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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6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0)

    儒林(46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0)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0) 그렇다면 문공은 맹자에게 무슨 말을 들었던가. 어떤 인상 깊은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끝내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고 평생 동안 맹자를 존경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맹자사상의 골수인 성선지설이었다. 그 무렵, 문공은 아직 세자로서 이웃 강대국인 초나라에 사신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사신이지 약소국이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떠나는 진사(陳謝)사절이었던 것이다. 초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송나라에는 맹자가 머무르고 있었다. 송나라도 등나라처럼 규모가 작고 땅은 협소하여 인구가 적었지만 송나라의 임금은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을 뿐 분발하지 않았으므로 맹자 역시 우울한 식객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세자는 강대국 초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진사로 나가는 자신의 입장을 한탄하자 맹자는 말끝마다 요순(堯舜)임금을 칭하면서 인간본성의 선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맹자’에는 맹자가 문공에게 말하였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전후의 문맥으로 보면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천하의 성군 요순도 성선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대도 그 성선을 확장시킬 수만 있다면 반드시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는 내용으로 설법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맹자의 말을 그대로 흘려들었던 세자는 초나라에 가서 굴욕적인 외교를 끝내고 돌아올 무렵에 다시 맹자를 만난다. 이때 세자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없는데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듣기 좋은 말을 하였는가 하고 따져 물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자 맹자는 대답하였다. 의심하는 세자에 대한 맹자의 명답이 ‘등문공 상편’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세자는 내 말을 의심하십니까.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일찍이 성간(成 )이 제경공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대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이니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하였으며,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도를 이룬 자는 또한 이 순과 같다.’고 하였으며,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문왕은 나의 스승이니 주공(周公)이라도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하였습니다. 지금 등나라는 비록 작다고 해도 국토의 긴 곳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하면 오십리가 되니, 그래도 그것을 가지면 좋은 나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만약 약이 몸을 어지럽게 하지 아니하면 그 병은 낫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맹자의 이 대답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성선지심’이 있는데, 그 마음을 닦아 도를 이루면 반드시 누구나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좋은 약을 먹었을 때 약 기운으로 말미암아 잠시 어지러운 증상이 있겠지만 참고 기다리면 곧 좋은 결과가 찾아와 쾌유되는 것처럼 비록 지금 등나라는 사방 50리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인의로써 다스린다면 반드시 요순과 같은 성군들의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음을 확신하는 맹자의 사자후였던 것이다.
  • [깔깔깔]

    ●혹시 아는 사람 운전을 몹시 난폭하게 하는 남자가 아내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나갔다. 운전을 차분히 하라는 아내의 충고를 계속 무시한 남편은 이리저리 차선을 변경하다가 마침내 트럭 운전사와 시비가 붙게 되었다. 말 다툼 끝에 드디어 이성을 잃은 남편이 트럭 운전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좀 끼워주면 어디가 덧나! 이 좀팽이야!” 그러자 트럭 운전사도 다음과 같이 응대하고는 휑하니 떠나버렸다. “이 머저리, 얼간이, 쪼다야! 돈도 없고 마누라한테 쓸 힘도 없는 바보야! 운전도 자신이 없으면 다음부터는 마누라한테 핸들을 맡겨!” 말없이 사태를 지켜보던 아내가 눈이 뒤집혀버린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저런 놈을 어떻게 알아!”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당신에 대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에 아는 사람인가 했지.”
  • [논술첫걸음] 생각은 무엇을 먹고 자랄까

    이번 주는 실제 아이들과 이루어진 독서토의의 모형을 소개한다. 독서토의는 책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해 다음 독서활동에 영향을 준다. 또한 다른 이들의 관점을 존중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게 된다. 토의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주제가 있고, 목적이 분명한 말하기이다. 아이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끄는 것이 교사나 부모가 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의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지만,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은 ‘너는 특별하단다(맥스 루카도, 고슴도치)’이다. 먼저 한 가지 과제를 주었다.‘특별하다’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것. 토의 중에는 메모를 하도록 했고, 마무리한 뒤에는 토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논술문의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3학년과 5학년 두 아이와 토의했던 내용 일부를 정리했다. 엄마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니? 아이1 우리가 친구들을 왕따시키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요. 똑같은 나무사람인데 점표와 별표를 붙여서 서로 왕따시키는 것 같았거든요. 엄마 왜 왕따를 시키는 걸까? 아이2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너무 잘난척 하거나, 지저분하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그런 거요. 엄마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는 것 아닐까? 아이1 그건 그래요. 전 제가 생각해도 씻는 걸 싫어해요. 아이2 저도요. 우리에게는 모두 단점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이1 지금 생각하니 단점보다는 장점을 얘기해주면 더 좋겠어요. 엄마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뭐였니? 아이들 특별하다는 말이요. 엄마 그래?그럼 특별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아이1 중요하다, 소중하다는 뜻인 것 같아요. 엘리가 펀치넬로에게 “너는 특별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펀치넬로를 만든 엘리에게는 펀치넬로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2 엄마는 어떠신데요? 엄마 엄마는 특별하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루시아가 떠올랐어. 아이2 저도요. 루시아에게는 점표나 별표가 하나도 붙지 않았어요. 루시아는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아이1 펀치넬로도 자신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믿는 순간 점표가 떨어졌어요. 아이2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엄마 좋은 생각인걸. 그러면 “너는 특별하단다.”를 다른 말로 한 번 바꾸어 보자.“너는 특별해, 너는 중요해.”처럼 말이지. 아이1 너는 소중해, 최고야. 아이2 네가 최고야, 정말 멋져. 엄마 아주 좋은데. 우리가 한 얘기들을 정리해 보자. 아이1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이다. 아이2 맞아요. 세상에 나는 하나뿐이잖아요. 엄마 우리가 서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 토의를 마무리하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왕따의 문제)’와 ‘나는 특별한 사람(자아정체감과 자신의 꿈과 미래)’을 논술문의 주제로 잡았다. ■ 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 전문강사 황복순
  • [마광수의 섹스토리] 가자,장미호텔로!

    [마광수의 섹스토리] 가자,장미호텔로!

    “당신이 마광수란 사람인가요?”하고 어떤 여인이 내 학교 연구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눈이 번쩍 띄게 희한한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옆구리에 은색 줄무늬가 들어간 보라색 재킷과 엉덩이만 아슬아슬하게 가릴 정도의 짧은 뱀가죽 무늬 미니스커트를 보자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다리로 옮아갔다. 그녀의 다리는 엄청나게 길고 매끈했으며, 뱀이 꽃을 휘휘 감고 있는 모양으로 짜여진 검은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이토록 야한 여자의 출현에 나는 그만 머리가 팽 돌아버렸다. 한참만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여자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마광수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그러자 여인은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리며 내 연구실 풍경을 스케치했다. 그녀가 고개를 움직이자, 그녀의 왼쪽 귀에 매달린 다섯 줄의 굵은 은빛 쇠사슬이 어깨까지 내려와 드리워진 게 보였다. 오른쪽 귀에는 한 줄의 쇠사슬과 솔방울만한 귀걸이가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녀와 나의 눈길이 마주치자, 그 눈빛이 너무 야해서 나는 그만 눈길을 피해버렸다. 그녀는 실망한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제일 야하기로 소문난 그 마광수란 사람이 어디 있죠? 당신 얼굴은 영 야하지 않은데요?” 그러면서 그녀는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길디긴 손톱은 세로로 반을 나누어 황금색과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러찮아도 나무젖가락처럼 긴 손가락과 어우러져 무시무시하게 길어 보였다. 나는 그녀가 그 긴 손톱(10㎝가 넘어보이는)으로 분명하게 내 눈을 가리키자 이유도 없이 가슴이 쿵쿵 뛰고 겁도 약간 났다. “실망하셨을지 모르지만 내가 바로 그 마광수입니다.” 한참만에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 당신이 마광수 교수로군요. 너무 수수하고 점잖게 생기셔서 아닌 줄 알았어요. 그럼 잠깐 저랑 이야기 좀 나누실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를 차마 내 연구실에 둘 수 없었다. 너무 화려하고 야해서였다. 나는 남의 이목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이끌고 내 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내 승용차에 태우고 학교에서 떨어진 H대 앞 카페 ‘Tess’로 갔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훨씬 컸는데(내 키는 175㎝이다), 자세히 보니 앞굽은 없고 뒷굽만 15㎝가 넘는 펌프스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어림잡아 진짜 키가 180은 돼 보였다. 그녀는 머리를 계속 꼿꼿이 쳐들고 있어 마치 패션모델처럼 보였다. “아, 이 카페 분위기가 좋군요. 여기서 당신을 보니까 역시 야한 구석이 있어요.”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어깨와 목에 걸린 쇠사슬이 부딪쳐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내가 그녀의 마음에 영 안들었다면 당장이라도 그 긴 손톱으로 나를 할퀴고 쇠사슬로 나를 패기나 할 것처럼, 나는 그녀에게 겁을 먹고 이상한 긴장감을 가진 채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첫인상에 압도되어 그녀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생전 처음 본 요상한 여자가 나타나 다짜고짜 내게 은근한 추파를 보내고 있는데,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내가 그래도 ‘명강의’로 소문난 사람인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마 교수님, 당신 눈초리를 보니 제가 마음에 드시는가 보죠?”하고 여자가 말했다. “아…예…예….” 나는 어찌 대답할 줄을 몰라 말을 얼버무리며 바보같이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야하디야한 차림새나 짙은 화장에서 풍기는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본래의 아름다움이 금방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좀 무섭고 그로테스크하고 낯설었다. “마 교수님, 그럼 본론을 이야기할게요.” 여자가 나를 쏘아보며 다시 말했다. 목소리조차 허스키하게 음란하였다. “당신과 함께 진한 섹스를 하고 싶어요. 괜찮으시겠죠?” 내가 금세 대답을 못하자(나는 원래 ‘오럴’ 체질이지 ‘삽입’체질이 아니어서),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빠르게 말했다. “우리 어서 가요. 이 근처에 ‘장미호텔’이 있죠? 당신이 시로 쓴 적이 있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기운을 내어 대답했다.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본능이 슬슬 발동해 왔다 “그럼 그리로 가지요.” 우리는 카페를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장미호텔로 갔다. 다행히 빈 방이 있었다. 룸안에 들어서자 바로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남의 이목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침대 모서리에 앉을 때 그 짧은 미니스커트가 아슬아슬하게 당겨 올라가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긴 다리는 검은 망사 스타킹에 둘러싸여 더욱 미끈하게 뻗어 있었다. 처음에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로 올려 꼬고 앉은 그녀는 잠시 후 다리를 바꾸었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의 샤론 스톤을 연상시켰다. 그녀가 다리를 반대편으로 꼴 때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혹시 ‘노 팬티’가 아닐까? 손바닥만한 미니스커트에 팬티까지 입는다는 건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그렇게 어색해하시지 말고 어서 제 옆에 와서 앉아요. 그리고 우리 둘 다 옷을 벗어요.” 여자의 말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 여자한테 질 수는 없다.’고 뇌까리며 옷을 벗었다. 그녀도 옷을 벗었다. 재킷을 벗자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남색 상의가 나타났다. 그 옷은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자줏빛, 보랏빛으로 변했는데 얼마나 훤히 비치는지 커다란 배꼽고리를 매단 젖꼭지와 브래지어의 레이스 모양, 그리고 가슴 곡선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가슴이 갑자기 몹시 뛰고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마치 스트립쇼를 하듯 옷을 천천히 다 벗고 나서 내게 다가오더니 내 등을 감싸고 나를 침대 위에 뉘었다. 나의 벌거벗은 몸뚱어리는 ‘관능적 경탄’에 못이겨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오른손을 잡아 그녀의 치구(恥丘)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녀는 살짝 다리를 벌렸고 내 손이 가 닿은 것은 그녀의 거웃이었다. 그녀는 내 입술에 자기의 입술을 맞대고 비비며 혓바닥을 내 입속으로 들이밀었다. 한없이 부드러운 혀가 내 입안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훑었다. 나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내 입술은 그녀의 입술과 비비고 쓰다듬고 핥고 빨며 엉겨붙었다. 나는 그녀의 사타구니 안에 갇혀 있는 내 손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음부를 잡았다. 그녀의 밑을 적시고 있는 축축한 애액을 손가락에 묻혀, 그녀의 아랫도리의 산맥과 골짜기들을 어루만지고 왕복하고 회전하고 질주했다. 나는 드디어 그녀의 사타구니에 내 코를 박았다. 나는 흠흠흠 그녀의 여자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혀로 핥았다. 그녀의 질에서 흘러나오는 애액의 시큼시큼한 맛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그녀의 애틋한 신음소리가 내 귀를 애무했다. 그녀는 이윽고 입술을 열어 내 페니스를 물었다.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내 페니스를 샅샅이 애무할 때 나는 자지러지는 듯한 환희를 느꼈다. 그녀는 내 고환을 입에 넣어 부드럽게 굴리고, 페니스의 뿌리까지 혀로 밀어 자극했으며 항문까지 핥아주었다. 그녀는 그 다음엔 내 허벅지와 골반뼈까지 샅샅이 핥아나갔다. 나는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쥐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귀를 깨물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은빛 쇠사슬이, 그리고 목에는 넓게 번쩍이는 이집트식 목걸이가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핥을 수는 있어도 깨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귀걸이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조심스럽게 벗겨냈지만 마지막 귀걸이를 벗겨낼 때 그만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흡사 높은 음의 바이올린 소리처럼 들렸다. 바이올린 소리처럼 섹시한 소리가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그녀의 피를 핥고 또 빨았다.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儒林(45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1)

    儒林(45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1)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1) 그러고 나서 맹자는 공명의(公明儀)의 말을 인용한다. 공명의는 노나라 사람으로 증자(曾子)의 문인이라고도 하고 자장(子長)의 학인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유가에서 태어난 현인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일찍이 공명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금의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으며,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으면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양주와 묵자의 도가 없어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사악한 이론이요 백성을 속이는 것이며, 인의를 꽉 막아버리는 것이다. 인의가 꽉 막힌다면 짐승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잡아먹게 될 것이며, 사람들도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다.…(중략)…사악한 이론이 마음에 작용하게 되면 그는 일에 해를 끼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일에 작용하게 되면 그 정치에도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다시 나오신다고 해도 내 이 말은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묵자와 양자에 대한 맹자의 공격의 키포인트는 두 사상 모두 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는 금수, 즉 짐승의 논리라는 것이었다. 특히 맹자는 묵자가 주장한 박장(薄葬)을 집중 공격하였다. 묵가는 자신이 유가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유가의 사치스럽고 과도한 장례를 비난하였다. 묵자는 절검(節儉)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누구든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돕는 한편 물자를 절약하고 검소하게 지낼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묵자의 책 속에 ‘절검’이란 항목을 따로 만들어 이를 묵가의 중요한 교리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청말의 대사상가였던 양계초가 묵자를 ‘작은 예수(小基督)’로 지칭하는 한편 경제사상면에서는 ‘큰 마르크스(大馬克思)’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공맹(公孟)편’에 보면 묵자가 정자(程子)라는 사람에게 ‘천하를 망치게 하는 유가의 도 네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그 네 가지를 ‘하늘과 귀신을 믿지 않는 것, 악무(樂舞)를 즐기는 것,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과 함께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번잡한 장례의 폐해’를 열거하면서 특히 장례의 폐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하고 있다. “…또 후하게 장사를 지내고 오랫동안 복상하여 관을 무겁게 하고 많은 수의를 마련하여 장사가 지내는 것을 이사가듯 한다.3년 동안 곡하고 울어서 부축해준 다음에야 일어설 수 있고, 지팡이를 짚은 뒤에야 다닐 수 있으며, 귀로 들은 것도 없고, 눈으로 보는 것도 없게 된다. 이것은 실로 천하를 망치기에 충분한 것이다.” 맹자는 묵자의 이러한 장례에 대한 공격을 오히려 역이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맹자의 모습은 ‘등문공 상편’에 나오는 이지(夷之)와의 대화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지는 묵자를 좇는 묵가였는데, 맹자의 제자인 서벽을 통해서 맹자를 뵙기를 요청하여 왔다. 이때 맹자가 말하였다. “나는 정말 만나고 싶으나 지금 나는 병중이오. 병이 나으면 내가 가서 만날 것이니 이지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별세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별세

    개발 시대를 대표하는 경제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인 정순영 현대시멘트(성우그룹) 명예회장이 13일 오전 11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83세. 현대시멘트측은 “정 명예회장이 노환과 함께 최근 췌장암이 발견돼 입원치료를 받던 중 건강이 악화돼 운명했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둘째동생으로 현대가 1세대의 6남 1녀 가운데 3남이다. 이로써 현대가(家)의 ‘영(永)’자 돌림은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정상영 KCC 명예회장만 생존하게 됐다. 유족은 부인 박병임씨 사이에 장남 정몽선 현대시멘트 회장과 몽석(현대종합금속 회장), 몽훈(성우전자 회장), 몽용(성우오토모티브 회장), 딸 정숙씨 등 4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선영. 장남 몽선씨는 미국 출장 중이서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날 빈소에는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녀간 것을 비롯,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회장 등 현대가 임직원들이 찾아와 애도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은 조화를 보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정순영 명예회장은 어떤 사람 고인은 현대시멘트를 모태로 성우그룹을 키운 경제인.1970년 1월 현대건설 부사장으로서 ‘왕회장’(정주영 창업주)을 돕다가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분가했다. 단양 공장을 비롯, 현재 연간 400만t 규모의 시멘트 생산 공장을 키운 개발 역군으로 평가받는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분리 이후 5년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우면서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87년 자동차 부품회사인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95년에는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단지를 조성하면서 ‘성우그룹’을 이뤘다. 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키면서 그룹을 불렸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 등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신통치 않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몇몇 업체가 부도를 맞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경영권 이양이 본격화됐다. ●성우그룹 향후 구도 바뀌나 다른 그룹과 달리 일찌감치 경영권 이양작업이 이뤄졌다.97년 1월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인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넘겨줬다. 둘째 몽석씨는 현대종합금속을 받았고 3남 몽훈씨는 성우전자와 성우캐피탈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씨는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경영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에게 경영 수업을 시킬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면서 자연스럽게 2세-형제간 경영권을 이양했고 그룹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4형제는 성우그룹에서 계열 분리를 통해 각자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우그룹의 모태인 현대시멘트는 성우e컴, 성우종합건설, 하나산업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정 회장은 특수 관계인까지 합쳐 33.8%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자사주 지분 40%를 더해 실질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지분이 72.68%에 이른다. 다른 형제들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도 모두 비상장이고 실질적인 오너라서 경영권 위협과는 전혀 무관하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1)일본 차의 유래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1)일본 차의 유래

    우리나라 가을이 마치 새빨간 화로에서 불꽃이 일 듯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라면, 일본의 4월은 폭죽처럼 화려하게 터져버리는 벚꽃의 계절이다. 매년 4월이 되면 필자는 일지암 초의차문화연구원들과 함께 일본의 사스마야키를 방문해 차회를 연다. 사스마야키에는 14대 심수관가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 매년 초대되어 매화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남중국해를 보며 차회를 연다. 일본과의 차회는 단순한 차회가 아니다.7년 왜란 속에서 치욕의 한을 안고 일본에 건너온 조선인 도공들의 혼과 넋을 달래는 것이다. 벚꽃이 휘날리는 화려한 생의 찬미와 그 이면에 깃든 우리 조선 도공들의 400년 아픈 넋을 눈물로 받아 차 한잔을 올리고 아득한 회한을 풀어내는 것이다. 겨우내 눈밭 속에 속눈을 감추고 누워 있던 초록 보리싹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날 때 떠나도 떠나도 머문 그 자리! 머물러 머물러 주저앉아도 시방을 떠도는 그 자리에 향긋한 차향에 실려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전해오는 도공의 혼들에 대한 귀향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일본은 참으로 가깝고 먼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차의 나라로 불린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핑퐁외교’를 했듯,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차외교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한 미국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일본 지도자들의 차외교는 세계적으로 일본의 정신문화가 매우 높은 경지에 있음을 선전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일본차와 한국차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먼저 일본에 차를 전래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동대사요록에 따르면 백제의 행기 스님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일본의 문화는 매우 후진적이었다. 일본과 가까웠던 백제의 스님들이 그 문화를 전파한 흔적들이 기록들로 남아 있는 것은 그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차와 그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차의 원류는 ‘초암차’다. 초암차에 일본다도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일본다인들은 ‘와비’로 부른다.‘와비’는 우리말로 자득(自得), 한적한 정취, 소박하고 차분한 멋, 혹은 한거(閑居)로 설명할 수 있다.‘와비’는 부유한 귀족층이 많은 돈을 들여 호사를 자랑하며 물질적인 향락을 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가난함, 진지함, 청순함 속에서 화려함을 멀리한 정신세계를 추구했다. 당시 차인들은 한적한 곳에 소박하고 검소한 다실을 세우고 검박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다도의 핵심인 ‘와비’의 정신이다. 일본차의 또다른 이야기는 바로 ‘말차’다. 일본 말차의 뿌리는 중국 송나라 때 황룡파에서 선을 배운 에이사이 선사다. 중국에서 선을 배운 에이사이는 당시 중국선가의 일반적인 차수행법이었던 말차법을 배웠다. 일본으로 귀국한 에이사이는 규수평호도 고춘원에 차의 모종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말차법도 함께 보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에이사이는 그가 모시던 가마쿠라 막부의 3대장군 미나모토 사네토모가 병에 걸리자 ‘끽다양생기’에서 말차를 “양생의 선약”이라고 하고 그 약용효과와 각성작용을 설명했다. 사네토모는 에이사이의 말차로 인해 그 병이 치료되자 일본의 ‘육우’로 받들여졌다. 에이사이 말차는 그후 그가 주석하던 가마쿠라 수복사, 교토 건인사 등 일본 선종사찰의 다례로 정착됐다. 말차의 보급은 에이사이에서뿐만 아니다. 당시 일본의 많은 승려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차를 접한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와 차 문화를 조금씩 뿌린 것이다. 일본 최초의 차밭인 ‘히요시다원’의 기록은 805년 일본 승려 사이초에 의해 전해진다. 당나라에 유학을 간 사이초는 중국 천태산에서 차의 묘목을 가져와 일본의 히에이산에 재배했다고 한다. 헤이안시대 에이추 선사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에이추는 사가천왕에게 전차를 바쳤고 천왕은 그에게 긴끼지역에 황실전용 다원을 만들도록 했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송대에서 유행했던 투다, 즉, 차 겨루기가 있었다.1332년 서로 대립되는 사원측의 사람과 귀중한 소유물을 걸고 하는 차겨루기가 일상화됐다. 찻물을 마셔보고 결과를 적던 채점표가 있을 정도였다.‘태평기’에는 “대숙소에 일곱 군데를 꾸미고, 일곱 가지의 차를 갖추어, 칠백 가지의 내기를 거는 물건을 쌓고 일흔 모금의 본비차를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투다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큰 차담기’(大茶盛) 풍습도 당시에 전해진다. 율종의 노장이었던 에이손 선사는 1239년 정월 보살도 정진을 마치고 차를 올린 뒤 그 차를 여러 스님들에게 마시게 했다. 이같은 다법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서대사의 큰 차담기 시초가 됐다. 큰 차담기는 지름 30㎝가 넘는 큰 찻잔에 차를 담아 참가자들에게 마시도록 하는 차 잔치의 풍습 중 하나다. 차문화가 왕성하게 일본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무가정치는 새로운 전기의 일대 변혁을 맞이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는 모모야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때 일본의 차 산업은 꽃을 피운다. 우치를 중심으로 시즈오카 시미즈 일대에 차 산업이 본격화 됐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다방인 살롱문화가 정착되었다. 그것은 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차 산업에 대한 관심과 보호 때문에 가능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직접 우치에 가서 다기와 차 만드는 것을 봤을 뿐만 아니라 차의 명가였던 모리집안에서 융숭한 차 대접을 받기도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모리가에게 봉토를 부여하고 우치향에서 어차를 봉공하는 역할을 맡겼다. 당시 우치가에는 차를 섞는 가마가 48개, 그리고 차를 만드는 일꾼이 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모모야마 시대는 차문화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대였다고 보여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차인은 바로 센리큐 선사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이었던 센리큐 선사는 불안정한 서민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칠대로 거칠어진 무사들의 정서를 부드럽게해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차를 보급했다. 센리큐는 다도를 권력 속에서 일상의 중생들에게 회향해냈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으로 마음이 황폐해진 중생들에게 마음의 평정·적정 경지를 안겨주는 아름다운 세상이 차의 예(禮)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했다.“끝없는 마음의 헤아림 다도와 함께 족하구나.”라고 노래했던 센리큐는 다도에 있어서 형식이나 규범보다는 ‘정성어린 깊은 마음’ 속에서 탄생하는 고요한 가라앉힘의 세계를 더욱 사랑했던 것이다. 센리큐는 차가 직접 사람들의 감각에 다다를 수 있는 창조적인 길을 꽃피워내고, 나아가 사람의 마음에 깊은 환희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다구를 창안했다. 그리고 그곳에 꽃을 꽂아 차실의 우주를 새로 꾸리고 그것으로 점다(點茶)하는 이상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센리큐는 저 우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운 보석의 눈물 같은 고려다완, 가을날 청정한 호수 속에 어리는 안개 같은 청자를 즐겨 썼을 뿐만 아니라 다다미 두 장의 넓이에 소우주 같은 차실을 만들었던 것이다. 에도시대에 피어난 다도는 센리큐의 할복자살로 쇠퇴기를 맞이한다. 정치이념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다도관이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어지는 가운데 많은 유파들이 생긴다. 에도 말기부터 다인들은 직제화되었다. 다인들의 직제화는 일본다도의 계보화를 촉진시켰다. 오늘날 우라센케, 오모데센케이 등 일본 내 대표적인 유파들이 이때 탄생한 것이다. 메이지초기 일본의 다도는 사회변혁기를 맞아 단절상태에 빠진다. 개화와 개방이라는 사회적 혼란기를 맞아 차에 종사하던 관리들의 일터인 다이묘나 장군 등 후원자가 없어짐에 따라 실업자가 생겨 다도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메이지 중기 대두된 내셔널리즘에 따르는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과 다례의 재발견 때문에 살아났다. 다도의 후원자였던 대명 대신에 메이지유신으로 성장한 재계의 거물들이 다도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본 다도 중흥의 기초는 1898년 다나카 센쇼유다. 일본다도학회를 창설, 스승에서 제자에게만 전수되던 밀밀의 다도를 대중화시키는 헌다행사를 창안, 성공시킨 인물이다. 일본의 다도는 아직도 ‘중생들의 정성어린 깊은 마음’을 사랑하는 센리큐 그 차체다. 그는 “다도를 행함에 있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도록 수행의 덕목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고목이 눈에 의해 쓰러진 것처럼 서투른 솜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불완전한 미의 극치를 찬양했다. 센리큐는 차 한잔 속에 담겨진 정성과 인정의 향기, 그 속에 어린 손님과 주인의 마음이 화합으로 만나 이루어진 오묘한 소우주의 평정심이 진정한 차의 미학임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일지암 암주 ■ 일본차의 근원 초암차는 ‘김시습 茶’ 일본다도의 근원은 초암차(草庵茶)다. 차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일본 다도를 대표하는 초암차의 연원을 매월당 김시습에서 찾고 있다. 김시습은 조선을 대표하는 차인 중 한 사람이다.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집필하며 자신이 살던 초막 인근에 차나무를 직접 재배해 차를 우려 마셨다. 일본은 당시 경남지역, 특히 웅천 등지에 많은 일본인들이 무역을 하며 한국문화를 접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은 당시 조선과 외교할 수 있는 외교가로 일본승려들을 이용했다. 그들은 당시 중앙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지방의 토호, 문인 그리고 유명한 스님들을 찾아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 그같은 일본승려 외교관 중 한 사람인 준초라는 스님이 1460년대 중후반경 경주 용장사에서 은거하고 있는 김시습을 방문했던 것이다. 당시 김시습은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작은 암자에서 살고 있었다. 폭악무도한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김시습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설잠이란 법명을 가진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된 김시습은 이곳 저곳을 떠돌며 작은 초당을 짓고 차와 참선 그리고 집필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런 김시습이 머물고 있는 암자는 그야말로 한평 남짓한, 그러나 온 우주를 담고 있는 담백함이 깃든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암자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우주는 바로 화경청적한 자연이었다. 풀벌레 소리 들리고 나비가 훨훨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 그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마시는 차는 바로 자연의 완벽한 고요함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바닥보다 낮게 설치한 땅화로, 찻사발 등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일본차에 물들어 있던 준초라는 스님에게는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사료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승려는 그후 한 두차례 더 매월당 김시습을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시습은 그같은 사실을 ‘유금오록’이란 시집에 담고 있다.‘일동승 준 장로와 이야기하며’라는 시에서 김시습은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옛 부처 산 꽃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최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앞에 내놓고/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봄 깊으니 해월이 쑥대 문에 비치고/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선의 경지나 나그네정 모두 아담하나니/밤새 오순도순 이야기할 만하여라.” 그같은 김시습의 차법을 준초등 일본승려들은 ‘선차’(禪茶)라 불렀다. 김시습의 선차는 작고 소박한 차실, 차마시는 법의 고요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차선일미의 정신과 내용이 일치하는 일본 초암차의 근원이 되었다. 초암차는 간소하고 서민풍의 차법을 선보인 무라다 주코에서 시작돼 다케노 조 그리고 센노리큐에 의해 완성된다.
  • [토요일 아침에] 극단적인 개인주의/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미국의 청소년 상담가 마거릿 베츠는 오늘날 미국 문화의 특징을 개인주의, 소비주의, 그리고 폭력주의의 세 가지로 꼽는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인들의 진취적인 정신과 관용의 정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특징 또한 미국인들의 집합적인 정체성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실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주의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다. 19세기의 뛰어난 정치이론가 중의 한 사람인 알렉스 드 토크빌은 개인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개인주의는 새로운 생각에서 나온 새로운 표현으로서 공동체의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분리시키며, 그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독립하게 하는 성숙되고 평온한 감정으로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형성한 후에는 스스로 사회를 존중할 수 있도록 이끈다.” 개인주의는 또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한 특성으로 이해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착에,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마거릿 베츠가 직시하는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는 데 전념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이다. 마거릿 베츠가 파악하는 것처럼 “오늘날 미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또 “미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익과 욕구뿐”이라고 한다면, 과거 개척시대에 자유와 독립, 평등을 지향하면서 행동했던 미국 사람들 본연의 건전한 개인주의 정신은 다 어디 가고 그야말로 미국의 사회 조직을 와해시키는 암적 존재인 극단적 개인주의만 남게 된 것인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오로지 내 자신의 이익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 개인주의의 성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믿을 수 없게 되며, 또한 사회공동체의 과제에 협력하지도, 그 필요성을 깨닫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를 강 건너 불 보듯이 말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급박하다. 나는 그 현실을, 여성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을 뿐 아니라 낙태가 가장 자유로운 우리 대한민국에서 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생토록 평균 1.2명의 자녀를 출산,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사회적 삶에 대한 욕구의 증가가 출산기피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인구의 감소, 고령화 사회 진입, 산업의 생산 잠재력 훼손에 대한 우려 외에도 노인 공경과 같은 전통적인 가정가치관의 붕괴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혼란은 가까운 미래에 매우 심각하게 닥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낙태 현실도 매우 심각하다. 지난달에 발표된 어느 대학 연구소의 낙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여성의 95%가 사회경제적 이유로, 기혼여성의 93%가 가족계획, 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했다고 한다. 이 대부분이 불법 낙태인데도 이렇게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되면 낙태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그까짓 뱃속의 생명쯤이야!’ 하는 식의 극단적 개인주의의 모습이 아닌가. 만일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자기 안에만 갇혀 지낸다면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이익, 공동선은 누가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 개인주의가 철저한 이기주의로 전락하게 되는 원인과 그 대처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 ‘X파일규명주도’ 노회찬의원·‘떡값검사’ 홍석조 조우

    ‘안기부 도청 X파일’ 실체 규명을 주도해 온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그에 의해 ‘떡값 검사’로 지목된 홍석조 광주고검장이 29일 국감현장에서 만났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떡값 검사’ 의혹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여야 의원들도 홍 고검장에 대한 사퇴 촉구와 ‘떡값 전달’ 진위 여부를 놓고 설전을 거듭했다. 노 의원은 홍 고검장의 이름이 나오는 녹취록을 거론하며 “홍석현 전 주미대사는 분명히 동생에게 돈을 줬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홍 고검장이 받지 않았다면 형이 배달사고를 냈거나 동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형제간 대질신문’을 주장했다. 노 의원은 이어 “홍 고검장이 ‘떡값 전달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현직을 유지하면서 내부 통신망을 통해 결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수사에 부담을 주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선병렬·최재천·양승조 의원,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 등도 “X파일 등장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한 검찰 고위간부는 이에 책임을 지고 공직을 떠났다.”며 홍 고검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 홍 고검장은 이에 대해 “녹취록에서처럼 돈을 받아 전달한 적도 없고, 이에 따라 사퇴할 의사도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여야 의원들의 잇따른 ‘용퇴’ 주문에 대해 “그럴 수 없다.”고 답변했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퇴여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직과 정체성, 명예 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홍 전 대사와 전화통화를 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는 “한 달여 전에 안부전화를 한 적은 있지만 형이 개인적으로 불행을 당한 처지라 녹취록에 나오는 ‘값 전달’ 부분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법사위는 이날 밤 전체회의를 소집, 이건희 삼성 회장을 ‘떡값 문제’에 대한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회장은 지난 27일 재경위의 삼성자동차 손실보전 문제와 관련한 증인채택에 이어 두 번째로 명단에 올랐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국제사회 기여 적어 좀 꿀린다”

    “국제사회 기여 적어 좀 꿀린다”

    |뉴욕 박정현특파원|노무현 대통령은 14일(한국 시간) 유엔 총회 ‘정상회의’(고위급 본회의) 참석을 위해 뉴욕에 도착하자 마자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동포간담회를 갖고 한·미 동맹 등의 현안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에 여기 왔을 때보다는 마음이 많이 가볍다.”면서 “그 때는 (북핵 문제로)마음이 매우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2003년에 했던 걱정은 고비를 넘겼다.”면서 “북핵 문제는 베이징에서 다루고 있고, 적어도 결말이 눈에 딱 날지 안날지 모르지만 한발짝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밝혔다.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처음 참여정부가 들어섰을 때 특히 미국에 계신 분들이 ‘노 대통령 성깔 있는 사람인데 사고 내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고, 어떤 분은 제가 좀 미워서 ‘저 사람 사고 낼 것’이라고 했다.”고 회고한 뒤 “한·미 관계는 지금 좋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아직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많은 기여를 하지 않고 있어 마음이 좀 꿀린다.”면서 귀국 후 우리나라의 유엔 기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임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이날 동포 간담회에서도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은 동포 간담회가 끝난뒤 호텔 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했으나 부시 대통령과 조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172명의 정상 가운데 26명이 노 대통령과 같은 호텔에 묵고 있어 관심을 모았다. jhpark@seoul.co.kr
  • 삼성前법무팀장 한겨레行

    삼성그룹 법무팀장(전무) 출신인 김용철(47·사시 25회) 변호사가 삼성그룹과 ‘대척점’에 서 있는 한겨레신문에 새 둥지를 틀었다. 김 변호사는 12일자로 한겨레신문 편집국 기획위원에 임명됐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대검 수사기획관 출신인 이종왕 변호사가 법무실장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삼성그룹 법무팀을 총괄하던 인물이다. 삼성을 그만둔 뒤에는 법무법인 ‘하나’ 대표변호사를 거쳐 법무법인 ‘서정’(대표 김대웅 변호사)에서 활동했다. 김 변호사의 ‘한겨레행(行)’이 주목받는 것은 그가 이른바 ‘안기부 X파일’ 등 삼성그룹 관련 현안과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검찰 수사에서 1999년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58·수감중)씨와 함께 삼성그룹을 협박한 재미동포 박인회(58·수감중)씨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직접 박씨로부터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등을 회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누구보다도 X파일 등의 실체에 근접해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김 변호사는 검찰을 그만둔 1997년부터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각종 법적 현안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취득 등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대비도 그가 전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겨레신문은 광주일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김 변호사의 영입을 위해 올 초부터 접촉했으며 김 변호사 사정 때문에 일단 비상임 기획위원으로 영입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에서 주로 특수부에서 근무했으며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이른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수사해 역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삼성을 떠날 때에는 ‘토사구팽’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지난해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무리없이 막기는 했지만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그룹 최고 실세중의 한 사람인 이학수 부회장이 검찰조사를 받는 등 법무팀이 성공적으로 대응을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한겨레신문을 선택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 변호사는 “모 신문에서 수습기자를 하기도 했다.”고 언론과의 인연을 설명한 뒤 “언론인 생활을 하고 싶었을 뿐 다른 뜻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에서 부국장 직함으로 분석, 자문 역할을 하면서 필요할 경우 법조 관련 기사 등을 직접 작성하는 업무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17)

      사연 : 음식 먹는 소리에 질색 제「보이·프렌드」는 키 크고「핸섬」하고 머리 좋은 정말 훌륭한 남성입니다. 1년이나 사귀는 동안 불쾌한 일이라곤 한 번도 없었어요. 그의 말이라면 불속에라도 뛰어들어갈 만큼 저는 그를 숭배합니다. 그와 결혼할 작정이에요. 한 가지 걱정은 그의 먹는 버릇입니다. 그는 훌쩍거리고 쩝쩝거리고 또 입을 벌리고 먹는단 말이에요. 음식을 같이 들고 있으면 조금 전까지의「로맨틱」한 기분은 싹 가시고 이이가 사람인가 싶어요. 결혼하면 참아낼 수 있을까요? <서울 냉천동 E여대생> 의견 : 속 좁게 생각 마셔요 그렇게「핸섬」하고 머리 좋은 훌륭한 청년이 어쩌면 당신같이 소견 좁은 여성의 짝이 되었을까요. 당신의 표현이 사실과 같다면 그 청년은 정말 아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먹는 버릇이라든지 말버릇 같은 것은 어려서부터 몸에 익혀 온 것이기 대문에 아내나 애인이 고쳐달래서 고쳐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이가 사람인가』할 정도로 싫고 경멸스런 그런 버릇은 당신의 눈에 꽂힌「큐피드」의 화살이 뽑아지자 말자 옥의 티가 아니라 커다란 혹으로 보일 것이에요. 남편은 음식으로 사로잡아야 된다는 말이 있는 걸 아세요? 먹는 버릇이 그렇게 싫은 사람과의 식사는 재미없을 거에요. 따라서 음식으로 그이 마음을 잡지는 못할 거구요. 더 교제해가면서 음식 버릇까지도 숭배하게 되는 날이 오거든 그때 마음을 허락하고 결혼하기를 권합니다. <Q>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거장들의 향연에 초대합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음악회가 9월 잇따라 열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백건우,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 등 거장들이 제각각 다른 음색으로 가을 밤을 화려하게 수놓을 예정이다. ●불꽃 튀는 연주의 정경화 젊은 시절 터질 듯한 열정을 뿜어내던 모습에서 나아가 이제는 여유와 원숙미가 느껴지는 정경화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연주회가 9월에만 3번. 첫번째로 다음달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창단 40년을 맞는 실내악단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협연을 갖는다. 바흐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친근감을 주는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BWV1041’ 등을 선보인다.(02)592-5728. 이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9월23·28일)에서 러시아 마린스키(옛 키로프)극장을 이끌고 있는 명지휘자 게르기예프와 데뷔 후 처음으로 협연한다. 열정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어떤 선율로 다가올지 기대가 크다. 연주곡은 정경화의 컬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특히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숨이 끊어질 듯 고음의 바이올린의 기교를 맛볼 수 있는 곡이다.(02)518-7343. ●건반 위의 시인 백건우 백건우는 다음달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이번에 선사할 곡은 피아노의 고전으로 불리는 베토벤 소나타를 무대에 올린다. 마치 구도자처럼 연주 인생 30년 동안 치열한 탐구정신을 잃지 않았던 작곡가,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면 폭풍이 몰아치듯 철저하게 파고드는 백건우다. 이번 연주회에서도 역시 베토벤의 소나타 8번 비창, 소나타 3번·6번, 소나타 23번 열정 등 피아노 소나타로만 꾸며 백건우식 연주회를 이끌어 간다. 보통 연주자들은 시도조차 꺼리는 전곡 연주를 고집하는 그는 최근 베토벤 소나타 전곡 1집 음반을 냈다. ●여성팬 많은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호세 카레라스가 다음달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의 팬들을 맞는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색을 자랑하는 그의 목소리는 20,30대에 비해 다소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평. 이번 공연에서는 오페라 아리아와 스페인 가곡, 이탈리아 가곡 등을 선보인다.(02)541-6234.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儒林(415)-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0)

    儒林(415)-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0)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0) 그뿐인가. 순우곤은 다음과 같이 조롱한다. “(현명한 사람이) 있다면 제가 반드시 알 것입니다.(有則 必識之)” 이 말은 맹자에게 날린 필살의 일격이었다. 그대가 아무리 현명한 사람인 척 해도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내가 반드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대는 한갓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유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평소에 사기에 기록된 대로 ‘안영의 인격을 흠모하고 안영을 본받았던’ 순우곤이었으므로 공자를 중용하려는 경공에게 “공자의 학문은 대를 이어도 다 배울 수 없고, 당대에는 그 예를 다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임금께서 공자를 써서 제나라의 풍속을 개량하려 하시나 이는 백성을 위하는 길이 못되는 것입니다.”라고 간언하였던 안영의 말을 빌려 맹자 역시 공자처럼 현명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을 한꺼번에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맹자는 재빠르게 순우곤의 속셈을 간파하였다. 자신은 물론 스승 공자까지 한껏 조롱하고 있는 순우곤을 향하여 맹자는 마침내 제2의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일찍이 공자께서 노나라의 사구가 되셨는데, 그 생각이 쓰여지지 않았다. 이어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 고기가 이르지 않자 면류관을 벗지도 않으시고 떠나시니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고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지혜있는 자들은 예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였으나 공자께서는 하찮은 죄로서 구실을 삼아 떠나고자 한 것이고, 구차하게 떠나려고 하지 않으신 것이다.” 맹자가 인용한 공자의 고사는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자에 의해서 노나라가 잘 다스려지자 이를 두려워한 제나라에서는 춤추는 무희들과 좋은 말을 노나라에 보내어 곡부성 밖에서 일반에게 공개토록 하였다. 놀이를 좋아하는 노나라의 경공과 실권자인 계환자와 공자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려는 교묘한 계략이었다. 과연 제나라의 계책대로 계환자는 평복을 입고 여러 번 가서 구경을 한 다음 경공에게 이야기하니, 두 사람은 함께 샛길로 몰래가서 하루 종일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성미 급한 자로가 “이제 그만 노나라를 떠나셔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자 그래도 공자는 신중하게 대답한다. “곧 노나라에서는 교제(郊祭)를 지내게 되어 있다. 만약 그 제사를 지내고 제육(祭肉)을 대부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나는 그래도 노나라에 머물도록 하겠다.” 교제는 하늘에 지내는 제사. 그러나 경공과 계환자는 마침내 무희들과 말을 받아들이고 사흘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 그리고 교제를 지내고도 제육을 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노나라의 도성을 떠나 남쪽 둔(屯)으로 간다. 이때 한사람이 “왜 죄도 없는 선생님이 떠나십니까.”하고 물으니 공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여인들의 입은 사람들을 쫓아낼 수도 있고 여인들의 고자질은 사람들을 패망시키고 죽일 수도 있네. 그러니 한가히 노닐면서 여생을 마쳐야지.”
  • 호세 카레라스 30일 예술의전당서 독창회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호세 카레라스(59)가 다음달 30일 한국의 팬들을 찾는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중 한 사람인 그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색, 섬세한 표현으로 짙은 호소력을 지닌 최정상의 리릭 테너다. 그의 내한 공연은 이번이 7번째. 지난 2003년 소프라노 신영옥씨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빅 콘서트’를 가진 이후 2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그의 목소리는 20,30대 청년 시절에 비해 다소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더 원숙해진 음악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특히 그는 41세인 1987년 파리에서 ‘라보엠’영상 촬영중 백혈병으로 쓰러져 살아날 확률이 10%도 안 된다는 청천변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병마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해 ‘인간승리’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끔찍한 병마와 싸우던 1990년 로마 월드컵 당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전세계를 열광시켰다.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때에는 개·폐회식의 음악감독을 맡아 조국 스페인 음악의 전통과 향취를 화려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그는 오페라 출연을 1년에 한두 작품으로 줄이고, 콘서트와 리사이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또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호세 카레라스 국제 백혈병 재단’에 기부해 따뜻한 음악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난히 여성팬이 많은 그는 최근 요리책을 펴내 스페인어권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자신이 출연한 오페라의 작품 배경이 된 지역 요리를 레서피와 함께 소개한 것. 이번 독창회는 기존의 ‘3 테너’콘서트 같이 여러 출연자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콘서트 형식과 달리 혼자 무대에 올라 카레라스 성악 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체육관이나 운동장 공연이 아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택한 것도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카레라스의 이런 의지가 담겨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오페라 아리아와 스페인 가곡, 이탈리아 가곡 등을 선보인다. 반주는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는 동향(바르셀로나)출신인 데이비드 히메네스가 맡는다. 지난해 5월 체코에서 카레라스와 듀오 콘서트를 가진 소프라노 박미혜씨가 특별출연한다.(02)-541-6234.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편혜영의 첫소설집 ‘아오이’

    편혜영의 첫소설집 ‘아오이’

    사람의 첫 인상이 그렇듯 작가가 세상에 내놓는 첫 책의 인상은 두가지다. 평범하거나 강렬하거나. 편혜영(33)의 첫번째 소설집 ‘아오이가든’(문학과지성사)은 의심할 것 없이 후자다. 썩어가는 시체들, 배를 가른 고양이, 우글거리는 구더기떼 등 책장을 넘길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엽기적인 하드고어의 이미지는 또래의 젊은 작가들은 물론 한국 소설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낯설고, 새롭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한국 소설의 특별한 ‘또다른 시작’”이라고 이 도발적인 작가의 등장을 평했다. 표제작 ‘아오이가든’은 역병이 도는 어느 도시의 끔찍한 참상을 다루고 있다. 시민들은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거리는 동물들의 시체와 배설물로 가득 찬다.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길 없는 폐허의 형상은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킨다. 단편 ‘저수지’는 연쇄 실종자들의 사체를 찾기 위해 저수지 일대를 수색하는 사건과 외진 방안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세명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실험용 쥐(마술 피리), 구더기 천지 속에서 삶과 죽음이 구별되지 않는 존재(문득) 등 소설집에 실린 여타의 작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독특하고, 개성적인 상상력은 어디에서 온 걸까.“등단(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후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습작했는데 의외로 이런 스타일이 재밌고, 잘 맞았어요. 쓸 때는 재미있었는데 막상 책으로 묶여 나오니 독자들이 읽기 편한 작품들은 아닌 것 같아 걱정이에요.” 언젠가 친지의 시신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시체는 이승의 육신이 빠져나간 잔해일 뿐 무서운 느낌이 안들더라고 했다.‘산 사람이 사람인 것처럼 죽은 사람도 사람이야. 자기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느끼는 건 어느 한 순간이야.…그 순간을 제외하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이 살고 있는 거야.’(‘문득’,110쪽) 그의 엽기적 상상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불온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는 “내 소설이 끔찍하고, 무섭다고 하는데 어쩌면 현실은 더 잔혹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주위에 엄연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애써 외면한 것뿐이라는 얘기다.‘아오이가든’은 홍콩의 사스 전염병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흰 마스크를 쓰고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홍콩 시민들은 충격적이었다.‘아오이가든’은 사스 감염자가 집단적으로 발견된 아파트의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저수지’도 실제 있었던 사건의 뉴스 보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일본 괴기소설처럼 엽기적인 이미지로만 남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팬터지적인 측면이 강한데 앞으로는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평범한 인상보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강렬한 인상이 더 기억에 남듯 그의 데뷔작도 독자의 뇌리에 강한 충격을 남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서로의 ‘과거’ 털어놓자는 남편

    저는 결혼한 지 2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에게 “우리 이제는 한 몸이 되었으니, 서로 비밀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 과거 남자친구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과거를 털어놓고 싶지 않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만일 털어놓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이혜연(가명)- 과거는 묻지 말아야 하고, 묻더라도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신혼 초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에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합니다. 예의상 정조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들어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거사라면 특히 이를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 것은 지각없는 행동입니다. 혼인 전 제3자와의 부정행위, 게다가 약혼 중에 다른 남자와의 정교관계도 혼인 후에는 이혼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논리보다는 기분,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판례가 그렇다고 하여 마음 놓고 과거사를 털어놓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개념을 정의하면서, 과거는 역사, 미래는 신비, 그리고 현재는 선물이라고도 하고, 이를 금전과 관련지어 과거는 부도수표, 미래는 약속어음, 그리고 현재는 현금이라고도 합니다.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 자랄 때 부모에게서 편파적인 대우를 받은 것,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는 너무 억울한 삶을 살았다고 지나칠 정도로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바로 잊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현재가 더욱 중요하므로 과거는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결혼한 남편이 어머니의 불행했던 인생살이를 한스럽게 생각하면서 신혼의 아내에게 “우리 엄마는 정말 불쌍해….”라고 혼자서 울고 넋두리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돼 이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한편 과거가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했더라도 그것은 이미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에 사로잡혀서 “내가 왕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데 나를 몰라 봐.”라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제가 취급한 사례 가운데 신부는 국내의 미술대학을 나와서 체코슬로바키아에 가서 미술을 공부하는 유학생이고, 신랑은 국내에서 대학을 나와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신랑이 미국 출장 중에 서로 소개받아 전화로 연애를 하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신랑이 신부에게 “혼자서 외국유학을 하는 여자, 더구나 유럽에서 그렇게 오래 유학하는 여자가 과연 정조관념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하면서 “이제는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숨김없이 과거를 털어놓자. 서로 사이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 여자교제 이야기를 꺼내서 하고, 신부에게도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라고 졸랐습니다. 신부는 어쩌면 순진하게도(?) 대학에 다닐 당시 어떤 남학생과 연애를 했다고 고백하고 말았어요. 신랑은 자신이 신부에게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정작 상대방으로부터 그러한 과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스스로 무척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모에게도 전화를 걸어 따지듯 말하고 이를 문제삼았습니다. 그러자 장모는 사위에게 “자네도 대학 다니면서 연애하지 않았느냐. 뭐 그런 걸 문제삼나, 이 사람아.”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 신랑과 신부는 그 문제로 인해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되어 결국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신혼부부 사이에는 특히 정조문제가 중요하고, 정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서로가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앞서 말한 사례에서도 약간의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다고나 할까요. 남자의 혼전 성관계는 거리낌없이 말하더라도 “여자가 어떻게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느냐.”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남녀가 일단 결혼한 이상 서로 믿고 과거는 묻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 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어디까지나 농담일 뿐이고, 실제로는 대개의 남자들이 용서를 잘 못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차는 어떻게 인간 곁으로 왔나

    중국 천목산에는 원숭이들을 ‘희롱’해 채다(採茶)해낸 원우차(猿愚茶)라는 차가 있다.500∼600년 된 차 나무는 그 키가 매우 크다. 원숭이들은 그 차나무에 올라가 맛있는 찻잎을 따먹고 살았다. 도저히 차를 딸 재주가 없던 사람들은 원숭이들에게 돌멩이 세례를 퍼붓고 약을 올렸다. 사람들의 돌멩이 세례에 화가 난 원숭이들은 차나무 가지 중 오래된 것을 꺾어 사람들에게 던졌다. 사람들은 또 일부러 원숭이들을 다른 나무로 옮겨가게 했다. 그래야 새로운 차나무 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이 꺾어 던진 차나무 가지의 찻잎을 모아 귀한 차를 만들어 팔았다. 그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차로 손꼽히는 원우차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중국의 윈난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윈난성 사모지구 진위안현 애뢰산에는 2700년 된 차나무가 ‘생존’해 있다.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인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역사와 역사를 넘어 2700년을 살아온 차나무가 있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듯한 ‘품세’(品勢)를 가진 그 차나무는 오랫동안 한 마을을 지키며 ‘공존’과 ‘화해’의 다리를 놓고 살아온 촌로의 후덕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넓고 넓은 긴 팔을 벌리고 세상의 온갖 번뇌를 다 담아낼 듯한 품세를 지닌 그 차나무를 중국에서는 ‘과로’(瓜蘆)라고 부른다. 오래고도 오랜 차나무란 뜻이다. 차나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 중 인간에게 그 효용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이다. 나무, 잎, 꽃, 향기 등 식물로서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식용으로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기 때문이다. 육우는 ‘다경’에서 “차나무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상서로운 나무다. 나무의 높이는 한 자나 두 자나 수십 자에 이르기도 한다. 파산과 협천에는 두 사람이 함께 껴안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차나무는 가지를 베어야만 잎을 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차의 근원은 어디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슴없이 중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말은 사실 적당하지 않다. 그것이 차나무에 대한 근원인가, 아니면 하나의 음료문화의 근원인가를 먼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학적 특성으로서 차의 근원을 따진다면 중국이 될 수 없다. 지정학적으로 차나무는 북위 42도에서 29도인 남아프리카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식물학적으로는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로 약 6500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라별로 살펴본다면 중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스리랑카, 코카서스, 남아메리카 일부 등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존재로 그 근원을 따지기 매우 어려운 대목인 것이다. 차는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존재해 왔다. 단순히 차나무와 관련된 식물학적인 특성으로 그 근원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차를 인류의 삶과 결합시킨 문화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그 발원지이며 근원지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하는 차의 기원은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다.‘신농씨설’(神農氏說),‘편작설’(篇鵲說),‘달마설’(達磨說),‘기바설’(嗜婆說) 등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나름대로 ‘신화’(神話)적인 전설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차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차의 기원은 그 약리성에 먼저 바탕을 둔다. 지금처럼 병든 인간의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약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인들은 자연에서 그 치료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차의 발견과 보급 역시 마찬가지로 그 약리성에 바탕을 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차를 발견해 인류에게 전한 사람은 중국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전설의 삼황오제중 한 사람인 ‘신농씨’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신농씨는 백성을 교화해 농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인간에게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해서 ‘화덕왕’(火德王) 또는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그는 ‘농업의 신’답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풀들을 씹어서 맛을 본 후 그 약성을 가리고 약을 만들어 백성들을 치료했다. 신농은 뱃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배를 갖고 매일 산하대지를 누비며 하루에 100가지가 넘는 풀을 맛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산을 누비며 갖가지 풀을 맛보던 신농은 그만 독초에 중독되고 말았다. 지금껏 풀잎을 맛보며 크고 작은 독초에 중독될 때마다 해독약을 만들어 먹었던 신농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그가 만든 갖가지 해약도 소용이 없었다.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신농은 향긋한 냄새가 나는 나뭇잎을 따서 먹었다. 뱃속으로 들어간 그 녹색잎은 신기하게도 들어가자마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돌며 뱃속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녹색잎이 위장을 돌며 독초의 독성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린 것이다. 신농의 배는 곧 씻은 듯이 나았다. 그뒤 신농은 녹색잎을 품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백초를 맛보며 독을 만날 때는 꼭 그 녹색잎을 마시고 해독했다. 신농은 신비로운 약효를 지닌 그 녹색잎에 대해 ‘검사하다’란 뜻을 가진 ‘사’(査)라고 불렀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후난성 주저우시 옌링현 당전향 녹원파에 신농이 누워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차릉’(茶陵)이 있다. 청나라때 크게 중수했다는 차릉은 베이징의 자금성과 그 격을 같이할 만큼 정성들여 지어졌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신농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를 꺼린다. 신농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시조 신농은 4500여년전 지금 중국 후베이성 쑤이현 역산에서 태어난 실제 역사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의 위대한 문자학자 뤄빈지(駱賓基)는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 동이족 수장이라는 ‘신농’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해 중국 문자학회를 들끓게 한 적이 있다. 만약 뤄빈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차 문화의 종주국은 중국이 아닌 우리 ‘동이’(한국) 문화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가 하나의 어원으로 자리잡은 것은 8세기경 당나라 때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 ‘차’는 ‘도’( )로 불리어졌다. 중국에서 ‘다’는 산스크리스트 글자로 소리나는 대로 표현하면 ‘투’(tu)로 발음된다. 그 발음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도’였다. 전한시대까지 ‘차’는 ‘도’자로 쓰여졌다. 글자는 ‘도’로 썼지만 발음은 ‘차’로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후한때부터 ‘도’자의 한 획을 떼어버리고 그대로 ‘차’(茶)로 썼다고 한다.‘도’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쓴맛 나는 풀’이 된다.‘쓴맛 나는 풀잎’이라는 것은 차가 지금처럼 음용으로서보다는 약용으로서 그 가치가 더 높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도’가 아닌 ‘차’(茶)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뜻도 무궁무진하다. 차는 한자의 초(艸=草)와 나무(木)사이에 사람(人)이 있는 모양으로 상형화되어 있다. 또 다르게 풀이해 본다면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상서로운 ‘풀’(草)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좀더 한발짝 나아가 본다면 ‘차’라는 글자가 가진 상징성과 효용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육우는 ‘다경’에 이같은 차의 명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차는 가(價), 설( ), 명(茗), 천( )이라고도 하는데, 주공은 ‘가’라고 하는 것은 쓴차(苦茶)라 했고, 양집극은 서남쪽 사람들은 차를 ‘설’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곽홍농은 일찍 딴 것을 ‘차’라고 하고 늦게 딴 것을 ‘명’이라 하며, 혹은 전부를 ‘천’이라 할 뿐이라고 했다.” 신농이 독을 치유할 수 있는 상시적인 약으로 복용했다고 하는 ‘차’는 그후 중국인들에게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며 귀하게 취급되었다. 중국인들은 ‘귀하디 귀한 차잎’과 함께 파·생강 등 귀한 약재들을 혼용해 죽을 끓여 먹었다. 이같은 음다풍속은 차의 약리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차가 하나의 음용으로 상용화되기 전에 독특한 음용법을 개발해 ‘귀한 단방약’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차의 식물학적 학명은 차나무과(Theaceae) 차나무속(Thea) 차나무(Sinensis)로 6500만년 전에 출현한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이다. 나뭇잎은 약간 두꺼우며 윤기가 있고 긴 타원형으로 질기며 그 끝은 뾰족하며 잎 둘레 주위에 톱니가 있다. 땅속으로 바로 깊이 들어가는 직근성이다. 신기하게도 차나무는 인간이 가장 최적의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곳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사계절이 존재해야 하고, 온도 날씨 강우량 등이 적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을 가진 지역대가 바로 인간의 가장 쾌적한 환경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오랜 결혼풍습중에 봉채(封采)라는 것이 있다. 봉차(封茶)라고도 불렸던 이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결혼하기 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차를 보냈다. 봉차를 결혼 전에 보내는 것은 차나무가 가진 성질대로 평생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나무는 성질이 씨앗으로 심어야만 잘 자라고 직근성으로 세근(細根)이 없기 때문에 옮기면 잘 자라지 않아 한번 결혼하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정절을 의미한다. 또한 씨앗을 따로 심어도 한 나무로 합해져 나오므로 신랑과 신부가 천생연분임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결혼예물의 봉채로 차 씨앗을 보내는 것만큼 완벽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어졌던 봉차의 풍습은 일본에도 전해져 지금도 혼숫감에 차 씨앗 2개를 신부집에 보내기도 한다. 차나무는 또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겨울에 순백의 하얀 꽃잎을 피운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꽃과 열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는 점이다. 마치 구름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운화’(雲花)라고도 부르는 차의 꽃잎은 5장으로 차의 다섯가지 맛인 고(苦), 감(甘), 산(酸), 삽(澁), 함(鹹)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말을 풀이해 보면 너무 인색하지 말고(鹹), 너무 티(酸)내지도 말며, 복잡(澁)하게도, 너무 쉽고 편(甘)하게도,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차가 가진 깊은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이다. 신농에 의해 ‘발견’됐다는 차가 인간과 접목된 것은 바로 그 약리성 때문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는 중국의 명차 중 하나인 몽정차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수행을 하다 그만 중병에 걸린 늙은 스님이 있었다. 여러 가지 약을 써봤으나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스님에게 말했다.“춘분 전후로 봄 천둥이 처음 칠 때 몽산에서 증정차를 제다하여 그곳의 물로 달여 마시면 숙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들은 스님은 몽산에서 제일로 치는 상청봉에 석실을 짓고 봄 천둥이 치길 기다렸다. 마침내 봄 천둥이 치자 그 스님은 노인이 가르쳐준 방법에 따라 몽정차를 채집했다. 그 차를 달여서 복용하자 과연 병이 낫고 눈썹도 검은색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었다. 신체도 건강해져서 그 모습이 30여세로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차를 병을 낫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려는 약용 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의 다성인 육우는 ‘다경’을 지을 때 차의 약리적인 가치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육우는 “만약 열이 나서 갈증이 생기거나 고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깔깔하거나, 사지가 번거롭거나, 뼈마디가 쑤시면 네댓 모금만 마셔도 제호 감로와 더불어 손색이 없다. 또한 차를 음료로 삼은 것은 신농씨로부터 시작되어 주공에 이르러서 널리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초기 양쯔강 하류지역 차산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음용됐던 차는 수나라시대 대운하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개화’를 하게 된다. 초의 스님은 이같은 차의 역사에 대해 ‘동다송’에 “천인과 신선 인간세상 귀신까지 다같이 사랑하고 아끼었으니, 그대(차) 타고 난 성품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함을 알겠구나. 차의 신 신농도 일찍이 너(차)를 맛보고 식경에 실었나니…제호와 감로라 불리며 예부터 그 이름 전해왔다네.”라고 찬탄하고 있다. 차에 대해 이런 말이 예부터 전해온다.“새는 날고 짐승은 달리고, 사람은 입을 벌려 말한다. 이 셋은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장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
  • 儒林(399)-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5)

    儒林(399)-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5)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5) 순우곤의 이 말은 예수에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어도 어긋나지 않습니까.’하고 질문하였던 율법학자들을 연상시킨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으로 정해진 특별한 날로 이날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후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었던 거룩한 날’인데, 하물며 사람인 그대가 하느님의 율법을 깨고 안식일에도 병을 고치는 일을 하겠느냐고 묻는 트집과 같은 것이었다.‘목숨을 건지려고 형수의 손을 잡는 것’과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은 이처럼 예수와 맹자의 마음을 떠보려는 동일한 성격의 명제였던 것이다. 예수는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이를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물며 사람이 양보다 귀하지 않더냐. 그러므로 안식일에도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대답하며 불구자에게 ‘손을 펴라.’라고 말한 후 그 병을 고쳐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맹자는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손을 뻗어 끌어내지 않는 것은 승냥이나 이리와 같은 짐승이나 하는 일이다.’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순우곤은 그러나 최후의 반격을 시도한다. 그로서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천하가 물에 빠졌는데 선생께서 끌어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순우곤은 여전히 맹자를 비웃고 있었다. 즉 자신은 지금 제나라의 대부로서 물에 빠진 천하를 손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한갓 제나라의 식객으로 무위도식하고 있는가를 비웃는 힐난(詰難)이었던 것이다. 이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천하가 물에 빠지면 도(道)를 가지고 끌어내고, 형수가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는 것인데, 자네는 어찌 손으로 천하를 끌어내려 하는가(天下溺 授之以道 嫂溺授之以手 子欲手援天下乎).” 맹자의 마지막 말은 전국시대 최고의 변론가인 순우곤을 한방에 쓰러트린 회심의 일격이었던 것이다. 즉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면 되지만 천하가 물에 빠져 어지러울 때는 반드시 도(道)로서 천하를 구제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너는 한갓 손으로 천하를 끌어내려 하느냐는 준엄한 질책이었던 것이다. 맹자는 다만 세치의 혓바닥으로만 천하를 농락하는 순우곤의 경박함을 꾸짖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뛰어난 변설가였던 순우곤은 맹자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나 순우곤은 집요하게도 맹자에게 복수를 꿈꾸고 후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맹자에는 순우곤과 맹자의 격렬한 설전이 두 번이나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첫 번째 설전은 ‘이루편상’에 나오는 장면이고, 두 번째 설전은 ‘고자편하’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러나 두 장면에는 5,6년의 시차가 있어 맹자는 위왕 때와는 달리 그의 아들 선왕 때에는 제법 상객대접을 받았던 듯 보인다. 실제로 선왕은 맹자에게 객경(客卿)의 지위를 주었고, 겉으로는 맹자를 몹시 존경하였던 것처럼 행동하였다. 맹자도 선왕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제나라는 강국이었으므로 그곳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손쉬울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81)野合(야합)

    儒林(383)에는 ‘野合’(들 야/합할 합)이 나오는데, 이 말은 ‘夫婦(부부)가 아닌 男女(남녀)가 서로 情(정)을 통하거나 좋지 못한 목적(目的)으로 서로 어울림’을 뜻한다. ‘野’의 原字(원자)는 ‘’(야)이다.‘’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과 거기에 세워놓은 ‘男根石(남근석)’의 모양을 본뜬 ‘ ’(두)를 합한 會意字(회의자)라는 설이 흥미롭다. 이 글자는 뒷날 밭(田)과 흙(土)을 합하고, 다시 音符(음부)에 속하는 ‘予’(여)를 더한 형태인 ‘野’로 바뀌었다.用例(용례)에는 ‘野心(야심: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下野(하야: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관직이나 정계에서 물러남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合’자는 뚜껑이 덮인 그릇 모양을 본뜬 것으로 ‘그릇’이 본래 의미였으나 점차 ‘서로 합하다’‘모이다’‘만나다’ 등과 같은 派生(파생)된 뜻이 더 널리 쓰였다.用例로는 ‘合格(합격:시험, 검사, 심사 따위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어떠한 자격이나 지위 따위를 얻음),談合(담합:서로 의논하여 합의함),意氣投合(의기투합: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음)’ 등이 있다.史記(사기)에 의하면 숙량흘(叔梁紇)은 안씨(顔氏)의 딸과 野合(야합)하여 孔子(공자)를 낳았다. 이때의 野合을 ‘正式(정식) 婚姻(혼인)을 하지 않은 두 남녀의 通情(통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唐代(당대)의 張守節(장수절)이 해석하는 野合은 의미가 다르다. 남자는 8개월이면 乳齒(유치)가 나고,8세에 永久齒(영구치)가 난다.8과 8을 합하면 16이 되는 바, 남자는 16세에 陽道(양도)가 형성되어 通(통)하다가,8과 8을 곱한 64세에 이르면 陽道(양도)가 消滅(소멸)한다. 여자는 생후 7개월 무렵부터 젖니가 나고,7세부터 영구치가 난다.7과 7을 더한 14세면 陰道(음도)가 通(통)하기 시작한다.7과 7을 곱한 49세에 이르면 陰道가 모두 斷絶(단절)된다. 이를 벗어난 연령의 婚姻(혼인)을 ‘野合’이라는 것이다. 신라 제 29대 太宗(태종:金春秋)과 金庾信(김유신)의 막내 누이 文姬(문희)도 野合에서 婚姻(혼인)으로 이어진다.文姬는 언니 寶姬의 꿈이 至尊(지존)을 孕胎(잉태)할 胎夢(태몽)이라고 보고 언니로부터 꿈을 샀다. 그로부터 열흘 뒤 김춘추는 유신과 놀다가 옷고름이 떨어졌다. 김춘추는 옷고름을 달기 위해 김유신의 집에 들렀고, 여기서 문희와 눈이 맞아 姙娠(임신)을 하고 말았다. 김춘추와 문희의 情分(정분) 所聞(소문)이 왕에게까지 이르렀다. 결국 두 사람은 婚事(혼사)를 서둘렀고, 둘 사이에서 난 아이가 훗날 三國統一(삼국통일)의 偉業(위업)을 이룬 文武王(문무왕)이다. 신라의 高僧(고승) 元曉(원효)와 瑤石公主(요석공주)의 野合도 흥미롭다. 이미 출가한 신분이었던 원효는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려나, 하늘 받칠 기둥을 깎아 보고싶구나’(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라는 노래를 읊조리고 다녔으나 그 뜻을 아는 이가 없었다. 태종(太宗)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瑤石宮(요석궁)에 홀로된 공주에게 원효를 불러들이게 하였다.宮吏(궁리)가 왕명을 받들고 원효를 찾아가니, 그는 蚊川橋(문천교)를 지나다가 일부러 물 속에 빠졌다. 요석궁으로 案內(안내)된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구실로 그곳에 留宿(유숙)하면서 공주와 운우의 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신라 十賢(십현)의 한사람인 薛聰(설총)이다. 김석제 경기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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