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쳐놓고 「유고 해결」 어렵다”(지구촌 칼럼)
공산주의 시절 소련국민들은 유고를 지상낙원으로 생각했다.유고도 소련처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였다.하지만 그들은 소련과는 달리 상점에 물건이 가득했고 높은 임금,자유로운 해외여행의 자유를 누렸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했고 서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많은 소련사람들은 유고가 추구하는 길이 본받아야할 유일한 사회주의라고 말했다.제일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바로 유고였고 외교관들은 유고근무를 평생의 꿈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 지상천국 유고가 생지옥으로 변했다.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련사람들은 말못할 충격을 받았다.그곳에서 진행되는 전화의 불똥이 언제 발칸반도를 넘어 옛소련영토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충격은 증폭됐다.연방국가였던 유고의 시나리오처럼 옛소련도 언제 전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많은 러시아인들의 뇌리를 짓눌렀다.
러시아가 이 발칸반도의 화약고에 깊은 관심을 갖는 또다른 이유는 러시아의 강대국 야망 때문이다.러시아정부는 미국,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문제해결에서 러시아를 동등한 논의 파트너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최근에도 나토는 사라예보 인근 세르비아계 거점에 대한 공습을 결정하면서 러시아와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옐친행정부는 서방이 러시아의 입장과 이해를 전혀 고려치 않고 공습을 결정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옐친대통령의 강경한 항의 이유는 야당의 압력 때문이기도 하다.야당 지도자들은 유고사태에 대한 정책실패를 이유로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의 경질을 끈질기게 요구한다.서방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거 러시아영향권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등이 질책 사유이다.
역사적 요인도 무시할수 없다.1819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차르(황제)들은 오토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절대적인 후원을 보냈다.슬라브족으로 정교회를 섬기는 러시아인들은 인종·종교적으로 형제인 세르비아인들을 회교도 터키족 적들로부터 지켜주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감같은 것을 갖고 있다.같은 슬라브 정교도들을 보호하도록 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던 러시아제국은 19세기 후반 마침내 세르비아인을 비롯,발칸반도에 살던 민족 대부분을 터키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주었다.그곳에서 러시아는 영웅대접을 받았고 발칸반도 전역에는 지금도 당시 세워진 러시아 장군,병사를 기리는 기념비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독일,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인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는 군대를 동원했다.이에 맞서 전러시아사회가 세르비아형제들을 구하자고 일어섰다.이렇게해서 뛰어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1천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결국 그 여파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오랜 역사동안 소비에트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다.세르비아 왕은 볼셰비키들을 경멸했다.그러다가 30년대 들어 스탈린이 가까스로 유고 공산당 창건에 성공했고 히틀러와의 전쟁중 공산당 유격대원들이 적군을 도와 파시스트들을 물리쳤다.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의 새 주인 티토는 크렘린과의 유대를 끊고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스탈린의 지시와 사상을 모두 거부했다.스탈린 사후 소련과 유고의 관계는 다소 개선됐지만 소연방이 와해되기까지 유고는 소련보다는 서방과의 관계유지에 더 비중을 두었다.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양국관계의 시계바늘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같이 됐다.러시아의 야당세력들은 세르비아 지원을 줄기차게 요구한다.이들은 러시아가 형제요,같은 정교도인 세르비아인들을 적의 포위로부터 구해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한다.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의용군을 보내야 한다고 외친다.
처음에 옐친대통령은 세르비아인들에게 특별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9293년 사이 크렘린은 오히려 서방정책에 동의,친공산계 세르비아 지도자들이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려는 크로아티아,보스니아공화국들을 방해하는 것을 비난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최소한 크로아티아,회교도들도 세르비아계 못지않게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러시아는 지금 세르비아에 대한 국제제재조치가 공평하지 못하며 평화해결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는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무력사용을 즉각 중지하고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크로아티아·회교도들은 러시아를 비우호적인 약소국으로 치부한다.크렘린과 보스니아내 소수 세르비아인들과의 관계도 94년 단절됐다.서방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이해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러시아의 입장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유일한 동맹자는 세르비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한사람뿐이다.사실은 그 사람마저도 미국·서방과 직접 담판하기를 원해왔다.그런데도 러시아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옛유고 땅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옐친대통령은 오는 10월 보스니아 관련 국제회의를 개최하자고 얼마전 제의한바 있다.옐친의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바로 12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앞에 정부의 위신을 조금이라도 세워보자는 것외에 다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