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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스타코비치 오페라「맥베스부인」/60년만에 러 무대 화려한 부활

    ◎스탈린시대 공연금지 “혁명후 최대 걸작”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무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이 60년만에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전곡이 공연,러시아 음악팬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이 오페라는 지난 1934년 1월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초연됐으나 스탈린의 정치적인 탄압으로 62년까지 공연이 금지됐던 것. 지난달 17일과 20일 두차례 모스크바시내 콘세르바토르 홀에서 열린 공연은 특히 세계적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같은해 스탈린에 의해 철거된 「그리스도교회」재건립 기금마련을 위한 것이어서 음악인들에게는 더욱 값진 공연이었다.모스크바 「그리스도교회」는 러시아정교회의 본산이었으나 스탈린의 지시로 노천수영장으로 개조됐었다.이번 공연의 무대는 러시아의 유명한 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가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쇼스타코비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맡았고 270명의 러시아 1급 오페라가수가 거의 총출동하는 등 호화무대를 이뤘다. 오페라 「맥베스부인」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19세기 상인들간의 음모와 사랑,배신등을 다룬 작품.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소련당국에서 전위예술을 허용할 정도로 「잘 나갔던」작곡가였다.초연이래 그는 1년동안 177번의 공연을 가질만큼 대성공을 거뒀다. 지휘봉을 잡은 로스트로포비치는 『소련당국은 당시 러시아의 정신적 지주를 파괴시켰다.오늘은 20세기 음악사에 빛나는 오페라를 되찾는 내인생의 최대의 날』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입장료는 기금모금 명목으로 300∼500달러라는 거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표는 한달전쯤 매진됐다.
  • 중국어 양안공동사전 나온다/중­대만학계 내년 동시출간 목표

    ◎원활한 민족교류 길트기 첫 역사 【북경 연합】 중국과 대만의 학자들이 관계단절 40여년만에 처음로 현재 대만해협 양안에서 쓰이는 일상어의 용법상 차이를 자세히 설명한 중국어사전의 공동 편찬작업을 벌이고 있다. 내년중 북경과 대북에서 동시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사전은 4만여개의 일상어를 담은 「양안현대한어상용어사전」으로서,북경어언문화대학(전 북경어언학원)과 대북어언학원의 학자들이 작업에 참여중이다. 양안의 일상어는 지난 49년 중국이 본토의 신정부와 대만의 장개석정권으로 갈리면서 많은 사물의 이름이 각각 다르게 불리고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르게 발음되는 등 거의 반세기동안이나 이질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같은 언어의 이질화는 양안간의 교류나 세계 각지의 화교와 외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작업의 책임자중 한사람인 북경어언문화대학 최영화부총장은 양안 학자들의 사전편찬 목적에 대해 『양안간의 용어를 통일하거나 규범화,표준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민족공통어」를 위주로 양안에서 사용되는 말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 학자들은 그동안 양안의 단어 및 한자 사용현황 등을 충분히 고려하는 동시에 통용 자체,독음,단어의 뜻과 용법 등을 수용했으며 사전에 수록할 단어를 3차례에 걸쳐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4만여단어를 선정했다.
  • 최형우 고문 서예전 개막/500여명 참석 대성황

    신한국당 예비후보군의 대권논의 자제분위기 속에 대권주자의 한사람인 최형우 고문이 15일 하오 3시 서울 안국동 백상기념관에서 「온산 최형우 서전」을 열었다.불우한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행사다. 이번 행사는 지난 89년 첫 개인전 이후 두번째이다.50점의 출품작에는 그가 즐겨 쓰는 「대하무성(큰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도 들어있다. 그래서일까.최고문은 당이 「민주계 대권 배제론」「민주계 대표론」「정치총리론」「당정개편 연기론」등으로 요동을 칠 때도 공식적으론 입을 굳게 닫아왔다.필력이 넘치는 50점의 이번 출품작은 요즈음 그의 정치철학과 포부를 담고있다는 평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한 국회의장,김용준 헌법재판소장,김덕용 정무제1장관,김윤덕 정무2장관,김상현 국민회의지도위의장,이인제 경기지사,유세준 공보처차관,서석재 김종호 김정수 의원 등 40여명의 의원과 서예은사인 여초 김응현 선생 등 500여명이 참석,대성황을 이뤄 이 일대 도로가 한때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 갑작스런 「젊은 후보론」 소용돌이

    ◎이 대표 고위당정회의서 불쑥 한마디/“야당후보 고령 강조” 배경 풀이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이 4일 저녁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 행한 「젊은후보」 발언이 정가에 파문을 낳고있다.이대표측은 『야당보다 상대적으로』으로라는 단서가 빠졌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파장은 적지않을 전망이다. 이대표는 당시 『내년 대선에서 우리당은 젊고 미래지향적인 후보가 나설 것이지만 야권은 연로한 사람이 나오게 될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내년 선거 결과를 낙관한다』고 밝혔다.이 자리에는 예비후보군의 한사람인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등 당정의 고위당직자들이 모두 참석했다.일종의 여권의 단합대회 성격이 짙은 모임이었다. 이대표측은 『정치학의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라고 설명한다.교과서적으로 볼 때 야당의 정권교체는 여당 보다 젊은 후보를 내세우고,기득권에 대한 대한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 기본 전제인데 우리 정치현실은 정반대라는 점을 강조한 얘기였다는 것이다. 상오 8일 고문단회의 불참을 전하기 위해 대표를 방문한 박찬종 고문은 다시 제시된 「젊은후보론」에 무척 고무된 표정이며 다른 진영도 발언 배경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당내 대권논의 자제의 책임을 진 이대표가 「전투장」이 될지도 모를 지구당개편대회를 앞둔 시점에 왜 이런 화두를 던졌는가 하는 점이다.『1주일에 한차례씩 주례보고 형식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독대하는,또 취임 6개월을 맞아 누구보다도 발빠른 정치 적응력을 보이고 있는 이대표가 아무 생각없이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 교황,진화론 일부 인정/찰스 다윈의 이론 논리적으로 타당

    ◎인간은 정신적 존재… 하나님이 창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과학자들에게 과학과 신앙의 화해를 거듭 촉구하면서 진화론은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나 창조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최근 로마의 한 평신도단체인 교황청 과학아카데미에 보낸 메시지에서 전임자중 한사람인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진화론이 「진지한 가설」이라고 선언했음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지식으로 이제 인간이 생명의 초기 형태로부터 천천히 발전한 산물이라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가설 이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러나 진화론은 인간의 정신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할 수도 없다며 인간은 육체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바오로 2세는 지난 92년에도 13년간에 걸친 연구 끝에 교회가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비난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바오로 2세의 이번 메시지에 대해 이탈리아의 과학자이며 신학자인 안토니오 지치치씨는 『교황의 언급은 과학과 신앙이 다같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떠한 과학적 발견도 인간에 대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도록 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바티칸시티 AP 연합〉
  • 판소리 명창 조상현(이세기의 인물탐구:106)

    ◎타고난 성음 거침없는 연기력 객석 압도/전통고수보다 「시대의 향」담긴 음악 주장/“국악을 대중가까이…” 매년 수십차례 공연 이 시대 걸출한 인물의 한사람인 명창 조상현.타고난 성음에 거칠 것 없는 연기력은 어느 무대에서나 흥청거림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목은 묵직한 철성을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동편이나 감칠맛이 넘실대는 서편제와는 다르다.억세면서도 바닥이 고르게 다져진 우람장중한 힘과 정한이 배분된 강산제소리로 장시간 소리를 질러도 갈수록 목이 터서 유려한 가슴의 소리를 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훤칠한 체구에 두둑한 배짱,사나이다운 기백이 전신에 서린 조상현을 가르켜 일찍이 국악계의 대부이던 정권진은 「몇십년만에 한번씩 나오는 희한의 득음」으로 찬사한 바 있다. ○변화무쌍한 소리 구사 실제로 오음과 육률을 임의로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평성으로 하다가 위로 튀는 목이며 목청을 좌우로 헤쳐가며 힘차게 내는 걸쭉한 반 수리성은 중상성을 낼 때도 세성을 내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혼자서 일인다역을 감당하는 「심청전」 「춘향전」 「수궁가」 완창에서 장(우조) 한(만조) 화(평조) 원(계면조)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하고 아니리 발림에 능란하다.그중에서도 향청의 창고직이,감관과 색사를 두루 잡아들이는 「춘향전」의 「어사출도」장면은 「만장의 폭포가 쏟아지듯 웅건장대한 자진몰이」로 현란하게 말을 엇붙이고 장단을 가지고 놀면서 시원한 통성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그가 즐겨 부르는 「심청전」중 맹인잔치에서 심봉사가 청이를 만나 눈뜨는 장면 역시 평계면에서 끓어오르는 격정을 토해내는 진계면으로 넘어가는 대목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90년5월 도쿄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일본공연에서 히다치노미아(상융궁) 일왕자부처를 비롯,전현직 장관·중참의원 등 1천700여관객이 만장한 가운데 장중한 공연이 끝나자 10여분간의 뜨거운 박수갈채로 심봉사로 분한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겪어온 숱한 고초가 부녀상봉과 개안이라는 환희의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장단은 중모리에서 빠른 자진모리로,창조도 애원성을 담아 관객이 눈물을 적시는슬픈 대목인데도 청승푸념이 범람하지 않는 영출한 기량에 일본신문은 한같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 명무대」로 호평하고 있다. 판소리 다섯마당중에서도 그가 특히 「심청전」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그가 살아온 지난날이 애통비절과 가난의 파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가 태어난 전남 보성군 결백면 오호리는 강산제의 원가인 회천면 금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부친 조기원씨는 순천일대를 주름잡던 한량에다 광폭의 주란으로 그는 하루도 가정불화가 그치지 않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다행히 부친이 못 배운 것을 한하여 3남2녀중 막내인 그만은 유독 서당에 보내주었다.6살때부터 동몽선습에서 대학·소학을 배우고 율포중에도 진학했다.그러나 어릴 때부터 「강산제의 정한어린 노랫가락」을 들으면서 소리에 눈뜬 그는 협률사공연을 보고 「소리꾼」이 될 것을 결심,12살되던 해 인근의 유명한 정응민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보성고를 졸업할 때까지 꼬박 7년을 하루 10시간이상 강산제소리인 춘향가·수궁가·심청가를섭렵했고 20세되던 해 광주로 나가 「적벽가」의 박봉술 명창을 사사,한때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그는 「나를 당할 명창이 누구냐」는 식의 호기와 만모로 군복무중에는 군예대를 만들어 전방을 휩쓸고 광주의 극장을 누비는등 객기만만의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가난과 객기의 젊은시절 그러나 목포문화방송의 국악프로를 맡아 출연하던 무렵 그곳에 들른 박녹주명창이 『지방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란 이유로 그를 수양아들을 삼았고 그때부터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명창의 자택에 머물면서 문밖출입이나 사람만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참으로 가혹한 시련의 학습시기를 거쳤다.그리고 이제까지의 타성이던 떠는 소리(발성),입안소리(함성),비성과 횡성을 말끔하게 씻고 그는 비로소 명창서열에 들어섰다. 71년 국립창극단에 입단,잘 생기고 떡벌어진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만조와 평조,판소리장단을 두루 꿰뚫자 청중은 그를 환호해 마지않았고 73년 국립창극단 「수궁가」를 필두로 그가 주역으로 나오는 공연은 관객이 3층 복도에까지 차는 이변을 빚었었다.「TBC향연」에 나가면서 삼성 이병철회장의 눈에 띄어 각별한 사랑을 받는등 서울공연 4년만에 집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가정이 파탄이 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자택은 양천구 목동아파트,부인 이숙정 여사와의 사이에 2남이 있다. ○80년대 장극무대 휩쓸어 옳은 말을 잘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탓에 82년 국악향상을 위한 국립창극단 오디션에 모순점과 부정이 개입됐다는 이유로 이에 앞장서 항의하다 자진사퇴해버렸고 그후 KBS창극단무대를 통해 「멀 있는 국악을 대중 가까이 끌어들인 개척자」를 자처하여 텔레비전 화면에 가장 자주 비치는 국악인의 한사람이 되었다. 사나이다운 광활한 성격에 비해 술·담배를 입에 대지 못하는 그는 국악의 대중화라는 이름 아래 모든 창극에서 주역을 휩쓸면서 86년 파리 퐁피두문화센터에서의 「조상현 춘향전완창」, 89년 예향 광주에 시립국극단을 창단,「심청전」 유고·헝가리순회와 「아리랑」 구소련순회 등 70여개국을 도는 화려한 소리의 여정을 펼쳐나갔다.매해 수십차례의 공연을 끊임없이 가지는 중에도 「전통판소리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선이 아니라 당대의 향취와 후대를 동반할 수 있는 음악을 지키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중국 악서에 나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춤을 보면 그 나라의 덕을 알 수 있다(문낙지정 관무지덕)」는 구절을 성취하려는 그는 요즘도 1주일중 사흘은 광주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서울판소리보존연구회의 판소리강습, 3년전부터는 전국판소리명창대회를 직접 주관하는 등 한시도 쉬지 않는 완강한 젊음과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판소리 옛예인의 단아단정하며 오로지 전통을 지켜나가는 소극적 이미지가 아닌,사나이의 호방과 웅장청원으로 새로운 판소리명창의 인상을 새긴 그는 지금 대광입신의 경지에서 거장다운 절창을 펼치면서 판소리무대의 「영원한 젊음」으로 우뚝 서 있다. □연보 ▲1939년 전남 보성출신 ▲51∼58년 율포중재학중 명창 정응민사사,보성고 졸업 ▲58∼60년 광주국악원서 박봉술 「적벽가」 사사 ▲60년부터 명창 박녹주문하사사 ▲71∼82년 국립창극단원,주역 ▲7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후계자지정 ▲73∼75년 판소리보존연구회 사무국장,판소리의 전승보급 ▲74년 남원 전국명창대회 1등 ▲76년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부문 대통령상 ▲78년 한국국악협회 상무이사 ▲80년 「수궁가」 완창발표(국립극장대극장) ▲82년 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 ▲83년 「수궁가」 완창발표(서울 문예진흥원대강당,부산 가톨릭센터) ▲84∼95년 전남대 국악강사 ▲86년 「춘향전」 완창발표(파리 퐁피두문화센터) ▲89년 광주시립국극단창단 ▲90∼현재 광주시립국극단 서울공연 「놀보전」(호암아트홀)을 비롯,창극 「아리랑」 구소련순회,「놀보전」 「심청전」 유고·헝가리순회 등 매해 수십회공연 ▲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지정 ▲94년 전국판소리 명창대회 주관 〈현재〉 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광주시립국극단단장 〈수상〉 대한민국국악대상(82년) 한국방송60년 방송유공자문화포상 대통령상(87년) 무등문화상(89년)
  •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주명두 변호사·목사(굄돌)

    북한 소형잠수함 1척이 동해안으로 침투하다 좌초된 채 발견되었다.그곳에는 20명이 넘는 무장간첩이 타고 있었다.그들이 아군에게 발각되지 않고 서울등지로 침투하였다고 가정하여 보자.우리는 다시 한번 큰 혼란을 격을 뻔했다.다행히 한 시민의 재빠른 신고로 침투사실이 발각되었다.군·경합동수색대는 달아난 간첩을 추적하고 있어 멀지않아 이들을 모두 붙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군의 동해안경비태세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지금보다 더한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한들 더 빨리 무장간첩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아무리 철통 같은 경비태세를 갖춘다 하더라도 침투하고자 하는 야심이 계속되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성실하게 자기임무에 종사하면서 깨어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마지막 경계망은 결코 뚫릴 수 없다.이번 북한 잠수함을 처음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은 택시운전사다.신고한 시간도 새벽 1시35분경이다.이로 보아 그는 자기임무에 충실하기 위하여 새벽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 것같다.열심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에게 좋은 기회도 찾아오는 것이다.그 한 사람 때문에 우리의 마지막 경계망은 뚫리지 아니한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개혁정책을 각 영역에 펼쳐왔다.이 개혁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각 영역에 이와 같이 깨어 있는 한 사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그는 목소리만 큰 사람이 아니다.비판만 일삼는 사람이 아니다.자기는 행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행하도록 요구하는 사람도 아니다.그 사람은 항상 깨어 있으면서 말로서 만이 아니라 자기가 행하는 일로서 자기영역에 경계의 나팔을 불어주는 그런 사람이다.영역마다 그런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영역의 경계망은 뚫리지 않는다.망하지 않는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일순간에 멸망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곳에는 모두 의롭지 못한 사람만 있어서 그 나라가 멸망한 것이 아니다.그곳에는 깨어 있는 열명의 평범한 소시민이 없어서 멸망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바이올린의 시인」 강동석씨/8년만의 국내 순회독주회

    ◎새달 5일부터 서울·포항·대전·광주서 「바이올린의 시인」이라 불리는 재불 연주자 강동석씨(42)가 내한,4개도시 순회독주회를 개최한다. 음악팬의 마음을 사로잡을 그의 가을무대는 10월5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7일 포항 효자아트홀,8일 대전 대덕과학예술회관,9일 광주 문화예술회관.세계정상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때 단골협연자중 한 사람인 강씨는 간간이 국내무대에 서기는 했으나 독주회를 열기는 8년만의 일이다. 8세에 첫 연주회를 가져 「신동」의 재능을 드러낸 그는 몬트리올·칼플레쉬·퀸 엘리자베스 등 세계적인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해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무대에서 명성을 쌓았다.영국의 세계음악인명사전,프랑스의 연주가사전에 이름이 수록될 정도. 거장 예후디 메뉴인이 「일찍이 보지 못한 바이올린의 귀재」라고 극찬한 그는 섬세하고 이지적인 스타일의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내년이 브람스 타계 1백주년,슈베르트 탄생 2백주년인 것을 기념해 슈베르트와 브람스를 특별 레퍼터리로 정했다.슈베르트의 환상곡C장조,브람스의 헝가리무곡과 드보르자크의 소나타 G장조,그리그의 소나타 2번 G장조 등.피아노협연은 프랑스 출신 파스칼 드봐이옹이 맡았다.
  • 해커는 「귀여운 정보 도둑님」(컴퓨터 걸음마:11)

    정보사회에 들어오면서 컴퓨터를 필수로 사용하다 보니 정보를 도둑질하는 정보 도둑들이 생겨났습니다.처음에는 장난 삼아 하던 도둑질이 점점 큰 도둑으로 변해갔습니다.정보 도둑을 정보 소매치기라고도 하며,영어로는 해커(hacker)라고 합니다. 해커는 컴퓨터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인 컴퓨터광을 뜻합니다.또는 비전문가(아마추어)이거나,정식으로 컴퓨터 교육을 받지 않은 프로그래머이지만 최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가진 사람을 해커라고도 합니다. 그러나,이런 뜻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이야기이고,1980 년대 이후부터는 허가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를 부수거나,정보를 훔치려고 남의 컴퓨터에 접근하는 정보 도둑님을 경멸하는 의미로 해커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어느 나라나 못된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요.지금도 최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고도 남의 정보를 훔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이들은 자기는 좋은 의미의 해커이고,남의 자료나 프로그램을 훔쳐가는 사람은 「위험한 해커」라는 뜻의 「대커」(dangerous hacker)나 또는 남의 자료를 부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크래커」라고 구분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남의 집의 자물쇠를 주인 몰래 열고 들어가서 지갑 속을 뒤져보고 그냥 나왔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남의 컴퓨터의 자료를 주인 몰래 읽어보는 행위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더군다나 남의 컴퓨터에 침입해서 자료를 복사해 가거나,남의 자료를 지워버려서 주인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비록 남의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가 「그 내용이 별거 아니더라도」 몰래 복사해가는 것은 범죄에 해당됩니다.「자료가 컴퓨터에서 화일로 저장되어 있으면 그것이 내용은 어떤 것이든 전부가 보안 대상이 된다」라고 「컴퓨터 범죄」에 대한 법적 해석이 있습니다. 해커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귀여운 정보 도둑」,「사랑스런 범죄자」 「컴퓨터광」,「전산망 불법 침입자」,「전산 강도」,「전산 정보 도둑」,「정보 소매치기」가 됩니다.컴퓨터를 들고가는 도둑은 해커가 아닙니다. 정보 도둑인 해커도 할 말은 있습니다.「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받아서는 아니된다」「모든 정보는 개방되어야 한다」.그래서 해커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답니다.정보를 도둑질하는 해킹을 귀엽게 봐주는 풍토는 컴퓨터가 도입되는 초창기일 때에 많습니다.컴퓨터가 보급되는 초기에는 비싼 외제 소프트웨어의 복사 방지를 몰래 풀어서 사용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국내·국외를 막론하고,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어야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좋은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수 있습니다.
  • 제1회 부산국제 영화제/앞으로 1주일/준비 순조…열기 달아오른다

    ◎예매 1주일새 관람권 5천여장 팔려/인터넷 접속횟수도 2천2백회 돌파/유명배우 등 잇단 내한… 관심 더욱 높아질듯/흑백 모녀의 갈등과 화해­비밀과 거짓말/가 영화제에 출품한 방화­세 친구/전형적 홍콩누아르 영화­상해탄/인간관계의 허구성 풍자­데니스는 통화중 우리나라에서 처음 주최하는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PIFF)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영화팬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지난달 30일(부산은 29일)부산은행 전국 1백73개 지점에서 관람권 예매를 시작한 뒤 5일 현재 모두 5천8백87장이 팔려나가 높은 관심을 그대로 보여줬다.또 조직위가 지난달 12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주소 http:/www.withnet.co.kr/piff)에서 제공하는 영화제 정보 접속횟수도 이날까지 2천2백회를 돌파했다.조직위 관계자들은 『전국 각 대학 영화관련학과 학생들과 영화동호회 회원들이 단체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참관하겠다고 통보해 왔다』면서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외국의 유명배우·감독들이 잇따라 내한하면 열기는 더욱 달아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번 영화제에서 경쟁성격을 띤 「새로운 흐름」과 「와이드 앵글」부문 심사위원이 최근 발표됐다.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경연장인 「새로운 흐름」심사위원에는 임권택(위원장),러시아감독 세르게이 보드로프,독일평론가 에리카 그레골,중국감독 장유안,프랑스평론가 피에르 미시앙이 위촉됐다.단편영화와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등이 출품되는 「와이드 앵글」부문 가운데 국내작품상에는 프랑스평론가 막스 페시에(위원장),영화배우 안성기,일본 후쿠오카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슈 마에다가,해외상에는 영화배우 강수연(위원장),영국평론가 크리스 베리,다큐멘터리 감독 변영주씨가 선정됐다. 7부문 상영작 1백71편 가운데 오프닝작품인 「비밀과 거짓말」을 비롯,주요작품 몇가지를 소개한다. ▷비밀과 거짓말◁ 올해 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여우주연상·국제비평가상을 받았고,뉴욕영화제에서도 개막작품으로 상영된 영국영화.흑인인 딸과 생모인 백인이 26년만에 만남으로써 벌어지는 가족간 갈등과 화해를 다뤘다.주제는 명확하다.가족사이에 비밀이생기면 이를 지키고자 거짓말을 하게 되고,그 결과 사랑이 사라지는 대신 증오만 남는다는 것.따라서 진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바탕이 된다는 메시지이다.누구나 즐길만큼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어머니 역인 브렌다 블리신의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추석프로」로 일반영화관에서도 21일 개봉될 예정. ▷세 친구◁ 「한국영화도 이제 이정도 성장했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킬만한 작품.1990년대 중반 한국사회의 갖은 모순을 92분짜리 필름에 농축했다.고교를 졸업했지만 진학에 실패한 동창 세명이 처음 사회에 나서면서 겪는 이야기들.감독은 담담한 태도로 그들 삶의 궤적을 쫓아가지만 그 시선에는 시대에 대한 고통이 짙게 배어있다.단편영화로 명성을 얻은 임순례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다.영화관 상영이 10월말이후로 잡혀있어 이번 영화제에서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새로운 흐름」부문에 초청됐고,캐나다 밴쿠버영화제 경쟁부문에 나가 있다. ▷상해탄◁ 서극이 감독하고 장국영·유덕화가 주연한 전형적인 홍콩누아르영화.홍콩영화다운 장단점을 두루 갖고 있지만 스케일이 크고,등장인물들의 삶의 비극성이 두드러진다.1940년대 초 중국 상해 암흑가를 무대로 우정과 사랑,야망들을 다루었다.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영한 홍문강(장국영 분)은 민족독립운동에 나서지만 우여곡절 끝에 건달 정력(유덕화)을 만나 깊은 우정을 맺는다.힘을 합쳐 암흑가에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두사람.그러나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면서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중국 여배우 영정이 국내팬에게 선보이며,한국배우 정우성이 특별출연했다.「스페셜프로그램」에 초청됐고 「추석프로」로 개봉된다. ▷데니스는 통화중◁ 현대사회의 인간관계가 갖는 허구성과 익명성을 통렬하게 풍자했다.주요 등장인물은 뉴요커 6명으로 「친구의 친구」「친구의 옛애인」식으로 알음알음 알게 된 사이.그러나 이들은 수시로 전화를 해 같이 사는 것처럼 상대를 속속들이 안다.심지어 전화로 섹스도 나눈다.그럼에도 이들은 얼굴을 맞대기를 꺼린다.이 가운데 한사람인 마틴에게 어느날 낯선 여자 데니스가 전화하면서 이들관계는 변화할 기회를 맞는데….미국 독립영화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월드시네마」부문에 초청됐다.
  • 적십자회담부터 받아라(사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12일 이산가족재회와 북한의 홍수피해극복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재개를 북한측에 제의했고 우리는 순수한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바탕으로 한 이 제의를 북한측이 흔쾌하게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바 있다.그런데도 이 제의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적십자회가 30일 느닷없이 비전향장기수였다가 출소한 김인서노인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앞뒤가 뒤바뀐 일방적이고 도발적인 요구가 아닐 수 없다.북한당국이 김노인의 송환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먼저 남북적십자회담재개를 수락하고 이 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다.김노인도 이산가족의 한사람인 만큼 적십자회담에서 그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당연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우리 정부는 93년 비전향장기수이던 이인모노인을 인도적인 입장에서 북한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북한당국은 김노인도 조건 없이 돌려보내주기를 바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적십자사가 남북적십자회담재개를 제의해놓은 상황이므로 그것을 우선 받아들이는 것이 순서다.그런데도 순서와 절차는 무시한 채 느닷없이 일방적인 요구만 내세우고 있는 북한당국의 도발적 자세를 우리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김노인의 송환요구에 저의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적십자회담제의에 호응해야 한다. 이 회담이 열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쪽은 북한이다.북한은 지난해와 올해의 홍수로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해 있다.지금 우리 종교계와 민단단체들은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정부도 추가식량제공을 포함,대북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때문에 북한당국이 적십자회담에 진지하게 응해온다면 식량난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본다. 현단계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이다.이를 위해서도 적십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는 바람직하다.북한당국의 호흥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대선구도 뒤흔든 「실사태풍」/총선비용 실사결과­정국전망

    ◎허주·DJ측근 등 여야실무 강타/당내홍·정치권 재편 휩싸일수도 23일 발표된 중앙선관위의 15대 총선비용 실사결과가 예상을 뛰어넘는 「A급 태풍」으로 드러남으로써 정치권은 격심한 소용돌이 속에 휩싸일 것 같다.자칫 기존의 구도 자체를 뒤흔드는 한바탕의 요동까지도 예상된다. 오세응 국회부의장과 여권의 「차기주자」의 한사람인 신한국당 김윤환 전 대표위원,4선의 중진인 이세기 국회문체공위원장,실세로 통하는 황병태 재경위원장 등 내로라 하는 의원들은 정치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이들은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 및 기부행위등 당선무효 가능성이 높은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당선무효까지 가지 않더라도 선관위가 고발 또는 수사의뢰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입게 될 정치적 상처는 매우 크다.게다가 이들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할 때 향후 파장은 개인적 차원 뿐 아니라 소속정당과 15대 국회판도,나아가 대권경쟁구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오부의장과 이문체 공위원장·황재경 위원장은 국회직 수행에,김전대표는차기 대선가도에서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신한국당에서는 이들말고도 목요상·양정규·박세직 의원 등 9명의 현역의원이 본인 또는 선거관련자의 위법으로 심판대상에 올랐다.여권이 안게 될 부담은 만만찮아 보인다. 그렇다고 야권도 편한 것은 아니다.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측근인 김경재 의원과 천정배·이기문 의원,자민련의 박구일·박종근 의원,민주당의 제정구 의원,무소속의 김화남 의원 등 7명의 의원이 대상에 포함됐다.여권에 비해 적은 수라고는 하나 국민회의 김의원이나 천·이의원,민주당의 제의원 등은 당 총재와의 친분관계 및 도덕적 측면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특히 초선인 국민회의 김의원은 지난 7월의 임시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 때도 「DJ 선봉대」 역할을 자임해온 처지다. 따라서 크든 작든 이들도 상처를 입게 됐고 그 여파는 야권의 중심부를 향해 치달을 공산이 높다.공천을 둘러싼 당 내홍으로 비화될 여지도 없지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의 범위다.김영삼 대통령은 『당선만 되면 끝난다는 풍토를 바꿔놓겠다』고 그동안 누차 강조해왔다.선관위도 『공소유지를 자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지난해 지방선거 때와 달리 적지않은 「사상자」가 속출할 것으로 관측된다.이들의 사법처리 절차는 1년으로 내년에 있을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에 끝나게 되어있다.정치권이 이들의 처리결과가 내년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 내년 5월 거취 결정 최형우 신한국 고문

    신한국당 차기 대권후보군의 한 사람인 최형우 상임고문은 『김영삼 대통령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명년 5월께 거취를 결정하겠다』며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겠다』고 말했다. 최고문은 19일 발매되는 시사월간 윈(WIN)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 그런 결심을 한 바 없다』며 『상도동 계보에서 30여년간 몸을 담은 한 중진의 입장에서 저와 가까운 사람들 특히 대통령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선족 씀씀이(압록강 2천리:36)

    ◎국외서 목돈 벌어 집치장등에 낭비 예사/궂은 일은 한족에… 가까운 거리도 인력거 불러/한때 우쭐대며 생활하다 알거지신세 수두룩/「한국바람」에 돈날리고 농사로 성공한 사례도 압록강유역의 조선족촌은 조선족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조선족촌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긴 하나 한족들이 섞여 살고 있다.그래서 두 민족의 생활자세가 극명하게 대비될 때가 많다.조선족은 요즘에 와서 닥치는대로 살고 한족은 푼돈이라도 굴려서 재산을 불리는 재미로 살아가는 것이다. ○개방화 타고 큰돈 벌어 조선족들은 개혁·개방화바람을 타고 한국이나 일본,소련,리비아 등지에 가서 돈을 벌어왔다.그리고 벼농사를 짓는 재간이 대단해서 농업소득도 한족보다 높았다.그럭저럭 조선족들은 뭉칫돈을 만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조선족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돈에서 비롯되었다.반 푼을 들여 한 푼을 더 벌려는 노력보다는 헤픈 씀씀이로 거들먹거렸다. 집치장을 한다,가전제품을 사들인다 하는 쪽으로 돈을 써버리기 일쑤였다. 한족들의 돌담 높은 집에는 마소며 닭이 득시글거려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조선족 집안은 깨끗해 보이고 한산한 대신 실속이 없는지라 달걀 한 알을 사려해도 한족집으로 달려간다.한족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몇십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걷지만 조선족들은 빈 몸을 하고도 한족이 끄는 인력거를 자주 타고 있다.선조들이 맨 주먹으로 서간도를 일구어낸 고난의 역사를 깡그리 잊고 사는 것이다. 요령성 철령시 교외 조선족마을에는 봄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여기서는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초가지붕의 이엉을 새로 이는데 일꾼은 모두 한족들이었다.마을에서 20리나 떨어진 한족마을에서 일꾼들을 불러다 썼다.주인과 마을사람들은 구경꾼이 되어 뒷짐을 지고 어슬렁댔다.그리고 잔소리를 퍼붓는 꼴이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집 한채를 이엉으로 이는데 주는 품삯은 점심 한 끼를 대접하고 70원.아직 초가집 신세를 지는 주제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이나 현,향·진 소재지에는 인력거가 베틀에 실북 나들듯 연락부절이다.인력거꾼은 대개 한족이고 인력거에 앉아 호사를 누리는 쪽은 조선족들이다.심양시 한 조선족마을에서 버스정거장까지는 불과 100m인데 인력거를 타는 일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이 마을을 상대로한 한족 인력거꾼 30여명은 한 사람이 매일 30원 안팎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다.이들 한족 인력거꾼들은 머지않아 승용차를 굴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조선족들이 다 떵떵거리는 것은 아니다.백기환씨(54)는 외국에 나가 돈을 좀 벌어온 사람인데 일찍 깨달았다.지난 92년에 나가서 2년동안 국외노무를 해 10여만원을 벌었다.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돌아와 일손을 놓았다.놀면서 심심풀이로 한 마작에서 4천원을 날렸다.그리고 딸아이가 대학을 가는데 5천원을 쓰고,동생이 1만원을 빌려가고 나니까 벌어온 돈 절반이 달아났다.그 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외국에 나가 돈 벌어왔다고 우쭐대다 알거지 된 사람들의 처지가 남의 일같지 않았다.그래서 다시 시작한 일이 구두닦기이다.지난해 4월 신빈진백화점 앞에 자리를 잡고 지금은 매일 50원정도의 고정수입을 올린다고 했다.그는 자신의 체험을 말할때면 으레 꺼내는 서두가 있다.『우리 조선족은 벌이가 없어서 못사는 것 아니디요.올바로 쓸 줄을 몰라 못사는 거우다』라는 말은 그의 좌우명처럼 들렸다. ○근면한 생활로 모범 요령성 조선문보는 최근 백기환씨의 성실한 생활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자세」라는 지상토론내용을 실었다.조선족의 못된 생활자세를 호되게 비판한 요령성 조선문보는 지금부터라도 생활철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이와 함께 백기환씨 말고도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요령성 신민시 호대진 홍기보촌의 조태현씨(43)가 그중의 한사람.한국에 가서 벌어온 돈을 농사에 재투자하여 첫 해에 순수익 2만원을 올린데 이어 지난해는 자그마치 4만원을 벌었다.자금은 굴려야 불어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한국에 다시 가서 더 많은 돈을 벌 의향은 없느냐는 기자질문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왜 없습네까.그러나 수만원씩 수속비 내고는 못간다는 생각이디요.가면 단시일안에 목돈을 만지긴 하디만 모두가 비정상이야요.고국으로 가는 길 차차 넓어지면 모르디만….한국바람에 너무 들뜨지 말아야 합네다.언제나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심정에서 또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거디요』 요령성 철령시 효명진 단결촌의 최철씨(42)는 남들이 너도나도 출국바람에 들떠있을때 한눈을 팔지 않고 성공을 거둔 사업가다.한국오리엔탈 유한회사가 심양에 들어와서 전적으로 조화를 생산한다는 정보를 얻어냈다.지난 92년 집에서 실험생산에 들어갔고,한국오리엔탈에서도 제품을 인정했다.1993년 효명조화공장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지금은 한국오리엔탈산하 분공장으로 들어간 효명조화공장은 한국오리엔탈 분공장가운데 가장 높은 생산실적을 올렸다. 효명조화공장은 종업원 20명을 거느리며 연간 40만원어치의 조화를 만들고 있다.조화의 인기가 좋아 미국,독일,일본 등지로 수출되었다.허망한 꿈과는 아예 벽을 쌓고 분수에 맞는 일거리를 찾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조선족들의 마음에도 터를 잡기 시작했다. 한국을 향한 꿈이 산산히 깨지자 이를 남가일몽으로 돌리고 좌절에서 희망을 다시 찾은 성공사례도 있다.요령성 무순시 순성구 전전진 신북촌 김서호씨(60)는 늘그막에 한국에 가서 한 몫을 잡겠다는 욕심을 부렸다.욕심은 화근이라고 브로커에 2만원을 떼이고 94년 한 해 농사도 망쳐버렸다.해가 바뀌어 95년 농사철이 돌아오자 한국을 딱 단념하고 남의 땅까지 빌려 농사에 달라붙어 채소농사와 벼농사를 지었다.지금은 한 해에 2만원의 알수익을 거둬들이는 부농이 되었다. ○구두닦이로 다시 시작 요령성 조선문보에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성공사례가 실리자 동북지방 조선족들로부터 많은 편지가 날아들고 있다는 것이다.조선족들에게 많은 감명을 안겨주어 선조들의 개척정신이 되살아나는듯 했다.김병모라는 사람이 어른 구두닦이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편지를 보냈다. 「어떤 사람은 단돈 한푼을 못벌면서도 입에는 항상 고급담배를 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집에서는 된장과 짠지를 먹고 살면서도 술집에 가서는 고급요리를 잔뜩 남기고 돌아오는 허세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작은 돈은 눈에 차지 않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큰 돈을 탐냅니다.우리 농촌에서보면 한족들은 탈곡기를 끌고 다니며 돈을 버는데 조선족들은 뒷짐 짓고 서서 다 벌어놓은 돈을 남의 주머니에 찔러줍니다.이런 판에 구두닦이로 나선 백기환씨는 참으로 돋보이기만 합니다.근로에 용감했던 선조들의 색바랜 미덕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2백만 조선족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 “레바논계 필리핀인” 국적·혈통 위장/실체드러난 남파간첩「칸수」

    ◎신분 속이려 말련서 교수경력 쌓아 입국/“외국인으로 우리말 완벽” 학생들에 인기 지난 3일 국가기밀제공혐의로 안기부에 구속된 단국대 사학과 무하마드 칸수 교수(50)는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남파간첩이었다. 본명은 정수일.나이는 62세.지난 88년부터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명한 이슬람문화 비평가로 활동해 왔다. 정은 부친이 필리핀인,모친은 레바논 사람인 다국적 혈통으로 위장,두차례에 걸쳐 국적을 세탁했다. 84년 4월 한국에 들어와 연세대 어학당에 입학,한국어를 배웠다.평소 『휴가기간중에 한국어를 배울 목적으로 한국에 왔고 2∼3개월동안 체류할 계획이었으나 한국이 좋아 눌러 앉았다』고 주위 사람들을 속였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81년에는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말레이대 이슬람아카데미의 교수를 맡는 등 다국적 경력을 갖추었다. 국내에는 84년 9월 단국대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89년 12월 「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관계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과 아랍의 교류가 9세기 이전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활발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국내 학계에서 평가받았다. 88년 단국대 초빙교수로 임명돼 국내 활동의 근거를 마련했다.단국대에서 동서문화교류사를 강의했으며 90년부터 한국외국어대의 동시통역대학원에도 출강했다.단국대 학부에서는 교양아랍어를 가르쳤다. 그를 처음 본 학생들은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외모때문이다.정은 이를 의식한 듯 수업시간에 『나는 필리핀 태생이고 레바논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교수지만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학생들 사이에 인기도 높았다는 것이다. 연구실에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때가 많아 공부를 많이 하는 교수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88년 한국여자와 결혼한 뒤 『이제 한국사람이 다 됐다』고 말해왔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우성아파트에 부인 원모씨와 둘이 살았다.이웃 주민들은 이들 부부사이에 자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은 평소 이웃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여 「깐디교수」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부인 원씨는 반상회에도 잘 참석해왔다.주민들은 『콧수염때문에 외국인인줄 알았으나 우리말을 너무 잘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때 일부 신문에 문화시평 등을 기고,필명을 날리기도 했으며 한반도의 불교전래 등에 관한 새로운 학설을 담은 「신라·서역교류사」「서역고」 등의 학술서와 신문 등에 발표한 글을 모은 「세계속의 동과 서」를 95년에 펴내기도 했다.〈노주석·이지운·박준석 기자〉 ◎주요 간첩 사건 일지 ▲69.1.31=판문점을 통해 위장귀순한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 간첩 혐의로 체포. ▲69.5.14=당시 공화당 전국구 의원 김규남 북한을 방문,노동당에 입당한 혐의로 구속. ▲82.7.1=서독에 위장 망명한 뒤 귀순한 김진모 등 간첩 3명 검거. ▲82.9.10=전직 공무원과 이화여대 교수 등이 낀 25년 암약 고정간첩단 29명 적발. ▲86.9.4=이병설 서울대 교수 11년동안 암약한 혐의로 구속. ▲92.9.7=36년동안 암약한 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낙중 구속. ▲92.9.29=거물급 공작원 이선실이 주도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조직원 58명 구속.▲94.6.16=대학강사가 포함된 조선노동당 지하당 「구국전위」 조직원 10명 구속.
  • 조각가 김영중(이세기의 인물탐구:100)

    ◎선과 면의 결합으로 「인간주의」 실현/구상서 추상까지 고루 섭렵… 작품마다 실험정신/대형건물 미술품설치 의무화 등 미술발전 앞장/광주 비엔날레 「경계를 넘어」·세종문화회관 「비천상」 등 대표작 연대 정문에서 명지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연희조형관.건물 베란다를 둘러싼 청청한 송죽과 추상조각으로 이뤄진 하얀 돌기둥이 눈에 띈다.이 건물은 해방후 조각 1세대로서 이 시대 대가의 한사람인 우호 김영중의 미술관이다. ○해방이후 1세대 조각인 화단경력 40년에서 그가 쌓은 업적과 작업량은 엄청나다.우선 세종문화회관 외벽부조인 「비천상」,독립기념관의 상징조형물인 「강인한 한국인」군상,서울신문 외벽부조인 「질서」가 그의 작품이다.서울 어린이대공원내 소파 방정환을 비롯해 인촌 김성수,의제 허백련,고하 송진우,일민 김상만,가인 김병로,용인 호암미술관의 이병철,명창 임방울초상등 등 시비·화비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동안 홍대·이대·중앙대 교수를 거쳐 한국미술가협회이사장,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심사위원장을 지냈고 63년 원형조각회를 창립한 이래 한국현대조각연합 상파울로비엔날레 한국현대미술전과 도시의 환경조각,음악과 무용미술전 등 대대적인 그룹전·기념전에 그는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개인전을 연 적이 없고 자전적인 화집 한권도 갖지 못했다고 하면 아무도 곧이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지난해 고희기념으로 후배들이 화집발간을 권유했을때도 그는 『내 화집을 내손으로 만드는 것은 쑥스럽다』면서 후학들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미술도서,미술전문잡지,팸플릿과 각종 슬라이드·비디오테이프등 2만5천여점을 내놓아 그의 조형관에 미술자료실을 먼저 만들었다. 실제로 80년대 그는 재능있으나 가난하여 전시회를 갖지 못하는 35세미만의 젊은이들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열어주었고 대형건물에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는데 앞장서는등 누군가 해내지 않으면 안될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미술을 발전시킨 역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우호라고하면 그의 작품들은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몇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이른바 한국성을 강조하면서도 국경을 초월한 「생명주의 추구」가 그것이다. 첫째 그는 면과 면의 만남이 선을 형성하고 선과 면의 결합에서 한국적인 형상을 발현한다는 확신이 투철하다.여인의 버선목에 나타나는 유연하고 완만한 곡선미는 예리하고 차가운 석질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만져질듯 부드러운 감촉을 만들면서 빛의 농도와 조사 각도를 통해 조각에다 발색과 채도 조명기법을 도입하고 있다.또 모뉴망 하나라도 그것이 사면팔방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광선과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작품으로서 완벽할뿐만 아니라 면은 물론 표현의 성격도 달라진다는 것을 면밀하게 계산해낸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성취하기 위해 구상에서 추상,반추상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헤프닝과 실험과 조형양식을 고루 섭렵해왔다.그리고 어려움이 닥칠때마다 피하지 않고 「홀로 선다」는 각오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중고차 한대를 사서 해머로 두들겨 부수고 구겨서 이를 새로운 조형물로 재생한 적이 있고 널빤지에다 새끼줄을 이용한 입체적인 콜라주기법을 부조에 응용하는가 하면 풍경과 종을 환조에 달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를 내는 「소리나는 조각」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천착하는 중에도 부르델과 마이욜의 지중해적 고요와 격정,슬픔의 상황고조를 극복해냈고 부랑쿠시와 아르프의 현대추상작품에서 보이는 유기적 생성표현에 집착하면서 미지의 어떤 것,보이지 않는 진실에 독해가능성을 부여하는 작업에 치중해 왔다. ○경력 40년… 개인전 연적 없어 먼저 그의 릴리프들은 우아하면서도 모던한 회화성이 새롭다.흰 벽면 전체를 캔버스 삼아 양각과 음각으로 터치된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비천상」은 그 것이 돌조각인데도 승천하는 천사의 움직임을 율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거대한 빌딩의 외부 혹은 내부벽면 부조 역시 밤의 조명속에서 마치 백색 유화물감만으로 마감한 싱그러운 마티에르와 볼륨을 살린다.초상작품도 마찬가지다.각 인물의 명철과 청념,정한과 인자,고매한 인품과 꿋꿋한 지조를 형형한 눈빛와 미소에 담아 그들의 지나온 역정을 고백성사처럼 들려준다. 기념조형물중에는 광주비엔날레 상징물인 「경계를 넘어」가 김영중 모더니즘의 압권으로 손꼽힌다.원형으로 휘어진 붉은 무지개다리는 하늘의 푸른 색과 조화를 이루면서 우주를 향한 교량답게 극적인 긴장감과 지성미를 품고 눈부신 창공에 고고하게 걸쳐져 있다. 「단순히 조각을 위한 조각은 예술로서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주의 실현이며 인간의 행복에 보조를 맞출 수 있을때 비로소 예술가의 긍지가 빛난다」고 그는 말한다. 우호는 광주농림고시절 학교에서 전교생에게 점토로 작품을 만들게 하고 그중에서 우수작품에 선발되자 그때부터 그림과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조선조 중엽의 성리학의 태두인 하서 김인후의 13대 직계손이며 부친 김요흠씨는 전남 장성의 대지주로 그는 한서와 서예와 시조의 풍류가 있는 지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실수 용납않는 완벽주의자 해방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홍익대 조각과로 옮겨 대학을 졸업,58년 제7회 국전에서 「장갑낀 여인」이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을 때도 국전출품을 계속하지 않고 있다가 75년 국전의 재야영입 케이스로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지금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10살에서 30살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격의없이 어울리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만년 미래지향형이다.요즘은 오는 11월4일로 잡힌 동아일보초대 첫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그의 조형관 지하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 있다.가족은 디자이너출신의 부인 임원순씨와의 사이에 8남매,위로 딸 7형제중 3녀 명수씨가 현대무용가이고 외아들 경수씨는 올봄 예일대 졸업후 귀국해 있다. 우호의 성격은 대체로 예의가 바르고 겉으로 부드러우나 일을 앞세우면 사적 애정을 떠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속물적인 타협이나 시세에 편승하는 법도 없다.다만 정이 많고 친구를 좋아하는 다감한 일면이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다. 미술평론가 김남수씨는 『조각가,교수.미술행정가로서 화단에서 쌓은 수많은 업적중에도 지난해 60일간에 걸쳐 무려 1백90만명의 관광객을 동원한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은 당연히 우호의 몫』이라고 평가한다.조각가 조성묵씨는 『생명이 있는한 그 삶의 정의로움과 사랑을 어찌나 중요시하시는지 거기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의 후배사랑을 주변에 전한다. 대문호 괴테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그의 형태는 「견고하고 명확하고 한정된 볼륨과 외부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균형잡힌 고요」를 성취한 가운데 절대를 향한 내면에 깊숙이 접근되고 있다.그리고 현대적인 균제미와 구상주의를 절충한 그의 상황조각은 최상의 배경인 자연의 풍광속에서 언제 어느 면에서 보든지간에 낯의 빛과 별들의 빛을 수용하면서 살아숨쉬는 생명주의를 실천해 내었고 결국 예술의 끝인 「휴먼」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연보 ▲1926년 전남 장성 출생 ▲46년 서울대 미대 입학 ▲56년 홍대 미대 졸업 ▲58년 제7회 국전 「장갑낀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 수상 ▲62∼63년 홍대,서라벌대 출강 ▲63년 원형조각회 창립기념전 ▲73∼78년 이대 및 중앙대출강 ▲75년 국전추천작가 ▲77∼현재 동아미술제운영위원회 의장 및 심사위원 ▲80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86∼현재 서울신문사주최 서울현대조각공모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 ▲9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장 ▲93∼현재 서울특별시예술위원 ▲94년 광주비엔날레조직위부위원장 ▲95년 「미술의 해」조직위원 〈작품출품〉한국현대연합조각전 서울미술대전 현대미술초대전 원로조각초대전 상파울루비엔날레 구상조각전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전 등 1백여회 출품 〈대표작〉독립기념관 「강인한 한국인상」,세종문화회관외벽 「비천상」,13도 창의군탑,서울시시설관리공단 「일하는 사람들」,광주어린이대공원 어린이탑 「희망」,마산종합운동장 상징탑,해남 명량대첩기념탑,서울신문사 내벽부조 「질서」,중앙일보사외부조각 「배달소년상」,동아일보 충정로사옥앞 「기수」,광주비엔날레상징 무지개다리 흉상및 동상등 수점 〈현재〉한국조각공원연구회장·한국미술협회고문·홍익조각회회장·한국성미술연구회 고문 〈수상〉대통령 표창(82년) 서울특별시문화상(88년) 예총 예술문화상(91년) 청곡문화상(93년) 옥관문화훈장(94년) 호암예술상(95년)
  • “인간문화재 지정” 수뢰/전문위원 등 2명 사퇴

    문화체육부산하 문화재보호재단 발굴조사실장 임영주씨와 정명호 문화재전문위원이 최근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지정과 보유자 인정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것과 관련,지난 10일과 9일 각각 사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12일 문화재관리국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해 9월부터 32명의 도자기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사기장 기능 보유자를 조사하던중 사기장 후보중 한 사람인 H씨의 며느리 이모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5백30만원을 받았고 임씨는 지난해 12월 이씨로부터 50만원짜리 양복티켓을 받았다.
  • 말의 반환/이강숙 예술종합학교 교장(굄돌)

    『고향의 만수아저씨가 돌아가셨대요』 집사람의 전화 목소리는 떨렸다.만수아저씨는 먼 친척이다.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라 아내의 가슴은 떨렸다. 일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가까운 인척이 죽었다고 해도 신경이 쓰여지지 않을 정도로 바쁠 때가 있다.그래서 만수아저씨의 부고소식을 듣고 나는 그냥 『응,알았소』라고만 했다.사람이 죽었다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싶었던지 아내는 『고향으로 무슨 연락 같은 것을 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했다.나는 『알아서 하겠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만수아저씨의 죽음에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나,사람이 죽었다고 할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지금 어쩌겠나」 싶었다. 하던 일을 끝내고 집무실에서 혼자서 눈을 감았다.만수아저씨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생전에 자주 만나지 않던 얼굴이지만 확연히 기억되었다.제사때나 명절때 가끔 만날 수 있었는데,만수아저씨는 언제나 주변에서 맴돌다가 사라져버리는 사람이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만수아저씨의 친형은 아직도 살아 있다.동생이 먼저 죽은 셈이다.죽음에는 선후배가 없다는 농담이 생각났다. 나는 근년에 어머니의 죽음,장모님의 죽음,사돈의 죽음,후배·친구의 죽음 등을 경험했다.생각하면 모두가 기막히는 사건들이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수아저씨의 죽음이 다른 어떤 죽음보다 나를 슬프게 한다. 만수아저씨의 죽음 앞에서 그의 삶을 유추해보았다.만수아저씨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삶은 말로 요약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의미 있는 삶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인간 일반의 입장에서 보면 만수아저씨의 삶은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삶이 된다.태어나서 웃고 울고 먹고 자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한 세상 살다 간 삶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나는 그의 삶을 말로 요약되는 삶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말로 요약이 될 수 없는 그의 삶을 축복해주고 싶어서 하늘에다 말의 반환권을 요구하고 싶었다.
  • 전주 시장­여천 군수 보선/국민회의 후보선출 파문

    ◎동교동­김상현계 실력대결/동교계 추천인물 탈락 “비상” 국민회의의 전주시장과 여천군수 보궐선거 후보공천에서 동교동(김대중 총재 직계)진영의 인물을 밀어내고 김상현 의장계가 공천을 받았다. 최근들어 동교동계와 김의장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는 가운데 김의장이 세과시에 성공,동교동계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대권후보 경선」을 주장하는 김의장이 이번의 성과에 고무되면서 동교동을 향한 공세에 더욱 고삐를 쥘 가능성도 있다. 여천군수 공천의 경우 대의원들의 직접 투표로 후보를 결정했던 명실상부한 「실력대결」이었다.지난 26일 후보로 선출된 조남선씨(57·전 여수 수협조합장)는 김의장계 핵심인사인 신순범 전 의원이 지원했던 인물이며 김성곤 의원(전남 여천)이 밀었던 주승용씨(도의원)를 2차투표까지 가는 접전끝에 5표차로 물리쳤다.초선인 김의원은 동교동계의 교감을 얻은 주씨를 천거했지만,조씨가 후보로 나선 김모씨(도의원)와 연합전선을 형성,동교동 지원인사를 침몰시켰다. 후보결정 직후 김의원은 동교동계 핵심인사를 찾아 경위를 설명하며 대책을 협의하는 등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당의 한 관계자는 『김의원이 후농계(김의장의 아호)라는 항간의 소문은 이로서 거짓임이 명백해 졌다』고 말했다. 전주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결정된 양상렬 변호사(60)도 김의장 사람인 장영달 의원(전주 완산)이 지원했던 인물. 모양상 유종근 전북도지사와 김태식 정균환 장영달 정동영 의원 등 「공천자 선정 5인위원회」에서 결정했지만,과정을 보면 복잡한 당내 역학관계가 투영됐다. 동교동측이 민 인사는 사실 김완주 전북도청 기획관리실장인 것으로 알려졌다.능력과 지역여론 등을 감안,강력한 후보로 부상했지만 공천신청에 앞서 전북도청에 사표를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유지사가 내무부 징계에 회부,「결격사유」가 발생했다.유지사가 밀었던 강재수씨(성형외과 전문의)는 김총재가 『지구당 선정위가 추천한 범위를 넘어서는 안된다』며 제동을 걸면서 탈락했다.결국 전주 완산·덕진 지구당의 「공천자 선정위원회」가 천거한 양변호사가 어부지리성의 승리를 한 셈이다.〈오일만 기자〉
  • 호주/일본인들 노후 정착지로 각광

    ◎넓은 땅·좋은 기후 안정된 물가 등 여건 갖춰/“외화획득” 호정부 환영… 「은퇴자 마을」 구상 은퇴후 노년을 호주에서 보내는 일본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지난 4년간 호주로 건너온 일본 연금생활자가 4백50명을 상회하고 있는데 그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인 은퇴자가 호주에서 말년을 보내려면 호주당국의 특별허가를 취득해야 한다.특별허가는 나이가 55세이상이어야 하고 50만호주달러(2억8천만원)에 상당하는 현금 또는 기타소득이 있을 때만 취득이 가능하다.호주당국에 재정적 부담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본 연금생활자들은 호주에 귀화할 수는 없지만 호주 외국인투자심사국의 허가를 얻어 개인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이들 일본인 대다수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호주 동북부 퀸즐랜드주의 해변관광휴양지인 골드 코스트.따라서 몇몇 호주 기업은 이곳에 아시아인과 유럽인을 위한 일종의 국제은퇴자마을을 건설하는 계획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연금생활자중 한 사람인 미우라 쇼지씨는 대학에 다니는 딸,그리고 부인과 함께 그들 소유의 주택에 살고 있다.은퇴후 생활을 호주에서 보내기 시작한 이래 쇼지씨는 일본에서는 비싼 요금 때문에 엄두도 못내던 골프를 치면서 말년을 즐기고 있다.부인 이쿠코도 호주인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면서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기분』이라며 좋아했다. 호주가 일본 은퇴자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이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의 넓은 땅과 좋은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호주정부 역시 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외화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호주를 선호하는 일본인이 늘면서 일본인의 호주 투자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그 결과 일본인은 호텔·관광리조트·골프장,심지어 농장 등에 걸쳐 3백30억호주달러를 투자해놓고 있다. 그러나 일부 호주인은 일본의 호주 부동산매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이들은 2차대전중 호주를 점령하지 못한 일본이 반세기가 지난 현재 경제력으로 호주를 삼키려 한다는 비판을 토로하고 있다.〈멜버른(호주) DPA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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