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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한국경제의 진로] 정세균 산자장관·손경식 상의회장·이희범 무협회장 특별좌담

    [새해 한국경제의 진로] 정세균 산자장관·손경식 상의회장·이희범 무협회장 특별좌담

    정해년(丁亥年)이 시작됐다.60년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라는 주장이 유통업체들의 상술이라 할지라도 ‘황금경제해’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통령 선거 등으로 여느 때보다 경제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CJ 대표이사 회장),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이 지난해 12월29일 서울신문 사옥에서 만나 새해 경제를 주제로 신년 좌담을 나눴다. 사회는 염주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이 봤다. ●사회 바쁘신데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 시작부터 밝지 않은 얘기를 꺼내서 뭣하지만 새해 경기를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희범 회장 경기가 좋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출발한 해는 솔직히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수출증가율이 2006년(14%)만은 못해도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덜 불안하다. 극복을 못할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라고 본다. ●손경식 회장 아무래도 기업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크다.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체감경기가 나쁘면 실제 경기도 나쁘게 나온다. 새해 수출 증가율은 전년보다 못하고, 투자와 소비도 별반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 ●정세균 장관 최근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 당국자들은 새해에 9%대 성장을 할 것 같다고 했다.2006년(10.5%)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경기도 연착륙쪽에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55∼60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틀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썩 좋은 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걱정거리가 있는 해가 될 것 같진 않다. 수출이나 투자는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데 소비가 걱정이다. ●사회 아무래도 정부에 계시다보니 좀 더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좌중 웃음). 정치권이나 사회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 장관 정부가 투자심리, 소비심리, 경제하고 싶은 심리를 앞장서 조성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기업들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안하고 있지 않은가.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탓도 있고, 여러 불확실성을 지레 감안하는 탓도 있어 보인다. ●손 회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도 문제다.2006년만 해도 대기업의 투자는 전년보다 15% 증가했는데 중소기업은 마이너스였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86%를 흡수한다. 이런 중소기업들의 투자가 뒷걸음질을 치다보니 (거시지표와 관계없이)체감경기가 나쁜 것이다. 대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중소기업도 일거리가 생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회 대선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장관은 ‘기업들도 문제´라고 했지만 솔직히 정권 과도기에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믿음이 없으니까 기업들이 투자를 피하는 것 아닌가. ●정 장관 정경유착이 심했던 과거에는 기업인들이 행동을 안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집권하더라도 케케묵은 정경유착을 부활시킬 가능성은 없다. 철저히 경제논리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도 지레 걱정이 앞서, 혹은 옛날 타성에 젖어 투자를 미루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업의 공장 가동률이 현재 80%다. 너무 높다. 그만큼 투자를 안한다는 반증이다. 선거와 관계없이 기회가 오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성장하고 국가경제도 쑥쑥 커질 것 아닌가. 실기(失機)하면 국가경제도 손실이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이다. ●이 회장 공감한다.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사회가 들끓게 되겠지만 경제인들도 정치 풍향에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손 회장 기업인 입장에서 과거 경험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선거때만 되면 경제정책이 뒤로 미뤄지고 이완되는 현상이 적지 않았다. 각 정당에서 개발공약도 쏟아져 나오고…. 그래서 기업인들이 걱정하는 거다. 잘못하면 새해가 잃어버린 1년이 될 수 있다. ●사회 무엇보다 성장 동력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뭔가 돌파구가 절실하다. ●이 회장 규제를 획기적으로 푸는 것도 좋은 방안 중 하나다. 정부가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기업규제가 너무 많다.8083개나 된다.6년 전보다 1000개 가까이 늘었다. 법인을 설립하려 해도 갖춰야할 서류가 미국의 9.6배다. 그러니 성장동력이 올라갈 수 있겠는가. ●손 회장 오죽했으면 외국인들이 ‘규제가 테러보다 더 무섭다.´고 했겠는가. 좀 더 과감히 규제를 풀 필요가 있다. 일본 기업들이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환율 쇼크(엔화가치 급등)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해외투자를 많이 해놓은 덕분이었다. ●정 장관 바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손 회장이 대신 해줬다. ●사회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노사 분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손 회장 노동계는 2006년의 노사분규 숫자가 상당히 줄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다. 대신 강도는 훨씬 세졌다.2006년 8월까지의 파업강도(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 일수를 파업건수로 나눠 산출)는 5334로 최근 5년새 최고치였다. 노동계도 근본적으로 큰 개혁이 있어야 한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아닌 정치문제로 파업하는 것은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노조의 과격한 쟁의나 정치 투쟁에 대해서는 상의부터 앞장서서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정 장관 희망적인 징후도 있다.2006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도쿄, 뉴욕 등을 돌며 합동 국가설명회(IR)를 가졌었다. 노사가 합심해 미래 먹을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는 데 노동계도 인식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이 회장 공감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하더라도 체결되면 일자리가 더 창출돼 조합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노조는 반대한다. 현대자동차가 2006년 총 12차례 정치파업을 벌여 야기한 매출손실만 무려 1조 5000억원이다. ●사회 한·미 FTA 괴담 등 정부의 체결의지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정 장관 낭설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FTA 등을 통해 열심히 짝짓기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혼자 떨어져서 살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미국쪽에 훨씬 유리하게 협상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데 우리가 더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이끌되, 최소한 윈-윈(상생)을 목표로 협상하고 있다는 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회장 FTA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 대세다. 전 세계적으로 330여개의 FTA가 체결됐다. 그중 200여개가 발효됐다. 세계 교역의 5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FTA 비중이 겨우 3.5%이다. 지금 이 순간도 중국은 인도에, 캐나다는 유럽연합(EU)에 FTA를 제안해놓은 상태다.FT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병의 근원도 아니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손 회장 아주 정확히 봐주셨다.FTA는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 주장을 듣고 있으면 구한말의 쇄국주의가 떠오를 정도다. 한·미 FTA는 질적으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올라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회 참여정부가 너무 부동산 문제에만 올인한다는 지적도 있다. ●손 회장 부동산 신화가 꺼질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반(反)시장적 정책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민간주택의 분양가 규제만 하더라도 주택공급의 축소를 야기할 수 있다. ●이 회장 각도는 다소 다른 얘기지만 땅 얘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 있다. 국내 산업용지 임대가격이 중국이나 타이완 등 인근 경쟁국보다 최고 10배나 비싸다. 우리나라는 평당 2만원이지만 중국은 2020원, 타이완은 4628원밖에 안한다. 공짜로 공장부지를 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 장관 정부가 그래서 공공임대 산업단지와 아파트형 공장을 적극 늘리고 있다. 무엇보다 중견기업을 열심히 육성해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항아리형 산업구조를 고치려 한다. ●이 회장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나라는 2년 만에 수출 2000억달러에서 3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선진 10개국은 평균 5.9년이 걸린 일이다. 그만큼 저력이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사회가 기업인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워주고 그에 맞는 예우를 해줬으면 한다. 앨빈 토플러는 ‘소리만 요란한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 기관들은 25마일(약 40㎞)로 달리면서 시속 100마일(약 160㎞)로 달리는 기업들을 방해한다.’고 했다. ●정 장관 언론도 정치면을 줄이고 경제면이나 국제면을 더 늘려야 한다(좌중 웃음). ●손 회장 이왕이면 기업인들의 부정적인 얘기만 쓰지 말고 잘하는 기업인 얘기도 적극 다뤄 달라. ●사회 새겨 듣겠다. 시간을 내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정리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목숨바친 가족사랑”… 지구촌 울다

    험준한 산악도로에서 폭설에 고립된 뒤, 가족을 살리기 위해 혹한에 길을 나섰다 실종된 한인 제임스 김(35·샌프란시스코)씨가 6일(현지시간) 사고 발생 12일 만에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김씨의 부인 캐티(30)와 두 딸(4,7개월)이 지난 4일 오후 극적으로 구조된 뒤 김씨의 생환을 고대하며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ABC방송과 CNN 등 언론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한 남성의 진한 휴먼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김씨의 친구가 개설한 인터넷 사이트(www.jamesandkati.com)엔 전 세계 수천명의 사람들이 김씨를 추모하고 가족을 격려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김씨의 수색작업을 펼쳐온 미 오리건주 조세핀카운티의 브라이언 앤더슨 셰리프 국장 대리는 “6일 낮 12시3분쯤 ‘빅 윈디 크릭’이라는 로그 강가 계곡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이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앤더슨은 “가족들을 구하려는 열정으로 , 그는 너무 많은 길을 걸었다.”고 했다. 사흘간 수색대원들이 찾을 수 없을 만큼 먼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던 장소에서 13㎞ 떨어진 곳이다. 김씨 가족들은 지난달 25일 추수감사절 휴가를 위해 포틀랜드에 갔다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던 중 길을 잘못 찾아들면서 폭설에 갇혔고 9일 만에 부인 캐티와 딸은 구조됐다. 김씨의 유족들은 “제임스가 사망해 너무나 슬프지만, 제임스의 생환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생면부지의 이방인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여러분들이 진정 우리의 영웅”이라고 밝혔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최첨단 장애인 복지관 문연다

    금천구가 다음달 1일 국내 최고의 장애인전문 치료 시설을 지향하는 최첨단 장애인복지관(조감도)의 문을 연다. 여느 장애인시설이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건립 반대에 부딪혀 있는 다른 자치구와 달리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점이 다르다.●첨단 설비와 교육 프로그램 금천구는 28억원을 들여 독산1동에 지상 5층 규모의 장애인복지관을 완공했다. 한인수 금천구청장은 29일 복지관 완공식에 참석해 “금천구에 처음 들어선 장애인시설을 주민 여러분이 환영해 주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금천장애인복지관은 ‘주민들의 생활 속에 장애인시설을 가까이 한다.’라는 컨셉트를 설정, 성공한 케이스. 지하 1층에 마련한 레포츠실에는 러닝머신을 설치해 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하도록 했다.5층의 강당은 언제든 무료개방한다. 장애인 치료에 대한 시설과 프로그램은 첨단 설비를 자랑한다. 장애인교육 시스템에는 세계적인 ‘DMS’ 기법 등을 동원했다. 지하 1층 직업재활실에서는 치료사가 장애인들과 둘러앉아 ‘왜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등에 대해 대화하고 교육하도록 했다. 장애인들이 납득을 하면 바로 옆에 있는 작업대에서 간단한 직업훈련을 할 수 있다.●반대하는 주민을 설득 서울시의 ‘지역사회 재활시설’ 사업에 따라 운영비를 보조받기 때문에 이용료는 하루 몇 천원 수준이다. 복지관 건립도 서울시가 건축비 28억원을 전액 지원했고, 운영을 맡은 사회복지법인 ‘상금복지회’가 부지매입비 5억원을 부담했다. 처음엔 주민들도 건립을 반대했다. 복지관 부지 주변의 단독주택 주민들은 구청을 방문해 항의하고 인터넷 등에 반대의 글을 올렸다. 관내에 장애인시설이 한 곳도 없는 금천구는 고심했다. 직원들은 주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수차례 설명회를 가졌다. 심지어 반대가 심한 주민대표의 집도 찾아가 설득했다.“지역을 위하고 주민들이 환영하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호소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해인수녀 ‘흰구름 편지’ - 가을의 기도

    이해인수녀 ‘흰구름 편지’ -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글 이해인, 그림 김점선 가을이여, 어서 오세요! 가을, 가을, 하고 부르는 동안 나는 금방 흰구름을 닮은 가을의 시인이 되어 기도의 말을 마음속에 적어봅니다. 가을엔 나의 눈길이 저 푸른 하늘을 향해 파랗게 물들어서 더욱 깨어 있길 원합니다. 서늘하게 깨어 있는 눈길로 하루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마음이 불타는 단풍 숲으로 들어가 붉게 물들어서 더욱 사랑할 수 있길 원합니다.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아 그리움의 기도로 키우며 노래하길 원합니다. 하루하루를 늘 기도로 시작하고 세상 만물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발길이 산길을 걷는 수행자처럼 좀 더 성실하고 부지런해지길 원합니다. 선과 진리의 길을 찾아 끝까지 인내하며 걸어가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언어가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린 물처럼 맑고 담백하고 겸손하길 원합니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맑고 고운 말씨로 기쁨 전하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엔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둥근 달빛을 받아 고요하고 은은하길 원합니다. 깊은 생각 어진 마음 키우며 꾸준히 책을 읽으며 매사에 사려 깊고 지혜로운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을을 사랑하는 가을의 사람이 되어 길을 가는 가을의 기쁨,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주는 서늘한 평화 가슴에 안고 벗들을 불러보는 가을의 은총, 감사드립니다. 우리 함께 가을의 사람이 되어 가을을 노래하기로 해요. 깊고 맑고 높고 착한 가을을 함께 살기로 해요. 그러면 가을도 우리를 축복해줄 것입니다. 우리는 가을의 열매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월간<샘터>2006.11
  • 韓流문화관 보러옵서예

    제주도에 일본, 중국, 동남아 한류팬들을 겨냥한 ‘한류문화관’이 들어설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김재윤(서귀포시)의원은 기획예산처, 문화관광부 등과 협의,‘한류문화관’ 건립사업의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용역비 20억원(국비)을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25일 밝혔다. 한류문화관은 2008년 말 완공을 목표로 서귀포시 3000여평의 부지에 국비와 지방비 150억원씩 모두 300억원을 투자하게 된다. 주요 시설로는 한류스타 팬미팅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뮤지컬하우스, 뮤지컬 박물관, 한류영화관, 인기드라마 세트장, 한류소품 상품관, 한류열풍 기업홍보관 등이다. 김 의원은 “한류문화관은 제주가 한류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활용한 관광홍보 및 수익증대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지역에는 ‘올인’ 드라마 촬영지인 성산읍 섭지코지와 ‘대장금’ 촬영지인 제주민속촌박물관 등지를 둘러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꾸준히 몰려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욘사마’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본격 촬영되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오는 11월11일에는 한류스타와 팬들이 만나는 ‘한류엑스포 2006 제주 그랜드 오프닝’ 행사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딸자랑] 유치원보모가 꿈인 22살 송영숙양

    [딸자랑] 유치원보모가 꿈인 22살 송영숙양

    「아마추어」사진 「클럽」숙미회 회원 송영숙(宋英淑)양은 69년 말 오빠 송성호씨와 함께 남매사진전을 가져 호평을 받은 아가씨. 고향인 경북 김천(金泉)에서 일부러 상경(上京)한 아버지 송재성(宋在星)씨와의 다정한 한 때를 잡아 보았다.『시골서는 딸 자랑하면 부모가 크게 흉 잡힙니다』 쑥스러워서 아무리 귀여운 외딸이지만 말문이 안 열린다는 사양이다. 김천(金泉)에서 「송치과(宋齒科)」를 개업하고 있는 치과의사. 6남매중 외딸인 영숙(英淑)양은 차례로는 다섯째다. 48년생. 김천여고를 졸업할 때까지는 고향에 있다가 덕성여자 초대 가정과를 졸업하고 숙대(淑大) 교육과 3년으로 편입했다.『별로 예쁜줄은 몰랐는데 덕성여대 2학년때 학교 행사에서 「퀸」으로 뽑혔다나요. 깜짝 놀랐지요. 그리고 역시 흐뭇하더군요』 오빠가 넷이나되는 억센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괄괄한 구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또한 다행스럽고 대견하단다.『그래서 집안의 꽃이지요. 성격이 명랑하고 사교적이에요. 집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도 방학 때 집에 오면 집안 분위기가 영 달라져요』 어머니 조여사가 거처하는 안방이며 아버지의 사무실에 꽃을 끊이지 않고 꽂아 드리는 일부터 시작해서 집안을 장식하느라고 법석이다.『지금 19살짜리 막내는 오빠들보다 여간 괄괄하질 않습니다. 검도도 하고 다른 완력도 여간 세질 않거든요. 그런데 이 누나하고는 꼭 자매간처럼 오손도손하지요』대학에 들고 나면 이 막내까지 서울에 올라와 부모 자녀 2대가 서울 김천으로 갈라진다. 영숙(英淑)양은 미리부터 「부모님 적적하실 일」이 걱정이란다.『집안의 생일같은 것은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가 오빠들에게 돈을 거두어 조그마한 선물을 장만해서 돌리곤 합니다』지난번 어머니 생신에는 「핸드백」을 사드렸는데 물건 고르는 눈이 높다고 친척간에 칭찬이 자자했다.『나는 저 내가 사진을 하는지 어쩌는지도 잘 몰랐어요.「피아노」는 어려서부터 좀 쳤지요. 그러나 취미를 전공으로 시키고 싶지를 않아서 가정과를 보냈더니 이번에는 사진으로 취미를 바꾸었구먼요 』우석의대 4학년인 오빠 송성호군을 따라 어깨너머로 배운 사진이란다. 숙대 3학년때 교내 사진전에 우연히 몇 점 출품했었는데 특선 등 네댓가지 상을 탔다.『그것이 사진을 정식으로 하게 된 동기라니까 2년쯤 한 셈이에요. 저는 어린애들을 어려서부터 좋아해요. 지난번 사진전에도 연작으로 「어린이들」을 만들었지만… 저는 같은 어린이라도 비참한 면만을 확대하는 것은 정말 싫어요. 밝은 걸 살려 볼 작정이에요』구김살 없이 상그레 웃는 얼굴로 영숙(英淑)양은 사진작가로서의 포부를 말한다.『교육과를 택한 것도 장차는 유치원에서 어린이를 가르쳐 보겠다는 거예요』남을 도와 주고 뭔가 모범적인 일을 해 보려고 무척 애 쓰는 것도 아버지 송재성(宋在星)씨를 기쁘게 해 준다.『방학 때 집에 와서도 놀 생각은 않고 계몽강좌를 한다고 곧잘 나다닙니다』69년 여름에는 오빠 성호씨가 속해 있는 무료진료반을 따라 중부지방 벽촌에 갔었다.[선데이서울 70년 1월11일호 제3권 2호 통권 제 67호]
  • “노동공무원 중재 노력 고맙습니다”

    “파업 해결에 감사드립니다.” 노조원들이 사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보여줬던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사하는 표시로 현수막을 내걸었다.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양주상운 노조(위원장 장원)는 지난 1일부터 서울지방노동청 의정부지청 앞 도로에 `노동지청장님 이하 직원 여러분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파업 해결에 보내주신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은 양주시청 등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다른 3곳에도 설치됐다. 장 노조위원장은 “파업 기간 중 일부 노조원이 의정부지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등 피해를 주었으나 의정부지청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분규가 원만히 타결돼 전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들인 이 회사 노조원 105명은 지난 3월27일부터 넉달 넘게 파업과 조업을 반복하면서 사측과 협상을 벌여왔다.양주시청 앞과 의정부시 용현동 의정부지청 앞에서 천막농성도 했다.그러다 지난 달 27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7시까지 무려 33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여름 유급휴가 1일, 하루 연료 15ℓ 회사 제공을 골자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에 노조원들은 근로감독관들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의정부지청 근로감독관들은 교섭 때마다 노측과 사측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수용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그 결과 노조측이 50ℓ의 연료를 요구했던 것을 40ℓ,30ℓ,25ℓ로 단계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대신 노조원들에게 유급휴가를 안겨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더구나 20회가 넘는 긴 협상과정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사측을 설득해준 근로감독관들의 노력은 노조원들을 감동시켰다. 노조원들은 지난 2일 수박을 사들고 의정부지청을 찾아 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고점배 서울지방노동청 의정부지청 노사지원과장은 “35년간 노동부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파업을 끝낸 노조원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광역단체장 당선자의 다짐

    광역단체장 당선자의 다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운명을 바꾸겠습니다.” 5·31지방선거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은 광역자치단체장들의 당선 소감이다. 한나라당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압승을 거두고, 열린우리당이 완패한 5·31지방선거에서 상대후보를 꺾은 당선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역발전에 헌신하겠다.”는 말로 당선의 기쁨을 대신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끌고 갈 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 당선자들의 당선 소감을 들어봤다. ■ 안상수 인천시장 “경제자유구역 발전에 올인” “인천뿐 아니라 국가의 성장동력이 될 인천경제자유구역 발전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인천시장 재선에 성공한 한나라당 안상수 당선자는 경제자유구역에 올인했던 단체장답게 당선 순간 또다시 경제자유구역을 떠올렸다. 안 당선자는 “경제자유구역은 이제 시작에 불과해 2∼3년내에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면서 “시민들이 개발 주체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꾀하기 위해 저를 선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 안쓰는 선거와 정책선거가 자리잡는 계기가 돼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60세 ▲충남 태안 ▲서울대 사범대졸 ▲15대 의원, 인천시장 ▲부인 정경임(53)씨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김태호 경남도지사 “최연소 재선은 서민 위하라는 뜻” “위대한 경남도민이 일궈낸 값진 승리는 경남이 도약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광역단체장으로 재선에 성공한 김태호(44) 경남지사는 이같이 당선소감을 밝힌 후 “선거과정에서 들었던 서민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 지사는 “지난 2년이 남해안시대 프로젝트를 만든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4년은 이를 구체화시키고 실천하는 기간”이라며 남해안시대 실현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진주는 혁신도시, 마산은 준혁신도시라는 도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44세▲경남 거창▲서울대 농대졸▲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거창군수(2004년 보궐선거)▲부인 신옥임(42)씨와 1남1녀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김문수 경기도지사 “공장·대학등 수도권 규제 완화” “수도권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 경기도를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으로 만들겠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김 당선자는 특히 수도권 규제완화를 도정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이어 “어느 나라가 수도권에 공장과 대학을 못짓게 하고 있느냐.”면서 “수도권규제혁파본부를 만들어 정확한 실체를 조사하고 국민들에게 알려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3대 공약으로 내세운 교통난 해소와 팔당상수원 문제, 신·구도심 격차 해소에도 힘을 쏟겠다고 덧붙였다.▲54세 ▲경북 영천▲서울대학교 경영학과졸 ▲15,16,17대 의원▲부인 설난영(53)씨와 1녀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김진선 강원도지사 “3선째…동계올림픽 유치에 최선” “일하다 쓰러져도 좋다는 초심의 마음으로 경제 선진도, 삶의 질 일등도를 만드는 데 헌신하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3선 도전에 성공한 김진선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김 당선자는 당초 ‘경제 선진도, 삶의 질 일등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도민들의 소득을 올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CEO 도지사를 선언했다. 특히 1년 앞으로 다가온 동계올림픽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할 예정이다.▲59세 ▲강원도 동해 ▲동국대 행정학과졸 ▲행정고시 15회, 강릉시장, 강원도 행정부지사, 강원도지사 ▲부인 이분희씨와 1남2녀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관용 경북도지사 “돈이 흐르는 주식회사 경북 만든다” “경북도지사라는 영광된 자리에 저를 불러주신 300만 경북 도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북지사 김관용(한나라당) 당선자는 “웅도(雄道) 경북’의 영광을 재현하라는 부름을 받아 무거운 책무를 느낀다.”면서 “모든 것을 던져 책무를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당선자는 “침체된 경북 경제를 살려 ‘먹고 사는 걱정, 자식 공부시키는 걱정’ 없는 ‘돈이 흐르는 주식회사 경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63세▲경북 구미▲영남대졸▲행정고시(10회), 용산세무서장, 대통령민정비서실 행정관, 구미시장,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회장▲부인 김춘희(59)씨와 2남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김범일 대구시장 “대구·경북 경제통합 추진” “시민 여러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나라당 김범일 당선자는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시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해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을 펼치겠다.”면서 “다른 후보들의 의견도 시정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구의 산업구조를 첨단형태로 변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선거기간동안 이슈가 된 대구·경북 통합에 대해서는 “먼저 양지역의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그 다음 인사교류 등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55세▲경북 예천▲서울대 경영학과 졸▲청와대 행정비서관,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부인 김원옥(55)씨와 1남1녀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박맹우 울산시장 “역동의 산업수도 2일은 푸른 울산” “믿고 한번 더 기회를 주신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울산시장 재선에 성공한 한나라당 박맹우(56) 당선자는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혼신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4년간 시장으로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역동의 산업수도와 푸른 울산’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했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전략산업의 고도·첨단화사업, 생태도시조성사업, 저소득층 자활기반확충 및 복지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56세 ▲울산 ▲국민대 행정학과 ▲내무부 종합상황실장·경남 함안군수·울산시 건설교통국장 ▲부인 신현주(46)씨와 2남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허남식 부산시장 “동부산권 개발·외자 20억달러 유치” “부산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년 전 보궐선거에 이어 재선에 성공한 허남식 (한나라당)부산시장 당선자는 “저를 택한 것은 ‘큰 부산 튼튼한 부산’을 원하는 부산시민의 승리”라며 “민선4기 부산시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살기좋은 부산을 건설하겠다.”는 말로 당선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동부산권 개발▲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외자 20억달러 유치 등 자신이 제시한 20대 핵심공약과 5대과제,100개 세부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57세▲경남 의령▲고려대졸▲부산시 교통기획과장·기획관리실장·정무부시장▲부인 이미자(54)씨와 1남1녀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정우택 충북도지사 “ IT·BT 육성… 첨단산업 블루오션으로” “활력과 경쟁력이 넘치는 행복한 충북을 만들겠습니다.”정우택 충북도지사 당선자는 “단순히 중간지대에 머물던 충북을 한국의 경제, 환경, 복지 중심지로 새롭게 바꿔 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 “오송 및 오창단지, 충주 기업도시 등 거점별로 IT BT 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해 첨단산업의 ‘블루 오션’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 당선자는 또 “고품질 쌀과 특화작목 발굴·육성, 농촌 복지프로그램을 통한 농촌지역 활성화와 재래시장 활성화에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53세 ▲부산 ▲성균관대 법학과 ▲행정고시(22회) 15,16대의원 해양수산부장관 ▲이옥배(50)씨와 2남 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이완구 충남도지사 “농업기술 육성·의료혜택 확충” “강한 추진력으로 도정을 이끌겠습니다.” 이완구 충남도지사 당선자는 “기존의 안일하고 안주하는 사고의 틀을 과감히 깨고 경영적 마인드를 도입, 획기적인 충남발전 시대를 활짝 열겠다.”고 다짐했다. 반도체와 철강이 중심인 천안·아산·당진 등 서북부권은 국제자유구역, 서산·태안·보령에는 중국 직항로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이 당선자는 “농업도인 충남의 농업기술센터 소장을 부군수로 격상시켜 농촌발전을 앞당기겠다.”면서 “농어촌 의료혜택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56세▲충남 홍성 ▲성균관대 법대▲행정고시(15회) 충북지방경찰청장 15,16대의원▲부인 이백연(52)씨와 2남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완주 전북도지사 “새만금지구 복합산업단지로 육성” “50년간 침체된 전북의 운명을 바꾸는 지사가 되겠습니다.” 전국 유일의 열린우리당 광역단체장 당선자인 김완주 전북지사 당선자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지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을 유치하고 전북상품 판매에 적극 나서는 ‘세일즈맨 도지사’가 되겠다는게 그의 구상이다. 아시아농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 중국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청사진도 가지고 있다. 새만금지구를 복합산업단지로 육성하겠다는 복안이다.▲59세 ▲전북 전주 ▲서울대 정치학과 ▲관선 고창군수, 남원시장, 민선 2·3기 전주시장 ▲부인 김정자(56)씨와 1남 1녀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박광태 광주시장 “2010년까지 일자리 13만여개 창출” “승리의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민주당 박광태(63)광주시장 당선자는 “시민들의 선택은 ‘잘사는 광주, 부자 광주’를 만들어 달라는 준엄한 요구라 믿는다.”면서 “활기차고 풍요로운 도시를 만드는데 앞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광주를 소비도시에서 생산도시로 탈바꿈 시키겠다.”고 강조한 박 당선자는 “지속적인 투자유치로 산업기반을 튼튼히 하고, 이를 통해 2010년까지 일자리 13만 4000여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63세 ▲전남 완도 ▲조선대 법정대졸 ▲13,14,15대의원, 광주시장▲부인 정말례(57)씨와 1남1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박준영 전남도지사 “서남해안에 F1대회 유치 최선”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주신데 대해 ‘희망의 전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박준영 전남지사 당선자는 친환경 농업, 해양관광 등 차별화 된 미래성장 동력을 육성해 낙후된 전남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7월 의원발의로 F1 특별법이 통과되면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 개발사업 예정지(영암·해남)에 F1(국제자동차경주대회) 대회를 유치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어 도로·철도·항만시설을 늘려 도내 22개 전 지역 1시간대 접근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59세▲전남 영암▲성균관대졸 ▲청와대 대변인, 국정홍보처장, 전남지사 ▲부인 최수복(55)씨와 3녀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다시 문 연 가장 비싼 파출소

    “아저씨, 저 소매치기 당했어요. 빨리 좀 잡아 주세요. 지갑에 돈도 많이 들었는데….” 어린이날로 서울 명동일대가 발디딜 틈 없이 붐볐던 5일 오후 4시,20대 여성 두 명이 급하게 파출소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곧 이어 20여분 뒤 다른 20대 여성 두 명이 들어와 똑같은 신고를 했다. 명동 일대를 순찰하던 경찰관과 의경들에게 긴급 무전이 타전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파출소’인 명동파출소가 2년8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고 치안 중심으로 부활했다. 명동파출소는 2003년 8월 파출소가 통폐합되면서 사라졌다가 최근 파출소를 다시 두기로 하면서 1000여일 만에 ‘신장개업’을 했다. 그동안에는 경찰이 2인1조로 대기하는 치안센터로 쓰여 왔다.●하루 유동인구 100만… 미아발생 많아 낮 12시쯤, 열 한살 초등학생이 울면서 들어왔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나왔다가 엄마를 잃어 버렸단다.“휴일 명동의 유동인구는 100만명이 넘습니다. 미아나 소매치기 신고가 정신없이 들어오지요.”양몽용 파출소장은 오후 4시 이후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방을 등 뒤로 멘 젊은 여성과 쇼핑에 심취한 일본인 관광객이 타깃이 된다고 했다. 관할구역은 명동과 회현동·남산동 일부. 유동인구는 엄청나지만 관내 상주인구는 2497명뿐. 파출소 직원이 26명이니 경찰 1인당 주민 100명꼴로 적은 편이다. 오전에는 이택순 경철청장이 찾아와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청장은 “관광객이 많으니 외국어 연습 많이 하고 화장실에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병기해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1㎡당 명동 3070만원·가거파출소 272원 파출소의 면적은 16.6평. 평당 최고 2억 5000만원(공시지가는 2005년 1월 기준 1㎡당 3070만원)인 시세를 적용하면 땅값이 41억원이 넘는다. 전국에서 가장 싼 땅에 지어진 파출소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의 가거파출소. 이곳의 공시지가는 1㎡당 272원에 불과하다. 명동파출소 1평 가격이면 가거도에서는 11만 2867평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보증금 2억에 월세 900만원 받을 자리”부동산중개업자 강해근(80)씨는 “부지의 폭이 좁고 삼각형 모양이라 건물 짓기 좋은 땅이 아니지만 위치가 좋아 적어도 보증금 2억원에 월세 900만원을 족히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명동성당에 거주하는 정진석 추기경은 파출소의 재개소를 두손 들어 반겼다.“명동파출소가 다시 문을 열어 심야나 새벽에 성당에 오는 신도와 외국인들이 한결 마음을 놓게 됐다. 명동 주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고 특별히 경찰에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1966년에 세워진 명동파출소는 예전부터 격무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한 직원은 “바쁜 낮 일과가 끝나면 취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야간업무가 기다리고 있지만 문화1번지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제주도로 방향 튼 한류

    ‘제주발 한류 열풍이 불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김종학 프로덕션)로 제주가 들썩거리고 있다. 제주도는 28일 한류 열풍의 주인공인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가 3월 중순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가면 겨울연가의 무대였던 남이섬과 춘천에 못잖은 관광객이 제주로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일본 관광객 부쩍 늘어 태왕사신기의 제1 야외세트장으로 고구려 궁궐이 들어설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 묘산봉 일대에는 벌써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드라마 세트장을 짓기 위해 터 고르기 작업이 진행중인 이곳에는 매일 40∼50대 일본 중년여성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세트장이 들어선 것도 아니고 드라마 촬영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욘사마’ 열성팬인 일본 여성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공사현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형호 현장소장은 “하루에 수십여명의 일본 관광객이 몰려와 세트장 주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간다.”면서 “공사도 공사지만 앞으로 이들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까지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가고 내년부터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 방영이 시작되면 앞으로 2∼3년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이미 태왕사신기 관광상품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며 “드라마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더해져 관광효과가 겨울연가의 남이섬과 춘천을 능가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드라마 제작사는 현재 격구장과 서민주거지 등을 설치할 제2 야외세트장 건설부지도 물색중이다. 이달 중순 성공기원제를 갖고 촬영에 들어가 연말까지 촬영을 마친다는 계획이다.●어린이 SF드라마 세트장도 설치제작사는 올부터 3년간 어린이 SF드라마인 ‘이레자이온’도 제주에서 촬영키로 하고 현재 제주도와 세트장 입지 등에 대해 협의를 진행중이다. 지구를 지키는 별자리 싸움을 그린 이 드라마 세트장 건설을 통해 장기적으로 제주도에 미니 디즈니랜드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김종학 감독은 “SF드라마 세트장은 어린이들이 와서 별자리도 공부하고 꿈을 키워가는 작은 디즈니랜드가 될 것”이라며 “어른들의 관광지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제주도에 가자고 부모를 조르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광업계 일각에서는 드라마 세트장 관광은 반짝특수에 그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주 신라항공여행사 최경달(50) 사장은 “국내의 세트장이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반짝 관광특수를 누렸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모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면서 “드라마세트장 조성 초기부터 주변 관관광지와 연계한 지속가능한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편지한통에 담긴 잔잔한 감동

    “안녕하세요, 행장님…. 무슨 일로 편지를 받게 되셨는지 궁금하시죠?”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지난 15일 오후 행장실에 수북이 쌓인 우편물을 뒤적이다 여고생으로부터 온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컴퓨터로 출력된 무미건조한 우편물의 틈바구니에서 여고생의 예쁘장한 글씨가 유난히 돋보였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황 행장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발신인은 지난 8일 순천청암고등학교를 졸업한 정다슬. 정양은 졸업식에서 우리은행 순천지점이 준 상과 상금 50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오빠 동생과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정양에게 장학금 50만원이 너무나 소중했던 모양이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문구에 이르자 황 행장의 뿌듯함은 더해갔다. 숙명여대 디자인학부에 입학하게 된 정양은 “나처럼 힘든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이번에 받은 상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바쁘신 와중에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황 행장은 “요즘 학생들이 철부지인 줄만 알았는데 힘든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작은 도움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며 즐거워했다. 황 행장이 여고생의 편지에 이토록 감동하는 것은 요즘 은행장들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은행권 판도를 바꿀 외한은행과 LG카드 매각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은행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황 행장은 “다슬이의 편지를 받고 우리가 왜 토종은행으로 거듭나야 하는지, 다슬이와 같은 고객을 위해 은행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애경그룹-장영신 회장家

    “엄마, 걱정마. 이 앞에서 학생들 상대로 뽑기장사하면 되잖아!”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자기도 잘 먹던 뽑기장사해서 먹고 살면 되니 엄마보고 걱정 말란 것이다. 너무나 대견하고 안쓰러워 큰아들을 끌어안고 그때 처음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울지 않는 엄마, 강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자식들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버지의 유업을 잘 지키고 있다가 성년이 되면 물려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켜 애경을 내가 맡아 아이들과 똑같이 건실하게 성장시키기로 다짐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장영신(69) 회장이 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남편이 죽고 회사를 떠맡게 된 이야기를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강한 모성, 남편의 유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아내로서의 의리, 애경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경영참여 이유라고 덧붙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장 회장은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을 심장마비로 잃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3남1녀의 어머니로 살림만 하며 지내던 12년차 주부가 국내 대표 생활용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애경 창립 17년 만의 일이다. 장 회장은 1971년 남편 타계 1주기가 끝나자마자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웠고 이듬해인 1972년 8월1일부터 출근했다.1954년 6월 남편 고 채몽인씨가 5000만환으로 세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현재 LG그룹의 모태인 비누제조사 락희화학과 경쟁을 벌이며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다. 장 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시댁과 친정 가족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부터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애경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겠다.”는 말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사장 자리를 맡고 있던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장 회장이 취임하자 회사를 나가버리기도 했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장 회장은 “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했고, 관청에선 담당공무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는 이유로 동행했던 회사 임원으로부터 책상 밑으로 구둣발에 차이기도 했다. 경제인 모임에서는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몇시간이나 서 있다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기업환경도 나쁜 것뿐이었다. 경영에 참여한 1972년 말부터 오일쇼크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장 회장은 더욱 힘을 냈다. ‘불황에 투자하라.’를 모토로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애경의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애경화학·애경PNC(전 애경공업)·애경정밀화학·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했다. 비누 산업에는 한계가 있지만 본격적인 화학공업은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도 애경에서 매출 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군이다. 남편이 설립한 비누회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제품을 고도화시키는 데 집중했던 만큼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았다.1975년에는 분말 합성세제인 ‘크린업’을, 이듬해에는 액체세제 ‘써니’를,1980년 들어서는 세제 ‘스파크’를,90년 들어서는 클렌징 화장품인 ‘포인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트리오도 이름은 같지만 세척력을 높이고 공해도를 낮춰 지금까지도 1등 주방 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줍은 소녀…‘터프우먼 마담 장(張)’으로 장 회장은 어머니 고 문금조씨와 아버지 고 장회근씨의 4남4녀중 막내딸이다.1936년 7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나 종로구 명륜동 1가 등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당시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대지주의 아들. 어머니 문 여사도 당시 일본 귀족학교인 쓰다여대 영문과를 나온 재원이다. 장 회장은 혜화동성당 유치원을 나온 뒤 혜화국민학교를 다녔다. 노래를 잘해 전국 콩쿠르에서 상도 자주 받았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해 반장을 도맡기도 했다. 부모님의 학구열이 강한 덕에 형제들 모두 공부를 잘했다. 큰오빠 고 장윤옥씨는 일본대 전문부 상과를 졸업한 뒤 감사원에 들어가 5국장(부이사관)까지 지냈고, 미국으로 이민간 큰언니 장영옥(81)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애경유지 사장을 지낸 바 있고, 서울대 정외과 출신의 셋째 오빠 고 장위돈씨는 서울대 정외과 교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치담당특별보좌관, 이집트 총영사, 에콰도르 대사를 지내는 등 이력이 화려하다. 애경유지 이사를 지낸 넷째 오빠 장기돈(75)씨는 성균관대 상대 출신이다. 장 회장의 집안은 일제시대 유학을 갔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광복 후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6·25가 터지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경기여중을 졸업하고 경기여고에 재학중이던 그는 돈 안들이고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마침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어 재능을 인정받아 교장선생님이 일찌감치 유학을 준비시켰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955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 힐 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에도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당시 교내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협연한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를 맡기도 했다. 애경이 쉘, 유니레버 등 다국적기업과의 합작을 무리없이 진행했던 배경에는 유학 생활로 다져진 영어실력과 당시 익혔던 외국 풍습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란시절 여고생 신분으로 부산에서 사과장사를 한 적도 있다. 좌판을 벌여놓고 사과를 예쁘게 쌓아놓았지만 막상 손님이 와서 얼마냐고 물어보면 먼산 바라보기 일쑤였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탓에 장사꾼이 아닌 척한 것이다. 그러나 애경을 경영하면서 그에게는 ‘호랑이’‘터프우먼’‘마담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돌파구로 외국계와 합작에 집중했을 당시 그쪽에서 공동대표를 요구하면 그는 “여기는 한국 회사다. 너희가 한국에 대해 뭘 아느냐. 한국 문화를 이해할 때까지 너희들은 뒤에서 지켜봐라.”고 충고했다. 합작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달지 말라고 요구받으면 애국가 봉창,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순서대로 진행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이런 장 회장을 놓고 ‘마담장 터프우먼’이라고 외쳤다. 사내에서는 ‘호랑이’로 통했다. 화가 나면 직설적으로 퍼붓는 성격과 한번 결정하면 매몰차게 추진해 나가는 돌파력 때문이란 설명이다. 물론 풀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래서 ‘너그러우면서도 불같다.’는 평을 받는다. ●남편과는 어릴적 이웃사촌 장 회장과 남편 채몽인씨는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고 채씨는 장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부터 애정 공세를 퍼붓다 미국까지 따라가 무려 3년11개월 동안 구애 공세를 펼쳤다. 공개청혼으로 남편의 존재는 대학내에도 다 알려져 수녀 교수들로부터 “왜 저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느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졸업후 약속대로 서울로 돌아와 23세이던 1959년 6월 신당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식들(3남1녀)의 혼사는 장 회장보다 더 빠르다. 대부분이 대학시절에 결혼을 모두 끝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연애 결혼이다. 큰아들인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45)은 1982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당시 학교에서 만난 홍미경(43)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교제 1년 만에 결혼했다. 당시 부인은 1학년에 재학중인 생활미술학과 새내기. 채 부회장은 1983년 졸업후 미국 보스턴대에 MBA를 받은 뒤 1985년 애경산업 생산부 마케팅부 등을 섭렵했다. 부인 홍씨도 함께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홍씨는 전공을 살려 현재 종로에서 갤러리 ‘사간’을 운영 중이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가 인상적이다. 장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평소 “우리 큰애(큰며느리)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정말 착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한다. 인천교대 음대 교수를 지낸 장인 고 홍종수옹은 서울시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등에서도 활약한 음악가다. 장 회장의 맞손녀이자 큰아들인 채 부회장의 딸 문선(19)양은 할머니의 성악 실력과 외할아버지의 음악 재능을 모두 물려받아 현재 미국 맨해튼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 유통부문을 맡고 있는 둘째 아들 채동석(41) 애경백화점 사장은 성균관대 철학과 3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동갑내기 이정은(41)씨와 결혼해 졸업하기 전 1년 동안 학생 부부로 지내기도 했다. 채 사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국제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91년 애경에 합류했다. 현재 애경백화점,AK면세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등 애경의 유통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프랜치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아버지 이병문(75)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예편한 4성 해병대 사령관 출신으로 아세아시멘트 회장을 지냈다. 큰딸 채은정(42)씨는 외숙모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안용찬(46) 애경 사장을 소개해줘 결혼한 경우다. 안 사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과정 재학 당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채씨 외숙모의 권유로 은정씨를 만났다. 은정씨도 대학 3학년때 결혼했다. 은정씨는 이화여대 조소학과를 나와 미국 애크리하트대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뒤 1998년 애경산업에 들어왔다. 애경 마케팅지원부문 상무를 맡고 있다. 채 부회장과 연세대 경영학과 77학번 출신인 안 사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채 부회장은 “안 사장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구 사이여서 이미 대학시절부터 안 사장을 알고 지냈다.”면서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유학을 끝낸 뒤 애경으로 꼭 와줄 것을 내가 청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하기 이전 유학을 마치고 미국 폰즈사에서도 마케팅 담당 업무를 맡았다. 통역 장교 1기 출신인 안 사장의 아버지 안상호(76)씨는 육군 참모총장 수석 보좌관,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 플로 코리아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막내 아들 채승석(35) 애경개발 부사장은 50만평 18홀 규모의 경기도 광주시 중부 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애경개발을 맡고 있다. 애경개발은 1987년 출발 당시부터 애경의 계열사중 유일하게 주력인 세제·화학과 동떨어진 업종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한때 SBS아나운서로도 활동했던 한성주(31)씨와 99년 6월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단국대 사학과 89학번인 채 부사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 당초 친정에서 장 회장의 경영참여를 반대했지만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카들도 여럿 애경에 몸담고 있다. 둘째 오빠인 고 장성돈 전 애경유지 사장의 큰아들인 장인규(53)씨는 과거 애경PNT(전 경신산업) 사장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갔고, 둘째 아들 장인원(49)씨는 계열사인 코스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 회장의 셋째 오빠인 고 장위돈씨가 낳은 3형제 중 큰아들인 우영(37)씨는 애경 화장품사업부장으로 있다. ●애경백화점에 남다른 애착 장 회장은 회사를 맡은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큰아들 채 부회장이 1993년 9월10일 애경백화점 개점식 인사말에서 “이 백화점을 돌아가신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순간 ‘마음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됐다.’고 회고했다. 애경백화점 본점인 서울 구로구점은 창업자인 남편 고 채몽인씨가 타계하는 순간까지 비누를 만들었던 창업 터전이다.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인 ‘미향’을 만든 곳으로 70년대까지 ‘트리오’ 등 세제를 만들다 공장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계속 창고로 써왔다.“아버지가 물려준 땅이니 잘 연구해서 활용해보라.”고 맡긴 지 3년 만에 1만평 부지가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장 회장은 애경백화점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지금도 두 아들이 사이좋게 이 백화점 5층에서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장 회장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백화점을 다녀갈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이유다. 장 회장은 즐기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채 부회장은 장 회장에 대해 “희생하는 삶만 사신 분”이라면서 “항상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아왔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여름휴가를 가본 적이 없고 남들이 취미를 물으면 ‘빨래’라고 대답할 정도로 아직도 집안 일을 혼자 한다. 말년에 잠시 정치에 참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크게 어긋나는 길은 아니란 평이다.1997년 고사해 오던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여성들이 기업하기 불편한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먹었다.1999년 민주당 신당창당 준비위원 공동대표로 영입된 뒤 백화점이 있는 구로를 텃밭삼아 16대 국회의원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왜 정치를 하느냐. 이미지 버린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여성경제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더이상 정치에 참여할 뜻은 없다. ●가족간 우애는 애경의 힘 장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애경 창사 5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4년 구로동 본사 회장실을 비웠고 결재도 큰아들에게 모두 맡기고 보고도 받지 않는다. 애경복지재단 일에 관여하며 무역협회 부회장직만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삼아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순환기계통이 안 좋은 탓에 홍콩에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는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간 볼썽사나운 재산 분쟁이 많은 재계에서 애경가문 형제들은 함께 회사를 키워가며 우애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채 부회장과 동생 채동석 사장은 10년 넘게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채 부회장은 “인맥이랄 만한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술을 먹거나 함께 어울리는 대상이 모두 형제들이다.”면서 “네 남자가 모여 술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며느리들도 친하다. 큰동서와 작은 동서도 단짝 친구 같다. 형제들이 화목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란 지적이다. 채 부회장은 1985년 입사한 뒤 점차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점을 열며 유통업계에 뛰어든 뒤 AK면세점(2001년) 애경 2호점인 수원애경역사(2003년)로 확대했고 3호점 평택역사는 2009년 완공된다. 제주도와 함께 설립한 ㈜제주항공을 통해 2006년 6월부터 민간항공 사업도 벌인다. 채 부회장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동생 채동석 사장은 유통부문을, 처남인 안용찬 사장이 생활용품 부문을 키우고 있다.2세대에 와서 생활용품과 기초화학의 양축을 키워가는 한편 유통과 항공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채 부회장은 고혈압이 있어 거의 매주 등산을 즐기고 있다. 유아세례를 받고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올린 천주교 신자이지만 산을 자주 찾는 탓에 항상 절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산사를 찾을 때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에 항상 감사드린다는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서 “애경의 힘은 형제간의 우애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장회장 ‘유별난 시간개념’ 애경가(家)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유별나다. 장영신 회장은 약속 시간보다 최소한 10분 먼저 도착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나는 사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면 꼭 10분 전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린다. 약속 시간보다 단 5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첫 대면부터 뭔가 부족한 사람이란 평가를 하게 된다. 나는 부하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시간관념을 하나의 척도로 삼는다. 시간 하나 제대로 못지키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시간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첫 관문이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작은 사실 하나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을 대변한다.”(자서전 ‘밀알심는 마음으로’에서) 그가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나인 투 파이브’ 원칙을 지켰다.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아니라 늦어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면 기상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조간 신문을 읽고 그날의 주요 업무를 점검하고 계획했다. 새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도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회의도 결재도 오전에 처리한다. 관청과 은행이 문을 여는 아침 9시 이전에는 하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을 놓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그대로다. 그래서 애경에는 오전 8시만 되면 결재를 받기 위한 줄이 이어지고, 오전 9시면 그날 결재받는 것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철저한 시간관념은 애경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아들 딸은 물론 며느리 사위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채형석 부회장은 한술 더 떠 새벽 4시면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출근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구들끼리 밥을 먹기로 하거나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모일 때는 아예 30분 먼저 나갈 정도다. 채 부회장은 “식사 시간을 통해 가족 모임이 주로 이뤄지는데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바로 우리 가족이 만나는 시간”이라면서 “예컨대 6시에 모이기로 해도 식당이 문을 여는 오후 5시 30분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고 전했다. 급한 성격 탓에 식사를 시작하면 1시간내에 모두 끝내고 일어선다. 한 번은 막내인 채승석 부사장이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약속한 정시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미 식구들이 모두 제사를 지낸 뒤 산에서 내려오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jhj@seoul.co.kr ■ 장영신 회장과 제주와의 인연 장영신 회장의 ‘제주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제주 인연은 1970년 창업주인 남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장 회장은 남편의 조의금 전액을 제주도 재경장학회에 기증했다. 장학회는 이 돈으로 지금까지 매년 30명, 모두 1300여명의 제주 출신 대학생을 후원했다. 제주도는 고 채 사장의 고향이다. 큰아들 채형석 부회장도 최소한 1년에 세차례 이상 제주도에 간다. 선산이 모두 중문 색달동에 있다.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가끔 간다. 채 부회장은 “제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 제주도에 요양을 가셨을 때 동행했기 때문에 한동안 지낸 기억이 있어 친근하다.”면서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는데 증조 할아버지까지만 기록이 있어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 회장도 제주에서 지낸 시절이 있다. 경기여고 재학시절 6·25때 제주로 피란가 1년간 지냈다. 장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주도 여성들을 보면서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애경은 제주도와 손잡고 내년 6월부터 도민의 숙원인 저가항공 시대 대열에 동참한다. 애경은 제주도와 합작해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을 만들었다.㈜제주항공의 왕복 비용은 기존 항공비용의 70% 수준인 11만원선.㈜제주항공의 애경 지분은 75%다. 채 부회장은 “이윤이 크게 나는 사업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영역이라고 보고 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는 “장 회장의 제주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전쟁 겪은 문화재 복원 노하우 배우고 싶어”

    “한국이 6·25전쟁 이후 문화재를 복원하고 관리해온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아 이라크전으로 훼손된 이라크 문화재 복구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이라크전쟁 이후 큰 피해를 입은 문화유산 재건을 추진 중인 이라크 국립박물관 소속 중견연구원 2명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주인공은 국립중앙박물관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사드 함자 제게흐(35) 연구원과 모하마드 살리 아티아(35) 연구원. 둘다 이라크 바그다드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배테랑 유적발굴 전문가다. 이들은 12일 ‘이라크의 역사와 문화유산’이라는 주제의 강연회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앞으로 3개월간 진행되는 연수계획과 목표 등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박물관대회(ICOM)에서 이라크 국립박물관측의 양국간 기술교류 및 지원 요청을 문화관광부가 적극 받아들임에 따라 초청됐다. 이라크와의 공식 문화재 인력 교류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드 연구원은 “이라크전이 끝난 뒤 국립박물관에서만 1만 4000점의 유물이 도난당했고 1만여점이 훼손됐다.”면서 “상당수는 이란·요르단·유럽 등으로부터 되찾아 왔지만 복원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라크 남부지역의 박물관과 유적지 등의 피해가 컸다.”면서 “전쟁 이후 국립박물관을 비롯,15개 박물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박물관 및 문화재를 복구하면서 테러 위험 등 안전문제가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면서 “전쟁 당시 유물들이 훼손되는 현장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며 전쟁이 낳은 피해와 상대국인 미국의 책임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은 앞으로 경주·부여 등 국립박물관과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 등을 방문해 우리 고대문화에 대해 배운 뒤 문화유적 발굴조사에도 1개월간 참가할 예정이다. 또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과학적 보존처리기술 및 첨단장비에 대한 정보교류와 실습을 통해 양국간 학술·문화협력사업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한국에서 전쟁 이후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문화재의 보존과 조사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왔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문화재관계법규와 문화재행정에 대한 자료도 적극 수집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서울 및 지방 주요 박물관을 순회하며 메소포타미아문명 및 이라크를 포함한 근동아시아 문화유적에 대한 강연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패한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 베트남 북쪽에서는 총성이 멈췄다. 호찌민은 즉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모든 정책과 사업은 현장에서 결정됐다. 호찌민 노선이 대중의 감정과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자신이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찌민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까오방 사람들은 호찌민이 주석이 된 다음 다시 찾아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까오방의 당 서기장은 성대한 음식으로 호찌민을 대접했다. 그러나 호찌민은 화를 내며 “당신이 다 먹으라.”고 자기 앞의 음식 접시를 모두 당서기장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지금 까오방성의 인민들이 어떻게 먹고 있느냐.” 밖에서는 기근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뒤 호찌민은 지방시찰 때마다 도시락을 싸갔다. 예정된 코스를 불쑥불쑥 벗어나서 방문에 대비한 어떤 준비도 헛수고로 만들어버렸다. 가뭄이 든 남딘성 이옌마을을 예고없이 찾은 호찌민은 갈라터진 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몇 바가지의 물이라도 대려고 바닥이 보이는 개울을 바가지로 긁고 있는 아낙네를 비키게 한 호찌민은 직접 물을 펐다. 그러나 갈라진 논의 틈새조차 채울 수 없었다. 이 때 호찌민은 관개수로사업을 구상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에 걸친 ‘박흥하이 관개수로사업’이 시작된 것. 삽과 들것, 수레에 의존한 이 건설운동은 디엔비엔푸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공사과정에서 수동식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수많은 운반도구들이 발명됐다. 호찌민은 전쟁에서 발휘되었던 베트남인의 창의성과 애국심을 생산운동으로 이끌어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을 가뭄에서 해방시킨 이 공사과정이 담긴 기록영화 ‘박흥하이에 물이 들다’에 1959년 모스크바영화제는 다큐부문 최고상을 안겼다. 이 영화의 감독 부이딘학은 현장을 방문한 호찌민을 네 차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까 호 아저씨가 오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돌려서 아저씨를 찍으려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어요. 일하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알아보고 마구 몰려드는 거예요. 곡괭이, 삽을 든 채로 말입니다. 당황한 경호원들이 놀라서, 연장을 들고 달려들면 아저씨는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오는데, 가까이 올수록 더 빨라지는 거예요.” 하노이의 한국식당 춘하추동에서 만난 부이딘학은 마치 어제 일처럼 말했다. “이때 호 아저씨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소리쳤어요. 호 아저씨 여기 있다. 다들 봤지. 봤으면 이제 자기 자리로 가서 일하자.” 그러나 호찌민의 인민생활 향상정책은 10년이 지난 1964년이 되면서 중대한 도전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국민들조차 등을 돌린 사이공정권의 응오딘지엠을 제거한 뒤 직접 베트남에 개입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불러올 ‘재앙’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호찌민은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1964년 8월, 통킹만을 항해하던 미국항모가 공격당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북폭을 감행했다. 이 때 국제정세도 좋지 않았다.‘수정주의’ 논쟁으로 등을 돌린 소련과 중국은 베트남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호찌민은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며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당시 반소파였던 서기장 레주언을 비롯한 당의 실세 그룹은 의견이 달랐다. 호찌민의 오른팔 보응우옌잡은 대중적 지지와 호찌민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무사했지만 그외 측근들은 레주언 그룹에 밀렸다. 그의 뜻과 달랐음에도 ‘항미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민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호찌민의 몫이었다. 호찌민이 처음 유서를 쓴 것은 1965년 5월19일,75회 생일 때였다. 자신의 건강이 미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견뎌낼 수 없다고 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 민족 해방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많은 역경과 희생이 따른다 해도 우리가 승리할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의 동지들, 전사들과 함께 남쪽에서 북쪽까지 순회하며 노인들과 젊은 청년들을 만나려던 참이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우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우리를 지지해준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할 작정이었다.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올해 나는 일흔다섯이다. 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자고로 드문’ 사람에 속한다. 마음은 아직도 거뜬하지만 육체는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그 누가 혁명을 위해 더 오래 살라고 내게 말할 수 있겠는가.” 호찌민은 죽음을 예감한 뒤 남부지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국과 전쟁이 한창이던 남부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부전선 방문은 제지당했다. 그러자 1968년 레주언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레주언 동지! 동지들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나를 멀리 보내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어 바닷바람을 마시고 투쟁하는 인민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오히려 내 건강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10일간 준비해 6일 동안 해로를 통해 남부에 닿은 다음 육로로 3일을 가면 남부전선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언제쯤 출발할 수 있는지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B(Bac/아저씨)로부터- 호찌민이 레주언에게 애걸에 가까운 편지를 쓰면서까지 남부에 가려 했던 이유는 남부 민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물러가면서 제네바협정이 체결되자 남부혁명가들은 호찌민이 있는 북을 선택했다. 사이공 정권은 남부에 남은 이들의 가족을 줄줄이 처형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터진 뒤 북부 청년들은 그 유명한 ‘호찌민 루트’를 타고 남부전선으로 내달렸다. 수많은 북부청년들은 호찌민루트에서, 남부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가 ‘호찌민’이라는 이름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때에 일흔이 넘은 나이를 이유로 후방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호찌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레주언은 끝내 호찌민의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9년 호찌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79회 생일을 며칠 앞둔 5월10일, 호찌민은 해마다 손을 보아온 유서를 다시 꺼내 마지막으로 가필했다. 그 내용은 세금감면을 비롯한, 전쟁이 끝났을 때 농민·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민생대책들이었다. 전선에서 싸운 전사들에 대한 예우도 매우 구체적으로 썼다.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자신이 그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찌민의 유서 최종본에는 2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견디고 있는 인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인민들은 수십년 동안 프랑스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와 미국 폭격기의 굉음, 이웃과 친척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인민들은 단 하루도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항전을 이끌어온 호찌민은, 미안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한 항전은 참으로 위대했으나 위대함을 감당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베트남 인민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것이었다. 그 희생은 베트남 인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희생해서 싸우자고 호소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찌민이었다. 그해 8월12일 호찌민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당과 정부, 군대의 핵심부는 이미 호찌민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남부의 전선사령부가 파견한 대표단은 호찌민루트를 타고 하노이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8월18일 호찌민은 비서 부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주석관저,10평짜리 목조주택의 계단을 올라갔다. 마지막 걸음이었다.8월24일, 호찌민의 방은 병실로 변했다. 당의 정치위원들과 군사지도자들이 병문안을 왔다.5평도 채 안 되는 호찌민의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장 무더운 8월이었고 에어컨은 없었다. 비서 부끼는 호찌민의 머리맡에 앉아 계속 부채질을 했다. 호찌민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먹고 마시려 했다. 간호사 오안이 시중드는 것도 사양했다. 대신 다른 것을 부탁했다. “노래나 하나 불러줘.” 호찌민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단 한 점의 혈육도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호찌민은 라디오를 계속 켜두라고 했다. 최후의 순간은 다가오고, 호찌민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호찌민이 겨우 잠깐 잠이 든 것을 보고 비서 부끼는 라디오를 끈 다음 그도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힘겹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끼 어이.(부끼야)” 놀라 몸을 돌렸을 때 호찌민은 라디오를 다시 켜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왜요? 오랜만에 눈을 붙이시기에 쉬시라고 껐는데요.” 호찌민은 손을 저었다. “그래도 사람소리가 들려야지…….” 9월2일 오전 9시45분, 호찌민은 숨을 거뒀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비서 부끼와 보응우옌잡 장군이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호찌민은 이미 임종과정을 찍지 말고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몰래 호찌민의 최후를 찍고 있었던 군대영화사 팜꾸옥빈의 촬영팀은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에야 방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소령으로 예편한 팜꾸옥빈은 호찌민이 자리에 누운 순간부터 임종하는 때까지 전 과정을 비밀리에 촬영했다는 사실을 집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밝혔다. 호찌민의 시신은 영구 보존처리되었고 그 장면도 모두 기록됐다. 장례절차까지 담은 이 필름은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편집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공개된 부분도 있지만 원본 가운데 20분 분량도 채 안 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의 당과 정부는 호찌민 서거일도 9월2일에서 하루 늦춘 3일이라 발표하고, 이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왔다. 팜꾸옥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9월2일은 1945년 호 아저씨가 베트남독립정부를 수립한 날이었어요. 호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만도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인데 거기다 날짜가 9월2일이라고 하면 9월2일에 호 아저씨가 세운 나라도 뒤따라 망한다는 적의 심리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 베트남에는 사흘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베트남 전역에서 울음소리와 눈물이 이어졌다. 남부 정권의 수도 사이공에서도 모든 상가가 철시했다. 장례기간 동안 베트남 전역에서 절도사건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남부의 대통령 우옌반티우조차 정중한 조의를 표해야 했다. 그토록 호찌민을 헐뜯었던 미국 언론들도 애도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호찌민을 표지인물로 세우고 장문의 조사를 내보냈다.‘지금 살아있는 민족주의자 가운데 그만큼 불굴의 정신으로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고. 그런 호찌민이 죽어서 남긴 것은 10평 남짓한 목조주택 한 채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다가 무엇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시리아군 7일부터 철수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이 7일부터 동부 베카계곡으로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레바논 국방장관이 6일 밝혔다. 이같은 주장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5일 시리아군의 2단계 철군 계획을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압둘 라힘 무라드 레바논 국방장관은 7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리는 양국 지도부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마운트 레바논과 북부지역 주둔 시리아군이 동부 베카계곡 쪽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드장관은 이같은 철군이 2∼3일안에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을 비롯한 양국 고위 관리들은 다마스쿠스 회담에서 철군 관련 세부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앞서 5일 의회 연설을 통해 시리아군이 2단계 재배치를 통해 시리아 국경 내로 철수할 것이며 양국 관계자들이 이번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군이 철수하더라도 레바논에서의 시리아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등은 아사드 대통령의 철군 발표에 대해 “일단 긍정적”이라며 조심스러운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 등은 곧바로 불만과 실망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보안요원들을 포함한 즉각적인 완전철군이 이뤄져야 한다며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레바논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기독교계 대표적 야당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는 “긍정적 출발이 될 수 있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아민 게마옐 전 대통령은 완전철군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했고 망명지도자 미셸 아운은 “유엔 결의안을 회피하려는 (아사드의) 숨은 뜻을 잘 파악해야 한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한편 베이루트에서는 이날 친시리아, 반시리아 시위대간에 충돌이 일어나 총격전까지 발생, 기독교계와 이슬람계간 대립이 다시 내전으로 비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부추겼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도덕성 시비 대기업 노조] (下) 노·사 상생의 해법은

    [도덕성 시비 대기업 노조] (下) 노·사 상생의 해법은

    ■ ’일그러진 노조’ 왜? 노동 전문가들은 기아차의 ‘취업 장사’로 불거진 노조의 도덕적 해이가 “결국 곪은 것이 터진 것뿐”이라며 “특정 대기업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노조(약자) 편향성, 강성 노조에 대한 사측의 눈치보기, 노조의 비민주성 등이 어우러져 ‘일그러진 노조’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정치세력인 대기업 노조를 감싸는 듯한 정부의 태도,‘당근’을 제시하며 노조 간부 회유에 나서는 사용자, 이를 통해 권력화된 노조가 우리 사회의 ‘귀족 노동자’들을 양산해 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법과 원칙에 입각한 정부의 중재와 불법파업에 대한 사측의 엄격한 노조원 징계, 노조 운영의 투명성 확보와 시스템 정착만이 건전한 노사 문화와 상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부 대기업 노조의 도덕성 상실을 이유로 아직도 사측의 전횡에 시달리는 비정규직과 영세 노조까지 싸잡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정규직·영세노조와 구분돼야 노사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보완, 노사정 3자의 파트너십 정신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노조의 1차 대화 상대인 사용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노조의 권력화 이면에는 사용자의 묵인이 일정 부분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사용자가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28일 노동부에 따르면 불법파업에 대해 사측이 노조에 제기한 손배·가압류는 갈수록 줄고 있다.2002년 59건,2003년 33건, 지난해 17건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연강흠 교수는 “정부나 사측이 불법파업에 대해 노조를 제대로 응징한 적이 있느냐.”면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간 것이 결국 ‘브레이크’없는 노조를 만들었다.”며 현행 법률의 엄격한 적용을 주문했다. 홍익대 김종석 교수는 노조의 이권 개입을 일종의 ‘프리미엄’으로 해석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을 주장했다.“대기업에서는 힘의 균형추가 노조로 넘어간 만큼 외부 견제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자신만의 논리에 빠져 자정 기능을 상실한 노조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제2의 기아차’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조 절대권력에 사용자 대항권 부족” 자유기업원 권혁철 박사는 “노조의 힘은 사실상 일부 간부들의 독점적인 지배구조와 조합비에서 나온다.”면서 “회계와 노조활동의 투명성을 높인다면 노조의 권력화는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불법에 대한 정부와 사측의 합당한 처벌까지 이뤄진다면 지금의 귀족 노조는 발을 붙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경영자총협회 김영완 전문위원은 “노조의 절대 권력은 사용자의 대항권이 부족해서 나타난 결과”라면서 “대체근로 허용 등 노조에 맞설 수 있는 권리를 사용자측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연구원 이주희 박사는 “기아차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노조가 그렇다는 것은 ‘오버’”라면서 “무엇보다 사측과 노조 간부들간에 이뤄지는 음성적이고 왜곡된 거래를 차단하는 것이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美 윤리·투명 노조운영 법으로 규정 미국은 윤리적이고 투명한 노조 운영을 위해 법(Landrum-Griffin)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우선 노조로부터 조합비 미납에 따른 징계를 빼고는 그 어떤 조합원도 벌금이나 정직, 제명 처분을 받지 않도록 했다. 또 재정에 대한 회계처리 사항과 노조·사용자 사이의 자금 이동 사항을 의무적으로 공개한다. 특히 신탁관리제를 도입해 노조의 자금운영에 대한 부정부패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해 무제한적인 노조의 교섭 요구 남발을 방지하고 있다. 노조의 단체교섭권은 노조 설립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교섭파트너로 인정받아야 획득할 수 있다. 영국은 파업 찬반투표 실시 7일 전에 사용자에게 일시 및 참가자 수를 통보해야 하며, 법정 투표용지 사용 의무화와 우편투표제를 실시한다. 경총 김영완 전문위원은 “국내 일부 노조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개별 조합원을 방문해 투표를 종용하고, 미리 찬반투표를 가결시켜 놓고 교섭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노조의 비민주성이 이같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만 시선을 돌리는 노조의 행태는 극히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결별한 ‘파업동지’ …그후 10년 “사고없이 멋진 공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엑슨모빌사에 현대중공업 노조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회사 고객인 세계 최대 정유회사 엑슨모빌사측에 지난 26일 감사 편지를 보냈다. 회사측은 노조의 감사편지가 선주사에 노사안정과 기술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게 해 앞으로 수주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울산에 있는 또 다른 대기업으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도약을 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요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지난 19일에는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하는 바람에 5공장 투싼 생산라인이 하루종일 멈췄다. 회사측은 이날 투싼 260대를 생산하지 못해 46억원의 손실이 났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위원장 탁학수)은 조합원 2만여명, 현대차(위원장 이상욱)는 조합원 4만 1000여명(울산 공장 2만 5000여명)으로 우리나라 노동계의 양대 축이다. 1987년 동시 창립한 두 거대 노조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에 걸쳐 우리나라 노사분규를 주도하고 흐름을 좌지우지했던 강성노조의 대표주자였다. 그러던 두 노조가 뚜렷이 비교되는 다른 길을 지금 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실리·합리 노조로 탈바꿈했다. 고공농성의 효시로 불리는 ‘골리앗 크레인 점거 투쟁(1990년 4월)’을 했던 투쟁지향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노총과도 ‘정치성 투쟁에 치중한다.’며 한동안 거리를 두다 지난해 9월 결별했다. 노조는 결별을 선언하면서 “어떤 노조도 시도하지 못했던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이겠다.”며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는 노조활동 관행을 과감하게 떨치고 개인·회사·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21세기 노동운동의 방향타가 되겠다.”고 천명했다. 현대차 노조는 여전히 투쟁하는 강성이미지로 남아 있어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이다. 노조 설립 뒤 94년 한 해를 빼고 해마다 파업을 거르지 않았다. 올해도 사정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내 비정규직 문제에다 2년마다 돌아오는 단체협약 협상까지 걸려 있다. 현대중공업이 떠난 민주노총을 지탱하는 핵심사업장으로, 사업장 밖의 각종 노동관련 문제에 대해 노·정 대리전에 나서야 하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노조 행보가 달라지게 된 원인은 두 사업장의 작업특성 때문이라는 게 노동전문가 등의 공통된 견해다. 조선업은 한두달 작업을 중단해도 나중에 몰아치기로 일을 해 공기를 맞출 수 있지만 자동차의 경우 파업은 바로 생산차질로 이어져 타격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사측은 원리원칙을 벗어나는 노조 요구에 대해서는 파업으로 압박하더라도 끝까지 수용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1988년에는 이듬해까지 128일 동안 파업을 견뎌낸 적도 있다. 이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원칙으로 자리잡아 노조측도 인식을 바꾸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장기간 파업을 견뎌내기 어려운 나머지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더러 수용하는 바람에 노조 입지와 목소리가 강해졌다는 해석이다. 현대차 노조가 단협 때마다 인사권과 경영권 관여를 주장, 일부 요구를 관철시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경우 인사·경영권은 회사 고유권한으로 인정, 논란의 소지가 있는 조항은 언급하지 않는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한편 현대차 현장에도 1∼2년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파업투표 찬성률이 낮아지고 집행부의 무리한 투쟁을 지적하며 제동을 거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많다. 잦은 파업에 염증을 느끼는 조합원들이 늘어나는 데다 조합원 평균 연령(현대차 41세·현대중공업 44세)이 높아지면서 성향이 경제적 안정을 중시하는 온건·합리로 점차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논술비타민] 사오정 강의하다

    그동안 고3 수험생들의 관심을 모았던 논술비타민과 심층비타민이 12일자를 끝으로 연재를 마감합니다.독자분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19일자부터는 더욱 알차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뵙겠습니다. 1.대학생 사오정과 저팔계,후배들을 만나다 사오정과 저팔계가 대학에 입학한 지 1년이 지났다.사오정과 저팔계는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입학한 지 1년 째 되는 오늘 사오정과 저팔계는 오랜만에 삼장 선생을 찾아뵙기로 했다. “야! 팔계야! 반갑다.그간 잘 지냈어?” 각기 다른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둘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터였다.“어! 정말 오랜만이다.그나저나 드디어 개강이구나! 후배들 빨리 만나고 싶다.” 2학년이 되어 처음 후배를 맞이하는 탓인지 저팔계는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후배 들어오는 건 좋은데,밥값이 걱정이다.” 사오정의 말에 저팔계는 웃으면서 말했다.“사실 나도 그건 좀 걱정이야.하하하!” “어쨌거나 얼른 가자.삼장 선생님 기다리시겠다.” 사오정과 저팔계는 삼장 선생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장 선생의 집 문 앞에 도착하니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문틈으로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 삼장 선생이 보인다.사오정과 저팔계가 논술 지도를 받았던 마루에는 학생들이 부지런히 논술 답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삼장 선생은 마당을 서성이다가 가끔씩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선생님!” 사오정과 저팔계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힘껏 밀치고 마당에 들어섰다.뒤를 돌아본 삼장 선생은 반가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아니! 이게 누구니? 사오정과 저팔계 아니냐?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잘들 지냈느냐!” “네! 선생님도 건강하시죠? 죄송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괜찮다.새로운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고 얼마나 바쁘겠느냐.너희들만 잘 지내면 그것으로 됐다.자!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삼장 선생은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사오정과 저팔계를 데리고 갔다. 학생들은 삼장 선생과 함께 들어온 사오정과 저팔계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삼장 선생님! 누구예요?” 한 학생이 궁금증을 견디기 힘든 듯 급하게 물었다.“자! 얘들아! 주목하렴.여기 사오정과 저팔계를 소개해 주마.둘은 너희들의 선배다.1년 전에 너희들처럼 여기에서 논술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란다.열심히 노력해서 ○○대학과 □□대학에 입학해 자신의 꿈을 펼쳐가고 있단다.1년 전에 너희들과 똑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서로 얘기를 나누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내가 한번 와 달라고 했단다.논술과 관련된 내용이나 대학생활 아무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고 서로 얘기들 나누려무나.사오정과 저팔계는 여기 앉으려무나!”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한 학생이 “논술 준비를 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사오정이 먼저 독서를 많이 하라는 등의 얘기를 하고,이어서 저팔계는 논술 준비는 철저한 계획 아래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한번 질문이 나오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질문들이 터져 나왔다. 논술과 관련된 얘기는 물론이고 대학생활에 관한 궁금증,심지어는 삼장 선생에 관한 질문까지 다양한 내용의 질문들이 쏟아졌다.사오정과 저팔계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농담을 섞어가며 재미있는 시간을 이어갔다. 2.사오정 멋지게 강의하다 “1학년 때 성적이 어땠어요?” 한 학생의 짓궂은 질문에 사오정과 저팔계는 잠시 당황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 보았다.“얼른 말해 주세요.” 질문한 학생의 재촉에 사오정이 먼저 말문을 꺼냈다.“갑작스러운 질문이어서 잠시 당황했습니다.대학 생활에서 성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텐데요.어떻든 저는 1학년 1학기와 2학기 모두 과에서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와! 대단하다!” 학생들의 경탄이 이어졌다.학생들이 시선이 이번에는 저팔계를 향했다. 저팔계는 잠시 얼굴이 빨개지더니 “우연치고는 정말 이상한 우연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사실 저도 1,2학기 모두 1등을 차지했습니다.” 사오정과 저팔계의 얼굴에서는 서로도 놀랍다는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와! 대단한 선배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로 노력파들이신가 보다!” 옆에 있던 삼장 선생도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너희들 장하구나.대학에 입학하고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구나.정말로 장하다!” 사오정은 잠시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사실 오늘 여러분에게 제일 해주고 싶은 얘기는 논술 능력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보고 ‘노력파’라고 말씀하셨는데,노력보다도 사실은 논술 능력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대학에 입학하고 보니까 학업과 관련된 대부분의 활동이 다 논술 능력과 깊은 연관 관계에 있었습니다.가령 시험을 보면,대학에서의 시험은 대부분 서술형입니다.어떤 내용에 대해 설명하거나 주장을 펴야 하는 시험이 대부분입니다.사지선다형이나 단답형 시험은 몇 개의 특정 과목을 빼고는 없습니다.따라서 동일한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논술 능력에 따라 그 성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제물도 마찬가지입니다.중,고등학교 때처럼 어떤 내용을 단순히 베끼거나 발췌하는 과제는 없습니다.일정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거나 종합적으로 이해해서 설명해야 합니다.거기에 자신의 입장이나 주관적인 해석도 곁들여야 하고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을 증명하기 위해 논리적인 근거도 제시해야 합니다.이 모두가 논술에서 요구되었던 능력들입니다.수업 시간이나 동아리 활동 등에서 각종 토론이나 발표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것들도 궁극적으로 잘 구성된 논술 내용에 기반하여 토론하거나 발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궁극적으로 대학생활에서는 논술 능력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능력임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저팔계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되는데요.제가 1학년 대학생활에서 수석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암기식 공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논술 능력에 크게 힘입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여러분이 지금은 논술 준비하는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나서 ‘이런 거 뭐하러 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논술 능력은 앞으로 여러분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대학 생활 내내 아주 긴요하게 필요한 능력임을 절대로 잊지 말기를 당부드립니다.” 사오정의 말이 끝나자 저팔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도 사오정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면서 사실 삼장 선생님이 가장 고맙게 느껴졌습니다.여러분도 1년 후에는 여러분의 후배에게 저희들과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말이 나온 김에 사오정은 대학 생활에서 논술 능력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했으니 저는 그 이후의 삶에서도 논술 능력은 요긴하다는 점을 말해 볼까 합니다. 가령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경우에 좋은 기획을 했다고 칩시다.직장 상사에게 기획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그 기획안을 채택해 달라고 설득해야겠지요? 기획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논술문 쓰기 능력은 필요하고 더 나아가 직장 상사를 설득하는 데에는 논술문 쓰기 능력이 요구됩니다.삶을 살아가다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는 논술식의 사고 방식이나 접근 방식이 요구됩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얽히고 설켜서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들이 많습니다.그런 경우를 해결하는 데에도 논술식의 해결 방법이 필요합니다.하다못해 나중에 결혼을 한 후에 부부싸움을 한 경우에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논술식의 화해 과정이 필요한 법입니다.나중에 자녀들을 낳고 교육을 시킬 때에도 논술식의 접근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아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어렵습니다.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부모님들이 논술식의 접근 방식을 외면한 탓입니다.좋은 논술문을 쓰듯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설득해 나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삶의 과정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고 일컬어집니다.삶을 살아가다 보면 끊임없이 각종 문제들이 생기고 지속적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만 보람찬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 논술 능력이 크게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논술 능력은 곧 문제 해결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논술 능력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능력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3.‘배후 세력’과 ‘난 모른다 선생님’ 사오정과 저팔계의 말을 경청하는 학생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뭔가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듯한 표정이다.“야! 너희들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구나.나는 이제 은퇴해야겠다.너희들이 이제 가르쳐라!” 정적을 깨는 삼장 선생의 목소리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 삼장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알아요?” 사오정의 물음에 학생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뭔데요?”하며 다가 앉았다.사오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저희들 가르칠 때 삼장 선생님의 별명은 ‘배후세력’이었어요.” “왜요?” 학생들의 질문에 저팔계가 답을 했다.“자신이 먼저 가르치지 않고 맨날 ‘너희들이 먼저 문제가 뭔지를 찾아 봐라.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먼저 제시해 봐라.’ 이런 식으로 우리한테 먼저 시키잖아요.그래서 별명이 ‘배후세력’이에요.” 저팔계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박장대소했다.“맞아요! 지금도 ‘맨날 너희들끼리 의논해 봐라.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봐라.’ 그러세요.하하하! 그래서 우리는 삼장 선생님을 ‘난 모른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옆에서 듣던 삼장 선생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허허! 이 녀석들이 어떻게 하면 좀더 논술을 잘 할 수 있나 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선생님 흉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구나.” 노병곤 문학박사 ‘글과생각’송파캠퍼스 원장. 전 광운대 교수
  • 이라크전 미군 사망자 1000명 넘어

    이라크전 미군 사망자 1000명 넘어

    지난해 3월 미국의 전격적인 이라크 공습이 시작된 뒤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 규모가 1000명을 넘어섰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지난해 3월부터 이달 7일(현지시간)까지 이라크에서 998명의 미군과 3명의 미군 계약직 직원이 숨졌다.사망한 군인들 가운데 752명은 작전 중 숨졌으나 나머지는 우발적인 아군의 총격 등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실상의 승전을 선언한 지난해 5월1일 이후 숨진 미군은 모두 863명이었다.CNN 등 주요 외신들에 보도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숫자를 취합해 발표하는 민간단체 이라크보디카운트(iraqbodycount.org)에 따르면,같은 기간 숨진 이라크 민간인은 1만 1793∼1만 380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이라크인을 위한 구호활동을 해온 이탈리아 여성 2명이 7일 바그다드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데 이어 이라크 안바르주 부지사가 8일 납치되는 등 이라크의 치안 불안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사드르시티·팔루자에서는 6일부터 대규모 교전이 벌어져 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사드르, 사원철수 연기

    이라크 강경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추종세력이 당초 보도된 바와 달리 시아파 성지 나자프의 이맘 알리 사원에서 철수하지 않은 가운데 22일(현지시간) 나자프에서 미군이 또다시 폭격에 나서는 등 교전 격화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이날 바그다드 북쪽 70㎞ 지점의 칼리스에서 디얄라주(州) 부지사 일행의 차량에 테러로 보이는 폭탄 공격이 가해져 2명이 숨지고 부지사를 포함해 4명이 다치는 등 이라크 곳곳에서 저항세력들의 공격이 계속됐다. 사드르측은 사원 열쇠를 넘겨주기 전 시아파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시스타니측이 대표단을 파견,귀중품을 포함한 사원의 재산 목록을 점검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며 사원 양도를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시스타니측은 미군과 사드르 세력간 교전이 대표단 파견을 막고 있다며 안전 문제를 거론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사원 철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군은 22일 폭격기를 동원,사드르 세력이 머물고 있는 나자프 구시가지에 공격을 퍼부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21일 미군은 이맘 알리 사원에 대한 포격 가능 위치까지 탱크를 배치한 가운데 사드르측과 교전했다.지난 5일 사드르측과 미군의 싸움이 시작된 뒤 나자프는 전력과 물 공급이 끊기는 등 생존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변해왔다. 한편 사드르 추종세력의 송유관 폭파 위협으로 최근 13일간 50% 이하로 물량이 줄었던 이라크 남부의 석유수출이 21일 밤부터 시간당 8만 5000배럴(하루 190만배럴) 수준으로 정상화됐다고 남부석유공사의 한 관리가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이라크 임정, 사드르에 최후통첩

    |나자프·바그다드 연합|이라크 임시정부가 19일 시아파 강경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에 최후통첩을 보낸데 대해 알 사드르측이 순교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맞선 가운데 이맘 알리 사원 밖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경찰서에 박격포탄 공격이 이어져 경찰관 8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임시정부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알 사드르의 무장세력에 대해 무장을 해제하고 사원을 비우라고 최종 경고를 보냈다.알라위 총리는 그러나 최종 시한은 제시하지 않고 “우리는 곧 해결책이 필요하다.”고만 밝혔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아라비야방송과 CNN방송은 이맘 알리 사원과 묘지 주변에서 포성과 총성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무장세력은 조건없이 무장을 해제하고 무력저항을 중단하라는 임시정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알 사드르의 전사들은 행복하게 순교할 것이라고 밝혔다.남부 나시리야의 알 사드르 조직 책임자인 셰이크 아우스 알 하파지는 알자지라 TV에 정부의 위협이 나온 뒤 바스라 등 이라크 남부지역 주민들이 몇몇 송유관에 불을 질렀으며 이라크 남부 전역의 유정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나자파 시에서는 경찰서를 향한 박격포 공격이 이어져 경찰관 8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병원 관계자들이 전했다.바그다드의 그린존에서도 박격포탄 두 발이 떨어져 2명이 부상했다고 미군 당국이 밝혔다. 한편 이라크 임시의회의 첫번째 회의가 오는 9월1일 열릴 예정이라고 푸아드 마숨 국민회의 의장이 19일 밝혔다.마숨 의장은 “이라크의 새 의회는 9월1일 처음으로 개회할 예정”이며 “이날 회의에서는 향후 일정과 논의 주제를 정하는 등 의회 규정들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전의원 19명과 새로 선출된 81명으로 구성된 임시의회는 2005년 1월 총선으로 제헌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입법부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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