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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3)김시습과 만복사 석불입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3)김시습과 만복사 석불입상

    매월당 김시습(1435∼1493)처럼 전국 곳곳에 흔적을 남겨 놓은 옛사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매월당이 최후를 마친 충남 부여 무량사에는 그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도가 있습니다. 무량사에는 그의 초상화도 영정각에 모셔져 있는데, 유·불·선(儒·佛·仙)을 넘나든 이 사상가가 이곳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선사(禪師)로 대접받았음을 뜻합니다. 최근 매월당의 관향(貫鄕)이자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했던 강릉의 경포대에는 김시습기념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율곡 이이가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태어난 오죽헌이 지척이지요. 율곡은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의 전기를 짓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인연이 깊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은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고,1455년(단종 3년) 마침내 보위에 오르자 책을 불사르고 방랑을 시작합니다. 그는 모두 2200편에 이르는 시를 남겼습니다.‘유관서록(遊關西錄)’과 ‘유관동록(遊關東錄)’,‘유호남록(遊湖南錄)’,‘유금오록(遊金鰲錄)’은 일종의 기행연작시이지요. 시의 제목을 훑어가다 보면, 전국적으로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보다 닿지 않은 곳을 찾는 편이 오히려 빠를 지경입니다. ‘유금오록’은 김시습이 30대 시절, 오늘날에는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경주 금오산에서 지은 것입니다. 짐작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소설인 ‘금오신화’도 그가 금오산 남쪽 용장사에 머물고 있을 때 썼습니다. ‘금오신화’는 5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것으로,‘만복사 저포놀이(萬福寺樗蒲記)’도 그 하나이지요. 저포란 나무로 만든 일종의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중국 놀이라고 하는데, 우리식의 윷놀이도 한자로는 저포라고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복사는 전북 남원의 기린산에 있었던 절입니다. 지금도 남원시내에서 순창으로 가는 길가에서 절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문종(1019∼1083)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하지요. 탁발을 마치고 만복사로 돌아가는 스님의 행렬(萬福寺歸僧)이 ‘남원 8경’의 하나로 꼽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만복사 저포놀이’는 양생(梁生)이란 노총각이 만복사를 찾아가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여 이기고는, 소원대로 불공을 드리러 온 처녀를 만나 이승의 3년에 해당하는 꿈 속 같은 3일을 지내고는 헤어진다는 내용입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처녀는 왜구의 난리를 만나 죽임을 당한 혼령으로, 이후 양생도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만복사는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100년도 훨씬 전에 씌어진 ‘만복사 저포놀이’에 벌써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퇴락의 원인도 왜구의 침입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만복사에는 창건 당시 조성된 석불입상이 하나 전하고 있습니다. 원만하고 양감있는 얼굴과 유려하고 굴곡있는 신체 곡선이 자연스럽습니다. 전체 높이가 2m라지만 대좌와 광배를 제외하면 부처님은 사람키와 비슷하지요. 저포놀이를 하자는 양생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 같은 친근한 모습입니다. 매월당은 세조 8년(1462) 여름을 순천 송광사에서 보내다 남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광한루에 오르니 피리소리 들리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때 만복사에 머물며 지금은 보물 43호로 지정된 이 석불입상을 만났을 것입니다. 춘향과 판소리의 고장에서 뜻밖에 ‘금오신화’의 주인공과 마주치고, 매월당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dcsuh@seoul.co.kr
  •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어떤 이는 지난해인 2006년이 모나리자 탄생 500주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 1507년 완성된 것으로 보아 2007년이 500주년이라고 얘기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검은 의상을 입고 상반신을 우측의 관객 쪽으로 향하면서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며 입가에 신비스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 스푸마토(Sfumato)기법의 상반신 유화초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눈썹은 면도로 밀었는지 없고 머리엔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일을 쓰고 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이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과 두 개의 원주를 뒤로 한 채 반원형 나무의자에 앉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왼손 손목 위에 포개 놓고 있다. 모나리자 때문에 떼돈 번 사나이 얘기부터하자. 오래 전 미국의 흑인 저음가수 낫킹콜이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공연할 때 그 유명한 노래 ‘모나리자’를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신비한 미소를 띤 부인이여....” 1950년 6월 10일 낫킹콜이 발라드풍의 ‘모나리자’를 불러 이를 모나리자에게 바치자 300만장의 레코드판이 팔려나가는 기적적인 매상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젊은 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흐르고 있다. 나의 가라오케에서의 18번의 하나는 바로 이 노래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모나리자로 큰돈을 챙긴 여인은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이다. 그녀는 2003년 모나리자 이름을 빌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즐리 여대에 새로 부임한 미술사 교수로 출연하면서 몸값으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 약 2백 80억 원을 챙겼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 모나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슨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2005년 말 화란의 암스테르담 대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의 감성 인식 컴퓨터를 통한 그림 이미지 공동연구 결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의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 중에서 행복 83%, 불쾌함 9%, 두려움 6%, 분노 2%, 무표정 1%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라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나리자의 정체를 놓고 몇 가지 대조적인 주장이 있다. 1)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죽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주장에 의하면 피렌체의 비단 장사였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 본다. 그리하여 조콘도의 여성형인 ‘라 조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 혹은 라 조콘다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와서 이고 그 전에는 ‘한 피렌체부인의 초상’ 혹은 ‘면사포를 쓴 창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이 화가의 화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솔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낸다. 2) 벨연구소의 슈와르츠 박사는 컴퓨터로 디지털 해상분석을 통하여 얼굴 라인을 대조한 결과 이 그림은 여성화되긴 했으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여장남인으로서 다빈치의 얼굴윤곽을 닮은 가공의 여인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3) 미술 감정가 헨리 퓰리처는 다빈치의 후견인이었던 밀라노의 메디치가(家)의 쥴리아노의 부인 프랑카빌라 공작부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애칭도 ‘라 조콘다’였다. 4) 다른 연구가 뤼르센은 그림의 여인은 밀라노 공작의 부인인 아라곤 이사벨라라고 주장하였다. 다빈치는 11년간 밀라노 공작을 위하여 궁정화가로 일하였었다. 다른 유명화가 라파엘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보통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그려져 있다. 모나리자의 화폭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53 cm이다. 35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모나리자의 몸값은 얼마짜리인가? 기네스북에 의하면 보험에 든 그림 중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1962년 당시 미국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들 때 실제로 1억불로 감정하였다. 이것을 현가(2006년 기준)로 치면 적어도 6억 7천만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6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모나리자를 욕보인 남자들은 누구인가? 1) 1956년 신원미상인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하반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2) 같은 해 12월 30일 남미 볼리비아사람인 우고 비예가스는 모나리자에 돌멩이를 던져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림에 방탄유리를 씌어 전시 중이다. 3) 1911년 8월 21일 이태리인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루브르미술관 목공 직원은 모나리자를 훔쳤다. 그녀를 납치(?)후 2년간 자기 아파트에 감금하였다가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게리에게 팔았고 이것이 뒤 미쳐 알려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태리에서 순회전시가 끝나면서 루브르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페루지오는 나폴레온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이태리의 문화유산을 도루 찾아오기 위할 목적으로 훔쳤다고 증언하였으나 실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에 고용되었었다. 그는 모사전문 화가 이브 쇼드론에게 모나리자의 모작을 그리게 하여 진품이라고 속이고 미국의 부호 여섯 명에게 각각 팔아치워 큰돈을 챙겼다. 페루지오는 1년 15일 감옥에 있다가 이태리에 대한 애국적인 입장을 참작하여 풀려났다. 이를 사람들은 20세기 최대의 미술품도난 및 사기 사건으로 일컫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나리자 때문에 구치소 신세를 졌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프랑스의 전위 시인 기욤 아포리넬리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의 친우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어서 체포 구금되었다. 나중 그들은 풀려났지만 피카소는 일생 모나리자의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 모나리자의 인연은? 1963년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은 현대적 아이콘으로 모나리자를 나염 천에 그려 넣음으로써 그가 즐겨 그린 마릴린 몬로와 함께 자기의 마스코트임을 나타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모나리자가 미국 나들이를 했을 때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마릴린 몬로와는 앤디워홀의 붓끝을 통해 모나리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연계되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나리자의 관계는? 미국의 뉴요커 지는 1999년 2월 8일 모나리자 이미지를 모니카르윈스키와 합성한 그림 ‘모나 모니카’를 표지에 실음으로써 클린턴에게 아픔을 주었다. 모니카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리는 오랄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모나리자의 콧수염? 1919년 다다이즘화풍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과 염소 턱수염을 단 그림을 발표한바 있으나 이에 한 술 더 떠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54년 콧수염 달린 자신의 초상화를 모나리자 스타일로 형상화하였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열린세상] 두보가 古稀를 어이 알랴/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두보가 古稀를 어이 알랴/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한자문화권에서 사람의 나이 일흔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고희(古稀)다. 이는 중국 당나라 때 민중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 두보(杜甫)의 시에서 유래했으니, 관용어로 자리매김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가 마흔여덟에 지은 시 ‘곡강(曲江)’에 고희가 나온다.“예부터 말하기를 사람은 칠십을 살기가 어렵다.(人生七十古來稀)”는 구절에 들어 있다. 이 시는 그가 수도인 장안에 마지막으로 머물 무렵 귀족들이 노는 유원지를 배경으로 지었다고 한다. 관아의 일이 끝난 뒤 거의 날마다 곡강 근처 술집으로 나앉아 시름을 달랜 정황이 묘사되었거니와, 자못 니힐리즘한 작자의 심사가 짙게 묻어난다. 그리고 두보는 ‘곡강’에 나온 시어처럼 이순(耳順)을 채 넘기지 못한 쉰아홉 해를 살고, 세상을 떴다. 그러고 보면, 두보는 고희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안록산이 반역한 이른바 ‘안사의 난’ 한가운데서 어려운 시대를 얼마쯤 살았다고는 하지만, 일흔 살 고희를 이렁저렁 이야기할 처지는 아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칠십은 장수로 여겼던 터라, 그 나이의 노인은 흔치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네 사회도 노인이 되는 첫 기준을 일흔 살로 잡은 모양이다.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기초노령연금 대상 역시 두보가 읊은 고희와 맞아 떨어진다. 동아시아적 가치관을 아직은 선뜻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중국 고유의 전통을 얼마간 생활에 끌어들인 싱가포르에서는 ‘효도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늙은 부모의 봉양 의무를 법으로 규정할 정도로 아시아의 윤리 전통에 무게를 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반포지효(反哺之孝)’를 어거지로 강제한 법이 매끄럽게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최근 우리네 사회는 65세 나이를 노인으로 못박고, 이를 여러 갈래로 다시 노령을 가리는 추세다.65∼74세를 우선 노령으로 보았고,75∼84세에 이르러야 비로소 노인으로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평균수명도 73세로 늘어나, 고령화사회가 마침내 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이 학계의 관점이다. 어떻든 소액의 기초노령연금을 손에 쥘 한국의 70대는 불행한 시절을 어렵게 산 세대다. 초등학교 코흘리개 때 일제의 침략전쟁과 여기 뒤따른 질곡의 시대를 어렴풋하나마 일찌감치 경험했다. 이어 6·25전쟁 내내를 골무만한 작은 창자 하나를 채우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도 약관(弱冠)이 되었지만,4·19와 5·16같은 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세상은 몇차례 더 바뀌었다. 그러나 뒤돌아 보지 않고, 외곬으로 달린 사람들 거의가 지금은 70대 한국인이었다. 지금 밥술이라도 먹는 성장의 동인(動因)을 부추긴 이들이야말로 노후를 휴식할 자격을 갖춘 그룹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돌아갈 권리는 20세기 들어 마셜이 주장한 사회권(社會權)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서비스 차원의 권리를 가리키는 사회권은 평등한 시민권을 더욱 구체화한 논리인 것이다. 지난 10월은, 아주 생소하게 들린 ‘노인의 달’이었다고 한다. 손이 시리도록 찬서리가 내리는 상강은 이미 지났으니, 낼 모레가 벌써 입동이다. 따사로운 구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이지만, 주변에는 버림받은 노인들이 많다. 노후를 안락하게 여기는 노인이 몇이겠는가. 예전에 본 ‘삼국지’의 인물 한 사람인 조조가 문득 떠오른다. 이 고전은 여러가지 판본이 나돌아 그 대목을 다시 찾아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불세출의 인걸 조조의 언행 하나는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평정한 한 고을에서 베푼 기로연(耆老宴)을 빌려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노인들이 난세를 탈없이 산 것은 선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접을 받으면서, 편히 살아야 한다.”고….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단박인터뷰’의 김영선PD, 단박인터뷰 당하다!

    ‘즉시’ ‘솔직하게’라는 순 우리말을 가진 프로그램명처럼 뜨거운 화제의 인물을 찾아 현장으로 발빠르게 다가가는 KBS ‘단박인터뷰’. 지난 19일 KBS본관에서 예리한 질문과 생동감 넘치는 인터뷰로 시청자들의 가슴속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해주는 ‘단박인터뷰’의 진행자 김영선PD(34)를 만나 프로그램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단박인터뷰’가 장안의 화제이다. 그래도 아직 ‘단박인터뷰’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단박인터뷰’는 KBS1TV에서 화·수·목 밤 10시 45분 에 방송되는 인터뷰 전문 프로그램이다. ‘단박’이라는 말은 순 한글로 ‘즉시’ ‘단숨에’ ‘솔직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매일 매일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인물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아 솔직한 질문을 던지고 솔직한 마음을 들어보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본인 소개도 짤막하게 해달라. 나는 ‘단박인터뷰’ 진행을 맡고 있는 김영선 PD이다. ‘추적 60분’ ‘뉴스 투데이’ 등 시사프로그램을 쭉 해오다가 이번에는 인터뷰 진행자로 나서게 되었다. 아직 서투른 점이 많지만 여러분들이 (단박인터뷰를)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단박인터뷰’라는 타이틀이 프로그램 성격에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짓게 되었나? 내가 이 프로그램의 ‘얼굴’이지만 사실 많은 PD들이 연출을 하고 있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의 홍경수PD가 ‘단박인터뷰’의 첫 연출을 맡았는데 ‘단박’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국어사전을 통해 찾아냈다고 들었다. 또 인터뷰 끝에 출연자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도 홍PD의 아이디어였다. 정치·문화·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출연자들이 나오는데 섭외기준은 무엇인가? 현장에 찾아가서 단숨에, 즉시에 한다는 프로그램명에 맞게 당연히 그 주(週)에, 그 날에 가장 이슈가 된 인물이 섭외기준이 된다. 어려운 일이지만 항상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감한 이슈와 관련된 출연자는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할텐데 어떻게 설득해 인터뷰를 성사시키나? 뉴스의 흐름을 보고 아이템이 정해지면 대부분의 섭외가 방송 전 날 저녁때쯤 이루어진다. 출연자 섭외가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인터뷰에 응해준다. 섭외과정은 ‘전쟁’과 비슷하다. 출연해 달라고 매달리기도 하고 우겨보기도 하고 아무튼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고초가 많다. 수많은 출연자들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가장 섭외하기 어려웠던 출연자는 누구인가? 가장 힘들게 섭외한 사람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선후보였다. ‘단박인터뷰’ 시작하고 한 달 뒤에 출연을 요청했는데 당시 한나라당 경선시점 이었다. 출연건으로 전화를 해도 계속 “다음에 합시다. 다음에 합시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마음에 일단 이명박 후보의 대전 연설회 현장으로 찾아갔다. 이명박 후보에게 말 그대로 ‘들이댔는데’ 보좌관들 사이에서 “이런 법이 어딨냐”며 난리가 났었다. 그 때부터 온갖 아양으로 보좌관들을 설득해 이명박 후보를 쫓아다녀 그 다음날 15분 정도 인터뷰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힘들게 섭외에 성공했는데 이명박 후보가 인터뷰에 잘 응해 주었나? 그 당시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질문들을 많이 했는데 이명박 후보가 굉장히 통쾌하고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잘해주었다. 오히려 그 옆의 보좌관들이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민감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면 출연자들로부터 불만이나 거부반응도 많지 않나? 많았다. 사람인데 왜 없겠는가. 진중권씨 인터뷰도 사실 화면에는 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그 질문들 자체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심형래씨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심형래씨는 (인터뷰를)하다가 울기도 했고 중간에 안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고…. 그런데 불편해 한다고 안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출연자가 최대한 덜 기분 상하도록 웃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나는 ‘김영선’이라는 이름으로 간 것이 아니고 시청자를 대표해서 간 것이므로 아무리 언짢은 질문이라도 출연자들은 다 답변을 해준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면 방송에 빼달라거나 하는 어필도 많다. 반면에 거하게 대접을 해주거나 잘 해주는 출연자들이 있다면? 대부분 인터뷰 방송 후에 밥을 사겠다고 많이 말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그렇지만 한번도 초대에 응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김영선PD나 스태프들을 가장 난처하거나 곤혹스럽게 한 인터뷰는 무엇인가? 실명을 밝히지 않고 말을 하겠다. 모 작가 분께 정치적인 얘기를 계속 물어봤는데 불편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정색을 하고 화를 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경우가 그 전에도 한 두번 있었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달래고해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정치쪽과 관련된 시원한 대답은 못들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노래를 잘 불러주어서 감사한 그런 기억이 있다. ’단박인터뷰’에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출연자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 장면인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1회때 출연자였던 김홍업 민주당의원한테는 노래 부탁을 하지 못했다. 너무 부끄러워하며 도망가는 바람에…. 2회때는 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 장관이 나왔는데 “좋아하는 노래 있으세요?”라고 물어봤더니 이분이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박상철의 ‘무조건’이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원래는 노래제목만 물어보고 방송에서 원곡을 틀어주기로 되어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정말로 몰라 한 소절만 부탁했다. 그랬더니 이분이 너무나 귀여운 얼굴로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왜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됐는지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노래는 노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노래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또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때문에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모 일간지에서 “중요한 사안을 가지고 노래를 불렀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그 후로 청와대측에서 몹시 속상해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김영선PD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깊은 노래는 무엇인가? 평소 이소라 씨노래를 많이 좋아하는 편인데 그것은 노래방에서 점수가 잘 나오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이고…(웃음) ‘단박인터뷰’가 질문자에게 노래를 요청하는 의도로 생각해본다면 나에게 의미있는 노래는 김민기 씨의 ‘봉우리’일 것이다. 굉장히 오래된 노래인데 사실 노래라기보다 읊조리는 시이다. 힘들 때 굉장히 힘이 되는 노래이다. 그런데 아직 미혼인것 같은데 너무 바빠서 결혼을 생각 못했나? 하하하. 그렇다. 이제는 일 핑계를 대면 안된다. 이쯤되면 솔직해야한다. 어찌하다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웃음) 김영선PD와 같이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예비 방송인들에게 한 마디를 해준다면? PD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평생을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인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분위기에서 일하지만 역으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해야하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언제나 나에게 놓여진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는 것을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성격인지 돌아보는게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박인터뷰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예상외로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시청자 여러분들의 발이되어서 열심히 찾아가 묻고 좋은 답변을 얻어오는 프로그램이 되겠다. 글 /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영상 /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여성&남성] JOB고 싶다!

    본격적인 취업 시즌을 맞아 남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는 실력보다는 성별에 따른 선입견 때문에 취업 과정에서 차별을 받았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성은 신체적인 이유로, 남성은 군복무로 인한 3년간의 공백 등의 이유로 각각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힘겨운 취업전쟁을 벌이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이 같은 행태는 큰 상처가 된다고 말한다.‘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 과정에서 받은 차별´에 대해 들어 봤다. ●‘남성우대´라고 미리 밝혀라 취업 준비생 안모(25)씨는 입사지원서를 썼던 모 회사의 서류통과자 명단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상경계열 100명 모집에 서류 통과자가 모두 남자였던 거예요. 여자들도 꽤 지원했는데요. 아무리 여자를 뽑으면 문제가 있다느니, 빨리 그만둔다느니 얘기들이 많지만 어떻게 한 명도 서류 합격을 못할 수가 있죠. 면접조차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씨는 “차라리 신입사원 공고를 낼 때 ‘남성 우대’라고 써놨다면 화는 나겠지만 이력서 쓰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회사에선 능력대로 뽑았다고 말할 테니 대놓고 차별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어디다 얘기하기도 뭐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 같아서 답답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성모(28)씨는 면접장에서 뜬금없는 질문에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면접관이 ‘언제 결혼할 건가?’라고 물어 보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네? 아직 결혼 계획 없는데요.’라고 씁쓸하게 웃었더니 ‘남자친구는 있나? 그럼 언제 쯤 결혼하고 싶은데?’라고 다시 묻더군요. 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자리 잡으면 결혼을 생각할 것’이라고 했더니 들릴듯 말듯 하게 ‘그럼 길어야 2년 정도 다니는 건가.’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회사에선 연락이 안왔죠. 여자는 결혼하면 직장 그만둘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정말 화가 났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예 결혼은 늦게 할 거라고 대답하지만 기분은 늘 찜찜했습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임모(24)씨는 취업을 하고 나서야 남성은 정규직으로 채용됐고 여성은 계약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사과에 물어 보니 “여성 직원도 열심히 일하면 정규 사원이 될 것”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임씨는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가기엔 요즘 취업난이 너무 심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도 “열심히 일하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분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말했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과 억울한 기분으로 마지못해 일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게 회사에 이득이 될 것인지 물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남성 할당제´가 웬 말이냐 직장인 이모(28)씨는 회사마다 신입 직원을 뽑을 때 남자와 여자 할당량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문제는 소수자 보호가 아니라 남자는 일정 비율 이상, 여자는 일정 비율 이하를 뽑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2명을 뽑는 회사에 지원한 적이 있어요.1차는 합숙 면접,2차는 토론 면접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지원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누가 면접을 잘하고 누가 똑똑한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더라고요. 지원자인 우리가 봐도 저 사람은 뽑고 싶다 저 사람은 진짜 아니다 싶었죠.” 1차 합격자 명단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6명이 올랐다. 문제는 그 남자가 바로 지원자들 사이에서 실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던 사람이었던 것. “당시에는 나름대로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최종에서 그 남자랑 여자 한 명이 뽑혔어요. 그 순간 말로만 듣던 게 사실이구나 싶었죠. 상위권을 남자들이 차지하면 그대로 두면 뽑으면서 여자들이 다 상위권을 차지하면 모두 여자로 뽑지 않고 남자를 꼭 합격시키더라고요. 물론 같은 점수라면 오랫동안 일하는 남자를 뽑는 게 이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는 아무리 잘해도 정해진 인원이 있고 그 안에서 여자들끼리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깐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정말 성적대로 사원을 뽑을 순 없는 건가요? ●취업시장에도 외모지상주의 “울고 싶어라” 여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얼굴과 몸매만 따지는 시선이다. 직장인 최모(24)씨는 냉소적으로 “주위에 실력으로 치면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지만 결국 합격은 얼굴 예쁜 순서”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얼굴이 좀 별로고 뚱뚱한 친구가 학점 좋으면 지나가는 말로 남자들은 ‘독하다. 얼굴 안 되니깐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라고 얘기해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외국어 잘해도 여자는 미모가 떨어지면 취업하기 힘들어요. 외국에 유학갈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게 훨씬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취업을 준비 중인 신모(26)씨는 술자리 면접에서 면접관한테 들었던 얘기가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신씨는 “술자리 면접에서 어떤 분이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자기는 뚱뚱한 사람 보면 자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면서 “물론 나한테 하는 얘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솔직히 자기 딸이 뚱뚱해서 취업할 때 고민해도 그렇게 냉정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면접 자리에서 여학생들도 많은데 그런 얘기를 꼭 해야만 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역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모(25)씨는 외국계 외식업체에서 경영관리 쪽으로 지원했을 때 면접관에게서 “얼굴이 예쁜데 서빙도 하라면 할 수 있겠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지원한 분야와 전혀 달랐기 때문에 당황해 하는 서씨에게 다른 면접관은 서둘러 “성차별하는 건 아니고…”라며 무마하려고 했다. 서씨는 “남자들한테는 업무와 관련된 질문만 하면서 여자 지원자들한테는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어떻게 할 거냐 같은 질문만 하더라.”면서 “일하고 싶어서 면접보는 건데 물어 보는 질문들이 죄다 여성 차별적인 질문이어서 정말 기분이 나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년간의 긴 군복무 공부흐름 뚝 “어찌할꼬” 회사원 박모(27)씨는 “군복무가 결과적으로 취업 과정에서 남성들이 차별을 받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군대에 다녀오는 기간이 2년인데 짧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상 몇 년간 공부 흐름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취업 준비할 시간이 끊기지 않고 넉넉한 여자들에 비해서 남자들은 군대에서 머리가 텅 빈 상태로 사회에 복귀해서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나도 회사에 들어올 때 정말 열심히 준비했지만 신입 사원들 중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성적이 좋았습니다. 이걸 회사에서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똑똑하다는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군대 다녀온 게 결국 취업 과정에서도 차별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군대 갔다온 남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차별 아닌가요.” 취업을 준비 중인 안모(28)씨는 반년쯤 전 모 회사에서 면접을 봤을 때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 그는 “나이 차별은 결국 군대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냐.”면서 “하다못해 내가 군면제만 됐어도 그런 차별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운 좋게도 어려운 관문을 뚫고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를 포함해 최종까지 간 사람은 10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 2∼3명 정도는 탈락하게 된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 데도 불구하고 결국 면접에서 탈락했죠. 그런데 이 회사는 나이어린 사람을 선호한다는 소문이 많은 회사예요. 나는 최종면접 대상자 10명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거든요. 나중에 아는 사람을 통해 들으니, 나와 다른 여자 지원자가 성적이 비슷해서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여자지원자를 뽑게 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명백한 차별 아닌가요.” 그는 “당연히 여자가 취업할 때는 남자보다 나이가 어릴 수밖에 없다.”면서 “내가 만일 여자였다면 그 때 취업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역할 고정’이 부메랑 되다 회사원 권모(33)씨는 교육사업 부서에서 일한다. 그는 ‘교육사업=여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자신이 원치 않는 부서에 배치된 것이라고 믿는다. “내 자리에 원래 일주일 전에 특채로 고용한 여자 박사과정 수료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내가 들어오면서 그 여자는 다른 자리로 가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교육 사업을 하려면 행정력이나 사업 수완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교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박사를 수료한 사람인데, 나는 석사 출신이거든요. 행정력은 필요해도 그다지 고급 인력이 필요한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 여자에게 일주일 정도 일을 시키다가 나로 교체한 겁니다. 여자는 야근하는 것도 남자보다는 많이 안 하려고 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남자라서 좀 더 몸을 쓰게 하고 부려먹으려고 나를 뽑은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회사원 황모(29)씨는 예전에 취업을 앞두고 백수로 지낼 때 돈이 궁해서 보증보험 대리점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맡은 업무는 고객인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 다니면서 보험료를 수금하고 새해 기념 다이어리를 배부하는 일이었다. 황씨는 “당시 근무 조건은 내가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 3개월 이상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면서 “내가 맡은 보험료 수금하는 일은 여자들이 하는 일이었는데 변호사 사무실에 나누어 줄 기념다이어리가 좀 무거워서 임시로 나를 고용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장은 한 달 동안 내가 다이어리 배부를 마치자 다시 그 자리에 여자를 고용하겠다고 나보고 그만 나오라고 했어요. 사장 말은 ‘여자가 더 같이 일하기 편하다.’는 것이었죠. 그 때 기분이 정말 안 좋았습니다. 나한테 힘든 일 잠깐 시키려고 임시로 고용하고 3개월 이상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안 지켰다고 생각하니 정말 분했습니다.” ●왜 여성 지원자만 좋아하죠?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박모(27)씨는 취업 때문에 고민하다가 취업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중소기업 문을 두드려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회사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많은 화장품 계열 회사였다.“제가 지원한 직종이 여자로서 조금 섬세함을 요구하는 자리였나 봅니다. 면접을 보는데 여자들의 섬세함이 필요한데 남자로서 잘 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당연히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면접관들 눈에는 미덥지 못했나 봐요. 결국 탈락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여자를 뽑으려는 의중을 면접관들이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나운서가 되려고 준비 중인 김모(30)씨는 예전에 지방에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간 적이 있다. 한 명을 뽑는데 지원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방송국에서는 남녀 구별을 두지 않은 채 모집공고를 냈다. 김씨는 당연히 실력만 좋으면 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최종 합격자는 여성 지원자였다.“남자 지원자들이 밀린 거죠. 당시 느낌은 여자 아나운서를 뽑기로 해놓고 여자만 모집한다는 식으로 공고를 내면 모양이 좋지 않으니까 남녀 구별 없이 공고를 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장인 김모(31)씨는 면접관들이 여성 지원자만 선호한다는 생각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회사에서 최종 면접을 할 때 남자와 여자를 분리해서 면접을 하더라고요.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들끼리 얘기를 해 보니 남자 지원자들한테는 별 질문도 없고 시큰둥했는데, 여자 지원자들한테는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했더라고요. 관심 정도가 다른 겁니다. 그 회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드러내 놓고 차별한 건 없지만, 알게 모르게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친절한 경희씨’ 청소 하던 날

    ‘친절한 경희씨’ 청소 하던 날

    더없이 화창한 7월의 어느 날 저녁으로 물들어가는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서울시의 공해와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한 깊은 상심에 잠긴 채 집으로 들어서던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엄마가 동생의 방을 청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방도 아니고 내방은 더더욱 아니고 우리집의 귀염둥이, 막둥이 세현이의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엄마에게 대체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 여쭤나봤다. “엄마 대체 지금 뭐하는 거야?” “보면 몰라 청소하잖아. 아가가(우리 엄마는 고3 19살인 내 동생을 아직 아가라고 부른다)집이 더러워서 공부가 안된데.” 정말 순간 적으로 하얗게 지워진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심지어 한국어도 아니었다. “왓 더 *! What The F***.” 그야말로 모국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놀라움 속에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닫으려 하는 것을 부둥켜 움켜잡고는 방으로 기어(문자 그대로 기 어 서)들어왔다. ‘아냐, 내가 왜 당황하고 있지? 그래 내가 당황 할 이유는 없는 거야.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엄마의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왜 당황하는 거지. 오히려 잘 된 거 아냐? 그래 드디어 엄마가 청소를 시작한 거야. 이제 우린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어.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더러워지지 않는 집에서 살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 깊숙한 곳 한켠에선, ‘아냐, 엄마! 엄만 그런 거에 굴해선 안 돼. 빗자루나 진공청소기 따위는 엄마의 그 황금 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만 그저 마우스나 잡고 하루 종일 싸이월드 하고 영화 보는 게 어울리는 여자야. 엄마는 이미 전업주부로는 유일한 ‘친절한 경희씨’란 말야! 대채 왜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성서의 교훈 중 하나,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네 눈 속의 들보를 봐라.’ 즉 다시 말하면 남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교훈이 조금이라도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일까 아니면 남 탓을 하지 말라는 것일까? 사실 정답은 나와 있다. 남의 탓을 하지도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데 게을리 하지도 말라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여기에 대해서 남과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리고 이미 몇 십 년 째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우리 엄마의 결론은 ‘내가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남 탓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며 성서의 교훈에서 그다지 벗어나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사실 이보다 무서운 말은 없다. 저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저 말속에는 ‘당신의 잘못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의미와 함께 ‘대신 당신도 나한테 잔소리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한 단계만 더 나아가 보자. 논리학을 조금 끌어와 보자.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너도 완벽하지 못하다. 난 너의 탓을 하지 않는다. 고로 넌 나의 잘못을 꾸짖을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너는!!! “너나 잘하세요.” 2005년에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금자씨의 대사는 사실 우리 엄마의 삶의 자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노력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 엄마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움직임 속에는 이런 굳건하고 잔인한 사상이 숨어있는 것이다. 예전에 학부시절 들었던 한 선생님의 문학 수업이 생각났다. 그 선생님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예로 들며 모더니즘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거라는 말에 화를 발끈 내며 “웃기고 있네. 네가 불러주는 거랑 상관없이 이미 나는 꽃이야. 아니 나는 꽃도 아니야 난 나야. 니가 ‘flower’라고 하던지 ‘쯔볘딱(러시아어로 꽃)’이라고 하던지 상관없어 난 나야.”라고 하는 꽃이 있다면 그 꽃이 바로 모더니즘의 꽃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 엄마가 바로 이 모더니즘의 꽃이다. 사회에서 이미 이름 지어버린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자식들의 도시락을 싸고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모든 선한 것의 결정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나한테 있어선) 우리 엄만 이 모든 어머니의 가식을 ‘흥 웃기고 있네’ 라고 콧방귀치며 차버린 사람인 것이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황금의 마음을 가진 철의 여인. 21세기형 ‘어머니’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살아있는 ‘마더 모던(Mother, Modern)’그게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그런데 바로 그런 우리 엄마가, 아들의 27년에 걸친 저항에도 끄떡없던 엄마가 ‘청소’를 한 것이다. 사실 난 어쩌면 이 글을 쓰면서부터 ‘친절한 경희씨’의 팬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무너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한없는 슬픔을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난 아직도 믿고 있다. 그래 이건 단 한 번 있는 예외일 뿐이야. “다시는 ‘친절한 경희씨’는 청소를 하지 않을 거야.” 라고 이 연사 소리내어 외쳐봅니다. 박세회 :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후 진로 탐색을 위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음악활동(sunstroke.co.kr)과 영화감상에 매진하고 있는 보헤미안 백수입니다. 모든 이의 정신연령을 자신처럼 10살쯤 낮추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심야토론’ 진행 정관용이 말하는 토론문화

    ‘심야토론’ 진행 정관용이 말하는 토론문화

    대통령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바쁜 곳은 정치계뿐만이 아니다. 방송 토론 프로그램들도 연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선 후보와 시청자들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시점에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이 방송 20주년을 맞은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국내 최초의 정규 토론프로그램으로 1987년 10월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생방송 심야토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와 궤적을 함께해 왔다. 지난 24일 오후 2004년 이후 4년째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정관용씨를 KBS 본관 시청자광장에서 만나 심야토론 20주년의 의미와 우리나라 토론문화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요즘은 가는 곳마다 대선에 관한 살아있는 촌평들을 들을 수가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보다 검증된 공론의 장을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방송 토론은 바로 이같은 욕구를 충족시키지요.” 시사평론가 정관용(45)씨는 이렇게 서두를 뗐다. 현재 라디오 ‘KBS 열린 토론’(월∼토요일)과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일요일) 두 가지를 맡고 있는 정씨.1년 365일 그의 목소리는 전파를 탄다. “1996년에 처음으로 SBS 라디오 뉴스대행진 MC를 맡았으니, 시사프로 방송진행자 생활만 벌써 11년째네요. 그 중 토론 프로그램 사회자는 2003년 봄부터 맡은 KBS 일요진단이 처음이었고요.” 라디오와 TV를 오가면서 1500여회에 달하는 토론 진행을 맡은 그는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토론 사회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다. 그런 활동을 인정받아 정씨는 올해 34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2007년 한국PD협회 라디오 진행자상을 한꺼번에 수상하기도 했다. “바람직한 토론은 3박자를 갖춰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자기 논지를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엔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수용할 줄 알아야 하죠. 논의 흐름에 잘 맞춰서 자기 논리를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우리의 토론문화는 아직 갈길이 멀었다고 진단한다. 국정감사 때만 되면 국회의원 사이에 막말과 멱살잡이가 오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상대의 의견은 무조건 면박부터 주고 보는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그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불과 20년 사이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하며 언론의 정치적 자유·비판 기능·사회감시 기능 등도 급격히 향상했지만, 내적인 깊이를 갖추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제는 언론이 질적으로 더 성숙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기도 하다. 방송 진행 외에도 경희대와 동국대에서 강의를 맡고 있고, 전국의 부장검사를 대상으로 하는 ‘설득스피치의 이론과 실습’ 교육에도 강사로 나선다. 네이버 이용자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인터넷 칼럼도 쓰고 있다. 혹시 지금까지 많은 토론을 거치면서 좋아하는 패널이나 싫어하는 패널이 있는지 물어봤다. “저도 사람인 이상 없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패널들이 저에게는 다 소중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도 들을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언론 매체가 무엇이냐,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대신 허를 찌르는 대답으로 우문에 대해 현답을 선사했다. “토론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시사 현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사석에서도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의견을 표명할 ‘나만의 언론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웃음)” 어쩌면 언론 자유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에게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는 이조차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앞으로 한 20년만 더 토론 진행을 맡고 싶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의 성숙을 돕는 동시에 그 속에서 저 또한 더 성숙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HAPPY KOREA] (26)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

    [HAPPY KOREA] (26)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

    영남에서는 학맥을 이야기 할 때 좌안동 우함양(左安東 右咸陽)이라고 한다. 함양이 안동에 버금갈 만큼 학문과 문벌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물레방아골은 선비고을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마을로 통한다. 마을 입구부터 늘어선 고색창연한 전통한옥들이 범상하지 않은 고을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줄지어선 노송과 마을을 휘감아 도는 맑은 계곡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마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 초부터 부자 마을로 거듭나자는 ‘잘 살아보세 운동’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만 150명 배출한 학풍서린 양반고을 개평리는 양반의 가풍을 이어오고 있는 뼈대 있는 마을이다. 103가구 198명이 살고 있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배출한 대학교수만 150여명에 이를 정도로 굳건한 학맥을 자랑한다. 대를 이어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의 자긍심도 대단하다. 외부인이 이 곳에 들어와 살고자 해도 집을 내놓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만 봐도 뿌리 깊은 양반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집성촌인 이 곳은 씨족간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전체 주민간 화합은 다소 약한 편이었다. 집안간의 보이지 않는 세대결 때문이었다. 조용한 이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올 초부터다. 살기좋은 마을로 지정된 후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통한옥을 보존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오랜 관습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은 총회를 열어 마을 규약을 제정했다. 하나로 뭉쳐 잘사는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데 의견 통일을 이루어 흐트러진 마을 공동체를 되살렸다. 개평한옥보존회도 구성했다. 주민간의 친분과 상호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자체 조직이다. 보존회는 마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삶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주거환경을 보존하면서 이를 개량해 한옥체험촌을 만드는 사업이 한창이다. 마을 곳곳에서 기와를 새로 이고 담장을 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양옥집을 한옥으로 개량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집집마다 전통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공사도 추진된다. 청년회장 정명상(59)씨는 “모든 주민들이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집단장을 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마을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손님맞이 기와 단장하며 마을공동체도 살아나 한옥문화와 양반체험을 하며 머무르는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30여 동의 한옥민박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부녀회에서는 옛 양반들이 즐겨 먹었던 한정식과 제례상 등 전통음식을 상품화할 계획이다. 전통 디딜방아 체험장도 설치했다. 번듯한 한옥으로 건립된 마을회관 옆에는 전통한과 체험장도 만들었다. 노모회는 명품 전통한과를 만들어 판매한다. 노인회는 전통예절과 민예품 제조기술을 전수해 힘을 보탤 계획이다. 마을 옆을 흐르는 개평천 제방에는 추억의 거리를 만들고 토속 어류를 방류해 고기잡이 체험행사도 갖기로 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이 거닐던 산책로도 복원해 역사 속에 묻혀져 가는 선현의 발자취를 후세에 전할 계획이다. ‘명약을 달이는 샘물’로 알려진 종바위 우물도 관광자원화 한다. 소득기반 확충사업으로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개평두리곶감’ 명품화 사업도 추진한다. 두리곶감은 일반 곶감보다 5∼6배 비싼 접당 30만원에 팔리고 있다. 양반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명주와 장류도 상품화된다. 명주 박물관, 전통장류 명소관도 건립한다. 궁중요리 대회, 선비문화 글짓기 대회 등 문화행사도 개최해 우리 전통의 멋과 맛, 문화를 만끽하는 마을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주민들은 당초 전폭적인 예산지원을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마을의 수백년된 돌담길도 무조건 걷어낼 것이 아니라 전통미를 살려 보존해 주길 바라는 여론도 많다. 이장 강경구(60)씨는 “주민 스스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면서 “주민들이 노력하고 투자하는 만큼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양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자되고 오래사는 100+100 운동 결실” 천사령 함양군수 “함양은 이제 어제의 함양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천사령 함양군수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함양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잘 살아 보자는 도전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군청이 새로운 시책을 개발하면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여 알찬 소득작목을 집중 육성하는 발전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전체 면적의 78%가 산지인 지역특색을 살려 곶감과 산삼을 소득원으로 개발했습니다.2003년 연간 3억원이던 곶감 매출이 지난해는 150억원으로 무려 50배가 늘었고, 올해는 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천 군수는 곶감으로만 앞으로 3∼4년 내에 1000억원의 소득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200㏊에 조성된 산양삼단지 역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게르마늄이 풍부한 토질에서 생산돼 약효가 뛰어나다. 머지 않아 심마니의 고장으로 발돋움 할 전망이다. 고랭지 사과도 효자 품목이다.100㏊가 조성됐지만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지곡면 개평리 물레방아골을 중심으로 한 양반고을 관광산업도 차별화된 상품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부자 되고 오래 살자가 지역발전 구호입니다. 연간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농민이 100명 이상,100세 이상 장수 노인이 100명 이상이라는 뜻으로 100+100 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 군수는 “혁신운동 3년 만에 1억 이상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195명을 돌파했고 5년 내에 500명을 달성할 것”이라며 “이는 생각을 바꾸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준 사례”라고 말했다. 함양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개평리 양반마을은 개평리는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늑한 농촌마을이다. 수백년 된 전통한옥이 잘 보존돼 있어 한옥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에는 양반가의 정갈한 기품이 가득하다. 요사스러운 치장이 없지만 옛 선조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안길은 커다란 호박돌로 포장돼 옛 정취를 잃지 않고 있다. 유구한 세월을 지켜온 돌담길에는 이 곳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오현 중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1450∼1504)선생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두 선생은 우함양(右咸陽)의 기틀을 잡은 조선 전기 문신 겸 성리학의 대가다. 정여창 고택(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은 남도의 대표적인 양반고택이다.1만여㎡의 대지에 사랑채, 안채, 아래채, 별당, 곳간 등 5개 건물이 샛담으로 구분돼 있다. 홍살문을 겸하는 솟을 대문에는 다섯명의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편액이 걸려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 세트장은 이 고택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 개평리에는 이 밖에도 풍천 노씨, 하동 정씨 종가댁과 오담 고택 등 문화재급 전통 한옥이 많아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한나라 ‘盧-鄭 틈새 벌리기’ 풀무질

    “정동영 얘기대로 하면 노 대통령은 한국 젊은이 피팔아 먹은 사람이다.”(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과 대통합신당의 정동영 대선 후보간 ‘틈새 벌리기’를 시도하고 나섰다. 경선 라이벌이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이해찬 전 총리의 협력을 토대로 범여권 단일 후보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이명박 후보와 양강 구도를 만들려는 정 후보에 대한 ‘견제’인 셈이다. 이 정책위의장이 공격 소재로 갖고 나온 것은 이라크 파병 연장안에 반대하며 한 정 후보의 전날 발언이었다. 정 후보는 24일 의총에서 “이 후보는 한국군이 세계 용병의 공급원이 돼도 좋은 지 대답해야 한다. 전쟁터에 한국 젊은이들의 피를 내다 팔아 잘 살면 된다는 식의 가치를 추구해선 안 된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이 정책위의장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 후보 기준대로 하면 노 대통령은 지난 4년간 한국 젊은이 피 팔아서 나라 잘살면 된다는 가치를 실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때 정동영은 무슨 역할을 했나.”라며 정 후보를 비판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또 “노 대통령께서 언급하신 것은 이번 파병연장은 대북관계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면서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언급이 거짓말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정동영의 시각에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없는 것인지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공세를 계속했다. 이 의장은 끝으로 “자이툰부대의 파병을 나가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이 넘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을 지금 모르고 있다.”면서 “젊은이 피 팔아서 나가는 일에 우리 젊은 장병들이 나서겠나? 국가 이익에 국제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인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며 대선 후보로서의 식견 부족을 은근히 부각시키려 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 후보의 ‘용병’발언에 대해 “정 후보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부분에 가장 책임있는 사람인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 사과요구를 하지 않느냐.”면서 “이라크 파병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힐난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30년전 구상 실천에 옮기는 고승길 교수

    30년전 구상 실천에 옮기는 고승길 교수

    대학로에 연극박물관이 들어선다.100여개의 극장이 난립해 있지만 번듯한 자료실 하나 없는 연극의 메카였다. 이 구상은 중앙대 연극학과 고승길(64) 교수의 머릿속에 30여년 전부터 들어 있던 것.5년 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149평 부지에 2층짜리 건물을 산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현재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이 움튼 곳이다.25억원의 사비를 털었다. 첫삽은 내년 2월에 뜬다.9월이면 ‘동양연극박물관’이라는 현판이 대학로에 내걸린다. 지상 5층, 지하 2층짜리 문화공간이다.“제 개인 연구실과 50평짜리 아파트를 팔 예정입니다. 가족들 반대요? 나보다도 집사람이 빨리 지어야 된다고 난리예요.” 40여년간 아시아 연극을 공부해온 고 교수. 새 박물관에 동양연극을 제대로 알릴 자료를 비축하고 활용·교육하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대학로에는 공연 행위만 있지 연구나 정보를 비축하려는 노력이 없어요. 돈 들여 국제적 규모의 연극제를 열어도 기본 정보가 없어 낭비가 많습니다. 요즘 한류라고도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주도를 못하고 있는 건 아시아 문화에 무지해서지요.” 한국 연극은 실크로드 때부터 동양 연극과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고구려의 아크로바틱과 인형극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 그런 맥락에서 그는 지금처럼 더이상 서양 연극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동양연극박물관’에는 지난 40년간 고 교수가 모아온 귀중한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일본, 중국, 터키, 이란, 인도, 태국, 티베트 등 아시아 전역을 돌며 구해온 ‘보물’들이다. 일본만 150여번 오갔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시골 노인의 보따리까지 뒤졌다. 한·중 수교 전에 서적이나 자료를 들여올 때는 공항에서 번번이 ‘불온문서 의혹’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모은 3만권의 서적과 1만여점의 논문, 포스터와 프로그램, 비디오 테이프,CD,DVD 4000여점 등이 모두 새 박물관에 소장된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해방 이전의 희곡을 비롯해 각종 가면과 인형극, 그림자연극 인형 500점도 함께 전시된다. 대학에 남길까도 했지만 국내 대학 박물관 중 변변히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없어 포기했다. “일본 와세다대 연극박물관도 유명하지만 자국 것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서양, 중국 자료입니다. 동양 전체 연극을 주제로 아우르는 박물관은 최초가 아닐까요.” ‘동양연극박물관’은 극장 2개와 스튜디오, 전시실 2개, 자료보관실과 연구실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극장 이름도 정했다.‘미마지’.“미마지는 백제 시대 612년에 기악무(伎樂舞·불교적 교훈이 담긴 산대가면극 같은 것)라는 걸 일본에 전해준 한국 최초의 배우예요. 우리는 늘 뭐 한다 하면 그리스 얘기를 하길래 기분 나빠서 미마지로 정했지요.”(웃음)‘미마지’는 대학로 연극쟁이들에게 싼 임대료로 내놓을 생각이다. 문제는 지원이다. 모두 1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갈 공사지만 고 교수는 개인돈 25억원 외에 외부의 도움은 구하지 않은 상태.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박물관 일대의 문화지구 지정이다. 현재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주변에는 게릴라 극장과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동숭무대와 현재 공사 중인 선돌극장 등 5개의 소극장이 들어서 있지만 문화지구에서 벗어나 있다. 용적률 혜택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런 주변머리가 없어요. 만들고 나면 이 사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겠죠. 제가 중앙대에서 35년을 가르친 사람인데 제자들만 해도 유명한 탤런트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저는 평소에 신세 안 지는 사람으로 되어 있어서….”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亞문학 ‘보편제국주의’ 탈피 민족적 특색 살려야”

    “亞문학 ‘보편제국주의’ 탈피 민족적 특색 살려야”

    한국의 고은(74) 시인과 중국의 문학평론가 장종(張炯·74)이 만났다.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위치한 대산문화재단에서였다. 두 사람은 한·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11∼17일 열리는 ‘한·중문학인대회(한국문화예술위원회·대산문화재단·중국작가협회 공동주최)’의 양국 작가단 단장을 맡고 있다. 두 나라 문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들이다. 고은은 올해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후보로 거론된 세계적 시인이고, 중국작가협회(중국공산당 산하기구인 전국 문인협의체) 명예부주석이자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장종은 사회주의 문학론의 탁월한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장종은 국제 케임브리지 전기센터에서 수여하는 ‘20세기 성취상’과 은상 포장을 받은 바 있다. 고은과 장종은 1933년생 동갑내기다. 두 사람이 밟아온 지난 시간은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점철됐다. 유사한 시대적 격랑을 헤치고 살아온 두 사람은 역사라는 큰 퍼즐 속에 찍어온 각자의 발자국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과거 양국 문학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역할과 현재 문단이 직면한 과잉 시장주의의 위협을 서로를 통해 거울처럼 비춰봤다. 통역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학과 BK21사업단 권영실 연구교수가 도왔다. 사회 및 정리 이문영기자 ●“역사가 우리 몸과 문학에 새긴 상처” -장종 고은 선생을 매우 존경합니다. 나와 동갑인데도 그토록 많은 작품을 쓰셨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합니다. 선생께서 불교에 귀의했던 동기와 문학을 택해 환속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고은 저의 산중생활은 전적으로 한국전쟁 탓입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 속에서 제가 살아남았습니다. 그때까지 절 행복하게 했던 모든 가치들이 파괴됐습니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이 초토화됐고, 살아남은 제 마음까지 폐허가 됐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인간됨을 부정하는 모습에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산에 들어가 방황하며 10년을 보냈고, 문학은 다시 저를 산에서 내려오게 만들었습니다. -장종 전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서구 민주주의 사상을 처음 접했어요. 그후 자유와 혁명의 가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48년 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공산당 활동은 비밀리에 이뤄졌기에 드러내놓고 움직이진 못했습니다. 지하에서 글을 인쇄해 전단지를 만들고 거리에서 몰래 뿌리는 식으로 선전작업을 하곤 했지요. -고은 48년이면 15살 소년입니다. 당시는 나이 어린 소년까지 역사를 정면 대결토록 만드는 시대였지요. 억압받는 식민지 소년에 불과했던 저 또한 한국전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시련의 시간이었고,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엔 각기 자기 나라의 아픔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통해 두 나라 현대사의 아픔이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장종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새겨진 시대적 아픔은 우리 문학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1919년 5·4운동 이후 로마·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서구 문예사조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일본과 소련문학의 영향까지 받으면서 당시 중국문학엔 다양한 문학사조가 한 시대에 공존하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루신 선생의 작품만 봐도 ‘축복’과 ‘아큐정전’은 현실주의에 가까운 반면,‘고사신편’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성격을 띱니다. -고은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는 서양의 고대문학조차 근대에 와서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세문학, 르네상스시대 문학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서구문학이 오랜 시대를 거치며 쌓아온 변화의 흐름을 한꺼번에 만나버린 겁니다. 단테는 옛날 사람인데 근대에 만났기 때문에 단테조차도 근대의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혼란이라 명명하는 게 당연합니다. ●“시장주의에 종속된 문학의 위기” -장종 양국 문학에 정치색이 강한 것은 그런 혼란과 무관치 않습니다.1919년 태동된 중국 ‘신문학’ 이후 약 50년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대혼돈’‘정치·계급투쟁’‘내우외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선 문학은 순수문학의 길만 가라는 목소리가 생겼습니다. 개혁·개방 이후엔 ‘문학은 문학으로 족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서 정치색 없는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지요. 하지만 창작을 하면 어떤 현상과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 정치성과 철학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고은 한국문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때론 정치노선을 아예 배격하는가 하면, 때론 지나치게 정치에 밀착되기도 했습니다. 정치 때문에 문학이 죽기도 했고, 정치가 문학을 살리기도 했지요. 민주화 이후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중국처럼 문학이 내면화 경향을 걷고 있어요. 그러나 내면화 경향이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작가입니다. 작가는 마치 딱따구리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쪼아대야 합니다. 자신의 아픔만을 투시하던 문학으로부터 타자의 아픔을 바라보고 그 아픔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야 합니다. 전 향후 문학의 전망을 ‘타자읽기 문학’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래야 문학이 타자와의 합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장종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중국문학은 생산과 소비에서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어떤 책은 1000만부 이상을 찍기도 합니다. 중국문학 전대미문의 번영기라 할 수 있지요. 그래도 문제는 있습니다. 이전엔 정치에 종속돼 있던 문학이 이젠 시장에 종속돼 있습니다. 원고료에 집착한 작가들이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일회성 통속문학에 치중하면서 작품성이 떨어졌고, 지나치게 사회문제를 등한시하면서 사상성과 도덕관념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우려할 일이지요. -고은 한국도 진즉에 겪어온 일입니다. 시대·경제상황이 변하면서 무한한 문학적 가능성을 개척해 왔지만 시장적 가치에 의해 문학의 가치가 좌우되는 현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적 색채 강할수록 세계성 강해” -장종 중국과 한국문학이 세계화되려면 민족적 특색을 살려야 합니다. 루신 선생은 지역적 색채가 강할수록 세계성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중국인이 서양인의 문화와 생활을 작품에 쓴다면 서양인이 딱히 읽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수한 번역인력 양성도 시급합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서부 신강성엔 13개의 민족이 모여 삽니다. 위구르족 하자크족엔 이미 상당 수준의 장편소설이 창작돼 사랑받고 있지만,10억 이상의 중국인들이 이들 작품을 독해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고은 몇 년 전에 나이지리아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레 소잉카와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전 ‘보편성’을 믿지 않는다고 단적으로 말했습니다. 특히 아시아문학이나 아프리카문학에 세계적 보편성이 결여돼 서구문학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럴 듯 해보이지만, 보편성엔 무서운 함정이 있어요. 한마디로 ‘보편제국주의’입니다. 장 선생 말씀처럼 자기 자신의 특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야 가치가 있습니다. 소잉카도 동의하더군요. 자기 언어와 목소리, 생각을 담지 않으면 서구 문학을 흉내내는 것밖에 안 됩니다. -장종 베이징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밖에 안 걸립니다. 아시아문학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이번 문학인대회를 계기로 양국의 문학교류가 더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고은 한·중 양국은 그간 각자가 너무 아팠습니다. 이웃을 돌보고 쳐다볼 겨를이 없었지요. 장벽도 높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만났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몰랐던 서로를 적극적으로 알아나간다면 분명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문학을 태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2moon0@seoul.co.kr
  • [도토리 뉴스] 직장인 기피전화 1순위는 ‘광고성 전화’

    직장인들이 거짓말을 해서라도 피하고 싶은 통화는 광고성 전화인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은 직장인 1765명에게 던진 ‘곤란한 전화를 위해 변명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80.4%가 ‘있다’고 답했다고 14일 밝혔다. 기피 전화로는 ‘광고 및 제휴 전화’가 41.9%로 가장 많았고,‘거래처 전화’(20.3%),‘각종 문의 전화’(19.7%),‘고객 전화’(13.4%) 등 순이었다. 통화를 피하기 위해 ‘담당자가 부재중’(23.3%)이라고 둘러대는 것으로 나타났다.
  • [2007 남북정상선언 경제협력 어떻게] (하) 부문별 효과와 남은 과제

    [2007 남북정상선언 경제협력 어떻게] (하) 부문별 효과와 남은 과제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정부 관계자는 “경협을 바라보는 남북한의 시각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굴을 맞대고 논쟁까지 벌였다고 했다. 핵심은 두가지. 남한이 왜 북한의 국토개발을 주도하느냐는 것과 남한이 북한 노동자의 착취(저임금 활용)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회담 이전에 남측에서 쏟아진 각종 개발 관련 보도에도 무척 못마땅해 했다. 물론 두 정상은 예상 밖의 구체적인 성과를 낸 게 분명하다. ●경제적 효과 극대화 위해 신뢰성 회복이 우선 ‘2007년 정상 선언’의 가장 큰 효과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통일 비용의 감소이다. 각 분야에서의 경제적 효과도 비용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예컨대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의 개보수, 안변과 남포의 조선산업단지 건설 등 SOC 투자비용은 23억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에 따른 북한의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각각 46억달러와 18억달러에 이른다. 남한도 34억달러와 13억달러로 추산됐다. 북한의 열악한 산업환경 등을 감안할 때 효과가 과대포장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 모두에 ‘윈윈 전략’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이다. 그럼에도 합의사항의 이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북한은 남한이 말하는 ‘개발’과 ‘개방’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정상회담차 평양을 다녀온 다른 관계자는 “북한 경제가 한계점에 직면해 남한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우선순위 높은 사업부터 차근차근 추진해야 따라서 남북 경협을 급격히 확대하기보다 재원조달과 실현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에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서울신문 좌담에서 “개성공단 2000만평 중 1단계로 100만평을 개발하고 있는데 실제 가동 규모는 10만평도 안 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해주경제특구까지 개발하면 힘이 분산된다.”고 말했다. 반면 해주를 함께 개발해야 해주∼개성∼인천을 잇는 삼각지대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전력이나 군사적 요충지 등 현실적 문제를 어느 정도 감안했느냐의 차이다. 참여 정부가 ‘치적 쌓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임기가 2개월 남짓된 정부가 임기 내 감당할 수 없는 합의를 약속한 것은 과욕”이라면서 “전임자(참여정부)가 남발한 어음을 후임자(차기정부)가 결제해야 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공동선언에서 배제된 북핵 문제도 변수이다. 한국 내 보수적인 시각을 차치하고라도 미국은 남북 경협이 북핵 폐기를 지연시키는 역효과를 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공동선언이 나온 다음날인 5일 “미국은 남북 대화를 권장해 왔으나 6자회담의 맥락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남한이 6자회담의 속도에 앞서나가지 말아달라는 우회적 당부이다. ●백두산 관광과 농업·조림사업은 다목적용 백두산 관광 사업은 2005년 한국관광공사와 현대아산,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이 추진하기로 협의한 사항이다.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의 90%가 남한 사람인 점을 감안할 때 남북한 모두에 파급효과가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공항과 도로, 레저숙박시설 등의 건설로 북한에서의 생산유발 효과를 23억달러로 추정했다. 게다가 백두산을 알프스 알펜시아와 같은 4계절 국제레저타운으로 개발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할 경우 중국의 동북공정을 견제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농업협력은 비료공장과 농장조성 등을 위해 4억달러 안팎이 들어가지만 통일비용 절약이라는 측면에서 기대효과가 훨씬 크다. 또한 북한에서의 산림복구 사업의 경우 10만㏊ 조림에 2억달러가 안 되지만 홍수피해 예방에만 연간 70억달러의 효과가 기대된다. 때문에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관광과 농업 이외에 자원개발(단천) 등과 관련한 다양한 특구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30]한·일 남녀 젊은이들의 비슷한 결혼관

    [20&30]한·일 남녀 젊은이들의 비슷한 결혼관

    한국과 일본 20&30의 결혼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일본 결혼정보회사인 오네트는 최근 두 나라의 24∼33세 미혼남녀 500명씩을 대상으로 ‘미혼관’,‘결혼관’,‘생활가치관’ 등 세 영역에 걸쳐 설문조사했다.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슷한 문화적 토양과 끈끈한 가족 중심주의 문화를 지닌 두 나라 젊은이들의 결혼관은 대체로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상적인 남편감과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에서 두 나라 여성들은 눈에 띄게 다른 생각을 드러냈다. 결혼에 대한 한·일 20&30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조건은 무용지물 김용진(32·회사원)씨는 30∼33살이 결혼 적령기라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한다. 빠르면 27살, 늦으면 30살쯤 취직하는 점을 감안하면 3년 정도는 모아야 대출을 받아서 전세라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12월22일 결혼식 날짜를 잡은 김씨는 “어릴 땐 돈 많은 여자가 좋더니 나이가 드니까 말이 통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그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됐죠.”라고 털어놓았다. 취업 준비에 올인하고 있는 김모(27·여)씨가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는 29살. 김씨는 “백수라서 직장을 잡는 일이 우선이다. 한 1년 정도 직장에 적응하고 나서 좋은 짝을 만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도 일이지만 부모님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하려면 축의금도 어느 정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혼 상대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다. 연애와 다를 것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이 좋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사람만 좋고 무능력하면 그것도 좀 문제있을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물론 ‘취직’이 아닌 ‘취집(결혼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것)’을 원하는 친구들은 아직도 여자 팔자는 남자 만나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결혼한 두살 터울인 언니에 대해 김씨는 “주위의 (성격) 좋은 남자들 뿌리치고 펀드매니저란 직업을 보고 형부를 택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임수현(27·대학생)씨는 결혼 상대로 자신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서로 편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결혼은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하고 싶다. 젊었을 때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른 목적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가족’인 것 같다. 평생 혼자 산다면 나중에 공허해지지 않을까.” “집 앞 골목에서 불꺼진 내 방을 보면 정말 들어가기 싫다.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다.”는 황경우(27·대학원)씨는 “결혼의 조건은 무엇보다 생각이 잘 맞아야 한다. 얼굴 예쁜 것은 일년이면 끝”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또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결혼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는 것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성격·경제력·외모 3박자 갖췄으면 이수진(29·여·회사원)씨는 “서른 정도가 적령기가 아닐까 싶다. 좌충우돌할 나이도 지났고 안정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 상대를 고르는 기준으론 성격과 경제력, 외모 순으로 꼽았다. 이씨는 “성격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경제력은 당연한 것이고, 외모는 매력포인트 하나 정도 있어야 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지금 당장 결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때로는 미혼으로 남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씨는 “주위를 둘러보면 이혼율도 높고, 헤어지는 커플을 보면 안 좋은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이럴 땐 차라리 미혼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살짝 귀띔했다. 교사 박경주(26·여)씨는 “남자의 결혼 적령기는 31∼33세, 여자는 26∼28세 정도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남자는 군대 문제로 사회에 늦게 진출하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씨는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으니 평생을 같이 살려면 적절한 지적 수준과 취미가 비슷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주의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결혼도 못했다.’는 눈총을 받아야 하고 사회 제도도 가족 단위로 돼 있어 결혼을 못한 사람을 비정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삶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결혼 꼭 해야 하는 거니? 하인성(27·회사원)씨는 스스로 ‘미혼(未婚)’이 아니라 ‘비혼(非婚)’이라고 소개한다. 하씨는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지만, 만약 생각을 바꿔 혼인을 한다면 마흔살쯤이 적당하지 않을까.”라면서 “마흔쯤 되면 집안이나 배경 같은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고 밝힌 하씨는 “예전에 생각이 다른 사람과 사귈 때, 내 생각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기 때문에 당장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하씨는 “사랑이 꼭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냐.”면서 “일본인 친구가 상대 집안의 조건에 개의치 않고 결혼을 준비하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밝혔다. ●문화적 차이 있어도 배우자 기준 한·일 흡사 가전제품 매장 직원으로 일하는 아야 나카다와(24·여)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사랑없는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자는 일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로맨티스트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결혼을 하거나 애인을 만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랑, 그리고 느낌이다.TV를 같이 보면서 웃을 수 있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지하루 이마오카(27·여·요리사)는 “결혼 상대의 성품이 가장 중요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한 가정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어렵나.”라고 말했다. 그는 “내 직업을 인정해 주고 서로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것 같다. 내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도 좋지만 나를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남편감으로선 더 좋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는 일찍 결혼하고 싶었다던 그는 “지금도 반드시 30살 전에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부마쓰 다카마쓰(23·대학생)는 “남자라면 누구나 가정적인 여성이 아내였으면 하는 생각이 있을 거다. 너무 주장이 강한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면서 “성격이 밝았으면 좋겠다. 무뚝뚝한 여자랑은 단 5분도 이야기하기 지겹다. 늘 웃고 발랄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카야마 료(29·경비업체 직원)는 여성의 능력을 최우선 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생각이 있고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또 자기를 가꾸고 늘 아름다움에 신경 쓰는 여자, 유머 감각도 있다면 더욱 좋다.”고 말했다.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와 같은 여성상보다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미란다 같은 커리어우먼이 아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는 “결혼을 사실 내일이라도 하고 싶다.”면서 “한국과 일본인 사이에 분명 문화적인 차이는 있지만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 등은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치코 다카사시(27·여·회사원)는 30대 중반쯤 결혼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하지만 또래 일본인 친구들은 25살 전에 결혼하고 싶어했다고 미치코는 귀띔했다. 결혼 상대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히 돈”이라고 말했다.“돈이 없다면 자식들을 교육시키기도 어렵고 자식의 미래에도 좋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일본도 한국에서처럼 교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 압박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 韓 “돈 많은 남자가” 日 “따뜻한 남자가” 한·일 두 나라의 미혼 남녀들은 배우자에게 어떤 것들을 원할까. 한국 여성은 경제적 능력을 갖춘 남성을 배우자로 가장 선호하는 데 비해 일본 여성은 따뜻한 성격과 애정을 가진 남성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 여성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일본 여성보다 훨씬 까다로우며 능력·성격·가족관계 등 여러 요소를 두루 갖춘 배우자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일본의 오네트가 최근 한국과 일본의 미혼남녀 1000명(남·여 500명씩)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결혼 상대 선택시 고려하는 요인(복수응답)으로 한국 여성은 ‘능력’과 ‘장래성’(각각 99.6%)을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데 비해 일본 여성은 ‘성격’과 ‘애정’(각각 98.8%)을 선택했다. 이어 한국 여성은 ▲성격·애정(각각 99.2%)▲수입(99.1%) 등을 든 반면, 일본 여성은 ▲가치관(94.2%)▲건강(92.6%)▲가사능력(90.9%) 등을 꼽았다.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에 비해 배우자의 경제력을 중요시하는 셈이다. 특히 한국 여성은 건강(98.8%), 가족관계(98.4%), 자신의 일에 대한 이해(96.3%), 가사능력(95.9%), 가치관(95,5%) 등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가 극단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일본 여성들은 종교 등 일부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 모두에서 한국 여성들보다 기대치가 낮았다. 특히 배우자 직업에 대해 한국 여성 중 93.0%가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일본 여성은 67.4%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 여성들이 가치를 두는 학력(79.0%)과 키(68.7%) 또한 일본 여성(41.3%,28.1%)들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본 여성들이 경제력이 다소 떨어져도 따뜻하고 자상한 성격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는 데 비해 한국 여성들은 능력에 외모, 성격까지 겸비한 ‘완벽남’을 원하고 있는 셈이다. 남성은 두 나라가 비슷한 성향을 나타냈다. 한국 남성들의 경우 배우자 선택의 요인으로 ‘애정’(97.6%)과 ‘성격’(97.1%)을, 일본 남성은 ‘성격’(97.0%)과 ‘애정’(96.2%)을 꼽았다. 이어 한국 남성은 ▲자신의 일에 대한 이해(95.1%)▲건강(94.7%) ▲가치관(92.3%) 등을 들었다. 일본 남성은 ▲가사능력(84.4%)▲자신의 일에 대한 이해(84.0%)▲외모(84.4%) 등을 꼽아 두 나라 남성들은 대체로 가정생활을 원만히 이끌어갈 수 있는 배우자 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듀오 측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경기 불황이 장기간 이어진 데다 여성들의 취업도 어려워 경제적인 어려움을 배우자를 통해 극복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은 최근 경기 호황기에 접어들다 보니 ‘굳이 남자에게 경제력을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김위원장은 ‘우뇌 파일型’

    무뚝뚝한 표정(2일)→웃음 띤 환담.(3일) “반갑습니다.”(2일, 공식 환영식장)→“환자도 아닌데….”(3일, 회담석상)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법과 표정이다. 김 위원장은 3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전날에 비해 훨씬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에게 회담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이번 회담의 협상 전략적인 측면에서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김성형 한국 협상아카데미 대표는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 철저하게 전략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직관적인 성격이지만, 이틀간의 행동 추이로 볼 때 고도의 전략가적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김 대표는 “공산권 국가일수록 상대 파트너가 느끼기에 협상 과정을 힘들게 하고 극적인 타결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고 말했다. 거기에다 김 위원장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사람인 데다 ‘황제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때문에 김 대표는 이번 협상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담을 둘러싼 전반적인 정세도 북측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측면이 많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고도의 전략가적 기질에 주변 상황까지 곁들여져 회담을 쥐락펴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이 같은 예상은 김 위원장의 협상가적 기질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김 위원장은 전형적인 ‘우뇌 파일’ 유형”이라고 말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일수록 언변이 화려하고 움직임이 크다고 한다. 또한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이 밝고 상대방의 반응에 민감한 편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놀래주는 경향이 있는 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을 영접할 때, 앞쪽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는 데도 한 자리에 계속 서있는다든가, 말을 아끼는 등 비교적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은 다분히 계산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 지향적인 경우가 많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틀 동안의 행동에 비춰볼 때 일단 협상에 들어가면 본래 모습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그만큼 심리전에도 능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본인의 직관적인 능력을 가장 신뢰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우뇌 파일’유형에 대해 “룰을 잘 깬다.”고도 했다. 격식이나 형식논리가 있는 협상장이라 하더라도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번 회담 일정을 하루 더 연기하자고 즉석 제안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결과를 중시하고 감성적인 편이라, 큰 그림을 구상할 때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비해 논리적이라 구체적인 협상에 임할수록 의견이 어긋날 가능성도 많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03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살펴보고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가능성도 분석해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한 이유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본다.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과 북측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 정리한다.   ●그대의 풍경(KBS1 오전 7시50분) 종구의 귀환으로 안채와 하숙집은 모처럼 환한 웃음꽃이 핀다. 종구는 즐겁게 일을 하는 수련의 모습을 보고 가슴 한쪽이 뿌듯해진다. 모란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돌아왔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주리는 그런 모란을 보며 섭섭해한다. 윤주는 동혁의 첫사랑이 수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다큐 여자(EBS 오후 7시45분) 23세의 기테씨는 얼마 전 다시 한국에 왔다.2년 전 처음 교환학생으로 1년 남짓 지냈던 한국생활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한국어는 물론 한국문학을 공부해 번역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함께 갖고 왔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거운 파란 눈의 독일 아가씨, 기테씨의 좌충우돌 서울생활이 시작됐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지난 6월, 건강했던 20대 현역 육군하사가 치질 수술을 받은 뒤 마취 부작용으로 이틀만에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무릎수술을 받다가 뇌사상태에 빠지고, 심지어는 관장을 하다가 목숨까지 잃는 의료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의료분쟁의 실상과 가족들의 고통을 취재하고, 분쟁 조정의 대안을 모색해본다.   ●사육신(KBS2 오후 9시55분) 수양대군은 정인지를 시켜 단종 임금의 거짓 교서를 만들게 한다. 계유정난이 단종의 뜻을 받들어 실행한 것으로 정당화하겠다는 음모이다. 수양대군은 이 교서를 공표한 뒤 안평대군을 귀양보낸다. 한편, 성삼문을 걱정하던 정소연은 되레 그가 3등공신에 봉해진 것을 보고 변절자라 오해한 나머지 실망한다.   ●태왕사신기(MBC 오후 9시55분) 기하는 호개에게 홍옥 목걸이를 내밀고는 자신이 주작의 주인일 리가 없다며 자신을 담덕에게 보내달라고 한다. 사량은 주무치를 찾아가 연가려 집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해달라고 하고, 현고는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대장로는 기하에게 태자 담덕은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 美 손잡은 이명박, 대세론 굳히기

    美 손잡은 이명박, 대세론 굳히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김지훈기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간의 면담 주선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담당 차관보는 “공화당 중진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이 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야당 후보를 만나는 것이 국내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작지 않아 보인다. 강 차관보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면담이 한국 대선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는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여권 후보가 결정되면 면담할 가능성도 있느냐는 질문에 “해당 후보측에서 교섭할 사안”이라며 “내가 다시 나서서 할 생각은 없다.”고 못박아 말했다. 주선자 가운데 한 사람인 리처드 손버그 전 법무장관은 지난 12일 부시 대통령에게 이 후보와의 면담을 권유하는 서한에서 “한나라당은 한국의 현 정부처럼 반미적인 요소가 없다.”면서 “대북 정책도 핵 문제 해결을 우선하고 있다.”고 기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공화당 진영에서는 한국의 현 정권보다 한나라당을 선호함을 보여준다. 또 부시 대통령은 지난 24일 강 차관보 등 주선자들에게 보낸 답신에서 “한·미간의 전통적 우호관계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알고 면담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백악관은 이 후보에게 “당선되면 국빈으로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이 후보가 낙선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백악관은 노 대통령의 방문 수준을 국빈방문이 아니라 실무방문으로 낮췄다고 이 소식통은 말했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간의 면담은 한국 대선과정에서 또 다른 친미·반미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측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이 후보측이 부시 대통령과 사돈이 될 존 헤이거 전 버지니아 주 공화당 의장에게도 면담 주선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헤이거 전 주지사의 아들 헨리는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 제나와 결혼할 예정이다. 이번 면담 주선자인 손버그 전 장관은 이 후보 캠프의 유종하 전 외무부장관과 가깝다. 손버그 전 장관이 유엔 사무부총장을 지낼 때 유 전 장관이 유엔대사를 지냈다. 또 일레인 차오 노동부장관의 경우 여성국을 담당하는 한국계 전신애 차관보가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면담에 대해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미국에서 이명박 후보 위상을 인정한 것이며 차기정부까지 내다본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은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공식면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dawn@seoul.co.kr
  • “마오쩌둥과 똑같이 생겼네” 中서 화제

    중국 인민의 영원한 지도자가 환생했다? 최근 중국에서 현재까지도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마오쩌둥(毛泽东) 전 주석과 똑같이 닮은 사람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푸젠(福建)성에 사는 55세의 천진취안(陈锦全)씨는 젊은시절부터 마오쩌둥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80년 초 당시 유행하던 인민복을 입고 거리를 지나던 천씨는 처음으로 마오쩌둥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목수 일을 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거리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마오 주석과 정말 닮았다.”며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심지어 함께 기념촬영을 하자고 부탁 받기도 했다. 1999년 천씨는 친구의 권유로 CCTV가 주최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50주년 특집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모택동 역을 맡기위해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당시 천씨는 500여장의 사진을 찍어 방송국으로 보냈고 CCTV는 마오쩌둥 역에 지원한 수많은 사람 중 연기력보다는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인 그를 선발했으나 결국 출연에는 실패했다. 키가 190cm에 달했던 마오쩌둥을 연기하기에는 165cm인 그가 너무 작았던 것. CCTV 또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천씨는 “마오쩌둥과 외모가 많이 닮았기 때문에 평소에도 그의 영화나 서적들을 보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이미 수백 권의 관련서적을 소장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대선주자 25시]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

    [대선주자 25시]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

    1위를 차지한 후보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고개를 떨구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다.“충북 경선 1위 정동영!” 사회자가 외치는 순간 지지자들의 함성이 터졌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의 초반 4연전 승리 확정이다. 그러나 정작 정 후보는 웃질 않는다. 웃을 수가 없다.5년 전 구 민주당 시절 경선 당시가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16전 15패. 참담했다. 전국 16개 권역을 돌며 벌어진 대선후보 경선에서 꼴찌를 밥먹듯했다. 충남 경선에선 39표, 강원 경선에선 78표를 받았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 수준의 득표다.“충남 경선에서 39표를 받은 뒤 겉으로는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죠.”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린다. 아프고 또 민망하다. 자존심이 상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텼다.“제 개인 등수보다는 국민경선을 완성하겠다는 의무감이었습니다. 고통이 극심했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거죠.”정 후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5년 전 경험을 담금질 삼았다. 절치부심, 오히려 약이 됐다. “권투선수로 치면 16라운드 뛰면서 15라운드 KO패를 당한 셈이죠. 그 한숨과 헌신이 이제 보상과 격려로 돌아오는 듯합니다.”정 후보가 살짝 웃음을 보인다. 현재 분위기는 뚜렷한 상승세다.15일 제주·울산,16일 충북 경선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19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손학규 후보를 제치고 범여권 1위로 나섰다. 손 후보가 범여권에 합류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때 정 후보와 손 후보의 지지율 차는 배 이상이었다. 소위 ‘손학규 대세론’이 뒤집어졌다. 캠프 분위기는 한껏 고무됐다. 여기저기서 싱글벙글이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손 후보가 여론조사를 경선에 포함시키려 애를 썼지만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현재 추세로만 보면 가능한 얘기다. 실제 19일 손 후보 캠프에는 비상이 걸렸다.“불퇴전의 각오로 국민 없는 국민동원경선에 투쟁하겠다.”고 배수진까지 쳤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오히려 정 후보 본인은 덤덤하다. 표정 변화가 없다.“꾸준히 의리와 신의로 제 자리를 지켜 온 걸 국민이 알아준 결과겠죠.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5년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위해 꾸준히 주어진 일을 다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일했고 마지막 대통합을 위해서도 몸을 던졌습니다.”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둘러싼 ‘배신론’에 대한 해명이다. 그는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계승하고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지지율이 낮아도 정면돌파를 해왔습니다. 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정 후보는 1년 가까이 3%대 이하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기록했다.2선 후퇴 압박도 있었다. 그러나 미련스레 범여권 적통성을 강조해 왔다. 그 전략이 지금 먹혀들기 시작했다. 이미 정 후보 캠프는 경선 이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일대 결전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다. 정기남 공보실장은 “여론조사 결과는 손 후보에게 이긴 것보다 이명박 후보와의 본격적 싸움이 시작된 것에 더 큰 의미를 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 후보 본인도 본선대결에 자신감을 보였다.“정동영이 만들려는 세상이 경쟁력입니다. 이 후보와 전혀 다릅니다. 정동영의 성장은 차별없는 성장이지만 이명박의 성장은 눈물도 없는 성장, 불도저 성장입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격이 거침 없다.“돈 봉투 주고 공사 따내는 건 시장경제가 아닙니다. 이명박 후보는 태아가 불구면 낙태해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경악할 만한 얘기 아닙니까.”눈이 번쩍인다. 정 후보가 흥분했다.“노조는 막노동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요?매년 45만명이 임신중절만 안하면 저출산 문제 해결된다고요?이게 한나라당 이 후보의 수준입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허상이라고 단언했다.“경제를 잘할 것 같다는 착각에 기초한 겁니다. 미래경제·평화경제 시대에 땅과 운하파기만 머릿속에 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또 덧붙인다.“요즘 택시기사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찍을 후보가 없어서 이명박을 지지하지만 문제가 많은 사람인 건 다들 동의한다더라고요.”뭔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이다.“이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19일 정 후보는 오전 광주, 오후 전주 그리고 또 서울을 오갔다. 눈은 충혈되고 피부는 까칠해졌다. 그러나 생기가 펄펄 넘친다. 주위 참모들은 건강이 걱정이라고 했다.“그런데 후보가 당최 말을 안 듣습니다. 스케줄을 줄여보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자신이 뛰고 또 뜁니다. 대단합니다.”대통합민주신당 경선 레이스는 앞으로 한달정도 남았다. 그러나 대선은 아직 90일 남짓이다.12월19일을 바라보고 던진 말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여성 격투가 임수정 “제가 미녀라구요?”

    “미녀 파이터요? 저 예쁜 얼굴 아니에요” 한국 여성 이종격투기의 간판스타 임수정(22.삼산 이글). ‘미녀 파이터’, ‘파이팅 뷰티’ 등 항상 외모에 대한 수식어가 붙는 그녀이지만 사실 지난해 대한무에타이협회 벤텀급과 이종격투기 네오파이트 -52kg급 챔프에 오른 여성 입식 격투기의 최강자다. 최근 ‘2007 빅토리아 챔피온십 왕중왕전’ 1회전에서 강력한 하이킥으로 상대 선수를 실신시켜 여성 격투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임수정 선수를 지난 13일 소속 체육관에서 만났다. ▲ 처음 격투기를 시작한 계기 저희 집이 체육관에서 가깝거든요. 고3때 버스타고 지나가는데 간판이 보이길래 ‘한번 해볼까?’하다가 시작했어요. 다이어트 좀 해볼까 하고. 프로가 된 것도 정말 우연히, 관장님이 시합 한번 나가보래서 시작했어요. 나가보니까 재밌었고, 그렇게 계속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죠. ▲ 여성 격투기 선수로서 힘든 점 대회가 많이 없어요.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선수는 결국 링에 서야 되는데, 그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그게 가장 힘들죠. 그래도 요즘에는 좋아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남성 대회에 이벤트 경기로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여성 대회도 많아졌어요. ▲ 경기에 나서는 것이 두려울 때 훈련이 너무 힘드니까 오히려 경기 나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요. 때리고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링에서는 맞아도 ‘아프다’하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 밀린다. 어떻게 풀어야하지?’라고 고민해야 되니까. 팬들이 ‘실신 KO’ 경기로 기억해 주시는 빅토리아 대회에서 상대 박민정 선수가 못일어날 때, 그때는 무서웠어요.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 (쓰러져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 주변 사람들의 시선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요. 평소에는 평범한 학생. 가끔 어른들 중에 ‘왜 그렇게 힘든 운동을 하냐’며 놀라시는 분도 있기는 하죠. 남자친구요? 그건 비밀. 학교 다니면서 운동하니까 제 개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좋아하는 남성상은 요리 잘하는 사람이요. 저는 운동하고 남자친구가 보양식 만들어주고.(웃음) 농담이구요, 저도 요리 좋아하니까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 ‘미녀 파이터’라는 수식어 미녀? 대체 어딜봐서요? 처음에는 제발 이말 좀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어요. ‘파이터’까지는 좋은데 앞에 ‘미녀’가 붙으니까 부담스러웠죠. 이제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게 불러주신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제가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 ▲ 임수정 팬클럽 얼마 전에 생겼어요.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 (팬들이) 만들어 주셨어요. 너무 고맙죠.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은 사람인데 응원해 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 글/영상=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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