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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51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2)

    儒林(51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2) 검은 비늘에 금빛목걸이를 목에 두른 용이 동해바다로부터 불쑥 날아와 방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신사임당은 이로 인해 율곡의 아명을 ‘현룡(見龍)’이라 하였었다.‘이현룡’이 ‘이이’로 이름이 바뀐 것은 율곡의 나이 11살 때. 그 무렵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중병에 걸려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있었는데, 율곡은 조상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 아버지대신 자신이 죽도록 해달라고 비는 한편 자신의 팔뚝을 찔러 거기서 나오는 피를 신음하는 아버지 입 속에 흘려 넣었던 것이다. 간신히 기운을 되찾은 이원수는 그 무렵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백발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이원수를 향해 ‘당신의 아이는 분명히 이 나라의 큰 유학자가 될 것이요. 그러니 이(珥)라고 바꾸시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이원수가 ‘이 아이는 용을 보고 낳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현룡이라 했는데 이름을 바꾸라니요.’하고 묻자 백발노인은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珥)란 귀걸이를 뜻하는데 매우 귀한 것을 말한다오. 그러므로 꼭 이로 바꿔야 하오.” 이로 인해 율곡의 이름은 이현룡에서 이이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곡은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꿈속에 나타난 백발노인은 어쩌면 노자의 현신이 아니었을까.” 공자가 예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수만리의 여행을 떠나 주나라로 노자를 찾아갔듯이 이번에는 노자의 현신인 내가 학문의 길을 밝히기 위해서 해동공자인 퇴계선생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대성인이자 대사상가였던 공자와 노자의 만남이 세기적인 대사건이라면 철인이자 우리나라가 낳은 대사상가인 퇴계와 율곡의 만남 역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대사건인 것이다. 비록 2박3일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율곡은 퇴계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을 정도였다. “…내가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사나운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 있다가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실로 퇴계선생의 계발(啓發)에 힘입은 것이다.” 눈을 뜨는 데는 영겁의 세월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보는 것은 찰나에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율곡이 퇴계를 만난 것이 평생 동안에 있어 2박3일의 짧은 찰나였지만 그 한순간에 자신의 고백처럼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서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율곡을 육신적으로 낳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인 이원수라 할지라도 율곡을 정신적으로 거듭나게 한 사람은 참스승인 이퇴계,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율곡은 서둘러 안동을 향해 출발한다. 그 길은 율곡에게 있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는 최상의 선택이었으며, 사나운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방황하던 질풍노도의 계절에서 발견한 유일의 구명대(救命帶)이자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등대불이었던 것이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열린세상] 화분과 벌인 상생의 길 찾기/이경자 소설가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몇 개의 화분을 들여놓았다. 그중에 보기 좋고 값도 비싼 것이 하나 있었다. 살 때 그 이름을 들었겠지만 지금은 기억 못하는 아열대 식물이다. 넓은 잎사귀가 손가락처럼 갈라져서 보기에 풍성하고, 그 넉넉한 잎으로 새집의 수많은 유해 성분을 중화시켜준다고 하였다. 그것을 거실 TV 옆에 놓았다. 화분이 놓인 위치는 북쪽 벽이었다. 정남향집이어서 햇살은 아침마다 화분의 반대편에서 어슷하게 들어왔다가 저녁이면 빠져나가곤 하였다. 두세 달쯤 지나서였다. 문득 화분의 잎사귀들이 햇볕이 들고 나는 남쪽을 향해 자라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필경 하루에 조금씩 자랐을 텐데 늘 함께 살고 있는 내 눈엔 완전히 화분의 모양이 변해져서야 알아차렸다. 마치 사람이 머리 위로 팔을 치켜들어서 한쪽으로 젖힌 모양과 같았다. 아, 나는 왜 저렇게 되도록 눈치 차리지 못했을까. 잠시 놀라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물도 줬고 잎사귀의 먼지도 닦아줬었다. 새잎이 나면 기쁘고 기특해서 그 어린 잎을 만져보고 행여 사람의 손독을 탈까 얼른 놓아주기도 하였었다. 잎사귀가 한데 뭉친 채 오스스 떠는 듯한 모습이, 동식물 관계없이 세상에 갓 태어나면 생명은 우선 저렇게 진저리를 치는구나, 싶기도 해서 숙연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의 ‘태양을 향한 쏠림’은 못 봤던 것이다. 직사광선을 받으려 하는 필사적인 노력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저걸 어떻게 할까. 온 몸을 기형으로 만들며 내게 말하는 저 생명의 외침을 어떻게 할까. 나는 속으로 심각해졌다. 생명으로서의 식물, 그 원초적 욕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했을까?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위치를 바꿔서 절대로 기형을 만들지 ‘못하게’했을까? 그랬어야 옳은 건가? 잠깐, 그럴듯했다. 진작 그렇게 할 걸,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버렸다. 그건 식물의 본능적 욕구를 해결하는 건 아니었다. 한 쪽으로 쏠리며 자라는 식물이 보기 싫거나 그렇게 자라는 건 ‘병신’이라고 여기는, 화분의 소유주인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었다. 어쨌든 거실의 균형을 위해선 화분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 자리에 있어줌으로써 거실의 분위기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아열대가 생명의 고향인 식물은 직사광선을 몸에 쪼일 수 있는 남향에 있어야 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사람인 나와 식물의 욕구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이제 나와 식물이 대화해야 했다. 내가 너를 하루에 한 번씩 방향을 바꿔주겠다. 하지만 기형으로 되었으니 한동안 몸이 바로 되도록 반대 방향으로 놓아주겠다고 하였다. 식물은 즉각적으로 반대했다. 내가 원하는 건 볕이 아니라 직사광선이다! 그래야 산다!고 외쳤다. 나는 외면했다. 내가 널 사온 건 너의 목숨을 귀히 여겨서가 아니라 거실의 균형과 새집증후군의 완화를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식물이 울었다. 그건 취향에 관한 것이고 나의 욕구는 생존에 관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그 점을 생각해 달라. 화분의 위치를 바꿔주면 기형의 몸이야 바로잡힐지 몰라도 결국은 햇볕이 부족해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식물의 주장이 딱 맞는 말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내 가치관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나의 인테리어 감각을 비웃을 것이었다. 그러니 넌 그대로 병신인 채 살다가 죽어라. 그게 식물의 팔자다. 넌 내 형편에 좀 비싸지만 그래도 죽으면 다시 사겠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뭔가 개운치 않았다. 며칠 후 화분을 베란다로 내놓았다. 누가 보면 아무 생각 없이 화분을 내놓은 게 됐다. 그러나 그 선택이 나에게 평화를 주었다.‘생명의 존엄’을 선택한 덕이었다. 이경자 소설가
  • [지금 그곳은] 남산골 한옥마을 ‘한국의집’

    [지금 그곳은] 남산골 한옥마을 ‘한국의집’

    드라마 ‘대장금’의 궁중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맛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 서울시내에 생겼다.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한국의 집’은 지난 6일부터 기념품 판매소로 이용하던 장소를 일부 고쳐 전통 음식문화 체험관 ‘궁중수라간’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집’은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평년의 집 터에 경복궁의 자경전을 본 떠 만든 한옥집이다. 일제시대에는 정무총감의 관저로 사용됐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정부와 유엔군 사령관의 영빈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1957년부터는 한국 전통생활 문화를 소개하는 시설로 활용돼 왔다. 이번에 문을 연 ‘궁중수라간’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에서 이용된 세트 가운데 일부를 재현해 놓았다. 이를 위해 재단은 MBC 미술센터측과 컨텐츠제공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또 전통 음식에 대한 감수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받기로 했다. 체험관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에서 이용됐던 의상이나 조리기구 등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 방송에서 재현됐던 수라상도 모형으로 제작해 관람객들이 쉽게 보고 만질 수 있도록 마련해뒀다. 체험관 뒷편에는 궁중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맛볼 수 있는 조리체험실이 마련됐다. 이 곳에서는 예약을 통해 30명까지 궁중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강좌에 참여할 수 있다. 오전과 오후 각각 1회씩 진행이 되며 전문 강사가 먼저 설명과 조리시연을 한 뒤 직접 실습을 하게 된다. 미리 연락하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체험 과정에서는 대장금 출연진들이 입었던 수라간 나인 의상을 직접 입고 참여해 남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올해까지는 참가비 없이 실습에 참여할 수 있지만 내년에는 실비 수준의 실습료를 받을 계획이다. 사전 예약이 필수.(02)2266-9101. 한편 한국의 집 앞마당에서는 대장금 사진전이 함께 진행되고 있어 국내외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즐겁게 했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 아야코 와타루(32·여)씨는 “TV에서 즐겨 시청하던 대장금 촬영세트와 같다고 하니 무척 재밌다.”면서 “출연진이 입었던 옷을 직접 입고 사진을 찍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김기삼 문화상품팀장은 “MBC 드라마 대장금이 일본·중국 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 궁중음식과 수라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김치 만들기 등 일부 한국음식에 대한 체험프로그램은 많았지만 궁중음식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드물어 새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단은 한국의 집 운영 내실화에도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먼저 ‘궁중수라간’을 중심으로 연차적으로 한국전통음식를 체계화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통음식을 관광자원화하고 상품화하면 한국의 관광산업의 수준을 높일 수 있고 국제적 교류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관광상품이나 음식메뉴 등을 새로 개발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 꾸려간다는 계획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스필버그, 거대영화사에 ‘무릎’ ‘드림웍스’ 16억달러에 팔려

    영화사 드림웍스를 통해 어빙 탈버그와 같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제작자가 되려던 스티븐 스필버그(58)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파라마운트를 소유한 거대 미디어 그룹 비아콤은 12일 400만달러의 빚을 포함해서 16억달러에 드림웍스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드림웍스는 11년전 할리우드의 재능있는 세사람인 스필버그 감독과 데이비드 게펜, 제프리 카젠버그가 뭉쳐서 세운 영화사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박찬욱 감독 “책 표지에 얼굴 나오니 낯설어”

    “영화만 보면 ‘박찬욱이란 대체 어떤 사람이야?’라는 궁금증이 드실거예요. 사실 제 삶은 폭력으로 점철돼 있지 않아요.(웃음) 책을 통해 저와 제 영화를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박찬욱 감독이 책 ‘박찬욱의 몽타주’(마음산책 펴냄)와 ‘박찬욱의 오마주’(〃)를 동시에 펴냈다.‘…몽타주’는 영화를 통해서는 볼 수 없었던 박 감독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그의 첫 산문집. ‘…오마주’는 지난 94년 출간됐다 절판된 그의 첫 영화평론 모음집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의 개정 증보판으로, 기존 70편의 글을 수정하고,55편의 작품을 추가했다. “‘…몽타주’는 제가 느끼고 생각한 여러가지를 영화 만들 듯 섬세하게 담았죠.‘…오마주’는 비평가가 아닌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글이에요. 소개된 영화를 한번이라도 더 보도록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박 감독은 “감독은 뒤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책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얼굴도 나오고…낯설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웃음)”고 출간 소감을 밝히면서도 “독자가 두 책을 읽고 많은 부분을 공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줄줄 새는 국가 R&D예산] 교수들의 이유있는 항변

    “수억원짜리 연구과제를 따와도 정작 연구책임자인 교수에게는 한 푼의 인건비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교수도 사람인데, 당연히 연구비에 손대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서울 A대 화학공학과의 한 교수는 연구비 가운데 일부를 ‘개인 용도’로 쓰고 있다. 그는 “연구비에 학생들의 인건비는 들어가있지만, 교수는 직장에서 받는 급여가 있다는 이유로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는다.”면서 “연구를 주도하는 것은 교수인데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을 수 없다 보니 연구비에 손을 대게 됐다.”고 털어놨다. 연구비 횡령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연구자들의 ‘모럴 해저드’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연구비 지급 구조 자체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당사자인 교수와 연구원들이 말하는 원인을 들어봤다. 대전에 있는 정부출연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정부출연기관은 영리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과제를 따오지 않는 한 자산은 한 푼도 없다.”면서 “연구원들의 봉급을 줄 예산이 따로 책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소 간부들은 돈줄인 정부나 기업에 충성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파생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모 대학 공대 박모(40) 교수는 “연구비 항목에 없는 비용을 지출한 것은 모두 유용이라고 하는데, 밤새 연구하면서 학생들 야식비로 지출한 돈까지 ‘깡’을 한 것처럼 취급하니 연구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가 본인의 능력으로 연구과제를 따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금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다는 의견도 나왔다.C대 공대 박사과정인 이모(29)씨는 “연구비로 자녀 학원비를 대주면서도 내가 따낸 돈이니 내가 쓴다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교수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의 경우 일부 명문대에만 과제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혔다. 서울대 고위 관계자는 “서울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연구과제가 풍부하게 주어지는 편”이라면서 “여러 기관으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지원을 받다 보니 유용의 여지도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이효용기자 wisepen@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이북5도청 평안북도 지사실서 만난 ‘영원한 아나운서’ 차인태 씨

    [어떻게 지내세요] 이북5도청 평안북도 지사실서 만난 ‘영원한 아나운서’ 차인태 씨

    “올해는 아시다시피 광복 60주년이자 분단 60주년입니다. 또 실향과 망향의 60년이기도 하지요.” ‘영원한 아나운서’로 친숙한 차인태(61)씨.1973∼90년까지 18년 동안 인기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진행했다. 또 권투와 축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생생하게 중계, 여전히 추억의 목소리로 남는다. 지난 98년 제주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직을 끝으로 30여년 몸담아온 방송계를 떠났다. 지난 주 인터뷰를 요청하자 “변변치 못한 사람인데 뭘 하느냐.”며 거절한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한 듯 수락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이북5도청의 평북지사 집무실. 차씨는 연말을 맞아 연하장 발송을 준비 중이었다.“남한에 거주하는 평북도민들에게 보낼 것”이라면서 우선 시장(1명)과 군수(19명), 그리고 174명의 읍·면장 등을 포함 700명쯤 된다고 했다. 이어 “2년전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로 있을 때 지사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면서 자신이 다섯살때인 48년, 의사였던 아버지 손을 잡고 월남했다고 회고했다. 차 지사의 고향은 평북 압록강변에 위치한 벽동(碧潼)으로 중국과 마주하고 있다. 자신의 집무실에 중국쪽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이 사진을 보면서 가끔 고행생각을 해보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고향에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만약 살아계시다면 100세가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현재 남한에는 2세까지 포함해 평북출신이 모두 118만명에 이른다.”면서 1세대인 경우 이북5도청을 자주 방문해 남북회담과 주변 4개국 정세 등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통일회관에서는 소년소녀 가장들과 자매결연을 갖는 일, 또 한달에 한번씩 통일학교를 열어 탈북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직전 80세 넘은 한 실향민과 만난 일을 잠시 들려준다. 실향민 지사님, 방송국에 오래 계셨지요. 차 지사 예. 실향민 그렇다면 이 얘기 꼭 좀 전해주시라요. 방송국 사람들은 왜 추석이나 음력설만 되면 한결같이 귀성전쟁이라는 표현을 씁네까. 주차장화된 고속도로,2000만명 대이동, 부산까지 12시간, 매표소에 중계차를 띄우고 그것도 모자라 헬기까지 동원합네다. 갈 곳 없는 우리는 그걸 볼 때마다 응어리와 앙금만 더해갑네다. 제발 자제 좀 해달라고 말입네다. 차 지사는 방송국 재직때 TV와 라디오를 포함,100여개의 프로를 진행했다. 그중 ‘장학퀴즈’ ‘뉴스데스크’ ‘아침살롱’ ‘모닝쇼’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요즘 후배들이 사명감을 갖고 진행했으면 좋겠는데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한 뒤,“보지 않는 TV가 없고 듣지 않는 라디오가 없다. 또 안 읽는 신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비유했다. 최근 MBC PD수첩 사태와 관련,“너무 아타깝다. 한 직장에 30년 넘게 일해온 선배로서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차 지사는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첫째는 서울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둘째는 미국에서 해양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압구정동 자택에서 경원대 교수인 부인과 오붓하게 지낸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실전 논술] 급변하는 사회가 야기하는 문제와 적응 방안

    ●다음 글은 세계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게 될 영향을 살피고 있다. 제시문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사회가 야기하게 될 문제를 점검해 보고, 이에 적응하여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정보는 전문적으로 ‘비트(bit)’라고 부르는 단위로 규정, 측정된다. 지금은 독서와 타이핑에서 피아노 연주, 다이얼 조작, 암산에 이르는 광범한 범위의 작업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속도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확정되어 있다. 학자들 간에 그 정확한 수치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두 가지 기본 원리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 원리는 첫째,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시스템에 과도한 부담을 주면 능률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중략) 실험 결과는 한결같이 어떠한 작업이든지 모두 어떤 속도를 초과하면 수행하기가 불가능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모두 신체적인 솜씨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속도의 최대 한계는 신체적 제약보다는 정신적인 제약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실험들은 또한 실험 대상자에게 제시되는 행동 선택 가능성의 수가 많을수록 이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이 실험 결과들은 분명히 우리가 어떤 형태의 심리적 혼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급속도로 끊임없이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경영자들이나 공부해야 할 것은 많은 데다 거듭되는 시험에 시달리는 학생들, 그리고 소란을 피우는 어린이와 요란한 전화 소리, 망가진 세탁기,10대 아이들 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로큰롤 음악 소리, 응접실의 TV 소리에 시달려야만 하는 주부―이런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감각에 밀어닥치는 정보의 파도 때문에 자신의 사고 능력과 행동 능력이 손상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전투에 시달리는 군인이나 이재민, 문화 쇼크에 걸린 여행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증상들의 일부는 이러한 종류의 정보 과부하(information overlord)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보 문제 연구의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인 미시간 대학 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밀러(Miller,James G.) 박사는 “어떤 사람에게 그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공급하면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실제로 정보의 과부하는 여러 가지 정신 질환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사하고 있다. 예컨대, 정신 분열증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부정확한 연상 반응’이다. 실험 대상자의 마음 속에 연결되어야 할 관념과 말들이 연결되지 않거나 또는 그 역의 경우가 생긴다. 정신 분열증 환자는 제멋대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고도로 개인화된 범주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삼각형·입방체·원뿔형 등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토막을 대면시킬 때 정상적인 사람은 이것들을 기학학적인 형태에 따라 분류할 것이다. 정신 분열증 환자들에게 이것을 분류하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것들은 모두 군인이다.”라든가 “이것들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라는 식으로 대답하게 될 것이다. 밀러는 ‘커뮤니케이션의 혼란’(Disorders of Communication)이라는 책에서 연상 텍스트를 이용하여 정상인과 정신 분열증 환자를 비교하는 실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실험 대상자중 정상인들을 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단어를 다른 단어나 개념들과 연관짓도록 요구했다. 그 중 한 그룹은 시간 제한 없이 문제를 풀도록 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시간적인 압박 하에서―빠른 속도로 정보를 투입하는 상황에서―문제를 풀도록 했다. 시간에 쫓긴 실험 대상자들은 시간 제한을 받지 않은 정상인들에 비해 정신 분열증 환자와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심리학자인 우스단스키(Usdanski,G.)와 채프먼(Chapman,L.G.)은 이와 유사한 실험을 통해 강제된 속도와 고속의 정보 투입 여건하에서 문제를 푼 실험 대상자들이 저지르는 과오의 유형들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했다. 이 두 사람은 역시 반응 속도의 증가가 정상인들에게도 정신 분열증 환자 특유의 과오 패턴을 초래하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밀러는 “정신 분열증은(아직 알려지지 않은 과정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신경 계통의 ‘잡음’을 증가시키는 어떤 대사 장애로 인해) 인식적 정보의 처리와 관련된 채널의 용량을 떨어뜨린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신 분열증 환자들은 표준적인 속도의 정보 투입에 대응하는 데도 마치 정상인들이 빠른 속도에서 겪는 것과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결과 정신 분열증 환자들은 표준 속도에서도 마치 정상인들이 빠른 강제적 투입 속도에서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고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밀러는 과중한 정보의 부담 아래에서의 인간 행동의 와해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정신 병리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잠재적 충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 사회 변화의 일반적인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활 속도에 적응하고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더욱더 단기간 동안에 이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강요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느리게 진화하는 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적어도 일부의 사람들을 인식적인 과잉 자극에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기술 사회에서 정신 건강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문제이다. -엘빈 토플러,‘미래 쇼크’ ● 지문의 분석 이 글은 엘빈 토플러가 쓴 ‘미래 쇼크’의 일부분이다. 앨빈 토플러는 개개인이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에 처하게 됨으로써 유발되는 파멸적인 스트레스와 방향 감각의 상실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미래 쇼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화의 충격이라는 인류학의 용어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일반화된 개념이다. 한 문화권의 생활 방식에 젖어 있던 사람이 전혀 다른 문화권 속으로 들어가게 됐을 때 겪는 격심한 혼란이 그것이다.‘미래 쇼크’란 이러한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현재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우리가 미래의 문화 속으로 갑자기 진입하게 될 때 느끼는 혼란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미래 사회의 문화가 현재의 문화와 완전히 다르며 우리가 그러한 미래의 문화에 접하게 되는 속도가 충격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미래의 변화는 상상할 수 없이 너무 빠른 가속도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런 변화의 가속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또 인간은 이러한 미래에 어떻게 적응(또는 적응에 실패)할 것인가를 미리 내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토플러는 미래에 예상되는 기술적, 사회적 변화가 그 속도를 점차 가속화함으로써 개인이나 집단의 적응이 한층 어려워질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인간이 사회 전반과 개인 문제에서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시급히 터득하지 못한다면 대대적인 적응 파탄의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글쓴이는 그동안 그가 만나본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의 변화에 대한 관심과 적응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경험하고 다음과 같은 확신을 제시한다. 즉, 미래 쇼크는 머나먼 잠재적 위험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걸려 있는 실재의 질병임이 분명하다. 이 정신 생물학적 상태는 의학적 또는 정신병리학적 용어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변화병이다. 특히, 변화의 속도는 변화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급속한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나가려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자세, 즉 미래가 현재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새롭고도 민감한 인식, 곧 미래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과중한 정보의 부담(정보의 과부하) 아래에서의 인간 행동의 반응을 고찰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시스템에 과도한 부담을 부면 능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다. 이를 토대로 글쓴이는 정보의 과부하가 인간 행동을 와해시킴으로써 정신 병리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처리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상황이 초래할 인간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글의 주제는 정보의 과부하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 출제의도 현대는 기술 정보 사회로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이 변화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거나 변화에 적응하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미 가속적 추진력이 붙은 사회는 자율적인 조절 능력을 상실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수험생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하는 데에 출제 의도가 있다. ● 생각하기 먼저 서론에서 기술 정보화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와 변화의 속도는 이미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전략을 탐구하겠다는 논지 전개 방향을 밝히면 좋을 것이다. 이 글의 방향이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관련되므로 그러한 측면과 관련된 논의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물론 정보화 사회 속에서 급변하는 모습들이 야기할 문제점들을 제시문에 근거하여 정확히 짚는 것이 문제 해결의 주된 방향이 될 것이다. 그러한 논의의 방향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논의를 전개하면 구체성을 띠게 될 것이다. 또한 논의를 전개할 때 주된 전제가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목표는 인간다움의 실현에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변화와 그 대응도 궁극적으로는 이 목표의 완성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글을 맺으면 출제자가 요구하는 답안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쓸까 글 전체의 주제 방향은 정보화 시대 속에서 급변하는 사회의 영향과 적응 방안 정도로 잡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주제문은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목표는 인간다움의 실현에 있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서론 부분에서는 기술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우리의 생활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삶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이런 점과 관련된 논의가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논의의 방향이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라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본론 부분에서는 정보화로 인한 변화의 영향과 적응 방안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될 것이다. 먼저 정보화로 인해 급변하는 사회가 야기하게 될 문제점을 제시할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 양상과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불안과 소외에 시달리는 모습과 관련된 논의를 전개해 문제의 핵심을 구체화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의 적응 방안을 언급할 수 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응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하여 결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로 인해 나타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열린세상] 나는 오늘도 中和를 꿈꾼다/강지원 변호사

    한국사회는 극심한 ‘당파사회’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과거의 사색당파나 구한말의 망국시대를 연상케 한다. 인물도 구별이 없다. 사람들앞에 나대기 좋아하는 정치인들뿐 아니라 저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당파심에 함몰되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 정도다. 이런 시대에 ‘中’(중)이라 하면 막연히 ‘가운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아니면 이쪽이기도 하고 저쪽이기도 한 경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중용에 나오는 中은 그런 것이 아니다.‘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이란 구절이 있다.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것이 中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 이런 저런 세상살이에서는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화내거나 슬퍼하는 일들이 수 없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 자체가 발하지 않는 상태가 中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표현이다. 실로 두렵기까지 하다. 사람이 과연 그렇게 감정자체도 절제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일까. 중용은 이어서 和에 관해서도 설명한다.‘발이개중절 위지화 ’(發而皆中節 謂之和)라. 발하되 모두 중절인 것을 和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인 탓으로 어찌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하지 아니하랴. 그러나 그것이 중절을 지켜 주면 和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하여 中을 지키지 못하고, 또 희로애락이 발한다 해도 중절을 벗어나 和를 지키지 못할까. 한마디로 동물적 욕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욕망이라 하면 뭐니뭐니 해도 돈·권력·지위·명예·인기·애정 등등에 대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들은 대체로 소유욕이나 지배욕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욕망들이 충족되면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고 반면 그것들을 잃거나 얻는데 실패하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심지어 적개심에 휩싸인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무욕(無慾)의 경지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세상살이이므로 부디 욕망을 절제해서 희로애락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中和의 길이다. 지금 갈기갈기 찢어진 이 나라 당파사회에 충심으로 호소하고자 한다. 부디 당파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세상에 어찌 당파 자체야 없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파를 이루는 인물들이 당파적 편파심에 빠져 당파적 욕망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희로애락의 감정에 빠지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특히 상대에 대해 적개심과 투쟁심에 불타게 되는 수가 많을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나라가 온통 이처럼 갈등과 분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 아니한가 하는 것이다. 부디 그 당파안에서나마 소유욕과 지배욕을 떨쳐버리고 무욕과 무감정의 中和의 길을 찾아 주기를 당부한다. 그러면 상대도 적군이 아니라 아름다운 동반자로 보이게 될 것이다. 차제에 당파 자체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당파란 본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무작정 욕망을 위한 지역당파, 이념당파, 세대당파, 노사당파, 빈부당파에만 매몰된다면 그것이 어디 제대로 된 당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미 당파가 아니라 쓰레기 패거리작당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당파라면 더이상 세상에 해를 끼치기 전에 당장에 해체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이 더 가중되기 전에. 강지원 변호사
  • 첫제보 의혹 前연구원 “억울해”

    첫제보 의혹 前연구원 “억울해”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와 관련,MBC PD수첩에 ‘악의적 제보’를 한 것으로 알려진 A씨가 직장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이 제보자란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악의적 제보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A씨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 관계자는 6일 “신경외과 레지던트(전공의) 1년차인 A씨가 오늘 오전 사표를 제출했고, 병원은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지방의 한 의대를 졸업한 A씨는 지난 2002년 6월부터 2004년 4월까지 황 교수팀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연구실을 나와 올 3월부터는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근무해 왔다. 특히 A씨는 황 교수팀 연구실에서 동료 연구원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황 교수팀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을 때 논공행상에서 밀려 PD수첩측에 악의적 제보를 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인터넷에는 A씨의 실명과 사진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A씨는 이같은 내용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방영된 PD수첩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 나왔던 ‘난자 제공자 수첩’이 자신의 것이 아니며, 지난 6월에는 대학원생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인간 배아복제 줄기세포’ 추출과 관련해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제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PD수첩측이 지난 2일 공개한 취재일지이다. 일지에는 지난 6월 PD수첩에 황 교수팀 연구의 윤리 문제와 논문의 허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보한 것으로 나온다. 또 8월과 9월에도 한 제보자가 연구원 난자 사용 의혹을 제기했고, 또다른 제보자가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돼 있다. 이와 관련,PD수첩 한학수 PD는 “최초에 6월1일 제보를 받았고, 그 뒤에 2명의 제보를 다시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제보자는 총 3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3명의 제보자가 같은 사람인지 각각 다른 사람인지, 황 교수팀의 내부인물인지 외부인물인지 확인할 수 없다.PD수첩측도 제보자의 신원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씨가 뒤늦게 제보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나섬에 따라 현 단계에서는 황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이 제보자일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따라서 PD수첩팀의 취재 윤리문제 등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진짜’ 제보자의 신원을 가려내는 것은 추측만 난무하는 선에서 머물 가능성이 크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작가 김유정의 지독한 짝사랑

    작가 김유정의 지독한 짝사랑

    30이란 아까운 나이로 병마와 싸우다 요절한 작가 김유정의 애인이 살아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雲泥)동 109의 2. 계(桂)동 입구에서 휘문(徽文)고교 쪽으로 가다 보면 한 가닥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 온다. 길가에 연한「시멘트」2층집이 바로 김유정의 옛 애인이 살고 있는 곳. 국창(國唱) 박녹주(朴錄珠·65) 여사의 집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명인 박녹주 여사가 일세(一世)의 문사(文士) 김유정의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라는 건 거의 숨겨진 사실. 이 40년 전 사랑의 이야기를 박여사에게 들어보면 - . 이상(李箱)과 단짝 친구인 천하의 외고집 작가 김유정은 이상과는 둘도 없는 단짝. 우선 그의 사람 됨됨을 보면 - .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李箱의『소설체로 쓴 김유정론』에서) 이 외고집장이 김유정은 또 한 소리(唱)를 무척 좋아했다.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하고 그 척척 붙어 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 아리랑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를 내 뽑는다』(李箱의『김유정론』에서) 이런 김유정이니까 판소리 명인 박녹주를 미치도록 사랑할 만도 했다. 김유정과 박여사가 처음 알게 된 건 김유정이 23세 되던 해. 그러니까 나이 2살 위인 박여사가 25세 때였다. 당시 김유정은 수운동(현 묘동)에 살고 있고 박여사는 봉익동에 살고 있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연전(延專)다니던 23세 유정이 극장 공연 보고 홀딱 반해 당시 연전학생이던(아직 문단에 나오기 전) 김유정은 당시 조선극장(지금 낙원동에 있었음)서 공연 중인 박여사를 보자 홀딱 반해버렸다. 그날 저녁으로 박여사에게「러브·레터」를 띄웠다. 다음날 박여사가 그 편지를 받아보니「박녹주 누님 전(殿)」해놓고는『당신을 연모(戀慕)합니다』라고 서 있더라는 것. 박여사는「연모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레코드·재키트」에 든 자신의 사진까지 오려 보낸 것으로 미루어 사랑편지임을 알고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누님』소리가 싹 빠지고「박녹주씨 전」으로 또 편지가 날아 들었다. 이번엔 상세한 자신의 이력소개와 집안 사정 그리고 자기와 결혼해 달라는 사연이었다. 박여사는 그 편지를 그대로 받아두었다. 그러자 하루에 꼬박 2통씩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혈서까지 써 보내왔다.『무슨 학생이 편지만 쓰고 공부는 언제하나?』싶더란다. 어느 날 국창 이동백(李東伯)의 양녀인 원채옥(元彩玉, 현재 포항서 살림)이 놀러 왔다. 박여사에게 이 이야기를 듣곤 그 성의가 놀라우니 선이나 한번 보라고 권해왔다. 그러지 않아도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한번 보고 싶던 차에 친구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편지를 김유정에게 띄웠다. 그 이튿날 새벽같이 김유정이 들이닥쳤다. 보니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다. 박여사는 원채옥을 다락에 숨기고 유정과 마주 앉았다. 金 = 난 당신을 지극히 연모하오. 朴 = 연모가 무슨 소리요? 金 = 즉 말하자면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외다. 朴 = 학생 신분으로 소리하는 여자 사랑하면 되오? 金 = 학생하고 소리하는 사람 연애하지 말란 법, 법률 몇 조에 있소? 朴 = 그래도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 되면 얼마든지 우리 같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게요. 金 = 당신이 날 사랑해주어야 공부 잘 되고 훌륭한 사람 되지. 첫 대면은 이렇게 끝났다. 다락에 숨어있던 원채옥은 유정이 가고 나자 박여사에게『이년아- 너 서방 하나 잘 얻었다』고 놀려대었다. 그러나 당시 박여사는 이미 명인 소리를 듣기 시작한 국창. 이름도 없는 일개 문학도 유정을 사랑하기엔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슴 한 구석에 헌칠히 키 큰 유정의 순정을 간직한 채 어느 갑부와 살림을 차리고 들어 앉았다. 불응하자 집에 찾아 들어 편지선 누님이 이년으로 그렇다고 김유정의 외고집이 꺾일 리 없었다. 살림을 차린 줄 알면서도 편지는 여전히 날아들었다. 박여사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영감 눈에 띄지 않게 찢어버렸다. 한번은 사각모자를 쓴 유정의 사진이 끼여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을 차마 찢어 버릴 수 없어 깊이 간수해둔 것이 이제 40년을 지난 오늘까지 박여사의 수중에 남아 있다. 유정의 편지는 점점 악이 받쳐갔다.「누님」이「씨」로, 그러다「녹주야」가 되더니 종내는「이년, 저년」이 되어버렸다.「연모」소리만 늘어놓던 편지가『너 오늘 운수 좋았다. 내 눈에 뜨이기만 했으면 죽었다』로 나왔다. 그러면서 집으로 찾아 들기 시작했다. 이때는 영감도 눈치를 챈 뒤라, 박여사는 영감과 상의, 유정을 피해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 유정은 용케도 또 찾아오는 것이었다. 갑부와 살림을 차렸는데 설이면 세배하러 왔다고 설이 되면 금반지 하나, 마른신(가죽신) 하나, 양단저고리 한 감을 갖고『세배하러 왔노라』며 찾아 들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버티고 앉기 일쑤여서 박여사가『이러다 우리 영감 만나면 어쩌느냐』고 안달하면 유정은 배포 좋게『그래야 영감과 헤어지고 나하고 살 수 있게 되지 않느냐』며 버티었다. 한번은 어느 중국집에서 손님이 부른다기에 갔더니 방에는 유정 혼자 버티고 앉았더란다. 『나하구 살자』『그렇겐 못한다』설왕설래 끝에 유정이 하는 말이 - . 『너 돈이 좋으니? 그럼 내 나랏님 진지밥상이라도 훔쳐다 주마』하더라는 것. 이러길 꼬박 3년. 정 모씨(월북)가 쓴『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까지 이 연애사건은 기록이 되어버렸다. 박여사가「관」에서 노래하는 줄 알면 그 앞 골목에 숨어있기 일쑤요, 집을 비우면 집에서 버티고 기다렸다. 마침내 박여사는 모든 세상살이가 귀찮아 졌다. 김유정의 손길도 피할 겸 피로한 몸도 쉴 겸 삼방약수터로 훌쩍 떠나버렸다. 이것이 유정과의 마지막이었다. 꼬박 3년 - 열병 앓듯 하던 유정은 그 해 조선(朝鮮)·중외(中外) 두 신문에 소설이 당선되고 이어 계속 수작들을 발표했다. 사랑의 열병이 한물 가시고 나자 유정은 흡사 박여사에게 미치던 것처럼 문필(文筆)에 미쳐버린 것. 그러나 이때 이미 유정은 폐결핵을 앓기 시작할 때. 결국 그는 30이란 아까운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번 손목이라도 잡고 다정히 대해주었더라면 싶어』- 박여사는 사각모를 쓴 유정의 사진을 어루만진다.『이제 다 지나간 일이지만 - 』하며 박여사는 담배연기를 훅 내뿜곤『나보다 더 오래 살아 내 소리보다 몇 백 배 더 좋은 글을 써주길 바랐더니…』박여사의 눈동자엔 40년 전 사랑이 당장 쏟아질 듯 가득히 괴어 있다. <작가 김유정씨 약력> 1908년 강원도 춘천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상경, 형의 집에 머무르면서 휘문(徽文)고보를 거쳐 연희(延禧)전문학교 문과를 중퇴. 1935년 단편『소나기』가 조선일보에,『노다지』가 중외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그 해『금따는 콩밭』『산골』을 발표, 다음해에『동백꽃』『야앵(夜櫻)』『봄봄』『땡볕』, 37년에『따라지』등의 수작을 발표했다. 문단생활 단 2년 만에 30여 편의 단편을 발표한 그는 향토적 서정이 풍부한 독특한 문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고백한 바와 같이 빈곤, 실연, 병고로 말미암아 우울이「성격화」되어 그의 작품 뒤에는 언제나 인생을 방관하는 애수가 깃들여 있다. 27세 때부터 폐결핵으로 고생하기 시작, 1938년 30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9)한국의 茶人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9)한국의 茶人들

    섬돌을 이고 있는 뜰에는 흰 서리가 가득하게 내리고 새벽빛은 쌀쌀하다. 누군가 유천의 수곽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문을 여니 초당 평상마루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먼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생에 대한 번뇌가 가득했다. 오직 답답하면 남도의 땅끝 산에 댓바람 새벽부터 오르겠는가. 그 중년의 남자는 마음에 병을 가득 안고 있었다. 나는 그 중년의 남자에게 한잔의 차를 권했다. 물음이 필요없었다. 차를 마시는 자우홍련사 툇마루에는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낭자했다. 한잔의 차를 마신 그 중년인은 가볍게 합장을 하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태산만한 삶의 무게가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먹다만 차가 찻잔에 남아 있었다. 그는 한잔의 차도 온전히 마실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중년인의 모습은 한치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왠지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다부’(茶賦)에서는 차의 품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한 사발을 마시니 마른 창자가 깨끗이 씻어지고, 두 사발을 마시니 신선이 되는 듯 하고 세 사발을 마시니 병골이 깨어나고 두풍이 낫고, 네 사발을 마시니 근심과 울분이 사라지고, 다섯 사발을 마시니 색마가 놀라 달아나고 탐식하는 마음이 사그라지며, 여섯 사발을 마시니 온 세상에 해와 달이 비치고 만물이 제 모습대로 살아 있음을 알겠고, 일곱 사발을 마시니 맑은 바람이 울울이 옷깃에서 일어나며 봉래산의 울창한 숲이 아주 가까이 다다른 듯하다. ”차에 대한 여섯가지의 덕도 함께 적고 있다. 오래 살고 싶거나, 병을 멎게 하고 싶거나, 맑은 기운을 지니고 싶거나,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싶거나, 신령스러움을 몸에 지니고 싶거나, 예를 갖추려고 할때는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차에 대한 ‘품성론’은 마치 차가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신비한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차의 품성론의 핵심은 ‘쉼’이다.‘쉼’이란 거칠게 헐떡이며 매시간과 매일을 살아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자전거와 비교된다. 우리는 자전거가 멈추면 넘어지듯 우리의 삶이 쉬어가게 되면 경쟁력에서 탈락하는 공포를 느낀다.‘차’는 이같은 쉼 없는 흐름을 쉬어가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대표적인 차인중 한 사람인 고운 최치원, 설잠 김시습,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은 거칠게 변화하며 탄탄하게 옥죄어오는 시대적 과제와 현실속에서 한발짝 물러나 자신을 차와 함께 가다듬었다. 차와 함께 현재의 삶을 쉬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 쉼을 통해 자신을 보고 시대현실을 관통해냈다. 그리고 역사와 시대현실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그런 점에서 ‘차’는 바로 쉼을 통해 마음과 몸을 정화해 새로운 생의 활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차 도구를 준비하고 물을 준비하고 차를 우려내는 행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로 끝나서는 안된다. 마음과 육신의 쉼을 통해 자신의 근원을 바라보는 내적행위로 귀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속에 명멸한 대부분의 차인들은 바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존재하며 활발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 헌신했다. 그런 점에서 차는 하나의 고고한 정신문화적인 생활문화양식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탄탄하게 연동하는 살아있는 삶으로서 우리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인들은 알아야 한다. 역사 속의 차인 중 맨 첫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원효 스님이다. 차인으로서의 원효 스님은 고려 때 이규보가 쓴 ‘남행월일기’라는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다.“원효방에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다. 사포는 차를 달여 원효스님에게 드리려 했으나 샘물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때 바위 틈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났는데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늘 차를 달였다 한다. 원효방은 넓이가 2.4㎡쯤 되는데 한 늙은 중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해어진 누비옷에 도를 닦는 모습이 고고했다. 방 한가운데를 막아 내실과 외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의 초상화가 있고 외실에는 병 하나, 신 한 켤레, 찻잔과 불경을 놓은 책상만이 있을 뿐 불 때는 도구도 없고 시자도 없다.” 신라시대 차인들은 또 있다. 설총과 보천, 효명태자, 충담사, 고운 최치원이다. 설총은 ‘차와 술로서 정신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했고, 화랑도의 지도자였던 보천과 효명태자는 매일 오대산 문수보살에게 차를 달여 공양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안민가를 지었던 충담사는 왕에게 차를 달여 바쳤고, 최치원은 그의 저서 ‘계원필경´과 쌍계사진감선사비명에 “차로써 갈증을 풀 수 있고 근심을 잊게 되었다.”고 차의 가르침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차인들이 많았다. 임춘, 김극기, 이규보, 진각국사 혜심, 원감국사 충지, 이제현, 이색, 정몽주, 길재 등이 차를 마시며 내면을 가꾸었다. 고려시대 삼은으로 불리는 이색은 차를 몹시 좋아하여 깊은 산속 골짜기 벼랑에서 떨어지는 샘물가에서 부싯돌을 쳐서 차를 달여 마셨다 한다. 그는 차를 마시며 “차를 끓여 마시니 편견이 없어지고 마음이 밝고 맑아 생각에 그릇됨이 없다. 영아차의 맛은 그 자체가 참되다. 가루차를 점다하여 마시니 차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삿된 기운을 모두 없애준다.”고 차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이색은 차생활을 통해 시대적 현실 속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을 발견하고 다짐했다고 볼 수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차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비록 문화적으로 많은 쇠퇴를 겪어야 했지만 임진왜란 등 각종 전란으로 조선시대 사회가 피폐해지기 전까지는 사대부들에 의해 차는 크게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가장 두드러진 차인중 한사람은 바로 점필재 김종직이다.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백성들의 차세를 덜어주기 위해 관영 차밭을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당시 차로 인해 수탈받는 민중들의 아픔을 이렇게 적고 있다.“상공할 차가 이 고을에서는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백성들에게 차세를 거두니 백성들은 돈을 가지고 전라도에 가서 차를 샀다. 대개 쌀 한 말로 차 한 홉을 얻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이러한 폐단을 알고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고 관가에서 스스로 구하여 바쳤다. 삼국지를 읽다가 신라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차씨를 얻어다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아아 이 고을도 산 아래 있으니 어찌 신라 때의 유종이 없겠는가. 그리하여 노인들을 만날 때 마다 널리 물어보았더니 과연 엄천사 북쪽의 대숲 속에서 몇 그루의 차나무를 얻게 되어 나는 매우 기뻤다. 그래서 나는 그땅에 차밭을 가꾸도록 하고 그 부근의 백성땅을 사들여 관청 땅으로 보상을 하였다. 그뒤 몇해만에 제법 번식되어 차밭이 고루 퍼지게 되었으니 4∼5년만 있으면 상공할 액수를 채우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현실 속 차인의 태도는 어디에 있는지를 점필재 김종직은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차가 깊은 산속 정자나 도심 속 화려한 차실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에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인 것이다. 조선시대 차인들로는 설잠 김시습, 한재 이목, 서산대사, 초의, 추사, 다산 등이 존재한다. 근현대 차인들도 존재한다. 근현대 차인들은 서양의 커피문화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 박토에서 차문화의 싹을 틔운 개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차서들을 통해 다관을 복원하고 차밭을 찾아 차를 덖고 그리고 다법을 정립하기 위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해왔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 오늘날 한국차의 문화가 싹터 있는 것이다. 근현대 차인들로 송광사의 다송자, 응송 스님, 효당 최범술, 명원 김미희, 석불 정기호, 홍종인, 청남 오제봉, 금당 최규용, 청사 안광석, 의재 허백련, 토우 김종희 선생들이 주역이다. 물론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차인들이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힘써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문화란 근본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효당 최범술과 의재 허백련, 금당 최규용 선생의 차 사랑은 매우 남달랐다. 효당 최범술은 진주 다솔사에 주석하며 지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많은 차인들을 양성해냈다. 효당 선생은 ‘한국의 다도´라는 책을 집필, 초의선사 이후 한국다도의 맥을 복원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다소사에 차밭을 일궈 ‘반야차’를 직접 제다해 차인들에게 보급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의재 허백련도 빼놓을 수 없는 차인이다. 남종화의 맥을 이은 의재 선생은 무등산에서 직접 차를 재배해 ‘춘설’이라는 일품차를 생산해냈다. 효당과 의재는 우리나라 차인의 동서쌍벽이라 칭할 정도로 근대 차문화의 산파역을 해냈다. 차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검박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나 현재 모두 우리의 삶은 그 현상만 달라졌지 그 근본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니 현재니 하는 시간적인 흐름은 현상을 바꿀 뿐이지 그 근원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인에게 차는 늘 현실이요, 역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지암 암주 ■ 한재 이목의 ‘다부’ 얼마전 산중을 떠나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한국전통문화와 한국전통차 문화운동을 했던 한 다인이 ‘한국발효차연구소’를 인사동에 개원했기 때문이다. ‘한국발효차연구소’가 인사동 한 모퉁이에 아담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우리 민중들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했던 발효차에 대한 연구와 복원을 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는 차가운 겨울의 매운 바람을 훈훈하게 녹이는 화로 같은 것이었다. 한국차는 이렇게 선각자적이고 개척정신을 가진 차인들에 의해 오롯이 그 전통이 보존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재 이목과 그가 남긴 ‘다부’(茶賦)가 그 주인공 중 하나다. 다부는 우리나라의 차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하다. 육우의 ‘다경’과 노동의 차노래 ‘칠완다가’를 참고해 지은 차 노래가 바로 ‘다부’이다. 한재는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사람은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그 성미에 따라 다르나니 이태백이 달을 좋아하고 유령은 술을 좋아하듯 나는 차를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하다가 차의 성질을 알고부터는 마음속으로 좋아하게 됐다. 차는 세금을 내고 들여오니 이 일이 좋단 말인가 하고 사람들이 말했다. 이에 내가 대답하기를 이 일은 하늘이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이 아니며 차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니다. 나는 겨를이 없어 이에 미치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하였다.” 480자로 된 ‘다부’는 우리나라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다서(茶書)인 ‘다신전’(茶神傳)보다 350년 앞섰다. 저자인 한재 이목이 중국에서 직접 체험한 차 생활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차의 심오한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차를 일생동안 즐겨도 싫증 나지 않는 것은 그 고유의 성품 때문이다.”로 시작된 ‘다부’에는 ‘차 이름과 산지’‘차나무의 생육환경과 예찬’‘차 달여 마시기’‘일곱 잔의 차 효능’‘차의 다섯가지 공로’‘차의 여섯가지 공로’ 등을 열거하고 있다. ‘다부’에 실린 몇가지 내용들을 살펴보자. 먼저 차의 직접적인 효과 5가지를 말하고 있다.“책을 볼 때 갈증을 없애준다. 울분을 풀어준다. 손님과 주인의 정을 화합하게 한다. 뱃속 기생충으로 인한 고통을 없앤다. 취한 술을 깨게 한다.”차를 마셔 신체와 정신에 이로운 점 6가지도 밝히고 있다.“오래 살게 한다. 병을 낫게 한다. 기운을 맑게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신선과 같게 한다. 예의롭게 한다.”‘다신전’이나 ‘동다송’과 같은 명저인 ‘다부’는 조선을 지배하던 유학자가 쓴 유일한 창작다서다. 노장사상, 특히 양생론과 깊은 연관을 가진 이책의 특징은 행다(行茶), 조다(造茶) 등 실제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사상적인 측면을 더 강조했다는 점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음다기풍과 그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노작이기도 하다.
  • 용인민속촌 99칸 기와집 을사오적 이근택의 별장

    한국의 전통 양반가옥을 대표하는 경기도 용인민속촌내 99칸 기와집이 일제시대 친일파 이근택의 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6일 수원시에 따르면 용인시 한국민속촌 내에 전시된 99칸 집은 1910년대 을사오적의 한사람인 이근택(1865~1919)이 사용하던 집으로, 지난 1973년 민속촌 건립 당시 수원 남창동에서 이전, 복원된 것이다. 이근택은 구한 말부터 일제 초기까지 10여년간 별장으로 이 집을 사용하다 당시 수원지역 최고 거부였던 양성관에게 팔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농촌 줄파산 ‘공포’

    농촌 줄파산 ‘공포’

    농촌 줄파산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한 마을 사람들이 나란히 보증을 서는 ‘어깨보증´, 채무자가 잠적하면 보증인을 주채무자로 바꾸는 ‘엎어치기´ 등 농촌 사회에 퍼져 있는 편법적인 채무변제 방식이 연쇄파산의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파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 파산에 이어 연대보증으로 얽히고설킨 농촌의 줄파산이 심각한 수위로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농민들은 개인회생제도를 농촌 현실에 맞지 않아 꺼린다. 파산전문 박용석 변호사는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카드빚이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 사람과 비교해 땅과 집을 담보로 잡힌 농민들이 많다는 점이다.1억원 농지에 근저당이 8000만원 설정돼 있다면 현재 개인회생제도에서는 이 8000만원을 빚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회생제도는 담보채권을 구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소득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 번 돈 중에 최저생계비를 뺀 만큼 갚아나가는 개인회생제도는 급여제가 많은 도시민과 달리 농민의 소득수준을 산출해 내기에 적절치 않다. 이런 점 때문에 파산을 택하는 게 맞지만, 농촌에서의 파산은 줄파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에 놓인 일종의 뇌관인 셈이어서 이 또한 선택이 쉽지 않다. ●대부분 땅등 담보대출… 구제대상 안돼 전라북도 남원 인근의 한 마을에서 6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경영하는 구재진(가명·42)씨. 구씨는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그의 빚은 2억 9000만원. 구씨는 지난 5년 동안 대출금의 만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보증인을 데리고 농협을 찾았다. 같은 마을 사람인 농협 직원은 그때마다 정책자금·가계대출·일반대출 등의 명목으로 500만∼2000만원까지 돈을 빌려줬고 이 돈은 곧바로 만기일이 돌아온 대출금을 갚느라 다시 농협으로 들어갔다. 구씨가 5년 동안 농협에서 받은 대출은 15차례. 대출을 위해 세운 보증인만 모두 6명이다. 동네 어른 3명, 마을 친구 2명, 친형까지 모두 구씨의 보증인이다. ‘보증인 돌려막기’방법으로 5년을 버텨 온 구씨는 지난 5월 6촌 형의 부도로 직격탄을 맞았다. 구씨는 지난해 6촌 형의 땅에 7000만원을 대출받아 비닐하우스를 세웠다.6촌 형은 부도 후 잠적했고 구씨의 비닐하우스는 경매로 넘어갔다. 그 뒤 농협에서는 더 이상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 매달 200만원 가까운 이자를 갚을 수 없게 되자 구씨의 선택은 파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구씨에게 보증을 선 지인 3명은 지난해 농수산신용보증기금으로 대체했지만 여전히 친형과 친구 2명은 그의 보증인이다. 구씨의 빚은 하우스를 짓기 위해 1998년 농협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으면서 시작됐다.2001년 100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하우스가 주저앉자 다시 대출을 받았다.2002년 11월 전기 누전으로 하우스에 불이 나자 보증인을 세워 대출을 받았다. 구씨는 “내가 파산하면 같은 농사를 짓는 보증인들도 줄줄이 파산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일봉(가명·44)씨는 ‘어깨보증’을 섰다가 전 재산을 날렸다.2000년 함께 농민회 활동을 한 친구가 세운 미곡종합처리장의 보증을 섰다. 그러나 친구의 사업은 1년 만에 부도가 났고 이씨뿐만 아니라 ‘어깨보증’을 선 2명 모두 재산이 가압류됐다. 이씨의 전 재산은 7200여평 규모의 논과 밭이다. 이씨는 1995년 농업기반공사로부터 논과 밭을 매입한 비용 1억원 가운데 절반만 갚은 상태였다. 가압류는 청천벽력이었다.10년 동안 갚아 온 5000만원보다 당장 농사 지을 땅을 잃은 건 큰 충격이었다. 지난 9월 이씨의 땅은 경매로 처분됐다. 이제 빚을 갚기 위한 대출마저 불가능해졌다. 이씨의 현재 빚은 1억 7000만원.2000년 이후 태풍과 폭설, 폭우 피해가 날 때마다 이씨는 친구 2명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농협과 신협, 축협 등에서 수십차례 대출받았다. 이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 2명에게도 맞보증을 서준 상태다. ●보증인이 주채무자로…엎어치기 파산 ‘어깨보증’을 선 보증인이 주채무자가 되는 ‘엎어치기’도 농촌 줄파산의 원인이다. 전북 순창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정용석(가명·46)씨. 그는 7년전 보증을 선 친형이 잠적하면서 형의 빚을 끌어안게 됐다. 형은 순창에서 젖소를 키우기 위해 농협에서 98년 7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때 정씨와 형의 친구 2명이 보증인이 됐다. 그러나 젖소 농장의 적자를 견디다 못한 형은 잠적했다. 정씨는 가압류를 피하기 위해 형의 채무를 자신 명의로 돌려 이자와 원금을 갚고 있다. 농협 직원도 “압류를 당하면 금융거래가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 있다.”면서 “형을 대신해 정씨가 주채무자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득했다. 정씨는 꾸준히 이자와 원금을 갚고 있지만 오히려 빚은 8000만원으로 늘었다. 정씨는 “택시 운전으로는 대학에 다니는 두 아이의 뒷바라지마저 힘들다.”면서 “아이들에게 빚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안동환·남원 이효연기자 sunstory@seoul.co.kr
  • [깔깔깔]

    ●재구입 이유 한 청년이 의류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재킷을 사고는 흡족해했다. 이튿날 그는 재킷을 들고 오더니 점원에게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반품 이유를 설명했다. “여자친구가 그러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대요.” 1주일 후 그 청년은 의류점에 또 나타나 그 재킷을 다시 구입하겠다고 하자 점원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여자친구 마음이 바뀐 건가요?” 청년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오. 여자친구를 다른 여자로 바꿨어요!” ●반격 7살짜리 꼬마가 여동생 머리를 잡아당겼더니 엄마가 야단을 쳤다. “네 동생은 나중에 엄마가 될 사람인데 자꾸 그러면 성격 나빠져.” 잠시후 7살짜리 꼬마가 하는 말. “엄마는 어릴 때 누가 머리 잡아당겼어?”
  • 테이, 거칠고 강하게

    테이, 거칠고 강하게

    확 달라졌다. 낯설기까지 하다. 직접 마주한 그는 우리가 아는 얼굴이 아니다. 미소년적인 이미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칠고 강해진 느낌. 특유의 감성이 더욱 짙게 스며든 음악은 이제 ‘사랑’이 아닌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그도 역시 틀에서 벗어날 때 더 매력적인 사람인가 보다. “이번엔 의도적인 변화를 꾀했어요. 점점 ‘테이화(化)’돼 가는 것이 싫었죠. 처음으로 제 욕심을 다 채웠어요.” 가수 테이(22·본명 김호경)가 돌아왔다.1집 ‘사랑은…향기를 남기고’와 2집 ‘사랑은…하나다’로 단숨에 발라드 황태자로 자리매김한 그가 불과 5개월 만에 3집 ‘테이의 3번째 설레임’을 들고 다시 팬 앞에 섰다. # 과거 사랑 아픔 독백으로 모두 12트랙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의 특징은 록·재즈·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한데 녹인 ‘발라드 종합 선물세트’. 타이틀곡은 라틴 팝계열의 감성 깊은 곡 ‘그리움을 외치다’. 작곡가 황세준, 작사가 조은희와 손잡고 만든 곡으로,‘누구나 그렇게 사랑을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르다.’는 내용으로 사랑을 돌이킨다. 눈에 띄는 트랙은 Intro. 그가 직접 쓴 가사를 독백으로 입혔다. 그는 1분40초 동안 허밍과 함께 “나 당신에게 말 못했던 것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왜 당신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왜 이별이 서럽지 않겠습니까? 나 당신에게 말 못했던 것은 그 보다도 아파할 당신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애절하게 읊조린다.“데뷔 직전 헤어진 여자 친구를 떠올렸어요. 당시 하지 못했던 여러 말들을 모두 담았죠. 가슴이 찡하실 거예요.” 그가 특히 애착을 갖는 곡은 ‘홀로서기’.“학창시절 록밴드 활동 이후 제대로 된 록 발라드는 처음”이라며 미소짓는다.‘사랑을 한다’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테이스러운’ 노래이며, 차갑고 절제된 슬픔을 노래한 ‘얼음인형’은 “녹음중 눈물을 참느라 무척 애먹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 애초 타이틀곡으로 잘못 알려졌던 일본 그룹 안전지대 출신 다마키 고지의 ‘콜’을 리메이크한 ‘사랑에 미치다’등이 있다. 이번 앨범을 통해 작사 솜씨도 뽐냈다.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정통 재즈풍 ‘그댄 참 향기가 좋아요’에서는 속삭이는 사랑을,‘스팅’풍의 기타 사운드가 매력적인 ‘그 길에 서서’에서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남자의 심정을 가사로 담았다. # 일본 데뷔 ‘NO!’ 최근 일본 현지 단독공연과 팬미팅을 성황리에 마치는 등 일본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그이지만,‘일본’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손사래부터 친다. “일본 활동은 제가 만류하고 있어요. 일본에 대해 잘 알아야 문화적 공감대도 생기고, 특히 노래엔 가사 전달이 중요한데…일본어로 노래하면 발음 따라하기에만 급급할 거예요. 제 감성이 담길 리 만무하죠. 차라리 안하는 게 나아요.” 하지만 한국어로 노래하는 무대는 마다하지는 않을 거란다. ‘연기’란 말을 떠올리며 “다른 장르에 도전 욕심은 없냐?”고 물었더니,‘심야프로 라디오 DJ’라며 멋쩍게 웃는다. 그리고 “가수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겠다.”고만 말한다. 그는 새달 24∼25일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리는 3집 발매 기념 ‘설레임[雪來林]’콘서트를 시작으로 내년 초까지 대구·부산·천안 등을 돌며 콘서트 위주로 활동할 계획이다. “‘테이표 발라드’라는 꼬리표가 떨어졌으면 해요. 한 이미지로 고정되고 싶지 않죠.3집에서의 작은 변화처럼 제 노래 실험은 계속될 겁니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상하이車, 쌍용車 사장 사퇴 요구

    쌍용자동차의 최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그룹이 쌍용차 소진관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쌍용차 관계자는 3일 “상하이차가 최근 소진관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으며 5일 열리는 3·4분기 결산 이사회에서 소 사장의 거취 여부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 가운데 소 사장을 제외한 3명이 상하이차측 인사이며 이사회 의장도 천홍(陳虹)상하이차 총재가 맡고 있어 한국 사람인 사외이사 4명을 감안하더라도 소 사장이 경질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1999년 12월 워크아웃중에 취임한 소 사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로, 상하이차측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으로는 쌍용차 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사외이사인 김승언씨가 거론되고 있다. 한편 쌍용차 노조 관계자는 “임기가 남아있는 사장을 해고하겠다는 것은 일반 조합원까지도 해고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며 우려를 표했다.류길상기자 ulkelvin@seoul.co.kr
  • 儒林(46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儒林(46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맹자의 대답 중 안연의 말을 인용한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도를 아는 사람은 또한 순과 같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는 문장은 누구든 성선지심으로 도를 닦으면 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 명언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맹자의 이런 ‘성선지설’은 서양철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스토아학파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자연에 근거하여 공동의 이성법칙을 추구하였는데, 자연의 이성법칙에 따라서 행하기만 하면 이것이 바로 지선(至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성선설은 키케로(Cicero), 세네카(Ceneca)에서부터 루소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루소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인데, 문명과 사회제도에 영향을 받아 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루소는 ‘자연이 만든 사물은 모두 선하지만 일단 인위(人爲)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선은 천성에 속하고 악은 인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루소가 ‘사람은 원래 선하지만 문명과 사회제도와 같은 인위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고 주장하였다면 동양철학에서 최초로 성선설을 주창한 맹자 역시 ‘사람은 선천적으로 선을 가지고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과 감정의 제약 때문에 불선(不善)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불선하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함닉(陷溺)’으로, 주위환경의 제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그 속에 빠짐으로써 성선의 기초가 허물어져 드러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는 주위환경이란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환경과 혼란한 사회악과 같은 외부적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넉넉한 해에는 자제들이 풍년에 힘입어 온순해지는 것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해지는 것이 많으니, 이것은 선천적으로 자질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 문장에 나오는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 즉 ‘함닉’이 인간의 성선을 불선으로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 두 번째는 ‘곡망(梏亡)’이다. 곡망이란 인의지심(仁義之心)이 일어나지만 사리사욕의 훼방으로 성선의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르지 못하고 오히려 소멸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우산(牛山)의 나무를 들어 ‘곡망’을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산의 나무는 원래부터 아름다웠다. 그러나 큰 도시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땔감으로 쓰거나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찾아가 도끼로 베니,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또한 하늘은 비와 이슬을 내려주어 나무를 아름답게 자라나게 하지만 사람들은 소와 양을 방목하여 나무의 잎을 뜯어먹음으로써 반질반질하여진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원래부터 우산에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어찌 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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