜻이지요. 무인구는 그 창탕고원의 최북쪽에 위치하며 쿤륜(崑崙)산맥, 커커씨리(可可西里)산맥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서남으로 히말라야산맥과 깡디스(崗底斯)산맥, 넨칭탕구라(念靑唐古拉)산맥, 그리고 헝뚜안(橫斷)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지요. 무인구의 장서깡르산(藏色崗日山)과 서우깡르산(色烏崗日山)의 중간 지역에 이르면 모든 기기의 작동이 정지됩니다. 시계가 멈추고 라디오 소리도 정지되며 자동차 엔진도 꺼진다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지요. 마치 남태평양의 버뮤다 해협을 지나는 배들이 가라앉듯이 말입니다.” 정지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시 말해 지구상에는 북극과 남극, 그리고 제3의 극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인구이며 극 중의 극이다.”고 강조하면서 “알 수 없는 광물체와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설명한다.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티베트에 같이 갔던 한 대원이 호수에 물을 길으러 갔다가 개울에서 머리를 감았는데 귀국해서 얼마 되지 않아 머리털이 귀 뒷부분만 남겨놓고 몽땅 빠져버렸습니다.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은 3개월 후였습니다. 또 고원지대를 지날 때였는데 땅속에 있는 흑사(黑沙)를 발견한 적도 있었지요.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인구는 1억년 전에는 바다였고 그래서 신비한 화석과 호수가 많습니다.” ●경희대 산악반 이끌고 히말라야 첫 등반 그가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어릴 적부터였다. 해발 2000m가 넘는 평안북도 낭림산맥의 동백산 밑에서 자랐다. 어른들로부터 ‘동백산 위에 뱃조각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동백산으로 올라갔다. 마타리꽃이라는 야생화 속을 걷는 산길이 무척 좋았다. 산을 처음 알았고 이후 산을 좋아하게 됐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스승한테 ‘옥배에 술을 마시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곤륜산에서 포부를 펴라.’는 말을 듣고 히말라야에 대한 야망을 키워나갔다. 1947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열린 한국산악회 주최 등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학우 두 명과 팀을 이룬 것이 나중에 경희대 산악부의 시초가 됐다. 이후 1950년 안나푸르나와 1953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어 1956년 마나슬루를 오르는 일본과 유럽의 산악인들의 성공 소식을 전해 듣고 히말라야 진출의 의지를 더욱 다지게 됐다. 경희대 산악반을 이끌고 한국 산악 사상 첫 히말라야 등정에 나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던 것. 하지만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가면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고 하면서 선뜻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등정대’가 아닌 ‘정찰대’라는 이름으로 출발해야 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할 수 없이 집을 팔아 비용을 마련했다. 또 현지 지도를 구하지 못해 일본에 들러 손으로 그린 약도를 받아들고 떠나야 했다. 다시 무인구 얘기로 돌아온다. “1년 중 8개월은 매우 추우며 특수한 자연 환경 덕분에 무인구는 신비스러운 면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고원, 신비스러운 소금호수, 그곳에만 서식하는 야생동물과 조류, 고산식물들이 태초의 모습 그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지요.” 노() 탐험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히말라야에는 6000m급 이상 봉우리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이는 앞으로 후배들이 오를 산이다.”면서 “인류의 역사는 그 시대를, 특출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개척돼 왔다. 지구상에는 어느 분야에서든 미지가 있다. 그 미지를 알아내는 일 또한 우리 후배들의 몫이다.”라고 강조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원로 탐험가 박철암 경희대 명예교수는] 평남 낭림산맥 동백산 자락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제 때 만주에서 독립단을 찾아갔다가 광복 후 월남했다. 경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국특수체육회 이사, 대한산악연맹 이사, 한국대학교수협의회 이사, 경희대 기획관리실장, 한국히말라야클럽 초대회장, 한국티베트탐험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 탐사기(山群 探査記)’, ‘티베트의 꽃과 생물’, ‘지도의 공백지대를 가다’ ‘티베트 무인구 대탐험’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 한국히말라야클럽 명예회장, 한국티베트탐험협회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1962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에 진출했으며, 1971년 최초로 8000m급 로체샤르를 원정했다. ‘무인구’라는 말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탐험가로 2007년 세계 최초로 티베트 무인구 횡단에 성공했다. 무인구의 생태계 연구자료를 수집한 공로를 인정받아 티베트 과학조직위원회로부터 ‘장북고원 무인구를 세계 최초로 탐험한 과학자’임을 증명하는 인증을 받기도 했다.
  • 프랑켄슈타인 실존?…서로다른 시체 조합한 유골 발견

    ▶사진 보러가기 영국의 여류작가 메리 셸리가 쓴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은 실존했던 것일까. 스코틀랜드에서 발굴된 약 3000년 전 남녀의 유골이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처럼 다른 사람의 시체를 조합해 만든 것으로 드러나 해외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유골들은 지난 2001년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 아우터헤브리디스제도 사우스유이스트섬에 있는 선사시대 마을 ‘크레드 할란(Cladh Hallan)’에서 출토됐다. 발굴 현장은 11세기 저택 지하였으며, 두 유골 모두 손발을 몸쪽으로 끌어 당긴 채 둥글게 한 태아같은 자세로 묻혀 있었다. 연구진은 최신 동위원소 연대 측정과 DNA 분석을 시행한 결과 두 유골은 모두 6명의 사람 유골을 조합해 만든 미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테리 브라운 교수는 “연구 결과, 여성의 유골을 조사 중 턱이 두개골과 맞지 않아 DNA 검사를 시행하게 됐었다.”고 말했다. 유골의 턱뼈와 두개골, 팔, 다리, 몸통은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또 여성의 유골은 어머니가 같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의 조합이었으나 남자 미이라의 경우 수백년 차이를 두고 숨진 사람의 뼈를 조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브라운 교수는 “우연히 머리가 떨어져 다른 사람의 두개골을 올렸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결합했을 수도 있다. 다양한 혈통을 그대로 ‘일체화’하는 상징적인 조상을 만들어 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브라운 교수에 의하면 칠레의 안데스 산맥에서 발굴된 ‘친초로 미이라’의 경우, 막대와 잔디, 동물의 체모, 심지어 해표(바다사자) 피부까지 이용하여 사체의 보강과 복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망한 개인보다 모습이나 이미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즉, 특정한 단일 인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다.”고 브라운 교수는 말했다. 또 연구진은 유골의 상태와 구조를 연구한 결과, 저택 지하에 매장되기 전 토탄 늪에서 약 300~600년간 묻혀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토탄 늪에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억제되기 때문에 피부와 연조직이 남기 쉽고 칼슘을 기반으로 하는 뼈는 오랜세월이 흐르면 손상을 입는데 그 전에 꺼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고고학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8월호에 상세히 실렸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_산시성 몐산, 쓰촨성 구채구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_산시성 몐산, 쓰촨성 구채구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꾼 장자가 깨어나 말했다지.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중국을 누볐다. 나는 꿈을 꾼 것인가, 여행을 한 것인가. 신의 조각품이라 할 만한 산시성의 몐산, 물감을 엎지른 것만 같은 쓰촨성의 구채구는 ‘중국의 산과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글·사진 김명상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하나투어, 레드팡닷컴 산시성 몐산 綿山 타이항산맥에서 피어난 한 떨기 산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에서 마침표를 찍는 백두대간을 굽어보면, 산과 산이 북에서 남으로 길게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다. 백두대간이 9개의 산을 안고 있듯 중국의 타이항산맥太行山脈도 산시성, 허베이성, 허난성 출신의 산을 실타래처럼 엮는다. 남한 쪽 백두대간의 길이는 650km, 타이항산맥의 길이는 남북으로 600km며 동서로 250km. 수치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산시성山西省은 타이항산의 서쪽, 동쪽은 바로 산둥성山東省이다. 타이항산맥의 서쪽에서 솟아오른 몐산綿山·면산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다. 그러나 낯설지 않았다.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이 몐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까닭이다. 한식은 춘추전국시대 충신으로 불리는 개자추介子推를 기리는 날이다. 진나라 문공이 칩거했던 시기,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줄 정도로 문공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했다. 그러나 훗날 문공이 왕이 되자, 개자추는 다툼이 잦은 현실 정치를 뒤로한 채 어머니와 함께 몐산으로 숨고 만다. 충신을 잃은 문공은 개자추를 불러들이기 위해 몐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래서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에는 뜨거운 불에 죽어간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찬 음식을 먹고 있다.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엔太原·태원에서 개자추의 전설이 영근 몐산까지는 버스로 2시간이면 닿았다. 몐산을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이어지는 산’이다. 분명 몐산의 저 너머에는 또 다른 중국의 산이 불뚝 솟아 있을 것이다. 버스에 의지해 몐산을 본격적으로 오르자, 신이 둥근 과일을 칼로 깎듯이 저 산을 곱게 도려낸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해발 2,000m를 웃도는 산 위, 도로가 끊길 듯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연이어 나타났다. 도로의 폭이 워낙 좁은 탓에 대형 버스 두 대가 마주칠 때면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비켜갔다. 버스가 직사각형 반듯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절벽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원펑수위안雲峰墅苑·운봉서원이었다. ‘하늘 위 호텔’이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았다. 숙소 창문을 열자 한 폭의 동양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1, 2 정궈스에 오르면 등신불을 볼 수 있다 3 몐산의 원펑스에는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이 숨쉰다 4 원펑스의 120계단은 108가지 번뇌와 12연기를 의미한다 5 원펑스에서 정궈스로 오르는 계단이 아찔하다 6 군사요새인 몐산의 석채. 타이항산의 서쪽에 솟은 몐산의 높이는 2,000m가 넘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소원이 박힌 절벽을 지나 ‘미라 승려’를 만나다 원펑수위안의 로비인 10층은 원펑스雲峰寺·운봉사와 이어지는 비밀 통로다. 여기서 원펑스를 오르면 호텔 10층 높이만큼 발품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편한 것을 거부하고 느리게 다가오는 중년의 중국인이 보였다. 그는 아찔하게 펼쳐진 120계단 위에 두 손을 밀착하면서 연거푸 절을 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시선은 원펑스로 향해 있었다. 120계단은 108가지 번뇌煩惱에 12연기를 더한 숫자를 의미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나는 심적인 고통이다. 마음을 비우면 쉬운 것을 우리는 항상 욕심을 부리고 의도치 않게 성을 내며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았다. 그래서 120계단은 인간의 행렬로 쉴 날이 없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원펑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죄를 사하여 줄 것만 같은 편안함이 감돌았다. 포복사抱腹寺는 절벽 속에 감겨 있는 원펑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절은 마치 어미의 뱃속에 아이가 안겨 있는 모습을 닮았다. 사람의 손길이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가파른 암벽을 따라 붉은 천이 휘날렸다. 천에 매달린 것은 등불 혹은 방울이었다. 왜 등불과 방울인가. 등불燈·등불등을 단 사람은 “소원이 이뤄지길 기다리겠다等·기다릴등”고 신께 기도했고, 반대로 방울鈴·방울영을 단 사람은 “소원이 이뤄지다니, 영험합니다靈·영험할영”고 감사 인사를 띄웠다고 한다. ‘등’과 ‘영’이라는 한자 음을 이용한 중국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 했다.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뤄지리라. 원펑스를 지나 ‘之갈지’ 모양의 지그재그 계단을 올랐다. 정궈스正果寺·정과사로 가는 길이다. 정궈스까지 오른 이유는 하나였다. 등신불等身佛을 보고 싶었다. 등신불은 쉽게 말해 ‘미라가 된 승려’다. 미라라 하면 방부처리한 상태로 편하게 누워 있는 이집트 미라가 대번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의 등신불은 고고하게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꼿꼿한 자세 그대로 ‘인간 불상’이 되었는지는 과학도 풀기 힘든 미스테리라고 했다. 오매불망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그대로 돌이 된 망부석처럼 등신불에는 어떤 애절함과 의지가 선연하게 묻어났다. 등신불의 갈라진 틈 사이로 뼈와 두개골이 보였다. 정궈스에는 등신불 총 12존이 있다. 등신불도 살아온 궤적에 따라 저마다의 표정이 달랐다. 유독 표정을 잔뜩 찡그린 불상이 보였다.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한이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게 틀림없었다. 역시나 그 등신불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고 했다. 하산한 그대여, 왕자다위안과 핑야오구청으로 가라 몐산에서 내려와 왕자다위안王家大原·왕가대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씨네 집을 찾아간 것이다.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소” 노래 <왕서방연가> 탓인지 중국의 부자 하면 왕서방의 퉁퉁한 얼굴이 스쳤다. 실제 왕王씨는 이李씨, 장張씨와 함께 중국의 3대 성씨로 꼽힌다. 왕자다위안은 길조차 왕씨의 집임을 증명했다. 남북으로 큰 길이 하나 놓여 있고 동서방향으로 세 개의 길이 나 있으니 영락없는 王자였다. 왕씨 가문의 시조인 ‘왕실王實’은 두부장사로 큰돈을 모은 거상이었다. 왕실의 17대손 형제는 나란히 관직에 등용돼 가문에 영광을 안겨줬고 집을 더 크게 짓고 더 화려하게 치장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와 명예를 뽐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바로 으리으리한 집짓기가 아닌가. 수백년에 걸쳐 대대손손 지어진 이 집은 ‘민간의 자금성’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방의 개수는 1,118칸, 정원의 수도 100개가 넘는다. 집을 구경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족히 1시간은 걸렸다. 왕자다위안에서는 숨어있는 장치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계단과 문 앞에는 복숭아, 박쥐, 원숭이, 물고기 등의 조형물이 나타났다. “복숭아는 장수, 박쥐는 복을 의미하고요…” 여기저기서 숨은 그림 찾기에 빠진 이들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집을 채운 소품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었다. 방문객이 어찌나 만졌던지 사람의 손을 탄 장식품은 하나같이 반들반들했다. 하산 후 여행은 대개 왕자다위안에서 핑야오구청平遙古城·평요고성으로 이어진다. 핑야오구청은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명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번화해 몐산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적막한 몐산에 파묻혀 며칠을 지냈던지라 왁자지껄한 핑야오구청의 분위기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몸이 반응했다. 정신없이 골목을 누볐더니 어느새 두 손 가득 간식과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들려 있었다. 스토우빙으로 불리는 바삭바삭한 과자, 매콤하고 짭조름한 양 꼬치, 대형 지팡이 과자 등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워낙 많아 끼니를 걸러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핑야오구청에는 지갑을 열게 하는 마력이 흘렀다. 알고보니 핑야오구청 일대는 상업 중심지로 흥했던 곳이었다. 중국 최초의 은행인 표호票號도 이곳에 있다. 처음 핑야오구청을 둘러보면 망망대해를 누비는 것처럼 막막하다. 다행히 스러우市樓·시루는 든든한 등대 역할을 했다. 아침이면 이곳을 중심으로 거리 공연이 열리고, 밤이면 화려한 빛이 뿜어 나와 여행객을 위무했다. 1 장수, 복 등을 의미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숨어있다 2 왕자다위안은 민가의 자금성으로 불릴 정도로 거대하다 3 핑야오구청의 아침은 화려한 전통 공연으로 시작한다 Travel tip 산시성 사람은 식사 전 꼭 ‘식초’ 한 잔을 마신다. 상 위에 오른 검정 액체를 보고 당황하지 말자. 몸에 좋은 약이라 생각하고 냉큼 마셔 보시길. 핑야오구청에는 게스트하우스, 중국식 전통 숙소인 객잔이 있다. 특히 객잔에 머물면 홍등과 버드나무를 벗 삼아 객잔 주변을 산책해 보라. 귀부인이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또한 객잔 마당의 테이블에서 맥주 캔을 든다면 풍경에 취해 밤을 새기 십상이다. 단, 객잔의 실내는 약간 쌀쌀한 편이니 취침 전 창문을 잘 닫는 게 좋다. T clip.여행상품 10월20일까지 몐산으로 손쉽게 떠날 수 있다. 바로 인천에서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까지 아시아나항공이 전세기를 운항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총판매대리점을 맡고 있는 레드팡닷컴을 비롯해 하나투어, 모두투어, 자유투어, 참좋은여행, 온라인투어 등 전국의 여행사를 통해 전세기 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출발해 4박5일간 현지에 머무르며 몐산, 왕자다위안, 핑야오구청 등 산시성 대표 여행지를 모두 아우르며 중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디너쇼도 포함한다. 상품가 69만9,000원부터 문의 레드팡닷컴 02-6925-2569 쓰촨성 구채구 九寨溝 고산증은 통과의례였다 오색찬란한 물빛을 보는 순간 당신은 선계仙界에 온 듯한 착각을 할 것이다. 지구상의 온갖 푸른색 보석을 가루 내 물에 푼 듯한 구채구의 물빛은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산을 고이 담아낸 물이 잔잔하고, 웅장한 폭포에서는 거대한 물의 커튼이 눈앞을 가린다. 하지만 구채구에 도착하기 전 고산병이 발목을 잡았다. 구채구로 가는 관문인 청두成都·성도에서 국내편 비행기를 타고 해발 3,500m의 구황공항에 내리자마자 딱따구리가 머리를 쪼는 듯한 두통이 일어났다. 갑자기 높은 곳에 올라오자 심한 고도차에 몸이 고통을 호소한 것이다. 미리 먹었던 고산병 예방약은 별무소용이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몸은 금방 적응됐는지 평소와 같은 기분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정도가 조금 덜할 뿐, 여전히 두통이 남아있다고 했다. 구채구는 해발 1,980~3,100m 정도 높이에 걸쳐져 있는데 한반도의 최고봉, 백두산 높이가 2,744m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고산증세는 하나의 통과의례이며 극복한다면 진한 감흥을 얻을 것이다. 구채구는 1970년대에야 벌목공에게 발견됐을 정도로 오지다. 골짜기 안에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아름다운 산과 오색찬란한 물로 유명하다. 동화세계, 인간선경 등으로 불리는 중국 관광의 명소로 1975년 중국 정부 지정 관광지로 지정됐고,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1997년에는 세계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4 진주가 흐르는 듯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진주탄폭포 5 오화해는 꽃처럼 아름다운 다섯 색깔이 비친다는 뜻으로, 비취색이 인상 깊은 곳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물빛 구채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Y자 형태이며 크게 수정구樹正溝, 일측구日則溝, 측사와구則渣窪溝 3개의 골짜기로 이뤄져 있다. 전체 길이는 55.5km, 입구에서 구채구의 가장 높은 지역인 장해까지의 길이는 총 17.8km에 달한다. 따라서 도보로 걷기에는 힘들기에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같은 버스를 탄 관광객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찬탄을 질러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산이 물 표면에 그대로 비춰지기도 하고, 비취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물 색깔의 오묘함에 홀리듯 빨려들게 된다. 예로부터 장족들이 신산성수神山聖水라 불러 왔다는데 그 이유를 짐작할 것 같다. 구채구 내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114개, 호수 사이에 17개의 폭포군, 11개의 급류, 5곳의 트래버틴(석회암의 일종) 모래톱이 서로 연결돼 있다. 호수는 이름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는데 명칭이 있는 호수는 보통 오화해, 경해, 장해와 같이 바다海라 명명된다. 구채구에 관한 전설에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옥낙색모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달과라는 남자신이 그녀를 사모했다. 한 번은 달과가 여신에게 바다를 볼 수 있는 보물거울을 선사했는데 갑자기 달려든 마귀에 놀라 거울을 떨어뜨렸다. 그 거울 조각이 인간세상에 떨어져 보석처럼 산 곳곳에 박히게 됐는데 그것이 구채구의 호수가 됐다는 것이다. 구채구의 하이라이트, 오화해·장해 구채구는 면적이 720km2 달하는 만큼 관광객이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성수기에는 가이드도 압사당할 뻔했다고 할 만큼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기에 여유로운 사진 촬영도 어렵다. 따라서 미리 몇 곳을 정해 놓고 집중해 보는 편이 낫다. 추천하는 곳은 오화해五花海와 장해長海다. Y자 계곡의 오른쪽(일측구) 상류 부분에 있는 오화해는 꽃처럼 아름다운 다섯 가지 색이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구채구 호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인데 에메랄드색과 남색, 녹색 등이 서로 교차하고 영롱한 빛을 발해 눈을 어지럽힌다. 이런 신비한 색감은 석회암 지형 때문인데, 물에 석회질이 많아 색깔이 옥색으로 비치는 것에 더해 주변 산의 전경, 태양의 움직임 등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호수 속에는 이미 오래된 나무가 유유자적하게 잠겨 있는데 신기하게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지질 특성상 석회 성분이 고착돼 그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이 어우러진 오화해는 말 그대로 선경이라 부를 만큼 감동이 살아 숨쉰다. 오화해 위로는 팬더바다라는 뜻의 웅묘해熊猫海가, 아래로는 경내에서 가장 웅장하며 진주가 흐르는 듯 아름답다는 진주탄폭포珍珠灘瀑布가 있는 만큼 천천히 유람하듯 즐기는 것도 좋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구채구에서 제일 높은 호수인 장해로 향했다. 장해는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101m에 있고 길이는 약 4.3km에 달한다. 유람선이라도 뜰 것 같은 긴 물결이 호수임에도 시야를 탁 트이게 만든다. 이곳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마치 중식도로 산을 뭉텅뭉텅 베어낸 듯한 노르웨이의 피오르드fjord와 흡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구채구라는 계곡 하나에서 동양과 유럽의 매력을 아우르는 풍경이 숨쉬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장해 아래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역시 물 색깔이 곱디고운 오채지五彩池에 닿는다. 1 석회질 성분 때문에 이곳에 잠긴 나무들은 썩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 2 웅장한 풍경을 자랑하는 장해. 이름답게 사진에 보이는 장면이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3 구채구 장족문화촌에서는 장족의 문화와 전통을 만끽하며 쇼핑도 겸할 수 있다 4 장족문화촌에서 전통복장을 한 여인이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5 장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칼을 차고 다니기에 화를 돋우면 곤란에 처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오지 속 쇼핑몰, 장족문화촌 구채구 내의 수정채에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장족 마을이 있다. 입구 앞에는 쵸르텐불탑과 룽다風馬가 서 있다. 룽다는 긴 장대에 매단 긴 깃발이고 타르쵸는 정사각형의 기를 이어서 매단 것으로 경문이 가득 쓰여 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에 전달돼 모두가 해탈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해져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가면 타르쵸가 만국기처럼 내걸려 있다. 상점에서 물품을 파는 이들은 모두 장족 전통 복장을 하고서 그들만의 독특한 기념품을 만든다. 티벳문자가 수놓인 천 제품, 스카프, 옥으로 만든 빗, 각종 의류, 거울, 팔찌,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 등도 만날 수 있다. 상업적인 느낌이 강해 아쉽지만 장족의 고유한 삶도 들여다보고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어 구채구를 찾은 이라면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다. T clip.가는방법 청두(성도)는 구채구의 관문이다. 인천에서 청두까지는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사천항공 등이 운항 중이며 약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청두에서 구황공항까지는 비행기로 45분 걸리지만 육로로는 10시간도 소요될 수 있다. 그만큼 비행기 이용객이 많은데 문제는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하는 탓에 비행기 연착이 흔하디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 기자는 3시간 넘게 청두 공항 의자에 누워서 기다려야 했다. 상품 문의 하나투어 02-2127-1951 Travel tip. 구채구는 산에 단풍이 들고 물이 많은 가을이 성수기다. 단, 10월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주변 호텔 가격도 비싸고, 관광할 때 인도를 걷기도 힘들 만큼 붐비니 9월이 가장 적당하다 구채구 내에서 버스 이용할 때는 앉은 자리가 풍경 감상의 핵심이다. 입구에서 상행선 버스를 탈 경우 왼쪽이, Y자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일측구에서는 오른쪽에 앉으면 이동하면서 멋진 장면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병은 평소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니 자만은 금물. 일단 고산병 증세가 생기면 하산만이 해결책이다. 약을 준비하는 등 미리 조처하고 대비하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의학이 부추긴 女性 쇼핑

    의학이 부추긴 女性 쇼핑

    “인간의 난자는 나무에 열리지 않는다.” 의료윤리 연구자인 저자가 한마디 툭 던져놨다. 가슴 아린 한마디다. 황우석 사태가 비극인 까닭은 연구 자체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 연구 자체는 그냥 희극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 구체적으로는 난자 문제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인체 쇼핑’(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번역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언급하자면 황우석의 방법은 체세포 핵이식이다. 영국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와 같은 기법이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의 핵을 대신 넣는 것이다. 거짓 연구라는 걸 들키기 전부터 이미 외국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애국주의자들 눈에는 한국의 성취에 대한 질투로만 보였겠지만 의심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머트는 400개의 난자를 획득한 뒤 핵을 제거했더니 267개가 사용가능했고 이 267개 가운데 1개에서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데 황우석은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들어내는 데 난자는 200개도 채 안 썼다고 주장했다. 돌리에다 단순비교하자면 난자 4400개 정도는 써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 의심에 대한 황우석의 과학적(?) 반론은 연구원의 손기술을 진화시킨 한민족의 젓가락문화였다. 물론 거짓 연구가 들통난 뒤 난자에 대한 해명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개도 채 안 된다고 했는데 난자 “2200여개를 119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했다. 한 여성에게서는 무려 “43개의 난자”를 얻었는데 이는 “배란촉진제를 치명적일 정도로 과다투여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난자 기증자의 15~20%가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구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하라 했다. 이는 나치정권의 생체실험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로 치장된 거짓 자발성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학계의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증자의 절반 이상이 “평균적으로 난자 1개당 1400달러”를 받았다. 기증이 아니라 매매였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다면? 위대한 젓가락문화가 진화시킨 연구원의 세심한 손가락 놀림 덕분에 정말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면? 그래서 영국의 시민운동가 세라 색스턴은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란 가정하에 필요한 난자량을 계산해 봤다. 치료대상은 영국 당뇨병 환자로 한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황우석 기술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될 분야로 당뇨병을 지목해서다. 그 결과는 “영국 젊은 여성 3분의1 내지 2분의1이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다른 어려운 질병을 제쳐 두고 당뇨 하나만에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는 복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다른 하나는 “젊은”이다. 성공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황우석 연구가 진짜로 판명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자를 기증해 박애주의자로 거듭나라는 지속적인 대국민 캠페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자 채취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책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불임클리닉에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저자는 난자를 얻기 위해 난소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실제 사례들도 소개해뒀다. 더구나 여성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를 뽑아 쓸 경우 조기 폐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골밀도가 떨어지고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는 난자 기증 자체를 중지시켰다. 과학적으로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몸에 해가 안 된다는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가장 한심한 소리는 체외수정을 위해 쓰고 남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저자는 목적에 따라 난자를 얻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령 영국의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용으로 쓰고 남은 난자를 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7개월 동안 겨우 66개를 모았다. 반면 뉴캐슬 불임클리닉을 조사해 보니 29세의 한 여성에게서만도 44개의 난자를 뽑아낸 경우가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차피 남는 난자인데 다른 사람 치료를 위해 연구용으로 쓰는 게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불임클리닉들은 체외수정에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난소를 더 자극해 더 많은 난자를 뽑아내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특허로 인한 학문적 명망과 경제적 이득이 연구자 혹은 병원장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익이라는 애국적 가치가 지켜보는 이들의 입까지 다 막아버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보면 차라리 황우석의 연구가 거짓으로 들통나 일찍 중단되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 보듯 황우석 사태만 다룬 건 아니다. 불로장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떠들어대는 생명의학계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지 보여준다. 죽은 자의 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 대형병원들, 이 병원들에 제품을 잘 공급하기 위해 밀매조직들이 내놓은 각종 인체조직들의 가격표, 언론에서 크게 부풀려진 장기이식 수술 성공사례들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결과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얼마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는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와 이를 둘러싼 각종 법적 공방까지 모두 다뤄뒀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눈길을 끈다. 출산 때 태반과 함께 버려지는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이 유행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엔 거짓말, 그것도 중대한 거짓말이 하나 있다. 제대혈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제대혈은 아기에게, 특히 조산아에게 신선한 산소 공급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제대혈 채취는 산후출혈이라는, 출산과정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행해진다. 제대혈 보관은 어차피 버려질 것을 소중하게 다시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기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 덜어내는 것이다. 이는 난자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릴 거 유용하게 쓰는데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합리화란 대개 양심을 마비시킬 때 쓰는 전략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황우석, 女 119명의 난자 2200개 채취해놓고…

    황우석, 女 119명의 난자 2200개 채취해놓고…

    “인간의 난자는 나무에 열리지 않는다.” 의료윤리 연구자인 저자가 한마디 툭 던져놨다. 가슴 아린 한마디다. 황우석 사태가 비극인 까닭은 연구 자체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 연구 자체는 그냥 희극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 구체적으로는 난자 문제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인체 쇼핑’(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번역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언급하자면 황우석의 방법은 체세포 핵이식이다. 영국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와 같은 기법이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의 핵을 대신 넣는 것이다. 거짓 연구라는 걸 들키기 전부터 이미 외국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애국주의자들 눈에는 한국의 성취에 대한 질투로만 보였겠지만 의심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머트는 400개의 난자를 획득한 뒤 핵을 제거했더니 267개가 사용가능했고 이 267개 가운데 1개에서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데 황우석은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들어내는 데 난자는 200개도 채 안 썼다고 주장했다. 돌리에다 단순비교하자면 난자 4400개 정도는 써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 의심에 대한 황우석의 과학적(?) 반론은 연구원의 손기술을 진화시킨 한민족의 젓가락문화였다. 물론 거짓 연구가 들통난 뒤 난자에 대한 해명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개도 채 안 된다고 했는데 난자 “2200여개를 119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했다. 한 여성에게서는 무려 “43개의 난자”를 얻었는데 이는 “배란촉진제를 치명적일 정도로 과다투여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난자 기증자의 15~20%가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구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하라 했다. 이는 나치정권의 생체실험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로 치장된 거짓 자발성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학계의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증자의 절반 이상이 “평균적으로 난자 1개당 1400달러”를 받았다. 기증이 아니라 매매였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다면? 위대한 젓가락문화가 진화시킨 연구원의 세심한 손가락 놀림 덕분에 정말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면? 그래서 영국의 시민운동가 세라 색스턴은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란 가정하에 필요한 난자량을 계산해 봤다. 치료대상은 영국 당뇨병 환자로 한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황우석 기술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될 분야로 당뇨병을 지목해서다. 그 결과는 “영국 젊은 여성 3분의1 내지 2분의1이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다른 어려운 질병을 제쳐 두고 당뇨 하나만에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는 복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다른 하나는 “젊은”이다. 성공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황우석 연구가 진짜로 판명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자를 기증해 박애주의자로 거듭나라는 지속적인 대국민 캠페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자 채취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책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불임클리닉에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저자는 난자를 얻기 위해 난소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실제 사례들도 소개해뒀다. 더구나 여성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를 뽑아 쓸 경우 조기 폐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골밀도가 떨어지고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는 난자 기증 자체를 중지시켰다. 과학적으로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몸에 해가 안 된다는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가장 한심한 소리는 체외수정을 위해 쓰고 남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저자는 목적에 따라 난자를 얻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령 영국의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용으로 쓰고 남은 난자를 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7개월 동안 겨우 66개를 모았다. 반면 뉴캐슬 불임클리닉을 조사해 보니 29세의 한 여성에게서만도 44개의 난자를 뽑아낸 경우가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차피 남는 난자인데 다른 사람 치료를 위해 연구용으로 쓰는 게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불임클리닉들은 체외수정에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난소를 더 자극해 더 많은 난자를 뽑아내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특허로 인한 학문적 명망과 경제적 이득이 연구자 혹은 병원장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익이라는 애국적 가치가 지켜보는 이들의 입까지 다 막아버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보면 차라리 황우석의 연구가 거짓으로 들통나 일찍 중단되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 보듯 황우석 사태만 다룬 건 아니다. 불로장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떠들어대는 생명의학계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지 보여준다. 죽은 자의 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 대형병원들, 이 병원들에 제품을 잘 공급하기 위해 밀매조직들이 내놓은 각종 인체조직들의 가격표, 언론에서 크게 부풀려진 장기이식 수술 성공사례들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결과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얼마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는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와 이를 둘러싼 각종 법적 공방까지 모두 다뤄뒀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눈길을 끈다. 출산 때 태반과 함께 버려지는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이 유행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엔 거짓말, 그것도 중대한 거짓말이 하나 있다. 제대혈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제대혈은 아기에게, 특히 조산아에게 신선한 산소 공급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제대혈 채취는 산후출혈이라는, 출산과정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행해진다. 제대혈 보관은 어차피 버려질 것을 소중하게 다시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기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 덜어내는 것이다. 이는 난자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릴 거 유용하게 쓰는데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합리화란 대개 양심을 마비시킬 때 쓰는 전략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 여인들의 눈물, 외면할 수 있습니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다룬 ‘학살, 그 이후’(권헌익 지음, 유강은 옮김, 휴머니스트 아카이브 펴냄)는 제사상에 올리는 한 잔의 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저자는 한국인 인류학자다. 인류학자로서 1994년부터 틈나는 대로 베트남을 드나들며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전 특수로 인해 “내가 살던 가난한 동네에서도 물질적 상황조건이 개선”됐다는, 나중에 깨달은 “도덕적 궁지” 때문이다. 한국인 인류학자로서 저자는 이 책을 “공물(供物)로 내놓는다.”고 해뒀다. 학문적 땀방울 못지않게 인간적 눈물방울이 읽히는 이유다. 저자가 처음 꺼내 놓은 얘기는 1968년 2월 25일 한국군 해병대가 민간인 135명을 학살한 뒤 살아남은 몇몇 주민들이 시체들을 가매장해 둔 것까지 불도저로 모조리 밀어버렸다는 ‘하미 학살’이다.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16일, 미군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미라이 학살’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군의 행위가 그에 못지않게 잔혹했고, 노엄 촘스키가 “43건의 미라이 학살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쓸 정도로 빈번했음에도 왜 미라이 학살만 알려졌을까. “하위 행위자는 폭력적인 마을 평정 작전에서 지배적 행위자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쉽게 말해 이름을 떨친 종군기자나 연구자들은 미군만 쫓아다녔지, 한국군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가 정체성 운운하며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가 만난 학살 생존자들은 시계추처럼 오간 군인들의 극단적 이중성에 곤혹스러워했다. 어제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집 짓는 걸 도와주던 이들이 오늘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이 극단적 이중성이 어찌 그들 탓이랴. “전쟁이라는 냉혹한 태엽장치에서 시계추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시계추에는 자체의 동학이 있지만 자신의 운동을 통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저자는 “전후의 삶을 통해 이런 잔인한 동요의 기억과 싸웠다고 믿는다.”는 수준에서 매듭짓는다. 저자가 힘을 모으는 지점은 학살된 이들을 베트남 사람들이 추모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저자가 에밀 뒤르켐의 수제자 로베르 에르츠의 ‘상징적 양손잡이’ 개념을 주된 화두로 붙잡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아노미 개념에서 보듯 뒤르켐은 사회적 유대감에 관심을 가졌다. 에르츠는 그다음 단계, 그러니까 사회적 유대가 격렬하게 깨졌을 경우 어떤 양상이 벌어지고 이를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이를 위해 제안한 것이 양손잡이 개념이다. 오른손에게 바른 손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왼손도 함께 바라봐 온전한 양손잡이가 되자는 것이다. 영웅적 군인이 오른손이라면, 학살 피해자는 왼손이다. 저자는 실제 현지조사를 통해 학살 피해자들이 베트남 내부에서도 왼손 취급당했음을 드러낸다. 전쟁 이후 베트남도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수행했다. 전선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국가는 전쟁영웅이란 칭호를 부여했고 기념비와 묘지를 바쳤다. 그러나 균열도 드러난다. 북베트남 전사들은 전쟁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투입됐다. 해서 시체를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 웅대한 기념비 옆에 묻으면 된다. 접경지대격인 베트남 중부의 학살 피해자는 다르다. “영웅적 전사자라는 도식 안에서 보면, (학살 피해자들의) 집단 무덤은 재생의 가치가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편의 유해와 상대편의 유해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모호한 대상”이다. 그래서 “혁명 열사들의 유해를 모아 마을의 중심부로 가져왔을 때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유골은 논으로 바꿀 예정인 곳에서 외곽의 모래투성이 황무지로 옮겨졌다.” 비극적 죽음에 눈물 흘릴 공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해원을 위해 사당을 짓고 무당을 불렀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의지할 곳을 잃은 부녀자들이 절과 무당집에 몰려갔듯, 베트남 주민들도 민간전통신앙에 의지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다. 문제는 국가적 공식 기억에 맞지 않고 과학적 사회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베트남 정부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이는 딜레마를 낳는다. 전쟁 당시 베트남 인민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외국 군인들이 조상을 모신 사당을 부수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을 뿐 아니라, 장사조차 못 지내게 시체를 마구 훼손하고 뒤섞어 버린 만행이었다. “전쟁 동원 체제에 가장 뚜렷한 기여를 한 조상 사당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 정치적 불순성과 문화적 후진성의 상징으로 꼽힌 것은 아이러니다.” 이 갈등은 1990년대부터 수면 위로 치솟는다. 여러 가지 형태의 이장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조성한 공식 무덤에서 개인 사당으로 유골을 빼내오거나, 버려졌던 유골을 국가의 공식 무덤에 안치하는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베트남전은 이데올로기나 박정희 평가 문제,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의원의 반발(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도 북한에 사과해야 하느냐.”고 공격했다.) 등이 있어서 한국에서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빙빙 에둘러 왔지만, 사실 책의 백미는 이 부분이다. 하나만 꼽자면, 하미 전쟁열사묘지에는 ‘전쟁범죄 희생자 35인의 공동무덤’이 있다. 1986년 9월 하미에서는 하미 근처 하지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35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주민들은 이들 역시 열사라 보고 공식묘지에 묻어 달라고 요구하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열사란 직접 적과 맞서 싸운 이들”이라서다. 주민들 압력으로 결국 무덤은 조성되지만, 정부는 이들 묘를 파내려고 한다. 그때 주민들은 “낫이나 작대기를 무기 삼아 들었다.” “오늘부터 너희가 우리 적”이라면서. 저자는 무차별적인 학살 때문에 그 수많은 뼈와 해골 가운데 어느 것이 누구의 유골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한 구 한 구 파내 정성스럽게 쓰다듬고 정리하고 가지런히 다시 묻는 이장의 과정 자체가 후손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커다란 치유가 된다는 증언들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저자가 끊임없이 길어올리는 것은 ‘농민인지 전사인지 구분 안 되는 악독한 빨갱이 베트콩’ 대신 ‘조상 모시면서 제 땅을 제가 파먹고 살길 원하는, 농경사회라면 흔히 발견되는, 한국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농민의 얼굴’이다. “농민 전사들이 군복을 입은 정규군 병사들과 악수를 하고, 정치 장교들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연설을 참고 들으며, 달 없는 밤을 틈타 재빨리 집으로 달려왔을 때, 그들이 여전히 군인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까 “체제가 공간의 균질성과 정체성의 불변을 고집한 반면, 삶으로 직접 겪는 냉전의 현실은 모순적 공간이나 변증법적 공간이었고, 이러한 현실 속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 동일자가 아니라 쉽게 변화하는 존재였으며, 이런 변형성이야말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했다.” 모두가 베트콩이었으되, 그 어느 누구도 베트콩이 아닌 이런 상황을 저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07년 미국 인류학회가 수여하는 클리퍼드 기어츠상을, 후속작 ‘베트남전쟁의 혼령들’로 2009년 미국 아시아연구협회가 주는 조지 카힌상을 받았다. 해서 책 앞에는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의 서문이 붙어 있다. 한 구절 따온다면 이렇다.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들은 정치적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위해 죽은 이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가족들에게서 그들을 앗아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자(死者)들을 역사의 행위자가 아니라 도구로 뒤바꾼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지금까지도 격렬한 이념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연구가 수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자는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손잡고 ‘한국전쟁을 넘어서’라는 국제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다려지는 부분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스핑크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스핑크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7일 오후 11시 10분 EBS ‘다큐10+’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방영한다. 거대한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의 신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웅크린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 모양을 한 이 조각상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는 늘 궁금증의 대상이다. 과학자들은 마음이 급하다. 세계적 관광지로 떠올라서다. 앞에는 화려한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선 데다 차량과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주변의 건설열기도 뜨겁다.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개발이 이뤄지기 전에 뭔가 밝혀 내야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간 곳은 기자 지구. 기자 남쪽으로 480㎞ 떨어진 아비도스는 죽은 자들의 도시다. 딱 눈에 띄는 피라미드는 없는 곳이지만 이집트를 세운 역대 파라오들이 사막의 모래 밑 무덤에 매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집트 첫 왕조의 제1대 왕으로 알려진 파라오 아하(Aha). 이 무덤에서는 모두 35명의 건강한 성인의 뼈가 출토됐다. 그런데 검증 결과 이들은 모두 20살 이하의 어린 나이인 데다 모두 집단매장 형태로 묻혀 있었다. 여러 마리의 사자 뼈도 함께 출토됐다. 학자들은 이를 순장으로 여긴다. 사자가 함께 묻힌 것은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한다. 스핑크스를 자세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점들이 보인다. 스핑크스의 앞발은 피라미드처럼 수천개의 돌덩이로 구성됐다. 반면 상체와 머리는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이 거대하고 수많은 돌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연구 결과 스핑크스는 기자 고원에 있는 자연석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다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다. 기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석공으로 일한 일꾼으로 하여금 실제 미니 스핑크스를 만들어 보도록 했다. 고대 연장을 고스란히 재현한 뒤 이 연장으로 직접 만들어 본 것이다. 몇주간의 고된 노동 끝에 미니 스핑크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그만 스핑크스 제작에도 그토록 많은 품이 드는데 거대한 스핑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동원됐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자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를 지닌 스핑크스는 두 개의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다. 여기엔 두 명의 파라오가 묻혀 있다. 아버지인 쿠푸 왕, 그리고 아들인 카프레 왕이다. 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얼굴이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얼굴에서 따왔을 것으로 본다. 누구의 얼굴이냐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린다. 얼굴만 가지고 따지는 게 그렇다면, 다른 증거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의문을 추적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등병 편지 후 62년, 제발 유골이라도…”

    “이등병 편지 후 62년, 제발 유골이라도…”

    오빠는 27일이면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스물한 살의 이등병은 1950년 6월 훈련소에서 편지를 보냈다. 휴가 예정일 이틀 전인 6·25전쟁이 터졌다. 그 후 오빠를 만나지 못했다. 전사통지서도 받지 못한 채 오빠는 62년째 ‘행방불명’ 상태로 남아 있다. 동생 김정혜(76·가명)씨는 지금까지 오빠의 ‘휴가’를 기다리고 있다. 외아들을 잃은 가족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어머니는 몸져 누웠다. 생계가 막막했던 김씨는 서울 이태원의 한 술집에 팔려갔다. 너무 지우고 싶었던 일이라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곧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혹독한 가난은 평생을 쫓아왔다. 오빠를 앗아갔다는 생각 때문에 북한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황해도 사람을 만나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오빠의 유골만 찾으면 한이 없겠다.”는 김씨는 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 유전자를 제공했다. 몇 년 전에도 유전자를 채취했지만 “새것을 내면 아무래도 더 낫겠지.”라는 생각에 한 번 더 유전자를 건넸다. 국유단에는 이날 현충원을 찾은 김에 유전자를 제공하려는 유족들이 줄을 이었다. ‘6·25 무명 전사자’라는 이름으로 가족과 형제를 잃은 이들이다. 아버지의 유골을 찾고 있다는 강종석(69)씨는 “제발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형을 찾기 위해 유전자를 제공한 오귀선(74)씨는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면서 “죽기 전에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방문했다.”고 밝혔다. 하루 동안 국유단에 유전자를 제공한 유족은 652여명에 달했다. 2000년 육군본부의 ‘유해발굴과’로 시작한 국유단은 지난달까지 미수습 전사자 13만여명 중 6500여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79명에 불과하다.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족의 유전자 시료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10개월가량 걸린다. 국유단 측은 유족들의 유전자 채취가 늘면 신원 확인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달까지 유족 1만 9500여명의 유전자를 확보했다. 국유단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전사자들의 매장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지만 이미 고령인 생존자들로부터 얻는 정보라 정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북 칠곡 다부동전투 현장처럼 고속도로와 터널 등으로 훼손된 곳도 많다. 국유단 직원 180여명은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직원 가운데 발굴과 감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원은 60여명이다. 임나혁(37·여) 감식관은 “앙상한 뼈만 남아 있지만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자식”이라면서 “전쟁 1세대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한 구의 유해라도 더 확인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프랑켄슈타인이 현실로? 두개골 발달하는 희귀병 男

    영화 속 ‘프랑켄슈타인’ 또는 ‘엘리펀트 맨’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외모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한 남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동북부의 라호르시에 사는 시안 뭄타즈(22)는 기이하게 변형된 머리와 발, 손 때문에 평생 차별의 고통을 겪었다. 현재로서 그가 앓고 있는 병은 불규칙한 뼈의 성장과 두개골 융기 등의 증상을 보이는 희귀증상인 프로테우스 증후군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정확한 병명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2년간 뭄타즈의 몸은 쉬지 않고 성장해 왔으며, 현재까지도 머리 등 일부 신체부위가 성장을 멈추지 않아 변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는 “가족들은 모두 정상이지만,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얼굴과 팔, 다리의 크기가 남달랐다.”면서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고 피하곤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는 신의 복수로 이러한 병을 얻게 됐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가족과 친구들의 많은 격려로 치료받을 용기가 생겼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그가 현재로서는 치료방법이 없는 프로테우스 증후군이 아닌 치료 가능한 병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라호르시 관계자는 “우리의 ‘거대한 친구’(Giant Friend)인 뭄타즈가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치료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그 아프간 女, 예쁜 코 되찾았다

    그 아프간 女, 예쁜 코 되찾았다

    코가 잘린 얼굴로 시사주간 타임 표지(오른쪽)에 등장했던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이샤 무함마드자이(왼쪽·22)가 미국에서의 치료로 3년 남짓 만에 얼굴을 되찾고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아이샤가 자신을 돌보던 자선기관을 떠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9년 당시 18세였던 아이샤는 남편의 학대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가 붙잡힌 뒤 법원의 즉결 재판에 의해 코와 두 귀를 잘렸다. 이후 가까스로 아프간 주둔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달아난 아이샤는 이듬해 정치 망명을 허가받고 자선 재단의 도움으로 인공 코와 귀를 이식하는 수술을 무료로 받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 초기 재활을 도운 캘리포니아주 웨스트힐스병원의 비영리기관 그로스 번 센터가 아이샤의 뼈와 조직, 연골 등으로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아이샤는 한때 자신이 의탁하던 쉼터에서 자신의 몸을 벽에 부딪치거나 손가락을 깨무는 등 자학 증세를 보였으나 병원과 자선재단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적응 훈련을 마치고 최근 독립하게 됐다. 아이샤를 돌보던 자선재단 관계자들은 아이샤가 정의를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해 왔으며 아이샤 자신도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희귀 질병’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 ‘IRX5’ 발견

    지구상에 단 몇 명만 앓고 있다는 ‘하마미 신드롬’(Hamamy syndrome)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가 골다공증, 심장병 등 주요 질병 치료에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IMB(A*STAR’s Institute of Medical Biology)를 비롯한 미국, 스위스 공동 연구팀은 최근 ‘하마미 신드롬’ 을 일으키는 유전자인 ‘IRX5’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하마미 신드롬’은 외관상 사람의 눈과 눈 사이가 극도로 멀어보이며 귀는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시력과 청력에 장애가 있으며 뼈는 부서지기 쉽다. 논문의 제 1 저자인 IMB 캐롤린 버나드 박사는 “‘하마미 신드롬’은 극도로 희귀한 질병으로 갓 태어난 아기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발생한다.” 면서 “유전자 ‘IRX5’는 자궁 속 인간 발달 뿐 아니라 성인에게 있어서 많은 신체 기관의 기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인간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버나드 박사는 “‘IRX5’는 골다공증, 심장병, 빈혈과 같은 질병치료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왜 인간이 민족에 따라 다른 생김새를 가졌는지 등 진화적인 관점에서도 의문을 푸는 뼈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유전자 관련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최신호에 게재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내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번역 등을 통해 영국 정치 경제사에 대한 수준 높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두 사람을 더 다루고 싶다 했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지만 영국 노동당의 핵심 이론가인 리처드 토니(1880~1962)다. 케인스가 현대 세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명의 삶은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 펴냄)가 먼저 나왔다. 타이밍도 기막히다. 진보 논쟁이 한창이라서다. 오웰은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동물농장’의 인세가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마지막 소설인 ‘1984’가 거둘 놀라울 성공을 미처 누리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숨졌다. 외롭고 가난한 것보다 오웰을 더 괴롭힌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물농장’을 반공 우화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슬퍼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을 비판한 것은 맞다. 2차대전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스탈린의 패악에 눈감고 심지어 아첨까지 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못 견뎌 했다. “거짓을 말하고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 정치적 대의를 진전시키는 길이라는 사고”와 “독재 방식, 비밀경찰, 역사의 체계적 조작을, 자기 편인 한 수용할 태세를 완벽히 갖춘 상태”가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유럽 위기의 뿌리라 봤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웠다면 스탈린은 책을 다시 썼다.”는 엄연한 진실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오웰이 보기에 “좌파 지식인이 스탈린을 숭앙”하는 꼴은 “글래스고 빈민가 아이들이 알 카포네를 숭배”하는 것과 똑같다. 1943년 11월부터 영국 노동당 내 좌파그룹 기관지 ‘트리뷴’에 소련 공산당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가 하면 소련에 아첨한 지식인들에게 아예 대놓고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1949년에는 소련 공산당의 선전 공세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영국 외무부의 정보조사처(IRD)에다 영국 내 공산당 비밀 당원과 동조자들 35명의 명단을 넘기기도 했다. 이런 전력들 때문에 오웰은 좌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노동계급을 동경했으나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배반할 수 없어 결국 중간계층으로 되돌아갔고 그 뒤 비뚤어진 선입관으로 사회주의를 비난한 배신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받쳐주지 않을 때면 그의 글과 책은 늘 인쇄가 미뤄지거나 거부당했다. 후대 좌파에게도 비판 대상이었다. 문화 연구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오웰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웰이 ‘비판자들의 상상 이상으로 더 뿌리 깊은 신념을 지닌 사회주의자’였다고 본다. 실제 오웰은 평생 사회주의 혁명을 염원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반(反)파쇼’를 위해 트로츠키 민병대원으로 스페인내전(1936~1939)에 참가, 목에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전간기와 2차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 믿었다. 이를 위해 오웰은 영국 노동자들이 식민지 보유로 인한 이득을 포기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하락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 산업국가의 모든 좌파 정당은 실제로는 가짜”라는 질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서구 좌파들에게 ‘노동자 국제 연대 운운하면서 잘난 척 그만하고 식민지부터 먼저 포기해 보시지.’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가 오웰을 두고 “사회주의를 국제적 맥락에서 보려 했던, 제국주의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마지막 사회주의자”라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직한 우파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라면 오웰의 내부 고발 행위에 함부로 박수를 쳐댈 수 없을 것”이라 평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영국 전통에 뿌리 박은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들이다. 오웰은 거창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남을 깔보는 중간 계급적 우월감이라는 최악의 흔적”을 지닌 좌파 엘리트 지식인들을 경멸했기에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윤리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좌파 애국주의’로 이어진다. 애국주의, 하면 벌써 좌파들은 눈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단어는 극우 맹동 세력, 반동분자나 쓰는 말 아니던가. 해서 애국가를 그토록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웰은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그가 답답해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6장 ‘좌파 애국주의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늙은 보수주의자의 뼈 위에 사회주의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란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한 묵직한 표현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붙이자면, 1949년 영국 정부에 공산당 동조자 35명의 명단을 넘긴 사건은 ‘세작질’이 아니다. 오웰은 명단만 넘긴 게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선전 선동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정부에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전후 영국에서 미국과 같은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닥치지 않은 것은 오웰의 그런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는 평가는 거기서 나온다. 이 평을 누가 했을까. 바로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다. 추악한 독재자들과 거래했다며 마더 테레사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여기저기서 희화화되곤 하는 바로 그 다혈질 좌파 히친스 말이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체조직 기증으로 마지막 사랑 실천

    인체조직 기증으로 마지막 사랑 실천

    평소 나눔의 삶을 살아온 의사가 인체조직 기증으로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했다. 7일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고(故) 박준철씨에게 지난달 열린 대의원 총회에서 감사패를 전달했다. 고인의 아들인 박예찬(10)군이 아버지를 대신해 감사패를 받았다. 부인 송미경씨는 “남편의 동료였던 의사들이 의사로서 훌륭한 일을 한 남편에게 상을 줘 감사하다.”면서 “자랑스러운 일을 한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의사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인체조직을 기증함으로써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국내 기증문화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감사패 전달의 의미를 설명했다. 경기 김포시 하나성심병원 일반외과 과장이던 박씨는 2002년부터 필리핀과 아프리카 등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등 나눔의 철학을 실천해 왔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평소 고인의 성품을 잘 아는 동료 의사의 권유로 인체조직을 기증했다. 인체조직은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피부·뼈·연골·인대·건·혈관·심장판막 등을 말한다. 고인의 인체조직 기증은 고통받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연장하고 제2의 삶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선물이 됐다. 의사가 사후에 한국인체조직기증원에 인체를 기증한 것은 박씨가 처음이다. 고인이 기증한 인체조직으로 150명의 환자들이 제2의 삶을 열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원 관계자는 “고인의 결정은 의료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출구 못 찾는 진보당] 조국 “대표·비례당선자 사퇴를”

    [출구 못 찾는 진보당] 조국 “대표·비례당선자 사퇴를”

    통합진보당의 19대 총선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 대해 진보 진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이 배제된 진보 진영의 선민 의식이 낳은 예고된 결과물이라는 지적부터 추가적인 진상 규명과 비례대표 당선자 전원 사퇴 요구도 제기됐다. 조국(오른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트위터에 “자기 정파의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는 의식과 행태가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이어 “부정선거 책임자를 중징계해야 한다. 자기 사람 보호에 급급해 검찰 수사에 당의 운명을 맡기는 선택은 하지 말길 바란다.”며 “당 대표도 물러나고 외부 인사를 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당 대회를 준비하라.”고 촉구했다. 조 교수는 당 쇄신 의지를 보여 주는 차원에서 비례대표 당선자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과잉 우편향 한국 정치에서 진보 정치를 지키고 싸워 온 사람들의 당으로, ‘사즉생’이 ‘생즉사’”라고 강조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원로로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이끌고 있는 백낙청(왼쪽)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는지 지켜보고 있다.”며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최근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기존의 운동권 조직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독재시절의 억압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폐쇄적 조직문화가 그대로 유지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진보당에 대한 쇄신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권혜진 교육희망네트워크 교육위원장은 “특정 정파가 당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는 사고가 집착이 되고 진보 정치가 대중에게 평가받는 과정에서 소통이 배제된 게 문제로 본다.”며 “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은 하나의 개별 사건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누적된 세력 간의 확장이 터져나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사무처장은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사실이냐 아니냐의 갑론을박을 벌이면 국민이 용납할 수 없다.”며 “뼈를 깎는 쇄신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영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부정 경선을 인정했지만 정작 누가 어떤 이유로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반드시 추가적인 진상 규명과 그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학자들은 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 모두가 부정 경선이라는 정치적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진보당의 19대 비례대표 당선자 1~6번 가운데 당내 경선을 통해 상위 득표자에 오른 두 명은 1·2번에, 청년비례대표 한 명은 3번에 배치됐다. 외부 영입 인사는 비례대표 4·5·6번에 공천됐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진보당의 비례대표는 정당성을 상실한 만큼 19대 국회에서 정상적인 의정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총체적인 부정선거인 만큼 비례대표 리스트 모두가 문제가 된다.”며 “1~3번이 사퇴하고 선거법에 따라 후순위가 자동 승계한다고 해도 부정선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진보당이 비례 6석을 모두 포기하는 용기를 보여 줘야 한다.”며 “비례대표 문제를 편의적으로 처리해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동환·이범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론] 추락하는 원전 신뢰 되찾아야 할 때/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시론] 추락하는 원전 신뢰 되찾아야 할 때/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최근 원전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중고부품에 이어 모조부품 사용, 한국수력원자력 고위간부의 납품비리 연루 등 각종 비리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잦은 고장과 은폐 등으로 불안하게 해왔던 터라 이번 비리는 원전 안전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든다. 게다가 사업자는 대국민 사과는커녕 원전 안전과 무관하다느니, 국내제품이 싸고 좋다느니 동문서답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감독자는 이번에도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 누구 하나 초연하게 나서 문제의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사이 또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 2월 고리 1호기 계획예방정비 기간에 일어났던 인적 오류, 절차 무시, 기기 고장, 늑장보고 등. 그도 모자라 이젠 고리, 영광, 월성 원전 납품비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울진은 괜찮을까, 신고리, 신월성, 신울진은 온전할까? 이젠 우리 상상의 한계를 훌쩍 넘어섰다. 원전 부품은 심사를 거쳐 부품 공급업체로 등록된 경우에만 납품자격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특정업체가 오랜 기간 독점적으로 부품을 공급하게 돼 유착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따라서 이번 울산지검의 수사로 고구마 줄기처럼 원전 비리가 줄줄이 뽑혀져 나오는 것이다. 돌아보건대 사업자와 규제자는 얼마나 많은 다짐과 약속을 해왔던가. 그들의 설익은 탁상공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원전 뒤안길에선 뿌리가 썩어가고 있었다. 뿌리가 썩으면 약한 바람에도 나무가 쓰러질 건 명약관화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무엇보다 30년 넘게 닫힌 조직문화와 솜방망이 규제문화, 유아독존 원전 당국의 합작품이다. 더욱이 세계 최고 운영실적, 세계 최저 고장사례 등의 숫자와 달콤한 원전 수출 등이 대한민국 원자력의 울타리를 높이는 사이 정부와 당국은 그들만의 동아리에서 안주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교훈은 자연재해보다 인재(人災)가 훨씬 더 무섭다는 거다. 대형지진과 지진해일이 뒤따랐지만 정작 후쿠시마 원전을 망가뜨린 건 사람들이었다. 원천적 설계 오류, 전문가 경고 무시, 사업자 늑장대응, 감독자 우왕좌왕. 근데 이런 인간재해보다 더 자주 원전을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각종 ‘부품 고장’이다. 그런데도 우리 원전 관계자는 별거 아니라는 투다. 녹슨 기기를 몰래 하청업자에게 건네주고 새것으로 둔갑시킨 다음 웃돈 주고 사도 미안하지 않고, 외제 밀봉 단품을 빼내어 베껴놓고도 국내특허 받고 성능실험까지 국산화에 한몫했다고 오히려 자랑이다. 만약에 이 사실이 외국 정품업체에 알려지면 지적재산권 분쟁은 물론 우리나라 원자력 위상은 말이 아니다. 이쯤 되면 납품비리를 넘어 사업윤리 문제요 상업도덕 문제이다. 하루빨리 치유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더 터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원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후쿠시마에 이어 국내원전 사고 은폐, 납품비리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정부와 당국이 이럴 때일수록 국민과 슬기롭게 대화하지 못한다면 해외 수출은커녕 국내사업도 앞날이 암울하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현실적 대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신성장동력, 2030년 세계 3대 원전수출강국 등으로 원자력이 자리매김하려면 설비투자가 능사가 아니다. 조직과 사람과 문화가 모두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구태의연한 수직적·폐쇄적 낡은 조직을 뜯어고쳐야 한다. 무사 만능주의가 팽배한 공기업의 틀을 깨고 나와 거대 국제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무한경쟁체제를 들여와야 한다. 처절한 세계 원전 장터에서 공기업이 설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원전의 국민 신뢰회복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추상적이고 애매한 약속보다는 작은 실천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원전이 내 집 마당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눈앞의 해외 수출을 걱정할 게 아니라 발등의 국민과 환경부터 돌봐야 한다.
  • 성공회大서 첫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은 박형규 목사

    성공회大서 첫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은 박형규 목사

    지난달 30일 성공회대학교가 문을 연 지 98년 만에 처음으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신학과 창립 30주년을 겸해 이 대학이 기획한 명예 신학박사 학위의 수여자는 다름 아닌 박형규(89·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목사.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민주화운동에 몸담아 영혼을 살랐던 ‘길 위의 신학자’요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통한다. 현대사는 물론 한국 개신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목회자. 지난해 부인과 사별한 뒤 거처를 옮겨 살고 있는 경기 용인의 자택을 1일 오전 찾아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내가 성공회 시설과 공간을 남달리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겠지요.” 전날 학위를 받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웃음 섞어 돌려준 대답. 덤덤한 반응과는 다르게 박 목사와 대한성공회의 관계는 골이 깊다. 그 유명한 서울 중구 오장동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 시절, 학생이며 노동자들과 밤을 세워 민주화를 놓고 토론했던 곳이 성공회 수양관이고, 독재 권력의 손을 들게 한 1987년 6월항쟁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차린 곳이 성공회 주교좌성당이다. 그래서 성공회대는 그에게 학위를 준 배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불의와 폭력을 이겨낸 참 신앙인’ ●길위의 신학자, 실천하는 신앙인 “사실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고 몸도 약할 뿐만 아니라 성정도 온순해 그 험한 목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박 목사가 가시밭 같은 ‘목회의 길’을 택한 건 4·19혁명 때였다.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 궁정동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고 결심한 게 바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결심과 다짐답게 박 목사는 문민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군사정권 시절 무려 6차례나 감옥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교회라면 구원의 말씀 가르쳐야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그의 회고록 제목은 남달랐던 ‘목회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실천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요즘 신학생들은 어떻게 보일까. “신학생이라면 세상과 사회의 여러 문제를 신학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고 때로는 저항도 할 수 있어야지요. 하나님의 축복만 받고 편안하게 살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게 당연합니다.” 예수님과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불의에 무관심하지 않는다는 박 목사. 그래서 교회가 대형화되면 될수록 타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고 ‘제 복’만을 찾아 교회를 드나드는 일그러진 신앙은 예수를 배반하는 으뜸의 지름길이란다. “근본적으로 구원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고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지요. 교회라면 응당 사람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 가르쳐야 할 텐데….” 1950년대 서울 공덕교회 담임 시절 교인이 불어나자 “내 뜻대로 목회를 하지 못하겠다.”며 가족에게 거처도 알리지 않은 채 불쑥 속리산으로 떠났던 그다. 결국 4·19혁명 때 꽃다운 청춘들의 아까운 희생을 보고 돌아와 뼈에 새긴 ‘교회다운 교회’. 그는 1992년 은퇴할 때까지 그 원칙에서 조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도시산업선교회며 사회선교협의회를 설립해 약하고 가난한 자의 편에 늘상 섰던 ‘개혁과 실천의 목자’다. 그래서일까 함석헌 선생은 그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줬고 박 목사는 그 별명을 아주 좋아했단다. ‘하나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 ●하나님의 종 노릇 제대로 한 것인지… “글쎄요 돌이켜보면 원치 않았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하나님이 정해 밀었던 까닭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종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양심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험한 목회활동에 반발해 울면서 살다가 나중엔 자신보다 더한 투사가 됐던 아내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헛된 목회의 삶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광우병 조사단 방미 3대 체크포인트

    광우병 조사단 방미 3대 체크포인트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BSE) 젖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민관 합동 조사단이 3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정부는 조사단의 열흘간 현지 활동 결과를 바탕으로 방역협의회를 열어 추후 대책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소고기 수입 여부를 협상 중인 타이완 정부도 이날 조사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태국의 미 소고기 수입 중단 보도와 관련,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태국은 30개월령 미만의 뼈 없는 소고기를 수입해 왔으며, 광우병 발생 이후에도 수입 금지 조치를 하지 않고 계속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조사단이 미국 현지에서 점검해야 할 체크포인트는 비정형 광우병의 안전성, 살코기의 안전성 등 세 가지로 집약된다. 정부는 지난 25일 공개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농장의 광우병이 ‘정형’이 아닌 ‘비정형’으로 전염성이 약하다고 밝혔다. 오염된 사료를 먹어 발생하는 정형과 달리 비정형 광우병은 늙은 소에게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용호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장은 이날 농식품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비정형 광우병으로 변형된 단백질을 뇌에 직접 주입했을 때 전염된다는 실험 결과는 있지만, 먹어서 전염된다는 연구 결과는 나온 적이 없다.”면서 “과학자가 가설을 갖고 공포로 이끌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정형 광우병에 대한 실험 역시 변형된 단백질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서 “비정형이라 괜찮다는 미국 정부의 말을 수용할 게 아니라 한국에서 생산하는 도축시설 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브리핑에서 “소의 살코기나 우유를 먹어서는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3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광우병에서 안전하다는 얘기다. 반면 우 교수는 “뇌·척수 등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해야 한다는 규정은 건강한 소에 어울릴 뿐 광우병에 걸린 소는 전체가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미국도 광우병에 걸린 소를 SRM을 제거한 뒤 먹지, 왜 전체를 폐기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사무국장은 전체 도축되는 소의 0.1%만 광우병 검사를 하는 미국의 도축체계와 동거 축 조사를 제대로 못해 내는 소 이력관리시스템의 부실함을 비판했다. 하지만 박 본부장은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비틀거리는 등 광우병 유사증세를 보인 소를 검사하면 750점을 주고, 정상 소를 검사하면 0.2점을 책정한다.”면서 “이 점수가 7년 동안 30만점 이상 쌓여야 OIE로부터 광우병 통제국 지위를 부여받는데, 한국의 점수가 47만점이고 미국 점수는 636만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전체 도축 소의 0.1%를 검사하지만,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검사를 실시한다는 뜻이다. 홍희경·임주형기자 saloo@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양악수술 ‘치료와 미용’ 두 얼굴

    [Weekly Health Issue] 양악수술 ‘치료와 미용’ 두 얼굴

    최근 영화배우 신은경이 체험담을 털어놓으면서 양악수술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고백에서 보듯 양악수술은 지금까지도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많다. 예쁜 얼굴을 갖고 싶다는 ‘욕망’과 수술을 통해 턱뼈나 안면기형 등을 치료하고 싶은 ‘필요’ 사이에서 수많은 잠재적 환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잘만 하면 운명이 바뀔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후유증으로 후회를 곱씹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양악수술에 대해 아이디병원 박상훈 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먼저, 양악수술이란 어떤 수술인가. 턱교정술의 한 방법으로,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위턱(상악)과 아래턱(하악)을 동시에 절골하는 수술법이다. 간단하게는 위턱과 아래턱을 잘라 분리시킨 뒤 정상교합에 맞게 턱뼈를 이동·고정시켜 턱의 위치와 모양을 바로잡는 치료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양악수술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치아를 지지하는 턱뼈가 변형되면 치아도 정위치를 벗어나 부정교합이 되기 쉽다. 치아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으면 음식을 끊거나 씹는 저작력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 만성 소화장애나 턱관절장애로 인한 두통, 목 통증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용적인 문제도 있다. 얼굴뼈의 변형이 심하면 남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외모에 자신감을 잃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우울증을 보이는 환자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양악수술을 통해 치아와 턱의 기능 회복은 물론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다. ●양악수술이 필요한 질환은 무엇인가. 아래턱이 길게 자란 주걱턱(하악전돌증), 아래턱이 작고 뒤로 밀려 있는 무턱(하악왜소증), 얼굴의 좌우가 다른 안면비대칭, 얼굴의 중앙부가 길게 자란 긴 얼굴 등이 대표적이다. 또 치아나 잇몸뼈와 상관없이 턱뼈 자체가 튀어나온 골격성 돌출입(양악전돌증), 입을 다물었을 때 위아래 치아 사이에 공간이 있거나 안면 외상, 선천적 기형도 양악수술이 필요한 질환이다. ●질환 유형별에 따른 양악수술의 개요를 설명해 달라. 주걱턱은 아래턱뼈 뒷부분을 잘라 튀어나온 만큼 뒤로 밀어 고정하며, 돌출입은 위아래 턱뼈를 함께 뒤로 밀어넣어 고정하는 게 보통이다. 이 경우 위아래턱의 돌출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뼈를 밀어넣을 길이와 그에 따른 피부·근육 등 연부조직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긴 얼굴은 주로 길게 자란 위턱을 잘라 얼굴을 줄이면서 턱의 모양을 바로잡아 준다. 특히 안면비대칭은 얼굴형을 개선하기 위해 양악수술과 함께 턱끝이나 광대뼈를 조절하는 안면윤곽술을 동시에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양악수술 추이와 특성은 무엇인가. 양악수술 대중화에 연예인들이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수술로 바뀐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게 됐다. 여기에다 수술기법의 발달도 한몫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교정보다 수술을 먼저하는 선수술 방식과 ‘노타이(No-tie)양악수술’이다. 이 수술법은 음식을 먹거나 말할 때 턱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정상 범위를 정확히 측정한 뒤 절골된 위아래 턱뼈를 고정하는 원리다. 일반적인 양악수술은 턱관절의 정상 범위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해 절골된 턱이 스스로 정상 범위에 적응하게 했는데, 이 경우 위아래 치아를 묶는 보조장치인 ‘악간고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노타이 방식은 악간고정이 필요없어 수술 직후 입을 벌리거나 말하고 숨쉴 수 있으며, 기도폐색·저산소증·흡입성 폐렴의 위험도 크게 줄였다. 본원에서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악간고정 방식과 노타이 수술을 비교한 결과 노타이 수술이 일반 양악수술에 비해 호흡량이 2∼3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호흡·음식섭취·언어 구사도 노타이 방식이 훨씬 용이했다. ●그럼에도 양악수술 부작용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양악수술의 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부작용 논란은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만큼 양악수술을 받은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부작용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수술 후 기도확보와 관련이 있다. 수술 자체가 기도 주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수술 중의 출혈이나 부기에 따라 기도확보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응급상황이 생길 수 있어 대책이 부실하면 사고 위험이 높다. ●단순한 미용 목적의 양악수술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일반적으로 시장에서는 폭발적인 수요 증가단계를 거쳐 안정기로 진입한다. 우리 나라도 점차 안정기로 진입하는 단계로 보인다. 막연한 기대 단계에서 벗어나 수술에 따르는 위험성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점차 의료계와 환자 사이에 균형이 잡히면 그런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뭔가. 양악수술은 다른 성형수술에 비해 수가가 높아 무조건 수술부터 하려는 치과나 의원이 적지 않다. 양악수술의 적응증이 아닌 사각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경우 안면윤곽술만으로도 개선이 가능하며, 앞턱이 뭉특한 경우도 미니V라인수술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양악수술이 만능은 아니다. 따라서 증상에 따라 적절한 수술법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인들이 양악수술에 앞서 고려해야 할 점이라면…. 양악수술은 전신마취를 해야 하며, 얼굴의 수많은 혈관과 근육, 신경을 피해야 하는 고난도 수술이다. 턱과 치아의 교합은 물론 턱의 이동에 따른 얼굴형의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수술을 할 때는 성형외과·구강악안면외과·교정과 전문의의 협진이 가능한 병원인지 살펴야 하며, 집도의의 임상경험, 마취과 전문의의 상주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양악수술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과다출혈인데, 이런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경험과 혈액은행이 필수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역사스페셜(KBS1 밤 10시)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았던 것일까. 2만여년 전 제주도는 마지막 빙하기의 영향으로 한반도와 붙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인들은 걸어서 제주도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제주도까지 갔을까. 다량의 동물 발자국이 발견된 제주도 화석 산지, 그곳에 열쇠가 있다. ●롤링 스타즈(KBS2 오후 4시 5분)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지구야구 대표팀 ‘롤링스타즈’의 에이스 투수 럭키는 엄청난 강속구로 자신의 첫 무대를 장식한다. 하지만 그의 앞을 막아선 타자는 바로 태양계 리그의 전설 칼투스다. 과연 최강 타율을 자랑하는 칼투스와 태양계 리그 최고의 강속구를 가진 슈퍼루키 럭키와의 대결의 승자는 누가 될까. ●일일시트콤 스탠바이(MBC 밤 7시 45분) 경표는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전세계약서로 사채를 쓴다. 이 일로 경표는 수현에 의해 부모님이 있는 하와이 집으로 떠나게 된다. 한편 고등학교 시절 기우의 실수로 교실에서 봉변을 당했던 것을 떠올리는 석진. 기우는 석진이 고등학교 동창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고, 석진은 애써 기우를 외면한다.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0분) 전북 익산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다. 그곳에서 몸의 뼈가 녹아내리고 밀려내려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다영씨와 그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모든 것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모녀의 행복한 일상을 엿본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0분) 제주도 하귀리에 갓물질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해녀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저마다 수다 한 보따리를 풀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때 유독 눈에 띄는 남자가 있으니 바로 해남이다. 그는 해녀들 사이의 청일점, 하지만 경력만 해도 무려 49년째다. 젊을 때 일본으로 원정을 다닐 정도로 물질 실력은 일품인데…. ●검색녀(OBS 밤 11시 5분) 외동딸 연예인 특집으로 유채영, 이유진, 낸시랭이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채영은 톱스타 남자 연예인의 술버릇을 공개하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술이 취한 남자배우는 술을 마시던 중 옆 사람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밖에도 박진영에게 빈정 상한 이유진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 [13일 TV 하이라이트]

    ●피쉬와 칩스(KBS1 오후 1시 30분) 머레인은 피쉬에게 광고지에서 본 파마기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가져다주지 않으면 앞으로 공기 방울을 주지 않겠다는 말에 다급해진 피쉬는 바트와 함께 육지로 가서 파마기를 찾아 나선다. 한편, 이 광경을 몰래 엿보던 칩스는 롤프와 짜고, 롤프의 미용실로 피쉬를 유인해서 뼈를 뺏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유희열의 스케치북(KBS2 밤 12시 15분) 트로트 대중화에 앞장선 젊은 피 장윤정과 박현빈이 무대 위에서 만난다. 기존의 음악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무대가 있다. 바로 ‘청실홍실’이 아닌 아이유의 ‘잔소리’. 맑은 목소리의 아이유는 장윤정이, 감미로운 임슬옹의 목소리는 박현빈이 대신했다. ●TV 속의 TV(MBC 낮 12시 10분) 연예계는 지금 만능 엔터테이너 전성시대다. 배우가 음반을 발매하고 무대에서 노래하는가 하면, 가수들은 연기와 예능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만능돌’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노래와 연기, 그리고 예능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TV 프로그램들을 종횡무진하고 맹활약했던 원조 만능돌을 만나 본다. ●궁금한 이야기Y(SBS 밤 8시 50분) 2010년 10월, 충주의 한 교회에서 백골이 발견됐다. 마룻바닥이 썩어 무너지고, 지독하게 풍겨오는 악취를 견디지 못한 신도들은 참다 못해 마루 공사를 새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백골 시신이 발견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심이 단 한 사람에게 주목되기 시작했다. 바로 교회 마룻바닥 공사를 심하게 반대했다는 원로 목사인데…. ●오프사이드(EBS 밤 12시 5분)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건 한판 승부가 벌어지는 축구경기를 보려는 여성 축구팬들의 이야기다. 이란은 남녀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규율에 따라 여성의 경기장 출입이 금지된다. 이에 여성 팬들은 남장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결국 군인들에게 발각되고, 임시 구치소에 갇히고 만다. ●올리브(OBS 밤 11시 5분) 영원한 뽀식이 코미디언 이용식이 한층 더 풍만해진 체구로 풍부한 인생이야기를 공개한다. 이날 이용식은 인생 중 가장 보람된 일로 ‘희극인의 날’을 만든 것을 꼽는다. 또한 ‘남북 코미디 합동공연’이 자신의 꿈이라며 남다른 포부도 밝혔다. 한편 그는 스타의 건강검진코너에서 중증도의 ‘안검하수증’의 진단을 받으며 충격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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