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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인도 혈통을 끝까지 숨긴 할리우드 여배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인도 혈통을 끝까지 숨긴 할리우드 여배우

    멀 오베론이 누군가 싶을지 모르겠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호흡을 맞춘 ‘폭풍의 언덕’이 대표작이라고 하면 무릎을 탁 칠 올드 영화팬이 있을지 모르겠다. 할리우드 흑백 시절의 여자 스타였다. 본명이 에스텔 멀 오브라이언 톰프슨인 그녀는 1928년부터 1973년까지 은막을 누비다 1979년 11월 23일(이하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서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런데 아름다운 그녀가 평생 간직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1911년 2월 19일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앵글로 인도인이었다는 사실을 꽁꽁 숨긴 채 일생을 보냈다. 이른바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여배우로서 평생을 백인인 척 살았다고 영국 BBC가 16일 전했다. 오베론이 오스카 후보로 지명된 최초의 남아시아 출신 배우란 사실을 2009년 처음 밝혀낸 인물이 미국 작가 겸 연구자 마유크 센이었다. 어릴 적 그녀의 영화를 보고 빠져든 그는 그녀의 과거 얘기를 파헤치는 데 몰두했다. “퀴어(성적 소수자)로서 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적대적인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정체성 일부를 숨겨야만 하는 이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오베론의 어머니 샬럿 셀비는 몰디브 신할라 피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의 피가 섞여 있었고, 아버지는 영국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녀로 남편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1914년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자 3년 뒤 가족이 콜카타로 이주했다. 1920년에 아마추어 연극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 1925년 무성영화 ‘The Dark Angel’에서 주인공 빌마 뱅키를 연기했다. 3년 뒤 프랑스로 떠났는데 한 육군 대령이 자신을 영화감독 렉스 잉그램에게 소개해 준 덕분이었다. 그녀는 잉그램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그런데 2014년 다큐멘터리 ‘멀의 곤란한 일(The Trouble with Merle)’을 통해 실은 셀비가 오베론의 할머니였으며, 셀비의 딸 콘스탄스가 오베론을 낳은 뒤 한동안 둘을 자매처럼 길렀다는 가족사가 밝혀졌다. 이것만 아니었다. 나중에 오베론과 결혼한 영화감독 알렉산더 코다는 그녀를 1933년 작품 ‘헨리 8세의 사생활’에 앤 볼린으로 캐스팅하면서 하얗지 않은 피부색을 설명하기 위해 태즈메니아 출신이라고 꾸몄다. ‘멀의 곤란한 일’을 감독한 마리 델로프스키는 “태즈메니아가 새로운 그녀의 출신지로 선택됐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아주 먼 곳이면서도 일반적으로 영국인들이 핵심을 이루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베론은 호바트 출신의 상류층 소녀였는데 아버지가 사냥 사고로 죽자 인도로 이주한 것으로 포장됐다. 그런데 오베론은 말년에 태즈메니아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호주 언론들이 자부심과 호기심을 품은 채 그녀를 취재하기도 했다. 사실 어머니가 마오리 피가 섞여 있어 아주 터무니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해서 그녀는 태즈메니아가 고향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으며 콜카타 얘기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콜카타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기억한다. 수난다 K 다타 레이 기자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수많은 영국인들의 회고록에 그녀에 대한 언급이 있다”면서 “사람들은 그녀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전화 교환수로 일했으며 유명 식당에서 열린 미인대회 우승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할리우드의 출연 제의가 쏟아져 미국으로 다시 옮겼고, 1935년 ‘The Dark Angel’로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됐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확고한 지위를 부여한 것은 역시 ‘폭풍의 언덕’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캐스팅을 놓고 경합했던 비비앤 리도 인도 출신 여배우였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오베론이 더 유명해서 선택했다고 했다. 당시 일간 뉴욕 타임스(NYT) 리뷰를 보면 그녀가 “브론테가 그린 여주인공의 혼을 완벽하게 포착했다”고 높이 샀다. 1930년대 후반 오베론은 할리우드에서도 소위 빅리그에 들어섰다. 음악 제작자 콜 포터,극작가 노엘 코워드 같은 이들과 스스럼없이 이너서클을 형성했다. 첫 남편 코다와 베테랑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이 남아시아인 특유의 억양을 지우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밝은 얼굴 빛이 백인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지만 오베론의 비밀은 스스로를 짓눌렀다. 센은 “그녀는 여전히 가끔 혼혈이란 점을 침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지만 동시대 기자들은 그을린 얼굴을 지적하곤 했다”고 말했다. 몇몇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거나 변색 치료를 받다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7년 자동차 사고로 다치고 얼굴에 생채기가 생겼는데 촬영감독 루시앵 발라드가 절묘하게 화면에 잡히지 않게 해줬다. 덕분에 코다와 이혼한 그녀는 1945년 발라드와 재혼할 수 있었다. 센은 “몇몇 소식통들은 그 기술이 카메라 앞에 선 멀의 얼굴을 하얗게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기도 했다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오베론의 조카 마이클은 1979년 가족들의 회고록 ‘매력적인 삶들(Charmed Lives)’을 출간했는데 이모가 본명이나 태어난 곳을 발설하면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오베론을 돕는 이들은 똘똘 뭉쳐 그녀의 숨겨진 과거를 감추려 애썼다. “난 다리 아래 충분한 물이 흘러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늘 마음 속에 자신의 과거를 숨겨두고 있었다”고 말했다.수수께끼를 간직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1965년 호주를 방문했던 그녀는 현지 기자들이 그녀의 배경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내자 공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일정을 단축해 귀국했다. 1978년 태즈메니아를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일자 그녀가 갈팡질팡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하지만 오베론은 한 번도 대중 앞에서 진실을 얘기하지 않다가 1979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1983년에 전기 ‘멀 공주- 멀 오베론의 로맨틱 인생’에서야 베일이 벗겨졌다. 저자들은 뭄바이에서 출생 기록을 찾아냈고, 세례 증명서, 인도 친척들이 갖고 있던 편지들과 사진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책을 통해 센은 남아시아 여성이 “그녀를 수용할 수 있도록 기획되지 않은 업계를 탐지하고 이런 사람들과 싸우며 영화 작업을 하는 과정에” 직면했던 수많은 압력들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런 투쟁들을 해결하는 일은 쉬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판단하는 것보다 동감하고 더 많은 배려를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한번도 키스 안한 부부”…아이 탄생의 비밀

    “한번도 키스 안한 부부”…아이 탄생의 비밀

    키스 거부하는 남편의 사정“중학생 시절 아팠던 기억” 남편이 부부관계를 하면서도 스킨십을 거부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최근 방송된 채널A, SKY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애로부부)’에서는 태권도 선수 출신 정주원, 이유빈 부부가 출연했다. 부부는 연애 때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도 키스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내는 정서적 교감을 위해서라도 키스를 원했지만, 남편은 키스가 굳이 필요하냔 반응이었다. 아내는 “관계를 할 때 서로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너무 욕구를 위한 관계만 하는 것 같다”라며 “‘이 관계가 무슨 관계지?’란 생각이 들더라”고 토로했다. 성에 무관심한 남편은 도리어 아내를 밝히는 여자로 취급하며 나무랐다. 아내가 노력을 요구하거나, 원하는 바를 얘기하면 거부하며 자신이 맞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아내는 “얘기를 하고 같이 노력하자고 하는데도 그렇게 말을 잘라버리고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끝내버리니까 내가 욕구를 채우기 위한 사람인가 싶었다. 내가 여자를 보이는 건 맞는지 의구심이 들더라. 그렇다보니 이럴 거면 관계를 하지 말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집안일 다 하고, 돈도 벌어오는데 이걸로 얘기하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라면서도 “나를 바꾸고 싶으면 노력을 더해라. 원하는 사람이 쟁취하는 거다. 또 도전하셔라”며 노력을 요구해 공분을 샀다. 다만 그런 남편에게도 어린시절 상처가 있었다. 남편이 중학교 1학년 시절, 남편은 “중학교 3학년 여자 선배가 하라는 대로 다 했다. 막 만지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더라. 그때 아팠던 기억 때문에...”라고 고백했다. 단체 생활하던 선수부 때는 더욱 선배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남편에게 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홍진경은 “적극적인 아내가 그 누나랑 오버랩되면서 부정적으로 보였을 수 있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 ‘출산드라’ 김현숙 맞아? -14㎏ 여배우 미모

    ‘출산드라’ 김현숙 맞아? -14㎏ 여배우 미모

    배우 김현숙이 새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다. 김현숙은 13일 인스타그램에 “원래 비극이 편한 사람인데 할 수 있는 것과 타인이 원하는 것 중에 그래도 난 프로의 세계로 왔었기에 이제 다양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은, 그러나 코미디도 너무 사랑하는, 더 깊어지길 바라며”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서 김현숙은 원피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여배우 분위기” 등 댓글을 달았다. 김현숙은 최근 14㎏ 감량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김현숙은 지난 2005년 KBS ‘개그콘서트-봉숭아 학당’에서 출산드라 역할로 인기를 얻었다. 지난 5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사내맞선’에 출연했다.
  • “친한 사람 시키나” ”마구잡이 인사” 민주 ‘한동훈 지명’에 격앙

    “친한 사람 시키나” ”마구잡이 인사” 민주 ‘한동훈 지명’에 격앙

    “尹, 이긴 게 아니라 대선에서 지지 않은 것““‘대통령이 국민의 부하냐’ 이러고 나올 판”“법무부장관, 검찰 밖에서 나와야 견제 가능”최 전 정무수석 “아가패 인사” 강력 비판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것을 놓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인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밤 CBS라디오 ‘한판 승부’에서 한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일은 ”친한 사람 시킨 것, 잘 드는 칼 가지고 계속 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누구를 뽑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비호감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이겼다고 하는데 이긴 게 아니라 대선에서 지지 않은 것“이라며 ”그러면 반성하고 자제하고 절제하면서 이 권력을 사용 해야지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이 권력의 주인이 나다 이러고 쓰면 어떡하냐“고 안하무인 인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 장관 부하가 아니다 이랬는데 지금 보니까 기세가 ‘대통령이 국민의 부하냐’ 이러고 나올 판이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한 검사장을 지명한 것은 군에 있던 사람을 바로 옷 벗겨서 국방장관 시키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면서 ”법무장관은 국민을 대표해서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을 지휘, 감독하는 것으로 엄밀하게 얘기하면 검찰 내부에서 나오면 안 되고 검찰 밖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관료 대표를 장관 시키는 나라가, 선진국 어디에 있는가“라며 ”이해관계를 깨고 지휘하라고 보내는 게 장관인데 (이런 식이면) 뭐 하러 장관을 뽑느냐, 그냥 검찰 기수 높은 사람을 장관 시키면 된다“고 했다. 한 후보자가 ”검수완박을 막겠다“고 한 지점과 관련해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막을 거냐, 야당 의원 한 50명 구속시킬 거냐? “면서 ”장관을 시켜서 입법을 막겠다? 입법은 못 막는다. 막으려면 선거 다시 하든지 국회의원들 설득하든가“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장관은 입법 결정을 수행하는, 집행하는 사람인데 막겠다라는 건 너무 오만하다, 너무 잘못 돌아가고 있다“며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를 한데 묶어 때렸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지난 13일 오후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그런 성격의 인사였다“며 ”마구잡이 인사가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아가패 인사다“라고 강력 비판했다. 아가패 인사는 ‘아’는 사람이거나 ‘가’까운 사람이거나 ‘패’밀리거나를 뜻하는 말이라고 최 전 수석은 밝혔다. 이어 ”(윤 당선인이) ‘안배 등은 생각하지 않고 능력 위주로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마구잡이 인사하겠다는 예고탄이었다“고 덧붙였다.
  • 이수♥린 “임신 계속 실패…부모 자격 생각” 눈물

    이수♥린 “임신 계속 실패…부모 자격 생각” 눈물

    가수 린이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사연을 전했다. 린은 12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떡볶이집 그 오빠’에 출연해 2세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린은 “이런 얘기 처음 한다”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린은 “(임신을 위해) 굉장히 노력했는데, 아이가 쉽게 안 생기지 않나. 열심히 병원을 다녔는데 계속 실패했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 “시험관 아기도 여러번 했고 자궁외 임신도 했었다. 의학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해서 진짜 조심했다. 어느 날 내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린은 “나이가 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 않나. 난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를 케어하는 존재가 되는 게 난임을 떠나 더 두려웠던 것 같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왜 눈물 나려고 하지? 나 이런 거 안 좋아하는데”라며 울먹이던 린은 “일련의 일을 겪으며 부모가 되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이에 지석진이 “우리도 안 생기다가 어느 날 선물처럼 왔다”라고 하자 린은 “병원 다니는 것을 쉬쉬했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좋다. 사람 사는 얘기니까 부끄러운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이번엔 고희진… 배구 남자팀 감독 또 여자부 사령탑 직행

    이번엔 고희진… 배구 남자팀 감독 또 여자부 사령탑 직행

    김호철(IBK기업은행)에 이어 권순찬(흥국생명), 이번엔 고희진(KGC인삼공사) 감독까지…. 남자부 삼성화재 사령탑에서 물러난 고희진 감독이 일주일 만인 지난 11일 여자부 KGC인삼공사의 지휘봉을 잡았다. KGC는 “새로운 변화와 신인 선수 육성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KGC는 당초 미국 대표팀 코치에 이어 네덜란드 여자대표팀을 맡았던 제이미 모리슨을 유력한 후보에 올렸지만 국내 감독으로 급선회했다. 현대건설과 KGC에서 잔뼈가 굵었던 장소연 전 한국도로공사 코치를 비롯해 김기중 흥국생명 코치, 임동규 현대캐피탈 코치 등이 후보군에 올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고 감독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KGC는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직후인 지난 9~10일 전격적으로 그를 내정했다.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이자 단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감독은 2003년 삼성화재에 입단해 선수, 코치, 감독까지 지낸 대표적인 ‘삼성맨’이다. 부임 뒤 두 시즌 동안 성적을 내지 못하자 구단은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고 감독의 KGC 안착으로 최근 남자팀 감독의 ‘여자팀행’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V리그 1세대 사령탑 중 한 사람인 김호철 감독이 IBK기업은행의 지휘봉을 잡았고, 박미희 감독이 물러난 흥국생명엔 권순찬 전 KB손해보험 감독이 둥지를 틀었다. 앞서 대한항공 출신의 김종민 감독은 한국도로공사로, KB손해보험의 강성형 감독도 현대건설로 옮겼다. 공통된 건 팀이 안팎으로 곤란한 때 낙점됐다는 것이다. 김호철 감독은 “내 짐작이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여자팀의 경기력은 물론 선수들과의 정서적인 교감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길 바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은 “훈련 방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여자팀만의 특성이 있다”면서 “덮어놓고 남자팀을 조련했던 감독을 선호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최근 대세가 된 남자팀 감독의 여자팀행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전민식의 달달한 삶] 우생/소설가

    [전민식의 달달한 삶] 우생/소설가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동을 대표하는 분을 만났다. 아파트 일에 매사 적극적이어서 그를 응원했다. 그런 그가 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옆 단지하고 우리 단지 사이에 펜스를 치려고 논의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옆 단지는 국민임대아파트였다. 펜스를 치면 우리가 사는 아파트 가격이 더 상승할 거라고 덧붙였다. 잠시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러지 마시라 말했다. 한동안 나 역시 국민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사는 곳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이를 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편을 가르고 다툼이 일면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일일 것이다. 잊을 만하면 이런 유형의 기사들이 뉴스에 나왔다. 근래에 들어 친하게 지내게 된 유튜버가 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런 후 유튜버로 살아가고 있는데 단 한 명도 예외없이 그의 은퇴를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은퇴했다. 그에게 물으니, 어느 한쪽에 서서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건 결국 나머지 절반을 적으로 삼거나 혹은 상대는 열등하다 믿어 경멸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 말했다. 그동안 그게 가장 큰 슬픔이어서 결국 손을 놓았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용기에 손을 잡아 주었다. 한동안 백수로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할 일이 막막한 줄 알았으면서도 그는 권력의 손을 놓았다. 그도 배워 온 것이 차이 나고 가진 것이 차이 나지만 사람은 본래 높낮이가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나 역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인데 그보다 더 흥미로운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생물학자다. 그는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열등한 인종을 모두 과감히 제거해야만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다는 학문을 천명해 사람들을 분류하려고 했다. 그의 우생학은 나치의 인종 청소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단순한 일이지만 우리 아파트에 펜스를 친다는 건, 우리가 옆 단지 사람들보다 월등한 존재라는 편견에 따른 것인데 이러한 편견 역시 타락한 학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이 든 경비원을 함부로 대하는 일에서부터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꼰대들이 청년들을 ‘~라떼’라는 말투로 훈계하고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짐승 우리와 같은 곳에 지내게 하는 등의 다양한 이면에 이런 우생학적 개념이 깔려 있다. 저들은 나보다 열등한 인종이라는 개념이. 우생학은 나치의 인종개량법에 닿아 있으며, 한 인간이 가진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부류의 인간을 별다른 이유 없이 증오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그가 우생학을 알고 있어서 그런 궁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푼이라도 아파트 가격을 올려 보려는 욕망이 그를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니 단 하나인 자산을 빛나도록 만들겠다는 그의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얼굴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될 일. 뭔가 되고 싶고, 이루고 싶고, 갖고 싶은 욕망은 분명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아름다우려면, 내 상처가 아프면 다른 사람의 상처도 아프다는 걸 알아야 하고, 가진 게 부족한 자들을 깔보지 않으며, 옳은 의지를 보려 노력해야겠고, 거리낌없이 소통해야겠고, 미지의 것들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 책 한 페이지라도 더 읽어야 할 일이다.
  • 김태호 PD “‘서울체크인’에 공감·연대 깔려…‘나만 외로운게 아냐’ 위로되길”

    김태호 PD “‘서울체크인’에 공감·연대 깔려…‘나만 외로운게 아냐’ 위로되길”

    가수 이효리의 리얼리티 ‘서울체크인’이 정규로 돌아왔다. ‘서울체크인’을 통해 이효리와의 재회로 화제를 모았던 김태호 PD는 지난 20년간 몸담았던 MBC를 퇴사한 후 취재진과 처음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태호 PD는 ‘서울체크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효리와의 협업, 그리고 MBC 퇴사 이후 경험 등에 대해 털어놨다. 6일 온라인을 통해 김태호 PD가 참석한 티빙 오리지널 예능 ‘서울체크인’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서울체크인’은 ‘서울에서 스케줄을 마친 이효리가 어디서 자고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갈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리얼리티 콘텐츠다. 김태호 PD는 ‘서울체크인’의 파일럿 성공 소감부터 이야기했다. 그는 “(파일럿을 선보였을 당시) 짧은 홍보 기간이긴 했는데 많은 유료가입자 증가가 나와서 다행이었다”며 “한편 앞으로 나와야 할 성과가 미리 나와서 레귤러(정규) 론칭을 앞두고 걱정이긴 하지만 마음 편하게 해보자고 이효리님과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체크인’의 탄생 과정도 들어볼 수 있었다. ‘서울체크인’ 파일럿은 이효리의 ‘2021 MAMA’ 무대를 중심으로 리얼리티를 보여줬다. 그는 “‘서울체크인’은 작년부터 얘기 했던 아이템”이라며 “(촬영 등) 시기를 언제 잡을까 하다가 ‘2021 MAMA’ 때 찍어보자 했다, 이효리님이 스케줄을 하면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효리님도 마음 편하게 접근했었고 저희를 배제하고 이효리님이 온전히 담길 수 있도록 현장 세팅을 하며 촬영을 했다”며 “편집을 하면서 콘텐츠가 레귤러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이 필요했고, ‘2021 MAMA’ 촬영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화제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 파일럿으로 티저를 찍던 차에 먼저 선보이자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OTT에서 처음 했던 파일럿 형태인데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도였던 것 같다”며 “반응을 보고 정규로 갈 수 있었던 과정도 재밌었다”고 밝혔다.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에서도 함께 했던 이효리와 다시 작업하게 된 계기도 밝혔다. 그는 “저희가 선택했다기 보다 이효리님이 선택해주신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재밌는 콘텐츠를 이효리님이 함께 해주셔서 바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며 “이효리님 자체가 워낙 큰 콘텐츠인데, 이분한테 카메라만 들이대도 재밌는 에피소드를 담아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김태호 PD는 “저도 ‘이효리의 힘’이라 생각한게 이효리님이 말하지 않은 순간도 재밌다고 하더라”며 “저희가 보기엔 핫하고 트렌디할 것 같은 사람인데 서울을 어색해하고 ‘나 혼자만 다른 것 같다’며 외로움을 표현하는 듯한 단어가 저희한텐 새롭게 보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그 면을 부각시켜보고자 했다”며 “서울에서 느꼈던 감정이 트렌디하게 변해가는 야경과 교차될 때 더 쓸쓸해 보이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효리님이 서울에 와서 ‘하룻밤 묵는다’는 숙소 개념의 체크인을 생각했는데 파일럿을 찍고 보니까 서울 방문하는 것 자체, 서울에 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체크인이 되겠구나 했다, 또 서울에 대한 다양한 모습도 담아야겠다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김 PD는 “따릉이 등과 같은 교통수단은 서울에서 흔한 일상이 됐는데 이효리님에게는 간혹 신기한 포인트가 됐고, 또 하나의 재미 요소로 작용이 돼서 기회가 되면 접해보는 시간도 있지 않을까 한다”며 “제주로 간지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서울과의 간극이 느껴진 상황이 있지만 나중에는 ‘이게 큰 게 아니었구나’ 하고 본인도 느끼고 내려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능에서의 이효리의 강점도 밝혔다. 김태호 PD는 “이효리님 하면 저보다 시청자들이 (강점에 대해) 많이 아실 것 같다, 항상 솔직하시고 꾸밈 없는 분”이라며 “작업할 때 일의 속도가 빠르다, 저희가 일하면서 훨씬 쿨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태호 PD는 “이효리님은 항상 궁금한 것들에 대해 바로 표현하시고, 몰랐던 것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이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주셔서 제안도 많이 해주시기 때문에 ‘이것도 가능할까? 해도 될까?’ 하는 부분에 대해 본인이 먼저 장애물을 없애주시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서울체크인’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서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다’라는 것”이라며 “뭔가 안에 공감 연대가 깔려있는데 누구나 하는 고민,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에 공통성이 있다 느끼는데 작게나마 위로와 힐링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편 정규로 선보이는 ‘서울체크인’은 오는 8일 티빙을 통해 공개된다.
  • “당선 후 다시 오겠다” 약속 지킨 尹… 유족에 두 차례 ‘90도 인사’

    “당선 후 다시 오겠다” 약속 지킨 尹… 유족에 두 차례 ‘90도 인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일 오전 검은색 넥타이를 맨 채 김부겸 국무총리 등과 함께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 도착했다. 다소 굳은 표정으로 들어선 윤 당선인은 행사장 맨 앞줄, 김 총리 옆자리에 앉았다. 윤 당선인은 가슴에 동백꽃 배지를 달았다. 동백꽃은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 갔다는 의미를 가져 4·3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행사장 연단 위의 연설대도 동백꽃으로 장식돼 있었다. 4·3평화공원 인근에는 활짝 핀 목련과 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벚꽃이 추념식 참가자와 유족을 맞았다.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가 뜬 윤 당선인은 김 총리 다음 순서로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두 차례의 묵례로 분향을 끝냈다. 장내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하는 동안 윤 당선인도 따라 불러 입 주변 마스크가 들썩이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김 총리 이후 두 번째 순서로 추념사를 낭독했다. 추념사 낭독 후 장내 유족을 향해 두 차례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추념식은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를 주제로 열렸다. 4·3 희생자의 마지막 숨소리를 우리 역사에 깊이 간직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의미를 담았다. 4·3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 추념사, 유족 사연 낭송, 추모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헌화·분향 추모곡은 제주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씨가, 추모공연은 가수 양지은씨가 했다. 윤 당선인은 추념식을 마친 뒤 다시 서울로 향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인이 오늘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중요한 기자회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갔다가, 그 스케줄만 하고 다시 (서울로) 오신다”며 “선거 기간에 4월 3일 제주에 꼭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인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이용해 서울과 제주를 왕복으로 이동했다.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 전용기를 사용한 것은 윤 당선인이 처음이다. 당선인이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 만큼, 요청이 있을 경우 대통령 전용기를 사용할 수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대통령 전용 헬기인 ‘공군 2호 헬기’를 타고 경북 울진군 북면 검성리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이재민을 위로하기도 했다. 의전에 따른 조치라고는 하나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큰 틀에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허성관의 유구유언]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쓰지 마라/전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의 유구유언]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쓰지 마라/전 행정자치부 장관

    지도자가 사람을 잘 써야 성공할 수 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공한 지도자는 유능한 인재를 찾고 육성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우리 역사에서 현명한 군주로 모두가 인정하는 세종(재위 1418∼1450)은 항상 인재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세종은 치세 말기인 29년(1447) 과거 시험에 직접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임금이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임금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둘째는 인재를 절실하게 구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임금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하는 경우다. 어떻게 인재를 잘 등용하고 육성하며 분별할 수 있는지 논하라.” 이 과거에서 18세에 장원급제한 강희맹(1424∼1483)의 문집 ‘사숙재집’(私淑齋集)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종은 자신이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했고, 인재를 모시는 데도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훌륭한 인재가 임금인 자신과 뜻이 맞지 않아 등용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성군의 모습이다. 장원급제한 강희맹 답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이 올바른 도리로 구하면 인재는 항상 있다. 완전하고 전능한 인재는 없다. 적합한 자리에 등용해 역량을 기르게 해서 인재를 육성하면 된다. 인재를 등용할 때 단점은 보지 말고 장점만 보면 된다. 단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절대로 쓰면 안 된다.” 이 답안을 조금 쉽게 풀이해 보자. 먼저 사람을 쓸 때 지연, 혈연, 학연, 내 사람 여부에 구애되지 않아야 한다. 인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육성하면 된다. 흠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흠이 있어도 사람이 유능하고 자신의 흠을 부끄러워하면 써도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18세 소년이 쓴 대단한 답안이다. 세종은 즉위 후 국비유학생 제도를 시행해 20명을 중국에 유학 보내고, 집현전을 만들어 인재를 100여명 배출했으며, 안식년에 해당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시행하는 등 인재 양성에 각별했다. 자신이 세자가 되는 데 반대한 황희를 중용하고, 인사검증 절차인 서경(暑經)을 통해 허물이 드러난 사람이라도 유능하면 등용하고 계속 썼다. 강희맹은 세종의 이러한 인사 정책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강희맹 답안은 지금 우리 실정에 대입해도 사사하는 바가 크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다. 일찍이 공자(孔子)도 앎(知)이란 바로 사람을 알아보는 지인(知人)이라고 갈파했다. 사람을 판단할 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지를 가려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희맹은 지적한 것이다. 소위 염치가 없는 사람은 절대로 쓰지 말라는 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반듯하게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을 반듯하게 지키면 영을 내리지 않아도 영이 서고, 반듯하게 지키지 못하면 영을 내려도 영이 서지 않는다”는 공자님 말씀을 새기라는 뜻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일까? 상식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공직자를 이 간단한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공직자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일이 잘되면 자기 공이고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 자기를 드러내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 국익보다 자기 조직 이익에 충성하는 사람,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한 사람, 어렵고 위험한 일에 몸을 사리는 사람, 역지사지를 못 하는 사람 등은 공직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많은 사람이 고위 공직에 임명된다. 최선의 인사는 드물다. 흔히들 차선의 인사가 최선이라고 한다. 차선은 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쓰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 MZ세대가 재택근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지정 좌석 오피스 출근’ 선호

    MZ세대가 재택근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지정 좌석 오피스 출근’ 선호

    ●알스퀘어?사람인 ‘직장인 근무환경 인식’ 조사 결과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근무 형태로 ‘재택’이 자리 잡았지만, 직장인이 선호하는 업무 형태는 ‘지정 좌석이 있는 오피스 출근’으로 나타났다. 대면 업무 필요성과 이에 따른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고, 업무와 일상생활 구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23일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업체 알스퀘어가 커리어테크 플랫폼 ‘사람인’과 공동 진행한 ‘직장인 근무환경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오피스에 출근해 지정 좌석에서 근무(37.1%)’를 가장 선호하는 업무 형태라고 답했다. 출근과 재택근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근무(36.9%)’가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11일간 사람인 플랫폼에서 온라인 설문으로 20대부터 50대 이상 직장인 262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MZ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출생)가 재택근무를 가장 선호할 것이란 예상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20대 직장인이 첫 손에 꼽은 업무 형태는 ‘지정 좌석 오피스 출근(36.9%)’이었다. 30대도 응답자의 34.0%가 같은 근무 형태를 선호하며 전체 응답 중 2위를 차지했다. 30대가 가장 선호한 근무 형태는 ’하이브리드 근무(40.2%)‘였다. 직장인은 미래 업무 환경에서도 오피스 근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직장인들은 하이브리드 근무(64.3%)와 집과 가까운 위성사무실을 출근하는 ‘거점 오피스 근무(15.3%)’가 미래 업무 환경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래 근로 환경이 ‘완전 재택’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1.9%에 그쳤다. 미래 일터 환경이 완전 재택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대면 근무의 효율성’과 ‘비대면 근무의 소통?협업 한계’를 이유로 꼽았다. 응답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오피스 형태는 ‘전통적인 사무 공간(55.7%)’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카페형 오피스(24.1%)’, ‘공유 오피스(12.5%)’, ‘지식산업센터(7.2%)’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선호하는 오피스 지역은 ‘서울 강남(21.5%)’이었다. 구성원이 중요하게 여기는 오피스 환경에도 변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이전에는 직주근접(집과 직장이 가까운 것), 지하철역 인근 등 ‘위치(52.3%)’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이 비율이 28.3%로 줄었다. 대신 ‘안전(22%)’과 ‘충분한 휴식?복지시설(21.6%)’이라고 답한 비율이 각각 18.6%포인트, 4.1%포인트 높아졌다. 오피스 환경이 입사 여부를 결정할 핵심 요인인지 묻는 말에도 80.1%가 그렇다고 답했다.
  •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 그들이 가진 커리어의 역사 [클로저]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 그들이 가진 커리어의 역사 [클로저]

    자신의 일을 하던 역사 속 퍼스트 레이디는 누가 있을까커리어 있는 여성에 초점…정치가부터 기록가까지우리는 오는 5월 10일부터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를 한국 근대 역사 처음으로 갖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10일 당선된 데 따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죠. 김 여사는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론도 조명됐죠. 퍼스트 레이디는 말 그대로 ‘the First Lady’를 일컫습니다. ‘the’가 붙죠. 단 하나밖에 없는, 대상이 특정된,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에 붙이는 관사입니다. 국가 원수나 대통령의 부인을 부르는 말이고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여성을 부르기도 하죠. 우리에게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가 생겼다는 점에만 중점을 두고요.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에서 조선 시대 내명부의 수장으로 일했던 왕비의 역할 말고 주도적으로 일을 했던 왕가의 여성들이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고려 여인의 기상, 정치가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세워 현비(顯妃)를 삼았다.“ (태조실록, 태조 1년) 조선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신덕왕후(神德王后)에 대한 기록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인 이야기인데요. 철저한 유교사회였던 조선과 달리 고려는 비교적 자유분방했죠. 덕분에 여성의 뜻을 펼치는 것도 자유로웠습니다. 신덕왕후는 고려에서 재상까지 지낸 가문 소속이었으니 역량을 못 펼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힘이 셌죠. 아버지 강윤성과 작은아버지 강윤충·강윤휘 형제들은 충혜왕·공민왕 때 재상권문가로 세도를 떨쳤습니다. 그 스스로도 이성계의 서울 부인을 일컫는 ’경처‘였기에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경처란 무엇이냐고요. 고려 시대는 조선과 달리 지역별로 부인을 두곤 했습니다. 지역에 뒀다면 향처고요. 수도에 두면 경처였죠. 신덕왕후의 아들 방간·방석은 어린 시절엔 형 이방원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아들처럼 대했고 그가 정몽주를 죽여 이성계의 분노를 샀을 땐 보호하기도 했죠. 그럴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세자 책봉 때부터입니다. 정치력이 뛰어났고 현명했던 신덕왕후 덕일까요. 태조가 10살 아들 방석을 세자 자리에 앉힌 건데요. 물론 이성계의 판단이 컸겠지만요. 왕의 자리가 그리 가볍게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는 자리는 아니니 세자가 어리고 신덕왕후 가문의 힘이 세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을 겁니다. 조선 건국 초기, 명민했던 신덕왕후의 정치적 도움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고요. 태조실록에 나오는 기록을 볼까요. 어린 서자 이방석을 세워서 왕세자로 삼았다…(중략)…나이와 공로로써 청하고자 하니 임금이 강씨를 존중하여 뜻이 이방번에 있었으나 이방번은 광망하고 경솔하여 볼품이 없으므로 공신들이 이를 어렵게 여겨 사적으로 서로 이르기를 ”만약에 반드시 강씨가 낳은 아들을 세우려 한다면 막내 아들이 조금 낫겠다.“ 고 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누가 세자가 될 만한 사람인가?“ 라고 물으니 장자로써 세워야만 되고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써 세워야만 된다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극렴이 말하기를 ”막내 아들이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뜻을 결정하여 세자로 세웠다. 세자 책봉 후 이방원은 신덕왕후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자신이 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훗날 신덕왕후는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방원과의 갈등도 컸고요. 끊임없이 이성계를 도와 일해야 했죠. 조선 건국 전 이성계의 식솔을 챙겨 도망다녀야 했으며 자신에게 기대는 주위의 정치적 압박이 컸기에 병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 청계천에서 매일 만나는 후대 백성 왕이 현비가 평안하지 못하여 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부처에게 기도하게 하고 중외의 이죄 이하의 죄수는 석방하게 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4년) 임금이 현비의 병환으로 구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5년) 현비의 병환이 위독하여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였다. 밤에 현비가 이득분의 집에서 훙하였다. 임금이 통곡하고 슬퍼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조회와 저자를 10일간 정지하였다. 봉상시에서 현비의 존호를 신덕왕후라 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의논해서 올렸다. 신덕왕후를 취현방 북녘 언덕에 장례하고 정릉이라 이름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6년) 고려 말 권문세족 가문의 힘에 자신의 정치력을 더해 남편에게 힘을 보탰으나 신덕왕후는 결국 사망합니다. 조선 첫 왕세자인 아들도 그의 사후 잃고요. 분노한 이방원이 스스로 태종이 된 후 이미 사망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그의 묘를 파헤치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생모인 향처 한씨를 태조의 유일한 부인으로 기록하려 말이죠. 태조가 덕수궁 뒤에 만들었던 신덕왕후의 묘를 파괴해 이는 현재 서울 성북구로 태종에 의해 강제로 이장돼 있고요. 주변 석상 등은 파괴해서 현재의 청계천 다리로 만들었습니다. 저자의 백성들이 마구 밟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이죠. 실제 현재의 여러분이 서울 청계천을 가서 보는 그 다리 말입니다. 태상왕이 거가를 움직이니 회안군 이방간과 각사의 관원 한 사람씩이 따랐는데 길이 정릉을 지나니 두루 살펴보고 머뭇거리면서 또 말하기를 ”처음에 한양으로 옮긴 것은 오로지 내 뜻만이 아니었고, 나라 사람과 의논한 것이었다.“ 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갔다. (정종실록, 정종 1년) 태종이 자신이 왕이 되기 전 잠시 왕으로 내세웠던 형 정종 재위 당시의 기록입니다. 태상왕은 태조인데요. 신덕왕후의 흔적을 보며 눈물짓는 태조를 통해 그와 함께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정적에 의해 묘가 파헤쳐지고 태종의 의도대로 매일같이 거리의 백성들에게 묘 석상은 밟히고 있는 걸 안다면 말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각광받죠. 매일같이 서울 청계천에서 국민을 만나니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 정치가로선 좋은 걸까요. ● 펜은 나의 힘, 기록가 혜경궁 ”왕비를 높이어 왕대비로 삼고 혜빈(惠嬪)을 혜경궁(惠慶宮)으로 삼았으며“ (정조실록, 정조 3년) 이로부터 약 400년이 흘러 오로지 기록 하나로 자신·남편·아들을 지킨 여성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글을 남긴 기록가 혜경궁 홍씨입니다. 비교적 조선시대 왕 중 인기가 높은 개혁군주 정조의 어머니라 친숙한데요. 100여명을 살해한 사도세자의 만행, 아들 정조를 지키기 위해 효명세자에게 입적한 스스로의 판단, 화완옹주의 정조에 대한 집착, 영조의 사도세자를 향한 연이은 양위 소동·13년간의 대리청정을 통한 ’가스라이팅‘ 등은 혜경궁 홍씨의 한이 담긴 기록 한중록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사도세자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궁인들이 어떻게 두려워했으며 주변의 옹주들과 혜경궁 스스로도 그를 조심했다는 사실, 거기에는 아마도 영조의 변덕·정신적 괴롭힘·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죠. 사도세자는 분명 주변인을 마구 살해했으나 그 앞의 이야기까지 더해줘 비극적 주인공으로 오늘날 묘사되곤 합니다. 정조의 뛰어남을 칭찬한 영조의 말도 사도세자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혜경궁 스스로 전달을 일부 막은 사례 등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요. 이런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선 알 수 없죠. 이런 기록 덕분에요. 훗날 고종은 한중록을 통해 정조가 사도세자·혜경궁 홍씨를 황제·황후로 추존하려 했다는 사실을 읽고 그렇게 시행합니다. 덕분에 현재는 대한제국 추존 황제·황후가 됐죠. 한중록을 부르는 또다른 말이 있죠. 읍혈록.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입니다. 한이 가득한 구주궁궐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궁을 제 발로 나가고 죽은 남편의 형에게 호적을 입적시키는 등 당시로선 현명한 판단을 통해 아들을 지켰죠.  기록이 훗날 힘을 발휘한 순간을 볼까요. ”아, 우리 장헌세자는 슬기로운 자태가 탁월하고 좋은 이름이 일찍이 드러났습니다. 영조를 효성스럽게 섬겨서 순 임금이 섭정했던 것과 같이 큰 공을 세워 도왔고 정조(正祖)를 낳아 계처럼 어진 아들로 천명을 잇게 하여 명을 받고 정사를 대리한 지 자그마치 14년이나 됩니다.“ (고종실록, 고종 36년) ”정조는 하늘이 낸 성인으로서 바다와 같은 효성을 지녔으며 어렵고 큰 왕업을 이어 빛내는 일에 힘을 썼으니, 온 세상을 경륜하는 학문으로 문화를 발전시켰고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들을 사랑하여 만물이 다 함께 혜택을 입었습니다. 임금 자리에 있던 25년 동안 지극한 인과 두터운 은택이 온 세상에 차고 넘쳐서 사람들이 오늘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혜경궁께서 지어 내린 책을 살펴보건대…“ 고종에게 당시 특진관 서상조가 상소로 청한 내용입니다. 100여명을 죽인 살인자도 사도세자도 아닌 장헌 세자로 불리는 것에 더해 슬기롭다고 평하고 있죠. 개혁군주 정조라는 아들의 덕도 있지만 그 속내를 낱낱이 기록했던 혜경궁이 아니었다면 사후 추존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남편은 세자, 아들은 왕이었으나 퍼스트 레이디는 될 수 없던 혜경궁은 결국 죽어서 자신의 커리어인 책으로 이름을 찾았네요. 주변인의 이름까지 드높였고요.
  • ‘친중 논란’ 헨리 “잘못된 말, 행동 다 죄송”

    ‘친중 논란’ 헨리 “잘못된 말, 행동 다 죄송”

    최근 친중(親中) 논란에 휩싸인 가수 헨리가 “잘못된 행동이나 말 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헨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잘못한 행동이나 말, 다 죄송하다”며 “저는 사람들에게 음악, 무대, 예능 등 어디서든 즐거움이나 감동, 웃음을 주려고 했던 사람인데 요즘엔 그러지 못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가 절대 어디를 버릴 사람이 아니다”며 “요즘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간다면 최소 몇 개월 동안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죄송하다. 저도 여러분 너무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헨리는 “요즘 유튜브나 기사가 나는 것에는 사실이 아닌 게 너무 많다”며 “사람들이 진짜 믿을 거라고 생각 안 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있었는데 이젠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이 그런 거 보고 믿어서 얼마나 심각한지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저뿐 아니라 많은 공인이 같은 피해를 받았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진짜 마음이 아픈 건 댓글 읽으면서 알게 된 건데, 대부분 저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니라 저의 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제가 하고 싶은 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 건데, 만약 제 피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 있다면 저는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헨리는 중국 국적의 홍콩계 아버지와 대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의 부모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현재 헨리의 국적은 캐나다다. 앞서 지난해 헨리는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그림에 ‘사랑해 중국’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공항에 나타나는 등의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어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댓글은 내버려둔 채 중국과 중국인을 비판하는 댓글은 즉시 삭제하는 조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반중 정서가 심해진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가 헨리를 학교폭력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시민들은 위촉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헨리가 직접 사과문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헨리는 마지막으로 “우리 팬 여러분에게 제일 죄송하고 항상 좋은 얘기하고 좋은 모습으로만 나타날 거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 배달 갔더니 “남자 꼬시냐” 리뷰 테러…女사장 ‘황당’

    배달 갔더니 “남자 꼬시냐” 리뷰 테러…女사장 ‘황당’

    한 자영업자가 직접 배달을 갔다가 고객으로부터 “남자 꼬시냐”는 막말을 들었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자영업자 A씨는 지난 13일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고객으로부터 받은 리뷰를 캡처해 올렸다. 그는 “난 배달을 많이 다닌다. 배달 가서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든가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며 “심지어 얼굴 보기도 불편해서 문 뒤에 숨어서 손만 내미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고객이 남긴 리뷰에는 A씨의 배달 태도가 잘못됐다는 뉘앙스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고객은 별점 2개와 함께 “배달만 하면 되지. 배달와서 이상한 말은 왜 하냐”며 “남자 꼬시려고 배달하냐. 어이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A씨는 “저희 매장 리뷰 맞냐. 주문 보니 오늘 새벽 제가 배달 갔던 곳 같은데, 제가 배달 다녀도 ‘안녕히 계세요’ 외에 다른 말을 할 일도 없거니와 하지도 않는다”면서 “제가 뭔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거냐. 어이없다. 전화 달라”고 답글을 달았다. 이후 A씨는 배달앱 고객센터에 연락해 고객과 전화 연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 고객은 “잘못 적었다”면서 전화 연결을 거부했다. 황당한 A씨는 배달앱에 “리뷰를 삭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배달앱 측은 “고객님한테 리뷰 삭제 요청 원한다고 연락드리겠다”며 “아니면 리뷰 삭제 서류를 보내드릴 테니 작성해서 제출하라”라고 답했다. 결국 해당 리뷰는 삭제됐다고 밝힌 그는 “막말하고 매장에 피해줘 놓고 사과 한마디 안 하고 리뷰 삭제가 끝”이라며 “몇 시간 지났는데 기분 나쁜 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끝으로 그는 “아예 (고객)얼굴도 안 봤다. 빼꼼 손만 내밀어서 전해줬는데 더 어이없다”며 “진짜 장사하기 싫다. 사장도 사람인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나 보다”고 토로했다.
  • ‘시험의 나라’ 韓에 존재했던 입시비리…‘찬스’ 사라질 수 있을까 [클로저]

    ‘시험의 나라’ 韓에 존재했던 입시비리…‘찬스’ 사라질 수 있을까 [클로저]

    尹 ‘입시비리 엄단’ 강조기묘·임진과옥…시험 관리 ‘역부족’‘얼자 출신’ 등용 위한 ‘꼼수’도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10일 당선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앞서 공약집을 통해 ‘공정과 상식의 회복, 대한민국 정상화’를 내세우며 ‘입시비리 엄단·취업비리 근절’, ‘입시제도 단순화·정시 비율 확대 조정’을 강조했습니다. MZ세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공정’ 문제를 두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데요. 이른바 ‘아빠 찬스’·‘엄마 찬스’가 입시를 좌우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약속입니다. 그의 약속이 지켜질지는 지켜봐야겠고요. 최근 MZ세대만 입시 문제에 민감한 것처럼 보도가 이어졌으나 우리나라는 길게 이어져 온 과거 시험 역사만큼 시험 공정성 에 민감했던 나라입니다. ‘시험의 나라’ 조선에서 우리 선조들은 시험을 두고 어떤 시비를 가렸는지 살펴보며 지혜를 엿봅시다. ● 비 내리던 시험날, 부정행위 단속은 어려웠다 숙종 38년, 과거 부정 사건이 발생합니다. 임진년(1712년)의 일이라 임진과옥이라 부르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는 과옥에 대한 처분 이후에도 신하들의 상소가 이어집니다. 과옥에 대한 논의를 반박하거나 불공정함을 상소하는 내용입니다. 시험지를 추후에 끼워 넣거나 응시자들을 관련자들이 대놓고 찾아다니는 등 입시 비리를 저지른 일이었는데요. “그런데 방(榜)이 나온 뒤 들으니, 틈을 타서 시권을 바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장막 안으로 들어가 고사(考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하기에, 마음속으로 그 사이에 무슨 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하객(賀客)들에게 말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숙종실록, 숙종 38년 8월) “비에 옷이 젖고 다급한 가운데 한 사람의 글씨로 두 시권을 모두 써서 모두 합격하기란 그야말로 절대로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이헌영 등의 공사(供辭)를 보건대, ‘시권 안에는 다른 글씨로 쓸 수 없기 때문에 형의 글씨가 비록 낫기는 하지만 아우가 그대로 써서 바쳤다.’고 한 것은 실제 사정(事情)에 가까운 것으로 글을 미리 지어 놓았던 증거로 단정해 버리는 것은 실로 억측(臆測)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헌영 형제의 일로 말하자면 그 형은 비록 조금 이름이 있으나, 그 아우가 글을 못함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각기 지은 시권을 같은 필적으로 써서 모두 선발(選拔)되었기에 미리 글을 지어 놓았던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미 의심스러운 단서가 있는데도 (중략)” 임진과옥을 두고 논의하던 발언들입니다.  이에 따르면 과거 시험 당일 비가 내렸고요. 응시생은 수천명에 달했습니다. 폭우, 응시생 대거 입실로 인한 장소 미비, 사간 외출 단속 없음, 어둠 속 시권 제출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과거 시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거죠. 당시 숙종은 “미리 글을 지어놓았다는 것은 이미 현저한 단서가 없다. 더욱이 다시 시험을 보임은 국조(國朝) 이래 있지 않던 일이니, 단정코 불가함을 알 수 있다. 그냥 두라”고 했죠. 당시 이 형제들의 글씨체가 동일한지의 여부, 형의 글실력은 월등하지만 동생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판 등을 들어 증거를 찾는 논쟁이 있던 상황입니다. 이미 써둔 시험지를 추후 몰래 넣어두기까지 했던 대범한 일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진 거죠. 이후 당시 시관이던 소론 예조판서 이돈이 임명된 후 응시생을 만났던 일, 이헌영·이헌장 형제에게 답안지를 준비하도록 했던 일이 조사로 발각됐죠. 이후 세 명이 처벌받았습니다.● 시험, 세력 확산 수단되며 비리 발생부정 청탁…답안 검사하며 내용 바꾸기도 이런 모습은요. 과거 시험 중심으로 이뤄지던 조선 후기, 문과가 기존 정치 세력의 입지를 굳히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려 아는 이의 아들에게 시험 주제를 미리 알리는 경우도 있었고요. 합격자가 나와도 그의 출신을 문제삼아 파직을 상소하는 일도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상 부정행위죠. 조선 시대 벌어졌던 부정행위 문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에요. “기묘년(1699) 과옥(科獄)이 일어난 당초에 고(故) 상신(相臣) 남구만(南九萬)이 또한 다시 시험 보일 것을 계청(啓請)한 일이 있어, 그 전의 사례들을 똑똑하게 상고할 수 있으니 (중략)” 이는 임진과옥 전에 있던 과거 부정 사건 기묘과옥을 언급한 것인데요. “부(賦)로 고쳐서 지어 원편(原篇)에다 쓰고…(중략)…첫머리의 제술만 보고서 끝에 가서 고쳐 쓴 것은 몰랐기 때문에…(중략)…부사(賦詞)를 고쳐 쓴 정상에 대해서는 같이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사람 가운데 목도한 이가 있어 (중략)” (숙종실록, 숙종 25년 11월) “먼저 바친 것이 더러 뒤에 끼워지기도 하고 뒤에 바친 것이 앞에 끼워지기도 합니다…(중략)…밤이 깊어졌었고, 그때는 시권을 거둔 것이 이미 많아서 소요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있었으니, 스스로 시권을 바치고도 그것이 어느 축(軸)으로 들어갔는지 분명히 알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같이 과장에 있던 거자(擧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자기 일은 버려두고 다른 사람이 바친 시권의 이르고 늦은 것을 살펴보았겠습니까? ”해가 저문 뒤에 이성휘가 와서 말하기를, ‘지금 지은 표(表)가 매우 마음에 차지 않아서 부(賦)로 고쳐 지으려 한다.’ 하고, 즉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를 짓는 것을 미처 목도(目覩)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송성의 의심스런 단서는…(중략)…표(表)를 지었는데 부(賦)로 합격되었다는 데 달려 있습니다. …(중략)…과거(科擧)를 도둑질한 것으로, 곧 더욱 간교한 자인 것입니다.“ 당시 답안지의 글씨체를 베껴 임금에게 올리던 등록관이 청탁을 받아 답안지를 고쳐썼던 일에 대한 논쟁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엄청난 입시 비리죠. 이미 제출한 답안지를 검시관이 개입해 내용을 추가하거나 바꿔준 겁니다. 당시 연루된 관리 전원이 유배 처리됐고 과거 자체가 무효로 처리됐습니다. 이후 이 때의 과거 합격자 중 복권을 신청하는 등의 일이 있었으나 숙종은 ”유생이 고할 일이 아니다“라는 등 거절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옥 자체 처분에 대해 상소를 올리기도 했죠. 글쎄요. 억울한 이도 있었을까요. ● 능력있지만 출신 미천…별시로 등용내정자가 있던 시험 그런가 하면 왕이 직접 나서 아끼는 신하의 합격을 위해 손을 쓴 적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간신’으로 알려진 유자광입니다. 서얼 출신으로 신분의 벽에 부딪혔던 그는 능력이 출중해도 출신 때문에 활약이 어려웠습니다. 29세에 경복궁 문지기로 일하던 그는 세조의 눈에 들어 정5품 병조정랑에 이르는데요. ”가령 신에게 정병(精兵) 3백을 주시면, 이시애의 목을 매어서 대궐 아래에 초치할 수 있겠습니다.“ (세조실록, 세조 13년 6월) ”임금이 웃으시고 명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극진히 즐기고는 파하였다.“ 함길도에서 일어난 반란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유자광이 1467년 이들을 진압한 건데요. 실제 저 발언대로 실천해 세조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반란이 종결된 이후 세조는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운 이들을 공신으로 세웠습니다만 유자광은 출신의 벽 때문에 공신 책봉은 되지 못합니다. 대신 정5품 병조정랑이 된 건데요. 본래 정5품 병조정랑은 과거 급제 후 가능한 일입니다. 눈치채셨나요. 순서가 바뀌었죠. 유자광을 높이 쓰려 했던 세조가 1468년 별시를 시행해 그를 합격시킨 겁니다. 당시 신숙주에게 명하던 세조의 발언을 볼까요. ”유자광(柳子光)의 대책(對策) 이 좋은 것 같은데, 어찌하여 합격시키지 않았느냐?“ (세조실록, 세조 14년 2월) ”대책 속에 고어(古語)를 전용(全用)한데다 문법(文法)도 또한 소홀하여, 이 때문에 합격시키지 않았습니다.“  ”비록 고어(古語)를 썼다 하더라도 묻는 본의(本意)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면 의리에 해로울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고, 이에 유자광을 1등으로 삼고, 유상(柳常)·정현조(鄭顯祖)를 2등으로 삼고, 이평(李枰)을 3등으로 삼았는데, 유자광은 첩(妾)의 아들로서 시험에 나아가게 하여 특별히 상등의 급제에 두고 즉시 병조 참지(兵曹參知)를 제수하니, 조정의 의논이 자못 놀라와 하였다.“ ‘자못 놀라웠다’. 사실상 내정자가 있던 시험인 셈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과거 시험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졌던 입시 부정 사례 중 일부인데요. 우리의 내일은 어떤 역사가 적힐지 궁금하네요.
  • 김건희 “평생 밥해주겠다던 尹, 10년째 약속 지켜...국민과도 그럴 것”

    김건희 “평생 밥해주겠다던 尹, 10년째 약속 지켜...국민과도 그럴 것”

    1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뒤늦게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윤 당선인 측이 공개한 주변 전언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김 여사를 처음 만난 뒤 명함을 보관하지 않고 일부러 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마음에 들었지만 나이 차이가 12살인 데다 여러가지 여건상 남녀 관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에 포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윤 당선인이 김 여사에게 이메일로 마음을 표현했고, 이를 알게 된 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이 김 여사가 건넨 명함을 버리기 전에 이메일 주소를 통째로 외워버렸다가 망설인 끝에 연락한 것이라는 후문이다. 김 여사는 앞서 지난해 12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 윤 당선인과의 첫 만남을 회고한 바 있다. 그는 “검사라고 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만 알았다”며 “하지만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자신감이 넘치고 후배들에게 마음껏 베풀 줄 아는 그런 남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하며 ‘밥은 먹었냐’, ‘날씨가 추운데 따듯하게 입어라’ 제가 늘 전화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김 여사는 언론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윤 당선인에 대해 “늘 바빠도 제게는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었다”며 “남편에게 가장 감동한 말은 ‘평생 집밥 해줄게’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할 때 평생 밥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국민과 한 약속은 더 잘 지킬 것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떤 대통령 배우자가 되고 싶은가’란 질문에 “당선인이 국정에 전념하도록 내조하겠다”며 “남편이 소임을 마치면 저도 현업에 복귀해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답했다.
  • “죽어도 못 보내!”…목숨 걸고 동물원 지키는 우크라인들

    “죽어도 못 보내!”…목숨 걸고 동물원 지키는 우크라인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를 탈출한 우크라이나인이 17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동물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포기한 사람들의 사연이 알려졌다. 로이터의 7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직후 수많은 사람인 수도 키이우를 탈출할 때, 이곳에 거주하던 약 80명의 시민은 키이우 동물원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키이우 동물원 소속 행정 직원 및 수의사, 사육사 등이다. 키이우 동물원에는 코끼리와 하이에나, 우크라이나에 단 한 마리만 있는 고릴라 등 200여 종의 동물 4000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이우 동물원 직원들은 러시아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버린 채 떠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피난을 포기한 채 동물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동물원 책임자인 키릴로 트란틴(49)도 피난 대신 동물 보호를 선택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우리 동물원에 있는 수컷 아시아코끼리는 러시아 폭격으로 인한 소음에 겁에 질려 있다. 코끼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매일 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코끼리 우리 안에서 잠을 청한다”고 전했다. 이어 “코끼리가 한밤중 폭격에 놀라 깨면, 사육사가 코끼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사과 등을 먹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트란틴에 따르면 전쟁 중 키이우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여우원숭이는 젖을 제대로 물지 못하다 결국 어미에게 버림받았다. 여우원숭이가 새끼를 버리는 일은 매우 드문데, 직원들은 어미와 새끼 모두 전쟁 소음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고 추측했다. 동물원을 지키는 사람들이 미완성 된 수족관 등을 대피소로 활용하고 있지만, 기린이나 코끼리 같은 덩치가 큰 동물들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트란틴은 “지난주 사자와 호랑이 곰 등 일부 동물은 폴란드의 한 동물원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모든 동물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면서 “동물들은 숨거나 도망갈 공간이 없다. 일단 동물원을 나서면 사람보다 선택의 여지가 더 적다”고 말했다. 동물들을 지키는 것을 선택한 사육사 이반 립첸코(33) 역시 “나는 내 또래 남자들처럼 군대에 합류하지 않는 대신,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나만의 방법은 이 동물들을 끝까지 살리는 것”이라면서 “이곳 동물들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으면 그냥 죽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이곳 동물들이 결국 죽게 될까 봐 매우 두렵다”고 고백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동물원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전쟁을 대비한 덕분에, 앞으로 2주 정도 버틸 수 있는 사료가 비축돼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향후 식량과 생필품 등의 주요 물품 공급 경로가 차단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동물원에 남길 자청한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군, 병력 진격 속도 현저히 감도...수도는 여전히 방어 중" 한편, BBC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의 공격 13일째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동부, 북부 지역에서 방어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수도 키이우와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방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 군의 미사일과 공습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있으며 러시아 군 병력 진격 속도가 현저히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이르핀을 비롯한 전역에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도 키이우 진입을 위해 서북부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이르핀, 호스토멜, 부차, 보르젤 등 외곽도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또 남부 해안에서는 헤르손, 멜리토폴을 장악하고 마리우폴을 포위한 뒤 미콜라이우 진격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군이 무차별 공격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며, 긴급 구호나 인도주의적 정전이 성사되지 않으면 앞으로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인 수천 명이 죽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톤 헤라시첸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도 페이스북을 통해 “의약품, 생필품이 없고 난방, 수도공급 체계도 무너졌다”며 각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 “불륜, 용서할 수 있지만…” 빌 게이츠와 이혼 후 입장 밝힌 멀린다 게이츠

    “불륜, 용서할 수 있지만…” 빌 게이츠와 이혼 후 입장 밝힌 멀린다 게이츠

    “그가 가진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와 지난해 이혼한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이혼 이후 처음 입장을 밝혔다. 멀린다는 3일(현지시간) 방영된 CBS 인터뷰에서 27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에 이르게 된 배경과 이혼 과정에서 겪은 고통 등을 털어놨다. 멀린다는 지난 2000년 남편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한 여직원과 불륜 관계를 가졌다는 폭로가 나온 것과 관련해 “나는 틀림없이 용서란 게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이츠가 여러 건의 불륜 관계를 가졌느냐는 물음에 이는 게이츠가 답할 사안이라며 대답을 피했다. 앞서 지난해 5월 3일 빌 게이츠와 멀린다는 각자의 트위터를 통해 동시에 공동성명을 올려 이혼소식을 밝혔다. 이들은 “우리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과 노력 끝에 결혼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동안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달라”며 구체적인 이유는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빌이 약 20년 전 한 여성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멀린다는 “그건 어떤 한순간, 또는 한 가지 특정한 일이 아니었다”면서 “내가 ‘이건 건강하지 않아’라고 깨달은 순간이 마침내 왔고, 나는 그가 가진 것(관계)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멀린다는 또 이혼 원인 중 하나로 미성년을 상대로 성 착취를 하는 등의 숱한 성범죄를 저지른 제프리 엡스타인을 꼽았다. 프렌치 게이츠는 그와의 만남이 싫었고, 이를 게이츠에게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한 차례 엡스타인과 만났다고 고백한 멀린다는 “나는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문을 들어선 순간 바로 그걸 후회했다”면서 “그 뒤로 그 일에 관해 악몽을 여러 번 꿨다. (그의 피해자가 된) 이 젊은 여성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멀린다는 이혼 과정에서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술회하면서도 ‘치유의 여정’을 거쳐 인생의 새로운 장(章)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멀린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졌고 평생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 뭔가를 상실한 데 대해 비통해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마침내 나는 이 치유의 여정을 시작했고, 반대편에 도착하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 “그리고 내가 이제 이 챕터의 페이지를 넘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2022년이고, 나는 앞으로 닥칠 일과 내 앞에 펼쳐질 인생이 정말로 신난다”고 말했다. 멀린다는 현재 빌과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틀림없이 함께 일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며 “지금으로선 우리가 우호적이라고 말하겠다”고 밝혔다.빌게이츠와 멀린다는 지난해 8월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당시 미국 워싱턴주 킹카운티 법원은 빌 게이츠 부부의 결혼 생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났다”면서 이혼을 최종 승인했다. 두 사람은 약 175조원에 달하는 빌 게이츠의 재산 분할과 관련해 최종 합의에 도달했으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또 멀린다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지만, 법원에 개명을 요청하진 않았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와 직원 관계에서 발전해 1987년 교제를 시작했다. 1994년 결혼한 뒤 2000년 자선 재단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 쿠드롱, 시즌 3연속 패권에 한 발 더…PBA 웰뱅챔피언십 4강 선착

    쿠드롱, 시즌 3연속 패권에 한 발 더…PBA 웰뱅챔피언십 4강 선착

    프로당구(PBA) 투어 첫 3연속 패권을 노리는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이 4강에 올라 김종원과 결승 길목에서 격돌한다.쿠드롱은 3일 경기 고양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8강전에서 노병찬을 3-0(15-6, 15-6, 15-8)으로 완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쿠드롱은 첫 세트 네 번째 이닝째에 6점짜리 하이런(연속 득점)을 몰아치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이어진 2세트에도 첫 이닝에 7득점을 터트리고 2이닝에 6점, 3이닝에 남은 2점을 추가해 노병찬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마지막이 된 3세트에서는 6이닝까지 4-5로 밀리며 주춤했지만 곧바로 장타를 몰아치며 11이닝째에 15-8로 별다른 이변없이 낙승을 거뒀다. ‘부산 독수리’ 김종원도 풀세트 접전 끝에 목장갑을 끼고 출전해 화제를 뿌린 황지원을 3-2(15-13. 13-15, 15-6, 13-15, 11-4)로 제치고 4강에 합류했다.김종원이 준결승에 오른 건 지난 시즌 4강전에서 강동궁과 대결을 벌인 월드챔피언십 이후 통산 두 번째다. 국내 3쿠션을 대표하는 베테랑 가운데 한 사람인 김종원과 쿠드롱의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PBA 투어 첫 시즌 같은 대회에서 우승했던 최원준도 ‘베트남 돌풍’의 주인공 응우옌 후인 프엉 린을 3-2로 꺾고 생애 두 번째 4강 티켓을 움켜쥐었다. 첫 우승 이후 2년 6개월 만에 준결승 무대를 밟은 최원준의 최고 성적은 지난 시즌 2차 대회 16강이었다. 최원준은 김현우를 상대로 3-0(15-7 15-3 15-4) 낙승을 신고한 김임권과 4일 오후 1시부터 결승 티켓을 놓고 첫 맞대결을 펼친다.
  • 김흥규 “어느 쪽이 이기든 손잡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김흥규 “어느 쪽이 이기든 손잡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북 선제타격,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선이 임박한 가운데 윤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외교안보 사안을 놓고 극명한 대척점에 섰다. 국민에게 정확한 판단과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과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이 지난 22일 열린 세종국방포럼에서 발언 배경과 파장, 의미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해 이를 지상 중계한다. 두 사람은 각각 이재명 캠프와 윤석열 캠프에 참여하고 있지만 철저히 개인 연구자 자격으로 포럼에 임했음을 누누이 강조했다.사회 김흥규 아주대 교수 이제 플로어 질문 순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안보나 대북 정책을 논할 때는 북한, 특히 김정은의 의도와 전략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다. 선제공격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김정은을 악마화하고 미치광이를 보는 것과 같다. 북한이 먼저 공격하지 않은 상황에 남측이 선제공격하면 김정은 정권은 자멸하고 마는데, 김정은이 공격하지 않으면 편하게 외제차 타고 호화로운 집에서 살 수 있는데 공격을 해서 무슨 이득을 얻겠는가? 우리는 우리 취약성만 얘기하는데 북한의 요격 체계, 육군력, 공군력 모두 취약하다. 너희가 약한 부분도 있지 않느냐 그걸 인식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미사일과 무기 얘기만 하는데 우리의 국방체계 개편에 대해 얘기를 안하는 것도 사실 의아하다. 문재인 정부가 전략사령부 창설 추진했다가 중단했는데 다시 이걸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강국 전 중국 시안 총영사 김 부소장의 발제 가운데 논리적으로 모순이 조금 있는 것 같다. 필요 없다면서도 필요한 능력을 우리가 갖춰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사드 관련해서 마침 외교 현장에 있었는데 우리는 청와대가, 중국은 외교부가 협상을 주도했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 한중 협의가 2017년 10월 30일 끝나고 그 해 12월에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사드를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연계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었다. 중국을 너무 의식해 안보 문제에 대해서, 사드 배치를 논하며 중국을 고려해야 된다고 하면, 대중 정책에 희망이 없다고 보는데 김 부소장 생각을 듣고 싶다. 김정환 KBS 기자 3~4월 북한의 무력 시위 가능성이 계속 얘기된다. 당장 군사적 억제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신 센터장은 계속 그 정도 예산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군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분명히 있다. 30년이 다 된 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각각 비교했을 때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외교와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어떤지 궁금하다. 또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올 정도로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와 갈등을 빚고 정치적 곤경에 몰리면 시각을 외부로 돌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이 있다. 신 센터장 지금 누구도 과잉 공포를 유발하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김정은에게 있어 핵이 통치 정당성이나 군비 경쟁이기도 하며 전략적인 우위를 점해 한국을 압박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게 위협이다. 그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위협은 의도와 능력의 합이라고 생각한다. 날 때리려고 하는데 나보다 힘이 세면 당연히 위협이 된다. 날 때리지 않을 사람인데 힘이 나보다 세고 내가 맞으면 혼쭐이 난다, 그래도 위협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가 한국을 무조건 공격하는 게 아닐 수 있지만 대응 체계를 조금 앞당겨 고민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갖고 장난하는 일은 2010년 넘어 끝났고, 그런 식으로 하면 이제 인기 폭락이다. 또 북한에 대한 평화 논리로 국민에게 관심 받고 정치적 이득 보는 일도 2018년 무렵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김 부소장 중국 눈치를 보느라 사드를 추가 배치하면 안된다고 말한 것이 결코 아니다. 또 사드 문제를 얘기할 때 중국이 가장 큰 변수는 절대 아니다. 수도권 방어를 위해 절대 필요하고 유용하다면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가 구축되고 있으니까 대안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고 시기적으로도 사드보다 더 늦지 않게 될텐데 굳이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중국 관계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걸 하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전략사령부 관련해서는 조금 신중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 사령부를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자산은 그대로인데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고, 작전 지휘에 혼선과 부담이 될 것 같아서다. 당연히 비핵화는 외교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고, 군사적으로는 어찌됐건 우리가 계속해서 대응하고 준비를 해야 되니까 그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군비 경쟁을 우리 예산으로 감당이 되느냐 지적했는데 사실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재래식 전력도 우선 순위를 두고, 핵과 WMD에 중점을 두면서 감시 정찰과 정밀 타격, 이런 것을 모두 갖출 수도 없고 완벽하게 해결될 수도 없다. 다만 선제타격보다 응징억제를 중심으로 두면 그래도 군비경쟁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문제를 그나마 조금 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국방과학원 출신 우리가 선제 타격 요건을 다 파악했다고 치자, 그런데 작전권은 누가 행사하느냐? 미군 사령관인데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해주느냐. 고유찬 서울대 대학원생 신범철 센터장의 우선 순위는 못 들은 것 같다. 지형철 KBS 기자 한쪽에선 전쟁하자는 거냐고 하고 다른 쪽은 북핵을 용인하자는 거냐고 맞선다. 이렇게 빈약한 레토릭이 공론의 장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연구자 출신으로 어찌 생각하는지. 김 부소장 미국은 1960년대와 70년대, 그 뒤 수많은 핵 전략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발전을 거듭하는 데 반해 우리는 실은 3축 체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만 있다. 학계에서도, 군에서도 깊이 있는 논의가 돼야 하고 한반도에 최적화한 억제전략을 고민해야 되는데 약했다. 그런데 이번에 대선 쟁점이 됐으니, 약간 이상하게 불거진 측면은 있지만 좋은 기회다 싶기도 하다. 정말 무엇이 최선인가, 다음 좋은 방안은 뭔가, 불편한 진실은 뭔가, 솔직하게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 센터장 당장 우리가 취약한 것이 미사일 방어다. 여러 신형 미사일이 실전에 가능하다는 걸 북한이 보여줬다. 그러면 그걸 막아야 한다. 그런 부분이 문재인 정부 때 많이 뒤처졌으니 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KMPR과 킬체인은 궁극적으로 파고들면 공유하는 자산이 많다. 전반적으로 다 강조하고 싶지만 지금 많이 처져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를 다듬는 게 우선순위이며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 문제를 얘기하고 키우느냐,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프레임을 자꾸 이렇게 만드는 게 지금 정치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제타격과 사드 논란이 오늘 주제인데 어떻게 보면 이게 전부가 아니다. 남북관계에서 외교 안보 정치 모든 걸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될 분들이 두 대선 후보인데 아쉽게도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굉장히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것에 함몰돼 뭣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입씨름하지 생각하게 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게 기본 상식인데 핵을 안 갖고 북한 핵을 대응하려다 보니까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되는 것인데 제 질문은 대선 후보들이 순수하게 군사 전략 논리로 가야 되는지, 아니면 진짜 큰 틀에서 정치안보적인 판단까지 다 포함해 이 문제를 봐야 되는지, 틀림없이 후자라고 생각할 텐데 그걸 어떻게 답할 수 있느냐 묻고 싶다. 신승엽 스웨덴안보연구소 코리아센터 핵잠수함 개발이 북핵 대응 전략의 하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지. 한미연합사 출신 두 분의 설명 들으면 큰 차이가 없다. 논란의 핵심은 (윤 후보의) 발언에 있었는데 그 질문을 신 센터장이 받았다면 어떻게 답변했겠는가 묻고 싶다.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가장 강력한 위기관리 수단이자 무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는 군을 믿고 공개적으로는 외교 수단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백순 전 대사 북한이 많은 미사일 연료를 고체로 만들고 이동형 발사체에 200개쯤 옮겼는데 선제타격 대상을 핀 포인트할 수 있겠느냐, 그것부터 얘기해야 하는데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 부소장 선제타격론은 국제법으로 정당화되기가 어렵다. 우리가 선제타격을 하려고 해도 미군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독자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신 센터장 기술 고도화되고 고체화돼서 사실은 추적이 더 어렵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감시 정찰 능력을 확충해야 되는 것이고, 징후 목록이 함께 모아져 판단되며 완벽은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군사적 차원에서는 그런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선제타격에 관한 국제법은 2004년 이후 해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자위권 개념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처럼 예방 공격이라든가 선제 공격 개념이 아니라 정말 임박한 징후가 있을 때 한다면 그것은 현재 국제법에서는 합법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데 최고 지도자가 선제타격하자고 하면 안된다. 그런 상황이 아닐 때는 정치적 목적이나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질 때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사이버 공격을 받고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미사일로 때리겠다고 얘기했다. 무력 공격이라는 말이 금기어는 아니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드린다. 핵잠수함과 사드, L-SAM을 동시 추진하자고 말씀하신 것에 동의한다. 예산 문제 저희도 많이 고민한다. 경항모는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보다 실은 대양 작전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항모 건조에 2조원 든다고 하지만 호위함 등을 추가해야 해 일각의 보도에 의하면 6조원 얘기도 나온다. 그 돈 아끼면 사드도 L-SAM도 살 수 있고, 충분히 문재인 정부 계획을 구조조정해도 가능하다. 그리고 핵잠수함 필요하냐고 물으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핵잠수함이 3축 체계보다 우선해야 하느냐 물으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흥규 교수 선거 국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 과연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전략을 양 캠프에서 지금 제대로 얘기하고 있느냐, 우리가 초강대국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재원이 무한한 것도 아니다. 결국은 어떤 재원을 얼마만큼 써서 효과적으로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이걸 배분하느냐가 관건인데 두 캠프 모두 누구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아직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서 두 캠프 가운데 한쪽이 승리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솔레리움 위원회를 조직해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아 시나리오별로 합당한 답이 뭐냐고 묻고 고민했던 일들을 이제 해야 된다. 그만큼 우리의 변수가 너무 많아졌고, 한 이해집단이 답을 내기 어렵게 됐다. 우리 전문가들조차 과학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영역이 있고, 우리 국방산업과 방산의 현실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두 분이 함께 손잡고 고민해야 되며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산다고 생각한다.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참석해 토론하고 고민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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