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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 편견 깨고 당당히 산 조선 여걸 30명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건만 베틀 소리만 차갑게 울리는구나. 베틀에는 배 한 필 짜였건만 어느 누가 이 옷을 입을 일인가?” 허난설헌(1563∼1589)의 시 ‘가난한 여인의 노래’ 일부다. 조선시대 천재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일생은 어땠으며, 그는 언제 어떤 마음으로 이런 시를 짓게 됐을까. ‘우리 역사 속 못 말리는 여자들’(임해리 지음, 최재호 그림, 꼬마이실 펴냄)은 조선시대로 눈을 돌려, 그 시절에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삶을 개척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책은 ‘조선’과 ‘근대’로 시대가 나뉘어 출간됐다. 사회적 편견에 묶여 맘껏 뜻을 펴지 못했으나, 누구보다 지혜가 빛났던 여성 30명이 줄줄이 등장한다. 왕비, 기생, 종교인, 예술가, 독립군, 기자 등 면면은 다양하다. ‘조선’편에서는 역사책 속에서 그저 스쳐지나갔을 이름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명종의 어머니로 조선 역사상 가장 막강한 정치력을 발휘한 문정왕후, 대학자 이이의 어머니이자 예술가였던 신사임당, 빼어난 미모에 탁월한 글재주로 사대부 양반들과 당당히 붓을 겨룬 기생 황진이 등 익숙한 주인공들이 우선 눈에 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낯선 이름도 끼어 있다. 남편을 따라 죽어야 열녀라고 부추기는 제도에 맞선 영조시대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온갖 시련 끝에 평생 모은 재물을 흉년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위해 내놓은 제주 상인 김만덕 등이 그들. 다감한 이야기체의 글이 술술 책장을 잘도 넘어가게 한다. 인물을 해설하는 사이사이로 시대풍속도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각권 9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2) 삼현육각과 춤추는 아이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2) 삼현육각과 춤추는 아이

    김홍도의 ‘무동’(그림 1)은 너무나 잘 알려진 그림이다. 한데 국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야 잘 알겠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림의 내용은 낯설 것이다. 이 그림은 삼현육각을 잡히고 있는 그림이다. 삼현육각은 좌고 1, 장구 1, 피리 2, 대금 1, 해금 1로 편성한다. 그림의 왼쪽 위를 보면 벙거지를 쓰고 매달아 놓은 북을 치고 있는 사내가 있다. 좌고를 치는 중이다. 그 오른쪽의 갓을 쓴 사내는 장구를 치고 있고, 또 그 오른쪽의 사내 둘은 피리를 불고 있다. 푸른 저고리를 입은 사내는 뺨이 볼록 나왔으니, 소리를 내느라 한창 기운을 쓰고 있는 참이다. 그 아래 사내는 대금을 불고 있고, 그 아래 사내는 해금을 켜고 있다. 이것이 곧 삼현육각의 편성이다. 삼현육각에 대해서는 국악계에 많은 논문이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사정을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속편’에 알기 쉬운 설명이 있다. ‘오례의’‘악학궤범’ 이하의 음악책에 보이는 악기와 악공은 국가 의례상에 쓰는 정식의 것이거니와 그것 한 판을 갖춤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또 꼭 그래야만 할 필요도 없어서 언제부터인지 약식의 악반(樂班)이 성립하여 어지간한 경우에는 이것만으로 수용(需用)에 충당하고, 더욱 민간에서의 주악은 이 정도로 만족하는 신 기준이 성립하니, 이것이 삼현육각, 줄여서 삼현 혹 육각이라는 것이요, 근세에 보통으로 풍악을 잡힌다 하면 이것을 가르킵니다. 즉 원래 ‘오례의’나 ‘악학궤범’에서 정한 정식 악반이 아니라, 줄인 약식 악반을 말하는 것이 삼현육각이다. 더 읽어 보자. 삼현육각은 북·장구·해금·피리(한쌍)·대금을 이르니, 삼현육각의 말뜻은 진실로 명백치 아니하되, 대개 삼현은 해금을 따로 친 것이요, 육각은 악기의 총수를 말한 것인 모양입니다(巫樂은 위에 든 5종 외에 지금이 들어가 여섯이 됩니다). 삼현육각 대신 ‘육잡이’란 별칭도 있습니다. 여하간 북·장구·해금·피리 1쌍·대금 여섯 가지 합주는 근세 조선에 성립한 악반 조직입니다. 삼현육각은 언제 생겼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조선후기에 널리 유행한 음악이다. 삼현육각은 잔치의 흥을 돋울 때 많이 사용되었다. 또는 무용의 반주음악으로, 벼슬아치의 나들이에 위세용 행진곡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물론 삼현육각이 늘 다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지방에 따라 연주하는 레퍼토리가 약간씩 차이가 지기도 하였다. 기생이 검무를 추는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그림이 남아 있는데, 여기도 삼현육각이 보인다. 조선후기의 유흥공간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밴드 구성이었던 것이다. 삼현육각이 이렇게 풍속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게 된 것은, 조선후기에 와서 민간의 음악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조금 엉뚱한 이유가 있다. 영조는 무려 52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인물이다.52년 동안 그가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정책이 금주정책이었다. 백성이 먹을 곡식도 부족한데 술이 웬 말이냐는 것이 영조의 논리였다. 궁중의 잔치, 제사에도 술을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도 마시지 않았으니, 민간에서는 정말 술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민간에서 부모가 환갑을 맞이하면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술을 쓸 수 없으니, 흥이 안 난다. 그래서 풍악을 크게 잡혀 잔치를 흥겹게 하고, 남에게 과시도 한다. 여기서 음악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 삼현육각에 동원되는 연주자들은 대개 장악원 소속의 악공들이다. 장악원 악사들은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기간은 제법 대우를 받았으나, 임진왜란 이후부터 국가는 이들의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없었다. 악공들은 여러 차례 조정에 하소연하였으나, 하소연을 들어줄 조정이 아니다. 결국 밖에서 해결책을 찾는 수밖에. 악공들은 기생, 가객(歌客), 금객(琴客) 등과 어울려 일종의 밴드를 결성하여 민간의 요청에 응하고 연주료를 받았던 것이다. 아마 그림에 나오는 삼현육각 역시 그런 밴드일 것이다. 이제 춤을 추는 사람을 보자. 어린 아이다. 옷자락이 날리고 표정도 흥겹다. 추는 춤은 무슨 춤인지 모른다. 국악을 하는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삼현육각 반주에는 궁중무용은 아니고 민속춤을 추는데, 승무나 검무를 춘다고 한다. 검무를 추는 것은 신윤복의 그림에 나오니 확인이 된다. 한데 위의 춤은 승무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춤추는 아이를 무동이라고 한다.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 圖)’(그림 2)는 노인들이 잔치를 벌이고 난 뒤 기념으로 그린 것인데, 중앙의 춤을 추는 두 사람을 자세히 보면 역시 무동이다. 무동이 출현한 것은 기생과 관련이 있다. 원래 기녀제도는 한국만의 독특한 것이다. 물론 기녀는 중국에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기녀를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습속이다. 조선은 알다시피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성리학은 말하자면 윤리학이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물질적 육체적 욕망을 절제할 것(사실은 끊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성리학을 내면화한 사람이 곧 사대부이고, 사대부가 정치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성리학이 주장하는 바다. 그렇다면 사대부들은 보다 윤리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기생제도는 바로 지배자가 되는 사대부들의 윤리화와 충돌하였다. 조선은 성리학을 진리로 표방했지만, 불교사회인 고려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기녀제도도 그 중 하나였고, 기녀제도에 대해서도 별 말이 없었다. 기녀는 관청의 노비였다. 즉 서울과 지방 관청에 소속된 노비 중에서 일부를 뽑아 기녀로 만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3년에 한 번 지방의 기녀를 서울로 뽑아 올려 장악원에서 소속시켜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궁중의 각종 잔치와 사대부의 잔치에 동원했던 것이다. 아무도 여기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세종 12년 7월 28일 김종서가 기녀를 없애자고, 즉 기녀제도를 없애자고 요청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예와 음악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근본입니다.……우리나라의 예와 음악은 중국과도 견줄 만한 것이므로, 옛날에 중국 사신 육옹·단목지·주탁 등이 사명을 받들고 왔다가 예와 음악이 갖추어져 있음을 보고는 또한 모두 아름다움을 칭찬하였으나, 다만 여악(女樂, 기녀)이 섞여 있는 것을 혐의쩍게 여겼습니다. 중국 사신들은 조선에 와서 연회에 참석했고, 거기서 기녀의 춤과 노래를 보았던 것이다. 중국 조정에는 공식적으로 기녀를 동원하는 일이 없었으니, 이들이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세종은 김종서의 말에 망설인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기녀를 대체할 수단으로 무동을 쓸 것이 결정되었다. 세종 15년 1월 1일 회례연에서 아악이 초연될 때 무동과 가동(歌童)을 씀으로써 국가의 공식 연회에서 기녀가 제거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기생제도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녀제도는 여전히 있었다. 무동도 문제가 되었다. 무동은 보통 10대 초반의 노비의 자식을 뽑아서 쓰는데, 이들은 금방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동을 세종 25년에 또 폐지한다. 다시 기녀를 쓰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종 단종 성종 세종 연간에 관료들은 중국 사신의 접대에 기녀를 쓰지 말자고 줄기차게 청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연산군 때는 기녀를 엄청나게 증원했으니, 폐지란 말도 꺼내지 못했다. 기녀가 폐지된 것은 중종 때 조광조가 이끄는 기묘사림에 의해서다. 기묘사림은 연산군의 황음을 경험했던 터라, 기녀를 없애자고 주장했고, 그 주장을 따라 기녀제도가 혁파되었다. 하지만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쫓겨난 뒤 기녀제도는 복구되었다. 이후로는 영원히 기녀를 없애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동은? 무동 역시 그대로 두었다. 이것이 이 그림에 무동이 나오는 연고인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하이원리조트 명물 ‘운암정’

    하이원리조트 명물 ‘운암정’

    강원랜드의 운암정(雲岩亭)이 방영 중인 드라마 ‘식객(食客)’의 세트장으로 소개되면서 문을 열기도 전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운암정은 전통 한국음식점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는 연말쯤 손님을 맞는다. 카지노, 호텔, 스키장에 이어 또하나의 하이원리조트 명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건물은 지난달 중순 전통 기와집으로 지어졌다. 카지노호텔 앞 4260㎡의 부지에 정원, 연못, 장독대가 있는 운암정, 주방동, 사무동, 숙수살림집, 숙수동, 대문채 등으로 격식을 차렸다. 내부는 현대건축 양식을 접목시켰다. 하이원리조트 측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운암정에도 한류 열풍이 불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운암정을 이용하는 식객들의 만족도가 높으면 하이원리조트와 카지노장을 찾는 관광객도 많을 것이란 계산이다. 운암정은 모두 108석의 좌석을 갖고 있다. 입식도 60석 마련됐다. 음식은 궁중 한정식으로 하고 고급·명품화하기 위해 예약제로 운영한다. 드라마 식객에 소개되는 메뉴를 코스요리에 넣고 궁중음식, 사대부집의 음식을 재현해 손님상에 내기로 했다. 음식 재료도 최고급 유기농만을 엄선해 사용한다. 이곳에는 다례(茶禮) 체험관도 마련된다. 김운태 하이원리조트 과장은 “연말쯤 손님을 맞으면 드라마에서처럼 국내 최고의 한식점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02일 TV 하이라이트]

    ●낭독의 발견(KBS2 밤 12시45분) 주연을 맡은 영화만 506편. 영화가 인생의 전부였다고 회고하는 남자. 영원히 은막에 아로새겨질 전설의 이름, 영화배우 신성일이 낭독무대에 오른다.2008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62년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청춘스타 시절부터 시작된 뮤지컬 사랑을 털어놓는다.   ●스포트라이트(MBC 오후 9시55분) 조 변호사 협박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태석은 무고함을 호소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태석을 찾아간 우진에게 위험해지니 나서지 말고 자신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 말한다. 우진과 순철은 국정원에서 조 변호사 보호조치를 취했다는 증거로 조 변호사와 인터뷰하던 날의 CCTV 녹화화면을 입수한다.   ●산너머 남촌에는(KBS1 오후 7시30분) 과수원에 흑점병이 번지기 시작하자 순호는 그게 재곤이 탓이라며 몰아세운다. 화가 난 재곤은 순호와 말다툼을 하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져 순호의 팔이 부러진다. 종갓집과 과수원집은 이 사건으로 신경전이 벌어지고 마침 서울친구로부터 사업제안을 받은 재곤은 서울로 떠나게 되는데….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는 미술시장. 하지만 그 내부 모습도 화려하고 우아할까? 작품가격을 정하는 건 누구이며,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건 또 누구일까? 세계적 경매회사의 수석 경매사와 현대미술의 거장,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게임 같은 미술시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일지매(SBS 오후 9시55분) 은채는 사대부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객점인 금루각에 대해 소개하게 되고, 변식은 능청스럽게 이곳이 고품격 숙박시설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편, 무인도에서는 용이가 공갈로부터 무술을 전수받고 있는데, 수세에 몰리던 용이는 어느 순간 공갈의 공격을 막아내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북한 핵문제가 진전되는 과정을 보면 황소걸음을 연상케 한다.2·13합의대로라면 북핵 신고와 불능화는 지난해 말에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6개월 늦은 지난주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냉각탑을 폭파하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여준 셈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한나라당 국제통인 박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눈다.
  • 현직 프리미엄 vs 단일후보 조직력

    현직 프리미엄 vs 단일후보 조직력

    ‘현직 프리미엄이냐, 단일 후보의 조직력이냐’ 다음달 30일 실시되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한달여 앞둔 26일 사실상 선거전에 들어갔다. 전국교직원노조 등 진보진영의 단일후보인 주경복 예비후보가 이날 예비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가졌다. 건국대 교수인 주 예비후보는 민주주의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 출신으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대표 등을 역임한 진보성향의 학자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를 통해 모든 것들을 바로잡고 서울의 교육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외고폐지 ▲초등학교 일제고사·우열반 폐지 ▲공립형 대안학교로 평준화 완성 ▲반값 대학등록금 공론화 등의 다소 파격적인 정책공약을 내걸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등 지지자들의 명단도 공개했다. 주 예비후보를 포함해 지금까지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모두 7명이다. 김성동 전 경일대 총장, 이규석 전 서울고 교장, 이인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장옥 전 동국대사대부고 교장, 이영만 전 경기고 교장, 장희철 행정사무소 대표 등이다. 선거전은 진보진영의 단일후보인 주 예비후보와 공정택 현 교육감의 양자대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 교육감은 오는 7월1일 예비등록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당초 공 교육감이 지지도에서 상당히 앞선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같은 기류에 변화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서울시교육청으로까지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 예비후보를 사실상 지지하는 전교조 서울지부 회원 1만 2000여명이 탄탄한 조직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나머지 후보들이 거의 다 보수성향을 띠고 있어 보수의 표분산도 예상된다. 후보자 본등록이 끝나는 다음달 17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가운데 현직 이점을 앞세운 공 교육감이 주 예비후보의 조직력을 얼마나 막아내느냐가 결국 승부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엄지원, 영화 ‘공중 곡예사’로 시대극 첫 도전

    엄지원, 영화 ‘공중 곡예사’로 시대극 첫 도전

    배우 엄지원이 영화 ‘공중곡예사’(감독 박대민ㆍ제작 CJ 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됐다. ‘공중곡예사’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미궁의 살인사건을 쫓는 명탐정 홍진호(황정민 분)과 그를 돕는 의학도 광수(류덕환 분)의 활약을 그린 추리스릴러물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시대극에 도전하는 엄지원은 사대부가의 부인이지만 신분을 감춘 채 여류발명가로 활동하며 탐정 진호의 수사에 필요한 발명품을 만들어주는 숨은 조력자인 순덕 역을 연기한다. 그동안 영화 ‘가을로’, ‘주홍글씨’, ‘스카우트’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엄지원은 순덕 역을 통해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한편 여류 발명가로서 당차고 힘있는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엄지원은 “사대부가의 여인이자 신여성인 순덕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어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간다.”고 밝혔다. 한편 엄지원을 비롯해 황정민, 류덕환 등이 출연하는 영화 ‘공중곡예사’는 지난 20일 크랭크인 해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웰메이드 스타엠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베이징올림픽 D-50] 양궁·레슬링 금메달 사냥 든든한 후원자

    [베이징올림픽 D-50] 양궁·레슬링 금메달 사냥 든든한 후원자

    대한체육회와 산하 단체들은 한국의 올림픽 메달순위 10위를 목표로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특히 체육회는 지난 17일 올림픽 메달리스트 조재기 동아대 스포츠과학대 교수를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는 등 ‘이연택 회장 체제’를 완성, 본격적인 메달 독려 작전에 들어갔다. 이연택 체육회장은 선수단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이달과 다음달,8월 세 차례에 걸쳐 특별 훈련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금메달 포상금도 대폭 올리기로 하는 등 달콤한 당근을 제시했다. 이연택 회장은 18일 “한국은 시드니올림픽 때 금메달 포상금으로 1000만원을 지급했고, 아테네올림픽 때는 2000만원을 주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때는 5000만원으로 대폭 올릴 계획이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취임한 이연택 회장은 최근 태릉선수촌에서 하룻밤을 자는 등 직접 나서 선수들의 메달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체육회 금메달 포상금 5000만원 계획 ‘메달 효자종목’ 양궁이 대표적이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2005년 아버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으로부터 대한양궁협회 회장직을 대물림했다. 양궁은 현대가(家)로부터 23년 동안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올림픽에서만 금 14개, 은 7개, 동메달 4개를 수확했다.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선 금메달 4개 가운데 3개를 싹쓸이했다. 정몽구 회장은 198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후 물심 양면으로 양궁을 지원해왔다. 시간만 나면 대회를 관람, 뙤약볕 아래 선수들을 응원하곤 했다. 이러다 보니 양궁협회는 아마추어 경기단체로는 상상하기 힘든 연간 26억∼29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쓴다. 양궁협회 한 관계자는 “현대로부터 연간 20억원 이상의 지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최근 삼성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빼놓을 수 없다.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삼성그룹 소속 국가대표 선수가 따낸 메달만 금 4개, 은 3개, 동메달 1개에 이를 정도로 투자를 했다. 이같은 메달 수는 당시 참가한 202개 나라 가운데 19위에 해당할 정도로 대단한 성적이었다. 여기에는 이건희 위원의 든든한 뒷받침이 밑거름이 됐다.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 잠시 레슬링과 인연을 맺었던 이 위원은 1982년부터 96년까지 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레슬링을 키워왔다. 투자한 만큼 결실이 나왔다.84년 LA올림픽 때부터 6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 위원은 회장직도 친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게 물려줬다. 이후에도 명예회장을 맡으며 연간 9억원씩 협회에 지원해준다. 레슬링팀도 만들어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삼성생명 레슬링단은 88년 서울올림픽 때 김영남이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올림픽에서만 금 4개, 은 6개, 동메달 1개를 거둬들였다. ●현대차·삼성·대교 등 비인기 종목 지원 이 위원은 레슬링뿐만 아니라 탁구에도 열정을 쏟았다.1978년 제일합섬과 제일모직에 남녀 탁구단을 만들도록 했다. 당시 한국 탁구가 중국 탁구에 힘을 쓰지 못하자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삼성생명이 탁구단을 운영한다.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유승민이 중국의 높은 벽을 넘고 개인단식 금메달을 수확하는 데 이 위원의 땀이 배어 있는 셈이다. 교육사업으로 자수 성가한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의 배드민턴 사랑도 유별나다. 어머니와 배드민턴를 치며 건강을 유지하던 강 회장은 1997년 당시 오리리화장품 해체로 갈 곳이 없던 방수현을 데려오면서 아예 팀을 창단했다. 이후 배드민턴계에 몸을 던져 배드민턴협회장, 아시아배드민턴연맹 회장을 거쳐 2005년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국제스포츠연맹 회장을 맡은 이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와 강 회장뿐이다. 강영중 회장의 배드민턴 지원은 더 강화된다. 지난 1월 세계배드민턴재단(WBF)을 만들었다. 공익재단인 WBF는 출연기금이 무려 1000만달러(약 100억원)에 이른다. 강 회장은 “내년에 재단 기금을 2500만달러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전용체육관을 건립해 세계적인 배드민턴 아카데미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배드민턴에 대한 기여 때문에 강 회장은 세계 배드민턴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중국의 홈 텃세를 우려하는 선수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전망이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6) 남한산성과 강화도

    [병자호란 다시 읽기] (76) 남한산성과 강화도

    남한산성은 천험(天險)의 요새였다. 성곽의 가장 높은 누대에서는 도성과 살곶이(箭串場)가 한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인조가 들어갔던 무렵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기온이 몹시 떨어져 성으로 오르는 길이 온통 얼어 붙었다. 청군의 선봉이 제 아무리 ‘강철 같은 기마대(鐵騎)’였다고 할지라도 어찌 할 수 없는 험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방어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황망한 와중에 갑작스레 들어온 터라 수비할 군병도, 그들을 먹일 군량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고립된 성 위험” 강화도행 주장 나와 일부 신료들이 남한산성에 들어오자마자 강화도로 가자고 주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산성을 사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김류와 이식(李植)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김류는 고립된 성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강화도 행을 강조했고, 이식은 오히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면 적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의견 대립은 서로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식이 먼저 “김류는 문재(文才)로 발신한 사람이라 일을 도모하는 것이 시원찮다.”며 자극했다. 김류는 발끈했다.“이식은 서생(書生)이라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다.”며 맞받아 쳤다. 강화도로 들어갈 시간적 여유를 앗아가 버린 장수들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장령(掌令) 이후원(李厚源)은 도원수 김자점을 군율로 처단하라고 요구했다. 그가 적과 접전 한 번 제대로 시도하지 않고, 보고조차 소홀히 하는 바람에 적이 서울로 직행할 수 있었다고 비난했다. 사헌부 신료들은 적을 막는데 실패한 부원수 신경원(申景瑗), 평안병사 유림(柳琳),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 등과 도원수 김자점을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 등을 군율로 다스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적과의 싸움을 회피하는 장수는 엄벌하겠다던 엄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도성을 겨우 빠져 나와 어렵사리 산성으로 들어 왔던 후유증 때문인지 인조는 몹시 지쳐 있었다. 인조는 김류 등의 강청에 못 이겨 15일 새벽, 강화도로 가기 위해 산성을 나섰다가 발뒤꿈치에 동상까지 걸렸다. 수행하던 신료들은 부랴부랴 인조를 털방석으로 감싼 채 남문을 통해 성으로 돌아왔다. 인조는 남문에서 교자를 타고 행궁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인조가 동상이 걸린 이후, 강화도로 가자는 주장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고립된 산성에 대한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일부 신료들은 세자라도 강화도로 보내야 한다고 했고, 일부는 강화도 대신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주장했다. 채유후(蔡裕後)는 국가의 회복은 오로지 영남과 호남에 달려 있다며 동궁(東宮)을 양남으로 보내라고 촉구했다. 동궁이 내려가면 군사를 모으는 것은 물론 사대부들의 민심을 얻을 수 있다며 호남으로 가는 것이 상책, 영남으로 가는 것이 중책, 강화도로 가는 것이 하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청군의 의도를 오판하다 최명길이 마부대를 만난 뒤 올린 장계가 산성에 도착하자 조정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부대는 최명길에게 자신들이 깊숙이 들어온 이유를 조선과 화친을 다시 맺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김류는 최명길의 장계를 토대로 상황이 정묘호란 당시와 비슷하고 ‘청군의 의도는 서약을 다시 맺는데 있는 것 같다.’며 낙관론을 폈다. 김신국(金藎國)은 “그들 뒤에 후군(後軍)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로지 화친에 뜻을 두고 있는 것 같다.”며 김류의 의견에 동조했다. 마치 화약을 맺기 위해 선봉대만 내려온 것처럼 가장하려 했던 마부대의 기만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인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최명길이 마부대에 속은 것 같다며 김류 등의 낙관론에 대해 찜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화친’을 운운하자 청군의 사자(使者)가 올 경우, 그들을 산성 안으로 들일지의 여부를 물었다. 사자 이야기가 나오자 이경증(李景曾)은 “청사(請使) 접대에 필요한 소는 구할 수 있는데 술을 구할 수 없어 고민”이라며 그들과의 화친을 아예 기정사실로 여기는 발언을 했다. 청군의 침략 의도와 관련하여 이성구(李聖求)만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명을 공격하려는 홍타이지의 의도가 바뀌지 않았다면 청군이 평양 이남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1636년 12월15일 저녁, 청군의 사자가 산성 근처에 나타났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적이 코앞에 와 있다는 현실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류는 인조에게 강화도로 피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이성구도, 신료들을 산성에 두고 대장 10여인을 거느리고 빠져 나가면 남양(南陽)에서 배를 탈 수 있다고 인조에게 강화도로 가라고 채근했다. 인조의 표정은 어두웠다.“경들은 모두 어진 사대부들인데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르니 개탄스럽다.”며 탄식을 내뱉었다. 잠시 후 신경진이 새로운 정보를 들고 나타났다. 청군이 이미 한강을 건너와 봉은사(奉恩寺) 근처에 진을 쳤다는 소식이었다. 인조는 갑자기 ‘국운이 이미 다했으니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올바르게 죽고 싶다.’며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 어느 순간 강화도로 가자는 논의는 다시 가라앉고 있었다. ●김경징의 ‘멸공봉사(滅公奉私)’ 신료들 가운데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都體察使)인 김류가 산성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강화도 행을 계속 고집하는 것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 12월15일, 사간 김홍욱(金弘郁), 주서 이도장(李道長) 등은 ‘김류는 가족들이 모두 강화도에 있기 때문에 대가를 옮기자고 청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2월13일, 강화도를 책임질 검찰사(檢察使)로 김류의 아들 김경징(金慶徵)이 추천되었을 때 인조는 김류에게 의견을 물었다. 김류는 자신의 아들이 직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인조는 김경징을 검찰사로 임명했다.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인조는 인조반정의 원훈(元勳)이자 영의정인 김류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조의 이 결정은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무렵, 도성 안팎의 모든 사람들은 강화도로 들어가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당시 강화도로 가려면 양화진 등지에서 배를 타고 김포까지 간 다음 다시 배를 타고 갑곶 등지로 상륙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강이 얼어 있던 상황에서 배를 이용하여 김포로 가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자연히 육로를 통해 김포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문제는 이들을 강화도로 실어 나를 배편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김경징은 검찰사로서 배를 차출하고 그 배에 누구를 먼저 태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거머쥐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그것이 생사여탈권이나 마찬가지였다. 김경징은 도성을 출발할 때부터 철저히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인조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는 자신의 모친과 처를 옥교(屋轎)에 태우고 집안의 재물을 운반하기 위해 인부들을 동원했다.‘양구기사(陽九記事)’등에는 김경징 집안의 가솔과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을 운반하기 위해 경기도의 마부들이 거의 모두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경징은, 말을 타고 가던 자기 집안의 비녀(婢女)가 말에서 떨어지자 노상에서 마부에게 매타작을 퍼부었다. 강화도로 가는 배에도 당연히 가족들을 비롯하여 자신과 친한 사람들을 먼저 태웠다. 왕세자빈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루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하물며 일반 사족이나 백성들은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김경징은 강화도의 방어와 그 섬으로 들어간 왕실 인척들의 안위를 책임질 그릇이 아니었다. 만몽한(滿蒙漢)의 정예들을 끌어 모아 침략해 온 청군 앞에서 국가의 안위를 책임졌던 당국자들 가운데는 김자점이나 김경징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비극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서울시교육감 직선제 아세요?

    “우리도 투표를 하나요?” 오는 7월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주민직선으로 치러진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심지어 교사들 중에서도 선거일은 물론 직선제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선거는 휴가시즌에, 그것도 평일에 치러진다. 때문에 투표율은 10%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선자의 득표율이 한 자릿수에 그칠 수도 있어 대표성 논란도 예상된다.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고민을 갖고 있지만 13일 교육감 선거 ‘입후보안내설명회’를 열었다. 공정택(74) 현 교육감쪽 관계자 2명을 포함, 예비등록을 한 6명의 후보측 관계자 14명이 참석했다. 출사표를 던진 6명은 김성동(66) 전 경일대 총장, 이규석(61) 전 서울고 교장, 이인규(48)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장옥(56) 전 동국대 사대부고 교장, 이영만(61) 전 경기고교장, 주경복(58) 건국대 교수다. 공 교육감도 조만간 등록을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7∼8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일 것으로 점쳐진다. 후보 본등록은 다음달 15·16일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선거가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공 교육감과 사실상 진보세력의 단일후보인 주 교수의 양자대결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다루는 예산만 지난해 기준 6조 1574억원으로 부산시 전체 예산(6조 7372억원)과 맞먹는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과학기술부가 다뤘던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가 모두 교육청으로 넘어오게 되면 교육감은 말그대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된다. 이처럼 ‘막중한 자리’를 뽑는 선거지만 주민들의 관심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2월 치러진 부산시교육청 교육감 선거 투표율은 15.3%에 불과했다. 당선자 득표율은 유권자 대비 5%에 그쳤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더 저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우리말 여행] 아내와 부인

    아내는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를 말한다.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부인은 예전에 사대부 집안의 남자가 자기 아내를 이르던 말이다. 신문 기사에서 종종 나의 부인이라는 잘못된 표현이 나온다. 당연히 나의 아내라고 표현해야 한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1) 나룻배와 강 건너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1) 나룻배와 강 건너기

    김홍도의 그림 ‘나룻배와 강 건너기’를 보자. 나룻배가 두 척이다. 이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이다. ●조선의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 원래 조선의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이다. 일제시대 이후 평저선이 사라지고 현재 우리가 보는, 바닥이 삼각형인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유원지 같은 곳에서 두세 사람이 타는 작은 배의 바닥을 보면 모두 평평하다. 안정성을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배가 과연 조선 배의 전통을 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지금도 조선 배의 전통에 따라 평저선을 뭇는 장인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림에는 나룻배가 둘이다. 위쪽 나룻배에는 사람 열 둘과 소 두 마리가 타고 있다. 소까지 태웠으니, 꽤나 큰 배다.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고물 쪽의 두 사람은 사공인데, 큰 배라 힘이 드는지 둘이 같이 노를 젓는다. 바로 그 앞에 더벅머리 총각 하나와 맨상투의 상한(常漢)이 앉았는데, 마주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행이 분명하다. 두 사내 앞에 아이를 동반한 아낙네 한 사람이 있다. 머리에 올린 것은 옷이다. 이런 식으로 머리에 옷을 올리는 장면은 신윤복의 그림에도 나오니, 이 당시 풍습이었던 것이다. 아낙네의 앞에 삿갓을 쓴 사내가 있는데, 아마도 상한일 것이다. 그 뒤에 갓을 쓴 양반이 있다. 양반은 뒤에 길쭉하게 포장한 것을 지고 있는데,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 소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서 있다. 등에 잔뜩 진 것은 땔나무다. 서울의 저자에 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소 사이에 더벅머리 총각이 곰방대를 물고 있고, 왼쪽 소의 왼쪽에 다시 삿갓을 쓴 사람이 있다. 아마도 삿갓을 쓴 두 사내와 총각은 땔나무를 팔러가는 일행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에는 갓을 쓴 선비가 앉아 있고, 또 그 왼쪽에는 갓을 쓴 양반이 장죽을 물고 있다. 아래의 나룻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역시 오른쪽 끝에는 사공이 등을 돌리고 노를 젓고 있고, 그 왼쪽에는 망건 바람의 사내가, 그 오른 쪽에는 갓을 쓴 선비가 있다. 삿갓을 쓴 사내도 셋이 있고, 아이를 업은 아낙도 있다. 맨 왼쪽에는 학자풍의 양반이 점잖게 앉아 강을 보고 있다. 배의 왼편에는 빈 길마를 얹은 소가 한 마리, 말이 한 마리다. 그리고 왼쪽 소의 옆에 검은 물체가 보이는데, 역시 말로 보인다. 어린 총각이 말을 돌보고 있다. 두 척의 나룻배는 조선사회의 상하, 남녀를 모아놓고 있다. 김홍도의 다른 풍속화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는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26명의 인물은 표정이 없다. 무료해 보인다. 인물들이 너무 작게 그려져 그렇다고. 천만에! 화가는 작은 얼굴일지라도 표정을 드러내 보인다. 아마도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말수가 많은 사람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더구나 여기는 강 한 복판이다. 탁 트인 넓은 공간, 그것도 일상에서 늘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오면 그저 강물을 바라볼 뿐이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 속에서 멍해지는 느낌! 이형록(1808∼?)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그림 ‘나룻배’를 보자. 배가 두 척인데, 위쪽의 배는 햇볕을 가리는 포장이 쳐져 있고, 배에 탄 사람은 모두 갓을 쓴 양반들이다. 아래쪽의 배에 탄 사람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토록 다양한 신분의 많은 사람, 그리고 장사꾼과 소와 말까지 태워 동시에 두 척의 배가 강을 건너는 곳이라면 한강의 어느 나루에서 출발한 나룻배일 것이다. 서울의 나루터라면 어디인가. 나는 이것을 밝혀낼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말이 난 김에 한강의 나루터에 대해서 몇 마디 덧보탤까 한다. ●광나루·노량진에 별감 첫 배치 ‘태종실록’ 14년 9월 2일조에 의하면 처음으로 광진(廣津)과 노도(露渡)에 별감을 두었다고 하는데, 곧 지금의 광나루와 노량진이다. 이 기사에서 경기관찰사는 경기도 안의 임진·낙하(洛河)·한강에는 별감을 두고 기찰을 하지만, 금천·노도·광주·광진·용진(龍津)에는 기찰하지 않아 범죄자들이 태연히 드나든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은 ‘낙하’를 제외하면 지금 서울 사람들이 잘 아는 곳들이다(노도는 노량진, 광진은 광나루, 용진은 용산이다.‘한강’은 지금의 한남동 앞의 강을 말한다).‘연산군일기’ 11년 5월 9일조를 보면 한강·마포·광진·두모포 등의 나루가 보이는데, 마포와 두모포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마포는 지금의 마포고, 두모포는 지금의 옥수동 앞이다. 다시 ‘선조실록’ 26년 10월 3일조를 보면, 한강 나루 중 남쪽 길과 통하는 광진·한강·노량·양화 나루는 모두 대로(大路)지만 그 외의 삼전도·청담·동작은 폐기해도 상관없는 소소한 나루터라고 하고 있다. 나루에도 랭킹이 있었던 것이다. 한강에 이렇게 나루가 많이 생긴 것은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한양이 수도가 되니, 한강은 절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충청도와 강원도를 경유하기에 두 지방의 세금을 받아 옮기는 길이었고, 또 전라도 일대의 세금과 물자를 바닷길로 옮겨서 다시 서울로 운송하는 길이었다. 한강은 또 서울을 방어하는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한강은 동시에 길을 끊는 장애물이었다. 자연히 강을 건너기에 편리한 곳, 또는 꼭 건너야 할 곳에 자연스럽게 나루가 생겼다. 국가에서는 또 그런 곳에 나루를 설치해 관리하기도 하였다. 국가가 관리하는 나루터의 사공은 나라로부터 일정한 토지를 지급받아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한다. 이런 나루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나룻배를 타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효종 6년의 ‘실록’ 기사에 의하면, 원래 한강의 동작, 노량, 광진, 삼전도, 양화도, 공암 등 나루터에는 병자년 이전에는 모두 위전을 지급하고 나룻배를 책임지고 갖추도록 했는데, 병자호란 뒤 이 위전들을 한강 가에 사는 사대부들이 강제로 점유한 탓에 뱃사공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먹을 것도 안 생기는 일에 열심일 사공은 없다. 배는 만들지도 않고 수리도 않는다. 결과는 뻔하다. 여행객들이 강을 건널 수 없다. 효종은 다시 위전을 찾아서 주고 경기감사에게 나루터의 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명령한다(‘효종실록’ 6년 10월 7일). 그 뒤로도 나루터 관리를 두고 별별 일이 다 벌어졌다. 나루터의 사공은 천민이었다. 나루를 떠날 수 없는 그 직업은 고달팠다. 한밤중에라도 강을 건너는 양반이 있으면 배를 내어야 한다. 예컨대 현종 때는 종실 몇이 궁노를 데리고 한강 너머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가 동작 나루에 와서 나룻배를 빨리 대령하지 않았다고 사공을 마구 구타했다(‘현종실록’ 5년 9월 9일)고 하니, 사공의 괴로움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모든 나루터가 국가 직영인 것은 아니었다. 개인이 돈을 받고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선(私船)도 있었다. 사선은 관선(官船)에 비해 서비스가 좋았던 모양이다. ‘세종실록’ 25년 10월 11일조를 보면, 노도·삼전도·양화도의 관선은 무거워 사람과 말이 쉽게 건널 수 없고, 사선은 가볍고 빨라 쉽게 건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선을 이용하지만 사선은 삯이 비싸 백성들이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한강 이외의 강의 나루에는 보통 근처 마을에서 배를 장만하고 사공을 따로 두었다. 사공은 봄 가을로 삯을 몰아서 받고 따로 뱃삯을 받지는 않았다. 나룻배로 넓은 한강을 건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숙종때 선비 80명 한강서 몰사 숙종 44년에 과거를 치르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비들 80명이 한강 나루를 건너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몰사한 사건이 있었다.“배가 뒤집혀 빠졌을 때 애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강 언덕에 퍼져 차마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숙종실록’ 44년 11월 4일). 나루라고 하면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루를 건너는 것은 먼 길을 떠나는 것이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나루’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목계 나루의 구름과 바람과 방물장수는 모두 정주하지 않는, 늘 떠나는 것들이다. 나루라, 어쩐지 서러운 말이로구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부고]

    이상원(이포텍 부장)씨 부친상 종원(서울신문 사진부장)씨 숙부상 김명석(LG화학 부장)씨 빙부상 18일 일산 백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31)919-2499이재극(전 미도파 이사)재욱(한양대 체육대학 교학부장)씨 부친상 18일 일산 동국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31)961-9411박봉수(S-OIL 수석부사장)씨 부친상 봉원용씨 빙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30분 (02)3410-6903구태우(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씨 부친상 18일 대구 곽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53)252-1603황원택(삼신설계 회장·전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씨 별세 상우(LG전자 MC디자인연구소)일우(대학생)재우(삼신설계)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3010-2292백훈(한국수력원자력 전원계획팀장)성훈(서울아이디시스템 이사)미훈(상명사대부속여중 교사)씨 부친상 윤병구(부산북항재개발 사장)씨 빙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10시 (02)3010-2231박성훈(부산울산지방중기청 조정협력과장)정희(양산대 교수)씨 모친상 장병윤(한국농장 대표)남기훈(자영업)전호환(부산대 조산해양공학과 교수)김경욱(한국수력원자력 발전운영부장)씨 빙모상 17일 부산광혜병원, 발인 19일 오전 11시 (051)507-4664박충희(전 한국꽃꽂이협회 이사장)씨 별세 원용대(전 청와대 비서관·전 특허청 항고심판소장)씨 상배 김지홍(연세대 상대 교수·금융감독원 회계전문심의위원)장호(에이스뷰테크 상무이사)씨 빙모상 1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2227-7556강지원(금강산업기계 대표)씨 모친상 18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0일 오전 4시 (02)2650-2743길의진(동양피엔에프 상무이사)씨 모친상 18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2650-2741
  • “여성예술가들의 숨겨진 삶 그리려 고민”

    “여성예술가들의 숨겨진 삶 그리려 고민”

    “몇년 전부터 역사소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정통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싫었습니다. 좀 색다른 느낌이 나는 역사소설, 아니 좀더 진화된 형태의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죠.” 1997년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트’로 등단한 소설가 권지예(48)가 변신을 시도했다.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의 억눌린 욕망을 다룬 포스트모던한 경향의 작품을 추구해온 그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역사소설 형식의 ‘붉은 비단보’(이룸 펴냄)를 내놓은 것. ‘붉은 비단보’는 조선시대 신사임당의 삶을 모티프로 삼아 여성 예술가들의 운명을 그린다.“예술가적인 삶이라는 게 항상 현실과의 불화 속에 고뇌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삶도 즐기며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냉철하게 예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예술가상을 신사임당에서 찾아보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신사임당이 모티프로 삼았을 뿐 소설속 주인공 ‘항아(恒我)’는 상상 속에서 탄생한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은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이미지지만, 소설속 항아는 ‘항시 나이고 싶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지은 이름 만큼이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의식이 강한 인물이다. “잘 알려진 신사임당은 사실 인물 자체로는 소설 주인공으로 매력이 없어요. 소설가는 삶의 이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니까 바깥에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면을 살피하려고 했습니다.” 소설속 세 주인공인 항아와 친구인 초롱과 가연은 신사임당과는 활동시기가 50년 가까이 차이나는 황진이와 허난설헌을 연상케 한다.“시대가 다른 사람을 한 시대로 묶었어요. 소설을 쓰는데 역사학자처럼 꼭 정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초롱은 빼어난 미모와 춤 솜씨를 지녔으나 서출인 탓에 결국 기생이 되고, 신동 소리를 들었던 사대부 자제 가연은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핍박을 받아 불행한 삶을 살다가 끝내 요절한다. 어쩌면 현실과의 불화 속에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허난설헌이야말로 예술가의 전형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는 “예술가는 작품으로 남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보다 냉철할 필요가 있다.”며 허난설헌을 닮은 가연보다는 신사임당을 닮은 항아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한다. 역사적 고증이 바탕이 됐지만 허구적인 부분이 많아 평전이나 정통 역사소설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작품 곳곳에 배치된 주인공들이 지은 한시들도 읽을거리다. 무명씨로부터 조선시대 한시, 고대 중국 여성들이 쓴 시까지 다양하게 빌려왔다. 작가는 “현실과 균형을 잃지 않고,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예술가의 경지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했다.”며 “하지만 결국 예술가란 오랫동안 작품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신사임당을 연구하다 보니 한계가 많았어요. 그래서 어릴 땐 발칙할 정도로 자유스럽던 주인공들이 후반부에 가서는 시대적 현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그런 까닭에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도 많다고. 앞으로 다시 역사소설을 쓴다면 다른 느낌의 작품을 쓸 것이라는 작가는 “당분간 신변을 정리한 뒤 추리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장편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1만 17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이건희 회장 떠난 삼성] 이수빈 새 대외대표는 누구

    삼성그룹의 대외대표를 맡게 될 이수빈(69) 삼성생명 회장은 1965년 삼성에 입사한 최고 원로이다. 78년 제일모직 사장에 오르는 등 그동안 최고경영자(CEO)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이 회장은 선대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신임받았다. 이수빈 회장은 제조와 금융 분야를 두루 경험한 삼성의 간판 경영인으로 통한다. 입사한 지 13년만에 간판기업 사장을 맡는 등 초고속 승진의 신화를 만들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조업에서 성공했다면, 이수빈 회장은 제조업과 금융업에서 모두 성공했다. 이 회장은 온순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다. 경리 분야 출신답게 특히 숫자에 밝고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없을 때 그동안 그룹의 얼굴 역할을 대신해왔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폐암수술 후 정밀진단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던 2006년 1월 삼성그룹 신년하례식 등 공식 행사를 주관하는 등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회장의 고교 4년 선배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정영숙씨와의 사이에 1남2녀.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高수학여행비 174만원 ‘돈 여행’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부모 조모(54·여)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학교 수업료에 학원비 등 다달이 나가는 교육비만도 50만원이 넘는데 이달에는 100만원이 훌쩍 넘게 생겼다.50만원이 넘는 딸의 수학여행비 때문이다.“친구들 다 가는데 안 보낼 수도 없잖아요. 자식 해외여행 간다는데 빚을 내서라도 보내고 싶은 게 부모 심정 아닌가요. 그런데 무슨 애들 수학여행비가 왜 이렇게 비싼지….” 바야흐로 ‘수학여행’의 계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4월 말 중간고사가 끝나면 수학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한숨 소리는 깊어만 간다. 해외 수학여행이 ‘대세’가 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의 ‘2007년 수학여행 실시현황’에 따르면 서울시내 238개 국·공·사립 고등학교 가운데 가장 높은 액수를 기록한 곳은 경복여고로 174만원(호주)에 달했다. 경복여고는 호주 말고도 일본·중국·싱가포르 등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호주 이외의 지역 역시 비용이 80만∼90만원에 이른다. 다음은 서울사대부고로 89만 5000원이다. 염광고 86만 9000원, 환일고 74만 8000원, 개포고 73만 9840원(이상 일본)이 뒤를 이었다. 서울시 전체 고등학교의 수학여행 평균비용은 27만 2000원으로 저소득층에게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경복여고 관계자는 “우리는 자매결연 학교를 직접 방문해 홈스테이 방식으로 머물다 오기 때문에 교육 효과가 크다.”면서 “액수가 크지만 분할납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부담이 그리 크지 않고, 반응도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부모의 말은 달랐다. 이 학교의 학부모 A(45)씨는 “분할납부를 한다고 해도 매달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데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수학여행비를 보니 공교육비 문제도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문제는 이런 ‘고액 수학여행’이 가격만큼 제몫을 해내고 있는가에 있다. 지난해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김모(18)군은 “중학교 시절 경주로 갔던 수학여행보다 시설이 훨씬 열악했다.”면서 “40명이 넘는 인원을 한 방에 몰아넣고 잠을 재우고, 음식도 형편없었다.”고 말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김찬웅 지음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김찬웅 지음

    “손자가 세 돌 되는/윤 3월27일에/학질이라는 병을 얻었다/먼저 몸이 차가워지고 그 후에 열이 난다(…)/소고기와 생과일이/어린아이에게 병을 잘 일으킨다는데(…)/주고 싶지만 먹으면 비장(脾臟)을 상하게 할 것 같고/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울며 보챈다(…)/손자야, 너도 네 아이를 키워봐야/마땅히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시대가 달랐다고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달랐을까.‘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글항아리 펴냄)는 함의가 다채로운 조선시대 육아해설서이다.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현대감각으로 재구성 글쓴이는 시나리오, 소설 등을 통해 글맛을 다져온 김찬웅 작가. 하지만 그의 텍스트는 조선 최초의 육아기록으로 알려진 ‘양아록(養兒錄)’이다.‘양아록’의 지은이는 묵재 이문건(1494∼1567).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돼 유배됐고 을사사화에 휩쓸려 다시 23년의 기나긴 유배로 생을 마친 비운의 조선 학자였다.‘묵재일기’를 통해 방대한 시대적 사료를 남긴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육아일기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자식들과 부인을 모두 잃고 그 자신 세상을 뜨기까지 무려 17년 동안 유일한 핏줄인 손자를 키우며 남긴 기록이 ‘양아록’이다. 대부분 한시로 쓰여진 원문을 책은 현대감각으로 재구성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양육방법, 자녀훈육에 대한 당대의 시각을 두루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읽을거리가 됐다. 이문건의 유일한 손자 숙길이 ‘양아록’의 주인공.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초년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로 구분지어 서술한다. 풍열, 간질, 두창, 홍역, 이질, 학질 등 온갖 병치레를 달고 사는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애가 끓는다. 달리 손 쓸 방도가 없어 굿을 했던 시대 정황이 생생히 재현된다. 천연두를 앓은 지 13일 전후, 환부에 딱지가 생기며 병이 끝날 즈음 마마신을 공손이 돌려보내는 ‘마마배송굿’을 약 대신 ‘처방’해야 했다. ●“손자 아플 땐 두렵고 겁 나…” 애틋한 사랑 모두 45편의 글 가운데 질병과 관련된 것이 16편이나 된다. 몇 편의 일기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만났던 일, 옥황상제에게 축문을 올린 일 등이 상세히 실렸다. 안타까운 마음이 행간에 절절하다.“두렵고 겁이 나서 침이나 약을 쓸 수 없었는데 얼굴이 여위고 누렇게 뜬 모습이 가엾기만 하다. 그 후로 답답함과 근심을 견딜 수 없어 한가로울 때면 한숨이 새어나온다.” 조선시대 어린아이의 돌잔치 풍경을 옮겨놓은 대목 등은 특히 흥미롭다. 돌상에서 붓과 먹, 투환, 활, 쌀, 도장을 집어올릴 때마다 어른들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축원했는지 넘겨다볼 수 있다. 커가는 손자에게 ‘소학’‘대학’을 직접 가르치고 숙제를 내주며 때론 매를 드는 모습, 책을 읽지 않는다며 그네를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 놓는 장면 등도 평범한 선비집안의 훈육과정을 가감 없이 대변해 준다. 조선의 출산, 육아문화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시대의 거울로서 자잘한 정보들이 풍성한 읽을거리이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위대한 유목민,위태로운 유목민/김명곤 연극인·전 문화부장관

    [열린세상] 위대한 유목민,위태로운 유목민/김명곤 연극인·전 문화부장관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자크 아탈리가 쓴 ‘호모 노마드(Homo Nomad)’는 21세기의 새로운 인간형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그는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첫째는 농민·공무원·교사·군인과 같은 ‘정착민’, 둘째는 연구원·음악가·연극배우·영화감독·운동선수·게이머와 같은 ‘자발적 유목민’, 셋째는 이주노동자·정치망명객·실업자와 같은 ‘비자발적 유목민’이다. 극한적인 재미를 추구한다는 ‘엑스펀(ex-fun)족’, 명품이나 골동품 구입 대신 여행·레저·공연관람을 즐긴다는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족’ 등은 자발적 유목민에 속하는 종족이다. 이들은 변화를 지향하며 창조적이고 자유롭다. 이들 중에는 부모 잘 만난 ‘팔자 좋은 유목민’도 있지만, 그들보다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세계적인 정보산업·엔터테인먼트 산업·과학계를 이끄는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스티븐 호킹과 같은 ‘위대한 유목민’이 주축이 되어 있다.21세기에 들어서서 전세계적으로 이들의 숫자는 급증하고 있으며, 인류 문명의 창조자로서 이들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한편, 퇴직에 대한 불안으로 창 밖만 바라본다는 ‘면창(面窓)족’, 평생을 아르바이트로 살아간다는 ‘파트타임 프리터족’ 등으로 대표되는 비자발적 유목민은 끊임없이 불안에 떨며 위태롭다. 게다가 이 종족 또한 급증하고 있다. 실업급여 신청자가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도 하고, 올해 우리나라 박사학위 소지자 4만여명 중 65.5%나 되는 2만 5000여명이 백수가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갈수록 높아지는 고령화 추세는 창조력과 생산력이 빈약한 실버 유목민의 증가를 야기한다. 유목민 증가는 정착민과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기존의 가치와 제도에 안주하고 안정적 사회시스템을 원하는 정착민들에게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파괴를 통해 변화를 꿈꾸는 유목민들은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이주노동자로 인한 인종차별과 폭동은 유럽과 미주 대륙의 심각한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민, 사대부, 판검사, 은행원, 군인, 경찰 등 정착민이 지배해온 사회였다. 권위주의·집단주의·지역주의 등은 정착형 사회인 우리나라의 전형적 규범이었다. 그러한 한국사회에 민주화 바람과 함께 유목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탈권위, 개인주의, 국제주의는 유목형 사회의 규범적 가치이다. 그들은 실험과 개척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고, 일탈과 파괴를 즐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사람들은 떠돌이·괴짜·광대·집시·부랑자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천재·창조자·개혁가로서 각광을 받는다. 최근 우리나라가 다시 보수적 정착형 사회로 회귀하는 모양새가 보이기는 하지만, 정착형 사회에서 유목형 사회로 진화되어 가는 세계문명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거라고 본다. 또 제 아무리 능력 있는 정착민도 언젠가는 직장을 잃고 조직을 떠나 비자발적 유목민이 되어 황무지를 떠돌게 되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우리사회 곳곳에서 기존의 관습과 제도를 혁신하자는 외침이 높아져 간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향후 ‘위대한 유목민’이 얼마나 배출되느냐 하는 과제는 한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위대한 유목민들이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하고, 변화와 도전과 창조의 세계를 펼쳐갈 때 위태로운 유목민들의 문제 또한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유목민의 양성과 지원에 주목할 때가 왔다. 김명곤 연극인·전 문화부장관
  • 달구벌대로 정비·녹지 확보

    대구의 미래 도시 모습을 바꿀 디자인 청사진이 나왔다. 대구시는 4일 수성구 대동타워에서 미래 도시디자인·경관의 밑그림이 될 ‘그랜드 디자인과 도시경관 중심축 기본구상’을 발표했다. 이 청사진은 전문가로 구성된 도시디자인위원회와 자문단의 15개월 동안 연구로 마련됐다. 대구를 바꿀 주요 디자인 대상으로 시가지와 하천, 역사, 문화, 지역 등 8개 분야가 선정돼 분야별 기본 디자인 계획이 수립된다. 여기에 도시 경관의 뼈대가 되는 중심축으로 달구벌대로와 동대구로, 서대구로, 신천이 선정됐다. 특징없는 건축물로 이뤄진 이들 지역에는 가로 정비와 녹지 확보 등을 통해 매력있는 대구만의 도시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달구벌대로의 계산오거리∼범어네거리 구간과 동대구로의 파티마삼거리∼범어네거리 구간, 신천의 대봉교∼신천교 구간에 대해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전에 공간구상과 함께 공공디자인 통합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달구벌대로는 조이풀 존, 아트풀 존, 그린 존 등으로 나눠 구간별로 테마화하고 사대부속초교에 문화 광장을 조성하는 한편 범어네거리에 경관 특화를 위한 상징 광장을 조성하기로 했다. 자문단은 실천 전략으로 중·장기 도시디자인 사업을 구분해 추진하며 도시디자인 기본계획의 수립과 함께 도시디자인 관련 위원회의 심의기준 및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시는 연구 결과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쳐 다음 달 그랜드디자인 기본구상을 확정할 계획이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새 금통위원 3명 임명… 통화신용정책 변화 촉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신임 위원 3명이 임명됨에 따라 앞으로의 통화신용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5.0%에서 지난해 8월 이후 3월까지 7개월간 동결하고 있지만 새 정부는 경기하강과 환율하락 등을 이유로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신임 위원 구성에 대한 한은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관료가 배제됐고 이명박 정부와 이런저런 인연들이 있지만 모두 교수 출신으로 비교적 중립적인 인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한은 “신임위원 구성 나쁘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환율과 금리 등 주요 현안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여 왔기 때문에 3명의 신임 위원을 임명할 때 노골적으로 친정부적 인사를 임명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좀 빗나갔다. 현재 금통위 구성은 당연직 금통위원인 이성태 총재와 이승일 한은 부총재, 심훈 위원, 박봉흠 위원 등 4명과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금통위원 강문수·이덕훈 위원 등 2명이다. 이성남 전 위원 자리는 공석이다. 따라서 4월 금통위원회는 6인만으로 구성된다. 신임 위원들은 20일 이후 세 위원을 대체하게 된다.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 금통위에서 신임 금통위원까지 포함하면 친(親)한국은행 성향으로 꼽히는 사람은 4명이다. 심 위원은 한은에 입행해 34년간 요직을 거친 골수 ‘한은맨’. 여기에 김대식 신임 위원은 1979년 한국은행 특수연구실에 근무한 적이 있고,1993∼1996년 한은 고문교수를 지내 친한은 인사로 분류된다. 다만 최근 김 위원이 일부 신문의 칼럼에서 “금융개방 체제에서는 국제금리의 변동과 환율의 움직임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앞으로 금리정책은 국내외 금리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정돼야 한다.”고 밝힌 점은 한은의 입장과 다르다. 따라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추천을 각각 받은 강명헌·최도성 교수와 함께 김 교수가 금리인하 쪽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새달까지는 금리동결 유지 예상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통위원 교체기에는 최소 두서너 달 정도 금리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경제 구성원들의 시선이 금통위에 몰리고 있는데 섣불리 의사결정을 할 경우 비난과 책임을 모두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온 금통위가 이달에도 통화정책 방향을 쉽게 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권은 대체로 다음달까지는 금리 동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금융통화위원 3인 프로필 ●강명헌 위원 학자 출신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위한 규제의 과감한 완화를 강조해 왔다. 출자총액제한제·금산분리제도 혁파의 필요성과 수도권 규제의 점진적인 완화를 주장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바른정책연구원의 정책실장을 맡기도 했다.▲54세·서울▲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단국대 경제학과 부교수▲단국대 상경대학장▲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 1분과 자문위원 ●김대식 위원 1979년 한국은행 특수연구실(현 금융경제연구원)전문연구위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토종 경제학원론인 ‘현대경제학원론’의 공동 저자로 1988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옹호하는 논문을 썼다. 최근 언론에서 국내외 금리차 축소를 위한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62세·전남 여수▲여수고▲연세대 경제학과▲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중앙대 제1캠퍼스 부총장 ●최도성 위원 자본시장 전문가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정리한 대표적인 학계 인사 중 한 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시정개발위원회에 참여했다.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로 자본시장의 금융중개기능 육성을 강조해 왔다.▲57세·부산▲서울사대부고▲서울대 경영학과▲미국 뉴욕주립대 부교수▲서울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증권학회장▲한국증권연구원장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신윤복의 그림 ‘봄날의 과부’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그림을 기법 차원에서만 독해한다면 그림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그림은 사회사적 독해를 요한다. 먼저 그림부터 꼼꼼히 챙겨 보자. 이 그림이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 기와를 얹은 담장이 에워싸고 있는 마당이다. 담장은 장방형의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기와를 덮었으니, 예사 집이 아니다. 권세 깨나 있고 돈 좀 주무르는 그런 집안이 분명하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담장 너머 흰 꽃, 붉은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배나무 꽃인가, 벚나무 꽃인가, 배롱나무 꽃인가. 어쨌든 좋다. 이런 꽃으로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의 짝짓기 그림에 담은 신윤복의 파천황적 발상 봄은 생명의 계절이고, 생식의 계절이다. 곧 봄은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인 것이다. 하여 그림 아래 부분의 마당에서 개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림에 개의 짝짓기라니, 조선시대에 신윤복이 아니면 불가능한 파천황적인 발상이다. 한데 짝짓기를 하는 것은 개만이 아니다. 개로부터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보면 참새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위로 참새 한 마리가 더 있어 파닥거린다. 바야흐로 봄은 짝짓기의 계절인 것이다. 식물의 꽃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식물의 성기가 아닌가. 꽃이 피고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식물의 짝짓기 행위다. 생명력이 충만한 봄은 어디서 왔는가. 당연히 담장 밖에서 왔다. 담장을 넘어오는 붉고 푸른 꽃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봄은 개구멍에서도 온다. 개 두 마리는 바로 담장 아래의 개구멍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새들이야 저 허공을 통해서 왔을 터이고. 그런데 담장 안은 어떤가. 이제 시선을 오른쪽 두 여인네로 옮겨보자. 두 여자는 비스듬히 누운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문제다. 나무는 소나무로되, 이미 꺾어진 소나무고,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래쪽의 빈약한 잎을 단 가지 둘뿐이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집 밖은 생명력이 충만한 봄인데, 여기 돌담 안의 집은 죽어가고 있는 풍경이다. 이제 여자 둘을 보자. 오른쪽 여자는 삼회장저고리를 제대로 차려 입고 있고, 머리를 길게 땋아 댕기를 묶고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귀한 집의 규수다. 왼쪽 여자는? 구름 같은 가체를 올리고 있는데, 옷은 모두 흰색, 즉 소복이다. 이 여자는 결혼을 한 여자이고, 또 상중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남편이 죽은 여인이다. 왜 신윤복은 과부를 그림에 배치했는가 궁금하다. 여자 둘의 시선은 개의 짝짓기에 가 있다. 그런데 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처녀의 표정은 쌀쌀맞고 차갑고 무심하다. 하지만 과부는 배시시 웃는다. 무언가를 안다는 눈치다. 과부의 웃음에 신윤복의 의도가 있다. 신윤복은 과부의 소외된 성욕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 철저히 억압한 가부장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성은 젊어서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재혼, 곧 개가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남편이 죽어도 여성은 개가, 삼가(三嫁)할 수 있었고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의 가부장적 윤리관은 여성의 재혼을 윤리적 타락으로 규정했다. 성종 때 ‘경국대전’의 편찬을 완료하면서, 남성의 가부장제는 마침내 법으로 여성이 개가해서 낳은 자식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벼슬자리를 얻을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 이런 판국이었으니, 양반가의 여성은 사실상 재혼의 길이 막혔던 것이다. 이런 조치와 함께 남성의 가부장제는 남편이 죽고도 재혼하지 않은 여성을 절부(節婦)라 부르고, 남편을 위해 자기 신체를 자해하거나, 대신 죽거나, 남편이 죽었을 때 즉시 따라죽은 여성을 열녀라고 불러 정문을 내리는 등 사회적 명예를 부여하였다. 이런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여성의 수절은 양반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퍼졌다. 양반 상인 할 것 없이 남편이 죽으면 예사로 수절하였고,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신윤복의 이 그림은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성이 수절할 경우 그 내면의 성욕을 처리할 방법이 묘연하였다. 조선조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을 출산과 쾌락으로 분리하고, 후자를 음란함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남편이 죽은 뒤 홀로 남은 여성의 성은 출산이 배제된 성이기에 쾌락만이 남았고, 그것은 자동적으로 음란함이 되었다. 홀로 된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설할 수가 없었으니, 이것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한 가장 큰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이와는 반대로 아내가 죽으면 속현(續絃)이란 그럴 듯한 말로 재혼을 할 수 있었고, 기생제도와 축첩제도 등을 통해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사실 개가를 금지하는 것은,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뒤에까지 여성의 성을 독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곧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변형될 뿐 가부장제가 아무리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는 담론을 유포해도 여성의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변형될 뿐이다.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의 서문은 한평생 밤이면 동전을 굴리면서 지새운 과부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과부는 이렇게 말한다.“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근본을 두고 있고,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생각은 고독한 가운데서 생겨나고, 아프고 슬픈 감정은 생각하는 데서 우러나겠지. 혈기가 때로 왕성하면 어찌 가부라고 정욕이 없겠느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 그림자를 조문(弔問)하며 외로운 밤 지새기가 괴롭고, 게다가 처마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든지 창에 달빛이 환히 들어올 때, 오동잎 하나 뜰에 날리고, 외기러기는 하늘에서 울고 가고, 멀리 닭의 울음소리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쿨쿨 코를 고는데 혼자 잠 못 이루는 이 고충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느냐?” 어떤가. 과부의 성욕을 억압하는 것이 어떤 형벌인지 짐작이 가는가. 양반가의 이 여인은 자신의 성욕을 억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았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조선후기의 문헌인 ‘기문’이란 책에는 과부의 이야기가 둘 실려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한 과부가 계집종을 데리고 수절하며 사는데, 계집종 역시 남편을 잃고 수절하였다. 어느 날 동네에 송이버섯 장수가 왔다. 과부는 송이버섯이 남성의 성기와 같이 생긴 것을 보고는 계집종을 시켜 값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사오게 하였다. 용도야 뻔하다. 두 여자는 송이를 ‘덕거동’이라 부르고 욕망이 솟을 때마다 덕거동으로 욕망을 달랬다.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여기서 멈추자. 또 다른 이야기 역시 과부의 것이다. 어느 날 과부가 이웃에 사는 기생이 잘 생긴 사내와 온갖 성희(性戱)를 즐기는 것을 보고 치솟아 오르는 욕망을 누를 길이 없어 집으로 돌아와 자위 행위에 빠진다. 이게 너무 심하여 마침내 말을 못하게 되었다. 이웃에 사는 할미가 무슨 일로 찾아왔다가 여자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는 한글로 필담을 한 끝에 자초지종을 알아내고는 동네의 장가를 들지 못한 사내를 불러와 짝을 맺어준다. 사내와 한바탕 거창한 방사를 치른 후 과부는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적지 않게 전하는 이런 이야기의 존재는 과부의 성적 욕망이 은폐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데 성공했을 뿐, 그 내면의 욕망을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신윤복의 그림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복을 입은 과부가 개의 짝짓기를 보고 배시시 웃는 그 장면은 그 젊은 과부의 내부에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이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같은 신윤복의 그림을 베낀 모방작도 더러 남아 있다. 신윤복의 그림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물론 수준은 원작에 한참 못 미친다. 작자 미상의 ‘봄날의 과부 모방작’만 해도 전반적으로 필치가 원작에 비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개의 짝짓기 장면이 아주 천박하게 느껴지는 등 전반적인 수준이 확연히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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