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람인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대주주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미래전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증가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중계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79
  • 연평도 해상 ‘스티로폼 표류’ 北주민 구조…탈북 여부, 귀순 의사 등 조사

    연평도 해상 ‘스티로폼 표류’ 北주민 구조…탈북 여부, 귀순 의사 등 조사

    최근 서해상으로 북한 주민 3명이 귀순한 데 이어 연평도에서도 북한 주민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구조됐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0분쯤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북한 주민 A(27)씨가 스티로폼을 잡고 표류하는 것을 군 관측병이 발견했다. 때마침 이 해역을 지나던 어선이 A씨를 발견하고 약 5분 만인 오전 7시 15분쯤 A씨를 구조했다. 어선 선장 이모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어구를 설치하러 배를 몰고 가는데 사람이 스티로폼을 잡고 표류하고 있어 끌어올렸다”고 구조 경위를 전했다. 이씨는 “북에서 왔느냐고 묻자 말을 안 했다”면서 “나중에 몇 마디 할 때 북한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북한 사람인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선장은 연평도로 귀항해 군 당국에 A씨 신병을 인계했다. 보안당국은 A씨가 스스로 탈북했는지, 해양조난사고를 당한 것인지를 조사하며 귀순 의사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북한 주민 3명이 어선을 타고 인천 해역을 지나다가 해양경찰에 발견됐다. 평안북도에서 출발한 북한 주민들은 당시 곧바로 귀순 의사를 밝혔고,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로 송치돼 귀순 경로 등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 수년간 서해에서는 북한 주민의 귀순이 이어져 왔다. 2011년 2월 북한 주민 31명이 어선을 타고 연평도 해상으로 남하했다가 이 중 4명이 귀순하고 27명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또 같은 해 11월에도 북한 주민 21명이 목선을 타고 남하해 전원 귀순했다. 2014년 8월에는 북한 주민 2명이 강화군 교동도로 헤엄쳐 넘어와 귀순했고, 지난해 10월에도 북한 주민 1명이 비슷한 방식으로 교동도로 와 귀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동참하지 않는 자 시민이 아니다

    [고전으로 여는 아침] 동참하지 않는 자 시민이 아니다

    그리스의 7현인 가운데 한 사람인 솔론(BC 630?~560?)은 아테네의 탁월한 입법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귀족과 평민들이 서로 다툴 때 양측이 서로 인정하고 양보할 수 있는 입법을 위해 고심했다. 플루타르코스(46~120?)의 ‘영웅전’이 이를 잘 전해 준다. 솔론은 빚에 쪼들리던 민중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토지를 제외한 모든 채무를 탕감해 주고, 채무로 인신이 저당 잡혀 있던 동포들을 외국에서 데려오고 국내에서 종살이하던 이들도 해방시켰다. 그럼에도 솔론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부자들은 채권을 빼앗긴 것에 불만이었고, 빈자들은 토지를 재분배해 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지나친 격차와 불평등을 크게 완화시켰다. 나아가 그동안 귀족이 독차지하던 정부의 다양한 기구에 대중의 참여 기회를 넓혔다. 시민들을 재산의 보유 정도에 따라 네 계층으로 나누고 계층에 걸맞은 참여 권리를 주었다. 재산이 없는 날품팔이들인 최하층 테테스에게도 민회의 배심원이 될 자격을 부여했다. 솔론의 조치들은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다졌다고 평가받을 만큼 획기적이었다. 솔론이 꿈꾸던 세상은 모든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 서로 불의를 견제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사회였다. 그는 피해 입은 사람을 위해 시민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입법했다. 그로 인해 어떤 시민이든 해를 당하는 타인을 위해 가해자를 고발하고 소추할 수 있었다. 오늘날 검찰의 기소 독점과 다르다. 이는 시민들이 남의 불행을 공감하고 동정하는 데 익숙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조치였다. 누군가 솔론에게 어떤 도시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냐고 묻자 그는 “불의를 당한 자들 못지않게 불의를 당하지 않은 자들도 불의를 저지른 자들을 벌주려고 나서는 도시”라고 대답했다. 솔론은 시민들이 사적 이해에 묻혀 소극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규범과 이익을 위해 용기 있게 나설 것을 권장했던 셈이다. 이런 솔론의 희구를 극명하게 드러낸 아주 역설적인 법도 만들었다. “당파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 자의 공민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특정 현안에 대해 분열과 갈등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은 어느 편에든 가담해야 한다니 이 무슨 괴이한 법인가. 솔론은 시민들이 사적 이익과 안전만 도모하지 말고 더 낫고 더 정의로운 편에 가담해 위험을 공유하며 조국의 고통과 혼란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나서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는 시민들이 치열한 논쟁과 대립을 하며 정의롭고 합리적인 대안이 어느 정도 도출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리라. ‘목소리 큰 소수’의 특수 이해관계에 국가의 정책이 휘둘려도 국민들이 ‘침묵하는 다수’로 머물 때 공동체의 자유와 평등이 보존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아니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의 성패는 참여에 달렸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결혼 앞둔 우사인 볼트, 여성과 침대 셀카 ‘충격’

    결혼 앞둔 우사인 볼트, 여성과 침대 셀카 ‘충격’

    3회 연속 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세계적인 육상 스타 우사인 볼트가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시간을 보낸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볼트가 리우의 20살 여학생과 한 침대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자이 두아르테는 최근 자신의 스냅챗에 볼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볼트는 두아르테와 침대에 누워 밝게 웃고 있으며, 심지어 진한 애정표현을 나누고 있어 눈길을 끈다. 두아르테는 ‘이 남자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고, 자연스레 만나 서로를 느꼈을 뿐’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된 점은 볼트가 최근 결혼을 발표했단 것. 여자친구는 자메이카 국적의 모델 케이시 베넷(26)이다. 볼트는 지난 2년간 비밀연애를 해오다 올해 초 여자친구의 존재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베넷의 사진을 올리며 ‘영부인’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슈人] ‘늘푸른한국당’ 창당추진위 이재오 공동위원장

    [이슈人] ‘늘푸른한국당’ 창당추진위 이재오 공동위원장

    이재오 전 의원은 지난 4·13 총선에서 낙천한 뒤 5월부터 석 달간 전국 40개 도시를 세 바퀴 돌았다고 했다. 대표 도시를 120차례 찾아 듣게 된 민심을,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했다.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실용주의 신당 창당 준비에 더욱 힘을 얻게 됐다”고 했다. 그는 최병국 전 의원과 함께 ‘늘푸른한국당’ 창당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 변호사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재오 위원장은 “부패하고 무능한 보수의 주류를 교체하는 대안 세력이 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집권당으로서 지력(地力)을 다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수확이 안 된다. 서둘러 객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잠룡’ 2선 후보들이 가능성 높아 늘푸른한국당의 1차적 목표는 내년 대통령 선거 국면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년 1월 창당 때 우리 당 대선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선판을 일찍 조성하겠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절대로 이대로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크게 요동치는 파란만장한 정치판이 벌어질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어떤 요소로 인해 요동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각 당에 드러난 후보 중 누가 된들 그 당의 자력으로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지금의 대권 주자들에 대해 ‘저 사람에게 나라를 맡겨도 되겠느냐’는 확신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유력 주자들보다는 차라리 ‘잠룡’으로 꼽히는 2선 후보들이 최종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민심의 축은 내년 설 이전부터 이동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과거처럼 총선을 앞두고 ‘이삭 줍기’ 하러 만드는 정당이 아니다. 이대로는 정권 창출이 어렵다고 느끼는 국면이 올 텐데, 정당에 현역이 있느냐 없느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전국에 조직력이 탄탄하고, 좋은 후보만 있으면 우리가 유리해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년 4월 재·보선에서도 주요지역에 후보를 내보내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겠다고 했다. ●난 공직 안 나가… MB사람 전면 안 세워 이 위원장은 창당 과정에서 네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이재오는 이 당을 통해 공직에 나가지 않는다. 둘째, 이명박(MB) 정권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는다. 셋째, 명망가 중심의 당을 만들지 않는다. 넷째, 정치자금은 창당준비위원 1000명을 모아서 한 사람이 100만원씩 낸다”는 것이다. 그는 “MB 사단에서 한 사람 끌어들이지 않고도 전국 정당을 만들 조직력이 있다”면서 “새누리당이 지금은 코웃음 치겠지만 신당의 위력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두 달여 만에 전국에서 200여명이 동참해 100만원씩 보탰다고 한다. 중앙당에 200명 이상, 최소 5개의 시·도당에 100명 이상의 발기인이 있어야 하는 창당준비위원회 요건은 일찌감치 충족시켰으며 그중 부산·경남(PK)과 울산, 인천, 충남 등에서 세가 가장 활발하다고 한다. 새달 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갖는다. 늘푸른한국당이 내놓을 후보에 대해서는 “왜 염두에 둔 사람이 없겠느냐. 한두 명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다. “어떤 사람인지 언질만 줘도 우리 당은 어려워진다. 특정 인물을 후보로 만들려고 창당한다고 언론에 한 줄만 나와도 당을 못 만든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정책 목표에 대해서는 “누구나 필요성은 느끼는데도, 기성정당은 절대로 내놓지 못하는 그런 공약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선거를 폐지하는 행정구역 개편이 대표적이다. 전국을 인구 100만명 단위로 50개의 광역단체로 나누어 기초자치단체는 폐지하고, 국회의원 숫자도 각 광역시에 4명씩, 총 200명으로 줄이고 지방분권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정치, 행정비율을 줄이고 초·중·고교 아이들의 교육비와 의료비로 지원하겠다”면서 “이 밖에 동반 성장, 남북 자유왕래 등 기존 정당에서 하지 못했던 핵심적인 정책 몇 가지만 내놓으면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국회 의원수 줄이고 지방분권 강화 그는 개헌 국면의 도래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신했다.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 한사람이 5년간 나라를 이끌어 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사람이 대통령이 된들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서 “이대로 가면 나라의 길이 없다. 틀을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당명 공모에는 ‘희망, 미래, 통합, 국민’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시대정신’이 반영된 현상이긴 했으나, 이런 단어를 이름에 가진 정당이 지속되지 못하고 모두 소멸돼 채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실이 드러낸 하나의 역설이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칠 줄 아는 여자

    칠 줄 아는 여자

    “사실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가 가장 걱정인 대회였습니다. 전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골프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19일(이하 한국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골프 여자부 2라운드를 마치고 올림픽골프코스 믹스트존에 들어서면서 활짝 웃었다. 1, 2라운드 합계 10언더파 단독 선두로 반환점을 돈 박인비는 “이 샷 감각을 마지막 날까지 이어 가고 싶다”며 금메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박인비는 “티샷 실수가 어제보다 두 번 정도 더 나와서 위기가 있었지만 운 좋게도 두 번 다 버디를 했다”면서 “많은 기대를 안 하고 나왔는데 운 좋게 성적이 좋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선수가 1라운드에서는 조금 당황했지만 2라운드에서는 분위기에 적응한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면서 “이곳은 오후에 바람이 많이 분다고 했는데 이틀 연속 날이 좋았다”고 흡족하게 말했다. 일부 외신의 올림픽 이후 은퇴설에 대해서는 “아직 은퇴 계획이 없다.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는 프로 10년차인 올해 올림픽까지 열려서 좋다”며 “내 골프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도록 남은 라운드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인비는 이날 밤 시작한 3라운드에서는 스테이시 루이스(31·미국), 찰리 헐(20·영국)과 가장 마지막 조에서 티오프를 했다. 박인비는 이들에 대해 “경기해 본 선수라 특별히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골프는 개인 종목이다. 자기 경기에 충실한 선수가 결국 우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최자♥설리, 일본서 데이트 포착 ‘꿀 떨어지는 애정행각’

    최자♥설리, 일본서 데이트 포착 ‘꿀 떨어지는 애정행각’

    최자와 설리가 일본에서도 당당한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19일 더팩트의 보도에 따르면, 최자와 설리가 전날 도쿄 이이다바시와 구단시타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두 사람인 만큼 일본에서도 자유분방한 데이트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편안한 차림으로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걷듯 자연스럽게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자와 설리는 지난 2014년 8월 열애를 공식 인정한 후 데이트 인증샷을 올리며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최자는 자신이 속한 그룹 ‘다이나믹듀오’ 단독 콘서트를 지난 6일 성황리에 마쳤으며, 설리는 영화 ‘리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함부로 애틋하게’ 수지, 김우빈에 “나도 보고 싶었어” 직진 사랑

    ‘함부로 애틋하게’ 수지, 김우빈에 “나도 보고 싶었어” 직진 사랑

    ‘함부로 애틋하게’ 수지가 김우빈의 외면에도 아랑곳 않는 ‘직진 사랑녀’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17일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김우빈(신준영)이 수지(노을)를 외면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남은 생을 노을 아버지 노장수의 뺑소니 사고 진실을 밝히는 데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온 신준영은 노을과 마주치자 바로 돌아서려고 했다. 노을은 그런 신준영의 손을 붙잡고 “난 안 믿어. 네가 나를 피하는 게, 사람들은 너한테까지 똥물 튀길까 봐 겁나서 그러는 거라는데 나는 안 믿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다 아는데”라며 신준영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 보였다. 이에 신준영은 “니가 날 어떻게 알아?”라며 까칠하게 대했지만 노을은 “니가 무슨 생각하는 지 알아. ‘을아, 너무 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이어 “나도 보고 싶었어, 신준영. 이게 네 생각에 대한 내 대답이야. 우리 좀 있다 보자.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보고, 매일 미친듯이 보자”라며 신준영을 향한 사랑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 이후 신준영이 자신의 방까지 따라 들어온 노을의 침대에 눕히고는 “나하고 자고 싶니? 자고 싶은 거 아니면 지금 말해. 문 열어줄게”라고 말하며 노을의 옷 지퍼를 조금씩 내려 설레는 장면을 연출했다.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트레이닝복 입고 비니 쓴 여자가 이렇게 예쁠 줄이야”, “을이가 이렇게 나와주니까 너무 좋다”, “준영이랑 노을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등 댓글들을 달았다. 한편, KBS2 ‘함부로 애틋하게’는 매주 수, 목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新전원일기] 슈퍼컴 만지던 공학도 시골 친환경 멘토되다

    [新전원일기] 슈퍼컴 만지던 공학도 시골 친환경 멘토되다

    연일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하며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열기를 더하는 차량 행렬, 바스러질 것 같은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비 한 방울, 바람 한 점 없는 들이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서울을 뒤로하고 세 시간 반을 달려 강원도 미시령을 넘었다. 맑은 하늘 아래 초록이 우거진 국도변의 수량 풍부한 강줄기들을 따라 달리다 만난 울산바위의 웅장함에 더위를 잊는다. 속초시 외곽을 돌아 대포항을 지나쳐, 물치항 앞에서 우회전해 천변을 따라 1㎞ 남짓 들어가니 강선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휴가철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그곳에 친환경 과수 농장이 있다 하여 찾아가는 길이었다. 양양군 친환경연구회 이경수(64) 회장이 운영하는 농장 ‘솔랜드 패밀리’는 시원스레 뻗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 풍채 좋은 소나무가 많아서 ‘솔랜드’라고 이름 붙였다는 농장의 입구로 들어서니 피톤치드 향이 물씬 풍겨 나온다. 실내 마감재로 쓰인 편백나무향이란다. 2008년에 이곳으로 내려와 지은 집이라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에 새삼 나무의 생명력을 실감한다. # 환경 연구소장, 양양서 인생의 2막 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양양군에 터를 잡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 회장은 고향인 서울을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전기공학을 전공해 슈퍼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전국 환경측정 전산망을 구축한 것이 인연이 돼 환경신기술개발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환경 연구와 더불어 국내산 측정 기구 및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연구에는 꽤 진척이 있었는데, 정기 성과 보고 논문에서 자기 표절 문제가 발생했어요. 저는 아니고 다른 분이 예전에 발표한 내용을 인용한 건데, 다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각주를 일일이 달지 못했던 거죠. 그때까지 쓴 연구비를 전액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지요.” 이미 사용한 연구비의 반환도 큰일이었지만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대표인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정리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일뿐만 아니라 그때까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정리 역시 필요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서울 근교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마침 사회복지사이자 인체교정사(카이로프락터)로 오래 일해 온 아내 김영선(60)씨와 함께 봉사 활동을 다니며 알게 된 인연으로 양양군에 사 둔 야산이 있었다. 2000여평의 동산으로,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못 갈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처음 집터를 다질 때에는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몇 년씩 봉사 활동을 와서 며칠씩 있다 가곤 했던 터라 다들 잘 아는 사이였는데도, 야산을 깎아 집을 짓는다고 하니까 마을에 피해가 갈 것이라면서 민원을 넣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명색이 환경 관련 일을 하던 사람인데, 주변에 피해 갈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우여곡절 끝에 집을 짓고, 농경용 미니 포크레인으로 직접 화전을 일구듯 주변 땅을 깎고 다져 밭을 일구었다. 평생 아스팔트만 밟고 살아온 터라 본격적인 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내에게 필요한 약초나 심고 텃밭이나 일구자는 심산이었다. # 귀한 친환경 체리와의 우연한 만남 집 뒤의 동산에 오십 그루의 체리 묘목을 심게 된 것도, 조경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에서 집집마다 무상으로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땅은 있고, 꽃이 피면 보기도 좋다고 해 다른 집보다 좀 많이 가져다 심었다. 이장님의 권유였다. 다른 농가에 비해 이 회장네 체리나무는 유독 잘 자랐다. 연구와 실험이 일상이었던 이 회장이 습관처럼 밤이면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하고, 낮이면 직접 시연해 보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덕분이었다. 거기에 재미를 붙여 1000평의 땅을 따로 떼어 아예 체리 농장을 조성했다. 혼자 하는 공부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지만 주변에는 마땅히 물어볼 만한 곳이 없었다. 재배 농장을 수소문해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신통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일부 농민들은 동일 작물을 하겠다고 하면 자꾸 부정적으로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달리했죠. 농협이나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강연이나 단기 코스의 교육을 통해 먼저 이론을 배웠어요. 강사로 오는 전문가들은 일단 가능성을 가지고 접근하니까요. 안 된다는 판단은 내가 직접 해보고, 나 스스로 내리고 싶었거든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단체로 견학을 가기도 하고 농업을 연구하는, 특히 체리가 전문인 박사 부부를 집으로 초청해 농장을 둘러보게 하고 조언을 듣기도 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차츰 눈을 뜨게 된 거죠. 친환경 농법을 알게 되었을 때 ‘당연히 이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바탕은 엔지니어지만 환경, 특히 오염 분야에 대해 연구를 했던 터라, 저는 거의 처음부터 친환경으로 시작을 했죠.” 현재 국산 체리는 전체 수요량의 7~8%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국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네 곳뿐인데, 강원도에서는 이 회장의 ‘솔랜드 패밀리’가 유일하다. 체리는 묘목을 식재하고 4년째부터 열매가 달리기 시작해 판매로 이어질 만큼의 수확량이 나오려면 5~6년은 기다려야 한다. 1000평 규모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00㎏을 수확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판매로 8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내년부터는 수확량을 1~1.3t으로 늘려 2000만~2500만원의 소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친환경 국산 체리가 워낙 귀하다 보니 이마트 친환경과수팀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전량 수매를 원했지만 이 회장이 적극 참여하고 있는 양양군 친환경 농산물 장터(토요일마다 열리는)에도 내놔야 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찾는 고객들이 있어 전량 다 줄 수는 없었다. # 주변 환경에 맞는 재배법을 연구하다 이 회장은 솔랜드 패밀리를 2000평 규모로 조성해 체리를 제외한 나머지 1000평에는 미니 사과와 감, 자두 등 과수를 심고, 지난해부터는 히카마(얌빈)이라는 열대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감자로도 불리는 히카마는 껍질이 바나나처럼 벗겨지는 뿌리채소로, 달콤하면서 마 맛도 나고, 콩 맛도 나고, 배 맛도 나는 등 사람에 따라 대여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2012년 미국 포춘지가 발표한 세계 20대 ‘슈퍼 푸드’ 중 하나로 고혈압, 당뇨, 변비, 다이어트에 좋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요가 급격히 높아져 일부 농가에서 멕시코와 베트남 남부에서 종자를 가져다 심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이후 농촌진흥청에서 직접 나서서 연구하고 보급했다. 이 회장도 2014년 양양군에서 최초로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의 전문 분야인 연구와 실험이 진가를 발휘했다. 기본적 이론만 배워 와서 주변 환경에 맞는 재배법을 개발한 것이다. 올해는 400평의 땅에서 3t을 수확해 약 2000만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역시 이마트에서 전량 수매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이를 군청의 농업기술센터에 보고하고 주변 농가에 보급하도록 권유했다. 그리고 먼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친환경연구회 회원 중 여섯 농가를 선별해 작목반을 구성하고, 베트남에서 직접 종자를 수입해 무상으로 보급했다. 재배 기술 일체를 전수한 것은 물론이고, 온라인으로도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인터넷 작목반 커뮤니티(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매일 재배일기를 나누고 있다. # 외지인이 정착해 지역사회를 이끌기까지 양양군은 바다를 끼고 있어 전통적으로 어업과 관광업이 발달했다. 농업은 열악했다.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내리며, 산짐승에 의한 농작물 피해도 심해 밭농사나 비닐하우스 재배도 어려웠다. 자연히 농민들의 관심도 부족해 선진농법 개발이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한 지역에서 외지인인 그가 정착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군청 산하의 친환경연구회 회장직까지 맡아 지역 사회를 이끄는 것은 신규 작물을 개발하고 친환경 농법으로 차별화해 기존 농가의 소득에 도움을 주고, 귀농·귀촌인들의 주소득원이 될 수 있도록 지역에 애착을 갖고 먼저 노력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양양군에도 귀농·귀촌 학교가 있습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뒤에 오는 분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 경험을 나누고 있죠. 제가 요약해서 남들 가르치는 일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요.” 분야는 달라도 컴퓨터 기술이나 농업 기술이나 어느 정도 지나면 이후의 과정은 비슷해지는 듯하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체계적 교육 과정을 계속 밟다 보니 기본적인 베이스가 쌓이고, 자신만의 노하우들이 더해져 이제는 거꾸로 가르치는 입장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이자 카이로프락터인 아내 김씨는 몸이 불편한 마을 어르신이 있으면 한밤중에라도 달려 내려가 살펴드린다. 지역 사회에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농장 인근에 올해 귀농해 1대1 멘토를 해 주고 있는 분들의 농막이 있다고 해서 내려가 봤다. 농막의 주인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귀농 준비를 위해 주말 농장을 일구고 있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한국 농촌문제 연구로 이름이 높은 윤석원 중앙대 교수였다. 칼럼집 ‘쌀이 주권이다’의 저자이기도 한 윤 교수는 올봄, 정년을 3년 앞두고 현장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귀농했다. 그런 이가 스스로 초보 농민이라 지칭하는 이 회장의 멘티가 되어 그의 현장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었다. 부인들과 함께 농막에서 토종닭을 삶아 나누고, 텃밭의 수박을 쪼개 나누고, 서로의 친환경 작물들을 품평하며 농담을 주고받고 일상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양양군 농업의 미래, 나아가 한국 농업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뙤약볕이 밭을 건너 설악산 자락을 넘어가며 동쪽 바다로부터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
  • 휴 그랜트, ‘성형 의혹’ 르네 젤위거 몰라봐 “생전 처음 본 사람”

    휴 그랜트, ‘성형 의혹’ 르네 젤위거 몰라봐 “생전 처음 본 사람”

    할리우드 배우 휴 그랜트가 동료 배우 르네 젤위거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휴 그랜트는 최근 미국 토크쇼 ‘Watch What Happens Live’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휴 그랜트는 과거 함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르네 젤위거를 알아보지 못하는 큰 실수를 했다. 이날 휴 그랜트는 함께 연기한 여배우들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토크쇼 측은 그와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 여배우 6명의 사진을 휴 그랜트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사진을 본 휴 그랜트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누구죠? 살면서 처음 보는 사람인데”라고 말했다. 휴 그랜트가 지목한 인물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호흡을 맞춘 르네 젤위거였다. 휴 그랜트는 사회자가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르네 젤위거다”고 말하자 “오! 르네!”라며 놀라워했다. 앞서 르네 젤위거는 201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버리힐즈에서 열린 ‘2014 엘르 위민 인 할리우드 어워즈(2014 Elle Women in Hollywood Awards)’ 행사에서 확 달라진 얼굴로 등장해 성형수술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사진=TOPIC/SPLASH NEWS,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스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지금, 이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

    [지금, 이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있다. 그에 대해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낯선 사람인 나를 존중해 주고 너그럽게 대하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과는 관계없이 나도 기꺼이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할 것이다. 그 젠체하는 명령이 ‘네 이웃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면, 나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김석희 옮김, ‘문명 속의 불만’) 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러는 ‘나’ 또한 타인의 이웃이다. 상대방의 환대를 기대하려면 이웃으로서 ‘나’는 먼저 살갑게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공포 스릴러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러한 명제들을 둘러싼 독특한 의문을 제기한다. ‘오싹한·기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영화 ‘크리피’(creepy)에서다. 한적한 동네로 이사 온 다카쿠라(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야스코(다케우치 유코) 부부는 이웃집에 인사차 들른다. 그런데 옆집에 사는 니시노(가가와 데루유키)는 왠지 모를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위화감을 느낀 부부는 그와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나 생활 공간이 겹치는 한 그들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얽힐 수밖에 없다. 안온하던 ‘나’의 일상은 이웃의 등장으로 깨진다. 다카쿠라와 야스코 부부만이 아니다. 니시노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구로사와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범인이 가장 가까이 있는 옆집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언급했을 뿐이다. 구로사와는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한 함의를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니시노가 범죄자·악인이라는 사실은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한 설정을 가진 작품은 이미 많이 있다. ‘크리피’는 ‘이웃은 괴물’이라는 테제를 재확인하는 데만 그치지 않아서 흥미로운 영화다. 구로사와는 이렇게 되묻는 것 같다. ‘누군가의 이웃으로서 실은 나도 괴물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웃의 방문을 니시노는 극도로 경계한다.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크리피’는 다카쿠라·야스코 부부가 서로가 서로에게 생소한 이웃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 집에 살아도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 아니다. 이들은 “네 이웃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프로이트의 등가교환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 허나 그것으로는 이웃 간의 빈틈을 완전히 메우지 못한다. 그 지점을 또 다른 이웃 니시노가 파고든다. 공백의 자리에서 세 사람은 쾌락을 향유하며 몰락해 간다. 이것이 구로사와가 그리는 진짜 이웃의 공포다. 18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아빠본색’ 이창훈 아내 “악플, 처음엔 웃으면서 봤는데 계속 보니까..”

    ‘아빠본색’ 이창훈 아내 “악플, 처음엔 웃으면서 봤는데 계속 보니까..”

    배우 이창훈의 아내가 악플을 처음 접한 심경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10일 방송된 채널A ‘아빠본색’에서는 캠핑을 떠난 이창훈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아내와 저녁 식사 후 이야기를 나누던 이창훈은 “첫방송 이후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왜 혼자 일 하느냐’고 말하더라”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에 이창훈 아내는 “‘부부 상담 받아라’, ‘아내가 철없다’라는 악플이 달렸다”며 “처음에는 웃으면서 봤는데 악플을 계속 보니까 내가 나쁜 사람인 것 같더라”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 이창훈 아내는 “아침에 기분이 안 좋긴 하다. 밤에 잠을 못자니까. (딸의 분리불안증 때문에) 효주 곁에서 잠을 자는데, 잠귀가 밝아 조금만 뒤척여도 깬다. 몸이 힘들고 아침에 그래서 예민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자기한테 예민하고 차갑게 대했다. 방송 보니까 알겠더라”며 “평소에 자기가 왜 그렇게 차갑냐고 하면서 싸우지 않았냐. 그게 뭔지 몰랐는데 (방송과 주변 반응을 보고) 조금씩 알게 됐다.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이창훈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첫 방송 나가고 아내가 밤에 많이 울었다”며 “악성 댓글을 보고 많이 힘들어 했다. 아내가 울먹이면서 내가 자기한테 그렇게 못하냐고 하더라. 그래서 조금 차가운 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내가 그런가봐’ 그러더라. ‘내가 그랬던 것 같다’고 하더라. 저는 그게 너무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사진=채널A ‘아빠본색’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봉지아, 리우] “거리서 스마트폰 써도 낭패당하는 일 없을 것”

    [봉지아, 리우] “거리서 스마트폰 써도 낭패당하는 일 없을 것”

    대항해시대가 무르익던 1500년. 포르투갈이 광활한 브라질 땅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사우바도르의 토드스우스산투스만(灣)이었다. 문화·경제의 중심이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가기 전까지 200여년 동안 사우바도르는 사탕수수 무역으로 브라질 첫 수도로서의 지위를 떨쳤다. 198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이아 역사지구는 번성했던 당시 사우바도르의 모습을 보여 준다. 브라질을 이야기할 때 사우바도르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아름다운 전통의 도시 자부심” 리우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로베르타 디아스(66·여·수의사)는 2년 전 브라질월드컵에 이어 이번에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 경기장에서는 4일 오후 8시(한국시간 5일 오전 8시) 올림픽 축구 조별예선 한국과 피지와의 경기가 열린다. 디아스는 먼저 조그마한 실수를 마치 거대한 폭력과 무질서로 확대시켜 ‘최악의 올림픽’을 점치는 나라 안팎의 여론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올림픽은 쇠락한 내 고향 사우바도르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전통의 도시로 각인시킬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원봉사자들 “봉지아” 반갑게 인사 우리나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우바도르까지 28시간을 비행할 때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하비에르 알타미라누(36)는 어머니가 브라질 사람인 멕시코인이다. 스위스 로잔의 국제조정연맹(FISA) 사무국 직원이라며 명함을 건넨 그는 “적어도 올림픽 기간 중에는 리우데자네이루나 사우바도르의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마음껏 사용해도 낭패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특히 수질 오염 등으로 말 많은 조정경기장은 그동안 많이 개선됐다”고 세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개막 이틀 전 풍경 역시 나라 밖에서 듣던 소문과는 사뭇 달랐다. 시내 곳곳에 깔려 있는 무장 경찰의 삼엄한 눈초리 덕일 수도 있지만 올림픽경기장과 선수촌, 미디어빌리지 주변에서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특히 갈레앙 국제공항에서부터 반가운 얼굴로 ‘봉지아’(포르투갈어로 안녕이라는 뜻)라고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은 리우올림픽에 대한 가혹한 사전 평가를 무색하게 할 만큼 아름답다. 남미에서 펼쳐지는 첫 올림픽이 곧 막을 올린다. 그만큼 늙은 여수의사의 꿈도 커져 간다. 사우바도르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아유, 덥지? 자자, 이리 와. 빨리 웃옷 벗고 여그 에어컨 바람 좀 쒸여. 어서 어서.”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분당 집에서 만난 조정래(73)는 편안해 보였다. 신작 장편 ‘풀꽃도 꽃이다’ 집필 때문에 9개월 동안 이어졌던 ‘글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란디, 뭐 인터뷰허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겄어? 태백산맥도 글코, 아리랑도 글코, 내 얘기야 많이들 알려진 것인디. 커피 한 잔씩 허면서 그냥 편하게 놀다들 가면 되제.” 서재에서 이어진 대화는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휴식이 길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래야, 이제 그만 부처님 앞으로 가야겠다.” 고3 때인 1961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 손에는 ‘조계사 승적 168호’라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승적(僧籍)이 들려 있었다. 속명 ‘조정래’, 법명 ‘인천’(?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전쟁의 난리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것은 다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다. 형은 장남이어서 좀 그렇고, 차남인 네가 부처님 앞에 일생을 바치는 게 좋겠다.” 배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며칠 전 “남자가 장성하면 무릇 호(號)를 가져야 하는 법”이라며 갑자기 ‘하늘을 벗한다’는 뜻의 ‘인천’이란 이름을 주신 게 결국 아들을 중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아, 아버지. 저,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응수쯤은 이미 아버지의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듯했다. “그건 출가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냐. 만해(한용운) 선생을 봐라. 종교도 문학도 다 이루시지 않았느냐.” 아아, 나는 과연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유, 만해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하는 엄청난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그 말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중이 되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종현(1906~1989)은 시조시인이자 승려였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상대 해돋이’가 아버지의 작품이다. 열여섯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한 아버지는 불법 공부의 높은 경지에 다다라 스물넷에 그 어렵다는 법사 시험을 통과했다. 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교수가 됐는데,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참여해 만해 스님과 항일운동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1943년 선암사에서 4남 4녀의 네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은 일제 황국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우익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빨갱이로 몰려 절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나를 승려로 만들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죄의식의 소산이었던 것 같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아버지가 벌교상고 교사로 가면서 나는 벌교 북국민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최고의 낙은 형이 부잣집 친구에게서 빌려다 주던 학생잡지 ‘학원’을 받아보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잡지 속의 중고생 문예투고였다. 그걸 보면서 동시를 짓고 동요를 지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볼 수 있겠지.’ -“이게 다 네가 지은 것들이냐?” 국민학교 4학년 어느 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내가 쓴 작문을 들고 계셨다.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도 못 내게 했던, 늘 엄했던 아버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낱장에 쓰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버려진 시험 답안지를 수십장 묶어 이면지 공책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적어야 글들이 안 없어지지.” 아버지는 잘 썼다, 못 썼다 단 한마디도 안 했지만, 조용히 공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저렇게 표현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는 종이가 거칠고 잘 찢어져 사람들이 그걸 ‘똥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종이 묶음을 ‘똥지 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즈음부터 학교에서 글짓기를 했다 하면 나는 수필이건 동요건 동시건 전교 1등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하면서 방대한 양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들을 타는 목에 냉수를 들이켜듯이 독파했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동은 내게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가 않아.’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좀더 나이 먹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고1 나이에 꽤나 기가 승하고 방자했던 셈인데, 그런 내가 은근히 좋기도 했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 문예반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보성고 문예반은 보성중 문예반과 통합으로 운영됐는데, 지도교사가 하필 보성중에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였다. 한 교실에 앉아 아버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태권도부, 역도부, 등산반을 두루 섭렵했는데 그 덕에 요즘 말로 ‘몸짱’이 됐다. 가슴둘레가 1m가 넘고 턱걸이는 60개를 넘게 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굶어가며 살려고 그러니. 제발 상과대학을 가라.” 내가 국문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다. 당시는 국문과가 ‘굶을과’로 통하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굶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몇 번을 어머니에게 다짐을 한 끝에 1962년 결국 동국대 ‘굶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말로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처자식 배를 곯리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부모님과 달리 하나만 낳을 것이다(아들이 태어나고 15년 후에 태백산맥이 그렇게도 잘 팔릴 줄 알았더라면 셋쯤은 낳았어도 됐는데, 내 인생에 가장 실패한 계획이 가족계획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내 꿈은 다른 대부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닌 시인이었다.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 갔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벅차다는데 나는 서너 편이 그냥 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는 데 있었다. 내 시의 함축과 절제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교내 ‘문학의 밤’ 행사에서 1학년 동기 중 유일하게 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지만, 뜻대로 시가 안 되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도통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시는 안 된다. 소설로 바꾸자.” 답답한 마음에 떠난 겨울방학 무전여행.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흘간 어지러이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설로의 전향은 꽤 괜찮은 성취로 이어졌다. 2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서 단편 ‘비탈진 음지’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 탄 걸로 같은 과 친구들한테 술 한번 사고, 당시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입학 동기 김초혜(시인)에게 손지갑을 사줬다. 그녀와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평생의 언약을 맺었고 1970년 동구여상에 함께 교사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불렀다. -문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공처가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한술 더 떠 “조정래는 공처가가 아니라 놀랄 경(驚)자를 쓰는 경처가다. 마누라만 보면 무서워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작가입네 예술가입네 하면서 방탕하게 살고 바람 피우는 것 같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했고, 주색잡기 같은 걸로 아내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눈부시지 않고 미우면 하루인들 어찌 살겠는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왼팔은 50년 동안 아내가 잡고 다녀 망가졌고, 오른팔은 글을 쓰느라 망가졌다고. -1972년 동구여상을 떠나 중경고로 옮기고 얼마 안 돼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예비역 장성 출신인 교장은 “역사적 영단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며 흥분을 했는데, 나에게는 참기 힘든 압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으로 교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위경련이 생겼고, 결국 죽지 않으려고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며 경제적 여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어느 정도 굶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선 뒤 나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1983년 9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6년여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했다. 위로 쌓아 내 키만큼 되는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 분량이 쓰였다. 한국의 작가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있어 분단은 문학의 원류 내지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삶을 옥죄는 고통의 핵심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 같은 민족끼리 싸운 아픔, 여전히 분단돼 있는 상황은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내 작품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던 이유다. 단편이 호미로 골짜기 하나를 파는 정도라면 중편은 골짜기 2개, 장편은 골짜기 3개를 파는 데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이나 중편, 장편으로는 태백산맥에 있던 그들이 왜 짐승이 아닌 사람인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1986년에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미처 인지를 찍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책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을 쓰면서, 또 영화화되면서 겪은 우익단체 등의 협박과 훼방 같은 것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94년 4월 우익단체에서 고발당한 사건의 경우, 2005년 5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후배들이 나에게 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나는 소설로 참여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가투(가두투쟁)를 안 했으니 가투를 해 본 너희들이 그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체험은 있지만 치열성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과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는 것이 연속되는 생활에서 16시간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소설가 조정래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문학에 녹여낸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다. 탄탄한 구성과 깊은 통찰력, 실증적인 취재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은 작품의 수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20세기 한국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00만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출생 ▲순천 남국민학교, 벌교 북국민학교, 광주서중, 서울 보성고,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恨),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비탈진 음지’, ‘황토’,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사진여행: 길’(사진앨범)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 김무성 “정병국·주호영 중 단일후보 지원”

    김무성 “정병국·주호영 중 단일후보 지원”

    “전대 앞두고 TK의원 회동 잘못” 靑 정면 비판… 친박 “계파 조장” 靑 “사드 민심 청취… 전대 무관” 지난 1일부터 호남을 시작으로 ‘민심투어’에 나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3일 “이번에는 비주류 당 대표가 되는 게 새누리당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서 “비주류 후보 중 단일 후보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8·9 전당대회를 엿새 앞두고 나온 비박(비박근혜)계 유력 대권주자 김 전 대표의 발언은 당권 경쟁 중반전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이날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만난 기자들이 ‘전당대회에서 비주류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뜻에 변함이 없느냐’고 묻자 “내가 친박(친박근혜)을 만든 사람인데 지금 친박 가운데 주류 세력에 밀려서 비주류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정병국·주호영 후보가 아마 주말에 단일화를 할 것”이라면서 “그때 그 (단일화된) 사람을 지원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표의 발언은 비박계 결집을 주도하기 위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당권 경쟁이 중반전으로 접어들면서 당내에서는 비박계인 정병국·주호영 후보가 친박계인 이정현·이주영 의원에게 상대적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김 전 대표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구·경북(TK) 초선 10명과 사드가 배치되는 경북 성주를 지역구로 둔 재선 이완영 의원과 면담하는 것과 관련, “전당대회를 앞두고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친박계 당권 주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친박계를 견제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 참모는 “이번 면담은 새누리당 초선들이 먼저 대통령을 만나기를 희망해 성사된 것”이라며 “지역 민심을 청취하라는 여론이 많아서 면담을 하는 것인데 이런 것까지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전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국정 현안에 대한 민심을 청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전 대표는 광주에서 청년들과 타운홀 미팅 도중 대선 도전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는 “아직까지 대권 자격이 있나, 과연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 고민하고 다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국무총리를 전라도 사람을 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박계 결집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진 김 전 대표 역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개적으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친박계의 결집을 초래해 계파 투표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친박계 후보들은 반발했다. 전북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후보인 이주영 의원은 “지금 우리가 계파 패권주의에 기대서 후보 단일화를 할 때냐”면서 “유력 대선 주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치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최고위원 후보 조원진 의원도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가 단일화를 종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행위를 그만두라고 충고드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주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수요 에세이] 한국 제조업, 몽골을 개척하라!/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수요 에세이] 한국 제조업, 몽골을 개척하라!/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군사 전략가이자 제왕인 칭기즈칸(1162~1227)은 많은 이에게 강력한 리더십의 대명사로 존경받고 있다. 반면 13세기 당시 고려에 살던 우리 선조들에게 칭기즈칸은 고통의 이름이었다. 고려는 몽골(당시 원(元))의 계속된 침략으로 9번에 걸쳐 전쟁을 치렀고 결국 약 100년간 몽골의 간섭을 받았다. 고려의 관제와 호칭이 격하되고 민족의 자주성을 훼손당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몽골의 문화를 고려만의 색채로 발전시키는 등 한민족(韓民族)의 슬기로운 모습을 보여 줬다. 21세기 현재, 한국과 몽골의 관계는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몽골의 수많은 근로자와 학생들은 ‘코리안드림’(Korean Dream)을 꿈꾸며 한국에서 취업하길 원하고 있다. 현재 3만여명의 몽골인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고 유학, 취업 등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사람만 해도 약 30만명에 달한다. 몽골 전체 인구가 300만명인 점을 고려한다면 몽골인의 약 10%가 한국을 경험한 셈이다. 근대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란 강대국 사이에서 대부분의 국토를 상실하고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몽골인들은 비슷한 처지에서도 세계적인 중견국가로 성공한 한국인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몽골 내 친한(親韓) 정서는 케이팝, 케이드라마 등의 한류와 함께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한국을 방문하는 몽골인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8세기 전 몽골인에게 관리의 대상이었던 ‘코리아’가 이제 배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머지않아 한국인에게 몽골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몽골은 금, 구리, 석탄 등 광업자원이 풍부한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이에 반해 제조업 비중은 총 산업의 10%에 불과한 수준으로 한국에서 사양산업(斜陽産業)화되고 있는 전통 제조업이 몽골에서는 이제 성장기에 있다. 몽골에서 광업자원을 이용한 레미콘, 벽돌 등의 제조기술은 한국으로 치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몽골 정부는 제조업 분야의 선진 기술과 기계 장비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있어 몽골 내 제조업 수요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국의 산업화 노하우와 제조기술력을 몽골의 풍부한 자원과 접목해 생산할 수 있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점점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는 전통 제조 중소기업들에 몽골 시장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창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한국 기업에 경쟁력 있는 사업 영역과 투자 지역을 선정했는데 그게 몽골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해외 민간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MKI의 양윤호 대표의 말이다. 양 대표는 한국의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몽골에서 성공한 좋은 사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근무하던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몽골에서 레미콘 회사 창업에 뛰어든 양 대표는 당시 레미콘이란 개념 자체가 없던 몽골에서 스스로 시장을 창조했다. 지속적인 현지화 노력으로 현재 ㈜MKI는 몽골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양 대표의 도전 정신과 끈기가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 전통 제조업의 기술력과 몽골의 풍부한 광업자원 간의 시너지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9개사로 구성된 경제사절단과 함께 몽골을 방문해 비즈니스 포럼, 일대일 상담회 등을 개최하며 한국 기업의 몽골 진출에 힘을 실어 줬다. “말은 타 봐야 명마인지 알 수 있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몽골 속담처럼, 이번 국빈 방문은 1990년 한·몽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 협력을 이어 오고 있는 양국 관계를 재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워진 한·몽 관계는 한국 기업인들의 몽골 진출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땀과 열정으로 드넓은 몽골 땅을 개척해 나가는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길 바란다.
  • 험담한 사람인 줄 착각, 살해하려다 미수 그친 40대 남성

    자신을 험담한 사람으로 오해해 5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하려 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살인미수 혐의로 오모(4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오씨는 지난 27일 오후 9시 55분쯤 부산 북구 구포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집주인인 이모(50·여)씨를 목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씨는 이씨의 얼굴을 뒤늦게 확인하고서는 다른 사람인 것을 알고 범행을 멈췄다. 오씨는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집 밖으로 나가는 중 범행을 목격한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오씨는 “1년 전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내 아내와 이혼하게 한 여성을 찾아내 죽이려고 했는데 엉뚱한 집을 찾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기업 인사담당 10명 중 4명은 은밀한 제안 받아

    기업 인사담당 10명 중 4명은 은밀한 제안 받아

    기업 인사담당자 10명 중 4명은 채용관련 청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채용 청탁을 받은 인사담당자 가운데 절반 정도는 ‘실제로 채용에 도움을 줬다’고 응답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은 26일 기업 인사담당자 3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7%가 ‘취업청탁을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에 한 같은 조사 결과(30.2%)보다 10.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들이 청탁을 받은 횟수는 평균 5.7회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신입사원 채용이 74.4%(복수응답)로 가장 많았고, 경력(58.4%), 촉탁·고문(4%), 인턴(3.2%) 순이었다. 또 청탁을 받은 응답자의 48.8%는 ‘실제로 채용에 도움을 줬다’고 답했다. 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의 부탁이라서’(34.4%·복수응답), ‘제의한 사람을 통해 검증된 인재여서’(27.9%), ‘당사자의 능력이 좋아서’19.7%), ‘상부 지시에 따라야 해서’(18%) 등이었다. ‘채용에 도움을 준 지원자가 최종 입사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96.7%가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인광고 무료로 해드립니다”... 영세기업 비용 절감 기대

    취업포털 사이트 ‘잡앤워크’는 비용 등의 이유로 유료 채용광고를 진행하기 어려운 구인기업들에게 무료로 박스형 채용광고를 제공한다고 21일 밝혔다. 잡앤워크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입사지원자가 부족해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이 같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사람인’이 중소기업 779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소 구인난을 겪는가’에 대한 질문에 77.7%가 ‘겪고 있다’고 응답했고, 구인난을 겪는 이유로 ‘입사지원자가 너무 적어서’(49.3%, 복수응답)를 꼽았다. 잡앤워크는 기업의 구인 비용 절감을 위해 배너광고도 슈퍼 프리미엄 배너는 2주 간, 프리미엄 배너는 1개월 간, 스페셜 배너와 스페셜 우대, 추천 채용정보 등은 각각 2개월 간 무료로 제공한다. 급구 채용정보와 채용정보 즉시등록 서비스도 3개월 간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구직자들은 주요 기업들의 취업 뉴스 및 자료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해당 지역 일자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 검색서비스와 헤드헌팅·아르바이트 등 형태별 취업정보 카테고리도 있다. 이와 함께 잡앤워크는 개인정보 유출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개인 회원가입을 일체 받지 않는다. 구직자는 자료실에서 이력서를 다운받아 본인 PC를 통해 작성한 뒤 지원하고자 하는 구인 기업의 전자메일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를 전송하면 된다. 잡앤워크 관계자는 “기업과 구직자간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겠다”면서 “시니어 취업이 활발한 시대임을 반영해 향후 시니어잡 카테고리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싸우자 귀신아 김소현 “나도 귀신 싫어” 옥택연에 속마음 고백 ‘눈물’

    싸우자 귀신아 김소현 “나도 귀신 싫어” 옥택연에 속마음 고백 ‘눈물’

    ‘싸우자 귀신아’ 김소현이 만취해 ‘샤샤샤’를 선보였다. 19일 방송된 tvN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김현지(김소현)가 술에 취한 모습이 그려졌다. 봉팔(택연)과 현지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핑크빛 분위기를 내뿜었고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다. 물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현지는 봉팔이 금지한 방에 들어갔고, 자신의 엄마의 구두를 현지가 신은 것을 보고 봉팔은 분노했다. 그리고 “너는 그냥 귀신일 뿐이다. 사람인 척 하지 말라”고 말해 현지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앙금도 금세 풀어졌다. 이어 현지는 봉팔의 친구들 모임에 따라갔다. 여기서 맥주를 보자 현지는 “그동안 맛이 궁금했다”면서 계속 먹었고 결국 취하고 말았다. 결국 현지는 악귀에게 당했고, 퇴마도 하지 못했다. 현지는 귀신을 무찌르려고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아 몸개그를 펼쳤다. 이후에도 현지의 술주정은 계속됐다. 현지는 트와이스의 ‘Cheer Up’을 부르며 “샤샤샤” 애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봉팔은 “귀신이 술 취한 것도 보네”라고 말했고 현지는 “귀신이 뭐 어떻다고? 귀신은 술 먹고 예쁜 옷 입으면 안 되냐. 그런 말 하지마”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귀신 하고 싶어서 하냐. 나도 귀신 싫어”라며 눈물 고백을 했다. 봉팔은 이에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그녀를 업어줬다. 사진=tvN ‘싸우자 귀신아’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싸우자 귀신아’ 옥택연, 까칠+다정 ‘허당 퇴마사’ 반전 식스팩 눈길

    ‘싸우자 귀신아’ 옥택연, 까칠+다정 ‘허당 퇴마사’ 반전 식스팩 눈길

    ‘싸우자 귀신아’에서 ‘허당 퇴마사’ 옥택연이 까칠하면서도 다정한 매력으로 여심을 설레게 한다. 지난 3화에서는 1, 2화보다 더욱 오싹해진 귀신 이야기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유명 여가수 미즈(한보름 분)가 악플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악플러들에게 차례로 복수하며 죽음에 이르게 해, 섬뜩한 귀신의 모습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와 맞물려 공포지수를 더욱 높였다. 반면 허당 퇴마사 박봉팔(옥택연 분)과 여고생 귀신 김현지(김소현 분)는 한층 더 가까워져 흐뭇함을 안겼다. 현지는 잠든 봉팔의 얼굴이 가까이 오자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고, 봉팔은 현지가 갖고 싶어 하던 원피스를 몰래 깜짝 준비해 현지를 기쁘게 하며 달달함을 자아냈다. 19일 방송되는 4화에서는 무심하면서도 다정한, 속을 알 수 없는 봉팔의 매력이 배가 될 예정이다.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봉팔이 애교를 부리는 현지를 귀여워하면서도, 또 다른 장면에서는 “너 귀신이야. 귀신 주제에 사람인 척 하지 마”라는 냉정한 말로 화를 내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한 공개된 스틸사진에서는 그가 탄탄한 식스팩을 자랑하고 있어, 남성적인 매력까지 더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작진은 “극중 봉팔은 까칠하지만 다정하고, 멀끔한 외모이지만 알고 보면 허당인 캐릭터로 반전이 많은 인물이다. 이를 옥택연이 맞춤옷을 입은 듯 잘 소화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이런 봉팔의 매력과 더불어, 그가 부모도 연고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속사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인지 살짝 힌트가 주어질 예정”이라고 전해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편 tvN ‘싸우자 귀신아’는 귀신을 보는 능력을 없앨 돈을 벌기 위해 귀신을 때려잡는 ‘허당 퇴마사’ 박봉팔과 수능을 못 치른 한으로 귀신이 된 여고생 ‘오지랖 귀신’ 김현지가 동고동락하며 함께 귀신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다. 누적 조회수 7억 뷰를 기록하며 수많은 마니아를 보유한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로맨스와 코믹, 호러가 버무려진 마성의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다. 19일 화요일 밤 11시 4화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